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현이 국회의원에 당선된 지 몇달이 지났다.
정기 국회도 어느덧 중반에 이르고 있었다.
정치인 수현은 그 동안 엄청난 화재 속에 지난 몇 달을 달려왔다.
먼저 자신과 같이 보궐선거에 당선된 여당 의원들과 함께 한울타리 모임을 결성하였다.
목적은 오로지 공부하는 의원이었다. 국회도서관이 그들의 아지트였다.
초선들이 대부분인 그들은 국회도서관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소속된 상임위는 다르지만 공동으로 정책을 연구하고 입안하는 것이 이미 당연시되었다.
국민들의 호응이 높은 법안이 입안될 때마다 언론과 방송은 한울타리 소속 의원들을 인터뷰 하는 것이 상식처럼 되었다.
특히 수현은 자신의 상임위인 행정안전위에서 부조리한 부분들을 상당히 발견하고는 국정감사에서 이를 이슈화하여 결국 행안부장관이 자체 개혁안을 제출하겠다고 하여 더욱 화제가 되었다.
공무원들이 그 동안 국민들에게 지적받아온 특권들과 자기 밥그릇 챙기기를 위한 규제들을
폐기하는 강도 높은 자체개혁안이 제출되었다. 여야 모두가 만장일치로 이를 승인하였다.
수현은 당의 부대변인으로 방송 출연도 잦았다.
주제를 가지고 얘기하다 보면 상대가 여당의 당론이 어떠니 하는 진영논리를 들고 나오기도 했지만
수현은 자기 당의 당론이라도 잘못된 건 가차없이 비판했다.
어느덧 상대의 입에서 당론, 진영논리라는 말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수현의 홈페이지는 정치인 최고의 방문자수를 자랑했다.
방문자들이 수현에게 건의하는 사안들을 심사하여 법안으로 연구하는 것만으로도 한울타리 의원들은 벅차기만 했다. 결국 비서관들까지 모조리 국회에서 사안별로 모여 연구하고 공부하고 토론하게 되었다.
수현의 동선은 단조로웠다.
평일엔 국회와 집을 드나들고 휴일엔 본가나 고아원을 방문하는 것이 일정의 전부였다.
새로 출범한 부친의 재단에 들러 자문을 하거나 시행과정의 문제점을 체크하는 것도 추가된 최근의 일과였다.
어느 기자가 데이트는 언제 하느냐고 물었을 때 수현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 가평 가는 길, 오는길.....그리고 집에서 가족 모임 있을 때..."
네티즌들은 이를 데이트의 정답은 가는길 오는길이라는 말로 정리했다.
예비신부다 보니 시댁과의 모임도 가끔 있었다. 조카들은 이미 수현의 광팬이었다.
남자나 여자나 조카들 모두 수현을 보면 입이 귀에 걸렸다.
수현은 그들에겐 또래들에게 자랑할 거리임에 충분했다.
평생 대한일보를 키워 온 시부모도 흐뭇하게 수현을 바라 보았다.
의사인 지훈의 형과 형수, 대한일보 계열의 방송국에 근무하는 시누이 내외도 수현에게 호감을 가지고 대했다.
수현의 손위 동서가 될 의사는 수현 언니와 잘 아는 사이였다.
수현 집안과 사돈이 될 사이라는 게 알려진 후 대한일보는 엄청난 발전을 거듭하였다.
젊은 독자들이나 네티즌들로부터 도매금으로 듣던 보수꼴통 소리는 많이 줄어 들었고
무엇보다 광고,스폰서를 제안하는 기업들이 많아져 재정적인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최근에는 윤정인 대한일보 회장이 예비며느리인 수현의 보약을 직접 챙기는 일도 있었다.
화창한 가을 하늘이 좋은 10월의 휴일.수현이 지훈과 함께 가평으로 가는 길이었다.
오랜만에 변호사 삼총사와 희주,희경까지 모두 같이 가는 길이었다.
김변과 희주, 이변과 희경은 그 동안 아주 친숙한 사이가 되어 있었다.
선거기간 내내 동고동락한 것이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 수현씨, 우리 희주씨 그만 좀 부려 먹으세요.데이트 할 시간도 없어요.”
“ 그래요? 그럼 ....잠을 줄여야지요.새벽 일찍 아님 심야의 데이트를 하는 건 어때요? ”
“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우리 희주 얼굴이 반쪽이 되었어요.
요즘은 영화 보면서 조는 게 예사예요..얼마나 피곤한지 한번씩 침도 흘리면서요...”
“ 김변 말이 맞아요. 희경씨도 몸 축나서....거기다가 요즘은 외국어도 배운다면서요”
“ 예 희주씨와 희경씨가 외국에 오래 살아서 수개국어 외국어에 능통하잖아요.
박신부님에게 배운 것도 있지만 이번 기회에 더 능숙하게 아예 다 배워 두려고요.”
“ 그렇게 배워 뭐하려고요. 통역하실 것도 아닌데...”
“ 아니예요 외국과의 협상문이나 조문 보면 의외로 잘못된 번역이 많아요
그럴땐 원문을 해석할 수 있으면 도움이 되거든요...”
“ 요즘은 아예 회의를 할 때 다개국어로 한다면서요. 어느 정도이길래...”
“ 일상적인 대화는 거의 가능해요. 유럽 주요 언어와 동양의 주요 언어....
그렇게 섞어 회의 하니 재미도 있고 좋아요.다른 사람들과 함께 할 때는 주로 영어 사용하고요...”
“ 한울타리 모임의 의원들 비서들이 불만 폭증이랍니다. 너무 힘들다고요..”
“ 그래요? 우리 비서관들도 모두 버티는데 왜 그러지? 안 그래요? 희주씨...
“ 의원님도 참....우리 자매야 단련되었으니 버티지만 우리팀의 다른 비서관들도 죽을려고 해요.”
묵묵히 듣고 있던 지훈이 한마디했다.
“ 김변, 이변, 잊었나 본데 지난 여름에 하와이에 백마들 보러 휴가 간다고 하던 그대들을
희주씨네와 연결해준 오작교가 누군지...기억해라. 응?”
“ 야야, 백마는 무슨,,,희주씨 진짜로 알아 듣는다.”
