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립스틱*발돋움을 한 이진아는 다시 사무실 안을 들여다봤다. 순간 지순영의 젖가슴을 더듬던 사나이가 창문으로 고개를 돌린다. 사나이의 번득이는 눈빛을 의식한 이진아는 자신을 보는 것 같아 급하게 머리를 숙였다. 그런데 사무실 안에서 의자가 넘어가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아 다시 고개를 들어 조심스럽게 사무실 안을 들여다본다. 재갈이 물려지고 팔이 뒤로 묶인 지순영이 남자에 의해 책상위로 올려지고 있다. 남자는 그녀를 뒤로 엎드리게 해놓고 책상 모서리로 당긴다. 모서리까지 끌려온 그녀의 교복 스커트를 들어 올리고 하얀 팬티를 벗겨낸다.
“아, 아저씨! 제발, 살려주세요.”
“그래봐야 여긴 아무도 없어!”
청순한 지순영의 발가벗겨진 하반신이 들어나고, 남자는 그녀의 뽀얀 엉덩이를 양손으로 벌리고 들여다본다. 항문과 여자의 음부, 그리고 뽀송한 음모가 그대로 들어나 보인다. 남자는 자신의 바지와 팬티를 한꺼번에 끌어내리며 지순영의 허벅지를 벌렸다. 항문 밑으러 벌어진 보지를 바라보는 남자는 마른 침을 꿀꺽 삼키다. 남자의 하복부에는 흉물스러운 자지가 끄덕거린다. 귀두가 하늘로 치솟은 자지를 우격다짐으로 지순영의 보지 속으로 쑤셔 넣는다.
“하 앗! 엄마 얏!”
통증을 느낀 지순영이 작살에 꿰인 물고기처럼 버둥거린다. 골반이 터지는 고통으로 지순영은 숨조차 쉴수 없었다. 간신히 보지 입구에 귀두만 걸친 남자는 힘껏 자지를 밀어 넣는다. 결국은 어린 여자의 보지 속으로 자지 뿌리까지 집어 넣은 남자는 진절머리를 친다. 지순영은 보지 속이 찢어지는 고통에 남자의 손에 잡힌 다리를 죽을 힘을 다해 뻗어 발버둥친다. 그녀의 발버둥치는 발길에 가슴이 채인 남자가 뒷걸음을 쳤다. 그녀의 발가벗겨진 하복부에는 붉은 선혈이 맺혀 있었다. 시근덕거리며 다가선 남자가 그녀의 뺨을 후려쳤다.
“이런 쌍년이! 죽고 싶어!”
"하 악~!"
남자의 손바닥에 얻어맞은 지순영의 얼굴이 획 돌아간다. 이맛살을 찌푸린 남자는 다시 지순영의 보지 속으로 자지를 힘껏 밀어 넣었다.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은 그녀의 몸이 흔들리며 허우적거렸다. 남자의 자지가 보지속을 짓이길 때마다 지순영의 들어 올려진 다리가 출렁거린다. 창문 안을 들여다보고 있던 이진아는 분노로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아서 주저앉았다. 괴한들에게 윤간을 당하던 고통이 되살아났다.
"개 같은 놈!"
입술을 깨물고 일어선 그녀의 눈동자에서는 불꽃이 튄다. 고통스러웠던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살피는데, 맞은편에 쌓인 건축 자재들 중에 나무상자가 보였다. 그녀는 부리나케 가서 나무상자를 들고 왔다. 그리고 창 문 밑에 나무상자를 놓고 뒷걸음친다.
이진아는 책가방을 어깨에 메고 속으로 외친다. ‘죽여 버릴 거야!’ 그녀는 이를 악물고 창문을 향해 달려갔다. 나무 상자를 딛고 점프를 한 그녀는 들고 있는 책가방을 방패삼아 유리 창문으로 몸을 던졌다. 그녀의 몸이 유리 창문을 박살내고 사무실 바닥을 구른다. 한 바퀴 회전을 하여 바닥을 구른 그녀는 바지를 발목에 걸고 있는 중년남자의 엉덩이를 돌려 찼다. 여학생의 허벅지 사이에 하복부를 잇대고 안간힘을 쓰던 중년남자는 느닷없이 발길에 채여 옆으로 나뒹군다.
“헉~! 뭐야.”
“개만도 못한 놈! 죽일 거야.”
바닥에 벌렁 자빠진 남자는 당혹스러워 이진아를 올려다본다. 자신을 걷어찬 상대가 고작해서 나이어린 여고생이라는 것에 기가 막혔다. 그는 불명예 전역을 당했지만 육군 정보기관 출신 박문철이었다. 공수부대 출신으로 많은 경험을 쌓았다고 자부하는 그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으며 일어섰다. 바지가 흘러내린 그의 하복부에는 진액으로 번들거리는 흉물이 흔들거린다. 화가 치밀어 오른 그는 바지를 추키면서 이진아에게 다가서면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X 같은 계집애가 겁도 없이.......”
“핫!”
이진아를 후려치려던 박문철이 도리어 기압소리와 함께 책상을 짚고 휘청거린다. 그가 손을 뻗치기 전에 이미 그의 관자노리에 이진아의 발길이 작열한 것이다. 박문철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너무 상대를 얕보았다는 자신의 실책을 느꼈다. 그는 책상을 짚고 한발 물러서며 여고생이라고 만만하게 볼 수 없다는 판단을 한다. 박문철은 매섭게 노려보는 여고생의 눈빛을 의식한다. 허리띠를 조이고 상대를 제압할 자세를 취한다.
“하~! 까불고 있네! 너 얘 친구냐? 날 잡아 잡숴달라고 왔네.”
“죽여 버릴 거야!”
이글거리는 눈빛을 한 이진아가 박문철을 향해 돌진한다. 어쩌면 이진아의 무모한 공격인지도 모른다. 박문철의 명치끝을 향해 이진아의 주먹이 번개처럼 가격한다. 그러나 당하고 있을 박문철이 아니었다. 옆으로 몸을 비튼 그가 이진아의 팔을 낚아채어 내던진다. 우지끈 하는 소리와 함께 이진아의 몸이 의자에 부딪쳐 사무실 구석에 처박힌다. 아울러 쨍그랑 소리와 함께 이진아의 손에 끼었던 반지가 빠져 책상 밑으로 굴러간다. 이진아에게 당한 것이 분한지, 박민철이 씨근덕거리며 쓰러진 이진아에게 다가간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어디서!?”
