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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02:25 767회 0건
1부 전체입니다.
여긴 부별 제목을 등록할 방법은 없네요.
1부 제목은 "나(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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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법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행동하겠는가?

그가 눈을 떴을 때, 그는 자신이 평생 처음 와 본 곳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이곳은 아주 익숙한 곳이였다. 어젯 밤에도 이곳에서 잠들지 않았던가.
두 명의 "산 제물"을 끌고.

손이 닿는 곳에 과연 물컹한 것이 있었다.
"아..응.."
감미로운 콧소리가 귀를 간지렀다. 나는 누구인가.
그는 곰곰히 생각했다. 사고의 확장이 시작榮?
탄생부터, 지금까지 모든것을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엇다.
심지어 죽는 순간의 고통까지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이 났다.
모든 것을 생각한 후, 그 결론을 얻지 못한다는 결론에 도달했을때 그는 그의 손 아래에 꿈틀거리고 있는 붉은 살덩이가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
"아.. 앙.. 흑!..."
눈에 검은 천을 감고 있는 금발의 17~18살쯤 되어 보이는 소녀. 그 살덩어리는 계속된 자극에 빨개진 얼굴로 꿈틀 꿈틀, 그의 손 아래에서 발정(發情)하고 있었다.
"좋은가?"
그는 물었다.
"흐.. 응..."
"대답해라."
그의 명령에 소녀의 입이 작게 열려 "예"라는 모양을 만들었다.
웬쪽의 소녀는 -비슷한 나이에 갈색 머리카락을 가진- 소리만 듣고도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그녀 역시 두 눈은 가리고 있었다.

그는 일어나 금발 소녀의 다리를 잡아 위로 올렸다.
소녀의 다리가 열리고, 음모가 드문 드문 한 습기찬 계곡이 부끄럽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자신의 남근을 꺼내 예고 없이 거칠게 쑤셔넣었다.
"아아악!!"
소녀가 비명을 질렀다. 처녀를 증명하는 혈흔.
상대를 배려할 생각이 없는 그는 곧바로 허리를 움직였다. 처음이라는걸 알리듯 강한 조임이 그의 기분을 좋게 했다.
옆을 힐끗 보니 갈색머리의 소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인정사정 없는 허리놀림에 금발소녀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허리운동을 멈추지 않으며 그는 갈색 머리 소녀의 얼굴을 만졌다.
그녀가 몸을 움찔 떨었다. 잔뜩 겁먹었다.
살이 부딪히며 나는 파열음이 규칙적으로 울리며, 그 속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금발 소녀가 내는 비명은 어느새 그쳐 있었다. 그의 아래에서 그녀는 축 늘어져 기절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육봉을 소녀에게서 뽑아냈다. 피와 얼마 안되는 애액으로 흥건했다. 갈색머리의 소녀가 말없이 기어오더니 그것을 더듬어 잡고 핥기 시작했다.

욕정이 어느정도 해소되자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넓은 방이다.
침대도 그가 익히 알던 더블베드의 몇배는 컸다. 굳이 말하자면 열댓명 정도는 좁지 않게 잘수 있을 정도. 벽과 천장은 모두 새하R지만 잡티 하나 없이 깨끗했다. 장식은 모두 금색이였고 바닥엔 붉은 양탄자가 깔려 있었다. 방은 넓었지만 가구는 옷장에 테이블, 침대와, 천장에 샹들리에, 침대 뒷 벽에 걸린 유화가 전부였다. 문은 침대 동쪽편에 있었다. 간소하지만 화려하기 그지없는 방이다.

할짝- 할짝-

어느새 깨어난 금발소녀가 기어와 갈색머리의 소녀와 같이 그의 자지를 핥고 있었다.
파정을 해야 할까. 한다면 누가 좋을까. 공평한게 좋겠지.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갈색소녀를 잡아당겼다.
순순히 끌려온 그녀의 코를 쥐고 그는 혀를 그녀의 입에 집어넣었다.

