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 그룹 회장실.
일주일에 한번 정도 출근하는 회장이 주요 업무를 처리한 후 두 사람을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후계자인 부회장과 감찰실장인 이재호였다.
" 그래. 그의 정체는 알아 냈는가?"
" 예, 미국의 백호로부터 블루레인을 통해 해가문 1인자의 후계녀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파악한 후 그녀의 모든
행동 반경에 맞춰 분석한 결과 한국계로서 마르스가 될만한 후보자를 서른 명 정도 추려 내었습니다,"
" 블루레인이라면? 그 해가문 진영내의 2인자 그룹의 거물급 아닌가?"
" 예, 해가문에 소속된 레인그룹의 1인자의 후계자이지요. 해가문측의 후계녀와 후계 서열을 다투는......"
" 그래서? 서른 명 중 누가 마르스이던가?"
회장의 촉박한 물음에 재호는 품 속에서 한 장의 봉투를 꺼내더니 봉투에서 한 장의 종이를 내밀었다.
" 김광호, 한국계 미국인입니다.
현재 이중국적이고 올해 우리나라에서 군대를 제대했습니다. 그 외엔 여기 적힌대로입니다."
재호의 말을 듣고 난 회장과 부회장은 번갈아 가며 김광호라는 이름의 사내의 얼굴과 학력, 경력을 훑어 보았다. 그리고 나서 회장이 재호에게 물었다.
" 시간이 촉박해서 서른 명을 모두 조사하지는 않았을 것이고...자네. 혹시....그걸 사용한 건가?"
회장의 물음에 재호는 그저 조용히 웃으며 찻잔을 들고 차를 들이켰다.
" 대답이 없는 걸 보니 맞는 모양이로군. 내가 자네에게 못할 짓을 시키는군."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부회장이 물었다.
" 아버님, 감찰실장이 사용한 그것이 뭡니까? "
" 염력이다. 초능력의 일종으로 정신을 통일한 상태에서 눈을 감고 스크린에 차례대로 비추고 떠오르는
사진들 의 기를 느끼는 것이다. 한 번 사용하고 나면 탈진해서 며칠은 기운을 못 쓴다."
" 아니 감찰실장이 그런 능력까지 있단 말입니까? 놀랄 일입니다."
부회장이 감탄을 연발하며 새삼스러운 표정으로 재호를 쳐다보았다.
" 이왕 염력 얘기가 나왔으니 말씀 드립니다.
회장님의 기가 많이 약해졌습니다. 건강에 조심하셔야 합니다."
" 인명은 재천인데 어쩌겠나. 그래 자네가 보는 내 남은 수명은 얼마나 되는가?"
" 말씀드리기 송구스럽습니다만, 팔십을 채우기 힘듭니다."
" 많이도 쳐주는구만. 77세 희수까지만 건강하게 살아도 좋겠네..."
" 아버님, 그 무슨 말씀을....오래도록 건강하셔야 합니다."
" 아니다. 이젠 후계 구도도 계획대로 속도를 내야 한다.
내가 죽더라도 넌 감찰실장과 힘을 합쳐 잘 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감찰실장에게는 내가 가진 전자 생명 지분의 반을 넘겨주겠네.
그 동안 나를 위해 회사를 위해 노고한 댓가일세."
"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리고 이 달안에 은밀하게 해가문 후계녀가 한국에 올 것 같습니다.
미국측에서 에어포스 1에 해당하는 경호 문제를 우리 정부에 은밀하게 부탁해 왔다고 합니다."
" 어떤 여자인지 궁금하군요"
부회장의 말에 재호는 뜻모를 미소를 짓더니 말을 이었다.
" 부회장님은 아마 조만간 여색의 유혹에 빠질 겁니다. 도저히 헤어날 수 없는 ....
그들에게 이미 모든 정보가 들어갔으니 미인계가 먹힐 여자를 보낼 겁니다."
" 그건 걱정 안해도 됩니다.내가 나이가 얼마인데 새삼 미인계라니..."
" 그럼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며칠 고향에 휴가를 다녀 오겠습니다."
" 그래 고향에 가서 푹 쉬고 오게나. 나도 언젠가 다시 한 번 자네 고향집에 가보고 싶구만."
재호가 나가자 부회장이 회장에게 물었다.
" 보면 볼수록 모를 사람입니다. 그나 저나 아버님 지분의 전자 생명 주식이면 엄청난 금액인데..."
" 모르는 소리 말아라. 그런 주식쯤은 감찰실장에겐 코묻는 돈이다.
너는 한국에서 우리 집안이 가장 돈이 많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 그럴리가요 조부 때부터 한국 최고의 부자는 우리 집안인데..."
" 그건 드러난 것이다. 한가지 물어 보마.
해방 전후에 네 조부께서 유일하게 무릎 꿇은 사람이 누군지는 알고 있지?"
" 예. 경주 최부자집 최준 어르신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 그래 맞다 근데 그 최부자집이 최전성기에도 한두 수 접어 주고 들어간 경주의 명문이 감찰실장의 집안이다."
" 그럴리가....도대체 어느 정도이길래..."
" 나중에 자세히 알려 주겠지만 감찰실장은 사명감 때문에 우리 일을 돕는 것이다. 부친의 뜻에 따라...
명심해라. 네가 나중에 그룹을 통솔하더라도 감찰실장에게 척을 지면 순식간에 위기에 휘말리고 등을 돌리면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것을...."
" 아버님,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 아닙니까?"
" 과대평가가 아니다. 아주 오래 전얘기를 해주마.
1960년대 초에 군인들이 들고 일어났을 때 네 조부께서 군부 지도자와 경주의 한적한 호텔에서 만난 적이 있었
다. 나중에 대통령이 되는 양반이지. 두 분이 저녁을 먹고 가볍게 한 잔 하면서 경제 발전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
를 나누는데...."
"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 한밤이 지나도록 구체적인 결론은 없고 시간만 가는데 왠 초로의 노인 한 분이 신선 같은 옷차림으로 다가
오더 란다. 그 삼엄한 경비를 뚫고 유유히 다가 오더니...
두 사람을 보고 싱긋 웃고는 봉투를 하나 주고 가더란다.
귀신같이 홀연히 사라져 생시인가 싶을 정도로..."
"......"
"봉투를 뜯어 보니 두 장의 종이가 나오는데 한장엔 도로망,통신망,전력망이라고 한문으로 힘찬 붓글씨로 적혀 있더란다. 그리고 나머지 한장에는 역시 한문으로 제철, 조선,자동차,전자라고 적혀 있었는데....그걸 보고 네 조부와 군부지도자는 혼이 빠져 나갔다고 하더라."