“.........”
정신을 잃고 하복부를 들어내고 책상위에 눕혀져 있던 지순영이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은 그녀는 이를 악물고 상체를 일으켰다. 팔이 뒤로 묶인 그녀가 사무실 구석으로 기어간다. 하복부가 찢어지는 통증을 느끼는 지순영은 그제야 구석에 처박힌 사람이 같은 학교의 여고생이라는 것을 알았다. 박문철이 쓰러진 이진아를 무자비하게 발로 걷어차기 시작한다.
“내가 누군지 알아!? 너 같은 년, 하나 죽이는 것은 식은 죽 먹기야.”
“윽........!”
이진아는 그에게 벗어나려고 엉금엉금 기어 문 쪽으로 다가간다. 간신히 일어서서 문고리를 열려고 하는데, 다시 박문철의 주먹이 그녀의 턱을 강타한다. 입가에 피를 주르륵 흘린 이진아는 ‘우당탕!’하는 소리와 함께 캐비닛을 들이받고 다시 쓰러진다. 박문철이 씨근덕거리며 그녀에게 다가온다.
“개 같은 년.......! 이런 년이 다 있어.”
이진아는 허리와 등의 뼈마디가 부서지는 통증을 느꼈다. 다가서는 남자의 발길질은 계속되고 이진아는 여기서 죽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윤간을 당하던 장면을 떠올리며 이를 악문다. 캐비닛 구석에 세워진 철제 지렛대가 시야에 들어온다.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에 맞추어 심장소리가 커진다. 박문철의 구둣발이 그녀의 머리를 향해 날아온다. 순간 그녀는 쓰러진 자세에서 철제지렛대를 움켜쥔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구둣발을 향해 휘두른다.
“하 악~!”
“..........”
발을 들어 올렸던 박민철이 외마디를 지르며 고꾸라진다. 이진아는 사력을 다해 일어나 들고 있는 철제지렛대로 박민철의 머리를 내려친다. 박민철의 머리에서 피가 분수처럼 터져 흐른다. 눈에 불꽃이 튀는 이진아의 손에 들은 지렛대가 박민철을 연거푸 내려쳤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환청이 들린다.
‘죽여라! 그러면 고통에서 벗어날지니!’
이진아가 지렛대를 휘두를 때마다 사무실 바닥에는 박민철의 머리와 몸에서 흘러내린 피로 얼룩져 간다. 그녀의 눈빛이 흡혈귀처럼 붉게 물들어 있다. 남자는 이미 숨을 거두었는지 피가 엉킨 살갗이 반사적으로 흔들릴 뿐이다. 그래도 그녀는 이를 악물고 마치 광기를 부리는 마녀같이 철제지렛대를 휘두른다.
“죽일 거야! 죽어! 죽어!”
“.........!?”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던 지순영은 끔찍한 장면에 자신이 당한 고통보다 더한 공포를 느껴 벌벌 떤다. 박민철이 반응이 없이 몸이 선혈로 낭자하게 될 즈음에 이진아의 행동이 멈춰진다. 마치 몽유병 환자처럼 서 있는 그녀의 손에서 철제지렛대가 떨어져 내리며 날카로운 소리를 일으킨다.
양 팔을 축 늘어트린 이진아는 힘없이 의자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운동을 하고 나서의 노곤함 같은 기분을 느낀다. 어쩌면 자신도 알지 못하는 쾌감이었다. 몸은 피로를 느껴 나른하지만, 통쾌함과 아울러 정신은 예민해진다. 무언가 해야 할 일이 있는 것 같다. 그녀가 바라보는 구석진 책상 위의 낡은 테이프플레이어가 시야에 들어온다.
이진아는 부스스 일어나서 바닥에 흩어진 자신의 책가방을 집어 든다. 책가방 속에서 항상 듣고 있던 워크맨을 꺼낸다. 워크맨을 열어 카세트테이프를 꺼내 테이블 위의 테이프플레이어 꽂아 넣고 스위치를 작동시킨다. 지지직하는 소리에 이어 오페라 ‘나부코’가 흘러나온다. 의자에 털썩 앉은 이진아의 무표정한 얼굴에 묘한 희소가 떠오른다.
바라보고 있는 지순영은 이진아의 괴이한 행동에 공포감을 느껴 오싹해진다. 잠시 테이프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오는 오페라를 듣고 있건 그녀는 의자에서 일어선다. 바닥에서 지렛대를 집어 들고 먼지가 뽀얗게 쌓인 싱크대로 다가간다. 수도꼭지를 틀어 지렛대를 물로 씻어 팽개친다. 손에 묻은 피를 닦은 그녀는 파랗게 질려서 쳐다보는 지순영에게 다가가 팔에 묶인 밧줄을 풀어준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
“응,........”
“어차피 당한 일, 말한다고 보상해 줄 사람 없어.”
“........알았어.”
그때서야 지순영은 눈물을 흘리며 울먹거린다. 지순영은 이진아의 행동과 명령조의 차가운 목소리가 같은 여고생이라고 믿기 어려웠다. 강압적인 말투이지만, 모든 상황이 자기 자신으로 일어난 일이라 지순영은 자책감이 들어 할 말이 없었다. 그녀는 홀로 된 어머니와 자신 두 식구뿐이다. 더욱이나 품팔이로 어려운 살림을 꾸며가다가 병든 어머니를 슬프게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다만, 죽었는지 꼼짝도 하지 않는 남자를 보니 지순영은 두려웠다. 흐르고 있는 ‘나부코’의 음률이 선혈로 낭자한 사무실의 광경을 더욱 끔찍하게 느끼게 한다.
“저, 저 사람 죽은 거 아냐? 어떡해......!?”
