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촌리 설화(金村里 說話) -44부-
아, 나는 요즘 학교 생활이 즐겁다.
공부 시간이 기다려 진다.
꽤 어려운 문제를 혼자 힘으로 풀면 그렇게 신날 수가 없다.
내일 배울 부분을 미리 챙겨 보는 예습이나, 배운 것을 다시 돌아보며 완전히 이해를 하고 내 머릿속에 간직하는 복습도 보람있고 기쁜 일이다.
교과서란 정말 재미있고 유익한 책이다. 이미 배운 교과서도 그렇지만 4살, 6살이 많은 두 누나의 교과서들에서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재미있는 내용들이 너무나 많다.
그리고 담임인 이원주 선생을 좋아하게 되었다.
되돌아 보면 나의 이같은 변화는 이원주 선생에 대한 반감, 혹은 악연(惡緣)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의 3번 째 여인, 아니 그보다는 어느 여배우를 꼭 빼냈다는 아름다움과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고 흠모하는 녀석들도 많은 이미영 선생과 빠구리를 했다는 것이 나에게는 세상을 다 얻은 것만큼이나 놀라운 일이었다.
그런 이미영 선생이 전근을 가며 대신 전근 온 선생이 이원주 선생이었다.
나는 우선 그녀의 뚱뚱하고 못생긴 것이 싫었다. 오죽하면 부임하는 첫날부터 ‘도라무깡’이라는 별명을 얻었을까.
그녀는 이미영 선생이 가르치던 3학년 반과 살던 집까지 인수받았다. 공부시간이 끝나도 학생들은 주위에 몰려 들었고, 교무실에서는 교장 선생까지 따리 붙듯이 그녀 옆을 맴돌고 그녀의 말 한마디에 선생들이 깔깔 웃는 장면에서도 배알이 꼴렸다.
이미영 선생을 떠나보낸 그리움과 아쉬움의 반작용처럼 그녀만 보면 밉고 얄미웠다.
그런 감정의 표출일까, 4학년 때는 그녀를 놀리는 그림을 칠판에 그렸다가 직통으로 그녀에게 걸린 적도 있었다.
호박 같은 얼굴에 큰 눈과 도톰한 입술을 그리고 그 밑에 드럼통을 받쳐 놓으면 누가 보더라도 이원주 선생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는 한컷의 만화였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이원주 선생이 5학년으로 올라간 우리반의 담임을 맡은 것으로 악연은 계속 이어지게 된다.
첫날 출석을 부를 때부터 나를 유심히 보는 것 같더니 며칠 후 나를 지명해 칠판에 문제를 풀도록 했다.
사다리꼴의 넓이를 내라는 것인데 나는 하지 못했다. 솔직히 그것은 내 잘못이다.
4학년 산수시간에 모두 배운 것인데 그 시간에 나는 소설책을 몰래 보고 있었던지 딴 생각에 빠졌었는지 도무지 깜깜이었다. 그때 나는 넓이와 둘레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던 처지였다.
결국 우리반 학생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뺨을 몇 대 맞는 창피를 당해야 했다.
나도 오기가 있는 놈이다.
다시는 도라무깡에게 약점을 잡히지 않겠다고 작정했다.
집에 오자마자 나는 4학년 산수책을 펴들었다. 뒷부분에 삼각형, 정사각형, 직사각형, 원, 마름모, 사다리꼴 등의 넓이를 내는 공식이 있었다. 이어서 정육면체, 원기둥, 원뿔, 공 등의 부피를 내는 공식과 연습문제들도 있었다.
나는 여태껏 몰랐던 상당부분을 책을 차근차근 읽어보고 문제들을 풀어가며 새롭게 알아 갔다. 그러나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많았다.
이를테면 파이(π)라는 것이 무엇인지, 원의 둘레나 넓이를 낼 때 왜 지름이나 반지름의 제곱에 3.14를 곱해줘야 하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영미누나에게 도움을 청했다.
“아니, 우리집 꼴통 영도가 무슨 바람이 불어 자습을 다 하노?”