" 그게 무슨 뜻입니까?"
" 3개의 망은 경제를 위한 기반 시설이고 나머지 4개의 산업은 우리나라가 지향해야 할 산업 분야였던 것이다.
두 사람이 그렇게 몇 시간을 얘기해도 안 나온 결론이 거기에 적혀 있었던 것이지."
" 선견지명이 있는 노인이군요"
" 두 분은 앞으로 경제 계획을 노인이 준 대로 하기로 하고 다음 날 군부지도자는 자신의 고향인 선산으로 갔고...
네 조부는 경주에 온 김에 시조묘를 들렀는데....거기서 간밤의 노인을 보게 된 것이지."
" 그 노인이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까?"
"
그렇지. 그리곤 시조묘에 참배한 조부를 조용히 부르더니 자기 집으로 가자고 하더란다. 그래서 따라 갔는데...."
" 궁금합니다."
" 경주 외곽의 어느 조용한 산속으로 들어 가니 수십호 남짓한 기와집이 있는 마을이 보이고 그 마을 뒤로 다시
한참을 올라 가니 노인의 고풍스런 거대한 기와집이 있는데 주위가 흡사 동양화의 한 폭 같은 천하의 절경이었 다고 하더구나. 네 조부가 풍수에 일가견이 있는 건 너도 알지?"
" 예 조부께서 당신의 묘터도 직접 잡으실만큼....왠만한 풍수가들보다 낫다고 들었습니다."
" 그 노인의 집터가 풍수가들이 꿈에도 그리던 사신호선이라더구나."
" 그게 뭡니까?"
"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가 하늘의 선녀를 호위하는 형국을 말한다.이런 집터는 천년 불패를 넘어서는 기를 가지고 있다고 들었다."
" 그런 집터를 가지고 있다니....노인네가 대단하군요"
" 아무튼 그 노인을 따라간 네 조부에게 그 곳에서 한국 경제가 가야할 길을 자세히 말해 주더란다.
그리고 그 노인의 말대로 기업을 운영해 지금의 에스그룹의 기반을 다진 것이다."
" 그 노인네가 ....그럼..."
" 그래 감찰실장의 조부다. 2차 대전 당시에 이미 유럽과 미국,남미에 헐값으로 나온 자원들과 부동산을 구입해 놓았었고...석유와 자동차 등 주식도 상당했다고 들었다."
"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왜정 때 한국에 그런 인물이 있었다니..."
" 그 분이 지금 감찰실장이 맡고 있는 비밀 결사단체인 백호단의 초대단주란다.
일제때 독립 운동을 하기 위해 만든 항일 비밀 첩보 조직이지. 역사책에는 단 한 줄도 기록되지 않지만....
임시정부 독립 자금의 절반을 백산 안희제와 경주 최부자집의 최준이 부담했다면 그 나머지 자금의 절반을
그 어른이 부담했을 정도라니...."
" 자금도 부담하고 직접 비밀결사체도 만들어 항일을 했었군요."
" 그렇지. 그 땐 아직 이삼십대로 젊었으니까.
그런 정도의 인물이니 군부지도자와 조부가 있는 자리에 나타나 그런 문구를 전해 준 것이지.
그러니 너도 절대 경거망동하지 마라.
감찰실장의 인맥과 자산은 이미 백년 가까이 세계 곳곳에 뿌리를 내린 것이다.
냉전 시대에 석유 파동 때도 석유가가 오르고 우리나라가 연탄을 많이 쓰게 되자 그들이 가진 힘을 동원해
소련과 중국의 석탄을 한국에 들여와 거의 원가에 정부에 공급할 정도였다. 미국과 일본도 묵인해 주었지."
" 그야말로 막후의 실력자군요"
" 그래 감찰실장의 부친에게 내가 같은 경주 이씨라고 도와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하지 않았으면 김찰실장은 이미
더 큰 세상에서 날고 있었을 사람이다.그러니 너도 부디 깊이 생각해라.
수성이 힘든 건 용인술이 부족한 결과다. 명심하거라."
" 예 아버님.심려 놓으십시오"
감찰실을 들른 재호는 비서실에 휴가를 간다고 통보하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동생집으로 향했다.
동생과 함께 고향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그 시간 광호는 미국의 약혼녀와 통화 중이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이젠 서서히 공식석상에서 활동할 생각이었다.
약혼녀와 통화한 광호는 며칠 안에 한국에 오겠다는 그녀의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곤 그녀가 보내 준 문자를 보았다.
그녀가 신녀에게 받은 것이라며 중요한 것이니 한국 방문때까지 해석해 달라고 보낸 것이었다.
" 1.해돋는 땅 끝, 나무의 아들, 세 명의 성이 다른 왕을 세운 자
2.황금과 강철,안팎의 가지를 잡아 두 개의 더 큰 왕국을 이룬 자..."
문자를 들여다 본 광호는 눈쌀을 치푸렸다.
신녀의 말은 지금까지 틀린 적이 없었다.
자신이 지금의 약혼녀를 만난 것도 신녀의 말을 신앙처럼 따른 후계녀의 믿음 때문이었다.
" 이거 무슨 암호도 아니고.....
공개적으로 물어 보다 잘못하면 비밀이 새어 나가 큰일이 난다고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니... "
고민하던 광호가 고개를 들더니 화색을 띄며 웃었다.
" 그래 간만에 큰이모댁에 가자.
그리곤 수현 아니 똥개69호에게 물어 봐야겠다. 역사에도 밝다니 풀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기분을 전환한 광호는 혜림에게 지시를 내렸다.
광호로부터 파티 초대장을 발송하라는 지시를 들은 혜림은 곧 이를 시행에 옮겼고 이에 따라 수현을 비롯한 임직원들도 거대한 파티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토요일에도 출근하여 파티 준비로 뛰어 다녀 파김치가 되어 본가로 돌아온 수현은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었다.
한참을 자고 일어나 어두워진 것을 확인한 수현이 저녁 생각에 출출한 생각에 먹을 것을 찾으러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그 때 수현에게 누군가 반갑게 인사를 했다.
" 한수현 안녕, 오랜만이네. 어휴 저 입가에 침 좀 봐라."
수현을 보자마자 짖궂게 농담을 하는 건 이종사촌인 김광호였다.
동갑이지만 생일이 늦어 동생인데도 꼭 여동생 취급하는 게 얄미워 더 못되게 굴었다.
" 왠 일이야? 제대는 했다면서....몇 달 유럽 갔다 왔다더니 얼굴이 아주 개기름이 흐르네"
" 오랜만에 큰이모님 밥맛이 그리워 왔지 너도 보고 싶고..."