"으읍!!"
숨을 쉬지 못하자 그녀는 곧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에게서 벗어나진 않았다.
그는 혀를 그녀의 목까지 찔러넣으며 그녀를 농락했다. 잠시후 그녀의 얼굴이 질식할듯 하얗게 되자, 그가 손을 놓아 주었다.
"하악-! 하악-!"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그녀의 신형은 곧 그의 자지 위에 올려졌다.
푸욱!
"하으윽!!"
붉은 선혈이 새어 침대 위로 떨어졌다. 금발소녀에게도 약간 튀었다. 그가 뒤로 기대며 말했다.
"스스로 움직여. 너도 도와라."
금발소녀가 다가가 갈색머리 손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안았다. 정신을 못 차리는 갈색머리 소녀 대신 그녀가 갈색머리의 소녀를 위로 들어올렸다.
"흐흐흡!!!"
그녀가 손을 내리자 다시 갈색소녀의 몸이 아래로 내려갔다.
찌걱!
"하학!!!"
갈색머리 소녀의 비명을 음미하며 그는 손을 뻗어 금발소녀의 가랑이 사이로 손을 넣었다. 그녀가 허벅지를 약간 벌렸다. 그는 약지를 그녀의 몸 속에 삼입시켰다.
"흐윽.."
금발소녀가 몸을 움찔 떨었다. 그의 약지가 그녀 내부에서 분탕질 쳤다, 그에 따라 조금씩 손 끝이 축축해 지는걸 느낄수 있었다. 그녀의 몸이 베베 꼬이며 그에게 꼬치처럼 꽃이 갈색머리의 소녀도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때였다. 방의 문이 안쪽으로 부드럽게 열렸다. 문을 연 것은 은백색 머리카락을 가진 새하얀 드레스의 여인이였다. 그는 그녀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그녀는 방안을 보더니 얼굴을 붉히며 나가려고 했다. 반면 방 안에는 그녀에게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없었다. 두 소녀는 그녀가 들어왔다는걸 볼 수 없었고, 사내는 원래 그 자신이 어느정도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 이런 상황에서까지 무시하고 금발소녀의 질 속을 휘젖는 자신의 모습에 어느정도는 놀랄수밖에 없었다.
어쨋든 그는 그녀를 알고 있었는데, 분명한건 그녀는 그가 태어나서 처음 본 사람이라는 것이였다. 그는 그녀를 불러 세웠다.
"무슨 일이지?"
은백색 머리카락의 여인, 그녀는 분명 그란디스, 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란디스는 어찌할 바를 모른채 얼굴만 붉히다가 입을 열었다.
"아침 드실 시간이세요.."
그때, 문 바깥에서 다소 낮은, 보이쉬한 목소리가 들렸다.
"뭐야? 아직인거야?"
그녀는.. 분명.. 아카디아. 그래, 아카디아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란디스와 비슷한 나이에 새카만 단발, 요염한 흑색 드레스를 차려 입은 여인이 성큼 방 안으로 들어섰다. 내부의 풍경을 본 그녀는 잠시 경직되었다.
잠시 후,
"휘유...."
아카디아, 그녀로서도 사내가 두 여인 앞에서 두 소녀를 아무렇지도 않게 능욕할 수 있을줄은 짐작하지 못했던 것일까. 위 아래로 들썩이던 갈색머리의 소녀가 짤막하게 비명을 지르더니 사내의 가슴으로 픽 쓰러졌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것이 완전히 탈진한 모습이였다.그는 그녀에게서 자지를 뽑아냈다. 두 여인이 본다는 생각이 들자 왠지 쉽게 끝내지 않고 싶어졌다. 그는 일어서서 금발소녀를 엎드리게 했다. 그리고 자지를 소녀에게 박아넣었다.
"흐윽!"
그는 허리를 움직였다. 한층 수월해진 소녀의 보지에선 애액이 홍수처럼 스며나왔다. 그녀의 음성도 이젠 쾌락의 신음성이였다. 그는 자지를 질 속 깊숙히 밀어넣었다.
"하윽- 아- 아으- 으-"
소녀가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하더니 애액을 울컥울컥 쏟아냈다. 그후 그녀가 축 늘어지자, 그는 여전히 단단한 자지를 쑥 뽑아내었다. 아카디아가 반짝이는 눈으로 그걸 보더니 성큼성큼 다가왔다. 침대위에 올라선 아카디아는 눈이 풀린 금발소녀의 머리채를 잡아 일으키곤 날카롭게 소리쳤다.
"이 쓸데없는 년 같으니, 감히 주인님보다 먼저 쓰러져?"
찰싹!
그녀의 웬손이 금발소녀의 뺨을 강하게 올려붙였다. 금발소녀가 쓰러지자 그녀는 금발소녀의 엉덩이를 발로 짓뭉갰다.
"흑! 요, 용서해 주세요."
"용서? 당장 죽여주마."
금발소녀가 몸을 돌려 아카디아의 다리를 붙들었다.
"사, 살려주.."
"살고 싶었다면 너는 주인님의 것을 식도까지 쑤셔넣든 자궁까지 밀어넣든 어떻게든지 주인님을 만족시켰어야 했겠지. 너를 대용할 것들은 얼마든지 널려 있어."
퍽!
아카디아의 발길질에 신음을 내며 금발소녀가 침대 아래로 떨어졌다.
아카디아는 기절해 있는 갈색머리 소녀에게 다가갔다. 갈색머리 소녀는 그의 몸 위에 있었다.
"실례좀 할게, 주인님."
아카디아가 손을 뻗어 갈색 머리카락을 낚아채려 했다.
"이년은 속 편하게도 기절해서.."
"무례하구나."
움찔.
아카디아가 뻗던 손을 멈췄다.
"이런 쓸모없는 년들은 폐기처분 해야.."
그는 아카디아를 응시했다. 아카디아가 말을 멈추고 시선을 피한다.
"만족하지 못했잖아? 기분 나쁘지 않을거야?"
"그다지."
그의 말에 아카디아는 투덜대듯 중얼거렸다.
"좋아 주인님 멋대로 해. 하지만 난 역시 용서해줄수는 없어."
그는 아카디아의 눈을 지그시 응시했다.
"용서할수 없다니..."
"..."
"...해 준다고. 됐어?"
그가 빙긋 웃자 아카디아는 "쳇" 이라고 작게 중얼거렸다.
그리곤 바닥에 쓰러져 있는 금발소녀에게 소리질렀다.
"당장 기어 올라오지 못해!?"
금발소녀는 급히 몸을 일으켜 침대 위로 올라왔다.
"네년의 목숨을 살려준 주인님한테 머리를 조아려서 감사하도록 해."
"감사합니다."
금발소녀가 엎드린 자세로 다가오더니 그의 발치에서 이마를 발등에 대며 말했다.
"네년의 가장 발달한 성감대를 주인님의 발가락에 비벼 네년이 얼마나 음란한 년인지 보여드려."
머리를 살짝 들어올린 금발소녀는 결코 크지 않은 가슴을 모으더니 손으로 눌러 젖꼭지가 돌출되도록 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것을 그의 발가락에 문질렀다.
아카디아의 특별한 조교를 통해 인위적으로 형성된 성감대.
그건 너무 예민해서 그녀는 곧 몸을 부르르 떨며 계곡에서 물을 흘려 보냈다.
"하앙~ 학! 하윽!"
그녀의 자위 아닌 자위가 절정으로 흘러가려고 할 때, 아카디아가 소리쳤다.
"멋대로 절정하지 마. 일어나서 네가 얼마나 음란한 년인지 주인님이 분명히 확인하게 해 드려."
"감정이 있군." 그는 아카디아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와는 상관없이 금발소녀는 비틀비틀 일어서서 다리를 벌려 그가 있는 쪽으로 아랫배를 내밀었다. 그녀의 보지에선 음액이 뚝뚝 흐르고 있었다.
"더 자세히 보실수 있게, 하란 말야!! 네년이 얼마나 음란하고 추잡한 년인지 똑똑히 보이도록!!"
그발소녀는 빨개진 얼굴로 손을 뻗어 자신의 보지 양쪽을 잡고 쫙 벌렸다. 속 깊이까지 음액으로 번들거리는 분홍빛 살결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성감대가 자극된 소녀는 정말 흥분해 있었다. 건드리기만 해도 터질것 같았다.
"주, 주인님, 제 몸을.. 봐.. 주세요.."
"좋아, 이제 주인님께 네 음란한 부분을 벌주어 달라고 부탁드려."
"주인님, 제.. 음..란한 젖꼭지를 벌..해.. 주세요..."
그는 금발 소녀에게 손을 뻗었다. 아카디아는 성감대를 어떻게 개발시키는 걸까.
문득 궁금해 진다., 그는 검지를 튕겨 젖꼭지를 건드렸다.
"아항!"
소녀의 젖꼭지가 움찔 움찔 떤다. 전신이 떠는건지도 모르겠다.
절정? 아니, 참고 있는 건가.
소녀는 그가 만족하길 기다리고 있다. 그게 아카디아의 명령일테니까.
그녀의 공포 중에는 어느 정도, 아카디아를 물러서게 만드는 그에 대한 공포가 있긴 할까? 그는 이제 금발소녀를 편하게 해 주기로 했다. 금발소녀를 끌어당긴 그는 자지를 세워 소녀의 보지를 문지르다가 밀어넣었다.
"하윽!"
그는 소녀의 가슴을 쥐고 젖꼭지를 굴렸다. 이왕 보낼것이라면 최고의 쾌락을 주고 보내도 좋을 것이다.

절정과 그 경계를 오가는 소녀는 아카디아에 대한 공포의 본능 한 자락만을 잡고 간신히 버텨내고 있었다. 그는 자지를 소녀의 깊숙한 끝까지 밀어넣었다.
소녀는 이제 입을 한껏 벌리고 바람새는 소리만 내고 있었다.
"좋아."
그가 중얼거리며 소녀의 자궁에 사정하기 시작했다. 몸을 움찔거리며 떨던 금발소녀는 그의 사정이 끝남과 동시에 기절했다.


