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고?”
“예.”
여전히 침대에 엎드린 채 나른한 목소리로 물어오는 어머니의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한 번 스치듯 바라보고는 칸피니스는 조용히 옷을 입는다. 너무도 느린, 마치 탈진한 것과 같은 무기력한 동작이다. 에렌프의 무기력한 눈이 촛점없이 그 광경을 바라본다. 아니 볼 수 없으니 그쪽을 향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 아이와는 잘 되고 있니?”
“누구요?”
몸을 약간 뒤척이느라 그녀의 알몸이 꿈틀거린다. 여린 듯 하면서도 풍만한 그녀의 몸이 땀에 젖어 육감적으로 번들거린다. 너무도 자극적인 모습이지만 칸피니스는 더없이 담담하기만 하다. 심지어 그의 자지조차도 미동 없이 늘어진 상태다. 아무리 여러차례 관계를 가져왔다고는 하지만 에렌프를 성적인 대상으로 여길 수는 없는 때문이다.
“히리스...”
“히리스 누님?”
“누... 님...? 누님이라고 부르니? 그 아이를?”
의외라는 듯 에렌프의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그쪽이 서로 관계설정하기 편하니까요.”
“그래...?”
“남매간도 아닌데 서로 어울려다닐 순 없는거잖아요.”
“흐음...”
“서로 친한 남매의 모습을 보이니까 그나마 만나는 것을 두고 큰 말이 없는거지 안그랬으면 얼굴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큰 난리를 치렀을거라구요.”
“잘 지내는 모양이구나.”
약간 질투가 나는 것일까? 그녀의 목소리에 약간의 심술이 묻어난다. 오래도록 그녀를 경험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그 미세한 감정의 흔적에 칸피니스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짓는다.
“질투하세요?”
“질투? 내가?”
“예.”
“내가 왜?”
“아니에요?”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냥.”
“그냥?”
“응. 그냥.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태연스레 웃는 칸피니스를 보이니 않는 눈으로 빤히 바라보던 에렌프가 돌연 얼굴 가득 웃음을 짓는다.
“그래, 그냥이구나...”
“아니에요?”
“흠... 어떨 것 같니?”
“글쎄요... 아마 내 짐작이 맞지 않을까요?”
“왜?”
“그건...”
“그건...?”
“어머니가 나를 무척이나 사랑하시니까...”
느닷없는 말에 놀란 듯 에렌프는 유난히 큰 그녀의 눈을 한껏 동그랗게 뜬다. 그리고는 끝내 유쾌한 웃음을 터뜨린다.
“푸하하하하하!!!!”
어머니의 웃음소리에 놀란 것일까? 칸피니스의 얼굴이 심술맞게 굳어지며 에렌프를 향해 불퉁거린다.
“왜요?”
“푸푸푸푸푸....”
“왜 웃는데요?”
“하하하하하.... 글쎄...”
“뭐가 글쎄에요?”
“하하하하... 도대체 너의 그 자신감은 어디서 근거한 거니? 나는 너를 그렇게 키운 기억이 없는 것 같은데. 프란츠에게서 배운거니?”
“그건 또 무슨 소리에요?”
에렌프가 칸피니스의 어머니로서의 모습이 되는 것은 섹스가 끝난 후 잠시동안 뿐이다. 그 외의 기간에는 그녀는 칸피니스를 보지도 인식하지도 못한다. 아니 보고, 인식하더라도 그녀의 사고와 연결짓지 못한다. 섹스를 통해 육체로 서로를 연결한 이후에야 비로소 그녀는 칸피니스의 어머니로서의 자신을 자각하고 행동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칸피니스가 그녀와의 섹스를 거부하지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그렇지 않구. 너같이 밉살맞은 아이를 어째서 내가 사랑해야 하는거지? 더구나 무척이나라는 수식어까지 붙을 정도로 말야. 안그래? 도대체 왜 내가 너 때문에 다른 여자아이를 질투씩이나 해야 하냐구.”
“그래서 아니라는 거에요?”
“아니지않구. 그냥 그 아이가 프란츠의 딸이라서 그런거야.”
“흥! 정말 그럴까?”
“정말이라니까?”
“하지만 그런 식으로 따진다면 나도 프란츠의 아들이라구요.”
“흐응... 그래?”
“뭐에요? 그 태도는? 그럼 설마 어디서 외도라도 해서 나를 낳은거에요? 정말로?”
“흐으응... 어떨까?”
“뭐에요? 말을 해요, 말을!”
장난스럽게 싱글거리는 모습이 더없이 얄밉게 느껴진다. 하지만 굴욕적인 섹스가 끝난 후에나 잠시 경험할 수 있을 뿐인 모습이라 애처로울 정도로 안타깝기까지 하다. 의도적으로 의미없는 말장난에 끌려들어가는 것도 조금이라도 더 그녀의 웃는 모습을 즐기고자 하는 애㉯?집착이다.
“후후후후후... 칸피니스야....”
“네?”
“너... 색마라며?”
“에?”
“놀란 척 할 필요없어. 하녀 아이들 이야기하는 거 들어 이미 알고 있으니까. 너 내가 수파니라는 걸 잊은거니?”
“아아...”
유난히 주위환경에 민감한 수파니들은 오감의 감각이 인간에 비해 몇 배나 발달해있다. 더구나 에렌프는 앞을 보지도 못하고, 걷지도 못한다. 시각의 상실과 행동의 제약을 보완할만한 감각의 발달이 필수적이다. 그런 점을 고려한다면 그녀의 청각이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수준까지 개발되어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너와 히리스 관계도 그렇게 들어 안거야.”
“아아... 그러니까...”
“그래. 하녀 아이들은 다 알고 있는 모양이더라. 네가 히리스와 어디에서 어떻게 만나고 어떤 일들을 했는지 모두 알고 있더라구. 심지어 네가 잘 쓰는 체위도 알고 있던걸?”
“에? 그... 그걸 어떻게...?”
“도로시가 베란다를 정리하고 있는데 네가 히리스를 거칠게 끌고들어온 적이 있었다더라. 너 그때 히리스를 침대위에 던지듯 쓰러뜨리고는 그대로 덮쳤다며? 나설 수도 없고 해서 베란다에 숨어서 네가 하는 걸 모두 보고 있었던 모양이야.”
“에엑...?”
“후후후후후...”
대충 감이 잡힌다. 작년 겨울의 일이다. 작년 겨울 히리스와 정원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욕정이 치밀어 그녀를 끌고 자신의 방으로 강제로 끌고온 적이 있다. 그때 작은 인기척을 느꼈음에도 욕정에 못이겨 무시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도로시였던 모양이다.
“히리스와 할 때도 자기들과 할 때랑 별 차이 없다고 꽤나 감격해 하더라구. 귀한 귀족아가씨와 같은 취급을 해준다고들 생각하는 모양이야.”
“그... 그게...”
“어때? 색마 맞지?”
“그... 그러니까...”
“색마 아냐?”
“새... 색... 마... 맞아... 요...”
