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6년 전.
잘록한 허리. 볼륨감 있는 가슴. 엉덩이에서 허벅지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라인. 탄력이 넘치는 몸매. 한때 체조선수를 꿈꾸었던 승희는 내 평생 처음 만나보는 완벽한 몸매를 소유하고 있다. 160이 안 되는 키인데도 결코 작아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비율이 좋다.
“아……. 아!”
성감도 뛰어나다. 내가 첫남자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게다가 날이 갈수록 민감해지고 있다.
“아, 오빠!”
간절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 목소리. 오른쪽 허벅지 안쪽, 그러나 깊지는 않은 곳을 혀로 핥았다. 승희의 몸이 펄떡이며 허리가 떴다. 내 혀가 닿은 다리가 일자로 쭉 펴졌다. 반대쪽 다리는 내 등 위에 올린 다음 놀고 있는 손으로 천천히 허벅지 라인을 훑었다.
“오빠, 사랑해애!”
승희의 목소리. 그 강단 있는 성격에 어울리지 않는 여린 목소리. 나는 그 목소리를 듣고 천천히 승희의 얼굴을 향해 올라갔다. 내 등 위에 올려놨던 다리는 내리고, 승희의 다리 라인을 타고, 배꼽을 지나, 누워 있음에도 봉긋하게 솟아 있는 가슴을 지나, 쇄골을 지나, 승희의 입술에 도착했다. 승희의 뜨거운 숨결이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그 입을 내 입으로 막았다.
입술을 떼자, 내 입에 막혀 더더욱 뜨거워진 숨결이 느껴진다. 혀와 혀가 서로를 핥는다. 때로는 상대방의 입술을 핥기도 하고, 서로의 귀를 핥기도 한다.
“나도. 나도 사랑해.”
승희의 귀에 속삭였다. 그리고 승희의 귓불을 가볍게 깨물었다.
“응!”
승희의 억눌린 듯한 신음소리. 승희는 귀가 아주 민감하다. 그러나 귀를 통해 성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한다. 그러나 난 승희가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즐긴다.
“오빠! 오빠, 그만!”
승희가 내 목을 꽉 끌어안고 애원하듯이 말한다. 그러나 멈추지 않는다.
“아, 아!”
승희는 결국 참던 신음을 크게 내뱉는다. 목표를 달성하고 나자 나는 승희에게서 떨어졌다. 빨개진 승희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혼이 빠진 듯한 승희의 얼굴을 보자 웃음이 나왔다. 승희가 내 웃는 얼굴을 보더니 인상을 찌푸린다.
“오빠, 내가 하지 말랬지!”
“그래서, 싫었어?”
“……. 싫지는 않았어.”
“좋았어?”
“…….”
“좋았어?”
“좋았어. 그래. 좋았어. 됐어?”
승희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입으로 그 입을 막았다.
“진짜아! 읍!”
승희는 내 행동에 불만을 품은 듯했지만, 그렇다고 내 키스를 거부하지는 않았다. 키스를 끝내고 얼굴을 조금 떨어뜨려 승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승희는 불만스러운 얼굴을 하고 나를 바라본다.
“오빠 진짜 짓궂어.”
“나도 알아.”
“맨날, 귀는 건들지 말라고 해도, 아, 응!”
승희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승희의 가슴을 애무하기 시작했다.
“진짜, 말도 다 안 끝났는데에! 아!”
승희의 목소리톤이 조금 전보다 더 높아졌다. 얼굴은 상기되어 있고, 눈가는 촉촉이 젖어있다. 승희의 다리 사이로 손을 넣었다. 귀를 만지는 건 거부하면서, 이쪽을 만지는 것은 아무런 제지가 없는 건 모순 아닌가 싶다. 다른 곳보다 뜨거운 체온을 가진 곳. 승희의 다리를 벌려 그곳을 쳐다보았다.
“아, 오빠! 보지 마!”
승희가 부끄러운 듯 손으로 그곳을 가린다. 승희의 눈가보다도 더 촉촉하게 젖어 있는 그곳. 이제 전희의 시간은 끝났다. 나는 그대로 승희의 그곳으로 진입했다.
“하악!”
애무를 할 때와는 또 다른 종류의 신음소리가 승희의 입에서 나왔다. 뜨겁다고 느끼기 직전의 온도. 그 온도가 나의 중심부를 감싸고 있다. 천천히 허리를 뒤로 움직였다.
“하아…….”
승희가 야릇한 숨을 내뱉는다. 다시 천천히 허리를 앞으로 움직였다. 아니 허리를 움직인다기보다는 허리가 빨려들어가는 기분이다. 처음보다는 빠르게, 하지만 여전히 천천히 허리를 움직인다. 절정에 가까워질수록 움직임이 빨라지는 건 맞지만, 남자와 달리 여자는 처음부터 빠르게 움직인다고 느끼지 않는다.
여자의 쾌감은 심리적인 요인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불안하면 여자는 흥분하기 어렵다. 특히 성경험이 많지 않은 여자는 자신이 흥분하는 것 자체에도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있다. 평소와는 다른 자신의 모습에 당황하는 것이다. 오르가즘을 느끼는 것을 무서워하는 사람도 있다.
