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강 후 봄철의 캠퍼스가 본격적으로 활기를 띠는 것은 동아리 신입생 모집기간일것이다.
우리 학교도 그랬다. 정문부터 시작해서 교내의 주요 길목에는 어김없이 천막을 치고 신입생을 잡아세우는 장면이 들어온다. 이게 학생인지 나이트 삐끼인지, 온갖 개수작이 남발하며, 온갖 자랑이 쏟아진다.
신입생이 동아리를 선택하는 기준? 꿈과 희망.
하지만 어차피 진실은 하나다. 대학 동아리 99%는 그냥 모여서 술먹는 집단이다. 독서동아리? 책펴놓고 술먹는다. 영화감상 동아리? 영화 보면서 술먹는다. 것도 처음에만... 나중에는 그냥 술만 먹는다.
7살 터울의 형이 해준 이야기는 그랬다. 어차피 모여서 술이나 먹는거, 다들 그런다는거.
그래도 대학생이 되었으니 동아리 하나는 들어야겠다 싶은 마음도 있지만, 딱히 맘에드는 동아리도 없다. 그냥 일찌감치 강의실이나 들어가 좋은 자리에서 만화책이나 볼 심산으로 걷고 있는데, 가는 걸음마다 나를 붙잡고 가입을 권유한다. 어차피 원서 쓰고 그다음 날이면 반말로 부하취급해댈거면서, 당장에는 존칭과 함께 동아리 자랑이 쏟아진다. 근데, 미안하다. 관심없다.
이러다 동아리 하나도 못들겠네, 뭐 별 수 없지 하는 마음으로 삐끼들을 애써 무시하며 강의실을 향하는데, 색다른 소리가 섞여 들린다.
"얌마, 거기 강의시간에 만화책이나 보게 생긴놈!"
누구냐, 너. 역술동아리에 토정선생이라도 현신해 있는건가 싶어 고개를 돌려보니, 천막도 없이, 책상 하나 가져다 놓고 SF연구회라고 A4용지 하나 붙여놓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무성의해 보이는 동아리 모집테이블이 보인다.
나를 불러 세운게 누군가 하고 보니, 제법 예쁜 여자다. 뒤로 묶은 생머리, 풀면 어깨까지는 닿겠다. 뿔테안경, 하얀 피부, 화장기 제로의 눈과 입술. 이제는 조금 덥지 않을까 싶은 패딩점퍼에 검은 데님, 그리고 슬리퍼, 슬리퍼? 신입생 모집한다는 테이블에 슬리퍼 차림의 발을 올려 놓고 잔뜩 쌓아놓은 만화책을 보고 있는 이여자. 나한테 반말한 이여자. 뭐지?
"신입생 맞지? 동아리 들었냐?"
어디서 저런 확신이 나왔을까? 나 제법 노안인데. 그리고, 확신이 들었다 해도 왜 반말이냐?
"아뇨."
"그렇게 생겼다 야. 이름이 뭐냐?" 자세를 고쳐 바로 앉으며 그녀가 묻는다.
"문재수요"
"문.. 재.. 수.. 무슨과야?"
이여자, 지 맘대로 원서를 쓰고 있다. 내가 언제 가입한댔나? 이게 나를 뭐로보고...
"저 생각없는데요?" 어차피 결정은 내가 하는것. 짧고 단호하게 말해줬다.
"그래, 너 생각이라는게 없어보여. 눈동자 흐린거 봐라. 그래가지고 대학생활 재미있게 하겠냐? 무슨과야?"
아니, 이년이...
"기계공학과요" 대단한 년이다. 지 페이스대로 나를 가지고 놀고 있다. 근데, 그게 싫지가 않다.
"기계과? 아주 그냥 회색빛 인생으로 질주를 하는구만"
.
.
.
.
.
.
여자의 페이스에 말려, SF동아리라는 미친집단에 가입을 해버렸다.
"근데, SF동아리는 뭐하는거에요?"
"몰라." 뭐? 몰라? 이년이... 지가 가입시켜놓고, 그런 대책없는 대답을...
그때 등뒤에 기척이 느껴졌다.
"어? 신입생이야? 니가 받았어?"
"그래 이 새끼야. 누나가 뭐든 못하는거 봤냐?"
"야, 반갑다. 내가 회장이야. 이름은 강재우. 니덕에 우리 동아리 규정인원 채워서 정식동아리 되겠다. 수고했어, 말. 니가 사람노릇 할때도 있구나."
말? 회장은 여자를 말이라고 불렀다. 뭐야. 얼굴이 말상은 아니고... 말과 여자의 관계를 추론하고 있는 나를 회장이 보더니,
"원래 미친말인데, 그냥 말이라고 부르는거야. 너도 조심해 얘 성격 더러워."
