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으로 사랑하려면 가장 필요한 것이 결핍이라고 생각했었던 때가 있었었다. 행복이란 꽉 찬 만족감에서 오는 것이지만, 사랑이란 누군가를 마음을 써서 아끼고 위하는 마음이니까, 진심으로 전심전력을 다해 사랑하려면, 그 사랑의 대상이 내게 없는 무언가를 가지던가. 내가 가지고 싶은 어떤 것을 가지던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던 것이다. 지희는 내게는 언제나 통하는 코드를 몇 가지나 가지고 있었다. 난 어린 여자아이에게는 일단 약하다. 첫조카 소윤이의 영향인지, 난 어린 여자애가 조금이라도 나쁜 상황에 빠지는 것이 진저리나게 싫다. 두번째는 가난이다. 없어 본 사람만이 진짜 어려운 마음을 안다. 난 내가 키가 더 크지 못한 것이 중학교 2학년 때 맞게 된 우리 집의 가난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지금이야 형편이 폈지만, 그 때 우리는 심각할 정도로 가난했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산 신발을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신고 다닐 정도로 난 조심스럽게 살았다. 내 조카 소윤이가 좀 자라면 그렇게 될 것 같은 지희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우지 않았으면 했다.
아침을 먹고 느지막히 집을 출발하면서, 엄마에게 저 망할 놈의 오지랖은 개나 줘버리라고 욕을 먹으면서도 결심이 서고나니 마음이 오히려 가벼웠다. 나는 선생님께 말씀드려 지희의 후원자 될 작정이었다. 지희가 혼자 설 수 있을 나이가 될 때까지 필요할 때마다 도울 작정이었다. 그저 돈을 부쳐주는 사이가 아니라, 여름엔 수박을 들고 계곡을 가고, 겨울엔 전구에서 제일 맛있는 찐빵이나 만두집이라도 찾아다니는 여행을 하는 그런 마음의 동반자가 되길 원했다. 난 이마트에 들려서 별다른 기능이 없는 가장 간단한 구조의 제일 작은 전자렌지를 하나 사서 택시를 타고 곧장 선생님 댁으로 향했다. 연휴 끝의 오전 11시니 집에 선생님이 계실거라 단정해서 전화도 하지 않았다.
선생님 댁 골목에 어제 대놓았던 차에 렌지와 집에서 싸온 보따리를 놓고 나서야 휴대폰으로 전화를 드렸는데, 선생님은 전화를 받지 않으셨다. 그냥 들고 올라가려다가 그래도 모르는 사람 집에 아무 연락도 하지 않고 가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다시 전화를 걸어봤지만 역시 받지 않았다. 잠깐 기다리다 안되면 근처의 편의점이나 미용실 같은 곳에 맡겨두고 가야 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차에 앉아서 허각의 정규앨범 1집을 두 번이나 처음부터 끝까지 들었는데도, 오지 않으셨다. 일단 전자렌지는 차에 두고 그냥 올라가서 문을 두드려 봤는데, 역시나 아무도 없었다. 집에서 만들어서 온 영양떡을 하나 까서 먹다가 목이 말라서 근처의 슈퍼마켓으로 음료수를 사러갔다가 다녀왔더니, 지희는 어디에 갔는지 없고, 선생님과 왠지 걸음걸이가 불안한 중녀의 남자가 같이 무슨 말다툼을 하면서 걸어오고 있었다. 내가 있으면 괜히 이상스러울 것 같아 재빨리 골목에 숨었는데, 가까이 올수록 둘의 대화가 들렸다.
"그러니까, 3만원만 달라니까. 3만원만 주면 내가 때려 죽여도 이 놈의 집구석에 안 올라니까."
"당신이랑 나랑 이제 아무 사이도 아니야. 차라리 이럴거면 나가 죽어. 왜 그러고 살아."
"시대가 잘못된 것이지. 내 잘못이라는 거야. 지금. 좋아. 딜이야. 친권 완전히 포기할 테니까 30만원만 내. 그 돈 먹고 확 죽어버릴라니까. 쥐약이라도 사먹게 돈을 내노라고."
"쥐약은 왜 먹는데, 아무 아파트나 옥상에 가서 뛰어내려! 쥐약 먹었다가 괜히 죽지도 못하고 병원치료나 하고 있으면 그 잘난 당신 집에서 얼씨구나 하고 당신 병구완 하겠다. 당신 죽어도 지금 보험도 하나 없어서 돈도 안 돼."