“후후후후...”
칸피니스의 굴복에 에렌프는 득의의 웃음을 짓는다. 더없이 얄미운, 끌어안고 키스를 수십번은 퍼부어주고 싶은 그런 표정이다. 칸피니스는 울컥 울분이 사타구니로 몰리는 것을 느낀다.
“색마 기준으로 앞도 못보고 다리도 병신인 여자를 안고 남자가 얼마나 될 것 같니? 더구나 인간도 아니라면?”
“그... 그게...”
“그런거야. 프란츠라는 인간은 정말 별종인거지. 수파니인 여자를 강제로 끌고와서 눈을 멀게하고 다리의 근육을 끊어버리고는 그게 좋다고 매일같이 찾아왔으니 말야.”
“그럼... 그 프란츠 자식의 아들이라는 게 사실이에요?”
“훗... 프란츠 자식의 아들이면 일스테아나 로메르가 네 아버지가 되는데? 그렇게 걔들을 아버지라 부르고 싶었던거니?”
“칫...!!”
너무도 충격적인 말이라 무언가 반박하고 싶지만 반박할 의욕도 생기지 않는다. 아무리 농담이라도 해도 될 말고 해서는 안 될 말이 있다. 끓어오르는 분노에 끝내 하려던 말조차 꺼내지 못한 불만을 그저 혓소리만이 억눌린 듯 대변한다. 그런 모습도 귀여운지 에렌프는 조용히 얄미운 웃음을 짓는다.
“어쨌든 네 생부는 프란츠가 맞아. 네가 인정하기 싫어도 그건 사실이야.”
“쳇... 정말 지랄같은 사실이로군요.”
“하지만 로메르나 일스테아보다는 낫잖니?”
“이씨...!!”
“후후훗...”
칸피니스가 열내는 모습을 보는 것이 그리도 재미있는지 에렌프는 계속 그에게 짓궂는 장난을 건다. 너무도 불쾌한 장난이지만 그녀가 즐거워하니 칸피니스도 즐겁게 화내는 연기를 해보인다.
“하지만 중요한 건, 네가 내 아들이기도 하다는거지. 반은 프란츠 거지만 반은 내거라는 말이야. 알겠니?”
“흐응... 그러니까 프란츠의 반은 밉지만 어머니의 반은 예뻐한다는 말이에요?”
“대충은...”
“간단한 말인데 굉장히 기네요.”
“재미있잖아.”
“그렇긴 하지만...”
“훗훗...”
의미없는 말장난이지만 지금은 전혀 의미없는 말장난이 아니다. 최소한 에렌프가 즐거워하고, 그녀의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칸피니스가 기뻐하기 때문이다. 이보다 의미있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결론을 자식과 자식의 여자친구인데 왜 질투하냐는거죠?”
“응.”
“더구나 아들네미 어머니가 몸도 마음도 꽉 잡고 있는 상황이니 아쉬울 것도 없고 말예요.”
“그렇지.”
“다른 말로 하면 본부인이 하룻밤 바람피는 정부에게 질투를 느끼지 않는 것이나 같다는 거네요?”
“맞아. 음...?”
“이제 본심이 나오네요. 원래 그런 뜻이었던건가요?”
“말이 어쩌다 이리로 흐른거지?”
“그냥.”
“또 그냥이니?”
“예.”
“하하하... 그 그냥이라는 거 정말 편하구나.”
“칭찬이시죠?”
“하하하하하... 역시 넌 프란츠의 아들이야. 그런 점은 정말 나와는 전혀 닮지 않았어.”
“하하하하하... 섭섭한데요? 이 점이야말로 어머니를 닮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하하하하... 그런 모함을... 내가 어디를 봐서 그런 근거없는 자만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성격이라는거니?”
“하하하하하하... 지금 바로 이런 모습을 봐서요.”
“후후후후... 꽤나 날카롭구나.”
“하하하하... 어머니 아들인걸요.”
“후후후... 그래 내 아들이지.”
“하하하... 예, 어머니 아들이죠.”
“그래. 내 아들이야.”
“예. 어머니 아들이에요.”
유쾌하면서도 따뜻한 공기가 둘 사이를 감돈다. 한정된 시간동안만 즐길 수 있는 너무도 특별하고 너무도 소중한 느낌이다. 칸피니스와 에렌프의 얼굴에 누가 먼저인지도 모르게 따뜻한 웃음이 떠오른다.
말장난을 하는 사이 어느새 칸피니스는 옷을 다 입고 있다. 코트의 마지막 단추를 채우는 것을 보며 에렌프는 아쉬운 표정을 짓는다. 옷을 다 입으면 칸피니스는 언제나 그렇듯 미련없이 방을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칸피니스가 에렌프와 있는 것을 싫어해서 그리 금방 떠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에렌프가 다시 정신을 놓는 모습을 보는 것이 괴로워서 일부러 피하는 것 뿐이다. 하지만 알면서도 서운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어머니의 마음이다. 그것을 알기에 칸피니스도 마음이 편치는 않다.
“갈거니?”
하지만 에렌프는 필사적으로 밝은 웃음을 지어보인다. 칸피니스의 감각을 속이기에 충분할 만큼 한 점의 그늘도 없는 밝디 밝은 웃음이다. 그래서 더욱 칸피니스를 아프게 하는 웃음이다.
“예.”
“히리스에게 가는거니?”
“질투 않는다면서...”
“질투가 아니라 아들의 이성교제에 대한 관심이야.”
“그 살기 넘치는 도끼눈부터 어떻게 하고 그런 말 해요.”
“엑? 그렇게 표나니?”
“맞잖아?”
“아니라니까!”
“와아... 말은 흔적이 안남는다 그거죠?”
“말 돌리지 말고 히리스에게 가는거야?”
“말은 누가 돌리는데요!”
“어허... 어머니 말에 똑바로 대답 못하겠니? 어서 대답해. 히리스에게 가는거지?”
“꼭 이럴 때만 엄마 말 잘들으래.”
“어허... 꼭 그렇게 토를 달아야 하겠니?”
자기보다 어려보이는 얼굴. 작고 앳되어 한 손 안에 꽉 들어찰 것만 같은 그 얼굴이 저리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엄마노릇을 하려하니 절로 웃음이 나온다. 에렌프도 그같은 것을 알기에 일부러 과장된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는 것이리라.
“알았어요. 대답할게요. 히리스 누님께는 안가요. 됐죠?”
“정말이니?”
“예... 히리스 누님과는 낮에 이미 만났거든요.”
“만나서... 해... 했... 니?”
“해요? 뭘?”
“그... 섹스?”
“흐흠... 역시...”
“아들으 이성교제에 대한 어머니의 당연한 관심이라니까!”
“누가 뭐래요? 왜 지레 겁먹고 그래요?”
“누가?”
“어쨌든!”
“그래 어쨌든! 어쨌든 대답해봐. 했니?”
“아뇨.”
“안했어?”
“예.”
“왜?”
“그냥 그럴 일이 있어요.”
“호오...”
