귓볼은 자물쇠같은 거다.
신체 어느 부위 못지 않게 촉감을 극대화 시킬 수 있는 부분이고 거기에 가장 민감한 소리,
전희로서는 보지 않고도 상대를 느낄 수 있는 초감각기관과도 같다.
귓볼이 백기를 들면 여자는 적어도 반쯤은 허물어졌음이다.
더구나 그 상대가 늘상 귓볼을 내어주는 대상이 아니라
오늘 처음 만난 낯선 이고, 그 낯선 사람이 입김을 불어넣고 있음에랴.

진동의 파장이 커진다.
진동은 흔들림으로 흔들림은 더 큰 몸짓으로 이어진다.
그 큰 몸짓을 타고 내 손이 여자의 쇄골을 향한다.
그리고 쇄골에서 잠시 유영하더니 옷 속 맨살에 닿는다.
가슴의 둔덕이 잡힌다.
브래지어의 선이 잡힌다.
브래지어 속으로 한 손가락을 밀어 넣는다.

입김은 끊임 없이 귓볼에 뜨겁게 닿고
내 손은 이제 유두를 향할 터이다.
여자의 둔부는 몸짓 하나 하나에 흔들리며 반응한다.

이 여자, 눈을 감고 있으리라.
차마 눈 뜨지 못하고 촉각과 후각, 그리고 극대화된 청각의 감각으로
나를 만나고 있으리라.
이 때는 내가 내가 아니어도 좋다.
이 때는 내가 내가 아닌 다른 이라도 여자는 눈을 감았으리라.

살을 만지던 오른 손 중지가 얼핏 유두를 스친다.
순간 여자가 진저리를 친다.
너무 큰 진저리다.
그 순간 온 몸에 팽팽했던 여자의 씨줄 하나가 끊어져나갔음을 난 느꼈다.
끊어진 씨줄 끝에 매달린 여자의 욕망이
찬 겨울 하늘로 끝내 날아가버린 어린 시절의 연처럼 날아가버린다.

"허어~억"

여자의 신음이 비명으로 바뀐 듯하다.
내가 깜짝 놀랄 정도의 반응이다.
끊어진 연 같이 무너지던 여자가 고개를 앞으로 뺀다.
고개를 빼면서 내 손을 꼬옥 잡는다.
꼬옥 잡은 손을 자신의 몸 밖으로 밀어내며,

"감당이...... 안 돼요"
"괜찮아요......"

괜찮다니, 나도 참 나쁜 놈이다.
괜찮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
난 여자를 안고 싶고 또 가장 농밀하게 범하고 싶다.
머리 끝에서 발 끝 까지 여자의 모든 감각 기관을 학습하면서,
여자의 성감이 떨며 노래 부르는 순간을 즐기고 싶다.
난 이미 여자를 범했으며 여자는 이제 망설이고 있으리라.
망설이지 않아도 된다고 부축이는 말로 "괜찮아요"는 부족했었나보다.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이 여자가 반음 정도를 높인다.

"상품 다 쓰셨네"
"사실은 버디 못 잡으면 내가 진 걸로 하기로 했는데...... 내가 상품을 다 가져갔네요"
"어머~"
"어쩌죠?"
"몰랐네"

말이 조금 짧다. 꼬박 ~요를 강제하던 여자가 이제 가끔 짧은 말로 대답한다.

"물러요?"
"뭘요? 아~"
"잘못 가져간 거 물러요?"
"호호호, 무르는 건 어떻게 하는데요? 무를 수나 있나?"
"음~~~ 거꾸로 제가 한 모든 것을 그 쪽에서 하시면 무르는 거지요"

내가 처음으로 능글맞게 대답한 말이 아닌가 깊다.

"말도 안 돼, 이제 보니 선수급이네요"
"아뇨, 선수는 정말 아니고, 그냥 오늘은 왜 그런지 나도 나 같지 않네요"
"선수 같아~"
"아닙니다, 선수는"
"어떻게 믿어"

묻는 것도 아니고 혼잣말도 아닌 투로 여자가 종결어미를 자른다.

"믿으세요, 일단!"
"호~호~"

여자는 이미 그 내밀하던 소통의 터널에서 반 쯤은 벗어나 보인다.
벗어난 여자를 다시 끌고 들어올 것인지 아니면 조금은 그만 놓아둘 것인지 고민한다.
그러나 이 여자에게 무례하고 싶지 않다.
무례하게 범하는 것이 아닌 내 모든 몸짓으로 여자와 섹스하고 싶다.
섣부른 충동으로 여자를 깨워 현실로 데려오고 싶지 않다.
내가 만든 성 안에서 이 여자를 여자를 안아내고 싶다.
이 충동이 오늘의 충동으로 끝나더라도 오늘은 오늘에 가장 치열하게 껴안고 싶다.

