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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립스틱* - 10부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4 02:39 537회 0건
*검은 립스틱*‘가이아’ 서클의 회원들은 이진아에 대한 잘 알고 있어서 틈틈이 그녀를 회원으로 가입시키려고 유혹하였다. 이진아는 평소 거부감을 느끼는 서클의 회원들임을 알고 께름칙하게 느꼈다. 더욱이나 어울리고 있는 남학생들은 주로 체육부 학생들로 체격이 우람하고 언어나 행동이 불량스럽고 거칠었다.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잘하지 않는 이진아였지만, 학원이나 도장에 갈 시간도 이르고, 집에 가도 적적할 것 같아 따라 나선 것이다.



남학생들이 미리 준비해온 맥주를 마시면서 여학생들에게도 권했다. 야외전축 소리와 함께 분위기가 익어가고 그들은 점점 더 흥을 돋우었다. 여학생들은 스커트 자락을 둘둘 말아 올리고 엉덩이를 흔들어 대고 남학생들은 괴성을 질렀다. 웃통을 벗어 붙인 남학생들이 노골적으로 추태를 보이기 시작했다. 여학생들을 끌어안고 엉덩이를 쓰다듬기도 한다.

학생들과 어우러져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추던 은숙이가 이진아에게 다가와 손을 잡아끈다.



“진아야! 그러고 있지 말고 같이 놀자?”

“난 싫어! 그냥 있을게.”



이진아는 찌증 석인 말투로 은숙의 손을 뿌리친다. 은숙은 입술을 삐죽 내밀어 보이고 다시 학생들 속으로 들어가 어울린다. 그렇다고 이진아가 춤을 못 춘다거나 노래를 못하는 것은 아니다. 이진아는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라서 소풍을 가거나 축제에서는 발군의 실력을 들어낸다. 한동안 열정적인 분위기에 휩싸였던 학생들이 짝을 이뤄 나무 그늘로 들어와 앉는다. 그들은 서로를 마주보며 흘러내리는 땀을 씻어내며 잡담을 시작한다.



“명희, 너는 아주 발가벗으려고 하니?”

“호호~! 허벅지까지 들어 내놓고.......! 야하다.”

“난 앙큼한 여자가 좋더라.”

“난, 내숭떠는 여자보다 화끈한 명희가 좋아.”



“애구! 바람둥이 인가봐. 언제는 내가 좋다고 하고.”

“너 인철이 오빠하고 잤니?”

“저 오빤, 재미없어!”



“하하하........!”

“호호.......!”



그들의 잡답은 학생 신분의 수위를 넘어 거침없이 야한 얘기가 흘러나온다. 남학생들은 대부분 졸업반이어서 여학생들보다 한 두 살 위였다. 남학생들 중에 체격이 다부진 학생이 눈치를 살피며 이진아 옆에 다가와 앉는다. 그리고 이진아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야릇한 웃음을 흘린다.



“이름이 이진아라면서? 예쁜데! 난 최기태야!”

“........”



이진아는 관심이 없다는 표정으로 남학생을 바라보지도 않는다. 멋쩍은 표정을 지은 최기태가 돌을 들어 강물로 던진다. 돌이 떨어진 강물에는 파장이 일어나며 나이테가 퍼져 나간다. 제각기 잡담을 하던 그들 중에 남학생 한 명이 여학생의 손을 잡고 일어난다. 얼굴을 붉힌 여학생이 남학생을 따라간다. 앉아있던 여학생 중에 한 명이 피식 웃음을 흘린다.



“쟤네들은 벌써 열을 올리고 야단이야.”

“명희야! 너도 이리와 봐.”



다른 남학생이 명희라 불리는 여학생의 어깨를 껴안는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은숙이가 쪼르르 일어나 이진아의 옆에 와서 앉는다. 이진아는 고개를 돌려 둘씩 짝을 지어가는 그들을 바라본다. 그런데 그들은 멀리 가지도 않고 바로 뒤의 풀숲으로 들어간다. 풀숲이라고 해도 이진아가 빤히 바라볼 수 있는 장소이다.



