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촌리 설화(金村里 說話) - 41
물론 내가 태어나기도 전, 어쩌면 아버지 엄마가 태어나기 전일지도 모른다. 하여튼 무척 오래된 이야기다.
한 여인이 금촌리로 굴러 들어왔다. 굴러 들어왔다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이 그녀는 우리 마을과 아무 연고도 없었고 그녀가 왜 이곳으로 왔는지 알 수도 없기 때문이다.
장대비가 세차게 쏟아지던 여름 밤, 논물을 보러 나온 한 주민이 다리 앞에 쓰러져 있는 여인을 발견했다. 당연히 온 몸이 비에 젖었지만 모든 것이 너무 처참했다.
머리는 산발을 했고 여기 저기 상처와 흙탕물이 묻어 있는 얼굴은 들짐승 같이 보였다. 헤지고 남루한 옷차림에 고무신은 한짝만 신고 있는데 두발이 모두 팅팅 부어 있었다. 더욱 기막힌 것은 한눈에 보기에도 그녀가 만삭의 몸이라는 점이다.
아직 숨은 붙어 있는데 일으키려 해도 몸을 못가누어 다시 마을의 장정들을 불러 들것까지 만들어서야 겨우 그녀를 처음 발견한 주민의 집에 들여올 수 있었다.
옷을 갈아입히고 더운 꿀물을 먹이는 등 부산을 떨며 얼마 후 그녀는 의식을 찾았는데 말을 전혀 못했다.
다음날 첫 발견자인 주민이 읍내 주재소를 찾아 이 사실을 신고했다.
얼마 전 동래의 한 부자가 만주의 독립군에게 군자금을 보낸 것이 들통나며 그중 금촌리 사람도 하나가 연루됐다고 해서 일본인 순사들이 찾아오고 마을사람 10여명이 불려가 곤욕을 치룬 적이 있어 이번 일에도 후환이 없도록 미리 조심을 한 것이다.
순사가 곧 왔으나 소지품도 없고 말을 못하니 하나도 새롭게 알거나 밝혀진 것이 없었다.
당시 군내에는 부랑자들을 수용할 어떤 시설도 없었다. 큰 도시에 가면 있을 수도 있지만 만삭의 몸이라 이동도 어려웠다, 순사가 내린 결론은 “신원이 밝혀지거나 새로운 조치가 있을 때까지 일단 마을에서 이 부랑여인을 보호하라.”는 것이었다.
이장과 마을 원로들이 구수회의를 한 끝에 그녀의 거처를 우선 죽산띠기네 집으로 정했다. 죽산띠기는 아들 하나를 둔 과부인데 아들이 돈을 번다고 일본의 한 제철소로 간 뒤 반년도 안 되어 마누라가 두아이를 팽개치고 보따리를 싸, 집안도 단촐하고 방이 하나 비어 있었다.
대신 주민들은 양식 약간을 갹출해 죽산띠기에게 건넸다. 일제말기, 공출도 많아지고 농촌이 피폐해 있었지만 인심은 아직 남아 있었다.
떠돌이 여인이 죽산띠기네에서 기거한지 얼마 후 죽산띠기는 한밤중 이상한 기척에 잠이 깼다. 어쩐지 피비린내가 나는 듯 했고 끙끙대는 신음소리가 들렸다.
불을 켜보니 방안은 피바다였다. 늘 바로 옆에서 자던 떠돌이 여인이 불도 켜지 않은 채 혼자 아기를 낳은 것이다.
그것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일종의 야생동물 같은 본능 때문인지 아기의 탯줄을 이빨로 끊어 놓았다. 첫울음도 울지 못한 신생아는 끊어진 탯줄로 피가 배어나와 곧 숨마저 끊어질 지경이었다.
“이 미친년이 지 새끼 죽일려고 환장을 했나?”
죽산띠기는 비명을 지르며 아기의 탯줄을 실로 묶고 계속 피를 흘리는 산모에게도 응급조치를 한 후 다른 사람들을 불렀다. 다행이 산모와 딸인 아기는 모두 목숨을 건졌고 마을사람들은 다시 미역과 쌀 등을 추렴해서 보내 주었다.
삼칠일이 막 끝나던 날, 산모는 스스로 부엌에서 물을 데워 몸을 씻고 경대 앞에서 머리를 빗고 쪽을 진 뒤 죽산띠기가 준 비녀를 꽂았다.
처음 발견됐을 때의 상처나 산후의 부기도 거의 진정이 되었고 단지 목욕과 머리단장만으로도 그녀의 기품과 미모는 돋보였다.
“참말로 선녀 하나가 내려온 것 같다. 하지만 그러이 더 불쌍하기 짝이 없네. 말도 몬하고 제 집도 모르는데 새끼까지 달렸으이 앞으로 우찌 살아갈끼고.”
죽산띠기는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며 혼자 혀를 끌끌 찼다.
“밭에 가시는거예요?”
“그래. 며칠 놔뒀드이 풀이 억수로 자랐는기라. 김매러 간다.”
방문을 열고 나가려다 무심코 대답을 한 뒤 죽산띠기는 몸을 돌려 산모를 보며 소리쳤다.
“니 말할 줄 아나?”
산모는 빙그레 웃기만 했다.
“아이고! 이거 내가 무슨 귀신을 만났나? 말도 할 줄 알면서 우째 그리 봉창을 하고 있었노? ...... 이름은 뭐꼬? 느그 집은 어딘지 아나?”
그러나 산모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오이? 뭐라꼬 말 좀 해봐라! 알라 애비는 누고? 우짜다 이 마을로 온기가? 느그 집은 어디고? 오이? 대답 좀 해라!”
죽산띠기의 채근에도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다시 벙어리가 된 듯 했다. 그러다 한마디를 덧붙였다.
“저도 밭에 데려가 주실래요?”
“아이고, 내사 아직도 귀신에 홀린 것 같다. 참말로 니 본색이 뭐꼬?”
죽산띠기의 호들갑에 여전이 아무 대답도 없이 그녀는 아기를 들춰 업고 호미와 낫을 든 죽산띠기의 뒤를 따라 집을 나섰다.
“이 집은 왜 대문을 이리 냈을까?”
한 집 앞에 머물러 산모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다시 말문을 연 것이다.
“와? 그기 무슨 말고?”
“저기 ...... ”
그녀는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이 마을에서 제일 높아 보이는 청나봉이었다.
“저 산세가 남향인 이집 대문하고 정면으로 맞보고 있잖아요. 그럼 집으로 풍파나 액운이 올 수도 있거든요. 대문을 동향으로 했으면 좋았을 걸.”
“야가 별 요상한 소리를 다 씨부리네. 니 이댁 어른이 누군지 아나? 호랑이 참봉이라는 이 마을에서 제일 지체가 높은 분이다. 다시는 누구한테나 그런 말 입밖에 내지 마라. 그분 알마 참말로 혼찌검이 날끼다.”
두여인은 한나절 밭에서 김을 매고 돌아왔다. 죽산띠기는 산모에게는 입조심하라고 그렇게 당부를 했음에도 자신이 참지 못하고 그 사실을 호랑이 참봉, 문태걸의 아내에게 털어 놓았다.
