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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02:57 696회 0건
007 삽입면허-17부-



“아, 형님...... 고맙습니다. 수고 많이 하셨고요.”



“그래, 나도 고맙다. 아휴...... 요즘은 경기가 없어서 이래 가지고서야 저축은 고사하고, 밥 굶기 딱 좋게 생겼다.”



기찬은 복덕방 사장으로부터 아파트의 임자가 나섰다는 연락을 받고 매매 계약을 체결하고 나서는 길이었다. 여전히 그의 곁에는 지영이 화사한 미소를 머금은 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제 저녁 무렵 몸이 달대로 달은 영진 사장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강희를 대동한 채 합의서를 작성해주어 오천만 원을 위자료 및 합의금으로 받아 챙겼다. 그 돈은 다른 경로를 통해 전해 주기로 강희와 약속을 했으니 당장은 기찬의 수중에 떨어진 돈이었고, 예전에 영진 기획실장으로부터 받아 둔 오천만 원도 남아 있으니, 이제 아파트 매매가 이루어지는 시점에 지영에게 약속했던 레스토랑을 물색하기 위해 종로로 나설 참이었다.



“어머! 그럼 지난번에 조사장한테 붙여 준 여자가 저 사람 부인이란 말이야?”



“푸훗...... 그렇지. 바로 저 양반 마누라야.”



“에이...... 조금 심했다......”



“뭐, 심할 것도 없는 일이야. 어차피 내가 아니어도 기왕에 바람을 피우던 여자였는데...... 멀쩡한 사람 같으면 애당초 그게 가능한 일도 아니었잖아. 다 자기 하기 나름인 거지. 저 형님한테는 조금 미안한 일이지만, 그것도 결국 돈만 보고 마누라 내돌리는 제 탓이지. 남 탓할 일도 아니야.”



“피...... 갖다 붙이기는...... 뭐, 어쨌든 나는 우리 낭군님 말씀만 따르겠습니다. 호호......”



“그래, 누님은 내 말만 들으면 돼. 우선 나는 다른 일 때문에 독산동에 가 봐야 하니까 누님이 종로 쪽에 나가서 레스토랑을 할 만한 자리가 있는지 먼저 알아 봐. 누님이 맘에 들면 바로 계약하고...... 자, 우선 천만 원만 갖고 있어.”



“같이 가면 안 돼? 같이 가고 싶은데......”



“하하...... 나는 또 볼 일이 있다니까...... 일을 해야 우리 누님 먹여 살리지.”



“어머머? 내가 뭘 얼마나 많이 먹는다고...... 레스토랑만 시작하면 내가 기찬씨 먹여 살릴 수도 있는 문제라니까...... 호호호......”



“하하...... 그래, 알았어. 부디 그런 날이 오길 기대하지. 자, 이제 여기서 내리면 택시 탈 수 있을 거야.”



“그럼 저녁에 집에 올 거야? 커다란 집에 나 혼자 있으니까 무섭단 말이야. 아파트도 아니고......”



“음...... 알았어. 나중에 봐.”



“네......”



독산동 언덕배기 밑으로는 가구공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형수 보라와의 일로 박사장에게서 뺏어 버린 가구 공장은 지수의 남편 김비서에게 맡겨 운영을 하고 있었고, 그 사택을 처분한 돈은 한기주에게 맡겨 사채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저 가구를 생산해서 가구점을 상대로 판매하기에 급급했던 경영체제를 영진 사장을 협박함으로 해서 건축과정에 소요되는 붙박이 가구를 납품하는 체제로 변화를 주어 두 가지 생산방식을 병행할 예정으로 김비서를 찾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아! 어서 오십시오. 사장님.”



“어머! 어서 오세요.”



기찬은 김비서에게 영진 사장과의 일을 말해주고, 지수는 기찬의 앞에 커피 잔을 내려놓는다. 몸을 기울여 커피 잔을 주고받는 사이, 가늘고 긴 지수의 손가락이 기찬의 손과 스치듯 닿는 것에도 둘만의 남모르는 의미가 있는 것이니 지수는 조심스럽게 남편의 눈치를 살피게 된다.



