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 등록 후 드디어 선거전이 본격화되었다.
수현은 변호사 삼총사, 희주 자매를 필두로 선거운동원들 모두와 새벽부터 영등포 시장을 들렀다.
이곳에서 선거를 시작하기로 하였다.
어린시절의 추억이 있는 곳. 어린 시절 엄마와 이모가 식당을 하던 자리엔 여전히 같은 간판을 달고 영업중이었다.
그 동안 한달에 한두번 정도는 고아원 방문시 필요한 물품을 사기 위해 들렀던 터라 친숙한 상인들도 아주 많은 편이었다.
다 자란 수현을 몰라 보던 상인들도 선거 홍보물에서 수현이 어린 시절 식당앞에서
광호와 함께 엄마 이모에게 안겨 찍은 빛바랜 사진을 보고 감회가 새로운 듯 눈시울을 적셨다.
선거 운동원들은 모두 같은 색상의 옷으로 통일하였다.
지구당 청년당원들과 카페 회원들, 다른 지역에서 온 자원봉사자들을 선거운동원으로 등록하여 푸른색 면바지에 푸른색 운동화, 흰색 반팔티차림이였다.
상의의 반팔티에는 수현의 환하게 웃는 사진이 칼라로 선명하게 인쇄되어 있어 누가 봐도 수현의 운동원임이 드러났다.
나이가 있는 당원들은 정식 선거 등록원이 아니라 자기 집 주위에서 입소문을 내는 개인 활동을 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
수현이 삼복 더위에 연세 많은 어른들을 바깥에 내보내기 힘들다고 하자 일부 반발이 있었지만 모두들 수긍하였다.
대신 봄에 치러지는 차기 선거에는 어른들 위주의 선거 등록원으로 해 줄 것을 약속하였다.
아침 출근 시간을 제외하고는 중앙당의 요청대로 수도권의 타지역 유세를 지원하였다.
수도권 지역의 같은 당 후보들과는 수현의 공약을 공동 공약으로 채택하는데 합의하였다.
지역 공약은 지역구 사정에 맞춰 달리 했지만 그 외의 공약은 공동 공약으로 추진하기로 하였다.
공동 공약은 언론의 주목을 받는데 큰 효과를 발휘하였다.
절대 열세이던 수도권의 타후보들도 점차 상대와 간격을 좁혀가기 시작했다
반면 중진들이 대거 차출된 야당은 여전히 정권심판론과 진영논리, 유명세에 의존한 단조로운 선거를 하고 있었다.
방송은 이미 이번 선거의 중심으로 떠오른 수현의 일거수일투족을 밀착 취재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공영방송에서는 선거 끝난 후 이를 두시간짜리 다큐로 방송하기도 했는데
휴일 심야 시간으로는 드물게 10프로에 육박하는 시청율을 올리기도 했다.
24시간 수현의 곁을 지키는 변호사 삼총사와 희주 자매는 이미 전국적으로 그 이름을 알리고 있었다
수현이 앞에 서고 희주 자매가 뒤에 있고 변호사 삼총사가 맨 뒤에 있는 장면은 네티즌들이 123 이라는 제목으로 즐겁게 페러디용에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선거전은 이미 일주일이 자나가고 있었다.
숨 가쁜 하루를 마친 수현 일행이 밤늦게 베이스캠프로 돌아왔다.
때맞춰 선거 기간 동안 혜림이 대통령을 따라 유럽과 아프리카 순방을 하느라 비어 있는
혜림의 펜트하우스를 사용하라고 하여 6명은 24시간 동고동락을 결정하였다.
욕실도 방도 많아 6명이 거처해도 사생활 침해의 우려도 거의 없었다.
방학 기간이라 수현의 언니와 올캐가 와서 이들의 건강과 식사를 챙겨 주었다.
선거용 차량 안에서 언제나 마실 수 있는 음료수와 과일,간식을 준비하는 것도 수현 언니와 올케의 몫이었다.
수현의 조카들은 모두 논현동 본가에서 수현 부모가 돌보고 있었다.
일행이 하루 종일 흘린 땀으로 끈적한 몸을 씻고 나와 시원한 거실에서 수박과 차를 마셨다.
무더위에 쉴 새 없이 움직이다 보니 음식은 많이도 섭취하게 되었다.
" 이렇게만 나가면 수도권 10곳은 모두 이길 것 같습니다.
문제는 충청권 3곳인데 그 쪽이 백중세에서 조금도 움직임이 없군요."
" 충청도 양반들이 좀체 속을 드러내지 않아서 그래요. 어느 한 당의 독주도 견제하고요."
" 지난 지방선거에서는 야당이 압승을 했지요. 대선에서는 여당이 이겼고요.
순서대로면 이번엔 야당이 우세할 차례인데...."
참모들의 이야기를 듣던 수현이 말했다.
" 다음 주에 영호남 지원 유세 가서 올라 오는 길에 충청에도 들렀다 가지요."
" 시간이 맞지 않습니다. 이미 잠자는 시간을 최소화 하며 일정을 수립해 놓은 상태라.....
당에서도 충청은 중앙당에서 책임지고 맡는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충청까지 우리가 맡기에는 일정이 너무 빡빡합니다.
안 그래도 우리 지역구에서는 일부에서 너무 낙관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습니다."
수현이 말을 이었다.
" 한표를 이기나 압도적으로 이기나 당선 결과는 같아요.
내가 압도적으로 이기는 것보다는 신승을 하더라도 다른 지역에서 이기는 데 도움이 되면 좋지요.안그래요?"
" 그야 그렇지만....한여름에 무쇠도 아니고 몸이 버틸지...."
지훈이 짠한 눈빛으로 수현을 바라 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 영호남 유세 가서 올라 오는 길에 저녁에 충청도에서 유세하고 거기서 1박해요.
다음 날 오전에 충청도 한 번 더돌고 나서 우리 지역구에 들리고 마지막으로 수도권 돌아요.
충청도에서 선거일 자정까지 36시간 풀가동을 하는 거지요. 잠 안 자고요."
