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촌리 설화(金村里 說話) -40
“아, 안, 안녕하십니꺼?”
나는 얼굴이 잔뜩 질린 채 더듬거리며 꾸벅 인사를 했다. 그리고 다리에서 몇 발자욱 뒷걸음질 쳤다.
임판돌이 다리를 건너오도록 길을 터준 것이지만 그 다음 일은 나도 모르겠다. 그냥 지나칠지, 지금 손에 낫을 들고 있지는 않지만 내 목을 조르거나 주먹으로 내 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니 저녁 묻나?”
“아, 아, 아직요”
“그럼 잘 됐네. 내캉 가자.”
순간 나는 주위를 둘러 보았으나 어떤 인기척도 없다. 냉큼 다리를 건너 마을로 도망을 칠까. 그러나 어느 새 그는 내 옆에 바싹 붙어 그 두툼한 손으로 내 등을 밀고 있었다.
속절없이 끌려가며 나는 생각이 모자랐던 것을 후회했다. 저녁밥을 먹었다고 했으면 그냥 보내주었을지도 모르는데 당황한 바람에 ...... 하지만 먹었다고 해도 바로 내 목을 조를 수도 있었다. 어떻든 공포에 질린 채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나를 끌고 간 곳은 주막이었다.
금촌리 마을에서 내를 건너 신작로에 나오면 그 앞으로는 구르뫼라는 산이 뻗어 있고 인가는 없는데 주막 하나만 덩그라니 있다. 손님이란 금촌리의 남정네들이고 나도 가끔 아버지 심부름으로 막걸리를 사러 오기도 해서 낯설지는 않은 곳이다.
“아, 벌써 왔네.”
임판돌의 말에 뒤를 돌아보는 남자를 보며 나는 또 한번 겁에 질렸다. 그는 고명식, 바로 얼마 전 빠구리를 한 우리반 고행자의 아버지다.
“자, 여 앉아라.”
그가 손으로 가리킨 곳은 고명식의 옆자리였다. 긴 의자가 놓인 탁자에서 임판돌과 나는 마주 보는 처지가 됐다. 며칠 면도를 안했는지 덮수룩한 구렛나루에 우락부락한 인상이 임꺽정이라는 그의 별명을 생각나게 했다.
“주모! 꺽정이 성님도 왔으니 빨리 내오소.”
“벌써 다 담아 놨어요. 곧 가죠.”
주모는 막걸리 주전자와 안주를 식탁에 내려 놓았다. 주모는 몇년 전 어린 딸 하나를 데리고 금촌리 외곽에 와서 주막을 차렸는데 얼굴은 곱상하고 서울말을 쓰지만 임판돌처럼 한다리를 약간 절었다.
안주는 돼지 머릿고기와 순대였다. 이어 뽀얀 국물이 든 뚝배기도 세사람 앞에 놓여졌다.
주막에 식탁은 4개였지만 손님은 우리뿐이었다.
오가는 말을 들으니 백정인 고명식이 오늘 아침 돼지머리와 순대재료를 갖다 줬고 저녁에 임판돌과 한잔 하기로 한 모양이다.
“자, 니도 무라. 주모 손맛이 좋아가 이집 순대가 맛은 끝내준다.”
주모가 두 남자에게 막걸리를 한잔씩 따르고 들어가자 모두 한숨에 들이키더니 내게도 먹기를 권한다.
아직도 겁이 다 풀린 것은 아니지만 배도 고파서인지 순대는 정말 맛이 있었다. 새우젓에 머릿고기와 간을 찍어 먹으니 제각기 다른 맛이 역시 감칠 맛이다. 국물도 고소힌 것이 입에 착착 감긴다.
“니 그 뒤에도 명호 에미 다시 만났나?”
“아, 아니요. 절대 안 만났심더.”
그 말에 음식맛이 싹 달아나고 나는 다시 겁에 질렸다. 이것은 음식을 앞에 놓고도 나를 문초하는 것이다. 임가띠기를 다시 안 만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만약 그녀와 또 빠구리를 했다면 나는 당장 맨손으로라도 맞아 죽을 것이다.
“그래? ...... 히 히 ...... 그 여편네가 만나자카마 가끔 좀 뽀담아 주거라.”
혼자 킥킥거리며 하는 그 말 뜻을 나는 알 수 없었다. 나를 놀리는 것인지, 내 마음을 떠 보고 본격적으로 혼을 내려는 것인지 ......
“야가 ...... ?”
역시 의아한 표정을 짓던 고명식이 나를 한번 돌아보고 임판돌에게 물었다.
“형수 서방질했다카는 ...... 갼교?”
“그래. ...... 히 히 ...... ”
임판돌은 대답을 하며 또 한번 킥킥거렸다.
“아니. 우째 ...... ?”
이제는 놀라는 표정으로 나를 다시 돌아보며 고명식이 물었다.
“니 몇 살이고?”
“지금 5학년이라예.”
“그럼 우리 행자하고 ...... ?”
“예. 한반이라예.”
인정할 수밖에 없었는데 고개를 갸우뚱하며 어두어지는 그의 얼굴을 보자 더욱 겁이 났다.
“요즘 아들은 그리 올되나?”
그는 지금 분명히 나보다 더 일찍부터 빠구리를 해 온 자기 딸을 떠올렸을 것이다.
임판돌의 소도둑 같은 장골에 비해 고명식은 키도 작고 뼈대도 가늘어 언뜻 보기에도 대조적인 약골이다. 그러나 나는 그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안다. 특히 그 손에 망치나 칼이 들렸을 때는.
내가 2학년 때니 3년 전이다. 앞집인 민철 할아버지의 환갑잔치가 열리기 전날이다.
민철 할아버지는 3남2녀를 두었는데 그중 두 아들과 딸 하나를 시집 장가 다 보내고 손주도 몇이나 본 터라 잔치도 크게 벌일 계획으로 돼지도 한 마리 통째로 잡기로 했다.
그런데 군 복무중인 막내아들이 돼지를 직접 잡겠다고 하면서 일이 꼬였다.
그 집에서 “꿱! 꿱!” 하는 소리가 나서 뛰어가 보니 이미 동네 조무래기들 몇 명이 모여 있었다.
구경꺼리는 앞발과 뒷발을 각각 새끼줄로 묶인 채 피를 흘리고 있는 돼지였다. 민철의 삼촌이 삽으로 대가리를 내려칠 때마다 돼지의 비명은 더 커지고 피가 튀는데 그래도 돼지는 쉽게 죽지 않았다.
“이기 야전삽으로 치마 바로 골로 가는데 이 삽은 영 잘 안되네.”