“그러니까 김비서가 찾아가서 정식으로 계약을 체결하세요. 언제 봐도 봐야 할 사람들이니까 아예 드러내 놓고, 거래상대로 만나는 게 좋을 겁니다. 그 사장도 김비서를 내쫓은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 줘야지.”



“하하...... 네, 알았습니다. 그럼 곧 준비해서 출발하겠습니다.”



“그리고 누님은 나하고 좀 같이 나가서 직영점 차릴 장소를 물색합시다.”



기찬이 지수를 돌아보면서 말을 하자 김비서가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고, 지수는 남편이 있는 자리에서 기찬이 하는 행동이 당황스러웠는지 얼굴이 달아올라 붉게 물들어 버린다.



“네?...... 누, 누님이라니요?”



“아! 김비서...... 몰랐어요? 하하하...... 부인이 나하고 성씨가 같더구먼요.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 당연히 누님이지요.”



“아! 네...... 하하하...... 하지만 사장님께 그런 말씀을 듣자니 이거 제가 민망해서......”



“아닙니다. 민망할 게 뭐 있어요. 그저 호칭일 뿐인데...... 김비서는 김비서고, 누님은 누님이지요. 하하...... 그럼 그렇게 알고 외출 준비들을 하세요. 장소 선정에 있어서는 어차피 직영점을 관리할 사람 의견이 많이 반영돼야 할 테니까......”



“네, 알았습니다. 사장님......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당신도 어서 준비하세요.”



“으응, 그래......”



기찬은 갑자기 생각이 났는지 카이로에서 일하는 세희의 남편 이야기를 꺼낸다.



“참! 그 사람은 왔습니까? 야간 경비 일을 주라던......”



“네, 그 친구는 말씀하신 대로 바로 야간 조장 자리를 맡겼습니다. 월급도 올려서 책정해 줬고요.”



“네, 네...... 잘 하셨습니다. 당분간 야간에 경비를 치중해야 할 겁니다. 앞으로 영진하고 거래를 하게 되면 고가 장비가 방치될 수도 있으니까......”



정상적인 회사의 일인 양 자연스레 세희의 남편을 야간 업무로 묶어 버린다. 이젠 그의 휴일을 빼고는 세희를 카이로에 다시 출근 시킬 모양이었다.



“아이, 참...... 왜 그러셨어요? 전 당황 되고 깜짝 놀라서 혼났어요.”



“하하...... 이젠 미림이도 나를 봤는데, 미리 그렇게 약칠을 해 둬야 나중에라도 김비서가 오해를 안 하지. 혹시라도 제 아빠가 있는 자리에서 뜬금없이 나를 외삼촌이라고 하면 그게 더 큰 일이지. 하하하......”



“아, 아...... 네......”



“참, 그리고...... 이젠 영진에 대한 일도 모두 마무리가 돼서 그 집을 처분해야 하겠던데, 아주 이번 기회에 독산동 공장 근처로 집을 옮기는 게 어떨까? 사택은 내가 마련해 줄 테니까......”



“아! 그, 그래야죠. 그런데 사장님께 부담이 돼서 어떻게 해요?”



“뭐, 누님하고 나 사이에...... 그리고 실제 김비서도 일을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그 정도는 해 줘야지. 일단 내가 적당한 아파트를 물색해 보고 나중에 다시 얘기합시다.”



“네......”



이제 방배동 주택도 처분을 할 모양이었다. 기왕에 지수는 종로에 가구 직판장을 만들면 낮으로는 그곳에 상주할 것이니 기찬에게는 애써 주택을 갖고 있을 필요가 없어진 일이기도 하였다. 이미 소유권을 넘긴 주택에 언제까지 그냥 살게 두는 것도 지난번 집을 빼앗을 때의 이유에 부합하지 않는 일이었으니 그렇게 편법으로 정리를 하는 셈이었다.



