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삽입면허-16부-
이런 곳을 규방이라고 하는지 여자의 향기만이 가득한 곳에 은은한 조명이 빛을 발한다. 이미 잠을 자다 깨서인지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곁에 누워 쌔근거리는 세미의 머리칼만 쓰다듬는다. 기찬의 가슴에 한 팔을 올려 두고 엎어진 채 팔베개를 하고 있는 세미의 자세를 바로잡아 준다.
“그것 참, 마담 집이 여기일 거라곤 꿈에도 생각 못한 일인데......”
지난 새벽 마담의 차를 얻어 타고 누운 채 와서 내려 보니 사돈댁이 있는 아파트 단지였다. 그나마 바로 옆 동이니 서로 들여다보이지는 않을 것이지만, 신경이 쓰이는 것은 사실이었다. 혹여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무슨 볼 일로 왔는지 미리 대답할 말이라도 궁리해 둬야 할 일이었다.
가늘게 코를 골며 잠이 들은 세미의 옆모습을 바라보다 몸을 일으켜 입술을 빨아본다. 혀를 밀어 넣어 입술과 치아를 건드려 보기도 하고, 오뚝한 콧날을 혀로 간질여 보기도 하니 이미 품안에 들어온 여자라 할지라도 마치 강간을 시도하는 듯 은밀함이 묻어난다.
매끄러운 잠옷 밑으로 우윳빛 젖가슴이 갈 곳을 잃은 채 우두커니 기찬을 바라본다. 단추를 몇 개 풀어 입으로 물어가니 도드라진 젖꼭지가 입 안에서 비명을 지른다.
“으으음...... 자기...... 뭐 하는 거야? 아우웅...... 잠 좀 자......”
“으응, 그래, 그래...... 더 자...... 미안해.”
카이로의 여자들 중 화류계에 종사한다고 해서 좋아하는 남자 앞에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길 좋아하는 여자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래서 더욱 정갈하고 깔끔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기찬이 경험한 다른 여염집 여자들은 오히려 기찬과의 관계가 익숙해질수록 퇴폐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했으니 자신의 바탕을 이루고 있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도 있는 모양이었다.
새벽 네 시가 넘어서 잠을 청한 세미야말로 한참 잠을 자야 할 시간이지만, 이미 잠을 깨 버린 기찬은 잔뜩 성을 내 고개를 들어버린 이 새벽시간이 고통스럽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팬티를 끌어 내리고 성난 물건을 해방시켜준다.
팔을 넘겨 세미의 사타구니를 쓰다듬어 고운 방초의 바스락거림을 한껏 즐긴다.
매끄러운 피부, 조금만 더 가면 샘이 있음을 알리는 그 언덕에는 작은 돌기가 있어 기찬의 손을 이끌어간다.
“하음...... 으흥......”
몸을 뒤척이는 세미의 가슴을 쥐어 몸을 고정시킨다. 다시 혀를 가져가 젖꼭지를 간질이고 잘근거리며 물어주다 입술로 물어서 빨아 삼킨다.
“시...... 러...... 미쳤어...... 잠 좀 자게......”
기찬의 손은 이미 세미의 사타구니에 이르러 좁은 계곡 고운 살집을 더듬고 있었다. 가늘게 갈라진 그 곳은 약간의 물기가 비치고 있었고, 기찬의 손길을 받아 조금씩, 조금씩 더 젖어들고 있었다. 허벅지에 와 닿는 기찬의 당당한 물건이 새롭다. 세미는 쏟아지는 잠 속에서도 팔을 뻗어 기찬의 심벌을 가볍게 쥐어준다.
“흐으응...... 자자...... 여보......”
“으응, 세미는 그냥 눈 감고 있어. 자도 돼......”
“바보...... 이러는데...... 잠이...... 오니?......”
“몰라. 나는......”
무책임한 말을 흘리며 기찬이 세미의 몸 위로 체중을 싣는다. 이미 딱딱하게 굳어 버린 물건은 쉬 입구를 찾을 수 있었고 잠시의 틈도 주지 않은 채 세미의 몸을 깊숙이 관통해 버린다. 왠지 급작스럽게 벌어져 밀려나는 살덩이에서 뻐근한 근육파열음이 느껴지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아악!...... 미쳤나 봐...... 아야......”
“자...... 그냥 자......”
또 다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흘리며 기찬은 허리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한 번 크게 눈을 치켜떴던 세미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다시 눈을 감아 버리고, 기찬에게 몸을 맡겨 흔들리고 있었다. 세미도 서서히 팔을 둘러 기찬의 목을 감아오고, 다리를 들어 사타구니를 기찬에게 맞춰주기 시작한다.
“하으응...... 싫어....... 하으응...... 여보......”
“후욱...... 후욱......”
기찬 스스로도 새벽의 기상이 평소와는 사뭇 다르다는 느낌으로 세미를 공략해 간다. 세미의 양어깨 밑으로 팔을 집어넣고 끌어당기며 바짝 붙여 올린다. 연약한 속살을 긁어가며 치올리자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기찬의 어깨를 아프게 물어온다.
아침공기가 청명한 과천, 관악산 꼭대기가 잔뜩 구름에 가려있어 어제 내린 비가 전부가 아니었음을 말해 준다. 비 내린 다음 날의 시원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신다. 아파트 단지가 워낙 크니 도로의 자동차 소리도 들리지 않고 그저 새소리뿐이어서 문득 집에 혼자 있을 지영의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지금쯤 뭐 하고 있을까? 이제 레스토랑도 정리했을 건데......”
조금 전까지 기찬에게 시달리던 마담은 절정에 몸을 떨어 대다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다시 잠에 빠져있다. 마담의 숨소리가 가늘어지자 팔을 풀어 몸을 빼내고 발코니로 나섰다.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이들은 하나 둘 주차장에서 차를 움직이기 시작하고, 그렇게 바쁜 하루가 또 아침을 열어간다.
“기찬씨, 기찬씨...... 이제 일어나. 오늘 어디 가야 한다면서......”
“으응?......”
거실 소파에 잠깐 눕는다는 것이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마담은 벌써 일어났는지 옅은 화장까지 마친 상태로 붉은 박스 티에 분홍빛 반바지 차림이었다. 늘 정장 아니면 롱드레스 차림만 보다가 이런 평상복 차림을 보니 비로소 이곳이 집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와...... 귀여운데...... 다리도 롱다리고......”
“피...... 이제 알았나 봐? 자기 세수했어요?”
“으응......”
잔소리가 듣기 싫어 대강 대꾸를 하고는 욕실로 들어선다. 이미 마담과의 정사 후 샤워는 했으니 대충 고양이세수로 시늉만 하고 식탁으로 자리를 한다.
“이게 뭐야?”
“으응, 우리 집 열쇠...... 하나 줄게요. 언제든지 와도 되니까...... 단, 다른 여자는 데리고 오기 없기......”
“와! 은근히 감동인데...... 후훗......”
