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그때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첫사랑이 그리운 것은, 지금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6부 폭풍속으로 가다.
은주와 만난후 제 생활은 서서히 헝클어져 가지 시작했어요.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을때가 많았고, 머리속은 늘 오빠.. 은주 생각으로 가득찼어요.
당연히 집안일은 소홀하게 되었죠.
남편과 애들한테는 짜증이 늘었어요. 작은 일에도 벌컥벌컥 화를 내고, 남편에게는 잔소리가 심해졌어요. 다른 아줌마들 얘기를 들어보면 ‘애인’이 생기면 그 미안함에 남편과 애들한테 더 잘한다고 하던데 저는 아니었어요. 매사가 짜증투성이였어요.
그즈음 오빠에 대해 집착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통화가 안되거나 연락이 안되면 ‘혹시나.. 은주랑?’
이런 생각이 온 뇌리를 지배하여 다른 일을 전혀 할 수 가 없었고, 오빠에게도 잔소리가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 미란아.. 요즘 왜그래? 나는 자기뿐이야.. “
“ 정말 맞지? 나 사랑하지? 은주한테는 얘기했어? “
“ 아직.. 그냥 안만나고 있어.. 전화와도 안받고 있고..”
“ 정말? “
“ 맞다니깐.. 하하! 괜한 걱정하지마.. 지난번에도 얘기했잖아… “
“ 응.. 알고있어.. 미안해요. 오빠.. “
“ 미란아… 사랑한다.. 많이 많이.. “
“ 오빠 나도 사랑해요. 정말루… “
오빠의 사랑을 확인하고 난 후에야 표정이 돌아오고,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연락이 안되거나, 만나지 못할때는 또 다시 우울해지구요.
오빠가 사업이 잘돼 점차 바빠지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오빠는 저에게 성실했어요. 시간나는 틈틈히 전화하고, 시간이 조금이라도 비면 저를 만나러 오구요. 오빠는 제 마음속 불안을 알고는 정말 성심을 다해 사랑해 주었어요.
그해 크리스마스 이브날은 잊을 수 없네요.
제가 살고 있는 이곳이 눈이 잘 안오는 곳인데, 그해에는 눈이 제법 자주 내렸어요. 크리마스 이브날에도 눈이 펑펑 내렸어요. 애인이 생기면 기념일이 기다려지죠? 너무나 큰 설레임….
“ 미란아 미안해… 갑자기 부산으로 출장 갈 일이 생겼어. 중국으로 보내줄 물량에 문제가 생겼나봐.. “
“ 응… 그래요? 알았어요. 할 수 없죠. 눈길 조심해서 다녀와요 “
“ 이브날 같이 하지 못해서 미안해 “
우울한 기분으로 이브날 밤을 맞이했어요. 남편은 나름대로 이벤트한다고 외식을 하고, 립스틱까지 하나 사왔어요. 감동하는 척하는 연기도 힘들더라구요. 저는 오빠를 보고싶었거든요. 나쁜년이죠? 그래도 남편의 성의를 생각해서 그날 밤은 성심을 다해 서비스(?) 해줬어요.
오랜만에 만족한 신랑은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고, 전 거실로 나와 창밖으로 하염없이 내리는 눈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 출장이잖아… 할 수 없지.. 사업이 잘돼야 하잖아…’
갑자기 은주에게 전화해보고 싶었어요.. 혹시…
하지말까? 해볼까? 시계를 보니… 12시가 가까워져 오고 있었어요.
분명 이브날이라고 술 한잔 하고 있을텐데… 안받을 수 있잖아…
오랜만에 은주에게 전화를 했어요. 한참을 신호가 가더니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은주가 혀꼬부라진 소리로 받더군요.
“ 아이… 미란이… 내 싸~랑하는 친구… 호호… 가시나야… 잘지내고 있어? “
“ 응.. 잘 지내고 있어.. 지금 뭐해? “
“ 뭐하긴 가시나야.. 이브날 술 한잔 해야지.. (은주씨… 노래 선곡해.. 뭐해.. 아.. 하하! ) “
전화기 너무 시끌벅적한 소음과 함께 걸걸한 남자 목소리와 여자목소리 마꾸 뒤섞여 들려왔어요.