민철의 삼촌은 지친 표정으로 삽을 내려 놓으며 연장을 탓했다. 그는 부대에서 주보, 말하자면 군인식당의 사병으로 일하면서 가끔 선임들이 돼지 잡는 것을 보고 자기도 해보려 했지만 뜻대로 안되는 모양이다. 돼지는 이제 비명을 지르지는 않지만 코로 입으로 피거품을 품어 내고 “푸우! 푸우!” 하며 거친 숨소리를 내고 있다.
“저 도야지가 아까 삽으로 칠 때는 (꿱 꿱 소리를 흉내 내며) ‘살려주쇼! 살려주쇼!’ 카더니 이제는 (푸우 푸우 소리를 흉내 내며) ‘할 수 없군! 할 수 없군!’ 카네.”
한 구경꾼의 해설에 주위 사람들이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덩달아 웃음이 났다.
“야들아. 잔치집에서 그런 소란 피우마 안 좋다. 퍼뜩 가서 고백정 불러 온나.”
민철 할아버지의 말로 이 어설픈 돼지잡기는 끝나고 고명식이 등장했다.
“이래 피를 찔끔찔끔 흘리마 고기맛이 떨어지는데 ...... ”
왜소한 체격의 고명식은 투덜거리듯 말하고 들고 온 천막천으로 만든 가방을 열었다. 거기에는 작은 망치와 칼 두자루, 손도끼 등이 들어 있었다.
그는 끝이 뾰족한 망치를 들고 아직도 거친 숨만 쉬고있는 돼지에게 닥아가더니 마치 사람에게 건네듯 말했다.
“왕생극락하시고 다음 세상에는 더 좋은 생명으로 태어나시게.”
눈을 한번 떴다가 감는 돼지의 표정을 나는 보았다. 돼지한테 무슨 표정을, 하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분명히 돼지는 뭔가 체념한 듯한 표정이었고 숨소리도 잠시 멎은 것 같다.
고명식은 돼지의 정수리에 망치를 내리쳤다. 팍! 하는 소리가 났지만 그리 힘을 들인 것 같지도 않았다.
돼지는 새끼에 묶인 네다리를 한번 퍼득였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다시는 숨소리도 움직임도 없었다.
그는 민철의 삼촌과 함께 죽은 돼지를 평상에 올려놓더니 밑에 그릇을 놓고 하도 많이 갈아 써서 반쪽 정도만 남은 칼로 목을 찔렀고 피가 철철 나왔다.
이어서 그 칼로 떨을 깎아 내는데 정말 손놀림이 빨라 밑으로 시꺼먼 털이 수북 쌓인 대신 몸통은 곧 하얀 살덩이로 바뀌었다.
다시 큰 칼과 손도끼로 머리를 잘라 내더니 배를 갈랐다. 심장 허파 콩팥 등이 들어내 졌고 “순대도 만들끼라요?” 라고 묻더니 창자들은 다른 그릇에 담았다. 그리고 오줌통의 끝을 잘라 오줌을 비우더니 “자, 이건 느그들 공차기 해라.”라며 어린애들 앞으로 던졌다.
이어서 큰칼로 각을 뜨는데 손목을 요리조리 옮겨가며 하는 칼질이 뼈와 심줄을 정확히 피해가는 것 같았다. 순식간에 사람 몸집보다 컸던 돼지는 몇조각의 고기덩이로 분해되었다.
나를 포함한 구경꾼들은 신들린 듯한 그의 손놀림에 놀라움과 감탄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고명식이 내가 자기 딸과 빠구리한 것을 알고 화를 낸다면 정말 무서운 일이다. 임판돌은 낫으로 찍거나 베기만 하겠지만 그는 칼 하나로 내 몸을 완전히 조각도 낼 수 있으니까.
“아니, 그런데 형님은 그게 무슨 말입니꺼? 야한테 형수하고 또 하라카이 ...... ?”
다행이 아직은 고명식의 관심이 임가띠기와 나의 문제에 머물러 있었다.
“하 하 하.”
임판돌이 껄껄 웃었다. 술자리에서만 그런 것인지 험악한 인상과 달리 오늘의 그는 잘 웃는다.
“니도 우리 여편네 성질 알제? 바가지만 긁는 게 아이라 얼마나 포악스럽노. 그런데 서방질 현장을 한번 들키고 나이 그리 고분고분할 수가 없는기라. 내한테는 얼마나 살기 편한지 모른다.”
“아무리 그렇다고 지 마누라가 다른 놈캉 살을 섞는 건 ...... ?”
“야야. 그 여편네는 나한데 시집올 때 이미 이놈 저놈 거쳐간 허벌통이었다. 대갓댁에 일하면서 홍종구한테 처녀 따묵히고 이놈 저놈 거쳐가며 특히 청지기 심영감하고는 애첩이라고까지 소문이 퍼진 걸 그집에 일하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는기라.”
“그런 여자를 형님이 우째 ...... ?”
“우리 같은 밑바닥 인생, 우짜겠노? 나도 나이들어 가며 힘은 넘치는데 풀 데가 없어 오형제 신세만 지는데, 조개 달린 거 짝지워 준다카이 고맙게 받을 수 밖에 ...... 그래도 혼인할 때 다짐은 했제. 지난 일은 덮어 주지만 앞으로 다시 누구한테 가랑이 벌리마 내 손에 죽을 줄 알라고 ...... ”
“그래가 그동안은 별일 없었읍니꺼?”
“내사 모르지. 어떻든 들통난 것 없었고 자식새끼 셋이나 낳고 사는데 오히려 내가 많이 시달린기라.”
“아니, 꺽정이 성님이 형수한테 쥐어 살았다고요?”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이 여편네가 말다툼이라도 하다가 ‘흥, 지는 사람답지 않게 살면서 ...... 내가 모를 줄 알고 ...... ’라거나 ‘인두겁을 쓰고 우찌 그런 짓을 하노? 그래 놓고 뭐 잘났다고 ...... ’ --- 이런 식으로 말을 끊는기라. 이기 뭔가 내 약점을 쥐고 있는데 털어놓지도 않고 계속 내 속만 긁는기라.”
“형님이 무슨 약점을 잡혔는데 ...... ?”
“히 히 ...... 살다 보이 그런 일도 있다.”
이번에는 쑥스러운 듯 웃다 잠시 어두운 표정이 되었다. 나도 알게 된, 누이동생 민자와 빠구리를 하고 아이까지 배게 했던 지난 일들이 그리움, 혹은 회한으로 다시 떠올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내막을 고명식에게는 끝내 말하지 않았다.
“결론은 영도가 형님 편하게 살도록 도와 준기네요?”
“히 히 ...... 그런 셈이지.”