“자기 갈아입을 옷이나 간단한 속옷 따위도 나중에 몇 벌 사다 둘 테니까 필요할 때 와서 갈아입고...... 아니면 내 걸 입던지...... 호호......”
“이런...... 자기 옷이 나한테 맞기나 하겠다.”
“치마 입으면 되지? 잘 찾아보면 통 큰 치마도 많아. 호호...... 호호......”
“상상하지 마.”
정말 마담은 기찬이 치마 두른 모습을 상상이라도 하는지 배꼽을 잡고 웃다가 문득 정색을 하고 기찬을 바라본다.
“정말 기찬씨 집에 가둬두고 내가 벌어서 먹여 살렸으면 좋겠다.”
“얼씨구...... 점점...... 강아지나 한 마리 갖다 키우셔...... 끔찍한 소리 하지 말고...... 시디는 어디 있지?”
“으응, 핸드백 안에...... 자기가 열어 봐.”
집에서의 모습을 보니 차갑지도, 의외로 난잡하지도 않은 마담의 다정다감함에 다른 감정을 갖게 한다. 정말 마담의 말처럼 이곳에 안주하는 것도 썩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마저 생긴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상상 속의 여자라면 형수 보라뿐이었으니 형수의 벗은 몸을 상상하면서 자위로 애환을 달래던 기찬에게 최근의 여난은 그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아, 아니...... 당신......”
“오랜만입니다. 많이 놀라신 모양이지요?”
마담 세미의 다정한 배웅을 받아 아파트를 나서고, 잠시 후 카이로에서 다시 볼 것이지만, 마치 낭군을 멀리 보내는 듯 애처롭던 그 눈빛은 기찬의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여자의 몸으로 험한 바닥에서 잔뼈를 키워오다 비로소 마음 붙일 상대를 만났다는 것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은근히 전해지던 그 시선이 기찬의 마음까지 묵직하게 만들어 버렸다.
“자, 이거 돌려 드립니다. 확인해 보시지요.”
기찬은 영진기업의 사장실에 그 사장과 마주 앉아 있었다. 기찬이 던져 둔 얇은 봉투를 열어 본 사장의 눈이 크게 열린다.
“아, 아니...... 이게 뭐요?”
“사장님이 제게 주셨던 돈입니다. 이제 모두 지난 일이니 다시 돌려드리는 겁니다.”
“......”
사장은 기대하지도 않았던 돈이 돌아온 것보다 기찬이 자기 앞에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 더욱 놀라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 궁금증은 곧 기찬으로부터 해소될 수 있었다.
“하하...... 놀라실 필요 없습니다. 아마 사장님은 제가 사기꾼이나 되는 줄 아셨던 모양인데...... 이거 섭섭합니다. 뭐, 어쨌든 그 수사는 이미 종결시켰으니 저야 심증이야 가지만 어쩌겠습니까? 도리 없는 일이지요.”
“그, 그럼 정말 수사관이시라는 말씀입니까?”
“하하...... 지금이라도 다시 종로 서 담당형사에게 물어 보십시오. 아마 제가 여기에 와 있다고 하면 바른 말을 해 줄 겁니다. 하하......”
사장이라는 인물이 확인을 하지 않고 넘어갈 리는 없는 일이었다. 이윽고 전화를 내려놓는 모습에서는 난감한 표정이 나타난다.
“하하...... 저야 뭐...... 그저 술이나 한 잔 마실까 싶어 연락을 드렸는데, 거기서 쇠고랑을 차게 될 줄은 몰랐지 뭡니까?”
“아, 아유...... 이거 죄송하게 됐습니다. 이런 기업을 하다보면 그런 사람들도 더러 만나게 되다 보니까......”
“하하...... 이해합니다. 그럴 수 있지요. 자,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돈도 돌려 드렸으니......”
자리에서 일어서 사장실을 나서려던 기찬이 다시 몸을 돌리자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던 사장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진다. 기찬에 대해 좋은 추억을 갖고 있지 못하니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다.
“참, 수사과정에 만났던 최강희라는 여자 말입니다.”
“네, 네......”
“지금도 데리고 계십니까? 파출부로......”
“아, 아닙니다. 그 일 있고서는 바로 내보냈습니다. 어디 마음이 편치 않아서......”
사장의 거짓말이 가소롭기만 한 일이었다. 기찬은 품에서 시디를 꺼내 사장에게 전해주며 나머지 말을 잇는다.
“아! 네...... 그러시군요. 그날 제가 사장님 댁에 가서 수사를 하던 중에 앞으로 불편한 일이 있으면 도와줄 테니 연락을 하라고 했었는데...... 일전에 연락이 왔더군요. 자,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연탄구이 집, 둥근 드럼통을 개조해 마련한 화덕에는 해장국이 보글거리며 끓고 있고, 기찬은 그 앞에서 해장을 겸해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아직 점심시간이지만, 의외로 반주 삼아 술을 마시는 이가 기찬만은 아니었다.
“아! 여깁니다.”
“아! 네, 네......”
영진 사장은 얼굴이 붉게 상기돼 이곳을 찾느라 고생 깨나 한 표정이었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자리에 앉기도 전에 기찬의 표정을 살피게 되고, 그 공기가 차갑기 그지없으니 다가올 고난이 예상되는 듯 낙담한 얼굴로 자리에 앉는다.
“살려 주십시오.”
하기야 다른 말이 필요치 않은 일이었다. 사장이 생각하기에 기찬은 권모술수에 능한 놈일 테니 그림 속에 같이 나온 여자의 입장을 고려해서 시디를 진짜 뿌리지는 않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는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또렷하게 나온 난잡한 동영상과 자신의 목소리는 두고두고 세인의 입에 오르내릴 것이고, 이 사회에서 매장당하는 것은 그야말로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가진 것이 없는 자들이야 잃을 것도 없으니 벼랑 끝에서 오히려 당당하겠지만, 쥔 자들의 경우는 달랐다.
“살려 달라...... 사장님 목숨 값이 얼만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이미 기찬에게서 자신이 전달했던 천만 원짜리 수표를 다시 돌려받았으니 기찬이 요구하는 액수를 짐작하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제, 제가 지금은 경황이 없어서 그렇게 큰돈을 만들 수 있는 형편이 아닙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우, 우선 이것은 다시 받으시고......”
기찬의 앞으로 내미는 봉투는 조금 전에 사장에게 전달했던 그 돈이었다. 기찬은 그 봉투를 품에 갈무리하며 사장에게 미소를 지어 보인다.
“뭐, 좋습니다. 그 동영상은 이미 제가 아는 임의의 공간에 올라가 있습니다. 지난번처럼 제 신상에 변화가 생긴다면 유포가 되는 것은 다른 사람에 의해서 이뤄질 것이니까 알아서 보안 유지하시고, 같이 죽자면 음...... 좋습니다. 전 잃을 것도 없는 몸이니까요.”
“애, 액수를 좀......”
“......”
“제가 노력은 하겠습니다만, 너무......”