" 뭔일이래? 내가 보고 싶을 때가 다 있고...."
" 그나저나 너 요새 잘 나가더라. 요즘 우리친구들이 아주 난리더라.
너같은 여자 어디 없냐고....내가 이종사촌이라니 다들 안 믿더라."
" 됐어 네 친구들은 사양할래. 안 그래도 대시하는 사내들로 처치 곤란이거든..."
그 때 부엌에서 한 눈에 봐도 닮은 자매라는 걸 알 수 있는 두 여자가 나타났다.
" 이모 오셨어요?"
" 그래 수현인 이젠 시집 보내야겠다.
요즘 레스토랑 오는 친구나 손님들이 나보고 수현이랑 선자리 마련하라고 난리다 얘"
수현의 쭉 뻗은 몸매를 보며 이모가 너스레를 늘어놓자 수현의 엄마가 한 마디를 건냈다.
" 어디 괜찮은 신랑감 없니? 빨리 치워야지 이 나이에 막내딸 수발 드는 것도 지긋지긋하다."
" 엄마. 내가 무슨 물건도 아니고......"
" 물건 맞거든. 옛날 같으면 인왕산 호랑이도 안 물고 간다는 늙은 처녀가 물건이 아님 뭐니? 고물이다 고물......"
" 엄마, 광호도 있는데....꼭 ..."
" 왜 창피하니? 광호는 여자친구 벌써 몇 명이나 집에 데려 왔다더라.
네 이모는 그 중에 하나만 골라 잡아도 며느리감으로 좋다는 데 넌 뭐하는 거니? "
" 요즘은 군바리,백수 좋다는 애들이 그렇게 많은가 보지? 전부 눈이 삐었나?"
" 군바리 백수라도 연애는 해야지. 그리고 취직할 건데......"
광호가 한마디 하자 이모가 뒤를 이었다.
" 그래 수현아 광호가 이번에 취직을 하는데....공교롭게도 네가 다니는 회사야.
네가 이사니까 잘 좀 부탁한다."
" 예? 뭐라고요 울 회사예요? 하고 많은 회사 중에 왜......
그리고 광호는 미국에서 돈 엄청 많이 벌었잖아요.
그 돈으로 강남에 사놓은 500억대 빌딩에서 나오는 월세만 해도 엄청난데 뭐하려고 골아프게 직장에 다녀요?
광호소유의 빌딩에서 이모가 경영하는 그 페밀리 레스토랑도 최소한 이틀 전에 예약 안하면 밥 못 먹는다면서
요? 국제 변호사 자격도 있는데...... 로펌 같은데 가지. 우리 오빠 있는 태평양 로펌도 좋고요."
" 야. 한수현, 내가 아직 건물임대업만 할 나이는 아니고 한국 실정을 잘 몰라서 그래.
초등학교 3학년 때 미국 가서 외삼촌 집에서 눈치 밥 먹으며 중고대학을 다녔는데 불쌓하지도 않냐? 좀 봐 주라."
" 기가 막힌다. 누가 들으면 외숙부께서 구박이라도 한 줄 알겠다.
너처럼 편한 유학 생활 할 줄 알았다면 나도 갈 걸 후회된다."
" 둘이 그만 투닥거리고 저녁밥 먹자. 광호야, 이리 앉아. 그리고 수현인 가서 밥 좀 퍼 와라."
광호가 머리를 긁적이며 식탁에 앉아 느긋하게 수저를 들자 수현은 입을 삐죽거리며 밥을 퍼서 쟁반에 담아 나르기 시작했다. 그런 수현의 핫팬츠, 나시티 차림의 시원하게 뻗은 윤기 흐르는 몸매를 바라 보며 광호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저녁을 먹고 난 후 광호는 거실에서 프로야구 중계를 보고 있었다.
수현은 설거지를 하고 있었고 수현의 엄마 자매는 부엌 식탁에서 과일을 준비하고 있었다.
수현이 설거지를 마치고 과일이 담긴 쟁반을 들고 오더니 광호앞 응접용 테이블에 놓았다.
“ 디저트 먹어.”
“ 그래 이모랑 엄마랑 오시면 같이 먹자.”
그 때 아이스커피를 가지고 온 수현의 엄마와 광호 엄마가 자리를 잡고 앉자 광호가 지나가는 말로 말했다.
“ 이모. 제가 알기로는 수현이 사귀는 남자 있어요.”
화들짝 놀라는 수현
‘ 이게 어디서 뭔 소리를 듣고 이런 말을... ’
광호의 말에 반색을 하는 수현의 모친.
“ 진짜니 ? 누군지 알아? 어느 집안에 누구니? ”
“ 제 하버드 대학교 학과 선배예요. 국제 변호사인데 지금 외국계 로펌에 근무하구요.
며칠 전에 동문회 갔다가 수현이와 사귀는 사실 알게 되었어요.”
순간 표정이 일그러지는 수현
‘ 그렇구나 장지훈도 하버드였지. ’
수현의 그런 표정은 본 체도 안하고 수현의 모친은 광호를 채근했다.
“ 자세히 말해 봐라. 얼마만에 듣는 희소식인지 모르겠다.
수십억 재산 있고 최연소 이사 되고 여의도 금융가의 장미 소리 들으면 뭐하노?
남들 다하는 연애도 못하는 맹추인데...”
“ 엄마.그만 좀....”
“ 시끄러워. 광호야. 자세히 말해 보렴”
“ 예 이모. 저보다 네 살 많구요. 집안은 사학재단이고 외가는 대한일보예요.
위로 형과 누나가 있고 막내 아들이구요.”
“ 그래 집안은 좋으네. 키는 어떻노? 얼굴은?”
“ 키는 185정도, 얼굴은 엄친아답게 훈남이예요.
아 맞다. 에스방송국에 연예인들하고 나와 케이스별로 법률 상담해 주는 프로에도 자문변호사역으로 나왔었어 요. 들리는 말로는 방송국 여자들도 그 선배에게 꼬리 많이 쳤다던데요.”
광호의 말이 끝나자 수현의 모친과 광호의 모친은 서로 얼굴을 쳐다 봤다
그 프로를 본 기억이 전혀 없는 두 사람은 답답하기만 했다.
“ 저 광호야. 혹시 사진 있니? 동문회 같은데서 같이 찍은 거....”
“ 잠깐만요. 몇 달전에 제가 주최한 제대 기념 파티할 때 찍은 게 어디 있을지도...”
광호가 휴대폰을 꺼내 들고는 사진을 찾기 시작했다. 긴장된 표정으로 이를 지켜보는 수현 모친.