영미 누나는 먼저 나를 놀려 댔지만 따져 보면 저나 나나 꼴통이기는 마찬가지다. 학교를 다니는 우리집 3남매중 영숙 누나만 반에서 1~3등의 실력을 자랑하지만 지난번 학년말 통지표에서 영미 누나는 28등, 나는 36등으로 고만고만이다.
그래도 4년이라는 밥그릇 차이가 있는 것인지 누나는 내가 모르는 문제들을 술술 풀어 주면서 나를 이해시켰다. 나는 내일 배우게 될 앞부분까지 누나의 가르침을 받았다.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하며 나는 산수책과 씨름을 했다. 이제 그 전의 문제나 새로 배울 것에도 별로 걸릴 것이 없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산수 시간에 나는 수업에 열중했다. 이원주 선생의 특징중 하나가 수업중에 계속 학생들에게 질문하고 의견을 물으며 문제를 풀게 하는데 나에게는 눈도 돌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내가 예습한 항목들이 더 잘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것은 신기했다.
이어지는 국어, 자연, 사회시간에도 나는 정신을 집중했다. 언제 또 질문이나 문제를 풀 일이 생길지 모르지만 나는 절대로 도라무깡에게 약점을 잡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던 중 나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우리반의 대부분 아이들이 눈이 초롱초롱한 채 담임의 말이나 칠판에 쓰는 것을 주목하고 있었다.
이원주 선생은 한마디로 열정적이었다. 때로는 사근사근하게 말하다 칠판에 분필로 몇가지 요점을 적고는 톤이 높아지며 움직이는 손놀림을 보면 마치 우리들 머릿속에 지식을 쑤셔 넣으려는 동작 같기도 했다.
나는 이 교실의 풍경이 마치 나만 오래 떠나 있다가 다시 찾아온 것처럼 낯설었다. 머리를 갸우뚱하며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우선 내가 변했다. 우리반 학생들도 변했다. 그리고 이원주 선생도 ...... ? 아니, 나는 그녀의 그 전 모습을 모른다. ...... 그렇다면 이원주 선생이 나뿐 아니라 아이들의 눈빛이나 이 교실 전체의 분위기를 바꾼 것일까?
나는 그 전의 공부시간들을 생각해보았다. 역시 그렇다. 변화는 이원주 선생 때문이었다.
4학년의 담임은 심재철 선생이었다.
학년말 통지표에 36등을 받은 그때 나는 어떻게 공부를 했고 우리반의 분위기는 어땠었던가? ......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담임의 늘 피로하고 졸린 듯한 표정이 생각난다. 국어시간에는 몇 명을 지명해서 차례로 그 과목을 읽게 하고 어려운 낱말 몇 개를 및줄 치게 하고 풀이해 주었다. 여전히 피로하고 졸린 듯한 표정으로.
산수나 자연시간에는 거의 교과서의 내용을 혼자 읽고 더러 칠판에 공식의 설명이나 문제 푸는 방법을 적고, 누구를 지명해서 문제를 풀기도 했지만 교실의 분위기는 역시 생활에 지친 듯한 담임을 닮아 맥이 없었다.
3학년 때나 2학년 때를 생각해보면 더 기억이 아련하다.
그때의 담임들도 가끔 한눈파는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고, 숙제 검사를 하며 안 해온 아이들에게 종아리를 때렸으며, 꼭 피로하거나 졸리지는 않았더라도 우리들에게는 근본적으로 무심했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무심이라는 점에서는 나도 비슷했다. 한번도 공부나 성적에 대해 신경을 쓴 적이 없었다. 그저 학교가 있고 남들이 다니니까 나도 매일 밥을 먹는 것처럼 다닌다는 생각이었고, 나의 공부하는 태도나 성적에 부모도 아무 채근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원주 선생은 달랐다.