칸피니스의 욕구불만이 농축된 표정을 대기의 흐름을 통해 읽은 것일까? 에렌프의 눈이 가늘게 휘어진다. 재미있는 일을 발견했을 때의 칸피니스와 너무도 닮은 표정이다. 역시 칸피니스의 어머니다.
“어쨌든 그럴 일이 있어서 오늘은 못했어요.”
“오.늘.은.?”
“예. 오.늘.은!”
“호오... 오늘만 안했다는 뜻 같구나?”
“대충은...”
“나쁜 녀석!”
“예?”
“그래도 이복누이와의 금단의 사랑인데 사람이 조금 숨기는 맛도 있고 그래야지, 너란 녀셕은 어쩜 그렇게 뻔뻔한거니?”
“어머니 앞이잖아요?”
“내 앞이라 그리 솔직한거니?”
“아니면 내가 어디서 이렇게 솔직할 수 있겠어요?”
“뻔한 아부지만 기분은 좋구나.”
“아부 아녜요. 그냥 입발린 소리에요.”
“푸하하하하하...”
“그렇게 웃지 마요. 품위없게스리.”
“수파니는 이렇게 웃는게 품위있는거란다.”
“정말요?”
“그럼.”
“나중에 다른 수파니 만나서 물어봐도 되요?”
“그러렴.”
“진짜?”
“응!”
“쳇!”
“왜? 항복?”
“지금은 일단 믿어주죠.”
“잘 생각했다.”
“진짜 쳇!”
“훗...”
“어쨌든 오늘은 더이상 히리스 누님과의 계획이 없어요.”
“그럼...?”
재촉하는 듯한 표정에 칸피니스의 눈이 가늘어진다. 무언가 굉장히 마음에 안든다는 듯 얼굴 가득 심통이 주렁주렁 매달린 듯한 표정이다.
“그런데 어머니는 꼭 제가 이 길로 나가면 여자방으로 갈 거라고 확신하고 계시는 것 같아요? 무슨 근거로 그리 생각하시는거죠?”
“호호호호호....”
“그렇게 간드러지게 웃지 마요. 봐요 소름 돋는 거.”
“아들아~~”
“예, 어머니~~”
“나는 네 어머니란다.”
“저는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어머니보다 자식을 잘 아는 사람은 없단다.”
“그런건가요?”
“그래.”
“그 말씀은...?”
“어머니로서 자식인 너를 평가할 때 너는 구제불능의 색마란다. 하루에 두 여자 이상 상대하지 않으면 자지가 항문을 향해 기어가는 타고난 색마지.”
“엑? 그... 그 말 어디서 들으셨어요?”
“왜? 틀린말이니?”
“당연하죠! 난 그정도로 변태는 아니라구요!”
“그래?”
“당연하죠. 아무리 굶주려도 오크를 강간하면 했지 남자의 항문따위는 전혀 광심밖이라구요. 그런건 로메르나 일스테아같은 덜떨어진 자식들이나 하는거라구요.”
“흐음... 뭔가 굉장히 진지한 듯한데 촛점이 많이 벗어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니?”
“착각이에요.”
“그럴까?”
“예!”
너무도 자신감 넘치는 단호한 대답에 에렌프는 그저 멍하니 아들의 얼굴만을 바라볼 뿐이다.
“휴우... 분명 나는 이렇게 키운 적 없는데... 분명 프란츠가 버려놓은거야.”
“제발 그런 살 떨리는 말 좀 그만하고 본론으로 넘어가요.”
“알았다. 어쨌든 너는 색마이기 때문에 밥이 너 혼자 자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어. 그런데 지금 네 앞에는 이렇게 절세미인인 네 어미가 알몸으로 내 옆에서 하룻밤 보내기를 청하고 있는데도 너는 그리도 냉정히 일어서고 있지. 자,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아무래도 어머니가 절세미인이라는 말에 질려서 떠나려는 것 같은데요.”
“호호호호호... 아들아~~”
“그렇게 웃지 말라니까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한테 맴매 맞고 잘못했다며 울고 싶니?”
“알았어요, 잘못했어요. 됐죠?”
“알면 됐다. 어쨌든 색마가 이런 미인을 버려두고 방을 나서야 한다면 다른 어떤 이유가 있을까? 여자 말고 다른 이유가 있겠니? 어때? 맞지?”
“쳇... 알았어요. 어머니 말이 맞아요. 지금 린네 만나러 가는중이에요.”
“린네? 너 린네도 건드렸니?”
린네란 말에 에렌프의 눈이 다시 동그래진다. 의외의 이름이라 놀란 모양이다.
“모르셨어요?”
“응.”
“짐작은 하셨죠?”
“그거야...”
“대충 그렇게 된거에요.”
“내 전담하녀까지 건드렸다면 별저의 하녀는 모두 한 번씩 건드렸다는 얘기로구나.”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죠.”
그의 뻔뻔한 대답에 에렌프의 눈이 한없이 가늘어진다. 흰자위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늘게 뜨여진 눈으로는 싸늘한 살기가 느껴진다.
“여자의 적!”
“에?”
“색마!”
“색마 맞잖아요!”
“음란한... 아아... 어찌 저런 음란한 아이가 내 배에서 날 수 있는 것일까? 모두 프란츠를 닮은거야.”
“그런 무서운 소리 하지 말라니까!”
“아들이 아버지를 닮았다는게 왜 무서운 소리니?”
“그럼 어머니는 어머니더러 프란츠 마누라라고 하면 기분 좋겠어요?”
“어머! 칸피니스! 네가 어쩜 내게 그런 심한 말을! 아무리 네 어미가 마음에 안들기로서니 그런 끔찍한 모욕을 가할 수 있는거니? 네가... 네가... 네가 정말 이럴줄은...”
우는 시늉까지 하는 어머니의 모습에도 칸피니스는 추호의 동요도 보이지 않는다. 더없이 냉정한 태도로 그녀에게 한 마디 던질 뿐이다.
“어머니도 싫죠? 그러니 내게도 다시는 프란츠의 아들이니 뭐니 하는 소리 하지 마요. 봐요. 소름 돋은 거. 그게 얼마나 끔찍한 소리인데.”
“하지만 히리스는 프란츠의 딸이잖니?”
“히리스 누님은 예쁘잖아요.”
“그게 다니?”
“예!”
“정말?”
“예!”
에렌프는 어이가 없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가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아들의 뻔뻔한 대답이 그녀에게 얼마나 큰 충격을 주었는가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모습이다.
“하아... 나는 분명 너를 이리 낳지 않았다. 이리 기르지도 않았다. 도대체... 도대체 누가... 누가 너를 이리 만든 것이냐?”
“어머니!”
칸피니스의 단호한 확신에 찬 대답에 에렌프의 표정이 조용히 굳는다.
“칸피니스...”
“예?”
“린네와 약속이 있다며?”
“예!”
“빨리 안가봐도 되겠니?”
“오늘 밤 풀로 뛸거니까 조금 늦어도 상관없어요.”
“그래?”