어찌 보면 모든 일이 기찬으로 인해서 일어난 일이었지만, 기찬의 시커먼 속을 알 리 없는 지수로서는 자신에 대한 기찬의 배려에 목이 멜 지경이었다. 비록 집은 남편의 실수로 잃게 되었다지만, 남편의 구속을 면하게 해 주고, 딸 미림이의 든든한 후원자가 돼 주며, 남편의 재취업 알선과 자신의 거취에 대한 세밀한 것까지 염려를 해 주니 십여 년을 함께 살아 온 남편에게 느끼는 것보다 더욱 살가움을 느끼게 된다.



“누님, 그러면 말이 나온 김에 방배동에 들러서 아주 집을 부동산에 내놓고 가도록 합시다. 지금 부동산 업자를 부를 테니까......”



“네, 그, 그러세요.”



기찬은 바로 애경에게 전화를 걸어 방배동으로 불러들이고, 운행방향을 고쳐 잡는다. 이 시간 집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고, 기찬과의 은밀한 정사가 있었던 곳으로 단 둘이 간다는 것에 지수는 적잖이 당혹스럽다. 차 안이 덥게 느껴지고 손사래를 치게 되니 기찬의 시선이 지수의 봉긋한 가슴을 향한다.



“누님은 복장부터 너무 폐쇄적이야. 그 옷에 단추도 위에 한 칸 정도는 열어 둬. 지금은 보기에도 답답해. 앞으로 매장에서 홀 매니저 일을 보려면 스타일이 좀 개방적이어야 할 텐데......”



“아, 네...... 그, 그럴게요. 이렇게 하면 될까요?”



기찬의 말 한 마디에 즉시 단추를 풀어 버리고 가슴을 내밀어 보이는 스스로에게 지수는 다시 한 번 놀라고 만다. 기찬은 팔을 뻗어 깃을 바르게 세워주며 널찍하게 가슴 부위를 열어 제친다.



“음...... 역시 누님은 타고 난 미인이야. 이렇게 하니까 보기에도 시원하고 좋잖아?”



지수는 가슴 위 쇄골을 스쳐 닿는 기찬의 손길에 오금이 저려온다. 방망이질 쳐 오는 가슴의 두근거림을 차창을 열고 불어오는 바람으로 식혀 보지만, 어느새 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기찬이 팔을 뻗어 목덜미를 애무해 오니 그 느낌에 사무쳐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만다.



“하하...... 누님, 긴장 좀 풀어. 목이 왜 이리 굳었어?”



방배동 집에 들어선 기찬은 정한 순서라도 되는 듯, 옷을 벗어 제치고 욕실로 들어선다. 지수는 급히 문단속을 하고, 욕실 주변에 늘어놓은 기찬의 옷가지를 정리한다.



“저, 저...... 손님이 오신다면서요?”



“아, 괜찮아요. 조금 기다리게 하면 될 건데 뭐......”



어느덧 당연히 그래야 하는 듯 알 수 없는 분위기에 내몰려 지수는 부부의 잠자리를 손질해 두고, 서둘러 거실로 나와 소파에 다소곳이 앉는다.



“어머! 내가 지금......”



기찬의 요구도 없었음에 잠자리를 손질해 둔 것은 나름의 기대를 반영하는 몸짓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고 지수의 얼굴이 달아오른다. 행여 기찬이 눈치 차릴까 두려워 서둘러 거실로 돌아 온 그 때 기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뭐 해요? 누님...... 어서 들어 와.”



“네, 네......”



역시 지수는 홀린 듯 일어서고 옷을 벗어 발밑으로 흘려둔 채 욕실로 들어선다. 너무나 당연한 듯 요구하는 기찬에게 차라리 고마운 심정의 지수였다. 샤워기를 받아들어 기찬의 몸에 물을 뿌려주고, 기찬도 손을 뻗어 지수의 은밀한 곳을 씻어주니 뜨거운 시선이 허공을 교차한다.