오빠랑 같이 있지는 않는 것이 확실했어요.
“ 어.. 그래.. 미안.. 잼나게 놀아.. “
“ 야 이년아.. 니는 이 좋은 날 방구석에서 뭐하고 자빠졌어? “
“ 난… 그냥.. 있어… “
“ 키득키득 글쿤.. 미란아…… 나 근데 슬프다… 오늘도 오빠한테 전화했는데 아예 안받아… “
“ 응… 바쁘겠지 뭐… “
“ 혹시 너랑은 통화하니? “
“ 아니.. 통화안해.. 지난번 전화 한번 오고 난 뒤로는 소식 못들었어 “
“ 흑흑.. 나 너무 너무 오빠 보고싶다.. 미란아.. 어쩜 좋아.. 흑흑! “
술에 취한 은주는 주정을 하기 시작했어요.
전화를 끓고 나니 한숨이 절로 나왔어요.
은주는 은주대로 괴롭고…
저는 저대로 괴롭고…
이 무슨 꼴인가 싶었어요.
괴로우면 괴로울수록 오빠가 더 보고싶었어요.
오빠에게 전화를 해볼까? 망설이는데…
문자가 한통 들어왔어요. 혹시….??
발신 : 1588-4468 “사랑배달 대리운전 “
“ 지금 창밖을 보세요.
가을밤의 별빛들이 이제는 눈이 되어 내리네요.
사랑을 맞이하세요.
사랑은 ‘사랑배달 대리운전’과 함께
대리운전은 곧 사랑입니다
1588-4468 “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바뀌었어요.
남편과 한잔씩 할 때 면 가끔씩 남편이 제 핸드폰을 이용하여 대리를 부른 적이 있어서 대리운전업체 문자가 들어오곤 해요.
‘ 문자 한통도 못해줄 만큼 바쁜가? 쳇! “
다시 창밖을 멍하니 보다가 뭔가 좀 이상하여 다시 문자를 봤어요.
‘가을밤의 별빛…???’
배우자가 볼까봐 대리운전 문자로 암호처럼 해서 연락한다는 불륜커플 얘길 아줌마들한테 얼핏 들었던 것이 기억났어요.
혹시 오빠?
창문을 열고 베란다로 나갔어요. 바로 앞 주차장에 눈에 익숙한 차량 하나가 눈에 띄었어요. 눈을 하얗게 뒤집어쓴 회색 RV차… 언제부터 주차되어 있었을까요?
문이 열리며 오빠가 빨간 장미꽃을 한아름 안고 내렸어요. 그리고는 저에게 손을 흔들었어요.
‘ 아… 오빠…. ‘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은주한테 전화하며 의심한 제 자신이 한심스러웠고, 문자 한통 없다고 원망했던 것이 부끄러웠어요.
홈웨어 그대로에 파카만 걸치고는 남편과 애들 잠든 것을 다시 확인하곤 소리없이 집을 나왔어요. 엘리베이트 소리도 불안하여 계단으로 내려왔어요. 우리집은 4층이었거든요.
“ 보고싶었어… 정말루… “
“ 아.. 오빠… “
장미꽃 백송이를 내밀며 오빠가 환하게 미소지었어요.
너무나 멋진… 사랑하는 나의 님…
부산에서 장미꽃 백송이를 사들고 곧바로 우리집으로 왔다더군요. 남편이 야간조가 아니라 전화도 못하고 그냥 암호처럼 문자를 보냈다는 군요.
“ 오빠.. 너무 고마워요. 그리고.. 너무 너무 감동이에요. “
장미꽃을 받아들며 저는 눈물 흘렸어요. 비록 장미꽃을 집으로 들고 가진 못해도, 너무너무 행복했어요.
짧고 달콤한 키스만 하고 헤어지긴 했지만, 그날 크리스마스 이브는 평생 잊지 못할꺼예요.
그렇게 혼란스럽던 나날을 보내던 중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어요.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하죠?
오빠와 저와의 관계를 은주가 알아버린 거예요.