“너희는 이 비슷한 곱셈이나 나눗셈을 왜 자꾸 반복해서 해야 하느냐 하고 짜증이 날지도 몰라. 사실 주판으로 하면 계산을 훨씬 빨리 할 수도 있고 컴퓨터, 즉 전산기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더 발전하면 복잡한 계산을 사람이 직접 할 필요도 없을꺼야. 그렇지만 산수는,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가면 수학이라고 하고 대수와 기하, 미분과 적분 등 더욱 복잡하게 나뉘고 항상 중요한 과목이 되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 두뇌에 영양을 공급하고 더욱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밥을 먹으며 그 영양분으로 몸을 키우고 체조나 운동을 통해서 몸의 능력을 키우 듯 산수는 우리의 뇌를 성장시키는 영양소며 훈련이란다.”
그 말을 다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산수를 열심히 했고 또 재미있었다.
국어책에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내용을 담은 것이 있었다.
내가 4학년 때라면, 혹은 심재철 선생이 5학년 담임이었다면, 우리는 번갈아 소리 내어 그 과목을 한번 읽고 어려운 낱말의 풀이나 짧은글 짓기 같은 것으로 공부가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이원주 선생은 당시의 대부분 사람들이 지구는 평평하고 끝에 절벽이 있다고 생각했으며, 서양인들이 동양의 향료나 후추가루에 얼마나 집착했고, 그래서 오랜 시간과 힘이 드는 인도항로보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 했던 배경들을 세세히 설명해 주었다.
자연시간에서도 나는 경이로움을 느꼈다.
한 예로 여름철이면 개구리는 냇가나 들판에 지천으로 깔려 있다. 그중 큰놈올 잡아 다리만 찢어 구워먹기도 했고 올챙이가 개구리 새끼라는 것은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뒷다리만 나온 놈이나 앞다리까지 조금 자란 올챙이를 우리는 갖고 놀다 패대기치기도 했다.
그러나 올챙이는 물고기처럼 아가미로 숨을 쉬고 개구리는 우리와 같은 허파로 숨을 쉰다는 것을 나는 몰랐고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런데 교과서에는 그 내용이 적혀 있었고 나는 공부시간에 또 다른 동물들의 흥미로운 생태들을 더 많이 알게 되었다.
하여튼 교과서들을 읽으며 얻게 된 새로운 지식이나 이원주 선생의 설명을 덧붙여 더욱 넓게, 혹은 깊게 알게 되는 내용들은 너무나 새롭고 신비로우며 재미있었다.
우리가 사는 땅이 1년을 주기로 태양을 돌며 또 자전을 하고, 달은 지구에서 떨어져 나간 돌덩이로 매일 지구를 맴돌며, 그보다도 저 하늘이 얼마나 광활한 우주의 일부분이며 태양계를 포함한 은하계가 셀 수 없이 존재한다는 것에 나는 밤하늘이 다르게 보였다.
한편 우리 몸은 어떤가. 눈으로 볼 수 없는 세포들이 모여 형상을 만든 것이고 생각을 지배하는 뇌만 해도 우주의 별만큼이나 많은 세포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나는 이런 내용들을 모두 5학년 교실에서 배웠다.
공부시간이 재미있고 즐거웠던 것처럼 나는 슬슬 이원주 선생이 좋아 보였다.
그런데 그런 점에서도 나는 지각생이었다.
“하 하, 저 도라무깡!”
한 3학년 남자애가 수업시간이 끝나고 교무실로 향하는 이원주 선생의 뒷모습에 손가락질을 하며 웃었다.
“니 일로 와봐라.”
우리반의 한 여자애가 그 녀석을 불렀고 그 애는 쫄랑쫄랑 닥아 왔다. 개구쟁이의 표정이 지난날 나를 닮은 것 같기도 했다.
“이 호로자슥아!”
그녀는 내리에 사는 강영주였는데 3학년 남자의 뺨을 짝! 소리가 날만큼 세게 갈겼다.
“니는 애비 에미도 없나? 군사부 일체라는 말도 몬 들어봤나? 이 자슥아!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 카는데 뭐라꼬 씨부리노!”