남학생이 여학생을 껴안아 풀숲에 눕힌다. 여학생의 교복상의 속으로 남학생의 손이 들어간다. 젖가슴을 맡긴 여학생은 눈을 지그시 감고 있다. 나머지 학생들의 시선을 받으면서도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에 열중한다. 거침없는 행위를 하는 당사자나 보고 있는 학생들은 모두 맥주를 마셔서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다. 이진아로서는 처음 보는 광경이고, 마치 약속된 게임을 보는 것 같았다. 바라보고 있는 학생들은 킥킥거리며 웃는다.



한동안 젖가슴을 주무르던 남학생이 여학생의 교복 상의를 벗긴다. 브래지어까지 벗겨진 여학생의 젖가슴이 적나라하게 들어난다. 여학생의 젖가슴에 머리를 뭍은 남학생의 손길이 그녀의 스커트자락 속으로 들어간다. 연신 여학생의 젖가슴을 유리하는 남학생의 헐떡거리는 숨소리가 유난히 높아간다. 남학생의 손끝에 여학생의 팬티가 끌려 내려온다.



다른 여학생들보다 신체적인 열등감에 젖어온 이진아는 역겹고 매스꺼웠다. 그녀 자신은 괴한들에게 강제로 짓밟힌 과거가 저주스럽지만, 스스로 몸을 짓밟히는 여학생의 모습이 어쩌면 통쾌하게도 느낀다. 그녀는 꼼짝도 하지 않고 그들의 행위를 바라본다. 이진아는 자신의 등 뒤에서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는 은숙을 돌아본다. 하지만 손가락 사이로 들어난 은숙의 눈동자는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여학생의 스커트가 걷어 올려지고 뽀송한 음모와 여자의 음부가 들어나 보인다. 충혈된 눈빛으로 바라보던 남학생이 자신의 허리띠를 풀어내린다. 바지와 팬티를 한꺼번에 끌어내려 발목에 걸친 남학생의 허벅지 사이에는 흉물스러운 남성이 발기되어 끄덕거린다. 희멀건 엉덩이가 들어난 남학생의 하복부가 여학생의 허벅지 사이를 내리누른다.



“헉~!”

“어마 얏! 난 몰라.”



신음소리와 함께 남학생의 엉덩이가 앞뒤로 들리고 밑에 깔린 여학생의 벌어진 허벅지가 허공에서 흔들거린다. 바로 옆의 풀숲에 있는 명희와 남학생은 더욱 보기가 민망할 정도이다. 그들은 이미 성 관계를 한 경험이 있는지 익숙한 몸짓으로 부둥켜 안고 거친 숨을 흘린다. 흉물스러운 자지가 보지속을 파고 들때마다 명희는 자지러지는 신음을 터트리며 매달린다.



영화감상이라도 하듯이 바라보고 있던 남학생들이 서로 눈치를 살핀다. 명희의 신음 소리가 마치 약속된 신호라도 되듯이 남학생들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한 남학생의 손이 고개를 숙이고 있던 여학생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겁먹은 표정을 지은 여학생이 이진아의 눈치를 살피며 주춤거리고 끌려간다.



나머지 두 명의 남학생도 은숙과 이진아에게 다가선다. 다가오는 남학생이 이진아의 등 뒤에 웅크리고 있는 은숙의 손목을 잡아끈다. 은숙은 남학생에게 이끌려가지 않으려고 이진아를 붙잡고 늘어진다. 양다리에 힘을 주고 버티는 은숙이 고개를 옆으로 흔든다.



“난 싫어! 이거 놔.......”

“싫다고 하잖아! 놔줘!”



남학생을 노려보며 이진아가 날카롭게 톡 쏘아 붙였다. 최기태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학생도 이진아에게 다가서며 음흉스런 웃음을 흘린다. 무안을 당한 남학생은 오히려 능글능글한 웃음을 흘리며 은숙의 어깨를 잡아끈다. 은숙은 도움을 청하는 눈빛으로 이진아를 바라본다. 은숙을 잡고 다가서는 남학생에게서 술 냄새가 풍긴다.



“왜 이래!? 다 알고, 같이 온 거 아냐?”

“그 손, 놓으라니까?”