"독하다 너. 왜 샛서방이라도 생겼어. 그래서 그러는 거야. 요즘 안맞으니까 슬슬 기어 오른다. 씨발 개좆같이 턱이나 툭 튀어나온 여자를 마누라라고 10년이나 떠받들고 살았더니만 말이야. 어디서 지랄이야. 씨발. 돈좀 달라고. 나 지금 보이는 거 없어."
"진짜 먹고 죽으려고 해도 돈이 없다니까."
묘하게 현실적이고, 묘하게 험한 대화가 계속 이어졌다. 어지간히 뻔뻔한 나라도 그 앞에 아 선생님 전데요 하고 나설 수가 없었다. 중년 사내는 선생님의 전남편이 분명해 보였지만, 결혼식 때 내가 봤던 그 사람과 동일인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얼굴에 실패자라고 적혀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몰리더라도 마음이 꺾이지 않는 사람들에게선 저런 식의 열패감이 그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절박함과 깡마저 없는 선생님의 전남편에게서 위험한 향기가 풍겼다. 저대로 둬도 될까 싶어서 몰래 뒤를 따랐다. 혹시나 무슨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까 싶어서 뒤를 밟으면서도 어떤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막으려면 지금밖에 기회가 없는 것이 아닐까 하면서도 끝내 나서지 못한 것은 자기가 좋았던 시절에 만났던 제자에게서 구질구질한 꼴을 보이게 되면 선생님이 또 얼마나 상처를 받을까 해서였다. 몸의 상처는 쉽게 낫지만, 마음의 상처는 평생 가니까.
둘은 집으로 들어갔고, 난 문 앞에 바짝 붙어서 안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려고 했지만, 안에서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시계를 봤더니 1시가 좀 지나 있었다. 난 10분을 기다려보고, 안에서 남자가 나오지 않으면 일단 초인종을 눌러, 내 방문목적을 밝히고 돌입이라도 할 작정이었다. 천천히 쉼호흡을 하며 핸드폰을 노려보고 있는데, 시간이 더디게 흘렀다. 참지 못하고 난 7분쯤이 지났을 때 살짝 문의 손잡이를 비틀어 보았다. 문은 별다른 소리도 없이 열렸고, 거실에는 벌거벗은 두 명의 부부가 있었다. 선생님의 전 남편은 선생님의 뒤에서 때가 낀 내의를 윗도리만 입은 채로 옷을 몽땅 벗은 선생님의 뒷머리채를 잡고 자기의 엉덩이를 요란스럽게 흔들고 있었다.
"씨발년. 좋지? 좋지? 아이고 허리 요분질 치는 것좀 봐라. 죽겠지. 내가 아직 죽지 않았다고. 씨발년. 좋지?"
"아흑. 아흑. 흐흐흑."
섹스에 열중한 탓인지 문을 살짝 열고 현관에 반발쯤을 걸친 나를 눈치재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일단 문을 닫고 나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지희 방의 문이 열리더니 새파랗게 질린 지희가 뛰쳐 나와 제 아빠의 몸을 마구 밀었다. 그것도 죽어. 죽어라고 하면서.
지옥을 보는 것 같았다. 갑자기 일어선 지희의 아빠이자 선생님의 전남편으로 추정되는 남자가 선생님께 들이대던 자지를 덜렁거리면서 지희 쪽으로 다가가서 무자비한 뺨을 날렸다. 열살 아이가 휙하고 한쪽 구석에 처박혔다. 지희는 한쪽 구석에 쓰러져서는 기절을 한 것인지 몸을 움직이지도 않았다. 선생님이 째지는 비명소리를 냈고, 아이가 조용해지자 선생님의 남편은 다시 아이쪽으로 다가가는 선생님의 발목을 잡더니 억지로 벌리고 덜렁거리는 자기의 자지를 다시 쑤셔 넣으려고 했다.
"지희야! 지희야. 일어나. 일어나!"
"그러게 교육을 똑바로 시켜야지. 감히 누구한테 씨발 좆같은 년이 죽으라고 난리야. 지 애비한테 저러는 년이 어디에 있어. 개같은 년아. 교육을 잘 시켜야 할 게 아니야. 왜 몸이 굳었어. 씨발년아 감탕질을 하라고. 요분질을 치라고. 너도 맞고 싶지. 또 맞고 싶지."
더는 볼 수가 없었다. 난 문을 닫고 나와서 119와 경찰에 신고를 했다. 명절 끝이라 그런지 두 기관 모두 급한 마음에 비해 빨리 오지 않았다. 차가운 공기를 한참이나 견디고 나서야 경찰이 먼저 도착했고, 난 선생님의 제자라는 것을 밝히고, 어제 선생님 댁에 들렀다가 차를 놓고가서 인사를 드리려고 올라왔다가 이런 꼴을 보게 됐다는 말을 집의 입구에서부터 미리 하고서는 연립의 이층에 올랐고, 경찰과 함께 문을 열었다.
