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답 받지 못하는 사랑이라도 괜찮다. 그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만 가지고 있다면, 그 마음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다면, 보답 받지 못해도 좋다. 스무 살 무렵의 나는 그런 생각을 가졌다.
스무 살의 겨울, 나는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 고백하기로 했다.
“오늘 저녁에 시간 되세요? 저랑 저녁식사 하실래요?”
일단은 데이트 신청 먼저 했다. 아무래도 그게 순서지.
그 사람은 웃었다. 조금 기분이 나빴다. 대체 뭐가 그렇게 웃긴지 모르겠다.
스무 살. 대학교 1학년생. 키는 180보다 조금 부족하다. 몸무게는 68키로그램. 적당한 체격. 적당히 호감 가는 얼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첫인상도 나쁘지 않다. 성격은 양호. 이게 나다. 이 정도면 데이트 신청을 수락 받는데 외면적으로는 합격이라고 생각한다.
문제가 있다면, 데이트를 신청하는 상대가 나보다 3, 4년 정도 먼저 태어났다는 것. 그래도 괜찮다. 대략 5년 정도의 나이까지는 극복할 자신이 있다. 그러나 문제는 내가 아니라 상대다. 동갑내기 남자보다 평균 정신 연령이 높은 여자들의 특성상, 내 데이트 신청은 정말 우스울 것이다. 그렇다고 이렇게 박장대소를 하면서 웃는 건 좀 아니지 않나?
“너 몇 살이니?”
그녀가 물었다.
“스무 살이요.”
대답했다. 그녀가 또 박장대소를 한다. 겨우 웃음이 잦아드나 했더니 다시 터졌다. 대체 뭐가 웃긴 걸까. 눈가에는 눈물까지 맺혔다.
“나는 몇 살로 보여?”
웃음을 진정시키고,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그녀가 물었다.
“스물 넷이요.”
조금도 거짓말을 섞지 않고 말했다.
“그래? 푸?!”
그녀가 또 웃음을 터뜨리다가 겨우 참았다. 대체 뭐가 웃긴 걸까.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드러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첫인상부터 얼굴을 찌푸리고 있으면 안 되니까.
“집에 가.”
그녀가 차갑게 말했다. 어린애를 쫓는 어른의 표정이다. 하긴, 그녀의 눈에는 그저 난 어린 아이처럼 보이겠지. 나는 그냥 대학생일 뿐이니까.
그녀는 시내에서 작은 옷가게를 하고 있다. 브랜드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손님 대여섯이 들어오면 꽉 찰 만큼의 작은 규모의 옷가게다. 주로 20대에서 30대 정도의 젊은 여성을 주 고객으로 하고 있다. 대체로 그녀 혼자 가게를 본다. 가끔 도와주는 사람이 있지만, 대부분은 혼자 일한다. 개점은 오전 11시 정도에 해서 폐점은 저녁 10시 정도에 한다. 월요일과 목요일은 쉰다. 점심은 2시 정도에 먹고, 저녁은 7시 정도에 먹는다. 밥을 먹을 때는 잠시 가게를 닫는다. 그러나 30분도 걸리지 않아 식사를 마치고 가게를 다시 연다. 어디서 밥을 먹는지는 모르겠다.
키는 165 이상으로 보인다. 꽤 크다. 마른 체형이다. 언제나 머리는 뒤로 묶고, 뒤로 묶은 머리는 어깨까지 내려온다. 남자라서 풀었을 때 얼마나 긴 머리일지는 상상이 가지 않는다. 마른 체형이지만 전체적으로 동글동글한 얼굴이라 어려보인다. 화장은 때로는 짙을 때도 있고, 때로는 옅을 때도 있다.
늘 밝은 얼굴로 손님을 친절하게 대한다. 웃는 얼굴이 매력적이다. 사근사근하게 손님을 대하기 때문에 단골 손님도 있는 모양이다.
그녀가 몇 살로 보이냐는 질문에 24라고 대답했지만, 사실 그보다 젊어 보인다. 다만, 작은 규모라도 옷가게를 소유(소유인지 아닌지 확실치는 않지만)하고 있기 때문에 그 정도의 나이라고 유추를 했을 뿐이다. 사실 그렇게 따지면 더 나이가 많아야 타당하겠지만, 아무리 봐도 그 이상으로 안 보인다.
여기까지가 내가 이주일 동안 그녀를 관찰하면서 얻어낸 정보다. 아, 관찰이라고 하니 뭔가 스토킹이라도 한 것 같다. 사실은 용기가 없어서 다가가지도 못하고 맞은편 카페에서 주구장창 바라만 보다보니 저절로 알게 된 것들이다.
그녀를 처음 본 것은 이주일 전 주말이다. 수능이 끝나고 시작한 막노동 아르바이트의 결실, 월급이 나오자마자 동생에게 시내로 끌려 나왔다. 그렇게 시내를 이리저리 끌려 다니다가 우연히 그녀의 가게에 들어온 것이다.
솔직히 첫눈에 반한 것도 아니다. 다만, 친절하게 동생을 상대해주는 그녀에게 작은 매력을 느꼈을 뿐이다. 그런데도, 나는 난생 처음으로 여자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중 남고를 거치며 여자라고는 엄마와 동생 말고는 거의 접할 일이 없었던 내가, 이번에 시내에 나왔다가 처음으로 여자라고 인식할 만한 대상을 찾은 것이다. 아마도 그런 이유일 거다. 그런 게 아니면, 첫눈에 반하지도 않은 여자를 이주일이나 바라보는 게 말이나 되나. 사실 이주일이나 계속 된 스토킹의 원동력에는 그녀의 평균 이상 되는 미모도 한몫 하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뭔가 이상했다.