“염려 마! 너하고 나만 잊으면 돼. 안다고 해도 우리는 정당방위야.”
이진아의 말을 이해했는지 지순영이 훌쩍거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진아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밖으로 나가서 승용차의 뒷좌석 열려진 문으로 다가간다. 지순영의 책가방을 들고 잠시 망설이다가 좌석 뒤에 꽂힌 장갑을 집어 들었다. 사무실로 다시 들어가 찢어진 교복 상의를 추슬러 입는 지순영에게 가방을 건네준다.
그리고 이진아는 망설이더니 책가방에서 검은 매직을 깨내서 든다. 손에 들고 있는 장갑을 끼고 쓸어져 있는 박민철에게 다가간다. 박민철의 입술을 들고 있는 검은 매직으로 검게 칠한다.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내려다보다가 박민철의 안주머니를 뒤져서 지갑을 꺼낸다. 지갑 속에 들은 신분증과 명함 등을 바닥에 쏟아놓고 현금 다발을 손에 쥔다. 지갑을 바닥에 팽개치고 현금을 지순영에게 건네준다.
“자! 이건 네 꺼야!”
“........!”
“가자!”
“..........!?”
사무실 안을 휘둘러 본 이진아는 책가방을 집어 들고 사무실을 나간다. 이진아에게 받은 현금 다발을 들여다보던 지순영이 주춤거리다가 이진아의 뒤를 쫓아 나선다. 뒤를 돌아본 이진아가 어기적거리며 걷는 지순영을 부축한다. 주차장을 나서는 그녀들의 모습이 사거리 모퉁이를 돌아간다. 한 차례 불어오는 바람에 열려있던 승용차 문이 슬며시 닫힌다.
강민우는 찝찝한 마음으로 왕릉으로 지프차를 몰고 있었다. 간첩과 접선한다는 용의자에 대한 정보 수집을 나섰지만 성과가 없었다. 조수석에서는 문경환이 음료수를 마시고 있다. 아무래도 늦게 먹은 점심 식사가 짰었든 모양이다. 아직 개인 업무를 부여받지 못한 문경환은 조수처럼 강민우를 쫓아다니며 경험을 쌓고 있다.
문경환이 들고 있던 무전기에서 수신신호가 잡히는 소리에 이어 정보A팀을 부른다. 무전기 통화버튼을 누른 문경환은 그동안의 경험을 시험하듯이 헛기침을 한 후에 인위적으로 노숙한 목소리를 흘린다.
“네 정보 A팀입니다.”
“박민철이 하남 xaxx지점에서 시체로 발견됐다. 현장출두 바란다.”
“네, 정보A팀 접수합니다.”
박민철이라면 강민우 팀이 추적하고 있던 대상 인물 중 한명이었다. 간첩과 접선하려는 용의자였고 정보기관 출신으로 국가정보 유출을 하려는 용의자이기도 하다. 박민철이 사망했다면 맡은 업무가 난관에 부딪칠 수도 있기에 강민우는 이맛살을 찌푸린다. 문경환은 무전기를 받아 응답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강민우를 바라본다.
“사망한 박민철의 현장으로 가라는데요.”
“가고 있잖아.”
신경이 날카로워진 강민우가 지프차를 급회전 시킨다. 지프차는 180도를 돌아서 오던 길을 되돌아간다. 강민우는 지프차 지붕위에 붉은 비상등을 올려놓으며 가속페달을 밟는다. 미로를 빠져 나가듯이 자동차들 사이를 곡예하며 붉은 등이 번쩍거리며 지프차가 질주한다. 길지 않은 시간을 숨 가쁘게 달린 지프차가 현장에 도착했다. 박민철이 사망한 주차장현장에는 이미 경찰차, 병원 구급차, 그리고 정사복의 경찰이 도착해 있었다.
지프차에서 내린 강민우는 웅성거리고 모여 있는 사람들을 헤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주차장 입구를 지키고 있는 경찰에게 신분증을 슬쩍 보이고 들어가 조립식 사무실 주위를 둘러본다. 강민우를 뒤따라가는 문경환은 공연히 어깨에 힘을 준다. 사무실 안에서는 사복형사들이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사복형사 중에 머리가 벗겨진 형사가 강민우 앞을 가로 막는다.
“무슨 일로.......?”
“수고 하십니다. 석관동에서 나왔습니다.”
강민우는 상대가 신분을 확인하는 것에는 개의치 않고 신분증을 들었다가 호주머니에 다시 넣는다. 상대는 석관동이라는 말과 느낌만으로도 신분을 확인 했을 것이다. 머리가 벗겨진 형사는 위압감을 느껴서인지 굽실거리며 자세로 자신의 신분을 밝힌다.
“아! 내. 저는 광주경찰서 수사계장 임춘수 경위입니다.”
“..........”
강민우는 임계장이 안중에 없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의 날카로운 시선은 현장 검증을 하는 경찰 요원들의 움직임과 주위를 살피고 있다. 박민철은 끔찍한 모습으로 사망해 있었다. 사무실 바닥은 선혈이 낭자하고 피가 응고되기 시작하여 검붉은 빛을 띠고 있다. 강민우가 뚜벅뚜벅 박민철의 시신으로 다가갔다.
시신을 덮고 하얀 천을 들어 보았다. 누군가 죽이기로 작정을 한 것처럼 박민철을 짓이겨 놓았다. 강민우는 폭력배들끼리의 난투극이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심각한 표정을 지은 강민우는 양손을 호주머니에 찔러 넣는다. 강민우의 출현에 형사들이 의아스런 눈빛을 한다. 형사들의 의문스러워하는 표정을 읽은 임춘수 경위가 형사들에게 강민우의 신분에 대해서 귓속말로 알려준다.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있던 강민우는 박민철의 시신을 넘어 책상 앞에 다가선다. 책상 서랍들을 당겨 열어본다. 혹시나 간첩과의 접선이나 정보를 누설하는 단서라도 얻을지 모르는 행동이다. 서랍마다 당겨보았으나 여자의 선정적인 사진이 실린 잡지가 보이고, 볼펜과 연필들만 데구루루 구른다. 돌아서려던 그는 잠시 멈추고 책상 밑을 바라본다. 사무실 입구로 바람이 불어 책상 아래 떨어진 신문지가 들썩거리는데 무엇인가 반짝이는 것이 눈에 뜨인다.