수현은 내심 당황스러웠지만 태연한 척 차가운 커피만 들이키고 있었다
“ 아, 여기 있네요. 이모 이 사람이예요.”
“ 그래? 어디 보자”
광호가 내민 휴대폰을 낚아챈 수현 모친의 얼굴은 희색이 만면에 떠올랐다
“ 아 이청년이구나 기억난다. 얼핏 방송에서 본 듯 한데...이름이 ...”
“ 장지훈이예요.이모”
“ 그래 장지훈....잘 생겼다. 인상도 선해 보이고...그렇지 너도 봐라”
“ 그러네 언니. 수현이 넌 이런 애인이 있으면서 어쩜 그리 시치미를 잡아 떼니. 앙큼하기는...”
수현이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말을 했다.
“ 저 그게.....대표님 소개로 몇 달 전부터 사귀는 건 맞는데...결혼은 아직...”
수현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수현의 모친은 수현의 등짝을 후려 갈겼다.
“ 아야, 아파, 엄마 왜 이래?”
“ 이 철없는 것아. 니가 언제까지 젊고 탱탱할 줄 아니? 서른 넘어 가 봐라.
재취 자리밖에 없다. 그리되기 싫으면 왠만하면 이 청년 잡아.”
그 후 수현은 그저 찬커피를 홀짝거릴 뿐이었고 다른 세사람은 수현의 신랑감과 그 집안을 화재로 한참을 떠들었다. 그런 수현을 보던 광호가 수현 모친에게 말했다.
“ 이모 너무 걱정마세요. 장선배 아니더라도 수현이 좋다는 남자들이 줄을 섰어요.”
“ 에휴 모르는 소리 마라. 쫓아 다니는 남자가 열트럭이 있으면 뭐하니?
하나라도 품에 안아야 그게 제 남자인 게지.”
“ 제가 수현이랑 얘기 좀 해볼게요. 수현아 방에 올라가자.”
“ 그래 올라가자”
광호의 말에 수현은 반색을 하며 얼른 일어났다.
이 자리를 피하게 된 것만 해도 고마울 뿐이었다.
계단을 올라 가며 수현은 이를 갈았다.
‘ 광호 저 넘의 자식은 일평생 도움이 안 되네. 장지훈 얘기는 왜 해 가지고’
수현의 방에 앉자 수현이 광호를 쳐다 보며 쏘아 부쳤다.
“ 넌 저녁 잘 먹고 왜 그런 말은 해 가지고...”
“ 그게 쓸 데 없는 말이었냐? 중이 제머리 못 깍으니 내가 깍아 준 것이지.
그리고 장지훈 선배는 너와 결혼 한다고 이미 동문들에게 다 알렸어. 근거 없는 거냐?”
“ 그건 아니지만...”
“ 그것 봐. 너도 결국 그 선배랑 결혼할 거잖아. 뭐 내숭 떨고 그러냐? ”
“ 내 스타일이 아니라서 그래...”
“ 그래? 네 스타일은 뭔데? ”
“ 음 .남자답고 지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그런 남자...”
“ 장지훈이 카리스마는 없지만 대신 신사잖아. 지적이고 능력도 있고...”
수현의 방에 들어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던 광호는 용건을 꺼내 들었다.
“ 사실은 너한테 한가지 물어 보려고. 비밀은 유지해야 하는 조건으로...”
“ 그래? 뭔데 그래?”
광호가 상의 주머니에서 메모지 한 장을 꺼내어 건네 주자 수현은 두 눈을 반짝이며 생각에 골몰했다.
초조한 표정으로 지켜 보는 광호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수현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 이건 어떤 사람들을 찾는 거야 이 조건에 부합하는 조건의 인물들...”
순간 광호는 수현의 말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 그래 맞아. 풀이가 가능해? “
“ 해 돋는 땅은 한반도를 말하고 땅끝이니 동해를 접한 곳을 말해.
나무의 아들은 이씨 성을 가리키는 것 같군.
그리고 한 왕조에서 세 명의 성이 다른 왕은 신라의 박석김을 말하는 듯 해.
종합해 보면 세 성의 왕을 가진 왕조는 신라,
신라의 수도는 해 뜨는 땅끝 경주고 왕을 세운 이는 사로 6촌장인 데 성씨는 이씨 성이니 ....
음 종합해 보면 신라를 세울 때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이알평의 경주이씨를 말하는 것 같은데.”
“ 그럼 안팎의 가지를 잡아 두 개의 더 큰 왕국을 이룬 자는 뭐냐?”
“ 신라가 두 개의 왕국을 이룬 자이지. 사로국에서 신라를 신라에서 통일신라를....
이건 경주의 신라왕족인 김을 이르는 말인데....”
“ 왜 그렇지?”
“ 더 큰 왕국을 이루는 과정에서 처음엔 고구려의 도움을 나중엔 당나라의 도움을 받았으니...
안팎의 가지를 잡은 거라고 볼 수도....
황금과 강철은 신라의 성인 김을 한자로는 황금과 철을 동시에 나타내는 것이거든.
신라의 수도가 그래서 금이 있는 성 즉 금성이었다고 하던데..”
“ 결론은 경주 이씨, 신라 김씨네.”
“ 그렇다고 보여지는데 다른 의견이 있을 수도 있지.”
“ 경주 이씨면 현재 가장 막강한 사람이 누구냐?”
“ 전직 대통령이 경주 이씨였지.그리고 에스그룹이 경주 이씨고....또...”
“ 잠깐 에스그룹이 경주 이씨라고?”
“ 그래 그것도 몰랐니?”
“ 음... 에스 그룹의 최고 실세는 회장과 부회장 아닌가?”
“ 그렇게 볼 수도 있는데 첫 구절이 해돋는 땅끝이라니 그들은 아니야.
현재 회장은 경남 의령 출신이고 부회장은 서울 출신이니....경주하곤 거리가 멀어.
에스그룹에 경주가 고향인 실세 경주이씨가 있다고 봐야지”
수현의 말을 듣던 광호가 순간적으로 눈을 번뜩였다.
‘ 가만, 우리 조직을 괴롭힌다는 그 감찰실장이 이씨였던 것 같은데...
이름이 이재호던가? 이건 그 인물을 말하는 듯 하군. 알아 봐야겠군.
그럼 경주를 지배한 김은 또 누군지?
그녀 말로는 둘은 대척점의 인물이라고 했는데 .....가만 내가 경주 김인데 설마 내가... ’
수현은 생각에 잠긴 광호를 쳐다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저런 표정의 광호는 아무도 건드리면 안 된다는 건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 출근하는 회장이 주요 업무를 처리한 후 두 사람을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후계자인 부회장과 감찰실장인 이재호였다.