“하악...... 어, 어서......”



지수는 눈길로 사정을 해오고 그 눈빛을 기찬은 놓치지 않는다. 방으로 가자는 지수의 청에 그녀를 안아들고 부부만의 침실로 들어서는 순간, 금역에 들어서는 두근거림은 기찬을 전율에 휩싸이게 한다.

정갈한 하얀 시트는 마치 제단과 같았고, 기찬은 제관이 되어 제물을 그 위에 올려둔다. 큰 칼을 높이 들어 하늘을 향하고, 그 칼을 휘둘러 제물을 둘로 쪼갠다. 자고로 쪼개어진 그 제물 사이로 신의 강림이 이루어진다고 하였으니 이제 기찬도 몸을 실어 쪼개진 제물 속으로 들어선다.



“하악...... 기찬...... 씨......”



“후우웁...... 쭈우웁......”



새콤한 그 향기는 잊을 수 없는 지수만의 것이었다. 두 사람의 은밀한 추억을 부부만의 공간으로 옮겨온 것 하나만으로도 기찬은 용기백배할 수 있었고, 하얀 허벅지와 선홍색 돌기를 혀로 쓰다듬어 가며 이로 물어줄 때엔 몰려오는 자극에 지수는 기찬의 머리칼을 거머쥘 수밖에 없었다,



“허억...... 여보......”



기찬은 서서히 몸을 일으켜 떨고 있는 젖꼭지를 물어 간다. 지수의 손은 기찬의 심벌을 인도하고, 선홍색 쪼개진 살집 속으로 들어서는 기찬에 의해 비로소 제사는 그 막을 올린다.



“하아악......”



“후욱...... 후욱......”



거실 소파에 앉아 두 사람은 입을 맞추고 있었다. 다정한 시선을 기찬에게 보내던 지수의 입이 열리며 달콤한 향기를 전해준다.



“기찬씨...... 여보......”



“응, 누님...... 말해......”



“정말 저 버리지 않으실 거죠?”



“그럼...... 물론이지. 누님은 내 여자라니까......”



“고마워요. 정말 사랑해요. 당신만 믿을 거예요.”



지수는 한동안 그렇게 기찬에게 안겨 있었다. 집을 보러 왔던 애경은 무언가 바쁜 볼일이라도 있었는지 부리나케 떠나버리고, 뒤에 남은 두 사람은 채 불씨가 꺼지지 않은 듯 다시 불꽃을 피우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사장님.”



“오늘은 많이 늦으셨네요?”



사채 사무실로 나온 기찬에게 은진과 강희가 인사를 해 온다. 서울역에서 데려 온 노숙자들인 듯 낯모르는 사내들이 마주 보이는 강당을 정리하고 있었고, 한기주는 손님들과 상담을 하며 고갯짓으로 눈을 마주쳐 인사를 대신한다.



“으응, 아휴...... 덥다. 종로에 볼 일이 좀 있어서...... 그래, 손님들은 좀 있었나?”



기찬의 질문에 은진이 서류뭉치를 수북이 들어 보이며 미소를 짓는다. 아직 조상환의 사채 사무실로 보낸 서류가 없으니 어제부터 모아 둔 서류일 것이었다.



“은진씨가 지금 건너가서 바로 접수시켜. 택배 불러서 송달하고......”



“네, 알았습니다.”



컴퓨터를 켜고 모니터에 조상환의 사무실을 띄우니 사무실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여전히 한적한 분위기에 사람들은 저마다 모니터에 얼굴을 처박고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었고, 경리 아가씨는 손톱을 다듬는지 이따금씩 손톱을 불어 대고 있었다.

아마 전부 다 쓸 만한 일거리가 없어 게임 따위에 몰두하고 있는 듯해 기찬의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저...... 사장님.”