“오히려 제가 조금 늦게 가는 게 잘 시간 많아서 좋아요. 어머니의 아들이 또 정력이 초절륜이라 한 번 시작하면 여자들 잠을 안재우거든요. 제가 일찍 가면 그만큼 힘들어서 녹초가 될테니 내일 일하는데 크게 지장이 있다구요.”
“그래... 그래... 그렇겠구나.”
그러려니 싶은 것인지 에렌프는 건성으로 맞장구쳐준다. 어쩌겠는가? 원래 저런 녀석인것을. 진지하게 상대하는 사람만 손해다.
“그래도 여자를 기다리게 하는 건 예의가 아니니 일찍 가보도록 해라.”
“흠... 아무래도 그렇겠죠?”
“그래.”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그러렴.”
“그럼 편한 밤 되세요.”
“네 덕분에 오늘밤은 푹 잘 수 있을 것 같구나. 정말 상쾌한 피로감이야. 저절로 눈이 감기려 할 정도야.”
“헤헤... 도움이 된건가요?”
아무리 칸피니스라도 어머니의 입에서 이런 말을 들으니 얼굴이 붉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그래. 여러가지로 문제가 많은 쓸모없는 아들이지만 이것 하나만은 도움이 되는구나. 오늘은 네 덕분에 정말 달게 잘 수 있을 것 같아. 고맙구나.”
“헤헤... 다 제가 잘나서라구요.”
“그래... 그래...”
“그럼 편히 쉬세요. 전 가볼게요.”
“리넨 너무 괴롭히지 말고. 걔는 나를 보살피느라 그렇지 않아도 매일이 힘든 아이란다.”
“예에...”
“리넨에게도 좋은 밤 되란다고 내가 말했다고 전해주렴.”
“리넨이 놀라지 않을까요?”
“괜찮아. 어차피 알게 될 일인데.”
“그렇겠죠?”
“응.”
“그럼 가볼게요. 편히 쉬세요.”
“그래.”
“그럼...”
쾅--!!
저벅저벅--!!
방안에서의 화기애애한 대화와는 달리 방을 나와 복도를 걷는 칸피니스의 표정은 차가운 살기로 딱딱하게 굳어있다. 흉폭한 파괴의 욕구와 광기가 모든 것을 날려버리는 듯 그의 깊이 가라앉은 검은 눈 속에서 폭풍같이 휘몰아치고 있다.
힘이 들어간 어깨, 힘이 들어간 등, 힘이 들어간 걸음, 무엇보다 꽉 앙다물어진 입가 뼈가 피부를 뚫고 나올 듯 움켜쥐어진 주먹이 그의 마음속에 깃든 증오와 분노를 그대로 대변하는 듯 하다. 가로막는 것은 뭐든 부숴버리고 짓밟고 지나갈 듯한 그의 기세에 복도를 침습하기 시작한 어둠도 한발, 두발 뒤로 물러서는 것 같다.
“으드득...!!”
지나치게 힘이 들어간 듯 앙다물려진 턱에서 이가 부스러지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반드시... 반드시...”
조용한 부르짖음은 그의 입 안에서 소리없이 맴돌다 사라진다. 하지만 그 작은 목소리에 실린 잔폭한 살기는 소리보다 멀리, 더 넓게 퍼져 복도안을 가득 매운다. 어둠조차도 두려움에 떨며 잔뜩 흐트러질 정도로 두렵고도 두려운 살기다.
“칸... 피니... 스...”
칸피니스의 살기를 느낀 것일까? 잠을 청하려 눈을 감았던 에렌프의 눈이 갑작스레 떠진다. 촛점 없는 그녀의 눈동자에 슬픔과 분노가, 그리고 애㉯?사랑이 물기처럼 스미기 시작한다. 마침내 눈동자를 잠기게 한 투명한 물방울이 그녀의 작은 중얼거림을 따라 관자놀이를 타고 귀밑머리를 적신다.
“칸피니스...”
그녀는 수파니. 환경에 민감한 종족이다. 칸피니스의 감정을, 칸피니스의 생각을, 앞을 보지 못한다고 그녀가 모를 리 없다. 더구나 칸피니스는 그녀의 아들 아닌가.
차라리 몰랐다면 괜찮았을 것이다. 아예 모른 체 살았다면 이리 아프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칸피니스에 대해 너무도 잘 알기에, 너무도 많은 것을 알고 있기에 이리도 슬프고 아픈 것이다.
“미... 미안... 칸... 피니스... 미안...”
힘없이 눈을 가린 그녀의 가는 팔 사이로 강물처럼 뜨거운 눈물이 침대로 흐르기 시작한다. 그녀의 안타까운 중얼거림 또한 눈물에 실려 강물처럼 흘러 방안을 적신다. 하지만 칸피니스에게는 전해지지 않는다. 그러길 바라고 있으니까. 그러길 바라고 그토록 감춰왔던 것이니까.
견딜 수 없는 슬픔과 아픔에 에렌프의 눈동자는 점차 빛을 잃어간다. 정신적 고통을 이기기 위해 그녀 스스로 그녀의 정신을 놓아버리는 것이다. 다음 칸피니스와의 섹스가 있기 전까지 그녀는 이렇게 정신을 놓아버린 채 또다시 원래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저벅 저벅--
‘제기랄! 빌어먹을!’
몇 배나 예민해진 청각으로 복도 저편으로 멀어져가는 칸피니스의 발자국 소리가 멀리 어렴풋하게 들려온다. 그 소리를 반주삼아 에렌프는 조용히 자신의 정신을 놓는다. 다음 칸피니스와의 섹스를 기약하면서.
저벅저벅--
‘으드득--!’
분이 풀리지 않는 듯 세게 이를 갈아붙이는 소리가 마지막 의식으로 스미듯 새어 들어온다. 그녀의 마지막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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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끝입니다. 1부는 도입부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칸피니스와 주변 인물들을 대충 스케치하는 정도로 마무리지었습니다. 원래는 3편 정도로 끝낼 생각이었는데 저의 글쓰기 스타일상 대화에 치중하다보니 예상보다 두 배 이상 길어져 지루해진 감이 있습니다. 그점 아쉽게 생각하면서도 어쨌든 1부가 끝났으니 한 가지 이루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2부부터는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주로 델킨피에르 영지를 둘러싼 음모와 그에 대한 칸피니스의 대처가 중심을 이루겠죠. 아직 칸피니스의 실력을 표면으로 드러낼 때가 아니니 대체로 고난에 가까운 일상일 겁니다. 그럼에도 역시나 저의 스타일대로 칸피니스와 주위 캐릭터와의 말장난이 유쾌한 분위기를 만들어갈 것으로 기대됩니다.
다음회예고>> 처음 등장하는 프란츠 자작. 자작의 작위에도 불구하고 이제야 처음 등장한다는 사실에 작가를 협박하는 만행도 서슴지 않는다. 훗! 그래봐야 파리목숨 캐릭터다. 잠시 날뛰는 건 봐주도록 하겠다.
예고편은 예고편이라네요.
