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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02:34 519회 0건
<조우>




해가 떨어져버린지도 아까의 일이 된듯한 무렵의 시점에, 그들은, 공원에 있었다.



고등학생정도로 여겨지는 여자 한명, 그리고 그런 그녀를 위로하려는듯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다섯명의 아이들.




그 아이들은, 매우 곤란한 입장, 난처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들의 우상이나 마찬가지인 존재인 사람이, 힘없이 어깨를 늘이뜨리고선 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울고 있는 여자는, 아이들이 자신때문에, 바보같은 자신때문에, 이런 모습을 보이고 있는 자기를 위해서 울어주는 그들때문에 가슴이 아프고, 미안하기 그지없는듯했지만, 별수 없었다. 그녀는 지금, 너무나 힘들어하고 있었고, 이루 말할수 없는 극도의 혼란에 빠져 있었기에, 도저히 울음을 참을래야 참을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것이 아이들에게 더 미안해서, 자기 자신이 더욱 한심스럽게 여겨져서, 더더욱 몸서리를 치고 있었다.



"윽....흑....흐윽...."



여자는 , 이젠 거의 끅끅거리면서 눈물을 쏟아내는 수준이었다. 지금 그녀의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아이들은 그녀의 울음소리를 듣는것만으로도 가슴이 아파 견딜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 울음소리는 격하지도 않았고, 날카롭게 고양되어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더 무서웠고, 더 몸서리쳐질정도의 감정으로 자신들에게 닥쳐오고 있었다.



참고 참다가, 억누르려고 끊임없이 애쓰다가, 못내 북받쳐서, 터져나온, 그 상황 속에서도 소리를 죽인 울음섞임. 당장에라도 숨이 넘어가지나 않을까, 멎어버리지나 않을까 하고 염려될정도의 느낌.



아이들은 원체, 잘 동요하지 않는다. 아이들의 집중을 받아낸다는건 생각 밖으로 어려운 일이다.



이정도의 감정을, 상대가, 그것도 아이들이 절절히 느낄 정도인것만 봐도, 그녀가 얼마나 인내하고, 억누르면서, 견디고 또 견뎌가며 힘겹게 살아가는 여자인지를 알수 있었다.



계속 끄윽끄윽 해대면서 슬퍼하는 언니를 보면서, 미정이가 눈망울을 글썽거리며 말을 걸어왔다.


"언니, 언니 그만 울어요. 제발요. 네?"


미정이가 입을 연것을 시작으로, 남자애들 역시 입을 연신 움직여가며 벤치에 앉은 여자를 달랬지만, 여자는 무응답인채, 눈물만을 흘려댔다.



아이들은 여자의 상태가 걱정되지 않을래야 않을수가 없었다.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리는 통에, 울고 있다는것만 소리로 들어서 짐작할뿐 표정을 볼수도 없었고, 어떤 심리상태인지도, 어린 그들로서는 짐작할수 없었기에, 그저 그만 울라는 말만 해줄수 있을뿐, 좀 더 고차원적인 상황 판단을 필요로 하는 일까지는 떠올릴수도 없었다.


그들은 그저 안절부절 못하면서 여자와 같이 울어줄 도리밖에 없었다.



사실, 그녀는, 정말로 아이들의 말을 못 듣고 있는 상황이었다. 온갖 감정의 소용돌이가 내면에서 들끓고 있었기에.


좀 전까지 절망에 빠져 있던 그녀의 감정은 이번엔 분노와 증오쪽으로 기울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이를 갈면서 금이 쫙쫙 가있는 아스팔트 바닥을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빌어먹을...!! 제길!! 정말....정말.......왜.........왜 안 나타나는거얏~!!!"


자신을 묶어둘 수 있는 사람. 자신을 안정시킬 수 있는 존재. 도대체 그는 누구일까? 있긴 한 걸까? 왜 안 나타날까?


어이없을 지경으로 힘이 센 것도 환장할 판인데, 박복한건지, 이또한 하늘의 장난인건지, 자신의 구속자는 나타나지를 않고 있다.


타개책이 보이질 않는 그녀로서는 조급할 수밖에 없었고, 콜라를 마신데다가 취기가 돌아 어느정도 얼큰하게 얼굴이 붉어진 그녀의 속마음이 온갖 비난과 증오로 가득찬다 해도 누가 그녀를 딱히 탓할수 있는 문제는 아닐 것이었다.


아이들은, 어느 순간부터인지는 모르지만, 같이 있는 누나에게, 언니에게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오싹...하다고 해야 할까. 갑자기 닥친 일이었다.


가라앉아 있었다. 무섭도록 가라앉아 있었다. 좀전까지만 해도 들리던 울음소리가 어느새 들리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뭔가 기이한 느낌이 자신들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아이들은 순간 겁을 집어먹고는, 강희 누나를, 언니를 쳐다보았다. 정찬이 조심스레 강희에게 질문을 던졌다.


"저...누..나?"


".............."


강희는 대꾸조차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인채로 있었다. 찬이는 한번 더 누나를 불러보려고 했다. 그때...


"앗!! 찾았다. 와하하~ 정말이다. 있다 있어~"


"흐흐~ 진짜네. 나이스~!!"





갑자기 요란스레 느껴질정도의 음성에 아이들은 모두 고개를 돌렸다. 물론 강희는 미동조차 없는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아이들이 고개를 돌려보자, 강희의 또래로 보이는 남자애들이 몇 있었다.