임판돌은 다시 밝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자, 그런 뜻에서 니도 한잔 해라.”
“아, 아이라예.”
임판돌이 자기의 빈잔을 나에게 내밀어 황급히 사양을 했지만 그는 막걸리를 가득 딸았다. 내가 망설이는 중 안주 한접시를 들고 주모가 닥아왔다. 그녀는 내 앞에 놓인 술잔을 보고 참견했다.
“아니, 왜 어린애한테 술을 먹이고 그러세요?”
“알라라이 ...... ? 야도 벌써 남자고 어른이나 마찬가지다. 남자는 예로부터 장가가마 어른 아이가? 자, 후딱 마시라.”
주막에 끌려 올 때처럼 나는 그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나는 눈을 감고 한잔을 다 비워 버렸다.
그 전에 한번 막걸리 심부름을 하며 주전자에 입을 대고 몇모금 마셔본 적이 있지만 텁텁하기만 하고 맛이 없었다. 오늘도 별 맛은 없었지만 임판돌의 앞이라 그냥 다 마셔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제 마음은 편했다. 빠구리 현장에 낫을 들고 뛰어들 때와 달리 임판돌은 오히려 나한테 고마운 감정까지 갖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는 못된 아내에게 약점을 잡혀 살아오다 이제는 아내의 약점을 쥐고 사는 형편이 된 것이다.
나는 다 마신 술잔을 그에게 건네고 술을 딸았다.
“우리 꺽정이 성님의 한구멍 동서. 자, 내 술도 한잔 받아라.”
뜻밖에 고명식도 웃으며 내 앞에 술잔을 내민다. 속절없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 문득 웃음이 터져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빠구리만으로 촌수를 따진다면 임판돌은 구멍 동서, 고명식은 장인인 셈이다. 살다보니 정말 이런 인연도 있는 것일까. 나는 이제 두려움 없이 술잔을 들었다.
“주모! 여기 따신 국물도 좀 주고 손님도 없는데 같이 한잔 하자.”
임판돌이 소리치자 세번 째 주전자가 식탁에 놓였다.
“니는 제수씨랑 어땠노?”
“뭐가요?”
“그저 처녀 총각이 만난기가?”
“내사 그 전에 딱 두 번, 그것도 친구들이 ‘장가 들기 전에 여자를 알아야 한다’캐서 색주집에 끌려갔고 행자에미야 내가 첫남자였죠. 첫날밤에 피도 났고 ...... ”
“그것도 큰 복이다. 여자는 이놈 저놈 맛보마 성깔이고 행실이고 다 버려뿐기라. 그래가 나도 자꾸 이년 저년 딴 여자 찾게 되고 ...... 니는 장가든 뒤 바람은 안 핐나?”
“아이고, 마누라 하나도 벅찬데 어디 눈 돌릴 틈이 있는겨?‘
“와 니 힘이 부치나?”
“옛날에는 팔팔했죠. 아프고 귀찮다 캐도 하룻밤에 몇탕씩 뛰고 ...... 그런데 요즘은 한 열흘만에 한번 해도 재미가 안 나는데 마누라쟁이가 더 해달라고 몸을 비틀어 대마 더 덧증 없는기라예.”
“그건 니 정력, 스테미나가 떨어져서 그런기다. 보신을 좀 해야지. 니는 조건도 좋잖나? 소 등골이나 우랑도 정력제고 개고기, 특히 구신도 좋다카데. 그런 것 좀 마이 무라.”
“개고기 묵고 좆 서마 그건 내가 아니고 개가 하는 거 아입니꺼? 또 조선시대 왕들이 대부분 단명한 게 좋은 음식만 골라 묵고 여자들에 둘러싸여 그렇다 카데요. 내사 그런 욕심 없고 마누라 하나 가끔 달래주며 사는게 편한기라요.”
나와 빠구리했던 여인들도 두명이상 모이면 스스럼없이 빠구리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털어놓는 것을 보아 왔지만 남자들도 모이고 술이 들어가면 음담패설이 화제가 되는 모양이다. 남자들의 조름에 주모까지 합석해서 새 주전자가 들어오고 더욱 진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무슨 비가 한 여름처럼 장대비로 쏟아지노?”
오줌을 누러 나갔던 고명식이 흠뻑 젖은 채 투덜거렸다.
아까부터 조금씩 비가 내리는 것은 알았지만 빗소리가 한층 세진 것을 보면 비가 많이 오나보다.
“모내기 좋으라고 하늘에서 선물을 내린기라.”
임판돌이 되받았다.
“엄마!”
주막에 딸린 방문이 열리며 나는 소리에 돌아보니 너댓살 쯤 보이는 여자애가 마루로 나왔다.
“오, 윤정이 깼구나. 쉬 해야지.”
주모는 아이에게 닥아가 방으로 들어갔다.
다시 주모가 합석했고 여전히 술잔이 오가고 음담패설이 이어지는 중에 나도 자꾸 돌아오는 막걸리를 넉잔이나 마신 것 같다. 숨이 차면서도 온몸이 노곤해지고 견딜 수 없어 나는 식탁에 얼굴을 묻었다.
누군가 나를 흔드는 서슬에 잠이 깨었을 때 식탁은 다 치워져 있었다. 술판이 끝난 것이다.
“히 히 ...... 영도도 취했구나. 자, 이제 집에 가자.”
임판돌이 나를 일으켜 세우는데 주모가 가로막았다.
“아니, 이렇게 폭우가 쏟아지는데 어떻게 어린애를 내몰아요. 그러게 애초에 술을 먹이지 말아야지. 더구나 다리도 물이 넘칠만큼 불었을텐데 ...... 차라리 오늘은 여기서 재울께요.”
그 다음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남자들인지 주모 손에 이끌린 것인지 방에 들어가기는 한 것 같은데 나는 그대로 잠에 골아 떨어졌다.
잠에서 깼을 때 나는 두통과 갈증으로 얼굴을 찌푸렸다.
그런데 한편으로 내 몸이 무엇엔가 짓눌려 있는 것 같은데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아니, 온몸이 따뜻한 물에 잠긴 듯 아늑하기도 하고 공중을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방안은 깜깜했지만 어둠에 눈이 익자 사태를 알았다. 내 아래만 벗겨진 채, 그리고 주모도 아래만 벗은 채 나를 올라타고 천천히 방아질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빠구리중인 것이다,
내가 잠에서 깰까봐서인지 동작은 조심스러웠는데 보지 속은 유난히 뜨겁고 움직이는 중에도 자지를 계속 조여주고 있었다.
“아지매!”
언제부터 시작된 일인지 모르겠으나 조용한 동작에도 사정끼가 느껴져 다급하게 그녀를 불렀다.
