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연재입니다. 떨리는걸요?
리플 환영"ㅂ"/
1. 연하의 남친
“야. 어렵게 생각할 거 없어. 남자란 생물은 원래 멍석만 깔아주면 알아서 춤추게 되어 있다니까.”
“정……정말 그럴까?”
나는 나랑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인 L을 바라봤다. L은 갸름한 턱선에 큰 눈을 가지고 있는 미인형 얼굴이었는데 내 친구들 중에선 일명 ‘노는’ 축에 속했다. 처녀 딱지는 중학교 때 뗀지 오래고, 대학생이 된 이후로는 친구들과 함께 모이면 언제나 자신은 클럽에 가서 괜찮은 남자를 낚아 술도 얻어 먹고 재미있게 논다고 자랑하곤 했던 것이다. 사실 L같은 녀석과 내가 친해진 것은 희한한 일이었다. 나같이 평범한 여자애들은 L같은 타입을 은근히 ‘무서워’하고, L같은 타입들은 나 같은 애들을 ‘지루하고 답답하다’라고 생각해서 가까이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의 취향과는 관계 없이 고등학교 때부터 맘 맞는 친구로 지내고 있었다. L은 나의 머뭇거리는 질문에 선뜻 대답했다.
“당연하지! 고민할 것도 없어!”
“근데 남자들도 몸매 보지 않냐? 난 몸매 자신 없어서…….”
“아 당연 보긴 하지. 하지만 여자가 옷 벗고 덤비는데야 뱃살 좀 붙었다고 해서 남자들이 싫어하는 줄 알아? 내가 보긴 딱 90%다, 90%!”
“뭐가 90%인데?”
“성공률!”
“어우야~”
나는 부끄러움과 민망함에 자지러지게 웃었다. L는 자기 앞에 놓인 케이크를 포크로 반 토막 내며 계속 말했다.
“게다가 넌 남자친구 옆구리 찌를 거라며. 세상에 여친이 꼬시는데 거절하는 남친이 어딨냐? 걔가 너랑 사귄다는 건 너랑 잘 생각이 있단 소리라니까?”
“야! 잘 생각까지는 아직 없어. 그리고 나……몸매에 정말 자신 없는걸.”
L은 케이크를 입에 넣으며 나를 훑어봤다.
“뭐 뱃살 쬐끔 붙은 거 가지고 그래.”
“엉덩이도 크단 말야.”
“엉덩이 큰 건 오히려 좋아할걸?”
“그럴까? 나 엉덩이 땜에 미치겠어. 바지가, 허리는 막 주먹이 두 개씩 들어가는데 엉덩이가 껴서 꼭 큰 사이즈 입어야 하는 거 있지.”
“야 됐어 됐어. 그냥 오늘 아예 날 잡지 그래?”
“무슨 날?”
“정말 넘어오는지 안 넘어오는지 실험하는 날.”
“재미있을 거 같긴 한데 거절 당할까봐 겁나.”
“거절은 안 당할걸?”
“그럼 한번 해볼까?”
나는 핸드폰을 꺼내서 남친에게 문자를 쳤다. 오늘 저녁 알바가 끝나고 같이 저녁을 먹자는 내용이었다. 내 하는 꼴을 보고 있던 L이 킥킥 웃었다.
“야. 조심해라.”
“뭘?”
“끝까지 할 생각 없으면 너무 흥분시키지 말라고.”
“얘도 참. 그냥 반응만 볼 거라니까.”
“낚아보겠다 그거지?”
나는 얼굴이 붉어짐을 느꼈다.
“그냥 뭐…… 분위기 봐서.”
L은 이제 이까지 드러내면서 노골적으로 웃기 시작했다.
“야! 내일 아침 사후보고는 꼭 해라~”
“못됐어!”
남친은 나보다 두 살 연하다. 7시가 좀 넘어서 만난 남친은 피곤해 보였다. 하긴 *보 문고 같은 대형 문고에서 종일 책 나르는 알바가 쉬울 리는 없지. 남친은 해리포터 신판이 들어오는 바람에 평소보다 책을 두 배는 날랐다고 투덜거리더니 허리를 툭툭 쳤다.
“허리 아파?”
“응. 아파. 호~해줘.”
나는 빙그레 웃었다.
