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화가 잘 나지 않는 타입의 사람이다. 기본적으로 다툼이 생기기 전에 내 쪽에서 먼저 양보하는 스타일인데다, 불합리한 일이 생기기 어려운 생활 패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도 사람인데, 화가 날 때가 있다. 어지간한 화는 그냥 참아 넘긴다. 속에 쌓아두는 성격이 못되어서 시간이 지나면 풀려버리는 걸 알아서, 화를 표출해서 괜히 나중에 곤란한 상황을 겪는 것보다는 그냥 참아내는 편이 내 인생에 훨씬 더 좋은 일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 나이가 되었다.
참아내지 못할 것 같은 화가 나면 일단은 청소를 한다. 집이나 가게가 아닐 때는 그냥 아무 편의점에 들어가서 봉투 하나와 젓가락을 얻어서 주변의 담배꽁초를 줍는다. 작년 12월에도 그럴 때가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이랑 어깨가 부딪쳤었는데, 먼저 사과를 했음에도 그 사람은 계속해서 시비를 걸었다. 취기가 좀 있어 보여서 사과를 하고 피하려고 했는데도, 피해 보상을 운운하면서 짜증을 냈다. 얼굴에 한 대 쳐 봐 한대 치기만 하면 어떻게든 걸어서 치료비와 합의금을 뜯어 낼게라고 쓰여 있어서 거의 이십 분 가량이나 사과에 사과를 거듭했지만 시비를 걸어서 난 경찰에다 신고를 했고, 그제야 그 사람은 내게 침을 뱉으면서 배알도 없는 새끼라고 하고선 길을 황급히 떠났다. 황당하고 짜증이 났다. 난 경찰에 다시 전화를 걸어 사정을 밝혔는데, 이번에는 경찰까지 쓸데없는 일로 신고한 나를 비난했다. 화가 너무 나서 참을 수 없어서 난 거의 두 시간 정도를 거리를 청소했다. 골목 하나를 다 치우고, 내게는 거의 1/3이 찬 담배꽁초 봉투가 남았던 적이 있었다.
그보다 더 화가 나면 난 수를 센다. 수를 세는 건 내 오랜 비법 중 하나인데, 나는 중학교 때부터 수를 세는 걸로 화를 풀곤 했다. 나는 내 주위의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이 방법을 추천했는데, 후에 물어본 바로는 삼백을 센 사람도 거의 없었다. 난 구천까지 센 적이 있다. 중학교 때 집이 극도로 어려웠을 때였다.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내셨었는데, 그걸로 정직을 당하시고, 교도소에서 잠시 생활 하셨다. 아버지의 부재에 큰 충격을 받으신 엄마가 우울증 초기 증상을 보였었고, 초등학생이었던 동생은 종일 칭얼거렸다. 난 더 이상의 바닥은 없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때 우리 집은 도로 바로 옆 외딴 단독주택이었는데, 난 집 앞에 앉아서 지나는 차를 멍하게 세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차 세기는 차가 잘 다니지 않을 시간까지 계속 되었고, 난 차가 다니지 않을 때도 그냥 숫자를 셌다. 죽을 결심을 한 것도 아니었는데, 수를 세며 죽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 시간이 오래되자 이번엔 죽지 말아야 할 이유와 살기위해서 해야 할 일들이 떠올랐다. 그렇게 살았고, 난 그 뒤로도 막다른 길에 다다르면 언제나 수를 센다.
지희를 버려두고 대전으로 도망친 후에 난 거의 모든 상황에서 지희를 떠올려야 했다. 마지막으로 외면한 지희의 얼굴이 잘 기억에 남지 않았는데도, 내 멋대로 지희의 우는 얼굴을 상상하고 또 상상했다. 경찰서와 병원에 전화를 걸어서 선생님의 상황과 지희의 상황을 물어보려다가도 만약 상황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지 않을 경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어떤 것이 있을까를 생각하면 도무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여친인 세인이에게 지희 이야기를 했다가 난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다. 일반적인 반응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무슨 tv드라마의 주인공도 아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세인이의 말을 듣고 난 그 힘내요미스터 김이라는 김동완이 나오는 드라마를 처음부터 현재 방영된 편까지 모두 보았지만, 내가 김동완이 될 수는 없었다. 난 부모님이 있었고, 결혼을 앞두고 있는 여자친구도 있었다. 아프리카 아이를 돕는 것처럼 한달에 몇 만원을 평생 내라면 그렇게 할 수도 있겠지만, 지희의 상황에서 몇 만원의 돈이 지희의 삶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괜히 기대를 주는 것도 좋지 못한 일 같았다.