5분이나 십분쯤이 지났을까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지 않은 것 같았는데, 안은 더 끔찍해져 있었다. 선생님의 얼굴이 엉망이었다. 코피랑 침으로 케첩에 빠진 인형꼴이 되어 있었다. 목소리가 말라붙어서 더는 나오지 않는 것 같은 모양새로 선생님은 강간을 당하면서도 한쪽 손으로 지희의 허벅지를 세차게 때리면서 지희를 깨우고 있었고, 그 뒤에서 선생님의 남편은 갑자기 나타난 경찰을 황당한 시선으로 보면서 욕설을 내뱉으면서 천천히 자기 트렁크 팬티를 찾아입더니 담배를 하나 물면서 쓰러져서 울고 있는 벌거벗은 자기 마누라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경찰관이 재빨리 자기 옷을 벗어서 선생님의 몸을 가렸고, 다른 경찰관이 지희의 호흡을 살피는 게 보였다. 선생님의 남편은 피우던 담배를 거실 테이블 유리에 그냥 눌러끄면서 툭 던지듯 말했다.
"잘 되었어. 겨울 한 철은 밥 굶지 않게 되었어. 어이 형사 양반. 가십시다. 그리고 저 가시나는 괜찮아. 이런 적이 한 두번이 아니거든. 내가 잘 때렸어. 죽지 않으니까 걱정할 것 없어. 내가 그런 조절은 기가 막히거든. 그리고, 정보경이. 너 말이야. 옥바라지 잘 해. 내가 누군지 알지. 니 하늘 같은 남편이야. 내가 빵간 나와서 누굴 다시 찾겠냐. 딸내미에 마누라 찾지 않겠어?"
119가 도착했고, 옷을 제대로 챙겨입지도 못하고 탈진한 선생님과 기절한 지희를 데리고 가버렸다. 난 경찰서에 임의 동행해서, 신고의 경위와 이런저런 사건에 대해 진술을 한 후, 경찰서를 나왔다. 때때로 세상은 기대했던 것과 반대의 일을 남긴다. 무자비한 폭력 앞에 무너지는 지희와 선생님이 난 좀 더 무서워졌다. 부담스러웠다. 병원에 들리지 않고 곧장 대전 집으로 와서는 침대에 누워서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백번이고 천번이고 생각했다. 비겁한 선택이 될 것 같지만 난 일단은 내가 안정이 될 때까지는 도망칠 것을 결심했다. 씨발. 욕을 하지 않았는데. 빌어먹을 세상은 역시나 욕이 나온다. 제기랄...쓰러진 지희가 힘없이 날아가던 장면을 언제나 되어야 잊을 수 있을까. 속이 울렁거린다.
아침을 먹고 느지막히 집을 출발하면서, 엄마에게 저 망할 놈의 오지랖은 개나 줘버리라고 욕을 먹으면서도 결심이 서고나니 마음이 오히려 가벼웠다. 나는 선생님께 말씀드려 지희의 후원자 될 작정이었다. 지희가 혼자 설 수 있을 나이가 될 때까지 필요할 때마다 도울 작정이었다. 그저 돈을 부쳐주는 사이가 아니라, 여름엔 수박을 들고 계곡을 가고, 겨울엔 전구에서 제일 맛있는 찐빵이나 만두집이라도 찾아다니는 여행을 하는 그런 마음의 동반자가 되길 원했다. 난 이마트에 들려서 별다른 기능이 없는 가장 간단한 구조의 제일 작은 전자렌지를 하나 사서 택시를 타고 곧장 선생님 댁으로 향했다. 연휴 끝의 오전 11시니 집에 선생님이 계실거라 단정해서 전화도 하지 않았다.
선생님 댁 골목에 어제 대놓았던 차에 렌지와 집에서 싸온 보따리를 놓고 나서야 휴대폰으로 전화를 드렸는데, 선생님은 전화를 받지 않으셨다. 그냥 들고 올라가려다가 그래도 모르는 사람 집에 아무 연락도 하지 않고 가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다시 전화를 걸어봤지만 역시 받지 않았다. 잠깐 기다리다 안되면 근처의 편의점이나 미용실 같은 곳에 맡겨두고 가야 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차에 앉아서 허각의 정규앨범 1집을 두 번이나 처음부터 끝까지 들었는데도, 오지 않으셨다. 일단 전자렌지는 차에 두고 그냥 올라가서 문을 두드려 봤는데, 역시나 아무도 없었다. 집에서 만들어서 온 영양떡을 하나 까서 먹다가 목이 말라서 근처의 슈퍼마켓으로 음료수를 사러갔다가 다녀왔더니, 지희는 어디에 갔는지 없고, 선생님과 왠지 걸음걸이가 불안한 중녀의 남자가 같이 무슨 말다툼을 하면서 걸어오고 있었다. 내가 있으면 괜히 이상스러울 것 같아 재빨리 골목에 숨었는데, 가까이 올수록 둘의 대화가 들렸다.