다시 날카롭게 팩 쏘아 붙이는 이진아의 말을 듣고 은숙을 잡고 있는 남학생이 이맛살을 찡그린다. 다가온 최기태가 이진아의 손목을 낚아챈다. 하지만 쉽사리 잡힐 이진아가 아니었다. 몸을 숙이며 한걸음 물러선다. 최기태는 유도로 단련된 다부진 체격이다. 약이 오른 최기태가 다시 한발 다가서며 재빠르게 이진아의 어깨를 잡으려한다. 그러나 옆으로 몸을 틀어 비킨 이진아의 발끝이 최기태의 명치를 올려 찼다. 최기태는 졸지에 반격을 당하고 뒤로 벌렁 나뒹군다.



“아쭈! 뭐 이런 게 있어!? 너 오늘 임자 만났다.”

“.........!”



털썩 주저앉았던 최기태가 입에서 흐르는 피를 손으로 문지르며 일어섰다. 은숙을 잡고 있던 손을 놓은 남학생이 예기치 않은 사태를 관망한다. 풀숲에서 부둥켜안고 있던 그들도 행위를 끝냈는지 하나둘씩 이진아와 최기태를 둘러싸고 모여든다. 남학생들은 최기태를 쓰러트린 이진아의 몸놀림에 경악하는 표정을 짓는다.



유도의 기본자세를 한 최기태는 이진아를 붙잡기만 하면 승산은 쉽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진아에게 틈을 주지않고 달려든다. 그리고 이진아의 멱살을 움켜쥐고 당겨 넘긴다. 순간 이진아가 튀어 오르며 최기태의 가슴을 무릎으로 강타한다. 정작 땅바닥에 뒹굴며 신음을 흘리는 사람은 최기태 자신이었다.



“헉...........!”

“.........!?”



다시 일어선 최기태는 타격을 받고 울컥 피를 토한다. 이진아의 무술은 스포츠가 아니고 살수에 가까운 기술이 되고 있다. 그녀의 눈빛에서는 살기가 흐른다. 최기태와 이진아는 서로를 노려보고 서있다. 최기태는 다른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당한 것에 창피하기도 하고 분통이 터졌다. 한편으로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고 두려움까지 느낀다. 여학생이라고 무시한 자신이 부끄러운 최기태는 한편으로 승산이 없다는 판단에 사기가 떨어졌다. 하지만 물러서기에는 자존심을 느낀다.



“이런 괴물 같은 계집애.......”

“........”



이진아는 산처럼 달려오는 최기태를 정면으로 마주한다. 그의 다부진 체격이 다가서는 순간, 그녀는 몸을 숙여 한 발 물러서며 발끝을 뻗어 상대의 낭심을 올려 찬다. 무섭게 달려들던 최기태가 하복부를 움켜쥐고 나뒹군다. 보고 있던 남학생들의 눈빛이 놀라움으로 가득하다. 그렇다고 그들도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 남학생들이 이진아를 둘러싸고 달려든다.



“이런 x같은 년이........!”

“이년이 임자를 못 만나서.......”



우르르 남학생들이 이진아에게 달려든다. 눈빛이 번뜩이는 이진아의 몸놀림이 더욱 민첩해진다. 그녀의 몸이 허공으로 점프를 하며 남학생들을 치고 빠진다. 때로는 나무둥치를 밟고 튀어 올라간 그녀의 발이 남학생의 등을 걷어차고 바닥을 구르기도 한다. 허공으로 치솟은 그녀의 교복 스커트가 밀려 올라가 하얀 팬티가 들어났다. 동시에 남학생들은 그녀의 발길에 채여 비틀거린다.



그러나 여자의 몸으로 남학생들 넷을 상대하기는 벅차다. 그녀도 이따금 남학생의 주먹에 얼굴을 얻어맞아 쓰러지기도 한다. 오뚝이처럼 일어선 그녀의 가슴속에는 과거에 대한 원망의 불길이 솟구친다. 여자를 한 낱 욕구의 대상으로 여기는 남자들을 모두 죽이고 싶은 마음이다. 그녀의 눈에는 남학생들의 모습이 자신을 유린하던 괴한들로 보인다.