" 알겠습니다 중앙당과 협의하여 그렇게 하겠습니다."
희주의 말을 끝으로 일행은 잠잠해졌다.
선거를 치르면서 모두들 느끼고 있었다.
수현이 보기와는 달리 대단한 체력과 뚝심, 강단이 있다는 사실을....
지훈의 안스러운 눈빛만이 모두의 마음을 대변해 주었다.
2차례의 후보자 토론회가 열렸다.
3선의 상대 후보는 수현에게 집요하게 정치적 시비거리가 될 만한 문제를 제기하며 공세를 폈다.
사실상 열세를 만회할 마지막 기회라 아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수현은 아주 적극적으로 이에 맞섰다.
한동안 수현이 토론회에서 말한 내용이 방송과 언론을 강타했다.
네티즌이 정리한 한후보 토론회 어록이 유명세를 타고.나돌았다.
" 우리당이 뿌리가 친일파 군부독재 정당이라 하는데.... 맞다고 본다..
그런데 60년 정통 야당의 뿌리는 어디인가?
이승만의 농지개혁에 반대하던 호남의 친일파 거두들이 만든 민주당이 그들의 뿌리다.
백범 김구 사후 해공 신익희를 비롯한 임정 계열의 한민당이 일부 가세했다고 항일 독립 정당이 되는가?
당시 민주당의 당수나 간부였던 사람들이 친일파임은 친일인명 사전만 보면 드러나는 사실이다.
" 박정희가 독재라는 과오가 있는 것 맞지만 그 공은 공대로 평가해야 한다.
5.16당시 우리는 1인당 국민소득이 겨우 60불이었고 반면 필리핀은 8백 달러가 넘었다.
허나 박정희 군부 시대와 마르코스 군부 시대를 거친 두 나라의 현재를 비교해 보라
거꾸로 우리가 필리핀보다 국민소득이 20배나 앞선다.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평가해야한다. 그게 역사를 보는 정확한 기준이다."
" 산업화와 민주화 중 어느 것이 더 시급했을까를 따지는데 일고의 가치도 없다.
당시 2차 대전 후 탄생한 모든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신생국들은 냉전 체제하에서
모두 산업화를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다루었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대만은 모두 세습 독재를 하면서까지 산업화를 이룬 나라다.
일부에서 편향되게 과대 평가하는 북한의 김일성조차도 산업화를 최우선 정책으로 두었다."
" 상대가 제기한 고아원 후원을 빙자한 땅투기 의혹에 대해 상대 후보가 고아원에 조금이라도 후원하면
그에게 상시 감사를 맡길 의향이 있으니 한 번 알아 보시라고 되받았다."
" 어린 나이에 국회 업무 수행 능력에 대해서는 열정을 가지고 수년간 충분히 준비를 했고
당선되면 대한민국에서 제일 좋은 국회도서관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 의원중 한명이 될 것이며
법률 제안이나 의회 출석은 상위권에 들도록 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이를 어기면 다음번 출마를 포기하겠다는 말도 했다."
" 헌법상 국회의원의 특권은 국회 발언시 면책, 회기중 불체포 특권인 걸로 아는데
국민들이 모르는 특권이 너무 많다 이건 모두 의원들끼리 자기들 좋자고 만든 것이니 없애야 한다.
예를 들어 보면 상대 후보인 김후보의 경우 현역 시절 1년간 차량의 휘발유로 지원된 국고가 5천만원이 넘는데
이는 리터당 2천원으로 환산하면 2만 5천리터. 휘발유 2만 5천리터면 아무리 고급 차라도
연간 10만 킬로가 넘는 거리를 달렸다는 데 이는 지구를 한바퀴 돌고도 남는다. 그렇게나 많이 다니는가?"
" 부유한 엄친딸? 아버지가 신군부 쿠데타에 반대하다가 낙향해서 농사를 지었고
엄마 따라 식당에서 놀면서 바쁘면 동갑내기 이종사촌과 같이 5살부터 손님상에 물컵 날랐다.
내집처럼 본채 관리를 해주는 조건으로 온 가족이 별채에서 살며 내집 없는 설움을 20년 넘게 맛보았다.
집안의 기둥인 오빠가 졸지에 정권에 의해 타의로 검사직을 그만 두고는 몇 년 간 부모님은 웃음이 없었다.."
인터넷에 검색어 순위 1위를 차지한 수현의 어록들은 선거 기간 내내 화재를 불러 일으켰다.
여의도 여당 당사.
" 황대표, 한후보 덕에 이젠 거의 반타작 승부까지는 따라 붙었군요."
" 그렇습니다. 수도권은 이대로 가면 석권이 가능할 듯 한데...
문제는 충청 3곳이예요.모두 백중 열세라고 봐야 합니다. "
" 염치 없지만 한후보에게 선거 막판 충청행을 요구했어요,
영호남 갔다 오는 길에 충청에서 저녁 유세하고 현지에서 1박 하고
다음 날 오전에 한 번 더 충청 선거지역을 돈다고 하더군요. "
" 몸이 버텨 날까요? 그러다 쓰러지기라도 하면..."
" 충청권의 젊은 유권자들을 선거에 적극 참여시켜야 합니다 그러려면 한후보가 한 번 다녀 가는 게 좋지요."
" 충청에서 수도권까지...36시간을 한후보의 마지막 일정으로 잡았어요."
" 이젠 여론 조사 공표도 못하지요. 현재로선 13곳 중 우세 지역은 잘 봐도 6곳이네요.
그 중 확실한 우위 지역은 영등포 한 곳이고요 나머지는 오차 범위내 접전...7곳은 아직 열세..."
" 남은 나흘이 운명을 가르겠군요."
야당의 선대위 회의.
" 모든 당력을 수도권에 집중해야 합니다 호남과 영남은 제외하세요."
" 그렇지만 그 지역의 유권자들이 소외감을..."
" 한 쪽은 문전옥답 텃밭이고 한쪽은 돌밭이예요.
