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다이 / 후세인 장남
쿠사이 / 후세인 차남
아이스 / 한국인
부시 / 텍사스 주지사
에드워드/ 미 상원의원/리브의 아버지
간첩을 다룬다는 것은 신기에 가까운 일이지. 아니 신기라고 할 수 있지. 신이 아니면 할 수 없다는 말이네. 후한 상을 주는 것은 물론이며 무한한 신뢰를 주어야하네. 그렇지 않고서야 그가 어떻게 나를 따르겠나.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울 지도 모르는데 단지 돈이 좋아 나서서 하겠는가. 아니네. 믿음이 있어야 하지. 간첩도 적의 고을사람을 이용한 향간, 적의 관리를 이용한 내간, 적의 간첩을 이중으로 이용한 반간, 아군의 간첩으로 하여금 거짓 항복케 하여 거짓 정보를 흘리는 사간, 적지에서 살아 돌아와 보고하는 생간이 있지. 자네는 어떤 쪽일까?
- 알렉스가 아이스에게 <용간>을 말하며
제 13부 사막의 여우.
미 텍사스주지사 집무실. 부시는 느긋한 오후 햇살을 즐기며 집무실을 서성거렸다. 아버지의 뒤를 이은 그는 앞날이 창창히 보장된 그야말로 행운아였다. 특히 텍사스 마피아는 강했다. 미 정부의 심장을 장악한 마피아는 감히 그 누구도 접근을 못했다. 자신도 이제 중앙으로 나갈 것이라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녔다. 중앙이란 곧 미합중국을 대표하겠다는 말과 같은 의미다.
부시의 이 한가롭고 고즈넉한 시간을 깨트린 사람이 에드워드다. 상원의원이며 텍사스에선 무시할 수 없는 인물 - 에드워드가 부시를 찾은 것이다.
“주지사. 아무래도 내 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 같네. 전쟁 통에 죽은 지 알았는데 글쎄......,”
뒷말을 흐리는 그에게 부시는 영문을 모른 표정이다. 죽었다는 딸이 그럼 살아있다는 말인가. 그럼 됐지, 하는 얼굴이다.
“글쎄, 이 사진을 보게나.”
사진은 보기에도 민망한 모습이다. 금발의 소녀가 다리를 벌리고 의자에 앉아있는 포즈인데 아랫도리를 훤히 보이고 뭐가 좋은지 키득거리며 웃고 있지 않은가. 마치 남자친구하고 몸을 섞으며 놀고 있는 듯한 사진이다. 그런데 다른 사진을 꺼내 보이는 에드워드는
“이보게 이 사진은 또 뭔가.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그 사진은 보기가 더 민망했다. 금발 소녀와 붉은 빛 머리를 가진 소녀가 한 남자의 성기를 서로 탐닉하는 것이 아닌가.
주지사 부시는 하마터면 자신이 흥분으로 아랫도리가 팽창할 뻔했다. 그 만큼 자극적인 사진이다. 얼굴이 예쁜 소녀들은 더구나 리브 같은 금발의 소녀들은 이 텍사스에서도 자주 즐기지 못한 부시다. 기껏해야 뉴욕이나 LA에 가야 맛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속으로 이 놈은 재주도 좋군, 어떻게 이런 어리고 예쁜 금발 소녀들을 데리고 노나, 한 부시다. 사실 텍사스 마피아 그룹은 가끔 부시의 별장이 있는 미시시피 강에 가 여자들을 불러 파티를 벌이곤 했다. 마약도 조금 하고 알코올도 도가 지나칠 정도로 마시고 여자들, 남자들 구분 없이 뒤섞여 섹스를 하곤 했다. 이것도 지치면 흑인들을 불러다 집단으로 춤추게 하고 그녀들의 검은 피부에 땀이 흐르는 것을 즐기곤 했다. 이들은 그 예전 노예들을 마음대로 부리던 시절이 그립기만 했다.
“어디가 어째서 그랍니까? 요즘 애들 다 그렇지 않아요. 리브나 친구들이 여행 중에 즐기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내가 가족 문제로 끝내지 왜 주지사를 만나겠는가?”
화가 묻어난 음성으로 에드워드가 말하자 그때서야 부시도 아차, 한 심정으로 귀를 기울였다.
“아, 그렇군요. 저번 쿠웨이트 전쟁 중에 실종됐다고 했었죠? 그런데 이렇게 사진을 찍히다니 이상한 일이군요. 혹시 유럽이나 북구라파 쪽 노예사냥꾼들에게 끌려간 것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찾기가 쉽지 않을 텐데......,”
여전히 심드렁한 부시의 말을 받으며 에드워드는 단호하게 소리쳤다.
“그것이 아니었네. CIA에 있는 가까운 친구에게 분석을 의뢰 했더니 이 사진이 찍힌 장소는 바로 중동이었다네.”
사실은 에드워드가 처음 CIA에 의뢰한 것이 아니다. 거꾸로 이 사진을 가지고 CIA에서 자신을 찾은 것이다. 그의 이름은 알렉스라는 중동담당 요원이었다. 인상이 수더분해 보여 무슨 공무원 같았지만 겉만 그런 사람이었을 뿐 속은 그렇지 않았다. 어떻게 이 사진을 찾았는지 그리고 이 애가 자신의 딸이란 걸 어떻게 알았는지 정말 예리한 사람이었다.
사진 속 소녀들은 리브와 페기, 알리스였다. 소녀들의 부모는 이 텍사스에선 힘깨나 쓰는 오피니언 리더들이었다. 만약 이 사진이 세상에 드러나면 한바탕 뒤집혀질 것이다. 음란한 소녀들이란 제목으로 미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 포르노사이트의 전면을 채울 것이다. 그리고 그 이름 아래로는 부모들의 이름과 직업이 줄줄이 적힐 것이다.
처음 알렉스가 찾아와 사진을 내밀 때는 그런 걱정이 앞섰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알렉스의 말은 그런 성격이 아니었다. 미국국민이 중동에서 성적 학대를 받았다고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여론은 불처럼 타올라 전국을 태울 것이다.
“분석에 의하면 여기는 중동 중에서도 바그다드라고 하네. 그리고 이 사진 속의 남자는 백인이 아니라 아랍인이며 나이는 스물 후반이나 서른 초반이라고 하더군. 결혼을 했으며 집안 장식으로 봐 보통 사람은 아니고 대단한 상류층이라고 하네. 근데 이 남자 반지를 보게. 어디선가 보지 못했나. 영국표식이 있는 반지”
남자의 손은 잘 보이지 않았다. 에드워드가 다른 사진을 꺼내자 그때서야 선명한 반지가 보였다. 열 배는 확장한 사진이지만 선명했다.
“그럼 이 놈이 누구란 말입니까?”
“바로 후세인의 아들 우다이라고 하네. 그 놈이 바로 영국에서 학교를 나왔다고 하네.”
맞다. 우다이는 영국에서 학교 다닌 걸 명예로 생각했다. 그래서 동생 쿠사이와 사이가 별로 좋지는 않았지만.
“근데 주지사. 더 중요한 것이 있네.”
그때부터 부시는 긴장한 얼굴이다. 아버지를 닮은 조금은 기다란 얼굴이 굳어지며 에드워드를 봤다.
“여기 제목이 뭔가 보게 나”
사진에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미국 땅에 깃발을> 이란 제목이다. 남녀의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제목이다. 그때서야 부시 주지사는 역력히 화가 난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말도 안 돼는 놈이군. 우리 미국을 우습게보다니. 당장”
주먹을 휘두르는 부시를 보며 에드워드 의원은
“그 전에 내 딸을 찾아주게. 주지사는 아버지의 힘이 있잖나. 내가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으니”
“알았습니다. 우리는 선후배며 같은 길을 가는 동지가 아닙니까?”
조지 워커 부시의 아들 조지 부시. 클링턴 바로 전 미합중국대통령이 바로 자신의 아버지인 조지 워커 부시다. 목소리엔 자신감이 넘쳤다. 아버지 부시가 만들어 놓은 텍사스마피아는 워싱톤 심장부에 또 하나의 인너서클을 구축해 놓았으니 바로 일명 네오콘이다.
1998년 8월의 워싱톤.
썸머독이 한창이다. 한마디로 개 같은 여름인 것이다. 빌딩을 태울 듯한 더위는 거리의 사람들을 ?아냈다.
미국기업연구소 AI. 폴 울포위치, 딕 체니, 루이 리비, 럼스필드. 일명 4인방. 부시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를 하고 비록 물러났어도 이들의 힘은 그 위력이 여전했다. 국무부, 국방부, 백악관 그 어디고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부시를 마주한 4인방은 마침 좋은 먹이 감을 기다리는 여우의 심정으로 그가 꺼낸 사진을 돌려 보았다.
“이런 미친놈들. 감히 우리 미국을”
성질 급한 럼스필드는 사진을 찢듯 집어던졌다. 딕 체니는 그에 비하면 여우였다. 잔잔한 웃음을 흘리며 부시를 건네 보았다.
“역시 자네는 대단한 인재야. 이 정도면 클링턴 내각을 충분히 움직일 수 있네. 물론 다 알고 왔겠지만. 그렇지 않은가?”
“후후후. 물론입니다. 우리가 다시 중동 땅을 집어 삼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준 것이죠. 물론 그 멍청한 우다이란 놈이 준 것이지만. 어찌됐든 중동은 우리가 가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맞은 말이오. 텍사스주지사. 자네야 말로 다음을 이을 우리들의 기대주요. 항상 조심해주기 바라오.”
“고맙습니다. 여러분들의 노력은 언제고 잊지 않고 있습니다.”
주시가 일어나 나가자 4인방은 만면에 웃음을 띠우고 즐거운 드라마를 보고 난 후처럼 껄껄, 댔다. 먼저 딕 체니 가 나섰다. 국방부의 숨은 실력자 ‘체니’다.
“이걸로 이라크는 끝났소이다. 저번 쿠웨이트 전 이후로 끝장을 낼 걸 질질 끌더니, 쯧쯧”
“맞습니다. 클린턴은 너무 물러 터졌소. 강하게 밀어붙입시다.”
쿠웨이트 전쟁. 호르무즈 해협을 싸고 벌어진 미 이라크전은 미국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그때도 네오콘은 밀어붙이자고 여론을 조성했지만 클린턴으로 정권이 바뀌면서 흐지부지 된 것이다.
“마침 또 한 건이 있는 것 다 아시죠?”
루이 리비다. 백악관 보좌관. 정보는 죄다 꿰고 있는 그다.
“이라크 핵 사찰단이 무조건 쫓겨났습니다. 핑계거리로는 충분합니다. 우리 내부로는 이 사진, 세계 여론으론 그것으로 밀어붙이면 됩니다.”
“좋소. 그럼 언제?”
딕 체니가 좌우를 둘러보며 결론을 내린 듯 내뱉었다.
“금년 말이 좋겠소. 12월 17일이 ‘디데이’오.”
“지금은 여름이니 과일이 익기 좋은 계절이 아니겠습니까? 충분히 익은 과일을 저장해 놓았다 눈이 내린 겨울 저녁 식탁 위에 놓고 맛있게 먹읍시다. 하하하”
럼스필드의 호탕한 웃음으로 네오콘의 모임은 끝났다.
아이스는 바로 앞에 앉아 있는 알렉스를 멀거니 보고 있을 뿐이다. 얼마 전부터 자신이 점점 더 바그다드와는 멀어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 3인방의 견제려니 했는데 그것은 아니었다. 순간 토사구팽? 이란 생각도 했지만 뭔가 느낌이 달랐다. 쿠웨이트 전쟁 이후 바그다드는 더 긴장의 연속이었다. 더구나 우다이와 쿠사이는 세상모르고 날뛰었다. 걸핏하면 사람들을 붙잡아 목을 치거나 배를 가르는 등 야만의 땅을 만들고 있었다. 아이스는 그런 모습에 차가운 미소를 보냈지만 자신이 멀리 떠나 있는 것 같은 소외감은 피할 수 없었다.
“자네는 간첩이었네. 이제야 말하지만 처음부터 내가 만들어 놓은 사람이 바로 자네네. 언젠가 내가 말한 것 기억하고 있나. 앞으로 크게 할 일이 있을 거라고. 이제 때가 되었네. 자, 여기 가방이 있어. 뭐가 들어있는 지는 자네가 더 잘 것이네. 그리고 참 한 가지 빼트릴 뻔 했군. 우다이 관련 공작은 아주 성공이었네. 역시 ‘아이스’ 다워. 자네는 뛰어난 간첩임에 틀림이 없어. 워싱톤에서도 진가를 인정하고 있으니 좋은 소식 기다리겠네. 아 그리고 그 신 미나라는 여자도 우리와 함께 일하고 있네. 그럼 이만 ”
좋은 소식?
알렉스가 사라지자 아이스는 검정 가방을 멀거니 바라본다. 이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열어보지 않아도 뻔하다. 저격용 총 아니면 플라스틱 폭탄일 것이다. 상대는? 그것도 우문이다. 후세인 아니면 누구겠는가? 조국 발전의 염원을 혼자 짊어지고 험한 길을 걷는 그를? 한 사람의 평가는 그 누구만큼 다르다. 이 사람이 호면 다른 사람은 오다. 오호가 교차하는 것, 가끔은 애증이란 표현으로 대신한다. 사랑하면서도 미워하는 애증이란 게 이런 것일까? 그건 아니겠지. 한 사람을 애증으로 평가하는 것과 한 사람을 여럿이 판단하는 것과는 다르겠지. 그럼 나는?