아이들은 그들을 당연 몰랐지만, 이녀석들은 강희에게 마음이 있는, 다른 고등학교에 다니는 녀석들이었다. 놀이터에서 공원으로 그녀와 아이들이 가는 것을 누가 보았나본데, 먼발치에서 본지라 긴가민가하다가, 놀던 곳에서 좀 시간을 보내고 난 후 자리가 파한 후에 혹시나 하고 공원을 들려본 모양이었다.


고개를 숙이곤 있었지만, 체형을 보아도, 머리스타일을 보아도 최강희가 틀림없다는 것을 그들은 알아챈 것이다. 당연히 입이 찢어질 수밖에.


말로만 듣고 사진만 봤지, 이 여학생을 직접 보는 것이 그들로선 처음인 모양이었다. 이녀석들도 자기들이 다니는 학교에선 나름 잘 나가고 꽤 논다고 하는 인간들이 모인지라, 그저 시시껍절한 놈들과는 달리, 제법 자신이 있어 그녀 앞에 나선 것이다.


패거리들 중의 한명이, 잘 되었다는 듯한 시선으로 강희를 쳐다보다가 자기네들끼리 눈짓교환이 좀 왔다갔다 한 후 강희에게 던지는 듯한 물음으로 넌지시 운을 떼었다.


"저~기? 그쪽...혹시....xx고등학교의 그 분 아니신지?~"


"..............."


여자는 시선을 주기는 커녕 고개조차 들지 않고 있었다. 녀석들은 서로 얼굴을 쓱 쳐다봤다가 약간 인상을 찡그렸다. <뭐냐?> 하는 표정들이었다.


아무리 잘난 면상을 가진 여자라지만, 대꾸정도는 해줄수 있는거 아닌가. 대꾸 해준다고 돈이 나가나 불익이 있나. 이건 완전 개쪽을 준다고 해석할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말을 붙여본 녀석의 옆에 서있던 놈이 이번엔 말을 걸었다.


"사람이 묻는데 좀 쳐다라도 보지? 보니까 xx고의 최강희같은데....같이 놀고 싶은데말야. 말은 엄청 많이 들었거든"


이번에도 강희가 반응이 없었지만, 녀석은 피식 웃더니 친구들을 보면서 씨익 웃으며 말했다.


"무~쟈게 잘 빠졌다는 이야기 말이야. 직접 보니...으흐흐~!!"


그녀의 각선미에 시선을 한번 준 후에 그런 식의 말을 내뱉은 녀석. 친구들은 그의 의견에 적극 동조한다는듯이 킬킬거렸다. 물론 소리를 낮춰 웃긴 했지만, 다분히 저질적인 느낌을 선사하기엔 충분했다.


녀석들이 지들끼리 겔겔거리고 있는데...여자가 그들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은채 땅바닥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져....."


" 응? "


녀석들은 여자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래서 의아한 표정을 면상에 띄우며 그녀를 쳐다볼 도리밖에 없었다. 그때, 그들은, 고개를 든 그녀를 볼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그 자리에서....얼어버렸다.


여자의 얼굴은 이루 형용할수 없을 정도의 분노의 형상을 띄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동자는....사람의 눈이 아닌것 같았다. 푸른 불꽃이 일렁이는 듯한 눈. 파충류처럼 차디차가운 눈. 자신의 시야에 담기는 눈 앞의 것들을 모조리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어하는 눈이었다.


그 날이 서 있는 듯한, 살기가 가득한 눈동자는, 증오가 가득찬 시선으로 자기들을 쏘아보고 있었다.


여자는 으르렁거리듯이 말했다. 마치, 상처 입은 맹수가 자신의 약점을 보이기 싫어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더 서글퍼보였지만..


"저......리......꺼......져....."



".........예......예"


그들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뭔가, 건드려선 안 될 것을 건드렸다는 느낌, 그런 필이 끊임없이 자신들의 뇌리를 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신호를 무시하고 그녀에게 또다시 말을 붙이는 멍청한 우를 그들은 결코 범하지 않았다.


패거리들 중에 한 놈이 떠듬거리면서 친구들을 보며 말했다.


"가..가자...얼른"


"어?...어..."


그들은 후다다닥, 미친듯이 달음박질쳐서 공원을 벗어났다.








공원에서 달리기 시작해 몇백미터를 죽어라 내달린 후, 놈들 중의 하나가 옆에 녀석을 툭 치면서 입을 열었다.


"헉헉...느...느꼈냐?"


"허억...헉...어..떤거?"


어떤걸 느낀거냐고 물은 친구에게 녀석은 대답했다. 턱에 고인 땀을 훔치면서.


"거기 계속 있었으면....진짜로...죽었을거야. 진짜로...."


그의 말에 동감한다는 듯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공원에서, 얼뜨기 패거리들이 미친듯이 뜀박질치며 공원을 벗어나는 상황 속에서도, 아이들은 그런 그놈들을 쳐다볼수가 없었다. 다리가 풀릴 정도로 떨렸기 때문이다.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것도 아니지만, 눈앞에 있는 여자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맹렬한 살기. 당장에라도 목이 잘릴것 같고, 머리가 쪼개질것 같다는 느낌.


아프리카에 산다는 사자와 1:1로 대치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런 느낌을 받을까? 아이들은 각자 나름대로, 이 누나, 언니를 어떠한 존재에 비유하면 좋을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처음에 그들이 당장 생각해낼수 있는 상상력으로는 맹수까지가 한계였다.


하지만 이내, 그들은, 맹수로는 이 여자를 표현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할수밖에 없었고....그보다 더 거대한 동물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그런 생각을 하건 말건, 애초에 그런걸 알 도리 자체가 없는 강희로서는, 다시 시선을 바닥에 꽂으면서 침묵에 빠져들었다.


