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밥남자는 밥
민희는 별명이 걸레였다. 남자들 사이에서만 불리는 별명이었다.
그녀는 그 사실을 어렴풋이, 아니 사실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들이 자신을 어떤 눈으로, 또 어떤 생각으로 보고 대하는지를...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처음에는 그런 모든 것이 너무나도 슬프고 비통했지만 이제는 그런 것 따위는 초월(?)해 버린 것이다.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차피 불가항력적인 것이라면 차라리 온전히 순응해 버리는 게 마음 편한 일이었다.
게다가 민희는 자신 역시 그게 싫지만은 않았다. 은근히 설레는 일이기도 했다. 남자들의 야릇한 시선, 달아오른 성기, 헐떡거리는 몸부림, 그런 것들이 야릇한 자극으로 받아들여졌다. 더욱이 자신의 육체 내부에서 타오르는 견디기 힘든 희열···.
민희는 최초로 자신을 범했던 남자들을 요즘도 만났다. 그들은 다름아닌 동생의 친구들이었다. 처음에는 증오하고 혐오했으나 시간이 흐르고 관계가 거듭되면서 어느덧 그녀의 내부에는 연민과 함께 동류의식이 자라났던 것이다.
2년 전. 그때 민희는 여고 1년이었다.
두살 터울인 동생 종필이는 중 2였다.
두 사람은 읍내에서 함께 자취를 했다.
원래는 언니 경아와 셋이서 살았으나 경아가 여고를 졸업한 뒤 근처의 도시로 취직해 떠나는 바람에 둘만 남게 되었던 것이다.
민희의 아버지는 형사였으나 엄마와 이혼한 후 다른 지방으로 발령을 받아 떠났고, 엄마는 다른 남자와 재혼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양육을 떠맡은 아버지를 따라 가지 않았다. 이제 다 컸으니 독립해서 살겠다고 경아가 우긴 때문이었다. 본디 가족에 대해 애착이 없던 아버지도 굳이 말리려 들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아버지의 명의로 되어 있는 읍내의 집에서 그들만의 생활을 해나가게 된 것이다. 생활비는 꼬박꼬박 아버지가 부쳐 왔으므로 부족한 게 없었다. 엄마도 가끔 적지 않은 돈을 보내오곤 했다.
집에는 방이 세 개나 있었으므로 셋은 각각 방 하나씩을 차지하고 살았다. 맨 큰방은 경아가 사용하고, 다음은 민희, 종필이 순으로 나이에 따라 방 크기를 배당해 사용했다. 그러다가 경아가 도시로 나간 후에는 민희가 언니와 방을 바꿔 썼고 종필이가 민희 방을 사용하게 되었다. 주말에만 들르는 경아는 그다지 커다란 방이 필요없었던 것이다.
민희네 집에는 수시로 아이들이 들끓었다. 경아가 함께 살 때는 경아의 친구로부터 시작해 민희, 종필이의 친구들까지 찾아와 날마다 우글우글거렸다. 부모가 없는 집에 모여 노는 재미가 유별났으므로 자연스레 친구들이 꼬이게 된 것이었다.
그날도 집에는 친구들이 찾아들었다. 민희의 친구가 한패, 또 종필이 친구가 한패였다. 두 패는 함께 어우러져 민화투를 치기도 하고 최근에 나온 대중가요를 따라 배우기도 하면서 놀았다. 맨날 마주치는 얼굴들이었던지라 서로들 하나도 어색함이 없었던 것이다.
마침내 저녁이 되자 민희의 친구들이 하나둘 돌아가고 종필이의 친구들만 남았다. 아무래도 여학생이란 집안의 감독이 남자애들에 비해 심했으므로 자고 가는 날은 많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종필이의 친구들은 달랐다. 예사로 자고 가기 일쑤였다. 그들은 자기네들끼리 뭉쳐 라면을 끓여 먹기도 하고 막걸리 따위를 사다 마시기도 하면서 밤새 어울려 놀곤 하였다.
그러다보니 종필이의 친구들은 하나같이 문제아로 찍힌 애들뿐이었다. 겨우 중학교 2학년에 불과했음에도 덩치가 어른 못지않게 컸고, 대부분이 술은 물론이고 담배를 할 줄 알았으며, 학교에서 한두 번 이상은 정학을 당하거나 퇴학을 당하거나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이유도 거개가 다 패싸움이나 ‘노상’(거리에서 학생들의 주머니를 터는 행위) 따위의 사건을 일으킨 때문이었다.
하지만 민희는 그런 동생의 친구들이 싫지 않았다. 녀석들은 민희를 친누나처럼 따르고 좋아했으며 어쩌다 남학생이라도 뒤를 따라 올라치면 득달같이 쫓아가서 혼을 내주곤 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그날, 민희는 동생 친구들의 부탁으로 라면을 끓여 주었다. 그리고 강권에 못 이겨 막걸리를 한두 잔 받아 마셨다. 동생 친구들은 여느 때처럼 돈을 갹출해 라면이고 막걸리를 한 아름 사왔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 민희는 제 방으로 와 동생 친구들의 떠드는 소리를 귓가에 들으면서 잠이 들었다. 언제나 그러하듯이.
그런데 언제쯤이나 되었을까. 민희는 문득 이상한 느낌에 눈을 떴다. 무언가 바윗덩이 같은 것이 자신을 누르고 있는 것 같았던 것이다.
“어머나!”
그녀는 눈을 뜨자마자 그 바윗덩이의 정체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남자였다. 그녀는 옆방에 동생과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큰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든든한 구원자들이 옆에 있다는 사실이 순간적으로 용기를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다급한 외침은 남자가 내민 손에 의해 입안에서 막혀 버렸다. 동시에 술냄새를 확 풍기며 절박한 목소리 하나가 낮게 부르짖었다.
“쉿, 조용히 해.”
낯익은 목소리였다. 틀림없이 동생 친구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누구인지는 정확한 판단이 서질 않았다. 민희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믿었던 구원자가 바로 약탈자가 되어 등장한 것이다.
“한번만 대줘, 누나. 응? 나 도저히 못 참겠어.”
목소리는 애원조였다. 그러나 여전히 민희의 입을 막은 채였으며 그의 손은 허락을 구하지 않은 채 그녀의 잠옷 사이를 헤집고 있었다.
“읍··· 읍···”
민희는 고개를 거칠게 흔들며 반항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칠흑같이 새까만 어둠의 베일에 뒤덮인 채 민희는 그 어둠의 아들과 사투를 벌여야 했다.
어둠은 역시 그 아들 편이었다. 어둠의 아들은 그 억센 힘으로 민희의 잠옷을 벗기고 마침내 브래지어며 팬티를 무자비하게 찢어 발겼다.
“아, 안돼···”
민희는 도리질을 했으나 목소리는 밖으로 나올 수가 없었다. 바위 같은 손이 입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속옷을 모두 찢어버리고나자 녀석은 자유로운 한손으로 민희의 두 손목을 한데 모아쥐더니 등뒤로 돌려 꼼짝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통나무 둥치처럼 억센 무릎으로 민아의 허벅지를 찍어 누르더니 힘껏 짓이겼다.
“으···”
민희는 녀석이 양 허벅지를 번갈아 짓이기자 고통으로 온몸의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고 정신이 하얗게 지워지는 것 같았다. 감각을 잃어버린 다리가 푸들푸들 떨리며 절로 벌어졌다.
녀석은 민희의 몸에서 힘이 빠지는 것을 느끼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리 사이를 파고들었다. 그리고는 손목을 움켜잡았던 손을 등뒤에서 재빨리 빼내더니 민희의 부끄러운 부분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헉!”
민희는 비명을 삼켰다. 녀석의 손가락이 부끄러운 꽃잎 사이로 파고드는가 했더니 무언가 뜨겁고 단단한 것이 순식간에 찔러왔던 것이다.
민희는 본능적으로 남자의 성기가 자신의 몸 속에 파고들어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랫배 깊숙한 곳을 가득 채우고 있는 뜨거운 이물감이 그것을 뚜렷이 말해 주고 있었다.
“흑흑···”
민희는 입이 막힌 채 흐느끼기 시작했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고, 가슴 속에 본능적인 두려움이 가득 차 왔다.
“울지마, 누나. 금방 끝낼게.”
녀석이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자 찢어질 듯한 통증이 다리 사이를 가득 채웠다. 그녀는 절로 허리가 뒤틀리며 엉덩이가 튕겨졌다. 그러나 녀석의 바윗덩이 같은 체중은 그런 그녀의 움직임을 가볍게 눌러 버렸다.
민희는 녀석이 움직일 때마다 머릿속 한 귀퉁이가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 고통에 이를 악물었다. 등에서며 이마에서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혀들었다. 마음대로 입술을 움직일 수조차 없는 입안이 까맣게 타들어갔다.
녀석의 움직임은 오래 가지 않았다.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민희를 찍어누른 채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더니 펄펄 끓는 물이 쏟아지는 것만 같은 느낌을 그녀의 아랫배 깊은 곳에 남겨놓고는 슬그머니 일어나 나가 버리는 것이었다.
민희는 망연해진 정신을 추스릴 수 없었다. 머리 속에서 전쟁이 일어난 듯 어지럽기만 했다. 금방 겪은 일이 사실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마치 악몽을 꾼 것만 같았다.
그러나 악몽은 결코 아니었다. 다리 사이의 찢어질 듯한 아픔이 그걸 말해 주고 있었다. 그녀는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못한 채 한동안 그렇게 어둠을 응시하며 누워 있었다.
도대체 누구였을까···. 민희는 녀석의 목소리를 더듬어 보았으나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분명히 낯익은 목소리라는 것을 떠올리긴 했으나 그게 누구의 것인지는 판단이 서질 않았다. 동생 친구들을 하나하나 기억해 가며 목소리를 떠올려 보았으나 다 비슷한 것 같기도 했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몸집이며 체중을 더듬어 유추해 보려 했지만 그것도 여의치가 않았다. 워낙 황망중이었거니와, 도무지 감을 잡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녀석이 남긴 유일한 증거라고는 지금 몸속에 남겨 놓고 간 끈끈한 흔적 뿐이었다.
민희는 자신을 더럽힌 녀석이 누구인지라도 알아내고 싶었으나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이 녀석 같기도 하고 저 녀석 같기도 한 게 딱이 누구라고, 누구인 것 같다고 진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기가 막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담··· 누구한테인지도 모르고 어이없이 당하고 말다니···. 민희는 순결을 잃었다는 사실보다도 누구인지도 모르는 체 당했다는 사실이 더 기가 막혔다. 누구인지 알기라도 해야 원망을 하든 따지든 할 수 있을 터인데 누구인지도 모르는 마당에 어떻게 이 억울함을 풀 수 있다는 말인가. 민희는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누굴까··· 도대체 누굴까··· 차라리 누구라고 밝혀만 주었어도 이렇게 억울하지는 않을 텐데···. 민희는 녀석이 스스로 누구라고 밝혀 주었다면 이렇게 답답하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좋아서 그랬노라고, 정말 좋아해서 어쩔 수 없이 그랬노라고 고백해 온다면 어쩌면 용서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설마 종필이는 아니겠지···. 민아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돌아버릴 것 같았다. 설마 친동생인 정필이가 그런 짓을 했을 리야 없겠지만 이 사실을 종필이가 안다면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일이었다. 종필이 성질에 결코 가만히 있지는 않을 테고 분명히 무슨 일이 벌어져도 벌어지고 말 게 틀림없었다.
민희는 벼라별 생각이 떠오르는 가운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허벅지에서 둔중한 통증이 느껴졌다. 아마 멍들었을 거야···. 그녀는 젖은 눈가를 훔치고 주변을 더듬었다. 찢긴 브래지어며 팬티를 찾을 생각이었다. 어두운 방안이 마치 외딴 산속처럼 황량하고 쓸쓸하게 여겨졌지만 불을 켜기는 죽기보다 싫었다. 초라한 자신의 몰골을 보는 게 두려웠던 것이다.
걸레조각 같은 천 하나가 손에 잡혔다. 민희는 그것이 자신의 팬티라는 걸 담박에 알아차렸다. 그녀는 그것은 아무렇게나 뭉쳐 끈적한 이물감이 남아 있는 샅을 훔쳤다. 아직도 무언가 단단한 것이 박혀 있는 것만 같은 샅은 팬티가 닿자마자 바늘로 찌르는 듯 쓰라렸다.
민희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이윽고 불을 켰다. 어지럽게 헝클어진 이부자리가 좀전의 몸부림을 그대로 말해 주고 있었다. 요 한 귀퉁이에는 자신의 순결의 흔적임에 분명한 붉은 핏자국이 마치 장미꽃잎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민희는 손에 들린 팬티를 내려다보았다. 팬티 역시 으깨진 장미꽃잎 같은 붉은 자국이 묻어 있었다. 그녀는 끈이 뜯어진 브래지어와 팬티를 구겨 비닐봉지에 넣어 잘 갈무리한 다음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정필이나 누군가의 눈에 띄게 하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다. 요는 핏자국이 드러나지 않게 접어 장롱에 넣고 새 담요를 꺼내 깔았다. 그리고나서 그녀는 새 속옷을 챙겨 입고는 잠옷 대신 청바지와 티셔츠를 걸쳤다.
잠은 벌써 달아나 버린지 오래였다. 민희는 소리없이 문을 열고 거실로 나왔다. 현관 창문을 통해 들어온 여린 달빛이 교교한 적막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녀는 잠시 붙박혀 선 채 종필이 방의 동정에 귀를 기울였다. 코고는 소리와 잠꼬대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나올 뿐, 방안은 달콤한 잠속에 가라앉아 있었다.
저 가운데에 누군가가···. 민희는 다시 복받쳐 오르는 설움과 분노에 취해 긴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천천히 현관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아랫배 근처에서 올라오는 욱신거리는 통증이 좀전의 봉변을 자꾸만 상기시켰다.
아무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는 일이었다. 친구들에게도 결코 말하고 싶지 않은 부끄럽고 수치스런 일이었다. 민희는 걱정스러워 하는 친구들에게 그저 몸살기가 좀 있을 뿐이라고 얼버무렸다.