미친말... 뭔가 있어 보인다. 그래 조심해야지.
"닥쳐 멍서방. 나 간다." 미친말은 가버렸다.
.
.
"우리 동아리 뭐하는지 설명은 들었어?"
"아뇨."
"우리 딱히 하는거 없어. 그냥 사람 좋아서 모인 동아리야. 이따 저녁이나 같이 먹자."
"네"
그날 저녁 멍회장과 저녁식사를 하며, 동아리 사정을 들었다. 원래는 학교에서 제일 큰 노래패 소속이었는데, 선배들의 권위주의와 구타가 싫어 동아리 활동에 회의를 느끼던 중 동아리 회의와 함께 여지없이 군기잡는답시고 구타가 발생하고, 미친말께서 뒤풀이 회식중 빡이돌아 술상을 뒷발차기로 차고 나가버렸단다. 선배들은 다시한번 당시의 1학년들을 잡아 족치려 했지만, 1학년 회장인 멍서방께서 더는 못참겠다고 탈퇴를 선언하자, 1학년의 대부분이 빠져 나갔다고 한다.
그 후 멍회장을 중심으로, 5명의 1학년이 그냥 모여서 만든게 SF연구회. 하지만, 작년 말에 남자 선배 하나가 군대에 가면서 최소인원 5명을 채우지 못해 동아리방조차 지원받지 못할 형편이었다고 한다.
멍회장 말로는 그게 별로 중요하진 않지만, 그래도 갈 데 없으면 동아리방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냐 싶어 신입생 모집을 했다고, 이제 더는 받을 필요도 없다고 했다. 그냥 마음 내키면 동아리 방 가서 쉬고, 방학때 같이 놀러나 가자는 식이었다. 같이 놀사람 없으면 자기도 놀아준다고도 했다.
설명을 다 듣고 나니, 이게 동아리가 맞나 싶기도 하지만, 나한테 나쁠것은 없었다.
식사가 끝날무렵, 두 명의 남자선배가 더 왔다. 다들 멍회장처럼 사람 좋아보이는 인상에 방학때 놀러나 가자며, 그전에 볼일이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말과 함께 넷이서 소주 2병을 비우고 나니, 군대 간 승철이 없으니, 소주 2병에 남자 넷이 취하네 마네 하는 개소리로 시간을 보냈다. 중간중간 미친말의 이야기가 나왔다. 선배들의 공통된 의견은 예쁜데 차갑다. 1년에 2번 있는 동아리 MT도 참가 안하는게 신입생을 물어다준건 대단한 일이라는 이야기였다.
일찌감치 술자리가 파하고, 빌려온 만화책을 반납하러 학교 앞 만화방에 들어갔다.
낮시간과는 다른 알바생이 있었다. 예쁘고 참하게 생겼다. 미친말이 시원시원하고 호리호리한 미인형이라면, 이 알바생은 귀엽고 말랑말랑한 이미지다. 오늘부터 여기는 내 단골집이 되리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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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오전, 교양수업 "여성과 사회"를 들으러 갔다. 분명1학년 수업인데, 와서는 안될 미친말이 와있었다.
"안녕하세요."
"너 이수업 들어?"
"네, 누나는요?"
"원래 옆 강의실인데, 휴강이라 심심해서 그냥 들어와본거야."
나는 원래 내가 좋아하는 자리가 있었지만, 미친말 옆자리에 앉았다. 이쁘기도 하고, 안듣는 수업 들어온건데 옆에 아는사람 있는편이 미친말한테도 좋지 않겠나 싶어서였다.
그날 수업 주제는 가정폭력이었다.
수업자료로 등장한, 어느 광장에서 열렸던 시위모습에 수업에 참가한 여자들은 세상 남자들을 다 죽일듯 분노했다. 내용인즉, 가정폭력의 실상을 보여주는 사진 자료들과, 매맞는 아내들의 하소연이었다.
교수님은 남학생들은 할 얘기 없냐고 물었고, 다들 조용히 있었다.
그때 미친말이 내 옆구리를 강하게 찔렀다. 나도 모르게 "헉"소리가 나왔다.
교수님은 "어 그래 자네 한마디 해봐."
미친말... 두고보자.
"에,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뭐냐면... 사회적으로 약자라고 인식되는 여성들은 저렇게 하소연이라도 하고 광장에 사진이라도 내걸지만, 집에서 매맞는 남자들은 어디가서 하소연도 못한다는겁니다. 친한 친구한테도 말못하고, 가족한테도 말을 못할거 같습니다."