“우리 애기, 허리에다 호~ 해주는 대신 뺨에 뽀뽀해주면 안될까?”
“그걸론 안돼.”
남친은 자신의 입술을 가리켰다. 그때가 12월, 추운 날씨에 남친의 입술 사이에선 하얀 김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적어도 여기다 해야지.”
“……이렇게 사람 많은 데서 어떻게 해?”
내 말대로 주위에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당연했다. 여기는 저녁의 종로 거리가 아닌가. 코트나 두꺼운 자켓을 걸친 사람들은 뭐가 그리 바쁜지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남친은 씨익 웃더니 말했다.
“그럼 사람 없는 데로 갈까?”
“어디?”
“음…… 누나 DVD방 가본 적 있어?”
“아니?”
“거기 갈래?”
DVD방에 가본 적이 없다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런 나도 DVD방에서 연인들끼리 무슨 짓을 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내 나이가 몇인데 그것도 모르겠는가. 하지만 나는 웬일인지 남친 앞에만 서면 순진한 척(?)을 하고 싶어진다. 이게 바로 내숭이란 건가? 나는 짐짓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시치미를 떼고 말했다.
“음……네가 이상한 짓 안 한다고 약속하면.”
남친이 물끄러미 나를 내려다본다. 나는 155cm가 조금 넘는 키로, 남친은 나와 나란히 서면 언제나 나를 그렇게 내려다보곤 했다. 남친은 허리를 조금 숙여 나에게 얼굴을 바짝 가져다 댄 뒤 귓가에 속삭였다.
“이상한 짓 하려고 가는 건데?”
이상한 짓! 대체 뭘 어느 정도까지 하려고? 나는 뺨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몸을 살짝 틀었다. 그리고 말했다.
“음…… 그럼 안 갈래!”
남친은 웃었다. 그리고는 허리를 숙인 채 내 입술에 자기 입술을 포갰다. 따듯하고 촉촉한 느낌. 몇 초간의 키스가 끝나고 남친은 입술을 뗐다.
“정말 안 갈 거야?”
“이런 데서 키스하면 어떡해? 다들 보는데……”
“그러니까 없는 데로 가자고.”
남친은 얼른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는 거다?”
종로에 DVD방은 많았다. 우리는 카페와 같은 건물에 있는 DVD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괜히 카페에 가는 척 카페가 있는 층에서 머뭇거리다 DVD방이 있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어서 오세요~”
알바생은 내 남친 또래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애였다. 나는 부끄러운 마음에 문간에서 머뭇거렸다. 남친은 그런 나의 손목을 잡고 DVD방 안으로 쑥 들어갔다. 그리고 말했다.
“뭐 볼 거야?”
“음…… 글쎄.”
나는 DVD가 가득한 벽장을 살폈다. 하지만 글씨는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꼭 나쁜 짓을 하는 사람처럼 가슴만 두근거렸다. 결국 남친이 골랐다. ‘마파도’ 였다.
“이거 주세요.”
남친이 계산을 하는 동안 나는 멀찌감치 서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DVD방 카운터는 꼭 노래방 카운터처럼 생겼는데, 어둠침침한 분위기까지 노래방과 꼭 같았다. 계산을 마친 알바가 말했다.
“이쪽으로 오세요.”
알바는 우리를 방으로 안내했다. 방은 몹시 좁았고, 의자 대신 몸을 누일 수 있는 긴 소파가 나란히 두 개 놓여 있었다.
“즐거운 시간 되세요. 조금 기다리면 영화 나올 거에요.”
알바는 문을 닫고 나갔다. 나는 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남친은 코트를 벗어 대충 던져놓고 가방도 그 위에 얹었다. 그리고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코트 이리 줘.”
나는 코트와 목도리를 벗어서 남친에게 건네줬다. 그러자 남친은 아무 데나 던져 놓은 자신의 옷과는 달리 내 옷과 목도리를 벽에 달린 옷걸이에 차곡차곡 거는 것이 아닌가. 내가 말했다.
“네 옷도 걸어. 저렇게 던져놓지 말고.”
“안돼.”
“왜?”
“급해서.”
다음 순간 남친의 얼굴이 확 나에게 가까워졌다. 분명 몇 걸음 떨어져 있었는데 어떻게 그런 빠른 속도로 다가왔는지 모르겠다. 길고 단단한 팔이 내 등을 감쌌다. 남자의 팔이었다. 나는 남친의 품 안에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너 표정 무섭다.”
