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온통 검었다.
부연 연기가 가득한 밀폐된 공간처럼
하늘이 구름에 갖히고
세상은 이내 조금씩 비를 흩뿌리기 시작했다.

사무실 앞 커피숍에 가서
모카를 한잔 시켰다.

이렇게 흐리고 비 내리는 날이면
진한 커피향을 들이키고 싶어진다.

검은 액체를 입에 머금고
시계를 봤다.

6시 ...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이 늘었다.

축축히 젖은 아스팔트는 벌써 자동차들의 불빛이 길게 늘어진다.
붉은 네온처럼 긴 불빛이 지나간다.

보도블럭은
가게에서 뿜어져 나오는 조명이 반사돼
한폭의 그림처럼 인상적이다.

물고인 보도블럭을
발자국이 지나간다.

동심원을 그리며 물보라가 그어지고
빗방울이 굵어진다.

난 마이를 벗어 머리에 쓰고 길건너편 차로 향했다.

차의 시동을 걸고
라디오 볼륨을 올렸다.

빗물이 차장을 흘러내린다.
톡톡톡, 주룩주룩.
빗물이 시원하게 흘러내린다.

음악이 빗물처럼 녹아내린다.
다시 시계를 봤다.
6시 20분.

문자를 날렸다.
문자 : 어디?

잠시 후 문자가 왔다.
문자 : 나 피곤해여.

난 문자를 보냈다.
문자 : 그럼, 오늘은 쉴래?

오늘은 정말 해민과 한잔하려고 했다. 취하도록.
비까지 내려주니 해민의 눈을 천천히 바라보면 해민의 입술을 가슴에 담고 싶었다.

문자가 왔다.
문자 : 왜여?

문자 : 피곤하다며 ...

문자 : 그래도 비 오잖아요. 술 사줘여.

문자 : 그래. 나도 오늘은 취하도록 마시고 싶다.

문자 : 전 조금만 마실래요. 많이 마시세요.

문자 : 그래, 언제 올거니? 데리러 갈까?

문자 : 아뇨. 조금 후면 도착해요.

조수석 문이 열렸다.
해민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비 맞았네.
비가 오잖아요.
그치.

언제나 이렇다.
난, 히터를 올렸다.
열선시트를 데웠다.

해민은
가요. 어서 어디든 가세요.

난.
차를 움직였다.
물을 밝고 지나가는 자동차의 움직임을 느끼면서
엑셀을 깊게 밟았다.
저단기어에서 움직이는 자동차의 힘찬 움직임이 온몸으로 전해왔다.

어디갔다왔니?
나 머리 잘랐어요.
어 정말.

많이 달라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느낌이 상큼했다.

잘 어울린다.
살짝 머리칼을 만졌다.
머리결도 한결 생생해보이는데.
상큼한 느낌이다. 해민이 너의 이미지랑 잘 어울린다.

오! 호...
멀리 하길 잘했네요.

난, 차를 몰고 ... 시내를 한 바퀴 돌았다.
다시 차를 몰아 ...
사람들의 인적이 드물만한 곳으로 이동했다.

젊은 여인과 유부남이 단둘이서
술을 마신다면
누군가 그 광경을 본다면 ... 어찌 생각할까?

난 이상황을 자연스럽게 설명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녀와의 만남의 자리가 부담스럽다.

다음엔, 단둘이서 즐길만한 곳을 좀 더 알아봐야겠다
이런 결심을 했다.
어디가 좋을까?

해민이 먼저 말을 꺼낸다.
닭 먹고 싶어요.
통닭도 좋고.

난, 얼마전에 봐둔 퓨젼 그릴집을 떠올렸다.

그땐 많이 취했을 때 갔었는데
오늘은 맨정신이다.

막상 도착해보니
사람들이 별로 없다.
자리도 모두 노출되어 있다.

술집 종업원이 가끔씩 눈치를 보듯 이쪽 자리를 바라본다.

난 해민과 가게 중앙에 자리를 잡았다.
메뉴판은 풍성했다.
아무거나 시켜도 좋을 만큼 메뉴는 맛있어 보였다.

도쿠리를 시켰다.
따끈한 술이 나왔다.

안주가 나오기 전 술이 먼저 왔다.
해민은 술을 내게 따라줬다.

해민의 잔에도 술을 채웠다.

건배하고
술을 홀짝였다.

아직 뜨거운 열기가 남아있는 도쿠리 잔을 입에 털어 넣을 순 없었다.
그래서 홀짝이면 술을 마셨다.

알코올 향이 코 속 깊이 따라 들어왔다.
향에 취하는 것 같았다.

해민이가 입을 뗀다.
누가 보면 우리 사귀는 줄 알 것 같아요.
그러게.
우리 너무 친한 것 아닌가?
난 좋은데 ...

안주가 나왔다.
매콤한 닭이 치즈에 버무려져 나왔다.

술을 한잔 더 마셨다.

나 감독님이랑 술친구하고 살이 더 찐 것 같아요.
정말?
얼굴에 볼살이 너무 많아졌어요.
배도 나오는 것 같고.
내가 보기엔 전혀 살 찐 것 같지 않은데.
뭐 그정도 가지고 그러냐?

암튼, 감독님이랑 술친구하면 안될 것 같아요.
가끔 한잔씩 하자.

난, 해민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봤다.
해민은 내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안주를 맛있게 먹었다.

떡하나 줄까요?
매콤하니 맛있어요.
그래라.

난 떡을 하나 먹었다.

다시 술을 따라 마셨다.

해민의 잔은 그대로 술이 줄지 않았다.
해민아, 술 한잔 마셔라.
나혼자 다 마시는 것 같잖아.

오늘은 감독님이 많이 마셔요. 저는 조금만 마실래요.

안돼겠어.
해민이 너 술 잘 하잖아.

얼른 건배하자.

쨍.

두쿠리 두병을 마시고 한병을 더 시키려자하자.
해민이 이제 그만 일어서자고 했다.

감독님 이제 일어서요.
이제 시작인데.

그럼 한잔 더 하잔. 자리 옮겨서.

거리로 나왔다.
비는 멎어 있었다.

해민의 손을 잡았다.
해민은 손을 빼지 않았다.

술기운이 올라오자 해민의 모습이 더 예뻐뵈었다.

해민이 먼저 말을 꺼냈다.
어디로 가죠? 그냥 집에 갈까요?
그런 나도 데려가라.

싫어요. 혼자사는 여자 집에 ...
그럼 한잔 더 하자.

노래할 수 있는데로 갈까?
그래요.

주위를 둘러보니
바, 단란주점, 노래텔이 눈에 들어왔다.

난, 해민의 손을 이끌고 노래텔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