“예.”
여전히 침대에 엎드린 채 나른한 목소리로 물어오는 어머니의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한 번 스치듯 바라보고는 칸피니스는 조용히 옷을 입는다. 너무도 느린, 마치 탈진한 것과 같은 무기력한 동작이다. 에렌프의 무기력한 눈이 촛점없이 그 광경을 바라본다. 아니 볼 수 없으니 그쪽을 향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 아이와는 잘 되고 있니?”
“누구요?”
몸을 약간 뒤척이느라 그녀의 알몸이 꿈틀거린다. 여린 듯 하면서도 풍만한 그녀의 몸이 땀에 젖어 육감적으로 번들거린다. 너무도 자극적인 모습이지만 칸피니스는 더없이 담담하기만 하다. 심지어 그의 자지조차도 미동 없이 늘어진 상태다. 아무리 여러차례 관계를 가져왔다고는 하지만 에렌프를 성적인 대상으로 여길 수는 없는 때문이다.
“히리스...”
“히리스 누님?”
“누... 님...? 누님이라고 부르니? 그 아이를?”
의외라는 듯 에렌프의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그쪽이 서로 관계설정하기 편하니까요.”
“그래...?”
“남매간도 아닌데 서로 어울려다닐 순 없는거잖아요.”
“흐음...”
“서로 친한 남매의 모습을 보이니까 그나마 만나는 것을 두고 큰 말이 없는거지 안그랬으면 얼굴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큰 난리를 치렀을거라구요.”
“잘 지내는 모양이구나.”
약간 질투가 나는 것일까? 그녀의 목소리에 약간의 심술이 묻어난다. 오래도록 그녀를 경험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그 미세한 감정의 흔적에 칸피니스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짓는다.
“질투하세요?”
“질투? 내가?”
“예.”
“내가 왜?”
“아니에요?”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냥.”
“그냥?”
“응. 그냥.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태연스레 웃는 칸피니스를 보이니 않는 눈으로 빤히 바라보던 에렌프가 돌연 얼굴 가득 웃음을 짓는다.
“그래, 그냥이구나...”
“아니에요?”
“흠... 어떨 것 같니?”
“글쎄요... 아마 내 짐작이 맞지 않을까요?”
“왜?”
“그건...”
“그건...?”
“어머니가 나를 무척이나 사랑하시니까...”
느닷없는 말에 놀란 듯 에렌프는 유난히 큰 그녀의 눈을 한껏 동그랗게 뜬다. 그리고는 끝내 유쾌한 웃음을 터뜨린다.
“푸하하하하하!!!!”
어머니의 웃음소리에 놀란 것일까? 칸피니스의 얼굴이 심술맞게 굳어지며 에렌프를 향해 불퉁거린다.
“왜요?”
“푸푸푸푸푸....”
“왜 웃는데요?”
“하하하하하.... 글쎄...”
“뭐가 글쎄에요?”
“하하하하... 도대체 너의 그 자신감은 어디서 근거한 거니? 나는 너를 그렇게 키운 기억이 없는 것 같은데. 프란츠에게서 배운거니?”
“그건 또 무슨 소리에요?”
에렌프가 칸피니스의 어머니로서의 모습이 되는 것은 섹스가 끝난 후 잠시동안 뿐이다. 그 외의 기간에는 그녀는 칸피니스를 보지도 인식하지도 못한다. 아니 보고, 인식하더라도 그녀의 사고와 연결짓지 못한다. 섹스를 통해 육체로 서로를 연결한 이후에야 비로소 그녀는 칸피니스의 어머니로서의 자신을 자각하고 행동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칸피니스가 그녀와의 섹스를 거부하지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그렇지 않구. 너같이 밉살맞은 아이를 어째서 내가 사랑해야 하는거지? 더구나 무척이나라는 수식어까지 붙을 정도로 말야. 안그래? 도대체 왜 내가 너 때문에 다른 여자아이를 질투씩이나 해야 하냐구.”
“그래서 아니라는 거에요?”
“아니지않구. 그냥 그 아이가 프란츠의 딸이라서 그런거야.”
“흥! 정말 그럴까?”
“정말이라니까?”
“하지만 그런 식으로 따진다면 나도 프란츠의 아들이라구요.”
“흐응... 그래?”
“뭐에요? 그 태도는? 그럼 설마 어디서 외도라도 해서 나를 낳은거에요? 정말로?”
“흐으응... 어떨까?”
“뭐에요? 말을 해요, 말을!”
장난스럽게 싱글거리는 모습이 더없이 얄밉게 느껴진다. 하지만 굴욕적인 섹스가 끝난 후에나 잠시 경험할 수 있을 뿐인 모습이라 애처로울 정도로 안타깝기까지 하다. 의도적으로 의미없는 말장난에 끌려들어가는 것도 조금이라도 더 그녀의 웃는 모습을 즐기고자 하는 애㉯?집착이다.
“후후후후후... 칸피니스야....”
“네?”
“너... 색마라며?”
“에?”
“놀란 척 할 필요없어. 하녀 아이들 이야기하는 거 들어 이미 알고 있으니까. 너 내가 수파니라는 걸 잊은거니?”
“아아...”
유난히 주위환경에 민감한 수파니들은 오감의 감각이 인간에 비해 몇 배나 발달해있다. 더구나 에렌프는 앞을 보지도 못하고, 걷지도 못한다. 시각의 상실과 행동의 제약을 보완할만한 감각의 발달이 필수적이다. 그런 점을 고려한다면 그녀의 청각이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수준까지 개발되어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너와 히리스 관계도 그렇게 들어 안거야.”
“아아... 그러니까...”
“그래. 하녀 아이들은 다 알고 있는 모양이더라. 네가 히리스와 어디에서 어떻게 만나고 어떤 일들을 했는지 모두 알고 있더라구. 심지어 네가 잘 쓰는 체위도 알고 있던걸?”
“에? 그... 그걸 어떻게...?”
“도로시가 베란다를 정리하고 있는데 네가 히리스를 거칠게 끌고들어온 적이 있었다더라. 너 그때 히리스를 침대위에 던지듯 쓰러뜨리고는 그대로 덮쳤다며? 나설 수도 없고 해서 베란다에 숨어서 네가 하는 걸 모두 보고 있었던 모양이야.”
“에엑...?”
“후후후후후...”
대충 감이 잡힌다. 작년 겨울의 일이다. 작년 겨울 히리스와 정원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욕정이 치밀어 그녀를 끌고 자신의 방으로 강제로 끌고온 적이 있다. 그때 작은 인기척을 느꼈음에도 욕정에 못이겨 무시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도로시였던 모양이다.
“히리스와 할 때도 자기들과 할 때랑 별 차이 없다고 꽤나 감격해 하더라구. 귀한 귀족아가씨와 같은 취급을 해준다고들 생각하는 모양이야.”
“그... 그게...”
“어때? 색마 맞지?”
“그... 그러니까...”
“색마 아냐?”
“새... 색... 마... 맞아... 요...”
“후후후후...”