승희는 나와의 경험이 전부인 여자다. 그만큼 신경을 많이 쓸 필요가 있다. 뭐, 그 전부인 나와의 경험도 요즘에 와서는 꽤 늘어났지만 말이다. 지금은 7월. 어느새 여름이 다가왔다. 나도 회사에서 수습딱지를 뗐다.
그동안 커다란 변화가 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승희는 아직 구직활동중이고, 나는 수습기간은 끝났어도 여전히 새파란 신입사원이다. 다만, 변한 것이 있다면 나와 승희의 관계가 훨씬 깊어졌다는 것. 승희는 나에게 훨씬 애교를 부리고, 나에게 훨씬 의존적이 되었다.
아, 지금은 다른 생각할 때가 아니다. 승희에게 집중해야지.
섹스를 할 때면 남자는 한 가지 일밖에 할 줄 모른다는 말을 실감한다. 허리를 움직이는 데 집중하면 애무를 잊는다. 애무에 집중하면 허리를 멈춘다. 조금 더 승희에게 신경을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허리를 움직이면서 승희의 가슴을 마사지하듯 애무하고, 등을 척추를 따라 훑는다.
“오빠, 나 키스해줘!”
승희의 요구에 따라 끈적한 키스를 나누었다.
“아, 오빠아!”
승희의 약간 쉰 목소리. 아까부터 하이톤으로 소리를 내느라 쉬어버린 목소리. 나만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다. 승희의 붉어진 얼굴. 나에게 무언가를 애원하는 듯한 얼굴. 이 세상에서 나만이 이 여자의 이런 얼굴을 볼 수 있다.
승희가 나를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귓가에 속삭인다.
“오늘은 안에 해도 괜찮아.”
정말 섹시한 목소리다. 그리곤 내 귀를 혀로 핥는다. 가끔은 깨문다. 짜릿하다고 해야 할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쾌감이 느껴진다. 아까 나의 공격에 대한 복수인 것 같다.
“자기 정말 예뻐. 사랑해.”
승희의 귓가에 속삭였다.
“아, 아! 나도 자기 사랑해!”
승희도 내 속삭임에 대답했다. 만지는 것만이 섹스의 모든 것이 아니다. 여자는 사랑한다는 말에도 흥분을 한다. 나는 조금씩 템포를 올리기 시작했다. 승희의 흥건해진 아래쪽에서 찌걱거리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나한테 말도 없이 한 번 느껴버린 모양이다.
그러나 상관없다. 여자의 오르가즘은 점점 더 강해진다. 상대에게 사랑을 느낀다는 기분이 들수록, 흥분은 높아지고, 오르가즘의 강도는 세진다.
“아, 오빠! 오빠! 아!”
승희의 목소리가 한층 더 높아졌다.
“자기는 정말 최고야. 자기 정말 사랑해. 자기 정말 예뻐. 정말 아름다워.”
승희의 귓가에 사랑을 속삭이면서, 허리의 움직임은 점점 더 격렬해진다. 승희 또한 내 아래에서 유연한 허리를 움직이고 있다. 이런 걸 가르쳐준 기억은 없는데,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허리를 움직인다. 쾌감을 느끼는 여자의 본능인 걸까.
승희의 흥분이 더해질수록 나의 흥분도 높아진다. 평소와 달리 오늘은 당장에라도 사정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승희는 나와 섹스를 나누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성감이 더 강해지고 있고, 오늘은 가히 최상의 쾌감을 느끼고 있다. 이대로 30분 정도 더 괴롭힌다면, 아마 한동안 다리가 풀려서 서있지도 못할 것이다.
자세를 바꿨다. 상체를 일으켜 무릎을 꿇고 앉았다. 승희를 계속 안은 채로는 빠르게 움직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승희는 자연스럽게 양다리를 올려 내 양어깨에 걸쳤다.
“아, 아! 아! 오빠! 좋아! 나 좋아! 아악!”
내 허리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승희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내 골반과 승희의 엉덩이가 부딪치며 야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게다가 승희의 젖어 있는 그곳에서 나는 소리도 더 격해졌다.
이제 승희는 아무 말도 없다. 그저 입을 벌리고 허리를 활처럼 쫙 펴고 온몸을 경직시키고 있을 뿐이다. 내 어깨에 걸쳐진 다리가 강하게 나를 내리 누르고 있다. 발가락은 쥐가 날 듯 강하게 오므리고 있다. 양손은 이불을 강하게 움켜쥔다. 그러다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잡아주었다.
이윽고 나는 천천히 움직임을 멈췄다. 승희의 몸이 천천이 떨리고 있다. 승희의 넋이 나간 승희의 붉은 얼굴. 숨은 아직 거칠고, 온몸은 땀으로 젖어 있다. 사타구니 쪽이 다른 곳보다 훨씬 축축하다. 땀 때문은 결코 아닐 것이다.
“아……. 오빠…….”
“왜 그래?”
“오빠가 이렇게 만들었잖아.”
승희가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나는 무릎 꿇은 자세를 풀고 침대에 앉았다. 그리곤 승희를 안아올려 내 위에 앉혔다.