교실의 모든 시선이 그 둘을 향했다. 영주는 그저 얌전해서 때로 존재감마저 없을 정도인데 그런 행동에 모두의 놀라움은 컸다. 그 녀석도 처음에는 뺨을 만지며 억울함과 반발의 표정을 지었으나 교실 안의 분위기를 의식한 듯 울먹이며 그 자리를 떠났다.
그런데 다음 시간에 또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히 히 도라무깡!”
이번에는 6학년 남학생이었다. 역시 이원주 선생의 뒷모습을 보며 엉덩이를 흔드는 흉내까지 냈다.
“히야, 그카지 마라.”
문상호라는 남학생이 좀 머뭇거리다 항의조로 말했다.
“와, 임마! 개 보고 개라 카듯 도라무깡 보고 도라무깡이라 카는데 니가 와 나서노? 도라무깡이 느그 엄마라도 되나?” 아이마 니 애인이가?“
6학년생은 상호의 배를 쿡쿡 찔러가며 빈정거렸다.
이름은 몰랐지만 그의 얼굴은 익히 알고 있었다. 체격도 좋고 껄렁거리는 패들 중의 하나였다. 그래봤자 우리학교 주먹짱인 편승호의 아래급이겠지만. 그의 언행에 나도 울화가 치밀었으나 힘으로 그를 당할 수는 없었다. 황달자 때문에 알게된 편승호에게 부탁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야, 이 호로자슥아! 니는 애비 에미도 없나?”
앙칼진 소리의 주인공은 우리반 여학생중 제일 왈패인 한명자였다. 또 교실의 모든 눈길이 그 두명을 향했고 나도 놀랐는데 이어서 웃음이 나오려 했다.
명자는 아까 영주의 흉내를 내고 있는 것이다. 아니, 그때 새침떼기 영주가 보여준 돌발상황에 자격지심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그 6학년생은 잠시 멍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곧 얼굴이 일그러지며 주먹을 높이 들었다.
“아니, 이 가시나가 선배한테 ...... ”
“선배 ...... ? 좆까는 소리 하지 마라! 니는 우리 선생님을 놀리면서 그 잘난 선배 찾나?”
“이 씨팔년이 참말로 죽을라꼬 환장했구나?”
그의 주먹을 쥐었던 손이 풀어지며 조금 움직였다. 명자의 뺨이라도 때릴 기세였다. 그런데 남자들은 아직도 감히 나서지 못하는데 여자애들이 우르르 몰려들며 그 앞을 가로 막았다.
“야, 니가 뭐 잘했다고 깡 부리노?”
“와? 누구 팰라꼬? 그래, 해봐라! 니도 우리 오빠 알제? 오야, 그럼 내부터 패 봐라!”
“저 머슴아 상판때기도 지지리 못난기 하는 짓도 양아치네.”
“양아치나 되나? 생긴 것도 하는 짓도 싸그리 걸뱅이 꼬라지다!”
“야들아. 말로만 씨부릴끼 아이라 저 새끼 다구리 함 놔뿔까?”
나는 우리반 여자애들이 이토록 드세고 거칠게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을 그날 처음 알았다.
“이 쌍년들이 참말로 ...... ”
눈을 부라리며 씩씩거리던 6학년생은 발길을 돌렸고 그 뒷모습에 이제는 남자애들까지 합세해 박수와 웃음으로 야유를 보냈다.
생각해보니 우리 교실에서는 이미 도라무깡이라는 단어가 사라졌다. 더구나 다른 학생들이 그 말을 입에 담는 것조차 우리반 아이들은 그냥 넘기지 않는 것이다.
그만큼 모두가 이원주 선생에 대해 존경과 애정을 갖고 있었다. 나는 우리반에서 마지막으로 그녀를 좋아하게 된 학생이었다.
나도 차츰 이원주 선생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산수의 꽤 어려운 문제를 칠판에다 정확히 풀어냈고, 과학이나 사회시간에 질문에 답할 사람을 찾을 때 내 손도 항상 올라가 있었고 지목받으면 언제나 정답을 말했다.