하루 종일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 보았지만 민희는 녀석의 정체를 알아낼 수가 없었다. 학교에서도 수업 시간에 떠오르는 것이라고는 줄곧 그 생각 뿐이었다. 도대체 누굴까··· 도대체 어떤 녀석이었을까···. 하지만 민희는 누군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확실한 거라고는 어젯밤 종필이 방에서 잔 일곱 녀석들 중의 누군가라는 사실 하나 뿐이었다.
민희는 변함없이 웃고 떠드는 친구들을 보면서 왠지 모르게 슬픔이 복받쳐 오르곤 했다. 저들은 여전히 저들이었지만, 자신은 이제 옛날의 자신이 아니었다. 어쩐지 밟아서는 안될 곳을 밟고 들어서 버린 것처럼 두려운 생각이 들면서, 아무런 생각 없이 명랑하게 짓까부는 친구들이 더없이 부럽게만 느껴졌다.
몸살을 핑계로 오후 수업을 조퇴한 민희는 깜짝 놀랐다. 종필이 친구 중의 하나인 학성이가 집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 누나 웬일이야? 수업 벌써 끝났어?”
학성이는 들어서는 민희를 보자 저도 놀랐는지 눈이 동그래지며 물었다.
“아니, 몸이 좀 안 좋아서 조퇴했어. 그런데 너야말로 웬일이니? 학교··· 안 갔어?”
민희는 혹시 학성이 이 녀석이··· 하는 생각을 문득 떠올리며 되물었다.
“나? 히힛··· 누나 몰랐구나. 나 어제 무기정학 먹었어. 어쩌면 짤릴지도 몰라···”
“뭐? 또 무슨 사고쳤니?”
“사고는 무슨··· 그냥···”
민희는 좀더 자세히 묻고 싶었으나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어쩌면 학성이가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오히려 얼굴 보기가 민망하고 가슴이 울렁거렸기 때문이었다.
학성이는 종필이 친구들 가운데서도 평소 민희에게 유달리 살갑게 굴곤 했다. 남학생이 뒤따라 오기라도 할라치면 제일 먼저 극성을 떨고 나가 주먹부터 냅다 휘두르는 게 학성이었고, 가끔 어울려 놀 때에도 문득 진한 시선으로 민희를 쳐다보곤 하는 것도 학성이었다.
맞아. 저 녀석이 그랬을지도 몰라··· 평소에도 날 보는 눈빛이 예사롭지가 않았어···. 민희는 일단 그런 생각이 들자 점점 그 쪽으로 판단이 흐르는 것이었다. 평소 학성이의 행동 하나하나가 다 의심의 꼬투리가 되어 다가왔던 것이다.
그러나 학성이의 태도는 예전과 하나도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껄쩡한 키를 건들거리며 쑥스럽게 웃는 모습이며 주머니에 두 손을 깊이 찌른 채 엉거주춤 움직이는 품세도 전혀 마음에 거리끼는 게 없다는 태도였다.
내가 너무 예민해진 걸까···. 문득 민희는 자신이 괜한 사람을 의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자 학성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난좀 누워서 쉴련다.”
민희는 그렇게 말하고 방에 들어와 문을 잠갔다. 그리고는 속으로 놀랐다. 어느 새 문을 잠그는 버릇이 들었는지, 예전에 그러하지 못했던 자신을 떠올리자 쓴웃음이 나왔던 것이다. 이런 걸 두고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하던가. 진작에 문을 잠그는 습관을 들였더라면 어젯밤 같은 경우는 피할 수도 있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민희는 창문 커튼을 치고 담요를 꺼내 바닥에 깔았다. 그리고 멍하니 누워 생각에 잠겼다. 앞으로도 오늘과 같은 경우를 얼마나 겪어야 할까···. 동생 친구들을 볼 때마다 의심부터 생길 것이고, 행동 하나하나가 다 어젯밤 일과 연관되어 다가올 것이었다. 범인이 누구라는 것을 알면 적어도 불필요한 오해나 의심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될 터인데···. 민희는 그러면서 불현듯 어젯밤의 그 녀석이 속으로 얼마나 통쾌해 할까를 생각하니 다시 분노와 증오가 무섭게 끓어오르는 것이었다.
기어코 밝혀내고야 말겠어···. 민희는 갑자기 주먹이 떨렸다. 무슨 수단을 쓰더라도 범인을 알아내고야 말겠어··· 그래서 죽여 버리겠어. 그녀는 그렇게 결심하자 더 이상 슬프거나 두렵지 않았다. 왜 내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지··· 하는 허탈감이 들 만큼 이상하게 결의가 차오르고 이빨이 악물려지는 것이었다.
좋아··· 마침 기회가 닿았으니···. 민희는 벌떡 상반신을 일으켰다. 그리고 종필이 방에 있는 학성이를 큰 소리로 불렀다.
“왜, 누나?”
학성이가 들어오려다 문이 잠긴 것을 알고는 문밖에서 대답했다.
아참, 잠가 놓았지. 민희는 일어나서 문을 열며 다정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학성아, 너··· 누나 약좀 사다 줄래?”
“그러지 뭐. 근데 어떻게 말하지?”
“머리가 좀 어지럽고··· 으슬으슬 춥다고···”
“오케이. 몸살감기라고 말하면 되겠네?”
“여기 돈···”
“냅둬. 돈은 나한테도 많아. 누나, 갔다 올게.”
학성이가 경쾌하게 달려 나갔다. 민희는 학성이의 뒷모습을 내심 찬찬히 살피며 생각에 잠겼다. 설마···. 하지만 확인해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고 하지 않았는가. 민희는 한 사람 한 사람 확실히 확인해 보지 않고서는 판단을 내리지 않기로 단단히 마음먹었다.
학성이는 채 오분도 걸리지 않아 약봉지를 들고 달려들어 왔다. 이마에 땀방울이 송알송알 맺힌 게 득달같이 달린 모양이었다.
“자, 여기···”
벌컥 문을 열며 쌍화탕 병과 약봉지를 내미는 학성이 멈칫, 눈을 붉혔다. 그도 그럴 것이, 민희는 잠옷 차림이었다. 브래지어가 환히 들여다보이는 핑크색의 얇은 잠옷은 경아 언니 것인데 민희가 잠깐 꺼내 입은 것이었다.
“학성아, 잠깐만···”
민희는 붉어진 얼굴을 외면한 채 돌아서 나가는 학성이를 불러 세웠다.
“너··· 여기 같이 좀 안 있을래?”
“여기···?”
학성이가 잠시 멈칫거렸다.
“응, 혼자 있으려니까 어째 좀 무서워서 그래.”
“누나도 참··· 벌건 대낮에 뭐가 무섭다고. 그리고 내가 있잖아, 이 학성이가.”
“그러니까 네가 좀··· 내 옆에 있어줘.”
“알았어, 그러지 뭐. 누구 엄명인데. 그럼 잠깐만 기다려, 누나.”
학성이가 건너가더니 만화책을 한 아름 안고 왔다.
“이거나 보고 있지 뭐···”
학성이는 자못 시선 두기가 쑥스러운지 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짐짓 외면하며 구석에 주저앉더니 만화책을 펼쳤다.
“난 한숨 잘 테니까··· 알았지? 나가면 안돼. 옆에 있어줘야 해.”
“에이, 알았다니깐. 누나도 참 애기같이···”
민희는 누운 채 눈을 감았다. 이제 학성이가 어젯밤의 주인공이라면 틀림없이 무언가 행동을 해올 것이었다.
그러다가 민희는 정말로 깜박 잠이 들고 말았다. 감기약 탓이었다. 잠든 척 떠보려던 그녀는 감기약에 들어있는 안정제에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민희는 꿈을 꾸었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커다란 짐승에게 옷을 벗기우는 꿈이었다. 팔이 거미처럼 여덟 개 정도는 되어보이는 그 짐승은 자신을 꼼짝 못하게 얽어맨 채 길다란 혓바닥을 날름거리면서 거침없이 옷을 찢어발기고 있었다.
“누나, 누나···”
“으응···”
민희는 불현듯 눈을 떴다. 학성이의 벌겋게 상기된 얼굴이 마치 산처럼 커다랗게 클로즈업되었다.
“학성이 너···”
그녀는 외치며 몸을 일으켰다. 순간적으로 민희는 어젯밤의 범인이 학성이라고 단정했다. 지금 학성이의 포즈는 자신을 마악 안으려는 자세에 하나도 다름아니었던 것이다.
“이 나쁜 자식!”
민희는 있는 힘껏 학성이의 뺨을 후려갈겼다. 짜악, 하는 소리와 함께 손바닥에 아릿한 통증이 와 닿았다.
“왜, 왜 그래, 누나.”
학성이가 놀란 눈으로 외치며 달려들어 민희의 팔을 붙잡았다.
“너지! 이 나쁜 새끼!”
민희는 잡힌 팔을 빼내려고 버둥거리며 (출처:yadam4.net)소리를 질렀다.
“그래 나야, 학성이라구! 누나, 도대체 왜 이러는데!”
학성이가 붙잡은 손을 마구 흔들며 동시에 소리쳤다.
“이 나쁜 새끼! 내가 얼마나 너희들을 위했는데, 날 강간해?”
“뭐 강간? 누나 지금 말 다했어?”
학성이가 부르짖더니 민희의 팔을 훽 밀었다. 민희는 그 서슬에 뒤로 벌렁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뭐? 강간? 내가 누나를 강간하려 했다구? 식은땀을 흘리며 연신 비명을 지르길래 걱정이 돼서 그랬을 뿐인데 뭐? 강간?”
학성이 분하다는 표정으로 씨근거렸다. 민희는 갑자기 멍해졌다. 학성의 말은 전혀 뜻밖이었다.
“내가 누날 얼마나 좋아했는데. 그래, 내가 누나를 강간할 놈으로 보였단 말이지? 그러면서 왜 나한테 옆에 있어달라 그랬어! 씨팔!”
“하, 학성아···”
“좋아! 누나가 날 그렇게 봤다면··· 좋아! 그 말대로 해주겠어, 이리 와!”
“왜, 왜 이러니, 학성아! 잠깐만! 잠깐만 누나 말좀 들어봐!”
민희는 달려드는 학성이를 향해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러나 학성이는 열이 머리 꼭대기에까지 뻗쳤는지 들으려 하지도 않았다. 제깐에는 걱정이 돼서 가까이 와 들여다보고 흔들어 깨우는 참이었는데 느닷없이 뺨을 내갈기면서 강간 운운 했으니 급한 성질에 훼까닥 돌아버린 것 같았다.
민희는 자신이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으나 그걸 설명할 여유조차 없었다. 득달같이 달려든 학성이 허리를 껴안고 뒹굴면서 한 순간에 잠옷을 통째로 걷어 올리더니 알량한 팬티 조각을 거칠게 잡아챘던 것이다.
“하, 학성아! 학성아! 이러지 마!”
민희는 뭔가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그럴 정신이 없었다. 우선 다급한 건 몸이었다. 이미 고스란히 드러나버린 하체에 생각이 미치자 무엇이 먼저인가를 따질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가만있어!”
학성이는 숫제 울부짖듯이 소리치며 달려들었다. 민희의 외침 따위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는 태도였다.
틀렸어. 학성이는 지금 돌아버린 상태야. 아··· 어떡한담···. 민희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자신의 성급한 판단이 학성이의 자존심을 건드려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러면서 동시에 민희는 차라리 학성이에게 순순히 몸을 맡기자는 생각이 불쑥 들기도 했다. 원인은 자신한테 있었고, 강간범으로 몰아부친 잘못을 생각하면 순순히 당해 주는 게 차라리 도리라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던 것이다. 게다가 학성이는 평소에도 자신을 정말 좋아하며 따르지 않았던가. 그런 녀석에게 강간이란 치욕스런 말을 던졌으니 얼마나 상처가 컸겠는가 싶기도 했던 것이다.
“알았어, 학성아! 학성아! 알았으니까, 제발!”
민희는 학성이를 향해 애원하듯 부르짖었다. 그러나 학성이는 그 말을 오해했는지 더욱 격렬하게 민희의 몸을 다구쳤다.
“알았다니까! 네 맘대로 해. 그 대신 제발, 제발 살살···”
민희는 입술을 깨물며 소리쳤다. 그제서야 학성이 멈칫하더니 종잇장 구기듯 함부로 얽어 안은 민희의 몸을 반듯이 눕혀 주었다. 그리고는 언제 벗어부쳤는지 모르게 벌거벗은 하반신을 그녀의 다리 사이로 들이밀었다.
“아악!”
민희는 아직 어젯밤의 고통이 채 사라지지 않은 그곳으로 학성이의 잔뜩 성난 남근이 거칠게 파고들어 오자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누, 누나! 사랑해.”
학성이가 단내를 풍기는 입김을 민희의 얼굴 가득 내뿜으며 더듬거렸다.
“아, 알아. 흑···”
민희는 갑자기 솟구치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학성이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다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아··· 학성아, 천천히··· 아파 죽겠어.”
민희는 아랫배 깊숙한 곳을 줄기차게 찌르는 날카로운 고통에 허리를 비틀며 신음했다.
“누나···”
눈물과 신음이 뒤범벅된 민희의 입술을 향해 학성의 입술이 다가왔다. 민희는 기다렸다는 듯이 입술을 열고 학성의 혀를 받아들였다. 지금 자신이 해 줄 일이라고는 그것밖에 없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차피 한번 버린 몸이니 두번이라 해서
다를 바가 뭔가. 그녀는 그런 생각과 함께 학성이에게 강간범의 타이틀을 씌울 뻔한 자신의 잘못을 용서받는 방법은 오직 이길 뿐이라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음···”
학성이 혀를 깊게 빨아들이자 민희는 그 순간 야릇한 쾌감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하체의 고통과는 다른 이상한 아픔과 쾌감이 혀뿌리에서 불꽃처럼 반짝이며 타올랐던 것이다.