“오늘 자기 심하게 느낀다.”
“몰라.”
승희는 부끄러운 듯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런 승희를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머리가 살짝 땀에 젖어있다.
“자기 괜찮아? 지친 것 같은데.”
“지쳤어.”
승희는 여전히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말했다.
“그럼 이제 그만 할까?”
“힝…….”
승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대신 내 가슴에 더 얼굴을 파묻었다. 나는 승희의 턱에 손을 얹어 천천히 턱을 들어올렸다. 천천히 승희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부끄러워하던 것 치고는 적극적으로 혀롤 내밀어온다.
“이제 그만 해?”
“…….”
승희는 잠깐 말이 없다. 그러다가,
“더 해줘…….”
귀여운 얼굴로 말했다. 그 모습에 웃음이 터졌다.
“왜 웃어, 진짜!”
뾰루퉁한 얼굴을 한 채 나를 노려보는 승희.
“그냥 귀여워서.”
“무, 읍!”
승희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는 모른다. 내가 입으로 입을 막아버렸으니까. 지금 하려는 일보다 중요한 말은 아닐 것이다.
“오늘도 다리 풀리게 만들 거야.”
두려움, 또는 기대를 안은 표정을 하고 있는 승희를 다시 침대에 누였다.
그 후로 30여 분 간 승희가 땀으로 샤워를 하도록 괴롭혔다. 승희는 그 어느 때보다도 격정적인 절정을 맞이했다. 나도 몇 주만의 섹스, 콘돔 없음이라는 상황 덕분에 제대로 사정할 수 있었다.
한동안 승희는 내 품에 안긴 채로 숨을 몰아쉬었다. 침대 옆에 놔뒀던 수건을 집어 승희의 몸에 있는 땀을 닦아주었다. 아무리 여름이라지만 이대로 있으면 감기에 걸릴 수도 있으니까.
“오빠아, 물…….”
승희가 힘이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냉장고에서 캔음료를 꺼내 따서 승희에게 건네주었다. 승희는 힘겹게 몸을 일으킨 후 내가 건네준 음료수를 마셨다. 몇 모금을 꿀꺽꿀꺽 마시고, 승희는 내게도 캔을 건네주었다. 캔을 받아서 나도 조금 마셨다.
침대 위로 다시 올라가 승희 옆에 붙었다. 승희는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승희의 이마에 키스했다. 승희가 내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 땀에 젖어 산발이 되어 있는 승희의 머리를 손으로 정돈해주었다. 부드러운 머릿결이 손끝에 느껴졌다.
“많이 덥지?”
“응.”
내 물음에 승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에어컨을 틀었는데도 승희는 땀범벅이 되었다. 나도 승희만큼은 아니지만 꽤나 땀을 많이 흘렸다.
나와 승희는 함께 욕실에 가서 씻었다. 서로의 몸을 씻겨주었다. 샤워를 마치고는 알몸으로 함께 침대에 누웠다. 우리가 일을 치렀던 침대는 아니다. 이미 그 침대는 난장판이 되어 있다. 이럴 줄 알고 투베드룸으로 왔다. 승희와 알몸으로 침대에 누웠다. 얇다란 흰 이불을 덮고 시원한 공기를 만끽했다.
승희는 내 팔을 베고 내 옆에 딱 붙어있다. 나는 승희의 따뜻한 체온을 느끼며 멍하니 누워 있다.
“오빠 일하느라 많이 피곤하지?”
“아냐, 괜찮아. 할 만해.”
사실이다. 할 만하다. 쉽지는 않지만, 구직활동을 하는 것보다는 마음이 편하다.
“그래두. 요즘 피곤해보여. 살도 빠진 것 같구.”
“정말로 괜찮아.”
“응.”
승희의 걱정스러운 눈빛. 승희는 나를 생각해준다. 승희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승희도 적극적으로 내 키스에 응한다.
“고마워.”
“움…….”
누군가가 나를 걱정해준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내 여자 친구라면 더 좋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있다.
좋은 일은, 그동안 사귀었던 그 누구보다 승희가 좋다는 것이다. 승희는 누구에게 소개를 해줘도 자부심을 가져도 될 만큼 아름다우며, 그 아름다움은 겉만이 아닌 속에도 갖추고 있다. 나를 다소 독점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애인이니까 이 정도는 괜찮아 정도의 수준이다.
나쁜 일이란, 승희가 나를 좋아하는 만큼 내가 승희를 좋아하지는 않는 다는 점이다. 여전히 나는 누군가에게 열렬한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상황이 불만족스럽지는 않다. 이 감정이 아주 뜨겁지 않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향하는 감정보다 못하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현재 다른 누구보다 승희를 좋아하고 있으며, 현재의 상황에 만족한다.
그거면 된 거 아닐까.
“아, 오빠아…….”
키스를 하면서 승희의 가슴으로 손을 올렸다. 부드러우면서 탄력 있는 봉우리가 손 안에 가득찼다.
“또 해?”
“오랜만이라 그런가봐.”
그렇게 말하고 승희를 침대에 눕혔다.