“아! 네......”



느닷없이 한기주가 기찬을 부르고, 돌아보니 상담 중인 것으로 보이는 젊은 남녀가 기찬을 바라본다.



“하하...... 좀 곤란한 일이......”



“네, 무슨 일입니까?”



기찬이 테이블로 다가가 마주앉고, 남녀는 기찬에게 안타까운 시선을 보낸다. 두 사람은 부부였으며 남자는 무직자가 아니라 사업자등록을 갖고 있는 사업자였던 것이다. 무직자는 직장인으로 둔갑시켜서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왔지만, 사업자 등록이 되어 있는 사람은 그 처리에 곤란한 점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저희 아버지가 하던 사업이었는데, 그 공장은 벌써 폐업 분위기인데다가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제가 물려받은 것뿐이거든요. 지금 당장 헐값으로 처분하려고 해도 그런 다 쓰러져 가는 공장을 누가 인수할 리도 없고...... 그게 담보가 된다면 다만 얼마라도 대출이 안 될까요?”



이미 이곳까지 흘러들어 온 물건이라면 담보가치는 없는 것일 텐데 의외로 기찬은 그 말끝을 받아 대화를 이어간다.



“아! 그러시군요. 그럼 필요하신 돈은 얼마나......”



“네, 지금 직원들에게 줘야 할 돈도 일부 있고, 다른 장사 밑천이라도 해야 하니 다만 얼마든지......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기찬은 무슨 복안이라도 있었는지 부부의 부탁을 들어 줄 모양이었고, 한기주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기찬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 일단 공장을 내가 한 번 가 봅시다. 우리가 원래 우리 자금을 가지고 하는 게 아니라 다만 대출 중계만 해 드리고 있는데, 손님은 급전이 필요하신 모양이니까 그러면 많이는 못 쳐 드리고 땅 값을 알아 본 뒤에 적절하게 계산해 드리겠습니다.”



“아! 적당한 임자를 바로 찾을 수 있을까요? 돈이 좀 급한데......”



“뭐...... 정 없다면 일단 제가라도 인수를 해 드리지요. 그 대신 공장 영업권에 대한 보상은 없는 겁니다.”



“아, 네...... 물론입니다. 땅이라도 인수해 주신다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네...... 부탁드릴게요. 사장님......”



젊은 부부는 바짝 다가서면서 기찬에게 부탁을 해오고, 기찬은 그들 앞에 백지를 내민다.



“우선 여기 공장 약도와 주소, 그리고 집 주소를 좀 적어 주세요. 제가 알아보고 방문을 하겠습니다.”



“네, 제발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하하...... 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만약 금액이 기대하신 것보다 적게 나오게 되면, 일단 땅 정리하고, 사업자 등록을 취소하신 연후에 두 분을 직장인 대출이라도 추가로 받을 수 있게 해 드릴 테니까......”



“네, 네...... 고맙습니다. 그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부부가 사무실을 빠져 나간 뒤, 한기주가 기찬에게 다가오며 의아한 눈빛으로 질문을 하고 기찬은 웃음을 짓는다.



“아니?...... 사장님, 어떻게 하시려고......”



“너무 걱정할 것 없어요. 가서 보고 난 후에 가치가 없으면 안 해 주면 그만이니까...... 하하...... 다만, 가치가 있어 보이면 매입을 해 줄 것이고...... 내가 그 사람들 죽고 사는 문제까지 개입할 필요는 없는 일이지.”



“아, 아...... 네...... 난 또...... 하하하......”



“땅을 봐서 가치가 있다면 당겨 두는 것도 괜찮지. 공장 명의만 노숙자들 앞으로 돌려두고, 그 회사 명의도 직장인 대출에 써먹을 수 있잖아? 너무 영진 서류만 올라가도 볼 성 사나워서 의심을 살 수 있는 일이니까......”



“아! 그도 그렇겠군요.”