아이스는 긴 시간 검정 가방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선택은 단 하나. 그를 죽이는 것. 가장 가까운 측근이 항상 배신을 하는 것이 역사다. 시저도, 칼리큘라도, 네로도, 그렇고 보면 로마란 나라가 배신이 점철되는 나라였나 보다. 어디 로마뿐이겠는가? 세상이 다 그렇겠지. 좋은 소식을 기다리는 마음을 갖고 있는 나 역시 그 들 중 하나이겠고.
1998년 12월 초. 낮부터 흐린 하늘에선 눈발이 조금 날렸다. 사막의 땅이지만 겨울은 예외 없이 찾아왔다. 낮은 지역은 그나마 따뜻했지만 조금 높은 지역은 외투를 거쳐야할 정도로 추위가 매서웠다.
이라크 서부, 그러니까 바그다드에서 70여키로 떨어진 도시 라마디. 추위만큼이나 차가운 공기가 흐르고 있는 도시 라마디의 아부 굴랍 정치범 수용소. 철문마저 얼어붙은 듯 손을 대면 쩍쩍 달라붙었다.
차가운 철문을 열며 들어선 사람은 쿠사이다. 그는 폐다인민병대 사령관이며 이라크군사평의회 부의장 자격으로 이곳을 방문한 것이다. 공식적으로는 그렇지만 비공식적으론 아랍무역협회에 대한 따끔한 손보기다. 형 우다이와 무역재벌 안와프의 연결 고리를 끊어버리기 위해 노력을 했지만 별무소득이었다. 무엇이 그를 형과 강하게 고리를 짓게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슬슬 구슬려도 화답이 없었다. 그렇다고 직접 두드리자니 주위의 이목을 무시할 수 없었다. 한번 손을 보려고 벼르다 마침 적당한 핑계거리가 생겨 대원들을 풀어 붙잡아 온 것이다. 핑계거리? 별 것은 아니다. 갖다 붙이면 되는 것이 핑계가 아닌가.
한두 번 찾아온 이곳이 아니지만 오늘따라 더 복잡한 생각이 교차했다. 만약 실패하면 형과 안와프 나자르와 자기 관계는 더 악화될 것이 뻔했다. 쿠사이의 머리 속은 그런 생각과 동시 연인이며 누나인 라다의 말로 골이 지근지근 쑤셨다. 떨어져 있으면 라다의 그 아름다운 눈동자와 포근한 젖가슴이 잊혀지지만 그녀 앞에서는 한없이 어린아이가 됐다. 너무 큰 상수리나무 밑의 작고 초라한 아카시아 같은 것, 자신이 그렇게 느껴지기만 한 것이다.
라다는 쿠사이의 품에서 그 큰 눈을 깜박거리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쿠사이에게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계속 요구했다.
“저요, 사령관님.”
향긋한 유두를 깨문 그에게 그녀는 또 고급 가죽제품을 갖고 싶다고 했다. 뭐냐? 는 눈 질문에 라다는 큰 눈을 더 크게 뜨며, 마치 검은 눈동자에 그를 가두어 버리려는 듯 가까이 얼굴을 대며
“음......, 구두가 다 헤졌는데, 백도 낡았고,”
“......”
쿠사이는 고개를 끄덕이기만 할 뿐이다. 그녀가 갖고 싶은 것은 다 해주고 싶었다. 오픈 카는 물론이고 고급 드레스며 반지 따위 귀중품까지 다 해준 그다.
“누님은 갖고 싶은 것이 참 많아요.”
“또 누님이라고 한다. 그냥 라다, 이렇게 불러주면 안 돼?”
“그래요. 라다. 됐어요?”
“좋아, 좋아. 저 라다는 항상 사령관님을 사랑하고 아낄게요. 이렇게”
그녀는 길고 가지러한 손가락을 뻗어 그의 바지 속을 훑어 내려갔다. 그때마다 쿠사이는 등줄기의 뜨거운 물결을 견디지 못하고 거친 숨을 내쉬었다. 세상의 모든 뜨거움을 다 가지고 있는 입맞춤이었다. 아무리 만년설이 덮인 에베레스트라도 그녀의 이 뜨거운 입김을 쐬면 다 녹아내릴 것 같았다.
“으으......, 후우.....,”
쿠사이는 그녀의 입술이 아랫도리를 스치기만 해도 살결이 부르르 떨며 성기가 꿈틀거렸다.
그녀에게서는 끝없는 사막을 달리는 말의 발굽 소리가 들렸다. 땀으로 흥건히 젖은 갈기를 날리며 거침없이 뛰어가는 말. 라다의 갈색 피부는 정말 그 갈기처럼 부드럽게 그의 손가락 사이로 흘렀다.
아니다. 그러면서도 초원의 향기를 내풍겼다. 지천으로 깔린 들꽃 위를 맨몸으로 뒹굴고 있는 자신을 본 것도 같았다. 코에 파고드는 은은한 향기, 그녀의 내음이다.
쿠사이는 하체를 들며 그녀의 길고 뜨거운 입맞춤을 견디지 못하고 그녀의 하체를 들어 얼굴 위로 옮겼다. 땅의 관대한 축복이 그의 얼굴 위로, 입으로 쏟아져 내렸다. 들꽃의 향기를 마시며 쿠사이는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턱수염이 덥수룩한 아부 굴랍 수용소장은 툴파와 말을 나누다 이미 준비를 했다는 듯 서둘러 지하로 안내를 했다. 밖의 차가운 공기와는 다른 느낌의 서늘한 공기가 얼굴에 닿았다.
계단을 3,4분 동안 내려가서야 굵은 나무로 된 통문이 나오고 그 문을 지나서야 조금 널찍한 공간이 나왔다. 냉기가 몸을 움츠리게 할 정도로 추웠다. 입에서 하얀 김이 나왔다. 냉기가 흐르는 공간은 서너 칸의 또 하나 작은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다. 언뜻 보면 큰 선반 같았다. 작은 공간 하나마다 얼굴이 가려진 사람이 들어있는 게 보였다. 얼굴은 검은 두건으로 가려져 누구인지 구분이 안 갔지만 남자와 여자 구분은 가능했다. 전통 아랍옷차림도 있지만 제법 개방적인 사람은 양복이나 양장을 입고 있다.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아 손들은 앞으로 모아져 차가운 쇠붙이, 수갑에 채워졌다. 도망갈 곳도 도망칠 수도 없지만 기를 죽여 놓으려는 것이다. 이미 기는 죽었다. 입구에서부터 여기까지 오는 동안 눈은 보이지 않아도 울음소리 비명소리 등에 이미 쫄아 든 그들이다. 아니 그 이전에 앞에 나타나서 ‘우린 ISO야’란 말에 등줄기로 소름이 스쳐간 그들이다. 지금 그들의 귀에 들리는 목소리는 지옥의 우물을 타고 들려왔다.
“난 항상 궁금해 왔는데 말이지 거 있잖아? 항문 말이야. 남자와 여자 중 어느 구멍이 더 잘 들어갈까? 툴파, 자네는?”
툴파는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냉기가 흐르는 공간을 둘러보며 쿠사이의 말에 적당한 장단을 맞췄다.
“각하. 아무래도 구멍은 여자가 더 전문 아니겠습니까? 아랫구멍이나 뒷구멍이나 똑 같은 구멍인데 여자 하면 역시 구멍이고 거기도 더 잘 들어가지 않겠습니까?”
“그래? 그렇다면 증명을 한번 해보게나.”
쿠사이는 오래 전 이곳에서 아이스의 철제 기둥을 떠올렸다. 형이 즐거운 몸으로 어린 계집아이를 올라타고 있을 때 아이스는 기름칠한 철제 기둥에 그녀들의 남편과 오빠들을 얹어놓고 항문을 뚫었었다. 그때 쿠사이는 섬뜩한 섬광이 머리를 후려쳤다. 아찔한 느낌, ‘쏴아’ 소리를 내며 자신을 담금질하는 푸른 연기. 그것의 기억은 너무나도 선명했다.
아랍무역협회 직원은 모두 서른 명 정도. 지금 끌려온 인원은 모두 안와프 나자르와 관련이 있는 업무를 보고 있는 그러니까 수입부다. 외국의 농산물을 수입하는 데 이들의 역할이 컸으며 이들의 도움으로 안와르는 부를 축적하고 그 부의 일부를 형 우다이에게 넘겨준 것이다. 꼬투리는 쉽게 잡혔다. 안와르의 계좌를 추적하니 일정액이 협회 쪽, 주로 수입부의 직원들에게 골고루 나눠준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안와르를 엮을 수 없는 것. 더 큰 게 필요했다. 클수록 돌아온 곳도 많은 것이 아닌가.
“이봐 간수 저기 두 놈 끌고 와. 덜덜 떨고 있는 저기 저 놈과 저 쪽 저 년.”
“예. 저기 치마차림 저 여자 말이죠. 알겠습니다.”
몸은 둔해 보일 정도로 비대했지만 그 놀림은 잽쌌다. 간수의 몸이 커서인지 손에 잡힌 여자는 깃털처럼 가벼워 보였다. 대롱대롱 매달린 여자는 비명을 내지르며 발길질을 해댔다. 얼굴은 검은 두건으로 가려져 있어 자신을 붙잡은 사람도 소름 끼친 말을 던진 사람도 누구인지 몰랐다.
발길질이 심한 바람 탓에 검정 구두가 벗겨졌다. 두꺼운 스타킹을 신은 다리와 발을 그때까지도 허공으로 쳐댔다. 닿지 않은 바닥이 더 무서움을 준 것일까 여자는 몸을 뒤틀며 울음 섞인 비명을 냈다.
“시끄럽군, 조용히 시켜”
“아니, 오히려 더 즐겁지 않나? 배경음악도 없는데 이런 소리까지 없으면 더 적막하지 않겠어. 그렇지 않을까? 툴파”
“아, 예. 맞습니다. 이봐, 간수. 더 크게 비명을 지를게 하라고”
툴파는 쿠사이의 한 마디에 몸을 낮추고 간수보다 더 심하게 여자를 후려쳤다.
‘케에에엑,’ 발길에 채인 똥개 울음을 냈다. 툴파의 손이 여자의 갈빗대를 후려 친 것이다. 통증도 통증이지만 가슴이 울렁거릴 정도로 그 아픔이 컸다. 누구인지 보이지 않은 사람이 보이지 않은 곳에서 자신을 때린다는 것, 그것은 너무 무서웠다.
“벗겨서 눕혀. 궁둥이가 보이게.”
쿠사이는 두어 발짝 떨어져 치마와 상의가 찢겨져 나가는 여자를 즐거운 눈으로 봤다. 여자를 벗기는 경우는 두 가지가 있다. 사랑스런 여자의 속옷을 벗기는 떨리는 손이 있지만 이처럼 수치심을 주기 위해 강제로 찢어발기는 것도 있다. 설렘은 똑 같다. 하얀 속살을 보이며 옷이 벗겨져 나간 여자는 누가 보더라도 군침이 돌 것이다.
“엉덩이를 높이 해서 묶으란 말이야. 다리를 쫙 벌리고 엉덩이를 들게 해”
간수가 무릎을 구부리게 하고 종아리와 발목을 묶자 여자의 엉덩이는 두 쪽이 벌어지며 부끄러운 곳을 내보였다.
툴파는 그때까지도 소리를 내지르던 여자의 엉덩이를 만지며 쿠사이를 봤다. 고개를 끄덕이자 손가락을 꼬나 세우곤 항문을 건드렸다. ‘이이이익!!!’ 차가운 손가락의 감촉. 전갈이 살결을 스르륵, 스르륵 걷는 느낌. 여자는 또 목소리를 높였다. 허리를 비틀지만 사지가 묶인 몸은 1센티도 움직이지 못했다. 통통한 엉덩이다. 나이는 스물 후반. 개방된 여자이기에 협회에서 업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라크는 사회주의를 지향하지만 여자에게만은 일자리나 교육이나 제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됐으면 다음 상대를 끌고 와야지, 뭐 하나?”
항문을 만지작거리다 바로 아래 갈색 털이 부수수한 음문을 손으로 집으며 희롱하던 툴파는 바지에다 손을 닦으며 간수를 데리고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모두 검은 두건을 얼굴에 덮어쓰고 있어 인기척으로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추위에 드러난 손이 파랗게 얼어붙고 있었다. 그러나 추위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으니 바로 육체적 고통과 굴욕이다. 발가벗기는 굴욕은 참을 수 없는 슬픔이다.
툴파가 끌어온 남자는 서른이 넘어 보였다. 손이 뒤로 돌려져 역시 수갑에 채워졌다. 질질 끌고 온 간수가 여자가 엎드린 채 묶여 있는 목제침대 옆에 같은 자세로 묶었다. 옷은 발가벗겨져 하체와 상체를 모두 드러냈다. 다행이라면 이곳은 살을 파고든 추위는 없다는 것이다.
“내기를 계속해 볼까? 툴파 너는 누가 더 잘 들어간다고 했지? 여자라고 했나?”
“아, 네. 제가 볼 때는 여자들이 더 잘 들어 갈 것 같다고 했습니다만”
눈치를 살피는 툴파다. 결정은 아니 설사 여자가 더 잘 들어간다고 할지라도 쿠사이의 말을 따라야 하는 것.
“하하하, 그렇다면 시작해 볼까. 서로 반대로 옮겨라구”
엉덩이를 들어 올린 둘은 얼굴이 아니라 엉덩이를 서로 마주보는 자세가 되었다. 얼굴은 바닥에 찌그러트릴 정도로 뭉개져 있다. 표정은 아마 가관일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 지는 그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무지막지한 구타나 전기고문을 떠올린 그들은 하체에 차가운 물체가 닿자 허벅지와 어깨를 떨었다.