“괜찮아?”
나는 승희에게 의사를 물었다.
“괜찮아. 그런데, 저쪽 침대에서 하자. 여기도 더럽히면 못 자니까.”
승희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섹스를 할 때는 이제 조금씩 적극적인 면도 보이는 승희지만, 그에 대해 말을 할 때는 아직도 부끄러운 기색이 많이 남아 있다. 그런 점이 귀여워서 나는 또 격렬한 키스를 퍼부었다.
“아까 그렇게 하고 괜찮다는 거네?”
내가 짓궂게 웃으며 말했다. 이럴 때 승희의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좋다. 승희는 내 예상대로 부끄러워 하면서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는다.
“몰라…….”
“뭘 몰라?”
승희가 내 가슴팍을 가볍게 때렸다. 나는 웃으면서 승희를 번쩍 들어올렸다.
“오빠, 들지마. 들지마.”
승희가 반항했지만 무시하고 그냥 들었다. 승희는 내가 자기를 들어 몸무게를 체감하는 것을 싫어한다. 최근에 살이 조금 쪘다고 고민을 하고 있거든. 그러나, 체구가 작은 승희는 별로 무겁지도 않을뿐더러, 살이 쪘다고 해도 어디가 쪘는지 모르겠다. 아니, 사실 조금 찐 게 느껴지기는 한다. 근데 이걸 입 밖으로 내면 매우 좋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겠지.
승희를 들어서 옆쪽 침대에 눕혔다.
“샤워한지 얼마 안 됐는데…….”
승희가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런 것치고는 자연스럽게 다리로 내 허리를 감고 있는 승희다.
“다시 씻으면 돼.”
그렇게 말하고 나서, 나는 천천히 승희의 몸을 탐하기 시작했다.
모텔에서 눈을 뜬 난 승희를 데려다 주고, 집에 돌아왔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 아버지 어머니 오늘 놀러 간다고 했지. 나는 거실로 들어가 냉장고를 열었다. 날씨가 더워져서 금방 금방 목이 마른다. 마침 오렌지 주스가 있어서 꺼냈다. 찬장에 있는 컵을 꺼내 따라 마셨다.
“어, 오빠 왔네.”
주스를 마시고 있자니 동생이 팬티에 런닝셔츠 차림으로 방에서 나왔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동생이 있었구나.
“이제 일어났냐.”
“아니, 지금까지 일어나 있던 건데.”
“그러냐.”
또 게임을 하느라 밤을 샌 모양이다. 가끔 나랑 동생은 바뀐 기분이 든다. 보통은 남자 쪽이 게임에 매진하지 않나?
동생이 내 손에 들린 주스를 가져갔다. 그리고는 병째로 벌컥벌컥 마신다. 임마, 컵에다 따라 마셔라.
“크, 시다! 오빠는 뭐하다 지금 왔어? 여자 친구 만났구나?”
“그래.”
굳이 숨길 일인 것 같지도 않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에 동생이 음흉하게 웃는다.
“지금 시간까지 뭐하다가 왔을까.”
음흉한 표정의 동생에게 가볍게 꿀밤을 먹였다.
“오빠도 안 그럴 거 같으면서 여자를 금방금방 바꾼다니까.”
“뭐가.”
“내가 오빠 사귀었던 여자들 모를 줄 알아?”
“모르잖아.”
같이 대화를 나눠본 적도 없을 텐데.
“모르지만, 그래도 눈치가 있어서 대충은 알아. 솔직히 1년 이상 만난 여자도 없으면서.”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랬나.”
“어쨌든, 오빠는 나쁜 남자야.”
“뭐.”
“옛날엔 그렇게 순정남이었으면서 왜 이렇게 변했을까.”
동생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뭔 옛날?”
“오빠 대학교 처음 들어갔을 때. 그때는 뭐 여자한테 푹 빠져서 집에도 잘 안 들어왔잖아.”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때는 아르바이트 하느라 그런 거지.”
“에이, 내가 눈치가 몇 단인데, 그런 걸 모를 줄 알아? 내가 오빠 핸드폰 비밀번호 정도는 바로 풀 수 있거덩. 악! 아파!”
동생의 이마에 조금 세게 꿀밤을 먹였다.
“아프라고 때렸다.”
“폭력쟁이.”
“누가 핸드폰 멋대로 보래냐.”
“그냥 통화목록밖에 안 봤어! 내가 아직도 이름도 기억한다. 희주씨! 희주씨! 희주씨! 악!”
동생의 이마를 한 번 더 세게 가격한 다음 난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침대에 그대로 쓰러졌다. 모텔에서 자기는 했지만, 내 집이 아니라 그런지 피곤이 덜 풀렸다. 눈을 감았다.
희주. 강희주.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다.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스무 살이 되었던 그때로부터 벌써 6년이 지났다. 그러나 체감상으로는 사실 10년도 더 전에 있었던 일 같아서, 아직도 6년밖에 안 되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보답 받지 못하는 사랑이라도 괜찮다. 그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만 가지고 있다면, 그 마음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다면, 보답 받지 못해도 좋다. 스무 살 무렵의 나는 그런 생각을 가졌다.