"............."


그녀는 여전히 말이 없었지만, 속은 또다시 끝없는 슬픔으로 채워져가기 시작했다.


강희는 문득 생각했다.


만약...만약 자기가 남자로 태어났다면, 그 따위 개같은 쓰레기들이 계속 추근거리는 상황이 벌어졌을까..하고.


그들은, 도대체 그들은 자기에게서 무엇을 원하는 걸까.


그들은 자신의 안을 보려 하는것이 아니다. 내면을 보려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껍데기에 빠져 있을 뿐이다. 항상 그랬다. 항상.


언제나 그들은, 탐을 낸다. 자신의 몸뚱아리에.


이 세상의 어떠한 이성도, 자신의 슬픔을 이해해줄수 있을것 같지도, 이해를 하려고도 하지 않을 것 같다. 자기의 사정을 이야기하면 그들은 분명 이런 식으로 지껄이지 않을까. 힘이 세서 참 좋겠다느니 뭐니.


진정안이 있긴 하지만, 자신보다 어린 녀석에게 기대고 싶진 않았다.


나름대로 강하다고, 강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자신인데, 그런 짓을 해버리면, 자기 자신을 저버리는 것 같다는 느낌이랄까.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판이다.


제대로 된 심정을 나누고 토로하고 싶은 사람이 없다. 부모님의 가슴을 아프게 하기도 싫고, 유순한 성격의 유정에게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내면심리표출은 타인에겐 짐만 될 거라고 생각하는 강희였다.


으드득!!


강희는 이빨을 거칠게 갈고 나더니 입술을 깨물었다. 잠시 그러다가, 그녀의 눈망울이 또다시 일렁거리기 시작했고.....결국, 그녀의 눈가엔 또다시 눈물꽃이 피어갔다.


"아...아아......흑....."


강희가 또다시 어깨를 떨어대기 시작하자, 아이들은 이젠 정말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단 표정이었다.


"도..도대체....뭘 해야 하지?"


어린 아이들로서는 감당하기 벅찬 상대. 눈물짓는 여인. 슬퍼하는 누나. 힘들어하는 언니.


인생 선배를 자기들이 무슨 수로 위로한단 말인가. 아이들은 입술을 잘근거리면서 이런 생각을 할수밖에 없었다.


"누나(언니)는 남친도 없나...그런 사람 있으면... 지금 부르면 딱인데...."


나이에 비해선 훨씬 조숙한 애들이었다. 역시 요새 애들은 어려도 중요한건 이른 나이에 다 깨우치는게 아닐까 싶다....


강희도, 아이들도 그런 상황 속에서 괴로운 시간을 몇분이나, 몇십분이나 보내고 있었을까.......어느 순간 갑자기 들려오는 맑고 시원한 목소리.


"흠~? 아늑하고 조용해서 확실히 훌륭한 공원 같은데....왜 이리 음울하게 느껴지는건지? 바람결에 눈물내음이 실려오던데.. 이상하군 거참. 여기가 원인이 아닐까 싶은데..."


내용만 놓고 보면 완전 유치한 말. 하지만 그 목소리는 누가 듣던간에, 호감이 단박에 갈만큼 깨끗하고, 왠지 정감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그런 점에서 분명 훌륭한 목소리라는 점엔 모두들 이견이 없을 것 같지만.....아이들에겐 그다지 환대받지 못했다.


"으윽~!! 바보같이!! 누구야 도대체?"


아이들은 한결같이 단합된 마음으로 인상을 쓰면서 목소리의 주인공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도 그럴것이, 지금 이런 상황, 이런 심리상태에 놓여 있는 강희누나를, 언니를 자극해보아야 하등 이로울것이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저 목소리의 주인공은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을 재촉하고 있는걸지도 몰랐다.


도대체 어느 멍청이가,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한껏 목청을 돋워서 안그래도 조용한 공원을 요란스럽게 하는거야~!! 하는 느낌을 가슴속에 가득 채우면서 아이들은 상대를 쳐다볼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의 시야에 담긴 사람은.....남자였다.


한명의 남자. 이 역시 강희의 또래로 보이지만...아까의 저질스러워보였던 패거리와는 전혀 다른 타입의 남자.


그는 뭐든 평범해 보였다. 외모는, 잘 생겼다고 하기도, 못 생겼다고도 할수 없는, 그러한 얼굴. 머리카락은 평범한 스포츠형. 입고 있는 옷도, 화려할것 없어 뵈는, 걸치고 있는 것들도 모두 평균 그 자체인, 모든 것이 너무나 평범해서 오히려 그런 분위기가 묘하게 잘 어울리는 듯한 모습의 남자였다.


아까처럼, 요란하게 멋부리면서 화려하게 차려입을라고 기쓰는 듯해 보이는 놈들에 비해 훨씬 더 나아보이는, 아주 그럴듯해 보이는 남학생이었다.


아이들은, 처음에 인상썼던것과는 달리, 너무나 깨끗해 보이는 인상의 그 남자가 은근히 편안하게 느껴져 순식간에 스르륵 하고 표정이 풀려버렸다.


아이들의 멍-한 표정을 남자는 재미있다는 듯이 쳐다보다가, 벤치에 앉아 있는 여자아이를 씩 웃음지으면서 한번 바라봐준 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여자쪽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입을 열었다. 아주 자연스레....


"울고 있었던것 같던데...맞죠?"



움찔



여자는 순간적으로 전신을 한번 떨었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 아...."