“ 백마가 아니고...흑마였나? 아니 둘 다였나?“
“ 장변, 너 정말 이럴래? 이걸 그냥 확...”
일행이 웃고 떠드는 사이 가평에 도착했다.
아이들과 박신부, 유보살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일행이 누렇게 익은 벼를 자랑하는 논으로 내려갔다.
오늘은 벼를 수확하는 날이었다.
이웃마을의 기계농이 와 준비를 하고 벼를 수확하는 모습을 보는 일행은 뿌듯함을 느꼈다.
“ 박신부님, 유보살님, 올해도 고생 많으셨어요.”
“ 고생은 뭐, 애들이 고사리 손으로 피 뽑는다고 고생했지...”
“ 내년부터는 애들 손 안 들게 틈틈이 지원군 많이 내려 보낼게요.
아버지 재단의 직원들에게도 미리 말해 뒀어요.”
“ 그래? 고맙구나. 그나저나 수현이 안색이 너무 안 좋다.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니냐?”
“ 아니예요. 별 탈 없어요.”
“ 아니다. 몸을 혹사하면 금방은 몰라도 얼마 후엔 후유증이 나타난다. 늘 조심하거라.”
유보살의 말을 들으며 수현은 생각에 잠겼다.
벌써 한참 동안 자신에게 아무런 연락이 없는 혜림이 생각났다.
‘무슨 일이 생긴건가? 혹 나를 버리시는 건가...아, 주인님.“
희주가 그런 수현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수현의 안타까운 마음을 아는 희주가 혜림에게 몇 번이나 전화로 사실을 얘기했지만
혜림은 싸늘하게 ‘똥개는 똥개일 뿐’이라며 답변했던 것이다.
헤림의 집무실.
가을서리처럼 냉막한 얼굴의 혜림이 앉아 있었다.
청와대 내부의 치열한 견제와 암투는 상상을 초월했다.
민정수석을 교체하고 분위기를 일신했으나 비서실장과 안보실장이 두 축인 청와대의 전면 개혁은 아직도 요원하기만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한수인 민정수석이 청와대를 믿고 설치던 친인척들과 고위직들을 사정 없이 도려낸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수십명의 친인척과 측근,낙하산인사들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져갔다.
한수인 팀은 그것만으로도 이미 공직기강의 확립에 상당한 성과를 올렸고 비서실장 라인의 진영이 약화되어 혜림에게는 도움이 되었다.
‘ 그래, 결국은 건곤일척의 승부밖에 없구나.
두 명의 늙은 실장이 있는 한 청와대는 변화가 근본적으로 어렵다. ’
입술을 깨문 혜림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 나야, 그래....그거 터트려. 동영상. 별장 사건부터...누가 다쳐도 상관없어..”
다음 날 방송과 신문은 군수뇌부의 집단 골프 회동과 별장에서의 집단 환각 섹스파티를 다루었고
참석한 연예인들과 직업여성들의 구체적인 진술이 이어졌다.
그 자리가 차세대 전투기 선정을 위한 로비스트들의 접대 자리였다는 사실까지 더해 지면서 파장은 더욱 커졌다.
보궐선거에서의 패배로 위축되었던 야당의 파상적인 전면공세가 이어졌고 여당에서도 군수뇌부의 쇄신 요구가 높아졌다.
똥별들의 사퇴가 줄을 이었고 결국 군수뇌부와 장관, 그리고 후배들의 추태를 알고도
이 사실을 은폐한 청와대 안보실장까지 줄줄이 사퇴를 했다.
그 와중에 청와대와 여당의 인사들도 파편을 맞았지만 동영상 원본속의 얼굴들을 확인한 대통령의 진노는
끝이 없었다.
그렇게 청와대의 권력은 서서히 혜림의 손아귀에 들어 가고 있었다.
새로 임명될 안보실장 우도희 전참모총장은 이미 미국의 사관학교 교환 장교시절부터 혜림의 후원을 오래 동안 받은 인물이었다.
이제 남은 걸림돌은 비서실장 뿐이었다.
혜림은 야당 상임고문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그리고 국정원의 숨어 있는 기밀이 비서실장 제거에 결정타가 될 것이었다.
며칠 후 대통령의 얼굴은 파랗게 질렸다.
은밀하게 자신과의 독대를 청한 야당의 제갈량 박도원 상임고문이 전한 말 때문이었다.
“ 그게 사실인가요? 비서실장이 당시 부마 사태의 배후 조정자라니...”
“ 사실입니다
비서실장은 부산 출신으로 부산에서 학교를 다녀 당시 부산 지역 야당인물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었습니다.
부마 사태가 장기화 되면 대통령이 하야하고 그 자리에 부산을 거점으로 한 야당 총재를 추대하는 것으로
시나리오를 짰지요.
그 야당 총재는 학교 선배이기도 하니 ...그 다음 차기는 비서실장이 맡고요.....
일명 동트는 아침이 그 기밀 문서의 이름입니다.”
“ 믿을 수 없어요. 그럼 그 당시 그 계획을 세운 인물들이 누군가요?”
“ 이른 바 부경5인회지요. 3인은 이미 고인이 되었고 2인이 남았는데
그 중 하나는 이미 치매와 중풍으로 거동도 못하고 있고요.멀쩡한 사람은 비서실장 하나입니다”
“ 그런 줄도 모르고...전..”
“ 제가 오래도록 망설이다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건 대통령께서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것을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선친께서 그렇게 믿는 측근에게 유명을 달리 했는데...
이제라도 폭넓게 인재를 등용하고 과거 선친의 인물들은 과감하게 내치십시오
그게 성공한 대통령이 되는 길입니다.”
“ 충고 감사합니다. ”
대통령이 국정원장에게 동트는 아침이라는 기밀 문서를 은밀히 가져 오라고 한 건
그 날 저녁 비서실장이 퇴근한 이후 한밤중의 일이었다.
이미 수십년이나 지난 오래전 기밀문서를 확인한 대통령은 부들부들 떨었다.
그리고 청와대 실세인 노련한 정객 비서실장은 다음 날 출근길에서 전격 경질을 알리는 청와대의 전화를 받아야 했다.