불행한 사람은 자기에게 주는 호의를 생명줄같이 느낄 때가 있다. 무엇보다 지희의 기대를 받고 싶지 않았다. 지희의 처지가 안됐긴 했지만, 그냥 지나다 만난 불쌍한 사람에게 모두 호의를 베푸는 일은 국가도 하지 못하는 일이다.
내가 선택한 것은 언제나처럼 수를 세는 일이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이렇게 소리를 내서 수를 셌다. 삼천을 넘어서 목이 갈라졌다. 물을 한 모금 마셨더니 목이 아팠다. 아무 것도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난 좋지 않은 상상을 계속하고 있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가 가질 수밖에 없는 연민이라는 감정에 지희의 불행한 상황을 덧입혀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떠올리고 있었다. 선생님의 남편은 구속이 되었을까? 선생님과 지희는 건강상 이상이 없을까? 만약 선생님만 무사하다면 지희는 괜찮을 수도 있지만, 병원에서 본 지희의 상세는 가볍지 않았고, 선생님은 정서적으로 불안해 보였다. 선생님은 죽었을 수도 있다. 만약 지희가 부모 둘 중 모두를 잃는다면, 친척집으로 가게 되는 걸까 아니면 고아원이라도 가는 걸까? 지희의 나이에 갈 수 있는 복지 시설이 괜찮은 곳이 있을 리 없다. 지희는 그저 아버지가 이상한 놈이라는 이유로 세상에 버려지게 되는 걸까? 난 지희의 눈에서 본 말도 안되게 깊은 그늘을 떠올리고 말았고, 결국 사천 삼백번쯤 수를 세며 떠올린 지희의 마지막은 지나는 차에 자신의 몸을 던지는 지희의 얼굴이었다.
평생을 따라다닐 것 같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난 선생님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선생님은 전화를 받지 않으셨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이번엔 경찰서로 전화를 걸어서 설날 쯤에 있었던 일의 참고인이라고 신분을 밝히고서는 내가 목격한 사람들의 근황에 대해 물었다. 전화를 받은 형사는 잠깐만 기다려달라는 말을 하고서는 잠시 기다리니 내가 조사를 받았던 그 형사가 전화를 받았다. 형사의 목소리는 착잡했다.
"아, 이경민씨. 무슨 일 때문에 전화를 하셨습니까?"
"사는 곳에 올라왔는데도 그 때 기억을 잊을 수가 없어서요. 제 은사님 가족은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잘 해결됐습니다. 너무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그나저나 젊은 사람이 고맙네요."
"어떻게 됐습니까?"
"폭행을 했던 애들 아버지는 합의를 했는데, 검찰측에서 구속기소를 해서, 현재는 유치장에 있습니다. 나와도 접근 금지 명령을 내린다고 했으니까 걱정하실 것은 없습니다. 그 때 성폭행과 폭행을 동시에 당했던 선생님은 퇴원을 했습니다. 아이는 아이의 외가에 갔습니다. 비교적 잘 해결된 편입니다. 선생님의 형편이 좀 더 좋아지면 다시 맡아서 키우실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예, 고맙습니다. 형사님. 선생님께 먼저 전화를 했는데, 연락이 안 되어서요."
"아. 그러셨군요."