" 그래. 그의 정체는 알아 냈는가?"
" 예, 미국의 백호로부터 블루레인을 통해 해가문 1인자의 후계녀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파악한 후 그녀의 모든
행동 반경에 맞춰 분석한 결과 한국계로서 마르스가 될만한 후보자를 서른 명 정도 추려 내었습니다,"
" 블루레인이라면? 그 해가문 진영내의 2인자 그룹의 거물급 아닌가?"
" 예, 해가문에 소속된 레인그룹의 1인자의 후계자이지요. 해가문측의 후계녀와 후계 서열을 다투는......"
" 그래서? 서른 명 중 누가 마르스이던가?"
회장의 촉박한 물음에 재호는 품 속에서 한 장의 봉투를 꺼내더니 봉투에서 한 장의 종이를 내밀었다.
" 김광호, 한국계 미국인입니다.
현재 이중국적이고 올해 우리나라에서 군대를 제대했습니다. 그 외엔 여기 적힌대로입니다."
재호의 말을 듣고 난 회장과 부회장은 번갈아 가며 김광호라는 이름의 사내의 얼굴과 학력, 경력을 훑어 보았다. 그리고 나서 회장이 재호에게 물었다.
" 시간이 촉박해서 서른 명을 모두 조사하지는 않았을 것이고...자네. 혹시....그걸 사용한 건가?"
회장의 물음에 재호는 그저 조용히 웃으며 찻잔을 들고 차를 들이켰다.
" 대답이 없는 걸 보니 맞는 모양이로군. 내가 자네에게 못할 짓을 시키는군."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부회장이 물었다.
" 아버님, 감찰실장이 사용한 그것이 뭡니까? "
" 염력이다. 초능력의 일종으로 정신을 통일한 상태에서 눈을 감고 스크린에 차례대로 비추고 떠오르는
사진들 의 기를 느끼는 것이다. 한 번 사용하고 나면 탈진해서 며칠은 기운을 못 쓴다."
" 아니 감찰실장이 그런 능력까지 있단 말입니까? 놀랄 일입니다."
부회장이 감탄을 연발하며 새삼스러운 표정으로 재호를 쳐다보았다.
" 이왕 염력 얘기가 나왔으니 말씀 드립니다.
회장님의 기가 많이 약해졌습니다. 건강에 조심하셔야 합니다."
" 인명은 재천인데 어쩌겠나. 그래 자네가 보는 내 남은 수명은 얼마나 되는가?"
" 말씀드리기 송구스럽습니다만, 팔십을 채우기 힘듭니다."
" 많이도 쳐주는구만. 77세 희수까지만 건강하게 살아도 좋겠네..."
" 아버님, 그 무슨 말씀을....오래도록 건강하셔야 합니다."
" 아니다. 이젠 후계 구도도 계획대로 속도를 내야 한다.
내가 죽더라도 넌 감찰실장과 힘을 합쳐 잘 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감찰실장에게는 내가 가진 전자 생명 지분의 반을 넘겨주겠네.
그 동안 나를 위해 회사를 위해 노고한 댓가일세."
"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리고 이 달안에 은밀하게 해가문 후계녀가 한국에 올 것 같습니다.
미국측에서 에어포스 1에 해당하는 경호 문제를 우리 정부에 은밀하게 부탁해 왔다고 합니다."
" 어떤 여자인지 궁금하군요"
부회장의 말에 재호는 뜻모를 미소를 짓더니 말을 이었다.
" 부회장님은 아마 조만간 여색의 유혹에 빠질 겁니다. 도저히 헤어날 수 없는 ....
그들에게 이미 모든 정보가 들어갔으니 미인계가 먹힐 여자를 보낼 겁니다."
" 그건 걱정 안해도 됩니다.내가 나이가 얼마인데 새삼 미인계라니..."
" 그럼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며칠 고향에 휴가를 다녀 오겠습니다."
" 그래 고향에 가서 푹 쉬고 오게나. 나도 언젠가 다시 한 번 자네 고향집에 가보고 싶구만."
재호가 나가자 부회장이 회장에게 물었다.
" 보면 볼수록 모를 사람입니다. 그나 저나 아버님 지분의 전자 생명 주식이면 엄청난 금액인데..."
" 모르는 소리 말아라. 그런 주식쯤은 감찰실장에겐 코묻는 돈이다.
너는 한국에서 우리 집안이 가장 돈이 많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 그럴리가요 조부 때부터 한국 최고의 부자는 우리 집안인데..."
" 그건 드러난 것이다. 한가지 물어 보마.
해방 전후에 네 조부께서 유일하게 무릎 꿇은 사람이 누군지는 알고 있지?"
" 예. 경주 최부자집 최준 어르신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 그래 맞다 근데 그 최부자집이 최전성기에도 한두 수 접어 주고 들어간 경주의 명문이 감찰실장의 집안이다."
" 그럴리가....도대체 어느 정도이길래..."
" 나중에 자세히 알려 주겠지만 감찰실장은 사명감 때문에 우리 일을 돕는 것이다. 부친의 뜻에 따라...
명심해라. 네가 나중에 그룹을 통솔하더라도 감찰실장에게 척을 지면 순식간에 위기에 휘말리고 등을 돌리면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것을...."
" 아버님,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 아닙니까?"
" 과대평가가 아니다. 아주 오래 전얘기를 해주마.
1960년대 초에 군인들이 들고 일어났을 때 네 조부께서 군부 지도자와 경주의 한적한 호텔에서 만난 적이 있었
다. 나중에 대통령이 되는 양반이지. 두 분이 저녁을 먹고 가볍게 한 잔 하면서 경제 발전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
를 나누는데...."
"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 한밤이 지나도록 구체적인 결론은 없고 시간만 가는데 왠 초로의 노인 한 분이 신선 같은 옷차림으로 다가
오더 란다. 그 삼엄한 경비를 뚫고 유유히 다가 오더니...
두 사람을 보고 싱긋 웃고는 봉투를 하나 주고 가더란다.
귀신같이 홀연히 사라져 생시인가 싶을 정도로..."
"......"
"봉투를 뜯어 보니 두 장의 종이가 나오는데 한장엔 도로망,통신망,전력망이라고 한문으로 힘찬 붓글씨로 적혀 있더란다. 그리고 나머지 한장에는 역시 한문으로 제철, 조선,자동차,전자라고 적혀 있었는데....그걸 보고 네 조부와 군부지도자는 혼이 빠져 나갔다고 하더라."