그러자 지금까지 아프게만 느껴졌던 하체에서도 가물가물 이상한 간지러움 같은 감각이 피어올랐다. 학성이 몸을 움직일 때마다 둔중한 이물감과 함께 수반되던 고통의 한 귀퉁이에서 딱이 꼬집어 표현할 수 없는 묘한 쾌감이 언뜻언뜻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거였다.
“음··· 아아···”
민희는 저도 모르게 학성의 등을 껴안았다. 그러자 학성이 입술을 옮겨 민희의 젖가슴을 거칠게 빨기 시작했다.
“으흣!”
민희는 그 순간 움찔 몸을 떨었다. 학성의 입술이 뜨거운 숨결과 함께 젖꼭지를 흡입하는 순간 전류와 같은 쾌감이 등줄기를 짜르르르 울리며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어머! 아아··· 으···”
민희는 허리를 꼬았다. 젖꼭지의 감각은 그냥 견디기 힘들 정도로 야릇한 것이었다. 그녀는 학성의 등을 안은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학성의 무거운 체중이 더욱 무겁게 내리눌러 주지 않으면 자신의 몸이 스프링처럼 튕겨나갈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 만큼 강렬한 감각이었다.
“누나, 헉헉··· 누나, 사랑해. 헉!”
학성이 다급하게 속삭이더니 갑자기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부르르 몸을 떨었다. 동시에 민희는 자신의 내부 깊숙한 곳에서, 어젯밤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촉으로 무언가 뜨겁고 뭉클한 것이 분출하는 감각을 느꼈다.
“후-.”
학성이 숨을 몰아쉬더니 몸을 떨구었다. 갑자기 학성의 무게가 견딜 수 없이 무겁게 느껴졌으므로 민희는 슬그머니 학성의 가슴을 밀어냈다. 학성이 몸을 굴려 바닥으로 내려갔다.
민희는 주섬주섬 일어나 자신의 팬티를 집어들고 마치 익숙한 행위처럼 자신의 샅을 닦아냈다. 두번 째였으나 여전히 붉은 피가 팬티에 젖어나왔다. 방바닥에도 몇 방울 유난히 선홍색의 핏방울이 떨어져 있는 게 보였다.
민희는 팬티로 방바닥을 훔쳐내며 담요 위가 아닌게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성의 서슬에 밀려 두 사람은 방바닥에서 그 일을 치렀던 것이다.
학성이 바지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꺼내 무는 모습을 보며 민희는 다시 마음이 심란해지는 것을 느꼈다. 단 이틀 사이에 동생 친구들 가운데 두 사람과 관계를 갖고 만 것이었다.
이걸 어떡하나···. 민희는 생각이 정리되지가 않았다. 누굴 사귀거나 좋아해서 일어난 일이라면 또 몰랐다. 두번 다 얼토당토않게 일어난 일이었다는 데 문제가 있었다. 그렇다고 학성이한테 새삼스럽게 누나랑 사귀자,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리 혼자 짝사랑을 해왔다고는 할지언정 학성이는 동생 종필이의 친구였다. 또 게다가 어젯밤의 주인공이 누군지 오리무중인 상태였다. 언제 그 녀석이 이빨을 드러낼지 모르는 상황에서 섣부른 선택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누나, 처녀였구나···”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학성이 중얼거렸다. 녀석의 손에는 어느새 민희의 팬티가 쥐여 있었다.
“이리내!”
민아는 본능적인 수치심에 그것을 빼앗아 감추었다. 그리고는 재빨리 이불을 들어 몸을 가렸다.
“푸훗··· 가리면 뭐해. 이미 다 본 걸. 이리와, 누나.”
학성이 다가와 어깨를 감싸안았다. 민아는 피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근데, 누나··· 아무한테도 우리 얘기 꺼내면 안돼. 알았지?”
학성이 쌍화탕 병 뚜껑을 열고 밤배꽁초를 밀어넣으며 진지하게 말했다.
“종필이한테는 물론이고, 절대 내색하면 안돼. 큰일나. 알았지?”
“왜? 무슨 큰일?”
민희는 학성이답지 않게 두려워하는 모습이 오히려 의아스러워 반문했다.
“글쎄··· 누난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 우리 사이는 절대 비밀이야.”
“왜, 겁나니? 너 그렇게 쫀쫀한 남자였어?”
“그게 아니라니까!”
학성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얘가! 똥 뀐 놈이 성낸다더니···”
“미치겠네 정말··· 누난 암것두 몰라.”
“뭘? 내가 뭘 모른단 말이야?”
민희는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들어 다그치듯 물었다. 어쩌면 어젯밤의 주인공에 관련된 이야긴가 싶기도 했던 것이다.
“잘 들어, 누나. 우리끼리 약속한 건데 말이야··· 사실은··· 누가 여자를 만나더라도 우선 친구들한테 한번 돌림방을 한 다음에 사귀기로 맹세했단 말이야.”
“뭐?”
민아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지난번에 우리끼리 의형제를 맺으면서 맹세했어. 군대 가기 전에 사귀는 여잔 무조건 돌림방 하기로. 안 그러면 그날로 이거야.”
학성이 자기 목을 치는 시늉을 했다.
“웃겨. 쬐그만 자식들이···”
민희는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니까 누난 절대 우리 사이 내색해선 안돼, 알았지?”
학성이 어깨를 두른 손으로 젖꼭지를 만져왔다. 민아는 흠칫, 몸을 떨며 그 손길을 뿌리쳤다. 야릇한 자극 때문이었다.
“가만 있어 봐.”
학성이 더욱 안아들며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학성의 행동에는 마치 제 여자를 다루는 듯하는 자신감이 은근히 배어 있었다.
“너 설마, 나랑 사귀자는 얘긴 아니겠지?”
민희는 다소곳이 눈을 내리깐 채 짐짓 냉정한 어조로 물었다.
“뭐라구? 누나 지금···”
학성이 깜짝 놀란 표정을 했다.
“왜? 왜 놀라는데?”
민희는 잠자코 손을 들어 젖가슴에 붙은 학성의 손을 떼냈다.
“웃기지 마! 누가 뭐래도 누난 내 여자야, 알았어?”
학성이 소리쳤다.
“웃기지 마! 누가 뭐래도 난 그냥 나야! 아무도 안 사귀어!”
민희는 마주 소리질러 놓고 무릎에 얼굴을 묻으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두달이 지나는 동안 끝내 그날 밤의 주인공이 누구였는지를 민희는 밝혀낼 수가 없었다. 스스로 내가 그랬노라고 나서는 녀석이 없는 바에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민희는 제풀에 포기해 버렸다. 잘못하다가는 학성이한테 그랬던 것처럼 엉뚱한 결과만 불러올 수도 있었거니와, 학성이가 마치 제 여자처럼 굴며 다정하게 위해 주는 것도 어쩐지 싫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날 밤 있었던 일을 학성이와 있었던 것이라고 치부해 버리고 잊기로 했다. 그게 속 편할 것 같았다. 어차피 떳떳치 못한 일을 한 녀석이 새삼스럽게 나설 수도 없을 테니까.
학성이는 친구들과 있을 때는 정말이지 능구렁이처럼 시치미를 뚝 따고 있다가 단 둘만 있게 되는 때가 생기면 태도가 일백팔십도 바뀌면서 너무나 좋아했다. 제법 값비싸 보이는 반지를 사놓았다가 꺼내놓기도 했고, 어디서 샀는지 팬티 세트를 감추고 있다가 불쑥 들이밀기도 했다.
학성이는 만날 때마다 한 가지 씩 선물을 했다. 마치 선물을 못해 환장한 사람 같았다. 또 용케도 친구들 몰래 숨기고 있다가 기회를 잡아 꺼내 놓는 것이 민희가 생각해도 귀신처럼 감쪽같았다.
그동안 민희는 학성과 일주일에 한 번 꼴로 관계를 가졌다. 처음에는 만남 자체를 아예 거부하고 무시했지만 거듭되는 학성의 호의와 애틋한 구애에 그녀는 차츰 자신도 모르는 새에 마음이 열리고 말았던 것이다.
민희는 자신이 학성을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학성이는 변함없이 동생의 친구였을 뿐, 그 이상의 감정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묘하게도, 부끄러운 곳을 함께 나누었다는 사실이 주는 친밀감과 함께, 비밀을 공유한 사이로서 가지는 동류의식 같은 것이 그녀로 하여금 학성의 적극적인 프로포즈를 물리칠 수 없게 만든 것이었다.
그날 이후 두 사람만의 만남을 처음 갖게 된 날은 학성이 팬티 세트를 불쑥 들이민 바로 그날 저녁이었다. 친구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학성이 잽싸게 전해준 조그만 상자 안에는 보기에도 앙증맞은 팬티 석장이 곱게 접힌 채 들어있었는데, 놀랍게도 팬티의 바로 그 부분, 여자의 은밀한 곳을 감싸는 그 부분에는 학성의 영문 이니셜에 틀림없어 보이는 HC라는 두 개의 알파벳이 뚜렷하게 수놓아져 있었다. 어딘가 수놓는 집에 찾아가서 주문한 게 분명해 보이는 전문가의 솜씨였다. 민희는 그걸 보는 순간 학성의 뜨거운 마음이 그대로 전해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사내 녀석이 팬티를 산 것만 해도 그랬지만, 거기에 수를 놓아달라고 창피를 무릅쓰고 자수가게를 찾아갔을 때의 벌겋게 단 얼굴을 떠올리자 그녀는 그만 안쓰러운 마음까지 생기는 것이었다.
그래서 민희는 그날 밤 학성의 이니셜이 수놓인 팬티를 입고 약속 장소로 나갔다. 상자 안에는 시간과 장소가 적힌 메모가 들어있었던 것이다.
해가 뉘엿 떨어지기 시작한 산길을 더듬어 올라갈 때는 등뒤에 누군가가 쫓아오는 것 같은 두려움에 다리가 떨리기도 했지만 민희는 학성의 듬직한 모습을 떠올리며 꾹 참았다. 그리하여 약속한 장소에서 학성을 보았을 때는 너무나 반가워 소리를 지를 뻔했다.
두 사람은 인적이라고는 발 씻고 찾아도 볼 수 없는 읍내 뒷산 중턱에 나란히 앉았다. 학성은 어디선가 군용 담요까지 구해와 펼쳐놓고 있었으므로 옷에 풀물이 들 염려도 없었다.
민희는 만나자마자 다급하게 옷을 벗기려 드는 학성의 요구를 거부하지 않았다. 어차피 육체를 나눈 사이였고, 학성의 이니셜이 새겨진 팬티를 입고 온 것 자체가 허락하겠다는 의사를 스스로 확인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학성이 몸을 요구해 오리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으며 그 요구를 구태여 거절하지 않겠다는 생각도 함께 하고 있었다.
학성은 그날 밤 두번이나 민희의 몸을 탐했다. 고통은 여전히 그녀의 몸을 굼뜨게 만들었지만 그래도 처음과는 사뭇 달랐다. 그녀는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할 만큼 성숙한 여자처럼 굴었으며 어렴풋이 느껴지는 쾌감의 끝자락을 붙잡고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도 했다.
그때부터 두 사람은 자주 그런 기회를 가졌다. 언제나 학성이 먼저 요구했지만, 민희는 결코 거절하지 않았다. 학성이한테만은 웬지 거절해서는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때로는 집에서 단둘만의 은밀한 시간을 즐기기도 했다. 미리 약속한 대로 조퇴를 하거나 수업을 빼먹으면서 기회를 만들었다. 친구들의 눈치를 살펴가며 학성은 요령껏 기회를 만들었고, 민희는 그 기회를 적절한 것으로 만드는데 힘을 보태곤 했다.
그러면서 민희는 점차 여자가 되어갔다. 섹스가 주는 쾌락에 눈을 뜨게 되었던 것이다. 학성의 육체를 거부감없이 받아들이게 되면서부터 그녀는 차츰 자신의 내부에서 타오르는 불길의 정체를 깨닫게 되었고, 그 불길이 자신을 태우면서 내뿜는 뜨거운 열락의 연기를 들이마실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학성은 나이답지 않게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때로는 이상한 자세를 요구하기도 하고, 야릇한 짓을 시키기도 했다. 민희는 학성의 요구에 따라 그런 것들을 체험해 가면서 어른들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비로소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자신의 부모가 왜 이혼하게 되었으며, 왜 엄마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고 또 재혼까지 하게 되었는가를 나름대로 짐작도 하게 되었다.
그랬다. 그 세계에는 사람을 몸서리쳐지게 만드는 쾌락이 있었다. 희열이 있었고 황홀한 열락이 있었다. 그 열락은 몸이 온통 녹아버리는 것만 같은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일단 맛보면 도저히 다시 찾지 않을 수 없는 마력을 지닌 열락이었다.
민희는 때로 자신이 여자의 육체를 지녔다는 게 감사한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자신의 내부에 열락과 환희의 씨앗을 심어놓은 신에게 감사와 찬양의 마음이 절로 들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민희는 학성을 만나기 위해 둘만의 장소를 향해 올라갔다. 뒷산 중턱이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친구들이 학성을 밧줄로 묶어 나무에 매달아 놓은 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민희는 먼 발치에서부터 얼어붙어 버렸다. 석양 어스름이 짙은 그림자를 안고 깔려 들었지만 아직은 사위를 분간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중턱 능선에 오르자마자 민희는 눈을 의심케 만드는 그 광경을 보았다.
“너희들, 이게 무슨··· 종필이는 어딨어?”
가까스로 다가간 민희는 두려움을 떨쳐버리기라도 하듯 짐짓 큰소리로 외쳤다. 소나무 가지에 매달린 학성이는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누나, 잠깐만···”
재갑이 민희에게 다가오며 머쓱한 얼굴을 했다.
“종필이는? 그 자식도 여니?”
민희는 왈칵 울음이 터지려는 것을 참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종필이는 여기 없어요. 걘 아무 것도 모르거든요. 종필이가 알았으면 학성인 이미 죽었을 거예요. 그래서 종필이를 빼돌리고 우리만 왔어요.”
재갑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누나, 학성이 저 새끼가···”
친구들 가운데 리더격인 찬우가 분이 풀리지 않는다는 듯 학성이를 힐끗 쳐다보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누날··· 강간했다면서?”