"그러니까, 3만원만 달라니까. 3만원만 주면 내가 때려 죽여도 이 놈의 집구석에 안 올라니까."
"당신이랑 나랑 이제 아무 사이도 아니야. 차라리 이럴거면 나가 죽어. 왜 그러고 살아."
"시대가 잘못된 것이지. 내 잘못이라는 거야. 지금. 좋아. 딜이야. 친권 완전히 포기할 테니까 30만원만 내. 그 돈 먹고 확 죽어버릴라니까. 쥐약이라도 사먹게 돈을 내노라고."
"쥐약은 왜 먹는데, 아무 아파트나 옥상에 가서 뛰어내려! 쥐약 먹었다가 괜히 죽지도 못하고 병원치료나 하고 있으면 그 잘난 당신 집에서 얼씨구나 하고 당신 병구완 하겠다. 당신 죽어도 지금 보험도 하나 없어서 돈도 안 돼."
"독하다 너. 왜 샛서방이라도 생겼어. 그래서 그러는 거야. 요즘 안맞으니까 슬슬 기어 오른다. 씨발 개좆같이 턱이나 툭 튀어나온 여자를 마누라라고 10년이나 떠받들고 살았더니만 말이야. 어디서 지랄이야. 씨발. 돈좀 달라고. 나 지금 보이는 거 없어."
"진짜 먹고 죽으려고 해도 돈이 없다니까."
묘하게 현실적이고, 묘하게 험한 대화가 계속 이어졌다. 어지간히 뻔뻔한 나라도 그 앞에 아 선생님 전데요 하고 나설 수가 없었다. 중년 사내는 선생님의 전남편이 분명해 보였지만, 결혼식 때 내가 봤던 그 사람과 동일인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얼굴에 실패자라고 적혀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몰리더라도 마음이 꺾이지 않는 사람들에게선 저런 식의 열패감이 그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절박함과 깡마저 없는 선생님의 전남편에게서 위험한 향기가 풍겼다. 저대로 둬도 될까 싶어서 몰래 뒤를 따랐다. 혹시나 무슨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까 싶어서 뒤를 밟으면서도 어떤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막으려면 지금밖에 기회가 없는 것이 아닐까 하면서도 끝내 나서지 못한 것은 자기가 좋았던 시절에 만났던 제자에게서 구질구질한 꼴을 보이게 되면 선생님이 또 얼마나 상처를 받을까 해서였다. 몸의 상처는 쉽게 낫지만, 마음의 상처는 평생 가니까.
둘은 집으로 들어갔고, 난 문 앞에 바짝 붙어서 안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려고 했지만, 안에서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시계를 봤더니 1시가 좀 지나 있었다. 난 10분을 기다려보고, 안에서 남자가 나오지 않으면 일단 초인종을 눌러, 내 방문목적을 밝히고 돌입이라도 할 작정이었다. 천천히 쉼호흡을 하며 핸드폰을 노려보고 있는데, 시간이 더디게 흘렀다. 참지 못하고 난 7분쯤이 지났을 때 살짝 문의 손잡이를 비틀어 보았다. 문은 별다른 소리도 없이 열렸고, 거실에는 벌거벗은 두 명의 부부가 있었다. 선생님의 전 남편은 선생님의 뒤에서 때가 낀 내의를 윗도리만 입은 채로 옷을 몽땅 벗은 선생님의 뒷머리채를 잡고 자기의 엉덩이를 요란스럽게 흔들고 있었다.
"씨발년. 좋지? 좋지? 아이고 허리 요분질 치는 것좀 봐라. 죽겠지. 내가 아직 죽지 않았다고. 씨발년. 좋지?"
"아흑. 아흑. 흐흐흑."
섹스에 열중한 탓인지 문을 살짝 열고 현관에 반발쯤을 걸친 나를 눈치재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일단 문을 닫고 나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지희 방의 문이 열리더니 새파랗게 질린 지희가 뛰쳐 나와 제 아빠의 몸을 마구 밀었다. 그것도 죽어. 죽어라고 하면서.