뻔한 선거 결과인데....접전 양상인 타지역에 집중하세요."
" 그리고 영등포는 포기합니다 거기 갈 인력 있으면 수도권이나 충청으로 보내세요."
" 그렇게 하겠습니다. 근데 한후보는 영호남을 간답니다."
" 뭐라고요? 여당 지도부가 허락했답니까?"
" 그렇답니다.무슨 철인도 아니고....."
" 하여간 상대 후보지만 대단합니다. 지치지도 않는건지....
이번 선거에서 여당 당선자들은 자연스럽게 한후보를 중심으로 뭉치겠군요."
" 현재 판세는 우리가 우위입니다.
아무리 한후보가 발바닥에 땀나게 뛰어 다녀도 보궐선거는 야당이 우세해요
정권심판 성격이라서... 게다가 출마한 우리 당 중진들 지명도도 상당하니..."
그 시각 수현의 베이스 캠프에서는 비상이 걸렸다.
열흘 이상 제대로 쉬지도 자지도 못한 수현이 귀가하고 나서 욕실에서 나와 방안에서 쓰러진 것이었다.
수현 언니인 수정이 급히 조치를 하고 링갤을 놓은 뒤 숙면을 취하며 안정을 찾기는 했지만 모두의 걱정이 늘어졌다.
희주는 비상 사태라 할 수 없이 유럽 순방중인 혜림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은 혜림이 짧게 한마디했다.
" 수현의 현재 상황을 사진,동영상으로 홈페이지에 올려라"
희주가 링갤을 맞고 정신 없이 잠 든 수현의 현황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주위의 침울한 표정들도 같이 올렸다.
얼마 후 인터넷은 발칵 뒤집어졌다.
수현이 지쳐 쓰러진 사실이 일파만파 번져갔다.
여당은 비상이 걸렸고 야당은 쾌재를 불렀다.
수현은 다음 날 아침이 지나서야 눈을 떴다.
변호사 삼총사들은 새벽부터 지역구인 영등포에 가서 선거를 지휘했다.
수정과 인영도 선거사무원들 먹거리를 가져가기 위해 자리를 비웠다.
남아 있는 희경과 희주에게 자초지종을 들었다.
희주가 조용히 혜림에게 알리고 그 조치대로 했다고 하자 수현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수현의 머리엔 혜림의 말이 떠올랐다. 쓸모 없는 개는 가차없이 버린다는 말.
그런 혜림 앞에서 자신은 죽을 힘을 다해 모시겠다고 했는데 벌써 쓰러진다는 건 주인에 대한 배신이었다.
억지로 일어나 씻고 밥을 먹고 기운을 차렸다.
그 때 희주가 전화를 가져와 수현에게 주었다. 혜림이었다.
수현이 무릎을 꿇고 전화를 받았다.
" 예 주인님. 접니다."
" 일어났구나. 많이 힘드냐? "
" 아닙니다 푹 자고 나서 이제 괜찮습니다."
" 그래? 다행이구나. 명심해라 똥개는 주인의 허락 없이는 아플 자유도 없다는 것을"
" 예 주인님,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 내 오른팔로 끝까지 살아 남아라. 내 발밑에서 오래도록 기고 싶다면. 죽을 힘을 다하거라 알겠냐? 똥개"
" 예 명심하겠습니다 주인님.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은 수현이 말했다.
" 영등포에 잠깐 들러 안심시킨 후 예정된 일정대로 움직여요."
" 괜찮겠어? 그 몸으로..."
" 한결 좋아졌어요. 더 이상 주인님 걱정 끼쳐 드릴 수는 없어요."
" 역시 똥개에게는 주인의 한마디가 효과 만점이구만.안 그래 ? 똥개"
" 맞습니다. 전 주인님의 똥개라 죽어도 명령을 수행해야 합니다 수도권 전승을 이뤄야 합니다."
" 혜림님이 멍청한 네 년을 애지중지하는 이유가 이거로구나. 그래 같이 해보자"
" 고맙습니다 희주님, 희경님 "
수현이 희주 자매와 선거사무소에 나타나자 선거 관계자들은 환성을 올렸다.
이미 방송 관계자들이 속보로 타전한 수현의 일거수일투족은 보궐선거의 핫이슈였다.
여론 조사 결과가 공표되지 못하는 일명 깜깜이 기간이 도래했다.
여야는 총력전으로 한여름 더위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수현이 쓰러진 사실을 자작극이라는 야당의 억지주장도 나왔다.
수현은 참모들과 의논하여 그 동안의 일정을 구체적으로 공개하므로서 야당의 자작극 논란을 일축시켰다.
수현의 홈피를 통해 방송에 알려진 일정은 한마디로 살인적이었다.
일정표를 본 후 건장한 청년이라도 그 정도로 혹사하면 쓰러진다는 의사들의 충고와 조언이 이어졌지만 수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걱정이 된 수현의 모친이 단골 한의사를 보내 와 아침 저녁으로 온 몸에 침과 뜸을 떠 가면서까지 수현은 일정을 소화해 내고 있었다.
곁에서 수현을 보는 지훈은 안스러운 마음에 수척해져 갔다.
다행히도 지역구에서는 변호사 삼총사들이 수현의 빈자리를 많이 메꿔 줬지만 다른 지역이 문제였다.
수현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수도권 전지역이 오차 범위의 대접전임을....
여야 지도부가 느끼는 분위기도 마찬가지였다.
고지를 앞둔 처절한 백병전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선거전이었다.
선거 운동 종료 사흘전.
서울을 떠나 영남과 호남으로 지원 유세를 떠났다.
포항과 부산 그리고 광주와 전주, 군산으로 이어지는 먼 길이었다.
수현 진영에게는 오히려 다행인 것이 이동 시간 동안
수현이 차안에서 잠깐이라도 눈을 붙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의사인 언니 수정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같이 동승하였다.
포항의 죽도 시장과 부산의 해운대에서 수현은 예상외의 환대를 받았다.
