“꺄아아악--!!”
한참 좋으려 하는 참인데 어디선가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그것도 여자의 비명소리다. 사람이 들지 않는 흑암의 숲에서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려온다는 사실이 놀랍기는 하지만 그보다 본격적인 작업으로 들어가려는 참이라 짜증스럽기까지 하다.
“뭐야?”
“비명소리 같은데?”
“나도 알아. 도대체 왜 여기서 비명소리가 들리는 거냐구?”
“여자 목소리야.”
“하지만 지금 중요한 작업 중이란 말요.”
난데없는 여자의 비명소리에 잠시 멈칫거리기는 했지만 여전히 칸피니스의 손은 멈추지 않는다. 히리스의 온몸을 계속 붉은 빛으로 물들여가며 입으로만 불퉁거릴 뿐이다.
“갔다 와서 계속 하면 되잖아.”
아무래도 여자 목소리라는 것이 걸리는 모양이다.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히리스가 칸피니스에게 여자를 구하러 갈 것을 종용한다. 하지만 칸피니스는 요지부동이다.
“중간에 끊으면 기분이 식는단 말요.”
칸피니스가 계속 불퉁거리며 일어설 생각을 하지 않자 히리스는 최후의 수단을 동원한다. 칸피니스를 움직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면서 그녀로서는 별로 선택하고 싶지 않은 방법이다.
“흐응... 여잔데?”
“여자가 뭐 어때서?”
“잘 하면 꼬실 수도 있는데?”
“그... 그치만... 누님이...”
은근슬쩍 히리스의 눈치를 보는 것이 회가 동하는 모양이다. 히리스는 칸피니스에게 최후의 일격을 먹이기로 한다.
“여자 둘이서 남자 하나와 섹스를 하기도 한다며? 그... 뭐라더라? 3섬이라던가?”
효과는 바로 나타난다.
“위기에 처한 여자를 구해주는 것이야말로 남자로 태어난 의무! 저토록 처절한 비명을 지르는 여자를 보고 남자로서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소! 누님, 서운하시더라도 잠시 참도록 하시오. 내 금방 일 끝내고 돌아오리다.”
사뭇 진지한 표정이지만 히리스는 그의 속내를 훤히 꿰뚫어보고 있다. 분명 히리스와 미지의 여자를 끼워넣은 3섬의 원대한 야심을 활활 태우고 있으리라.
“그래,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 몸 식기 전에 빨리 와야돼?”
하지만 의외로 칸피니스는 처음 기세와는 달리 머뭇거리며 바로 출발하려 하지 않는다. 히리스는 으아한 표정으로 칸피니스를 바라본다.
“그런데...”
“왜?”
“여자가 못생겼으면 어쩌지? 그래도 누님, 괜찮겠수?”
어이가 없어 한동안 말도 안나온다. 하지만 상황이 급하니 대꾸는 해야 하기에 히리스는 억지로 반문해본다.
“내가 왜 괜찮아야 하는데?”
“3섬이라면 누님은 처음이잖우? 첫경험인데 그래도 예쁜 여자면 좋지 않겠어? 첫경험은 누구나 평생 기억에 남게되는 거라는데.”
“하하하...”
어이가 없음이다. 어이가 없음이야. 도대체 저 머릿속에는 어떠한 생각들이 들어있는지 한 번 갈라보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다 참아줄 수 있으니까 어서 갔다와.”
“알았어. 보기 흉할 정도로 못생겼으면 그냥 두고 올게. 평소라면 여자라면 가리지 않는 나지만 오늘은 누님도 있으니까.”
“하하하하...”
웃음만 나온다. 너무 어이가 없어 헛웃음만 입술을 비집고 새어나올 뿐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웃음이 기분 좋아서인 것이라 착각한 것인지 칸피니스가 마주 히죽 웃는다. 히리스의 머리가 힘없이 절레절레 가로로 흔들린다.
“어서 갔다와. 그러다 시체만 남아있겠다.”
“알았수. 그럼 조그만 기다려요.”
“그래.”
칸피니스는 알몸에 옷도 걸치지 않은 채 옆에 세워둔 바스타드 소드 한 자루만 들고 숲 저쪽으로 달려간다. 바닥이 그리 고른 것도 아니건만 맨발로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잘 달려간다.
“멋지네.”
숲그림자를 온몸에 무늬처럼 그리며 알몸으로 달려가는 근육질의 남자의 모습이 아름다울 수 있음을 히리스는 새삼 깨닫는다. 그 근육이 꿈틀거리며 땅을 박찰 때마다 번들거리며 반사되는 땀이 마치 환상을 보는 듯한 신비감마저 자아낸다.
“쳇, 머릿속만 정상이면 정말 멋진 남자일텐데... 쳇쳇... 허우대만 멀쩡해가지고서는...”
히리스의 투덜거림이야 상관없이 칸피니스는 미지의 여자를 향해 숩조차 쉬지 않은 채 바삐 달려간다. 조금전에야 히리스와의 하던 일 때문에 불퉁거리긴 했지만 혹시나 미인일지도 모르는 여자가 위험할 수도 있다 생각하니 자신의 발걸음이 답답할 정도로 느리게만 느껴진다.
“죽이려면 사내자식들을 죽여라!! 여자는 안돼애애애애!!!”
끝내 터져나오는 절규. 평소 몬스터의 습격으로 여자들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속으로 부르짖던 외침이다. 그 처절한 외침에 일순 흑암의 숲의 나무들조차 부르르 떠는 듯하다.
창--! 창--!! 챙챙--!!
그의 외침 덕분인지 아직 여자가 살아있음이 무기 부딪히는 쇳소리가 되어 칸피니스에게 전해진다. 소리를 들어보니 대충 이십여 걸음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다.
“저거 바보 아냐?”
쇳소리가 너무 맑다는 사실에 칸피니스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한 소리 내뱉는다. 쇠와 쇠가, 즉 무기와 무기가 정면으로 맞부딪히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검이 위력이 있기 위해서는 그 날이 날카로워야 한다. 날이 날카롭다는 것은 그 부분의 쇠가 얇다는 것을 의미한다. 검이 날카로울수록 그 날의 쇠는 얇다. 살을 베는 데조차 날이 상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약하기만 하다. 그런데 하물며 쇠끼리 부딪힌다면 어찌 되겠는가?
그래서 검술을 익힘에 있어 기본이 되는 것은 칼이 부딪힐 때 살짝 빗껴 부딪힘으로써 검의 날을 보호하는 것이다. 정확히 무기의 날에 부딪히는 것이 아니라 살짝 검날의 옆면으로 미끄러지듯 부딪히는 것이기에 기사들의 검격은 그래도 둔탁한 소리가 난다. 저리 무기가 정면으로 부딪힐 때 나는 맑은 쇳소리는 결코 날 수도, 나서도 안되는 것이다.
“야! 너 뭐하는거야?”
아니나 다를까 막 수풀을 헤치고 여자가 오크들과 싸우는 곳에 이르자 여자의 손에 들린 검이 이가 듬성듬성 빠진 채 톱처럼 변해있는 것이 보인다. 얼핏 보기에도 자신이 갖고 있는 검보다 신경써 만든 게 분명해보이는 명검이었음에도 저리 처참하게 변한 것이 못내 가슴이 아프다.
“어? 칸피니스!”
칸피니스가 여자의 검을 보고 놀란 만큼이나 여자도 칸피니스를 보고 놀란 모양이다. 오크의 공격을 미처 막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손을 놓아버리는 것을 보니 말이다.
“어? 칼레아나?”
칸피니스도 그제야 여자의 얼굴을 보고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결코 여기에서 보아서는 안되는 얼굴이 자신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짓고 있으니 놀라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다.
“꾸에엑--!!”
“꾸룩--!! 쿠에엑--!!”
“꿰엑--!”
다만 칸피니스가 칼레아나라 불리운 여자와 다른 점은 놀라는 순간에도 검을 쥔 손을 항상 끊임없이 움직인다는 점일 것이다. 예리하고 파괴적인 그의 검은 멍한 표정으로 칼레아나를 보는 동안에도 오크들의 숨통을 끊어 하나하나 그들이 흘린 핏속을 뒹굴며 눕게 만들고 있다.
“칼레아나, 너 여긴 어쩐 일로?”
별로 걱정이 되는 상대는 아니다. 기껏해야 오크 스무 마리 정도다. 뛰어난 검사라면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한 숫자다. 하물며 뛰어난 수준을 넘어선 칸피니스에게라면 말할 나위도 없다. 그가 말을 하는 동안에도 고깃덩이가 되어 땅위를 뒹굴 뿐이다.
“아, 그... 그게...”
칼레아나는 힐레인의 쌍둥이 언니다. 하지만 힐레인과는 사뭇 다른 성격이라 칸피니스와는 그동안 크게 충돌한 적이 없다. 그렇다고 히리스처럼 친절한 것은 아니고 그저 대놓고 경멸하지는 않는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정도만으로도 칸피니스로서는 그녀를 충분히 좋은 인상으로 기억할 이유가 되었다.
“쿠웨에에엑--!!”
대충 마지막 오크가 장렬한 비명으로 자신의 최후를 알리는 것을 감상하며 칸피니스는 다시 칼레아나에게 묻는다.
“뭐야? 네가 어떻게 어기 있는거지? 너도 여기서 수련하는거야?”