“죽산띠기네 집에 묵고 있는 여자, 그 딸아까지 낳은 ...... 그 여자가 말을 한다 카데요.”
“그래?”
저녁에 집에 돌아온 문태걸은 아내의 말에 약간의 흥미를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갸가 우리집 대문 앞에서 대문이 남향이라 나쁘니 동쪽으로 옮겨야 한다꼬 말하더랍니다.”
조심스럽게 말하면서 그녀는 조마조마했다. 엄한 남편이 “이런 요망한 것이 ...... !”라며 호통을 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편의 반응에 그녀는 더욱 놀랐다.
“그래?”
아까와 똑같은 반문을 하던 그는 머리를 한번 갸우뚱하더니 별일 아니라는 듯 그저 평범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라마 그래 보지. 임자가 누구 시켜 율곡리 그 황대목한테 전갈을 보내라. 손이 비었으마 내일이락도 당장 하자고 ...... ”
문태걸은 당시 금촌리에서 제일 부농이었다. 논밭도 가장 많고 집도 제일 컸고 읍내에도 여기저기 재산이 있었다. 그는 또 마을에서 제일 개화된 사람이었다.
“일본놈은 밉지만 그놈들과 맞서려면 우리도 신지식을 배워야 한다.”며 아들 둘은 일본 유학을 보냈고 딸도 서울의 이화학당에 입학시켰다. 농사에도 일제가 권유하는 신기술은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고, 미신이나 굿을 하거나 점을 보는 일은 “미개인들의 요망한 짓”이라며 그들에게 호통을 치고 철저히 배격했다.
그가 초시라도 과거를 보았는지는 모르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를 참봉이라고 불렀고 그의 말은 법이라도 되는 것처럼 마을에서 영이 섰다.
최근의 문태걸은 까닭 모른 시련들을 겪으며 짜증과 피로에 시달리고 있었다.
뜻밖의 송사에 휘말려 골치가 아팠고, 큰아들과 며느리가 원인도 모르는 병으로 몸져 누워 있었다. 일본에 유학중인 둘째 아들은 무슨 일 때문인지 자세히 모르겠지만 감옥에 갇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머슴 하나는 며칠 전 하찮은 농기구 사고로 다리를 크게 다쳐 읍내 병원에 입원중이다.
온통 나쁜 일들이 겹쳐 신경이 곤두서 있던 그는 아내의 떠돌이 여인에 대한 말을 들으며 문득 10여년전 있었던 일을 떠 올렸다.
“나리, 손님이 나리를 찾습니더.”
“누군데 ...... ?”
“동냥 하러 온 스님인데 자꾸 나리를 뵙자 캅니더.”
“와, 시주 안 줬나?”
“쌀 한줌 줬는데도 나리를 꼭 뵙고 가야된다 카네요.”
문태걸은 자기 집에 동냥을 하거나 탁발승이 올 때도 빈손으로 보낸 적이 없었다. 그런 주인의 뜻에 따라 머슴이나 하인이나 그의 아내도 그렇게 처리를 해왔는데 하녀의 말에 그는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왔다.
“나무아미타불.”
삿갓을 쓴 탁발승은 목탁을 쥔 손으로 합장을 하며 절을 한 뒤 말했다.
“대주 어른. 이 집이 터는 괜찮은데 저 대문의 자리가 안 좋습니다. 액운을 피하려면 아무래도 동향으로 대문을 옮기는 것이 ...... ”
“보시요!”
문태걸은 중의 말을 끊고 언성을 높였다.
“이 집은 선대 때부터 지어 벌써 몇십년 째 살고 있는데 무슨 재수 없는 소리를 하는거요. 나는 절 같은데 다니지도 않지만 시주를 받았으마 퍼뜩 그냥 가소! 헛소리 말고 ...... ”
“허허 참, 미물이든 중생이든 부처님 덕담은 다 받아들이거늘 ...... ”
중이 뭐라고 더 말하는 것도 듣지 않고 그는 발을 돌리며 투덜거렸다.
“저게 비 맞은 중처럼 뭘 씨부리노. 혹세 무민하마 쌀이라도 좀 더 받을 줄 알았나?”
그런데 오늘 떠돌이 여인이 했다는 말을 전해들으며 그때의 일이 생각난 것이다.
이튿날도 죽산띠기와 산모는 김을 매러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죽산띠기는 들릴 데가 있어 옆길로 접어들었다.
“이집 아이가 많이 아프네.”
김을 매는 동안에도 말 한마디 없던 산모가 한 집 앞에서 발길을 멈추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어제 호랑이 참봉네 집 앞에서의 일도 있었던 터라 죽산띠기는 그녀의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그래, 이집 아가 삼대독잔데 병에 걸려가 오늘 내일 한다. 그래가 며칠 전에도 크게 굿을 했는데도 차도가 없는 갑다.”
“그게 이집 아이 잘못이 아닌데 ...... 원귀가 잘 못 알고 있는 모양인데 ...... ”
산모는 또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죽산띠기는 그 집안으로 들어갔다. 뭐라고 말을 전했는지 모르지만 곧 한 젊은 여인이 버선발로 뛰어 나왔다.
그 여인은 산모를 잠시 바라보더니 넢쭉 큰 절을 하고는 두손을 붙잡고 매달리며 절규했다.
“선녀님! 우리 아를 제발 살콰 주이소! 흑 흑! ...... 찬돌이는 이집 삼대독자고 그저 참하고 똘똘하고 ...... 아무 탈 없이 자라던 아라요. 굿이락도 좀 해주이소. 흑 흑! ...... 비용은 얼마가 들어도 괘않심더. 선녀님! 우리 아를 제발 좀 살콰 주이소!”
아기 어머니가 그녀를 왜 선녀라고 불렀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무당이나 만신이라는 말이 갑자기 생각나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떻든 화장도 하지 않은 그녀의 미모나 기품은 마을의 어떤 여인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 보였다.
“저는 굿을 못해요.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거든요.”
산모는 아기엄마의 매달린 손을 맞잡아 주며 나직히 말했다.
“그래도 우째 해서라도 우리 아를 살콰 주이소! 선녀님 아이마 누가 하겠습니꺼? 제발 이래 빕니다. 내몸을 대신 가져가도 좋습니더. 제발 우리 아이만 그전처럼 뛰놀게 해주이소! 선녀님이 해줘야 합니다.”
아기엄마는 매달린 손을 흔들기까지 하며 떼를 썼다. 당신이 진단을 했으니 치료도 책임져야 한다는 식이다.
“제가 병을 고칠 수는 없고 아기 어머니가 치성을 드리도록 하세요.”
“치성 ...... ? 그기 우찌 하는긴데 ...... ?”
“그저 진심으로 간절히 원하세요. 우리 아기는 원망의 대상이 아니라고, 그러니 원을 풀고 물러나시라고, 일심으로 간절히 기도하세요.”