순식간에 학생들의 유흥 장소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어디선가 하나둘씩 모여든 사람들의 시선이 이진아를 향한다. 이진아를 공격하던 남학생들이 하나둘씩 쓰러져 갔다. 피를 흘리고 또는 멍든 얼굴을 손으로 감싼 남학생들이 주저앉아 신음을 한다. 두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떠는 이진아는 헐떡거리며 숨을 몰아쉰다. 경악스런 표정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에워싸인 그녀는 사기를 잃고 주저앉거나 바닥에 쓰러진 남학생들을 바라본다. 누군가 신고를 했는지 멀리서 경찰이 달려오는 모습이 보인다.



그 시간에 강민우는 왕릉 안기부 사무실의 자신에 책상에 앉아 정보일지를 작성하고 있었다. 명성그룹 회장의 횡령사건으로 인하여 대기업들의 비리에 관한 정보를 입수하는 업무를 수행중이다. 일지를 작성하던 그는 볼펜을 툭툭 치며 생각에 잠긴다. 그는 아무래도 전산실의 중앙정보부에서 넘어온 기밀 파일에 숨겨진 비밀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비밀 속에 최태웅과 남경식에 관한 실마리가 풀릴 것 같다.



강민우는 남경식의 고향 최 노인의 말이 떠올리며 남경식이 중앙정보부가 개편 후 안기부에 남아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살인 용의자로 수배를 받은 남경식이 개명을 하고 흔적을 감추는 그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의문이 증폭된다. 그 비밀이 기밀 파일 속에 숨겨져 있을 것이라고 강민우는 추측한다. 전산실의 비밀 파일에 대한 그의 관심이 더욱 깊어진다.



정보일지를 작성하고 일어서는데 그의 책상에 있는 구내전화의 신호불빛이 깜박인다. 구내전화에 전화가 걸려왔다는 신호이다. 그가 수화기를 집어 드니 교환원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하남경찰서에서 걸려온 외부전화인데 받겠느냐고 한다. 업무를 제외하고는 사적으로 그에게 전화가 걸어올 곳이 없기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연결을 승낙한다. 정말 경찰서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하남경찰서 홍 경사입니다. 이진아 보호자 되십니까?”

“아! 네. 그런데요.”



“이진아 학생이 싸움을 해서 경찰서로 와주셨으면 합니다.”

“진아가 싸워요.......!?”



“네, 되도록 지금 와 주셨으면 좋겠는데요?”

“음.......! 알았습니다.”



이진아가 싸워서 경찰서에 있다는 말에 강민우는 황당하기도 하다. 평소에 남들과 대화도 잘하지 않는 이진아가 남들과 싸웠다는 것이 그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는 이진아가 많이 다치지 않았는지 걱정이 앞선다. 부리나케 안기부 건물을 나온 강민우는 주차장으로 향해 걸어가서 지프차에 올라 시동을 건다.



속력을 내서 지프차의 페달을 밟은 탓에 한 시간 조금 넘게 걸려 강민우는 하남경찰서에 당도했다. 강민우가 경찰서로 들어가니 여러 명의 남학생과 여학생들이 웅크리고 앉아 있고 보호자들이 와서 아우성이다. 강민우는 그들 사이에 끼어 있는 이진아의 모습을 발견한다. 붕대를 감고 있거나 얼굴에 온통 상처와 멍이든 남학생들과 달리 여학생들은 깨끗한 모습이다. 유달리 이진아만 이마에 상차와 뺨에 멍이 들어 있다. 그런데 보호자들은 제각기 이진아만을 향해 손가락질과 욕설을 한다.



“뭐 저런 계집애가 있어!?”

“살다보니까, 별, 괴물 같은 계집애 다 보겠네.”

“어떻게 계집애가 남학생들 다섯을 이 꼴로 만들어!”

“저런 계집애는 본때를 보여줘야 돼.”



“가만히들 계세요! 잘못은 남학생들이 시작한 거니까.”



보호자들의 이구동성으로 떠드는 소리를 들은 경관이 들고 있던 파일을 책상에 던지면서 소리친다. 경관의 호통에 떠들던 보호자들이 입을 닫고 서로 눈치를 살핀다. 이진아 혼자 남학생들을 상대했지만 정작 많은 상처를 입은 것은 남학생들이었다. 강민우는 자신을 바라보는 이진아의 눈동자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발견한다. 잠시 바라보던 이진아가 찢겨진 교복상의를 여미며 고개를 숙인다. 강민우는 경관에게 다가가서 안기부 요원의 신분증을 보인다.