“그렇고 말고...... 그런 회사 일부러 구하려고 해도 힘든 일일 텐데...... 그리고...... 그래서 하는 말인데...... 간혹 괜찮은 담보 물건이나 급전이 필요해서 순전히 사채를 끌어 쓰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으면 그냥 보내지 말고 접수를 받아둬요. 참고해서 쓸 만한 것은 돈이 될 테니까......”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하...... 역시 사장님은 몇 년을 한 저보다 안목이 훨씬 높으십니다.”



“하하하...... 이거 참, 한실장한테 공치사를 다 들어 보네...... 그리고 지금 대출 신청한 친구들은 통장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어요?”



“네, 통장은 물론 도장...... 심지어 현금카드 발급을 받은 사람들은 그것까지 받아두고 있으니까 대출기관에서 입금이 되더라도 자기들 마음대로 인출은 못하게 돼 있습니다.”



“그래요. 자칫 잘못하면 죽 쒀서 개 주는 꼴 되니까, 일일이 수금을 잘 해야 합니다. 이제 오늘 접수를 시키고 있으니 내일부터는 수금이 되겠구먼......”



“네, 현재까지 신청 총액이 일억 정도 되니까...... 대출이 전액 나오기만 한다면, 하루 반나절 만에 이천 정도 수입을 올리는 셈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한두 명씩 와서 그럴 뿐이고, 이제 점점 손님이 늘어날 테니까 그 금액은 현재로선 전혀 예상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 열심히 해요. 지금 이 사업이 잘 돼야 한실장도 아파트를 건질 수 있으니까...... 내가 이 사업 정리할 때 한실장 아파트부터 최우선적으로 건져 줄 테니까......”



“아이고, 감사합니다. 사장님......”



“그 대신 한실장은 이 일을 하는 동안에도 사무실 마치는 대로 바로 종로통에 나가서 첩보를 변함없이 수집해야 됩니다. 이 일 하는 동안은 몸이 피곤해도 할 수 없어요.”



“네, 네...... 물론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한기주는 고개가 땅에 닿을 정도로 연신 큰 절을 하고, 기찬은 자리로 돌아가 모니터를 바라본다. 조상환의 사무실로 건너간 은진은 서류를 하나, 하나 넘겨가며 컴퓨터에 등록을 하고, 그 주위에는 업자들이 둘러서서 놀란 표정으로 구경을 하고 있었다.



다시 사무실에는 손님들이 들어서고 한기주는 그들을 맞이한다. 기찬은 컴퓨터를 두들겨 부동산 가격 따위를 검색해 보곤 슬그머니 강희의 책상 곁으로 자리를 옮겨 엉덩이를 건드린다.



“어제, 잘 들어갔어?”



“네, 사장님......”



“당분간은 제 때에 퇴근해서 남편 비위 잘 맞춰줘야 돼. 알았지?”



“네...... 걱정하지 마세요. 잘 알아서 할게요.”



기찬은 시계를 바라보곤 조금 전 젊은 부부에게 받아 둔 메모지를 챙겨 자리를 나서고, 사무실 입구에서 어정거리던 노숙자들은 눈치로 짐작했는지 기찬을 알아보고 일제히 고개 숙여 인사를 한다.



기찬은 실상 공장 부지를 매입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지영의 레스토랑 준비와 지수가 이사할 아파트를 매입해야 했기 때문에 자금력은 거의 목에 차 있던 상황이었다. 물론 방배동의 주택을 처분하면 자금회전이 되기는 하겠지만, 그것이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단지 사기 대출의 발판을 확장하기 위해 공장의 영업권을 탐냈던 것이었고, 그 단초를 이끌어 내기 위해 젊은 부부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줬던 것뿐이었다.



“아...... 제가 그곳을 다녀왔는데, 땅이 그다지 위치가 안 좋아서......이미 알아보셨겠지만, 이런 정도면 회전 가능성이 없어서 은행에서도 담보를 잘 안 잡아 주려고 했을 겁니다.”