수현이 후임 청와대 비서실장은 서혜림이라는 뉴스 속보 자막을 본 것은 가을 하늘이 유난히 아름다운 가평의 기와별장이었다.
지훈의 팔을 베고 누운 수현은 마음 속으로 혜림을 생각하며 그리워했다.
자신에게는 이미 하늘보다 더 우뚝한 분이었다.
에스그룹 감찰실.재호는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 예상대로 흘러가는구나.
이번 기회에 정치 경제에 만연한 폐단과 악습을 말끔히 청소하는 것이 낫다.
저들이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지만 우리로서도 언젠가는 했어야 할 일.
지켜 보면서 힘을 비축하며 대비하는 게 낫다. 문제는 후계자의 움직임인데....’
‘ 자기 혼자만의 정보라인을 만들기 위해 하필이면 일본의 대정회측과 손을 잡다니....
일본측에 그 첫 번째 요구가 백호단의 모든 것이라니......
결국 그렇게 나를 견제하는건가? 에스그룹에서의 마지막 업무로 역공작을 서서히 준비해야겠군.’
헤림은 광호의 말을 듣고 얼굴이 굳었다.
“ 그러니까 에스그룹의 감찰팀에서는 이미 우리 계획을 다 알고 있다는 겁니까? 그게 가능한가요?”
“ 얼마든지. 우리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이번에 혜림이 주도한 안보실장과 비서실장 제거에
국정원 차장이 깊숙이 관련된 것도 아는 듯 하더군.
결국 그들이 등장할 시기가 무르익기를 기다리는 듯 하더구만.
백호단뿐 아니라 우리와 우호적이지 않은 조직들도 서서히 힘을 모으는 낌새도 보이고....”
“ 그럼 결국 마지막엔 가진 힘의 대결이 되는군요. 우리가 밀리는가요?”
“ 그건 아무도 모르지. 별과 달의 선택도 주요변수니까...”
“ 설마 같은 뿌리인 우리를 적대시 하면서까지 저들을 도울까요?”
“ 상층부에 백호단이 침투했다면 가능하다고 봐야지.”
“ 그럼 한 번 더 조직을 걸려 배신자들을 속출해야겠군요. 역정보로요.”
“ 당연한 수순이겠지. 그래, 비서실장은 할 만 한가? 글로리아”
순간 혜림의 몸이 떨려왔다.
“ 이미 지나간 이름을 왜 그렇게 불러요? 저는 글로리아가 아니라 주인님의 개일 뿐이지요.”
“ 그래서 앞으로도 개로만 대해 달라는건가?그게 진정 원하는 거라면...”
“ 예 진정 그렇게 원해요. 전 두 분의 개일 뿐이예요.”
“ 헬레나와 손잡고 혜림을 개로 만든 사라가 아직도 그렇게 두려운가?
스스로 처녀성을 바칠 정도로 심약한 시절은 이젠 지나간 듯 한데....”
“ 한 번 개목줄을 차게 되면 스스로는 그 목줄이 주는 구속의 쾌락과 고통에서 못 벗어나요.
저는 사라님의 처절한 채찍질에도 광호님에 대한 끊을 수 없는 욕망에 굴복하여
두 분의 발밑을 기는 개로 살겠다고 맹세했어요.”
“ 소원대로 다루어 주지. 벗어라.”
“ 예 주인님.”
혜림의 알몸이 드러나자 광호는 사정없이 채찍으로 후려갈겼다.
혜림의 입에서 고통과 쾌락의 비음이 새어 나왔다.
“ 보지 가진 동물들의 한계지.
사내에게 지배받고 자지에 뚫리고 싶어 환장하는 천박한 것들...”
광호는 채찍질을 하며 생각했다.
‘ 그래, 혜림은 나에게는 철저히 복종하고 거기에 대한 반발로
장지훈은 정반대로 그렇게 사내 구실도 못하는 개로 길들였지. 그 놈은 지금 수현의 짝이고.’
“ 하학...주인님....더..더해줘요....죽어도 좋으니 제발....”
혜림의 처절한 절규가 들려오자 광호는 서서히 옷을 벗기 시작했다.
사내의 심볼은 이미 굳건하게 발기한 상태였고 혜림은 기쁨의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희노애락을 주관하는 도깨비 방망이가 광호의 다리 사이에 우뚝 서 있었다.
혜림은 그 방망이를 향해 기어갔다.
그런 혜림의 등뒤를 채찍이 사정없이 떨어졌다.
“ 아학.....주인님...”
“ 빨아. 개처럼 ”
혜림의 목구멍 깊이 광호의 육봉이 진퇴를 거듭했다.
10월의 마지막날. 한국시리즈 6차전이 열리는 잠실 야구장.
3만 관중이 운집하여 초만원인 가운데 사자와 곰의 결전을 앞두고 있었다.
가을의 전설의 최종전이 될지도 모르는 경기.
오늘의 시구자는 야구팬들이 뽑은 다시 보고 싶은 시구자 1위가 하게 되었다.
“ 야구팬 여러분, 오늘의 시구자를 소개합니다.
팬들이 뽑은 오늘 시구자는 열성 야구팬 한수현 국회의원입니다”
푸른색 유니폼을 입은 수현이 그라운드로 걸어 올라왔다.
전광판엔 수현의 다양한 모습들이 지나갔다.
지난 여름 선거를 앞두고 한 시구의 모습도 보였다.
팬들의 열화 같은 함성과 연호가 가을 밤을 뒤흔들었다.
“ 그리고 오늘의 깜짝 시타는 두산 야구단의 열성팬인 청와대 비서실장 서혜림입니다,”
흰색 유니폼을 입은 혜림의 등장에 수현도 깜짝 놀랐다.
방망이를 잡은 혜림이 천천히 타석에 들어서더니 몇 번 연습 타격을 했다.
호흡을 가다듬은 수현이 한가운데로 공을 던지자 혜림이 재빨리 배트를 휘둘렀다.
투수 옆을 빠져 나가는 안타성 타구였으나 유격수가 멋진 수비로 잡아 1루로 던졌다.
관중들의 박수를 받으며 혜림과 수현이 그라운드에서 포옹을 한 후 퇴장을 하였다.
지정석에 도착하자 희주 자매와 변호사 삼총사가 앉아 있었다.