저와 오빠는 서로의 처지를 잘 알기에 최대한 은밀하게 만났어요. 혹여 남에게 들키는 날에는 우리 둘 모두 더 이상 볼 수 없음은 물론 평온한 가정까지 위협받게 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일은 엉뚱하게도 다른 곳에서 터졌어요.
오빠가 오랜만에 동창회에 나가서 저로 인해 동창과 싸웠나 보더라구요.
학교 다닐 때 저를 짓궂게 굴던 다른 오빠가 한명 있었어요. 명식이 오빠라고 옆동네 살던 오빠였는데 좀 추근대는 스타일의 오빠였어요. 제가 동창회에 안나가게 된 것이 그 오빠의 영향도 조금 있었어요. 한마디로 진상이죠. 끈적한 눈빛으로 어떻게 한번 해볼려는 의도를 감추지 않는 기분나쁜 느낌의 남자예요. 훌러덩 벗겨진 머리에 작은 눈을 번들거리며 먹이를 찾는 음흉한 늑대의 모습… 어떤 건지 아시죠?
그 명식이 오빠가 그날 동창회에서 술이 한잔 돼서는 제 얘기를 했나봐요. 한번 먹고싶다느니, 맛있겠다느니 하면서 은주한테 계속 저와의 만남을 졸랐다고 하더라구요. 그 얘기를 건너편에서 말없이 듣고 있던 재훈오빠가 술기운 때문이었던지 결국 참지 못하고 주먹다짐을 했다는 군요. 당연히 동창회는 아수라장이 되었고, 그 사건 이후로 은주가 우리 둘의 관계를 의심하기 시작했어요. 오빠가 저랑 만나고 난 이후 오빠는 은주를 멀리 하기 시작했고, 제 얘기에 폭발하는 오빠의 모습을 봤으니 어쩌면 은주가 의심하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해요.
그 날 이후 의심을 확인하고 싶었던 은주는 오빠에게 계속 만나자고 했으나, 오빠는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계속 피했고, 참다 못한 은주는 결국 수소문하여 오빠의 회사까지 찾아갔어요.
지금까지 은주는 연애에 쿨한 여자였어요. 남자에 대한 집착은 더더욱 없었구요. 그런 은주가 한 남자의 사랑을 구걸하고, 더 나아가 ‘집착’하는 여자로 변해가기 시작했어요.
그날 사무실에 갑자기 찾아온 은주를 급히 근처 조용한 찻집으로 데리고 간 오빠는 깜짝 놀랐데요. 그날 오빠는 은주의 ‘광기’를 느꼈다고 하더군요. 은주가 오빠를 사랑한다는 것을 저는 지난번 은주에게 들어서 있었지만, 처음 고백 받은 오빠는 충격이었다고 하더군요.
사랑과 괴로움과 의심과 확신을 울며 웃으며 말하는 은주에게서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다고 하더군요. 오빠는 저와의 관계는 끝까지 함구했고, 추궁하는 은주에게 ‘ 과거에는 조금 좋아했다. 지금은 전혀 아니다. 그날 명식이한테 격분한 것은 옛날에 조금은 좋아했던 미란이를 그렇게 지저분하게 얘기하는 것 때문에 갑자기 화가 폭발한 것이다’ 라며 가까스로 진정을 시켰다네요.
그렇게 얘기했음에도 의심이 완전히 없어지진 않았는지 은주는 자기와의 관계를 예전처럼 갖자고 졸라대요. 오빠는 어찌하여 시작된 관계였고, 또 좋았지만 더 이상은 와이프에게 죄짓는 것 같아 만나지 못하겠다고 선을 그었다는군요.
예전의 은주 같았으면 그 말에 쿨하게 그래 알았어 하고 뒤돌아섰을 것을 오빠에게는 울면서 자기가 욕심 안부릴 테니 조금만 더 만나자 애원했다 하더군요. 그러면서 오빠 원룸으로 가서 안아달라 요구했다는군요. 물론 오빠는 거절했구요.