어쨌든, 이대로 계속 있다가는 정말 세간에서 말하는 스토킹처럼 되어 버릴 것 같은데다가,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할 것 같아서 바로 오늘 용기를 낸 것이다. 물론 용기의 결과는 보시다시피 참담했다.
나는 그녀의 말에 “알았어요.”라고 순순히 대답하고는 돌아갔다.
내가 순순히 돌아갔던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라는 건 농담이고, 나는 곧장 돌아가서 집에서 돈을 챙겨서 나왔다. 지갑은 가지고 있었지만, 얼마 정도의 비상금은 늘 집에다 두기 때문이다. 대략 10만원 정도의 돈을 챙겼다. 그리고는 그녀의 가게로 돌아갔다. 집과 시내가 가까운데다가 택시를 타고 갔다 왔기 때문에 10분도 안 걸렸다.
“어서오세요!”
그녀가 밝게 웃으며 나를 맞았다. 그러나 내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인상이 굳었다.
“내 말 못 알아 들었어? 집에”
그녀는 말을 잇지 못했다. 내가 얼른 끊었거든.
“저 손님으로 왔거든요.”
그렇게 말하며 점퍼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보여주었다. 말문이 막힌 듯 대답이 없는 그녀. 그러다가 다시 입을 연다.
“여기는 남성의류는 없어요.”
“알아요. 선물하려고요.”
그녀는 내 대답에 웃었다. 아까 내가 데이트 신청했을 때처럼 박장대소하지는 않았다. 그냥 쿡쿡, 하고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작게 웃었을 뿐이다.
“네, 그럼 옷 골라보세요.”
“네에.”
그녀의 말에 내가 대답했다. 그리고 나는 옷가게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작은 가게인데도 많은 옷이 걸려 있었다. 그러다가 예쁜 푸른색의 원피스를 발견했다.
“이거 예쁘네요.”
“손님 보는 눈이 있으시네요.”
“다른 사이즈 있어요?”
“그럼요, 선물할 여성분 옷 사이즈는 어떻게 되나요?”
“제가 여자 옷은 사이즈를 잘 몰라서 그러니까 대충 설명해드릴게요. 키는 한……, 168? 정도 되는 거 같구요. 체형은 말랐어요.”
“많이 말랐어요?”
“음……. 아뇨.”
“그럼 66정도가 적당할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며 그녀가 옷을 하나 꺼내들었다.
“혹시나 사이즈 안 맞으면 교환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네에.”
그렇게 나는 그녀의 옷가게에서 옷을 구입했다. 어쩌다가 옷까지 구입을 해버렸다. 누런 빛깔의 종이가방에 내가 산 옷이 담겼다.
“안녕히 가세요, 손님.”
나에게 인사를 하는 그녀.
“아뇨. 아직 더 구경하려구요.”
그렇게 말한 나는 옷가게를 열심히 둘러보았다. 사실 옷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냥 시간만 죽이고 있을 뿐. 그렇게 쇼핑백을 들고 옷가게에서 시간을 죽인지 체감상 10분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너도 진짜 징하다.”
“제가 뭘요?”
그녀의 질렸다는 표정에 나는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에휴, 알았어. 일단 나 밤 10시에 끝나니까 그때 와. 밥을 먹든 뭐하든 일단 얘기라도 해보자.”
“알겠어요. 이따가 올게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어쨌든 YES라는 대답을 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굳이 티를 내지는 않았다. 밤 10시라. 지금은 저녁 7시다. 3시간 남았다. 다른 때라면 3시간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겠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너무 긴 시간이다.
일단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가게에서 산 옷을 종이가방에서 꺼내 내 방 옷장에 숨겨두었다. 이걸 누군가 보기라도 하면 곤란하다. 특히 동생이라면 끝가지 추궁하겠지. 그리고는 옷장에 있는 옷을 살펴보았다. 그녀를 만나러 가니까 옷을 갈아입을 생각이다. 물론, 지금 입고 있는 옷도 데이트 신청을 한답시고 나름 골라 입었지만, 뭔가 부족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입을 만한 옷이 없다. 얼마 전까지 고등학생이라 옷은 교복만으로 충분했고, 패션에도 관심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괜찮은 옷이 없다. 다들 어머니가 싼맛에 사온 옷들 뿐이다. 없는 옷 중에서도 겨우 골랐다. 이렇게 골라봤자 겨울이라 위에 걸친 점퍼에 가려지겠지만.
아, 점퍼보다는 코트가 낫겠다. 옷장에서 갈색의 코트를 꺼냈다. 이 코트는 고등학교 2학년 무렵 이모에게 선물 받았던 것이다. 내가 가진 옷 중 가장 패셔너블한 옷이다. 이런 한겨울에 입기에는 조금 얇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대충 옷을 골라 놓은 다음에는 씻었다. 씻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 시간을 때우는 게 목적이다. 마침 바깥에서 끌고 들어온 겨울 공기가 내 몸에 남아 있어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기에 좋은 타이밍이다.