수현과 혜림이 중앙에 앉고 양옆에 희주 자매와 삼총사가 앉은 모습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혜림은 아주 생기가 넘쳐 보였다.
그런 혜림을 보며 수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야구관전을 즐겼다.
여당 당사. 대표실엔 어색한 멋쩍은 적막함이 감돌고 있었다.
“ 그러니까 이 최고위원 말은 지금 방송중인 저기 잠실 야구장에 있는
한수현의원과 그 옆의 청와대 서혜림 비서실장이 이번 두명의 청와대실장의 실각의 배후라는 겁니까? ”
“ 실각이 아니라 숙청입니다, 저들 둘이 작당한....”
“ 잘못하면 우리도 당할 수가 있어요.”
“ 거기에 한수인 정무수석의 칼날이 예사롭지 않아요.
황대표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듣고만 있던 황찬주 대표가 무겁게 말을 이었다.
“ 여러분들은 벌써 잊었나 보군요 지난 여름의 기억들을....
저 둘이 아니었으면 선거에서 참패하고 우린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 겁니다.
정계은퇴했겠지요. 따지고 보면 지금 우리 정치 생명이 살아 있는 건 저 둘 덕분입니다
헌데 그들을 의심해요?”
“ 그건 그것이고....대책을 수립해야 합니다.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서...”
“ 사무총장까지 왜 그럽니까? 아무리 정치판이 조변석개로 변한다지만....”
“ 하지만 그 기세등등하던 안보실장과 비서실장까지 한달 사이에 다 제거하는 무서운...”
“ 그건 그들이 자초한 겁니다. 안보실장이 너무 안하무인이었지요.
자기 라인만 챙기니 그런 덜떨어진 후배 별자리들이 그런 개판친 것이고 거기에 불만 품은 다른 군부 세력이
저지른 일이지 서실장이 무슨 힘으로 군부에 아무 힘도 없이 안보실장을 제거한단 말입니까?”
“ 그건 그렇지만....황대표는 무슨 들은 말이라도...”
“ 비서실장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알아본 바로는 야당의 상임고문이 청와대에 은밀히 다녀갔다고 합니다.
그런 후 전격 경질이라던데 대통령의 진노가 상상을 초월했다고 합니다.
갑작스런 비서실장 경질을 반대하는 참모들에게 문 밖까지 들릴 정도로 화를 내면서
예전부터 두길보기 하는 인간과 상종 못한다는 소리도 나왔답니다.
추측해 보건대 비서실장이 대통령을 배신한 과거가 있었다고 봅니다.”
“ 하긴 출근길에 차를 되돌려 갔다고 하니.....
다신 얼굴도 보기 싫다고 했다고 하더군요...”
“ 그러니까요. 우리가 알다시피 현재 청와대 비서실에서는 그럴 만한 일은 없어요
그럼 과거의 일이라고 봐야지요.
후임으로 서수석이 실장이 되니 시샘하는 말로 떠드는 겁니다.”
“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던가요?”
“ 무엇보다 한의원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럴 시간이 아예 없어요.
고3 수험생처럼 집, 국회, 도서관, 가평이 일정의 전부인데 언제 서실장 만나고 한단 말입니까?”
“ 전화로 공모도 가능합니다.
안보실장, 비서실장 교체하면 한의원 오빠인 민정수석에게도 좋은 일이니까요...”
“ 그건 지나친 억측입니다.
서실장과 한수석은 둘이 엮일 공간의 고리가 아예 없는 완전 남남이었고
지금도 공적인 자리 외엔 일체의 만남이 없답니다.”
“ 대표님 말씀대로면 좋겠습니다만....왠지...”
“ 한의원 일정 한 번 보시고 그런 소리 하시든지요......
한수석도 같이 온 전중앙지검 출신 민정수석팀원들과 새벽부터 한밤까지
일에 파고 들어 누굴 만나고 말고 할 시간 자체가 없어요. 그런 면에선 오누이가 똑같아요. ”
“ 그랬으면 좋으련만,,,왠지...”
“ 답답한 양반들이네. 한의원이나 한수석이 뭐가 답답해 그런 일을 꾸민단 말입니까?
주위에 15명의 동료의원이 있어도 세력화도 안하고 공부만 같이 합니다.
그리고 무소속 출마로 나가도 그들 오누이들은 100프로 당선될 텐데.....
서실장은 사실상 혼자 아닙니까?
대통령의 신임 말고는 주위에 인물이 없고요.
저도 한의원과 서실장이 자주 만나지는 않나 몇 달을 지켜 봤습니다만 아니올시다.”
“ 직장에서의 관계가 있는데...그렇게나 관계가 소원하던가요?”
“ 한의원이나 서실장이나 공사 구분이 칼이라고들 합니다."
“ 우리가 너무 섣부른 추측을 했나 봅니다.”
“ 정말 정치적 야심이 있다면 한의원이 이미 자기 덕에 당선된 의원들을 포섭하여
15명 정도의 계파를 만들었어야지요. 집에 돈도 엄청나겠다 주위에 인물도 많잖습니까?
자기 집안의 천재들 4명에다가 미모의 쌍둥이 비서관에 변호사 삼총사에.....
언제든 계파로 끌어들이는 게 가능한 호의적인 동료의원들에.....
마음만 먹으면 교섭단체는 충분하겠군요..‘.”
“ 그러고 보니 그렇군요. 우리가 너무 한의원을 만만하게만 본 건 아닌지...”
“ 현재 여당과 야당이 아닌 제 3정당 충분하겠군요. 듣고보니 대단하군요...”
“ 거기다 초재선 의원들의 모임에서도 한의원 지지하는 의원들도 꽤 됩니다.
아마 깃발 잡고 흔들면 3,40명은 단숨에 규합 가능할 겁니다.”
“ 설마 그럴리가요. 우리 현실에서 양당 구도 깨는 게 쉽습니까?”
“ 우리 당에서도 더 이상 기득권 눈치 보지 말고 바꿀 건 바꿔야 합니다.
안 그럼 한순간에 무너집니다.
지난 보선에서 한수현 혼자에게 60년 정통야당 박살나는게 남의 일만은 아닙니다.”
여당 당사의 이런 우려를 아는지 모르는지 야구장의 두 여자는 늦은가을의 제전을 만끽하고 있었다.