강희는 저도 모르게 반응해버리고 고개를 들춰올린 자신을 발견했다. 그녀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왜...왜...!!"


자신의 얼굴은 온통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녀는 당혹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상대를 바라봤다. 앞을 보니, 왠 남자가 한명 있었다. 자기 또래로 보이는 남자가.


그는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는데, 그 표정이, 보는 이로 하여금 이상하게 안정감을 가져다주었다.


강희는 지금의 상황에서, 갑자기 자신에게 닥친 두가지 일때문에 크게 동요하고, 정신이 멍할정도로 놀랄수밖에 없었다.


첫번째는, 자신의 눈물을 상대방이 보았다는 것이다.


어떠한 식으로든 강희가 이성에게 눈물을 보이는건 태어나서 이번이 처음이었다. 물론 정찬이나 성주나 이런 아이들은 너무 어린 나이들인지라 범주에 들어가지 않았기에, 논외로 한다고 치고, 남자 앞에서 눈물을 보인건 정말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녀는 정말 어지간해선 누군가에게 자기의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는 여자였고, 상대가 남자이면 더더욱 그러하였다. 자신이 그러한 모습을 많이 보인다면, 안 그래도 짜증나게 하는 남자란 동물들이 더더욱 벌떼처럼 달려들까 저으기 염려되기 때문이기도 했고, 여자의 몸을 장난감처럼 생각하는 놈들도 있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그런 놈들은 마구마구 밟아버리고 싶어하는 여자니까.


아무튼,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이 남자에게 처음으로 눈물을 보인 그녀였다. 그래서 그녀는 일순간 당황할수밖에 없었다.


두번째로 놀란것은, 자신에게 이런 존재감으로 다가온 이성이 여태껏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정말 너무 놀랄수밖에 없어서 속으로 계속 의문에 또 의문이 꼬리를 물고 있었다.


"내...내가 왜.."


사실 그가 공원에 막 나타나서 입을 열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녀는 그의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히 동요받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저 사람이, 이쪽에 용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은 울고 있었기에, 그에게 얼굴을 결단코 보이지 않으려 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가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자연스레 고개를 들면서 우는 얼굴을 보이는 자신의 행동에, 그녀는 너무 놀랄수밖에 없었다.


더더욱 놀라운 건, 그녀는 생애 처음으로 태어나서, 눈앞에 서 있는 상대를, <남자> 로 의식했다는 것이다.


그 느낌은 지금도 전해져 오고 있다. 왠지 든든해 보이는 이성. 어쩐지 기대고 싶은 느낌을 선사하는 상대.


이러한 기분감정은 태어나서 맹세코 이번이 처음이었다. 강희는 왠지 얼굴이 붉어지는 자신을 의식했다.


상대는 그녀의 얼굴이 붉어지는것을 보면서 씨익 하고 미소지은 후에 주머니를 뒤적이면서 중얼거렸다.



"가만있자....손수건이 있던가..."



"!!"



그의 중얼거림을 들은 후에 강희는 핫!! 하고는 정신을 차렸다. 그가 저런 말을 하는 이유는 필시, 자신의 눈물을 봤기에 닦으라고 주려고 하는것이 아닌가.



그제서야 강희는 자기의 얼굴이 얼마나 엉망진창인지를 상기할수밖에 없었고, 그게 너무 부끄러워서 재빨리 자신의 손으로 눈가에 맺힌 눈물이며 자국을 지워내려고 손을 놀리려 했다. 하지만..



찰그락


"아..아차..."


강희는 순간, 자신의 양 손이 뒤로 간채 수갑이 채워져 있다는것을 떠올렸다. 구속되어 있음으로서 마음의 안정을 취하고자 했었기에, 찬이에게 부탁해서 차고 있었던건데....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어떻게 하지..."


수갑을 끊어버리는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끊어내려면 손동작을 좀 취하게 될텐데, 눈앞에 있는 남자가 어쩌면 보게 될지도 모르는 노릇이었다. 공원 벤치에서, 수갑을 찬채로 앉아 있는 여자라니, 상대방이 이상한 생각을 할수도 있었다.


찬이 쪽을 잠시 바라봤는데, 녀석은 남자를 주시하면서 자신의 눈길을 의식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찬이와 눈짓 교환을 한다는것 역시 무리가 있었다.


강희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남자는 그 짧은 시간동안, 자신의 청바지 뒷주머니와 윗옷의 안주머니까지 다 살핀 후에 멋쩍은 미소를 지으면서 미안한듯이 말했다.


"아...없네요 없어. 하하. 이거 괜히 뻘쭘하네.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있지도 않은것을 괜히 찾는 척 해서...."


"아...아뇨...아니에요. 감사합니다"


강희는 남자의 말에 진심어린 말투를 느낀지라, 정말 고마워하면서 당혹어린 시선까지 떠올려가며 상대에게 감사했다.


그런데, 그녀는 저도 모르게 감사한다고 고개를 숙인 것이, 상대편에서 볼때는 뒷짐을 진 상태로 고개만 수그린 형국을 취한지라, 모양새가 자연히 약간 어색해 보일수밖에 없었다. 보통 인사를 할때의 손동작은 그런 모양이 아니니까 말이다.


남자는 재미있어 하면서 입에 미소를 물며 그녀의 행동을 보더니, 약간 익살스런 표정을 지으면서 그녀에게 물었다.


"하하~ 등 뒤에 뭐라도 감춰놓고 있나요?"


"아..아뇨!! 그게 아니라...."