사장이 얼마를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미 천만 원이 오고간 자리에서 짐작할 수 있는 금액은 일억이었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오천만 준비를 하쇼. 그 돈은 그동안 당신이 착취한 최강희와 그 가족에게 주는 위자료라고 합시다. 나는 이 돈...... 천만 원으로 만족하리다. 당신이 준비하는 대로 내가 최강희를 불러내서 완전히 뒤끝이 없도록 합의를 이끌어 줄 테니까......”
“저, 정말 그렇게 해 주시겠습니까?”
“그 대신에 조건을 하나 붙입시다.”
사장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진다. 이번에는 기찬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 것인지 걱정스러운 빛이 가득하다.
“아, 아......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돈 얘기는 아니니까...... 금액을 그렇게 조정해 주는 대신에 앞으로 영진에서 수주 받는 건축물에는 내가 가구를 납품할 수 있도록 좀 해 주쇼. 뭐...... 아파트든 연립이든 요즘은 붙박이 가구가 주류 아닙니까?”
“가, 가구 말씀이십니까?”
“네, 사실은 내가 가구 공장도 하나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품질은 보증할 것이고 기대이하로 불량이 나온다면, 언제든지 물러나겠습니다. 다만, 그렇게 약속해 주신다면 앞으로는 거래상대로만 만나십시다. 나도 사장님을 도울 수 있는 일은 돕는 걸로 할 테니까......”
사장으로서는 얼마든지 들어 줄 수 있는 일이었고, 문제가 된다면 물러난다고 하니 크게 문제가 될 일도 아니었다.
“그러면 그것도 계약을 하시는 걸로......”
“그럽시다. 문구를 남겨두어야 사장님도 안심을 하실 테니...... 저도 사귀어 두면 그리 나쁜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럼 돈은 언제 마련이 되겠습니까? 되는 대로 최강희와 함께 올 테니까......”
“네, 오늘 중 제가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꽁지가 빠지게 모습을 감추는 사장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전화를 꺼내들어 미라의 오빠 송만호에게 전화를 넣는다.
“아! 형님, 접니다.”
“네, 네...... 강사장님......”
“저...... 이제 저희 사무실에 나가볼까 하는데...... 형수님도 집에 계시면 제가 일감을 좀 드려볼까 싶은데...... 어차피 일손도 부족할 것 같고...... 기왕에 조상환이는 형님과 제가 같이 일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니까......”
“아! 그러시죠. 한 사람이라도 더 있으면 심부름이라도 시키고 좋겠지요.”
“네, 그러면 제가 집으로 연락을 해 보겠습니다.”
“네, 네......”
미라의 오빠가 기찬의 의견에 반대할 리가 없는 일이니, 그렇게 차츰 차츰 기찬은 자신의 주변으로 여자들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즉시 강희에게 전화를 걸어 사장과의 일을 설명해 주고 사무실로 불러낸다.
반주를 겸해 느긋한 점심식사를 마친 기찬이 소공동 사무실에 모습을 드러내고, 자리를 지키고 있던 한기주와 그 아내 차은진이 반가이 맞아들인다.
“그래, 전화들이 더러 옵니까?”
“네, 지금 위치를 물어보는 문의 전화들은 오는데 선뜻 오겠다는 사람들은 아직 없는데요.”
“하하...... 첫 술에 배부르겠습니까? 우리도 그래야 숨 돌릴 틈도 있고, 좋지요. 하나 둘 처리하다 보면 입소문도 금방 날 겁니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겠어요? 한실장이 누구보다 잘 알겠지만, 사채업이라고 하는 것이 일단은 무조건 대출을 해 준다고 사람들을 불러들이니까 광고만 보고 쉽게 믿지는 못할 겁니다.”
“네, 맞습니다. 입소문이 무섭지요. 광고는 대부분 허위광고가 많다는 것을 손님들도 알고 있거든요.”
“그리고 조금 있으면 최강희라는 여자가 올 겁니다. 저쪽 사무실 송사장님 부인인데 우리 사무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맡겨 주세요. 우린 지금 한 사람이라도 아쉬운 입장이니까......”
“네, 알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데려다가 그저 놀리더라도 서울역에 사람들 좀 데려다 놓으세요. 미리 익숙하게 만들어 둬야 정작 필요할 때 써먹을 수 있어요. 일당 몇 푼 정도 주는 것을 아까워 해선 안 됩니다.”
“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야기 도중 손님이 들어오고, 한기주가 맞아들인다. 은진은 즉시 차를 대접하며 제법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기찬은 여유롭게 소파에 몸을 묻는다.
“그럼...... 현재 직업은 없으시고요?”
“네...... 그런데 정말 무직인데도 대출이 되는 건가요?”
“하하...... 세상 어느 금융기관에서 회수할 여력도 없는 무직자에게 대출을 해 주겠습니까?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직업이라는 게 있다가도 없을 수 있는 건데 장사 밑천이라도 마련해 드릴 수는 있으니까요. 그래, 필요하신 액수가 얼마나 되십니까?”
“한...... 오백 정도......”
“네, 걱정 마십시오. 저희가 서류를 그렇게 꾸며 드릴 테니까...... 금융기관 심사부에서 전화가 올 때 저희가 시키는 대로 대답만 잘 하시면 됩니다. 아마 이르면 내일 쯤 입금이 될 겁니다. 다만...... 수수료가 있다는 것은 알고 계시지요?”
“다, 다른 곳은 보통 십 퍼센트를 얘기하던데......”
“네, 그렇지요. 저희는 불가능한 대출을 가능하게 처리하는 과정에 또 인사를 해야 하는 곳이 있어서 비용이 조금 더 소요됩니다. 그래서 이십 퍼센트는 생각을 해 주셔야 하고요.”
“아! 그게...... 대출만 된다면야...... 이십 퍼센트면......”
“네, 오백에 이십 퍼센트면 백만 원입니다. 대출금이 통장에 입금되고 나면 그 때, 백만 원을 주시면 됩니다. 손님은 사백정도를 쓸 수 있는 것이지요.”
“네, 그러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제가 무엇을 준비하면 되는지요?”
“네, 우선 신분증부터 복사를 할까요? 자, 미쓰차......”
한기주는 자신의 아내 은진에게 기찬이 시킨 대로 미쓰차라고 호명을 하고, 은진은 그것을 받아 복사기에서 복사를 해 낸다.
사내가 인감증명과 등본 따위를 발급받기 위해 사무실을 나간 뒤, 한기주가 기찬에게 말문을 연다.
“하하...... 사장님, 이제 슬슬 시작 되는가 봅니다.”
“그러게...... 그리고 어차피 대출금을 불어 버릴 것 같은 사람들은 최대한 대출을 받아내도록 유도하는 게 어때요? 그래야 우리 수수료 수입도 늘어나지.”
“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입니다. 어차피 저 친구 다시 오면 신용조회 해 보고 최대치를 받도록 설득해야지요. 자신들도 알 겁니다. 다른 곳에선 대출도 안 되거니와 이 대출 받고 나면 다시는 대출 받을 기회가 없다는 것을......”