“그... 그게... 거기... 으... 응...”
‘응’이라는 한 마디를 하려는 것 치고는 준비과정이 너무 길다. 그 어색한 머뭇거림이 눈에 거슬렸는지 칸피니스의 눈이 가늘어진다. 칼레아나의 몸이 움칫 움츠러든다.
“흐음... 여기서 수련하는 것치고는 실력이 형편없는걸?”
“그... 그게... 이제 얼마 안되니까...”
“흐흐흥...”
얼굴이 빨개져서는 더듬거리는 모습이 귀엽게 느껴진다. 거짓말을 이렇게 표나게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일거라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입가가 올라간다.
“그... 그게... 저기...”
아무말 않는데도 계속 변명거리를 찾기 위해 말을 더듬는 걸 보니 평생 거짓말은 못하고 살 팔자인 모양이다. 저렇게 서툴러서야 하다못해 남편의 정부와 남편을 사이에 두고 신경전이나 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그게? 그게 뭐? 그게 뭔데?”
“저... 저기... 그... 음... 저...”
확인사살 겸 한 마디 끼워넣으니 그 의미없는 말에도 얼굴이 굳은 채 땀을 뻘뻘 흘리는 것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그러면서도 귀엽게 느껴지는 건 히리스 누님이나 힐레인이나 이쪽 혈통에 미인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힐레인과 비슷한 외모이면서도 밖에서 활동을 많이 해 짙은 색으로 그을인 피부나 햇빛에 바랜 머릿색은 그녀만의 독특한 매력을 풍기고 있다.
“귀여워.”
“저... 그... 그게... 에? 귀... 귀여워?”
“응, 귀여워. 넌 자각 못하고 있는 지 모르겠지만 지금 네 모습은 정말 귀여워. 그거 알고 있니?”
“그... 그게... 무슨 말...?”
“나중에 천천히 생각해보도록 하고. 이만 가자.”
“에...? 히리... 웁!”
처음엔 놀라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놀라서 자신의 알몸을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라고. 그런데 계속 자신에게서 눈을 돌리는 모습에 그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만 의문은 남자의 알몸을 보면서도 어찌 그리 태연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설사 경험이 있다고 하더라도 14살에 불과한 아이가 남자의 알몸을 앞에 두고 눈만 이리저리 돌려 피할 수 있는 건 아닌데.
그녀의 중간에 끊긴 말은 이같은 의문에 대한 가장 확실한 답이다. 그리고 그녀가 그토록 거짓말을 해가며 숨기려 했던 내용이기도 하다.
“히리스? 네가 히리스 누님을 어찌 알아?”
“히... 히리스가 아니라... 그게...”
서툰 거짓말을 어떻게 해서든 이어가려는 모습이 처절하기까지 하다. 되지도 않는 거짓말을 하느라 쓸데없는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을 그대로 지켜볼 정도로 칸피니스는 불친절한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아무리 표정을 바꾸어봐야 네 거짓말은 너무 표가 나. 어린애도 네가 거짓말 하는 건 바로 알아볼 수 있을걸?”
“에? 그... 그건...”
특히 여자에게 친절한 칸피니스는 자신의 여동생이 있지도 않는 거짓말의 재능을 개발하느라 다른 가능성 있는 일에 소홀할 가능성을 미리 잘라내주는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그의 배려가 너무 감격스러운지 눈물까지 글썽이는 칼레아나의 모습에 칸피니스는 왠지 가슴이 뿌듯해짐을 느낀다.
“그러니까 대충 그런거잖아. 네가 오늘 나와 히리스 누님을 따라 이 흑암의 숲에 들어왔다. 아마도 내 수련장면을 훔쳐보려는 의도였겠지? 그런데 한창 수련하다말고 히리스 누님과 섹스하는 모습에 지레 놀라서 도망치다가 오크떼를 만나게 된거 아냐? 어때? 대충 맞았니?”
“어... 어떻게 그걸...?”
놀라 어쩔 줄 몰라하는 칼레아나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칸피니스는 마지막 확인사살을 해준다.
“네 표정에 그리 쓰여져 있거든. 그러니까 이마부분에는 나를 따라온 거라고... 뺨에는 히리스 누님과의 섹스를 훔쳐봤다고... 음 입술에는... 이런... 나한테 반했다고 써있는데? 하하하하하!!”
자기딴에는 농담이라고 한 모양이지만 칼레아나에게는 농담이 아닌 모양이다.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울쌍을 짓고 있는 것이 왠지 심각해지는 분위기다.
“저... 정말인가요? 어... 어떻게...?”
“어라? 사실이었어?”
“그... 그게 정말 보이는거에요?”
“엑? 진짜 사실인 모양이네?”
칼레아나만큼이나 칸피니스도 거짓말을 못하는 성격이다. 칼레아나가 순진해서라면 칸피니스는 너무 강해서 굳이 거짓말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질 뒤틀리면 모두 죽여버리면 되는데, 그럴 힘이 있는데 왜 굳이 거짓말을 해야 하는가?
하지만 칼레아나는 거짓말에 서툰 만큼이나 다른 사람의 거짓말에 잘 속는다. 델킨피에르 가문에서 사실상 칸피니스와 별반 차이 없는 처지가 되어버린 것도 그같은 순진함이 원인이 되어서였다. 그런 그녀이니 칸피니스의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가능한 것이다.
“어허허... 너 정말 나 좋아하는거야?”
“에? 그... 그럼...?”
“당연히 농담이었지.”
“그... 그게... 그... 그... 극... 으아아아아앙--!!!”
칸피니스의 느믈거리는 얼굴을 바라보던 칼레아나의 입에서 끝내 울음이 터져나온다. 그토록 숨기려 애썼던 감정을 들킨 데 대한 부끄러움과 더구나 칸피니스의 장난에 속아 자기 입으로 실토했다는 억울함이 복받쳐오른 것이다.
“야... 야! 칼레아나... 어이... 얘... 레아... 야!! 임마!! 가스나야!! 어이!!”
“우아아아아아앙~~!!!”
절대무적 색마 칸피니스가 한 가지 못하는 것이 있으니 우는 여자 달래는 것이다. 그것도 자신보다 어린 여자아이를 달래는 것만큼은 도무지 할 짓이 못된다.
“어... 어쩌지? 어쩌나? 으으음... 음... 젠장. 할 수 없다. 누님께 가보자.”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로서는 방법이 없다. 평소 자신을 앞에 두고 우는 여자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갖고 살와왔던 그이기에 달리 칼레아나를 달랠 방법은 떠오르지 않는다. 히리스라면 어찌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에 모든 걸 걸어보는 수밖에.
“칼레아나, 히리스 누님께 가보자. 히리스 누님이랑 이야기해봐. 알았지?”
“으으아아아아아앙~~!!”
“그럼 히리스 누님께 데려간다.”
“아아아아아아아앙~~!!”
“그럼 가자. 읏샤!!”
칸피니스가 자신을 어깨위에 걸쳐맬 때에도, 그 상태로 히리스를 향해 달려갈 때에도 칼레아나는 울음을 멈추지 않는다.
“으아아아앙~~!!”
“시끄럽네, 정말! 자꾸 그럼 안아주지 않는다!!”
“흑흑... 우아아앙~!!!”
칸피니스의 다그침에 잠시 주춤하던 울음은 더욱 커지기만 할 뿐이다. 귀가 멍멍해오는 울음소리에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걸음을 히리스에게로 걸음을 재촉하는 것 외에는 아무래도 아무 방법이 없는 모양이다.
“누님! 좀 보쇼!”
여전히 알몸으로 칸피니스의 코트 위에 비스듬히 누워서 칸피니스를 기다리던 히리스는 칸피니스가 누군가를 들쳐메고 오자 급히 자세를 바로잡는다.
“진짜로 데려온거야?”
아무리 망할 동생이고, 아무리 구제불능 색마라지만 여자를 구하러 가서 진짜로 업고 올 줄은 생각도 못했다. 이제 꼼짝없이 생판 모르는 여자와 3섬이라는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진다.
“응, 기다렸나보네?”
칸피니스 딴에는 농담이라고 한 말이지만 히리스에게는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다. 도대체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는지 허탈한 고민이 뇌리를 스칠 뿐이다. 그래도 귀족가의 영양인데, 그래도 엄격한 예법 교육을 받은 자신인데, 그런 자신이 다른 여자와 함께 한 남자를 상대하는 3섬까지 하게 되었으니 정신이 아득하기만 하다.
“어라? 진짜인거야? 좋아서 정신까지 놓고 있는데?”
“누가!!”
“아닌가? 아님 됐구. 그나저나 누님, 얘좀 봐줘봐. 아까부터 정신없이 울어대는 바람에...”
“울어? 누가?”
“어라?”
그러고보니 여기까지 달려오는 사이 울음이 그쳐있다. 얼른 어깨에 올려놓았던 칼레아나를 내려놓고 보니 얼굴까지 발갛게 물든 것이 언제 울었느냐 싶은 모습이다.
“야, 너 다 울었냐?”
“야, 야, 하지마. 칼레아나라고 불러. 나도 꼬박꼬박 칸피니스라고 불러주잖아.”
