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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외 선생님 - 3부5장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4 18:54 1,228회 0건
2012-28

여름 방학을 맞아 다영이의 과외시간이 오전으로 당겨졌다. 다영이도 어서 오전에 공부를 하고 학교 도서관에 나가든 사탐과정 학원에 나가든 또 나가서 친구들과 좀 놀고 싶었고, 주희도 아침에 머리가 활발하게 돌아간다는 막연한 믿음으로 그렇게 허락했다. 민수도 어서 공부을 도와주고 자기 공부를 하고 싶었다.
“마이쭈 드실래요?”
다영이가 수학 문제를 풀다 말고 가방에서 길다란 포장에 담겨진 뭔가를 꺼냈다. 종이에 싸여진 육면체의 조각을 두개 떼어냈다.
“어제 먹다가 남은 거예요.”
종이를 까자 연분홍색의 단단한 젤리가 나왔다. 입에 넣으니 달콤했다. 초등학교도 아니고 국민학교 시절에 먹던 과자였다. 고아원에서 누군가 사와 먹고 있을 때. 한 알만 달라고 보챘던 그런 종류의 과자였다.
“맛있죠? 일본의 하이쭈를 따라서 만든 거예요. 하이쭈가 더 맛있긴 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츄렛이에요.”
민수는 솔직히 그렇게 맛있지는 않았다. 과자 먹고 좋아할 나이는 지났다. 하지만 다영이가 맛있게 먹으니 자신도 맛있게 먹어줘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먹으니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어린 여자구나.’
민수는 오물거리며 마이쭈를 먹고 있는 다영이를 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가끔씩 벌어지는 육감적인 입술을 보고 있으면 성숙한 여자로 변신해 민수를 헷갈리게 했다. 침이 묻어 번들거리는 다영이의 입술은 꼭 속이 꽉찬 석류 같았다.
알알이 부서지는 석류, 민수는 고아원 앞마당에서 그것을 본 적이 있었다. 주먹 만하게 붉게 익은 석류를 원장 몰래 따와 손으로 부셔 먹었다. 안에는 콩알 만한 알이 들어차 있었다. 다홍색의 투명한 알들이었다. 조바심내며 훔쳐 먹던 그 열매였다.
“선생님은 무슨 과자 좋아해요?”
민수는 맥주 마실때 새우깡과 양파링이나 집어먹을까 딱히 좋아하는 과자는 없었다. 그래도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입안에서 부서지는 단 맛이 좋은 과자이름을 하나 댔다.
“빠다 코코낫 좋아하는데.”
“정말이요. 저도 좋아하는데.”
예상치 않게 맞장구가 쳐졌다.
“다음에 우리 빠다 사다 먹어요.”
민수도 뭐, 빙고를 해줬다.
“근데 선생님은 가족의 비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다영이가 뜬금없이 물었다. 가족의 비밀, 나야 많지. 여덟살 때 엄마가 서울역에 버리고 갔고, 대학 와서는 이것을 숨기고 싶었지. 혹시 얘가 내 가족의 비밀을 알고 물어보는 것 아냐?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뜨끔했다.
“친구들 얘기 들어보면 가족에는 참 비밀이 많은 것 같아요. 제 친한 친구는 입양안데 고1때까지 그 사실을 모르다가 알게 되어 방황을 많이 했어요. 또 한 친구의 할머니는 젊었을 때 사람을 죽인적이 있는데 땅을 팔아 감옥가는것을 면하게 되었대요.”
‘음 이런 얘기라면’초점이 자신이 아닌 것에 우선 안심이 되었다.
“얼마 전에는 책에서 이런 얘기도 읽었어요. 똥을 어디가 둬야할 지 안절부절하는 여자가 정신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갔어요. 그런데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거예요. 치료 과정에서 그 여자의 엄마가 미혼때 한 아이를 임신했는데 가족이 알까봐 몰래 낳아 정원에 묻어버렸대요. 이 여자는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언니를 묻은 정원옆에 있는 화장실에 갈 때마다 이런 사실을 자꾸 떠올렸어요. 엄마가 배속에 있는 아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불안한 것처럼 그 여자는 배에 들어있는 배설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하며 엄마의 고통을 떠맡고 있는 것이었어요.”
“좀 무섭지만 재밌네.”
“근데 문제는 우리집에도 비밀이 많다는 점이에요.”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 엄마와 자신이 비밀스러운 관계를 맺고 있는 사실을 눈치라도 챈 것일까. 민수는 슬며시 걱정이 되었다.