"그럼 수고들 해주세요. 고맙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지만, 정말로 안심은 되지 않았다. 상상속의 지희는 아직도 웃지 않고 있었다. 마음을 다스리려고 책을 읽다가 책에 눈이 가지 않아서, 술을 한 잔 할까하다가 잠을 자려고 샤워까지 했는데도 불길한 마음, 불편한 심정은 조금도 해소되지 않았다. 미친 척하고 세인이를 불러서 섹스를 해볼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정도로 심란했다.
무작정 차를 몰아 김천으로 향했다. 멀리서 선생님이 괜찮은 것만 보고 와도 괜찮을 것 같아서였다. 선생님 댁 근처에 차를 대고 선생님 댁 창문을 봤는데, 창은 꺼져 있었다. 무작정 기다리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되어서 일단 집으로 갔다. 주말도 아니고 평일에 갑자기 온 아들이 엄마는 또 걱정이셨다. 난 아무런 일이 없다고 이야기를 하다가 엄마라면 뭔가 해결책을 줄 수 있지 않을까해서 조심스럽게 친구 이야기 인 것처럼 하고 지희 이야기를 했지만, 엄마는 알고 계셨다. 알고 봤더니 세인이가 걱정이 되어서 엄마와 통화를 했던 모양이었다. 엄마는 단호하게 지희를 반대하셨다. 난 지희의 상황이 지금 내가 맡거나 해야 하는 입장은 아니라고 이야기를 했고, 엄마는 무덤덤하게 그러면 다행이지라고 짧게 한마디를 하셨다. 내가 아는 엄마와 달랐다.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분이신데. 역시 내 아들의 짐이 될지도 모르는 아이에게까지 엄마의 따뜻함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이구나 싶었다.
일단 선생님 집을 다시 찾아가서, 혹시나 만나지 못하면 사놓고 주지 못했던 전자렌지라도 주고 와야겠다는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엄마에게는 걱정말라는 말을 했는데, 엄마는 정 니 마음이 불편하면 가끔씩 만나서 용돈이나 주라는 말로 나를 달랬다. 선생님 댁 근처에 다시 차를 세우고 선생님 댁 창문을 봤더니 다행히 불이 들어와 있었다. 전자렌지를 떠메고 올라가서 노크를 했더니 선생님이 문을 열어주셨고, 나를 보고 놀라셨다. 그리고 곧 매우 민망해 하셨다. 하긴 그 꼴을 내가 모두 봤으니 그러셨을 것이다.
"어쩐 일이야."
"저번에 이거 드리려고 했었거든요. 전자렌지요. 이게 생각보다 되게 쓸모가 많거든요."
"그래. 고맙네. 그러고 서 있지 말고 들어와."
"네."
선생님의 얼굴엔 아직 멍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서로 무슨 말을 꺼내야 할 지 몹시 어색한 시간이 십초정도 흘렀는데, 다행히 선생님께서 먼저 말을 꺼내셨다.
"차 한 잔 줄까? 커피라도"
"네. 지희는요?"
"잠깐 친구네 갔다 온댔는데, 늦었는데도 아직이네. 집 근처에 친구집 있거든."
아마도 선생님은 내게 지희를 외갓집에 보낸 사실을 감추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았다. 주전자를 까스렌지에 올리는 선생님이 나를 등지고 말했다.
"그날은 모두 잊어. 하긴, 이젠 볼 일이 또 있겠니."
"네."
"그 사람이 잘못한 건 맞지만, 모두 그 사람 탓은 아니야. 착한 사람이었어. 보증이 잘못돼서 집안이 거의 절단 났었거든. 빚쟁이는 계속 찾아오고, 사채업자같은 사람들도 찾아아고. 나랑 이혼을 해줬어. 이 집이랑 통장 같은 것도 모두 내 앞으로 돌려주고. 그런데, 내가 잘못한거야. 무서웠거든. 그 사람 쫓기고 있을 때도, 위기에 처했을 때도 이혼을 했다는 핑계로 모른 척 했어. 잘못했어...내가..."