강희는 쩔쩔매면서 어떻게 대답해야 하지? 하고 안절부절거렸다. 그녀의 이러한 표정이며 행동은 아이들로서도 처음 보는지라 애들은 뭐가 뭔지도 모르면서 순간 개구장이같은 미소들을 각자 띄워가고 있었다.


남자는 큭큭대더니 순간 몸을 움직였는데, 걷는 품새가 유연하기 그지없었고 무척이나 재빠른 행동이었다. 강희조차도 미처 반응못한 사이에, 그는 그녀의 옆구리가 시각적으로 도드라져 보이는 옆면으로 이동하였다.


그정도의 위치변화만 취해도 그로서는 소기에 목적한 장면을 보는데는 하등 지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강희는 인사를 할때 이미 벤치에 앉아 있지 않고 서 있었기에.


강희의 두 손이 뒤로 간 채로 수갑이 채워져 있는 것을 보더니 남자는 피식 웃고 난 후에 곧바로 표정을 바꾸어 일부러 약간 과장된 눈과 입을 벌리면서 호들갑스러워보일정도의 행동을 취했다.


"어~어라? 왠 수갑이지? 설마 수갑을 차고 있을줄은 몰랐는데? 흠?~!!"


"아..저..그것이..."


강희는 정말이지 안절부절 못하면서, 상대에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하고 고심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고심을 하건 말건 그는 이번엔, 그런 그녀는 놔두고, 아이들 중에 여자아이를 보면서 사람좋아보이는 미소를 짓더니 소곤거리면서 질문을 던졌다. 그러고 보니 또 어느새 움직였는지 여자아이의 바로 옆에 가 있었다.


"이 언니가 왜 수갑을 차고 있는지 알고 있으면 가르쳐줄래 꼬마아가씨?"


"무..무슨 소리를!!"


강희는 화들짝 놀라 그를 보면서 말을 막으려 하였지만, 이미 아이들은 남자의 편이었다. 아이들은 이미 남자에게 충분한 호감을 가지고 있었고, 무엇보다, 좀전까지만 해도 슬픔에 빠져 있던 강희를, 지금 이렇게 바꿔놓은건 그의 힘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 남자는, 자신들이 보지 못한 강희 누나의, 언니의 모습을 아주 자연스레 끌어내고 있었다. 아이들은 이렇게 쩔쩔매는 모습의 강희를 처음 보았기에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는것이 재미있기 그지없었고, 작금의 상황을 만들어준 남자가 궁금해하는것이면 뭐든 도와줄 용의가 충분히 있었다.


강희가 어떻게 할 새도 없이, 미정이는 배시시 웃으면서 말했다.


"네. 언니는요~ 묶이는거 좋아한대요"


남자는 놀라운것을 알았다는듯이 일부러 크게 눈을 뜨면서 물었다.


"우~와. 정말? 묶이는것을?"


미정이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네. 그리고 그..뭐드라? 언니를 묶어줄수 있는 사람을 찾는데요. 언니는 아~~주 아주 힘이 세거든요. 히힛~. 그래서 찾는거래요. 저 수갑도 언니가 원해서 자기가 찬거구요."


"호오~ 그렇구나. 우와. 꼬마아가씨는 얼굴도 이쁜데 모르는것도 없네. 오빠가 많은걸 알았다. 진짜 고맙다. 하하"


"뭘요. 에헤헤~"


자기들끼리 죽이 척척 맞아 실실거리고 있는 그들을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보던 강희는, 약간 엄한 시선을 지으면서 미정에게 말했다.


"미정이 너어? 모르는 사람한테 못하는 소리가 없어 아주!! 언니 창피하게 할래? 응?!"


강희는 정말 미정을 혼내줘야겠다는 듯, 짐짓 목소리를 돋우면서 여자애를 노려보듯 했다. 그러자 미정이는 말할것도 없고 아이들도 덩달아 겁을 먹기 시작했다.


미정이는 약간 울먹거리려 그랬지만, 모르는 사람한테 자신의 이상한 면모를 보인 듯해서 강희도 어지간히 무안한 감이 있던 차라, 이대로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것 같았다.


미정이는 언니의 무서운 표정에 기가 질려 찍소리도 못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그때 갑자기 그가 나섰다. 아무래도 자신이 나서야 미정이가 혼이 안 날것 같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그는 갑자기 피식 웃더니 강희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흔히들 실물보단 사진이 낫다고들 하지만..이 경우는 오히려 반대로군. 만나서 반갑다. 티렉스"


"?!!"


미정을 쳐다보다가 자신의 닉네임을 갑자기 말해오는 상대에 음성에 놀라 강희는 퍼뜩 놀라 상대를 쳐다봤다.


".....TBM ?"


그녀는 목소리를 낮춘 채 상대에게 질문을 던졌고, 상대는 싱긋 웃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아아. 그래. 의도한 만남은 아니니 오해는 마. 물론 그쪽을 만나려고 내가 이쪽으로 이사한건 맞지만...설마하니 공원에서 이런 식으로 만날줄은 몰랐어. 들리는 소리론 자존심이 대단한 여자라던데..공원에서 이렇게 울고 있는 사람이 그 유명한 티렉스일줄이야 알았겠어? 그냥 위로나 해주려고 잠깐 와본건데...이런 첫만남이라니. 넌 어떻게 여길지 몰라도 난 꽤나 유쾌한 스타트라고 생각을 하는데...하하~~"


남자의 악의없는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강희는 물었다.


"...그쪽은?"


상대는 아차 하더니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아 이거 내 소개가 늦었군. 난 뭐..까페에서 딱히 튀는 일 없이 조용히 있는 인간이니까 잘 모를거야. 나이는 너와 같고말이지. 나의 닉네임은..음...릴렉스. 릴렉스야. 잘 부탁한다. 하하~~"


"...릴렉스?"