“무서워?”
“응. 화난 사람 같아.”
“……화난 것 아냐.”
남친은 나를 껴안은 채 부드럽게 소파 방향으로 밀었다. 뒷걸음치던 나는 소파에 안착했고, 남친은 팔을 풀더니 조심스레 내 옆에 앉았다. 나는 잠시 남친에게 눈을 떼고 한쪽 벽면을 크게 차지하고 있는 화면을 보았다.
“이제 영화 보자.”
“응…….”
그러면서도 남친은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우리는 손을 꼭 잡고 한동안 그대로 앉아 있었다. 나는 눈은 영화 화면을 보면서도 신경은 남친에게서 떠나질 않았다. 힐끗힐끗 남친을 보니 그 녀석은 영화 화면은 전혀 안 보고 내 옆얼굴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말했다.
“너 영화 안 봐?”
“음. 봐야지.”
하지만 말 뿐이었다. 남친은 오히려 허리를 완전 틀어서 한 팔은 내 등 뒤에 넣고 다른 한 팔로는 어깨를 감싸는 것이 아닌가. 얼굴은 더욱 가까워졌다. 씩씩대는 남친의 숨소리가 귓가에서 들릴 정도다.
“그렇게 하면 네 머리 땜에 화면이 안 보이는데…….”
나는 말을 마칠 수 없었다. 남친의 입술이 내 입을 막았던 것이다. 마른 빨래처럼 보송보송 건조한 입술이었다. 뜨거웠다. 나는 남친이 아예 몸을 일으켜서 다리 한 쪽을 내 몸 반대쪽에 놓는 것을 보았다. 우리는 완전히 마주본 자세가 되었다. 나는 소파에 기대어 누워 있었고, 그런 나를 아래에 둔 채 남친은 무릎으로 몸을 버티고 있는 것이다. 키스는 계속 이어졌다. 이윽고 뜨겁고 촉촉한 것이 남친의 입술 사이에서 나왔다. 그리고 조용히 내 입술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아…….”
나는 고개를 약간 틀었지만 남친은 집요했다. 역시 나처럼 고개를 조금 움직여 움직임을 따라온다. 입술은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남친의 혀는 내 이와 입천장을 부드럽게 훑고, 뒤이어 내 혀를 집요하게 건드리기 시작했다. 나는 혀를 이리저리 움직여 피해보려 했지만 외려 남친과 내 혀는 얽혀만 갔다. 가벼운 현기증이 일었다. 입을 다물 수가 없다. 내 입술은 조금씩 크게 벌어져 갔고 남친의 혀는 마치 내 입의 정복자라도 되는 양 입 안의 구석구석을 핥고 휘젓기 시작했다. 침 한 방울이 벌어진 내 입술 가장자리로 흘러내린다. 나는 놀라서 입술을 뗐다. 남친은 몽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왜 그래?”
“나 침 흘렸어. 더럽게……”
“더럽지 않아.”
남친의 목소리는 낮고 축축했다.
“나한테도 혀 넣어줘.”
나는 그렇게 했다. 남친은 부드럽게 내 혀를 빨아들였고, 나는 혀뿌리가 찌릿찌릿 해져옴을 느꼈다. 우리는 그렇게 오래도록 키스를 했다.
나는 핸드폰을 열었다. 시간은 우리가 들어온 후로 20분 가까이 흘러 있었다. 이렇게 오래 키스한 것은 처음이다. 남친은 다시 내 옆에 누웠다. 그리고 팔베개를 해 주었다. 나는 조용히 남친의 품에 파고들었고 남친은 나를 감싸 안았다. 따듯했다.
“기분 좋았어.”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남친은 이가 보이게 슬쩍 웃었다.
“음……특히 어떨 때?”
“혀가 여기……입천장에 닿았을 때.”
“그랬구나.”
“우리 애기도 기분 좋았어?”
나는 내 남자친구를 ‘애기’라는 애칭으로 자주 부르곤 했다. 남친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응. 좋았지.”
남친은 내 뺨에 쪽 뽀뽀를 했다. 그리고 말했다.
“내가 더 기분 좋게 해줄까?”