“지금 에미 마음이사 이보다 더 간절할 수 있을까요? 참말로 내가 대신 죽어도 좋심더. 그런데 누구한테 말을 해야 되고, 어떤 귀신이 내 말을 알아들을지 ...... ? 선녀님이 그걸 좀 도와주이소.”
산모는 잠시 뜸을 두었다가 말했다.
“그럼 저도 치성은 같이 드리도록 하죠. 아기 어머니는 우선 소복을 하고 ...... 참, 소복을 한 벌 더 구할 수 있을까요?”
얼마 후 흰 치마저고리 차림의 두 여인이 그 집의 우물가에 향을 피우고 촛불을 켠 자리에서 정한수 한사발을 올려놓고 나란히 앉았다.
산모가 아기에게 젖을 먹일 때나 두 여인이 용변을 볼 때 말고는 식음을 전폐하고 그 자리를 지켰다. 사연을 알게 된 마을사람들이 몰려왔지만 귓속말로 주고받으며 아무도 이 경건한 의식을 방해하지 않았다. 3일 째가 되어 산모에게서 더 이상 젖이 나오지 않아 갓난아기를 둔 마을여인이 대신 젖을 먹이기도 했다.
5일 째가 지나고 초저녁, 아기 어머니는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가 그 자리에서 혼절하고 말았다.
온몸이 펄펄 끓고 애답지 않게 가래 끓는 숨소리를 내며 허덕이던 아들이 “엄마!”라며 아장아장 걸어나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한동안 마을의 화제는 온통 떠돌이 여인에 대한 것이었다.
한꺼풀 껍질을 벗자 드러난 그녀의 참모습 같은 아름다움에다, 대문을 바꾼 것만으로 액운에서 풀려난 문태걸의 사연이며, 사경을 헤매던 아기가 치성을 드리자 씻은 듯이 나아버린 일은 신비스러움과 호기심을 부채질 할만한 일들이었다.
그런데 그녀에 대해 더 알 수 있는 것은 전혀 없었다.
많은 금촌리 사람들이 질병이나 나름의 고민들을 담고 있었지만 그들이 떠돌이 여인에게 묻고 애원을 해도 그녀는 “저는 못해요.”라거나 “몰라요.”라며 입을 닫고 이 마을에 처음 들어왔을 때처럼 침묵에 빠져 있었다.
꼭 한번 문태걸과 아이의 일이 있고난 뒤 홍씨네 집안의 혼사에 점을 봐준 일이 있었다.
홍씨네의 한 처녀가 김해의 한 만석군네 집과 정혼을 했다. 금촌리의 총각이든 처녀든 그렇게 대단한 집과 혼사를 맺은 경우는 없었다.
그 홍씨네 처녀 어머니의, “사주와 궁합을 봐달라.”는 끈질기고 간절한 애원에 그녀는 밥상을 펴고 향을 피운 후 쌀 몇톨을 상에 뿌리고 한참 머리를 갸우뚱 하더니 그것을 치우고 새롭게 쌀을 뿌렸다. 세 번을 그렇게 하더니 그녀는 그 자리에서 기절해버렸다.
“죄송하지만 아무 것도 알 수가 없군요.”
깨어난 그녀는 그렇게 말 했고 그때문인지 그녀는 그 후 절대로 남의 일에 참견하지 않았다.
하지만 10년이 넘게 세월이 흐른 후 그녀가 왜 기절했었는지도 사람들은 짐작하게 된다.
그녀가 금촌리에서 몸을 푼지 근 반년은 지났을 때 마을에 거창한 행렬이 들어섰다.
50대 전후로 보이는 남자는 말을 탔고 그의 부인인 듯한 여인은 나귀 위에 앉았는데 다 시종들이 고삐를 잡고 있었다. 이어 건장한 장정들 대여섯명도 뒤를 따랐다. 한눈에 보기에도 세도가나 부자의 나들이였다.
구경꾼들이 몰려 들다 나그네 쪽의 질문을 받고는 곧바로 죽산띠기의 집을 안내했다. 나귀에 탔던 여인이 집안으로 들어가더니 떠돌이 여인을 끌어 안았다.
잠시 후 대청에 정좌한 나그네 부부에게 떠돌이 여인은 큰 절을 올렸다. 부모를 만난 것이다.
그의 이름은 정치수. 충청도에서 첫손 꼽는 몇만석군의 갑부였다.
고명딸인 도희는 자라면서 미색과 재주가 뛰어나 부모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그런데 중학교 5학년 때부터 까닭 모를 병을 앓으며 오히려 애물이 되었다.
온몸이 펄펄 끓는 열병을 앓으며 “장군님이 나를 부르신다.”고 뜻모를 헛소리를 하고 양의사나 의원들이 달려와 치료하면 어느 정도 진정이 됐으나 다시 며칠 후, 혹은 몇 달 후, 비슷한 병이 도지는 것이다.
“신이 내렸다.”고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다니던 학교도 그만두고 도희는 수시로 찾아오는 병고에 시달려야 했다.
정치수는 단안을 내렸다. 정말 신이 내렸다면 차라리 무당이라도 되어 고명딸의 목숨이나 부지하기를 바란 것이다.
이름난 무당을 불러 신내림을 하려 했으나 도희는 그것도 한사코 거절했다.
도희가 입덧하는 것을 그녀 어머니가 알게 됐고 진맥을 해보니 태기가 있었다. “누구와 그렇게 됐느냐?”고 어르고 추궁을 해도 그녀는 한사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1년쯤 전 아예 집을 나간 채 소식이 끊긴 것이다.
정치수는 전국 방방곡곡에 사람을 풀어 딸을 수소문했지만 행방이 묘연해 거의 체념을 하던 중 금촌리로 굴러들어온 여인의 사연을 듣고는 한달음에 달려왔다.
그는 죽산띠기를 비롯해 마을사람들에게 후한 사례를 하고 딸과 아직도 애비가 누구인지 모르는 외손녀를 데리고 충청도 길로 떠났다. 그 때 도희가 차려입은 비단 치마저고리는 금촌리 첫째 부자인 문태걸이 선물한 것이었다.
그런데 한 1년쯤 뒤 그녀는 홀몸으로 금촌리를 다시 찾았다. 그리고 청나봉에서 이어지며 소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구르뫼라 부르는 산자락에 암자 같은 집을 하나 짓고 그곳에 기거했다.
“장군님이 계신 곳에서 나는 장군님을 모셔야 한다.”
그녀는 그 말 한마디만을 하고 암자에 머물렀다.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지만 더 이상 무엇을 알 수도 없었다.
그래도 주민들은 갑부의 딸인데다 미색은 뛰어났고 몇가지 영험을 발휘한 그녀에게 일종의 신비스러움과 경외감을 갖고 있었다.
액운이 사라진 문태걸과 아기의 병을 고친 집, 그리고 후한 사례를 받은 죽산띠기 등은 그녀에게 양식과 찬거리를 대주다시피 했고, 그녀도 가끔 마을사람들의 고민에 해법을 알려 주기도 했다.
평화스러운 공존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마가 끼어들었다.
금촌리의 망나니 3명이 그녀를 겁탈하기로 한 것이다.