칸피니스의 굴복에 에렌프는 득의의 웃음을 짓는다. 더없이 얄미운, 끌어안고 키스를 수십번은 퍼부어주고 싶은 그런 표정이다. 칸피니스는 울컥 울분이 사타구니로 몰리는 것을 느낀다.
“색마 기준으로 앞도 못보고 다리도 병신인 여자를 안고 남자가 얼마나 될 것 같니? 더구나 인간도 아니라면?”
“그... 그게...”
“그런거야. 프란츠라는 인간은 정말 별종인거지. 수파니인 여자를 강제로 끌고와서 눈을 멀게하고 다리의 근육을 끊어버리고는 그게 좋다고 매일같이 찾아왔으니 말야.”
“그럼... 그 프란츠 자식의 아들이라는 게 사실이에요?”
“훗... 프란츠 자식의 아들이면 일스테아나 로메르가 네 아버지가 되는데? 그렇게 걔들을 아버지라 부르고 싶었던거니?”
“칫...!!”
너무도 충격적인 말이라 무언가 반박하고 싶지만 반박할 의욕도 생기지 않는다. 아무리 농담이라도 해도 될 말고 해서는 안 될 말이 있다. 끓어오르는 분노에 끝내 하려던 말조차 꺼내지 못한 불만을 그저 혓소리만이 억눌린 듯 대변한다. 그런 모습도 귀여운지 에렌프는 조용히 얄미운 웃음을 짓는다.
“어쨌든 네 생부는 프란츠가 맞아. 네가 인정하기 싫어도 그건 사실이야.”
“쳇... 정말 지랄같은 사실이로군요.”
“하지만 로메르나 일스테아보다는 낫잖니?”
“이씨...!!”
“후후훗...”
칸피니스가 열내는 모습을 보는 것이 그리도 재미있는지 에렌프는 계속 그에게 짓궂는 장난을 건다. 너무도 불쾌한 장난이지만 그녀가 즐거워하니 칸피니스도 즐겁게 화내는 연기를 해보인다.
“하지만 중요한 건, 네가 내 아들이기도 하다는거지. 반은 프란츠 거지만 반은 내거라는 말이야. 알겠니?”
“흐응... 그러니까 프란츠의 반은 밉지만 어머니의 반은 예뻐한다는 말이에요?”
“대충은...”
“간단한 말인데 굉장히 기네요.”
“재미있잖아.”
“그렇긴 하지만...”
“훗훗...”
의미없는 말장난이지만 지금은 전혀 의미없는 말장난이 아니다. 최소한 에렌프가 즐거워하고, 그녀의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칸피니스가 기뻐하기 때문이다. 이보다 의미있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결론을 자식과 자식의 여자친구인데 왜 질투하냐는거죠?”
“응.”
“더구나 아들네미 어머니가 몸도 마음도 꽉 잡고 있는 상황이니 아쉬울 것도 없고 말예요.”
“그렇지.”
“다른 말로 하면 본부인이 하룻밤 바람피는 정부에게 질투를 느끼지 않는 것이나 같다는 거네요?”
“맞아. 음...?”
“이제 본심이 나오네요. 원래 그런 뜻이었던건가요?”
“말이 어쩌다 이리로 흐른거지?”
“그냥.”
“또 그냥이니?”
“예.”
“하하하... 그 그냥이라는 거 정말 편하구나.”
“칭찬이시죠?”
“하하하하하... 역시 넌 프란츠의 아들이야. 그런 점은 정말 나와는 전혀 닮지 않았어.”
“하하하하하... 섭섭한데요? 이 점이야말로 어머니를 닮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하하하하... 그런 모함을... 내가 어디를 봐서 그런 근거없는 자만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성격이라는거니?”
“하하하하하하... 지금 바로 이런 모습을 봐서요.”
“후후후후... 꽤나 날카롭구나.”
“하하하하... 어머니 아들인걸요.”
“후후후... 그래 내 아들이지.”
“하하하... 예, 어머니 아들이죠.”
“그래. 내 아들이야.”
“예. 어머니 아들이에요.”
유쾌하면서도 따뜻한 공기가 둘 사이를 감돈다. 한정된 시간동안만 즐길 수 있는 너무도 특별하고 너무도 소중한 느낌이다. 칸피니스와 에렌프의 얼굴에 누가 먼저인지도 모르게 따뜻한 웃음이 떠오른다.
말장난을 하는 사이 어느새 칸피니스는 옷을 다 입고 있다. 코트의 마지막 단추를 채우는 것을 보며 에렌프는 아쉬운 표정을 짓는다. 옷을 다 입으면 칸피니스는 언제나 그렇듯 미련없이 방을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칸피니스가 에렌프와 있는 것을 싫어해서 그리 금방 떠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에렌프가 다시 정신을 놓는 모습을 보는 것이 괴로워서 일부러 피하는 것 뿐이다. 하지만 알면서도 서운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어머니의 마음이다. 그것을 알기에 칸피니스도 마음이 편치는 않다.
“갈거니?”
하지만 에렌프는 필사적으로 밝은 웃음을 지어보인다. 칸피니스의 감각을 속이기에 충분할 만큼 한 점의 그늘도 없는 밝디 밝은 웃음이다. 그래서 더욱 칸피니스를 아프게 하는 웃음이다.
“예.”
“히리스에게 가는거니?”
“질투 않는다면서...”
“질투가 아니라 아들의 이성교제에 대한 관심이야.”
“그 살기 넘치는 도끼눈부터 어떻게 하고 그런 말 해요.”
“엑? 그렇게 표나니?”
“맞잖아?”
“아니라니까!”
“와아... 말은 흔적이 안남는다 그거죠?”
“말 돌리지 말고 히리스에게 가는거야?”
“말은 누가 돌리는데요!”
“어허... 어머니 말에 똑바로 대답 못하겠니? 어서 대답해. 히리스에게 가는거지?”
“꼭 이럴 때만 엄마 말 잘들으래.”
“어허... 꼭 그렇게 토를 달아야 하겠니?”
자기보다 어려보이는 얼굴. 작고 앳되어 한 손 안에 꽉 들어찰 것만 같은 그 얼굴이 저리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엄마노릇을 하려하니 절로 웃음이 나온다. 에렌프도 그같은 것을 알기에 일부러 과장된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는 것이리라.
“알았어요. 대답할게요. 히리스 누님께는 안가요. 됐죠?”
“정말이니?”
“예... 히리스 누님과는 낮에 이미 만났거든요.”
“만나서... 해... 했... 니?”
“해요? 뭘?”
“그... 섹스?”
“흐흠... 역시...”
“아들으 이성교제에 대한 어머니의 당연한 관심이라니까!”
“누가 뭐래요? 왜 지레 겁먹고 그래요?”
“누가?”
“어쨌든!”
“그래 어쨌든! 어쨌든 대답해봐. 했니?”
“아뇨.”
“안했어?”
“예.”
“왜?”
“그냥 그럴 일이 있어요.”
“호오...”