샤워를 마치고 욕실에 나왔다. 천천히 씻었는데 아직 8시도 되지 않았다. 이대로 2시간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버틸까. 일단은 옷을 입었다. 그리고 컴퓨터를 켰다. 구동음이 울리고, 얼마 안 가 깔끔한 하늘 바탕이 떴다.
인터넷을 검색했다. 지도를 찾기 위해서다. 밤 10시에 같이 얘기를 할 만한 곳이 어디 있을까. 밥은 먹든, 술을 먹든 찾아놓을 필요가 있다. 데이트 코스로 검색을 해서 열심히 찾았다.
그렇게 시내의 지리를 탐방하다보니 시간이 금방 지났다. 시내 지리에 익숙하지 않아서 2시간으로는 모자를 지경이다. 몇 개의 적당한 술집과 카페를 찾는데 1시간이 넘게 걸렸다. 인터넷 안에서의 평판과 사진 등을 토대로 조사한 것이다. 시계를 보니 9시 반이다. 얼른 밖으로 나왔다.
천천히 걸어서 가면 얼추 시간에 맞을 것이다. 조금 춥긴 했지만, 마음이 들뜨니 그렇게 춥지도 않았다. 지금 같은 기분이라면 달려서 가도 지치지 않을 것 같다. 빠른 걸음으로 그녀의 가게까지 걸어가는데 1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 가게를 닫으려는 듯 청소를 하고 있었다. 나는 가게 안으로 조용히 들어왔다. 가게 문을 열자 딸랑 거리는 종소리가 났다.
그녀가 나를 발견했다. 그녀는 대걸레로 가게 바닥을 밀고 있었다.
“왔네.”
“왔어요.”
“조금만 기다려 청소 다 해가니까.”
나는 기꺼이 기다렸다. 도와줄까도 생각했지만, 정말 거의 다 해가고 있어서 그냥 기다렸다. 그녀가 걸레질을 마친 그녀가 나에게 대걸레를 내밀었다.
“여기 나가서 왼쪽으로 들어가면 화장실 있거든 거기 세면대 옆에 있는 통에 넣고 와줘.”
“네.”
나는 그녀의 심부름에 순순히 응했다. 나가서 왼편에 있는 건물 복도로 들어갔다. 계단 몇 칸 위에 화장실이 보였다. 세면대 옆에 갈색의 통에 대걸레를 두고 나왔다. 복도에서 나오니 그녀가 가게 문을 닫고 있었다. 그리고는 구석에 있던 쇠막대로 셔터를 내렸다.
“자, 이제 갈까?”
그녀가 손을 털며 말했다.
“어디로 가는데요?”
“죠오기.”
그녀가 맞은편에 있는 카페를 가리켰다. 살짝 찔끔했다. 내가 그녀를 지켜보던 카페다. 설마 눈치 챈 건가? 아닌가? 머릿속이 핑핑 도는 동안 그녀가 앞장서서 차도로 나갔다. 나도 그녀를 따라 무단횡단을 했다.
밤이 늦어서 그런지 카페 안은 한적했다. 메뉴를 골랐다. 그녀는 아메리카노. 나는 모카라떼. 내가 무슨 행동을 하기 전에 그녀가 계산을 해버렸다.
나와 그녀는 주변에 사람이 없는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지 모르겠네.”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너 내가 마음에 들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어떤 점이?”
사실 나도 모르겠다. 그러나 확실한 건 이상하게도 그녀에게 끌린다는 것이다. 다소 매서워 보이는 얼굴이지만, 웃을 때는 밝고 사근사근한 점이 좋다. 지금 나를 대할 때 풍기는 위압적인 분위기도 좋다.
“그걸 하나하나 설명해야 되나요?”
“아냐, 내가 쓸데없는 걸 물어봤네. 미안해.”
그녀가 나에게 사과했다.
“그런데, 너 나를 본 적이 있니? 나한테 데이트 신청을 하려면 적어도 어디서 본 적이 있어야 되는 거 아냐?”
“누나네 가게에 간 적 있는데요. 이주일 전쯤에 제 동생이랑요.”
내 말에 그녀가 잠깐 고민하는 듯 하더니,
“아, 아! 그때의 걔가 너야?”
나를 기억해낸 듯하다.
“그랬구나.”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아메리카노랑 모카라떼 나왔습니다!”
그때 카페 종업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얼른 일어나서 계산대 쪽으로 향했다. 쟁반 위에 아메리카노와 모카라떼가 올려져 있다. 하얀 컵에 담겨 따뜻한 김이 올라오고 있다. 쟁반을 들고 자리로 와서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다.
그녀가 아메리카노 잔을 집어들었다. 나도 모카라떼 잔을 집어 한 모금 마셨다. 커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나마 모카라떼가 향도 좋고 달아서 먹는 것이다. 한동안 나와 그녀 사이에 말이 오가지 않았다. 무슨 말인가 하고 싶었지만,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넌 나랑 뭘 하고 싶은 거니?”
잠깐의 침묵 후에 그녀가 입을 열었다.
“어, 어……. 확실히는 모르겠어요. 일단은 같이 밥이라도 먹고 싶었어요. 그러면서 얘기도 하고 싶었어요. 그 다음은 생각을 안 해봤어요.”
여렴풋이 함께 길을 걷는 모습, 식사를 하는 모습을 상상해보긴 했지만, 구체적인 어떤 계획을 그리고 있던 것은 아니다. 연애를 해본 적이 없으니 부족한 상상력으로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넌 네 나이 또래의 귀엽고 예쁜 여자애들도 많을 텐데 왜 굳이 나한테 찾아왔니?”