사실 그녀의 용모나 자태를 볼 때 남자라면 누구나 욕심이건 상상의 대상이 될만 했다. 그러나 그녀에게서 풍기는 신비로움과 경외감이 일종의 방패 역할을 한 셈인데 발정난 망나니들에게는 그것이 통하지 않았다.
홍씨네의 철진, 문씨 문중에서는 용구, 그리고 홍씨네의 머슴 하나가 작당을 했다.
한밤중 이 20대의 청년 3명은 암자를 찾아 들었다. 대문이나 방문에 빗장이 있었겠지만 작심한 장정 3명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고 그녀는 곧 알몸이 되었다.
그녀는 심하게 저항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앞장 선 홍철진이 먼저 아래를 까고 그녀에게 엎어졌다.
“아아, 이러면 죽어요.”
비명을 지르던 그녀가 처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자기가 죽는다는 것인지 상대가 죽는다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녀는 그 한마디만 했다.
“죽어? ...... 죽기는 ...... ? ...... 아하, 이것도 마찬가지제. 그래, 니 곧 천당 보내줄게.”
철진은 빈정거리며 자지를 꼽으려다 잘 안들어가자 침을 뱉어 자지에 문지른 후 삽입에 성공했다.
“야, 참말로 쥑인다! 이 보지 조여주는 거 봐라!”
그는 엉덩이를 맹렬히 움직이더니 잠시 후 사정했다.
정액이 쿨럭거리며 흘러나오는 곳에 곧 이어 문용구도 아까부터 팽팽하게 서 있는 자지를 들이 밀었다.
그녀는 이제 저항할 힘도 의지도 없는 것 같았다. 시체처럼 축 늘어진 그녀의 몸을 용구 역시 맹렬히 박아대며 유린했다. 그가 몸을 한번 부르르 떠는 것으로 욕정을 다 채웠다는 것을 표현했다.
“자, 이제 니 차례다!”
용구가 몸을 일으키며 인심쓰듯 홍씨네 머슴에게 말했다.
“난 안할라요.”
머슴은 뒷걸음질 치며 고개를 저었다.
“와 ...... ? 니도 많이 굶었잖나?”
상전의 아들인 철진이 비웃음을 보낼 때 그는 더욱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내는 못하겠심더. 그냥 가입시더.”
그는 철진과 용구가 여인을 유린할 때 그녀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굴복하고 체념하는 듯한 그 얼굴에는 처연하면서도 일종의 귀기(鬼氣)가 풍겨 나오는 것 같아 차마 그 몸에 욕정을 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 홍철진은 자기 집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가 어디엔가를 갔다가 밤늦게 집에 돌아왔다는 것은 밝혀 졌지만 왜 죽었는지는 검시를 해봐도 알 수가 없었다.
문용구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누구도 그의 병세를 홍철진의 죽음과 연결시켜 생각하지 못했다. 그날 함께 있었던 머슴을 제외하고는.
그 머슴은 매일 용구의 용태를 살폈고 그의 얼굴에 죽음의 그림자가 깃들인 것을 알자 공포에 휩싸이며 읍내의 주재소에 찾아가 자수했다. 홍철진 문용구와 함께 암자에 사는 정도희를 겁탈했다는 사실을.
곧바로 일본 순사가 금촌리에 들이닥쳐 수사를 시작했다.
정도희가 뭐라고 진술했는지는 모르지만 빈사 지경인 문용구는 그날 있었던 일을 순사에게 사실대로 고백했다. 그리고 다음날 죽었다.
“이 요괴 같은 년아! 내 아들 살려 내라!”
용구의 어머니가 정도희를 찾아가 악을 썼지만 그것은 부질없는 짓이었다. 머슴은 주재소에서 바로 풀려나 전처럼 홍씨네 집에서 일했다.
요즘 같으면 죽은 2명은 특수강간죄, 머슴도 강간미수로 꽤 중형을 받았을지 모르는데 그가 정도희의 몸에 손을 안댄 것은 밝혀졌고, 상전이 시켜서 따라갔으며 자수를 했다는 것이 참작되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마을사람들의 인심, 그녀를 보는 눈이나 태도가 이 사건이 나면서 바뀌어 버렸다.
잘잘못을 따지자면 물론 망나니들의 잘못이고 그녀는 억울한 피해자였다.
그러나 마을의 장정 2명이 그녀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는 것을 주민들은 우선 떠올렸다.
그녀에게 품었던 신비로움이나 경외감 대신 정말 요괴를 보듯 공포와 반감이 대신한 것이다. 암자를 찾던 발길도 거의 끊어졌다. 충청도의 몇만석군이라는 그녀의 가족도 왕래가 없는 듯 했다.
그런 주민들의 반응이 그녀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는 모른다. 그녀는 여전히 거의 나들이를 하지 않고 암자를 지키며 살았다.
강간사건이 일어난지 한 3년쯤 지났을 때 그녀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우연히 한 주민이 발견한 것인데 그녀는 보료 위에 정좌한 채 고개만 약간 기울어 있었다. 첫 발견자가 말을 걸어도 아무 응답이 없어 건들였더니 옆으로 힘없이 쓰러지더라는 것이다. 시체가 경직되고 이미 부패끼까지 있는 것으로 보아 죽은지 며칠은 지난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죽음을 예견했었는지 상위에 서찰 하나가 있었다.
부모에게 죄송하다는 것과 자신은 장군님을 계속 모셔야 하니 시신을 암자 뒤에 묻어달라는 내용이었다.
문태걸을 비롯한 마을사람들은 그녀의 죽음에 자신들의 무심함을 반성하며 애도했고, 충청도의 본가에 연락을 했으나 일꾼들만 보내온 속에서 그녀의 유언대로 장례를 치뤘다.
그녀가 죽은지 30년이 넘게 흘러 이제 정도희라는 이름은 아련한 전설처럼 가끔 주민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였다.
그런데 한 낯선 30대 여인이 또 금촌리를 찾아왔다. 그녀는 꽤 미모와 기품이 있어보이는데 한다리를 약간 절었으며 자신이 이곳에서 태어난 정도희의 딸이라고 했다.
그녀는 금촌리 주민들에게 제수의 장만을 부탁하고 정도희의 묘소에서 일종의 진혼제 같은 굿판을 성대하게 치렀다.
그리고 얼마 후 두어살쯤 된 딸을 데리고 다시 찾아오더니 구르뫼의 끝자락, 어머니의 산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신작로 변에 주막을 차렸다.
정말 운명은 돌고도는 것인가. 충청도 제일 부호의 외손녀인 그녀가 술장사를 한다는 것도, 홀몸으로 딸 하나를 데리고 있다는 것도 참 이해하기 어려운 일인데 그녀도 어머니와 비슷하게 자라면서 신병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리고 어머니의 묘소 옆에 정착하며 “비로서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녀와 뜻밖의 빠구리를 했고 그녀는 금촌리에 와서 나 이전에는 “처음이자 단 한사람.”이라며 우리 아버지와 빠구리를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또 어떤 운명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인가. 나는 두 번 째 그녀의 몸에 사정하고 이른 새벽 주막을 나섰다.