강민우는 무심코 한쪽 팔을 뻗어 반짝이는 반지를 집어 들어 보고는 얼른 호주머니에 넣는다. 주위의 형사들 눈치를 살피는 그는 얼어붙은 것처럼 꼼짝 할 수가 없었다. 우연의 일치일까, 작년 크리스마스에 이진아에게 사준 반지와 똑같았다. 바닥에 뒹구는 신문들과 방치해둔 배달음식 그릇 등 쓰레기들이 섞여있어서 다행히도 경찰의 현장검증 요원들이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다.
순간적으로 오싹하는 느낌이 드는 강민우는 긴장했다. 남고생과 싸웠던 이진아의 분노에 찬 표정이 실루엣처럼 떠오른다. 이진아에게 사준 반지가 확실하다면 그녀와 관계가 있는 것일까! 강민우의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진다. 긴 한숨을 내쉬고 혹시 현장요원들이 빠트린 단서가 있는지 살피며 천천히 사무실 안을 배회한다. 그가 녹이 슨 캐비닛 옆의 테이블로 다가갔다. 테이블에는 먼지가 소복이 쌓여 있는데 낡은 테이프플레이어의 버튼에만 먼지가 지워져 있었다.
테이프는 끝까지 돌아가 멈추어져 있었다. 되감기 버튼을 누른다. 테이프플레이어는 정상적으로 작동이 되었다. 철컥! 소리와 함께 되감기 동작이 멈췄다. 강민우는 고개를 갸웃하고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감전된 사람처럼 깜짝 놀라며 한 걸음 물러선다. 오페라 ‘나부코’가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반지와 ‘나부코’는 우연의 일치인가! 강민우는 현장검증을 하는 주위를 둘러본다.
“여기 처음 현장을 발견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전데요! 순찰을 돌다가 발견했습니다.”
정복을 한 경관이 대답을 하고 강민우의 눈치를 살핀다. 강민우는 자신도 모르게 흥분 하고 있었다. 공연히 어깨에 힘을주고 배회를 하던 문경환이 강민우의 표정을 유심히 살핀다. 문경환은 안기부요원이라는 우월감에 젖어 경찰요원들이 발견 못하는 단서를 팀장이 발견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강민우는 테이프플레이어를 가리키며 마른 침을 삼킨다.
“이 테이프 플레이어가 돌아가고 있었습니까?”
“네. 그런데 철컥 소리가 나서 보니 바로 정지되던데요.”
“몇 시쯤이죠?”
“제가 손목시계를 봤는데 정확히 4시 십분 이었습니다.”
“사망 시간은........!?”
“3시 반경으로 추정합니다.”
박민철의 시신을 확인하던 푸른색 가운을 걸친 경찰 현장수사요원이 대답을 한다. 강민우가 박민철의 시신 옆으로 다가갔다. 하얀 천 밖으로 들어난 박민철의 팔을 들어본다. 박민철이 끼고 있는 손목시계는 유리가 깨져있고 시계의 시침은 3시를 분침은 40분을 가르치고 있었다. 강민우는 일어나서 테이프를 꺼내들었다, 테이프에는 플레이어 시간이 20분으로 되어있다. 그렇다면 박민철이 사망한 시간은 경찰이 추정한 시간보다 뒤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
“사망 시간은 3시 오십분이 지나서인데.......”
“네.......!?”
박민철의 사망 추정 시간을 말했던 수사요원이 의아스런 표정을 짓는다. 박민철이 사망한 후에 상대는 테이프플레이어를 틀어서 듣고 있었다. 보통 대담한 사람이 아니면 시체를 놓고 여유 있게 음악을 듣고 있을 수가 없다. 강민우는 아직도 테이프플레이어에서 ‘나부코’오페라가 흘러나오는 것 같다. ‘나부코. 음률 속에는 왜 그런지 이진아의 모습이 떠오른다. 강민우는 깊은 한 숨을 내쉬며 사무실 문 앞에 있는 임 경위에게 다가간다.
“본 사건은 우리가 비밀리에 수사하고 있는 긴급사건과 관련된 것입니다. 현장검증이 끝난 후 바로 사망자 시신과 조사 자료를 넘겨주십시오.”
“그렇다면 상부에 보고는.......?”
“못 알아들어요? 간첩 용의자란 말이요!”
“아! 네........”
강민우는 신경질적으로 내뱉었다. 그리고 몸을 돌려 주차장사무실을 나간다. 강민우를 쫓아 사무실을 나오는 문경환은 요즘 팀장의 컨디션이 썩 좋아 보이지 않은 것을 느낀다. 주차장 입구에 몰려든 구경꾼들을 헤치고 강민우는 주차된 지프차로 향한다. 지프차 운전석에 오르려다가 문경환에게 묻는다.
“사무실까지 태워다 줄까?”
“어디 가시려고요......!?”
“음, 볼일이 있어서........”
“괜찮습니다. 저는 버스타고 갑니다.”
문경환은 강민우를 벗어나는 것이 차라리 편했다. 어차피 오늘 하루는 업무가 끝난 것이고 모처럼 시간을 내어 친구들을 만나 술 한 잔 마시면서 안기부직원이 된 자신을 피력하고 싶었다. 문경환은 부동자세로 허리 굽혀 인사를 하고 빠른 걸음을 옮긴다. 사거리 모퉁이를 돌아서 걸어가는 문경환의 옆으로 강민우의 지프차가 스쳐 지나간다.