어깨로 우는 것이 눈에 보였다. 역시 가난이 죄였다. 위로의 말을 하고 싶었지만, 뭐라고 할 말이 없어서 그냥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선생님은 커피를 찾아 주전자에서 물을 따라 내 앞에 건내고서는 본격적으로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는데, 별다른 이야기는 없었다. 결론은 너무 힘들다는 것.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이야기 하면서 선생님은 학원에서도 그만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너무 속이 상했다. 왜 이렇게 불행한 사람들에겐 불행만이 계속 더해지는가. 뜨거운 커피가 식을 때까지 선생님은 선생님의 일을 이야기 했고, 난 그저 그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위로의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선생님. 돈을 모으세요. 돈을 모아야 해요. 역시 작은 돈으로는 이 지옥을 벗어날 수가 없어요. 뭐라도 하려면 일단 종자돈이 필요해요. 주식투자, 부동산 투자 이런 걸 하려고 해도 일단 천만원대의 돈이 필요해요. 선생님. 일을 하세요. 도우미든 파트 타임이든 일단 몸을 쓰는 일이라도 계속해서 하시면서 100만원을 모으세요. 그리고 백만원이 모이면, 다시 백만원을 더 모으세요. 덜 쓰셔야 해요. 지희의 미래를 위해서도 일단은 돈을 모으세요. 지희에게도 충분히 설명하세요. 과외를 시킬 수 없다. 사교육을 시킬 수 없다. 하지만, 네가 앞으로 성공하려면 공부를 지독하게 해야 한다. 선생님은 지희 대학을 공부시킬 돈을 미리 벌어놓을테니, 지희 너는 국립대학에 들어갈 정도로 공부를 해야 한다. 이렇게 역할 구분을 하시고, 일단 돈을 버세요. 독하게 마음을 먹으셔야 해요. 사람은요 목표가 있으면 죽을 생각이 들지 않아요. 일단 그렇게 살기로 해요. 제가 자주 찾아올게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지희의 용돈이나 맛있는 한끼 정도일거에요. 하지만 자주 찾아올게요. 백만원이 모이면 이야길 해주세요. 거기까지는 일단 가보자고요."
선생님은 결의를 다지셨다. 지희는 돌아오지 않았지만, 차를 타고 돌아오면서 떠올린 지희의 얼굴이 웃고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땐 현재에 충실해야 한다. 해야만 하는 일이 있을 때는 해야 한다. 돈을 조금이라도 더 벌어야 겠다는 생각을 다졌다. 역시 세상엔 돈이 필요하다.
참아내지 못할 것 같은 화가 나면 일단은 청소를 한다. 집이나 가게가 아닐 때는 그냥 아무 편의점에 들어가서 봉투 하나와 젓가락을 얻어서 주변의 담배꽁초를 줍는다. 작년 12월에도 그럴 때가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이랑 어깨가 부딪쳤었는데, 먼저 사과를 했음에도 그 사람은 계속해서 시비를 걸었다. 취기가 좀 있어 보여서 사과를 하고 피하려고 했는데도, 피해 보상을 운운하면서 짜증을 냈다. 얼굴에 한 대 쳐 봐 한대 치기만 하면 어떻게든 걸어서 치료비와 합의금을 뜯어 낼게라고 쓰여 있어서 거의 이십 분 가량이나 사과에 사과를 거듭했지만 시비를 걸어서 난 경찰에다 신고를 했고, 그제야 그 사람은 내게 침을 뱉으면서 배알도 없는 새끼라고 하고선 길을 황급히 떠났다. 황당하고 짜증이 났다. 난 경찰에 다시 전화를 걸어 사정을 밝혔는데, 이번에는 경찰까지 쓸데없는 일로 신고한 나를 비난했다. 화가 너무 나서 참을 수 없어서 난 거의 두 시간 정도를 거리를 청소했다. 골목 하나를 다 치우고, 내게는 거의 1/3이 찬 담배꽁초 봉투가 남았던 적이 있었다.