칸피니스의 욕구불만이 농축된 표정을 대기의 흐름을 통해 읽은 것일까? 에렌프의 눈이 가늘게 휘어진다. 재미있는 일을 발견했을 때의 칸피니스와 너무도 닮은 표정이다. 역시 칸피니스의 어머니다.
“어쨌든 그럴 일이 있어서 오늘은 못했어요.”
“오.늘.은.?”
“예. 오.늘.은!”
“호오... 오늘만 안했다는 뜻 같구나?”
“대충은...”
“나쁜 녀석!”
“예?”
“그래도 이복누이와의 금단의 사랑인데 사람이 조금 숨기는 맛도 있고 그래야지, 너란 녀셕은 어쩜 그렇게 뻔뻔한거니?”
“어머니 앞이잖아요?”
“내 앞이라 그리 솔직한거니?”
“아니면 내가 어디서 이렇게 솔직할 수 있겠어요?”
“뻔한 아부지만 기분은 좋구나.”
“아부 아녜요. 그냥 입발린 소리에요.”
“푸하하하하하...”
“그렇게 웃지 마요. 품위없게스리.”
“수파니는 이렇게 웃는게 품위있는거란다.”
“정말요?”
“그럼.”
“나중에 다른 수파니 만나서 물어봐도 되요?”
“그러렴.”
“진짜?”
“응!”
“쳇!”
“왜? 항복?”
“지금은 일단 믿어주죠.”
“잘 생각했다.”
“진짜 쳇!”
“훗...”
“어쨌든 오늘은 더이상 히리스 누님과의 계획이 없어요.”
“그럼...?”
재촉하는 듯한 표정에 칸피니스의 눈이 가늘어진다. 무언가 굉장히 마음에 안든다는 듯 얼굴 가득 심통이 주렁주렁 매달린 듯한 표정이다.
“그런데 어머니는 꼭 제가 이 길로 나가면 여자방으로 갈 거라고 확신하고 계시는 것 같아요? 무슨 근거로 그리 생각하시는거죠?”
“호호호호호....”
“그렇게 간드러지게 웃지 마요. 봐요 소름 돋는 거.”
“아들아~~”
“예, 어머니~~”
“나는 네 어머니란다.”
“저는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어머니보다 자식을 잘 아는 사람은 없단다.”
“그런건가요?”
“그래.”
“그 말씀은...?”
“어머니로서 자식인 너를 평가할 때 너는 구제불능의 색마란다. 하루에 두 여자 이상 상대하지 않으면 자지가 항문을 향해 기어가는 타고난 색마지.”
“엑? 그... 그 말 어디서 들으셨어요?”
“왜? 틀린말이니?”
“당연하죠! 난 그정도로 변태는 아니라구요!”
“그래?”
“당연하죠. 아무리 굶주려도 오크를 강간하면 했지 남자의 항문따위는 전혀 광심밖이라구요. 그런건 로메르나 일스테아같은 덜떨어진 자식들이나 하는거라구요.”
“흐음... 뭔가 굉장히 진지한 듯한데 촛점이 많이 벗어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니?”
“착각이에요.”
“그럴까?”
“예!”
너무도 자신감 넘치는 단호한 대답에 에렌프는 그저 멍하니 아들의 얼굴만을 바라볼 뿐이다.
“휴우... 분명 나는 이렇게 키운 적 없는데... 분명 프란츠가 버려놓은거야.”
“제발 그런 살 떨리는 말 좀 그만하고 본론으로 넘어가요.”
“알았다. 어쨌든 너는 색마이기 때문에 밥이 너 혼자 자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어. 그런데 지금 네 앞에는 이렇게 절세미인인 네 어미가 알몸으로 내 옆에서 하룻밤 보내기를 청하고 있는데도 너는 그리도 냉정히 일어서고 있지. 자,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아무래도 어머니가 절세미인이라는 말에 질려서 떠나려는 것 같은데요.”
“호호호호호... 아들아~~”
“그렇게 웃지 말라니까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한테 맴매 맞고 잘못했다며 울고 싶니?”
“알았어요, 잘못했어요. 됐죠?”
“알면 됐다. 어쨌든 색마가 이런 미인을 버려두고 방을 나서야 한다면 다른 어떤 이유가 있을까? 여자 말고 다른 이유가 있겠니? 어때? 맞지?”
“쳇... 알았어요. 어머니 말이 맞아요. 지금 린네 만나러 가는중이에요.”
“린네? 너 린네도 건드렸니?”
린네란 말에 에렌프의 눈이 다시 동그래진다. 의외의 이름이라 놀란 모양이다.
“모르셨어요?”
“응.”
“짐작은 하셨죠?”
“그거야...”
“대충 그렇게 된거에요.”
“내 전담하녀까지 건드렸다면 별저의 하녀는 모두 한 번씩 건드렸다는 얘기로구나.”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죠.”
그의 뻔뻔한 대답에 에렌프의 눈이 한없이 가늘어진다. 흰자위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늘게 뜨여진 눈으로는 싸늘한 살기가 느껴진다.
“여자의 적!”
“에?”
“색마!”
“색마 맞잖아요!”
“음란한... 아아... 어찌 저런 음란한 아이가 내 배에서 날 수 있는 것일까? 모두 프란츠를 닮은거야.”
“그런 무서운 소리 하지 말라니까!”
“아들이 아버지를 닮았다는게 왜 무서운 소리니?”
“그럼 어머니는 어머니더러 프란츠 마누라라고 하면 기분 좋겠어요?”
“어머! 칸피니스! 네가 어쩜 내게 그런 심한 말을! 아무리 네 어미가 마음에 안들기로서니 그런 끔찍한 모욕을 가할 수 있는거니? 네가... 네가... 네가 정말 이럴줄은...”
우는 시늉까지 하는 어머니의 모습에도 칸피니스는 추호의 동요도 보이지 않는다. 더없이 냉정한 태도로 그녀에게 한 마디 던질 뿐이다.
“어머니도 싫죠? 그러니 내게도 다시는 프란츠의 아들이니 뭐니 하는 소리 하지 마요. 봐요. 소름 돋은 거. 그게 얼마나 끔찍한 소리인데.”
“하지만 히리스는 프란츠의 딸이잖니?”
“히리스 누님은 예쁘잖아요.”
“그게 다니?”
“예!”
“정말?”
“예!”
에렌프는 어이가 없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가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아들의 뻔뻔한 대답이 그녀에게 얼마나 큰 충격을 주었는가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모습이다.
“하아... 나는 분명 너를 이리 낳지 않았다. 이리 기르지도 않았다. 도대체... 도대체 누가... 누가 너를 이리 만든 것이냐?”
“어머니!”
칸피니스의 단호한 확신에 찬 대답에 에렌프의 표정이 조용히 굳는다.
“칸피니스...”
“예?”
“린네와 약속이 있다며?”
“예!”
“빨리 안가봐도 되겠니?”
“오늘 밤 풀로 뛸거니까 조금 늦어도 상관없어요.”
“그래?”