글짓기에서는 내가 1등으로 뽑혔다.
“좋은 글이란 이 문영도처럼 주제와 자신만의 생각을 확실히 정하고 간결하게 써서 남들이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담임은 이런 칭찬까지 해주며 나를 교단으로 불러내 그 글을 낭독하게 했다.
글짓기 시간에 이원주 선생은 ‘어머니’ ‘하늘’ ‘고향’이라는 세가지 제목을 주면서 마음대로 골라서 쓰라고 했다. 나는 ‘고향’을 선택했다.
그때 쓴 글이 다 생각나지는 않지만, 동요나 어른들의 유행가에는 고향을 그리워 하는 노래들이 많다. 그런데 나는 태어나서 한번도 고향을 떠나본 적이 없다. 하지만 언젠가는 고향을 떠나보고 싶다. 바깥 세상은 더욱 크고 많은 기회가 있고 또 내가 모험과 용기를 발휘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고향을 떠나 고향을 그리워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때가 되면 나도 고향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될 것 같다. ...... 대충 그런 내용이었다.
이같은 나의 변화는 성적에서도 나타났다.
당시 우리는 1학기 중간, 1학기 말, 2학기 중간, 학년말 등 4차례 통지표라는 이름의 성적표를 받았다.
5학년 들어 처음 받아 본 통지표에서 나의 석차는 64명 중 3등이었다.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입학한 이래 10등 안에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한 열정적인 교사가 한 학생을 얼마나 바뀌어 놓을 수 있는지를 실증할만한 일이었다.
나의 공부나 성적에 거의 관심이 없었던 엄마도 내 석차를 보고 얼굴이 환해 졌으며 이웃사람들에게 아들자랑 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이것 역시 호사다마(好事多魔)일까, 이원주 선생과 나 사이는 또 틀어져 버렸다.
그 단초는 가정방문이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당시는 1년에 한두번 담임선생이 학생들의 가정을 방문하는 것이 정해진 교육과정의 하나였다. 올해에도 중3인 영미 누나의 담임이 우리집을 방문했고 우리반에도 그 준비가 시작되었다.
그 준비에서도 이원주 선생은 특별했다.
내리국민학교는 내리, 율곡리, 금촌리 등 3개 마을의 학생들이 다니고 있다.
담임은 그 3개 마을의 학생들 집을 지도처럼 그리며 방문계획을 세우며 소요되는 시간을 감안해서 한 학생집에 저녁밥을 먹을 수 있는지 미리 부모한테 알아보도록 했다. 그것도 옷차림 등으로 좀 잘 사는 집을 고른 것 같다.
“선생님은 아무거나 잘 먹으니 반찬은 신경쓰지 마시라고 해.”
이원주 선생은 이렇게 당부했다. 그것은 모든 학생과 가정에 편한 일이었다. 담임 선생이 가정방문을 온다면 대부분 집에서 신경을 쓰고 쌀밥과 반찬들을 준비하는데 지정된 학생 하나를 빼고는 그런 수고를 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우리집도 그 배려에 포함돼 아무 준비 없이 이원주 선생을 맞았다.
“문영도가 아주 잘하고 있어요. 공부도 열심이고 성적도 좋고 학우들과도 잘 어울리고 ......”
엄마는 아들에 대한 칭찬에 황송하면서도 한껏 기분 좋은 표정이었다.
담임은 우리집의 가족상황과 재산상태 등 몇가지를 묻고 내 책상을 한번 훑어 본 뒤 다시 안방으로 와 엄마와 작별인사까지 하고 선반의 책들에 시선이 쏠렸다.
“좋은 책들이 꽤 많군요. 누나들이 독서를 좋아하나 보죠?”
가구나 다른 살림살이도 보잘 것 없고 책이라고는 그 전에 <명심보감>, 맞춤법도 틀린 <오륜행실도>와 공짜로 받은 <활기찬 새마을 운동> 같은 것들밖에 없던 선반에 꽃여 있는 30여권의 책은 확실히 눈길이 갈만 했다. 그대로 지나쳤으면 좋았을텐데 엄마가 한마디 했다.