“작년에 집에 돌아왔는데 엄마가 어떤 남자랑 알몸으로 얽혀있는 광경을 본 적이 있어요. 저는 너무 놀라서 다시 집밖으로 나가 한참동안 울었어요. 아버지가 이런 광경을 봤다면 어떻게 생각하실까, 우리 가족은 이제 어떻게 되는 것일까, 하는 오만 생각이 다 들었어요.”
“너한테는 많이 충격적이었겠구나.”
그런 말을 하는 민수는 온몸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혹시 다영이가 자신과 엄마의 관계도 알고 있을까봐 두려워졌다. 이 두려움의 정체는 일상적으로 통용되는 관계의 선을 넘었다는 점과 어린 다영이가 충격을 받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엄마는 그때 매우 행복한 모습이었다는 거예요. 저는 그런 엄마의 모습이 낯설기만 했고, 그런 광경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몰랐어요. 아버지 이외에 다른 남자와 짐승처럼 그러고 있는 모습이 혐오스럽기도 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에 좀 다행이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정체모를 눈물만 나왔어요. 제 입장만 생각한다면 뭔가 억울하기도 하고.”
“그런 일을 봤다는 것을 엄마한테 말했어?”
“아니요. 말 할 수 없어요. 그건 우리 가족의 영원한 비밀이예요.”
민수는 주희의 교태섞인 몸짓을 떠올렸다. 아무런 도덕적 제약도 없이 쾌락에만 몰두하는 그 몸짓, 주희 자신만 생각한다면 행복하기 그지 없는 일이나 가족을 생각한다면, 사리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인간의 욕망이란 얼마나 비밀스럽고 제약을 많이 받고 있는 것인가.
“엄마가 우리가 어떻게 될까봐 과외할 때마다 제 방문을 열어두게 하고 밖에도 안나가고 그러는게 한편으로는 우스워요.”
"뭐가 어떻게 된다고 그러니?“
“선생님, 몰라서 물어요? 우리가 잠이라도 잘까봐 외출도 않고 그러고 있는 거라구요.”
민수는 다영이의 당돌한 말에 좀 당황스러워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선생으로서 뭔가 대답을 해줘야했다.
“니가 뭘안다고 그렇게 넘겨짚니? 우리가 공부하니까 과일도 주시고 또 차도 주려고 남아 계시는 거지.”
대충 좋게좋게 얘기를 해줬다.
“너는 아무 것도 모르는데...”
“선생님이 절 잘 모르시는데, 캐나다 갔을때 남자 친구랑 많이 잤어요. 알것을 다 알아요. 엄마가 그런 사실을 알고 나서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자꾸 핸드폰 문자를 훔쳐보고, 남자 친구를 만나 자꾸 가슴을 만지고 섹스를 요구하면 당장 교제를 끊으라고 하고 그랬어요. 엄마가 그러는 이유를 알아요. 자기가 그러니까 자신의 잘못을 나한테다 화풀이하는 거라구요.”
민수는 주희가 참 이중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자신의 성적인 성향과 행각을 사랑하면서도 미워하는 양면 감정이 일관되게 드러난 것이었다.
“니가 잘못될까봐 걱정이 돼서 그러시는 거지 뭘.”
“만일 제가 조선 시대에 태어났다면 애가 두셋은 됐지 않았겠어요? 이미 제 몸은 다 성숙했다구요. 그런데 그런 식으로 엄마가 통제를 하려드니 더 갑갑해요.”
“아래서 엄마 들으시겠다. 작게 말해...”
그들은 한참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다영이가 숨겨온 얘기를 듣고 나자 민수는 다영이가 더욱 가깝게 느껴졌다. 동생같이 잘해주고 싶었다.
“그러면 너, 예전의 그 남자친구랑 자고 그래?”
민수는 좀 넘겨짚는다 싶게 이렇게 물었다.
"네, 시험이 끝난 날이나, 집에다 핑계대고 같이 놀러갔을 때요.“
민수는 요즘 애들이 다 이렇나 싶어 조금 놀랐다. 그러나 다영이의 성숙한 몸을 보면, ‘사용하고 싶겠지’ 하고 수긍이 되었다.
“임신은 조심해야 한다.”
민수가 놀람을 감추려 짐짓 아무렇지도 않게 조언이랍시고 한마디 했다.
“걱정말아요. 피임약 먹으니까요. 남친이 콘돔을 싫어해서요. 그냥 맨살이 좋대요. 저도 그게 훨씬 낫고요.”