찬우의 말을 듣는 순간 민아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자신과 연관된 일이라는 건 이미 짐작하고 있었지만 강간이라니?
“학성이가···?”
“누나, 기왕 이렇게 된 거, 부끄러워 할 필요 없어. 우리가 응당한 대가를 치러줄 테니까··· 누나 입으로 말해봐. 저 새끼 말이 맞아? 에이 드런 놈의 새끼, 어디 여자가 없어서 친구 누나를 강간해? 씹새끼!”
찬우가 펄쩍 솟구쳐 오르더니 발을 뻗어 학성이를 걷어찼다. 우욱, 하는 학성이의 신음이 허공을 울렸다.
“왜, 왜들 이러는 거야···”
민희는 급기야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한동안 침묵이 주위를 감싸고, 민희의 흐느낌만이 산 속의 정적을 깼다.
“도대체 왜들 이러니? 학성이가 날 어쨌다구?”
한바탕 울고 나자 민아는 차라리 담담해지는 자신을 느꼈다.
“학성이가··· 스스로 자백했어요. 지가 누나를 강간했고, 누난 그 뒤로 어쩔 수 없이 지를 만나왔다고··· 맞아요?”
재갑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래서··· 어쩔 셈이야?”
민희는 손수건을 꺼내 눈자위를 훔치며 물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요. 다른 사람도 아닌, 피로 맺은 의형제의 누나를 강간하고 괴롭힌 죄는 당연히 죽어 마땅해요.”
찬우가 주머니에서 칼을 꺼냈다. 어둠 속에서도 섬뜩한 푸른빛이 소름끼치게 뿜어나왔다. 민아는 저도 모르게 파르르 몸이 떨렸다.
“그, 그게 아냐···”
민희는 떨리는 음성으로 말하며 학성을 올려다보았다. 그 순간이었다.
“누나, 안돼··· 안돼···”
학성이 쥐어짜는 목소리로 외쳤다.
“안되긴 뭐가 안되 새꺄!”
옆에서 지켜보던 누군가가 학성이를 향해 몽둥이를 휘갈겼다.
“꺄악!”
민희는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야, 이 새꺄, 누나 놀라잖아. 그만해.”
찬우가 나서서 몽둥이를 빼앗아 던져버렸다.
“누나, 누나가 한 마디만 하면 돼. 저 새끼 말이 맞아, 틀려?”
민희는 흐느끼며 도리질을 했다. 학성이는 민희의 입장을 살펴 주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게 틀림없었다. 둘 사이를 눈치챈 친구들이 채근하자 자신이 죄를 옴팍 뒤집어쓰고라도 민희를 감싸주려 한 것 같았다. 그녀는 새삼스레 학성이 했던 말을 기억해 내고는 사태의 전말을 이해할 것 같았다.
“누나··· 안돼··· 안돼··· 누나···”
학성이 안간힘을 쓰며 더듬거렸다. 민아는 그런 학성을 보자 가슴이 미어지는 것만 같았다.
“우린 사귀어! 누가 누굴 강간했다고 그래!”
민희는 내뱉듯이 말하고는 학성을 향해 달려갔다.
“이거 풀어, 빨리! 나쁜 놈들아!”
민희는 발악하듯 소리질렀다.
“누나··· 안돼··· 누나···”
학성이 기를 쓰고 부르짖었다.
“안되긴 뭐가 안돼, 이 병신아! 누가 널더러 거짓말 하랬어? 뭐해! 빨리 풀어 주라니깐! 우린 서로 사귀는 사이란 말야. 강간을 누가 했다고 그래!”
민희는 발작적으로 외치며 찬우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는 찬우의 손에서 칼을 빼앗아 학성의 몸을 굴비짝처럼 묶고 있는 밧줄을 필사적으로 끊었다. 재갑이 학성이가 떨어지지 않도록 받쳐 주었다.
“누, 누나··· 어쩌려고···”
민희는 중심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고 쓰러지려는 학성이를 품에 안았다.
“난 괜찮아. 학성이 널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민희는 새삼스럽게 학성이에게서 연민을 느끼곤 흐느꼈다.
“누나, 좀전에 누나가 한 말 책임질 수 있어?”
찬우가 다가오더니 나즈막하면서도 위압적으로 물었다.
“누나, 분명히 말해. 분명히 둘이 좋아서 사귄 거야? 학성이가 강간한 게 절대 아니란 말이지?”
재갑이가 확인하듯 물었다.
“그래. 학성이는 내 입장을 생각해서 거짓말을 한 거야.”
“그게 사실이야? 분명해?”
“그래, 틀림없는 사실이야.”
민희는 단호하게 말하며 녀석들을 둘러보았다. 찬우와 재갑이 서로 마주보며 말을 삼켰다. 다른 녀석들도 담배를 꼬나물거나 딴 데를 바라보며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그치만 아무리··· 설사 학성이가 날 강간했다고 할지라도, 그렇다고 너희들··· 친구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죽일 셈이었어?”
“죽일 생각은 아니었어. 하지만 친구의 누나를 강간했다면 그에 합당한 대가는 치러야지, 안 그래?”
“대가가 이거야?”
“아니, 진짜는 아직 시작도 안했어. 우린 누나의 말을 들은 후 학성이의 자백이 사실이라면 좆대가리를 짤라 버릴 작정이었어.”
“뭐, 뭐라고?”
“하지만 누나가 진실을 밝혀 주었으니··· 학성이한테는 미안하게 되버린 꼴이네. 하지만 일을 이렇게 만든 건 학성이 바로 너야. 첨부터 사실대로 말했더라면 이런 꼴을 당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어쨌든 학성이 네가 민희 누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알겠다만··· 후··· 어떡하냐···.”
찬우가 민아와 학성이, 그리고 친구들을 차례로 훑어보며 말을 이었다. 난처한 기색이 역력했다.
민희는 찬우의 얼굴에 나타난 고민의 표정이 무얼 뜻하는지 금세 알아챘다. 녀석들은 지금 자신들이 피로 맹세한 일을 두고 무언의 의논을 하고 있는 참이었던 것이다. 군에 가기 전에 사귀는 여자들은 의리를 위해 무조건 친구와 돌림방···. 민희는 학성이 했던 말을 떠올리곤 가만히 입술을 깨물었다.
“빙빙 돌리지 말고 똑바로 얘기해. 너희들··· 나를 어떡할 셈이야!”
민희는 찬우를 향해 쏘아뱉었다.
“허, 참··· 이거 일이 이상하게 되어버렸네.”
찬우가 담배를 꼬나물더니 허공을 향해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
“이거 참, 종필이 누나에다 학성이 애인이라니··· 야, 니들 어쨌으면 좋겠냐.”
찬우가 난처하다는 듯 친구들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너, 너희들··· 누나한테만은 제발···”
학성이가 펄썩 주저앉으며 무릎을 꿇었다.
“글쎄··· 우리도 어쨌으면 좋을지 모르겠다야···”
“야, 이걸 어떡하냐.”
“찬우 니가 결정해라. 우린 니 말을 따를 테니까.”
“씨발, 일이 좆같이 됐구만···”
“차라리 누나한테 탁 까놓고 얘기하는게 어때?”
“종필이 얼굴을 으떻게 본다냐, 이제···”
“씨발, 지금 종필이가 문제냐. 학성이는 좆까지 짤릴 뻔했는데··· 참말로 민희 누나도 대단하구만. 언제부터 둘이 그렇게 죽고 못 살았다냐···”
“니기미, 나도 진작부터 누날 좋아했는디··· 학성이 너는 참 재주도 좋다 그래.”
“그나저나 의리냐 친구 누나냐 그것이 문제구만···”
녀석들은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대면서 슬며시 민희의 눈치를 살폈다. 민희는 종필의 얼굴을 떠올렸다. 어차피 종필이가 아는 것도 시간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그녀는 성질 사나운 종필이 결코 학성이를 가만 두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고, 애꿎은 학성이한테만 책임을 둘러 씌울 수는 없다는 경심이 들었다.
“너희들··· 종필이한테는 비밀을 지키겠다고 맹세해줘.”
민희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어차피 종필이도 알게 될 텐데요 뭘···”
재갑이 한숨을 내쉬었다.
“알게될 때는 알게 되더라도··· 너희들 입으로는 절대 먼저 얘기하지 않겠다고 이 자리에서 맹세해.”
“그거야, 누나가 원한다면··· 그런데···”
“너희들이 그 역속만 지켜준다면··· 너희들 맹세에 따라주겠어.”
“네?”
“누나!”
찬우와 학성이 동시에 민아를 향해 눈을 치떴다.
“누나, 그건 안돼! 절대로···”
“새꺄! 넌 빠져. 누나 지금 그말 후회 않을 자신 있어?”
찬우가 학성이를 제지하고는 민희를 뚫어질 듯 노려보았다.
“누나 정말 학성이를 계속 사귈 생각이야? 여기서 그만 두겠다면 이번만은 덮어줄 수 잇어. 안 그러냐, 애들아?”
찬우가 의외라는 듯 친구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래. 누나가 학성이와 더 이상 사귀지 않겠다면 이번 일은 덮어줄게. 종필이한테도 비밀로 하고···”
“그래, 누나. 누난 그냥 우리 누나로 남아줘.”
“민희 누나, 그렇게 해.”
녀석들이 이구동성으로 나섰다. 민희는 정말이지 그렇게 하고 싶었다. 사실 학성이를 좋아해서 만난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민희는 자신을 덮어주기 위해 친구들의 린치를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성기까지 잘릴 것을 각오한 학성이에게 그런 식으로 보답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난 학성이를 앞으로도 계속 만날 거야.”
“누나!”
“민희 누나!”
“너희들이 뭐라 해도 내 결심은 변함없어. 그러니 너희들 규칙대로 해. 다만··· 약속은 지켜. 알았지?”
민희는 그렇게 말하고 녀석들이 소주병이며 안주쪼가리를 늘어놓은 곳으로 가 번 듯이 드러누웠다. 학성이와 둘이서 옷을 벗은 채 딩굴곤 하던 바로 그 담요 위였다.
“누나··· 정말로 후회 않겠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누나가 한 마디만 하면 돼.”
찬우가 다가와 거듭 확인을 했다.
“누가 먼저 할래···”
민희는 다소곳이 눈을 감은 채 또박또박 말했다.
“알았어··· 잠시만 기다려.”
찬우가 한쪽에 친구들을 모아놓고 무언가 얘기를 나누었다. 한동안 떠들썩한 얘기들이 오가더니 잠잠해졌다. 그리고 잠시후, 찬우가 다가오더니 민희 옆에 털썩 엉덩이를 내려 놓았다.
“이건 누나가 선택한 거야, 분명히. 우릴 욕하지 마.”
“알았어···”
“내가 먼저 할게···”
“학성이는?”
“저쪽에···”
민희는 찬우가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친구들에 둘러싸인 채 술을 마시고 있는 학성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민희가 다시 눕자 찬우가 셔츠를 밀어 올리더니 입술을 가져다댔다. 그리고는 젖꼭지를 몇번인가 거칠게 빨더니 청바지 버튼을 끄르고 지퍼를 주르륵 열어왔다. 민희는 순간 수치심에 발을 웅크렸으나 이내 자세를 고쳤다. 스스로 선택한 행동에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기 싫었던 것이다.
찬우는 청바지를 벗겨내리고 팬티에 손을 대려다가 잠시 망설이는 듯했다. 그러더니 이윽고 결심한 듯 팬티를 거칠게 잡아내렸다. 순간 싸늘한 바람 한 줄기가 하체를 파고드는 느낌에 민아는 저도 모르게 다리를 오무리고 말았다.
“정말 후회 안할 거지? 누나.”
찬우가 바지 지퍼를 내리며 다시 물었다. 목소리가 갈라진 것처럼 들렸다.
“빨리 해···”
민희는 팔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가리며 나지막히 내뱉었다.
“그럼···”
찬우가 몸을 낮춰 민희의 배 위로 체중을 실었다. 그녀는 다리를 슬몃 벌려 찬우의 하체를 품으려는 자세를 취했다.
“아윽!”
찬우가 거칠게 진입해 들어오자 민희는 순간적으로 신음을 물었다. 학성이보다 훨씬 크고 단단한 것으로 느껴지는 이물감이 다리 사이를 찔렀다.
“흐읏··· 누나···”
찬우가 못견디겠다는 듯 격렬하게 엉덩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읏··· 아아···”
민희는 이를 악물고 찬우의 움직임을 받아냈다. 그러자 놀랍게도 어느 순간부터 짜릿한 쾌감이 척추를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이미 남자를 통해 쾌락을 만들어낼 줄 아는 육체가 보이는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민희는 사뭇 떨리는 몸을 억제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소용없는 노릇이었다. 마음보다는 몸이 먼저 쾌감을 향해 달려가는 걸 말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찬우는 의외로 빠르게 절정에 올랐다. 막 달아오르기 시작한 민희가 오히려 허전함을 느꼈을 정도였다. 뜨거운 분출을 몸 속에서 느끼지마자 잠시 빠듯하게 충만했던 하체에 시원한 밤공기가 스며들었다. 민희는 자신의 팬티를 집어들어 축축해진 그곳을 재빨리 닦아냈다.
두 번째는 재갑이었다. 재갑이는 벌써부터 바지를 벗은 채 덜렁덜렁 다가오더니 누워있는 민희의 몸 위로 망설이지 않고 뛰어들었다. 그리고 들입다 하체 사이에 성기를 쑤셔넣곤 맹렬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찬우와는 달리 재갑이는 한참이 걸렸다. 민희가 들뜬 목소리로 신음을 질러대는 것을 느긋하게 내려다보며 제나름의 기교까지 부리려 들었다. 민아는 재갑이한테서 절정의 순간을 맛보았다. 크기는 별다른 게 없는 것 같았지만 재갑이의 끈질긴 움직임이 그녀의 몸에 불길을 당겨놓고 말았던 것이다.
네번 째 녀석까지 받아들이는 동안 민희는 스스로의 반응에 자못 놀랐다. 그녀는 별 힘을 들이
민희는 별명이 걸레였다. 남자들 사이에서만 불리는 별명이었다.