상대가 호의 가득한 표정을 띄면서 그녀를 마주보자, 강희는 그의 닉네임을 은근슬쩍 읊으면서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씩 웃더니 고개를 크게 두번 끄덕였다.


"아아. 그래. 일단 그런 닉네임이지. 어떻게 보면 너와 비슷하게 보이는 닉네임이군. 우린 둘 다 영문표기를 쓰지 않고 한글닉네임으로 하니까 말야. 하하. 뭐 어쨌든....티렉스에 대해선 많~이 들었지. 너...엄청 유명하더라. 하긴....너같은 여자가 M 성향자라니...확실히 그럴 만도 하지... 직접 만나보니..과연..이야기가 사실이네. <완벽한 구속자>를 찾는다지?"


"...그래"


상대가 어느 순간부터 동의도 얻지 않고 반말을 쓰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느껴질만큼 상대의 어투가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그녀였다.


생각하면 할수록 이상한 노릇이었다. 이리도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는 남자라니. 이런 느낌으로 자신에게 다가온 남자가 없었던 그녀로서는, 그저 그런 상대방의 존재가 놀랍고 신기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남자는 시종일관 계속 입에 미소를 배어물고 있었다. 저렇게 웃음지은 표정이 자연스레 잡히는 얼굴도 드물것이다. 못생기진 않았다곤 하지만 그렇다고 잘생긴 얼굴도 아닌 인상인데, 웃는 모습이 저렇게나 잘 어울리는 남자도 진정 흔치 않을 것이다. 확실히 정감이 느껴지는 남자였다.


릴렉스는 갑자기 장난스런 표정이 되었다. 그는 실실거리더니 미정이의 이마를 쓰다듬으면서 강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한가지 약속해줘야겠어"


"..무엇을?"


릴렉스는 여자아이를 내려다보면서 잠시 시선을 주었다가 다시 강희를 보았다.


"이 아이는 잘못이 없으니까 혼내지 말 것. 내가 궁금해서 물었고 이 애는 답을 해줬을 뿐, 이 아이는 아무런 잘못이 없잖아? 그러니 지금은 물론이고 나중에 가서도 문제삼지 말것. 오케이?"


강희는 그의 말을 듣더니 잠시 생각해보다 고개를 저은 후 말했다.


"해도 될 말이 있고 아닌 말이 있지. 크게 혼내지도 않을 거지만, 잘못을 안 한 건 아냐. 그럼 나의 무안감은 어쩌라는 거지? 미정이가 잘못한 부분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는데"


릴렉스는 그녀의 말을 잠시 생각해보다가, 갑자기 씨~익 하고 웃더니,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정말로..진짜로...미정이를 혼내고 싶어? 그래?"


"그거야..."


당연하다고 말하려 했지만, 강희는 그러지 못했다. 순간, 뭔가 정체모를 미지의 힘이 그녀를 휘감았기 때문이다.


"?"


그 미지의 힘은 사실 <힘>이라고 하긴 뭐했다. 정신적인 문제랄까? 강희는 이유를 잘 모르겠지만, 왠지, 미정이를 혼내고 싶지 않다는 쪽으로 갑자기 마음이 뒤바뀌어져 버렸다. 분명 좀 전까지만 해도, 미정이를 혼좀 내긴 내야겠다고 생각 하고 있었는데.. 릴렉스에게 질문을 받은 때를 시점으로 하여 어떠한, 일종의 <작용> 이라 할만한 것이 그녀에게 일어났던 것이다.


그것이 그녀를 엄습한 순간, 그녀는 미정을 혼내는 것은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한 느낌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황당스럽기 짝이 없었지만,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미정이의 문제는 그렇게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마음 속에서 끝장이 나버렸고...그녀는 얼빠진 대답을 할수밖에 없었다.


"..아니....아니? 어라...?"


스스로 아니 라는 대답을 해놓고도 자기가 그렇게 말한 것에 놀라 그녀는 자기 자신을 상대로 어이없다는 반응을 내고 있었다. 아이들은 갑자기 누나가, 언니가 왜저럴까 싶었지만, 릴렉스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클클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마음이 여리군"


"뭐?"


강희가 그를 쳐다보는데, 그는 어깨를 으쓱 하더니 갑자기 물었다. 정말로...갑자기.


"구속이 좋아?"


"....가..갑자기 그런 질문을..어차피 나에 대해 잘 안다면..알텐데 왜 굳이..."


왜 굳이 그런 질문을 하냐고 그녀는 반문하려 했지만, 그녀의 말허리는 잘렸다. 릴렉스가 계속 질문을 해왔기 때문이다.


"니 입으로 듣고 싶어서. 좋아? 구속이? 원해? 그것을?"


"....그래...그....그래. 원해..."


강희는 멍한 시선으로 떠듬거리다시피 말했다. 자신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스스로도 잘 이해할수 없었지만, 왠지,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저녀석이 원하면, 저녀석이 궁금해하면, 대답을 해 줘야겠다고....거짓이 아닌.....진실을. 속마음을...그가 바란다면.


"왜....왜 이러지 내가?"


강희는 순간, 자신이 저 녀석에게 휘둘리고 있는건가 하고 생각해봤다. 하지만 그건 아닌것 같았다. 저쪽은 궁금해서 질문을 했고, 자신은 답변을 해줬다. 그게 문제인가? 문제가 있다면 어떤게 문제일까?