곧 그란디스가 식은 수프 대신 새로운 아침식사를 준비해 가져왔다.
그걸 그에게 떠먹여 주는건 갈색머리 소녀의 일이였다. 중간부터 깨어 금발소녀의 모습을 다 본 그녀로서는 이정도로 끝난다는건 행복한 일이였다. 뒤에서 아카디아가 노려보는 탓에 계속해서 그녀의 주인의 허벅지에 보지를 비빈다던지, 팔뚝에 젖꼭지를 스친다는 등의 부끄러운 일을 해야 했지만 어쨋든 훨씬 나은 일이였다.

아침을 다 먹은 후 그녀는 주인의 자지를 입에 물었다.그것에 묻은 애액과 혈흔을 깨끗이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자지를 핥는 소녀의 보지를 발등으로 희롱했다. 그녀의 주요 성감대가 보지 주변이라는걸 그는 금새 알수 있었다. 발등을 몇번 대고 문지르자 마자 애액이 흥건해 졌기 때문이다.
그는 발가락을 세워 근처 살집을 쿡 찔렀다.
"하앗-!"
소녀가 입 속에 넣고있던 자지를 뱉어내며 크게 신음성을 냈다.
하지만 아카디아의 시선에 그녀는 급히 다시 자지를 물었다.

"오후에 예정된 재판이 있습니다. 2시간 재판 후 1시간의 심리를 가지고 판결하게 될 것입니다. 6시 무렵 저녁을 드시고 그 후 법궁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시계는 거의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메이드 복장의 하녀가 들어오더니 두 소녀의 목에 구속수를 채우고 그녀들을 끌고 나갔다. 그란디스가 옷장에서 반흑반백 좌우대칭의 커다란 옷을 가지고 왔다. 그건 마치 법관의 법복처럼 생겼다. 하지만 법복보다 더 나풀나풀해 보였다.
그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정보가 있었지만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지금 무엇을 하는건지 도저히 판단을 내릴수가 없었다. 머릿속에 든 지식은 방대한 양을 넘어 무한했다.
개중 그가 원래 알고 있었다고 생각되는 지식은 백분지 일도 되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 세상의 모든 지식이라도 들어가 있는듯, 정리해도 정리해도 새로운 지식이 끊임없이 솟아났다. 그의 옷을 모두 입힌 그란디스가 방 밖으로 나갈때까지 그는 가만히 서 있었다. 잠시후 메이드 두 명이 들어와 그를 의자에 앉혔지만 그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때, 두 메이드는 그의 발치에 무릎꿇고 앉아 있었다.
"뭐냐?"
오른쪽의 주황색 레이스를 단 메이드가 입을 열었다.
"아, 아직 재판하시기까지 하, 한시간 정도 남으셨습니다. 그동안 지루하지 않게 ㅎ, 해드리라고..."
피식. 그는 슬쩍 웃고는 대답했다.
"필요없어."
움찔.
두 메이드가 눈에 띄게 몸을 떨더니 일어난다.
그는 뒷걸음질로 나가는 그녀들을 불렀다.
"아카디아냐?"
그는 아카디아가 누군지, 그란디스가 누군지 자세히 까지는 모른다. 분명한건 그 둘이 그를 위해서 이 곳에 있다는 것이다. 어쨋든 아카디아는 거친 사람이다. 이대로 저 둘을 내보내면 문 밖 어디선가 기다리고 있는 아카디아가 저 둘을 잡아 죽여버릴지도 모른다는건 충분히 추측할수 있는 일이였다.
"물론 난 상관없는 일이지만."
눈치를 보고 있는 두 메이드에게 의자에 몸을 박아 넣으며 그가 웃음지었다.
"네, 네에?"
주황색 레이스의 메이드가 엉겁결에 반문한다.
"너희들이 아카디아한테 죽든 반병신이 되든 난 상관없는 사람이란 소리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난 평범한 사람이라서 말이야.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난 내 눈밖에서 일어나는 일은 책임질 필요도 없을뿐더러 그런 것엔 하등 관심도 없어. 너희들하곤 명백하게 다르지.너희에게 아카디아는 직접 눈 앞에 닥친 죽음의 위기니까."
두 메이드가 어쩔줄을 몰라 한다. 아카디아에게도 이런 경우의 대응방침은 배우지 못했겠지.
"살기 위해서 애써보는건 어때?"
그는 그녀들에게 답을 제시했다.
"살기 위해 너희들이 할수 있는건 하나 뿐이잖아. 어떻게든 내가 너희들을 가지고 놀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해서, 이 지루한 기다림을 "즐겁다"고 말할수 있게 만들어 내면 되는거야. 내 일이 아니라, 너희들이 살기 위해서 죽음의 늪에서 아둥 바둥 기어 나와야 하는 거지. 더욱이 난 평범한 인간이라서, 눈 앞에서 아둥바둥 살기위해 애쓰는 인간이 있다면 약간은 도와줄지도 모르는 일이거든."
그가 씨익 웃었다.


방문이 열렸다. 아카디아는 방 안에서 벌어져 있는 질펀한 광경에 어이없음인지 당혹스러움인지 모를 숨덩어리를 삼켰다.
"잘 노네. 주인님."
"어."
두 메이드중 한명은 이미 쓰러져 있고, 한명은 그 위에서 꿈틀거리고 있긴 한데,
뭘 하는 걸까. 아카디아는 물어볼까 하다가 관두기로 했다.
"재판할 시간이 獰?"
"리허설 같은건 없는거냐? 나 처음인데."
그는 씨익 웃었다.
"미안하지만 그럴 시간은 없어. 말투가 바뀌었네. 생각은 모두 정리가 된 거야?"
"물론. 그전에, 너도 무언가 알고 있다는 거지? 그런 질문을 한다는건.네가 알고 있는걸 모두 말해줘야겠다. 아카디아."
"그러긴 시간이 모자란데."
"짧게라도."

"내가 아는거라면.. 처음 이동해 온 법왕.. 그러니까 당신에게는 두개의 인격이 공존한다는거야. 신의 인격과 전생 인간의 인격. 하지만 세상의 어느 누구도 두가지 인격을 동시에 발현시키고 살아간다는건 불가능하지. 따라서 처음 온 법왕은 어떤 인격으로 살아갈 건지 선택해야해. 신과 전생 인간으로서의 인격.. 사이를 골라야 하는거지. 내가 아는건 이게 전부야. 그리고 신으로서 주인님의 인격에는 적어도 나보다는 더 많은 정보가 들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 맞아."
"인격..선택이 끝난거야?"
"선택하고 자시고도 없어. 난 원래 인간이다. 인간이였고 인간이고 인간일 거다.
그것도 평범한 인간이야. 그런 인간한테 신의 역할을 맡긴다는건 합리적으로 가능한 거냐?"
"몰라. 하지만 인간이라니, 의외인데. 뭐 어쨋든 더 시간이 없으니까.. 따라와."