하남읍을 지난 강민우의 지프차가 비포장도로로 들어서면서 몹시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의 머릿속에는 박민철의 처참한 시신이 흔들리는 영상으로 떠오른다. 많은 시신을 보았지만, 그토록 잔인하게 살해당한 시신은 흔치 않았다. 남학생들과 싸움을 하고 경찰서 대기실에 앉아 있던 이진아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당시에 이진아의 얼굴에 나타나는 이글거리는 분노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고 강민우는 두렵기까지 했다. 반지와 그리고 오페라 ‘나부코’는 이진아를 가리키고 있다. 하지만, 박민철의 사망에 이진아가 관련되었다고 믿고 싶지 않다. 만약 이진아가 관련되었다면 그녀도 큰 타격을 받았을 것이다. 집이 가까워질수록 강민우는 두려운 생각이 든다.--------------------
“아, 아저씨! 제발, 살려주세요.”
“그래봐야 여긴 아무도 없어!”
청순한 지순영의 발가벗겨진 하반신이 들어나고, 남자는 그녀의 뽀얀 엉덩이를 양손으로 벌리고 들여다본다. 항문과 여자의 음부, 그리고 뽀송한 음모가 그대로 들어나 보인다. 남자는 자신의 바지와 팬티를 한꺼번에 끌어내리며 지순영의 허벅지를 벌렸다. 항문 밑으러 벌어진 보지를 바라보는 남자는 마른 침을 꿀꺽 삼키다. 남자의 하복부에는 흉물스러운 자지가 끄덕거린다. 귀두가 하늘로 치솟은 자지를 우격다짐으로 지순영의 보지 속으로 쑤셔 넣는다.
“하 앗! 엄마 얏!”
통증을 느낀 지순영이 작살에 꿰인 물고기처럼 버둥거린다. 골반이 터지는 고통으로 지순영은 숨조차 쉴수 없었다. 간신히 보지 입구에 귀두만 걸친 남자는 힘껏 자지를 밀어 넣는다. 결국은 어린 여자의 보지 속으로 자지 뿌리까지 집어 넣은 남자는 진절머리를 친다. 지순영은 보지 속이 찢어지는 고통에 남자의 손에 잡힌 다리를 죽을 힘을 다해 뻗어 발버둥친다. 그녀의 발버둥치는 발길에 가슴이 채인 남자가 뒷걸음을 쳤다. 그녀의 발가벗겨진 하복부에는 붉은 선혈이 맺혀 있었다. 시근덕거리며 다가선 남자가 그녀의 뺨을 후려쳤다.
“이런 쌍년이! 죽고 싶어!”
"하 악~!"
남자의 손바닥에 얻어맞은 지순영의 얼굴이 획 돌아간다. 이맛살을 찌푸린 남자는 다시 지순영의 보지 속으로 자지를 힘껏 밀어 넣었다.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은 그녀의 몸이 흔들리며 허우적거렸다. 남자의 자지가 보지속을 짓이길 때마다 지순영의 들어 올려진 다리가 출렁거린다. 창문 안을 들여다보고 있던 이진아는 분노로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아서 주저앉았다. 괴한들에게 윤간을 당하던 고통이 되살아났다.
"개 같은 놈!"
입술을 깨물고 일어선 그녀의 눈동자에서는 불꽃이 튄다. 고통스러웠던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살피는데, 맞은편에 쌓인 건축 자재들 중에 나무상자가 보였다. 그녀는 부리나케 가서 나무상자를 들고 왔다. 그리고 창 문 밑에 나무상자를 놓고 뒷걸음친다.
이진아는 책가방을 어깨에 메고 속으로 외친다. ‘죽여 버릴 거야!’ 그녀는 이를 악물고 창문을 향해 달려갔다. 나무 상자를 딛고 점프를 한 그녀는 들고 있는 책가방을 방패삼아 유리 창문으로 몸을 던졌다. 그녀의 몸이 유리 창문을 박살내고 사무실 바닥을 구른다. 한 바퀴 회전을 하여 바닥을 구른 그녀는 바지를 발목에 걸고 있는 중년남자의 엉덩이를 돌려 찼다. 여학생의 허벅지 사이에 하복부를 잇대고 안간힘을 쓰던 중년남자는 느닷없이 발길에 채여 옆으로 나뒹군다.
“헉~! 뭐야.”
“개만도 못한 놈! 죽일 거야.”
바닥에 벌렁 자빠진 남자는 당혹스러워 이진아를 올려다본다. 자신을 걷어찬 상대가 고작해서 나이어린 여고생이라는 것에 기가 막혔다. 그는 불명예 전역을 당했지만 육군 정보기관 출신 박문철이었다. 공수부대 출신으로 많은 경험을 쌓았다고 자부하는 그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으며 일어섰다. 바지가 흘러내린 그의 하복부에는 진액으로 번들거리는 흉물이 흔들거린다. 화가 치밀어 오른 그는 바지를 추키면서 이진아에게 다가서면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X 같은 계집애가 겁도 없이.......”
“핫!”
이진아를 후려치려던 박문철이 도리어 기압소리와 함께 책상을 짚고 휘청거린다. 그가 손을 뻗치기 전에 이미 그의 관자노리에 이진아의 발길이 작열한 것이다. 박문철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너무 상대를 얕보았다는 자신의 실책을 느꼈다. 그는 책상을 짚고 한발 물러서며 여고생이라고 만만하게 볼 수 없다는 판단을 한다. 박문철은 매섭게 노려보는 여고생의 눈빛을 의식한다. 허리띠를 조이고 상대를 제압할 자세를 취한다.
“하~! 까불고 있네! 너 얘 친구냐? 날 잡아 잡숴달라고 왔네.”
“죽여 버릴 거야!”
이글거리는 눈빛을 한 이진아가 박문철을 향해 돌진한다. 어쩌면 이진아의 무모한 공격인지도 모른다. 박문철의 명치끝을 향해 이진아의 주먹이 번개처럼 가격한다. 그러나 당하고 있을 박문철이 아니었다. 옆으로 몸을 비튼 그가 이진아의 팔을 낚아채어 내던진다. 우지끈 하는 소리와 함께 이진아의 몸이 의자에 부딪쳐 사무실 구석에 처박힌다. 아울러 쨍그랑 소리와 함께 이진아의 손에 끼었던 반지가 빠져 책상 밑으로 굴러간다. 이진아에게 당한 것이 분한지, 박민철이 씨근덕거리며 쓰러진 이진아에게 다가간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어디서!?”
“.........”