민수는 다영이와 이런 얘기나 하고 있는 자신이 매우 한심했다. 어떻게 얘기가 이런데까지 흘러왔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저 학교나 다니는 여고생으로 알고 있었던 다영이가 이렇게 예상외의 복잡하고, ‘성숙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자 호기심이 생겼다.
한 인간은 그 자체로서 전 세계가 될 수 있는 법이다. 여고생이나 엄마나 또 선생이라는 역할로 설명할 수 없이 복잡 다난한 것이 인간이다.
“예전에 동네를 나갔는데 선생님이 한 여자랑 걸어가더라구요. 참 다정해 보였어요. 여친이예요?”
“무슨 여친, 도서관에서 같이 공부하는 친구야.”
“에게게, 그냥 친구랑 손을 잡고 걸어요?”
“좀 어지럽다고 해서...”
대충 변명을 했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지어내지 말고요, 섹스는 해봤어요?”
“니가 못하는 얘기가 없구나. 공부나 하자.”
민수가 불끈했다. 민수는 다시 수학 문제집을 폈다.
방학 때 미적분과 확률까지는 예습해 놔야 2학기가 편한 법이었다. 민수가 청운 고아원 시절에 동급생들과 같이 방안에 큰 상을 펼쳐놓고 공부하던 시절이 생각났다.
학원갈 엄두는 내지도 못했으므로, 그저 방학 때면 마음에 맞는 원생들과 같이 그렇게 공부하곤 했다. 원장도 ‘스터디 모임’이라고 추켜세우며 간식 하나라도 더 갖다 주려고 챙겼다.
그 원장님은 모의고사 문제집도 사와 복사해 주며 시험을 치르게 해 성적이 좋은 원생에게는 브랜드가 있는 운동화나 책, 티셔츠를 사주기도 했다.
“적분은 뉴턴과 라이프니쯔가 서로 먼저 발견했다고 우기기도 했어. 지금은 동시 발견자로 되어 있긴 하지만. 천체 물리학을 연구하던 뉴턴이 만유인력의 일량을 계산하는 데서 막혔을 때, 이 적분을 발견한 것으로 흔히 알고 있지.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수학을 단지 만져지지도 않는 머리속의 관념이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이 시간과 공간상에서 펼쳐지고 있는 운동과 에너지에 대한 수학적 원리를 나타낸다고 생각하면 더 재미있을 거야. 이 적분에서 지구에서 쏘는 인공위성의 탈출 속도와 연료량이 계산될 수 있어. 자, 그럼 그림을 그려서 미분과 적분의 관계를 알아볼까.”
“아, 덥고 재미없어.”
다영이가 하품을 한 번 했다.
민수는 재밌게 설명한다고 했는데 다영이가 그런 반응을 보이자 힘이 빠졌다.
“지금까지 잘해 왔는데 오늘 왜 그러니?”
“그런 내력은 잘 몰라도 제가 문제는 잘 풀잖아요. 내일부터 잘 할 테니까 오늘은 그냥 얘기하고 놀아요.”
다영이가 까맣고 또렷한 눈망울로 민수를 쳐다보았다.
주희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주희씨가 어렸을 때 이랬을까? 까만 눈동자 속에는 ‘無’ 라는 게 숨어 있는 것 같았다. 어떤 이름도 붙일 수 없고, 모든 것의 이름이 될 수도 있는 수용의 어둠. 이상하리만치 까맣지만 백치의 미가 있는것처럼. 두렵기도 하고 모든 것을 포용해 편안하기도 한 동그란 눈동자. 흰자위는 너무 깨끗하게 하얘서 도도하게까지 보였다. 너는 하얀 순결에 자만하고 있는 것이냐. 흰 자위에도 ‘無’가 숨어 있었다. 붙이면 모든 것의 이름이 되었다가도 아무런 고통과 흔적도 없이 다 지워질 자존심의 대낮. 민수는 그 양면성의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눈에 뭐 묻었어요?”
“실핏줄이 있네. 망막까지 보일 것 같아.”
“선생님은 너무 정확한 말을 써서 재미없을 때가 있어요. 제가 흉내한번 내볼까요? 선생님은 배가 아플때 ‘위에 이상이 있는것 같아’ 라고 말하잖아요. 저는 그게 웃겨요. 그냥 ‘배가 아야 해’ 하면 되는데. 선생님은 뭐든 그렇게 재미없는 말을 골라서 하세요?”
민수는 뜨끔했다.