잘록한 허리. 볼륨감 있는 가슴. 엉덩이에서 허벅지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라인. 탄력이 넘치는 몸매. 한때 체조선수를 꿈꾸었던 승희는 내 평생 처음 만나보는 완벽한 몸매를 소유하고 있다. 160이 안 되는 키인데도 결코 작아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비율이 좋다.
“아……. 아!”
성감도 뛰어나다. 내가 첫남자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게다가 날이 갈수록 민감해지고 있다.
“아, 오빠!”
간절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 목소리. 오른쪽 허벅지 안쪽, 그러나 깊지는 않은 곳을 혀로 핥았다. 승희의 몸이 펄떡이며 허리가 떴다. 내 혀가 닿은 다리가 일자로 쭉 펴졌다. 반대쪽 다리는 내 등 위에 올린 다음 놀고 있는 손으로 천천히 허벅지 라인을 훑었다.
“오빠, 사랑해애!”
승희의 목소리. 그 강단 있는 성격에 어울리지 않는 여린 목소리. 나는 그 목소리를 듣고 천천히 승희의 얼굴을 향해 올라갔다. 내 등 위에 올려놨던 다리는 내리고, 승희의 다리 라인을 타고, 배꼽을 지나, 누워 있음에도 봉긋하게 솟아 있는 가슴을 지나, 쇄골을 지나, 승희의 입술에 도착했다. 승희의 뜨거운 숨결이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그 입을 내 입으로 막았다.
입술을 떼자, 내 입에 막혀 더더욱 뜨거워진 숨결이 느껴진다. 혀와 혀가 서로를 핥는다. 때로는 상대방의 입술을 핥기도 하고, 서로의 귀를 핥기도 한다.
“나도. 나도 사랑해.”
승희의 귀에 속삭였다. 그리고 승희의 귓불을 가볍게 깨물었다.
“응!”
승희의 억눌린 듯한 신음소리. 승희는 귀가 아주 민감하다. 그러나 귀를 통해 성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한다. 그러나 난 승희가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즐긴다.
“오빠! 오빠, 그만!”
승희가 내 목을 꽉 끌어안고 애원하듯이 말한다. 그러나 멈추지 않는다.
“아, 아!”
승희는 결국 참던 신음을 크게 내뱉는다. 목표를 달성하고 나자 나는 승희에게서 떨어졌다. 빨개진 승희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혼이 빠진 듯한 승희의 얼굴을 보자 웃음이 나왔다. 승희가 내 웃는 얼굴을 보더니 인상을 찌푸린다.
“오빠, 내가 하지 말랬지!”
“그래서, 싫었어?”
“……. 싫지는 않았어.”
“좋았어?”
“…….”
“좋았어?”
“좋았어. 그래. 좋았어. 됐어?”
승희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입으로 그 입을 막았다.
“진짜아! 읍!”
승희는 내 행동에 불만을 품은 듯했지만, 그렇다고 내 키스를 거부하지는 않았다. 키스를 끝내고 얼굴을 조금 떨어뜨려 승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승희는 불만스러운 얼굴을 하고 나를 바라본다.
“오빠 진짜 짓궂어.”
“나도 알아.”
“맨날, 귀는 건들지 말라고 해도, 아, 응!”
승희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승희의 가슴을 애무하기 시작했다.
“진짜, 말도 다 안 끝났는데에! 아!”
승희의 목소리톤이 조금 전보다 더 높아졌다. 얼굴은 상기되어 있고, 눈가는 촉촉이 젖어있다. 승희의 다리 사이로 손을 넣었다. 귀를 만지는 건 거부하면서, 이쪽을 만지는 것은 아무런 제지가 없는 건 모순 아닌가 싶다. 다른 곳보다 뜨거운 체온을 가진 곳. 승희의 다리를 벌려 그곳을 쳐다보았다.
“아, 오빠! 보지 마!”
승희가 부끄러운 듯 손으로 그곳을 가린다. 승희의 눈가보다도 더 촉촉하게 젖어 있는 그곳. 이제 전희의 시간은 끝났다. 나는 그대로 승희의 그곳으로 진입했다.
“하악!”
애무를 할 때와는 또 다른 종류의 신음소리가 승희의 입에서 나왔다. 뜨겁다고 느끼기 직전의 온도. 그 온도가 나의 중심부를 감싸고 있다. 천천히 허리를 뒤로 움직였다.
“하아…….”
승희가 야릇한 숨을 내뱉는다. 다시 천천히 허리를 앞으로 움직였다. 아니 허리를 움직인다기보다는 허리가 빨려들어가는 기분이다. 처음보다는 빠르게, 하지만 여전히 천천히 허리를 움직인다. 절정에 가까워질수록 움직임이 빨라지는 건 맞지만, 남자와 달리 여자는 처음부터 빠르게 움직인다고 느끼지 않는다.
여자의 쾌감은 심리적인 요인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불안하면 여자는 흥분하기 어렵다. 특히 성경험이 많지 않은 여자는 자신이 흥분하는 것 자체에도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있다. 평소와는 다른 자신의 모습에 당황하는 것이다. 오르가즘을 느끼는 것을 무서워하는 사람도 있다.