물론 내가 태어나기도 전, 어쩌면 아버지 엄마가 태어나기 전일지도 모른다. 하여튼 무척 오래된 이야기다.
한 여인이 금촌리로 굴러 들어왔다. 굴러 들어왔다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이 그녀는 우리 마을과 아무 연고도 없었고 그녀가 왜 이곳으로 왔는지 알 수도 없기 때문이다.
장대비가 세차게 쏟아지던 여름 밤, 논물을 보러 나온 한 주민이 다리 앞에 쓰러져 있는 여인을 발견했다. 당연히 온 몸이 비에 젖었지만 모든 것이 너무 처참했다.
머리는 산발을 했고 여기 저기 상처와 흙탕물이 묻어 있는 얼굴은 들짐승 같이 보였다. 헤지고 남루한 옷차림에 고무신은 한짝만 신고 있는데 두발이 모두 팅팅 부어 있었다. 더욱 기막힌 것은 한눈에 보기에도 그녀가 만삭의 몸이라는 점이다.
아직 숨은 붙어 있는데 일으키려 해도 몸을 못가누어 다시 마을의 장정들을 불러 들것까지 만들어서야 겨우 그녀를 처음 발견한 주민의 집에 들여올 수 있었다.
옷을 갈아입히고 더운 꿀물을 먹이는 등 부산을 떨며 얼마 후 그녀는 의식을 찾았는데 말을 전혀 못했다.
다음날 첫 발견자인 주민이 읍내 주재소를 찾아 이 사실을 신고했다.
얼마 전 동래의 한 부자가 만주의 독립군에게 군자금을 보낸 것이 들통나며 그중 금촌리 사람도 하나가 연루됐다고 해서 일본인 순사들이 찾아오고 마을사람 10여명이 불려가 곤욕을 치룬 적이 있어 이번 일에도 후환이 없도록 미리 조심을 한 것이다.
순사가 곧 왔으나 소지품도 없고 말을 못하니 하나도 새롭게 알거나 밝혀진 것이 없었다.
당시 군내에는 부랑자들을 수용할 어떤 시설도 없었다. 큰 도시에 가면 있을 수도 있지만 만삭의 몸이라 이동도 어려웠다, 순사가 내린 결론은 “신원이 밝혀지거나 새로운 조치가 있을 때까지 일단 마을에서 이 부랑여인을 보호하라.”는 것이었다.
이장과 마을 원로들이 구수회의를 한 끝에 그녀의 거처를 우선 죽산띠기네 집으로 정했다. 죽산띠기는 아들 하나를 둔 과부인데 아들이 돈을 번다고 일본의 한 제철소로 간 뒤 반년도 안 되어 마누라가 두아이를 팽개치고 보따리를 싸, 집안도 단촐하고 방이 하나 비어 있었다.
대신 주민들은 양식 약간을 갹출해 죽산띠기에게 건넸다. 일제말기, 공출도 많아지고 농촌이 피폐해 있었지만 인심은 아직 남아 있었다.
떠돌이 여인이 죽산띠기네에서 기거한지 얼마 후 죽산띠기는 한밤중 이상한 기척에 잠이 깼다. 어쩐지 피비린내가 나는 듯 했고 끙끙대는 신음소리가 들렸다.
불을 켜보니 방안은 피바다였다. 늘 바로 옆에서 자던 떠돌이 여인이 불도 켜지 않은 채 혼자 아기를 낳은 것이다.
그것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일종의 야생동물 같은 본능 때문인지 아기의 탯줄을 이빨로 끊어 놓았다. 첫울음도 울지 못한 신생아는 끊어진 탯줄로 피가 배어나와 곧 숨마저 끊어질 지경이었다.
“이 미친년이 지 새끼 죽일려고 환장을 했나?”
죽산띠기는 비명을 지르며 아기의 탯줄을 실로 묶고 계속 피를 흘리는 산모에게도 응급조치를 한 후 다른 사람들을 불렀다. 다행이 산모와 딸인 아기는 모두 목숨을 건졌고 마을사람들은 다시 미역과 쌀 등을 추렴해서 보내 주었다.
삼칠일이 막 끝나던 날, 산모는 스스로 부엌에서 물을 데워 몸을 씻고 경대 앞에서 머리를 빗고 쪽을 진 뒤 죽산띠기가 준 비녀를 꽂았다.
처음 발견됐을 때의 상처나 산후의 부기도 거의 진정이 되었고 단지 목욕과 머리단장만으로도 그녀의 기품과 미모는 돋보였다.
“참말로 선녀 하나가 내려온 것 같다. 하지만 그러이 더 불쌍하기 짝이 없네. 말도 몬하고 제 집도 모르는데 새끼까지 달렸으이 앞으로 우찌 살아갈끼고.”
죽산띠기는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며 혼자 혀를 끌끌 찼다.
“밭에 가시는거예요?”
“그래. 며칠 놔뒀드이 풀이 억수로 자랐는기라. 김매러 간다.”
방문을 열고 나가려다 무심코 대답을 한 뒤 죽산띠기는 몸을 돌려 산모를 보며 소리쳤다.
“니 말할 줄 아나?”
산모는 빙그레 웃기만 했다.
“아이고! 이거 내가 무슨 귀신을 만났나? 말도 할 줄 알면서 우째 그리 봉창을 하고 있었노? ...... 이름은 뭐꼬? 느그 집은 어딘지 아나?”
그러나 산모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오이? 뭐라꼬 말 좀 해봐라! 알라 애비는 누고? 우짜다 이 마을로 온기가? 느그 집은 어디고? 오이? 대답 좀 해라!”
죽산띠기의 채근에도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다시 벙어리가 된 듯 했다. 그러다 한마디를 덧붙였다.
“저도 밭에 데려가 주실래요?”
“아이고, 내사 아직도 귀신에 홀린 것 같다. 참말로 니 본색이 뭐꼬?”
죽산띠기의 호들갑에 여전이 아무 대답도 없이 그녀는 아기를 들춰 업고 호미와 낫을 든 죽산띠기의 뒤를 따라 집을 나섰다.
“이 집은 왜 대문을 이리 냈을까?”
한 집 앞에 머물러 산모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다시 말문을 연 것이다.
“와? 그기 무슨 말고?”
“저기 ...... ”
그녀는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이 마을에서 제일 높아 보이는 청나봉이었다.
“저 산세가 남향인 이집 대문하고 정면으로 맞보고 있잖아요. 그럼 집으로 풍파나 액운이 올 수도 있거든요. 대문을 동향으로 했으면 좋았을 걸.”
“야가 별 요상한 소리를 다 씨부리네. 니 이댁 어른이 누군지 아나? 호랑이 참봉이라는 이 마을에서 제일 지체가 높은 분이다. 다시는 누구한테나 그런 말 입밖에 내지 마라. 그분 알마 참말로 혼찌검이 날끼다.”
두여인은 한나절 밭에서 김을 매고 돌아왔다. 죽산띠기는 산모에게는 입조심하라고 그렇게 당부를 했음에도 자신이 참지 못하고 그 사실을 호랑이 참봉, 문태걸의 아내에게 털어 놓았다.