그보다 더 화가 나면 난 수를 센다. 수를 세는 건 내 오랜 비법 중 하나인데, 나는 중학교 때부터 수를 세는 걸로 화를 풀곤 했다. 나는 내 주위의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이 방법을 추천했는데, 후에 물어본 바로는 삼백을 센 사람도 거의 없었다. 난 구천까지 센 적이 있다. 중학교 때 집이 극도로 어려웠을 때였다.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내셨었는데, 그걸로 정직을 당하시고, 교도소에서 잠시 생활 하셨다. 아버지의 부재에 큰 충격을 받으신 엄마가 우울증 초기 증상을 보였었고, 초등학생이었던 동생은 종일 칭얼거렸다. 난 더 이상의 바닥은 없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때 우리 집은 도로 바로 옆 외딴 단독주택이었는데, 난 집 앞에 앉아서 지나는 차를 멍하게 세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차 세기는 차가 잘 다니지 않을 시간까지 계속 되었고, 난 차가 다니지 않을 때도 그냥 숫자를 셌다. 죽을 결심을 한 것도 아니었는데, 수를 세며 죽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 시간이 오래되자 이번엔 죽지 말아야 할 이유와 살기위해서 해야 할 일들이 떠올랐다. 그렇게 살았고, 난 그 뒤로도 막다른 길에 다다르면 언제나 수를 센다.
지희를 버려두고 대전으로 도망친 후에 난 거의 모든 상황에서 지희를 떠올려야 했다. 마지막으로 외면한 지희의 얼굴이 잘 기억에 남지 않았는데도, 내 멋대로 지희의 우는 얼굴을 상상하고 또 상상했다. 경찰서와 병원에 전화를 걸어서 선생님의 상황과 지희의 상황을 물어보려다가도 만약 상황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지 않을 경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어떤 것이 있을까를 생각하면 도무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여친인 세인이에게 지희 이야기를 했다가 난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다. 일반적인 반응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무슨 tv드라마의 주인공도 아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세인이의 말을 듣고 난 그 힘내요미스터 김이라는 김동완이 나오는 드라마를 처음부터 현재 방영된 편까지 모두 보았지만, 내가 김동완이 될 수는 없었다. 난 부모님이 있었고, 결혼을 앞두고 있는 여자친구도 있었다. 아프리카 아이를 돕는 것처럼 한달에 몇 만원을 평생 내라면 그렇게 할 수도 있겠지만, 지희의 상황에서 몇 만원의 돈이 지희의 삶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괜히 기대를 주는 것도 좋지 못한 일 같았다.
불행한 사람은 자기에게 주는 호의를 생명줄같이 느낄 때가 있다. 무엇보다 지희의 기대를 받고 싶지 않았다. 지희의 처지가 안됐긴 했지만, 그냥 지나다 만난 불쌍한 사람에게 모두 호의를 베푸는 일은 국가도 하지 못하는 일이다.
내가 선택한 것은 언제나처럼 수를 세는 일이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이렇게 소리를 내서 수를 셌다. 삼천을 넘어서 목이 갈라졌다. 물을 한 모금 마셨더니 목이 아팠다. 아무 것도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난 좋지 않은 상상을 계속하고 있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가 가질 수밖에 없는 연민이라는 감정에 지희의 불행한 상황을 덧입혀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떠올리고 있었다. 선생님의 남편은 구속이 되었을까? 선생님과 지희는 건강상 이상이 없을까? 만약 선생님만 무사하다면 지희는 괜찮을 수도 있지만, 병원에서 본 지희의 상세는 가볍지 않았고, 선생님은 정서적으로 불안해 보였다. 선생님은 죽었을 수도 있다. 만약 지희가 부모 둘 중 모두를 잃는다면, 친척집으로 가게 되는 걸까 아니면 고아원이라도 가는 걸까? 지희의 나이에 갈 수 있는 복지 시설이 괜찮은 곳이 있을 리 없다. 지희는 그저 아버지가 이상한 놈이라는 이유로 세상에 버려지게 되는 걸까? 난 지희의 눈에서 본 말도 안되게 깊은 그늘을 떠올리고 말았고, 결국 사천 삼백번쯤 수를 세며 떠올린 지희의 마지막은 지나는 차에 자신의 몸을 던지는 지희의 얼굴이었다.