지금 생각하면 오빠가 은주를 만나주면서 달랬으면 앞으로 일어날 사단은 안났을 수 도 있겠다 싶어요. 하지만 어디 그런가요? 저는 저 나름대로 오빠에게 은주 얘기를 들어면서 불 같은 질투에 휩싸였어요. 은주만 ‘광기’를 뿜은 것이 아니라, 저 또한 그 못지 않은 ‘광기’를 품고 있었어요.
“ 오빠! 나 사랑한다면 절대 은주랑 만나지마! 섹시 안한다고 해도 두 사람 얼굴도 마주치는 것 싫어! 은주랑 두번 다시 만나면 바로 절교야. 나 죽어버릴꺼야 “
“ 알았어… 그렇게 무서운 말 하지마. 은주랑은 안만나 “
저의 바램과 협박과는 달리 그 날 이후 은주의 집착은 더 깊어졌어요. 오빠의 회사로 계속 찾아와서 마침내 회사직원들까지 의심을 하기 시작했고, 결국 참다 못한 오빠는 은주와 대판 싸웠다고 하더군요.
지금 생각해보면 은주도 불쌍한 여자예요. 그저 사랑에 목마른 평범한 한 여자인데 그 사랑이 뜻대로 안되니 얼마나 큰 고통에 시달렸겠어요.
스산한 바람이 부는 2월 어느날 찻집에서 은주는 저에게도 부탁했어요.
“ 미란아. 나 재훈 오빠 정말 사랑해. 미치도록… 그러니까 니가 좀 도와조. 내 생각에는 오빠는 아직까지 니를 좋아하는 것 같아. 니는 그런 마음 없지? 그러니까 내 얘기 좀 잘해주고 만나주라고 얘기해줘 “
은주는 울면서 저에게 부탁했어요. ‘여자의 자존심’ 다 버리고 저의 손을 꼭 잡고 부탁했어요.
은주는 사랑에 미쳐가고 있었어요..
눈물 가득한 은주의 눈을 차마 마주하지 못하고
창밖으로 2월의 잿빛 하늘을 올려다 보았어요.
모든 것을 부술 것 같은 강력한 폭풍이 곧 휘몰아 칠 것 같은 예감에 몸이 떨려 왔어요.
6부 폭풍속으로 가다.
은주와 만난후 제 생활은 서서히 헝클어져 가지 시작했어요.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을때가 많았고, 머리속은 늘 오빠.. 은주 생각으로 가득찼어요.
당연히 집안일은 소홀하게 되었죠.
남편과 애들한테는 짜증이 늘었어요. 작은 일에도 벌컥벌컥 화를 내고, 남편에게는 잔소리가 심해졌어요. 다른 아줌마들 얘기를 들어보면 ‘애인’이 생기면 그 미안함에 남편과 애들한테 더 잘한다고 하던데 저는 아니었어요. 매사가 짜증투성이였어요.
그즈음 오빠에 대해 집착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통화가 안되거나 연락이 안되면 ‘혹시나.. 은주랑?’
이런 생각이 온 뇌리를 지배하여 다른 일을 전혀 할 수 가 없었고, 오빠에게도 잔소리가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 미란아.. 요즘 왜그래? 나는 자기뿐이야.. “
“ 정말 맞지? 나 사랑하지? 은주한테는 얘기했어? “
“ 아직.. 그냥 안만나고 있어.. 전화와도 안받고 있고..”
“ 정말? “
“ 맞다니깐.. 하하! 괜한 걱정하지마.. 지난번에도 얘기했잖아… “
“ 응.. 알고있어.. 미안해요. 오빠.. “
“ 미란아… 사랑한다.. 많이 많이.. “
“ 오빠 나도 사랑해요. 정말루… “
오빠의 사랑을 확인하고 난 후에야 표정이 돌아오고,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연락이 안되거나, 만나지 못할때는 또 다시 우울해지구요.
오빠가 사업이 잘돼 점차 바빠지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오빠는 저에게 성실했어요. 시간나는 틈틈히 전화하고, 시간이 조금이라도 비면 저를 만나러 오구요. 오빠는 제 마음속 불안을 알고는 정말 성심을 다해 사랑해 주었어요.
그해 크리스마스 이브날은 잊을 수 없네요.