" 그게 무슨 뜻입니까?"
" 3개의 망은 경제를 위한 기반 시설이고 나머지 4개의 산업은 우리나라가 지향해야 할 산업 분야였던 것이다.
두 사람이 그렇게 몇 시간을 얘기해도 안 나온 결론이 거기에 적혀 있었던 것이지."
" 선견지명이 있는 노인이군요"
" 두 분은 앞으로 경제 계획을 노인이 준 대로 하기로 하고 다음 날 군부지도자는 자신의 고향인 선산으로 갔고...
네 조부는 경주에 온 김에 시조묘를 들렀는데....거기서 간밤의 노인을 보게 된 것이지."
" 그 노인이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까?"
"
그렇지. 그리곤 시조묘에 참배한 조부를 조용히 부르더니 자기 집으로 가자고 하더란다. 그래서 따라 갔는데...."
" 궁금합니다."
" 경주 외곽의 어느 조용한 산속으로 들어 가니 수십호 남짓한 기와집이 있는 마을이 보이고 그 마을 뒤로 다시
한참을 올라 가니 노인의 고풍스런 거대한 기와집이 있는데 주위가 흡사 동양화의 한 폭 같은 천하의 절경이었 다고 하더구나. 네 조부가 풍수에 일가견이 있는 건 너도 알지?"
" 예 조부께서 당신의 묘터도 직접 잡으실만큼....왠만한 풍수가들보다 낫다고 들었습니다."
" 그 노인의 집터가 풍수가들이 꿈에도 그리던 사신호선이라더구나."
" 그게 뭡니까?"
"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가 하늘의 선녀를 호위하는 형국을 말한다.이런 집터는 천년 불패를 넘어서는 기를 가지고 있다고 들었다."
" 그런 집터를 가지고 있다니....노인네가 대단하군요"
" 아무튼 그 노인을 따라간 네 조부에게 그 곳에서 한국 경제가 가야할 길을 자세히 말해 주더란다.
그리고 그 노인의 말대로 기업을 운영해 지금의 에스그룹의 기반을 다진 것이다."
" 그 노인네가 ....그럼..."
" 그래 감찰실장의 조부다. 2차 대전 당시에 이미 유럽과 미국,남미에 헐값으로 나온 자원들과 부동산을 구입해 놓았었고...석유와 자동차 등 주식도 상당했다고 들었다."
"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왜정 때 한국에 그런 인물이 있었다니..."
" 그 분이 지금 감찰실장이 맡고 있는 비밀 결사단체인 백호단의 초대단주란다.
일제때 독립 운동을 하기 위해 만든 항일 비밀 첩보 조직이지. 역사책에는 단 한 줄도 기록되지 않지만....
임시정부 독립 자금의 절반을 백산 안희제와 경주 최부자집의 최준이 부담했다면 그 나머지 자금의 절반을
그 어른이 부담했을 정도라니...."
" 자금도 부담하고 직접 비밀결사체도 만들어 항일을 했었군요."
" 그렇지. 그 땐 아직 이삼십대로 젊었으니까.
그런 정도의 인물이니 군부지도자와 조부가 있는 자리에 나타나 그런 문구를 전해 준 것이지.
그러니 너도 절대 경거망동하지 마라.
감찰실장의 인맥과 자산은 이미 백년 가까이 세계 곳곳에 뿌리를 내린 것이다.
냉전 시대에 석유 파동 때도 석유가가 오르고 우리나라가 연탄을 많이 쓰게 되자 그들이 가진 힘을 동원해
소련과 중국의 석탄을 한국에 들여와 거의 원가에 정부에 공급할 정도였다. 미국과 일본도 묵인해 주었지."
" 그야말로 막후의 실력자군요"
" 그래 감찰실장의 부친에게 내가 같은 경주 이씨라고 도와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하지 않았으면 김찰실장은 이미
더 큰 세상에서 날고 있었을 사람이다.그러니 너도 부디 깊이 생각해라.
수성이 힘든 건 용인술이 부족한 결과다. 명심하거라."
" 예 아버님.심려 놓으십시오"
감찰실을 들른 재호는 비서실에 휴가를 간다고 통보하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동생집으로 향했다.
동생과 함께 고향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그 시간 광호는 미국의 약혼녀와 통화 중이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이젠 서서히 공식석상에서 활동할 생각이었다.
약혼녀와 통화한 광호는 며칠 안에 한국에 오겠다는 그녀의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곤 그녀가 보내 준 문자를 보았다.
그녀가 신녀에게 받은 것이라며 중요한 것이니 한국 방문때까지 해석해 달라고 보낸 것이었다.
" 1.해돋는 땅 끝, 나무의 아들, 세 명의 성이 다른 왕을 세운 자
2.황금과 강철,안팎의 가지를 잡아 두 개의 더 큰 왕국을 이룬 자..."
문자를 들여다 본 광호는 눈쌀을 치푸렸다.
신녀의 말은 지금까지 틀린 적이 없었다.
자신이 지금의 약혼녀를 만난 것도 신녀의 말을 신앙처럼 따른 후계녀의 믿음 때문이었다.
" 이거 무슨 암호도 아니고.....
공개적으로 물어 보다 잘못하면 비밀이 새어 나가 큰일이 난다고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니... "
고민하던 광호가 고개를 들더니 화색을 띄며 웃었다.
" 그래 간만에 큰이모댁에 가자.
그리곤 수현 아니 똥개69호에게 물어 봐야겠다. 역사에도 밝다니 풀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기분을 전환한 광호는 혜림에게 지시를 내렸다.
광호로부터 파티 초대장을 발송하라는 지시를 들은 혜림은 곧 이를 시행에 옮겼고 이에 따라 수현을 비롯한 임직원들도 거대한 파티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토요일에도 출근하여 파티 준비로 뛰어 다녀 파김치가 되어 본가로 돌아온 수현은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었다.
한참을 자고 일어나 어두워진 것을 확인한 수현이 저녁 생각에 출출한 생각에 먹을 것을 찾으러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그 때 수현에게 누군가 반갑게 인사를 했다.
" 한수현 안녕, 오랜만이네. 어휴 저 입가에 침 좀 봐라."
수현을 보자마자 짖궂게 농담을 하는 건 이종사촌인 김광호였다.
동갑이지만 생일이 늦어 동생인데도 꼭 여동생 취급하는 게 얄미워 더 못되게 굴었다.
" 왠 일이야? 제대는 했다면서....몇 달 유럽 갔다 왔다더니 얼굴이 아주 개기름이 흐르네"
" 오랜만에 큰이모님 밥맛이 그리워 왔지 너도 보고 싶고..."