“어머! 그럼 사장님도 돈이 안 된다는 말씀이세요?”



“좀 생각을 해 봅시다. 개인 돈을 쓰려고 해도 그 땅이 개발 예정지도 아닌 바에야 이자 몇 푼 보고 돈을 그저 땅에 묶어 둘 사람들은 없을 거란 말입니다.”



이미 이 부부는 돈을 구하기 위해 안 다녀 본 곳이 없었을 것이고, 최후의 희망이 급전을 돌려서라도 공장을 매각하는 것이었는데, 그것도 안 되는 것인지 기찬의 표정에서 절망을 읽어낸다. 부부의 낙담하는 모습에 비로소 기찬이 속내를 드러내고 작전을 펼치기 시작한다.



“이건 두 분이 딱해서 드리는 말씀인데...... 그러지 말고 우선 공장부터 정리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직원들이 몇이나 되는지 모르지만, 그냥 두고 봐야 인건비만 사라지고 직장인 대출을 받기도 어려우니까......”



“휴우...... 그걸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당장 직원들 인건비도 해결을 못해 주고 있는데...... 기약도 없이 무작정 그만두라고 할 수도 없고...... 사실 저희들도 아버님 돌아가시고 바로 정리를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습니다. 이 기회에 처리가 될 줄 알고 좋아했었는데......”



“그러면 공장을 정리하면서 그 직원들 인건비를 해결해 주고, 그 외에 당장 두 분이 필요한 돈이 얼마면 되겠습니까? 미니멈으로 말씀해 보세요.”



“글쎄요...... 인건비로 당장 나가야 할 게 밀린 것까지 하면 천만 원 정도에 저희도 한 이삼천 정도만 있으면 당장 뭐라도 해 볼 수는 있겠는데......”



이쯤에서 기찬이 슬그머니 수를 던진다. 공연히 담배를 꺼내 물고는 한참을 생각하는 듯 요령을 떨어 댄다.



“이렇게 합시다. 내가 넉넉잡고 오천을 만들어 드릴 테니까......”



“오, 오천이요?”



“네...... 오천...... 오천만 원이면 다 해결 될 거 아닙니까?”



“아! 그야 그렇지만, 땅도 마땅한 임자가 없다면서요?”



“그러니까 지금부터 내 말을 잘 들어 보세요. 우선 내 개인 돈으로 직원들 밀린 월급 천만 원을 해결해 주고 공장을 폐쇄할 겁니다. 다른 곳으로 전직을 보장해 주는 대신 그만 두겠다는 사람은 더 이상 상관하지 않는 것이죠. 그러면 일단 직원 문제는 해결되는 겁니다.”



“네, 네...... 사장님 돈...... 천만 원......”



부부는 한옆의 신문지에 숫자를 그려가며 기찬의 말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그리고 현재의 상태에서 두 분은 어떤 형태로도 대출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잘 알고 계실 테니까 그것을 제가 해결해서 사천만 원을 더 만들어 드리는 대신, 공장 부지에는 제 명의로 등기가 들어 갈 겁니다. 땅을 저한테 넘기시는 것이죠.”



“하지만...... 실제 사장님이 빌려주시는 돈은 직원들 인건비 천만 원이 전부고, 저희들이 땅 명의를 넘겨 드리게 되면 사천만 원이 공중에 뜨는 셈인데...... 그 돈은 사장님 돈과는 별도로 저희들이 은행에 갚아야 되는 돈이 아닌가요?”



“탁 터놓고 말씀을 드리죠. 두 분은 일단 위장을 해서 편법으로 대출을 받는 겁니다. 내 돈이든 은행 돈이든...... 일단 대출을 받고나서 재산을 전부 믿을 수 있는 다른 사람 앞으로 돌려두는 겁니다. 형제 중 한 사람이나 처제가 있으면 처제 앞으로 해 두시든지......”