얼굴이 발갛게 물든 모습으로 바락바락 대들어봐야 귀여움만 더할 뿐이다. 눈까지 감고 있던 모습이 연상되어 눈꼬리를 치켜뜬 모습까지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앙증맞아 보인다. 프란츠 이 인간은 도대체 딸들을 왜 이리도 잘 낳았단 말인가. 아들놈들은 그렇게 형편없는데 딸들만큼은 정말 그를 위해 존재한다 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나다.
“알았어, 칼레아나. 다 운거야?”
“울긴 누가 울었다고 그래.”
“울었잖아. 방금전까지.”
“아냐, 안울었어.”
“울었잖아!”
“안울었어!”
말싸움 수준이 나이를 절반씩 자른 시절로 돌아간 듯 하다. 유치하기까지 한 고집싸움에 고개를 젓느라 히리스는 칼레아나를 처음 본 놀라움을 겨우 추스를 여유를 갖는다.
“어... 어떻게 된거야? 칼레아나, 네가 여길 어떻게...”
“흥!”
히리스의 놀란 모습과는 달리 칼레아나는 뭔가 굉장히 마음에 안드는 듯 심통맞은 표정이다. 히리스의 알몸을 위에서 아래로 훑는 모습이 의도적으로 트집거리를 찾고자 하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아도 동생 칸피니스와 근친상간의 관계를 갖는다는 사실에 자격지심을 갖고 있는 히리스다. 동생에게 그 모습을 들켰다는 것만으로도 불안한데, 그 동생이 저리도 노골적으로 적의를 보이니 절로 몸이 움츠러든다.
“카... 칸피니스.”
구원을 청할 곳은 칸피니스 뿐이다. 어찌되었든 그는 어떠한 상황에서든 자신을 책임지고 보호해주어야 할 그의 남자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그녀가 의지할 수 있는 의지처가 되어주어야할 존재다.
“아아... 비명지르면서 오크랑 놀고 있길래 주워왔소.”
“주워와?”
“응. 빽빽 울어대는 게 시끄러워서 누님이면 어떻게든 해줄줄 알고...”
“하지만...”
칸피니스가 무슨 말을 하는 지는 알겠지만 그래도 쉽게 이해할 수 없다. 그와 자신과의 관계가 어떠한 것인가를 알고 있는 그가 어찌 칼레아나를 그녀가 있는 곳으로 데려올 수 있단 말인가. 지금 칼레아나가 짓고 있는 저 표정을 정말 예상치 못했던 것일까?
“흥!”
칸피니스의 말이 못내 불만스러운 듯 따지려들던 칼레아나는 히리스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것을 느끼고는 이내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린다. 여전히 마음에 안든다는 표정이다.
“걱정마쇼. 원래라면 누님 알몸보다는 내 알몸 보고 미친 듯 비명 빽빽 질러댔어야 하는 것 아뇨?”
“그... 그렇지...”
“그런데 저리 태연히 있다는 건 이미 오래전부터 남자몸에 익숙해져있거나...”
“누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칼레아나의 반박이 들어온다. 하지만 히리스와 눈이 마주치자 다시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린다. 역시나 마음에 안든다는 기색을 팍팍 풍기는 모습이다.
“내 알몸을 꿈에도 그렸다는 뜻 아니겠소?”
“엑?”
“누가!!”
히리스의 놀라움과 칼레아나의 반박이 터져나온 것은 거의 동시다. 거의 동시에 칸피니스를 향해 해명을 요구하는 눈빛을 보내던 둘은 다시 서로의 눈빛을 마주하자 습관처럼 고개를 돌려 눈빛을 피한다. 이번에는 칼레아나의 콧방귀가 없다.
“아니야? 아까 그랬잖아. 이몸의 품에 안기기를 꿈에서도 열망하다가 저도 모르게 나를 쫓아오게 되었다고 말야.”
“그... 그게 사실이야?
“누가! 도대체 내 말이 어떻게 해석하면 그런 뜻이 되는데? 히리스 언니도 그런 말 믿지 마! 거짓말인게 바로 표가 나잖아!”
“나를 쫓아서 이 흑암의 숲까지 들어왔다고 했잖아? 그리고 나를 좋아한다고. 그러면서도 내 알몸을 피하지도 않고, 히리스 누님이 있는 것도 알고 있고. 그럼 당연한 거 아냐? 나를 보고 싶어서 찾아왔다가 히리스 누님과 섹스하는 거 보고는 충격받고 도망치다가 오크와 만났다. 뭐 그런거겠지?”
“뭐가 그래? 뭐가 그런거겠지야?”
“그... 그럼... 칼레아나가 저리 툴툴거리는 건?”
“질투야!”
“아아...”
“아니야!”
“질투하느라 그런거야. 임자없는 몸인 줄 알았던 이 잘난 오라버니가 임자있는 남자였다는 사실에 실망하고, 그 임자가 누님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어 충격받은 끝에, 포기할 수 없는 사랑을 질투로 그렇게 표현하고 있는거지.”
“아아... 그렇구나.”
“누가! 마음대로 결론짓지 마!”
“칼레아나 귀엽지?”
“응, 귀엽네.”
“야! 말 좀 들어!”
“원래 부끄럼 많이 타는 애들은 자기 속마음 숨기느라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곧잘 하는 편이지. 누님도 그랬잖아?”
“그래, 본의 아니게 거짓말쟁이가 되기도 하는 그 기분... 나도 잘 알아. 그래서 칼레아나가 더 귀여워보이나 봐. 예전 내 모습과 비슷하거든.”
“야!! 야!! 자기들끼리 멋대로 결론짓지 말라니까!!”
“훗... 누님도 저랬었는데...”
“하하하... 그랬었나? 난 저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아니긴. 얼마나 내숭이었다구. 그냥 한 입에 깨물어먹고 싶을 정도로 음충맞았다니까?”
“후후후... 그래서 처음 할 때 내 젖가슴을 그리도 세게 물었던 거구나?”
“흐흐흐... 이제 알았수?”
“야! 나도 말 좀 하자.”
“해?”
“해라, 누가 말리니?”
“젠장, 그래, 너희들끼리 다 해먹어라.”
“말 하라니까?”
“말 해? 아무도 안말려.”
“하하하... 하하...”
너무도 진지하고 태연한 두 사람의 모습에 괜히 얼굴 붉히며 열 낸 칼레아나만 상황이 우스워진다. 어찌 이리도 마음이 잘 맞는 커플이 있단 말인가? 남의 말 안듣고, 멋대로 판단하고, 그 판단에 따라 저리도 진지해질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을 리 없는데 이렇게 커플씩이나 보게 되니 차마 할 말이 없다. 그저 웃을 수밖에.
“기분이 좋은가보네?”
“원래 속마음을 털어놓고 나면 기분이 좋아. 나도 그랬거든.”
“흐흐흐... 그때도 넘겨짚은 거였는데...”
“하하... 그렇지? 그럴 것 같더라구... 하지만 그런 기회가 아니면 안되겠다 싶어서 한 번 오버해본거지.”
“그럼...”
“아마 칼레아나도 그럴거야.”
“그래, 맘대로 해라. 맘대로. 누가 말리겠냐?”
전부 틀린 말은 아니다. 처음 칼레아나가 히리스를 보았을 때 심술맞은 표정을 지어보인 건 칸피니스의 말대로 질투 때문이었다. 그녀의 몸에 난 멍자국들과 아직도 남아있는 침자국들이, 아직도 젖어 뭉쳐있는 보지털이, 칸피니스이 알몸과 겹쳐지며 그녀를 자극한 것이 그녀를 불편하게 만든 원인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자신의 마음을 저리도 노골적으로 이야기해주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상스럽게 대해주니 기분이 좋은 것도 사실이다. 혹시라도 큰 죄라도 될까봐, 큰 허물이라도 될까봐, 꼭꼭 숨겨왔던 마음이기에 아무것도 아닌 양 대해주는 저 모습이 너무도 고맙다.
하지만,
“어쨌든 약속은 약속이니까 칼레아나 끼워서 3섬 할까?”
“하... 하지만...”
“아무나 여자 주워오면 3섬 할 수 있다며? 해준댔잖아? 그... 그건...”
“그러니까 하자. 칼레아나도 마침 기회가 좋...”
퍼억--!!
“욱!”
“뭔소리들을 하는거야?”
“그... 그거 검이지?”
“왜 갑자기 거기서 3섬 얘기가 나오는거야? 도대체 뭔소리야?”
“3섬이란 그러니까 두 여자와 한 남자, 한 여자와 두 남자, 드물기는 하지만 세 남자와 세 여자...”
퍼억--!!
“윽--!!”
“3섬이 뭔지는 나도 알아! 그런데 대체 왜 그 얘기가 여기서 나오는건데? 도대체 무슨 일이야?”
“그러니까 히리스 누님과 약속을 했거든? 비명지르고 있는 여자를 구해오면 3섬 해주겠다고? 너를 구해온 것도 그 때문이야. 그러니까...”
“아하... 그런 이유인거야?”
히리스를 노려보는 칼레아나의 눈빛이 서늘하다. 섬뜩한 푸른 눈빛 넘어 어두운 광기가 보인다.
“꿀꺽...!!”
히리스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킨다.
“저... 저기... 그... 그게... 카... 칸피니스!! 야!! 네가 마...말 좀 해봐!”
궁지에 몰린 그녀가 선택할 대안은 칸피니스 뿐이다. 인간을 넘어선 그의 뻔뻔함이하면 무언가 해줄 수 있을거라는 막연한 기대로 그에게 도움을 청한다.