“…….”
“너 정도면 나보다 훨씬 예쁘고 젊은 여자 친구도 만들 수 있을 거야.”
“누나는 당장에 제가 더 젊고 예쁜 여자를 찾아갈 것 같으세요? 아니면 그러길 바라시는 거예요?”
“…….”
누나가 말이 없다.
“누나한테 제가 너무 어린 거 알아요. 애기처럼 보이시겠죠. 그래도 조금이라도 기회를 주시면 안 될까요?”
누나에게 말했다.
“너 대학생이지?”
“네. 올해 1학년이에요.”
그녀의 질문에 대답했다.
“넌 돈 얼마 버니?”
“네?”
“아마 넌 학생이니까 돈을 안 벌겠지. 세금은 내봤니? 집세, 수도세, 전기세. 지로용지라는 걸 본 적은 있니?”
“…….”
“미안한데 네가 어리다고 무시하는 게 아니야. 당연히 어릴 때는 아무것도 모르지. 그런데 중요한 건 나는 내가 돈을 벌고 내가 세금 내고 살아가는 사람이고, 너는 아직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학생이라는 거야. 만약에 너랑 내가 연애를 하면, 나는 내 돈을 쓸 거고, 너는 부모님의 돈을 쓰겠지. 그건 아주 커다란 차이야. 나는 아무렇지 않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부담을 느끼는 건 네가 될 거야. 너는 아주 젊고 창창하잖아. 정말 너라면 나보다 젊고 훨씬 예쁜 여자를 만날 수 있어. 그러니까 다시 생각을 해봐.”
“…….”
“너한테는 그냥 스무 살의 평범한 연애일지 몰라도, 나한테는 현실이거든.”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정말 바보 같다. 그녀는 어른이다. 나는 이제 갓 성인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 어린아이일 뿐이다. 그녀가 떠나고 나서도 나는 한동안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무 생각도 없이. 눈앞에 있는 머그잔만을 진득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 시간 후. 나는 가게에서 나왔다.
일주일 후. 밤 10시. 나는 서있다. 어디에? 그녀가 일하는 가게 앞에. 그녀는 막 가게 문을 닫으며 가게에서 나오는 중이다. 그녀가 나를 발견했다.
“너, 또 왔니?”
“최소한 제 이름은 아셔야 하잖아요, 누나. 제 이름은 김세화예요. 올해 스무 살이에요. 젊죠?”
“그래 젊구나.”
“오늘은 현실 얘기를 하러 왔어요. 그래요. 저 어려요. 아무것도 몰라요. 근데 아직 모른다고 해서, 배운 다음에도 아무것도 못하리란 법은 없잖아요. 이제부터 배우면 되지 않을까요?”
그녀가 무언가 말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잠깐만요. 아직 말 안 끝났어요. 저 이번에 xx대학 합격했어요. 쉽게 말해서 공부 잘해요. 그냥 잘하는 거 아니예요. 무지 잘해요. 이번 수능 전국에서 제 앞에 있던 사람 100명 안 돼요. 대학에 들어가서는 공부 더 잘할 자신 있어요. 저 어릴 때 외국에서 조금 살아서 영어도 꽤 해요. 성격도 괜찮은 편이라 인간관계도 나쁘지 않아요. 자신감도 넘쳐서 어디가도 주눅 들지 않아요. 그러니까 취직할 때 어떤 회사든 서류심사도 면접도 통과할 자신 있어요. 군대 2년. 대학교 4년. 6년이에요. 6년만 있으면 저 누구보다 돈 많이 벌 자신 있어요. 6년만 있으면, 누구보다 현실에 대해 잘 알 수 있을 거예요. 아니, 마음만 먹으면 5년 안에도 할 자신 있어요.”
“…….”
“누나가 그랬죠. 현실이라고. 저한테도 연애는 현실이에요. 어리고 아무것도 모른다고 해서 모든 게 꿈은 아니에요. 물론 누나한테는 어린아이의 꿈 같을지도 몰라요. 근데, 그러면 누나가 조금 가르쳐 주면 안 돼요? 그러면 안 되나요?”
“…….”
그녀가 말이 없다.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이제는 될 대로 되라. 만약에 또 퇴짜 맞으면 이제는 깨끗이 포기하겠다. 질질 끌고 갈 생각은 없으니까.
“풉, 푸하하하하!”
그녀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에게 처음 데이트 신청을 했던 그날처럼, 그녀는 웃었다. 겨우겨우 그녀가 웃음을 진정시키고는 입을 연다.
“너 진짜 웃기는 애구나?”
그렇게 웃긴가. 조금 기분이 나빴다. 난 정말 진지하게 말한 건데.
“너 꽤 마음에 든다.”
누나의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진짜요?”하면서 호들갑을 떨 뻔했다. 자제하자. 안 그래도 어리게 보는데, 진짜 어린이로 볼지도 몰라.
“나 내일 쉬는 날이거든? 저녁 7시까지 여기로 와. 같이 저녁이라도 먹자.”
그녀에게 오케이 사인을 받아냈다.
이게 나의 인생 최초의 연애. 그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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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사실 한창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학교공부는 아니지요
공부 열심히 해야 하다보니 글쓸 시간이 부족했는데
요 며칠은 덕분에 공부하는 시간이 조금 줄어버렸네요
ㅠㅜㅠㅜ
그래도 글 쓰는 게 재밌네요
스무 살의 겨울, 나는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 고백하기로 했다.
