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준이 형이 새로 이사간 집은 아담하게 잘 가꾸어진 정원이 딸린 이층 단독주택이었다.
주변의 집들과는 제법 간격이 떨어져 있어 프라이버시가 보장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내 손에는 성준이 형 집에 초대를 받고 선물로 준비해온 2003년산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밸리 멀롯와인 한병이 병목에 빨간 리본을 맨채 들려있었다.
늦여름을 지나면서 해가 많이 짧아져서인지 저녁 7시 반인데도 벌써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초인종을 누르기 전에 나는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
가슴이 심하게 두근 거리고 있었다.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성준이 형은 사실 나와 고등학교 동창이다.
성준이 형이 중학교때 결핵을 앓아 3년간이나 휴학을 했기 때문에 우리 친구들은 그를 모두 형이라고 불렀다.
나이도 많은데다 인상이 좀 험악한 편이라 학교에서 주먹깨나 쓰는 애들도 성준이 형은 건드리지 않았다.
고등학교 1학년때 나와 짝꿍이 된 인연을 시작으로 고등학교 3년 내내 늘 붙어 다녔기 때문에 나 또한 주먹패들로 부터 편하게 지낼 수 있기도 했다.
성준이 형과 알게 된지 2년쯤 되어서야 난 성준이 형 집안이 굉장한 부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또 당시의 새엄마가 성준이 형보다 6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아버지의 세번째 부인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아버지로 인해 우울증에 시달리다 성준이 형이 초등학교 5학년 되던 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어머니 이야기를 하면서 그날 성준이 형은 무척 많이 울었다.
나는 그에게서 아버지에 대한 불타는 복수심을 읽을 수 있었다.
그 날 이후 성준이 형과 난 친형제처럼 지냈다.
특히 배다른 형제밖에 없는 성준이 형은 나를 친동생처럼 챙겨주었다.
성준이 형은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유학을 떠나기 전에 아버지의 강요에 못이겨 지금의 형수와 맞선을 본뒤 두달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그때 형수 손희경은 일류 여대의 2학년 재학생이었다.
성준이 형과 두살 연하인 형수는 정말 예쁘고 착한 여자였다.
주위에서 미스코리아에 나가라고 성화를 했다는 후문이 있을 정도로 형수는 아름다웠다.
늘씬한 키와 적당한 볼륨있는 몸매, 그리고 동양적인 지적미를 풍기는 갸름한 얼굴은 너무 잘 조화를 이루어 고결한 느낌마저 주었다.
특히 활짝 웃을 때의 모습은 주위를 온통 밝게 할 정도로 싱그러웠다.
형수는 성준이 형을 통해 나를 잘 알고 있어서 나를 마치 시동생 대하듯이 대해주었다.
고등학교 때 나름대로 우등생이었던 나는 어렵지 않게 일류대학에 진학했다.
대학 신입생의 자유를 만끽하던 4월 어느날 성준이 형은 형수와 함께 미국 스탠포드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떠나기 며칠 전, 나와 이별주를 마시면서 형은 다시는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형제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성준이 형을 사업 후계자로 생각하고 있던 성준이 아버지에 대한 일종의 분노와 복수 같은 것이었다.
성준이 형은 나에게도 언젠가 미국에 들어와 같이 살자고 했다.
그리고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성준이 형은 1년 전에 돌연 귀국을 해서 아버지 사업을 물려 받기 위한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중이다.
나는 대기업의 해외사업본부에서 팀장을 맡고 있는 직장인이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내가 지금까지 결혼하지 않은 이유를 궁금해한다.
부모님 덕분에 제법 귀공자 타입의 외모를 갖추고 나름대로 실력도 인정받아 고속 승진을 하고 있는 내게 많은 결혼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아직 싱글인 이유를 굳이 한가지 든다면 그건 성준이 형 형수만한 여자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여자들을 멀리 하는 것은 아니다.
주변에 늘 여자들이 있었고 그들 중 대부분은 섹스까지 나누는 사이였다.