“아이라예. 이건 다 영도가 보는 책이라예.”
“그래요? 소설에다 시집(詩集)도 많은데, ...... 이 하이네 시집도 ...... ”
이원주 선생은 중얼거리며 그 책을 뽑아 들춰 보았다.
“어! 미영이가 ...... ?”
표지 다음장에 “진급을 축하하며 오빠가”라는 서명 옆에 “다시 문영도에게 이미영”이라는 서명을 발견한 것이다.
다른 책을 열어 보았다. “축 졸업. 담임 박찬욱”이라는 서명 옆에 역시 “다시 문영도에게 이미영”이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4권 째까지 같은 서명을 확인한 그녀의 표정은 굳어 있었고 그 표정 때문에 나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다음날,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4시간동안 수업시간 중에 나는 손을 들었으나 한번도 지명받지 못했다. 이원주 선생은 애초에 나에게 눈길도 주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나 4시간 째 수업이 끝나자 나를 호출했다.
“너 그 바지 벗어봐!”
“예?”
양호실로 끌려올 때부터 뭔가 단단히 혼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단도직입으로 나오는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그 바지 내려 보라구!”
굳은 표정의 그녀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무엇을 훔치다 들켜 주머니 속에 것을 꺼내보라는 명령처럼 거역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쭈삣거리다 결국 바지를 내렸다. 털이 제법 더 자란 자지가 그대로 드러났다.
“허!”
원래 큰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되며 입까지 벌어졌다. 그 반사작용일까, 나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이 이어졌다.
자지에 피가 몰리는 기분이 들더니 순식간에 부풀어 버렸다. 이원주 선생 앞에서 이래서는 안돼! 라고 내 마음을 달래려 했지만 몸이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
“너지? 네가 미영이 ...... 이미영 선생하고 했지?”
빠구리라는 말이 생략되었지만 우리는 둘 다 그 의미를 알고 있었다. 결국 이미영 선생의 이름까지 나오자 자지는 끝이 휘어진 채 그녀 앞에서 끄떡거리기까지 했다.
“네.”
훔친 물건을 꺼내 보인 것처럼 결국 나는 시인했다.
“이 못된 녀석아!”
고함소리와 함께 나는 따귀를 맞았다. 지난날 교실에서 맞던 것보다 강도가 세어 잠시 머리가 핑도는 기분이었다.
“너 때문에 미영이가 얼마나 고통을 받았는지 알아?”
놀라움을 넘어 한껏 분노한 그녀의 표정에 나는 기가 질렸다. 잠시 나에게 경멸스런 눈길을 보내던 그녀는 횅하니 양호실을 빠져 나갔다.
혼자 남은 나는 바지를 끌어 올리며 황당하고 참담한 기분이었다.
그래, 나는 이미영 선생과 빠구리를 했고 그 때문에 그녀가 서럽게 울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게 내 잘못인가? 나만의 잘못인가? ...... 따져 보자면 그녀가 먼저 나를 유혹했고, 딱 한번 그녀가 이별을 통고했을 때 내가 매달렸지만 그때도 그녀가 스스로 옷을 벗었다.
그렇지만 이원주 선생이 가버렸으니 나는 자신을 변호할 기회마저 없다.
그보다는 모처럼 내가 좋아하게 된 이원주 선생과의 사이가 깨져 버렸다는 것이 더 참담하고 안타까웠다.
점심시간 후의 수업중에도 담임은 나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일부러 나를 외면하는 것 같았다.
에이 씨팔, 내 잘못이 아닌데 ...... 반감이 일어나면서도 어떻든 그녀에게 버림받았다는 기분을 떨칠 수 없어 나는 비참하고 스산했다.
수업이 다 끝나고 집으로 향하는 중 마침 저 앞에 가는 고행자가 보였다.
행자는 나와 빠구리를 한 이후 학교에서는 더 이상 나에게 스토커 같은 짓은 하지 않는 터였다.