그녀는 그 사실을 어렴풋이, 아니 사실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들이 자신을 어떤 눈으로, 또 어떤 생각으로 보고 대하는지를...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처음에는 그런 모든 것이 너무나도 슬프고 비통했지만 이제는 그런 것 따위는 초월(?)해 버린 것이다.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차피 불가항력적인 것이라면 차라리 온전히 순응해 버리는 게 마음 편한 일이었다.
게다가 민희는 자신 역시 그게 싫지만은 않았다. 은근히 설레는 일이기도 했다. 남자들의 야릇한 시선, 달아오른 성기, 헐떡거리는 몸부림, 그런 것들이 야릇한 자극으로 받아들여졌다. 더욱이 자신의 육체 내부에서 타오르는 견디기 힘든 희열···.
민희는 최초로 자신을 범했던 남자들을 요즘도 만났다. 그들은 다름아닌 동생의 친구들이었다. 처음에는 증오하고 혐오했으나 시간이 흐르고 관계가 거듭되면서 어느덧 그녀의 내부에는 연민과 함께 동류의식이 자라났던 것이다.
2년 전. 그때 민희는 여고 1년이었다.
두살 터울인 동생 종필이는 중 2였다.
두 사람은 읍내에서 함께 자취를 했다.
원래는 언니 경아와 셋이서 살았으나 경아가 여고를 졸업한 뒤 근처의 도시로 취직해 떠나는 바람에 둘만 남게 되었던 것이다.
민희의 아버지는 형사였으나 엄마와 이혼한 후 다른 지방으로 발령을 받아 떠났고, 엄마는 다른 남자와 재혼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양육을 떠맡은 아버지를 따라 가지 않았다. 이제 다 컸으니 독립해서 살겠다고 경아가 우긴 때문이었다. 본디 가족에 대해 애착이 없던 아버지도 굳이 말리려 들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아버지의 명의로 되어 있는 읍내의 집에서 그들만의 생활을 해나가게 된 것이다. 생활비는 꼬박꼬박 아버지가 부쳐 왔으므로 부족한 게 없었다. 엄마도 가끔 적지 않은 돈을 보내오곤 했다.
집에는 방이 세 개나 있었으므로 셋은 각각 방 하나씩을 차지하고 살았다. 맨 큰방은 경아가 사용하고, 다음은 민희, 종필이 순으로 나이에 따라 방 크기를 배당해 사용했다. 그러다가 경아가 도시로 나간 후에는 민희가 언니와 방을 바꿔 썼고 종필이가 민희 방을 사용하게 되었다. 주말에만 들르는 경아는 그다지 커다란 방이 필요없었던 것이다.
민희네 집에는 수시로 아이들이 들끓었다. 경아가 함께 살 때는 경아의 친구로부터 시작해 민희, 종필이의 친구들까지 찾아와 날마다 우글우글거렸다. 부모가 없는 집에 모여 노는 재미가 유별났으므로 자연스레 친구들이 꼬이게 된 것이었다.
그날도 집에는 친구들이 찾아들었다. 민희의 친구가 한패, 또 종필이 친구가 한패였다. 두 패는 함께 어우러져 민화투를 치기도 하고 최근에 나온 대중가요를 따라 배우기도 하면서 놀았다. 맨날 마주치는 얼굴들이었던지라 서로들 하나도 어색함이 없었던 것이다.
마침내 저녁이 되자 민희의 친구들이 하나둘 돌아가고 종필이의 친구들만 남았다. 아무래도 여학생이란 집안의 감독이 남자애들에 비해 심했으므로 자고 가는 날은 많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종필이의 친구들은 달랐다. 예사로 자고 가기 일쑤였다. 그들은 자기네들끼리 뭉쳐 라면을 끓여 먹기도 하고 막걸리 따위를 사다 마시기도 하면서 밤새 어울려 놀곤 하였다.
그러다보니 종필이의 친구들은 하나같이 문제아로 찍힌 애들뿐이었다. 겨우 중학교 2학년에 불과했음에도 덩치가 어른 못지않게 컸고, 대부분이 술은 물론이고 담배를 할 줄 알았으며, 학교에서 한두 번 이상은 정학을 당하거나 퇴학을 당하거나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이유도 거개가 다 패싸움이나 ‘노상’(거리에서 학생들의 주머니를 터는 행위) 따위의 사건을 일으킨 때문이었다.
하지만 민희는 그런 동생의 친구들이 싫지 않았다. 녀석들은 민희를 친누나처럼 따르고 좋아했으며 어쩌다 남학생이라도 뒤를 따라 올라치면 득달같이 쫓아가서 혼을 내주곤 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그날, 민희는 동생 친구들의 부탁으로 라면을 끓여 주었다. 그리고 강권에 못 이겨 막걸리를 한두 잔 받아 마셨다. 동생 친구들은 여느 때처럼 돈을 갹출해 라면이고 막걸리를 한 아름 사왔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 민희는 제 방으로 와 동생 친구들의 떠드는 소리를 귓가에 들으면서 잠이 들었다. 언제나 그러하듯이.
그런데 언제쯤이나 되었을까. 민희는 문득 이상한 느낌에 눈을 떴다. 무언가 바윗덩이 같은 것이 자신을 누르고 있는 것 같았던 것이다.
“어머나!”
그녀는 눈을 뜨자마자 그 바윗덩이의 정체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남자였다. 그녀는 옆방에 동생과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큰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든든한 구원자들이 옆에 있다는 사실이 순간적으로 용기를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다급한 외침은 남자가 내민 손에 의해 입안에서 막혀 버렸다. 동시에 술냄새를 확 풍기며 절박한 목소리 하나가 낮게 부르짖었다.
“쉿, 조용히 해.”
낯익은 목소리였다. 틀림없이 동생 친구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누구인지는 정확한 판단이 서질 않았다. 민희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믿었던 구원자가 바로 약탈자가 되어 등장한 것이다.
“한번만 대줘, 누나. 응? 나 도저히 못 참겠어.”
목소리는 애원조였다. 그러나 여전히 민희의 입을 막은 채였으며 그의 손은 허락을 구하지 않은 채 그녀의 잠옷 사이를 헤집고 있었다.
“읍··· 읍···”
민희는 고개를 거칠게 흔들며 반항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칠흑같이 새까만 어둠의 베일에 뒤덮인 채 민희는 그 어둠의 아들과 사투를 벌여야 했다.
어둠은 역시 그 아들 편이었다. 어둠의 아들은 그 억센 힘으로 민희의 잠옷을 벗기고 마침내 브래지어며 팬티를 무자비하게 찢어 발겼다.
“아, 안돼···”
민희는 도리질을 했으나 목소리는 밖으로 나올 수가 없었다. 바위 같은 손이 입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속옷을 모두 찢어버리고나자 녀석은 자유로운 한손으로 민희의 두 손목을 한데 모아쥐더니 등뒤로 돌려 꼼짝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통나무 둥치처럼 억센 무릎으로 민아의 허벅지를 찍어 누르더니 힘껏 짓이겼다.
“으···”
민희는 녀석이 양 허벅지를 번갈아 짓이기자 고통으로 온몸의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고 정신이 하얗게 지워지는 것 같았다. 감각을 잃어버린 다리가 푸들푸들 떨리며 절로 벌어졌다.
녀석은 민희의 몸에서 힘이 빠지는 것을 느끼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리 사이를 파고들었다. 그리고는 손목을 움켜잡았던 손을 등뒤에서 재빨리 빼내더니 민희의 부끄러운 부분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헉!”
민희는 비명을 삼켰다. 녀석의 손가락이 부끄러운 꽃잎 사이로 파고드는가 했더니 무언가 뜨겁고 단단한 것이 순식간에 찔러왔던 것이다.
민희는 본능적으로 남자의 성기가 자신의 몸 속에 파고들어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랫배 깊숙한 곳을 가득 채우고 있는 뜨거운 이물감이 그것을 뚜렷이 말해 주고 있었다.
“흑흑···”
민희는 입이 막힌 채 흐느끼기 시작했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고, 가슴 속에 본능적인 두려움이 가득 차 왔다.
“울지마, 누나. 금방 끝낼게.”
녀석이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자 찢어질 듯한 통증이 다리 사이를 가득 채웠다. 그녀는 절로 허리가 뒤틀리며 엉덩이가 튕겨졌다. 그러나 녀석의 바윗덩이 같은 체중은 그런 그녀의 움직임을 가볍게 눌러 버렸다.
민희는 녀석이 움직일 때마다 머릿속 한 귀퉁이가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 고통에 이를 악물었다. 등에서며 이마에서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혀들었다. 마음대로 입술을 움직일 수조차 없는 입안이 까맣게 타들어갔다.
녀석의 움직임은 오래 가지 않았다.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민희를 찍어누른 채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더니 펄펄 끓는 물이 쏟아지는 것만 같은 느낌을 그녀의 아랫배 깊은 곳에 남겨놓고는 슬그머니 일어나 나가 버리는 것이었다.
민희는 망연해진 정신을 추스릴 수 없었다. 머리 속에서 전쟁이 일어난 듯 어지럽기만 했다. 금방 겪은 일이 사실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마치 악몽을 꾼 것만 같았다.
그러나 악몽은 결코 아니었다. 다리 사이의 찢어질 듯한 아픔이 그걸 말해 주고 있었다. 그녀는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못한 채 한동안 그렇게 어둠을 응시하며 누워 있었다.
도대체 누구였을까···. 민희는 녀석의 목소리를 더듬어 보았으나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분명히 낯익은 목소리라는 것을 떠올리긴 했으나 그게 누구의 것인지는 판단이 서질 않았다. 동생 친구들을 하나하나 기억해 가며 목소리를 떠올려 보았으나 다 비슷한 것 같기도 했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몸집이며 체중을 더듬어 유추해 보려 했지만 그것도 여의치가 않았다. 워낙 황망중이었거니와, 도무지 감을 잡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녀석이 남긴 유일한 증거라고는 지금 몸속에 남겨 놓고 간 끈끈한 흔적 뿐이었다.
민희는 자신을 더럽힌 녀석이 누구인지라도 알아내고 싶었으나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이 녀석 같기도 하고 저 녀석 같기도 한 게 딱이 누구라고, 누구인 것 같다고 진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기가 막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담··· 누구한테인지도 모르고 어이없이 당하고 말다니···. 민희는 순결을 잃었다는 사실보다도 누구인지도 모르는 체 당했다는 사실이 더 기가 막혔다. 누구인지 알기라도 해야 원망을 하든 따지든 할 수 있을 터인데 누구인지도 모르는 마당에 어떻게 이 억울함을 풀 수 있다는 말인가. 민희는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누굴까··· 도대체 누굴까··· 차라리 누구라고 밝혀만 주었어도 이렇게 억울하지는 않을 텐데···. 민희는 녀석이 스스로 누구라고 밝혀 주었다면 이렇게 답답하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좋아서 그랬노라고, 정말 좋아해서 어쩔 수 없이 그랬노라고 고백해 온다면 어쩌면 용서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설마 종필이는 아니겠지···. 민아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돌아버릴 것 같았다. 설마 친동생인 정필이가 그런 짓을 했을 리야 없겠지만 이 사실을 종필이가 안다면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일이었다. 종필이 성질에 결코 가만히 있지는 않을 테고 분명히 무슨 일이 벌어져도 벌어지고 말 게 틀림없었다.
민희는 벼라별 생각이 떠오르는 가운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허벅지에서 둔중한 통증이 느껴졌다. 아마 멍들었을 거야···. 그녀는 젖은 눈가를 훔치고 주변을 더듬었다. 찢긴 브래지어며 팬티를 찾을 생각이었다. 어두운 방안이 마치 외딴 산속처럼 황량하고 쓸쓸하게 여겨졌지만 불을 켜기는 죽기보다 싫었다. 초라한 자신의 몰골을 보는 게 두려웠던 것이다.
걸레조각 같은 천 하나가 손에 잡혔다. 민희는 그것이 자신의 팬티라는 걸 담박에 알아차렸다. 그녀는 그것은 아무렇게나 뭉쳐 끈적한 이물감이 남아 있는 샅을 훔쳤다. 아직도 무언가 단단한 것이 박혀 있는 것만 같은 샅은 팬티가 닿자마자 바늘로 찌르는 듯 쓰라렸다.
민희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이윽고 불을 켰다. 어지럽게 헝클어진 이부자리가 좀전의 몸부림을 그대로 말해 주고 있었다. 요 한 귀퉁이에는 자신의 순결의 흔적임에 분명한 붉은 핏자국이 마치 장미꽃잎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민희는 손에 들린 팬티를 내려다보았다. 팬티 역시 으깨진 장미꽃잎 같은 붉은 자국이 묻어 있었다. 그녀는 끈이 뜯어진 브래지어와 팬티를 구겨 비닐봉지에 넣어 잘 갈무리한 다음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정필이나 누군가의 눈에 띄게 하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다. 요는 핏자국이 드러나지 않게 접어 장롱에 넣고 새 담요를 꺼내 깔았다. 그리고나서 그녀는 새 속옷을 챙겨 입고는 잠옷 대신 청바지와 티셔츠를 걸쳤다.
잠은 벌써 달아나 버린지 오래였다. 민희는 소리없이 문을 열고 거실로 나왔다. 현관 창문을 통해 들어온 여린 달빛이 교교한 적막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녀는 잠시 붙박혀 선 채 종필이 방의 동정에 귀를 기울였다. 코고는 소리와 잠꼬대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나올 뿐, 방안은 달콤한 잠속에 가라앉아 있었다.
저 가운데에 누군가가···. 민희는 다시 복받쳐 오르는 설움과 분노에 취해 긴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천천히 현관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아랫배 근처에서 올라오는 욱신거리는 통증이 좀전의 봉변을 자꾸만 상기시켰다.
아무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는 일이었다. 친구들에게도 결코 말하고 싶지 않은 부끄럽고 수치스런 일이었다. 민희는 걱정스러워 하는 친구들에게 그저 몸살기가 좀 있을 뿐이라고 얼버무렸다.