“네가 인정했다시피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너를 넣어 히리스 누님과 나 세 사람이 섹스를 즐기겠다는 원대한 계획인 셈이지.”
역시나 칸피니스는 그녀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는다. 특유의 그 건방짐과 뻔뻔함으로 칼레아나의 성질을 긁어버림으로서 히리스를 그녀의 적의로부터 구해낸다.
“왜 당신들 멋대로 정하는건데?”
“원래 너를 구하게 된 게 그 약속 때문이라니까?”
칼레아나의 적의는 칸피니스의 뻔뻔함 앞에는 무력할 뿐이다. 여전히 그 능글거리는 웃음을 지우지 않은 채 칼레아나를 포함한 3섬을 기정사실로 만들고 있다. 보고 있는 히리스까지도 열받게 만드는 모습이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되는건데? 당신들 멋대로 정해버리면 내 생각은! 내 자유의지는! 내 결정권은! 내 처녀는! 내 첫경험은! 왜 내 첫경험이 당신들 3섬의 희생양이 되어야 하는건데?”
“히리스 누님도 3섬은 첫경...”
퍽--!!
“으악!!”
히리스의 응징은 칸피니스의 말보다 빠르다. 주위에 떨어져있던 오크의 팔을 들고 있는 힘껏 휘둘러 칸피니스의 뒷통수를 후려쳐버린다.
“너... 처녀였니?”
“그럼, 언니는 14살에 불과한 내가 처녀가 아닐 거라 생각한거야?”
“하지만 기란스 경은...”
“그 새끼 말도 꺼내지 마!!”
칼레아나 앞에서 이 말은 금기다. 힐레인의 쌍둥이 언니이면서도 그녀가 가문에서 칸피니스와 별반 다를 것 없는 대우를 받는 이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알렌 토르 기란스란 이름은 결코 칼레아나 앞에서는 꺼내서는 안되는 이름이다.
“그럼...”
“그 병신새끼와는 아무 일 없었어. 그 인간이 일 저지를 용기만 있었어도 개새끼 소리는 듣지 않았겠지.”
“후우... 미안하다. 네 앞에서 그 야기를 꺼내는 게 아닌데.”
아무래도 쌓은 감정이 많은 지 칼레아나의 반응은 예상 이상으로 격렬하다. 그럴만도 할 것이다. 13살의 나이에 처음 가진 사랑의 감정이 기사씩이나 되는 남자의 비겁함 때문에 불명예스럽게 끝나야 했으니 어렸던 만큼, 그 감정이 순수했던 만큼, 그만큼 더 상처가 컸을 것이다.
“어쨌든! 난 처녀란 말야! 왜 내 첫경험이 당신들 3섬 안에 묻혀야 하는데...”
칼레아나의 원통한 부르짖음은 칸피니스의 뻔뻔함 속에 그대로 묻혀버린다.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안그럼 히리스 누님과 내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너는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하는데? 그래도 좋아?”
“그러니까 왜! 내가 당신을 좋아한다는 것이! 지금 당장 내가 당신과 섹스를 해야 하는 이유가 되냐구!”
“그거야 네가 나를 좋아하기 때문이지. 당연한 거 아냐?”
“그러니까! 당신을 좋아한다는 것과 지금 당장 히리스 언니와 함께 당신과 섹스를 해야 하는 것과 무슨 논리적 연관성이 있냐고 묻는 거잖아.”
“그러니까, 너는 나를 좋아하고, 그런데 지금 나는 히리스 누님과 섹스를 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나를 좋아하는 너는 히리스 누님과 내가 하는 섹스를 구경만해야 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섹스를 하는 걸 구경만 하는 건 매우 약오르는 일이고, 뭐 그런 것 아니겠어?”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거야?”
“응!”
“뭐가 말이 돼!!”
“말이 되잖아?”
칸피니스의 뻔뻔함을 처음 경험하는 칼레아나는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다. 아직은 14살밖에 안되는 그녀가 인간의 범주를 넘어서는 칸피니스의 뻔뻔함을 감당한다는 것은 무리인 것이다.
“칼레아나, 너 말 타고 왔지?”
“어? 언니? 응, 그런데?”
갑자기 어깨를 짚어오는 손길에 고개를 돌려보니 어느새 옷을 차려입은 히리스가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
“그럼 나랑 같이 가자. 칸피니스가 저러기 시작하면 끝이 없거든. 말로 해서는 통하질 않으니까 그냥 내버려두고 가는 게 상책이야.”
“아아... 그렇겠네?”
“어쨌든 저 어이없는 사람은 여기서 혼자 남아 오크나 상대하라고 하고 우리는 우리끼리 성으로 돌아가도록 하자. 길은 알고 있지?”
“응.”
“그럼 가자.”
칼레아나가 히리스에게 팔을 붙잡힌 채 멀어져가자 칸피니스는 다급해진다.
“누... 누님... 저... 약속은...?”
“아무리 약속이래도 내 동생의 첫경험을 이런 곳에서의 3섬으로 끝낼수는 없어.”
“그... 그러면... 하... 하던 거라도...”
“넌 지금 내가 그거 할 기분이라 생각하는거니?”
“누... 누님...”
“넌 안갈래? 안가면 우리 먼저 가고...”
“그러는 게 어딨소?”
“여어. 너 안가면 우리 먼저 갈게. 칼레아나, 가자.”
“누... 누님, 위험해요. 몬스터 나온다고.”
“그럼 얼른 옷입고 따라와.”
“제... 젠장, 알았수. 그럼 조금만 기다려요.”
“알았어. 서둘러.”
히리스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으로 V자를 그려보이자 칼레아나도 마주 눈을 빛내며 웃어준다.
“헤에, 저 칸피니스가 꼼짝 못하네?”
“후훗... 원래 그런 녀석이거든. 제멋대로이긴 하지만 또 제멋대로인 여자에게는 곧잘 휘둘리는 타입이지.”
“그런거야?”
“응. 보기 드문 타입이기는 하지만... 사귀면 재미있어. 즐겁고.”
“헤에...”
“너, 그런데 정말 칸피니스가 좋은거야?”
“강하잖아. 강한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강하리라곤... 인간 같지 않은 강함이 정말 멋져. 아름다울 정도야.”
“하긴, 너는 검을 좋아했으니까. 검술을 익히는 것도 즐기고. 그래서 그런거니?”
“응. 검을 든 사람으로서 강한 사람을 사랑하는 건 당연한 것 아냐?”
“후후후... 그렇겠구나.”
“더구나 지금 이렇게 이야기하고 나니까 더 좋아졌어. 저렇게 귀여운 줄은 몰랐거든. 저렇게 강하고, 저렇게 귀여운 남자라니, 정말 이상적이야. 아아... 왜 저런 남자가 내 첫사랑이 아니었을까?
“후후후... 정말 좋은가보구나.”
“응. 좋아.”
“그럼 잘해봐. 꽤 괜찮은 녀석이니까.”
“엑? 그래도 좋은거야?”
“너만 좋다면.”
“그래? 그럼 잘 부탁한다고 말해야 하나? 어찌되었든 언니가 내 선배니까.”
“아무렴 어떻겠니? 어차피 넌 내 동생인데...”
“하긴, 그렇겠다. 아, 저기 칸피니스가 옷 갈아입고 온다.”
“그렇네? 얼른 떠날 준비 하자. 너도 네 말 끌어와야지.”
“알았어. 조금만 기다려.”
두 자매의 화기애애한 대화에서 멀리 벗어난 한 곳에서는 마계와도 비견되는 어두운 오라가 피어나고 있다.
“젠장, 어쩌다... 어쩌다... 다 된 거였는데... 다 된 거였는데... 칼레아나만 아니었으면... 칼레아나가 아니었으면... 우우우우... 어쩌다가... 아아아... 이대로... 이대로 돌아가야 한단 말인가? 이대로? 아무것도 못한 채?”
욕구불만으로인해 사타구니를 손으로 억누른 채 열심히 옷을 입고 있는 칸피니스다. 오늘은 칸피니스 일생의 가장 불행한 날로 기록될 것이다.
“하던 건 마저 해야 하니까 돌아가서 메어리나...? 아니, 그건 누님한테 눈치 보이니까 테리사? 아니면 마리아로 할까? 음...”
하지만 어떠한 고난에도 굴하지 않는 색마, 그것이 어느새 꿋꿋이 일어서려 하는 저력의 칸피니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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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마검천황에서는 칸피니스의 반란이 완전 원맨쇼로 끝납니다. 하지만 리메이크에서 칸피니스의 반란은 매우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싸움도 칸피니스 혼자 하는 게 아니라 프리챌시, 텔로시, 디아스루에나 등의 여타 캐릭터가 큰 역할을 차지하죠. 그 가운데 한 명이 칼레아나입니다. 색마검천황의 설정에 비해 리메이크에서 비중이 더 커진 캐릭터죠.
다음회예고>> 색마검천황 시절에는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섹스를 하던 칸피니스. 색검마도지성전으로 와서 벌써 4회 째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데... 색마로서 5회 연속 섹스를 하지 못하면 색마의 지위에서 탄핵되어야 마땅하다는 위기감이 이번에는 기필코 하고 말겠다며 의지를 불태운다. 과연 그 대상은 누구일까?
이번에는 이번에는 예고편에 맞춰서 본편을 썼습니다. 이런 날이 계속되기를... 풋...