이 세상은 중간계라 불린다. 다른 이름은 없다. 중간계는 5개의 대륙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앙대륙과 동, 서, 남, 북 대륙이다. 중앙대륙이 중앙이 된 이유는 가장 크기 때문이다. 각기 이름을 지어 부르는 것 같지만 전 중간계에서 통하는건 역시 중앙대륙을 기점으로 각각의 방향을 붙인 이름이다. 중앙대륙의 한가운데에는 산맥이 있다. 라우(Law) 산맥. 그 산맥은 중앙에 분지를 만든다. 한 나라가 들어서도 무리가 없을 크기의 분지에는.. 중간계의 신(神)이 거주한다.
중간계는 천계와 마계를 조율하는 곳이다. 중간계의 신은 천신과 마신을 조율한다. 중간계의 신은 천신과 마신보다 상위의 신이다.
이 세상은 신이 인간이 직접 볼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다.
물론 신을 본다는건.. 일생에 한번도 있을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신이 실존하고, 만질수 있다는건 의미가 크다.
세상의 모든 규칙과 규율, 즉 법이 되는 모든 것이 그의 주관 하에 이루어진다.
신의 인정을 받지 못한 법은 어느 대륙에 가도, 어느 차원에 가도 인정받지 못한다. 신은 가만히 있는다. 움직이는건 신이 필요한 인간이다.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힘든 분쟁은 신의 판결을 받게 된다.

실존하는 신, 그의 존재를 일컬어 "법왕"이라고 한다.


물론 신이 세상의 모든 애매한 분쟁을 직접 다스리는건 아니다. 그럼 그는 일독에 빠져 죽어야 할 테다. 그가 직접 관여하는건, 신이 관여할만한 가치가 있는 인간들의 분쟁이 신이 관여할 가치가 있는 성격을 띄고 있을 때, 신이 관여할 마음이 있는 경우라면 관여하게 된다. 물론, 합리적인 판결을 내려주지 않거나, 전혀 판결을 내릴 마음이 없는 듯한 태도를 보여선 곤란하겠지만 내키지 않으면 때려치워도 된다는 소리다.
그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가령 그는 이번 사건이란 것을 때려치고 싶었다.


"지난 4월. 플라나스와 데브는 동맹을 맺고 후안 국을 쳤다. 애초의 계획은 동쪽에서 데브 국이 후안국 병사를 동쪽으로 모이게 해서 분란을 일으키는 동안 텅 빈 서쪽을 플라나스가 치는 것이였다. 그런데 데브에서 동쪽 국경을 뚫고 플라나스보다 빠르게 후안 국의 수도 "얀"을 점령했다. 종전 후 전(前) 후안 국의 땅을 분배할때, 데브에서 더 많은 땅을 요구했다."
아카디아가 명랑한 목소리로 서류를 읽었다. 그녀는 그의 앞에 늘어진 발 바깥에 서 있었다.

그가 있는 곳은 왕궁의 대전과도 같은 곳이였다. 엄청난 높이에 엄청난 넓이.
그건 마치 커다란 축구장을 연상하게 할 정도로 넓었다. 입구가 있는 벽은 둥글게 돔형으로 되어 있었다. 성벽만한 커다란 금색 문. 순금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앞으로 길게 깔린 은색 융단. 그 융단은 그가 앉아있는 단(壇)바로 아래까지 놓여 있었다. 좌우에는 조각이 양각된 고목나무만할 은색 기둥이 3개씩 세워져 있었고 사방의 벽은 고대 신전을 연상시키는 이런 저런 조각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신전을 연상시킨다기보다는 신전이다. 실존하는 신을 경배하기 위한 신전. 그가 있는 단은 3단계의 계단 위에 놓여 있었다. 계단 하나하나는 1M 정도 되어 보였다. 그가 앉아 있는 맨 위의 단을 기점으로 이 커다란 대전의 공간을 분리시키는 엄청난 크기의 실크가 천장부터 바닥까지 내려 있었다. 그를 기준으로 실크 안쪽에는 시녀 둘, 그리고 그가 있었다. 실크 바깥쪽, 그가 앉아있는 단 바로 아래에는 검은색 법복을 입은 아카디아와 하얀색 법복을 입은 그란디스가 각각 좌우에 서 있었다. 그 아래 단에는 아무도 없었고, 마지막 맨 바닥, 융단 위에 두 사내가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이 넓은 공간에 있는 사람이라곤 달랑 7명인 셈이다.

"이것에 대해 두 왕은 인정하는가?"
아카디아가 두 사내에게 물었다. 웬쪽, 즉 아카디아쪽에 앉은 여자는 데브 국의 왕 라우데 두흐 쟌 데브. 데브라고 부르는 게 옳다. 그란디스가 있는 오른쪽의 남자는 나르헨 폰 플라나스. 플라나스라고 부르게 되어 있다.
"인정합니다."
"인정합니다."
데브와 플라나스가 대답하자 아카디아가 그를 돌아보았다.
"이것이 이번 사건의 개요입니다."
아카디아가 실크 아래로 서류를 넣자 시녀 한명이 다가가 실크 아래로 받아든 서류를 가져와 그에게 바치듯 내밀었다. 그는 가볍게 눈으로 서류를 훑었다.
잠시 그를 지켜보던 그란디스가 그가 서류를 다 읽었다고 생각되자 두 사내를 본다.
"각각 자신의 주장을 해 주세요. 우선은 플라나스 왕 부터."

플라나스 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이는 40 중반쯤 되었을까. 강단이 있어 보이는 사내였다.
"지난 3월. 저는 데브 왕과 비밀리에 회합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협정을 체결했습니다. 이것이 그 협정의 내용이 담긴 협정서입니다."
그는 품에서 양피지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잰걸음으로 걸어 아카디아의 아래쪽 계단에 그걸 내려놓았다. 아카디아의 눈짓에 둥실 떠오른 양피지가 아카디아의 손에 빨려들듯 내려앉았다.
"읽어주십시오."

아카디아는 양피지를 펼쳐 들고 낭랑한 목소리로 읽기 시작했다.
"후안 왕국과의 전쟁에 관한 협정서. 하나, 데브 국과 플라나스 국은 후안 국에 관한 사안이 모두 정리되는 이번해 동안 서로간에 침입, 혹은 도발이라고 판단될수 있는 행위를 금한다. 하나, 데브 국과 플라나스 국은 후안 국에 관한 사안은 모두 협력해서 처리하기로 한다. 하나, 데브 국은 플라나스 국과 협의하여 적당한 시기에 후안국을 침입. 후안국의 병력이 집중되게 하며, 플라나스 국은 즉시 군을 모아 후안국을 친다. 하나, 전쟁 후 후안국 영토의 분할은 동등분할을 원칙으로 한다. 하나, 전쟁 후 후안국에서의 전리품은 동등분할을 원칙으로 한다. 하나, 데브 국과 플라나스 국은 본 협정서의 내용을 성실히 이행한다. 법정력 451년 3월 15일. 나르헨 폰 플라나스 인, 라우데 두흐 쟌 데브 인."

"이 협정서의 내용에도 써 있듯이 영토와 전리품에 대해서는 동등분할이 원칙입니다. 물론 협정의 내용과는 다르게 저 데브 국이 후안의 수도를 점령하기는 했습니다. 그건 자칫 플라나스는 한게 없다고 느껴질수도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건 데브 국에서 협정의 내용을 어긴 것이지 저희의 잘못이 아닙니다. 오히려 저희로서는 협정을 어기는 만행을 저질러 저희들을 혼란스럽게 한 데브 국에 책임을 묻지 않을수 없습니다."