“오히려 제가 조금 늦게 가는 게 잘 시간 많아서 좋아요. 어머니의 아들이 또 정력이 초절륜이라 한 번 시작하면 여자들 잠을 안재우거든요. 제가 일찍 가면 그만큼 힘들어서 녹초가 될테니 내일 일하는데 크게 지장이 있다구요.”
“그래... 그래... 그렇겠구나.”
그러려니 싶은 것인지 에렌프는 건성으로 맞장구쳐준다. 어쩌겠는가? 원래 저런 녀석인것을. 진지하게 상대하는 사람만 손해다.
“그래도 여자를 기다리게 하는 건 예의가 아니니 일찍 가보도록 해라.”
“흠... 아무래도 그렇겠죠?”
“그래.”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그러렴.”
“그럼 편한 밤 되세요.”
“네 덕분에 오늘밤은 푹 잘 수 있을 것 같구나. 정말 상쾌한 피로감이야. 저절로 눈이 감기려 할 정도야.”
“헤헤... 도움이 된건가요?”
아무리 칸피니스라도 어머니의 입에서 이런 말을 들으니 얼굴이 붉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그래. 여러가지로 문제가 많은 쓸모없는 아들이지만 이것 하나만은 도움이 되는구나. 오늘은 네 덕분에 정말 달게 잘 수 있을 것 같아. 고맙구나.”
“헤헤... 다 제가 잘나서라구요.”
“그래... 그래...”
“그럼 편히 쉬세요. 전 가볼게요.”
“리넨 너무 괴롭히지 말고. 걔는 나를 보살피느라 그렇지 않아도 매일이 힘든 아이란다.”
“예에...”
“리넨에게도 좋은 밤 되란다고 내가 말했다고 전해주렴.”
“리넨이 놀라지 않을까요?”
“괜찮아. 어차피 알게 될 일인데.”
“그렇겠죠?”
“응.”
“그럼 가볼게요. 편히 쉬세요.”
“그래.”
“그럼...”
쾅--!!
저벅저벅--!!
방안에서의 화기애애한 대화와는 달리 방을 나와 복도를 걷는 칸피니스의 표정은 차가운 살기로 딱딱하게 굳어있다. 흉폭한 파괴의 욕구와 광기가 모든 것을 날려버리는 듯 그의 깊이 가라앉은 검은 눈 속에서 폭풍같이 휘몰아치고 있다.
힘이 들어간 어깨, 힘이 들어간 등, 힘이 들어간 걸음, 무엇보다 꽉 앙다물어진 입가 뼈가 피부를 뚫고 나올 듯 움켜쥐어진 주먹이 그의 마음속에 깃든 증오와 분노를 그대로 대변하는 듯 하다. 가로막는 것은 뭐든 부숴버리고 짓밟고 지나갈 듯한 그의 기세에 복도를 침습하기 시작한 어둠도 한발, 두발 뒤로 물러서는 것 같다.
“으드득...!!”
지나치게 힘이 들어간 듯 앙다물려진 턱에서 이가 부스러지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반드시... 반드시...”
조용한 부르짖음은 그의 입 안에서 소리없이 맴돌다 사라진다. 하지만 그 작은 목소리에 실린 잔폭한 살기는 소리보다 멀리, 더 넓게 퍼져 복도안을 가득 매운다. 어둠조차도 두려움에 떨며 잔뜩 흐트러질 정도로 두렵고도 두려운 살기다.
“칸... 피니... 스...”
칸피니스의 살기를 느낀 것일까? 잠을 청하려 눈을 감았던 에렌프의 눈이 갑작스레 떠진다. 촛점 없는 그녀의 눈동자에 슬픔과 분노가, 그리고 애㉯?사랑이 물기처럼 스미기 시작한다. 마침내 눈동자를 잠기게 한 투명한 물방울이 그녀의 작은 중얼거림을 따라 관자놀이를 타고 귀밑머리를 적신다.
“칸피니스...”
그녀는 수파니. 환경에 민감한 종족이다. 칸피니스의 감정을, 칸피니스의 생각을, 앞을 보지 못한다고 그녀가 모를 리 없다. 더구나 칸피니스는 그녀의 아들 아닌가.
차라리 몰랐다면 괜찮았을 것이다. 아예 모른 체 살았다면 이리 아프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칸피니스에 대해 너무도 잘 알기에, 너무도 많은 것을 알고 있기에 이리도 슬프고 아픈 것이다.
“미... 미안... 칸... 피니스... 미안...”
힘없이 눈을 가린 그녀의 가는 팔 사이로 강물처럼 뜨거운 눈물이 침대로 흐르기 시작한다. 그녀의 안타까운 중얼거림 또한 눈물에 실려 강물처럼 흘러 방안을 적신다. 하지만 칸피니스에게는 전해지지 않는다. 그러길 바라고 있으니까. 그러길 바라고 그토록 감춰왔던 것이니까.
견딜 수 없는 슬픔과 아픔에 에렌프의 눈동자는 점차 빛을 잃어간다. 정신적 고통을 이기기 위해 그녀 스스로 그녀의 정신을 놓아버리는 것이다. 다음 칸피니스와의 섹스가 있기 전까지 그녀는 이렇게 정신을 놓아버린 채 또다시 원래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저벅 저벅--
‘제기랄! 빌어먹을!’
몇 배나 예민해진 청각으로 복도 저편으로 멀어져가는 칸피니스의 발자국 소리가 멀리 어렴풋하게 들려온다. 그 소리를 반주삼아 에렌프는 조용히 자신의 정신을 놓는다. 다음 칸피니스와의 섹스를 기약하면서.
저벅저벅--
‘으드득--!’
분이 풀리지 않는 듯 세게 이를 갈아붙이는 소리가 마지막 의식으로 스미듯 새어 들어온다. 그녀의 마지막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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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끝입니다. 1부는 도입부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칸피니스와 주변 인물들을 대충 스케치하는 정도로 마무리지었습니다. 원래는 3편 정도로 끝낼 생각이었는데 저의 글쓰기 스타일상 대화에 치중하다보니 예상보다 두 배 이상 길어져 지루해진 감이 있습니다. 그점 아쉽게 생각하면서도 어쨌든 1부가 끝났으니 한 가지 이루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2부부터는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주로 델킨피에르 영지를 둘러싼 음모와 그에 대한 칸피니스의 대처가 중심을 이루겠죠. 아직 칸피니스의 실력을 표면으로 드러낼 때가 아니니 대체로 고난에 가까운 일상일 겁니다. 그럼에도 역시나 저의 스타일대로 칸피니스와 주위 캐릭터와의 말장난이 유쾌한 분위기를 만들어갈 것으로 기대됩니다.
다음회예고>> 처음 등장하는 프란츠 자작. 자작의 작위에도 불구하고 이제야 처음 등장한다는 사실에 작가를 협박하는 만행도 서슴지 않는다. 훗! 그래봐야 파리목숨 캐릭터다. 잠시 날뛰는 건 봐주도록 하겠다.
예고편은 예고편이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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