리플 환영"ㅂ"/
1. 연하의 남친
“야. 어렵게 생각할 거 없어. 남자란 생물은 원래 멍석만 깔아주면 알아서 춤추게 되어 있다니까.”
“정……정말 그럴까?”
나는 나랑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인 L을 바라봤다. L은 갸름한 턱선에 큰 눈을 가지고 있는 미인형 얼굴이었는데 내 친구들 중에선 일명 ‘노는’ 축에 속했다. 처녀 딱지는 중학교 때 뗀지 오래고, 대학생이 된 이후로는 친구들과 함께 모이면 언제나 자신은 클럽에 가서 괜찮은 남자를 낚아 술도 얻어 먹고 재미있게 논다고 자랑하곤 했던 것이다. 사실 L같은 녀석과 내가 친해진 것은 희한한 일이었다. 나같이 평범한 여자애들은 L같은 타입을 은근히 ‘무서워’하고, L같은 타입들은 나 같은 애들을 ‘지루하고 답답하다’라고 생각해서 가까이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의 취향과는 관계 없이 고등학교 때부터 맘 맞는 친구로 지내고 있었다. L은 나의 머뭇거리는 질문에 선뜻 대답했다.
“당연하지! 고민할 것도 없어!”
“근데 남자들도 몸매 보지 않냐? 난 몸매 자신 없어서…….”
“아 당연 보긴 하지. 하지만 여자가 옷 벗고 덤비는데야 뱃살 좀 붙었다고 해서 남자들이 싫어하는 줄 알아? 내가 보긴 딱 90%다, 90%!”
“뭐가 90%인데?”
“성공률!”
“어우야~”
나는 부끄러움과 민망함에 자지러지게 웃었다. L는 자기 앞에 놓인 케이크를 포크로 반 토막 내며 계속 말했다.
“게다가 넌 남자친구 옆구리 찌를 거라며. 세상에 여친이 꼬시는데 거절하는 남친이 어딨냐? 걔가 너랑 사귄다는 건 너랑 잘 생각이 있단 소리라니까?”
“야! 잘 생각까지는 아직 없어. 그리고 나……몸매에 정말 자신 없는걸.”
L은 케이크를 입에 넣으며 나를 훑어봤다.
“뭐 뱃살 쬐끔 붙은 거 가지고 그래.”
“엉덩이도 크단 말야.”
“엉덩이 큰 건 오히려 좋아할걸?”
“그럴까? 나 엉덩이 땜에 미치겠어. 바지가, 허리는 막 주먹이 두 개씩 들어가는데 엉덩이가 껴서 꼭 큰 사이즈 입어야 하는 거 있지.”
“야 됐어 됐어. 그냥 오늘 아예 날 잡지 그래?”
“무슨 날?”
“정말 넘어오는지 안 넘어오는지 실험하는 날.”
“재미있을 거 같긴 한데 거절 당할까봐 겁나.”
“거절은 안 당할걸?”
“그럼 한번 해볼까?”
나는 핸드폰을 꺼내서 남친에게 문자를 쳤다. 오늘 저녁 알바가 끝나고 같이 저녁을 먹자는 내용이었다. 내 하는 꼴을 보고 있던 L이 킥킥 웃었다.
“야. 조심해라.”
“뭘?”
“끝까지 할 생각 없으면 너무 흥분시키지 말라고.”
“얘도 참. 그냥 반응만 볼 거라니까.”
“낚아보겠다 그거지?”
나는 얼굴이 붉어짐을 느꼈다.
“그냥 뭐…… 분위기 봐서.”
L은 이제 이까지 드러내면서 노골적으로 웃기 시작했다.
“야! 내일 아침 사후보고는 꼭 해라~”
“못됐어!”
남친은 나보다 두 살 연하다. 7시가 좀 넘어서 만난 남친은 피곤해 보였다. 하긴 *보 문고 같은 대형 문고에서 종일 책 나르는 알바가 쉬울 리는 없지. 남친은 해리포터 신판이 들어오는 바람에 평소보다 책을 두 배는 날랐다고 투덜거리더니 허리를 툭툭 쳤다.
“허리 아파?”
“응. 아파. 호~해줘.”
나는 빙그레 웃었다.