“오늘 저녁에 시간 되세요? 저랑 저녁식사 하실래요?”
일단은 데이트 신청 먼저 했다. 아무래도 그게 순서지.
그 사람은 웃었다. 조금 기분이 나빴다. 대체 뭐가 그렇게 웃긴지 모르겠다.
스무 살. 대학교 1학년생. 키는 180보다 조금 부족하다. 몸무게는 68키로그램. 적당한 체격. 적당히 호감 가는 얼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첫인상도 나쁘지 않다. 성격은 양호. 이게 나다. 이 정도면 데이트 신청을 수락 받는데 외면적으로는 합격이라고 생각한다.
문제가 있다면, 데이트를 신청하는 상대가 나보다 3, 4년 정도 먼저 태어났다는 것. 그래도 괜찮다. 대략 5년 정도의 나이까지는 극복할 자신이 있다. 그러나 문제는 내가 아니라 상대다. 동갑내기 남자보다 평균 정신 연령이 높은 여자들의 특성상, 내 데이트 신청은 정말 우스울 것이다. 그렇다고 이렇게 박장대소를 하면서 웃는 건 좀 아니지 않나?
“너 몇 살이니?”
그녀가 물었다.
“스무 살이요.”
대답했다. 그녀가 또 박장대소를 한다. 겨우 웃음이 잦아드나 했더니 다시 터졌다. 대체 뭐가 웃긴 걸까. 눈가에는 눈물까지 맺혔다.
“나는 몇 살로 보여?”
웃음을 진정시키고,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그녀가 물었다.
“스물 넷이요.”
조금도 거짓말을 섞지 않고 말했다.
“그래? 푸?!”
그녀가 또 웃음을 터뜨리다가 겨우 참았다. 대체 뭐가 웃긴 걸까.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드러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첫인상부터 얼굴을 찌푸리고 있으면 안 되니까.
“집에 가.”
그녀가 차갑게 말했다. 어린애를 쫓는 어른의 표정이다. 하긴, 그녀의 눈에는 그저 난 어린 아이처럼 보이겠지. 나는 그냥 대학생일 뿐이니까.
그녀는 시내에서 작은 옷가게를 하고 있다. 브랜드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손님 대여섯이 들어오면 꽉 찰 만큼의 작은 규모의 옷가게다. 주로 20대에서 30대 정도의 젊은 여성을 주 고객으로 하고 있다. 대체로 그녀 혼자 가게를 본다. 가끔 도와주는 사람이 있지만, 대부분은 혼자 일한다. 개점은 오전 11시 정도에 해서 폐점은 저녁 10시 정도에 한다. 월요일과 목요일은 쉰다. 점심은 2시 정도에 먹고, 저녁은 7시 정도에 먹는다. 밥을 먹을 때는 잠시 가게를 닫는다. 그러나 30분도 걸리지 않아 식사를 마치고 가게를 다시 연다. 어디서 밥을 먹는지는 모르겠다.
키는 165 이상으로 보인다. 꽤 크다. 마른 체형이다. 언제나 머리는 뒤로 묶고, 뒤로 묶은 머리는 어깨까지 내려온다. 남자라서 풀었을 때 얼마나 긴 머리일지는 상상이 가지 않는다. 마른 체형이지만 전체적으로 동글동글한 얼굴이라 어려보인다. 화장은 때로는 짙을 때도 있고, 때로는 옅을 때도 있다.
늘 밝은 얼굴로 손님을 친절하게 대한다. 웃는 얼굴이 매력적이다. 사근사근하게 손님을 대하기 때문에 단골 손님도 있는 모양이다.
그녀가 몇 살로 보이냐는 질문에 24라고 대답했지만, 사실 그보다 젊어 보인다. 다만, 작은 규모라도 옷가게를 소유(소유인지 아닌지 확실치는 않지만)하고 있기 때문에 그 정도의 나이라고 유추를 했을 뿐이다. 사실 그렇게 따지면 더 나이가 많아야 타당하겠지만, 아무리 봐도 그 이상으로 안 보인다.
여기까지가 내가 이주일 동안 그녀를 관찰하면서 얻어낸 정보다. 아, 관찰이라고 하니 뭔가 스토킹이라도 한 것 같다. 사실은 용기가 없어서 다가가지도 못하고 맞은편 카페에서 주구장창 바라만 보다보니 저절로 알게 된 것들이다.
그녀를 처음 본 것은 이주일 전 주말이다. 수능이 끝나고 시작한 막노동 아르바이트의 결실, 월급이 나오자마자 동생에게 시내로 끌려 나왔다. 그렇게 시내를 이리저리 끌려 다니다가 우연히 그녀의 가게에 들어온 것이다.
솔직히 첫눈에 반한 것도 아니다. 다만, 친절하게 동생을 상대해주는 그녀에게 작은 매력을 느꼈을 뿐이다. 그런데도, 나는 난생 처음으로 여자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중 남고를 거치며 여자라고는 엄마와 동생 말고는 거의 접할 일이 없었던 내가, 이번에 시내에 나왔다가 처음으로 여자라고 인식할 만한 대상을 찾은 것이다. 아마도 그런 이유일 거다. 그런 게 아니면, 첫눈에 반하지도 않은 여자를 이주일이나 바라보는 게 말이나 되나. 사실 이주일이나 계속 된 스토킹의 원동력에는 그녀의 평균 이상 되는 미모도 한몫 하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뭔가 이상했다.