“오, 영도가 잠이 깼구나!”
그녀는 조용히 말하면서 동작을 멈추었다. 그러나 자세는 여전히 그대로인데 자지를 압박하며 빨아 들이는 것 같은 보지의 옴찔거림도 차차 수그러 들었다.
“아지매, 뭐하는 기라예?”
“호 호 호 ...... ”
그녀는 나직히 웃은 뒤에 말했다.
“뭐 하는지는 너도 알지 않니? 너 임씨 마누라하고도 했다며 ...... ? 그런데 나는 싫으니?”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싫은 것은 아니지만 전혀 예상도 못했던 여인이 내 자지를 삼키고 있다는 것이 아직 잠에서 완전히 깨지도 않은 상태에서 웬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오줌 마려버요.”
불쑥 나온 말이 그것인데 말하고 보니 정말 오줌보가 터질 것 같은 느낌이 왔다. 하기야 막걸리를 넉잔이나 마시고 오줌 한번 안 눈 채 잠이 들어버렸으니 ......
“그래? 그럼 저기다 쉬 해.”
그녀는 비로소 몸을 일으켰고 눈길이 가리키는 방 구석에 요강이 있었다.
자지가 탱탱해 있는 탓인지 오줌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일단 물길이 터지자 정말 오래 나왔고 요강 속에 떨어지는 물소리가 한밤중의 좁은 방안에서 우렁차다고 할만큼 크게 들렸다. 그래서 좀 민망한 기분도 들었지만 다 누고 나니 몸이나 기분이 시원했다.
“요강이 넘치는 줄 알았다. 그렇게 많이 누니? 간밤에 비가 무척 많이 왔는데 집 안팎에 다 홍수가 날 뻔 했구나.”
자지는 줄어들었지만 아래는 모두 들어내 있다. 그녀도 아래는 벗겨져 있겠지만 속치마가 가려주고 있다. 그 모양새도 어색하고 다음 행동을 어떻게 할지 몰라 나는 머뭇거렸다.
“이리 오렴. 아직 날도 안 밝았는데 ...... ”
아까의 잠자리로 가서 나는 팬티와 바지를 찾으려 두리번거렸다. 발치에서 내 옷을 발견하고 손을 뻗는데 그녀가 내 손목을 잡았다.
“영도야, 하던 짓은 마저 끝내야지. 아주 윗옷을 벗으렴. 나도 벗을께.”
그녀가 속치마를 내리고 셔츠를 올리자 브래지어도 안해서 큰 젖통이 덜렁하며 튀어 나왔다. 술자리에서는 그녀의 옷차림이 헐렁하기도 했고 무서운 두남자 틈에 있는 터라 전혀 신경을 안 썼는데 정말 젖통은 풍만하고 전혀 처지지가 않았다.
나도 전혀 싫지가 않았다. 아니, 그 풍만한 젖통을 보는 순간 자지가 벌떡거렸고 나도 잽사게 윗옷을 벗어제꼈다.
“네가 문광석씨 아들인 것을 아까 처음 알았어. 그러고보니 얼굴도 닮았고 이것도 ...... ”
그녀는 미소를 지은 채 벌떡 선 자지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말했다.
“우리 아버지캉도 했는겨?”
“호 호 호 ...... ”
그녀는 이제 소리내어 웃고나서 말했다.
“이 마을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 그리고 단 한사람, ,,,,,, 하지만 오래전에 끝난 일이란다. 그것도 인연, 오늘의 너와도 인연, 모든 것이 뜻밖에 일어난 듯 하지만 다 인연이지.”
그녀의 애매한 말이 잘 이해가 안 갔지만 인연이라는 말은 가슴을 찔렀다.
나는 어디까지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 밟을 것인가. 병호 엄마와 효석아재의 아줌마에다 송윤초까지, ...... 아, 게다가 엄마도 있었지. 그런데 지금은 조금 전 만난 주모까지.
“자, 이제는 네가 올라올래?”
무릎을 세우고 가랑이를 벌리자 물끼로 번들거리는 보지가 그대로 들어났다. 젖통이 풍만한만큼 털도 풍성했다.
자지는 막힘 없이 들어갔고 옴찔거리는 감촉을 느끼며 나는 방아질을 시작했다.
“아하! 아하! ...... 역시 좋아. ...... 그래, 좀 더 빨리, ...... 하윽! ...... 학! ...... 학! ...... ”
그녀의 가쁜 숨이 끝내 비명으로 바뀌는 중에 나는 사정했다. 사정이 다 끝났어도 그녀의 속은 더 세게 옴찔거리며 자지를 압박해온다. 그 움직임도 잠잠해 졌을 때 나는 엉덩이를 들었다.
“아직 빼지마!”
그녀가 내 엉덩이를 누르며 동작을 멈추게 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줄어 들었던 자지에 피가 다시 몰리는 느낌이 왔다.
“네 여기는 ...... ”
그 말을 할 때 마치 손아귀로 꽉 쥐는 듯 보지가 압박해 왔으므로 자지를 가리키는 것은 분명했다.
“잘 생겼지만 살기가 있어.”
“살기 ...... ? 살기가 뭐라예?”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기운.”
“이기 사람을 죽인다꼬요?”
말을 하면서 힘을 주자 자지도 그 속에서 벌떡거렸다.
“그래.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 내 말 명심해라! 네가 진정 사랑하는 사람과 하게 되면 바로 그 여자를 죽일 수 있다는거야. 그러니 그럴 기회가 오면 하기 전에 꼭 나를 찾아와!”
“아지매도 무당인겨?”
그녀의 말이 뚱딴지 같기는 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말은 악마의 주문처럼 듣기에 기분이 나빴다.
“무당? 호 호 호 ...... 나는 분명히 무당은 아니지만 진짜 무당한테도 무당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란다.”
“그럼 뭐라캐요?”
“아까의 고씨도 안보는데서는 백정이라고 하지만 천민이라는 멸시의 뜻이 있어서 마주 보았을 때는 도수, 혹은 도한이라고 부르지. 무당도 그 사람 앞에서는 만신, 혹은 태주 같은 이름이 있단다.”
“아지매 어무이는 무당, 아니 만신이 맞지예?”
“너도 우리 어머니를 아니?”
“이야기를 들었어예.”
“그래. 우리 어머니는 무당이 맞겠지. 그것도 참 별스럽고 애틋한 운명을 지닌 ...... ”
그녀는 눈을 사르르 감기는 것을 보니 어머니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도 금촌리에 아득한 전설처럼 전해져 오는 그녀의 어머니에 대한 사연을 떠올렸다. 그것은 신비롭기도 하고 그로테스크하며 미스테리로 가득 찬 사연이기도 하다.