정기 국회도 어느덧 중반에 이르고 있었다.
정치인 수현은 그 동안 엄청난 화재 속에 지난 몇 달을 달려왔다.
먼저 자신과 같이 보궐선거에 당선된 여당 의원들과 함께 한울타리 모임을 결성하였다.
목적은 오로지 공부하는 의원이었다. 국회도서관이 그들의 아지트였다.
초선들이 대부분인 그들은 국회도서관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소속된 상임위는 다르지만 공동으로 정책을 연구하고 입안하는 것이 이미 당연시되었다.
국민들의 호응이 높은 법안이 입안될 때마다 언론과 방송은 한울타리 소속 의원들을 인터뷰 하는 것이 상식처럼 되었다.
특히 수현은 자신의 상임위인 행정안전위에서 부조리한 부분들을 상당히 발견하고는 국정감사에서 이를 이슈화하여 결국 행안부장관이 자체 개혁안을 제출하겠다고 하여 더욱 화제가 되었다.
공무원들이 그 동안 국민들에게 지적받아온 특권들과 자기 밥그릇 챙기기를 위한 규제들을
폐기하는 강도 높은 자체개혁안이 제출되었다. 여야 모두가 만장일치로 이를 승인하였다.
수현은 당의 부대변인으로 방송 출연도 잦았다.
주제를 가지고 얘기하다 보면 상대가 여당의 당론이 어떠니 하는 진영논리를 들고 나오기도 했지만
수현은 자기 당의 당론이라도 잘못된 건 가차없이 비판했다.
어느덧 상대의 입에서 당론, 진영논리라는 말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수현의 홈페이지는 정치인 최고의 방문자수를 자랑했다.
방문자들이 수현에게 건의하는 사안들을 심사하여 법안으로 연구하는 것만으로도 한울타리 의원들은 벅차기만 했다. 결국 비서관들까지 모조리 국회에서 사안별로 모여 연구하고 공부하고 토론하게 되었다.
수현의 동선은 단조로웠다.
평일엔 국회와 집을 드나들고 휴일엔 본가나 고아원을 방문하는 것이 일정의 전부였다.
새로 출범한 부친의 재단에 들러 자문을 하거나 시행과정의 문제점을 체크하는 것도 추가된 최근의 일과였다.
어느 기자가 데이트는 언제 하느냐고 물었을 때 수현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 가평 가는 길, 오는길.....그리고 집에서 가족 모임 있을 때..."
네티즌들은 이를 데이트의 정답은 가는길 오는길이라는 말로 정리했다.
예비신부다 보니 시댁과의 모임도 가끔 있었다. 조카들은 이미 수현의 광팬이었다.
남자나 여자나 조카들 모두 수현을 보면 입이 귀에 걸렸다.
수현은 그들에겐 또래들에게 자랑할 거리임에 충분했다.
평생 대한일보를 키워 온 시부모도 흐뭇하게 수현을 바라 보았다.
의사인 지훈의 형과 형수, 대한일보 계열의 방송국에 근무하는 시누이 내외도 수현에게 호감을 가지고 대했다.
수현의 손위 동서가 될 의사는 수현 언니와 잘 아는 사이였다.
수현 집안과 사돈이 될 사이라는 게 알려진 후 대한일보는 엄청난 발전을 거듭하였다.
젊은 독자들이나 네티즌들로부터 도매금으로 듣던 보수꼴통 소리는 많이 줄어 들었고
무엇보다 광고,스폰서를 제안하는 기업들이 많아져 재정적인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최근에는 윤정인 대한일보 회장이 예비며느리인 수현의 보약을 직접 챙기는 일도 있었다.
화창한 가을 하늘이 좋은 10월의 휴일.수현이 지훈과 함께 가평으로 가는 길이었다.
오랜만에 변호사 삼총사와 희주,희경까지 모두 같이 가는 길이었다.
김변과 희주, 이변과 희경은 그 동안 아주 친숙한 사이가 되어 있었다.
선거기간 내내 동고동락한 것이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 수현씨, 우리 희주씨 그만 좀 부려 먹으세요.데이트 할 시간도 없어요.”
“ 그래요? 그럼 ....잠을 줄여야지요.새벽 일찍 아님 심야의 데이트를 하는 건 어때요? ”
“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우리 희주 얼굴이 반쪽이 되었어요.
요즘은 영화 보면서 조는 게 예사예요..얼마나 피곤한지 한번씩 침도 흘리면서요...”
“ 김변 말이 맞아요. 희경씨도 몸 축나서....거기다가 요즘은 외국어도 배운다면서요”
“ 예 희주씨와 희경씨가 외국에 오래 살아서 수개국어 외국어에 능통하잖아요.
박신부님에게 배운 것도 있지만 이번 기회에 더 능숙하게 아예 다 배워 두려고요.”
“ 그렇게 배워 뭐하려고요. 통역하실 것도 아닌데...”
“ 아니예요 외국과의 협상문이나 조문 보면 의외로 잘못된 번역이 많아요
그럴땐 원문을 해석할 수 있으면 도움이 되거든요...”
“ 요즘은 아예 회의를 할 때 다개국어로 한다면서요. 어느 정도이길래...”
“ 일상적인 대화는 거의 가능해요. 유럽 주요 언어와 동양의 주요 언어....
그렇게 섞어 회의 하니 재미도 있고 좋아요.다른 사람들과 함께 할 때는 주로 영어 사용하고요...”
“ 한울타리 모임의 의원들 비서들이 불만 폭증이랍니다. 너무 힘들다고요..”
“ 그래요? 우리 비서관들도 모두 버티는데 왜 그러지? 안 그래요? 희주씨...
“ 의원님도 참....우리 자매야 단련되었으니 버티지만 우리팀의 다른 비서관들도 죽을려고 해요.”
묵묵히 듣고 있던 지훈이 한마디했다.
“ 김변, 이변, 잊었나 본데 지난 여름에 하와이에 백마들 보러 휴가 간다고 하던 그대들을
희주씨네와 연결해준 오작교가 누군지...기억해라. 응?”
“ 야야, 백마는 무슨,,,희주씨 진짜로 알아 듣는다.”