고백컨데, 지금 이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이 순간에도 난 그 날이 믿기지 않는다.
채 열 평도 안 되는 공간에, 아무렇게나 놓여있던 쓰레기통, 휴지,
하물며 타석을 떠나 스크린 앞에 떨어진 공 하나 하나도 제 위치에 그대로 가져다 놓을 수 있다고 믿을 정도로
그 날의 그 느낌은 너무나 선연하고 여자의 아무리 작은 몸짓 하나도 읽어냈다고 말도 안 되는 자신감에 차오른다.
살면서 그런 순간이 또 얼마나 있을까?

내 머리 속의 머리를 흔들었다.
이제 전반 홀이 끝났다.

"양 파의 끝이 참 치열도 했다. 하하"

나도 혼잣말인 듯 말 꼬리를 자른다.

"호호~~~"
여자의 웃음이 제법 길다.

후반 첫 홀, 358 야드 짧은 홀이다.
전력 투구 하고 싶다.
드라이버 잘 맞았다. 거기다 내리막 홀이다.
300 야드를 넘는다.
다음 세컨에 꼭 붙인다.

"나이스 샷!"

여자의 소리가 오히려 홀가분해 보인다.
어떤 속박에서 벗어난 친밀감이 전해져 온다.

"뭘 또 하려고..."

혼잣말처럼 새기는 말 속에 사뭇 어떤 편안함도 전해져 온다.
물론 나 혼자만의 생각일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기대감까지는 아닌가?

"짧은 홀이네요, 버디하세요 꼭"
"그게 맘대로 되는건가?"

여자가 눈을 흘기듯이 시선을 거두어간다.
이건 힐난이 아니라 애교일터이다.

레이디 티 299야드 여자의 드라이버도 시원하다.
190 야드 근처에 떨어진다.
그런데 우드를 잡은 세컨이 컸다.
그린 끝 에이프런을 지나 러프에 떨어진다.
내 세컨은 다행이 그린을 놓치지 않았다.

러프에서 서드 샷, 핀에 붙는다. 컨시드.

"나이스 어프로치! 정말 어프로치 잘 하시네요"
"호호, 감사해요"

파 세이브, 내가 넣어야 홀이 승부가 난다.
내가 지금 제일 피해야 할 게 무승부다.
내가 이기든 여자가 이기든 승부가 나야한다.
그래야 된다.
이 놈의 스크린은 퍼팅이 제일 어렵다.
경사를 읽고 거리를 읽고 퍼팅을 했다 싶어도 홀 컵이 공을 외면하기 십상이다.
신중하게 퍼팅 어드레스를 하고 경사를 감안해 오른 쪽으로 퍼팅을 한다.
약하게 맞아 구르다 말 것 같던 공이 끝내 컵에 떨어진다.

"나이스 펏~ 정말 나이스 펏이네"
"하하하~ 감사합니다"

15야드 정도의 퍼팅이었다.
스크린은 대충 비슷하게 보아주면 떨어져 주기도 하니깐.
그래도 기분은 좋다.

이제 한 홀아웃이 되면 쇼파에 앉는 것이 자연스럽다.
역시 학습이란 안 되던 것들을 되게 만든다.

쇼파로 돌아오던 잠깐 사이,상품을 결정했다.
말, 말이다. 내가 꿈꾸던 절정에 그런 게 있었다.
촉각들 통하지 않는 절정. 말로서 오르는 오르가즘.
상대를 옆에 두지 않고도 전화를 통하여 절정에 닿는 폰 섹스가 있지만,
그런 것보다 말로 파들어가는 절정의 샘물을 마시고 싶던 꿈이 있었다.
10대의 몽정처럼 아른한 절정. 느닷없이 언어를 통해 쌓아진 환상으로 말미암아
내 이성을 마비시키고 끝내 사정에 이르고 마는 절정.
아직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은 꿈일지도 모르지만.

"십문십답해요"
"네?"
"내가 열 개 물으면 열 개 답하는 거"
"에~ 상품이 하나가 아니라 열 개잖나요?"
"아니요, 이건 패키지입니다. 열 개 묶어서 하나가 되는"
"그래도......"
"버디피 까지 포함됩니다, 하하"
"너무 난처한 질문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좋아요. 대신 안 하고 싶은 건 안 할게요"
"두 개까지 스킵 드립니다. 더 드리면 재미 없지요"
"두~개...... 그래요. 그 쪽의 인격을 믿어요"
"아니요 믿지 마세요, 그렇게 강제하는 건 좋지 않아요, 자유롭게~~~~우~~~~"
"호호호~"

내가 가장 해보고 싶었던 성교다.
낯선이의 내면을 훔쳐보는, 그를 통하여 상호 오르가즘에 이르는,
비록 끝내 거기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후회없이 만들어보리라.

게임은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