"그 말은.. 즉 데브국에서 책임을 지라는 것이 그대 플라나스의 주장인 것인가요?"
그란디스가 부드럽게, 하지만 냉정하게 물었다.
"아.. 그런건 아닙니다."
당황한듯 플라나스가 한걸음 물러선다.
"주장만을 말해 주세요. 플라나스."
"제 주장은, 지금이라도 협정은 지켜져야 하므로, 영토와 전리품을 동등분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데브 왕. 이번엔 그대의 주장을 해 주세요."

"네."
데브 왕은, 50줄이 넘어 보였다. 다소 뚱뚱한 노년 신사랄까.
하지만 눈이 좌우로 찢어져 약간 욕심이 많아 보인다는 인상을 주기엔 충분했다.
"으흠, 저 협정서의 내용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건 협정서의 내용이 충실히 지켜졌을때의 이야기지요. 으흠, 저희가 후안 국의 국경에서 접전을 벌이고, 결국 국경을 넘어설때까지 플라나스 국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피를 흘린건 저희 데브의 기사와 병사들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는 영토와 전리품을 칠대 삼으로 나누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반반이라니요. 저들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해도 할말이 없어야 할 자들입니다."
"주제와 무관한 비판은 자제해 주세요. 데브 왕."
"죄송합니다.흐흠, 제 주장은 7:3으로 영토와 전리품을 나눠 저들이 삼, 저희가 칠을 가져야 하는게 옳다는 것입니다."

간단하군. 그는 생각했다. 영토싸움인 것이다. 전리품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건 영토겠지.하지만 이건 어떻게 판결을 내려야 할지 애매하다. 협정.. 이란건 미리 정해놓은 내용이니까 분명 지켜져야 하겠지만, 어떤 의미에선 양쪽 다 협정을 어긴 셈이다. 아니, 그런데 왜 플라나스는 협정을 지키지 않고 있었던 걸까.


그란디스가 그를 바라본다. 실크 천 안쪽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들린다.
"플라나스 왕."
움찔. 플라나스와 데브의 얼굴 색이 변한다.
그들에게 있어 그건 신의 목소리다. 더욱이, 웬지 모를 신성한 기운이 플라나스 왕에게 쏟아지듯 덤벼드는것 같다. 거짓말을 할수 없게 만드는 기운이다. 플라나스 왕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네 , 네.."
"그대는 어찌하여 군을 움직이지 않은 것인가."

"사, 사실은 움직였습니다."

그때, 데브왕이 버럭 끼여든다.
"움직였다고? 어디서 거짓말을 하는거냐!"
"데브 왕."
움찔.
데브 왕이 고개를 푹 숙인다.
"말해 보라."

"즈, 증인을 신청합니다. 전 후안국의 왕 마리드 베스틴 후안을 증인으로 신청합니다."

아카디아와 그란디스가 선 계단 바로 아래 계단의 맨 오른쪽, 계단과 맞닿은 매끈한 벽에 갑자기 균열이 생겼다. 직사각형 모양의 균열은 점점 커지더니 결국 그곳은 작은 문이 된다.그리고 그 안에서 매끈한 은색 풀 플레이트를 갖춰입은 여자가 추레한 사내 한명을 이끌고 나온다. 발목에는 철구가 달려 있고, 옷 또한 깨끗하기만 하지 남루하기 그지없다. 그가 후안국의 왕. 노예 신세로 전락했을테니 마리드라 불러야 할 것이다. 그는 중앙에 이끌려 와서 자리에 선다. 아카디아가 입을 열었다.
"증인 마리드는 진실만을 말할 것을 맹세하라."

"저, 마리드는 이 세상 모든 것을 소유하시며 , 특히 법에 관해 무한한 권리를 행사하시는 법의 신 법왕께서 주관하시는 법정에 서서 진실만을 말할것을 엄숙히 맹세합니다."

"질문해도 좋다."
아카디아가 말하자, 곧 플라나스가 입을 열었다.

"그대는 후안국 왕 당시 데브국이 침범했을때 어떻게 대처하였는가?"
"저는, 여분의 병사를 모아 데브국이 침범한 동쪽으로 보내 동쪽 국경을 튼튼하게 했습니다."
"다른 국경의 병사까지 끌어 모은 것은 아닌가?"
"아닙니다."
"그 이유는?"
"저는 사실 플라나스와 데브 국이 협정을 맺어 저희 후안을 침략할 것이라는걸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데브 국이 침범했지만 다른 국경을 비워 둘 수는 없었습니다."
"당시 군 편재에 대해 동 서 국경방위군을 중심으로 설명해 주시오."
"동쪽은 천인대 4개가 상시대기합니다. 데브국 침범 후 3개 천인대를 지원했습니다. 서쪽은 천인대 5개가 상시대기합니다."
"마지막으로 당시 주요 기사단의 동향을 말해 주시오."
"최주력 기사단인 검은표범 기사단은 당시 단장과 부단장을 위시, 총원 120명중 90명이 훈련을 목적으로 서쪽의 단티안 산에 나가 있었습니다. 차주력 기사단인 파이어스톰(FireStrom)은 데브 침범 직후 즉시 80명 전원 동쪽 국경으로 지원되었습니다."

플라나스는 빙긋 웃고 있었다.
"이렇듯이 당시 동서 국경의 방비상태를 보자면 동쪽 국경은 오히려 더 강한 방어선이 형성되어 있었다고 봐도 옳습니다. 저희가 군을 모아 침입하려는 동향을 보이자 검은표범 기사단은 즉시 동쪽 국경에 합류하였고, 90명의 검은표범 기사단이라면 파이어스톰 80명과 보병 2천명을 합친 것보다 훨씬 나은 전력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이래서야 저희 플라나스로서도 쉽게 국경을 뚫고 나아갈수가 없었지요. 협정의 내용과는 다르지만 결국 저희가 후안의 병력을 잡아두는 역할을 한 것이지요."

법궁에서 직접 조사해 올린 정보에 따르면 플라나스의 말은 옳았다.
약간의 과장은 있지만, 당시 후안의 동서국경의 전력은 비슷한 수준이였다.

"이에 대해서 할 말이 있는가, 데브 왕?"
그가 데브 왕을 바라보며 물었다.