승희는 나와의 경험이 전부인 여자다. 그만큼 신경을 많이 쓸 필요가 있다. 뭐, 그 전부인 나와의 경험도 요즘에 와서는 꽤 늘어났지만 말이다. 지금은 7월. 어느새 여름이 다가왔다. 나도 회사에서 수습딱지를 뗐다.
그동안 커다란 변화가 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승희는 아직 구직활동중이고, 나는 수습기간은 끝났어도 여전히 새파란 신입사원이다. 다만, 변한 것이 있다면 나와 승희의 관계가 훨씬 깊어졌다는 것. 승희는 나에게 훨씬 애교를 부리고, 나에게 훨씬 의존적이 되었다.
아, 지금은 다른 생각할 때가 아니다. 승희에게 집중해야지.
섹스를 할 때면 남자는 한 가지 일밖에 할 줄 모른다는 말을 실감한다. 허리를 움직이는 데 집중하면 애무를 잊는다. 애무에 집중하면 허리를 멈춘다. 조금 더 승희에게 신경을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허리를 움직이면서 승희의 가슴을 마사지하듯 애무하고, 등을 척추를 따라 훑는다.
“오빠, 나 키스해줘!”
승희의 요구에 따라 끈적한 키스를 나누었다.
“아, 오빠아!”
승희의 약간 쉰 목소리. 아까부터 하이톤으로 소리를 내느라 쉬어버린 목소리. 나만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다. 승희의 붉어진 얼굴. 나에게 무언가를 애원하는 듯한 얼굴. 이 세상에서 나만이 이 여자의 이런 얼굴을 볼 수 있다.
승희가 나를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귓가에 속삭인다.
“오늘은 안에 해도 괜찮아.”
정말 섹시한 목소리다. 그리곤 내 귀를 혀로 핥는다. 가끔은 깨문다. 짜릿하다고 해야 할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쾌감이 느껴진다. 아까 나의 공격에 대한 복수인 것 같다.
“자기 정말 예뻐. 사랑해.”
승희의 귓가에 속삭였다.
“아, 아! 나도 자기 사랑해!”
승희도 내 속삭임에 대답했다. 만지는 것만이 섹스의 모든 것이 아니다. 여자는 사랑한다는 말에도 흥분을 한다. 나는 조금씩 템포를 올리기 시작했다. 승희의 흥건해진 아래쪽에서 찌걱거리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나한테 말도 없이 한 번 느껴버린 모양이다.
그러나 상관없다. 여자의 오르가즘은 점점 더 강해진다. 상대에게 사랑을 느낀다는 기분이 들수록, 흥분은 높아지고, 오르가즘의 강도는 세진다.
“아, 오빠! 오빠! 아!”
승희의 목소리가 한층 더 높아졌다.
“자기는 정말 최고야. 자기 정말 사랑해. 자기 정말 예뻐. 정말 아름다워.”
승희의 귓가에 사랑을 속삭이면서, 허리의 움직임은 점점 더 격렬해진다. 승희 또한 내 아래에서 유연한 허리를 움직이고 있다. 이런 걸 가르쳐준 기억은 없는데,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허리를 움직인다. 쾌감을 느끼는 여자의 본능인 걸까.
승희의 흥분이 더해질수록 나의 흥분도 높아진다. 평소와 달리 오늘은 당장에라도 사정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승희는 나와 섹스를 나누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성감이 더 강해지고 있고, 오늘은 가히 최상의 쾌감을 느끼고 있다. 이대로 30분 정도 더 괴롭힌다면, 아마 한동안 다리가 풀려서 서있지도 못할 것이다.
자세를 바꿨다. 상체를 일으켜 무릎을 꿇고 앉았다. 승희를 계속 안은 채로는 빠르게 움직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승희는 자연스럽게 양다리를 올려 내 양어깨에 걸쳤다.
“아, 아! 아! 오빠! 좋아! 나 좋아! 아악!”
내 허리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승희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내 골반과 승희의 엉덩이가 부딪치며 야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게다가 승희의 젖어 있는 그곳에서 나는 소리도 더 격해졌다.
이제 승희는 아무 말도 없다. 그저 입을 벌리고 허리를 활처럼 쫙 펴고 온몸을 경직시키고 있을 뿐이다. 내 어깨에 걸쳐진 다리가 강하게 나를 내리 누르고 있다. 발가락은 쥐가 날 듯 강하게 오므리고 있다. 양손은 이불을 강하게 움켜쥔다. 그러다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잡아주었다.
이윽고 나는 천천히 움직임을 멈췄다. 승희의 몸이 천천이 떨리고 있다. 승희의 넋이 나간 승희의 붉은 얼굴. 숨은 아직 거칠고, 온몸은 땀으로 젖어 있다. 사타구니 쪽이 다른 곳보다 훨씬 축축하다. 땀 때문은 결코 아닐 것이다.
“아……. 오빠…….”
“왜 그래?”
“오빠가 이렇게 만들었잖아.”
승희가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나는 무릎 꿇은 자세를 풀고 침대에 앉았다. 그리곤 승희를 안아올려 내 위에 앉혔다.