매맞는 남편 이야기가 우스웠는지 교실은 웃음이 넘쳤다. 개년들... 여자가 맞는건 분노할 일이고, 남자가 맞는건 재밌냐?
교수가 입을 열었다.
"아주 핵심을 잘 짚었어요. 현대사회에서는 성차별도 문제가 되지만, 역차별 또한 굉장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제법이네 문재수?" 미친말이 옆에서 우쭈쭈쭈 한다. 그래도 내 이름은 이제 아는구나.
근데, 미친말은 이름이 뭐였지?
수업중, 부부간의 강간사건 이야기도 나왔다.
원치않는 성행위를 강요하는 남편은 짐승이라는 의견이 지배하는 가운데, 미친말이 입을 열었다.
"이 사례는 1년 넘게 아내가 성관계를 거부한건데, 이정도 기간이면 아내도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지 못한거 아닌가요?"
이여자 왜이래? 이거 니 수업 아니거든요?
미친말의 한마디에 강의실 안의 여자들은 결혼이 섹스때문에 하는거냐는 반론을 펼치며 미친말을 배신자 취급하기 시작했다.
미친말은 동요하는 기색도 없이,
"둘이 같이 기도나 하자고 결혼하는건 아니잖아요?"라는 간단한 답변을 날린다.
미친말은 쿨해보이기도 하지만, 당시 나에겐 지금까지 생각해오던 여성의 모습과는 다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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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업이 끝나고 미친말이 밥을 사주겠다며 나를 데려갔다.
함께 밥을 먹으며 미친말의 이름을 물었다.
"이새끼가 이름도 모르는 사람한테 밥을 얻어먹네? 너 누나가 사탕줄께 새우 잡으러 바다 한번 가볼래?"
미친말의 농담은 농담 같지가 않다. 딱히 대답할 말이 없어 억지로 소리내서 웃었다.
"최 수 지, 응? 누나 이름 이쁘지? 까먹으면 진짜 죽인다?"
"네"
미친말-아니, 수지-는 나를 귀엽다는 듯 볼을 쥐고 흔든다.
나는 이런걸 좋아하지 않지만, 수지가 그러는건 싫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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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여성과 사회 시간엔 항상 수지가 들어왔다. 원래 받던 수업은 그냥 드랍시켰다고 했다.
한 학기 동안 함께 수업을 받고, 끝나면 점심을 먹고, 그렇게 우리는 가까워졌다.
우리 학교도 그랬다. 정문부터 시작해서 교내의 주요 길목에는 어김없이 천막을 치고 신입생을 잡아세우는 장면이 들어온다. 이게 학생인지 나이트 삐끼인지, 온갖 개수작이 남발하며, 온갖 자랑이 쏟아진다.
신입생이 동아리를 선택하는 기준? 꿈과 희망.
하지만 어차피 진실은 하나다. 대학 동아리 99%는 그냥 모여서 술먹는 집단이다. 독서동아리? 책펴놓고 술먹는다. 영화감상 동아리? 영화 보면서 술먹는다. 것도 처음에만... 나중에는 그냥 술만 먹는다.
7살 터울의 형이 해준 이야기는 그랬다. 어차피 모여서 술이나 먹는거, 다들 그런다는거.
그래도 대학생이 되었으니 동아리 하나는 들어야겠다 싶은 마음도 있지만, 딱히 맘에드는 동아리도 없다. 그냥 일찌감치 강의실이나 들어가 좋은 자리에서 만화책이나 볼 심산으로 걷고 있는데, 가는 걸음마다 나를 붙잡고 가입을 권유한다. 어차피 원서 쓰고 그다음 날이면 반말로 부하취급해댈거면서, 당장에는 존칭과 함께 동아리 자랑이 쏟아진다. 근데, 미안하다. 관심없다.
이러다 동아리 하나도 못들겠네, 뭐 별 수 없지 하는 마음으로 삐끼들을 애써 무시하며 강의실을 향하는데, 색다른 소리가 섞여 들린다.
"얌마, 거기 강의시간에 만화책이나 보게 생긴놈!"
누구냐, 너. 역술동아리에 토정선생이라도 현신해 있는건가 싶어 고개를 돌려보니, 천막도 없이, 책상 하나 가져다 놓고 SF연구회라고 A4용지 하나 붙여놓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무성의해 보이는 동아리 모집테이블이 보인다.