어쨌든, 이대로 계속 있다가는 정말 세간에서 말하는 스토킹처럼 되어 버릴 것 같은데다가,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할 것 같아서 바로 오늘 용기를 낸 것이다. 물론 용기의 결과는 보시다시피 참담했다.
나는 그녀의 말에 “알았어요.”라고 순순히 대답하고는 돌아갔다.
내가 순순히 돌아갔던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라는 건 농담이고, 나는 곧장 돌아가서 집에서 돈을 챙겨서 나왔다. 지갑은 가지고 있었지만, 얼마 정도의 비상금은 늘 집에다 두기 때문이다. 대략 10만원 정도의 돈을 챙겼다. 그리고는 그녀의 가게로 돌아갔다. 집과 시내가 가까운데다가 택시를 타고 갔다 왔기 때문에 10분도 안 걸렸다.
“어서오세요!”
그녀가 밝게 웃으며 나를 맞았다. 그러나 내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인상이 굳었다.
“내 말 못 알아 들었어? 집에”
그녀는 말을 잇지 못했다. 내가 얼른 끊었거든.
“저 손님으로 왔거든요.”
그렇게 말하며 점퍼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보여주었다. 말문이 막힌 듯 대답이 없는 그녀. 그러다가 다시 입을 연다.
“여기는 남성의류는 없어요.”
“알아요. 선물하려고요.”
그녀는 내 대답에 웃었다. 아까 내가 데이트 신청했을 때처럼 박장대소하지는 않았다. 그냥 쿡쿡, 하고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작게 웃었을 뿐이다.
“네, 그럼 옷 골라보세요.”
“네에.”
그녀의 말에 내가 대답했다. 그리고 나는 옷가게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작은 가게인데도 많은 옷이 걸려 있었다. 그러다가 예쁜 푸른색의 원피스를 발견했다.
“이거 예쁘네요.”
“손님 보는 눈이 있으시네요.”
“다른 사이즈 있어요?”
“그럼요, 선물할 여성분 옷 사이즈는 어떻게 되나요?”
“제가 여자 옷은 사이즈를 잘 몰라서 그러니까 대충 설명해드릴게요. 키는 한……, 168? 정도 되는 거 같구요. 체형은 말랐어요.”
“많이 말랐어요?”
“음……. 아뇨.”
“그럼 66정도가 적당할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며 그녀가 옷을 하나 꺼내들었다.
“혹시나 사이즈 안 맞으면 교환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네에.”
그렇게 나는 그녀의 옷가게에서 옷을 구입했다. 어쩌다가 옷까지 구입을 해버렸다. 누런 빛깔의 종이가방에 내가 산 옷이 담겼다.
“안녕히 가세요, 손님.”
나에게 인사를 하는 그녀.
“아뇨. 아직 더 구경하려구요.”
그렇게 말한 나는 옷가게를 열심히 둘러보았다. 사실 옷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냥 시간만 죽이고 있을 뿐. 그렇게 쇼핑백을 들고 옷가게에서 시간을 죽인지 체감상 10분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너도 진짜 징하다.”
“제가 뭘요?”
그녀의 질렸다는 표정에 나는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에휴, 알았어. 일단 나 밤 10시에 끝나니까 그때 와. 밥을 먹든 뭐하든 일단 얘기라도 해보자.”
“알겠어요. 이따가 올게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어쨌든 YES라는 대답을 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굳이 티를 내지는 않았다. 밤 10시라. 지금은 저녁 7시다. 3시간 남았다. 다른 때라면 3시간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겠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너무 긴 시간이다.
일단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가게에서 산 옷을 종이가방에서 꺼내 내 방 옷장에 숨겨두었다. 이걸 누군가 보기라도 하면 곤란하다. 특히 동생이라면 끝가지 추궁하겠지. 그리고는 옷장에 있는 옷을 살펴보았다. 그녀를 만나러 가니까 옷을 갈아입을 생각이다. 물론, 지금 입고 있는 옷도 데이트 신청을 한답시고 나름 골라 입었지만, 뭔가 부족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입을 만한 옷이 없다. 얼마 전까지 고등학생이라 옷은 교복만으로 충분했고, 패션에도 관심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괜찮은 옷이 없다. 다들 어머니가 싼맛에 사온 옷들 뿐이다. 없는 옷 중에서도 겨우 골랐다. 이렇게 골라봤자 겨울이라 위에 걸친 점퍼에 가려지겠지만.
아, 점퍼보다는 코트가 낫겠다. 옷장에서 갈색의 코트를 꺼냈다. 이 코트는 고등학교 2학년 무렵 이모에게 선물 받았던 것이다. 내가 가진 옷 중 가장 패셔너블한 옷이다. 이런 한겨울에 입기에는 조금 얇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대충 옷을 골라 놓은 다음에는 씻었다. 씻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 시간을 때우는 게 목적이다. 마침 바깥에서 끌고 들어온 겨울 공기가 내 몸에 남아 있어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기에 좋은 타이밍이다.
샤워를 마치고 욕실에 나왔다. 천천히 씻었는데 아직 8시도 되지 않았다. 이대로 2시간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버틸까. 일단은 옷을 입었다. 그리고 컴퓨터를 켰다. 구동음이 울리고, 얼마 안 가 깔끔한 하늘 바탕이 떴다.