“죽산띠기네 집에 묵고 있는 여자, 그 딸아까지 낳은 ...... 그 여자가 말을 한다 카데요.”
“그래?”
저녁에 집에 돌아온 문태걸은 아내의 말에 약간의 흥미를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갸가 우리집 대문 앞에서 대문이 남향이라 나쁘니 동쪽으로 옮겨야 한다꼬 말하더랍니다.”
조심스럽게 말하면서 그녀는 조마조마했다. 엄한 남편이 “이런 요망한 것이 ...... !”라며 호통을 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편의 반응에 그녀는 더욱 놀랐다.
“그래?”
아까와 똑같은 반문을 하던 그는 머리를 한번 갸우뚱하더니 별일 아니라는 듯 그저 평범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라마 그래 보지. 임자가 누구 시켜 율곡리 그 황대목한테 전갈을 보내라. 손이 비었으마 내일이락도 당장 하자고 ...... ”
문태걸은 당시 금촌리에서 제일 부농이었다. 논밭도 가장 많고 집도 제일 컸고 읍내에도 여기저기 재산이 있었다. 그는 또 마을에서 제일 개화된 사람이었다.
“일본놈은 밉지만 그놈들과 맞서려면 우리도 신지식을 배워야 한다.”며 아들 둘은 일본 유학을 보냈고 딸도 서울의 이화학당에 입학시켰다. 농사에도 일제가 권유하는 신기술은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고, 미신이나 굿을 하거나 점을 보는 일은 “미개인들의 요망한 짓”이라며 그들에게 호통을 치고 철저히 배격했다.
그가 초시라도 과거를 보았는지는 모르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를 참봉이라고 불렀고 그의 말은 법이라도 되는 것처럼 마을에서 영이 섰다.
최근의 문태걸은 까닭 모른 시련들을 겪으며 짜증과 피로에 시달리고 있었다.
뜻밖의 송사에 휘말려 골치가 아팠고, 큰아들과 며느리가 원인도 모르는 병으로 몸져 누워 있었다. 일본에 유학중인 둘째 아들은 무슨 일 때문인지 자세히 모르겠지만 감옥에 갇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머슴 하나는 며칠 전 하찮은 농기구 사고로 다리를 크게 다쳐 읍내 병원에 입원중이다.
온통 나쁜 일들이 겹쳐 신경이 곤두서 있던 그는 아내의 떠돌이 여인에 대한 말을 들으며 문득 10여년전 있었던 일을 떠 올렸다.
“나리, 손님이 나리를 찾습니더.”
“누군데 ...... ?”
“동냥 하러 온 스님인데 자꾸 나리를 뵙자 캅니더.”
“와, 시주 안 줬나?”
“쌀 한줌 줬는데도 나리를 꼭 뵙고 가야된다 카네요.”
문태걸은 자기 집에 동냥을 하거나 탁발승이 올 때도 빈손으로 보낸 적이 없었다. 그런 주인의 뜻에 따라 머슴이나 하인이나 그의 아내도 그렇게 처리를 해왔는데 하녀의 말에 그는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왔다.
“나무아미타불.”
삿갓을 쓴 탁발승은 목탁을 쥔 손으로 합장을 하며 절을 한 뒤 말했다.
“대주 어른. 이 집이 터는 괜찮은데 저 대문의 자리가 안 좋습니다. 액운을 피하려면 아무래도 동향으로 대문을 옮기는 것이 ...... ”
“보시요!”
문태걸은 중의 말을 끊고 언성을 높였다.
“이 집은 선대 때부터 지어 벌써 몇십년 째 살고 있는데 무슨 재수 없는 소리를 하는거요. 나는 절 같은데 다니지도 않지만 시주를 받았으마 퍼뜩 그냥 가소! 헛소리 말고 ...... ”
“허허 참, 미물이든 중생이든 부처님 덕담은 다 받아들이거늘 ...... ”
중이 뭐라고 더 말하는 것도 듣지 않고 그는 발을 돌리며 투덜거렸다.
“저게 비 맞은 중처럼 뭘 씨부리노. 혹세 무민하마 쌀이라도 좀 더 받을 줄 알았나?”
그런데 오늘 떠돌이 여인이 했다는 말을 전해들으며 그때의 일이 생각난 것이다.
이튿날도 죽산띠기와 산모는 김을 매러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죽산띠기는 들릴 데가 있어 옆길로 접어들었다.
“이집 아이가 많이 아프네.”
김을 매는 동안에도 말 한마디 없던 산모가 한 집 앞에서 발길을 멈추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어제 호랑이 참봉네 집 앞에서의 일도 있었던 터라 죽산띠기는 그녀의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그래, 이집 아가 삼대독잔데 병에 걸려가 오늘 내일 한다. 그래가 며칠 전에도 크게 굿을 했는데도 차도가 없는 갑다.”
“그게 이집 아이 잘못이 아닌데 ...... 원귀가 잘 못 알고 있는 모양인데 ...... ”
산모는 또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죽산띠기는 그 집안으로 들어갔다. 뭐라고 말을 전했는지 모르지만 곧 한 젊은 여인이 버선발로 뛰어 나왔다.
그 여인은 산모를 잠시 바라보더니 넢쭉 큰 절을 하고는 두손을 붙잡고 매달리며 절규했다.
“선녀님! 우리 아를 제발 살콰 주이소! 흑 흑! ...... 찬돌이는 이집 삼대독자고 그저 참하고 똘똘하고 ...... 아무 탈 없이 자라던 아라요. 굿이락도 좀 해주이소. 흑 흑! ...... 비용은 얼마가 들어도 괘않심더. 선녀님! 우리 아를 제발 좀 살콰 주이소!”
아기 어머니가 그녀를 왜 선녀라고 불렀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무당이나 만신이라는 말이 갑자기 생각나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떻든 화장도 하지 않은 그녀의 미모나 기품은 마을의 어떤 여인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 보였다.
“저는 굿을 못해요.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거든요.”
산모는 아기엄마의 매달린 손을 맞잡아 주며 나직히 말했다.
“그래도 우째 해서라도 우리 아를 살콰 주이소! 선녀님 아이마 누가 하겠습니꺼? 제발 이래 빕니다. 내몸을 대신 가져가도 좋습니더. 제발 우리 아이만 그전처럼 뛰놀게 해주이소! 선녀님이 해줘야 합니다.”
아기엄마는 매달린 손을 흔들기까지 하며 떼를 썼다. 당신이 진단을 했으니 치료도 책임져야 한다는 식이다.
“제가 병을 고칠 수는 없고 아기 어머니가 치성을 드리도록 하세요.”
“치성 ...... ? 그기 우찌 하는긴데 ...... ?”
“그저 진심으로 간절히 원하세요. 우리 아기는 원망의 대상이 아니라고, 그러니 원을 풀고 물러나시라고, 일심으로 간절히 기도하세요.”