나를 불러 세운게 누군가 하고 보니, 제법 예쁜 여자다. 뒤로 묶은 생머리, 풀면 어깨까지는 닿겠다. 뿔테안경, 하얀 피부, 화장기 제로의 눈과 입술. 이제는 조금 덥지 않을까 싶은 패딩점퍼에 검은 데님, 그리고 슬리퍼, 슬리퍼? 신입생 모집한다는 테이블에 슬리퍼 차림의 발을 올려 놓고 잔뜩 쌓아놓은 만화책을 보고 있는 이여자. 나한테 반말한 이여자. 뭐지?
"신입생 맞지? 동아리 들었냐?"
어디서 저런 확신이 나왔을까? 나 제법 노안인데. 그리고, 확신이 들었다 해도 왜 반말이냐?
"아뇨."
"그렇게 생겼다 야. 이름이 뭐냐?" 자세를 고쳐 바로 앉으며 그녀가 묻는다.
"문재수요"
"문.. 재.. 수.. 무슨과야?"
이여자, 지 맘대로 원서를 쓰고 있다. 내가 언제 가입한댔나? 이게 나를 뭐로보고...
"저 생각없는데요?" 어차피 결정은 내가 하는것. 짧고 단호하게 말해줬다.
"그래, 너 생각이라는게 없어보여. 눈동자 흐린거 봐라. 그래가지고 대학생활 재미있게 하겠냐? 무슨과야?"
아니, 이년이...
"기계공학과요" 대단한 년이다. 지 페이스대로 나를 가지고 놀고 있다. 근데, 그게 싫지가 않다.
"기계과? 아주 그냥 회색빛 인생으로 질주를 하는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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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페이스에 말려, SF동아리라는 미친집단에 가입을 해버렸다.
"근데, SF동아리는 뭐하는거에요?"
"몰라." 뭐? 몰라? 이년이... 지가 가입시켜놓고, 그런 대책없는 대답을...
그때 등뒤에 기척이 느껴졌다.
"어? 신입생이야? 니가 받았어?"
"그래 이 새끼야. 누나가 뭐든 못하는거 봤냐?"
"야, 반갑다. 내가 회장이야. 이름은 강재우. 니덕에 우리 동아리 규정인원 채워서 정식동아리 되겠다. 수고했어, 말. 니가 사람노릇 할때도 있구나."
말? 회장은 여자를 말이라고 불렀다. 뭐야. 얼굴이 말상은 아니고... 말과 여자의 관계를 추론하고 있는 나를 회장이 보더니,
"원래 미친말인데, 그냥 말이라고 부르는거야. 너도 조심해 얘 성격 더러워."
미친말... 뭔가 있어 보인다. 그래 조심해야지.
"닥쳐 멍서방. 나 간다." 미친말은 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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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아리 뭐하는지 설명은 들었어?"
"아뇨."
"우리 딱히 하는거 없어. 그냥 사람 좋아서 모인 동아리야. 이따 저녁이나 같이 먹자."
"네"
그날 저녁 멍회장과 저녁식사를 하며, 동아리 사정을 들었다. 원래는 학교에서 제일 큰 노래패 소속이었는데, 선배들의 권위주의와 구타가 싫어 동아리 활동에 회의를 느끼던 중 동아리 회의와 함께 여지없이 군기잡는답시고 구타가 발생하고, 미친말께서 뒤풀이 회식중 빡이돌아 술상을 뒷발차기로 차고 나가버렸단다. 선배들은 다시한번 당시의 1학년들을 잡아 족치려 했지만, 1학년 회장인 멍서방께서 더는 못참겠다고 탈퇴를 선언하자, 1학년의 대부분이 빠져 나갔다고 한다.
그 후 멍회장을 중심으로, 5명의 1학년이 그냥 모여서 만든게 SF연구회. 하지만, 작년 말에 남자 선배 하나가 군대에 가면서 최소인원 5명을 채우지 못해 동아리방조차 지원받지 못할 형편이었다고 한다.
멍회장 말로는 그게 별로 중요하진 않지만, 그래도 갈 데 없으면 동아리방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냐 싶어 신입생 모집을 했다고, 이제 더는 받을 필요도 없다고 했다. 그냥 마음 내키면 동아리 방 가서 쉬고, 방학때 같이 놀러나 가자는 식이었다. 같이 놀사람 없으면 자기도 놀아준다고도 했다.
설명을 다 듣고 나니, 이게 동아리가 맞나 싶기도 하지만, 나한테 나쁠것은 없었다.
식사가 끝날무렵, 두 명의 남자선배가 더 왔다. 다들 멍회장처럼 사람 좋아보이는 인상에 방학때 놀러나 가자며, 그전에 볼일이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말과 함께 넷이서 소주 2병을 비우고 나니, 군대 간 승철이 없으니, 소주 2병에 남자 넷이 취하네 마네 하는 개소리로 시간을 보냈다. 중간중간 미친말의 이야기가 나왔다. 선배들의 공통된 의견은 예쁜데 차갑다. 1년에 2번 있는 동아리 MT도 참가 안하는게 신입생을 물어다준건 대단한 일이라는 이야기였다.