“아, 안, 안녕하십니꺼?”
나는 얼굴이 잔뜩 질린 채 더듬거리며 꾸벅 인사를 했다. 그리고 다리에서 몇 발자욱 뒷걸음질 쳤다.
임판돌이 다리를 건너오도록 길을 터준 것이지만 그 다음 일은 나도 모르겠다. 그냥 지나칠지, 지금 손에 낫을 들고 있지는 않지만 내 목을 조르거나 주먹으로 내 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니 저녁 묻나?”
“아, 아, 아직요”
“그럼 잘 됐네. 내캉 가자.”
순간 나는 주위를 둘러 보았으나 어떤 인기척도 없다. 냉큼 다리를 건너 마을로 도망을 칠까. 그러나 어느 새 그는 내 옆에 바싹 붙어 그 두툼한 손으로 내 등을 밀고 있었다.
속절없이 끌려가며 나는 생각이 모자랐던 것을 후회했다. 저녁밥을 먹었다고 했으면 그냥 보내주었을지도 모르는데 당황한 바람에 ...... 하지만 먹었다고 해도 바로 내 목을 조를 수도 있었다. 어떻든 공포에 질린 채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나를 끌고 간 곳은 주막이었다.
금촌리 마을에서 내를 건너 신작로에 나오면 그 앞으로는 구르뫼라는 산이 뻗어 있고 인가는 없는데 주막 하나만 덩그라니 있다. 손님이란 금촌리의 남정네들이고 나도 가끔 아버지 심부름으로 막걸리를 사러 오기도 해서 낯설지는 않은 곳이다.
“아, 벌써 왔네.”
임판돌의 말에 뒤를 돌아보는 남자를 보며 나는 또 한번 겁에 질렸다. 그는 고명식, 바로 얼마 전 빠구리를 한 우리반 고행자의 아버지다.
“자, 여 앉아라.”
그가 손으로 가리킨 곳은 고명식의 옆자리였다. 긴 의자가 놓인 탁자에서 임판돌과 나는 마주 보는 처지가 됐다. 며칠 면도를 안했는지 덮수룩한 구렛나루에 우락부락한 인상이 임꺽정이라는 그의 별명을 생각나게 했다.
“주모! 꺽정이 성님도 왔으니 빨리 내오소.”
“벌써 다 담아 놨어요. 곧 가죠.”
주모는 막걸리 주전자와 안주를 식탁에 내려 놓았다. 주모는 몇년 전 어린 딸 하나를 데리고 금촌리 외곽에 와서 주막을 차렸는데 얼굴은 곱상하고 서울말을 쓰지만 임판돌처럼 한다리를 약간 절었다.
안주는 돼지 머릿고기와 순대였다. 이어 뽀얀 국물이 든 뚝배기도 세사람 앞에 놓여졌다.
주막에 식탁은 4개였지만 손님은 우리뿐이었다.
오가는 말을 들으니 백정인 고명식이 오늘 아침 돼지머리와 순대재료를 갖다 줬고 저녁에 임판돌과 한잔 하기로 한 모양이다.
“자, 니도 무라. 주모 손맛이 좋아가 이집 순대가 맛은 끝내준다.”
주모가 두 남자에게 막걸리를 한잔씩 따르고 들어가자 모두 한숨에 들이키더니 내게도 먹기를 권한다.
아직도 겁이 다 풀린 것은 아니지만 배도 고파서인지 순대는 정말 맛이 있었다. 새우젓에 머릿고기와 간을 찍어 먹으니 제각기 다른 맛이 역시 감칠 맛이다. 국물도 고소힌 것이 입에 착착 감긴다.
“니 그 뒤에도 명호 에미 다시 만났나?”
“아, 아니요. 절대 안 만났심더.”
그 말에 음식맛이 싹 달아나고 나는 다시 겁에 질렸다. 이것은 음식을 앞에 놓고도 나를 문초하는 것이다. 임가띠기를 다시 안 만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만약 그녀와 또 빠구리를 했다면 나는 당장 맨손으로라도 맞아 죽을 것이다.
“그래? ...... 히 히 ...... 그 여편네가 만나자카마 가끔 좀 뽀담아 주거라.”
혼자 킥킥거리며 하는 그 말 뜻을 나는 알 수 없었다. 나를 놀리는 것인지, 내 마음을 떠 보고 본격적으로 혼을 내려는 것인지 ......
“야가 ...... ?”
역시 의아한 표정을 짓던 고명식이 나를 한번 돌아보고 임판돌에게 물었다.
“형수 서방질했다카는 ...... 갼교?”
“그래. ...... 히 히 ...... ”
임판돌은 대답을 하며 또 한번 킥킥거렸다.
“아니. 우째 ...... ?”
이제는 놀라는 표정으로 나를 다시 돌아보며 고명식이 물었다.
“니 몇 살이고?”
“지금 5학년이라예.”
“그럼 우리 행자하고 ...... ?”
“예. 한반이라예.”
인정할 수밖에 없었는데 고개를 갸우뚱하며 어두어지는 그의 얼굴을 보자 더욱 겁이 났다.
“요즘 아들은 그리 올되나?”
그는 지금 분명히 나보다 더 일찍부터 빠구리를 해 온 자기 딸을 떠올렸을 것이다.
임판돌의 소도둑 같은 장골에 비해 고명식은 키도 작고 뼈대도 가늘어 언뜻 보기에도 대조적인 약골이다. 그러나 나는 그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안다. 특히 그 손에 망치나 칼이 들렸을 때는.
내가 2학년 때니 3년 전이다. 앞집인 민철 할아버지의 환갑잔치가 열리기 전날이다.
민철 할아버지는 3남2녀를 두었는데 그중 두 아들과 딸 하나를 시집 장가 다 보내고 손주도 몇이나 본 터라 잔치도 크게 벌일 계획으로 돼지도 한 마리 통째로 잡기로 했다.
그런데 군 복무중인 막내아들이 돼지를 직접 잡겠다고 하면서 일이 꼬였다.
그 집에서 “꿱! 꿱!” 하는 소리가 나서 뛰어가 보니 이미 동네 조무래기들 몇 명이 모여 있었다.
구경꺼리는 앞발과 뒷발을 각각 새끼줄로 묶인 채 피를 흘리고 있는 돼지였다. 민철의 삼촌이 삽으로 대가리를 내려칠 때마다 돼지의 비명은 더 커지고 피가 튀는데 그래도 돼지는 쉽게 죽지 않았다.
“이기 야전삽으로 치마 바로 골로 가는데 이 삽은 영 잘 안되네.”