한참 좋으려 하는 참인데 어디선가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그것도 여자의 비명소리다. 사람이 들지 않는 흑암의 숲에서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려온다는 사실이 놀랍기는 하지만 그보다 본격적인 작업으로 들어가려는 참이라 짜증스럽기까지 하다.
“뭐야?”
“비명소리 같은데?”
“나도 알아. 도대체 왜 여기서 비명소리가 들리는 거냐구?”
“여자 목소리야.”
“하지만 지금 중요한 작업 중이란 말요.”
난데없는 여자의 비명소리에 잠시 멈칫거리기는 했지만 여전히 칸피니스의 손은 멈추지 않는다. 히리스의 온몸을 계속 붉은 빛으로 물들여가며 입으로만 불퉁거릴 뿐이다.
“갔다 와서 계속 하면 되잖아.”
아무래도 여자 목소리라는 것이 걸리는 모양이다.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히리스가 칸피니스에게 여자를 구하러 갈 것을 종용한다. 하지만 칸피니스는 요지부동이다.
“중간에 끊으면 기분이 식는단 말요.”
칸피니스가 계속 불퉁거리며 일어설 생각을 하지 않자 히리스는 최후의 수단을 동원한다. 칸피니스를 움직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면서 그녀로서는 별로 선택하고 싶지 않은 방법이다.
“흐응... 여잔데?”
“여자가 뭐 어때서?”
“잘 하면 꼬실 수도 있는데?”
“그... 그치만... 누님이...”
은근슬쩍 히리스의 눈치를 보는 것이 회가 동하는 모양이다. 히리스는 칸피니스에게 최후의 일격을 먹이기로 한다.
“여자 둘이서 남자 하나와 섹스를 하기도 한다며? 그... 뭐라더라? 3섬이라던가?”
효과는 바로 나타난다.
“위기에 처한 여자를 구해주는 것이야말로 남자로 태어난 의무! 저토록 처절한 비명을 지르는 여자를 보고 남자로서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소! 누님, 서운하시더라도 잠시 참도록 하시오. 내 금방 일 끝내고 돌아오리다.”
사뭇 진지한 표정이지만 히리스는 그의 속내를 훤히 꿰뚫어보고 있다. 분명 히리스와 미지의 여자를 끼워넣은 3섬의 원대한 야심을 활활 태우고 있으리라.
“그래,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 몸 식기 전에 빨리 와야돼?”
하지만 의외로 칸피니스는 처음 기세와는 달리 머뭇거리며 바로 출발하려 하지 않는다. 히리스는 으아한 표정으로 칸피니스를 바라본다.
“그런데...”
“왜?”
“여자가 못생겼으면 어쩌지? 그래도 누님, 괜찮겠수?”
어이가 없어 한동안 말도 안나온다. 하지만 상황이 급하니 대꾸는 해야 하기에 히리스는 억지로 반문해본다.
“내가 왜 괜찮아야 하는데?”
“3섬이라면 누님은 처음이잖우? 첫경험인데 그래도 예쁜 여자면 좋지 않겠어? 첫경험은 누구나 평생 기억에 남게되는 거라는데.”
“하하하...”
어이가 없음이다. 어이가 없음이야. 도대체 저 머릿속에는 어떠한 생각들이 들어있는지 한 번 갈라보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다 참아줄 수 있으니까 어서 갔다와.”
“알았어. 보기 흉할 정도로 못생겼으면 그냥 두고 올게. 평소라면 여자라면 가리지 않는 나지만 오늘은 누님도 있으니까.”
“하하하하...”
웃음만 나온다. 너무 어이가 없어 헛웃음만 입술을 비집고 새어나올 뿐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웃음이 기분 좋아서인 것이라 착각한 것인지 칸피니스가 마주 히죽 웃는다. 히리스의 머리가 힘없이 절레절레 가로로 흔들린다.
“어서 갔다와. 그러다 시체만 남아있겠다.”
“알았수. 그럼 조그만 기다려요.”
“그래.”
칸피니스는 알몸에 옷도 걸치지 않은 채 옆에 세워둔 바스타드 소드 한 자루만 들고 숲 저쪽으로 달려간다. 바닥이 그리 고른 것도 아니건만 맨발로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잘 달려간다.
“멋지네.”
숲그림자를 온몸에 무늬처럼 그리며 알몸으로 달려가는 근육질의 남자의 모습이 아름다울 수 있음을 히리스는 새삼 깨닫는다. 그 근육이 꿈틀거리며 땅을 박찰 때마다 번들거리며 반사되는 땀이 마치 환상을 보는 듯한 신비감마저 자아낸다.
“쳇, 머릿속만 정상이면 정말 멋진 남자일텐데... 쳇쳇... 허우대만 멀쩡해가지고서는...”
히리스의 투덜거림이야 상관없이 칸피니스는 미지의 여자를 향해 숩조차 쉬지 않은 채 바삐 달려간다. 조금전에야 히리스와의 하던 일 때문에 불퉁거리긴 했지만 혹시나 미인일지도 모르는 여자가 위험할 수도 있다 생각하니 자신의 발걸음이 답답할 정도로 느리게만 느껴진다.
“죽이려면 사내자식들을 죽여라!! 여자는 안돼애애애애!!!”
끝내 터져나오는 절규. 평소 몬스터의 습격으로 여자들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속으로 부르짖던 외침이다. 그 처절한 외침에 일순 흑암의 숲의 나무들조차 부르르 떠는 듯하다.
창--! 창--!! 챙챙--!!
그의 외침 덕분인지 아직 여자가 살아있음이 무기 부딪히는 쇳소리가 되어 칸피니스에게 전해진다. 소리를 들어보니 대충 이십여 걸음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다.
“저거 바보 아냐?”
쇳소리가 너무 맑다는 사실에 칸피니스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한 소리 내뱉는다. 쇠와 쇠가, 즉 무기와 무기가 정면으로 맞부딪히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검이 위력이 있기 위해서는 그 날이 날카로워야 한다. 날이 날카롭다는 것은 그 부분의 쇠가 얇다는 것을 의미한다. 검이 날카로울수록 그 날의 쇠는 얇다. 살을 베는 데조차 날이 상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약하기만 하다. 그런데 하물며 쇠끼리 부딪힌다면 어찌 되겠는가?
그래서 검술을 익힘에 있어 기본이 되는 것은 칼이 부딪힐 때 살짝 빗껴 부딪힘으로써 검의 날을 보호하는 것이다. 정확히 무기의 날에 부딪히는 것이 아니라 살짝 검날의 옆면으로 미끄러지듯 부딪히는 것이기에 기사들의 검격은 그래도 둔탁한 소리가 난다. 저리 무기가 정면으로 부딪힐 때 나는 맑은 쇳소리는 결코 날 수도, 나서도 안되는 것이다.
“야! 너 뭐하는거야?”
아니나 다를까 막 수풀을 헤치고 여자가 오크들과 싸우는 곳에 이르자 여자의 손에 들린 검이 이가 듬성듬성 빠진 채 톱처럼 변해있는 것이 보인다. 얼핏 보기에도 자신이 갖고 있는 검보다 신경써 만든 게 분명해보이는 명검이었음에도 저리 처참하게 변한 것이 못내 가슴이 아프다.
“어? 칸피니스!”
칸피니스가 여자의 검을 보고 놀란 만큼이나 여자도 칸피니스를 보고 놀란 모양이다. 오크의 공격을 미처 막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손을 놓아버리는 것을 보니 말이다.
“어? 칼레아나?”
칸피니스도 그제야 여자의 얼굴을 보고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결코 여기에서 보아서는 안되는 얼굴이 자신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짓고 있으니 놀라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다.
“꾸에엑--!!”
“꾸룩--!! 쿠에엑--!!”
“꿰엑--!”
다만 칸피니스가 칼레아나라 불리운 여자와 다른 점은 놀라는 순간에도 검을 쥔 손을 항상 끊임없이 움직인다는 점일 것이다. 예리하고 파괴적인 그의 검은 멍한 표정으로 칼레아나를 보는 동안에도 오크들의 숨통을 끊어 하나하나 그들이 흘린 핏속을 뒹굴며 눕게 만들고 있다.
“칼레아나, 너 여긴 어쩐 일로?”
별로 걱정이 되는 상대는 아니다. 기껏해야 오크 스무 마리 정도다. 뛰어난 검사라면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한 숫자다. 하물며 뛰어난 수준을 넘어선 칸피니스에게라면 말할 나위도 없다. 그가 말을 하는 동안에도 고깃덩이가 되어 땅위를 뒹굴 뿐이다.
“아, 그... 그게...”
칼레아나는 힐레인의 쌍둥이 언니다. 하지만 힐레인과는 사뭇 다른 성격이라 칸피니스와는 그동안 크게 충돌한 적이 없다. 그렇다고 히리스처럼 친절한 것은 아니고 그저 대놓고 경멸하지는 않는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정도만으로도 칸피니스로서는 그녀를 충분히 좋은 인상으로 기억할 이유가 되었다.
“쿠웨에에엑--!!”
대충 마지막 오크가 장렬한 비명으로 자신의 최후를 알리는 것을 감상하며 칸피니스는 다시 칼레아나에게 묻는다.
“뭐야? 네가 어떻게 어기 있는거지? 너도 여기서 수련하는거야?”
“그... 그게... 거기... 으... 응...”