“이진아 보호자 됩니다. 서장님 면담 가능하지요?”

“아! 네. 제가 연락드린 홍 경사입니다. 잠간만 기다리십시오.”



보호자들에게 호통을 치던 경관이 신분증과 강민우를 번갈아 쳐다본다. 그리고 부드러운 표정을 지어 보인다. 다시 한 번 강민우를 희끔 돌아본 경관이 서장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일분도 되지 않아 경관이 강민우를 경찰서장실로 안내한다. 자신의 명패가 붙어있는 책상 옆에 서서 기다리고 있던 경찰서장이 한걸음 나서며 정중하게 강민우를 맞이한다.



“아! 이거 번거롭게 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뇨! 제가 도리어 업무에 폐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이어서 홍 경사가 음료수를 가지고 와서 탁자위에 내려놓는다. 강민우는 막상 경찰 서장을 마주했으나 별로 할 말이 없다. 안보와 시사에 관한 이야기와 덕담을 하고 있는 사이에 홍경사가 이진아를 데리고 들어왔다. 강민우는 경찰서장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면서 위로금이 든 봉투를 건넸다. 강민우는 이진아를 데리고 서장실을 나오는 모습을 보고 보호자와 남학생들이 수군거린다.



“뭐야!? 재는 그냥 보내내!”

“아무리 남학생들이 잘못 했지만,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무슨 빽으로 내보내는 거지?”

“저 계집애, 사람도 아냐! 괴물이야. 괴물......”

“바보 같은 놈아! 남자새끼가.......”



보호자들 중에는 투덜거리는 남학생을 질타하는 사람도 있다. 강민우는 다소곳이 따라 나서는 이진아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진아를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치료를 해주었다. 그는 이진아가 타박상 정도의 상처를 입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마음 한구석에는 남학생들 네 명을 제압한 이진아가 두려워 지기도 한다.



호신술로 이진아가 운동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지만, 의외의 결과에 강민우는 혼란스러워진다. 그녀는 아직도 분노가 풀리지 않는 표정이다. 그녀에게 호신술은 어쩌면 과거의 상처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는 수단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든다. 하지만 그는 병원을 나오면서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한다.



“괜찮아! 많이 안 다쳐서 다행이야. 힘들었지!?”

“.........!?”



강민우를 올려다보는 이진아의 눈동자에는 눈물이 글썽인다. 그가 지프차에 올라 시동을 거니 조수석에 올라앉은 이진아가 어깨에 기대면서 빤히 올려다본다. 강민우는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자국을 손으로 씻어준다. 그리고 뺨을 어루만져준다. 강민우의 지프차가 경찰서를 벗어나 대로를 달린다, 그리고 집으로 향하는 비포장도로를 뒤뚱거리며 달리며 먼지를 일으킨다.



그들이 집에 도착하니 진씨 할머니가 정원의 건조대에 세탁물을 널고 있었다. 이진아는 할머니에게 상처가 난 얼굴을 보이기 싫어서 강민우의 등 뒤에 숨어서 집안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빤히 바라보던 진씨 할머니가 그녀의 얼굴에 난 상처와 멍든 자국을 보고 다가온다. 그리고 이진아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싼다.



“아이고! 우리아기 얼굴이 왜이래!? 누구하고 싸웠어?”

“만지지 마요. 싫어!”