"물론입니다. 으흠, 우선 저 마리드는 후안의 수도가 점령되고 나서 도망치다가 플라나스 군에게 생포된 자입니다. 왕족 대부분이 플라나스에 생포되었기 때문에 가족이 잡혀있는 마리드는 플라나스에게 유리한 진술만 하거나, 거짓을 할 가능성도..."
"그건 내가 판단할 일이다. 데브 왕."
그가 데브 왕의 말을 자르며 무겁게 나무랐다.
"죄, 죄송합니다. 흠 흠, 그리고.."
"그리고..?"
"으흠, 사실 제가 듣기로 이번 전쟁에서 플라나스 군의 사상자는 삼백이 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건 전쟁을 하기도 전에 싸울 생각부터 없었다고밖엔 볼수 없는 일입니다. 애초에 싸울 생각이 없었는데 후안의 국경이 얼마나 튼튼했다는건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지요. 그렇지 않소, 플라나스 왕?"
데브가 플라나스를 보며 씨익 웃는다.
"그런건 아니오!"
사실이다. 플라나스 군의 사상자는 226명. 총원 만 오천명과 후안의 오천이 싸웠는데 사상자가 226명이라는건 제대로 된 싸움은 한번도 안했다는 소리다.
버럭 소리를 지르긴 했지만 할 말이 무안한지 플라나스는 입을 다물었다.

"데브 왕, 그대에게 묻겠다."
"하문하시지요. 법왕이시여."
데브 왕이 우아하게 고개를 숙이며 응했다. 유리해졌다는 확신때문일까 그의 얼굴은 꽤 밝다.

말을 하려다가 그는 목이 마르다고 생각했다.그는 그의 웬쪽 시녀가 웬 은 주전자를 들고 있다는걸 알았다. 가만히 보니 그의 웬쪽 팔걸이에는 잔이 놓여져 있었다. 내부에는 투명한 보랏빛 액체가 가득 차 있었다. 먹어도 되는거겠지라 생각하며 그는 그것을 들이켰다. 투명하고 청량한 향기가 머리를 맑게 해주는 것 같았다 . 잔이 비자 시녀가 은 주전자를 기울여 잔을 다시 채운다.
"그대는 어찌하여 협정의 내용을 어기고 홀로 후안의 수도를 점령하려 한 것인가."

"딱히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전쟁을 하다 보니 승리하게 되었고 그럴때까지도 플라나스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었지요. 그렇다고 아무도 없는 국경에 군을 주둔시켜 놓는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 일입니다. 으흠, 저희가 싸우는 동안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은 플라나스의 늑장 대처를 마냥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게 제 판단이였습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소리다.
"그에 대해 플라나스 왕은 할 말이 있는가?"

"물론입니다. 데브 왕의 말은 거짓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데브 국은 최소한의 수비군만 남긴 전 병력인 2만 5천병력을 모두 동원했습니다. 그건 협정의 내용에 따라 후안의 병력을 동쪽으로 유인해 잡아두려는게 아니라 명백히 전력을 다해 후안의 수도까지 점령하겠다는 의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즉 재빨리 수도를 점령하고 나서 후안의 영토와 전리품을 독차지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고밖에는 볼 수 없습니다. 실제로 후안 국의 국경은 4일만에 점령되었는데, 그때서야 저희 플라나스는 데브국이 후안을 침공했다는 소식을 듣고 출정준비를 할 수 있었습니다다. 그리고 출정준비는 적어도 이틀은 걸리는 일입니다."
플라나스의 말에 데브가 대뜸 입을 열었다.
"플라나스 왕. 우리는 이미 협정을 통해 침공할 시기를 정해놓고 있었다.으흠, 그대는 협정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면 미리 출정준비를 해 놓았어야 했다."

"그렇다고 해도 그대들이 후안을 점령하는 것보다 빠르게 후안을 점령하는 것은 불가능했었습니다. 더욱이 데브 왕. 그대들은 처음에 분배율을 9:1이라고 하지 않았었소?"
플라나스가 비장의 무기라도 꺼내는듯 음침하게 웃는다.
"옛날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왜 꺼내는 거냐!!"
"법왕께 아뢰자고 하자 마자 비율이 갑자기 7:3으로 줄어든건 한달도 되지 않았소. 옛날이라고 하기엔 너무 가깝소만."
승기를 잡았는지 플라나스가 기분좋게 웃는다.

"한시간의 심리를 가진후 판결을 내리실 것이다."
아카디아가 선언했다.
"한시간동안 기다려 주세요."
그란디스도 조용히 말한다.

법정 -이라고 불러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에서 나와 시녀의 안내를 따라 그는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크기는 조금 작지만 편안한 분위기의 인테리어를 가진 곳이였다. 가운데는 원탁이 놓여져 있었고 가장 상석으로 보이는 곳은 붉은 실크가 깔린 좌우로도 충분히 넓은 의자였다. 그는 그 "의자"를 보고, 옛날이라면 그걸 쇼파라고 불렀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시녀의 안내에 따라 그곳에 앉았다.
신발을 벗고 발까지 올린채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어 그는 생각에 잠겼다.
어쨋든 심리하라고 하는 것 같으니, 그는 방금전의 경우를 생각하며 꼼꼼히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의 손엔 법궁에서 자체조사한 모든 진실이 담긴 조사서가 있다. 대비하면 이 재판에서 거짓을 말한 자는 없다. 안 밝혀진 일도 딱히 없다.
사건의 진실은 간단하다. 협정을 하고 이행할때가 와서 데브 왕은 협정을 이행하기 위해 군사를 모았다. 처음에 6천명이였는데, 의외로 후안 국이 동쪽에 병력을 집중시키지 않자 데브 왕은 욕심이 생겼다. 단숨에 국경을 돌파해서 후안을 점령하면 굳이 플라나스와 후안을 분배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계산이였던 것이다.
사실 플라나스와 데브는 후안에 비하면 큰 왕국이다. 다만 후안을 공격해서 약해진 사이 서로 상대에게 잡아먹힐까봐 서로를 경계하고 있을 뿐이였다. 하지만 결국 후안점령을 위해 서로 협력하기로 했던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변하자 데브는 욕심을 부렸다.
반면 플라나스는 의외로 동쪽으로 병력이 몰리지 않자 원 협정서를 이행하려면 생각보다 플라나스의 피해가 클 것임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래선 곤란했다.후안이 끝이 아니라 그 다음엔 데브 왕국과 싸워야 할 것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치를 살피는 사이 데브가 단숨에 후안의 수도로 진격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설마 협정서도 있는데 데브가 후안을 독차지하려고 하지는 않겠지" 라고 생각하며 그냥 군을 모아 애쓰는 척만 하며 거저 먹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였다.
서로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단순하게 하면 데브 국에 더 많이 분배해 주는게 옳다. 속사정은 어쨋든간에 애쓴건 결국 데브 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였다. 데브 국과 플라나스 국은 서대륙에서 꽤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두개의 왕국이였다. 오늘까지 서로간에 견제해오며 균형을 맞추고 있었는데 그로 인해 서대륙은 평화가 유지되었다고 할 수 있다. 데브 국은 이번 전쟁으로 보병 700정도가 죽었지만 이정도라면 플라나스와 차이가 있다고 할수는 없다. 즉 이번 재판에 의해 후안을 더 많이 차지하는 왕국은, 그간 힘을 비축한 후, 수년 안에 피의 전쟁을 벌일것이다.
아니, 수년이나 기다리면 뒤쳐진다는걸 확실히 알수 있으므로 이번에 후안을 적게 차지하는 쪽이 먼저 나서 전쟁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즉 이번 판결에 따라 서대륙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갈지도 모른다.