“ 백마가 아니고...흑마였나? 아니 둘 다였나?“
“ 장변, 너 정말 이럴래? 이걸 그냥 확...”
일행이 웃고 떠드는 사이 가평에 도착했다.
아이들과 박신부, 유보살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일행이 누렇게 익은 벼를 자랑하는 논으로 내려갔다.
오늘은 벼를 수확하는 날이었다.
이웃마을의 기계농이 와 준비를 하고 벼를 수확하는 모습을 보는 일행은 뿌듯함을 느꼈다.
“ 박신부님, 유보살님, 올해도 고생 많으셨어요.”
“ 고생은 뭐, 애들이 고사리 손으로 피 뽑는다고 고생했지...”
“ 내년부터는 애들 손 안 들게 틈틈이 지원군 많이 내려 보낼게요.
아버지 재단의 직원들에게도 미리 말해 뒀어요.”
“ 그래? 고맙구나. 그나저나 수현이 안색이 너무 안 좋다.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니냐?”
“ 아니예요. 별 탈 없어요.”
“ 아니다. 몸을 혹사하면 금방은 몰라도 얼마 후엔 후유증이 나타난다. 늘 조심하거라.”
유보살의 말을 들으며 수현은 생각에 잠겼다.
벌써 한참 동안 자신에게 아무런 연락이 없는 혜림이 생각났다.
‘무슨 일이 생긴건가? 혹 나를 버리시는 건가...아, 주인님.“
희주가 그런 수현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수현의 안타까운 마음을 아는 희주가 혜림에게 몇 번이나 전화로 사실을 얘기했지만
혜림은 싸늘하게 ‘똥개는 똥개일 뿐’이라며 답변했던 것이다.
헤림의 집무실.
가을서리처럼 냉막한 얼굴의 혜림이 앉아 있었다.
청와대 내부의 치열한 견제와 암투는 상상을 초월했다.
민정수석을 교체하고 분위기를 일신했으나 비서실장과 안보실장이 두 축인 청와대의 전면 개혁은 아직도 요원하기만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한수인 민정수석이 청와대를 믿고 설치던 친인척들과 고위직들을 사정 없이 도려낸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수십명의 친인척과 측근,낙하산인사들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져갔다.
한수인 팀은 그것만으로도 이미 공직기강의 확립에 상당한 성과를 올렸고 비서실장 라인의 진영이 약화되어 혜림에게는 도움이 되었다.
‘ 그래, 결국은 건곤일척의 승부밖에 없구나.
두 명의 늙은 실장이 있는 한 청와대는 변화가 근본적으로 어렵다. ’
입술을 깨문 혜림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 나야, 그래....그거 터트려. 동영상. 별장 사건부터...누가 다쳐도 상관없어..”
다음 날 방송과 신문은 군수뇌부의 집단 골프 회동과 별장에서의 집단 환각 섹스파티를 다루었고
참석한 연예인들과 직업여성들의 구체적인 진술이 이어졌다.
그 자리가 차세대 전투기 선정을 위한 로비스트들의 접대 자리였다는 사실까지 더해 지면서 파장은 더욱 커졌다.
보궐선거에서의 패배로 위축되었던 야당의 파상적인 전면공세가 이어졌고 여당에서도 군수뇌부의 쇄신 요구가 높아졌다.
똥별들의 사퇴가 줄을 이었고 결국 군수뇌부와 장관, 그리고 후배들의 추태를 알고도
이 사실을 은폐한 청와대 안보실장까지 줄줄이 사퇴를 했다.
그 와중에 청와대와 여당의 인사들도 파편을 맞았지만 동영상 원본속의 얼굴들을 확인한 대통령의 진노는
끝이 없었다.
그렇게 청와대의 권력은 서서히 혜림의 손아귀에 들어 가고 있었다.
새로 임명될 안보실장 우도희 전참모총장은 이미 미국의 사관학교 교환 장교시절부터 혜림의 후원을 오래 동안 받은 인물이었다.
이제 남은 걸림돌은 비서실장 뿐이었다.
혜림은 야당 상임고문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그리고 국정원의 숨어 있는 기밀이 비서실장 제거에 결정타가 될 것이었다.
며칠 후 대통령의 얼굴은 파랗게 질렸다.
은밀하게 자신과의 독대를 청한 야당의 제갈량 박도원 상임고문이 전한 말 때문이었다.
“ 그게 사실인가요? 비서실장이 당시 부마 사태의 배후 조정자라니...”
“ 사실입니다
비서실장은 부산 출신으로 부산에서 학교를 다녀 당시 부산 지역 야당인물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었습니다.
부마 사태가 장기화 되면 대통령이 하야하고 그 자리에 부산을 거점으로 한 야당 총재를 추대하는 것으로
시나리오를 짰지요.
그 야당 총재는 학교 선배이기도 하니 ...그 다음 차기는 비서실장이 맡고요.....
일명 동트는 아침이 그 기밀 문서의 이름입니다.”
“ 믿을 수 없어요. 그럼 그 당시 그 계획을 세운 인물들이 누군가요?”
“ 이른 바 부경5인회지요. 3인은 이미 고인이 되었고 2인이 남았는데
그 중 하나는 이미 치매와 중풍으로 거동도 못하고 있고요.멀쩡한 사람은 비서실장 하나입니다”
“ 그런 줄도 모르고...전..”
“ 제가 오래도록 망설이다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건 대통령께서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것을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선친께서 그렇게 믿는 측근에게 유명을 달리 했는데...
이제라도 폭넓게 인재를 등용하고 과거 선친의 인물들은 과감하게 내치십시오
그게 성공한 대통령이 되는 길입니다.”
“ 충고 감사합니다. ”
대통령이 국정원장에게 동트는 아침이라는 기밀 문서를 은밀히 가져 오라고 한 건
그 날 저녁 비서실장이 퇴근한 이후 한밤중의 일이었다.
이미 수십년이나 지난 오래전 기밀문서를 확인한 대통령은 부들부들 떨었다.
그리고 청와대 실세인 노련한 정객 비서실장은 다음 날 출근길에서 전격 경질을 알리는 청와대의 전화를 받아야 했다.
수현이 후임 청와대 비서실장은 서혜림이라는 뉴스 속보 자막을 본 것은 가을 하늘이 유난히 아름다운 가평의 기와별장이었다.
