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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18:41 901회 0건
12월은 힘든 나날이었다. 난 12월 내내 거의 글을 쓰지 못했다. 대선이 끝난 후로는 더 그랬었다. 뭔지 모를 상실감에 힘들었다. 어느 후보가 대통령이 되든 내 삶에는 큰 변화가 없음을 알고 있었지만, 지지하던 후보의 패배는 긴 침묵으로 나를 이끌었다.

일주일쯤 전이었다. 도저히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아 시작했던 집안 대청소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몇 년은 지났을 법한 dvd 상자였는데, 거기에서 발견한 영화가 있었다.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할리조엘 오즈먼트가 나온 영화였다. sf같은 장르를 거의 보지 않는 내가 보고 한동안 몰입했었던 아역 배우였다. 돌아갈까를 의심했었는데, 청소를 멈추고 dvd를 돌려 본 영화는 다시 한 번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영화의 가장 중심된 내용은 개인이 어떻게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숙제로 주인공인 꼬마가 생각해 낸 하나의 사회운동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영화에서 주인공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방법으로 한 사람이 세명에게 큰 도움을 주고, 그 도움을 받은 사람이 다시 세 명에게 큰 도움을 주는 방식으로 사회를 변화시키자는 내용이었다.

큰 충격이었다. 사실, 대선은 내게 정치에 대한 희망을 빼앗아갔지만, 당장 내 앞에서 할 수 있는 사회운동이 있었다. 눈 앞에서 볼 수 있는 당장 손에 잡히는 사회운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난 영화의 주인공처럼 내 주위의 삶을 바꾸는 실제의 운동을 해보고 싶었다.

처음에는 그저 영화와 똑같은 일을 하려고 했었다. 그리고 주변을 살폈는데, 가장 적당한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 그녀는 우리 집 저녁알바였던 호정이였다. 호정이는 근처의 c대학에 다니고 있는 학생이었는데, 늘 미간을 찡그리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이유를 물었던 적이 있었는데, 치과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가끔씩만 받는 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던 거였다. 월급을 가불로 땡겨줄까를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공인회계사 준비를 하고 있어서 월급은 또 월급대로 모두 쓸데가 있다는 말을 들었었다.

이 치료비를 그냥 무상으로 주겠다면서, 대신 너도 나중 형편이 되었을 때, 주변의 세 사람에게 나와 비슷한 호의를 베풀어줬으면 한다는 내 말에, 호정이는 바로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라는 영화를 떠올렸지만, 거기서 나오는 사람들처럼 반응하지는 않았다. 그는 내 호의를 고마워하면서도, 그녀 자신이 그 영화에 나온 사람들처럼 행동하기는 어렵다는 말과, 돈을 이유로 내가 또다른 요구를 하지 않을까 고민하는 눈치였다. 호정이는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금 알게 됐지만, 자기의 이 치료비 90만원을 준다고 해서, 호정이 자신의 삶도, 그것을 지켜보는 내 삶도 변화하지 않을 것 같다는 말을 해줬다.

호정이 말은 사실이었다. 감동은 알고 있는 것에서는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호정이는 분명 내게 고마워하고 있었지만,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 아닌 머리로 알고 있는 일에 대한 경험은 그 자신이 다른 사람의 삶에까지 적극적으로 행동하게 만들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첫번째 시도는 그렇게 실패로 끝나는 것처럼 보였지만, 난 이 실패를 기점으로 나만의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틀 정도를 고민해서 내가 떠올린 새로운 방법은 평소부터 관심이 있던 주제로 내 주변을 바꿔간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거짓말과 칭찬. 난 예전에 내 첫사랑 이야기를 해줄게라는 소설에서, 그런 장면을 쓴 적이 있었다. 주인공인 이경민이 여자를 좋아하는 소문을 듣고, 그것을 쿨하게 받아들여주는 장면이었는데, 난 거기에서 내가 쓰고서도 꽤 마음에 남는 글을 썼던 기억이 있다.

"내가 널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니까, 그런 소문이 난다고 해도 난 아무렇지도 않아. 사실이 아닌 것으로 생긴 소문이니까, 그게 마음에 걸리면, 네 마음대로 해도 돼. 거짓으로 시작된 일이니까 말이야."