" 뭔일이래? 내가 보고 싶을 때가 다 있고...."
" 그나저나 너 요새 잘 나가더라. 요즘 우리친구들이 아주 난리더라.
너같은 여자 어디 없냐고....내가 이종사촌이라니 다들 안 믿더라."
" 됐어 네 친구들은 사양할래. 안 그래도 대시하는 사내들로 처치 곤란이거든..."
그 때 부엌에서 한 눈에 봐도 닮은 자매라는 걸 알 수 있는 두 여자가 나타났다.
" 이모 오셨어요?"
" 그래 수현인 이젠 시집 보내야겠다.
요즘 레스토랑 오는 친구나 손님들이 나보고 수현이랑 선자리 마련하라고 난리다 얘"
수현의 쭉 뻗은 몸매를 보며 이모가 너스레를 늘어놓자 수현의 엄마가 한 마디를 건냈다.
" 어디 괜찮은 신랑감 없니? 빨리 치워야지 이 나이에 막내딸 수발 드는 것도 지긋지긋하다."
" 엄마. 내가 무슨 물건도 아니고......"
" 물건 맞거든. 옛날 같으면 인왕산 호랑이도 안 물고 간다는 늙은 처녀가 물건이 아님 뭐니? 고물이다 고물......"
" 엄마, 광호도 있는데....꼭 ..."
" 왜 창피하니? 광호는 여자친구 벌써 몇 명이나 집에 데려 왔다더라.
네 이모는 그 중에 하나만 골라 잡아도 며느리감으로 좋다는 데 넌 뭐하는 거니? "
" 요즘은 군바리,백수 좋다는 애들이 그렇게 많은가 보지? 전부 눈이 삐었나?"
" 군바리 백수라도 연애는 해야지. 그리고 취직할 건데......"
광호가 한마디 하자 이모가 뒤를 이었다.
" 그래 수현아 광호가 이번에 취직을 하는데....공교롭게도 네가 다니는 회사야.
네가 이사니까 잘 좀 부탁한다."
" 예? 뭐라고요 울 회사예요? 하고 많은 회사 중에 왜......
그리고 광호는 미국에서 돈 엄청 많이 벌었잖아요.
그 돈으로 강남에 사놓은 500억대 빌딩에서 나오는 월세만 해도 엄청난데 뭐하려고 골아프게 직장에 다녀요?
광호소유의 빌딩에서 이모가 경영하는 그 페밀리 레스토랑도 최소한 이틀 전에 예약 안하면 밥 못 먹는다면서
요? 국제 변호사 자격도 있는데...... 로펌 같은데 가지. 우리 오빠 있는 태평양 로펌도 좋고요."
" 야. 한수현, 내가 아직 건물임대업만 할 나이는 아니고 한국 실정을 잘 몰라서 그래.
초등학교 3학년 때 미국 가서 외삼촌 집에서 눈치 밥 먹으며 중고대학을 다녔는데 불쌓하지도 않냐? 좀 봐 주라."
" 기가 막힌다. 누가 들으면 외숙부께서 구박이라도 한 줄 알겠다.
너처럼 편한 유학 생활 할 줄 알았다면 나도 갈 걸 후회된다."
" 둘이 그만 투닥거리고 저녁밥 먹자. 광호야, 이리 앉아. 그리고 수현인 가서 밥 좀 퍼 와라."
광호가 머리를 긁적이며 식탁에 앉아 느긋하게 수저를 들자 수현은 입을 삐죽거리며 밥을 퍼서 쟁반에 담아 나르기 시작했다. 그런 수현의 핫팬츠, 나시티 차림의 시원하게 뻗은 윤기 흐르는 몸매를 바라 보며 광호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저녁을 먹고 난 후 광호는 거실에서 프로야구 중계를 보고 있었다.
수현은 설거지를 하고 있었고 수현의 엄마 자매는 부엌 식탁에서 과일을 준비하고 있었다.
수현이 설거지를 마치고 과일이 담긴 쟁반을 들고 오더니 광호앞 응접용 테이블에 놓았다.
“ 디저트 먹어.”
“ 그래 이모랑 엄마랑 오시면 같이 먹자.”
그 때 아이스커피를 가지고 온 수현의 엄마와 광호 엄마가 자리를 잡고 앉자 광호가 지나가는 말로 말했다.
“ 이모. 제가 알기로는 수현이 사귀는 남자 있어요.”
화들짝 놀라는 수현
‘ 이게 어디서 뭔 소리를 듣고 이런 말을... ’
광호의 말에 반색을 하는 수현의 모친.
“ 진짜니 ? 누군지 알아? 어느 집안에 누구니? ”
“ 제 하버드 대학교 학과 선배예요. 국제 변호사인데 지금 외국계 로펌에 근무하구요.
며칠 전에 동문회 갔다가 수현이와 사귀는 사실 알게 되었어요.”
순간 표정이 일그러지는 수현
‘ 그렇구나 장지훈도 하버드였지. ’
수현의 그런 표정은 본 체도 안하고 수현의 모친은 광호를 채근했다.
“ 자세히 말해 봐라. 얼마만에 듣는 희소식인지 모르겠다.
수십억 재산 있고 최연소 이사 되고 여의도 금융가의 장미 소리 들으면 뭐하노?
남들 다하는 연애도 못하는 맹추인데...”
“ 엄마.그만 좀....”
“ 시끄러워. 광호야. 자세히 말해 보렴”
“ 예 이모. 저보다 네 살 많구요. 집안은 사학재단이고 외가는 대한일보예요.
위로 형과 누나가 있고 막내 아들이구요.”
“ 그래 집안은 좋으네. 키는 어떻노? 얼굴은?”
“ 키는 185정도, 얼굴은 엄친아답게 훈남이예요.
아 맞다. 에스방송국에 연예인들하고 나와 케이스별로 법률 상담해 주는 프로에도 자문변호사역으로 나왔었어 요. 들리는 말로는 방송국 여자들도 그 선배에게 꼬리 많이 쳤다던데요.”
광호의 말이 끝나자 수현의 모친과 광호의 모친은 서로 얼굴을 쳐다 봤다
그 프로를 본 기억이 전혀 없는 두 사람은 답답하기만 했다.
“ 저 광호야. 혹시 사진 있니? 동문회 같은데서 같이 찍은 거....”
“ 잠깐만요. 몇 달전에 제가 주최한 제대 기념 파티할 때 찍은 게 어디 있을지도...”
광호가 휴대폰을 꺼내 들고는 사진을 찾기 시작했다. 긴장된 표정으로 이를 지켜보는 수현 모친.