늘 그 얼굴이 그 얼굴인 지역의 선거에서 젊고 참신한 수현은 신선한 바람이었다.
억센 경상도 아지매들의 응원을 뒤로 하고 호남으로 향했다.
광주의 충장로, 전주의 한옥마을, 군산의 부두가에서도 수현은 당차고 소신 있는 발언을 이어갔다.
수현의 부친이 신군부에 핍박 받은 사실을 아는 지역민들도 대놓고 함부로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한 번 더 이번 선거를 생각해 보는 표정들이 많았다.
그리고 도착한 충청의 유세장에서는 영등포 못지 않은 환호를 받았다.
지역의 출마자들은 그런 반응을 보고는 고무되는 표정이었다.
충청의 박빙의 승부가 조금씩 추가 기우는 것이 느껴졌다.
유성 온천에서 1박을 한 수현은 한결 몸이 회복되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36시간.
그 중 8시간을 충청에서 쏟아 붓고 서울로 돌아와 자신의 지역구를 향했다.
지역구 유세를 하고 당직자들을 격려하고는 선거사무소로 들어가 잠깐 눈을 부쳤다.
이젠 마지막 남은 힘을 다 쏟아 부어야 할 시간이었다.
전 선거운동원들이 남은 24시간을 샅샅히 훝는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달라고 한 수현이 인근 수도권으로 지원 유세를 떠났다.
그렇게 보름간의 필사적인 선거 기간이 끝나고 선거 운동을 종료를 알리는 자정이 되었을 때
수현은 옆에 있던 지훈의 품에 쓰러져 그대로 잠이 들었다.
자신을 바라 보며 울먹거리는 지훈의 표정이 수현이 마지막으로 본 모습이었다.
수현이 눈을 뜨자 걱정스러운 모습의 지훈이 보였다.
“ 일어났어요? 수현님”
“ 지금 몇시? ”
“ 오후 5시예요. 17시간을 계속 잔 거지요.”
“ 뭐라고? 깨우지 않고. 투표 마감 시간은요?”
“ 8시까지예요. 일어나 씻고 뭐 좀 먹고 투표하러 가요. 밖에 방송팀들 눈 빠지게 기다려요.”
“ 알았어요.잠시만요.”
수현이 자신의 오피스텔에서 나오자 기다리던 방송팀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 한후보님, 몸은 괜찮습니까?”
“ 예 많이 잤더니 좋아졌어요.”
“ 선거에 대한 예상은요?‘
“ 최선을 다했으니 좋은 결과 기대합니다.”
“ 일부에서는 현실 정치를 무시한 공약이라는 ...”
“ 그렇지요. 현실 정치가 좋았다면 제가 뭐하러 정치한다고 나오겠어요?
그냥 많은 연봉 받으며 편하게 직장 생활 하지요...오늘은 이만해요 투표하고 좀 쉬고 싶어요.”
“수현씨 갑시다.”
지훈의 차를 타고 인근 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친 수현이 선거사무소로 들어가 그 동안 수고한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투표 결과를 기다리던 도중 당직자들과 선거 기간 이용한 인근 식당에 들러 저녁을 마친 수현이 선거사무소에 앉아 조용히 선거 결과를 기다렸다.
8시 투표가 마감되는 시간. 뉴스 자막이 떴다.
예상의석수 한마음당 15석, 새민주당 3석이라는 글자를 보는 순간 사무소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곧 이어 지역구별로 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예상되는 최다 득표는 수현의 영등포 지역이었다.
그리고 영남과 호남은 예상대로 여야의 텃밭임을 확인해 주었다.
여당으로서는 그나마 호남에서 예상보다 많은 득표가 기대되는 것이 위안거리였다.
충청은 여당의 우세로 바뀌었고 수도권은 여당의 백중우세였다.
오차 범위내 선거 지역이 몇군데 되어 마지막까지 결과를 모른다는 소리에 수현의 안색이 바뀌고 고개가 숙여졌다.
‘그렇게 기를 쓰고 필사적으로 했는데도 몇군데는 장담을 하기 어렵다니.
나는 이대로 주인님에게 버림 받는 것인가? 아 주인님.’
옆에서 그런 수현을 보는 희주도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 혜림님 성격에 전승 못하면 아마 가차없이 버릴텐데....개년 불쌓해서 어쩌냐.’
그렇게 몇 시간의 피가 마르는 시간이 흘러갔다.
밤 11시를 넘어서자 16곳의 당선자가 확정되었다.
여당 13. 야당 3이었다.
남은 지역은 인천과 부천이었다.
전통적으로 야당의 강세 지역. 지방선거, 대선 모두 야당이 이긴 곳이었다.
두 곳의 치열한 개표는 초박빙이었다.
여당이 조금 앞서 가지만 살얼음판이었다.
12시가 넘어가 새로 2시로 접어들 시간 서서히 표차가 나며 당락이 갈렸다.
여당 후보의 승리였다.
불과 몇백표 차이로 여당이 보궐선거 사상 최초로 수도권과 중부권 전승을 한 것이었다.
수현의 핏기 없던 얼굴이 화색이 돌았다.
‘ 다행이다. 주인님 발 밑에서 다시 똥개처럼 길 수 있게 되어....주인님 뵙고 싶습니다.’
수현의 모습을 보던 희주는 나지막히 웃었다
그리고 조용히 수현의 귓가에 속삭였다.
“ 축하해 똥개 69호. 개보지 젖어 들었냐?”
희주의 말에 얼굴을 붉히며 수현이 고개를 끄떡였다.
승리의 함성과 함께 한밤이 깊어 가고 있었다.
그 시각 유럽을 순방중인 혜림도 속보를 보고 있었다.
"한수현, 아니 똥개 69호 해냈구나.
앞으로 내가 네 년에게 어떤 개같은 아니 개보다 못한 일들을 요구할지 짐작도 못하겠지.
후후, 기대해도 좋아. 천박한 더러운 똥개.....
마르스님에게 맺힌 한까지 네 년에게 다 풀테니..."