“아! 네, 그래서요?”



“계획대로 한다면 공장 부지는 이미 대출 받기 전에 제 명의로 변경된 거니까 영양가가 없는 셈이고, 그렇게 되면 두 분은 아무 재산도 없는 건데, 은행에서도 원리금을 받아낼 방법이 없잖습니까?”



“하지만, 그렇게 되면 빚 독촉에 얼마나 시달리겠습니까? 심지어 협박에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도 있다는데......”



부부의 회의적인 반응에 기찬이 복안을 늘어놓는다.



“개인회생제도라는 게 있습니다. 더 이상 목돈으로 빚을 갚아 나갈 능력이 없다고 법원에 신청만 하면 그 금액을 쪼개서 푼돈으로 갚아 나가는 제도가 웃기는 일이지만, 우리나라에 있습니다. 그것도 두 분 생활비를 기본적으로 보장해 드리고 남는 돈으로만 갚아 나가는 거니까 몇 년에 걸쳐 아주 소액만 갚으면 다시 정상적으로 신용이 회복됩니다. 제 짐작으로는 그저 몇 년을 통틀어서 삼사백만 원만 갚으면 될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로 누군가가 두 분을 위협한다면 오히려 그쪽에서 법으로 제재를 당하게 돼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소개해 드릴 곳은 개인 사채가 아니고 정식 금융기관이라 그쪽에서도 그냥 손비 처리를 해 버릴 테니까 사실 그럴 염려도 없는 일입니다.”



“아! 네......”



“그러면 그 때에 가서 저에게 오천을 갚아주시고 땅을 찾아 가시면 됩니다. 두 분은 당장 필요한 돈을 쓰시고, 저는 몇 년을 기다려서 나머지 사천을 이익금으로 갖는 겁니다. 기간은 충분히 삼 년을 드릴 테니까...... 개인회생 기간이 끝난 후 땅을 찾아 가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잘 생각하세요. 저도 그 땅을 처분하지 않고 그저 삼 년 동안은 갖고 있을 테니까 두 분은 애먹이던 공장 정리하고 땅도 숨겨두면서 밑천으로 생돈 오천은 거저 생기는 겁니다.”



“......”



“두 분이 당장 결심이 서지 않는다면 시간을 드릴 테니까 잘 생각해 보시고 연락을 주세요. 뭐...... 이곳저곳 안 다녀 보신 곳이 없었을 텐데...... 현재로서는 떼어먹을 작정을 한다손 치더라도 우리 사무실 외에는 아무 곳에서도 대출 자체를 일으킬 수가 없을 겁니다.”



“그, 그래도 사장님과는 너무 금액차가 많이 나는데...... 조금만 더 생각해 주시면 안 되실지......”



“아! 그건 좋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그렇게 설명을 해 드렸을 뿐이고, 제가 두 분에게 받을 금액은 오천만 원으로 묶어 버리되, 두 분에게 대출을 해 주는 금액은 최대한 맥시멈으로 뽑아내 봅시다. 현재 내 생각은 사천을 예상했지만, 그게 오천이 될지 육천이 될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아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 아...... 네...... 그러면 그렇게 좀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그래요. 잘 생각했습니다. 지금으로선 다른 방도가 없어요. 그게 살 길입니다.”



경우에 따라서 그 땅은 나중에 기찬의 땅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었으니 더 큰 수익을 볼 수도 있는 일이었고, 이 부부가 성공적으로 기찬에게 오천만 원을 갚아 온다면, 천만 원을 투자해서 공장의 영업권은 영업권대로 이용하고 사천만 원의 차익을 실현할 수 있는 것이었다.



“자, 그러면 이야기는 다 끝났는데......저를 이대로 보내실 겁니까? 하하...... 이제부터는 중요한 사업을 앞둔 동업잔데......”



“아, 아...... 그럴 리가요. 여, 여보......”



“네, 알았어요. 호호...... 잠깐만 기다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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