민수는 정확하게 표현을 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있었다. 용어의 개념을 확실하게 머리에 넣어두어야 하는 고시 공부를 2년넘게 해온 경험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 일상 생활속의 현상에 대해서도 그런 경험을 발휘한다면 말을 딱딱해질 수밖에 없었다. 사실 배가 아플때 그냥 ‘배 아프다’고 하는 것이 아픈 사람으로서 감정을 정확히 표현한 것인지도 몰랐다.
자신이 의사도 아닌데 췌장이 어떻다니 위장의 호르몬이 어떻다니 하는것은 그 상황을 분석하여 통제하려고 하는 지배욕의 소산에 불과했다. 다영이는 이 점을 지적한 것이었다.
“나는 단지 눈이 초롱초롱하고 맑아서 아는 대로 표현하고 싶었어...”
“알았어요. 그럼 다음부터는 좀 두루뭉실하고 멋있게요. 음, 영롱하다, 촉촉하다, 구름 한 점 없는.. 이런 것 많잖아요.”
그 때, 주희가 유리 소반에 과일을 소담스럽게 깎아 방으로 들어왔다. 수박은 먹기 좋게 정육면체로 잘랐고, 참외는 씨를 긁어내고 하얀 속살만 남겨놓았다.
파인애플은 색소를 쳤다 싶을 정도로 샛노랗는데 그 원색이 보기 좋았다. 휘어진 뿔 모양으로 잘랐다.
“이거 먹고 해요.”
주희는 다정한 그들을 힐끗 내려다보고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듯 그렇게 말했다.
민수와 주희는 능에서 새미와 민수가 정사 장면을 본 이후로 ‘특별한’ 관계를 맺지 못했다. 주희는 민수가 자신을 거절할까봐 겁이 났다. 그리고 민수에게 섹스를 알려준것이 명목상으로는 새미와의 관계에 도움을 주려고 한것이었으므로, 함부로 자신이 그 사이에 끼어들 수는 없었다. 이대로 멀어지는 것일까. 그냥 과외 학생의 어머니와 입주한 선생님이라는 통상적인 관계로만 머무르는 것일까. 주희는 그것도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나 그렇게 규정짓고 나면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해서 주체할 줄을 몰랐다.
이런 주희의 마음을 알리없는 민수는 예전처럼 주희가 적극적으로 상황을 만들고 관계를 요구하는 일이 없자, 좀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굳이 자신이 나서서 그 상황을 타개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그들이 맺은 ‘특별한’ 관계는 주희가 주도한 일이었고, 주희가 주도하지 않으면 늦봄의 눈이 녹듯 사라질 일이었다. 그리고 민수에게는 눈이 녹으면 그를 맞이할 파릇파릇한 새싹이 옆에 있지 않은가. 하지만 무슨 일인가 궁금해서 물어보고도 싶었지만, ‘정상적인 관계를 맺고 싶은가 보구나’ 하고 넘겨짚고 있었다.
“아, 맛있겠다!”
다영이는 맛있으면 지가 먹을 일이지, 포크로 파인애플을 찍어 민수에게 건네 주었다.
“드셔요! 선생님 먼저.”
주희는 미간을 한 번 찡그렸다. 그러다가 누가 볼까봐 금방 풀었다.
“내 걱정 말고 너나 어서 먹어.”
민수는 주희의 눈치를 살피며, 선생으로서의 본분을 보여 주었다.
“다영이가 좀 철이 없죠 선생님, 지 맘대로 하려고 하고.”
주희가 넌지시 떠 보았다. 사실 주희는 민수가 입주한지 두달이 다 되어가는 상황에서 딸과 민수가 어떤 사이인지 알지 못했다. 어떤 얘기를 했는지, 친해 졌는지 등등 공부 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민수는 워낙 성실하고 우직하게 다영이를 가르쳤고, 또 다영이의 성적이 부쩍 올라 더이상 바랄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대로만 쭉 가라’는 심정이었다.
그러나 새미와 민수가 정사를 벌이는 장면을 보고는 민수도 욕망을 가진 한 남자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민수와 다영이와의 관계도 좀 단속할 필요를 느끼고 있었다.
그 전까지는 주희에게 민수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남자였고, 자신의 손아귀에 꽉 쥐어진 장난감인형 같았다. 뭐든지 주입하면 빨아들일 스펀지였고, 주희는 그 위에서 찔끔찔끔 물을 흘려주는것을 재미있어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디를 빨아야 할지, 어떻게 넣어야 할지도 모르고 주저하다가 사정도 가늠하지 못해서 5분도 못되 배위에 질펀하게 싸놓고 나서 어쩔 줄 몰라하던 민수가 더 이상 아니었다.