수현은 변호사 삼총사, 희주 자매를 필두로 선거운동원들 모두와 새벽부터 영등포 시장을 들렀다.
이곳에서 선거를 시작하기로 하였다.
어린시절의 추억이 있는 곳. 어린 시절 엄마와 이모가 식당을 하던 자리엔 여전히 같은 간판을 달고 영업중이었다.
그 동안 한달에 한두번 정도는 고아원 방문시 필요한 물품을 사기 위해 들렀던 터라 친숙한 상인들도 아주 많은 편이었다.
다 자란 수현을 몰라 보던 상인들도 선거 홍보물에서 수현이 어린 시절 식당앞에서
광호와 함께 엄마 이모에게 안겨 찍은 빛바랜 사진을 보고 감회가 새로운 듯 눈시울을 적셨다.
선거 운동원들은 모두 같은 색상의 옷으로 통일하였다.
지구당 청년당원들과 카페 회원들, 다른 지역에서 온 자원봉사자들을 선거운동원으로 등록하여 푸른색 면바지에 푸른색 운동화, 흰색 반팔티차림이였다.
상의의 반팔티에는 수현의 환하게 웃는 사진이 칼라로 선명하게 인쇄되어 있어 누가 봐도 수현의 운동원임이 드러났다.
나이가 있는 당원들은 정식 선거 등록원이 아니라 자기 집 주위에서 입소문을 내는 개인 활동을 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
수현이 삼복 더위에 연세 많은 어른들을 바깥에 내보내기 힘들다고 하자 일부 반발이 있었지만 모두들 수긍하였다.
대신 봄에 치러지는 차기 선거에는 어른들 위주의 선거 등록원으로 해 줄 것을 약속하였다.
아침 출근 시간을 제외하고는 중앙당의 요청대로 수도권의 타지역 유세를 지원하였다.
수도권 지역의 같은 당 후보들과는 수현의 공약을 공동 공약으로 채택하는데 합의하였다.
지역 공약은 지역구 사정에 맞춰 달리 했지만 그 외의 공약은 공동 공약으로 추진하기로 하였다.
공동 공약은 언론의 주목을 받는데 큰 효과를 발휘하였다.
절대 열세이던 수도권의 타후보들도 점차 상대와 간격을 좁혀가기 시작했다
반면 중진들이 대거 차출된 야당은 여전히 정권심판론과 진영논리, 유명세에 의존한 단조로운 선거를 하고 있었다.
방송은 이미 이번 선거의 중심으로 떠오른 수현의 일거수일투족을 밀착 취재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공영방송에서는 선거 끝난 후 이를 두시간짜리 다큐로 방송하기도 했는데
휴일 심야 시간으로는 드물게 10프로에 육박하는 시청율을 올리기도 했다.
24시간 수현의 곁을 지키는 변호사 삼총사와 희주 자매는 이미 전국적으로 그 이름을 알리고 있었다
수현이 앞에 서고 희주 자매가 뒤에 있고 변호사 삼총사가 맨 뒤에 있는 장면은 네티즌들이 123 이라는 제목으로 즐겁게 페러디용에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선거전은 이미 일주일이 자나가고 있었다.
숨 가쁜 하루를 마친 수현 일행이 밤늦게 베이스캠프로 돌아왔다.
때맞춰 선거 기간 동안 혜림이 대통령을 따라 유럽과 아프리카 순방을 하느라 비어 있는
혜림의 펜트하우스를 사용하라고 하여 6명은 24시간 동고동락을 결정하였다.
욕실도 방도 많아 6명이 거처해도 사생활 침해의 우려도 거의 없었다.
방학 기간이라 수현의 언니와 올캐가 와서 이들의 건강과 식사를 챙겨 주었다.
선거용 차량 안에서 언제나 마실 수 있는 음료수와 과일,간식을 준비하는 것도 수현 언니와 올케의 몫이었다.
수현의 조카들은 모두 논현동 본가에서 수현 부모가 돌보고 있었다.
일행이 하루 종일 흘린 땀으로 끈적한 몸을 씻고 나와 시원한 거실에서 수박과 차를 마셨다.
무더위에 쉴 새 없이 움직이다 보니 음식은 많이도 섭취하게 되었다.
" 이렇게만 나가면 수도권 10곳은 모두 이길 것 같습니다.
문제는 충청권 3곳인데 그 쪽이 백중세에서 조금도 움직임이 없군요."
" 충청도 양반들이 좀체 속을 드러내지 않아서 그래요. 어느 한 당의 독주도 견제하고요."
" 지난 지방선거에서는 야당이 압승을 했지요. 대선에서는 여당이 이겼고요.
순서대로면 이번엔 야당이 우세할 차례인데...."
참모들의 이야기를 듣던 수현이 말했다.
" 다음 주에 영호남 지원 유세 가서 올라 오는 길에 충청에도 들렀다 가지요."
" 시간이 맞지 않습니다. 이미 잠자는 시간을 최소화 하며 일정을 수립해 놓은 상태라.....
당에서도 충청은 중앙당에서 책임지고 맡는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충청까지 우리가 맡기에는 일정이 너무 빡빡합니다.
안 그래도 우리 지역구에서는 일부에서 너무 낙관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습니다."
수현이 말을 이었다.
" 한표를 이기나 압도적으로 이기나 당선 결과는 같아요.
내가 압도적으로 이기는 것보다는 신승을 하더라도 다른 지역에서 이기는 데 도움이 되면 좋지요.안그래요?"
" 그야 그렇지만....한여름에 무쇠도 아니고 몸이 버틸지...."
지훈이 짠한 눈빛으로 수현을 바라 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 영호남 유세 가서 올라 오는 길에 저녁에 충청도에서 유세하고 거기서 1박해요.
다음 날 오전에 충청도 한 번 더돌고 나서 우리 지역구에 들리고 마지막으로 수도권 돌아요.
충청도에서 선거일 자정까지 36시간 풀가동을 하는 거지요. 잠 안 자고요."