지훈의 팔을 베고 누운 수현은 마음 속으로 혜림을 생각하며 그리워했다.
자신에게는 이미 하늘보다 더 우뚝한 분이었다.
에스그룹 감찰실.재호는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 예상대로 흘러가는구나.
이번 기회에 정치 경제에 만연한 폐단과 악습을 말끔히 청소하는 것이 낫다.
저들이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지만 우리로서도 언젠가는 했어야 할 일.
지켜 보면서 힘을 비축하며 대비하는 게 낫다. 문제는 후계자의 움직임인데....’
‘ 자기 혼자만의 정보라인을 만들기 위해 하필이면 일본의 대정회측과 손을 잡다니....
일본측에 그 첫 번째 요구가 백호단의 모든 것이라니......
결국 그렇게 나를 견제하는건가? 에스그룹에서의 마지막 업무로 역공작을 서서히 준비해야겠군.’
헤림은 광호의 말을 듣고 얼굴이 굳었다.
“ 그러니까 에스그룹의 감찰팀에서는 이미 우리 계획을 다 알고 있다는 겁니까? 그게 가능한가요?”
“ 얼마든지. 우리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이번에 혜림이 주도한 안보실장과 비서실장 제거에
국정원 차장이 깊숙이 관련된 것도 아는 듯 하더군.
결국 그들이 등장할 시기가 무르익기를 기다리는 듯 하더구만.
백호단뿐 아니라 우리와 우호적이지 않은 조직들도 서서히 힘을 모으는 낌새도 보이고....”
“ 그럼 결국 마지막엔 가진 힘의 대결이 되는군요. 우리가 밀리는가요?”
“ 그건 아무도 모르지. 별과 달의 선택도 주요변수니까...”
“ 설마 같은 뿌리인 우리를 적대시 하면서까지 저들을 도울까요?”
“ 상층부에 백호단이 침투했다면 가능하다고 봐야지.”
“ 그럼 한 번 더 조직을 걸려 배신자들을 속출해야겠군요. 역정보로요.”
“ 당연한 수순이겠지. 그래, 비서실장은 할 만 한가? 글로리아”
순간 혜림의 몸이 떨려왔다.
“ 이미 지나간 이름을 왜 그렇게 불러요? 저는 글로리아가 아니라 주인님의 개일 뿐이지요.”
“ 그래서 앞으로도 개로만 대해 달라는건가?그게 진정 원하는 거라면...”
“ 예 진정 그렇게 원해요. 전 두 분의 개일 뿐이예요.”
“ 헬레나와 손잡고 혜림을 개로 만든 사라가 아직도 그렇게 두려운가?
스스로 처녀성을 바칠 정도로 심약한 시절은 이젠 지나간 듯 한데....”
“ 한 번 개목줄을 차게 되면 스스로는 그 목줄이 주는 구속의 쾌락과 고통에서 못 벗어나요.
저는 사라님의 처절한 채찍질에도 광호님에 대한 끊을 수 없는 욕망에 굴복하여
두 분의 발밑을 기는 개로 살겠다고 맹세했어요.”
“ 소원대로 다루어 주지. 벗어라.”
“ 예 주인님.”
혜림의 알몸이 드러나자 광호는 사정없이 채찍으로 후려갈겼다.
혜림의 입에서 고통과 쾌락의 비음이 새어 나왔다.
“ 보지 가진 동물들의 한계지.
사내에게 지배받고 자지에 뚫리고 싶어 환장하는 천박한 것들...”
광호는 채찍질을 하며 생각했다.
‘ 그래, 혜림은 나에게는 철저히 복종하고 거기에 대한 반발로
장지훈은 정반대로 그렇게 사내 구실도 못하는 개로 길들였지. 그 놈은 지금 수현의 짝이고.’
“ 하학...주인님....더..더해줘요....죽어도 좋으니 제발....”
혜림의 처절한 절규가 들려오자 광호는 서서히 옷을 벗기 시작했다.
사내의 심볼은 이미 굳건하게 발기한 상태였고 혜림은 기쁨의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희노애락을 주관하는 도깨비 방망이가 광호의 다리 사이에 우뚝 서 있었다.
혜림은 그 방망이를 향해 기어갔다.
그런 혜림의 등뒤를 채찍이 사정없이 떨어졌다.
“ 아학.....주인님...”
“ 빨아. 개처럼 ”
혜림의 목구멍 깊이 광호의 육봉이 진퇴를 거듭했다.
10월의 마지막날. 한국시리즈 6차전이 열리는 잠실 야구장.
3만 관중이 운집하여 초만원인 가운데 사자와 곰의 결전을 앞두고 있었다.
가을의 전설의 최종전이 될지도 모르는 경기.
오늘의 시구자는 야구팬들이 뽑은 다시 보고 싶은 시구자 1위가 하게 되었다.
“ 야구팬 여러분, 오늘의 시구자를 소개합니다.
팬들이 뽑은 오늘 시구자는 열성 야구팬 한수현 국회의원입니다”
푸른색 유니폼을 입은 수현이 그라운드로 걸어 올라왔다.
전광판엔 수현의 다양한 모습들이 지나갔다.
지난 여름 선거를 앞두고 한 시구의 모습도 보였다.
팬들의 열화 같은 함성과 연호가 가을 밤을 뒤흔들었다.
“ 그리고 오늘의 깜짝 시타는 두산 야구단의 열성팬인 청와대 비서실장 서혜림입니다,”
흰색 유니폼을 입은 혜림의 등장에 수현도 깜짝 놀랐다.
방망이를 잡은 혜림이 천천히 타석에 들어서더니 몇 번 연습 타격을 했다.
호흡을 가다듬은 수현이 한가운데로 공을 던지자 혜림이 재빨리 배트를 휘둘렀다.
투수 옆을 빠져 나가는 안타성 타구였으나 유격수가 멋진 수비로 잡아 1루로 던졌다.
관중들의 박수를 받으며 혜림과 수현이 그라운드에서 포옹을 한 후 퇴장을 하였다.
지정석에 도착하자 희주 자매와 변호사 삼총사가 앉아 있었다.