민철의 삼촌은 지친 표정으로 삽을 내려 놓으며 연장을 탓했다. 그는 부대에서 주보, 말하자면 군인식당의 사병으로 일하면서 가끔 선임들이 돼지 잡는 것을 보고 자기도 해보려 했지만 뜻대로 안되는 모양이다. 돼지는 이제 비명을 지르지는 않지만 코로 입으로 피거품을 품어 내고 “푸우! 푸우!” 하며 거친 숨소리를 내고 있다.
“저 도야지가 아까 삽으로 칠 때는 (꿱 꿱 소리를 흉내 내며) ‘살려주쇼! 살려주쇼!’ 카더니 이제는 (푸우 푸우 소리를 흉내 내며) ‘할 수 없군! 할 수 없군!’ 카네.”
한 구경꾼의 해설에 주위 사람들이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덩달아 웃음이 났다.
“야들아. 잔치집에서 그런 소란 피우마 안 좋다. 퍼뜩 가서 고백정 불러 온나.”
민철 할아버지의 말로 이 어설픈 돼지잡기는 끝나고 고명식이 등장했다.
“이래 피를 찔끔찔끔 흘리마 고기맛이 떨어지는데 ...... ”
왜소한 체격의 고명식은 투덜거리듯 말하고 들고 온 천막천으로 만든 가방을 열었다. 거기에는 작은 망치와 칼 두자루, 손도끼 등이 들어 있었다.
그는 끝이 뾰족한 망치를 들고 아직도 거친 숨만 쉬고있는 돼지에게 닥아가더니 마치 사람에게 건네듯 말했다.
“왕생극락하시고 다음 세상에는 더 좋은 생명으로 태어나시게.”
눈을 한번 떴다가 감는 돼지의 표정을 나는 보았다. 돼지한테 무슨 표정을, 하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분명히 돼지는 뭔가 체념한 듯한 표정이었고 숨소리도 잠시 멎은 것 같다.
고명식은 돼지의 정수리에 망치를 내리쳤다. 팍! 하는 소리가 났지만 그리 힘을 들인 것 같지도 않았다.
돼지는 새끼에 묶인 네다리를 한번 퍼득였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다시는 숨소리도 움직임도 없었다.
그는 민철의 삼촌과 함께 죽은 돼지를 평상에 올려놓더니 밑에 그릇을 놓고 하도 많이 갈아 써서 반쪽 정도만 남은 칼로 목을 찔렀고 피가 철철 나왔다.
이어서 그 칼로 떨을 깎아 내는데 정말 손놀림이 빨라 밑으로 시꺼먼 털이 수북 쌓인 대신 몸통은 곧 하얀 살덩이로 바뀌었다.
다시 큰 칼과 손도끼로 머리를 잘라 내더니 배를 갈랐다. 심장 허파 콩팥 등이 들어내 졌고 “순대도 만들끼라요?” 라고 묻더니 창자들은 다른 그릇에 담았다. 그리고 오줌통의 끝을 잘라 오줌을 비우더니 “자, 이건 느그들 공차기 해라.”라며 어린애들 앞으로 던졌다.
이어서 큰칼로 각을 뜨는데 손목을 요리조리 옮겨가며 하는 칼질이 뼈와 심줄을 정확히 피해가는 것 같았다. 순식간에 사람 몸집보다 컸던 돼지는 몇조각의 고기덩이로 분해되었다.
나를 포함한 구경꾼들은 신들린 듯한 그의 손놀림에 놀라움과 감탄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고명식이 내가 자기 딸과 빠구리한 것을 알고 화를 낸다면 정말 무서운 일이다. 임판돌은 낫으로 찍거나 베기만 하겠지만 그는 칼 하나로 내 몸을 완전히 조각도 낼 수 있으니까.
“아니, 그런데 형님은 그게 무슨 말입니꺼? 야한테 형수하고 또 하라카이 ...... ?”
다행이 아직은 고명식의 관심이 임가띠기와 나의 문제에 머물러 있었다.
“하 하 하.”
임판돌이 껄껄 웃었다. 술자리에서만 그런 것인지 험악한 인상과 달리 오늘의 그는 잘 웃는다.
“니도 우리 여편네 성질 알제? 바가지만 긁는 게 아이라 얼마나 포악스럽노. 그런데 서방질 현장을 한번 들키고 나이 그리 고분고분할 수가 없는기라. 내한테는 얼마나 살기 편한지 모른다.”
“아무리 그렇다고 지 마누라가 다른 놈캉 살을 섞는 건 ...... ?”
“야야. 그 여편네는 나한데 시집올 때 이미 이놈 저놈 거쳐간 허벌통이었다. 대갓댁에 일하면서 홍종구한테 처녀 따묵히고 이놈 저놈 거쳐가며 특히 청지기 심영감하고는 애첩이라고까지 소문이 퍼진 걸 그집에 일하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는기라.”
“그런 여자를 형님이 우째 ...... ?”
“우리 같은 밑바닥 인생, 우짜겠노? 나도 나이들어 가며 힘은 넘치는데 풀 데가 없어 오형제 신세만 지는데, 조개 달린 거 짝지워 준다카이 고맙게 받을 수 밖에 ...... 그래도 혼인할 때 다짐은 했제. 지난 일은 덮어 주지만 앞으로 다시 누구한테 가랑이 벌리마 내 손에 죽을 줄 알라고 ...... ”
“그래가 그동안은 별일 없었읍니꺼?”
“내사 모르지. 어떻든 들통난 것 없었고 자식새끼 셋이나 낳고 사는데 오히려 내가 많이 시달린기라.”
“아니, 꺽정이 성님이 형수한테 쥐어 살았다고요?”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이 여편네가 말다툼이라도 하다가 ‘흥, 지는 사람답지 않게 살면서 ...... 내가 모를 줄 알고 ...... ’라거나 ‘인두겁을 쓰고 우찌 그런 짓을 하노? 그래 놓고 뭐 잘났다고 ...... ’ --- 이런 식으로 말을 끊는기라. 이기 뭔가 내 약점을 쥐고 있는데 털어놓지도 않고 계속 내 속만 긁는기라.”
“형님이 무슨 약점을 잡혔는데 ...... ?”
“히 히 ...... 살다 보이 그런 일도 있다.”
이번에는 쑥스러운 듯 웃다 잠시 어두운 표정이 되었다. 나도 알게 된, 누이동생 민자와 빠구리를 하고 아이까지 배게 했던 지난 일들이 그리움, 혹은 회한으로 다시 떠올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내막을 고명식에게는 끝내 말하지 않았다.
“결론은 영도가 형님 편하게 살도록 도와 준기네요?”
“히 히 ...... 그런 셈이지.”
임판돌은 다시 밝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자, 그런 뜻에서 니도 한잔 해라.”