‘응’이라는 한 마디를 하려는 것 치고는 준비과정이 너무 길다. 그 어색한 머뭇거림이 눈에 거슬렸는지 칸피니스의 눈이 가늘어진다. 칼레아나의 몸이 움칫 움츠러든다.
“흐음... 여기서 수련하는 것치고는 실력이 형편없는걸?”
“그... 그게... 이제 얼마 안되니까...”
“흐흐흥...”
얼굴이 빨개져서는 더듬거리는 모습이 귀엽게 느껴진다. 거짓말을 이렇게 표나게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일거라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입가가 올라간다.
“그... 그게... 저기...”
아무말 않는데도 계속 변명거리를 찾기 위해 말을 더듬는 걸 보니 평생 거짓말은 못하고 살 팔자인 모양이다. 저렇게 서툴러서야 하다못해 남편의 정부와 남편을 사이에 두고 신경전이나 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그게? 그게 뭐? 그게 뭔데?”
“저... 저기... 그... 음... 저...”
확인사살 겸 한 마디 끼워넣으니 그 의미없는 말에도 얼굴이 굳은 채 땀을 뻘뻘 흘리는 것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그러면서도 귀엽게 느껴지는 건 히리스 누님이나 힐레인이나 이쪽 혈통에 미인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힐레인과 비슷한 외모이면서도 밖에서 활동을 많이 해 짙은 색으로 그을인 피부나 햇빛에 바랜 머릿색은 그녀만의 독특한 매력을 풍기고 있다.
“귀여워.”
“저... 그... 그게... 에? 귀... 귀여워?”
“응, 귀여워. 넌 자각 못하고 있는 지 모르겠지만 지금 네 모습은 정말 귀여워. 그거 알고 있니?”
“그... 그게... 무슨 말...?”
“나중에 천천히 생각해보도록 하고. 이만 가자.”
“에...? 히리... 웁!”
처음엔 놀라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놀라서 자신의 알몸을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라고. 그런데 계속 자신에게서 눈을 돌리는 모습에 그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만 의문은 남자의 알몸을 보면서도 어찌 그리 태연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설사 경험이 있다고 하더라도 14살에 불과한 아이가 남자의 알몸을 앞에 두고 눈만 이리저리 돌려 피할 수 있는 건 아닌데.
그녀의 중간에 끊긴 말은 이같은 의문에 대한 가장 확실한 답이다. 그리고 그녀가 그토록 거짓말을 해가며 숨기려 했던 내용이기도 하다.
“히리스? 네가 히리스 누님을 어찌 알아?”
“히... 히리스가 아니라... 그게...”
서툰 거짓말을 어떻게 해서든 이어가려는 모습이 처절하기까지 하다. 되지도 않는 거짓말을 하느라 쓸데없는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을 그대로 지켜볼 정도로 칸피니스는 불친절한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아무리 표정을 바꾸어봐야 네 거짓말은 너무 표가 나. 어린애도 네가 거짓말 하는 건 바로 알아볼 수 있을걸?”
“에? 그... 그건...”
특히 여자에게 친절한 칸피니스는 자신의 여동생이 있지도 않는 거짓말의 재능을 개발하느라 다른 가능성 있는 일에 소홀할 가능성을 미리 잘라내주는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그의 배려가 너무 감격스러운지 눈물까지 글썽이는 칼레아나의 모습에 칸피니스는 왠지 가슴이 뿌듯해짐을 느낀다.
“그러니까 대충 그런거잖아. 네가 오늘 나와 히리스 누님을 따라 이 흑암의 숲에 들어왔다. 아마도 내 수련장면을 훔쳐보려는 의도였겠지? 그런데 한창 수련하다말고 히리스 누님과 섹스하는 모습에 지레 놀라서 도망치다가 오크떼를 만나게 된거 아냐? 어때? 대충 맞았니?”
“어... 어떻게 그걸...?”
놀라 어쩔 줄 몰라하는 칼레아나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칸피니스는 마지막 확인사살을 해준다.
“네 표정에 그리 쓰여져 있거든. 그러니까 이마부분에는 나를 따라온 거라고... 뺨에는 히리스 누님과의 섹스를 훔쳐봤다고... 음 입술에는... 이런... 나한테 반했다고 써있는데? 하하하하하!!”
자기딴에는 농담이라고 한 모양이지만 칼레아나에게는 농담이 아닌 모양이다.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울쌍을 짓고 있는 것이 왠지 심각해지는 분위기다.
“저... 정말인가요? 어... 어떻게...?”
“어라? 사실이었어?”
“그... 그게 정말 보이는거에요?”
“엑? 진짜 사실인 모양이네?”
칼레아나만큼이나 칸피니스도 거짓말을 못하는 성격이다. 칼레아나가 순진해서라면 칸피니스는 너무 강해서 굳이 거짓말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질 뒤틀리면 모두 죽여버리면 되는데, 그럴 힘이 있는데 왜 굳이 거짓말을 해야 하는가?
하지만 칼레아나는 거짓말에 서툰 만큼이나 다른 사람의 거짓말에 잘 속는다. 델킨피에르 가문에서 사실상 칸피니스와 별반 차이 없는 처지가 되어버린 것도 그같은 순진함이 원인이 되어서였다. 그런 그녀이니 칸피니스의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가능한 것이다.
“어허허... 너 정말 나 좋아하는거야?”
“에? 그... 그럼...?”
“당연히 농담이었지.”
“그... 그게... 그... 그... 극... 으아아아아앙--!!!”
칸피니스의 느믈거리는 얼굴을 바라보던 칼레아나의 입에서 끝내 울음이 터져나온다. 그토록 숨기려 애썼던 감정을 들킨 데 대한 부끄러움과 더구나 칸피니스의 장난에 속아 자기 입으로 실토했다는 억울함이 복받쳐오른 것이다.
“야... 야! 칼레아나... 어이... 얘... 레아... 야!! 임마!! 가스나야!! 어이!!”
“우아아아아아앙~~!!!”
절대무적 색마 칸피니스가 한 가지 못하는 것이 있으니 우는 여자 달래는 것이다. 그것도 자신보다 어린 여자아이를 달래는 것만큼은 도무지 할 짓이 못된다.
“어... 어쩌지? 어쩌나? 으으음... 음... 젠장. 할 수 없다. 누님께 가보자.”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로서는 방법이 없다. 평소 자신을 앞에 두고 우는 여자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갖고 살와왔던 그이기에 달리 칼레아나를 달랠 방법은 떠오르지 않는다. 히리스라면 어찌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에 모든 걸 걸어보는 수밖에.
“칼레아나, 히리스 누님께 가보자. 히리스 누님이랑 이야기해봐. 알았지?”
“으으아아아아아앙~~!!”
“그럼 히리스 누님께 데려간다.”
“아아아아아아아앙~~!!”
“그럼 가자. 읏샤!!”
칸피니스가 자신을 어깨위에 걸쳐맬 때에도, 그 상태로 히리스를 향해 달려갈 때에도 칼레아나는 울음을 멈추지 않는다.
“으아아아앙~~!!”
“시끄럽네, 정말! 자꾸 그럼 안아주지 않는다!!”
“흑흑... 우아아앙~!!!”
칸피니스의 다그침에 잠시 주춤하던 울음은 더욱 커지기만 할 뿐이다. 귀가 멍멍해오는 울음소리에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걸음을 히리스에게로 걸음을 재촉하는 것 외에는 아무래도 아무 방법이 없는 모양이다.
“누님! 좀 보쇼!”
여전히 알몸으로 칸피니스의 코트 위에 비스듬히 누워서 칸피니스를 기다리던 히리스는 칸피니스가 누군가를 들쳐메고 오자 급히 자세를 바로잡는다.
“진짜로 데려온거야?”
아무리 망할 동생이고, 아무리 구제불능 색마라지만 여자를 구하러 가서 진짜로 업고 올 줄은 생각도 못했다. 이제 꼼짝없이 생판 모르는 여자와 3섬이라는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진다.
“응, 기다렸나보네?”
칸피니스 딴에는 농담이라고 한 말이지만 히리스에게는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다. 도대체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는지 허탈한 고민이 뇌리를 스칠 뿐이다. 그래도 귀족가의 영양인데, 그래도 엄격한 예법 교육을 받은 자신인데, 그런 자신이 다른 여자와 함께 한 남자를 상대하는 3섬까지 하게 되었으니 정신이 아득하기만 하다.
“어라? 진짜인거야? 좋아서 정신까지 놓고 있는데?”
“누가!!”
“아닌가? 아님 됐구. 그나저나 누님, 얘좀 봐줘봐. 아까부터 정신없이 울어대는 바람에...”
“울어? 누가?”
“어라?”
그러고보니 여기까지 달려오는 사이 울음이 그쳐있다. 얼른 어깨에 올려놓았던 칼레아나를 내려놓고 보니 얼굴까지 발갛게 물든 것이 언제 울었느냐 싶은 모습이다.
“야, 너 다 울었냐?”
“야, 야, 하지마. 칼레아나라고 불러. 나도 꼬박꼬박 칸피니스라고 불러주잖아.”
얼굴이 발갛게 물든 모습으로 바락바락 대들어봐야 귀여움만 더할 뿐이다. 눈까지 감고 있던 모습이 연상되어 눈꼬리를 치켜뜬 모습까지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앙증맞아 보인다. 프란츠 이 인간은 도대체 딸들을 왜 이리도 잘 낳았단 말인가. 아들놈들은 그렇게 형편없는데 딸들만큼은 정말 그를 위해 존재한다 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나다.