인터넷을 검색했다. 지도를 찾기 위해서다. 밤 10시에 같이 얘기를 할 만한 곳이 어디 있을까. 밥은 먹든, 술을 먹든 찾아놓을 필요가 있다. 데이트 코스로 검색을 해서 열심히 찾았다.
그렇게 시내의 지리를 탐방하다보니 시간이 금방 지났다. 시내 지리에 익숙하지 않아서 2시간으로는 모자를 지경이다. 몇 개의 적당한 술집과 카페를 찾는데 1시간이 넘게 걸렸다. 인터넷 안에서의 평판과 사진 등을 토대로 조사한 것이다. 시계를 보니 9시 반이다. 얼른 밖으로 나왔다.
천천히 걸어서 가면 얼추 시간에 맞을 것이다. 조금 춥긴 했지만, 마음이 들뜨니 그렇게 춥지도 않았다. 지금 같은 기분이라면 달려서 가도 지치지 않을 것 같다. 빠른 걸음으로 그녀의 가게까지 걸어가는데 1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 가게를 닫으려는 듯 청소를 하고 있었다. 나는 가게 안으로 조용히 들어왔다. 가게 문을 열자 딸랑 거리는 종소리가 났다.
그녀가 나를 발견했다. 그녀는 대걸레로 가게 바닥을 밀고 있었다.
“왔네.”
“왔어요.”
“조금만 기다려 청소 다 해가니까.”
나는 기꺼이 기다렸다. 도와줄까도 생각했지만, 정말 거의 다 해가고 있어서 그냥 기다렸다. 그녀가 걸레질을 마친 그녀가 나에게 대걸레를 내밀었다.
“여기 나가서 왼쪽으로 들어가면 화장실 있거든 거기 세면대 옆에 있는 통에 넣고 와줘.”
“네.”
나는 그녀의 심부름에 순순히 응했다. 나가서 왼편에 있는 건물 복도로 들어갔다. 계단 몇 칸 위에 화장실이 보였다. 세면대 옆에 갈색의 통에 대걸레를 두고 나왔다. 복도에서 나오니 그녀가 가게 문을 닫고 있었다. 그리고는 구석에 있던 쇠막대로 셔터를 내렸다.
“자, 이제 갈까?”
그녀가 손을 털며 말했다.
“어디로 가는데요?”
“죠오기.”
그녀가 맞은편에 있는 카페를 가리켰다. 살짝 찔끔했다. 내가 그녀를 지켜보던 카페다. 설마 눈치 챈 건가? 아닌가? 머릿속이 핑핑 도는 동안 그녀가 앞장서서 차도로 나갔다. 나도 그녀를 따라 무단횡단을 했다.
밤이 늦어서 그런지 카페 안은 한적했다. 메뉴를 골랐다. 그녀는 아메리카노. 나는 모카라떼. 내가 무슨 행동을 하기 전에 그녀가 계산을 해버렸다.
나와 그녀는 주변에 사람이 없는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지 모르겠네.”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너 내가 마음에 들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어떤 점이?”
사실 나도 모르겠다. 그러나 확실한 건 이상하게도 그녀에게 끌린다는 것이다. 다소 매서워 보이는 얼굴이지만, 웃을 때는 밝고 사근사근한 점이 좋다. 지금 나를 대할 때 풍기는 위압적인 분위기도 좋다.
“그걸 하나하나 설명해야 되나요?”
“아냐, 내가 쓸데없는 걸 물어봤네. 미안해.”
그녀가 나에게 사과했다.
“그런데, 너 나를 본 적이 있니? 나한테 데이트 신청을 하려면 적어도 어디서 본 적이 있어야 되는 거 아냐?”
“누나네 가게에 간 적 있는데요. 이주일 전쯤에 제 동생이랑요.”
내 말에 그녀가 잠깐 고민하는 듯 하더니,
“아, 아! 그때의 걔가 너야?”
나를 기억해낸 듯하다.
“그랬구나.”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아메리카노랑 모카라떼 나왔습니다!”
그때 카페 종업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얼른 일어나서 계산대 쪽으로 향했다. 쟁반 위에 아메리카노와 모카라떼가 올려져 있다. 하얀 컵에 담겨 따뜻한 김이 올라오고 있다. 쟁반을 들고 자리로 와서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다.
그녀가 아메리카노 잔을 집어들었다. 나도 모카라떼 잔을 집어 한 모금 마셨다. 커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나마 모카라떼가 향도 좋고 달아서 먹는 것이다. 한동안 나와 그녀 사이에 말이 오가지 않았다. 무슨 말인가 하고 싶었지만,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넌 나랑 뭘 하고 싶은 거니?”
잠깐의 침묵 후에 그녀가 입을 열었다.
“어, 어……. 확실히는 모르겠어요. 일단은 같이 밥이라도 먹고 싶었어요. 그러면서 얘기도 하고 싶었어요. 그 다음은 생각을 안 해봤어요.”
여렴풋이 함께 길을 걷는 모습, 식사를 하는 모습을 상상해보긴 했지만, 구체적인 어떤 계획을 그리고 있던 것은 아니다. 연애를 해본 적이 없으니 부족한 상상력으로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넌 네 나이 또래의 귀엽고 예쁜 여자애들도 많을 텐데 왜 굳이 나한테 찾아왔니?”