간수가 두 엉덩이 가운데에 기계 비슷한 것을 놓고 끝이 날카로운 파이프를 끼웠다. 덩치 좋은 간수가 그 기계 손잡이를 잡고 돌리자 파이프는 날카로운 끝을 세우며 둘의 하체로 찾아갔다. 항문 주름을 조금 벌리며 파이프가 멈추자 쿠사이는 둘에게 들으란 듯
“오늘 내기는 아주 중요한 거야. 누가 더 깊이 박힐 것인가 아마 최초 실험이 아닌가 싶은데 그것도 영광으로 알아라구. 길이야 파이프 눈금으로 다 알 수 있지만 난 그런 수치상 기록보다는 인간적 기록을 더 좋아하지. 누가 더 깊이 들어 갈 수 있는 가? 무척 궁금하군. 먼저 비명을 아니 신음소리 하나 내면 그 자가 바로 실격이야.”
쿠사이는 웃음을 흘리며 하얗게 드러난 둘의 하체를 손바닥으로 톡톡 두드리며 간수에게 눈짓을 보냈다.
실내의 공기는 무거움 그 자체다. 쿠사이가 말을 끝내고부터 둘은 가느다란 신음 하나 내지 않은 것이다. 들리는 소리라곤 기분 나쁜 기계음이다. ‘끽끽’ 나사가 돌아가며 내는 쇠붙이의 마찰음은 고막을 진동시키고 엉덩이 가운데 검붉은 살점의 구멍을 뚫고 들어갔다.
날카로운 끝은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연역한 살이나 근육은 쇠를 당하지 못했다. 한번 파고든 파이프는 1센티, 또 1센티 항문의 깊이야 뻔한 것. 숨을 죽이고 입을 크게 버리고 있던 여자의 두 눈이 빠져나올 만큼 커졌다. 마치 파이프가 눈알을 밀어내고 있는 듯 하다.
이빨을 악물고 있는 남자도 예외 없다. 눈을 감고 아픔을 참으려 하는 모습이다.
“얼마나 들어갔나?”
2 분여가 지나자 툴파가 궁금하듯 피가 조금 흐르는 둘의 항문을 보며 간수에게 물었다.
파이프의 굵기는 직경이 3센티 정도. 그러나 근육이 늘어날 수 있는 여지의 한계를 넘었다. 위와 아래의 살이 찢겨졌다. 팽창한 근육이 파이프를 물고 있다.
“한 5센티 정도 들어갔습니다. 계속할까요?”
간수는 기계의 손잡이를 천천히 돌리며 쿠사이를 봤다. 더 돌리면 아마 내장이 상처를 입어 죽을 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쿠사이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계속하라는 지시다.
다시 파고든 파이프가 조금 더 들어가자 몸을 앞으로 빼려는 둘의 하체와 상체가 부들부들 떨었다.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이 고통을 소리로 잊고 싶었다. 차라리 죽더라도 외치고 싶었다. 이 땅의 모든 저주를 퍼붓고 싶었다. 그러나.....,
그 뒤는 더 무서운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둘이다. 여기서 먼저 신음을 내면 지는 것이고 실격자는 무자비의 고통에 떨어질 것이다.
비명은 여자가 먼저였다. ‘아악!!!’ 조용한 실내를 채운 비명은 줄어들지 않고 더 커졌다. 온 몸이 식은땀으로 흥건한 여자는 눈물을 철철 흘리며 살려달라는 읍소다. 흰자위가 가득한 눈이다. 검은 눈동자는 빠져 나간 듯 하다. 파이프를 따라 붉은 피가 흐르고 있다. 어픔에 오줌을 지린 여자는 얼굴을 널판에 묻고 허리를 비틀고 있다. 날씬한 허리와 풍성한 힙이 매력 있는 여자다. 허벅지와 종아리는 힘을 주어서인지 핏줄이 굵어 있다.
“기록은?”
“7센티 50입니다.”
“툴파, 자네가 졌어”
“죄송합니다. 제가 잘 몰랐습니다.”
“하하하, 모르긴 뭘 모른가. 나도 모를 일인데. 그건 그거고 이거 빨리 치우지”
두건을 뒤집어 쓴 남자는 뻘뻘 땀에 절은 얼굴로 살았다는 안도감을 갖고 있었지만 갑자기 거세게 파고든 힘에 눈알을 휘번득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탁한 비명. 온몸을 떨던 남자는 점점 지나자 떨림이 멈췄다. 파이프는 이미 30센티 이상 들어갔다. 날카로운 끝이 심장을 찔렀거나 위장을 찔렀는지 얼굴 아래로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럼 툴파, 우리 또 내기할까? 자네가 아까 여자는 구멍이 있어 더 깊이 들어갈 거라고 했지? 얼마나 들어가나 볼까?”
피와 배설물이 묻은 파이프를 다시 여자의 음부에 조준한 간수는 호기심 있는 눈으로 여자의 갈색 음모와 그 위 붉은 구멍을 보며 기계를 돌렸다. 빨리하란 재촉에 손잡이를 마구 돌리자 파이프는 쑤욱 들어갔다. 살을 말아가며 들어가는 파이프다.
‘아, 아,’ 엉덩이를 비틀며 피하려던 여자는 자신의 속을 밀고 들어온 차가운 막대기가 질을 거칠게 헤집자 소리를 질러댔다. 감정이 없는 금속은 그런 소리를 아랑곳 하지 않으며 질의 끝 벽을 따라 자궁을 건드렸다. ‘우웩’ 토하는 소리다. 이미 상처를 입은 내장에 자궁까지 상처를 준 파이프는 계속 파고 들어가 창자와 심장을 찔렀다. ‘꾸르륵, 꾸르륵’ 바람 빠진 소리가 두건 속에서 들렸다. 그리고 조용한 떨림. 어깨를 부르르 떨던 몸이 처졌다.
“아주 깊이 들어 가군. 이 년은 구멍이 깊은 가 보지. 간수, 다 치워버려. 냄새가 독하군.”
작은 공간에 갇혀 있던 협회 직원들은 지금 무슨 일이 밖에서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자신들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지도 몰랐다. 지금이라면 요구하는 대로 하라는 대로 다 할 것인데 그들은 딱 집어서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처형? 남의 일이 지금은 자신들에게 일어나고 있단 말인가.
이라크에서는 처형이 일상사다. 밥을 먹고 잠을 자듯 생활화가 되었다. 단지 그것이 내일이 아니고 남의 일만 되면 좋았다. 쿠란의 규약을 따르던 이라크의 법을 따르던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그 위법자는 먼지처럼 사라졌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생명체라면 맞을까.
그런데 그 남의 일이 지금은 자신의 일이라니. 무역협회 수입 업무를 맡고 있다는 단 한 가지 이유로서 둘이 끌려갔다. 그들은 아마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죽음이란 단어는 무섭지 않았지만 어떻게 죽는 가가 무서웠다. 소문은 무성했다. 목을 벤다든지 다리와 손목을 끊는다든지 하는......,
보이는 것은 어둠. 두건은 세상과 단절을 시켰다. 혀를 깨물고 죽고 싶은 유혹을 뿌리칠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그 후에는 가족과 친척 모두에게 화가 돌아갈 것이 뻔하다. 죽음마저 선택할 수 없는 그들이다.
“이제 대화를 나누어 볼까?”
쿠사이가 그들 앞에 앉았다. 차가운 바람이 두건에 스쳤다. 얼어붙은 입.
“..............”
“대화를 나누자는 데 이 사람들은 왜 아무런 말이 없나? 툴파. 어떻게 생각하나?”
“방법을 모르나 봅니다. 제가 가르쳐 주겠습니다.”
긴 고무호스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나란히 의자에 묶여 있는 다섯은 아픔에 비명을 질렀다. 허벅지에 계속 떨어지는 고무호스는 탄력 좋은 공처럼 팡팡, 튀면서 옷을 찢어발기듯 춤을 추었다. ‘억,’ 하는 비명이 되돌이표처럼 나왔다. 차도르를 입은 여자는 다리를 꼬며 몸을 흔들었다. 신발이 벗겨진 발이 창백하게 얼어붙었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의 냉기가 발바닥을 뚫고 있었다. 하얀 발을 보던 쿠사이는 그 때 그 발목, 바스라의 잘려진 발이 겹쳤다. 잔잔한 흥분의 물결. 쿠사이는 바지 속이 꿈틀거렸다. 생명을 잃은 그 발은 강한 성욕을 자극했었다. 살아 있는 몸보다 더 뜨거운 열정을 주었다. 툴파의 고무호스가 멈추자
“이젠 말해볼까?”
“뭐, 뭣을.....,”
“그래? 뭘 말해야 모른단 말이지. 간단해. 안와르와 어떻게 짜고 있지?”
“.......”
“툴파. 아직 부족하군. 더 세게 해”
쿠사이의 명령은 신의 명령이다. 적어도 여기에서는. 툴파는 가운데 앉아 있는 두루마기 같은 것을 걸치고 있는 남자의 옷을 위로 걷었다. 속옷마저 칼로 찢어버렸다. 갈색 성기다.
축 쳐진 성기를 손으로 까닥거리다 아래 쪽 음낭을 왼손으로 톡, 불거지듯 쥐고 오른손에 들고 있던 집게를 거기에 맞췄다.
남자는 뭔지 모르지만 독한 그 무엇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았다. 떨기 시작한 남자는 고통의 외침으로 시간을 멈추려 했다. 집게는 사람이 아니다. 조금씩 조여 갔다. 음낭이 깨질 듯한 고통. 더 힘을 주면 계란이 터지듯 터질 것이다. 울음, 비명. 애원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비명소리가 얼마나 애잔했으면 그 옆에 앉아 있는 여자의 아랫도리가 촉촉이 젖었다. 오줌을 지린 것이다.
“툴파. 이 년을 벗겨봐.”
검은 자국이 곰팡이처럼 번져간 여자를 지목하자 집게를 풀었다. 발그레한 물린 자국과 통통 부어오른 음낭. 더 쥐었으면 아마 깨졌을 것이다. 툴파는 웃으며 여자의 치마를 걷었다. 숨겨진 속살을 본다는 것은 항상 즐거움이다. 보여주고 싶지 않은 속살이 드러날 때의 은근한 떨림은 언제고 자극을 주었다. 젖어 있는 속옷은 갈색이다. 계곡을 덮은 보송보송한 갈색 음모가 물기에 번들거렸다. 허벅지에 걸려 있는 하얀 팬티가 욕구를 더 충동질했다. 두건이 세차게 옆으로 흔들거렸다. ‘이.......櫻 이빨 사이로 흘러나오는 비명. 이들은 지금 무슨 일인가 자기에게 해를 가하려고 하는 거다. 묶인 다리를 동동 구르지만 몸은 의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대신 의자가 쓰러지며 몸집이 제법 큰 여자는 의자에 고정된 그대로 바닥에서 꿈틀 거렸다. 발목이 의자 다리에 묶였다. 일어서지도 못한 여자는 충격 탓인지 ‘으....,.’ 하는 신음을 내고 있다.
“일으켜 세워. 옆으로 나자빠진 모습이 보기에 그렇군. 그 치마는 다 벗겨버렸으면 좋겠어. 부끄럽긴 하겠지만 속살을 뽐내고 싶어 하는 년들도 있으니까.”
“그렇겠습니다. 각하. 제가 보기에도 이 년은 통통한 게 가랑이를 보이고 싶어 미치지 않나 합니다.”
몸과 의자를 잡아 불끈 들어 다시 세운 툴파는 치마 끝을 잡아 칼로 그었다. ‘’찌익‘ 천이 갈라지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손목과 발목이 묶인 여자는 몸을 비틀기만 할 뿐 속살을 조금씩 드러냈다. 차가운 공기에 살갗은 움츠려들었다. 추위에 놀란 피부다. 유방 역시 차가움인지 공포감인지 유두가 빳빳하게 일어섰다. 검붉은 유두다. 유륜이 분홍빛이어서인지 검붉은 유두가 또렷하다. 통통한 몸매에 젖통 역시 통통하다. 몸이 흔들거릴 때마다 시계추가 움직이듯 옆으로 출렁거렸다.
“보기에 좋군. 여자는 역시 발가벗겨야 제 맛이야. 그렇지 않나 툴파?”
“각하, 그렇습니다. 아주 탐스러운 게 좋습니다.”
쿠사이의 눈길이 조금 전 자신이 휘둘렀던 고무호스에 머물자 알았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그 호스를 쥐었다. 한두 번 바람을 가르자 ‘쌩’하는 소리가 났다. 여자는 놀라 얼굴을 들고 두리번거렸다. 지금 이 남자가 무엇을 할 건지 아는 듯했다. 그렇다. 여자의 예감 그대로 호스는 두 개의 몽실한 살덩이를 후려쳤다. 붉은 자국을 가슴에 남긴 호스는 다시 허공을 가르며 젖통을 때렸다. ‘척!!’ 붉은 자국을 싸안듯 내려쳐진 호스는 푸른 멍을 남기며 여자를 떠났다. 머리를 죽은 듯 흔들며 발악을 하던 여자는 경기 든 사람처럼 부들부들 떨었다. 또 오줌을 지린 여자다. 바닥으로 줄줄이 흐른 오줌은 물길을 이뤘다. 얼마나 거친 비명을 내 질렀든지 목이 쉬었다. 연거푸 떨어진 호스는 여자의 가슴에서 두 젖통을 떼어내고 말겠다는 것인지 붉으죽죽한 자국을 통통 불게 했다. 더 후려치면 피부가 터져 찢겨질 만 했다.
감각이 없는 마네킹이 아주 샌드백 같은 물체가 퍽, 퍽 소리를 내고 있었다. 쿠사이가 손을 들자 멈춘 툴파. 툴파의 바지 속도 부풀기는 마찬가지다. 젖통을 후려칠 때의 쾌감은 짜릿했다.
그리고 남은 것은 그들 모두가, 살아 있을 그 때까지 안와르의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이다. 준비는 길지만 결과는 짧았다.