이진아는 진씨 할머니의 손을 뿌리치면서 톡 쏘아붙인다. 그리고 집안으로 뛰어 들어간다.그녀는 방문을 소리 나게 닫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다. 걱정스러운 진씨 할머니가 강민우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는다. 강민우는 씁쓸한 표정으로 괜찮을 것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침대위에 누운 그녀는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강민우는 저녁식사도 하지 않고 꼼짝하지 않은 이진아가 걱정스러웠다. 그녀는 밤새도록 악몽에 시달렸다. 박쥐같은 날개 짓을 하며 다가오는 악령의 목소리가 메아리친다. 선혈이 낭자한 악마의 손길이 그녀의 발가벗은 알몸을 괴롭힌다. 악마의 손길이 닿은 그녀의 온몸에서 벌레들이 꿈틀거리고 기어 나온다. 그녀는 외마디를 지르며 깨어났다가 다시 깊은 수렁으로 빠지기를 거듭한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을 하려던 강민우가 걱정스러워 이진아의 방으로 들어갔다. 웅크리고 있는 이진아의 머리를 만져보니 뜨거울 정도로 열이 올라있다. 그의 손길을 느낀 이진아가 눈을 크게 뜨고 ‘이놈들아! 싫어. 싫단 말이야!’ 라고 헛소리를 지른다. 그녀의 몸은 불덩어리 같은데 식은땀이 흥건하다. 그녀는 추위를 타는 것처럼 벌벌 떨며 웅크린다. 강민우는 조치를 취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황급히 이진아를 모포로 감싸고 번쩍 안은 강민우는 집밖으로 나와 그녀를 지프차에 태운다. 걱정스러워하는 진씨 할머니를 뒤로하고 급하게 지프차를 몰았다. 아무래도 종합병원으로 가야할 것 같아 강민우는 세브란스 병원으로 향한다. 뒷좌석에서 정신을 잃고 웅크리고 누워있는 이진아의 신음소리를 듣는 그는 마음이 다급했다.



세브란스 병원에 도착한 강민우는 이진아를 안고 응급실로 들어갔다. 오늘따라 응급실을 찾은 환자들이 많다. 응급조치를 하고 이진아는 흰 가운을 걸친 간호사와 의사들에게 둘러싸인다. 이진아를 진찰하던 의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강민우를 돌아본다. 다급한 강민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찌 된 겁니까?”

“뇌파검사와 MRI촬영을 해봐야 될 것 같습니다.”



“MRI 촬영을요! 어디가 잘못 된 것입니까?”

“뇌손상인지 검사를 해봐야 알 것 같습니다.”



강민우는 이진아가 싸워서 뇌를 다치지 않았는지 걱정스러워진다. 혼절한 상태의 이진아가 다른 침상으로 옮겨져 뇌파검사실로 옮겨진다. 침상에 누운 그녀를 따라가는 강민우는 갑자기 두려운 생각이 든다. 이진아가 검사실로 들어가고 강민우는 안절부절 하며 복도의 대기 의자에 앉았다가 일어서기를 반복한다.



강민우는 공중 전화박스로 가서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여동생이 아프다면서 출근하지 못한 사유를 밝히고 다시 검사실 대기실로 간다. 기다리기 지루한 시간이 흘러간다. 대기실은 시간이 멈추어진 공간 같았다. 대기실 복도를 지나쳐 다니는 환자들 모두가 영혼만 움직이는 인형같이 보였다.



원래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들은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자연치유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생명이 탄생하여 자라서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그 자체로 자연의 질서이다. 정작 인간을 병들게 하는 것은 욕망이다. 인간의 욕망으로 인해 병들고 고통스러워한다.



치유할 수 없는 기억마저도 감당하기 힘든 이진아가 또 다른 고통을 당한다고 생각하니 강민우는 안타까울 뿐이다. 기다리기 지루한 시간이 지나고, 검사실에서 나온 간호사가 대기실의 보호자들을 향해 마치 합격자 명단을 부르듯이 외쳤다.



“이진아 보호자님!”

“네........!?”



혼란스러운 생각에 잠겨있던 강민우가 벌떡 일어났다. 들고 있던 차트를 들여다 본 간호사가 사무적인 표정으로 강민우를 훑어본다.



“담당의사 선생님에게 가보세요.”

“담당의사 선생님이 누구시죠!?”



“2층 신경정신과 안재환 박사님 요.”



자신이 할 일을 끝냈다는 듯이 간호사는 돌아서서 검사실로 사라진다. 검사를 맞힌 이진아의 병명이 무엇인지 두려웠다. 검사실 문을 잠시 바라보고 있던 강민우가 복도 끝의 층계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층 복도의 진료실 앞에도 언어를 잃어버린 사람들처럼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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