왜 자신은 저녀석이 묻는 것은 다 답변을 해주는것일까? 그녀는 순간 자문했다. 만약 저녀석이, 어떠한 질문을 던져도, 나는 다 대답을 해버리게 될까?


그녀는 아주 순간적이지만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했었다는것조차 너무 순간적이었던지라 나중에 되새겨보면 잊어버릴만큼의 찰나에 불과했지만..


그녀의 대답은 그때 분명... Yes였다..


그렇게 아주 잠깐의 상념에 빠져 있는데, 상대는 큭큭거리더니 그녀에게 문득 말했다.


"그렇다면, 너는 지금, 그 수갑을 끊기 싫겠군. 그렇지?"


"무..무슨 소리를...."


갑자기 상대가 엉뚱한 소리를 하자, 강희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때 그가, 갑자기 움직였다.


쓰윽


그는 순식간에 강희에게 다가서더니 그녀의 허리를 부드럽게 잡은 후에 벤치에 앉혔다. 강희는 수갑이 채워져서 손목이 뒤로 가 있었는데, 일순간 그가 그렇게 그녀의 몸이 벤치에 앉게끔 인도하자 저도 모르게 그의 동작에 이끌려 벤치에 앉고 말았다.


털썩


"!! 이..이봐?! "


강희가 놀라서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남자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는지, 싱글벙글 웃더니 한쪽 무릎을 굽히고 앉은 후에, 강희를 올려다보면서 씨익 웃으며 물었다.


"티클링 좋아하지? 너"


"무!! 무슨~!! 지금 이 상황에..."


지금 이 상황에 왜 엉뚱하게 간지럼이 나오나 싶어 그녀는 황당해서 그에게 물으려 했다. 하지만, 그는 강희의 말을 들을 생각도 앉고, 다짜고짜 두 손을 뻗어 강희의 왼쪽 발목을 잡았다.



그리곤 그대로 그녀의 다리가 정면으로 쭉 뻗치게끔 들어올렸다. 이어서 검을 빛을 띈 그녀의 운동화를 벗기려 했다. 여기까지의 그가 벌인 행동을 보는 아이들은 이젠, 너무 놀라 입을 딱 벌리고 있는 상황이었고, 당사자인 강희는 말할 것도 없었다.


"!! 자..잠깐!! 뭐야? 왜?!!"


여태껏 남자가 하는 행동이 하도 돌발적이고, 즉흥적이며 황당한 일들인지라 강희는 일순간 어이가 없어서 멍한 상태로 그를 보다가, 비로소 정신을 차리곤 놀라 몸을 움직이려 했다. 그때 그가 채근하듯이 말했다.


"씁~!! 가만히 있어봐!! 지금의 너에겐, 치료가 필요하다고. 얌전히 있어. 나만 믿고. 오케이?!"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묘하게 안정감느껴지는 목소리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가만 있을 뻔했다. 하지만 다시 정신을 차리고선, 이내 마음을 정했는지, 그를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웃기지 말아. 치료? 내가 어쨌길래? 내 다리 내려놓고. 빨리 물러나. 힘 쓰기 전에"


남자는 피식 웃더니 그녀에게 말했다.


"내가 말해두는데.....넌 지금...수갑을 끊을수도 없고. 벤치에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일은 더더욱 발생하지 않을거야. 뭣보다, 그런 행동 자체가, 움직일수 있을때의 이야기 아닐까?"


"움직일수 있을때의 이야기라고?..앗!! 이녀석 혹시!!"


강희는 순간 느껴지는게 있어 녀석의 행동을 막기 위해 행동하려 했다. 하지만...


"아...아니!! 이럴....!!"


그녀는 당혹감에 물들어 얼빠진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몸이 부들거릴 뿐, 움직일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강희는 당했다는 느낌을 순간 가지면서, 녀석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싱글벙글 웃고 있었고, 강희는 놀란 감정은 애써 숨기며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능력자냐?"


"...흠...좋을대로 생각해. 하하"


"진정안 말고 무력화의 능력을 가진 녀석이 또 있을 줄이야...어이가 없네 정말"


"진정안? 무력화? 무슨 소리야?"


릴렉스가 오히려 이해를 못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질문을 던져 왔다. 강희는 이상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에게 반문했다.


"무력화가 너의 능력 아니야? 나를 이렇게 해놓고 딴소리를 하다니..무슨 속셈이지?"


릴렉스는 이젠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었다.


"아니아니 잠깐. 너야말로 무슨 소릴 하는건지... 무력화라니....나에게 그런 능력은 없다고."


"...뭐? 그럼 왜..."


그는 강희에게 말했다.


"이건 니가 원하는 거잖아. 니가 원하는 상황이잖아. 그렇지 않아? 넌 구속을 원하고 티클링 또한 그렇잖아...지금...지금의 이런 상황...뭐가 문제지? 난 니가 원하는 데로, 바라는데로 해주는것일 뿐인데? ...아니야?"


"그...그건..."


강희는 일순간 할 말이 없었다. 릴렉스의 말은 그른 것이 없었다. 결박도, 구속도, 티클링도, 다 그녀 자신이 원하는 것이다. 현 상황 중에, 그녀가 싫어할만한 상황은 없었다. 그리고 조금 더 이러한 상태로 있어보자, 그녀는 릴렉스와 정안이가 틀린점을 찾을수 있었다.


"틀려...이것은....지금의 느낌....그래...틀려 확실히...."