" 알겠습니다 중앙당과 협의하여 그렇게 하겠습니다."
희주의 말을 끝으로 일행은 잠잠해졌다.
선거를 치르면서 모두들 느끼고 있었다.
수현이 보기와는 달리 대단한 체력과 뚝심, 강단이 있다는 사실을....
지훈의 안스러운 눈빛만이 모두의 마음을 대변해 주었다.
2차례의 후보자 토론회가 열렸다.
3선의 상대 후보는 수현에게 집요하게 정치적 시비거리가 될 만한 문제를 제기하며 공세를 폈다.
사실상 열세를 만회할 마지막 기회라 아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수현은 아주 적극적으로 이에 맞섰다.
한동안 수현이 토론회에서 말한 내용이 방송과 언론을 강타했다.
네티즌이 정리한 한후보 토론회 어록이 유명세를 타고.나돌았다.
" 우리당이 뿌리가 친일파 군부독재 정당이라 하는데.... 맞다고 본다..
그런데 60년 정통 야당의 뿌리는 어디인가?
이승만의 농지개혁에 반대하던 호남의 친일파 거두들이 만든 민주당이 그들의 뿌리다.
백범 김구 사후 해공 신익희를 비롯한 임정 계열의 한민당이 일부 가세했다고 항일 독립 정당이 되는가?
당시 민주당의 당수나 간부였던 사람들이 친일파임은 친일인명 사전만 보면 드러나는 사실이다.
" 박정희가 독재라는 과오가 있는 것 맞지만 그 공은 공대로 평가해야 한다.
5.16당시 우리는 1인당 국민소득이 겨우 60불이었고 반면 필리핀은 8백 달러가 넘었다.
허나 박정희 군부 시대와 마르코스 군부 시대를 거친 두 나라의 현재를 비교해 보라
거꾸로 우리가 필리핀보다 국민소득이 20배나 앞선다.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평가해야한다. 그게 역사를 보는 정확한 기준이다."
" 산업화와 민주화 중 어느 것이 더 시급했을까를 따지는데 일고의 가치도 없다.
당시 2차 대전 후 탄생한 모든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신생국들은 냉전 체제하에서
모두 산업화를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다루었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대만은 모두 세습 독재를 하면서까지 산업화를 이룬 나라다.
일부에서 편향되게 과대 평가하는 북한의 김일성조차도 산업화를 최우선 정책으로 두었다."
" 상대가 제기한 고아원 후원을 빙자한 땅투기 의혹에 대해 상대 후보가 고아원에 조금이라도 후원하면
그에게 상시 감사를 맡길 의향이 있으니 한 번 알아 보시라고 되받았다."
" 어린 나이에 국회 업무 수행 능력에 대해서는 열정을 가지고 수년간 충분히 준비를 했고
당선되면 대한민국에서 제일 좋은 국회도서관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 의원중 한명이 될 것이며
법률 제안이나 의회 출석은 상위권에 들도록 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이를 어기면 다음번 출마를 포기하겠다는 말도 했다."
" 헌법상 국회의원의 특권은 국회 발언시 면책, 회기중 불체포 특권인 걸로 아는데
국민들이 모르는 특권이 너무 많다 이건 모두 의원들끼리 자기들 좋자고 만든 것이니 없애야 한다.
예를 들어 보면 상대 후보인 김후보의 경우 현역 시절 1년간 차량의 휘발유로 지원된 국고가 5천만원이 넘는데
이는 리터당 2천원으로 환산하면 2만 5천리터. 휘발유 2만 5천리터면 아무리 고급 차라도
연간 10만 킬로가 넘는 거리를 달렸다는 데 이는 지구를 한바퀴 돌고도 남는다. 그렇게나 많이 다니는가?"
" 부유한 엄친딸? 아버지가 신군부 쿠데타에 반대하다가 낙향해서 농사를 지었고
엄마 따라 식당에서 놀면서 바쁘면 동갑내기 이종사촌과 같이 5살부터 손님상에 물컵 날랐다.
내집처럼 본채 관리를 해주는 조건으로 온 가족이 별채에서 살며 내집 없는 설움을 20년 넘게 맛보았다.
집안의 기둥인 오빠가 졸지에 정권에 의해 타의로 검사직을 그만 두고는 몇 년 간 부모님은 웃음이 없었다.."
인터넷에 검색어 순위 1위를 차지한 수현의 어록들은 선거 기간 내내 화재를 불러 일으켰다.
여의도 여당 당사.
" 황대표, 한후보 덕에 이젠 거의 반타작 승부까지는 따라 붙었군요."
" 그렇습니다. 수도권은 이대로 가면 석권이 가능할 듯 한데...
문제는 충청 3곳이예요.모두 백중 열세라고 봐야 합니다. "
" 염치 없지만 한후보에게 선거 막판 충청행을 요구했어요,
영호남 갔다 오는 길에 충청에서 저녁 유세하고 현지에서 1박 하고
다음 날 오전에 한 번 더 충청 선거지역을 돈다고 하더군요. "
" 몸이 버텨 날까요? 그러다 쓰러지기라도 하면..."
" 충청권의 젊은 유권자들을 선거에 적극 참여시켜야 합니다 그러려면 한후보가 한 번 다녀 가는 게 좋지요."
" 충청에서 수도권까지...36시간을 한후보의 마지막 일정으로 잡았어요."
" 이젠 여론 조사 공표도 못하지요. 현재로선 13곳 중 우세 지역은 잘 봐도 6곳이네요.
그 중 확실한 우위 지역은 영등포 한 곳이고요 나머지는 오차 범위내 접전...7곳은 아직 열세..."
" 남은 나흘이 운명을 가르겠군요."
야당의 선대위 회의.
" 모든 당력을 수도권에 집중해야 합니다 호남과 영남은 제외하세요."
" 그렇지만 그 지역의 유권자들이 소외감을..."
" 한 쪽은 문전옥답 텃밭이고 한쪽은 돌밭이예요.