“하하하...... 그렇겠지. 여기저기 돈 구하러 다니다 보면 어느새 사채업자 뺨칠 정도로 도사들이 될 테니까......”
그 때, 사무실 문이 열리며 강희가 들어서고, 기찬이 반가이 맞아들인다.
“실례합니다.”
“아! 어서 와요.”
인사소개가 있은 후, 한기주로부터 간단하게 컴퓨터 파일에 대한 설명을 받는다. 이미 영진 기획실장으로부터 받은 파일에 약간의 변조만 하는 일이니 컴퓨터를 다룰 줄 아는 젊은 여자들에게는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일 뿐이고, 이미 세 사람은 기찬이 수사관 신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 화합하는 데도 별 문제가 없는 일이었다.
“자, 그럼 오늘은 두 사람에게 맡기고 강희씨는 나하고 나갑시다.”
“네, 자 그럼 수고들 하세요. 내일 뵐게요.”
기찬은 강희를 데리고 밖으로 나선다. 어제 삼각지에서의 일을 마지막으로 사장과는 완전히 결별을 한 셈이니 강희도 홀가분한 마음으로 기찬의 뒤를 따른다.
“어젠 마지막에 왜 그렇게 사장한테 화를 냈어?”
“어머! 다 보셨어요?”
“사장을 조지려면 다 봐야 하고, 다 봤으니까 물어 보는 거지. 하하하......”
“아이 참,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시간만 끌고...... 다 씻고 왔는데 또 귀찮게 하니까......”
“하하하......”
기찬이 웃어넘기는 웃음소리가 소공동 하늘로 울려 퍼질 즈음, 지영의 레스토랑 건으로 만났던 영감으로부터 연락이 온다.
“아! 어르신이십니까?”
“네, 반갑소. 젊은이...... 오늘 좀 만났으면 하는데, 시간이 괜찮을지......”
“음...... 그러시죠. 이제 자제분들과 의논을 좀 하셨는지......”
“허허...... 그런 셈이지요. 우리 막내 녀석이 하도 보채서 더 이상은......”
“네, 알았습니다. 그러면 제가 넘어가서 합의를 해 드리는 걸로 하겠습니다.”
“그러지요. 나중에 봅시다.”
기찬은 여의도로 넘어가는 차 안에서 강희에게 의견을 묻는다. 사장에게 받는 돈이 적지 않은 액수니 아무 이유 없이 강희에게 건네주기도 남편 송만호에게 설명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냥 기찬이 입을 닦는다고 해도 강희의 입장에서 뭐라고 말을 할 수는 없는 형편이지만, 근본적으로 미라의 입장을 고려하는 기찬으로서는 어떻게든 그 오빠인 송만호의 형편을 돌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사장에게 오천을 받기로 했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 좋을까? 강희를 주긴 줘야 할 텐데......”
“아, 아니에요. 전 괜찮아요.”
“푸훗...... 괜찮긴 뭐가 괜찮아? 솔직히 아깝지. 하하하......”
“아, 아니라니까요. 그리고 전 어떻게 불러야 되나요? 아까 그 사람들처럼 사장님이라고 하면 되나요?”
“아! 그건...... 그래, 그러면 되겠네. 나중에 미라가 보더라도 그게 적당하겠군. 그리고 돈은 내가 적절한 방법으로 남편에게 줄 테니까 그렇게 알고...... 그 돈뿐만이 아니라 어떻게든 강희 살림이 필 수 있도록 해 줄 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네, 고맙습니다. 사장님......”
“그 대신 남편에게도 잘 하고...... 무엇보다도 강희가 내 여자라는 건 잊어선 안 돼.”
“네, 저 사장님께 정말 잘 할게요.”
“그래......”
경찰서에는 영감과 함께 이미 기찬과 몸을 섞었던 막내딸 조유정이 낯모르는 젊은 친구와 기찬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찬과 함께 들어서는 강희의 미모에 실내가 다 훤해지는 듯 시선이 모이고, 영감의 딸 유정의 눈빛도 다소 흔들리는 모습이었다.
일행을 따로 둔 채 기찬은 영감과 일처리를 하고 있었다.
“어떻게 젊은이 주변에는 한 결 같이 저런 절세미인들이 그리 흔한지...... 허허허......”
“아! 그렇습니까? 하하...... 왜 일전에 소개해 드린 분도 빠지진 않을 텐데요? 한 번 만나보셨습니까?”
“허허...... 한 번 만나 봤지요. 꽤 다정한 친구더구먼......”
“제가 종로에 술집도 하나 관리를 하고 있으니까 언제 한 번 들러 주십시오. 여흥을 즐기시는 문제라면 예쁜 아가씨들도 많으니까...... 하하......”
“그래요? 허허...... 언제 한 번 가 봐야겠군. 손님 만나서 갈 일이 있으면 한 번 방문하리다.”
일처리를 마치고 밖으로 나서자 유정이 일행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기찬에게 다가온다.
“왜 바로 꺼내준다고 하고서 이제야 꺼내 주는 거죠? 계약위반이에요.”
“어허...... 오빠한테 까분다. 그건 너희 아버지하고 의논해서 그렇게 된 거라는 걸 잘 알면서......”
“피...... 오빠는 무슨...... 그리고 저 여자는 누구예요?”
“왜 그게 궁금해? 하하하...... 너 질투 하는구나?”
“어머머! 나도 남자 친구하고 왔네요. 칫...... 웃기고 있어.
기찬은 유정의 따지는 모습이 귀여웠는지 그저 웃어넘기고 일행에게로 걸음을 옮긴다. 돌아서는 기찬을 급히 쫓으며 유정이 말을 이어간다.
“오빠한테 나중에 전화 할 거예요.”
“으응? 그래. 얼마든지...... 하하하......”
순순히 기찬을 오빠라고 부르는 것을 보니 아마도 유정은 치기어린 마음에 기찬에게 보이기 위해 공연히 남자 친구를 데리고 왔던 모양인데, 오히려 상당한 미모의 원숙한 여자를 대동하고 나타난 기찬에게 심한 굴욕감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상대가 여자가 없다든지, 있더라도 미모에 있어 자신이 있다면, 나름대로 기찬과의 관계에 있어 자신감을 갖고 대시를 해 보련만, 미모는 물론 성적으로도 원숙한 여자에게서 받는 느낌은 같은 여자로서 더욱 잘 알 수 있는 일이었으니 유정은 기가 죽어 꼬리를 말아 버린다.
기찬은 난생처음 항문섹스를 경험했던 유정이니 그 감흥이 남달라, 연락하겠다는 유정의 반응이 재미있기만 한 일이었다. 유정을 보니 그에 만족스럽지 못해, 그 끝을 보았던 형수 보라가 떠오른다.
“으흠...... 이거 참...... 이 여자랑 있으면 저 여자가 떠오르고, 저 여자랑 있으면 이 여자가 생각 나니......”
방금 전에 집에서 헤어진 마담의 체취가 사라지기도 전에 다른 여자들의 생각이 기찬의 머리를 그렇게 헤집고 있었다.
