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니 얼굴은 가죽을 덮어씌운 듯 갑갑했다.
몸뚱아리 전부 신랑의 침으로 끈적한 게 찝찝하다.
부스스 일어나 욕탕으로 향했다. 더운 물을 틀고 있는데
어느새 신랑도 일어나 꼬리를 흔들며 들어왔다.
괜히 짜증이 난다. 혼자 알뜰살뜰 씻으려 했는데.
다 틀려 버렸다. 신랑이 먼저 물속으로 풍덩 뛰어 들었다.
어쩔 수 없이 신랑을 먼저 씻겨 드렸다. 내 몸이 근질 거렸지만,
나만 씻고 있을 순 없었다. 스스로 씻지 못하니 얼마나 갑갑하겠는가.
따듯한 물과 내 손길이 신랑의 몸을 씻어 주었다.
씻는 것보다 말리는 게 더 힘들었다. 선풍기를 틀어 놓고 수건으로 털어 댔다.
신랑은 몸을 나한테 맡긴 체 가만히 있었다. 시키는 대로 잘했다.
탈취제와 모질 영양제를 발라주고 털을 정리해 준 뒤 딸랑딸랑
소리나는 장난감 공을 굴려 주었더니 좋아라했다.
내가 샤워를 시작했다. 구석구석 알뜰히 씻는 동안 신랑은 공놀이에
포옥 빠져 있었다.
샤워를 끝내도 몸이 개운치 않았다. 온몸에 영양크림을 발랐다.
그리고 상을 차려 놓고 신랑을 불렀다.
"서방니임! 식사 하시와요~"
신랑은 공을 버려두고 나의 맞은편에 근엄하게 와서 앉았다.
나도 네발로 엎드려 자세를 잡았다. 엉덩이를 치켜들고
주둥이로만 밥을 먹으려니 예삿일이 아니었다.
다시 내 얼굴은 범벅이 되어야 했고, 신랑은 일찌감치 식사를 끝내고
입맛을 다시며 내 뒤로 다가왔다. 혀가 닿기도 전에 몸이
꼬이고 머리는 까맣게 정전이 되어 버렸다.
여기서 엉키면 장사도 나가지 못할 일이었다.
그렇다고 거부해서도 안 된다. 털썩 꿇어앉았다.
그때 섬광처럼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얼른 앞발로 신랑 앞에 아령 장난감을 굴려 주었다.
다행히 신랑은 새로운 장난감에 현혹되어 뛰어 다녔다.
밥그릇을 알뜰히 핥아 먹으면서 엉덩이가 벌렁거렸다.
핥아 주었으면 하는 마음도 일편 없지 않았다.
식사를 끝내고 세안부터 하였다. 설거지를 하고 방을 정리하고
롱스커트와 면티. 자켓을 걸쳤다. 그리고 신랑에게 셔츠를 입히고
넥타이와 어깨 줄을 착용했다. 가방에 공, 아령 장난감. 사료.
급식기와 누기누기 패드를 챙겨 넣고 신발도 신겼다.
가게 문을 열자 샌달을 선물했던 영감님이 들어 왔다.
그리곤 내 발을 힐끔 힐끔 보면서 말했다.
"크기가 안 맞던가?"
자기가 선물한 신발을 왜 안 신었느냐고 묻고 있었다.
"바빠서 못 신어 봤어요."하며 서랍에서 상자를 꺼냈다.
책상 옆에 앉아 있던 신랑이 크르릉 대기 시작했다.
마누라가 남정네와 얘기하니 샘이 나는 모양이었다.
"조용히 하세요.~ 아무 일도 아녜요.~"
했더니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돌리고 조용히 있었다.
"이런 거 사오시지 마세요. 저도 돈 벌어요. 아저씨."했더니
"내 마음이여. 받아 둬." 했다.
상자를 펼쳐보니 화이트 색 웨지 힐이었다. 뒤 굽이 10cm는 넘는 것 같았다.
신어보니 싸이즈도 맞았다. 나는 영감님에게 상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영감은 흡족한 웃음을 지었고 언제 보았는지 신랑이 가늘게 크르릉 거리고 있었다.
나는 돌아보며 말했다. "미안해요. 참아 주세요."
내말에 신랑은 조용해 졌는데 영감이 말했다. "그놈 참 실하게 생겼다."
내 신랑보고 놈이라고 하는데 나는 팔을 걷어 부치지 못했다. 그냥 같이 웃었다.
자신의 신발을 신겨 놓고 영감은 어기적어기적 가 버렸다.
청소를 하고 있는데 문 쪽에서 여자의 비명소리가 내 귀를 찢었다.
돌아보니 여자 손님이 신랑을 보고 기겁을 해서 저만치 가고 있었다.
나는 책상 주변에 커텐을 쳤다. 그랬더니 신랑이 갑갑한 가? 끼잉 낑 거렸다.
나는 집주인에게 양해를 구하여 마당에 신랑을 매어 놓고 패드와 공을 주었다.
신랑이 교육을 잘 받았음인지 패드가 있으면 아무데나 싸대지 않았다.
줄을 길게 해주었더니 공하고 놀려고 달려갔다.
점심은 자장면을 시켰다. 책상 옆에 커텐을 치고 신랑을 모셔와
나란히 엎드려 식사를 했다. 가게인 줄 아는지 신랑은 사료를 먼저
다 먹고도 치근대지는 않았다. 공하고 놀려고 문 쪽을 보며 낑낑 대고 있었다.
공이 나보다 좋은 가? 은근이 샘이 나기도 했다.
한참 면을 빨아들이고 있는데 손님이 왔다. 휴지로 급히 얼굴을 닦고 나갔더니
남자 손님이다. 빙긋이 웃으며 묻는다. "식사 중이셨나요?"
나는 "녜."하고 대답했다. "자장면 드셨어요?" 하고 물어 왔다.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다 들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녜." 하고 대답 했더니 "급하게 드셨나 봐요." 한다.
나는 방긋 웃으며 또 "녜."하고 대답 했다. "식사 마저 하세요. 볼일 보고 올께요."
하며 돌아 섰다. "꼭 오세요." 나는 애절하게 말했다. 돈이 될지 안 될지.
손님은 잡아야 되고 흥정은 붙여야 했다.
손님을 보내고 거울을 보며 나는 기겁을 했다. 얼굴이 온통 짜장 투성이였다.
휴지가 닦아낸 게 아니고 되려 붙어 있었다. 검정 자장과 하얀 휴지.
나는 그 손님이 다시 안 오기를 바랐다. 안 와도 소문내면
얼굴 들고 다닐 수 있을까 걱정도 됐다.
커텐 속으로 들어와 엎드려 식사를 마저 했다.
그리고 신랑을 마당으로 보내고 세안을 하고 거울보고
또 씻고 거울보고. 콧구멍 까지 몇 번이나 씻어냈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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