제가 살고 있는 이곳이 눈이 잘 안오는 곳인데, 그해에는 눈이 제법 자주 내렸어요. 크리마스 이브날에도 눈이 펑펑 내렸어요. 애인이 생기면 기념일이 기다려지죠? 너무나 큰 설레임….
“ 미란아 미안해… 갑자기 부산으로 출장 갈 일이 생겼어. 중국으로 보내줄 물량에 문제가 생겼나봐.. “
“ 응… 그래요? 알았어요. 할 수 없죠. 눈길 조심해서 다녀와요 “
“ 이브날 같이 하지 못해서 미안해 “
우울한 기분으로 이브날 밤을 맞이했어요. 남편은 나름대로 이벤트한다고 외식을 하고, 립스틱까지 하나 사왔어요. 감동하는 척하는 연기도 힘들더라구요. 저는 오빠를 보고싶었거든요. 나쁜년이죠? 그래도 남편의 성의를 생각해서 그날 밤은 성심을 다해 서비스(?) 해줬어요.
오랜만에 만족한 신랑은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고, 전 거실로 나와 창밖으로 하염없이 내리는 눈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 출장이잖아… 할 수 없지.. 사업이 잘돼야 하잖아…’
갑자기 은주에게 전화해보고 싶었어요.. 혹시…
하지말까? 해볼까? 시계를 보니… 12시가 가까워져 오고 있었어요.
분명 이브날이라고 술 한잔 하고 있을텐데… 안받을 수 있잖아…
오랜만에 은주에게 전화를 했어요. 한참을 신호가 가더니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은주가 혀꼬부라진 소리로 받더군요.
“ 아이… 미란이… 내 싸~랑하는 친구… 호호… 가시나야… 잘지내고 있어? “
“ 응.. 잘 지내고 있어.. 지금 뭐해? “
“ 뭐하긴 가시나야.. 이브날 술 한잔 해야지.. (은주씨… 노래 선곡해.. 뭐해.. 아.. 하하! ) “
전화기 너무 시끌벅적한 소음과 함께 걸걸한 남자 목소리와 여자목소리 마꾸 뒤섞여 들려왔어요.
오빠랑 같이 있지는 않는 것이 확실했어요.
“ 어.. 그래.. 미안.. 잼나게 놀아.. “
“ 야 이년아.. 니는 이 좋은 날 방구석에서 뭐하고 자빠졌어? “
“ 난… 그냥.. 있어… “
“ 키득키득 글쿤.. 미란아…… 나 근데 슬프다… 오늘도 오빠한테 전화했는데 아예 안받아… “
“ 응… 바쁘겠지 뭐… “
“ 혹시 너랑은 통화하니? “
“ 아니.. 통화안해.. 지난번 전화 한번 오고 난 뒤로는 소식 못들었어 “
“ 흑흑.. 나 너무 너무 오빠 보고싶다.. 미란아.. 어쩜 좋아.. 흑흑! “
술에 취한 은주는 주정을 하기 시작했어요.
전화를 끓고 나니 한숨이 절로 나왔어요.
은주는 은주대로 괴롭고…
저는 저대로 괴롭고…
이 무슨 꼴인가 싶었어요.
괴로우면 괴로울수록 오빠가 더 보고싶었어요.
오빠에게 전화를 해볼까? 망설이는데…
문자가 한통 들어왔어요. 혹시….??
발신 : 1588-4468 “사랑배달 대리운전 “
“ 지금 창밖을 보세요.
가을밤의 별빛들이 이제는 눈이 되어 내리네요.
사랑을 맞이하세요.
사랑은 ‘사랑배달 대리운전’과 함께
대리운전은 곧 사랑입니다
1588-4468 “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바뀌었어요.
남편과 한잔씩 할 때 면 가끔씩 남편이 제 핸드폰을 이용하여 대리를 부른 적이 있어서 대리운전업체 문자가 들어오곤 해요.
‘ 문자 한통도 못해줄 만큼 바쁜가? 쳇! “
다시 창밖을 멍하니 보다가 뭔가 좀 이상하여 다시 문자를 봤어요.
‘가을밤의 별빛…???’