바그다드 교외. 우다이 저택.
한 차례 체육계를 둘러 본 우다이는 지친 몸을 쉬고 있었다. 남한 사절단 일행과의 접견 이후 그의 욕심은 더 커졌다. 세계 대회를 유치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그 전에 각종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올렸으면 하는 게 진심이었다. 국가의 미래와 민족의 긍지, 그것은 양보할 수 없는 가치였다.
리브의 하체에 얼굴을 박고 샘물을 홀짝홀짝 마신 우다이는 페기의 잘 빠진 다리를 끌어당겨 자기의 물건에 가볍게 문질렀다. 두 발가락 사이에 끼우고 전후로 움직이는 즐거움은 또 다른 맛이 있었던 것이다. 리브의 하체는 음모가 모두 깎여 민둥산이다. 소녀의 음문이 날개 까지 달린 모습으로 활짝 벌려 있다. 그 안으로 촉촉이 젖은 물이 번들거렸다. 입은 리브의 하체에 묻고 페기의 발가락 사이를 물건으로 애무하던 그는 다시 알리스의 몸을 끌어당겼다. 세 소녀는 눈이 풀린 인형들이다. 이것으로 끌려온 지도 벌써 몇 년이 지난 듯 했지만 언제가 언제인지 불분명했다. 하는 일이란 먹고 자고 가꾸고 그리고 이렇게 이 사람을 위해 침대에 뒹구는 일이 모두였다. 가끔씩 보여주는 처형하는 장면은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처음엔 약을 먹어가며 이 남자가 하는 대로 몸을 맡겼지만 그 장면을 본 뒤론 약을 먹지 않아도 먹은 것처럼 정신이 몽롱했다. 혼이 빠져나간 느낌이 바로 이런 것이리라. 그래서 우다이가 모니터를 보여주며 낄낄 거려도 따라 웃을 뿐이었다. 모니터엔 리브가 가랑이를 활짝 벌리고 털이 모두 제거된 붉은 속살을 보여주며 웃고 있었다. 리브만 그런 것이 아니라 페기와 알리스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그의 아랫도리에 얼굴을 묻고 서로 핥으며 좋아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항상 일어나는 일상이기에 거리낌 없었다. 리브나 페기나 알리스는 처음엔 아픔이 느껴지고 그랬지만 지금은 그의 손길이 어깨에 닿아도 몸이 타오르며 들떴다. 머리를 쓰다듬기만 해도 하체가 욱신거리며 절로 엉덩이를 꼬았다.
리브는 그 광경이 떠나지 않았다. 역사책에서 가끔 본 삽화에서도 그런 장면을 없었다. 자기의 고향인 텍사스에서도 흑인 노예들을 그렇게 처형하진 않았을 것이다.
흰 칼. 번득거린 섬광. 그리고 침묵 속 잘려진 머리통, 그것이 전부였다. 무스타파란 남자가 들고 있던 칼은 날렵하게 생긴 칼이었다. 가느다란 칼은 그의 손에 들여지자 무서운 속도로 여자와 남자들의 머리통을 분리 시켰다. 그들 목에 걸려진 죄명은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아마 큰 죄를 졌나보다 생각 했다. 휙, 하는 소리가 마치 리브 자신의 목을 잘라낸 듯 했다. 목을 옴츠린 리브는 손으로 자신의 목을 확인까지 할 정도였다.
“리브 너를 보면 꼭 이 여자가 떠올라. 여기 이 사진을 봐. 누구지?”
“..........”
“왜 모르나? 이 여자는 바로 너희들 대통령의 딸 제나와 바바라지. 난 이 두 년을 언제고 내 허리 밑에 눕히고 박아 버리고 싶어. 미국을 점령하는 그 날, 제일 먼저 이 두 년을 잡아다 이렇게 해버릴 거란 말이다.”
리브의 구멍을 혀로 파고든 우다이는 몸을 일으켜 세워 리브의 벌어진 구멍에 성기를 세워 꼽았다.
“으음, 하아.........”
“좋지? 너희들 양키는 이런 큰 물건을 좋아한다는 말이 사실이야.”
리브를 올라탄 그는 페기와 알리스를 잡아당겨 거꾸로 리브 위에 앉게 했다. 알리스의 얼굴이 리브의 얼굴을 마주보게 앉히자 잘 빠진 아닌 성숙한 엉덩이가 틈을 벌리며 그의 얼굴 바로 앞에 놓였다. 리브의 구멍을 파며 그는 두 손으로 알리스의 엉덩이를 벌렸다. 발간 구멍이 드러났다. 작고 귀여운 구멍. 그의 손가락은 탐미의 구도자처럼 그곳을 비집고 들어갔다. 마른 살이 벌어지며 더 붉은 속살이 드러났다.
“아!!. 아파요.”
매번 하던 것이지만 그의 손가락이 너무 거칠게 파고든 것이다. 구멍에 들어간 골프공을 짜증을 내며 꺼내들려는 골퍼 같았다. 급하게 후벼 파던 그는 두 손으로 살을 벌렸다. 혀를 내어 작은 구멍을 핥았다. 침으로 반질거린 구멍이 알리스가 숨을 쉴 때마다 움찔하자 리브의 애액이 묻어난 성기를 꺼내 알리스의 작은 구멍에 맞췄다. 허리를 끌어안고 힘을 주어가며 밀고 들어갔다.
“아아아. 천천히......, 아 아파”
알리스는 뒤로 파고든 아픔이 유난히 컸다. 한두 번 하는 항문섹스가 아니지만 오늘은 너무 거칠게 박아댄 것이다. 힘을 빼고 긴장을 풀어도 아픔이 얼얼했다. 얼굴을 찡그리며 시트에 파묻었다. 리브는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 알리스의 신음을 입으로 받아들였다. 우다이가 힘을 주며 몸을 밀어재끼자 두 소녀의 유방이 마찰을 시작했다. 페기는 앉는 채 친구들을 보고만 있다.
그래. 너희들 양키들, 언제고 나 우다이가 이렇게 내 좆 밑에 눕게 만들 것이다. 너희들이 아무리 강해도 아랍의 이름으로 아니 알라의 이름으로 너희들을 응징하고 말 것이다. 이렇게 말이다.
우다이는 몸을 더 세차게 밀어재꼈다. 알리스는 무게를 견디려고 허벅지에 힘을 주며 엉덩이를 돌렸다.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동작이지만 우다이는 끊기지 않은 튼튼한 밧줄처럼 알리스의 엉덩이를 옭아맸다.
겨우 사정을 끝냈을 때 알리스는 힘없이 리브의 몸 위로 포개졌다. 리브의 아랫도리와 알리스의 엉덩이가 나란히 놓였다. 리브의 그곳에서는 자신의 애액이 알리스의 항문에서는 하얀 정액이 조금씩 흘러 나왔다.
“넌 이 둘을 깨끗이 핥아.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페기는 멍한 얼굴로 두 친구의 아랫도리를 핥았다. 시큼한 냄새. 엎드린 자세로 리브의 음부를 핥고 있던 페기는 우다이가 한 발을 잡아끌자 마치 개가 오줌을 누는 자세가 되었다.
우다이는 페기의 부드러우며 고운 선을 그린 발을 들어 가슴에 문질렀다. 따뜻한 기운이 심장을 뛰게 했다. 사정을 끝낸 뒤라 욕구는 없었지만 페기의 하얗고 스펀지 같은 발을 가슴에 비비자 또 다른 충동이 일었다. 얼굴로 당겼다. 발바닥이 진한 살내음을 풍기며 그의 후각을 때렸다. 오늘은 포도향이다. 매번 갖가지 과일 원액으로 향기를 품게 만든 그다.
포도향을 페기의 발에서 느낀 그는 넓은 포도밭을 거닌 풍요로움이 들었다. 작은 발가락이 포도송이 같았다. 한 입에 물자 톡 터지며 진한 포도향을 주었다.
오늘로서 이 셋은 끝이다. 무스타파에게 주든지 아니면 살아서는 나올 수 없는 <무까바라>에 보내든지 할 것이다.
하라드, 그러니까 예전 폐다인 시절 부관으로 일하던 그가 쿠사이의 SSO에게서 들은 얘기가 아무래도 찜찜했다. 인터넷에 띄운 사진이 미국과의 긴장 관계로 발전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별 것 아냐, 하고 내칠 일은 아니었다. 이것을 핑계로 또 그 놈들이 어떤 오랏줄을 내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요즘은 아이스도 자주 오지 않고 왠지 밖의 하늘처럼 우중충한 심정이었다.
그냥 사자 먹이로 던져버릴까. 그러면 아무도 모르겠지. 그렇지만 저 나긋나긋한 육체를 그 놈들의 먹이로 하기엔 너무 아깝단 말이야. 차라리 무스타파에게 주고 가끔 데리고 놀까. 아냐 아이스가 있는 <무까바라>에 보내는 게 좋겠군. 그곳이라면 세상 그 누구도 모르게 없애거나 죽을 때까지 둘 수 있을 테니까. 아이스 그 사람이 데리고 온 얘들 그가 처리하면 되겠군. 그럼 됐어.
1998년 12월은 중순으로 들어갔다. 서양에서는 성탄이 얼마 남자 않았다고 난리들이었지만 이 나라는 무서운 침묵 속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것은 후세인이 TV에 나와 자주 강조한 강한 이라크 탓이다. 이럴 때면 꼭 무슨 일이 일어나고 했던 것이다.
아이스는 다시 검은 가방을 열었다. 저격용 라이플. 정확도가 제일 좋다는 M시리즈 그중에서 M82다. 탱크도 뚫는다는 이 총알은 후세인의 가슴 정도는 유리처럼 날려버릴 것이다.
시각은 12월 16일. 장소는 후세인 대국민연설이 있을 이라크국회 앞.
아이스는 차가운 금속을 꺼내들고 눈을 댄다. 가늠자에 벽의 그림이 보인다. 바벨의 탐을 담은 사진이다. 하늘로 가까이 가려는 인간의 욕망을 신이 벌 했다는 상징이다.
‘딱!’ 방아쇠를 당기자 공이가 차가운 소리를 던진다. 총알의 뇌관을 때리면 그 작은 알은 사정없이 날아가 인간의 욕망을 잠재울 것이다.
1998년 12월 16일.
아이스는 저 멀리 보이는 이라크 국회를 내려다보았다. 무까바라에서 내려 보이는 국회는 작은 모스크 같았다. 사정거리 1키로 가 넘은 M82는 이 정도 거리는 충분했다.
오늘 후세인은 미국과 영국 등 제국주의의 공격에 단호히 대처하자고 주장할 예정이다. 그 옆에는 두 아들이 서 있는 게 보인다. 하나 씩 가늠자 위에 담아본다. 후세인의 콧수염, 우다이의 면도한 얼굴, 쿠사이의 차가운 눈이 차례대로 스친다.
‘딱!’ 소리가 아니었다. 아무런 소리도 없는 총알은 후세인을 향해 날랐다. 그러나 가늠자 마지막 장면은 우다이가 쓰러지는 모습이다. 총알의 선택은 인간의 의지가 아니었다.
다음 날인 1998년 12월 17일. 기다렸다는 듯 미국은 유엔 이라크 무기 사찰 거부를 핑계로 바그다드 대공습을 퍼부었다. 모든 것을 일시에 지워버리려는 폭격이다. 비가 온 듯 쏟아진 포탄은 바그다드와 대도시를 파괴 했다. 바벨의 탑을 무너뜨리려는 신이 미국이던가.
작전 사막의 여우는 그렇게 시작됐다.
지하대피소에 피한 아이스는 마지막 바늘을 꺼내들었다. 포탄의 부모를 둔 세 소녀, 사막의 여우가 아니라 살아있는 세 여우가 눈물이 그렁한 채 그를 본다.
나란히 다리를 벌린 채 널판에 묶여 있다. 발가벗긴 몸 그대로다. 무릎을 묶어 양 벽의 고리에 걸자 아랫도리를 숨김없이 보여준다. 음모를 모두 밀어낸 삼각지에 조금씩 거뭇한 털이 자라고 있다. 유방도 성숙한 모습으로 가슴에서 출렁거린다. 겨드랑이 털도 제거했는지 깨끗하다. 머리만 남기고 모든 털은 밀어냈나 보다.
바늘을 꺼내 탁자 위에 늘어놓는다. 여러 바늘집이다.
리브란 소녀의 아랫도리부터 바늘을 꼽아 간다. 붉은 피. 경련하는 살들. 울부짖음. 거리에 퍼붓는 폭음을 덮을 정도다.
한 땀 한 땀 살을 뚫고 들어가는 바늘은 지금 페기의 두 발톱을 지나 발바닥 정중앙을 파고든다. 몸의 모든 기관의 신경점이 모인 발바닥 가운데를 뚫고 들어가자 페기는 흰자위만 남은 눈으로 신을 부른다. 마지막 바늘은 알리스의 에머럴드 눈이다. 눈동자 정중앙을 뚫고 들어간 바늘은 알리스에게 모든 세상의 저주를 퍼붓게 만든다. 허리를 들썩이던 고통에 찬 몸이 얼음 위에 놓인 개구리처럼 서서히 사지를 편다.
바늘이 만든 탑은 아름답게 널판 위에 펼쳐졌다. 소녀들의 몸에 박힌 바늘이 나비처럼 춤을 추었다. 부드러운 날개 짓 소리는 소녀들 신음이다. 그 옛날 바벨의 탑은 무너졌지만 바늘의 탑은 흰 빛을 뿌리고 있다.
아이스는 땀을 닦으며 바늘집을 챙기고 출구를 찾았다. 아제 나가면 끝이다. 알렉스는 공항에서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이곳에 돌아올 때 바늘의 탑은 또 세워질 것이다. 얼음이 불을 잠재우는 땅으로.......