허지만 이상하게도 관계가 1년이 넘도록 유지된 적이 거의 없다.
떠나가는 여자들은 늘 한결같은 말을 했다.
나와 함께하는 시간에도 내 마음은 늘 다른 곳에 가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제야 난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형수를 사모하고 있다는 것을.
성준이 형이 유학을 간 뒤 첫번째 다시 만난 것은 내가 대학 2학년 여름방학 때 배낭을 둘러메고 미국을 찾아간 것이었다.
형과 형수는 정말 무척이나 반가와했다.
형과 형수는 나를 위해 섬머스쿨을 포기하고 나를 데리고 여행을 떠났다.
당시 고집스럽게 아버지의 금전적 지원을 거절하던 형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살고 있어서 형편이 어려웠다.
그래서 우리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캠핑을 준비해서 떠났다.
텐트 하나에서 세명이 함께 자면서 보낸 2주간의 캠핑 생활동안에 난 본의 아니게 두사람의 섹스를 몇차례 목격했다.
나때문에 신경쓰여 거부하는 형수를 성준이 형이 보채서 이루어지는 섹스였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섹스를 그렇게 가까이서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들 사이에서 자는 척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자꾸 숨소리는 가빠지고 목구멍으로 침넘어가는 소리가 들릴까봐 무척이나 긴장이 되었다.
두사람도 나때문에 조심스럽게 움직였지만 워낙 바로 옆이라서 작은 움직임까지도 느껴졌다.
그들의 숨소리, 자지와 보지가 부딪히면서 내는 마찰음, 그리고 형수의 보지냄새가 느껴졌다.
내 자지는 커질대로 커져서 반바지 속에서 뚫고 나올 듯한 기세로 벌떡였다.
그들은 내가 자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섹스한 다음날 아침에 나와 마주치면 형수는 얼굴이 빨개져서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숙였고 형은 웃으면서 미안하다고 했다.
난 그런 두사람이 사랑스럽고 참 좋았다.
주변의 집들과는 제법 간격이 떨어져 있어 프라이버시가 보장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내 손에는 성준이 형 집에 초대를 받고 선물로 준비해온 2003년산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밸리 멀롯와인 한병이 병목에 빨간 리본을 맨채 들려있었다.
늦여름을 지나면서 해가 많이 짧아져서인지 저녁 7시 반인데도 벌써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초인종을 누르기 전에 나는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
가슴이 심하게 두근 거리고 있었다.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성준이 형은 사실 나와 고등학교 동창이다.
성준이 형이 중학교때 결핵을 앓아 3년간이나 휴학을 했기 때문에 우리 친구들은 그를 모두 형이라고 불렀다.
나이도 많은데다 인상이 좀 험악한 편이라 학교에서 주먹깨나 쓰는 애들도 성준이 형은 건드리지 않았다.
고등학교 1학년때 나와 짝꿍이 된 인연을 시작으로 고등학교 3년 내내 늘 붙어 다녔기 때문에 나 또한 주먹패들로 부터 편하게 지낼 수 있기도 했다.
성준이 형과 알게 된지 2년쯤 되어서야 난 성준이 형 집안이 굉장한 부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또 당시의 새엄마가 성준이 형보다 6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아버지의 세번째 부인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아버지로 인해 우울증에 시달리다 성준이 형이 초등학교 5학년 되던 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어머니 이야기를 하면서 그날 성준이 형은 무척 많이 울었다.
나는 그에게서 아버지에 대한 불타는 복수심을 읽을 수 있었다.
그 날 이후 성준이 형과 난 친형제처럼 지냈다.
특히 배다른 형제밖에 없는 성준이 형은 나를 친동생처럼 챙겨주었다.
성준이 형은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유학을 떠나기 전에 아버지의 강요에 못이겨 지금의 형수와 맞선을 본뒤 두달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그때 형수 손희경은 일류 여대의 2학년 재학생이었다.