뻔한 선거 결과인데....접전 양상인 타지역에 집중하세요."
" 그리고 영등포는 포기합니다 거기 갈 인력 있으면 수도권이나 충청으로 보내세요."
" 그렇게 하겠습니다. 근데 한후보는 영호남을 간답니다."
" 뭐라고요? 여당 지도부가 허락했답니까?"
" 그렇답니다.무슨 철인도 아니고....."
" 하여간 상대 후보지만 대단합니다. 지치지도 않는건지....
이번 선거에서 여당 당선자들은 자연스럽게 한후보를 중심으로 뭉치겠군요."
" 현재 판세는 우리가 우위입니다.
아무리 한후보가 발바닥에 땀나게 뛰어 다녀도 보궐선거는 야당이 우세해요
정권심판 성격이라서... 게다가 출마한 우리 당 중진들 지명도도 상당하니..."
그 시각 수현의 베이스 캠프에서는 비상이 걸렸다.
열흘 이상 제대로 쉬지도 자지도 못한 수현이 귀가하고 나서 욕실에서 나와 방안에서 쓰러진 것이었다.
수현 언니인 수정이 급히 조치를 하고 링갤을 놓은 뒤 숙면을 취하며 안정을 찾기는 했지만 모두의 걱정이 늘어졌다.
희주는 비상 사태라 할 수 없이 유럽 순방중인 혜림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은 혜림이 짧게 한마디했다.
" 수현의 현재 상황을 사진,동영상으로 홈페이지에 올려라"
희주가 링갤을 맞고 정신 없이 잠 든 수현의 현황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주위의 침울한 표정들도 같이 올렸다.
얼마 후 인터넷은 발칵 뒤집어졌다.
수현이 지쳐 쓰러진 사실이 일파만파 번져갔다.
여당은 비상이 걸렸고 야당은 쾌재를 불렀다.
수현은 다음 날 아침이 지나서야 눈을 떴다.
변호사 삼총사들은 새벽부터 지역구인 영등포에 가서 선거를 지휘했다.
수정과 인영도 선거사무원들 먹거리를 가져가기 위해 자리를 비웠다.
남아 있는 희경과 희주에게 자초지종을 들었다.
희주가 조용히 혜림에게 알리고 그 조치대로 했다고 하자 수현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수현의 머리엔 혜림의 말이 떠올랐다. 쓸모 없는 개는 가차없이 버린다는 말.
그런 혜림 앞에서 자신은 죽을 힘을 다해 모시겠다고 했는데 벌써 쓰러진다는 건 주인에 대한 배신이었다.
억지로 일어나 씻고 밥을 먹고 기운을 차렸다.
그 때 희주가 전화를 가져와 수현에게 주었다. 혜림이었다.
수현이 무릎을 꿇고 전화를 받았다.
" 예 주인님. 접니다."
" 일어났구나. 많이 힘드냐? "
" 아닙니다 푹 자고 나서 이제 괜찮습니다."
" 그래? 다행이구나. 명심해라 똥개는 주인의 허락 없이는 아플 자유도 없다는 것을"
" 예 주인님,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 내 오른팔로 끝까지 살아 남아라. 내 발밑에서 오래도록 기고 싶다면. 죽을 힘을 다하거라 알겠냐? 똥개"
" 예 명심하겠습니다 주인님.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은 수현이 말했다.
" 영등포에 잠깐 들러 안심시킨 후 예정된 일정대로 움직여요."
" 괜찮겠어? 그 몸으로..."
" 한결 좋아졌어요. 더 이상 주인님 걱정 끼쳐 드릴 수는 없어요."
" 역시 똥개에게는 주인의 한마디가 효과 만점이구만.안 그래 ? 똥개"
" 맞습니다. 전 주인님의 똥개라 죽어도 명령을 수행해야 합니다 수도권 전승을 이뤄야 합니다."
" 혜림님이 멍청한 네 년을 애지중지하는 이유가 이거로구나. 그래 같이 해보자"
" 고맙습니다 희주님, 희경님 "
수현이 희주 자매와 선거사무소에 나타나자 선거 관계자들은 환성을 올렸다.
이미 방송 관계자들이 속보로 타전한 수현의 일거수일투족은 보궐선거의 핫이슈였다.
여론 조사 결과가 공표되지 못하는 일명 깜깜이 기간이 도래했다.
여야는 총력전으로 한여름 더위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수현이 쓰러진 사실을 자작극이라는 야당의 억지주장도 나왔다.
수현은 참모들과 의논하여 그 동안의 일정을 구체적으로 공개하므로서 야당의 자작극 논란을 일축시켰다.
수현의 홈피를 통해 방송에 알려진 일정은 한마디로 살인적이었다.
일정표를 본 후 건장한 청년이라도 그 정도로 혹사하면 쓰러진다는 의사들의 충고와 조언이 이어졌지만 수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걱정이 된 수현의 모친이 단골 한의사를 보내 와 아침 저녁으로 온 몸에 침과 뜸을 떠 가면서까지 수현은 일정을 소화해 내고 있었다.
곁에서 수현을 보는 지훈은 안스러운 마음에 수척해져 갔다.
다행히도 지역구에서는 변호사 삼총사들이 수현의 빈자리를 많이 메꿔 줬지만 다른 지역이 문제였다.
수현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수도권 전지역이 오차 범위의 대접전임을....
여야 지도부가 느끼는 분위기도 마찬가지였다.
고지를 앞둔 처절한 백병전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선거전이었다.
선거 운동 종료 사흘전.
서울을 떠나 영남과 호남으로 지원 유세를 떠났다.
포항과 부산 그리고 광주와 전주, 군산으로 이어지는 먼 길이었다.
수현 진영에게는 오히려 다행인 것이 이동 시간 동안
수현이 차안에서 잠깐이라도 눈을 붙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의사인 언니 수정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같이 동승하였다.
포항의 죽도 시장과 부산의 해운대에서 수현은 예상외의 환대를 받았다.