- 끝 -
쿠사이 / 후세인 차남
아이스 / 한국인
부시 / 텍사스 주지사
에드워드/ 미 상원의원/리브의 아버지
간첩을 다룬다는 것은 신기에 가까운 일이지. 아니 신기라고 할 수 있지. 신이 아니면 할 수 없다는 말이네. 후한 상을 주는 것은 물론이며 무한한 신뢰를 주어야하네. 그렇지 않고서야 그가 어떻게 나를 따르겠나.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울 지도 모르는데 단지 돈이 좋아 나서서 하겠는가. 아니네. 믿음이 있어야 하지. 간첩도 적의 고을사람을 이용한 향간, 적의 관리를 이용한 내간, 적의 간첩을 이중으로 이용한 반간, 아군의 간첩으로 하여금 거짓 항복케 하여 거짓 정보를 흘리는 사간, 적지에서 살아 돌아와 보고하는 생간이 있지. 자네는 어떤 쪽일까?
- 알렉스가 아이스에게 <용간>을 말하며
제 13부 사막의 여우.
미 텍사스주지사 집무실. 부시는 느긋한 오후 햇살을 즐기며 집무실을 서성거렸다. 아버지의 뒤를 이은 그는 앞날이 창창히 보장된 그야말로 행운아였다. 특히 텍사스 마피아는 강했다. 미 정부의 심장을 장악한 마피아는 감히 그 누구도 접근을 못했다. 자신도 이제 중앙으로 나갈 것이라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녔다. 중앙이란 곧 미합중국을 대표하겠다는 말과 같은 의미다.
부시의 이 한가롭고 고즈넉한 시간을 깨트린 사람이 에드워드다. 상원의원이며 텍사스에선 무시할 수 없는 인물 - 에드워드가 부시를 찾은 것이다.
“주지사. 아무래도 내 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 같네. 전쟁 통에 죽은 지 알았는데 글쎄......,”
뒷말을 흐리는 그에게 부시는 영문을 모른 표정이다. 죽었다는 딸이 그럼 살아있다는 말인가. 그럼 됐지, 하는 얼굴이다.
“글쎄, 이 사진을 보게나.”
사진은 보기에도 민망한 모습이다. 금발의 소녀가 다리를 벌리고 의자에 앉아있는 포즈인데 아랫도리를 훤히 보이고 뭐가 좋은지 키득거리며 웃고 있지 않은가. 마치 남자친구하고 몸을 섞으며 놀고 있는 듯한 사진이다. 그런데 다른 사진을 꺼내 보이는 에드워드는
“이보게 이 사진은 또 뭔가.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그 사진은 보기가 더 민망했다. 금발 소녀와 붉은 빛 머리를 가진 소녀가 한 남자의 성기를 서로 탐닉하는 것이 아닌가.
주지사 부시는 하마터면 자신이 흥분으로 아랫도리가 팽창할 뻔했다. 그 만큼 자극적인 사진이다. 얼굴이 예쁜 소녀들은 더구나 리브 같은 금발의 소녀들은 이 텍사스에서도 자주 즐기지 못한 부시다. 기껏해야 뉴욕이나 LA에 가야 맛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속으로 이 놈은 재주도 좋군, 어떻게 이런 어리고 예쁜 금발 소녀들을 데리고 노나, 한 부시다. 사실 텍사스 마피아 그룹은 가끔 부시의 별장이 있는 미시시피 강에 가 여자들을 불러 파티를 벌이곤 했다. 마약도 조금 하고 알코올도 도가 지나칠 정도로 마시고 여자들, 남자들 구분 없이 뒤섞여 섹스를 하곤 했다. 이것도 지치면 흑인들을 불러다 집단으로 춤추게 하고 그녀들의 검은 피부에 땀이 흐르는 것을 즐기곤 했다. 이들은 그 예전 노예들을 마음대로 부리던 시절이 그립기만 했다.
“어디가 어째서 그랍니까? 요즘 애들 다 그렇지 않아요. 리브나 친구들이 여행 중에 즐기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내가 가족 문제로 끝내지 왜 주지사를 만나겠는가?”
화가 묻어난 음성으로 에드워드가 말하자 그때서야 부시도 아차, 한 심정으로 귀를 기울였다.
“아, 그렇군요. 저번 쿠웨이트 전쟁 중에 실종됐다고 했었죠? 그런데 이렇게 사진을 찍히다니 이상한 일이군요. 혹시 유럽이나 북구라파 쪽 노예사냥꾼들에게 끌려간 것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찾기가 쉽지 않을 텐데......,”
여전히 심드렁한 부시의 말을 받으며 에드워드는 단호하게 소리쳤다.
“그것이 아니었네. CIA에 있는 가까운 친구에게 분석을 의뢰 했더니 이 사진이 찍힌 장소는 바로 중동이었다네.”
사실은 에드워드가 처음 CIA에 의뢰한 것이 아니다. 거꾸로 이 사진을 가지고 CIA에서 자신을 찾은 것이다. 그의 이름은 알렉스라는 중동담당 요원이었다. 인상이 수더분해 보여 무슨 공무원 같았지만 겉만 그런 사람이었을 뿐 속은 그렇지 않았다. 어떻게 이 사진을 찾았는지 그리고 이 애가 자신의 딸이란 걸 어떻게 알았는지 정말 예리한 사람이었다.
사진 속 소녀들은 리브와 페기, 알리스였다. 소녀들의 부모는 이 텍사스에선 힘깨나 쓰는 오피니언 리더들이었다. 만약 이 사진이 세상에 드러나면 한바탕 뒤집혀질 것이다. 음란한 소녀들이란 제목으로 미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 포르노사이트의 전면을 채울 것이다. 그리고 그 이름 아래로는 부모들의 이름과 직업이 줄줄이 적힐 것이다.
처음 알렉스가 찾아와 사진을 내밀 때는 그런 걱정이 앞섰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알렉스의 말은 그런 성격이 아니었다. 미국국민이 중동에서 성적 학대를 받았다고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여론은 불처럼 타올라 전국을 태울 것이다.
“분석에 의하면 여기는 중동 중에서도 바그다드라고 하네. 그리고 이 사진 속의 남자는 백인이 아니라 아랍인이며 나이는 스물 후반이나 서른 초반이라고 하더군. 결혼을 했으며 집안 장식으로 봐 보통 사람은 아니고 대단한 상류층이라고 하네. 근데 이 남자 반지를 보게. 어디선가 보지 못했나. 영국표식이 있는 반지”
남자의 손은 잘 보이지 않았다. 에드워드가 다른 사진을 꺼내자 그때서야 선명한 반지가 보였다. 열 배는 확장한 사진이지만 선명했다.
“그럼 이 놈이 누구란 말입니까?”
“바로 후세인의 아들 우다이라고 하네. 그 놈이 바로 영국에서 학교를 나왔다고 하네.”
맞다. 우다이는 영국에서 학교 다닌 걸 명예로 생각했다. 그래서 동생 쿠사이와 사이가 별로 좋지는 않았지만.
“근데 주지사. 더 중요한 것이 있네.”
그때부터 부시는 긴장한 얼굴이다. 아버지를 닮은 조금은 기다란 얼굴이 굳어지며 에드워드를 봤다.
“여기 제목이 뭔가 보게 나”
사진에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미국 땅에 깃발을> 이란 제목이다. 남녀의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제목이다. 그때서야 부시 주지사는 역력히 화가 난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말도 안 돼는 놈이군. 우리 미국을 우습게보다니. 당장”
주먹을 휘두르는 부시를 보며 에드워드 의원은
“그 전에 내 딸을 찾아주게. 주지사는 아버지의 힘이 있잖나. 내가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으니”
“알았습니다. 우리는 선후배며 같은 길을 가는 동지가 아닙니까?”
조지 워커 부시의 아들 조지 부시. 클링턴 바로 전 미합중국대통령이 바로 자신의 아버지인 조지 워커 부시다. 목소리엔 자신감이 넘쳤다. 아버지 부시가 만들어 놓은 텍사스마피아는 워싱톤 심장부에 또 하나의 인너서클을 구축해 놓았으니 바로 일명 네오콘이다.
1998년 8월의 워싱톤.
썸머독이 한창이다. 한마디로 개 같은 여름인 것이다. 빌딩을 태울 듯한 더위는 거리의 사람들을 ?아냈다.
미국기업연구소 AI. 폴 울포위치, 딕 체니, 루이 리비, 럼스필드. 일명 4인방. 부시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를 하고 비록 물러났어도 이들의 힘은 그 위력이 여전했다. 국무부, 국방부, 백악관 그 어디고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부시를 마주한 4인방은 마침 좋은 먹이 감을 기다리는 여우의 심정으로 그가 꺼낸 사진을 돌려 보았다.
“이런 미친놈들. 감히 우리 미국을”
성질 급한 럼스필드는 사진을 찢듯 집어던졌다. 딕 체니는 그에 비하면 여우였다. 잔잔한 웃음을 흘리며 부시를 건네 보았다.
“역시 자네는 대단한 인재야. 이 정도면 클링턴 내각을 충분히 움직일 수 있네. 물론 다 알고 왔겠지만. 그렇지 않은가?”
“후후후. 물론입니다. 우리가 다시 중동 땅을 집어 삼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준 것이죠. 물론 그 멍청한 우다이란 놈이 준 것이지만. 어찌됐든 중동은 우리가 가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맞은 말이오. 텍사스주지사. 자네야 말로 다음을 이을 우리들의 기대주요. 항상 조심해주기 바라오.”
“고맙습니다. 여러분들의 노력은 언제고 잊지 않고 있습니다.”
주시가 일어나 나가자 4인방은 만면에 웃음을 띠우고 즐거운 드라마를 보고 난 후처럼 껄껄, 댔다. 먼저 딕 체니 가 나섰다. 국방부의 숨은 실력자 ‘체니’다.
“이걸로 이라크는 끝났소이다. 저번 쿠웨이트 전 이후로 끝장을 낼 걸 질질 끌더니, 쯧쯧”
“맞습니다. 클린턴은 너무 물러 터졌소. 강하게 밀어붙입시다.”
쿠웨이트 전쟁. 호르무즈 해협을 싸고 벌어진 미 이라크전은 미국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그때도 네오콘은 밀어붙이자고 여론을 조성했지만 클린턴으로 정권이 바뀌면서 흐지부지 된 것이다.
“마침 또 한 건이 있는 것 다 아시죠?”
루이 리비다. 백악관 보좌관. 정보는 죄다 꿰고 있는 그다.
“이라크 핵 사찰단이 무조건 쫓겨났습니다. 핑계거리로는 충분합니다. 우리 내부로는 이 사진, 세계 여론으론 그것으로 밀어붙이면 됩니다.”
“좋소. 그럼 언제?”
딕 체니가 좌우를 둘러보며 결론을 내린 듯 내뱉었다.
“금년 말이 좋겠소. 12월 17일이 ‘디데이’오.”
“지금은 여름이니 과일이 익기 좋은 계절이 아니겠습니까? 충분히 익은 과일을 저장해 놓았다 눈이 내린 겨울 저녁 식탁 위에 놓고 맛있게 먹읍시다. 하하하”
럼스필드의 호탕한 웃음으로 네오콘의 모임은 끝났다.
아이스는 바로 앞에 앉아 있는 알렉스를 멀거니 보고 있을 뿐이다. 얼마 전부터 자신이 점점 더 바그다드와는 멀어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 3인방의 견제려니 했는데 그것은 아니었다. 순간 토사구팽? 이란 생각도 했지만 뭔가 느낌이 달랐다. 쿠웨이트 전쟁 이후 바그다드는 더 긴장의 연속이었다. 더구나 우다이와 쿠사이는 세상모르고 날뛰었다. 걸핏하면 사람들을 붙잡아 목을 치거나 배를 가르는 등 야만의 땅을 만들고 있었다. 아이스는 그런 모습에 차가운 미소를 보냈지만 자신이 멀리 떠나 있는 것 같은 소외감은 피할 수 없었다.
“자네는 간첩이었네. 이제야 말하지만 처음부터 내가 만들어 놓은 사람이 바로 자네네. 언젠가 내가 말한 것 기억하고 있나. 앞으로 크게 할 일이 있을 거라고. 이제 때가 되었네. 자, 여기 가방이 있어. 뭐가 들어있는 지는 자네가 더 잘 것이네. 그리고 참 한 가지 빼트릴 뻔 했군. 우다이 관련 공작은 아주 성공이었네. 역시 ‘아이스’ 다워. 자네는 뛰어난 간첩임에 틀림이 없어. 워싱톤에서도 진가를 인정하고 있으니 좋은 소식 기다리겠네. 아 그리고 그 신 미나라는 여자도 우리와 함께 일하고 있네. 그럼 이만 ”
좋은 소식?
알렉스가 사라지자 아이스는 검정 가방을 멀거니 바라본다. 이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열어보지 않아도 뻔하다. 저격용 총 아니면 플라스틱 폭탄일 것이다. 상대는? 그것도 우문이다. 후세인 아니면 누구겠는가? 조국 발전의 염원을 혼자 짊어지고 험한 길을 걷는 그를? 한 사람의 평가는 그 누구만큼 다르다. 이 사람이 호면 다른 사람은 오다. 오호가 교차하는 것, 가끔은 애증이란 표현으로 대신한다. 사랑하면서도 미워하는 애증이란 게 이런 것일까? 그건 아니겠지. 한 사람을 애증으로 평가하는 것과 한 사람을 여럿이 판단하는 것과는 다르겠지. 그럼 나는?
아이스는 긴 시간 검정 가방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선택은 단 하나. 그를 죽이는 것. 가장 가까운 측근이 항상 배신을 하는 것이 역사다. 시저도, 칼리큘라도, 네로도, 그렇고 보면 로마란 나라가 배신이 점철되는 나라였나 보다. 어디 로마뿐이겠는가? 세상이 다 그렇겠지. 좋은 소식을 기다리는 마음을 갖고 있는 나 역시 그 들 중 하나이겠고.