“행자야!”
그녀를 불러 세우자 방긋 웃으며 나를 기다렸다.
“오늘 느그 집에 갈까?”
“응? 갑자기 우리 집에는 왜 ...... ?”
여인들의 본능적인 내숭일까. 그녀의 반문에 기분이 틀려 퉁명스럽게 말했다.
“느그 집에 가서 우리가 뭐했노? 그런데 시침을 떼노?”
“응. 나는 아직 날짜가 많이 남아서 ...... ”
행자와 나는 첫 빠구리를 하고 그녀의 사연을 알게 되면서 한달에 한번씩은 빠구리를 하기로 약속했다. 꼽추할매와의 약속처럼 월부금을 내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그 월부금을 3회 납부한 것처럼 우리는 세차례나 빠구리를 했고 4회째는 한 5일정도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이원주 선생과의 문제가 있고 행자를 보게 되자 일종의 보상심리처럼 갑자기 그녀와 빠구리라도 해야 풀릴 것 같았다.
5학년에 올라와서 초기에 나는 이원주 선생과 고행자 때문에 내가 시달리고 괴롭힘을 당히는 입장이라고 생각했다.
이원주 선생은 우선 내가 미워했고, 고행자는 자꾸 내 곁에 맴도는 것이 싫었다.
하지만 고행자와는 빠구리를 하고 서로의 아픈 사연을 나누면서 모든 문제가 해소되었다. 게다가 이원주 선생하고도 관계가 한껏 좋아진 것 같았는데 틀어진 것이다.
“와, 며칠 앞당기면 안되나?”
여전히 퉁명스런 내 질문에 행자는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나야 좋지 뭐.”
아, 나는 요즘 학교 생활이 즐겁다.
공부 시간이 기다려 진다.
꽤 어려운 문제를 혼자 힘으로 풀면 그렇게 신날 수가 없다.
내일 배울 부분을 미리 챙겨 보는 예습이나, 배운 것을 다시 돌아보며 완전히 이해를 하고 내 머릿속에 간직하는 복습도 보람있고 기쁜 일이다.
교과서란 정말 재미있고 유익한 책이다. 이미 배운 교과서도 그렇지만 4살, 6살이 많은 두 누나의 교과서들에서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재미있는 내용들이 너무나 많다.
그리고 담임인 이원주 선생을 좋아하게 되었다.
되돌아 보면 나의 이같은 변화는 이원주 선생에 대한 반감, 혹은 악연(惡緣)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의 3번 째 여인, 아니 그보다는 어느 여배우를 꼭 빼냈다는 아름다움과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고 흠모하는 녀석들도 많은 이미영 선생과 빠구리를 했다는 것이 나에게는 세상을 다 얻은 것만큼이나 놀라운 일이었다.
그런 이미영 선생이 전근을 가며 대신 전근 온 선생이 이원주 선생이었다.
나는 우선 그녀의 뚱뚱하고 못생긴 것이 싫었다. 오죽하면 부임하는 첫날부터 ‘도라무깡’이라는 별명을 얻었을까.
그녀는 이미영 선생이 가르치던 3학년 반과 살던 집까지 인수받았다. 공부시간이 끝나도 학생들은 주위에 몰려 들었고, 교무실에서는 교장 선생까지 따리 붙듯이 그녀 옆을 맴돌고 그녀의 말 한마디에 선생들이 깔깔 웃는 장면에서도 배알이 꼴렸다.
이미영 선생을 떠나보낸 그리움과 아쉬움의 반작용처럼 그녀만 보면 밉고 얄미웠다.
그런 감정의 표출일까, 4학년 때는 그녀를 놀리는 그림을 칠판에 그렸다가 직통으로 그녀에게 걸린 적도 있었다.
호박 같은 얼굴에 큰 눈과 도톰한 입술을 그리고 그 밑에 드럼통을 받쳐 놓으면 누가 보더라도 이원주 선생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는 한컷의 만화였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이원주 선생이 5학년으로 올라간 우리반의 담임을 맡은 것으로 악연은 계속 이어지게 된다.