“지금 에미 마음이사 이보다 더 간절할 수 있을까요? 참말로 내가 대신 죽어도 좋심더. 그런데 누구한테 말을 해야 되고, 어떤 귀신이 내 말을 알아들을지 ...... ? 선녀님이 그걸 좀 도와주이소.”
산모는 잠시 뜸을 두었다가 말했다.
“그럼 저도 치성은 같이 드리도록 하죠. 아기 어머니는 우선 소복을 하고 ...... 참, 소복을 한 벌 더 구할 수 있을까요?”
얼마 후 흰 치마저고리 차림의 두 여인이 그 집의 우물가에 향을 피우고 촛불을 켠 자리에서 정한수 한사발을 올려놓고 나란히 앉았다.
산모가 아기에게 젖을 먹일 때나 두 여인이 용변을 볼 때 말고는 식음을 전폐하고 그 자리를 지켰다. 사연을 알게 된 마을사람들이 몰려왔지만 귓속말로 주고받으며 아무도 이 경건한 의식을 방해하지 않았다. 3일 째가 되어 산모에게서 더 이상 젖이 나오지 않아 갓난아기를 둔 마을여인이 대신 젖을 먹이기도 했다.
5일 째가 지나고 초저녁, 아기 어머니는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가 그 자리에서 혼절하고 말았다.
온몸이 펄펄 끓고 애답지 않게 가래 끓는 숨소리를 내며 허덕이던 아들이 “엄마!”라며 아장아장 걸어나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한동안 마을의 화제는 온통 떠돌이 여인에 대한 것이었다.
한꺼풀 껍질을 벗자 드러난 그녀의 참모습 같은 아름다움에다, 대문을 바꾼 것만으로 액운에서 풀려난 문태걸의 사연이며, 사경을 헤매던 아기가 치성을 드리자 씻은 듯이 나아버린 일은 신비스러움과 호기심을 부채질 할만한 일들이었다.
그런데 그녀에 대해 더 알 수 있는 것은 전혀 없었다.
많은 금촌리 사람들이 질병이나 나름의 고민들을 담고 있었지만 그들이 떠돌이 여인에게 묻고 애원을 해도 그녀는 “저는 못해요.”라거나 “몰라요.”라며 입을 닫고 이 마을에 처음 들어왔을 때처럼 침묵에 빠져 있었다.
꼭 한번 문태걸과 아이의 일이 있고난 뒤 홍씨네 집안의 혼사에 점을 봐준 일이 있었다.
홍씨네의 한 처녀가 김해의 한 만석군네 집과 정혼을 했다. 금촌리의 총각이든 처녀든 그렇게 대단한 집과 혼사를 맺은 경우는 없었다.
그 홍씨네 처녀 어머니의, “사주와 궁합을 봐달라.”는 끈질기고 간절한 애원에 그녀는 밥상을 펴고 향을 피운 후 쌀 몇톨을 상에 뿌리고 한참 머리를 갸우뚱 하더니 그것을 치우고 새롭게 쌀을 뿌렸다. 세 번을 그렇게 하더니 그녀는 그 자리에서 기절해버렸다.
“죄송하지만 아무 것도 알 수가 없군요.”
깨어난 그녀는 그렇게 말 했고 그때문인지 그녀는 그 후 절대로 남의 일에 참견하지 않았다.
하지만 10년이 넘게 세월이 흐른 후 그녀가 왜 기절했었는지도 사람들은 짐작하게 된다.
그녀가 금촌리에서 몸을 푼지 근 반년은 지났을 때 마을에 거창한 행렬이 들어섰다.
50대 전후로 보이는 남자는 말을 탔고 그의 부인인 듯한 여인은 나귀 위에 앉았는데 다 시종들이 고삐를 잡고 있었다. 이어 건장한 장정들 대여섯명도 뒤를 따랐다. 한눈에 보기에도 세도가나 부자의 나들이였다.
구경꾼들이 몰려 들다 나그네 쪽의 질문을 받고는 곧바로 죽산띠기의 집을 안내했다. 나귀에 탔던 여인이 집안으로 들어가더니 떠돌이 여인을 끌어 안았다.
잠시 후 대청에 정좌한 나그네 부부에게 떠돌이 여인은 큰 절을 올렸다. 부모를 만난 것이다.
그의 이름은 정치수. 충청도에서 첫손 꼽는 몇만석군의 갑부였다.
고명딸인 도희는 자라면서 미색과 재주가 뛰어나 부모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그런데 중학교 5학년 때부터 까닭 모를 병을 앓으며 오히려 애물이 되었다.
온몸이 펄펄 끓는 열병을 앓으며 “장군님이 나를 부르신다.”고 뜻모를 헛소리를 하고 양의사나 의원들이 달려와 치료하면 어느 정도 진정이 됐으나 다시 며칠 후, 혹은 몇 달 후, 비슷한 병이 도지는 것이다.
“신이 내렸다.”고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다니던 학교도 그만두고 도희는 수시로 찾아오는 병고에 시달려야 했다.
정치수는 단안을 내렸다. 정말 신이 내렸다면 차라리 무당이라도 되어 고명딸의 목숨이나 부지하기를 바란 것이다.
이름난 무당을 불러 신내림을 하려 했으나 도희는 그것도 한사코 거절했다.
도희가 입덧하는 것을 그녀 어머니가 알게 됐고 진맥을 해보니 태기가 있었다. “누구와 그렇게 됐느냐?”고 어르고 추궁을 해도 그녀는 한사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1년쯤 전 아예 집을 나간 채 소식이 끊긴 것이다.
정치수는 전국 방방곡곡에 사람을 풀어 딸을 수소문했지만 행방이 묘연해 거의 체념을 하던 중 금촌리로 굴러들어온 여인의 사연을 듣고는 한달음에 달려왔다.
그는 죽산띠기를 비롯해 마을사람들에게 후한 사례를 하고 딸과 아직도 애비가 누구인지 모르는 외손녀를 데리고 충청도 길로 떠났다. 그 때 도희가 차려입은 비단 치마저고리는 금촌리 첫째 부자인 문태걸이 선물한 것이었다.
그런데 한 1년쯤 뒤 그녀는 홀몸으로 금촌리를 다시 찾았다. 그리고 청나봉에서 이어지며 소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구르뫼라 부르는 산자락에 암자 같은 집을 하나 짓고 그곳에 기거했다.
“장군님이 계신 곳에서 나는 장군님을 모셔야 한다.”
그녀는 그 말 한마디만을 하고 암자에 머물렀다.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지만 더 이상 무엇을 알 수도 없었다.
그래도 주민들은 갑부의 딸인데다 미색은 뛰어났고 몇가지 영험을 발휘한 그녀에게 일종의 신비스러움과 경외감을 갖고 있었다.
액운이 사라진 문태걸과 아기의 병을 고친 집, 그리고 후한 사례를 받은 죽산띠기 등은 그녀에게 양식과 찬거리를 대주다시피 했고, 그녀도 가끔 마을사람들의 고민에 해법을 알려 주기도 했다.
평화스러운 공존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마가 끼어들었다.
금촌리의 망나니 3명이 그녀를 겁탈하기로 한 것이다.