1998년 12월 초. 낮부터 흐린 하늘에선 눈발이 조금 날렸다. 사막의 땅이지만 겨울은 예외 없이 찾아왔다. 낮은 지역은 그나마 따뜻했지만 조금 높은 지역은 외투를 거쳐야할 정도로 추위가 매서웠다.
이라크 서부, 그러니까 바그다드에서 70여키로 떨어진 도시 라마디. 추위만큼이나 차가운 공기가 흐르고 있는 도시 라마디의 아부 굴랍 정치범 수용소. 철문마저 얼어붙은 듯 손을 대면 쩍쩍 달라붙었다.
차가운 철문을 열며 들어선 사람은 쿠사이다. 그는 폐다인민병대 사령관이며 이라크군사평의회 부의장 자격으로 이곳을 방문한 것이다. 공식적으로는 그렇지만 비공식적으론 아랍무역협회에 대한 따끔한 손보기다. 형 우다이와 무역재벌 안와프의 연결 고리를 끊어버리기 위해 노력을 했지만 별무소득이었다. 무엇이 그를 형과 강하게 고리를 짓게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슬슬 구슬려도 화답이 없었다. 그렇다고 직접 두드리자니 주위의 이목을 무시할 수 없었다. 한번 손을 보려고 벼르다 마침 적당한 핑계거리가 생겨 대원들을 풀어 붙잡아 온 것이다. 핑계거리? 별 것은 아니다. 갖다 붙이면 되는 것이 핑계가 아닌가.
한두 번 찾아온 이곳이 아니지만 오늘따라 더 복잡한 생각이 교차했다. 만약 실패하면 형과 안와프 나자르와 자기 관계는 더 악화될 것이 뻔했다. 쿠사이의 머리 속은 그런 생각과 동시 연인이며 누나인 라다의 말로 골이 지근지근 쑤셨다. 떨어져 있으면 라다의 그 아름다운 눈동자와 포근한 젖가슴이 잊혀지지만 그녀 앞에서는 한없이 어린아이가 됐다. 너무 큰 상수리나무 밑의 작고 초라한 아카시아 같은 것, 자신이 그렇게 느껴지기만 한 것이다.
라다는 쿠사이의 품에서 그 큰 눈을 깜박거리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쿠사이에게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계속 요구했다.
“저요, 사령관님.”
향긋한 유두를 깨문 그에게 그녀는 또 고급 가죽제품을 갖고 싶다고 했다. 뭐냐? 는 눈 질문에 라다는 큰 눈을 더 크게 뜨며, 마치 검은 눈동자에 그를 가두어 버리려는 듯 가까이 얼굴을 대며
“음......, 구두가 다 헤졌는데, 백도 낡았고,”
“......”
쿠사이는 고개를 끄덕이기만 할 뿐이다. 그녀가 갖고 싶은 것은 다 해주고 싶었다. 오픈 카는 물론이고 고급 드레스며 반지 따위 귀중품까지 다 해준 그다.
“누님은 갖고 싶은 것이 참 많아요.”
“또 누님이라고 한다. 그냥 라다, 이렇게 불러주면 안 돼?”
“그래요. 라다. 됐어요?”
“좋아, 좋아. 저 라다는 항상 사령관님을 사랑하고 아낄게요. 이렇게”
그녀는 길고 가지러한 손가락을 뻗어 그의 바지 속을 훑어 내려갔다. 그때마다 쿠사이는 등줄기의 뜨거운 물결을 견디지 못하고 거친 숨을 내쉬었다. 세상의 모든 뜨거움을 다 가지고 있는 입맞춤이었다. 아무리 만년설이 덮인 에베레스트라도 그녀의 이 뜨거운 입김을 쐬면 다 녹아내릴 것 같았다.
“으으......, 후우.....,”
쿠사이는 그녀의 입술이 아랫도리를 스치기만 해도 살결이 부르르 떨며 성기가 꿈틀거렸다.
그녀에게서는 끝없는 사막을 달리는 말의 발굽 소리가 들렸다. 땀으로 흥건히 젖은 갈기를 날리며 거침없이 뛰어가는 말. 라다의 갈색 피부는 정말 그 갈기처럼 부드럽게 그의 손가락 사이로 흘렀다.
아니다. 그러면서도 초원의 향기를 내풍겼다. 지천으로 깔린 들꽃 위를 맨몸으로 뒹굴고 있는 자신을 본 것도 같았다. 코에 파고드는 은은한 향기, 그녀의 내음이다.
쿠사이는 하체를 들며 그녀의 길고 뜨거운 입맞춤을 견디지 못하고 그녀의 하체를 들어 얼굴 위로 옮겼다. 땅의 관대한 축복이 그의 얼굴 위로, 입으로 쏟아져 내렸다. 들꽃의 향기를 마시며 쿠사이는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턱수염이 덥수룩한 아부 굴랍 수용소장은 툴파와 말을 나누다 이미 준비를 했다는 듯 서둘러 지하로 안내를 했다. 밖의 차가운 공기와는 다른 느낌의 서늘한 공기가 얼굴에 닿았다.
계단을 3,4분 동안 내려가서야 굵은 나무로 된 통문이 나오고 그 문을 지나서야 조금 널찍한 공간이 나왔다. 냉기가 몸을 움츠리게 할 정도로 추웠다. 입에서 하얀 김이 나왔다. 냉기가 흐르는 공간은 서너 칸의 또 하나 작은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다. 언뜻 보면 큰 선반 같았다. 작은 공간 하나마다 얼굴이 가려진 사람이 들어있는 게 보였다. 얼굴은 검은 두건으로 가려져 누구인지 구분이 안 갔지만 남자와 여자 구분은 가능했다. 전통 아랍옷차림도 있지만 제법 개방적인 사람은 양복이나 양장을 입고 있다.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아 손들은 앞으로 모아져 차가운 쇠붙이, 수갑에 채워졌다. 도망갈 곳도 도망칠 수도 없지만 기를 죽여 놓으려는 것이다. 이미 기는 죽었다. 입구에서부터 여기까지 오는 동안 눈은 보이지 않아도 울음소리 비명소리 등에 이미 쫄아 든 그들이다. 아니 그 이전에 앞에 나타나서 ‘우린 ISO야’란 말에 등줄기로 소름이 스쳐간 그들이다. 지금 그들의 귀에 들리는 목소리는 지옥의 우물을 타고 들려왔다.
“난 항상 궁금해 왔는데 말이지 거 있잖아? 항문 말이야. 남자와 여자 중 어느 구멍이 더 잘 들어갈까? 툴파, 자네는?”
툴파는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냉기가 흐르는 공간을 둘러보며 쿠사이의 말에 적당한 장단을 맞췄다.
“각하. 아무래도 구멍은 여자가 더 전문 아니겠습니까? 아랫구멍이나 뒷구멍이나 똑 같은 구멍인데 여자 하면 역시 구멍이고 거기도 더 잘 들어가지 않겠습니까?”
“그래? 그렇다면 증명을 한번 해보게나.”
쿠사이는 오래 전 이곳에서 아이스의 철제 기둥을 떠올렸다. 형이 즐거운 몸으로 어린 계집아이를 올라타고 있을 때 아이스는 기름칠한 철제 기둥에 그녀들의 남편과 오빠들을 얹어놓고 항문을 뚫었었다. 그때 쿠사이는 섬뜩한 섬광이 머리를 후려쳤다. 아찔한 느낌, ‘쏴아’ 소리를 내며 자신을 담금질하는 푸른 연기. 그것의 기억은 너무나도 선명했다.
아랍무역협회 직원은 모두 서른 명 정도. 지금 끌려온 인원은 모두 안와프 나자르와 관련이 있는 업무를 보고 있는 그러니까 수입부다. 외국의 농산물을 수입하는 데 이들의 역할이 컸으며 이들의 도움으로 안와르는 부를 축적하고 그 부의 일부를 형 우다이에게 넘겨준 것이다. 꼬투리는 쉽게 잡혔다. 안와르의 계좌를 추적하니 일정액이 협회 쪽, 주로 수입부의 직원들에게 골고루 나눠준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안와르를 엮을 수 없는 것. 더 큰 게 필요했다. 클수록 돌아온 곳도 많은 것이 아닌가.
“이봐 간수 저기 두 놈 끌고 와. 덜덜 떨고 있는 저기 저 놈과 저 쪽 저 년.”
“예. 저기 치마차림 저 여자 말이죠. 알겠습니다.”
몸은 둔해 보일 정도로 비대했지만 그 놀림은 잽쌌다. 간수의 몸이 커서인지 손에 잡힌 여자는 깃털처럼 가벼워 보였다. 대롱대롱 매달린 여자는 비명을 내지르며 발길질을 해댔다. 얼굴은 검은 두건으로 가려져 있어 자신을 붙잡은 사람도 소름 끼친 말을 던진 사람도 누구인지 몰랐다.
발길질이 심한 바람 탓에 검정 구두가 벗겨졌다. 두꺼운 스타킹을 신은 다리와 발을 그때까지도 허공으로 쳐댔다. 닿지 않은 바닥이 더 무서움을 준 것일까 여자는 몸을 뒤틀며 울음 섞인 비명을 냈다.
“시끄럽군, 조용히 시켜”
“아니, 오히려 더 즐겁지 않나? 배경음악도 없는데 이런 소리까지 없으면 더 적막하지 않겠어. 그렇지 않을까? 툴파”
“아, 예. 맞습니다. 이봐, 간수. 더 크게 비명을 지를게 하라고”
툴파는 쿠사이의 한 마디에 몸을 낮추고 간수보다 더 심하게 여자를 후려쳤다.
‘케에에엑,’ 발길에 채인 똥개 울음을 냈다. 툴파의 손이 여자의 갈빗대를 후려 친 것이다. 통증도 통증이지만 가슴이 울렁거릴 정도로 그 아픔이 컸다. 누구인지 보이지 않은 사람이 보이지 않은 곳에서 자신을 때린다는 것, 그것은 너무 무서웠다.
“벗겨서 눕혀. 궁둥이가 보이게.”
쿠사이는 두어 발짝 떨어져 치마와 상의가 찢겨져 나가는 여자를 즐거운 눈으로 봤다. 여자를 벗기는 경우는 두 가지가 있다. 사랑스런 여자의 속옷을 벗기는 떨리는 손이 있지만 이처럼 수치심을 주기 위해 강제로 찢어발기는 것도 있다. 설렘은 똑 같다. 하얀 속살을 보이며 옷이 벗겨져 나간 여자는 누가 보더라도 군침이 돌 것이다.
“엉덩이를 높이 해서 묶으란 말이야. 다리를 쫙 벌리고 엉덩이를 들게 해”
간수가 무릎을 구부리게 하고 종아리와 발목을 묶자 여자의 엉덩이는 두 쪽이 벌어지며 부끄러운 곳을 내보였다.
툴파는 그때까지도 소리를 내지르던 여자의 엉덩이를 만지며 쿠사이를 봤다. 고개를 끄덕이자 손가락을 꼬나 세우곤 항문을 건드렸다. ‘이이이익!!!’ 차가운 손가락의 감촉. 전갈이 살결을 스르륵, 스르륵 걷는 느낌. 여자는 또 목소리를 높였다. 허리를 비틀지만 사지가 묶인 몸은 1센티도 움직이지 못했다. 통통한 엉덩이다. 나이는 스물 후반. 개방된 여자이기에 협회에서 업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라크는 사회주의를 지향하지만 여자에게만은 일자리나 교육이나 제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됐으면 다음 상대를 끌고 와야지, 뭐 하나?”
항문을 만지작거리다 바로 아래 갈색 털이 부수수한 음문을 손으로 집으며 희롱하던 툴파는 바지에다 손을 닦으며 간수를 데리고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모두 검은 두건을 얼굴에 덮어쓰고 있어 인기척으로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추위에 드러난 손이 파랗게 얼어붙고 있었다. 그러나 추위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으니 바로 육체적 고통과 굴욕이다. 발가벗기는 굴욕은 참을 수 없는 슬픔이다.
툴파가 끌어온 남자는 서른이 넘어 보였다. 손이 뒤로 돌려져 역시 수갑에 채워졌다. 질질 끌고 온 간수가 여자가 엎드린 채 묶여 있는 목제침대 옆에 같은 자세로 묶었다. 옷은 발가벗겨져 하체와 상체를 모두 드러냈다. 다행이라면 이곳은 살을 파고든 추위는 없다는 것이다.
“내기를 계속해 볼까? 툴파 너는 누가 더 잘 들어간다고 했지? 여자라고 했나?”
“아, 네. 제가 볼 때는 여자들이 더 잘 들어 갈 것 같다고 했습니다만”
눈치를 살피는 툴파다. 결정은 아니 설사 여자가 더 잘 들어간다고 할지라도 쿠사이의 말을 따라야 하는 것.
“하하하, 그렇다면 시작해 볼까. 서로 반대로 옮겨라구”
엉덩이를 들어 올린 둘은 얼굴이 아니라 엉덩이를 서로 마주보는 자세가 되었다. 얼굴은 바닥에 찌그러트릴 정도로 뭉개져 있다. 표정은 아마 가관일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 지는 그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무지막지한 구타나 전기고문을 떠올린 그들은 하체에 차가운 물체가 닿자 허벅지와 어깨를 떨었다.