“오늘 자기 심하게 느낀다.”
“몰라.”
승희는 부끄러운 듯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런 승희를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머리가 살짝 땀에 젖어있다.
“자기 괜찮아? 지친 것 같은데.”
“지쳤어.”
승희는 여전히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말했다.
“그럼 이제 그만 할까?”
“힝…….”
승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대신 내 가슴에 더 얼굴을 파묻었다. 나는 승희의 턱에 손을 얹어 천천히 턱을 들어올렸다. 천천히 승희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부끄러워하던 것 치고는 적극적으로 혀롤 내밀어온다.
“이제 그만 해?”
“…….”
승희는 잠깐 말이 없다. 그러다가,
“더 해줘…….”
귀여운 얼굴로 말했다. 그 모습에 웃음이 터졌다.
“왜 웃어, 진짜!”
뾰루퉁한 얼굴을 한 채 나를 노려보는 승희.
“그냥 귀여워서.”
“무, 읍!”
승희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는 모른다. 내가 입으로 입을 막아버렸으니까. 지금 하려는 일보다 중요한 말은 아닐 것이다.
“오늘도 다리 풀리게 만들 거야.”
두려움, 또는 기대를 안은 표정을 하고 있는 승희를 다시 침대에 누였다.
그 후로 30여 분 간 승희가 땀으로 샤워를 하도록 괴롭혔다. 승희는 그 어느 때보다도 격정적인 절정을 맞이했다. 나도 몇 주만의 섹스, 콘돔 없음이라는 상황 덕분에 제대로 사정할 수 있었다.
한동안 승희는 내 품에 안긴 채로 숨을 몰아쉬었다. 침대 옆에 놔뒀던 수건을 집어 승희의 몸에 있는 땀을 닦아주었다. 아무리 여름이라지만 이대로 있으면 감기에 걸릴 수도 있으니까.
“오빠아, 물…….”
승희가 힘이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냉장고에서 캔음료를 꺼내 따서 승희에게 건네주었다. 승희는 힘겹게 몸을 일으킨 후 내가 건네준 음료수를 마셨다. 몇 모금을 꿀꺽꿀꺽 마시고, 승희는 내게도 캔을 건네주었다. 캔을 받아서 나도 조금 마셨다.
침대 위로 다시 올라가 승희 옆에 붙었다. 승희는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승희의 이마에 키스했다. 승희가 내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 땀에 젖어 산발이 되어 있는 승희의 머리를 손으로 정돈해주었다. 부드러운 머릿결이 손끝에 느껴졌다.
“많이 덥지?”
“응.”
내 물음에 승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에어컨을 틀었는데도 승희는 땀범벅이 되었다. 나도 승희만큼은 아니지만 꽤나 땀을 많이 흘렸다.
나와 승희는 함께 욕실에 가서 씻었다. 서로의 몸을 씻겨주었다. 샤워를 마치고는 알몸으로 함께 침대에 누웠다. 우리가 일을 치렀던 침대는 아니다. 이미 그 침대는 난장판이 되어 있다. 이럴 줄 알고 투베드룸으로 왔다. 승희와 알몸으로 침대에 누웠다. 얇다란 흰 이불을 덮고 시원한 공기를 만끽했다.
승희는 내 팔을 베고 내 옆에 딱 붙어있다. 나는 승희의 따뜻한 체온을 느끼며 멍하니 누워 있다.
“오빠 일하느라 많이 피곤하지?”
“아냐, 괜찮아. 할 만해.”
사실이다. 할 만하다. 쉽지는 않지만, 구직활동을 하는 것보다는 마음이 편하다.
“그래두. 요즘 피곤해보여. 살도 빠진 것 같구.”
“정말로 괜찮아.”
“응.”
승희의 걱정스러운 눈빛. 승희는 나를 생각해준다. 승희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승희도 적극적으로 내 키스에 응한다.
“고마워.”
“움…….”
누군가가 나를 걱정해준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내 여자 친구라면 더 좋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있다.
좋은 일은, 그동안 사귀었던 그 누구보다 승희가 좋다는 것이다. 승희는 누구에게 소개를 해줘도 자부심을 가져도 될 만큼 아름다우며, 그 아름다움은 겉만이 아닌 속에도 갖추고 있다. 나를 다소 독점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애인이니까 이 정도는 괜찮아 정도의 수준이다.
나쁜 일이란, 승희가 나를 좋아하는 만큼 내가 승희를 좋아하지는 않는 다는 점이다. 여전히 나는 누군가에게 열렬한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상황이 불만족스럽지는 않다. 이 감정이 아주 뜨겁지 않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향하는 감정보다 못하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현재 다른 누구보다 승희를 좋아하고 있으며, 현재의 상황에 만족한다.
그거면 된 거 아닐까.
“아, 오빠아…….”
키스를 하면서 승희의 가슴으로 손을 올렸다. 부드러우면서 탄력 있는 봉우리가 손 안에 가득찼다.
“또 해?”
“오랜만이라 그런가봐.”
그렇게 말하고 승희를 침대에 눕혔다.
“괜찮아?”