이런 곳을 규방이라고 하는지 여자의 향기만이 가득한 곳에 은은한 조명이 빛을 발한다. 이미 잠을 자다 깨서인지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곁에 누워 쌔근거리는 세미의 머리칼만 쓰다듬는다. 기찬의 가슴에 한 팔을 올려 두고 엎어진 채 팔베개를 하고 있는 세미의 자세를 바로잡아 준다.
“그것 참, 마담 집이 여기일 거라곤 꿈에도 생각 못한 일인데......”
지난 새벽 마담의 차를 얻어 타고 누운 채 와서 내려 보니 사돈댁이 있는 아파트 단지였다. 그나마 바로 옆 동이니 서로 들여다보이지는 않을 것이지만, 신경이 쓰이는 것은 사실이었다. 혹여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무슨 볼 일로 왔는지 미리 대답할 말이라도 궁리해 둬야 할 일이었다.
가늘게 코를 골며 잠이 들은 세미의 옆모습을 바라보다 몸을 일으켜 입술을 빨아본다. 혀를 밀어 넣어 입술과 치아를 건드려 보기도 하고, 오뚝한 콧날을 혀로 간질여 보기도 하니 이미 품안에 들어온 여자라 할지라도 마치 강간을 시도하는 듯 은밀함이 묻어난다.
매끄러운 잠옷 밑으로 우윳빛 젖가슴이 갈 곳을 잃은 채 우두커니 기찬을 바라본다. 단추를 몇 개 풀어 입으로 물어가니 도드라진 젖꼭지가 입 안에서 비명을 지른다.
“으으음...... 자기...... 뭐 하는 거야? 아우웅...... 잠 좀 자......”
“으응, 그래, 그래...... 더 자...... 미안해.”
카이로의 여자들 중 화류계에 종사한다고 해서 좋아하는 남자 앞에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길 좋아하는 여자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래서 더욱 정갈하고 깔끔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기찬이 경험한 다른 여염집 여자들은 오히려 기찬과의 관계가 익숙해질수록 퇴폐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했으니 자신의 바탕을 이루고 있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도 있는 모양이었다.
새벽 네 시가 넘어서 잠을 청한 세미야말로 한참 잠을 자야 할 시간이지만, 이미 잠을 깨 버린 기찬은 잔뜩 성을 내 고개를 들어버린 이 새벽시간이 고통스럽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팬티를 끌어 내리고 성난 물건을 해방시켜준다.
팔을 넘겨 세미의 사타구니를 쓰다듬어 고운 방초의 바스락거림을 한껏 즐긴다.
매끄러운 피부, 조금만 더 가면 샘이 있음을 알리는 그 언덕에는 작은 돌기가 있어 기찬의 손을 이끌어간다.
“하음...... 으흥......”
몸을 뒤척이는 세미의 가슴을 쥐어 몸을 고정시킨다. 다시 혀를 가져가 젖꼭지를 간질이고 잘근거리며 물어주다 입술로 물어서 빨아 삼킨다.
“시...... 러...... 미쳤어...... 잠 좀 자게......”
기찬의 손은 이미 세미의 사타구니에 이르러 좁은 계곡 고운 살집을 더듬고 있었다. 가늘게 갈라진 그 곳은 약간의 물기가 비치고 있었고, 기찬의 손길을 받아 조금씩, 조금씩 더 젖어들고 있었다. 허벅지에 와 닿는 기찬의 당당한 물건이 새롭다. 세미는 쏟아지는 잠 속에서도 팔을 뻗어 기찬의 심벌을 가볍게 쥐어준다.
“흐으응...... 자자...... 여보......”
“으응, 세미는 그냥 눈 감고 있어. 자도 돼......”
“바보...... 이러는데...... 잠이...... 오니?......”
“몰라. 나는......”
무책임한 말을 흘리며 기찬이 세미의 몸 위로 체중을 싣는다. 이미 딱딱하게 굳어 버린 물건은 쉬 입구를 찾을 수 있었고 잠시의 틈도 주지 않은 채 세미의 몸을 깊숙이 관통해 버린다. 왠지 급작스럽게 벌어져 밀려나는 살덩이에서 뻐근한 근육파열음이 느껴지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아악!...... 미쳤나 봐...... 아야......”
“자...... 그냥 자......”
또 다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흘리며 기찬은 허리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한 번 크게 눈을 치켜떴던 세미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다시 눈을 감아 버리고, 기찬에게 몸을 맡겨 흔들리고 있었다. 세미도 서서히 팔을 둘러 기찬의 목을 감아오고, 다리를 들어 사타구니를 기찬에게 맞춰주기 시작한다.
“하으응...... 싫어....... 하으응...... 여보......”
“후욱...... 후욱......”
기찬 스스로도 새벽의 기상이 평소와는 사뭇 다르다는 느낌으로 세미를 공략해 간다. 세미의 양어깨 밑으로 팔을 집어넣고 끌어당기며 바짝 붙여 올린다. 연약한 속살을 긁어가며 치올리자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기찬의 어깨를 아프게 물어온다.
아침공기가 청명한 과천, 관악산 꼭대기가 잔뜩 구름에 가려있어 어제 내린 비가 전부가 아니었음을 말해 준다. 비 내린 다음 날의 시원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신다. 아파트 단지가 워낙 크니 도로의 자동차 소리도 들리지 않고 그저 새소리뿐이어서 문득 집에 혼자 있을 지영의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지금쯤 뭐 하고 있을까? 이제 레스토랑도 정리했을 건데......”
조금 전까지 기찬에게 시달리던 마담은 절정에 몸을 떨어 대다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다시 잠에 빠져있다. 마담의 숨소리가 가늘어지자 팔을 풀어 몸을 빼내고 발코니로 나섰다.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이들은 하나 둘 주차장에서 차를 움직이기 시작하고, 그렇게 바쁜 하루가 또 아침을 열어간다.
“기찬씨, 기찬씨...... 이제 일어나. 오늘 어디 가야 한다면서......”
“으응?......”
거실 소파에 잠깐 눕는다는 것이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마담은 벌써 일어났는지 옅은 화장까지 마친 상태로 붉은 박스 티에 분홍빛 반바지 차림이었다. 늘 정장 아니면 롱드레스 차림만 보다가 이런 평상복 차림을 보니 비로소 이곳이 집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와...... 귀여운데...... 다리도 롱다리고......”
“피...... 이제 알았나 봐? 자기 세수했어요?”
“으응......”
잔소리가 듣기 싫어 대강 대꾸를 하고는 욕실로 들어선다. 이미 마담과의 정사 후 샤워는 했으니 대충 고양이세수로 시늉만 하고 식탁으로 자리를 한다.
“이게 뭐야?”
“으응, 우리 집 열쇠...... 하나 줄게요. 언제든지 와도 되니까...... 단, 다른 여자는 데리고 오기 없기......”
“와! 은근히 감동인데...... 후훗......”