일찌감치 술자리가 파하고, 빌려온 만화책을 반납하러 학교 앞 만화방에 들어갔다.
낮시간과는 다른 알바생이 있었다. 예쁘고 참하게 생겼다. 미친말이 시원시원하고 호리호리한 미인형이라면, 이 알바생은 귀엽고 말랑말랑한 이미지다. 오늘부터 여기는 내 단골집이 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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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오전, 교양수업 "여성과 사회"를 들으러 갔다. 분명1학년 수업인데, 와서는 안될 미친말이 와있었다.
"안녕하세요."
"너 이수업 들어?"
"네, 누나는요?"
"원래 옆 강의실인데, 휴강이라 심심해서 그냥 들어와본거야."
나는 원래 내가 좋아하는 자리가 있었지만, 미친말 옆자리에 앉았다. 이쁘기도 하고, 안듣는 수업 들어온건데 옆에 아는사람 있는편이 미친말한테도 좋지 않겠나 싶어서였다.
그날 수업 주제는 가정폭력이었다.
수업자료로 등장한, 어느 광장에서 열렸던 시위모습에 수업에 참가한 여자들은 세상 남자들을 다 죽일듯 분노했다. 내용인즉, 가정폭력의 실상을 보여주는 사진 자료들과, 매맞는 아내들의 하소연이었다.
교수님은 남학생들은 할 얘기 없냐고 물었고, 다들 조용히 있었다.
그때 미친말이 내 옆구리를 강하게 찔렀다. 나도 모르게 "헉"소리가 나왔다.
교수님은 "어 그래 자네 한마디 해봐."
미친말... 두고보자.
"에,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뭐냐면... 사회적으로 약자라고 인식되는 여성들은 저렇게 하소연이라도 하고 광장에 사진이라도 내걸지만, 집에서 매맞는 남자들은 어디가서 하소연도 못한다는겁니다. 친한 친구한테도 말못하고, 가족한테도 말을 못할거 같습니다."
매맞는 남편 이야기가 우스웠는지 교실은 웃음이 넘쳤다. 개년들... 여자가 맞는건 분노할 일이고, 남자가 맞는건 재밌냐?
교수가 입을 열었다.
"아주 핵심을 잘 짚었어요. 현대사회에서는 성차별도 문제가 되지만, 역차별 또한 굉장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제법이네 문재수?" 미친말이 옆에서 우쭈쭈쭈 한다. 그래도 내 이름은 이제 아는구나.
근데, 미친말은 이름이 뭐였지?
수업중, 부부간의 강간사건 이야기도 나왔다.
원치않는 성행위를 강요하는 남편은 짐승이라는 의견이 지배하는 가운데, 미친말이 입을 열었다.
"이 사례는 1년 넘게 아내가 성관계를 거부한건데, 이정도 기간이면 아내도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지 못한거 아닌가요?"
이여자 왜이래? 이거 니 수업 아니거든요?
미친말의 한마디에 강의실 안의 여자들은 결혼이 섹스때문에 하는거냐는 반론을 펼치며 미친말을 배신자 취급하기 시작했다.
미친말은 동요하는 기색도 없이,
"둘이 같이 기도나 하자고 결혼하는건 아니잖아요?"라는 간단한 답변을 날린다.
미친말은 쿨해보이기도 하지만, 당시 나에겐 지금까지 생각해오던 여성의 모습과는 다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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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이 끝나고 미친말이 밥을 사주겠다며 나를 데려갔다.
함께 밥을 먹으며 미친말의 이름을 물었다.
"이새끼가 이름도 모르는 사람한테 밥을 얻어먹네? 너 누나가 사탕줄께 새우 잡으러 바다 한번 가볼래?"
미친말의 농담은 농담 같지가 않다. 딱히 대답할 말이 없어 억지로 소리내서 웃었다.
"최 수 지, 응? 누나 이름 이쁘지? 까먹으면 진짜 죽인다?"
"네"
미친말-아니, 수지-는 나를 귀엽다는 듯 볼을 쥐고 흔든다.
나는 이런걸 좋아하지 않지만, 수지가 그러는건 싫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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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여성과 사회 시간엔 항상 수지가 들어왔다. 원래 받던 수업은 그냥 드랍시켰다고 했다.
한 학기 동안 함께 수업을 받고, 끝나면 점심을 먹고, 그렇게 우리는 가까워졌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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