또한 다영이가 남자 맺는 수준을 알기 때문에 더욱 걱정이었다.
다영이가 남자애들을 만나 ‘치즈 버거에 야채가 든 게 좋아, 안든 게 좋아, 우주의 끝은 있을까, 죽은 뒤에 우리는 어디로 갈까, 대학생 되면 한국지리책에 필기해 놓은곳에 가볼거야’ 정도의 얘기만 하고 있지 않을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키스 얘기하다 키스를 하고, 체위 얘기 하다 섹스를 할 수 있는 다영이었다.
“무슨 철이 없다고 그래요. 이제 클 만큼 다 컸는데.”
다영이가 퉁을 주었다. 주희는 한마디 하려고 했으나 민수를 앞에 두고 모녀가 다투는 모습은 절대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입을 다물었다.
따지고 보면, 자신조차 다영이한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다. 나는 바담풍 해도 너는 바람풍해라고 할 수는 있지만, 민수가 보는 앞에서는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그래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성(性)에 관심을 쏟다보면 지금 해야 할 중요한 일을 못할 수 있으므로 언젠가 따로 불러 한마디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우리 공부하고 있었으니 엄마일 보세요.”
다영이는 엄마의 걱정을 잘 알고 있었다. 엄마 자신의 욕망을 잘 알고 있기에 더욱 그랬다. 사람은 자신이 저지른 일이나 약점을 남에게서도 잘 찾아내는 법이었다. 엄마가 안방에서 젊은 남자를 데려와 정사를 벌이던 장면이 다시 한번 떠올랐다.
‘자기는 맘껏 즐기고 살면서... 흥.’ 엄마에 대한 반감이 훅 일었다.
“그럼 선생님, 과일 드시면서 쉬었다 하세요.”
주희는 황망히 일어섰다. 민수는 다영이가 엄마인 주희에게 까칠하게 대하는것을 보고는 한마디 했다.
“엄마에게 그게 뭐냐.”
“자꾸 엄마가 간섭하려고 하는게 싫어요. 그런 은근한 분위기가요. 제가 성적도 오르고 잘 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현철이랑 사귄다고 하니 이제 그만 하래요. 처음에는 여러 사람과 친구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며 밀어줄 것처럼 하더니.”
민수는 예전에 다영이와 조깅을 하던 그 남학생을 떠올렸다. 둘이 사귄다고 생각해 왔는데 주희가 방해한 모양이었다.
“무슨 일이었는데?”
“한 이주일 전에 현철이랑 롯데월드 가서 놀고 걔가 집앞까지 데려다 줬어요. 현철이는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작별의 키스를 해주었어요. 원래는 입술만 스치듯이 하는데 그날은 좀 깊게 들어오더라고요. 필이 더 동했나 봐요. 저도 좋아서 좀 오랫동안 딥키스를 했는데 엄마가 그것을 본거예요.
집에 들어와서는 현철이랑 어떤 사이냐, 같이 공부하고 건전한 사이라더니 그게 뭐냐고 하는 거예요. 혹시 잠도 같이 잤냐고 막 물어요. 저는 화가 확 올라, 일주일에 한두번씩 섹스도 한다고 말해버렸어요. 그러니까 엄마가 소리를 지르며 당장 그만두라고 했어요. 현철이한테 전화도 하구요. 미치는 줄 알았어요.”
민수는 자신이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사이에 참 많은 일이 일어났구나 하고 느꼈다. 주희의 다른 면도 확인할 수 있었다. 섹스를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딸의 섹스는 단속하는 그 이중성. 다영이는 공부해야 할 시기였다. 그런 시기에 동물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보면 중요한 일에 흥미를 못느낄 수도 있었다. 공부가 시시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다영이는 열심히 공부를 해서 성적도 올랐다.
일주일에 한두번씩 남자 친구와 섹스를 하면서도 그것에 빠지지 않고 즐기면서 스트레스를 풀 줄도 알았다. 그런데 주희는 여기까지는 짐작하지 못했다.
혹시 임신이라도 하지 않을까, 인생이 잘못되지는 않을까 등등, 딸의 엄마로서 주희는 걱정을 하였지만 딸인 다영에게는 과도한 걱정으로 보였다.
“선생님, 우리 오늘은 공부 말고 섹스해요. 저 이주일 간이나 못했어요.”
"뭐...?"
다영이의 당돌한 요구에 민수는 그만 할 말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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