사실 그녀의 용모나 자태를 볼 때 남자라면 누구나 욕심이건 상상의 대상이 될만 했다. 그러나 그녀에게서 풍기는 신비로움과 경외감이 일종의 방패 역할을 한 셈인데 발정난 망나니들에게는 그것이 통하지 않았다.
홍씨네의 철진, 문씨 문중에서는 용구, 그리고 홍씨네의 머슴 하나가 작당을 했다.
한밤중 이 20대의 청년 3명은 암자를 찾아 들었다. 대문이나 방문에 빗장이 있었겠지만 작심한 장정 3명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고 그녀는 곧 알몸이 되었다.
그녀는 심하게 저항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앞장 선 홍철진이 먼저 아래를 까고 그녀에게 엎어졌다.
“아아, 이러면 죽어요.”
비명을 지르던 그녀가 처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자기가 죽는다는 것인지 상대가 죽는다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녀는 그 한마디만 했다.
“죽어? ...... 죽기는 ...... ? ...... 아하, 이것도 마찬가지제. 그래, 니 곧 천당 보내줄게.”
철진은 빈정거리며 자지를 꼽으려다 잘 안들어가자 침을 뱉어 자지에 문지른 후 삽입에 성공했다.
“야, 참말로 쥑인다! 이 보지 조여주는 거 봐라!”
그는 엉덩이를 맹렬히 움직이더니 잠시 후 사정했다.
정액이 쿨럭거리며 흘러나오는 곳에 곧 이어 문용구도 아까부터 팽팽하게 서 있는 자지를 들이 밀었다.
그녀는 이제 저항할 힘도 의지도 없는 것 같았다. 시체처럼 축 늘어진 그녀의 몸을 용구 역시 맹렬히 박아대며 유린했다. 그가 몸을 한번 부르르 떠는 것으로 욕정을 다 채웠다는 것을 표현했다.
“자, 이제 니 차례다!”
용구가 몸을 일으키며 인심쓰듯 홍씨네 머슴에게 말했다.
“난 안할라요.”
머슴은 뒷걸음질 치며 고개를 저었다.
“와 ...... ? 니도 많이 굶었잖나?”
상전의 아들인 철진이 비웃음을 보낼 때 그는 더욱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내는 못하겠심더. 그냥 가입시더.”
그는 철진과 용구가 여인을 유린할 때 그녀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굴복하고 체념하는 듯한 그 얼굴에는 처연하면서도 일종의 귀기(鬼氣)가 풍겨 나오는 것 같아 차마 그 몸에 욕정을 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 홍철진은 자기 집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가 어디엔가를 갔다가 밤늦게 집에 돌아왔다는 것은 밝혀 졌지만 왜 죽었는지는 검시를 해봐도 알 수가 없었다.
문용구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누구도 그의 병세를 홍철진의 죽음과 연결시켜 생각하지 못했다. 그날 함께 있었던 머슴을 제외하고는.
그 머슴은 매일 용구의 용태를 살폈고 그의 얼굴에 죽음의 그림자가 깃들인 것을 알자 공포에 휩싸이며 읍내의 주재소에 찾아가 자수했다. 홍철진 문용구와 함께 암자에 사는 정도희를 겁탈했다는 사실을.
곧바로 일본 순사가 금촌리에 들이닥쳐 수사를 시작했다.
정도희가 뭐라고 진술했는지는 모르지만 빈사 지경인 문용구는 그날 있었던 일을 순사에게 사실대로 고백했다. 그리고 다음날 죽었다.
“이 요괴 같은 년아! 내 아들 살려 내라!”
용구의 어머니가 정도희를 찾아가 악을 썼지만 그것은 부질없는 짓이었다. 머슴은 주재소에서 바로 풀려나 전처럼 홍씨네 집에서 일했다.
요즘 같으면 죽은 2명은 특수강간죄, 머슴도 강간미수로 꽤 중형을 받았을지 모르는데 그가 정도희의 몸에 손을 안댄 것은 밝혀졌고, 상전이 시켜서 따라갔으며 자수를 했다는 것이 참작되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마을사람들의 인심, 그녀를 보는 눈이나 태도가 이 사건이 나면서 바뀌어 버렸다.
잘잘못을 따지자면 물론 망나니들의 잘못이고 그녀는 억울한 피해자였다.
그러나 마을의 장정 2명이 그녀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는 것을 주민들은 우선 떠올렸다.
그녀에게 품었던 신비로움이나 경외감 대신 정말 요괴를 보듯 공포와 반감이 대신한 것이다. 암자를 찾던 발길도 거의 끊어졌다. 충청도의 몇만석군이라는 그녀의 가족도 왕래가 없는 듯 했다.
그런 주민들의 반응이 그녀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는 모른다. 그녀는 여전히 거의 나들이를 하지 않고 암자를 지키며 살았다.
강간사건이 일어난지 한 3년쯤 지났을 때 그녀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우연히 한 주민이 발견한 것인데 그녀는 보료 위에 정좌한 채 고개만 약간 기울어 있었다. 첫 발견자가 말을 걸어도 아무 응답이 없어 건들였더니 옆으로 힘없이 쓰러지더라는 것이다. 시체가 경직되고 이미 부패끼까지 있는 것으로 보아 죽은지 며칠은 지난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죽음을 예견했었는지 상위에 서찰 하나가 있었다.
부모에게 죄송하다는 것과 자신은 장군님을 계속 모셔야 하니 시신을 암자 뒤에 묻어달라는 내용이었다.
문태걸을 비롯한 마을사람들은 그녀의 죽음에 자신들의 무심함을 반성하며 애도했고, 충청도의 본가에 연락을 했으나 일꾼들만 보내온 속에서 그녀의 유언대로 장례를 치뤘다.
그녀가 죽은지 30년이 넘게 흘러 이제 정도희라는 이름은 아련한 전설처럼 가끔 주민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였다.
그런데 한 낯선 30대 여인이 또 금촌리를 찾아왔다. 그녀는 꽤 미모와 기품이 있어보이는데 한다리를 약간 절었으며 자신이 이곳에서 태어난 정도희의 딸이라고 했다.
그녀는 금촌리 주민들에게 제수의 장만을 부탁하고 정도희의 묘소에서 일종의 진혼제 같은 굿판을 성대하게 치렀다.
그리고 얼마 후 두어살쯤 된 딸을 데리고 다시 찾아오더니 구르뫼의 끝자락, 어머니의 산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신작로 변에 주막을 차렸다.
정말 운명은 돌고도는 것인가. 충청도 제일 부호의 외손녀인 그녀가 술장사를 한다는 것도, 홀몸으로 딸 하나를 데리고 있다는 것도 참 이해하기 어려운 일인데 그녀도 어머니와 비슷하게 자라면서 신병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리고 어머니의 묘소 옆에 정착하며 “비로서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녀와 뜻밖의 빠구리를 했고 그녀는 금촌리에 와서 나 이전에는 “처음이자 단 한사람.”이라며 우리 아버지와 빠구리를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또 어떤 운명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인가. 나는 두 번 째 그녀의 몸에 사정하고 이른 새벽 주막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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