“아, 아이라예.”
임판돌이 자기의 빈잔을 나에게 내밀어 황급히 사양을 했지만 그는 막걸리를 가득 딸았다. 내가 망설이는 중 안주 한접시를 들고 주모가 닥아왔다. 그녀는 내 앞에 놓인 술잔을 보고 참견했다.
“아니, 왜 어린애한테 술을 먹이고 그러세요?”
“알라라이 ...... ? 야도 벌써 남자고 어른이나 마찬가지다. 남자는 예로부터 장가가마 어른 아이가? 자, 후딱 마시라.”
주막에 끌려 올 때처럼 나는 그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나는 눈을 감고 한잔을 다 비워 버렸다.
그 전에 한번 막걸리 심부름을 하며 주전자에 입을 대고 몇모금 마셔본 적이 있지만 텁텁하기만 하고 맛이 없었다. 오늘도 별 맛은 없었지만 임판돌의 앞이라 그냥 다 마셔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제 마음은 편했다. 빠구리 현장에 낫을 들고 뛰어들 때와 달리 임판돌은 오히려 나한테 고마운 감정까지 갖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는 못된 아내에게 약점을 잡혀 살아오다 이제는 아내의 약점을 쥐고 사는 형편이 된 것이다.
나는 다 마신 술잔을 그에게 건네고 술을 딸았다.
“우리 꺽정이 성님의 한구멍 동서. 자, 내 술도 한잔 받아라.”
뜻밖에 고명식도 웃으며 내 앞에 술잔을 내민다. 속절없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 문득 웃음이 터져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빠구리만으로 촌수를 따진다면 임판돌은 구멍 동서, 고명식은 장인인 셈이다. 살다보니 정말 이런 인연도 있는 것일까. 나는 이제 두려움 없이 술잔을 들었다.
“주모! 여기 따신 국물도 좀 주고 손님도 없는데 같이 한잔 하자.”
임판돌이 소리치자 세번 째 주전자가 식탁에 놓였다.
“니는 제수씨랑 어땠노?”
“뭐가요?”
“그저 처녀 총각이 만난기가?”
“내사 그 전에 딱 두 번, 그것도 친구들이 ‘장가 들기 전에 여자를 알아야 한다’캐서 색주집에 끌려갔고 행자에미야 내가 첫남자였죠. 첫날밤에 피도 났고 ...... ”
“그것도 큰 복이다. 여자는 이놈 저놈 맛보마 성깔이고 행실이고 다 버려뿐기라. 그래가 나도 자꾸 이년 저년 딴 여자 찾게 되고 ...... 니는 장가든 뒤 바람은 안 핐나?”
“아이고, 마누라 하나도 벅찬데 어디 눈 돌릴 틈이 있는겨?‘
“와 니 힘이 부치나?”
“옛날에는 팔팔했죠. 아프고 귀찮다 캐도 하룻밤에 몇탕씩 뛰고 ...... 그런데 요즘은 한 열흘만에 한번 해도 재미가 안 나는데 마누라쟁이가 더 해달라고 몸을 비틀어 대마 더 덧증 없는기라예.”
“그건 니 정력, 스테미나가 떨어져서 그런기다. 보신을 좀 해야지. 니는 조건도 좋잖나? 소 등골이나 우랑도 정력제고 개고기, 특히 구신도 좋다카데. 그런 것 좀 마이 무라.”
“개고기 묵고 좆 서마 그건 내가 아니고 개가 하는 거 아입니꺼? 또 조선시대 왕들이 대부분 단명한 게 좋은 음식만 골라 묵고 여자들에 둘러싸여 그렇다 카데요. 내사 그런 욕심 없고 마누라 하나 가끔 달래주며 사는게 편한기라요.”
나와 빠구리했던 여인들도 두명이상 모이면 스스럼없이 빠구리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털어놓는 것을 보아 왔지만 남자들도 모이고 술이 들어가면 음담패설이 화제가 되는 모양이다. 남자들의 조름에 주모까지 합석해서 새 주전자가 들어오고 더욱 진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무슨 비가 한 여름처럼 장대비로 쏟아지노?”
오줌을 누러 나갔던 고명식이 흠뻑 젖은 채 투덜거렸다.
아까부터 조금씩 비가 내리는 것은 알았지만 빗소리가 한층 세진 것을 보면 비가 많이 오나보다.
“모내기 좋으라고 하늘에서 선물을 내린기라.”
임판돌이 되받았다.
“엄마!”
주막에 딸린 방문이 열리며 나는 소리에 돌아보니 너댓살 쯤 보이는 여자애가 마루로 나왔다.
“오, 윤정이 깼구나. 쉬 해야지.”
주모는 아이에게 닥아가 방으로 들어갔다.
다시 주모가 합석했고 여전히 술잔이 오가고 음담패설이 이어지는 중에 나도 자꾸 돌아오는 막걸리를 넉잔이나 마신 것 같다. 숨이 차면서도 온몸이 노곤해지고 견딜 수 없어 나는 식탁에 얼굴을 묻었다.
누군가 나를 흔드는 서슬에 잠이 깨었을 때 식탁은 다 치워져 있었다. 술판이 끝난 것이다.
“히 히 ...... 영도도 취했구나. 자, 이제 집에 가자.”
임판돌이 나를 일으켜 세우는데 주모가 가로막았다.
“아니, 이렇게 폭우가 쏟아지는데 어떻게 어린애를 내몰아요. 그러게 애초에 술을 먹이지 말아야지. 더구나 다리도 물이 넘칠만큼 불었을텐데 ...... 차라리 오늘은 여기서 재울께요.”
그 다음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남자들인지 주모 손에 이끌린 것인지 방에 들어가기는 한 것 같은데 나는 그대로 잠에 골아 떨어졌다.
잠에서 깼을 때 나는 두통과 갈증으로 얼굴을 찌푸렸다.
그런데 한편으로 내 몸이 무엇엔가 짓눌려 있는 것 같은데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아니, 온몸이 따뜻한 물에 잠긴 듯 아늑하기도 하고 공중을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방안은 깜깜했지만 어둠에 눈이 익자 사태를 알았다. 내 아래만 벗겨진 채, 그리고 주모도 아래만 벗은 채 나를 올라타고 천천히 방아질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빠구리중인 것이다,
내가 잠에서 깰까봐서인지 동작은 조심스러웠는데 보지 속은 유난히 뜨겁고 움직이는 중에도 자지를 계속 조여주고 있었다.
“아지매!”
언제부터 시작된 일인지 모르겠으나 조용한 동작에도 사정끼가 느껴져 다급하게 그녀를 불렀다.