“자기 갈아입을 옷이나 간단한 속옷 따위도 나중에 몇 벌 사다 둘 테니까 필요할 때 와서 갈아입고...... 아니면 내 걸 입던지...... 호호......”
“이런...... 자기 옷이 나한테 맞기나 하겠다.”
“치마 입으면 되지? 잘 찾아보면 통 큰 치마도 많아. 호호...... 호호......”
“상상하지 마.”
정말 마담은 기찬이 치마 두른 모습을 상상이라도 하는지 배꼽을 잡고 웃다가 문득 정색을 하고 기찬을 바라본다.
“정말 기찬씨 집에 가둬두고 내가 벌어서 먹여 살렸으면 좋겠다.”
“얼씨구...... 점점...... 강아지나 한 마리 갖다 키우셔...... 끔찍한 소리 하지 말고...... 시디는 어디 있지?”
“으응, 핸드백 안에...... 자기가 열어 봐.”
집에서의 모습을 보니 차갑지도, 의외로 난잡하지도 않은 마담의 다정다감함에 다른 감정을 갖게 한다. 정말 마담의 말처럼 이곳에 안주하는 것도 썩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마저 생긴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상상 속의 여자라면 형수 보라뿐이었으니 형수의 벗은 몸을 상상하면서 자위로 애환을 달래던 기찬에게 최근의 여난은 그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아, 아니...... 당신......”
“오랜만입니다. 많이 놀라신 모양이지요?”
마담 세미의 다정한 배웅을 받아 아파트를 나서고, 잠시 후 카이로에서 다시 볼 것이지만, 마치 낭군을 멀리 보내는 듯 애처롭던 그 눈빛은 기찬의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여자의 몸으로 험한 바닥에서 잔뼈를 키워오다 비로소 마음 붙일 상대를 만났다는 것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은근히 전해지던 그 시선이 기찬의 마음까지 묵직하게 만들어 버렸다.
“자, 이거 돌려 드립니다. 확인해 보시지요.”
기찬은 영진기업의 사장실에 그 사장과 마주 앉아 있었다. 기찬이 던져 둔 얇은 봉투를 열어 본 사장의 눈이 크게 열린다.
“아, 아니...... 이게 뭐요?”
“사장님이 제게 주셨던 돈입니다. 이제 모두 지난 일이니 다시 돌려드리는 겁니다.”
“......”
사장은 기대하지도 않았던 돈이 돌아온 것보다 기찬이 자기 앞에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 더욱 놀라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 궁금증은 곧 기찬으로부터 해소될 수 있었다.
“하하...... 놀라실 필요 없습니다. 아마 사장님은 제가 사기꾼이나 되는 줄 아셨던 모양인데...... 이거 섭섭합니다. 뭐, 어쨌든 그 수사는 이미 종결시켰으니 저야 심증이야 가지만 어쩌겠습니까? 도리 없는 일이지요.”
“그, 그럼 정말 수사관이시라는 말씀입니까?”
“하하...... 지금이라도 다시 종로 서 담당형사에게 물어 보십시오. 아마 제가 여기에 와 있다고 하면 바른 말을 해 줄 겁니다. 하하......”
사장이라는 인물이 확인을 하지 않고 넘어갈 리는 없는 일이었다. 이윽고 전화를 내려놓는 모습에서는 난감한 표정이 나타난다.
“하하...... 저야 뭐...... 그저 술이나 한 잔 마실까 싶어 연락을 드렸는데, 거기서 쇠고랑을 차게 될 줄은 몰랐지 뭡니까?”
“아, 아유...... 이거 죄송하게 됐습니다. 이런 기업을 하다보면 그런 사람들도 더러 만나게 되다 보니까......”
“하하...... 이해합니다. 그럴 수 있지요. 자,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돈도 돌려 드렸으니......”
자리에서 일어서 사장실을 나서려던 기찬이 다시 몸을 돌리자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던 사장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진다. 기찬에 대해 좋은 추억을 갖고 있지 못하니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다.
“참, 수사과정에 만났던 최강희라는 여자 말입니다.”
“네, 네......”
“지금도 데리고 계십니까? 파출부로......”
“아, 아닙니다. 그 일 있고서는 바로 내보냈습니다. 어디 마음이 편치 않아서......”
사장의 거짓말이 가소롭기만 한 일이었다. 기찬은 품에서 시디를 꺼내 사장에게 전해주며 나머지 말을 잇는다.
“아! 네...... 그러시군요. 그날 제가 사장님 댁에 가서 수사를 하던 중에 앞으로 불편한 일이 있으면 도와줄 테니 연락을 하라고 했었는데...... 일전에 연락이 왔더군요. 자,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연탄구이 집, 둥근 드럼통을 개조해 마련한 화덕에는 해장국이 보글거리며 끓고 있고, 기찬은 그 앞에서 해장을 겸해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아직 점심시간이지만, 의외로 반주 삼아 술을 마시는 이가 기찬만은 아니었다.
“아! 여깁니다.”
“아! 네, 네......”
영진 사장은 얼굴이 붉게 상기돼 이곳을 찾느라 고생 깨나 한 표정이었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자리에 앉기도 전에 기찬의 표정을 살피게 되고, 그 공기가 차갑기 그지없으니 다가올 고난이 예상되는 듯 낙담한 얼굴로 자리에 앉는다.
“살려 주십시오.”
하기야 다른 말이 필요치 않은 일이었다. 사장이 생각하기에 기찬은 권모술수에 능한 놈일 테니 그림 속에 같이 나온 여자의 입장을 고려해서 시디를 진짜 뿌리지는 않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는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또렷하게 나온 난잡한 동영상과 자신의 목소리는 두고두고 세인의 입에 오르내릴 것이고, 이 사회에서 매장당하는 것은 그야말로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가진 것이 없는 자들이야 잃을 것도 없으니 벼랑 끝에서 오히려 당당하겠지만, 쥔 자들의 경우는 달랐다.
“살려 달라...... 사장님 목숨 값이 얼만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이미 기찬에게서 자신이 전달했던 천만 원짜리 수표를 다시 돌려받았으니 기찬이 요구하는 액수를 짐작하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제, 제가 지금은 경황이 없어서 그렇게 큰돈을 만들 수 있는 형편이 아닙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우, 우선 이것은 다시 받으시고......”
기찬의 앞으로 내미는 봉투는 조금 전에 사장에게 전달했던 그 돈이었다. 기찬은 그 봉투를 품에 갈무리하며 사장에게 미소를 지어 보인다.
“뭐, 좋습니다. 그 동영상은 이미 제가 아는 임의의 공간에 올라가 있습니다. 지난번처럼 제 신상에 변화가 생긴다면 유포가 되는 것은 다른 사람에 의해서 이뤄질 것이니까 알아서 보안 유지하시고, 같이 죽자면 음...... 좋습니다. 전 잃을 것도 없는 몸이니까요.”
“애, 액수를 좀......”
“......”
“제가 노력은 하겠습니다만, 너무......”