부외의 것을 따지지 않고 사건의 경위만 보고 판결하자면 데브 왕의 손을 들어주는게 옳다. 만약 서대륙의 안녕을 위한다면 플라나스의 손을 들어주는게 옳다.
물론 서대륙이 어떻게 되든 그는 상관 없었다. 눈 밖의 일일 뿐이다.

"음, 음... 하지만 그래서야..."
"재미없는 결론일 뿐이잖아."
그가 중얼거렸다.

문이 열리더니 아카디아와 그란디스가 방 안으로 들어섰다.
탁자 한쪽의 의자를 각각 차지하고 앉더니 아카디아가 먼저 말을 꺼냈다.
"결정은 내렸어, 주인님?"
"아직..."
그가 말을 줄인다.
"내 생각엔 데브 왕이 옳은거 같은데."
"데브 왕이 옳다?"
그가 흥미를 보이자 아카디아가 신이 난 듯 말을 잇는다.
"당연하잖아. 싸운건 데브니까. 어느정도 더 많이 가지는건 당연한 거지."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에요."
이번엔 그란디스가 나선다.
"데브 왕이 후안을 더 많이 차지하면 그는 몇년 안에 전쟁을 일으킬 거에요. 수많은 죄없는 사람들이 죽어가겠죠. 그런 일이 생기게 놔 두어선 안되요."
"그건 우리에겐 더 좋은 일이지. 데브 왕이 플라나스를 점령하는데 성공한다면 그는 우리에게 더 많은 제물을 바칠거야. 그는 욕심이 많은 만큼, 서대륙 통일을 위해 우리 법궁에게 더 잘 보이려고 할 테니까."
"객관적이지 못한 당신의 말엔 동의할수 없군요."
매 주기마다 전 대륙의 모든 나라들이 법궁에 제물을 바친다. 그건 사람이 되기도 하고 물질적인 무언가가 되기도 한다. 법궁 안에 있는 시녀들은 모두 제물에서 뽑힌 자들이다. 중요한건 그 제물은 자율적으로 바쳐지는 것이라는 것이다. 법궁에서 강요한 제물이 아니다. 다만 역대적으로도 제물을 바치지 않은 나라가 번영한 역사가 없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제물을 바치는 관습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주인님께서 주관하시는 첫 재판이니만큼 더욱더 신중해야 할 것이에요.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정말로 안될 것 입니다."
그란디스의 말에 그가 피식 웃었다.
"웬지 나는 좀 장난인데 말이야. 큭큭.."
"그래서 그란디스의 생각은 어떻지?"

"우선 고려해야 될게 3가지 있어요. 협정은 법과도 같은 겁니다. 즉 어떤 협정서든 일단은 주인님께서 보호해주셔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신뢰성에서 혼란이 생기고 말테니까요. 그리고 사건 자체만을 봤을때는 얼핏 데브 왕의 말이 옳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실제로는 양쪽 다 욕심을 부리고 있을 뿐이라는 것도 주의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판결로 잘못하면 수만의 사람들이 죽어나갈수도 있다는 사실이에요."
"결론은?"
그란디스가 머뭇거리며 말한다.
".. 플라나스 왕의 주장을 들어주는 편이 좋겠어요."
"옳은 선택이라는 자신은 없는 거지?"
그의 노골적인 질문에 그란디스가 고개를 푹 숙였다. 사실, 그란디스는 그녀가 전에 말한 것과는 관계없이 오직 수만의 무고한 사람이 죽어나갈 것을 염려한 판결만을 내린 셈이다. 뭐 어느정도 그녀의 성격을 알수 있을만한 대목이기도 하다.

"좋아, 그란디스. 이번에 내가 내리는 판결은 어떤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거냐?"
".. 향후 이번과 반대되는 판결이 내려지지 않는다면, 전 대륙의 공식 재판에서 이번 판결에 사용된 원리가 적용될수 있을 만한 사건은 모두 주인님이 내리시는 판결을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가리게 될 거에요."
법왕.. 이란 존재가 있다지만 법전은 없다.
"주인님의 말이 곧 법이 되는 거니까."
아카디아가 씨익 웃는다.

"시간 됐으면 판결하러 가자."
그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아까와 같은 대전. 같은 사람들.
그는 눈 앞에 서 있는 두 사내를 보았다. 지금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재판이란건, 그가 살던 곳에서도 그랬지만, 언제나 욕망이 함께 한다.
돈에 얽힌 문제, 이권에 얽힌 문제, 자존심에 얽힌 문제, 옳고 그름을 가린다는 의미보다, 누구의 욕망이 사회적으로 더 받아 들일 만한 욕심이냐.
하지만 이건 다르다.
그는 인간이다.
"데브 왕, 최후 진술을 하라."
아카디아가 말했다.
"저는, 오늘 아침 후안과의 전쟁에서 아버지, 혹은 형제를 잃은 수많은 백성들을만나고 왔습니다. 으흠, 그리고 그들에게서 이 재판의 명분이 제게 있다는 확신을 얻고 왔습니다. 후안을 점령하기 위해 죽은 병사는 모두 1736명입니다. 으흠.
저 플라나스는 1736명이 피흘려 얻은 전공을 아무렇지도 않게 가로채려고 하고 있습니다. 부디 법왕님의 현명한 판단을 바랍니다."
그는 인간이고, 이 재판은 그의 손에 의해 판결된다.
아무것도.. 그의 판결을 제지할수 있는건 없다.
"플라나스 왕, 최후 진술을 하세요."
그란디스가 말한다.
"우선, 이 세상의 모든 법과 조약과 협정을 수호하시는 법왕님께서 반드시 이번 협정서도 수호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 아래 말하겠습니다. 저는 최선을 다해 협정서의 내용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후안 왕의 선견에 의해 피치못한 사정으로 협정서의 내용을 완전하게 수행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는 고의적인 것이라고 볼수 없습니다. 반면 저 데브 왕은 이때를 노려 고의적으로 협정서의 내용을 어겼습니다. 지엄한 협정서의 내용을 어김은 결코 작다고 할수 없는 죄일 것입니다. 부디 법왕님의 현명한 판단을 바라겠습니다."
플라나스가 말을 마쳤다.

잠시의 정적 후, 아카디아와 그란디스가 일제히 그를 돌아본다. 휘장 안이라 보이지 않겠지만, 아카디아의 흑안과 그란디스의 금안이 번뜩인다.
"판결을 내리십시오."
"판결을 내리십시오."
웬지, 대전 안이 반짝이는 것 같다. 아니, 실제로 반짝인다.
그는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그는 평범한 인간이다. 평범한 인간에게 무턱대고 이런 큰 일을 맡기다니.
사실 전혀 실감이 안 온다. 지금 판결로 수천이 족히 죽어 나갈수도 있다는 사실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애초에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아니, 일어나선 안될 일이다. 몇살짜리 꼬마 애한테 판사일을 맡기는 거나 마찬가지다. 때려치고 싶어도 이제 때려치긴 늦어 버렸다. 어떻게든 생각해 온 답을 내놓아야 할 때다.