평생을 따라다닐 것 같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난 선생님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선생님은 전화를 받지 않으셨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이번엔 경찰서로 전화를 걸어서 설날 쯤에 있었던 일의 참고인이라고 신분을 밝히고서는 내가 목격한 사람들의 근황에 대해 물었다. 전화를 받은 형사는 잠깐만 기다려달라는 말을 하고서는 잠시 기다리니 내가 조사를 받았던 그 형사가 전화를 받았다. 형사의 목소리는 착잡했다.
"아, 이경민씨. 무슨 일 때문에 전화를 하셨습니까?"
"사는 곳에 올라왔는데도 그 때 기억을 잊을 수가 없어서요. 제 은사님 가족은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잘 해결됐습니다. 너무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그나저나 젊은 사람이 고맙네요."
"어떻게 됐습니까?"
"폭행을 했던 애들 아버지는 합의를 했는데, 검찰측에서 구속기소를 해서, 현재는 유치장에 있습니다. 나와도 접근 금지 명령을 내린다고 했으니까 걱정하실 것은 없습니다. 그 때 성폭행과 폭행을 동시에 당했던 선생님은 퇴원을 했습니다. 아이는 아이의 외가에 갔습니다. 비교적 잘 해결된 편입니다. 선생님의 형편이 좀 더 좋아지면 다시 맡아서 키우실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예, 고맙습니다. 형사님. 선생님께 먼저 전화를 했는데, 연락이 안 되어서요."
"아. 그러셨군요."
"그럼 수고들 해주세요. 고맙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지만, 정말로 안심은 되지 않았다. 상상속의 지희는 아직도 웃지 않고 있었다. 마음을 다스리려고 책을 읽다가 책에 눈이 가지 않아서, 술을 한 잔 할까하다가 잠을 자려고 샤워까지 했는데도 불길한 마음, 불편한 심정은 조금도 해소되지 않았다. 미친 척하고 세인이를 불러서 섹스를 해볼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정도로 심란했다.
무작정 차를 몰아 김천으로 향했다. 멀리서 선생님이 괜찮은 것만 보고 와도 괜찮을 것 같아서였다. 선생님 댁 근처에 차를 대고 선생님 댁 창문을 봤는데, 창은 꺼져 있었다. 무작정 기다리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되어서 일단 집으로 갔다. 주말도 아니고 평일에 갑자기 온 아들이 엄마는 또 걱정이셨다. 난 아무런 일이 없다고 이야기를 하다가 엄마라면 뭔가 해결책을 줄 수 있지 않을까해서 조심스럽게 친구 이야기 인 것처럼 하고 지희 이야기를 했지만, 엄마는 알고 계셨다. 알고 봤더니 세인이가 걱정이 되어서 엄마와 통화를 했던 모양이었다. 엄마는 단호하게 지희를 반대하셨다. 난 지희의 상황이 지금 내가 맡거나 해야 하는 입장은 아니라고 이야기를 했고, 엄마는 무덤덤하게 그러면 다행이지라고 짧게 한마디를 하셨다. 내가 아는 엄마와 달랐다.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분이신데. 역시 내 아들의 짐이 될지도 모르는 아이에게까지 엄마의 따뜻함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이구나 싶었다.
일단 선생님 집을 다시 찾아가서, 혹시나 만나지 못하면 사놓고 주지 못했던 전자렌지라도 주고 와야겠다는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엄마에게는 걱정말라는 말을 했는데, 엄마는 정 니 마음이 불편하면 가끔씩 만나서 용돈이나 주라는 말로 나를 달랬다. 선생님 댁 근처에 다시 차를 세우고 선생님 댁 창문을 봤더니 다행히 불이 들어와 있었다. 전자렌지를 떠메고 올라가서 노크를 했더니 선생님이 문을 열어주셨고, 나를 보고 놀라셨다. 그리고 곧 매우 민망해 하셨다. 하긴 그 꼴을 내가 모두 봤으니 그러셨을 것이다.
"어쩐 일이야."