“우리 애기, 허리에다 호~ 해주는 대신 뺨에 뽀뽀해주면 안될까?”
“그걸론 안돼.”
남친은 자신의 입술을 가리켰다. 그때가 12월, 추운 날씨에 남친의 입술 사이에선 하얀 김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적어도 여기다 해야지.”
“……이렇게 사람 많은 데서 어떻게 해?”
내 말대로 주위에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당연했다. 여기는 저녁의 종로 거리가 아닌가. 코트나 두꺼운 자켓을 걸친 사람들은 뭐가 그리 바쁜지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남친은 씨익 웃더니 말했다.
“그럼 사람 없는 데로 갈까?”
“어디?”
“음…… 누나 DVD방 가본 적 있어?”
“아니?”
“거기 갈래?”
DVD방에 가본 적이 없다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런 나도 DVD방에서 연인들끼리 무슨 짓을 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내 나이가 몇인데 그것도 모르겠는가. 하지만 나는 웬일인지 남친 앞에만 서면 순진한 척(?)을 하고 싶어진다. 이게 바로 내숭이란 건가? 나는 짐짓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시치미를 떼고 말했다.
“음……네가 이상한 짓 안 한다고 약속하면.”
남친이 물끄러미 나를 내려다본다. 나는 155cm가 조금 넘는 키로, 남친은 나와 나란히 서면 언제나 나를 그렇게 내려다보곤 했다. 남친은 허리를 조금 숙여 나에게 얼굴을 바짝 가져다 댄 뒤 귓가에 속삭였다.
“이상한 짓 하려고 가는 건데?”
이상한 짓! 대체 뭘 어느 정도까지 하려고? 나는 뺨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몸을 살짝 틀었다. 그리고 말했다.
“음…… 그럼 안 갈래!”
남친은 웃었다. 그리고는 허리를 숙인 채 내 입술에 자기 입술을 포갰다. 따듯하고 촉촉한 느낌. 몇 초간의 키스가 끝나고 남친은 입술을 뗐다.
“정말 안 갈 거야?”
“이런 데서 키스하면 어떡해? 다들 보는데……”
“그러니까 없는 데로 가자고.”
남친은 얼른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는 거다?”
종로에 DVD방은 많았다. 우리는 카페와 같은 건물에 있는 DVD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괜히 카페에 가는 척 카페가 있는 층에서 머뭇거리다 DVD방이 있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어서 오세요~”
알바생은 내 남친 또래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애였다. 나는 부끄러운 마음에 문간에서 머뭇거렸다. 남친은 그런 나의 손목을 잡고 DVD방 안으로 쑥 들어갔다. 그리고 말했다.
“뭐 볼 거야?”
“음…… 글쎄.”
나는 DVD가 가득한 벽장을 살폈다. 하지만 글씨는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꼭 나쁜 짓을 하는 사람처럼 가슴만 두근거렸다. 결국 남친이 골랐다. ‘마파도’ 였다.
“이거 주세요.”
남친이 계산을 하는 동안 나는 멀찌감치 서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DVD방 카운터는 꼭 노래방 카운터처럼 생겼는데, 어둠침침한 분위기까지 노래방과 꼭 같았다. 계산을 마친 알바가 말했다.
“이쪽으로 오세요.”
알바는 우리를 방으로 안내했다. 방은 몹시 좁았고, 의자 대신 몸을 누일 수 있는 긴 소파가 나란히 두 개 놓여 있었다.
“즐거운 시간 되세요. 조금 기다리면 영화 나올 거에요.”
알바는 문을 닫고 나갔다. 나는 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남친은 코트를 벗어 대충 던져놓고 가방도 그 위에 얹었다. 그리고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코트 이리 줘.”
나는 코트와 목도리를 벗어서 남친에게 건네줬다. 그러자 남친은 아무 데나 던져 놓은 자신의 옷과는 달리 내 옷과 목도리를 벽에 달린 옷걸이에 차곡차곡 거는 것이 아닌가. 내가 말했다.
“네 옷도 걸어. 저렇게 던져놓지 말고.”
“안돼.”
“왜?”
“급해서.”
다음 순간 남친의 얼굴이 확 나에게 가까워졌다. 분명 몇 걸음 떨어져 있었는데 어떻게 그런 빠른 속도로 다가왔는지 모르겠다. 길고 단단한 팔이 내 등을 감쌌다. 남자의 팔이었다. 나는 남친의 품 안에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너 표정 무섭다.”