배우자가 볼까봐 대리운전 문자로 암호처럼 해서 연락한다는 불륜커플 얘길 아줌마들한테 얼핏 들었던 것이 기억났어요.
혹시 오빠?
창문을 열고 베란다로 나갔어요. 바로 앞 주차장에 눈에 익숙한 차량 하나가 눈에 띄었어요. 눈을 하얗게 뒤집어쓴 회색 RV차… 언제부터 주차되어 있었을까요?
문이 열리며 오빠가 빨간 장미꽃을 한아름 안고 내렸어요. 그리고는 저에게 손을 흔들었어요.
‘ 아… 오빠…. ‘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은주한테 전화하며 의심한 제 자신이 한심스러웠고, 문자 한통 없다고 원망했던 것이 부끄러웠어요.
홈웨어 그대로에 파카만 걸치고는 남편과 애들 잠든 것을 다시 확인하곤 소리없이 집을 나왔어요. 엘리베이트 소리도 불안하여 계단으로 내려왔어요. 우리집은 4층이었거든요.
“ 보고싶었어… 정말루… “
“ 아.. 오빠… “
장미꽃 백송이를 내밀며 오빠가 환하게 미소지었어요.
너무나 멋진… 사랑하는 나의 님…
부산에서 장미꽃 백송이를 사들고 곧바로 우리집으로 왔다더군요. 남편이 야간조가 아니라 전화도 못하고 그냥 암호처럼 문자를 보냈다는 군요.
“ 오빠.. 너무 고마워요. 그리고.. 너무 너무 감동이에요. “
장미꽃을 받아들며 저는 눈물 흘렸어요. 비록 장미꽃을 집으로 들고 가진 못해도, 너무너무 행복했어요.
짧고 달콤한 키스만 하고 헤어지긴 했지만, 그날 크리스마스 이브는 평생 잊지 못할꺼예요.
그렇게 혼란스럽던 나날을 보내던 중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어요.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하죠?
오빠와 저와의 관계를 은주가 알아버린 거예요.
저와 오빠는 서로의 처지를 잘 알기에 최대한 은밀하게 만났어요. 혹여 남에게 들키는 날에는 우리 둘 모두 더 이상 볼 수 없음은 물론 평온한 가정까지 위협받게 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일은 엉뚱하게도 다른 곳에서 터졌어요.
오빠가 오랜만에 동창회에 나가서 저로 인해 동창과 싸웠나 보더라구요.
학교 다닐 때 저를 짓궂게 굴던 다른 오빠가 한명 있었어요. 명식이 오빠라고 옆동네 살던 오빠였는데 좀 추근대는 스타일의 오빠였어요. 제가 동창회에 안나가게 된 것이 그 오빠의 영향도 조금 있었어요. 한마디로 진상이죠. 끈적한 눈빛으로 어떻게 한번 해볼려는 의도를 감추지 않는 기분나쁜 느낌의 남자예요. 훌러덩 벗겨진 머리에 작은 눈을 번들거리며 먹이를 찾는 음흉한 늑대의 모습… 어떤 건지 아시죠?
그 명식이 오빠가 그날 동창회에서 술이 한잔 돼서는 제 얘기를 했나봐요. 한번 먹고싶다느니, 맛있겠다느니 하면서 은주한테 계속 저와의 만남을 졸랐다고 하더라구요. 그 얘기를 건너편에서 말없이 듣고 있던 재훈오빠가 술기운 때문이었던지 결국 참지 못하고 주먹다짐을 했다는 군요. 당연히 동창회는 아수라장이 되었고, 그 사건 이후로 은주가 우리 둘의 관계를 의심하기 시작했어요. 오빠가 저랑 만나고 난 이후 오빠는 은주를 멀리 하기 시작했고, 제 얘기에 폭발하는 오빠의 모습을 봤으니 어쩌면 은주가 의심하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해요.
그 날 이후 의심을 확인하고 싶었던 은주는 오빠에게 계속 만나자고 했으나, 오빠는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계속 피했고, 참다 못한 은주는 결국 수소문하여 오빠의 회사까지 찾아갔어요.