나는 승희에게 의사를 물었다.
“괜찮아. 그런데, 저쪽 침대에서 하자. 여기도 더럽히면 못 자니까.”
승희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섹스를 할 때는 이제 조금씩 적극적인 면도 보이는 승희지만, 그에 대해 말을 할 때는 아직도 부끄러운 기색이 많이 남아 있다. 그런 점이 귀여워서 나는 또 격렬한 키스를 퍼부었다.
“아까 그렇게 하고 괜찮다는 거네?”
내가 짓궂게 웃으며 말했다. 이럴 때 승희의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좋다. 승희는 내 예상대로 부끄러워 하면서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는다.
“몰라…….”
“뭘 몰라?”
승희가 내 가슴팍을 가볍게 때렸다. 나는 웃으면서 승희를 번쩍 들어올렸다.
“오빠, 들지마. 들지마.”
승희가 반항했지만 무시하고 그냥 들었다. 승희는 내가 자기를 들어 몸무게를 체감하는 것을 싫어한다. 최근에 살이 조금 쪘다고 고민을 하고 있거든. 그러나, 체구가 작은 승희는 별로 무겁지도 않을뿐더러, 살이 쪘다고 해도 어디가 쪘는지 모르겠다. 아니, 사실 조금 찐 게 느껴지기는 한다. 근데 이걸 입 밖으로 내면 매우 좋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겠지.
승희를 들어서 옆쪽 침대에 눕혔다.
“샤워한지 얼마 안 됐는데…….”
승희가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런 것치고는 자연스럽게 다리로 내 허리를 감고 있는 승희다.
“다시 씻으면 돼.”
그렇게 말하고 나서, 나는 천천히 승희의 몸을 탐하기 시작했다.
모텔에서 눈을 뜬 난 승희를 데려다 주고, 집에 돌아왔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 아버지 어머니 오늘 놀러 간다고 했지. 나는 거실로 들어가 냉장고를 열었다. 날씨가 더워져서 금방 금방 목이 마른다. 마침 오렌지 주스가 있어서 꺼냈다. 찬장에 있는 컵을 꺼내 따라 마셨다.
“어, 오빠 왔네.”
주스를 마시고 있자니 동생이 팬티에 런닝셔츠 차림으로 방에서 나왔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동생이 있었구나.
“이제 일어났냐.”
“아니, 지금까지 일어나 있던 건데.”
“그러냐.”
또 게임을 하느라 밤을 샌 모양이다. 가끔 나랑 동생은 바뀐 기분이 든다. 보통은 남자 쪽이 게임에 매진하지 않나?
동생이 내 손에 들린 주스를 가져갔다. 그리고는 병째로 벌컥벌컥 마신다. 임마, 컵에다 따라 마셔라.
“크, 시다! 오빠는 뭐하다 지금 왔어? 여자 친구 만났구나?”
“그래.”
굳이 숨길 일인 것 같지도 않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에 동생이 음흉하게 웃는다.
“지금 시간까지 뭐하다가 왔을까.”
음흉한 표정의 동생에게 가볍게 꿀밤을 먹였다.
“오빠도 안 그럴 거 같으면서 여자를 금방금방 바꾼다니까.”
“뭐가.”
“내가 오빠 사귀었던 여자들 모를 줄 알아?”
“모르잖아.”
같이 대화를 나눠본 적도 없을 텐데.
“모르지만, 그래도 눈치가 있어서 대충은 알아. 솔직히 1년 이상 만난 여자도 없으면서.”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랬나.”
“어쨌든, 오빠는 나쁜 남자야.”
“뭐.”
“옛날엔 그렇게 순정남이었으면서 왜 이렇게 변했을까.”
동생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뭔 옛날?”
“오빠 대학교 처음 들어갔을 때. 그때는 뭐 여자한테 푹 빠져서 집에도 잘 안 들어왔잖아.”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때는 아르바이트 하느라 그런 거지.”
“에이, 내가 눈치가 몇 단인데, 그런 걸 모를 줄 알아? 내가 오빠 핸드폰 비밀번호 정도는 바로 풀 수 있거덩. 악! 아파!”
동생의 이마에 조금 세게 꿀밤을 먹였다.
“아프라고 때렸다.”
“폭력쟁이.”
“누가 핸드폰 멋대로 보래냐.”
“그냥 통화목록밖에 안 봤어! 내가 아직도 이름도 기억한다. 희주씨! 희주씨! 희주씨! 악!”
동생의 이마를 한 번 더 세게 가격한 다음 난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침대에 그대로 쓰러졌다. 모텔에서 자기는 했지만, 내 집이 아니라 그런지 피곤이 덜 풀렸다. 눈을 감았다.
희주. 강희주.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다.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스무 살이 되었던 그때로부터 벌써 6년이 지났다. 그러나 체감상으로는 사실 10년도 더 전에 있었던 일 같아서, 아직도 6년밖에 안 되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보답 받지 못하는 사랑이라도 괜찮다. 그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만 가지고 있다면, 그 마음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다면, 보답 받지 못해도 좋다. 스무 살 무렵의 나는 그런 생각을 가졌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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