간수가 두 엉덩이 가운데에 기계 비슷한 것을 놓고 끝이 날카로운 파이프를 끼웠다. 덩치 좋은 간수가 그 기계 손잡이를 잡고 돌리자 파이프는 날카로운 끝을 세우며 둘의 하체로 찾아갔다. 항문 주름을 조금 벌리며 파이프가 멈추자 쿠사이는 둘에게 들으란 듯
“오늘 내기는 아주 중요한 거야. 누가 더 깊이 박힐 것인가 아마 최초 실험이 아닌가 싶은데 그것도 영광으로 알아라구. 길이야 파이프 눈금으로 다 알 수 있지만 난 그런 수치상 기록보다는 인간적 기록을 더 좋아하지. 누가 더 깊이 들어 갈 수 있는 가? 무척 궁금하군. 먼저 비명을 아니 신음소리 하나 내면 그 자가 바로 실격이야.”
쿠사이는 웃음을 흘리며 하얗게 드러난 둘의 하체를 손바닥으로 톡톡 두드리며 간수에게 눈짓을 보냈다.
실내의 공기는 무거움 그 자체다. 쿠사이가 말을 끝내고부터 둘은 가느다란 신음 하나 내지 않은 것이다. 들리는 소리라곤 기분 나쁜 기계음이다. ‘끽끽’ 나사가 돌아가며 내는 쇠붙이의 마찰음은 고막을 진동시키고 엉덩이 가운데 검붉은 살점의 구멍을 뚫고 들어갔다.
날카로운 끝은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연역한 살이나 근육은 쇠를 당하지 못했다. 한번 파고든 파이프는 1센티, 또 1센티 항문의 깊이야 뻔한 것. 숨을 죽이고 입을 크게 버리고 있던 여자의 두 눈이 빠져나올 만큼 커졌다. 마치 파이프가 눈알을 밀어내고 있는 듯 하다.
이빨을 악물고 있는 남자도 예외 없다. 눈을 감고 아픔을 참으려 하는 모습이다.
“얼마나 들어갔나?”
2 분여가 지나자 툴파가 궁금하듯 피가 조금 흐르는 둘의 항문을 보며 간수에게 물었다.
파이프의 굵기는 직경이 3센티 정도. 그러나 근육이 늘어날 수 있는 여지의 한계를 넘었다. 위와 아래의 살이 찢겨졌다. 팽창한 근육이 파이프를 물고 있다.
“한 5센티 정도 들어갔습니다. 계속할까요?”
간수는 기계의 손잡이를 천천히 돌리며 쿠사이를 봤다. 더 돌리면 아마 내장이 상처를 입어 죽을 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쿠사이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계속하라는 지시다.
다시 파고든 파이프가 조금 더 들어가자 몸을 앞으로 빼려는 둘의 하체와 상체가 부들부들 떨었다.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이 고통을 소리로 잊고 싶었다. 차라리 죽더라도 외치고 싶었다. 이 땅의 모든 저주를 퍼붓고 싶었다. 그러나.....,
그 뒤는 더 무서운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둘이다. 여기서 먼저 신음을 내면 지는 것이고 실격자는 무자비의 고통에 떨어질 것이다.
비명은 여자가 먼저였다. ‘아악!!!’ 조용한 실내를 채운 비명은 줄어들지 않고 더 커졌다. 온 몸이 식은땀으로 흥건한 여자는 눈물을 철철 흘리며 살려달라는 읍소다. 흰자위가 가득한 눈이다. 검은 눈동자는 빠져 나간 듯 하다. 파이프를 따라 붉은 피가 흐르고 있다. 어픔에 오줌을 지린 여자는 얼굴을 널판에 묻고 허리를 비틀고 있다. 날씬한 허리와 풍성한 힙이 매력 있는 여자다. 허벅지와 종아리는 힘을 주어서인지 핏줄이 굵어 있다.
“기록은?”
“7센티 50입니다.”
“툴파, 자네가 졌어”
“죄송합니다. 제가 잘 몰랐습니다.”
“하하하, 모르긴 뭘 모른가. 나도 모를 일인데. 그건 그거고 이거 빨리 치우지”
두건을 뒤집어 쓴 남자는 뻘뻘 땀에 절은 얼굴로 살았다는 안도감을 갖고 있었지만 갑자기 거세게 파고든 힘에 눈알을 휘번득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탁한 비명. 온몸을 떨던 남자는 점점 지나자 떨림이 멈췄다. 파이프는 이미 30센티 이상 들어갔다. 날카로운 끝이 심장을 찔렀거나 위장을 찔렀는지 얼굴 아래로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럼 툴파, 우리 또 내기할까? 자네가 아까 여자는 구멍이 있어 더 깊이 들어갈 거라고 했지? 얼마나 들어가나 볼까?”
피와 배설물이 묻은 파이프를 다시 여자의 음부에 조준한 간수는 호기심 있는 눈으로 여자의 갈색 음모와 그 위 붉은 구멍을 보며 기계를 돌렸다. 빨리하란 재촉에 손잡이를 마구 돌리자 파이프는 쑤욱 들어갔다. 살을 말아가며 들어가는 파이프다.
‘아, 아,’ 엉덩이를 비틀며 피하려던 여자는 자신의 속을 밀고 들어온 차가운 막대기가 질을 거칠게 헤집자 소리를 질러댔다. 감정이 없는 금속은 그런 소리를 아랑곳 하지 않으며 질의 끝 벽을 따라 자궁을 건드렸다. ‘우웩’ 토하는 소리다. 이미 상처를 입은 내장에 자궁까지 상처를 준 파이프는 계속 파고 들어가 창자와 심장을 찔렀다. ‘꾸르륵, 꾸르륵’ 바람 빠진 소리가 두건 속에서 들렸다. 그리고 조용한 떨림. 어깨를 부르르 떨던 몸이 처졌다.
“아주 깊이 들어 가군. 이 년은 구멍이 깊은 가 보지. 간수, 다 치워버려. 냄새가 독하군.”
작은 공간에 갇혀 있던 협회 직원들은 지금 무슨 일이 밖에서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자신들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지도 몰랐다. 지금이라면 요구하는 대로 하라는 대로 다 할 것인데 그들은 딱 집어서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처형? 남의 일이 지금은 자신들에게 일어나고 있단 말인가.
이라크에서는 처형이 일상사다. 밥을 먹고 잠을 자듯 생활화가 되었다. 단지 그것이 내일이 아니고 남의 일만 되면 좋았다. 쿠란의 규약을 따르던 이라크의 법을 따르던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그 위법자는 먼지처럼 사라졌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생명체라면 맞을까.
그런데 그 남의 일이 지금은 자신의 일이라니. 무역협회 수입 업무를 맡고 있다는 단 한 가지 이유로서 둘이 끌려갔다. 그들은 아마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죽음이란 단어는 무섭지 않았지만 어떻게 죽는 가가 무서웠다. 소문은 무성했다. 목을 벤다든지 다리와 손목을 끊는다든지 하는......,
보이는 것은 어둠. 두건은 세상과 단절을 시켰다. 혀를 깨물고 죽고 싶은 유혹을 뿌리칠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그 후에는 가족과 친척 모두에게 화가 돌아갈 것이 뻔하다. 죽음마저 선택할 수 없는 그들이다.
“이제 대화를 나누어 볼까?”
쿠사이가 그들 앞에 앉았다. 차가운 바람이 두건에 스쳤다. 얼어붙은 입.
“..............”
“대화를 나누자는 데 이 사람들은 왜 아무런 말이 없나? 툴파. 어떻게 생각하나?”
“방법을 모르나 봅니다. 제가 가르쳐 주겠습니다.”
긴 고무호스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나란히 의자에 묶여 있는 다섯은 아픔에 비명을 질렀다. 허벅지에 계속 떨어지는 고무호스는 탄력 좋은 공처럼 팡팡, 튀면서 옷을 찢어발기듯 춤을 추었다. ‘억,’ 하는 비명이 되돌이표처럼 나왔다. 차도르를 입은 여자는 다리를 꼬며 몸을 흔들었다. 신발이 벗겨진 발이 창백하게 얼어붙었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의 냉기가 발바닥을 뚫고 있었다. 하얀 발을 보던 쿠사이는 그 때 그 발목, 바스라의 잘려진 발이 겹쳤다. 잔잔한 흥분의 물결. 쿠사이는 바지 속이 꿈틀거렸다. 생명을 잃은 그 발은 강한 성욕을 자극했었다. 살아 있는 몸보다 더 뜨거운 열정을 주었다. 툴파의 고무호스가 멈추자
“이젠 말해볼까?”
“뭐, 뭣을.....,”
“그래? 뭘 말해야 모른단 말이지. 간단해. 안와르와 어떻게 짜고 있지?”
“.......”
“툴파. 아직 부족하군. 더 세게 해”
쿠사이의 명령은 신의 명령이다. 적어도 여기에서는. 툴파는 가운데 앉아 있는 두루마기 같은 것을 걸치고 있는 남자의 옷을 위로 걷었다. 속옷마저 칼로 찢어버렸다. 갈색 성기다.
축 쳐진 성기를 손으로 까닥거리다 아래 쪽 음낭을 왼손으로 톡, 불거지듯 쥐고 오른손에 들고 있던 집게를 거기에 맞췄다.
남자는 뭔지 모르지만 독한 그 무엇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았다. 떨기 시작한 남자는 고통의 외침으로 시간을 멈추려 했다. 집게는 사람이 아니다. 조금씩 조여 갔다. 음낭이 깨질 듯한 고통. 더 힘을 주면 계란이 터지듯 터질 것이다. 울음, 비명. 애원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비명소리가 얼마나 애잔했으면 그 옆에 앉아 있는 여자의 아랫도리가 촉촉이 젖었다. 오줌을 지린 것이다.
“툴파. 이 년을 벗겨봐.”
검은 자국이 곰팡이처럼 번져간 여자를 지목하자 집게를 풀었다. 발그레한 물린 자국과 통통 부어오른 음낭. 더 쥐었으면 아마 깨졌을 것이다. 툴파는 웃으며 여자의 치마를 걷었다. 숨겨진 속살을 본다는 것은 항상 즐거움이다. 보여주고 싶지 않은 속살이 드러날 때의 은근한 떨림은 언제고 자극을 주었다. 젖어 있는 속옷은 갈색이다. 계곡을 덮은 보송보송한 갈색 음모가 물기에 번들거렸다. 허벅지에 걸려 있는 하얀 팬티가 욕구를 더 충동질했다. 두건이 세차게 옆으로 흔들거렸다. ‘이.......櫻 이빨 사이로 흘러나오는 비명. 이들은 지금 무슨 일인가 자기에게 해를 가하려고 하는 거다. 묶인 다리를 동동 구르지만 몸은 의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대신 의자가 쓰러지며 몸집이 제법 큰 여자는 의자에 고정된 그대로 바닥에서 꿈틀 거렸다. 발목이 의자 다리에 묶였다. 일어서지도 못한 여자는 충격 탓인지 ‘으....,.’ 하는 신음을 내고 있다.
“일으켜 세워. 옆으로 나자빠진 모습이 보기에 그렇군. 그 치마는 다 벗겨버렸으면 좋겠어. 부끄럽긴 하겠지만 속살을 뽐내고 싶어 하는 년들도 있으니까.”
“그렇겠습니다. 각하. 제가 보기에도 이 년은 통통한 게 가랑이를 보이고 싶어 미치지 않나 합니다.”
몸과 의자를 잡아 불끈 들어 다시 세운 툴파는 치마 끝을 잡아 칼로 그었다. ‘’찌익‘ 천이 갈라지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손목과 발목이 묶인 여자는 몸을 비틀기만 할 뿐 속살을 조금씩 드러냈다. 차가운 공기에 살갗은 움츠려들었다. 추위에 놀란 피부다. 유방 역시 차가움인지 공포감인지 유두가 빳빳하게 일어섰다. 검붉은 유두다. 유륜이 분홍빛이어서인지 검붉은 유두가 또렷하다. 통통한 몸매에 젖통 역시 통통하다. 몸이 흔들거릴 때마다 시계추가 움직이듯 옆으로 출렁거렸다.
“보기에 좋군. 여자는 역시 발가벗겨야 제 맛이야. 그렇지 않나 툴파?”
“각하, 그렇습니다. 아주 탐스러운 게 좋습니다.”
쿠사이의 눈길이 조금 전 자신이 휘둘렀던 고무호스에 머물자 알았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그 호스를 쥐었다. 한두 번 바람을 가르자 ‘쌩’하는 소리가 났다. 여자는 놀라 얼굴을 들고 두리번거렸다. 지금 이 남자가 무엇을 할 건지 아는 듯했다. 그렇다. 여자의 예감 그대로 호스는 두 개의 몽실한 살덩이를 후려쳤다. 붉은 자국을 가슴에 남긴 호스는 다시 허공을 가르며 젖통을 때렸다. ‘척!!’ 붉은 자국을 싸안듯 내려쳐진 호스는 푸른 멍을 남기며 여자를 떠났다. 머리를 죽은 듯 흔들며 발악을 하던 여자는 경기 든 사람처럼 부들부들 떨었다. 또 오줌을 지린 여자다. 바닥으로 줄줄이 흐른 오줌은 물길을 이뤘다. 얼마나 거친 비명을 내 질렀든지 목이 쉬었다. 연거푸 떨어진 호스는 여자의 가슴에서 두 젖통을 떼어내고 말겠다는 것인지 붉으죽죽한 자국을 통통 불게 했다. 더 후려치면 피부가 터져 찢겨질 만 했다.
감각이 없는 마네킹이 아주 샌드백 같은 물체가 퍽, 퍽 소리를 내고 있었다. 쿠사이가 손을 들자 멈춘 툴파. 툴파의 바지 속도 부풀기는 마찬가지다. 젖통을 후려칠 때의 쾌감은 짜릿했다.
그리고 남은 것은 그들 모두가, 살아 있을 그 때까지 안와르의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이다. 준비는 길지만 결과는 짧았다.
바그다드 교외. 우다이 저택.