늘 그 얼굴이 그 얼굴인 지역의 선거에서 젊고 참신한 수현은 신선한 바람이었다.
억센 경상도 아지매들의 응원을 뒤로 하고 호남으로 향했다.
광주의 충장로, 전주의 한옥마을, 군산의 부두가에서도 수현은 당차고 소신 있는 발언을 이어갔다.
수현의 부친이 신군부에 핍박 받은 사실을 아는 지역민들도 대놓고 함부로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한 번 더 이번 선거를 생각해 보는 표정들이 많았다.
그리고 도착한 충청의 유세장에서는 영등포 못지 않은 환호를 받았다.
지역의 출마자들은 그런 반응을 보고는 고무되는 표정이었다.
충청의 박빙의 승부가 조금씩 추가 기우는 것이 느껴졌다.
유성 온천에서 1박을 한 수현은 한결 몸이 회복되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36시간.
그 중 8시간을 충청에서 쏟아 붓고 서울로 돌아와 자신의 지역구를 향했다.
지역구 유세를 하고 당직자들을 격려하고는 선거사무소로 들어가 잠깐 눈을 부쳤다.
이젠 마지막 남은 힘을 다 쏟아 부어야 할 시간이었다.
전 선거운동원들이 남은 24시간을 샅샅히 훝는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달라고 한 수현이 인근 수도권으로 지원 유세를 떠났다.
그렇게 보름간의 필사적인 선거 기간이 끝나고 선거 운동을 종료를 알리는 자정이 되었을 때
수현은 옆에 있던 지훈의 품에 쓰러져 그대로 잠이 들었다.
자신을 바라 보며 울먹거리는 지훈의 표정이 수현이 마지막으로 본 모습이었다.
수현이 눈을 뜨자 걱정스러운 모습의 지훈이 보였다.
“ 일어났어요? 수현님”
“ 지금 몇시? ”
“ 오후 5시예요. 17시간을 계속 잔 거지요.”
“ 뭐라고? 깨우지 않고. 투표 마감 시간은요?”
“ 8시까지예요. 일어나 씻고 뭐 좀 먹고 투표하러 가요. 밖에 방송팀들 눈 빠지게 기다려요.”
“ 알았어요.잠시만요.”
수현이 자신의 오피스텔에서 나오자 기다리던 방송팀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 한후보님, 몸은 괜찮습니까?”
“ 예 많이 잤더니 좋아졌어요.”
“ 선거에 대한 예상은요?‘
“ 최선을 다했으니 좋은 결과 기대합니다.”
“ 일부에서는 현실 정치를 무시한 공약이라는 ...”
“ 그렇지요. 현실 정치가 좋았다면 제가 뭐하러 정치한다고 나오겠어요?
그냥 많은 연봉 받으며 편하게 직장 생활 하지요...오늘은 이만해요 투표하고 좀 쉬고 싶어요.”
“수현씨 갑시다.”
지훈의 차를 타고 인근 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친 수현이 선거사무소로 들어가 그 동안 수고한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투표 결과를 기다리던 도중 당직자들과 선거 기간 이용한 인근 식당에 들러 저녁을 마친 수현이 선거사무소에 앉아 조용히 선거 결과를 기다렸다.
8시 투표가 마감되는 시간. 뉴스 자막이 떴다.
예상의석수 한마음당 15석, 새민주당 3석이라는 글자를 보는 순간 사무소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곧 이어 지역구별로 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예상되는 최다 득표는 수현의 영등포 지역이었다.
그리고 영남과 호남은 예상대로 여야의 텃밭임을 확인해 주었다.
여당으로서는 그나마 호남에서 예상보다 많은 득표가 기대되는 것이 위안거리였다.
충청은 여당의 우세로 바뀌었고 수도권은 여당의 백중우세였다.
오차 범위내 선거 지역이 몇군데 되어 마지막까지 결과를 모른다는 소리에 수현의 안색이 바뀌고 고개가 숙여졌다.
‘그렇게 기를 쓰고 필사적으로 했는데도 몇군데는 장담을 하기 어렵다니.
나는 이대로 주인님에게 버림 받는 것인가? 아 주인님.’
옆에서 그런 수현을 보는 희주도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 혜림님 성격에 전승 못하면 아마 가차없이 버릴텐데....개년 불쌓해서 어쩌냐.’
그렇게 몇 시간의 피가 마르는 시간이 흘러갔다.
밤 11시를 넘어서자 16곳의 당선자가 확정되었다.
여당 13. 야당 3이었다.
남은 지역은 인천과 부천이었다.
전통적으로 야당의 강세 지역. 지방선거, 대선 모두 야당이 이긴 곳이었다.
두 곳의 치열한 개표는 초박빙이었다.
여당이 조금 앞서 가지만 살얼음판이었다.
12시가 넘어가 새로 2시로 접어들 시간 서서히 표차가 나며 당락이 갈렸다.
여당 후보의 승리였다.
불과 몇백표 차이로 여당이 보궐선거 사상 최초로 수도권과 중부권 전승을 한 것이었다.
수현의 핏기 없던 얼굴이 화색이 돌았다.
‘ 다행이다. 주인님 발 밑에서 다시 똥개처럼 길 수 있게 되어....주인님 뵙고 싶습니다.’
수현의 모습을 보던 희주는 나지막히 웃었다
그리고 조용히 수현의 귓가에 속삭였다.
“ 축하해 똥개 69호. 개보지 젖어 들었냐?”
희주의 말에 얼굴을 붉히며 수현이 고개를 끄떡였다.
승리의 함성과 함께 한밤이 깊어 가고 있었다.
그 시각 유럽을 순방중인 혜림도 속보를 보고 있었다.
"한수현, 아니 똥개 69호 해냈구나.
앞으로 내가 네 년에게 어떤 개같은 아니 개보다 못한 일들을 요구할지 짐작도 못하겠지.
후후, 기대해도 좋아. 천박한 더러운 똥개.....
마르스님에게 맺힌 한까지 네 년에게 다 풀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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