“무서워?”
“응. 화난 사람 같아.”
“……화난 것 아냐.”
남친은 나를 껴안은 채 부드럽게 소파 방향으로 밀었다. 뒷걸음치던 나는 소파에 안착했고, 남친은 팔을 풀더니 조심스레 내 옆에 앉았다. 나는 잠시 남친에게 눈을 떼고 한쪽 벽면을 크게 차지하고 있는 화면을 보았다.
“이제 영화 보자.”
“응…….”
그러면서도 남친은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우리는 손을 꼭 잡고 한동안 그대로 앉아 있었다. 나는 눈은 영화 화면을 보면서도 신경은 남친에게서 떠나질 않았다. 힐끗힐끗 남친을 보니 그 녀석은 영화 화면은 전혀 안 보고 내 옆얼굴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말했다.
“너 영화 안 봐?”
“음. 봐야지.”
하지만 말 뿐이었다. 남친은 오히려 허리를 완전 틀어서 한 팔은 내 등 뒤에 넣고 다른 한 팔로는 어깨를 감싸는 것이 아닌가. 얼굴은 더욱 가까워졌다. 씩씩대는 남친의 숨소리가 귓가에서 들릴 정도다.
“그렇게 하면 네 머리 땜에 화면이 안 보이는데…….”
나는 말을 마칠 수 없었다. 남친의 입술이 내 입을 막았던 것이다. 마른 빨래처럼 보송보송 건조한 입술이었다. 뜨거웠다. 나는 남친이 아예 몸을 일으켜서 다리 한 쪽을 내 몸 반대쪽에 놓는 것을 보았다. 우리는 완전히 마주본 자세가 되었다. 나는 소파에 기대어 누워 있었고, 그런 나를 아래에 둔 채 남친은 무릎으로 몸을 버티고 있는 것이다. 키스는 계속 이어졌다. 이윽고 뜨겁고 촉촉한 것이 남친의 입술 사이에서 나왔다. 그리고 조용히 내 입술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아…….”
나는 고개를 약간 틀었지만 남친은 집요했다. 역시 나처럼 고개를 조금 움직여 움직임을 따라온다. 입술은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남친의 혀는 내 이와 입천장을 부드럽게 훑고, 뒤이어 내 혀를 집요하게 건드리기 시작했다. 나는 혀를 이리저리 움직여 피해보려 했지만 외려 남친과 내 혀는 얽혀만 갔다. 가벼운 현기증이 일었다. 입을 다물 수가 없다. 내 입술은 조금씩 크게 벌어져 갔고 남친의 혀는 마치 내 입의 정복자라도 되는 양 입 안의 구석구석을 핥고 휘젓기 시작했다. 침 한 방울이 벌어진 내 입술 가장자리로 흘러내린다. 나는 놀라서 입술을 뗐다. 남친은 몽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왜 그래?”
“나 침 흘렸어. 더럽게……”
“더럽지 않아.”
남친의 목소리는 낮고 축축했다.
“나한테도 혀 넣어줘.”
나는 그렇게 했다. 남친은 부드럽게 내 혀를 빨아들였고, 나는 혀뿌리가 찌릿찌릿 해져옴을 느꼈다. 우리는 그렇게 오래도록 키스를 했다.
나는 핸드폰을 열었다. 시간은 우리가 들어온 후로 20분 가까이 흘러 있었다. 이렇게 오래 키스한 것은 처음이다. 남친은 다시 내 옆에 누웠다. 그리고 팔베개를 해 주었다. 나는 조용히 남친의 품에 파고들었고 남친은 나를 감싸 안았다. 따듯했다.
“기분 좋았어.”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남친은 이가 보이게 슬쩍 웃었다.
“음……특히 어떨 때?”
“혀가 여기……입천장에 닿았을 때.”
“그랬구나.”
“우리 애기도 기분 좋았어?”
나는 내 남자친구를 ‘애기’라는 애칭으로 자주 부르곤 했다. 남친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응. 좋았지.”
남친은 내 뺨에 쪽 뽀뽀를 했다. 그리고 말했다.
“내가 더 기분 좋게 해줄까?”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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