"저번에 이거 드리려고 했었거든요. 전자렌지요. 이게 생각보다 되게 쓸모가 많거든요."
"그래. 고맙네. 그러고 서 있지 말고 들어와."
"네."
선생님의 얼굴엔 아직 멍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서로 무슨 말을 꺼내야 할 지 몹시 어색한 시간이 십초정도 흘렀는데, 다행히 선생님께서 먼저 말을 꺼내셨다.
"차 한 잔 줄까? 커피라도"
"네. 지희는요?"
"잠깐 친구네 갔다 온댔는데, 늦었는데도 아직이네. 집 근처에 친구집 있거든."
아마도 선생님은 내게 지희를 외갓집에 보낸 사실을 감추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았다. 주전자를 까스렌지에 올리는 선생님이 나를 등지고 말했다.
"그날은 모두 잊어. 하긴, 이젠 볼 일이 또 있겠니."
"네."
"그 사람이 잘못한 건 맞지만, 모두 그 사람 탓은 아니야. 착한 사람이었어. 보증이 잘못돼서 집안이 거의 절단 났었거든. 빚쟁이는 계속 찾아오고, 사채업자같은 사람들도 찾아아고. 나랑 이혼을 해줬어. 이 집이랑 통장 같은 것도 모두 내 앞으로 돌려주고. 그런데, 내가 잘못한거야. 무서웠거든. 그 사람 쫓기고 있을 때도, 위기에 처했을 때도 이혼을 했다는 핑계로 모른 척 했어. 잘못했어...내가..."
어깨로 우는 것이 눈에 보였다. 역시 가난이 죄였다. 위로의 말을 하고 싶었지만, 뭐라고 할 말이 없어서 그냥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선생님은 커피를 찾아 주전자에서 물을 따라 내 앞에 건내고서는 본격적으로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는데, 별다른 이야기는 없었다. 결론은 너무 힘들다는 것.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이야기 하면서 선생님은 학원에서도 그만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너무 속이 상했다. 왜 이렇게 불행한 사람들에겐 불행만이 계속 더해지는가. 뜨거운 커피가 식을 때까지 선생님은 선생님의 일을 이야기 했고, 난 그저 그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위로의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선생님. 돈을 모으세요. 돈을 모아야 해요. 역시 작은 돈으로는 이 지옥을 벗어날 수가 없어요. 뭐라도 하려면 일단 종자돈이 필요해요. 주식투자, 부동산 투자 이런 걸 하려고 해도 일단 천만원대의 돈이 필요해요. 선생님. 일을 하세요. 도우미든 파트 타임이든 일단 몸을 쓰는 일이라도 계속해서 하시면서 100만원을 모으세요. 그리고 백만원이 모이면, 다시 백만원을 더 모으세요. 덜 쓰셔야 해요. 지희의 미래를 위해서도 일단은 돈을 모으세요. 지희에게도 충분히 설명하세요. 과외를 시킬 수 없다. 사교육을 시킬 수 없다. 하지만, 네가 앞으로 성공하려면 공부를 지독하게 해야 한다. 선생님은 지희 대학을 공부시킬 돈을 미리 벌어놓을테니, 지희 너는 국립대학에 들어갈 정도로 공부를 해야 한다. 이렇게 역할 구분을 하시고, 일단 돈을 버세요. 독하게 마음을 먹으셔야 해요. 사람은요 목표가 있으면 죽을 생각이 들지 않아요. 일단 그렇게 살기로 해요. 제가 자주 찾아올게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지희의 용돈이나 맛있는 한끼 정도일거에요. 하지만 자주 찾아올게요. 백만원이 모이면 이야길 해주세요. 거기까지는 일단 가보자고요."
선생님은 결의를 다지셨다. 지희는 돌아오지 않았지만, 차를 타고 돌아오면서 떠올린 지희의 얼굴이 웃고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땐 현재에 충실해야 한다. 해야만 하는 일이 있을 때는 해야 한다. 돈을 조금이라도 더 벌어야 겠다는 생각을 다졌다. 역시 세상엔 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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