정신을 잃고 하복부를 들어내고 책상위에 눕혀져 있던 지순영이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은 그녀는 이를 악물고 상체를 일으켰다. 팔이 뒤로 묶인 그녀가 사무실 구석으로 기어간다. 하복부가 찢어지는 통증을 느끼는 지순영은 그제야 구석에 처박힌 사람이 같은 학교의 여고생이라는 것을 알았다. 박문철이 쓰러진 이진아를 무자비하게 발로 걷어차기 시작한다.
“내가 누군지 알아!? 너 같은 년, 하나 죽이는 것은 식은 죽 먹기야.”
“윽........!”
이진아는 그에게 벗어나려고 엉금엉금 기어 문 쪽으로 다가간다. 간신히 일어서서 문고리를 열려고 하는데, 다시 박문철의 주먹이 그녀의 턱을 강타한다. 입가에 피를 주르륵 흘린 이진아는 ‘우당탕!’하는 소리와 함께 캐비닛을 들이받고 다시 쓰러진다. 박문철이 씨근덕거리며 그녀에게 다가온다.
“개 같은 년.......! 이런 년이 다 있어.”
이진아는 허리와 등의 뼈마디가 부서지는 통증을 느꼈다. 다가서는 남자의 발길질은 계속되고 이진아는 여기서 죽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윤간을 당하던 장면을 떠올리며 이를 악문다. 캐비닛 구석에 세워진 철제 지렛대가 시야에 들어온다.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에 맞추어 심장소리가 커진다. 박문철의 구둣발이 그녀의 머리를 향해 날아온다. 순간 그녀는 쓰러진 자세에서 철제지렛대를 움켜쥔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구둣발을 향해 휘두른다.
“하 악~!”
“..........”
발을 들어 올렸던 박민철이 외마디를 지르며 고꾸라진다. 이진아는 사력을 다해 일어나 들고 있는 철제지렛대로 박민철의 머리를 내려친다. 박민철의 머리에서 피가 분수처럼 터져 흐른다. 눈에 불꽃이 튀는 이진아의 손에 들은 지렛대가 박민철을 연거푸 내려쳤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환청이 들린다.
‘죽여라! 그러면 고통에서 벗어날지니!’
이진아가 지렛대를 휘두를 때마다 사무실 바닥에는 박민철의 머리와 몸에서 흘러내린 피로 얼룩져 간다. 그녀의 눈빛이 흡혈귀처럼 붉게 물들어 있다. 남자는 이미 숨을 거두었는지 피가 엉킨 살갗이 반사적으로 흔들릴 뿐이다. 그래도 그녀는 이를 악물고 마치 광기를 부리는 마녀같이 철제지렛대를 휘두른다.
“죽일 거야! 죽어! 죽어!”
“.........!?”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던 지순영은 끔찍한 장면에 자신이 당한 고통보다 더한 공포를 느껴 벌벌 떤다. 박민철이 반응이 없이 몸이 선혈로 낭자하게 될 즈음에 이진아의 행동이 멈춰진다. 마치 몽유병 환자처럼 서 있는 그녀의 손에서 철제지렛대가 떨어져 내리며 날카로운 소리를 일으킨다.
양 팔을 축 늘어트린 이진아는 힘없이 의자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운동을 하고 나서의 노곤함 같은 기분을 느낀다. 어쩌면 자신도 알지 못하는 쾌감이었다. 몸은 피로를 느껴 나른하지만, 통쾌함과 아울러 정신은 예민해진다. 무언가 해야 할 일이 있는 것 같다. 그녀가 바라보는 구석진 책상 위의 낡은 테이프플레이어가 시야에 들어온다.
이진아는 부스스 일어나서 바닥에 흩어진 자신의 책가방을 집어 든다. 책가방 속에서 항상 듣고 있던 워크맨을 꺼낸다. 워크맨을 열어 카세트테이프를 꺼내 테이블 위의 테이프플레이어 꽂아 넣고 스위치를 작동시킨다. 지지직하는 소리에 이어 오페라 ‘나부코’가 흘러나온다. 의자에 털썩 앉은 이진아의 무표정한 얼굴에 묘한 희소가 떠오른다.
바라보고 있는 지순영은 이진아의 괴이한 행동에 공포감을 느껴 오싹해진다. 잠시 테이프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오는 오페라를 듣고 있건 그녀는 의자에서 일어선다. 바닥에서 지렛대를 집어 들고 먼지가 뽀얗게 쌓인 싱크대로 다가간다. 수도꼭지를 틀어 지렛대를 물로 씻어 팽개친다. 손에 묻은 피를 닦은 그녀는 파랗게 질려서 쳐다보는 지순영에게 다가가 팔에 묶인 밧줄을 풀어준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
“응,........”
“어차피 당한 일, 말한다고 보상해 줄 사람 없어.”
“........알았어.”
그때서야 지순영은 눈물을 흘리며 울먹거린다. 지순영은 이진아의 행동과 명령조의 차가운 목소리가 같은 여고생이라고 믿기 어려웠다. 강압적인 말투이지만, 모든 상황이 자기 자신으로 일어난 일이라 지순영은 자책감이 들어 할 말이 없었다. 그녀는 홀로 된 어머니와 자신 두 식구뿐이다. 더욱이나 품팔이로 어려운 살림을 꾸며가다가 병든 어머니를 슬프게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다만, 죽었는지 꼼짝도 하지 않는 남자를 보니 지순영은 두려웠다. 흐르고 있는 ‘나부코’의 음률이 선혈로 낭자한 사무실의 광경을 더욱 끔찍하게 느끼게 한다.
“저, 저 사람 죽은 거 아냐? 어떡해......!?”
“염려 마! 너하고 나만 잊으면 돼. 안다고 해도 우리는 정당방위야.”
이진아의 말을 이해했는지 지순영이 훌쩍거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진아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밖으로 나가서 승용차의 뒷좌석 열려진 문으로 다가간다. 지순영의 책가방을 들고 잠시 망설이다가 좌석 뒤에 꽂힌 장갑을 집어 들었다. 사무실로 다시 들어가 찢어진 교복 상의를 추슬러 입는 지순영에게 가방을 건네준다.