수현과 혜림이 중앙에 앉고 양옆에 희주 자매와 삼총사가 앉은 모습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혜림은 아주 생기가 넘쳐 보였다.
그런 혜림을 보며 수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야구관전을 즐겼다.
여당 당사. 대표실엔 어색한 멋쩍은 적막함이 감돌고 있었다.
“ 그러니까 이 최고위원 말은 지금 방송중인 저기 잠실 야구장에 있는
한수현의원과 그 옆의 청와대 서혜림 비서실장이 이번 두명의 청와대실장의 실각의 배후라는 겁니까? ”
“ 실각이 아니라 숙청입니다, 저들 둘이 작당한....”
“ 잘못하면 우리도 당할 수가 있어요.”
“ 거기에 한수인 정무수석의 칼날이 예사롭지 않아요.
황대표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듣고만 있던 황찬주 대표가 무겁게 말을 이었다.
“ 여러분들은 벌써 잊었나 보군요 지난 여름의 기억들을....
저 둘이 아니었으면 선거에서 참패하고 우린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 겁니다.
정계은퇴했겠지요. 따지고 보면 지금 우리 정치 생명이 살아 있는 건 저 둘 덕분입니다
헌데 그들을 의심해요?”
“ 그건 그것이고....대책을 수립해야 합니다.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서...”
“ 사무총장까지 왜 그럽니까? 아무리 정치판이 조변석개로 변한다지만....”
“ 하지만 그 기세등등하던 안보실장과 비서실장까지 한달 사이에 다 제거하는 무서운...”
“ 그건 그들이 자초한 겁니다. 안보실장이 너무 안하무인이었지요.
자기 라인만 챙기니 그런 덜떨어진 후배 별자리들이 그런 개판친 것이고 거기에 불만 품은 다른 군부 세력이
저지른 일이지 서실장이 무슨 힘으로 군부에 아무 힘도 없이 안보실장을 제거한단 말입니까?”
“ 그건 그렇지만....황대표는 무슨 들은 말이라도...”
“ 비서실장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알아본 바로는 야당의 상임고문이 청와대에 은밀히 다녀갔다고 합니다.
그런 후 전격 경질이라던데 대통령의 진노가 상상을 초월했다고 합니다.
갑작스런 비서실장 경질을 반대하는 참모들에게 문 밖까지 들릴 정도로 화를 내면서
예전부터 두길보기 하는 인간과 상종 못한다는 소리도 나왔답니다.
추측해 보건대 비서실장이 대통령을 배신한 과거가 있었다고 봅니다.”
“ 하긴 출근길에 차를 되돌려 갔다고 하니.....
다신 얼굴도 보기 싫다고 했다고 하더군요...”
“ 그러니까요. 우리가 알다시피 현재 청와대 비서실에서는 그럴 만한 일은 없어요
그럼 과거의 일이라고 봐야지요.
후임으로 서수석이 실장이 되니 시샘하는 말로 떠드는 겁니다.”
“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던가요?”
“ 무엇보다 한의원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럴 시간이 아예 없어요.
고3 수험생처럼 집, 국회, 도서관, 가평이 일정의 전부인데 언제 서실장 만나고 한단 말입니까?”
“ 전화로 공모도 가능합니다.
안보실장, 비서실장 교체하면 한의원 오빠인 민정수석에게도 좋은 일이니까요...”
“ 그건 지나친 억측입니다.
서실장과 한수석은 둘이 엮일 공간의 고리가 아예 없는 완전 남남이었고
지금도 공적인 자리 외엔 일체의 만남이 없답니다.”
“ 대표님 말씀대로면 좋겠습니다만....왠지...”
“ 한의원 일정 한 번 보시고 그런 소리 하시든지요......
한수석도 같이 온 전중앙지검 출신 민정수석팀원들과 새벽부터 한밤까지
일에 파고 들어 누굴 만나고 말고 할 시간 자체가 없어요. 그런 면에선 오누이가 똑같아요. ”
“ 그랬으면 좋으련만,,,왠지...”
“ 답답한 양반들이네. 한의원이나 한수석이 뭐가 답답해 그런 일을 꾸민단 말입니까?
주위에 15명의 동료의원이 있어도 세력화도 안하고 공부만 같이 합니다.
그리고 무소속 출마로 나가도 그들 오누이들은 100프로 당선될 텐데.....
서실장은 사실상 혼자 아닙니까?
대통령의 신임 말고는 주위에 인물이 없고요.
저도 한의원과 서실장이 자주 만나지는 않나 몇 달을 지켜 봤습니다만 아니올시다.”
“ 직장에서의 관계가 있는데...그렇게나 관계가 소원하던가요?”
“ 한의원이나 서실장이나 공사 구분이 칼이라고들 합니다."
“ 우리가 너무 섣부른 추측을 했나 봅니다.”
“ 정말 정치적 야심이 있다면 한의원이 이미 자기 덕에 당선된 의원들을 포섭하여
15명 정도의 계파를 만들었어야지요. 집에 돈도 엄청나겠다 주위에 인물도 많잖습니까?
자기 집안의 천재들 4명에다가 미모의 쌍둥이 비서관에 변호사 삼총사에.....
언제든 계파로 끌어들이는 게 가능한 호의적인 동료의원들에.....
마음만 먹으면 교섭단체는 충분하겠군요..‘.”
“ 그러고 보니 그렇군요. 우리가 너무 한의원을 만만하게만 본 건 아닌지...”
“ 현재 여당과 야당이 아닌 제 3정당 충분하겠군요. 듣고보니 대단하군요...”
“ 거기다 초재선 의원들의 모임에서도 한의원 지지하는 의원들도 꽤 됩니다.
아마 깃발 잡고 흔들면 3,40명은 단숨에 규합 가능할 겁니다.”
“ 설마 그럴리가요. 우리 현실에서 양당 구도 깨는 게 쉽습니까?”
“ 우리 당에서도 더 이상 기득권 눈치 보지 말고 바꿀 건 바꿔야 합니다.
안 그럼 한순간에 무너집니다.
지난 보선에서 한수현 혼자에게 60년 정통야당 박살나는게 남의 일만은 아닙니다.”
여당 당사의 이런 우려를 아는지 모르는지 야구장의 두 여자는 늦은가을의 제전을 만끽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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