괜찮은 장면이었다. 난 예전부터 칭찬으로 사람이 바뀌는 것을 여러번 경험했었다. 난 다시 내 가설과 사회운동을 시도해볼만한 대상을 찾기 시작했다. 두번째 대상은 우리 가게 옆의 매운갈비집 사장인 최형인이라는 40대의 남자였다. 우리 편의점에는 담배만을 사러오는 사람이었지만, 어쨌거나 안면도 있었는데, 난 그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내가 거의 매일 우리 파라솔은 물론이고, 그의 집 앞에 있는 파라솔에 있는 담배꽁초들을 주워주고 있는데도 한 번도 고맙다는 인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겨울이 되면서 어차피 나도 야외 파라솔을 신경쓰지 않게 되었지만, 그의 가게 음식물 쓰레기통을 내놓는 장소가 우리 편의점 파라솔과 가까웠기 때문에 그 것만은 매번 치워달라는 이야기를 해야 했던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좀 짜증이 났었다.

예전부터 그럴듯한 거짓말을 하는 데는 소질이 있는 내가 선택한 거짓말과 칭찬의 내용은 이러했다. 우리 건물을 청소해주는 아주머니는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이긴 했지만, 얼굴이 예쁜 편이었다. 아주머니의 사정은 거의 몰랐지만, 아주머니 역시 지저분한 음식물 쓰레기 통 문제는 나와 공통적으로 통하는 바가 있었고, 지저분한 최사장의 평소 행실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난 커피를 타 들고, 청소를 하는 아주머니를 청했다. 내가 건물에 입주한 지 벌써 7-8년이나 지났지만, 이런 일은 처음있는 일이어서 아주머니도 당황했는데, 난 아주머니에게 매운 갈비집의 최사장 이야기를 꺼냈다.

"아주머니, 매운갈비집 최사장 형님 말이에요."
"아, 최사장님이 왜요?"
"그냥, 요즘 아주머니 이야기를 자주 묻더라고요. 이혼을 했다고 그러더니..."
"그런데요?"

말이 뾰족했다. 난 한 발 물러서기로 했다. 급해서 좋을 건 없었고, 이런 건 급하게 추진해서는 되지도 않을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뇨. 그냥요. 아주머니는 어떠세요? 예전에 들었는데, 혼자 되신 지 좀 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뭐? 그래서 이사장이 중매라도 서시게요? 그러지 마요. 나 같은 사람..."
"아니요. 그래서 그런 건 아니고, 생각해보니까, 고맙다는 인사도 한 번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요. 겨울이라 힘드시죠?"
"먹고 살려면 어쩔 수가 있나요. 그럼 가볼게요. 최사장님 이야긴 못들은 걸로 할게요."
"네, 죄송합니다. 아주머니."

이야기는 짧았지만,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있었다. 오피스텔의 경비원 한씨 할아버지였다. 한씨 할아버지는 라면을 늘 자기 집 옆의 슈퍼마켓에서 사지만, 우리 편의점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가는 사람이어서 내 눈밖에 난 또 한 명의 사람이었는데, 건물 내에서 이런 저런 소문을 퍼다 나르는 소문의 진원지격인 사람이었다. 난 하루나 이틀 안에, 이 말이 최사장에게 전해질 것을 알고 있었다.

최사장이 편의점을 찾아온 것은 그 날 저녁이었다. 조금 열이 난 듯한 최사장은 냉동식품 유통기한 검사를 하고 있던 나를 다짜고짜 자신의 갈비집으로 데려갔다. 저녁이 일러서인지 홀에는 손님이 없었고, 주방은 한참 장사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아무도 없는 홀에서 최사장은 아침의 일을 물었다.

"경민아. 어떻게 된거야? 내가 왜 청소부 아주머니를.."
"그게 아니고요. 사실은 아주머니가 형님을 신경쓰는 눈치가 보여서요."
"응?"
"그게... 아니에요. 괜히 말 옮기는 것 같아 싫습니다. 그냥 그렇게만 알고 계세요."
"뭔 말이야?"
"아니에요. 죄송하게 됐습니다. 그냥 제 딴에는 제 식으로 조용하게 처리를 한다는 게."
"똑똑이 이야기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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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현재 상황으로 100퍼센트 경험담입니다.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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