그리고 이진아는 망설이더니 책가방에서 검은 매직을 깨내서 든다. 손에 들고 있는 장갑을 끼고 쓸어져 있는 박민철에게 다가간다. 박민철의 입술을 들고 있는 검은 매직으로 검게 칠한다.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내려다보다가 박민철의 안주머니를 뒤져서 지갑을 꺼낸다. 지갑 속에 들은 신분증과 명함 등을 바닥에 쏟아놓고 현금 다발을 손에 쥔다. 지갑을 바닥에 팽개치고 현금을 지순영에게 건네준다.
“자! 이건 네 꺼야!”
“........!”
“가자!”
“..........!?”
사무실 안을 휘둘러 본 이진아는 책가방을 집어 들고 사무실을 나간다. 이진아에게 받은 현금 다발을 들여다보던 지순영이 주춤거리다가 이진아의 뒤를 쫓아 나선다. 뒤를 돌아본 이진아가 어기적거리며 걷는 지순영을 부축한다. 주차장을 나서는 그녀들의 모습이 사거리 모퉁이를 돌아간다. 한 차례 불어오는 바람에 열려있던 승용차 문이 슬며시 닫힌다.
강민우는 찝찝한 마음으로 왕릉으로 지프차를 몰고 있었다. 간첩과 접선한다는 용의자에 대한 정보 수집을 나섰지만 성과가 없었다. 조수석에서는 문경환이 음료수를 마시고 있다. 아무래도 늦게 먹은 점심 식사가 짰었든 모양이다. 아직 개인 업무를 부여받지 못한 문경환은 조수처럼 강민우를 쫓아다니며 경험을 쌓고 있다.
문경환이 들고 있던 무전기에서 수신신호가 잡히는 소리에 이어 정보A팀을 부른다. 무전기 통화버튼을 누른 문경환은 그동안의 경험을 시험하듯이 헛기침을 한 후에 인위적으로 노숙한 목소리를 흘린다.
“네 정보 A팀입니다.”
“박민철이 하남 xaxx지점에서 시체로 발견됐다. 현장출두 바란다.”
“네, 정보A팀 접수합니다.”
박민철이라면 강민우 팀이 추적하고 있던 대상 인물 중 한명이었다. 간첩과 접선하려는 용의자였고 정보기관 출신으로 국가정보 유출을 하려는 용의자이기도 하다. 박민철이 사망했다면 맡은 업무가 난관에 부딪칠 수도 있기에 강민우는 이맛살을 찌푸린다. 문경환은 무전기를 받아 응답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강민우를 바라본다.
“사망한 박민철의 현장으로 가라는데요.”
“가고 있잖아.”
신경이 날카로워진 강민우가 지프차를 급회전 시킨다. 지프차는 180도를 돌아서 오던 길을 되돌아간다. 강민우는 지프차 지붕위에 붉은 비상등을 올려놓으며 가속페달을 밟는다. 미로를 빠져 나가듯이 자동차들 사이를 곡예하며 붉은 등이 번쩍거리며 지프차가 질주한다. 길지 않은 시간을 숨 가쁘게 달린 지프차가 현장에 도착했다. 박민철이 사망한 주차장현장에는 이미 경찰차, 병원 구급차, 그리고 정사복의 경찰이 도착해 있었다.
지프차에서 내린 강민우는 웅성거리고 모여 있는 사람들을 헤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주차장 입구를 지키고 있는 경찰에게 신분증을 슬쩍 보이고 들어가 조립식 사무실 주위를 둘러본다. 강민우를 뒤따라가는 문경환은 공연히 어깨에 힘을 준다. 사무실 안에서는 사복형사들이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사복형사 중에 머리가 벗겨진 형사가 강민우 앞을 가로 막는다.
“무슨 일로.......?”
“수고 하십니다. 석관동에서 나왔습니다.”
강민우는 상대가 신분을 확인하는 것에는 개의치 않고 신분증을 들었다가 호주머니에 다시 넣는다. 상대는 석관동이라는 말과 느낌만으로도 신분을 확인 했을 것이다. 머리가 벗겨진 형사는 위압감을 느껴서인지 굽실거리며 자세로 자신의 신분을 밝힌다.
“아! 내. 저는 광주경찰서 수사계장 임춘수 경위입니다.”
“..........”
강민우는 임계장이 안중에 없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의 날카로운 시선은 현장 검증을 하는 경찰 요원들의 움직임과 주위를 살피고 있다. 박민철은 끔찍한 모습으로 사망해 있었다. 사무실 바닥은 선혈이 낭자하고 피가 응고되기 시작하여 검붉은 빛을 띠고 있다. 강민우가 뚜벅뚜벅 박민철의 시신으로 다가갔다.
시신을 덮고 하얀 천을 들어 보았다. 누군가 죽이기로 작정을 한 것처럼 박민철을 짓이겨 놓았다. 강민우는 폭력배들끼리의 난투극이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심각한 표정을 지은 강민우는 양손을 호주머니에 찔러 넣는다. 강민우의 출현에 형사들이 의아스런 눈빛을 한다. 형사들의 의문스러워하는 표정을 읽은 임춘수 경위가 형사들에게 강민우의 신분에 대해서 귓속말로 알려준다.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있던 강민우는 박민철의 시신을 넘어 책상 앞에 다가선다. 책상 서랍들을 당겨 열어본다. 혹시나 간첩과의 접선이나 정보를 누설하는 단서라도 얻을지 모르는 행동이다. 서랍마다 당겨보았으나 여자의 선정적인 사진이 실린 잡지가 보이고, 볼펜과 연필들만 데구루루 구른다. 돌아서려던 그는 잠시 멈추고 책상 밑을 바라본다. 사무실 입구로 바람이 불어 책상 아래 떨어진 신문지가 들썩거리는데 무엇인가 반짝이는 것이 눈에 뜨인다.