“…….”
“너 정도면 나보다 훨씬 예쁘고 젊은 여자 친구도 만들 수 있을 거야.”
“누나는 당장에 제가 더 젊고 예쁜 여자를 찾아갈 것 같으세요? 아니면 그러길 바라시는 거예요?”
“…….”
누나가 말이 없다.
“누나한테 제가 너무 어린 거 알아요. 애기처럼 보이시겠죠. 그래도 조금이라도 기회를 주시면 안 될까요?”
누나에게 말했다.
“너 대학생이지?”
“네. 올해 1학년이에요.”
그녀의 질문에 대답했다.
“넌 돈 얼마 버니?”
“네?”
“아마 넌 학생이니까 돈을 안 벌겠지. 세금은 내봤니? 집세, 수도세, 전기세. 지로용지라는 걸 본 적은 있니?”
“…….”
“미안한데 네가 어리다고 무시하는 게 아니야. 당연히 어릴 때는 아무것도 모르지. 그런데 중요한 건 나는 내가 돈을 벌고 내가 세금 내고 살아가는 사람이고, 너는 아직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학생이라는 거야. 만약에 너랑 내가 연애를 하면, 나는 내 돈을 쓸 거고, 너는 부모님의 돈을 쓰겠지. 그건 아주 커다란 차이야. 나는 아무렇지 않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부담을 느끼는 건 네가 될 거야. 너는 아주 젊고 창창하잖아. 정말 너라면 나보다 젊고 훨씬 예쁜 여자를 만날 수 있어. 그러니까 다시 생각을 해봐.”
“…….”
“너한테는 그냥 스무 살의 평범한 연애일지 몰라도, 나한테는 현실이거든.”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정말 바보 같다. 그녀는 어른이다. 나는 이제 갓 성인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 어린아이일 뿐이다. 그녀가 떠나고 나서도 나는 한동안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무 생각도 없이. 눈앞에 있는 머그잔만을 진득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 시간 후. 나는 가게에서 나왔다.
일주일 후. 밤 10시. 나는 서있다. 어디에? 그녀가 일하는 가게 앞에. 그녀는 막 가게 문을 닫으며 가게에서 나오는 중이다. 그녀가 나를 발견했다.
“너, 또 왔니?”
“최소한 제 이름은 아셔야 하잖아요, 누나. 제 이름은 김세화예요. 올해 스무 살이에요. 젊죠?”
“그래 젊구나.”
“오늘은 현실 얘기를 하러 왔어요. 그래요. 저 어려요. 아무것도 몰라요. 근데 아직 모른다고 해서, 배운 다음에도 아무것도 못하리란 법은 없잖아요. 이제부터 배우면 되지 않을까요?”
그녀가 무언가 말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잠깐만요. 아직 말 안 끝났어요. 저 이번에 xx대학 합격했어요. 쉽게 말해서 공부 잘해요. 그냥 잘하는 거 아니예요. 무지 잘해요. 이번 수능 전국에서 제 앞에 있던 사람 100명 안 돼요. 대학에 들어가서는 공부 더 잘할 자신 있어요. 저 어릴 때 외국에서 조금 살아서 영어도 꽤 해요. 성격도 괜찮은 편이라 인간관계도 나쁘지 않아요. 자신감도 넘쳐서 어디가도 주눅 들지 않아요. 그러니까 취직할 때 어떤 회사든 서류심사도 면접도 통과할 자신 있어요. 군대 2년. 대학교 4년. 6년이에요. 6년만 있으면 저 누구보다 돈 많이 벌 자신 있어요. 6년만 있으면, 누구보다 현실에 대해 잘 알 수 있을 거예요. 아니, 마음만 먹으면 5년 안에도 할 자신 있어요.”
“…….”
“누나가 그랬죠. 현실이라고. 저한테도 연애는 현실이에요. 어리고 아무것도 모른다고 해서 모든 게 꿈은 아니에요. 물론 누나한테는 어린아이의 꿈 같을지도 몰라요. 근데, 그러면 누나가 조금 가르쳐 주면 안 돼요? 그러면 안 되나요?”
“…….”
그녀가 말이 없다.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이제는 될 대로 되라. 만약에 또 퇴짜 맞으면 이제는 깨끗이 포기하겠다. 질질 끌고 갈 생각은 없으니까.
“풉, 푸하하하하!”
그녀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에게 처음 데이트 신청을 했던 그날처럼, 그녀는 웃었다. 겨우겨우 그녀가 웃음을 진정시키고는 입을 연다.
“너 진짜 웃기는 애구나?”
그렇게 웃긴가. 조금 기분이 나빴다. 난 정말 진지하게 말한 건데.
“너 꽤 마음에 든다.”
누나의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진짜요?”하면서 호들갑을 떨 뻔했다. 자제하자. 안 그래도 어리게 보는데, 진짜 어린이로 볼지도 몰라.
“나 내일 쉬는 날이거든? 저녁 7시까지 여기로 와. 같이 저녁이라도 먹자.”
그녀에게 오케이 사인을 받아냈다.
이게 나의 인생 최초의 연애. 그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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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사실 한창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학교공부는 아니지요
공부 열심히 해야 하다보니 글쓸 시간이 부족했는데
요 며칠은 덕분에 공부하는 시간이 조금 줄어버렸네요
ㅠㅜㅠㅜ
그래도 글 쓰는 게 재밌네요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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