사장이 얼마를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미 천만 원이 오고간 자리에서 짐작할 수 있는 금액은 일억이었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오천만 준비를 하쇼. 그 돈은 그동안 당신이 착취한 최강희와 그 가족에게 주는 위자료라고 합시다. 나는 이 돈...... 천만 원으로 만족하리다. 당신이 준비하는 대로 내가 최강희를 불러내서 완전히 뒤끝이 없도록 합의를 이끌어 줄 테니까......”
“저, 정말 그렇게 해 주시겠습니까?”
“그 대신에 조건을 하나 붙입시다.”
사장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진다. 이번에는 기찬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 것인지 걱정스러운 빛이 가득하다.
“아, 아......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돈 얘기는 아니니까...... 금액을 그렇게 조정해 주는 대신에 앞으로 영진에서 수주 받는 건축물에는 내가 가구를 납품할 수 있도록 좀 해 주쇼. 뭐...... 아파트든 연립이든 요즘은 붙박이 가구가 주류 아닙니까?”
“가, 가구 말씀이십니까?”
“네, 사실은 내가 가구 공장도 하나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품질은 보증할 것이고 기대이하로 불량이 나온다면, 언제든지 물러나겠습니다. 다만, 그렇게 약속해 주신다면 앞으로는 거래상대로만 만나십시다. 나도 사장님을 도울 수 있는 일은 돕는 걸로 할 테니까......”
사장으로서는 얼마든지 들어 줄 수 있는 일이었고, 문제가 된다면 물러난다고 하니 크게 문제가 될 일도 아니었다.
“그러면 그것도 계약을 하시는 걸로......”
“그럽시다. 문구를 남겨두어야 사장님도 안심을 하실 테니...... 저도 사귀어 두면 그리 나쁜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럼 돈은 언제 마련이 되겠습니까? 되는 대로 최강희와 함께 올 테니까......”
“네, 오늘 중 제가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꽁지가 빠지게 모습을 감추는 사장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전화를 꺼내들어 미라의 오빠 송만호에게 전화를 넣는다.
“아! 형님, 접니다.”
“네, 네...... 강사장님......”
“저...... 이제 저희 사무실에 나가볼까 하는데...... 형수님도 집에 계시면 제가 일감을 좀 드려볼까 싶은데...... 어차피 일손도 부족할 것 같고...... 기왕에 조상환이는 형님과 제가 같이 일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니까......”
“아! 그러시죠. 한 사람이라도 더 있으면 심부름이라도 시키고 좋겠지요.”
“네, 그러면 제가 집으로 연락을 해 보겠습니다.”
“네, 네......”
미라의 오빠가 기찬의 의견에 반대할 리가 없는 일이니, 그렇게 차츰 차츰 기찬은 자신의 주변으로 여자들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즉시 강희에게 전화를 걸어 사장과의 일을 설명해 주고 사무실로 불러낸다.
반주를 겸해 느긋한 점심식사를 마친 기찬이 소공동 사무실에 모습을 드러내고, 자리를 지키고 있던 한기주와 그 아내 차은진이 반가이 맞아들인다.
“그래, 전화들이 더러 옵니까?”
“네, 지금 위치를 물어보는 문의 전화들은 오는데 선뜻 오겠다는 사람들은 아직 없는데요.”
“하하...... 첫 술에 배부르겠습니까? 우리도 그래야 숨 돌릴 틈도 있고, 좋지요. 하나 둘 처리하다 보면 입소문도 금방 날 겁니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겠어요? 한실장이 누구보다 잘 알겠지만, 사채업이라고 하는 것이 일단은 무조건 대출을 해 준다고 사람들을 불러들이니까 광고만 보고 쉽게 믿지는 못할 겁니다.”
“네, 맞습니다. 입소문이 무섭지요. 광고는 대부분 허위광고가 많다는 것을 손님들도 알고 있거든요.”
“그리고 조금 있으면 최강희라는 여자가 올 겁니다. 저쪽 사무실 송사장님 부인인데 우리 사무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맡겨 주세요. 우린 지금 한 사람이라도 아쉬운 입장이니까......”
“네, 알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데려다가 그저 놀리더라도 서울역에 사람들 좀 데려다 놓으세요. 미리 익숙하게 만들어 둬야 정작 필요할 때 써먹을 수 있어요. 일당 몇 푼 정도 주는 것을 아까워 해선 안 됩니다.”
“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야기 도중 손님이 들어오고, 한기주가 맞아들인다. 은진은 즉시 차를 대접하며 제법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기찬은 여유롭게 소파에 몸을 묻는다.
“그럼...... 현재 직업은 없으시고요?”
“네...... 그런데 정말 무직인데도 대출이 되는 건가요?”
“하하...... 세상 어느 금융기관에서 회수할 여력도 없는 무직자에게 대출을 해 주겠습니까?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직업이라는 게 있다가도 없을 수 있는 건데 장사 밑천이라도 마련해 드릴 수는 있으니까요. 그래, 필요하신 액수가 얼마나 되십니까?”
“한...... 오백 정도......”
“네, 걱정 마십시오. 저희가 서류를 그렇게 꾸며 드릴 테니까...... 금융기관 심사부에서 전화가 올 때 저희가 시키는 대로 대답만 잘 하시면 됩니다. 아마 이르면 내일 쯤 입금이 될 겁니다. 다만...... 수수료가 있다는 것은 알고 계시지요?”
“다, 다른 곳은 보통 십 퍼센트를 얘기하던데......”
“네, 그렇지요. 저희는 불가능한 대출을 가능하게 처리하는 과정에 또 인사를 해야 하는 곳이 있어서 비용이 조금 더 소요됩니다. 그래서 이십 퍼센트는 생각을 해 주셔야 하고요.”
“아! 그게...... 대출만 된다면야...... 이십 퍼센트면......”
“네, 오백에 이십 퍼센트면 백만 원입니다. 대출금이 통장에 입금되고 나면 그 때, 백만 원을 주시면 됩니다. 손님은 사백정도를 쓸 수 있는 것이지요.”
“네, 그러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제가 무엇을 준비하면 되는지요?”
“네, 우선 신분증부터 복사를 할까요? 자, 미쓰차......”
한기주는 자신의 아내 은진에게 기찬이 시킨 대로 미쓰차라고 호명을 하고, 은진은 그것을 받아 복사기에서 복사를 해 낸다.
사내가 인감증명과 등본 따위를 발급받기 위해 사무실을 나간 뒤, 한기주가 기찬에게 말문을 연다.
“하하...... 사장님, 이제 슬슬 시작 되는가 봅니다.”
“그러게...... 그리고 어차피 대출금을 불어 버릴 것 같은 사람들은 최대한 대출을 받아내도록 유도하는 게 어때요? 그래야 우리 수수료 수입도 늘어나지.”
“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입니다. 어차피 저 친구 다시 오면 신용조회 해 보고 최대치를 받도록 설득해야지요. 자신들도 알 겁니다. 다른 곳에선 대출도 안 되거니와 이 대출 받고 나면 다시는 대출 받을 기회가 없다는 것을......”