정안이의 무력화는, 상대의 힘을 강제적으로 빼놓는 것. 그로 인해 분명 강희도, 그에게 잡히면 힘을 쓸수가 없었지만, 대신에 함께 맛본 것. 그것은 바로 불쾌감이다. 지닌 힘을 온전히 가진 상태일때의 자신을 구속하는것이 아니고, 완전 힘 자체를 없애버리는 것이다.


강희가 원하는 것 중에, 완전한 힘의 해방감이라는것도 분명히 자리매김하고 있는만큼 그것의 비중을 무시할순 없었다.


자신은 지금 분명히, 움직일수가 없다. 릴렉스가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정안이처럼 자신의 발목을 제압하고 있지도 않으면서 자신을 붙잡아 매놓고 있다.


강희는 분명, 자신의 컨디션을 자각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녀의 느낌은 결코 틀리지 않았고, 자기는 지금 분명히, 온전히 힘을 갖추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보이지 않는 기운이 그녀를 구속해놓고 있는 것이다. 그 막강한 힘이 어딘가로 숨어버렸거나 빼앗겨버린것도 아닌데 말이다.


"어...어떻게 이런게 가능하지?...."


그녀는 도무지 이해를 할수가 없어 잠시동안 침묵상태로 들어갔지만, 릴렉스는 그런 그녀를 잠시 싱긋싱긋 웃어가면서 쳐다보다가 이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강희의 발목을 받쳐든 채 운동화를 벗겨버린 후, 발목양말에 감싸인 채의 발이 이내 나타나자 그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아~하. 이게 소문의 그....하하. 견식할 기회를 마침내 오늘 잡았네? 자..그럼...즐기라구~"


강희는 놀라서 허둥거리며 움직이려 했지만, 몸만 바들거릴뿐 허사였다.


"즈..즐기라니..!! 자..잠깐 기다..."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는 강희의 발목 양말을 벗겨버렸고, 이내 부드러워 뵈기 그지 없는, 그녀의 살결 고운 발바닥이며 발가락들이 드러났다. 아이들은 이미 아까 보았지만 언제 봐도 멋진 누나의, 언니의 다리를 보자마자 즐거워했고, 그녀의 발을 처음 보는 기회를 잡은 릴렉스 역시 더없는 만족감을 맛보고 있었다. 그는 오른 손가락들을 까딱 거리면서 연신 웃음짓는 중이었다. 그는 벗긴 강희의 양말을 벤치에 올려놓았다.


그때 강희가 릴렉스를 보면서, 말했다. 그녀의 표정은 매우 재미있기 그지없었다.


지금 그녀의 표정엔 그야말로 온갖 감정이 섞여 떠오른 듯했기 때문이다.


창피하고, 부끄럽고, 어이없으며, 황당하고, 슬쩍 화가 난 데다가, 어찌할바를 모르겠는듯하기도 하고...정말 온갖 인상을 다 갖춘 듯한 얼굴이었다.


"아...아이들도 있는데 이 무슨......!!"


그녀는 간신히 이런 한마디만을 가까스로 내뱉을수밖에 없었는데, 그에 응수하는 릴렉스의 말이 가관이었다.


"뭐 어때? 아이들의 기대감 어린 표정들이 안 보여? 나 오기 전에 애들을 꽤나 피곤하게 했나본데...내가 보기엔, 이 미정이라는 애가 벌받아야 할게 아니라...벌을 받아야 할건...너같은데? 하하~"


"마...말도 안 되는 소리를!!""


강희는 헛바람을 삼키면서 그의 말을 부정하려 하며 주위의 아이들을 둘러봤다. 그들의 표정엔 다들 한결같이 기대감이 잔뜩 어려있었다.


아마 아까 그녀의 집에서 확인하지 못했던 것을 이 형이, 오빠가 해줄수 있겠다는 생각이 그들에겐 가득 채워져 있었고, 그녀는 그런 표정을 띄우는 아이들이 정말 얄밉기 그지없었다.


"너...너희들?! 그런 표정이라니 대체...!!"


아이들은 찔끔한 듯했지만, 이내 편을 정한 듯했다. 그들은 한마음 되어 순식간에 릴렉스를 응원하는 입장이었고, 릴렉스는 결코 그들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다.


"아아~ 걱정말라구. 벌은 무슨~ 치료야 치료. 어.디.까.지.나.말.이.지~ 하하~"


"뭐...뭘 믿고 그런 말을...!! 으....으흑~!! 우훗!!~"


짜릿~!!


간질


강희는 순간 웃음을 참고 싶었지만, 상대의 손놀림이 예사롭지가 않다. 그의 손바닥이며 손가락 하나하나는 남자의 것이 맞나 의심스러울정도로 부드러웠고, 그것들은 실로 정신없이 그녀의 연약한 발바닥을 요리해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간질간질간질~



강희는 인상을 찌푸린채 난처한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보다가, 결국 웃음을 터뜨릴수밖에 없었다.


"자....잠까안~!! 꺄악~!! 아흐흐흣~~!! 아하하하하핫~~~!!"


공원에 온 후에, 처음으로 시원스럽게 울려퍼진 웃음소리였다.


강희는 몸에 흡사 전류가 온 듯 하여, 온 몸을 주체치 못할정도로 바들대며 떨었지만, 릴렉스의 기이한 힘 때문에, 결코 반항할수가 없었다. 그것도 등 뒤로 수갑까지 채워진 상태에서 말이다.


"아흐흣~~!! 아하하악~~!! 꺄으으하하하하~!!"


강희는 일단 웃기 시작하자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고, 남자는 큭큭 하고 웃으며 연신 손가락을 놀렸다. 강희가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하자 아이들이 그녀의 웃음을 들으면서 즐거워하게 되는건 두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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