한 차례 체육계를 둘러 본 우다이는 지친 몸을 쉬고 있었다. 남한 사절단 일행과의 접견 이후 그의 욕심은 더 커졌다. 세계 대회를 유치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그 전에 각종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올렸으면 하는 게 진심이었다. 국가의 미래와 민족의 긍지, 그것은 양보할 수 없는 가치였다.
리브의 하체에 얼굴을 박고 샘물을 홀짝홀짝 마신 우다이는 페기의 잘 빠진 다리를 끌어당겨 자기의 물건에 가볍게 문질렀다. 두 발가락 사이에 끼우고 전후로 움직이는 즐거움은 또 다른 맛이 있었던 것이다. 리브의 하체는 음모가 모두 깎여 민둥산이다. 소녀의 음문이 날개 까지 달린 모습으로 활짝 벌려 있다. 그 안으로 촉촉이 젖은 물이 번들거렸다. 입은 리브의 하체에 묻고 페기의 발가락 사이를 물건으로 애무하던 그는 다시 알리스의 몸을 끌어당겼다. 세 소녀는 눈이 풀린 인형들이다. 이것으로 끌려온 지도 벌써 몇 년이 지난 듯 했지만 언제가 언제인지 불분명했다. 하는 일이란 먹고 자고 가꾸고 그리고 이렇게 이 사람을 위해 침대에 뒹구는 일이 모두였다. 가끔씩 보여주는 처형하는 장면은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처음엔 약을 먹어가며 이 남자가 하는 대로 몸을 맡겼지만 그 장면을 본 뒤론 약을 먹지 않아도 먹은 것처럼 정신이 몽롱했다. 혼이 빠져나간 느낌이 바로 이런 것이리라. 그래서 우다이가 모니터를 보여주며 낄낄 거려도 따라 웃을 뿐이었다. 모니터엔 리브가 가랑이를 활짝 벌리고 털이 모두 제거된 붉은 속살을 보여주며 웃고 있었다. 리브만 그런 것이 아니라 페기와 알리스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그의 아랫도리에 얼굴을 묻고 서로 핥으며 좋아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항상 일어나는 일상이기에 거리낌 없었다. 리브나 페기나 알리스는 처음엔 아픔이 느껴지고 그랬지만 지금은 그의 손길이 어깨에 닿아도 몸이 타오르며 들떴다. 머리를 쓰다듬기만 해도 하체가 욱신거리며 절로 엉덩이를 꼬았다.
리브는 그 광경이 떠나지 않았다. 역사책에서 가끔 본 삽화에서도 그런 장면을 없었다. 자기의 고향인 텍사스에서도 흑인 노예들을 그렇게 처형하진 않았을 것이다.
흰 칼. 번득거린 섬광. 그리고 침묵 속 잘려진 머리통, 그것이 전부였다. 무스타파란 남자가 들고 있던 칼은 날렵하게 생긴 칼이었다. 가느다란 칼은 그의 손에 들여지자 무서운 속도로 여자와 남자들의 머리통을 분리 시켰다. 그들 목에 걸려진 죄명은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아마 큰 죄를 졌나보다 생각 했다. 휙, 하는 소리가 마치 리브 자신의 목을 잘라낸 듯 했다. 목을 옴츠린 리브는 손으로 자신의 목을 확인까지 할 정도였다.
“리브 너를 보면 꼭 이 여자가 떠올라. 여기 이 사진을 봐. 누구지?”
“..........”
“왜 모르나? 이 여자는 바로 너희들 대통령의 딸 제나와 바바라지. 난 이 두 년을 언제고 내 허리 밑에 눕히고 박아 버리고 싶어. 미국을 점령하는 그 날, 제일 먼저 이 두 년을 잡아다 이렇게 해버릴 거란 말이다.”
리브의 구멍을 혀로 파고든 우다이는 몸을 일으켜 세워 리브의 벌어진 구멍에 성기를 세워 꼽았다.
“으음, 하아.........”
“좋지? 너희들 양키는 이런 큰 물건을 좋아한다는 말이 사실이야.”
리브를 올라탄 그는 페기와 알리스를 잡아당겨 거꾸로 리브 위에 앉게 했다. 알리스의 얼굴이 리브의 얼굴을 마주보게 앉히자 잘 빠진 아닌 성숙한 엉덩이가 틈을 벌리며 그의 얼굴 바로 앞에 놓였다. 리브의 구멍을 파며 그는 두 손으로 알리스의 엉덩이를 벌렸다. 발간 구멍이 드러났다. 작고 귀여운 구멍. 그의 손가락은 탐미의 구도자처럼 그곳을 비집고 들어갔다. 마른 살이 벌어지며 더 붉은 속살이 드러났다.
“아!!. 아파요.”
매번 하던 것이지만 그의 손가락이 너무 거칠게 파고든 것이다. 구멍에 들어간 골프공을 짜증을 내며 꺼내들려는 골퍼 같았다. 급하게 후벼 파던 그는 두 손으로 살을 벌렸다. 혀를 내어 작은 구멍을 핥았다. 침으로 반질거린 구멍이 알리스가 숨을 쉴 때마다 움찔하자 리브의 애액이 묻어난 성기를 꺼내 알리스의 작은 구멍에 맞췄다. 허리를 끌어안고 힘을 주어가며 밀고 들어갔다.
“아아아. 천천히......, 아 아파”
알리스는 뒤로 파고든 아픔이 유난히 컸다. 한두 번 하는 항문섹스가 아니지만 오늘은 너무 거칠게 박아댄 것이다. 힘을 빼고 긴장을 풀어도 아픔이 얼얼했다. 얼굴을 찡그리며 시트에 파묻었다. 리브는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 알리스의 신음을 입으로 받아들였다. 우다이가 힘을 주며 몸을 밀어재끼자 두 소녀의 유방이 마찰을 시작했다. 페기는 앉는 채 친구들을 보고만 있다.
그래. 너희들 양키들, 언제고 나 우다이가 이렇게 내 좆 밑에 눕게 만들 것이다. 너희들이 아무리 강해도 아랍의 이름으로 아니 알라의 이름으로 너희들을 응징하고 말 것이다. 이렇게 말이다.
우다이는 몸을 더 세차게 밀어재꼈다. 알리스는 무게를 견디려고 허벅지에 힘을 주며 엉덩이를 돌렸다.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동작이지만 우다이는 끊기지 않은 튼튼한 밧줄처럼 알리스의 엉덩이를 옭아맸다.
겨우 사정을 끝냈을 때 알리스는 힘없이 리브의 몸 위로 포개졌다. 리브의 아랫도리와 알리스의 엉덩이가 나란히 놓였다. 리브의 그곳에서는 자신의 애액이 알리스의 항문에서는 하얀 정액이 조금씩 흘러 나왔다.
“넌 이 둘을 깨끗이 핥아.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페기는 멍한 얼굴로 두 친구의 아랫도리를 핥았다. 시큼한 냄새. 엎드린 자세로 리브의 음부를 핥고 있던 페기는 우다이가 한 발을 잡아끌자 마치 개가 오줌을 누는 자세가 되었다.
우다이는 페기의 부드러우며 고운 선을 그린 발을 들어 가슴에 문질렀다. 따뜻한 기운이 심장을 뛰게 했다. 사정을 끝낸 뒤라 욕구는 없었지만 페기의 하얗고 스펀지 같은 발을 가슴에 비비자 또 다른 충동이 일었다. 얼굴로 당겼다. 발바닥이 진한 살내음을 풍기며 그의 후각을 때렸다. 오늘은 포도향이다. 매번 갖가지 과일 원액으로 향기를 품게 만든 그다.
포도향을 페기의 발에서 느낀 그는 넓은 포도밭을 거닌 풍요로움이 들었다. 작은 발가락이 포도송이 같았다. 한 입에 물자 톡 터지며 진한 포도향을 주었다.
오늘로서 이 셋은 끝이다. 무스타파에게 주든지 아니면 살아서는 나올 수 없는 <무까바라>에 보내든지 할 것이다.
하라드, 그러니까 예전 폐다인 시절 부관으로 일하던 그가 쿠사이의 SSO에게서 들은 얘기가 아무래도 찜찜했다. 인터넷에 띄운 사진이 미국과의 긴장 관계로 발전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별 것 아냐, 하고 내칠 일은 아니었다. 이것을 핑계로 또 그 놈들이 어떤 오랏줄을 내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요즘은 아이스도 자주 오지 않고 왠지 밖의 하늘처럼 우중충한 심정이었다.
그냥 사자 먹이로 던져버릴까. 그러면 아무도 모르겠지. 그렇지만 저 나긋나긋한 육체를 그 놈들의 먹이로 하기엔 너무 아깝단 말이야. 차라리 무스타파에게 주고 가끔 데리고 놀까. 아냐 아이스가 있는 <무까바라>에 보내는 게 좋겠군. 그곳이라면 세상 그 누구도 모르게 없애거나 죽을 때까지 둘 수 있을 테니까. 아이스 그 사람이 데리고 온 얘들 그가 처리하면 되겠군. 그럼 됐어.
1998년 12월은 중순으로 들어갔다. 서양에서는 성탄이 얼마 남자 않았다고 난리들이었지만 이 나라는 무서운 침묵 속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것은 후세인이 TV에 나와 자주 강조한 강한 이라크 탓이다. 이럴 때면 꼭 무슨 일이 일어나고 했던 것이다.
아이스는 다시 검은 가방을 열었다. 저격용 라이플. 정확도가 제일 좋다는 M시리즈 그중에서 M82다. 탱크도 뚫는다는 이 총알은 후세인의 가슴 정도는 유리처럼 날려버릴 것이다.
시각은 12월 16일. 장소는 후세인 대국민연설이 있을 이라크국회 앞.
아이스는 차가운 금속을 꺼내들고 눈을 댄다. 가늠자에 벽의 그림이 보인다. 바벨의 탐을 담은 사진이다. 하늘로 가까이 가려는 인간의 욕망을 신이 벌 했다는 상징이다.
‘딱!’ 방아쇠를 당기자 공이가 차가운 소리를 던진다. 총알의 뇌관을 때리면 그 작은 알은 사정없이 날아가 인간의 욕망을 잠재울 것이다.
1998년 12월 16일.
아이스는 저 멀리 보이는 이라크 국회를 내려다보았다. 무까바라에서 내려 보이는 국회는 작은 모스크 같았다. 사정거리 1키로 가 넘은 M82는 이 정도 거리는 충분했다.
오늘 후세인은 미국과 영국 등 제국주의의 공격에 단호히 대처하자고 주장할 예정이다. 그 옆에는 두 아들이 서 있는 게 보인다. 하나 씩 가늠자 위에 담아본다. 후세인의 콧수염, 우다이의 면도한 얼굴, 쿠사이의 차가운 눈이 차례대로 스친다.
‘딱!’ 소리가 아니었다. 아무런 소리도 없는 총알은 후세인을 향해 날랐다. 그러나 가늠자 마지막 장면은 우다이가 쓰러지는 모습이다. 총알의 선택은 인간의 의지가 아니었다.
다음 날인 1998년 12월 17일. 기다렸다는 듯 미국은 유엔 이라크 무기 사찰 거부를 핑계로 바그다드 대공습을 퍼부었다. 모든 것을 일시에 지워버리려는 폭격이다. 비가 온 듯 쏟아진 포탄은 바그다드와 대도시를 파괴 했다. 바벨의 탑을 무너뜨리려는 신이 미국이던가.
작전 사막의 여우는 그렇게 시작됐다.
지하대피소에 피한 아이스는 마지막 바늘을 꺼내들었다. 포탄의 부모를 둔 세 소녀, 사막의 여우가 아니라 살아있는 세 여우가 눈물이 그렁한 채 그를 본다.
나란히 다리를 벌린 채 널판에 묶여 있다. 발가벗긴 몸 그대로다. 무릎을 묶어 양 벽의 고리에 걸자 아랫도리를 숨김없이 보여준다. 음모를 모두 밀어낸 삼각지에 조금씩 거뭇한 털이 자라고 있다. 유방도 성숙한 모습으로 가슴에서 출렁거린다. 겨드랑이 털도 제거했는지 깨끗하다. 머리만 남기고 모든 털은 밀어냈나 보다.
바늘을 꺼내 탁자 위에 늘어놓는다. 여러 바늘집이다.
리브란 소녀의 아랫도리부터 바늘을 꼽아 간다. 붉은 피. 경련하는 살들. 울부짖음. 거리에 퍼붓는 폭음을 덮을 정도다.
한 땀 한 땀 살을 뚫고 들어가는 바늘은 지금 페기의 두 발톱을 지나 발바닥 정중앙을 파고든다. 몸의 모든 기관의 신경점이 모인 발바닥 가운데를 뚫고 들어가자 페기는 흰자위만 남은 눈으로 신을 부른다. 마지막 바늘은 알리스의 에머럴드 눈이다. 눈동자 정중앙을 뚫고 들어간 바늘은 알리스에게 모든 세상의 저주를 퍼붓게 만든다. 허리를 들썩이던 고통에 찬 몸이 얼음 위에 놓인 개구리처럼 서서히 사지를 편다.
바늘이 만든 탑은 아름답게 널판 위에 펼쳐졌다. 소녀들의 몸에 박힌 바늘이 나비처럼 춤을 추었다. 부드러운 날개 짓 소리는 소녀들 신음이다. 그 옛날 바벨의 탑은 무너졌지만 바늘의 탑은 흰 빛을 뿌리고 있다.
아이스는 땀을 닦으며 바늘집을 챙기고 출구를 찾았다. 아제 나가면 끝이다. 알렉스는 공항에서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이곳에 돌아올 때 바늘의 탑은 또 세워질 것이다. 얼음이 불을 잠재우는 땅으로.......
- 끝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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