“알았어, 칼레아나. 다 운거야?”
“울긴 누가 울었다고 그래.”
“울었잖아. 방금전까지.”
“아냐, 안울었어.”
“울었잖아!”
“안울었어!”
말싸움 수준이 나이를 절반씩 자른 시절로 돌아간 듯 하다. 유치하기까지 한 고집싸움에 고개를 젓느라 히리스는 칼레아나를 처음 본 놀라움을 겨우 추스를 여유를 갖는다.
“어... 어떻게 된거야? 칼레아나, 네가 여길 어떻게...”
“흥!”
히리스의 놀란 모습과는 달리 칼레아나는 뭔가 굉장히 마음에 안드는 듯 심통맞은 표정이다. 히리스의 알몸을 위에서 아래로 훑는 모습이 의도적으로 트집거리를 찾고자 하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아도 동생 칸피니스와 근친상간의 관계를 갖는다는 사실에 자격지심을 갖고 있는 히리스다. 동생에게 그 모습을 들켰다는 것만으로도 불안한데, 그 동생이 저리도 노골적으로 적의를 보이니 절로 몸이 움츠러든다.
“카... 칸피니스.”
구원을 청할 곳은 칸피니스 뿐이다. 어찌되었든 그는 어떠한 상황에서든 자신을 책임지고 보호해주어야 할 그의 남자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그녀가 의지할 수 있는 의지처가 되어주어야할 존재다.
“아아... 비명지르면서 오크랑 놀고 있길래 주워왔소.”
“주워와?”
“응. 빽빽 울어대는 게 시끄러워서 누님이면 어떻게든 해줄줄 알고...”
“하지만...”
칸피니스가 무슨 말을 하는 지는 알겠지만 그래도 쉽게 이해할 수 없다. 그와 자신과의 관계가 어떠한 것인가를 알고 있는 그가 어찌 칼레아나를 그녀가 있는 곳으로 데려올 수 있단 말인가. 지금 칼레아나가 짓고 있는 저 표정을 정말 예상치 못했던 것일까?
“흥!”
칸피니스의 말이 못내 불만스러운 듯 따지려들던 칼레아나는 히리스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것을 느끼고는 이내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린다. 여전히 마음에 안든다는 표정이다.
“걱정마쇼. 원래라면 누님 알몸보다는 내 알몸 보고 미친 듯 비명 빽빽 질러댔어야 하는 것 아뇨?”
“그... 그렇지...”
“그런데 저리 태연히 있다는 건 이미 오래전부터 남자몸에 익숙해져있거나...”
“누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칼레아나의 반박이 들어온다. 하지만 히리스와 눈이 마주치자 다시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린다. 역시나 마음에 안든다는 기색을 팍팍 풍기는 모습이다.
“내 알몸을 꿈에도 그렸다는 뜻 아니겠소?”
“엑?”
“누가!!”
히리스의 놀라움과 칼레아나의 반박이 터져나온 것은 거의 동시다. 거의 동시에 칸피니스를 향해 해명을 요구하는 눈빛을 보내던 둘은 다시 서로의 눈빛을 마주하자 습관처럼 고개를 돌려 눈빛을 피한다. 이번에는 칼레아나의 콧방귀가 없다.
“아니야? 아까 그랬잖아. 이몸의 품에 안기기를 꿈에서도 열망하다가 저도 모르게 나를 쫓아오게 되었다고 말야.”
“그... 그게 사실이야?
“누가! 도대체 내 말이 어떻게 해석하면 그런 뜻이 되는데? 히리스 언니도 그런 말 믿지 마! 거짓말인게 바로 표가 나잖아!”
“나를 쫓아서 이 흑암의 숲까지 들어왔다고 했잖아? 그리고 나를 좋아한다고. 그러면서도 내 알몸을 피하지도 않고, 히리스 누님이 있는 것도 알고 있고. 그럼 당연한 거 아냐? 나를 보고 싶어서 찾아왔다가 히리스 누님과 섹스하는 거 보고는 충격받고 도망치다가 오크와 만났다. 뭐 그런거겠지?”
“뭐가 그래? 뭐가 그런거겠지야?”
“그... 그럼... 칼레아나가 저리 툴툴거리는 건?”
“질투야!”
“아아...”
“아니야!”
“질투하느라 그런거야. 임자없는 몸인 줄 알았던 이 잘난 오라버니가 임자있는 남자였다는 사실에 실망하고, 그 임자가 누님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어 충격받은 끝에, 포기할 수 없는 사랑을 질투로 그렇게 표현하고 있는거지.”
“아아... 그렇구나.”
“누가! 마음대로 결론짓지 마!”
“칼레아나 귀엽지?”
“응, 귀엽네.”
“야! 말 좀 들어!”
“원래 부끄럼 많이 타는 애들은 자기 속마음 숨기느라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곧잘 하는 편이지. 누님도 그랬잖아?”
“그래, 본의 아니게 거짓말쟁이가 되기도 하는 그 기분... 나도 잘 알아. 그래서 칼레아나가 더 귀여워보이나 봐. 예전 내 모습과 비슷하거든.”
“야!! 야!! 자기들끼리 멋대로 결론짓지 말라니까!!”
“훗... 누님도 저랬었는데...”
“하하하... 그랬었나? 난 저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아니긴. 얼마나 내숭이었다구. 그냥 한 입에 깨물어먹고 싶을 정도로 음충맞았다니까?”
“후후후... 그래서 처음 할 때 내 젖가슴을 그리도 세게 물었던 거구나?”
“흐흐흐... 이제 알았수?”
“야! 나도 말 좀 하자.”
“해?”
“해라, 누가 말리니?”
“젠장, 그래, 너희들끼리 다 해먹어라.”
“말 하라니까?”
“말 해? 아무도 안말려.”
“하하하... 하하...”
너무도 진지하고 태연한 두 사람의 모습에 괜히 얼굴 붉히며 열 낸 칼레아나만 상황이 우스워진다. 어찌 이리도 마음이 잘 맞는 커플이 있단 말인가? 남의 말 안듣고, 멋대로 판단하고, 그 판단에 따라 저리도 진지해질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을 리 없는데 이렇게 커플씩이나 보게 되니 차마 할 말이 없다. 그저 웃을 수밖에.
“기분이 좋은가보네?”
“원래 속마음을 털어놓고 나면 기분이 좋아. 나도 그랬거든.”
“흐흐흐... 그때도 넘겨짚은 거였는데...”
“하하... 그렇지? 그럴 것 같더라구... 하지만 그런 기회가 아니면 안되겠다 싶어서 한 번 오버해본거지.”
“그럼...”
“아마 칼레아나도 그럴거야.”
“그래, 맘대로 해라. 맘대로. 누가 말리겠냐?”
전부 틀린 말은 아니다. 처음 칼레아나가 히리스를 보았을 때 심술맞은 표정을 지어보인 건 칸피니스의 말대로 질투 때문이었다. 그녀의 몸에 난 멍자국들과 아직도 남아있는 침자국들이, 아직도 젖어 뭉쳐있는 보지털이, 칸피니스이 알몸과 겹쳐지며 그녀를 자극한 것이 그녀를 불편하게 만든 원인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자신의 마음을 저리도 노골적으로 이야기해주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상스럽게 대해주니 기분이 좋은 것도 사실이다. 혹시라도 큰 죄라도 될까봐, 큰 허물이라도 될까봐, 꼭꼭 숨겨왔던 마음이기에 아무것도 아닌 양 대해주는 저 모습이 너무도 고맙다.
하지만,
“어쨌든 약속은 약속이니까 칼레아나 끼워서 3섬 할까?”
“하... 하지만...”
“아무나 여자 주워오면 3섬 할 수 있다며? 해준댔잖아? 그... 그건...”
“그러니까 하자. 칼레아나도 마침 기회가 좋...”
퍼억--!!
“욱!”
“뭔소리들을 하는거야?”
“그... 그거 검이지?”
“왜 갑자기 거기서 3섬 얘기가 나오는거야? 도대체 뭔소리야?”
“3섬이란 그러니까 두 여자와 한 남자, 한 여자와 두 남자, 드물기는 하지만 세 남자와 세 여자...”
퍼억--!!
“윽--!!”
“3섬이 뭔지는 나도 알아! 그런데 대체 왜 그 얘기가 여기서 나오는건데? 도대체 무슨 일이야?”
“그러니까 히리스 누님과 약속을 했거든? 비명지르고 있는 여자를 구해오면 3섬 해주겠다고? 너를 구해온 것도 그 때문이야. 그러니까...”
“아하... 그런 이유인거야?”
히리스를 노려보는 칼레아나의 눈빛이 서늘하다. 섬뜩한 푸른 눈빛 넘어 어두운 광기가 보인다.
“꿀꺽...!!”
히리스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킨다.
“저... 저기... 그... 그게... 카... 칸피니스!! 야!! 네가 마...말 좀 해봐!”
궁지에 몰린 그녀가 선택할 대안은 칸피니스 뿐이다. 인간을 넘어선 그의 뻔뻔함이하면 무언가 해줄 수 있을거라는 막연한 기대로 그에게 도움을 청한다.