강민우는 무심코 한쪽 팔을 뻗어 반짝이는 반지를 집어 들어 보고는 얼른 호주머니에 넣는다. 주위의 형사들 눈치를 살피는 그는 얼어붙은 것처럼 꼼짝 할 수가 없었다. 우연의 일치일까, 작년 크리스마스에 이진아에게 사준 반지와 똑같았다. 바닥에 뒹구는 신문들과 방치해둔 배달음식 그릇 등 쓰레기들이 섞여있어서 다행히도 경찰의 현장검증 요원들이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다.
순간적으로 오싹하는 느낌이 드는 강민우는 긴장했다. 남고생과 싸웠던 이진아의 분노에 찬 표정이 실루엣처럼 떠오른다. 이진아에게 사준 반지가 확실하다면 그녀와 관계가 있는 것일까! 강민우의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진다. 긴 한숨을 내쉬고 혹시 현장요원들이 빠트린 단서가 있는지 살피며 천천히 사무실 안을 배회한다. 그가 녹이 슨 캐비닛 옆의 테이블로 다가갔다. 테이블에는 먼지가 소복이 쌓여 있는데 낡은 테이프플레이어의 버튼에만 먼지가 지워져 있었다.
테이프는 끝까지 돌아가 멈추어져 있었다. 되감기 버튼을 누른다. 테이프플레이어는 정상적으로 작동이 되었다. 철컥! 소리와 함께 되감기 동작이 멈췄다. 강민우는 고개를 갸웃하고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감전된 사람처럼 깜짝 놀라며 한 걸음 물러선다. 오페라 ‘나부코’가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반지와 ‘나부코’는 우연의 일치인가! 강민우는 현장검증을 하는 주위를 둘러본다.
“여기 처음 현장을 발견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전데요! 순찰을 돌다가 발견했습니다.”
정복을 한 경관이 대답을 하고 강민우의 눈치를 살핀다. 강민우는 자신도 모르게 흥분 하고 있었다. 공연히 어깨에 힘을주고 배회를 하던 문경환이 강민우의 표정을 유심히 살핀다. 문경환은 안기부요원이라는 우월감에 젖어 경찰요원들이 발견 못하는 단서를 팀장이 발견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강민우는 테이프플레이어를 가리키며 마른 침을 삼킨다.
“이 테이프 플레이어가 돌아가고 있었습니까?”
“네. 그런데 철컥 소리가 나서 보니 바로 정지되던데요.”
“몇 시쯤이죠?”
“제가 손목시계를 봤는데 정확히 4시 십분 이었습니다.”
“사망 시간은........!?”
“3시 반경으로 추정합니다.”
박민철의 시신을 확인하던 푸른색 가운을 걸친 경찰 현장수사요원이 대답을 한다. 강민우가 박민철의 시신 옆으로 다가갔다. 하얀 천 밖으로 들어난 박민철의 팔을 들어본다. 박민철이 끼고 있는 손목시계는 유리가 깨져있고 시계의 시침은 3시를 분침은 40분을 가르치고 있었다. 강민우는 일어나서 테이프를 꺼내들었다, 테이프에는 플레이어 시간이 20분으로 되어있다. 그렇다면 박민철이 사망한 시간은 경찰이 추정한 시간보다 뒤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
“사망 시간은 3시 오십분이 지나서인데.......”
“네.......!?”
박민철의 사망 추정 시간을 말했던 수사요원이 의아스런 표정을 짓는다. 박민철이 사망한 후에 상대는 테이프플레이어를 틀어서 듣고 있었다. 보통 대담한 사람이 아니면 시체를 놓고 여유 있게 음악을 듣고 있을 수가 없다. 강민우는 아직도 테이프플레이어에서 ‘나부코’오페라가 흘러나오는 것 같다. ‘나부코. 음률 속에는 왜 그런지 이진아의 모습이 떠오른다. 강민우는 깊은 한 숨을 내쉬며 사무실 문 앞에 있는 임 경위에게 다가간다.
“본 사건은 우리가 비밀리에 수사하고 있는 긴급사건과 관련된 것입니다. 현장검증이 끝난 후 바로 사망자 시신과 조사 자료를 넘겨주십시오.”
“그렇다면 상부에 보고는.......?”
“못 알아들어요? 간첩 용의자란 말이요!”
“아! 네........”
강민우는 신경질적으로 내뱉었다. 그리고 몸을 돌려 주차장사무실을 나간다. 강민우를 쫓아 사무실을 나오는 문경환은 요즘 팀장의 컨디션이 썩 좋아 보이지 않은 것을 느낀다. 주차장 입구에 몰려든 구경꾼들을 헤치고 강민우는 주차된 지프차로 향한다. 지프차 운전석에 오르려다가 문경환에게 묻는다.
“사무실까지 태워다 줄까?”
“어디 가시려고요......!?”
“음, 볼일이 있어서........”
“괜찮습니다. 저는 버스타고 갑니다.”
문경환은 강민우를 벗어나는 것이 차라리 편했다. 어차피 오늘 하루는 업무가 끝난 것이고 모처럼 시간을 내어 친구들을 만나 술 한 잔 마시면서 안기부직원이 된 자신을 피력하고 싶었다. 문경환은 부동자세로 허리 굽혀 인사를 하고 빠른 걸음을 옮긴다. 사거리 모퉁이를 돌아서 걸어가는 문경환의 옆으로 강민우의 지프차가 스쳐 지나간다.
하남읍을 지난 강민우의 지프차가 비포장도로로 들어서면서 몹시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의 머릿속에는 박민철의 처참한 시신이 흔들리는 영상으로 떠오른다. 많은 시신을 보았지만, 그토록 잔인하게 살해당한 시신은 흔치 않았다. 남학생들과 싸움을 하고 경찰서 대기실에 앉아 있던 이진아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당시에 이진아의 얼굴에 나타나는 이글거리는 분노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고 강민우는 두렵기까지 했다. 반지와 그리고 오페라 ‘나부코’는 이진아를 가리키고 있다. 하지만, 박민철의 사망에 이진아가 관련되었다고 믿고 싶지 않다. 만약 이진아가 관련되었다면 그녀도 큰 타격을 받았을 것이다. 집이 가까워질수록 강민우는 두려운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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