“오, 영도가 잠이 깼구나!”
그녀는 조용히 말하면서 동작을 멈추었다. 그러나 자세는 여전히 그대로인데 자지를 압박하며 빨아 들이는 것 같은 보지의 옴찔거림도 차차 수그러 들었다.
“아지매, 뭐하는 기라예?”
“호 호 호 ...... ”
그녀는 나직히 웃은 뒤에 말했다.
“뭐 하는지는 너도 알지 않니? 너 임씨 마누라하고도 했다며 ...... ? 그런데 나는 싫으니?”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싫은 것은 아니지만 전혀 예상도 못했던 여인이 내 자지를 삼키고 있다는 것이 아직 잠에서 완전히 깨지도 않은 상태에서 웬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오줌 마려버요.”
불쑥 나온 말이 그것인데 말하고 보니 정말 오줌보가 터질 것 같은 느낌이 왔다. 하기야 막걸리를 넉잔이나 마시고 오줌 한번 안 눈 채 잠이 들어버렸으니 ......
“그래? 그럼 저기다 쉬 해.”
그녀는 비로소 몸을 일으켰고 눈길이 가리키는 방 구석에 요강이 있었다.
자지가 탱탱해 있는 탓인지 오줌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일단 물길이 터지자 정말 오래 나왔고 요강 속에 떨어지는 물소리가 한밤중의 좁은 방안에서 우렁차다고 할만큼 크게 들렸다. 그래서 좀 민망한 기분도 들었지만 다 누고 나니 몸이나 기분이 시원했다.
“요강이 넘치는 줄 알았다. 그렇게 많이 누니? 간밤에 비가 무척 많이 왔는데 집 안팎에 다 홍수가 날 뻔 했구나.”
자지는 줄어들었지만 아래는 모두 들어내 있다. 그녀도 아래는 벗겨져 있겠지만 속치마가 가려주고 있다. 그 모양새도 어색하고 다음 행동을 어떻게 할지 몰라 나는 머뭇거렸다.
“이리 오렴. 아직 날도 안 밝았는데 ...... ”
아까의 잠자리로 가서 나는 팬티와 바지를 찾으려 두리번거렸다. 발치에서 내 옷을 발견하고 손을 뻗는데 그녀가 내 손목을 잡았다.
“영도야, 하던 짓은 마저 끝내야지. 아주 윗옷을 벗으렴. 나도 벗을께.”
그녀가 속치마를 내리고 셔츠를 올리자 브래지어도 안해서 큰 젖통이 덜렁하며 튀어 나왔다. 술자리에서는 그녀의 옷차림이 헐렁하기도 했고 무서운 두남자 틈에 있는 터라 전혀 신경을 안 썼는데 정말 젖통은 풍만하고 전혀 처지지가 않았다.
나도 전혀 싫지가 않았다. 아니, 그 풍만한 젖통을 보는 순간 자지가 벌떡거렸고 나도 잽사게 윗옷을 벗어제꼈다.
“네가 문광석씨 아들인 것을 아까 처음 알았어. 그러고보니 얼굴도 닮았고 이것도 ...... ”
그녀는 미소를 지은 채 벌떡 선 자지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말했다.
“우리 아버지캉도 했는겨?”
“호 호 호 ...... ”
그녀는 이제 소리내어 웃고나서 말했다.
“이 마을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 그리고 단 한사람, ,,,,,, 하지만 오래전에 끝난 일이란다. 그것도 인연, 오늘의 너와도 인연, 모든 것이 뜻밖에 일어난 듯 하지만 다 인연이지.”
그녀의 애매한 말이 잘 이해가 안 갔지만 인연이라는 말은 가슴을 찔렀다.
나는 어디까지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 밟을 것인가. 병호 엄마와 효석아재의 아줌마에다 송윤초까지, ...... 아, 게다가 엄마도 있었지. 그런데 지금은 조금 전 만난 주모까지.
“자, 이제는 네가 올라올래?”
무릎을 세우고 가랑이를 벌리자 물끼로 번들거리는 보지가 그대로 들어났다. 젖통이 풍만한만큼 털도 풍성했다.
자지는 막힘 없이 들어갔고 옴찔거리는 감촉을 느끼며 나는 방아질을 시작했다.
“아하! 아하! ...... 역시 좋아. ...... 그래, 좀 더 빨리, ...... 하윽! ...... 학! ...... 학! ...... ”
그녀의 가쁜 숨이 끝내 비명으로 바뀌는 중에 나는 사정했다. 사정이 다 끝났어도 그녀의 속은 더 세게 옴찔거리며 자지를 압박해온다. 그 움직임도 잠잠해 졌을 때 나는 엉덩이를 들었다.
“아직 빼지마!”
그녀가 내 엉덩이를 누르며 동작을 멈추게 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줄어 들었던 자지에 피가 다시 몰리는 느낌이 왔다.
“네 여기는 ...... ”
그 말을 할 때 마치 손아귀로 꽉 쥐는 듯 보지가 압박해 왔으므로 자지를 가리키는 것은 분명했다.
“잘 생겼지만 살기가 있어.”
“살기 ...... ? 살기가 뭐라예?”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기운.”
“이기 사람을 죽인다꼬요?”
말을 하면서 힘을 주자 자지도 그 속에서 벌떡거렸다.
“그래.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 내 말 명심해라! 네가 진정 사랑하는 사람과 하게 되면 바로 그 여자를 죽일 수 있다는거야. 그러니 그럴 기회가 오면 하기 전에 꼭 나를 찾아와!”
“아지매도 무당인겨?”
그녀의 말이 뚱딴지 같기는 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말은 악마의 주문처럼 듣기에 기분이 나빴다.
“무당? 호 호 호 ...... 나는 분명히 무당은 아니지만 진짜 무당한테도 무당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란다.”
“그럼 뭐라캐요?”
“아까의 고씨도 안보는데서는 백정이라고 하지만 천민이라는 멸시의 뜻이 있어서 마주 보았을 때는 도수, 혹은 도한이라고 부르지. 무당도 그 사람 앞에서는 만신, 혹은 태주 같은 이름이 있단다.”
“아지매 어무이는 무당, 아니 만신이 맞지예?”
“너도 우리 어머니를 아니?”
“이야기를 들었어예.”
“그래. 우리 어머니는 무당이 맞겠지. 그것도 참 별스럽고 애틋한 운명을 지닌 ...... ”
그녀는 눈을 사르르 감기는 것을 보니 어머니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도 금촌리에 아득한 전설처럼 전해져 오는 그녀의 어머니에 대한 사연을 떠올렸다. 그것은 신비롭기도 하고 그로테스크하며 미스테리로 가득 찬 사연이기도 하다.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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