지옥을 보는 것 같았다. 갑자기 일어선 지희의 아빠이자 선생님의 전남편으로 추정되는 남자가 선생님께 들이대던 자지를 덜렁거리면서 지희 쪽으로 다가가서 무자비한 뺨을 날렸다. 열살 아이가 휙하고 한쪽 구석에 처박혔다. 지희는 한쪽 구석에 쓰러져서는 기절을 한 것인지 몸을 움직이지도 않았다. 선생님이 째지는 비명소리를 냈고, 아이가 조용해지자 선생님의 남편은 다시 아이쪽으로 다가가는 선생님의 발목을 잡더니 억지로 벌리고 덜렁거리는 자기의 자지를 다시 쑤셔 넣으려고 했다.
"지희야! 지희야. 일어나. 일어나!"
"그러게 교육을 똑바로 시켜야지. 감히 누구한테 씨발 좆같은 년이 죽으라고 난리야. 지 애비한테 저러는 년이 어디에 있어. 개같은 년아. 교육을 잘 시켜야 할 게 아니야. 왜 몸이 굳었어. 씨발년아 감탕질을 하라고. 요분질을 치라고. 너도 맞고 싶지. 또 맞고 싶지."
더는 볼 수가 없었다. 난 문을 닫고 나와서 119와 경찰에 신고를 했다. 명절 끝이라 그런지 두 기관 모두 급한 마음에 비해 빨리 오지 않았다. 차가운 공기를 한참이나 견디고 나서야 경찰이 먼저 도착했고, 난 선생님의 제자라는 것을 밝히고, 어제 선생님 댁에 들렀다가 차를 놓고가서 인사를 드리려고 올라왔다가 이런 꼴을 보게 됐다는 말을 집의 입구에서부터 미리 하고서는 연립의 이층에 올랐고, 경찰과 함께 문을 열었다.
5분이나 십분쯤이 지났을까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지 않은 것 같았는데, 안은 더 끔찍해져 있었다. 선생님의 얼굴이 엉망이었다. 코피랑 침으로 케첩에 빠진 인형꼴이 되어 있었다. 목소리가 말라붙어서 더는 나오지 않는 것 같은 모양새로 선생님은 강간을 당하면서도 한쪽 손으로 지희의 허벅지를 세차게 때리면서 지희를 깨우고 있었고, 그 뒤에서 선생님의 남편은 갑자기 나타난 경찰을 황당한 시선으로 보면서 욕설을 내뱉으면서 천천히 자기 트렁크 팬티를 찾아입더니 담배를 하나 물면서 쓰러져서 울고 있는 벌거벗은 자기 마누라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경찰관이 재빨리 자기 옷을 벗어서 선생님의 몸을 가렸고, 다른 경찰관이 지희의 호흡을 살피는 게 보였다. 선생님의 남편은 피우던 담배를 거실 테이블 유리에 그냥 눌러끄면서 툭 던지듯 말했다.
"잘 되었어. 겨울 한 철은 밥 굶지 않게 되었어. 어이 형사 양반. 가십시다. 그리고 저 가시나는 괜찮아. 이런 적이 한 두번이 아니거든. 내가 잘 때렸어. 죽지 않으니까 걱정할 것 없어. 내가 그런 조절은 기가 막히거든. 그리고, 정보경이. 너 말이야. 옥바라지 잘 해. 내가 누군지 알지. 니 하늘 같은 남편이야. 내가 빵간 나와서 누굴 다시 찾겠냐. 딸내미에 마누라 찾지 않겠어?"
119가 도착했고, 옷을 제대로 챙겨입지도 못하고 탈진한 선생님과 기절한 지희를 데리고 가버렸다. 난 경찰서에 임의 동행해서, 신고의 경위와 이런저런 사건에 대해 진술을 한 후, 경찰서를 나왔다. 때때로 세상은 기대했던 것과 반대의 일을 남긴다. 무자비한 폭력 앞에 무너지는 지희와 선생님이 난 좀 더 무서워졌다. 부담스러웠다. 병원에 들리지 않고 곧장 대전 집으로 와서는 침대에 누워서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백번이고 천번이고 생각했다. 비겁한 선택이 될 것 같지만 난 일단은 내가 안정이 될 때까지는 도망칠 것을 결심했다. 씨발. 욕을 하지 않았는데. 빌어먹을 세상은 역시나 욕이 나온다. 제기랄...쓰러진 지희가 힘없이 날아가던 장면을 언제나 되어야 잊을 수 있을까. 속이 울렁거린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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