하루 종일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 보았지만 민희는 녀석의 정체를 알아낼 수가 없었다. 학교에서도 수업 시간에 떠오르는 것이라고는 줄곧 그 생각 뿐이었다. 도대체 누굴까··· 도대체 어떤 녀석이었을까···. 하지만 민희는 누군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확실한 거라고는 어젯밤 종필이 방에서 잔 일곱 녀석들 중의 누군가라는 사실 하나 뿐이었다.
민희는 변함없이 웃고 떠드는 친구들을 보면서 왠지 모르게 슬픔이 복받쳐 오르곤 했다. 저들은 여전히 저들이었지만, 자신은 이제 옛날의 자신이 아니었다. 어쩐지 밟아서는 안될 곳을 밟고 들어서 버린 것처럼 두려운 생각이 들면서, 아무런 생각 없이 명랑하게 짓까부는 친구들이 더없이 부럽게만 느껴졌다.
몸살을 핑계로 오후 수업을 조퇴한 민희는 깜짝 놀랐다. 종필이 친구 중의 하나인 학성이가 집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 누나 웬일이야? 수업 벌써 끝났어?”
학성이는 들어서는 민희를 보자 저도 놀랐는지 눈이 동그래지며 물었다.
“아니, 몸이 좀 안 좋아서 조퇴했어. 그런데 너야말로 웬일이니? 학교··· 안 갔어?”
민희는 혹시 학성이 이 녀석이··· 하는 생각을 문득 떠올리며 되물었다.
“나? 히힛··· 누나 몰랐구나. 나 어제 무기정학 먹었어. 어쩌면 짤릴지도 몰라···”
“뭐? 또 무슨 사고쳤니?”
“사고는 무슨··· 그냥···”
민희는 좀더 자세히 묻고 싶었으나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어쩌면 학성이가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오히려 얼굴 보기가 민망하고 가슴이 울렁거렸기 때문이었다.
학성이는 종필이 친구들 가운데서도 평소 민희에게 유달리 살갑게 굴곤 했다. 남학생이 뒤따라 오기라도 할라치면 제일 먼저 극성을 떨고 나가 주먹부터 냅다 휘두르는 게 학성이었고, 가끔 어울려 놀 때에도 문득 진한 시선으로 민희를 쳐다보곤 하는 것도 학성이었다.
맞아. 저 녀석이 그랬을지도 몰라··· 평소에도 날 보는 눈빛이 예사롭지가 않았어···. 민희는 일단 그런 생각이 들자 점점 그 쪽으로 판단이 흐르는 것이었다. 평소 학성이의 행동 하나하나가 다 의심의 꼬투리가 되어 다가왔던 것이다.
그러나 학성이의 태도는 예전과 하나도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껄쩡한 키를 건들거리며 쑥스럽게 웃는 모습이며 주머니에 두 손을 깊이 찌른 채 엉거주춤 움직이는 품세도 전혀 마음에 거리끼는 게 없다는 태도였다.
내가 너무 예민해진 걸까···. 문득 민희는 자신이 괜한 사람을 의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자 학성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난좀 누워서 쉴련다.”
민희는 그렇게 말하고 방에 들어와 문을 잠갔다. 그리고는 속으로 놀랐다. 어느 새 문을 잠그는 버릇이 들었는지, 예전에 그러하지 못했던 자신을 떠올리자 쓴웃음이 나왔던 것이다. 이런 걸 두고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하던가. 진작에 문을 잠그는 습관을 들였더라면 어젯밤 같은 경우는 피할 수도 있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민희는 창문 커튼을 치고 담요를 꺼내 바닥에 깔았다. 그리고 멍하니 누워 생각에 잠겼다. 앞으로도 오늘과 같은 경우를 얼마나 겪어야 할까···. 동생 친구들을 볼 때마다 의심부터 생길 것이고, 행동 하나하나가 다 어젯밤 일과 연관되어 다가올 것이었다. 범인이 누구라는 것을 알면 적어도 불필요한 오해나 의심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될 터인데···. 민희는 그러면서 불현듯 어젯밤의 그 녀석이 속으로 얼마나 통쾌해 할까를 생각하니 다시 분노와 증오가 무섭게 끓어오르는 것이었다.
기어코 밝혀내고야 말겠어···. 민희는 갑자기 주먹이 떨렸다. 무슨 수단을 쓰더라도 범인을 알아내고야 말겠어··· 그래서 죽여 버리겠어. 그녀는 그렇게 결심하자 더 이상 슬프거나 두렵지 않았다. 왜 내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지··· 하는 허탈감이 들 만큼 이상하게 결의가 차오르고 이빨이 악물려지는 것이었다.
좋아··· 마침 기회가 닿았으니···. 민희는 벌떡 상반신을 일으켰다. 그리고 종필이 방에 있는 학성이를 큰 소리로 불렀다.
“왜, 누나?”
학성이가 들어오려다 문이 잠긴 것을 알고는 문밖에서 대답했다.
아참, 잠가 놓았지. 민희는 일어나서 문을 열며 다정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학성아, 너··· 누나 약좀 사다 줄래?”
“그러지 뭐. 근데 어떻게 말하지?”
“머리가 좀 어지럽고··· 으슬으슬 춥다고···”
“오케이. 몸살감기라고 말하면 되겠네?”
“여기 돈···”
“냅둬. 돈은 나한테도 많아. 누나, 갔다 올게.”
학성이가 경쾌하게 달려 나갔다. 민희는 학성이의 뒷모습을 내심 찬찬히 살피며 생각에 잠겼다. 설마···. 하지만 확인해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고 하지 않았는가. 민희는 한 사람 한 사람 확실히 확인해 보지 않고서는 판단을 내리지 않기로 단단히 마음먹었다.
학성이는 채 오분도 걸리지 않아 약봉지를 들고 달려들어 왔다. 이마에 땀방울이 송알송알 맺힌 게 득달같이 달린 모양이었다.
“자, 여기···”
벌컥 문을 열며 쌍화탕 병과 약봉지를 내미는 학성이 멈칫, 눈을 붉혔다. 그도 그럴 것이, 민희는 잠옷 차림이었다. 브래지어가 환히 들여다보이는 핑크색의 얇은 잠옷은 경아 언니 것인데 민희가 잠깐 꺼내 입은 것이었다.
“학성아, 잠깐만···”
민희는 붉어진 얼굴을 외면한 채 돌아서 나가는 학성이를 불러 세웠다.
“너··· 여기 같이 좀 안 있을래?”
“여기···?”
학성이가 잠시 멈칫거렸다.
“응, 혼자 있으려니까 어째 좀 무서워서 그래.”
“누나도 참··· 벌건 대낮에 뭐가 무섭다고. 그리고 내가 있잖아, 이 학성이가.”
“그러니까 네가 좀··· 내 옆에 있어줘.”
“알았어, 그러지 뭐. 누구 엄명인데. 그럼 잠깐만 기다려, 누나.”
학성이가 건너가더니 만화책을 한 아름 안고 왔다.
“이거나 보고 있지 뭐···”
학성이는 자못 시선 두기가 쑥스러운지 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짐짓 외면하며 구석에 주저앉더니 만화책을 펼쳤다.
“난 한숨 잘 테니까··· 알았지? 나가면 안돼. 옆에 있어줘야 해.”
“에이, 알았다니깐. 누나도 참 애기같이···”
민희는 누운 채 눈을 감았다. 이제 학성이가 어젯밤의 주인공이라면 틀림없이 무언가 행동을 해올 것이었다.
그러다가 민희는 정말로 깜박 잠이 들고 말았다. 감기약 탓이었다. 잠든 척 떠보려던 그녀는 감기약에 들어있는 안정제에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민희는 꿈을 꾸었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커다란 짐승에게 옷을 벗기우는 꿈이었다. 팔이 거미처럼 여덟 개 정도는 되어보이는 그 짐승은 자신을 꼼짝 못하게 얽어맨 채 길다란 혓바닥을 날름거리면서 거침없이 옷을 찢어발기고 있었다.
“누나, 누나···”
“으응···”
민희는 불현듯 눈을 떴다. 학성이의 벌겋게 상기된 얼굴이 마치 산처럼 커다랗게 클로즈업되었다.
“학성이 너···”
그녀는 외치며 몸을 일으켰다. 순간적으로 민희는 어젯밤의 범인이 학성이라고 단정했다. 지금 학성이의 포즈는 자신을 마악 안으려는 자세에 하나도 다름아니었던 것이다.
“이 나쁜 자식!”
민희는 있는 힘껏 학성이의 뺨을 후려갈겼다. 짜악, 하는 소리와 함께 손바닥에 아릿한 통증이 와 닿았다.
“왜, 왜 그래, 누나.”
학성이가 놀란 눈으로 외치며 달려들어 민희의 팔을 붙잡았다.
“너지! 이 나쁜 새끼!”
민희는 잡힌 팔을 빼내려고 버둥거리며 (출처:yadam4.net)소리를 질렀다.
“그래 나야, 학성이라구! 누나, 도대체 왜 이러는데!”
학성이가 붙잡은 손을 마구 흔들며 동시에 소리쳤다.
“이 나쁜 새끼! 내가 얼마나 너희들을 위했는데, 날 강간해?”
“뭐 강간? 누나 지금 말 다했어?”
학성이가 부르짖더니 민희의 팔을 훽 밀었다. 민희는 그 서슬에 뒤로 벌렁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뭐? 강간? 내가 누나를 강간하려 했다구? 식은땀을 흘리며 연신 비명을 지르길래 걱정이 돼서 그랬을 뿐인데 뭐? 강간?”
학성이 분하다는 표정으로 씨근거렸다. 민희는 갑자기 멍해졌다. 학성의 말은 전혀 뜻밖이었다.
“내가 누날 얼마나 좋아했는데. 그래, 내가 누나를 강간할 놈으로 보였단 말이지? 그러면서 왜 나한테 옆에 있어달라 그랬어! 씨팔!”
“하, 학성아···”
“좋아! 누나가 날 그렇게 봤다면··· 좋아! 그 말대로 해주겠어, 이리 와!”
“왜, 왜 이러니, 학성아! 잠깐만! 잠깐만 누나 말좀 들어봐!”
민희는 달려드는 학성이를 향해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러나 학성이는 열이 머리 꼭대기에까지 뻗쳤는지 들으려 하지도 않았다. 제깐에는 걱정이 돼서 가까이 와 들여다보고 흔들어 깨우는 참이었는데 느닷없이 뺨을 내갈기면서 강간 운운 했으니 급한 성질에 훼까닥 돌아버린 것 같았다.
민희는 자신이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으나 그걸 설명할 여유조차 없었다. 득달같이 달려든 학성이 허리를 껴안고 뒹굴면서 한 순간에 잠옷을 통째로 걷어 올리더니 알량한 팬티 조각을 거칠게 잡아챘던 것이다.
“하, 학성아! 학성아! 이러지 마!”
민희는 뭔가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그럴 정신이 없었다. 우선 다급한 건 몸이었다. 이미 고스란히 드러나버린 하체에 생각이 미치자 무엇이 먼저인가를 따질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가만있어!”
학성이는 숫제 울부짖듯이 소리치며 달려들었다. 민희의 외침 따위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는 태도였다.
틀렸어. 학성이는 지금 돌아버린 상태야. 아··· 어떡한담···. 민희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자신의 성급한 판단이 학성이의 자존심을 건드려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러면서 동시에 민희는 차라리 학성이에게 순순히 몸을 맡기자는 생각이 불쑥 들기도 했다. 원인은 자신한테 있었고, 강간범으로 몰아부친 잘못을 생각하면 순순히 당해 주는 게 차라리 도리라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던 것이다. 게다가 학성이는 평소에도 자신을 정말 좋아하며 따르지 않았던가. 그런 녀석에게 강간이란 치욕스런 말을 던졌으니 얼마나 상처가 컸겠는가 싶기도 했던 것이다.
“알았어, 학성아! 학성아! 알았으니까, 제발!”
민희는 학성이를 향해 애원하듯 부르짖었다. 그러나 학성이는 그 말을 오해했는지 더욱 격렬하게 민희의 몸을 다구쳤다.
“알았다니까! 네 맘대로 해. 그 대신 제발, 제발 살살···”
민희는 입술을 깨물며 소리쳤다. 그제서야 학성이 멈칫하더니 종잇장 구기듯 함부로 얽어 안은 민희의 몸을 반듯이 눕혀 주었다. 그리고는 언제 벗어부쳤는지 모르게 벌거벗은 하반신을 그녀의 다리 사이로 들이밀었다.
“아악!”
민희는 아직 어젯밤의 고통이 채 사라지지 않은 그곳으로 학성이의 잔뜩 성난 남근이 거칠게 파고들어 오자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누, 누나! 사랑해.”
학성이가 단내를 풍기는 입김을 민희의 얼굴 가득 내뿜으며 더듬거렸다.
“아, 알아. 흑···”
민희는 갑자기 솟구치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학성이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다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아··· 학성아, 천천히··· 아파 죽겠어.”
민희는 아랫배 깊숙한 곳을 줄기차게 찌르는 날카로운 고통에 허리를 비틀며 신음했다.
“누나···”
눈물과 신음이 뒤범벅된 민희의 입술을 향해 학성의 입술이 다가왔다. 민희는 기다렸다는 듯이 입술을 열고 학성의 혀를 받아들였다. 지금 자신이 해 줄 일이라고는 그것밖에 없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차피 한번 버린 몸이니 두번이라 해서
다를 바가 뭔가. 그녀는 그런 생각과 함께 학성이에게 강간범의 타이틀을 씌울 뻔한 자신의 잘못을 용서받는 방법은 오직 이길 뿐이라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음···”
학성이 혀를 깊게 빨아들이자 민희는 그 순간 야릇한 쾌감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하체의 고통과는 다른 이상한 아픔과 쾌감이 혀뿌리에서 불꽃처럼 반짝이며 타올랐던 것이다.