성준이 형과 두살 연하인 형수는 정말 예쁘고 착한 여자였다.
주위에서 미스코리아에 나가라고 성화를 했다는 후문이 있을 정도로 형수는 아름다웠다.
늘씬한 키와 적당한 볼륨있는 몸매, 그리고 동양적인 지적미를 풍기는 갸름한 얼굴은 너무 잘 조화를 이루어 고결한 느낌마저 주었다.
특히 활짝 웃을 때의 모습은 주위를 온통 밝게 할 정도로 싱그러웠다.
형수는 성준이 형을 통해 나를 잘 알고 있어서 나를 마치 시동생 대하듯이 대해주었다.
고등학교 때 나름대로 우등생이었던 나는 어렵지 않게 일류대학에 진학했다.
대학 신입생의 자유를 만끽하던 4월 어느날 성준이 형은 형수와 함께 미국 스탠포드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떠나기 며칠 전, 나와 이별주를 마시면서 형은 다시는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형제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성준이 형을 사업 후계자로 생각하고 있던 성준이 아버지에 대한 일종의 분노와 복수 같은 것이었다.
성준이 형은 나에게도 언젠가 미국에 들어와 같이 살자고 했다.
그리고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성준이 형은 1년 전에 돌연 귀국을 해서 아버지 사업을 물려 받기 위한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중이다.
나는 대기업의 해외사업본부에서 팀장을 맡고 있는 직장인이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내가 지금까지 결혼하지 않은 이유를 궁금해한다.
부모님 덕분에 제법 귀공자 타입의 외모를 갖추고 나름대로 실력도 인정받아 고속 승진을 하고 있는 내게 많은 결혼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아직 싱글인 이유를 굳이 한가지 든다면 그건 성준이 형 형수만한 여자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여자들을 멀리 하는 것은 아니다.
주변에 늘 여자들이 있었고 그들 중 대부분은 섹스까지 나누는 사이였다.
허지만 이상하게도 관계가 1년이 넘도록 유지된 적이 거의 없다.
떠나가는 여자들은 늘 한결같은 말을 했다.
나와 함께하는 시간에도 내 마음은 늘 다른 곳에 가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제야 난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형수를 사모하고 있다는 것을.
성준이 형이 유학을 간 뒤 첫번째 다시 만난 것은 내가 대학 2학년 여름방학 때 배낭을 둘러메고 미국을 찾아간 것이었다.
형과 형수는 정말 무척이나 반가와했다.
형과 형수는 나를 위해 섬머스쿨을 포기하고 나를 데리고 여행을 떠났다.
당시 고집스럽게 아버지의 금전적 지원을 거절하던 형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살고 있어서 형편이 어려웠다.
그래서 우리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캠핑을 준비해서 떠났다.
텐트 하나에서 세명이 함께 자면서 보낸 2주간의 캠핑 생활동안에 난 본의 아니게 두사람의 섹스를 몇차례 목격했다.
나때문에 신경쓰여 거부하는 형수를 성준이 형이 보채서 이루어지는 섹스였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섹스를 그렇게 가까이서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들 사이에서 자는 척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자꾸 숨소리는 가빠지고 목구멍으로 침넘어가는 소리가 들릴까봐 무척이나 긴장이 되었다.
두사람도 나때문에 조심스럽게 움직였지만 워낙 바로 옆이라서 작은 움직임까지도 느껴졌다.
그들의 숨소리, 자지와 보지가 부딪히면서 내는 마찰음, 그리고 형수의 보지냄새가 느껴졌다.
내 자지는 커질대로 커져서 반바지 속에서 뚫고 나올 듯한 기세로 벌떡였다.
그들은 내가 자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섹스한 다음날 아침에 나와 마주치면 형수는 얼굴이 빨개져서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숙였고 형은 웃으면서 미안하다고 했다.
난 그런 두사람이 사랑스럽고 참 좋았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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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6-08-11 | ||
접속일 | 2024-11-23 | ||
서명 | 황진이-19금 성인놀이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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