"전 후안 왕을 오라고 하라."
묵직하다. 원래 이런 목소리가 아니였는데, 아까부터 느꼈지만 자기 목소리가 너무 많이 변해 있었다. 한번 웃음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을 느끼니, 연달아서 모든것이 이상하게만 느껴진다.

아까처럼, 벽에 균열이 생기더니 문이 되었다.
데브 왕과 플라나스 왕은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곧 자신의 말을 들으면 어떤 표정으로 바뀔지 그는 궁금해서 견딜수가 없었다.
족쇄를 달고, 누더기를 입은 꾀쬐쬐한 몰골의 노인. 자리는 사람을 만든다.
저 사람이 누가 과거 왕이였던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그래, 자리는 사람을 만든다. 지금 그의 모습은 위엄있다.
어느 누가 봐도, 전생의 그랑은 전혀 다른 사람으로밖엔 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약간은 자리에 맞는 사람처럼 살아갈 의무도 있다.

"족쇄를 풀어라."
후안 왕을 끌고 나온 여기사가 후안 왕의 발목에 달린 철구 족쇄를 풀었다.
쩔그렁 거리며 족쇄가 바닥에 떨어진다. 모두의 얼굴에 의아함이 깃든다.

"판결한다."
그는, 진심이 되어 말했다. 지금 그는 법왕이다. 수천의 목숨을 손아귀에 쥐고 있다. 조금은 진지해지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까지 그는 진심이었나? 평생 가도 손도 못잡아 볼 미인들이 그를 두려워 하고, 경외하는 것에 무의식적으로 우쭐대고 있을 뿐은 아니였나. 단지, 몽환적인 꿈에 휩싸여 있다고 착각하고 있을 뿐은 아니였나.

"내 이름은 유 진. 제 13대 법왕이다."
역대, 법왕은 12명. 그들이 누구인지는 모른다. 다만 그의 머릿속에 입력된 사실들이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전 후안 왕, 마리드는 들으라. 그대는 오늘부로 노예를 벗어나 다시 왕족으로 복귀한다. 따라서 전 후안의 영토는 고스란히 그대의 영토가 될 것이다."

대전이 얼었다. 그래. 이런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
유진은 진지했다. 장난이 아니다.

"단, 마리드 베스틴 후안은, 내년부터 매년 세입의 40퍼센트를 7:3으로 나누어 각각 데브와 플라나스 국에 조공한다."

마리드의, 아니, 후안 왕의 얼굴은 정말 볼만했다. 그는 생각보다 이 조건이 험난하다는걸 알까. 유진은 그가 잘 모를거라고 확신했다. 후안은 10년 이내로 자진해서 망할 것이다. 후안 왕은 재산을 들고 어딘가로 멀리 도망가거나, 하겠지.
매년 세입의 40퍼센트를 뺏긴다는건, 나라를 운영하기엔 불가능하다고밖엔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 빈 후안 영토를 뺏기 위해서 결국 플라나스와 데브는 전쟁을 하거나, 나름대로의 분할법을 찾을수밖엔 없겠지.

"이 판결 내용은, 나 13대 법왕 유진의 이름 아래 가호받을 것이다."



시간은 5시 반. 유진은 지친 몸을 이끌고 식탁 앞에 앉았다.
정신노동이 쉽지 않다는건 알고 있었지만, 3시간만에 이렇게나 힘을 빼버릴줄은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더욱이 궁 내부를 돌아다니는 것도 장난이 아니였다.
예를 들어, 느긋이 걸어오니, 재판한 대전에서 식당까지 무려 30분이란 시간이 걸려버린 것이다. 중간에 이것 저것 구경했다고는 해도, 너무한 거리였다.
"아흐흐.. 힘들다."
그란디스랑 아카디아가, 유진을 멀뚱히 보고 있었다.

"뭘 봐?"
유진이 퉁명스럽게 묻자, 둘이 눈에 띄게 당황해 한다.
아카디아까지 당황해 할 줄이야. 의외였다.
"부, 분위기가 많이 바뀌셨네요."
"그래?"
유진은 씨익 웃었다. 그란디스는 재판 전에 말투만 변한것도 못 봤었지만,
지금의 유진은 이제 그때와도 뭔가 다른 분위기였다.
"뭐가?"
"아까는 조금 어색한 것 같았는데, 지금은.. 자연스러우셔요."
자연스럽다라.
"그렇게 대체할 말이 없냐, 그란디스?"
유진의 말에 그란디스가 난감해 한다. 그건 그것 나름대로 재미있지만.
"날건달 같아졌어. 주인님."
아카디아는 또 나름대로 특이하지 않은가.
"크크크. 맞다. 맞아."
그는 원래 겨우 고등학생에 불과하지 않았는가. 고 3. 사람이 약간은 특이하게 변할수밖에 없는 나이였다. 더욱이 유진은 원래 괴짜였다. 친구들도 인정하던.

"난 평범한 인간이거든. 그렇게 보면 특이한 것도 아니겠지?"
"응."
아카디아가 쉽게 수긍한다. 아카디아가 아는 것은 그란디스도 알 것이다.
물론 아카디아는 그가 이전에 이미 인간의 인격을 선택했다는걸 안다.
그란디스도 지금 말을 통해서 어느정도 이해했을 것이다. 그가 인간을 선택했다는걸. 그란디스의 표정이 어둡다.
"표정이 왜그래, 그란디스?"
"인간의 인격을 선택하셨다는건, 앞으로의 일들도 인간의 인격으로 수행하셔야 한다는걸 뜻해요."
"물론이야."
갑자기 진지한 내용을 꺼낸다.
".. 인간의 인격은 약해요. 너무 약해서 부서지기도 쉬워요. 그렇지 않더라도, 주인님이 앞으로 살아야 할 무한한 삶은, 인간의 인격으로 버티기엔 너무 긴 일생이에요."
"알아."
유진도, 표정을 바꿨다. 그리고 그란디스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물론 실감은 안오지만. 내가 인간이라는건 내 인간으로서의 삶을 지킬 마지막 수단이야. 난 내 자신을 사랑해. 비록 지금 내가 완전히 다른 "것"이 되어버렸다는건 분명히 알고 있지만, 내 자신을 지키는건 내 마지막 남은 나 자신이야."
유진은 웃음을 지었다.
"말하다 보니 뭐가 뭔지 모르게 되어버렸는데, 어쨋든 내가 인간이라는걸 인정해 줬으면 좋겠어. 그란디스. 앞으로 몇십, 아니, 몇천년을 같이 하게 될지도 모를 사이로서, 잘 부탁한다고 해야 하나?"
그란디스가 유진을 똑바로 바라 본다. 그는 마주봐 주었다.
"... 주인님."
"걱정마. 법왕이라는 자리의 무게는 알고 있어. 법왕으로서 나는 인간으로서 최선을 다할 테니까."

유진은 웬지 자신의 말이 닭살스럽다는 생각을 하며 아카디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물론, 아카디아도 잘 부탁해."
"응. 주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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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좀 잘라서 넣고 싶지만, 하루에 5편 이상 못 올린다는 제한 때문에 그냥 이어서 써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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