그러자 지금까지 아프게만 느껴졌던 하체에서도 가물가물 이상한 간지러움 같은 감각이 피어올랐다. 학성이 몸을 움직일 때마다 둔중한 이물감과 함께 수반되던 고통의 한 귀퉁이에서 딱이 꼬집어 표현할 수 없는 묘한 쾌감이 언뜻언뜻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거였다.
“음··· 아아···”
민희는 저도 모르게 학성의 등을 껴안았다. 그러자 학성이 입술을 옮겨 민희의 젖가슴을 거칠게 빨기 시작했다.
“으흣!”
민희는 그 순간 움찔 몸을 떨었다. 학성의 입술이 뜨거운 숨결과 함께 젖꼭지를 흡입하는 순간 전류와 같은 쾌감이 등줄기를 짜르르르 울리며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어머! 아아··· 으···”
민희는 허리를 꼬았다. 젖꼭지의 감각은 그냥 견디기 힘들 정도로 야릇한 것이었다. 그녀는 학성의 등을 안은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학성의 무거운 체중이 더욱 무겁게 내리눌러 주지 않으면 자신의 몸이 스프링처럼 튕겨나갈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 만큼 강렬한 감각이었다.
“누나, 헉헉··· 누나, 사랑해. 헉!”
학성이 다급하게 속삭이더니 갑자기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부르르 몸을 떨었다. 동시에 민희는 자신의 내부 깊숙한 곳에서, 어젯밤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촉으로 무언가 뜨겁고 뭉클한 것이 분출하는 감각을 느꼈다.
“후-.”
학성이 숨을 몰아쉬더니 몸을 떨구었다. 갑자기 학성의 무게가 견딜 수 없이 무겁게 느껴졌으므로 민희는 슬그머니 학성의 가슴을 밀어냈다. 학성이 몸을 굴려 바닥으로 내려갔다.
민희는 주섬주섬 일어나 자신의 팬티를 집어들고 마치 익숙한 행위처럼 자신의 샅을 닦아냈다. 두번 째였으나 여전히 붉은 피가 팬티에 젖어나왔다. 방바닥에도 몇 방울 유난히 선홍색의 핏방울이 떨어져 있는 게 보였다.
민희는 팬티로 방바닥을 훔쳐내며 담요 위가 아닌게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성의 서슬에 밀려 두 사람은 방바닥에서 그 일을 치렀던 것이다.
학성이 바지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꺼내 무는 모습을 보며 민희는 다시 마음이 심란해지는 것을 느꼈다. 단 이틀 사이에 동생 친구들 가운데 두 사람과 관계를 갖고 만 것이었다.
이걸 어떡하나···. 민희는 생각이 정리되지가 않았다. 누굴 사귀거나 좋아해서 일어난 일이라면 또 몰랐다. 두번 다 얼토당토않게 일어난 일이었다는 데 문제가 있었다. 그렇다고 학성이한테 새삼스럽게 누나랑 사귀자,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리 혼자 짝사랑을 해왔다고는 할지언정 학성이는 동생 종필이의 친구였다. 또 게다가 어젯밤의 주인공이 누군지 오리무중인 상태였다. 언제 그 녀석이 이빨을 드러낼지 모르는 상황에서 섣부른 선택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누나, 처녀였구나···”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학성이 중얼거렸다. 녀석의 손에는 어느새 민희의 팬티가 쥐여 있었다.
“이리내!”
민아는 본능적인 수치심에 그것을 빼앗아 감추었다. 그리고는 재빨리 이불을 들어 몸을 가렸다.
“푸훗··· 가리면 뭐해. 이미 다 본 걸. 이리와, 누나.”
학성이 다가와 어깨를 감싸안았다. 민아는 피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근데, 누나··· 아무한테도 우리 얘기 꺼내면 안돼. 알았지?”
학성이 쌍화탕 병 뚜껑을 열고 밤배꽁초를 밀어넣으며 진지하게 말했다.
“종필이한테는 물론이고, 절대 내색하면 안돼. 큰일나. 알았지?”
“왜? 무슨 큰일?”
민희는 학성이답지 않게 두려워하는 모습이 오히려 의아스러워 반문했다.
“글쎄··· 누난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 우리 사이는 절대 비밀이야.”
“왜, 겁나니? 너 그렇게 쫀쫀한 남자였어?”
“그게 아니라니까!”
학성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얘가! 똥 뀐 놈이 성낸다더니···”
“미치겠네 정말··· 누난 암것두 몰라.”
“뭘? 내가 뭘 모른단 말이야?”
민희는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들어 다그치듯 물었다. 어쩌면 어젯밤의 주인공에 관련된 이야긴가 싶기도 했던 것이다.
“잘 들어, 누나. 우리끼리 약속한 건데 말이야··· 사실은··· 누가 여자를 만나더라도 우선 친구들한테 한번 돌림방을 한 다음에 사귀기로 맹세했단 말이야.”
“뭐?”
민아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지난번에 우리끼리 의형제를 맺으면서 맹세했어. 군대 가기 전에 사귀는 여잔 무조건 돌림방 하기로. 안 그러면 그날로 이거야.”
학성이 자기 목을 치는 시늉을 했다.
“웃겨. 쬐그만 자식들이···”
민희는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니까 누난 절대 우리 사이 내색해선 안돼, 알았지?”
학성이 어깨를 두른 손으로 젖꼭지를 만져왔다. 민아는 흠칫, 몸을 떨며 그 손길을 뿌리쳤다. 야릇한 자극 때문이었다.
“가만 있어 봐.”
학성이 더욱 안아들며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학성의 행동에는 마치 제 여자를 다루는 듯하는 자신감이 은근히 배어 있었다.
“너 설마, 나랑 사귀자는 얘긴 아니겠지?”
민희는 다소곳이 눈을 내리깐 채 짐짓 냉정한 어조로 물었다.
“뭐라구? 누나 지금···”
학성이 깜짝 놀란 표정을 했다.
“왜? 왜 놀라는데?”
민희는 잠자코 손을 들어 젖가슴에 붙은 학성의 손을 떼냈다.
“웃기지 마! 누가 뭐래도 누난 내 여자야, 알았어?”
학성이 소리쳤다.
“웃기지 마! 누가 뭐래도 난 그냥 나야! 아무도 안 사귀어!”
민희는 마주 소리질러 놓고 무릎에 얼굴을 묻으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두달이 지나는 동안 끝내 그날 밤의 주인공이 누구였는지를 민희는 밝혀낼 수가 없었다. 스스로 내가 그랬노라고 나서는 녀석이 없는 바에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민희는 제풀에 포기해 버렸다. 잘못하다가는 학성이한테 그랬던 것처럼 엉뚱한 결과만 불러올 수도 있었거니와, 학성이가 마치 제 여자처럼 굴며 다정하게 위해 주는 것도 어쩐지 싫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날 밤 있었던 일을 학성이와 있었던 것이라고 치부해 버리고 잊기로 했다. 그게 속 편할 것 같았다. 어차피 떳떳치 못한 일을 한 녀석이 새삼스럽게 나설 수도 없을 테니까.
학성이는 친구들과 있을 때는 정말이지 능구렁이처럼 시치미를 뚝 따고 있다가 단 둘만 있게 되는 때가 생기면 태도가 일백팔십도 바뀌면서 너무나 좋아했다. 제법 값비싸 보이는 반지를 사놓았다가 꺼내놓기도 했고, 어디서 샀는지 팬티 세트를 감추고 있다가 불쑥 들이밀기도 했다.
학성이는 만날 때마다 한 가지 씩 선물을 했다. 마치 선물을 못해 환장한 사람 같았다. 또 용케도 친구들 몰래 숨기고 있다가 기회를 잡아 꺼내 놓는 것이 민희가 생각해도 귀신처럼 감쪽같았다.
그동안 민희는 학성과 일주일에 한 번 꼴로 관계를 가졌다. 처음에는 만남 자체를 아예 거부하고 무시했지만 거듭되는 학성의 호의와 애틋한 구애에 그녀는 차츰 자신도 모르는 새에 마음이 열리고 말았던 것이다.
민희는 자신이 학성을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학성이는 변함없이 동생의 친구였을 뿐, 그 이상의 감정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묘하게도, 부끄러운 곳을 함께 나누었다는 사실이 주는 친밀감과 함께, 비밀을 공유한 사이로서 가지는 동류의식 같은 것이 그녀로 하여금 학성의 적극적인 프로포즈를 물리칠 수 없게 만든 것이었다.
그날 이후 두 사람만의 만남을 처음 갖게 된 날은 학성이 팬티 세트를 불쑥 들이민 바로 그날 저녁이었다. 친구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학성이 잽싸게 전해준 조그만 상자 안에는 보기에도 앙증맞은 팬티 석장이 곱게 접힌 채 들어있었는데, 놀랍게도 팬티의 바로 그 부분, 여자의 은밀한 곳을 감싸는 그 부분에는 학성의 영문 이니셜에 틀림없어 보이는 HC라는 두 개의 알파벳이 뚜렷하게 수놓아져 있었다. 어딘가 수놓는 집에 찾아가서 주문한 게 분명해 보이는 전문가의 솜씨였다. 민희는 그걸 보는 순간 학성의 뜨거운 마음이 그대로 전해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사내 녀석이 팬티를 산 것만 해도 그랬지만, 거기에 수를 놓아달라고 창피를 무릅쓰고 자수가게를 찾아갔을 때의 벌겋게 단 얼굴을 떠올리자 그녀는 그만 안쓰러운 마음까지 생기는 것이었다.
그래서 민희는 그날 밤 학성의 이니셜이 수놓인 팬티를 입고 약속 장소로 나갔다. 상자 안에는 시간과 장소가 적힌 메모가 들어있었던 것이다.
해가 뉘엿 떨어지기 시작한 산길을 더듬어 올라갈 때는 등뒤에 누군가가 쫓아오는 것 같은 두려움에 다리가 떨리기도 했지만 민희는 학성의 듬직한 모습을 떠올리며 꾹 참았다. 그리하여 약속한 장소에서 학성을 보았을 때는 너무나 반가워 소리를 지를 뻔했다.
두 사람은 인적이라고는 발 씻고 찾아도 볼 수 없는 읍내 뒷산 중턱에 나란히 앉았다. 학성은 어디선가 군용 담요까지 구해와 펼쳐놓고 있었으므로 옷에 풀물이 들 염려도 없었다.
민희는 만나자마자 다급하게 옷을 벗기려 드는 학성의 요구를 거부하지 않았다. 어차피 육체를 나눈 사이였고, 학성의 이니셜이 새겨진 팬티를 입고 온 것 자체가 허락하겠다는 의사를 스스로 확인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학성이 몸을 요구해 오리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으며 그 요구를 구태여 거절하지 않겠다는 생각도 함께 하고 있었다.
학성은 그날 밤 두번이나 민희의 몸을 탐했다. 고통은 여전히 그녀의 몸을 굼뜨게 만들었지만 그래도 처음과는 사뭇 달랐다. 그녀는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할 만큼 성숙한 여자처럼 굴었으며 어렴풋이 느껴지는 쾌감의 끝자락을 붙잡고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도 했다.
그때부터 두 사람은 자주 그런 기회를 가졌다. 언제나 학성이 먼저 요구했지만, 민희는 결코 거절하지 않았다. 학성이한테만은 웬지 거절해서는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때로는 집에서 단둘만의 은밀한 시간을 즐기기도 했다. 미리 약속한 대로 조퇴를 하거나 수업을 빼먹으면서 기회를 만들었다. 친구들의 눈치를 살펴가며 학성은 요령껏 기회를 만들었고, 민희는 그 기회를 적절한 것으로 만드는데 힘을 보태곤 했다.
그러면서 민희는 점차 여자가 되어갔다. 섹스가 주는 쾌락에 눈을 뜨게 되었던 것이다. 학성의 육체를 거부감없이 받아들이게 되면서부터 그녀는 차츰 자신의 내부에서 타오르는 불길의 정체를 깨닫게 되었고, 그 불길이 자신을 태우면서 내뿜는 뜨거운 열락의 연기를 들이마실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학성은 나이답지 않게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때로는 이상한 자세를 요구하기도 하고, 야릇한 짓을 시키기도 했다. 민희는 학성의 요구에 따라 그런 것들을 체험해 가면서 어른들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비로소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자신의 부모가 왜 이혼하게 되었으며, 왜 엄마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고 또 재혼까지 하게 되었는가를 나름대로 짐작도 하게 되었다.
그랬다. 그 세계에는 사람을 몸서리쳐지게 만드는 쾌락이 있었다. 희열이 있었고 황홀한 열락이 있었다. 그 열락은 몸이 온통 녹아버리는 것만 같은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일단 맛보면 도저히 다시 찾지 않을 수 없는 마력을 지닌 열락이었다.
민희는 때로 자신이 여자의 육체를 지녔다는 게 감사한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자신의 내부에 열락과 환희의 씨앗을 심어놓은 신에게 감사와 찬양의 마음이 절로 들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민희는 학성을 만나기 위해 둘만의 장소를 향해 올라갔다. 뒷산 중턱이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친구들이 학성을 밧줄로 묶어 나무에 매달아 놓은 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민희는 먼 발치에서부터 얼어붙어 버렸다. 석양 어스름이 짙은 그림자를 안고 깔려 들었지만 아직은 사위를 분간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중턱 능선에 오르자마자 민희는 눈을 의심케 만드는 그 광경을 보았다.
“너희들, 이게 무슨··· 종필이는 어딨어?”
가까스로 다가간 민희는 두려움을 떨쳐버리기라도 하듯 짐짓 큰소리로 외쳤다. 소나무 가지에 매달린 학성이는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누나, 잠깐만···”
재갑이 민희에게 다가오며 머쓱한 얼굴을 했다.
“종필이는? 그 자식도 여니?”
민희는 왈칵 울음이 터지려는 것을 참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종필이는 여기 없어요. 걘 아무 것도 모르거든요. 종필이가 알았으면 학성인 이미 죽었을 거예요. 그래서 종필이를 빼돌리고 우리만 왔어요.”
재갑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누나, 학성이 저 새끼가···”
친구들 가운데 리더격인 찬우가 분이 풀리지 않는다는 듯 학성이를 힐끗 쳐다보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누날··· 강간했다면서?”