수현은 내심 당황스러웠지만 태연한 척 차가운 커피만 들이키고 있었다
“ 아, 여기 있네요. 이모 이 사람이예요.”
“ 그래? 어디 보자”
광호가 내민 휴대폰을 낚아챈 수현 모친의 얼굴은 희색이 만면에 떠올랐다
“ 아 이청년이구나 기억난다. 얼핏 방송에서 본 듯 한데...이름이 ...”
“ 장지훈이예요.이모”
“ 그래 장지훈....잘 생겼다. 인상도 선해 보이고...그렇지 너도 봐라”
“ 그러네 언니. 수현이 넌 이런 애인이 있으면서 어쩜 그리 시치미를 잡아 떼니. 앙큼하기는...”
수현이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말을 했다.
“ 저 그게.....대표님 소개로 몇 달 전부터 사귀는 건 맞는데...결혼은 아직...”
수현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수현의 모친은 수현의 등짝을 후려 갈겼다.
“ 아야, 아파, 엄마 왜 이래?”
“ 이 철없는 것아. 니가 언제까지 젊고 탱탱할 줄 아니? 서른 넘어 가 봐라.
재취 자리밖에 없다. 그리되기 싫으면 왠만하면 이 청년 잡아.”
그 후 수현은 그저 찬커피를 홀짝거릴 뿐이었고 다른 세사람은 수현의 신랑감과 그 집안을 화재로 한참을 떠들었다. 그런 수현을 보던 광호가 수현 모친에게 말했다.
“ 이모 너무 걱정마세요. 장선배 아니더라도 수현이 좋다는 남자들이 줄을 섰어요.”
“ 에휴 모르는 소리 마라. 쫓아 다니는 남자가 열트럭이 있으면 뭐하니?
하나라도 품에 안아야 그게 제 남자인 게지.”
“ 제가 수현이랑 얘기 좀 해볼게요. 수현아 방에 올라가자.”
“ 그래 올라가자”
광호의 말에 수현은 반색을 하며 얼른 일어났다.
이 자리를 피하게 된 것만 해도 고마울 뿐이었다.
계단을 올라 가며 수현은 이를 갈았다.
‘ 광호 저 넘의 자식은 일평생 도움이 안 되네. 장지훈 얘기는 왜 해 가지고’
수현의 방에 앉자 수현이 광호를 쳐다 보며 쏘아 부쳤다.
“ 넌 저녁 잘 먹고 왜 그런 말은 해 가지고...”
“ 그게 쓸 데 없는 말이었냐? 중이 제머리 못 깍으니 내가 깍아 준 것이지.
그리고 장지훈 선배는 너와 결혼 한다고 이미 동문들에게 다 알렸어. 근거 없는 거냐?”
“ 그건 아니지만...”
“ 그것 봐. 너도 결국 그 선배랑 결혼할 거잖아. 뭐 내숭 떨고 그러냐? ”
“ 내 스타일이 아니라서 그래...”
“ 그래? 네 스타일은 뭔데? ”
“ 음 .남자답고 지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그런 남자...”
“ 장지훈이 카리스마는 없지만 대신 신사잖아. 지적이고 능력도 있고...”
수현의 방에 들어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던 광호는 용건을 꺼내 들었다.
“ 사실은 너한테 한가지 물어 보려고. 비밀은 유지해야 하는 조건으로...”
“ 그래? 뭔데 그래?”
광호가 상의 주머니에서 메모지 한 장을 꺼내어 건네 주자 수현은 두 눈을 반짝이며 생각에 골몰했다.
초조한 표정으로 지켜 보는 광호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수현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 이건 어떤 사람들을 찾는 거야 이 조건에 부합하는 조건의 인물들...”
순간 광호는 수현의 말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 그래 맞아. 풀이가 가능해? “
“ 해 돋는 땅은 한반도를 말하고 땅끝이니 동해를 접한 곳을 말해.
나무의 아들은 이씨 성을 가리키는 것 같군.
그리고 한 왕조에서 세 명의 성이 다른 왕은 신라의 박석김을 말하는 듯 해.
종합해 보면 세 성의 왕을 가진 왕조는 신라,
신라의 수도는 해 뜨는 땅끝 경주고 왕을 세운 이는 사로 6촌장인 데 성씨는 이씨 성이니 ....
음 종합해 보면 신라를 세울 때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이알평의 경주이씨를 말하는 것 같은데.”
“ 그럼 안팎의 가지를 잡아 두 개의 더 큰 왕국을 이룬 자는 뭐냐?”
“ 신라가 두 개의 왕국을 이룬 자이지. 사로국에서 신라를 신라에서 통일신라를....
이건 경주의 신라왕족인 김을 이르는 말인데....”
“ 왜 그렇지?”
“ 더 큰 왕국을 이루는 과정에서 처음엔 고구려의 도움을 나중엔 당나라의 도움을 받았으니...
안팎의 가지를 잡은 거라고 볼 수도....
황금과 강철은 신라의 성인 김을 한자로는 황금과 철을 동시에 나타내는 것이거든.
신라의 수도가 그래서 금이 있는 성 즉 금성이었다고 하던데..”
“ 결론은 경주 이씨, 신라 김씨네.”
“ 그렇다고 보여지는데 다른 의견이 있을 수도 있지.”
“ 경주 이씨면 현재 가장 막강한 사람이 누구냐?”
“ 전직 대통령이 경주 이씨였지.그리고 에스그룹이 경주 이씨고....또...”
“ 잠깐 에스그룹이 경주 이씨라고?”
“ 그래 그것도 몰랐니?”
“ 음... 에스 그룹의 최고 실세는 회장과 부회장 아닌가?”
“ 그렇게 볼 수도 있는데 첫 구절이 해돋는 땅끝이라니 그들은 아니야.
현재 회장은 경남 의령 출신이고 부회장은 서울 출신이니....경주하곤 거리가 멀어.
에스그룹에 경주가 고향인 실세 경주이씨가 있다고 봐야지”
수현의 말을 듣던 광호가 순간적으로 눈을 번뜩였다.
‘ 가만, 우리 조직을 괴롭힌다는 그 감찰실장이 이씨였던 것 같은데...
이름이 이재호던가? 이건 그 인물을 말하는 듯 하군. 알아 봐야겠군.
그럼 경주를 지배한 김은 또 누군지?
그녀 말로는 둘은 대척점의 인물이라고 했는데 .....가만 내가 경주 김인데 설마 내가... ’
수현은 생각에 잠긴 광호를 쳐다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저런 표정의 광호는 아무도 건드리면 안 된다는 건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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