“네가 인정했다시피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너를 넣어 히리스 누님과 나 세 사람이 섹스를 즐기겠다는 원대한 계획인 셈이지.”
역시나 칸피니스는 그녀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는다. 특유의 그 건방짐과 뻔뻔함으로 칼레아나의 성질을 긁어버림으로서 히리스를 그녀의 적의로부터 구해낸다.
“왜 당신들 멋대로 정하는건데?”
“원래 너를 구하게 된 게 그 약속 때문이라니까?”
칼레아나의 적의는 칸피니스의 뻔뻔함 앞에는 무력할 뿐이다. 여전히 그 능글거리는 웃음을 지우지 않은 채 칼레아나를 포함한 3섬을 기정사실로 만들고 있다. 보고 있는 히리스까지도 열받게 만드는 모습이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되는건데? 당신들 멋대로 정해버리면 내 생각은! 내 자유의지는! 내 결정권은! 내 처녀는! 내 첫경험은! 왜 내 첫경험이 당신들 3섬의 희생양이 되어야 하는건데?”
“히리스 누님도 3섬은 첫경...”
퍽--!!
“으악!!”
히리스의 응징은 칸피니스의 말보다 빠르다. 주위에 떨어져있던 오크의 팔을 들고 있는 힘껏 휘둘러 칸피니스의 뒷통수를 후려쳐버린다.
“너... 처녀였니?”
“그럼, 언니는 14살에 불과한 내가 처녀가 아닐 거라 생각한거야?”
“하지만 기란스 경은...”
“그 새끼 말도 꺼내지 마!!”
칼레아나 앞에서 이 말은 금기다. 힐레인의 쌍둥이 언니이면서도 그녀가 가문에서 칸피니스와 별반 다를 것 없는 대우를 받는 이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알렌 토르 기란스란 이름은 결코 칼레아나 앞에서는 꺼내서는 안되는 이름이다.
“그럼...”
“그 병신새끼와는 아무 일 없었어. 그 인간이 일 저지를 용기만 있었어도 개새끼 소리는 듣지 않았겠지.”
“후우... 미안하다. 네 앞에서 그 야기를 꺼내는 게 아닌데.”
아무래도 쌓은 감정이 많은 지 칼레아나의 반응은 예상 이상으로 격렬하다. 그럴만도 할 것이다. 13살의 나이에 처음 가진 사랑의 감정이 기사씩이나 되는 남자의 비겁함 때문에 불명예스럽게 끝나야 했으니 어렸던 만큼, 그 감정이 순수했던 만큼, 그만큼 더 상처가 컸을 것이다.
“어쨌든! 난 처녀란 말야! 왜 내 첫경험이 당신들 3섬 안에 묻혀야 하는데...”
칼레아나의 원통한 부르짖음은 칸피니스의 뻔뻔함 속에 그대로 묻혀버린다.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안그럼 히리스 누님과 내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너는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하는데? 그래도 좋아?”
“그러니까 왜! 내가 당신을 좋아한다는 것이! 지금 당장 내가 당신과 섹스를 해야 하는 이유가 되냐구!”
“그거야 네가 나를 좋아하기 때문이지. 당연한 거 아냐?”
“그러니까! 당신을 좋아한다는 것과 지금 당장 히리스 언니와 함께 당신과 섹스를 해야 하는 것과 무슨 논리적 연관성이 있냐고 묻는 거잖아.”
“그러니까, 너는 나를 좋아하고, 그런데 지금 나는 히리스 누님과 섹스를 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나를 좋아하는 너는 히리스 누님과 내가 하는 섹스를 구경만해야 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섹스를 하는 걸 구경만 하는 건 매우 약오르는 일이고, 뭐 그런 것 아니겠어?”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거야?”
“응!”
“뭐가 말이 돼!!”
“말이 되잖아?”
칸피니스의 뻔뻔함을 처음 경험하는 칼레아나는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다. 아직은 14살밖에 안되는 그녀가 인간의 범주를 넘어서는 칸피니스의 뻔뻔함을 감당한다는 것은 무리인 것이다.
“칼레아나, 너 말 타고 왔지?”
“어? 언니? 응, 그런데?”
갑자기 어깨를 짚어오는 손길에 고개를 돌려보니 어느새 옷을 차려입은 히리스가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
“그럼 나랑 같이 가자. 칸피니스가 저러기 시작하면 끝이 없거든. 말로 해서는 통하질 않으니까 그냥 내버려두고 가는 게 상책이야.”
“아아... 그렇겠네?”
“어쨌든 저 어이없는 사람은 여기서 혼자 남아 오크나 상대하라고 하고 우리는 우리끼리 성으로 돌아가도록 하자. 길은 알고 있지?”
“응.”
“그럼 가자.”
칼레아나가 히리스에게 팔을 붙잡힌 채 멀어져가자 칸피니스는 다급해진다.
“누... 누님... 저... 약속은...?”
“아무리 약속이래도 내 동생의 첫경험을 이런 곳에서의 3섬으로 끝낼수는 없어.”
“그... 그러면... 하... 하던 거라도...”
“넌 지금 내가 그거 할 기분이라 생각하는거니?”
“누... 누님...”
“넌 안갈래? 안가면 우리 먼저 가고...”
“그러는 게 어딨소?”
“여어. 너 안가면 우리 먼저 갈게. 칼레아나, 가자.”
“누... 누님, 위험해요. 몬스터 나온다고.”
“그럼 얼른 옷입고 따라와.”
“제... 젠장, 알았수. 그럼 조금만 기다려요.”
“알았어. 서둘러.”
히리스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으로 V자를 그려보이자 칼레아나도 마주 눈을 빛내며 웃어준다.
“헤에, 저 칸피니스가 꼼짝 못하네?”
“후훗... 원래 그런 녀석이거든. 제멋대로이긴 하지만 또 제멋대로인 여자에게는 곧잘 휘둘리는 타입이지.”
“그런거야?”
“응. 보기 드문 타입이기는 하지만... 사귀면 재미있어. 즐겁고.”
“헤에...”
“너, 그런데 정말 칸피니스가 좋은거야?”
“강하잖아. 강한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강하리라곤... 인간 같지 않은 강함이 정말 멋져. 아름다울 정도야.”
“하긴, 너는 검을 좋아했으니까. 검술을 익히는 것도 즐기고. 그래서 그런거니?”
“응. 검을 든 사람으로서 강한 사람을 사랑하는 건 당연한 것 아냐?”
“후후후... 그렇겠구나.”
“더구나 지금 이렇게 이야기하고 나니까 더 좋아졌어. 저렇게 귀여운 줄은 몰랐거든. 저렇게 강하고, 저렇게 귀여운 남자라니, 정말 이상적이야. 아아... 왜 저런 남자가 내 첫사랑이 아니었을까?
“후후후... 정말 좋은가보구나.”
“응. 좋아.”
“그럼 잘해봐. 꽤 괜찮은 녀석이니까.”
“엑? 그래도 좋은거야?”
“너만 좋다면.”
“그래? 그럼 잘 부탁한다고 말해야 하나? 어찌되었든 언니가 내 선배니까.”
“아무렴 어떻겠니? 어차피 넌 내 동생인데...”
“하긴, 그렇겠다. 아, 저기 칸피니스가 옷 갈아입고 온다.”
“그렇네? 얼른 떠날 준비 하자. 너도 네 말 끌어와야지.”
“알았어. 조금만 기다려.”
두 자매의 화기애애한 대화에서 멀리 벗어난 한 곳에서는 마계와도 비견되는 어두운 오라가 피어나고 있다.
“젠장, 어쩌다... 어쩌다... 다 된 거였는데... 다 된 거였는데... 칼레아나만 아니었으면... 칼레아나가 아니었으면... 우우우우... 어쩌다가... 아아아... 이대로... 이대로 돌아가야 한단 말인가? 이대로? 아무것도 못한 채?”
욕구불만으로인해 사타구니를 손으로 억누른 채 열심히 옷을 입고 있는 칸피니스다. 오늘은 칸피니스 일생의 가장 불행한 날로 기록될 것이다.
“하던 건 마저 해야 하니까 돌아가서 메어리나...? 아니, 그건 누님한테 눈치 보이니까 테리사? 아니면 마리아로 할까? 음...”
하지만 어떠한 고난에도 굴하지 않는 색마, 그것이 어느새 꿋꿋이 일어서려 하는 저력의 칸피니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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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마검천황에서는 칸피니스의 반란이 완전 원맨쇼로 끝납니다. 하지만 리메이크에서 칸피니스의 반란은 매우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싸움도 칸피니스 혼자 하는 게 아니라 프리챌시, 텔로시, 디아스루에나 등의 여타 캐릭터가 큰 역할을 차지하죠. 그 가운데 한 명이 칼레아나입니다. 색마검천황의 설정에 비해 리메이크에서 비중이 더 커진 캐릭터죠.
다음회예고>> 색마검천황 시절에는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섹스를 하던 칸피니스. 색검마도지성전으로 와서 벌써 4회 째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데... 색마로서 5회 연속 섹스를 하지 못하면 색마의 지위에서 탄핵되어야 마땅하다는 위기감이 이번에는 기필코 하고 말겠다며 의지를 불태운다. 과연 그 대상은 누구일까?
이번에는 이번에는 예고편에 맞춰서 본편을 썼습니다. 이런 날이 계속되기를... 풋...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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