찬우의 말을 듣는 순간 민아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자신과 연관된 일이라는 건 이미 짐작하고 있었지만 강간이라니?
“학성이가···?”
“누나, 기왕 이렇게 된 거, 부끄러워 할 필요 없어. 우리가 응당한 대가를 치러줄 테니까··· 누나 입으로 말해봐. 저 새끼 말이 맞아? 에이 드런 놈의 새끼, 어디 여자가 없어서 친구 누나를 강간해? 씹새끼!”
찬우가 펄쩍 솟구쳐 오르더니 발을 뻗어 학성이를 걷어찼다. 우욱, 하는 학성이의 신음이 허공을 울렸다.
“왜, 왜들 이러는 거야···”
민희는 급기야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한동안 침묵이 주위를 감싸고, 민희의 흐느낌만이 산 속의 정적을 깼다.
“도대체 왜들 이러니? 학성이가 날 어쨌다구?”
한바탕 울고 나자 민아는 차라리 담담해지는 자신을 느꼈다.
“학성이가··· 스스로 자백했어요. 지가 누나를 강간했고, 누난 그 뒤로 어쩔 수 없이 지를 만나왔다고··· 맞아요?”
재갑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래서··· 어쩔 셈이야?”
민희는 손수건을 꺼내 눈자위를 훔치며 물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요. 다른 사람도 아닌, 피로 맺은 의형제의 누나를 강간하고 괴롭힌 죄는 당연히 죽어 마땅해요.”
찬우가 주머니에서 칼을 꺼냈다. 어둠 속에서도 섬뜩한 푸른빛이 소름끼치게 뿜어나왔다. 민아는 저도 모르게 파르르 몸이 떨렸다.
“그, 그게 아냐···”
민희는 떨리는 음성으로 말하며 학성을 올려다보았다. 그 순간이었다.
“누나, 안돼··· 안돼···”
학성이 쥐어짜는 목소리로 외쳤다.
“안되긴 뭐가 안되 새꺄!”
옆에서 지켜보던 누군가가 학성이를 향해 몽둥이를 휘갈겼다.
“꺄악!”
민희는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야, 이 새꺄, 누나 놀라잖아. 그만해.”
찬우가 나서서 몽둥이를 빼앗아 던져버렸다.
“누나, 누나가 한 마디만 하면 돼. 저 새끼 말이 맞아, 틀려?”
민희는 흐느끼며 도리질을 했다. 학성이는 민희의 입장을 살펴 주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게 틀림없었다. 둘 사이를 눈치챈 친구들이 채근하자 자신이 죄를 옴팍 뒤집어쓰고라도 민희를 감싸주려 한 것 같았다. 그녀는 새삼스레 학성이 했던 말을 기억해 내고는 사태의 전말을 이해할 것 같았다.
“누나··· 안돼··· 안돼··· 누나···”
학성이 안간힘을 쓰며 더듬거렸다. 민아는 그런 학성을 보자 가슴이 미어지는 것만 같았다.
“우린 사귀어! 누가 누굴 강간했다고 그래!”
민희는 내뱉듯이 말하고는 학성을 향해 달려갔다.
“이거 풀어, 빨리! 나쁜 놈들아!”
민희는 발악하듯 소리질렀다.
“누나··· 안돼··· 누나···”
학성이 기를 쓰고 부르짖었다.
“안되긴 뭐가 안돼, 이 병신아! 누가 널더러 거짓말 하랬어? 뭐해! 빨리 풀어 주라니깐! 우린 서로 사귀는 사이란 말야. 강간을 누가 했다고 그래!”
민희는 발작적으로 외치며 찬우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는 찬우의 손에서 칼을 빼앗아 학성의 몸을 굴비짝처럼 묶고 있는 밧줄을 필사적으로 끊었다. 재갑이 학성이가 떨어지지 않도록 받쳐 주었다.
“누, 누나··· 어쩌려고···”
민희는 중심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고 쓰러지려는 학성이를 품에 안았다.
“난 괜찮아. 학성이 널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민희는 새삼스럽게 학성이에게서 연민을 느끼곤 흐느꼈다.
“누나, 좀전에 누나가 한 말 책임질 수 있어?”
찬우가 다가오더니 나즈막하면서도 위압적으로 물었다.
“누나, 분명히 말해. 분명히 둘이 좋아서 사귄 거야? 학성이가 강간한 게 절대 아니란 말이지?”
재갑이가 확인하듯 물었다.
“그래. 학성이는 내 입장을 생각해서 거짓말을 한 거야.”
“그게 사실이야? 분명해?”
“그래, 틀림없는 사실이야.”
민희는 단호하게 말하며 녀석들을 둘러보았다. 찬우와 재갑이 서로 마주보며 말을 삼켰다. 다른 녀석들도 담배를 꼬나물거나 딴 데를 바라보며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그치만 아무리··· 설사 학성이가 날 강간했다고 할지라도, 그렇다고 너희들··· 친구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죽일 셈이었어?”
“죽일 생각은 아니었어. 하지만 친구의 누나를 강간했다면 그에 합당한 대가는 치러야지, 안 그래?”
“대가가 이거야?”
“아니, 진짜는 아직 시작도 안했어. 우린 누나의 말을 들은 후 학성이의 자백이 사실이라면 좆대가리를 짤라 버릴 작정이었어.”
“뭐, 뭐라고?”
“하지만 누나가 진실을 밝혀 주었으니··· 학성이한테는 미안하게 되버린 꼴이네. 하지만 일을 이렇게 만든 건 학성이 바로 너야. 첨부터 사실대로 말했더라면 이런 꼴을 당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어쨌든 학성이 네가 민희 누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알겠다만··· 후··· 어떡하냐···.”
찬우가 민아와 학성이, 그리고 친구들을 차례로 훑어보며 말을 이었다. 난처한 기색이 역력했다.
민희는 찬우의 얼굴에 나타난 고민의 표정이 무얼 뜻하는지 금세 알아챘다. 녀석들은 지금 자신들이 피로 맹세한 일을 두고 무언의 의논을 하고 있는 참이었던 것이다. 군에 가기 전에 사귀는 여자들은 의리를 위해 무조건 친구와 돌림방···. 민희는 학성이 했던 말을 떠올리곤 가만히 입술을 깨물었다.
“빙빙 돌리지 말고 똑바로 얘기해. 너희들··· 나를 어떡할 셈이야!”
민희는 찬우를 향해 쏘아뱉었다.
“허, 참··· 이거 일이 이상하게 되어버렸네.”
찬우가 담배를 꼬나물더니 허공을 향해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
“이거 참, 종필이 누나에다 학성이 애인이라니··· 야, 니들 어쨌으면 좋겠냐.”
찬우가 난처하다는 듯 친구들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너, 너희들··· 누나한테만은 제발···”
학성이가 펄썩 주저앉으며 무릎을 꿇었다.
“글쎄··· 우리도 어쨌으면 좋을지 모르겠다야···”
“야, 이걸 어떡하냐.”
“찬우 니가 결정해라. 우린 니 말을 따를 테니까.”
“씨발, 일이 좆같이 됐구만···”
“차라리 누나한테 탁 까놓고 얘기하는게 어때?”
“종필이 얼굴을 으떻게 본다냐, 이제···”
“씨발, 지금 종필이가 문제냐. 학성이는 좆까지 짤릴 뻔했는데··· 참말로 민희 누나도 대단하구만. 언제부터 둘이 그렇게 죽고 못 살았다냐···”
“니기미, 나도 진작부터 누날 좋아했는디··· 학성이 너는 참 재주도 좋다 그래.”
“그나저나 의리냐 친구 누나냐 그것이 문제구만···”
녀석들은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대면서 슬며시 민희의 눈치를 살폈다. 민희는 종필의 얼굴을 떠올렸다. 어차피 종필이가 아는 것도 시간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그녀는 성질 사나운 종필이 결코 학성이를 가만 두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고, 애꿎은 학성이한테만 책임을 둘러 씌울 수는 없다는 경심이 들었다.
“너희들··· 종필이한테는 비밀을 지키겠다고 맹세해줘.”
민희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어차피 종필이도 알게 될 텐데요 뭘···”
재갑이 한숨을 내쉬었다.
“알게될 때는 알게 되더라도··· 너희들 입으로는 절대 먼저 얘기하지 않겠다고 이 자리에서 맹세해.”
“그거야, 누나가 원한다면··· 그런데···”
“너희들이 그 역속만 지켜준다면··· 너희들 맹세에 따라주겠어.”
“네?”
“누나!”
찬우와 학성이 동시에 민아를 향해 눈을 치떴다.
“누나, 그건 안돼! 절대로···”
“새꺄! 넌 빠져. 누나 지금 그말 후회 않을 자신 있어?”
찬우가 학성이를 제지하고는 민희를 뚫어질 듯 노려보았다.
“누나 정말 학성이를 계속 사귈 생각이야? 여기서 그만 두겠다면 이번만은 덮어줄 수 잇어. 안 그러냐, 애들아?”
찬우가 의외라는 듯 친구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래. 누나가 학성이와 더 이상 사귀지 않겠다면 이번 일은 덮어줄게. 종필이한테도 비밀로 하고···”
“그래, 누나. 누난 그냥 우리 누나로 남아줘.”
“민희 누나, 그렇게 해.”
녀석들이 이구동성으로 나섰다. 민희는 정말이지 그렇게 하고 싶었다. 사실 학성이를 좋아해서 만난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민희는 자신을 덮어주기 위해 친구들의 린치를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성기까지 잘릴 것을 각오한 학성이에게 그런 식으로 보답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난 학성이를 앞으로도 계속 만날 거야.”
“누나!”
“민희 누나!”
“너희들이 뭐라 해도 내 결심은 변함없어. 그러니 너희들 규칙대로 해. 다만··· 약속은 지켜. 알았지?”
민희는 그렇게 말하고 녀석들이 소주병이며 안주쪼가리를 늘어놓은 곳으로 가 번 듯이 드러누웠다. 학성이와 둘이서 옷을 벗은 채 딩굴곤 하던 바로 그 담요 위였다.
“누나··· 정말로 후회 않겠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누나가 한 마디만 하면 돼.”
찬우가 다가와 거듭 확인을 했다.
“누가 먼저 할래···”
민희는 다소곳이 눈을 감은 채 또박또박 말했다.
“알았어··· 잠시만 기다려.”
찬우가 한쪽에 친구들을 모아놓고 무언가 얘기를 나누었다. 한동안 떠들썩한 얘기들이 오가더니 잠잠해졌다. 그리고 잠시후, 찬우가 다가오더니 민희 옆에 털썩 엉덩이를 내려 놓았다.
“이건 누나가 선택한 거야, 분명히. 우릴 욕하지 마.”
“알았어···”
“내가 먼저 할게···”
“학성이는?”
“저쪽에···”
민희는 찬우가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친구들에 둘러싸인 채 술을 마시고 있는 학성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민희가 다시 눕자 찬우가 셔츠를 밀어 올리더니 입술을 가져다댔다. 그리고는 젖꼭지를 몇번인가 거칠게 빨더니 청바지 버튼을 끄르고 지퍼를 주르륵 열어왔다. 민희는 순간 수치심에 발을 웅크렸으나 이내 자세를 고쳤다. 스스로 선택한 행동에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기 싫었던 것이다.
찬우는 청바지를 벗겨내리고 팬티에 손을 대려다가 잠시 망설이는 듯했다. 그러더니 이윽고 결심한 듯 팬티를 거칠게 잡아내렸다. 순간 싸늘한 바람 한 줄기가 하체를 파고드는 느낌에 민아는 저도 모르게 다리를 오무리고 말았다.
“정말 후회 안할 거지? 누나.”
찬우가 바지 지퍼를 내리며 다시 물었다. 목소리가 갈라진 것처럼 들렸다.
“빨리 해···”
민희는 팔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가리며 나지막히 내뱉었다.
“그럼···”
찬우가 몸을 낮춰 민희의 배 위로 체중을 실었다. 그녀는 다리를 슬몃 벌려 찬우의 하체를 품으려는 자세를 취했다.
“아윽!”
찬우가 거칠게 진입해 들어오자 민희는 순간적으로 신음을 물었다. 학성이보다 훨씬 크고 단단한 것으로 느껴지는 이물감이 다리 사이를 찔렀다.
“흐읏··· 누나···”
찬우가 못견디겠다는 듯 격렬하게 엉덩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읏··· 아아···”
민희는 이를 악물고 찬우의 움직임을 받아냈다. 그러자 놀랍게도 어느 순간부터 짜릿한 쾌감이 척추를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이미 남자를 통해 쾌락을 만들어낼 줄 아는 육체가 보이는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민희는 사뭇 떨리는 몸을 억제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소용없는 노릇이었다. 마음보다는 몸이 먼저 쾌감을 향해 달려가는 걸 말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찬우는 의외로 빠르게 절정에 올랐다. 막 달아오르기 시작한 민희가 오히려 허전함을 느꼈을 정도였다. 뜨거운 분출을 몸 속에서 느끼지마자 잠시 빠듯하게 충만했던 하체에 시원한 밤공기가 스며들었다. 민희는 자신의 팬티를 집어들어 축축해진 그곳을 재빨리 닦아냈다.
두 번째는 재갑이었다. 재갑이는 벌써부터 바지를 벗은 채 덜렁덜렁 다가오더니 누워있는 민희의 몸 위로 망설이지 않고 뛰어들었다. 그리고 들입다 하체 사이에 성기를 쑤셔넣곤 맹렬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찬우와는 달리 재갑이는 한참이 걸렸다. 민희가 들뜬 목소리로 신음을 질러대는 것을 느긋하게 내려다보며 제나름의 기교까지 부리려 들었다. 민아는 재갑이한테서 절정의 순간을 맛보았다. 크기는 별다른 게 없는 것 같았지만 재갑이의 끈질긴 움직임이 그녀의 몸에 불길을 당겨놓고 말았던 것이다.
네번 째 녀석까지 받아들이는 동안 민희는 스스로의 반응에 자못 놀랐다. 그녀는 별 힘을 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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