지금까지 은주는 연애에 쿨한 여자였어요. 남자에 대한 집착은 더더욱 없었구요. 그런 은주가 한 남자의 사랑을 구걸하고, 더 나아가 ‘집착’하는 여자로 변해가기 시작했어요.
그날 사무실에 갑자기 찾아온 은주를 급히 근처 조용한 찻집으로 데리고 간 오빠는 깜짝 놀랐데요. 그날 오빠는 은주의 ‘광기’를 느꼈다고 하더군요. 은주가 오빠를 사랑한다는 것을 저는 지난번 은주에게 들어서 있었지만, 처음 고백 받은 오빠는 충격이었다고 하더군요.
사랑과 괴로움과 의심과 확신을 울며 웃으며 말하는 은주에게서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다고 하더군요. 오빠는 저와의 관계는 끝까지 함구했고, 추궁하는 은주에게 ‘ 과거에는 조금 좋아했다. 지금은 전혀 아니다. 그날 명식이한테 격분한 것은 옛날에 조금은 좋아했던 미란이를 그렇게 지저분하게 얘기하는 것 때문에 갑자기 화가 폭발한 것이다’ 라며 가까스로 진정을 시켰다네요.
그렇게 얘기했음에도 의심이 완전히 없어지진 않았는지 은주는 자기와의 관계를 예전처럼 갖자고 졸라대요. 오빠는 어찌하여 시작된 관계였고, 또 좋았지만 더 이상은 와이프에게 죄짓는 것 같아 만나지 못하겠다고 선을 그었다는군요.
예전의 은주 같았으면 그 말에 쿨하게 그래 알았어 하고 뒤돌아섰을 것을 오빠에게는 울면서 자기가 욕심 안부릴 테니 조금만 더 만나자 애원했다 하더군요. 그러면서 오빠 원룸으로 가서 안아달라 요구했다는군요. 물론 오빠는 거절했구요.
지금 생각하면 오빠가 은주를 만나주면서 달랬으면 앞으로 일어날 사단은 안났을 수 도 있겠다 싶어요. 하지만 어디 그런가요? 저는 저 나름대로 오빠에게 은주 얘기를 들어면서 불 같은 질투에 휩싸였어요. 은주만 ‘광기’를 뿜은 것이 아니라, 저 또한 그 못지 않은 ‘광기’를 품고 있었어요.
“ 오빠! 나 사랑한다면 절대 은주랑 만나지마! 섹시 안한다고 해도 두 사람 얼굴도 마주치는 것 싫어! 은주랑 두번 다시 만나면 바로 절교야. 나 죽어버릴꺼야 “
“ 알았어… 그렇게 무서운 말 하지마. 은주랑은 안만나 “
저의 바램과 협박과는 달리 그 날 이후 은주의 집착은 더 깊어졌어요. 오빠의 회사로 계속 찾아와서 마침내 회사직원들까지 의심을 하기 시작했고, 결국 참다 못한 오빠는 은주와 대판 싸웠다고 하더군요.
지금 생각해보면 은주도 불쌍한 여자예요. 그저 사랑에 목마른 평범한 한 여자인데 그 사랑이 뜻대로 안되니 얼마나 큰 고통에 시달렸겠어요.
스산한 바람이 부는 2월 어느날 찻집에서 은주는 저에게도 부탁했어요.
“ 미란아. 나 재훈 오빠 정말 사랑해. 미치도록… 그러니까 니가 좀 도와조. 내 생각에는 오빠는 아직까지 니를 좋아하는 것 같아. 니는 그런 마음 없지? 그러니까 내 얘기 좀 잘해주고 만나주라고 얘기해줘 “
은주는 울면서 저에게 부탁했어요. ‘여자의 자존심’ 다 버리고 저의 손을 꼭 잡고 부탁했어요.
은주는 사랑에 미쳐가고 있었어요..
눈물 가득한 은주의 눈을 차마 마주하지 못하고
창밖으로 2월의 잿빛 하늘을 올려다 보았어요.
모든 것을 부술 것 같은 강력한 폭풍이 곧 휘몰아 칠 것 같은 예감에 몸이 떨려 왔어요.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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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 황진이-19금 성인놀이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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