“하하하...... 그렇겠지. 여기저기 돈 구하러 다니다 보면 어느새 사채업자 뺨칠 정도로 도사들이 될 테니까......”
그 때, 사무실 문이 열리며 강희가 들어서고, 기찬이 반가이 맞아들인다.
“실례합니다.”
“아! 어서 와요.”
인사소개가 있은 후, 한기주로부터 간단하게 컴퓨터 파일에 대한 설명을 받는다. 이미 영진 기획실장으로부터 받은 파일에 약간의 변조만 하는 일이니 컴퓨터를 다룰 줄 아는 젊은 여자들에게는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일 뿐이고, 이미 세 사람은 기찬이 수사관 신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 화합하는 데도 별 문제가 없는 일이었다.
“자, 그럼 오늘은 두 사람에게 맡기고 강희씨는 나하고 나갑시다.”
“네, 자 그럼 수고들 하세요. 내일 뵐게요.”
기찬은 강희를 데리고 밖으로 나선다. 어제 삼각지에서의 일을 마지막으로 사장과는 완전히 결별을 한 셈이니 강희도 홀가분한 마음으로 기찬의 뒤를 따른다.
“어젠 마지막에 왜 그렇게 사장한테 화를 냈어?”
“어머! 다 보셨어요?”
“사장을 조지려면 다 봐야 하고, 다 봤으니까 물어 보는 거지. 하하하......”
“아이 참,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시간만 끌고...... 다 씻고 왔는데 또 귀찮게 하니까......”
“하하하......”
기찬이 웃어넘기는 웃음소리가 소공동 하늘로 울려 퍼질 즈음, 지영의 레스토랑 건으로 만났던 영감으로부터 연락이 온다.
“아! 어르신이십니까?”
“네, 반갑소. 젊은이...... 오늘 좀 만났으면 하는데, 시간이 괜찮을지......”
“음...... 그러시죠. 이제 자제분들과 의논을 좀 하셨는지......”
“허허...... 그런 셈이지요. 우리 막내 녀석이 하도 보채서 더 이상은......”
“네, 알았습니다. 그러면 제가 넘어가서 합의를 해 드리는 걸로 하겠습니다.”
“그러지요. 나중에 봅시다.”
기찬은 여의도로 넘어가는 차 안에서 강희에게 의견을 묻는다. 사장에게 받는 돈이 적지 않은 액수니 아무 이유 없이 강희에게 건네주기도 남편 송만호에게 설명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냥 기찬이 입을 닦는다고 해도 강희의 입장에서 뭐라고 말을 할 수는 없는 형편이지만, 근본적으로 미라의 입장을 고려하는 기찬으로서는 어떻게든 그 오빠인 송만호의 형편을 돌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사장에게 오천을 받기로 했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 좋을까? 강희를 주긴 줘야 할 텐데......”
“아, 아니에요. 전 괜찮아요.”
“푸훗...... 괜찮긴 뭐가 괜찮아? 솔직히 아깝지. 하하하......”
“아, 아니라니까요. 그리고 전 어떻게 불러야 되나요? 아까 그 사람들처럼 사장님이라고 하면 되나요?”
“아! 그건...... 그래, 그러면 되겠네. 나중에 미라가 보더라도 그게 적당하겠군. 그리고 돈은 내가 적절한 방법으로 남편에게 줄 테니까 그렇게 알고...... 그 돈뿐만이 아니라 어떻게든 강희 살림이 필 수 있도록 해 줄 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네, 고맙습니다. 사장님......”
“그 대신 남편에게도 잘 하고...... 무엇보다도 강희가 내 여자라는 건 잊어선 안 돼.”
“네, 저 사장님께 정말 잘 할게요.”
“그래......”
경찰서에는 영감과 함께 이미 기찬과 몸을 섞었던 막내딸 조유정이 낯모르는 젊은 친구와 기찬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찬과 함께 들어서는 강희의 미모에 실내가 다 훤해지는 듯 시선이 모이고, 영감의 딸 유정의 눈빛도 다소 흔들리는 모습이었다.
일행을 따로 둔 채 기찬은 영감과 일처리를 하고 있었다.
“어떻게 젊은이 주변에는 한 결 같이 저런 절세미인들이 그리 흔한지...... 허허허......”
“아! 그렇습니까? 하하...... 왜 일전에 소개해 드린 분도 빠지진 않을 텐데요? 한 번 만나보셨습니까?”
“허허...... 한 번 만나 봤지요. 꽤 다정한 친구더구먼......”
“제가 종로에 술집도 하나 관리를 하고 있으니까 언제 한 번 들러 주십시오. 여흥을 즐기시는 문제라면 예쁜 아가씨들도 많으니까...... 하하......”
“그래요? 허허...... 언제 한 번 가 봐야겠군. 손님 만나서 갈 일이 있으면 한 번 방문하리다.”
일처리를 마치고 밖으로 나서자 유정이 일행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기찬에게 다가온다.
“왜 바로 꺼내준다고 하고서 이제야 꺼내 주는 거죠? 계약위반이에요.”
“어허...... 오빠한테 까분다. 그건 너희 아버지하고 의논해서 그렇게 된 거라는 걸 잘 알면서......”
“피...... 오빠는 무슨...... 그리고 저 여자는 누구예요?”
“왜 그게 궁금해? 하하하...... 너 질투 하는구나?”
“어머머! 나도 남자 친구하고 왔네요. 칫...... 웃기고 있어.
기찬은 유정의 따지는 모습이 귀여웠는지 그저 웃어넘기고 일행에게로 걸음을 옮긴다. 돌아서는 기찬을 급히 쫓으며 유정이 말을 이어간다.
“오빠한테 나중에 전화 할 거예요.”
“으응? 그래. 얼마든지...... 하하하......”
순순히 기찬을 오빠라고 부르는 것을 보니 아마도 유정은 치기어린 마음에 기찬에게 보이기 위해 공연히 남자 친구를 데리고 왔던 모양인데, 오히려 상당한 미모의 원숙한 여자를 대동하고 나타난 기찬에게 심한 굴욕감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상대가 여자가 없다든지, 있더라도 미모에 있어 자신이 있다면, 나름대로 기찬과의 관계에 있어 자신감을 갖고 대시를 해 보련만, 미모는 물론 성적으로도 원숙한 여자에게서 받는 느낌은 같은 여자로서 더욱 잘 알 수 있는 일이었으니 유정은 기가 죽어 꼬리를 말아 버린다.
기찬은 난생처음 항문섹스를 경험했던 유정이니 그 감흥이 남달라, 연락하겠다는 유정의 반응이 재미있기만 한 일이었다. 유정을 보니 그에 만족스럽지 못해, 그 끝을 보았던 형수 보라가 떠오른다.
“으흠...... 이거 참...... 이 여자랑 있으면 저 여자가 떠오르고, 저 여자랑 있으면 이 여자가 생각 나니......”
방금 전에 집에서 헤어진 마담의 체취가 사라지기도 전에 다른 여자들의 생각이 기찬의 머리를 그렇게 헤집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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