첫날 출석을 부를 때부터 나를 유심히 보는 것 같더니 며칠 후 나를 지명해 칠판에 문제를 풀도록 했다.
사다리꼴의 넓이를 내라는 것인데 나는 하지 못했다. 솔직히 그것은 내 잘못이다.
4학년 산수시간에 모두 배운 것인데 그 시간에 나는 소설책을 몰래 보고 있었던지 딴 생각에 빠졌었는지 도무지 깜깜이었다. 그때 나는 넓이와 둘레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던 처지였다.
결국 우리반 학생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뺨을 몇 대 맞는 창피를 당해야 했다.
나도 오기가 있는 놈이다.
다시는 도라무깡에게 약점을 잡히지 않겠다고 작정했다.
집에 오자마자 나는 4학년 산수책을 펴들었다. 뒷부분에 삼각형, 정사각형, 직사각형, 원, 마름모, 사다리꼴 등의 넓이를 내는 공식이 있었다. 이어서 정육면체, 원기둥, 원뿔, 공 등의 부피를 내는 공식과 연습문제들도 있었다.
나는 여태껏 몰랐던 상당부분을 책을 차근차근 읽어보고 문제들을 풀어가며 새롭게 알아 갔다. 그러나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많았다.
이를테면 파이(π)라는 것이 무엇인지, 원의 둘레나 넓이를 낼 때 왜 지름이나 반지름의 제곱에 3.14를 곱해줘야 하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영미누나에게 도움을 청했다.
“아니, 우리집 꼴통 영도가 무슨 바람이 불어 자습을 다 하노?”
영미 누나는 먼저 나를 놀려 댔지만 따져 보면 저나 나나 꼴통이기는 마찬가지다. 학교를 다니는 우리집 3남매중 영숙 누나만 반에서 1~3등의 실력을 자랑하지만 지난번 학년말 통지표에서 영미 누나는 28등, 나는 36등으로 고만고만이다.
그래도 4년이라는 밥그릇 차이가 있는 것인지 누나는 내가 모르는 문제들을 술술 풀어 주면서 나를 이해시켰다. 나는 내일 배우게 될 앞부분까지 누나의 가르침을 받았다.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하며 나는 산수책과 씨름을 했다. 이제 그 전의 문제나 새로 배울 것에도 별로 걸릴 것이 없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산수 시간에 나는 수업에 열중했다. 이원주 선생의 특징중 하나가 수업중에 계속 학생들에게 질문하고 의견을 물으며 문제를 풀게 하는데 나에게는 눈도 돌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내가 예습한 항목들이 더 잘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것은 신기했다.
이어지는 국어, 자연, 사회시간에도 나는 정신을 집중했다. 언제 또 질문이나 문제를 풀 일이 생길지 모르지만 나는 절대로 도라무깡에게 약점을 잡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던 중 나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우리반의 대부분 아이들이 눈이 초롱초롱한 채 담임의 말이나 칠판에 쓰는 것을 주목하고 있었다.
이원주 선생은 한마디로 열정적이었다. 때로는 사근사근하게 말하다 칠판에 분필로 몇가지 요점을 적고는 톤이 높아지며 움직이는 손놀림을 보면 마치 우리들 머릿속에 지식을 쑤셔 넣으려는 동작 같기도 했다.
나는 이 교실의 풍경이 마치 나만 오래 떠나 있다가 다시 찾아온 것처럼 낯설었다. 머리를 갸우뚱하며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우선 내가 변했다. 우리반 학생들도 변했다. 그리고 이원주 선생도 ...... ? 아니, 나는 그녀의 그 전 모습을 모른다. ...... 그렇다면 이원주 선생이 나뿐 아니라 아이들의 눈빛이나 이 교실 전체의 분위기를 바꾼 것일까?
나는 그 전의 공부시간들을 생각해보았다. 역시 그렇다. 변화는 이원주 선생 때문이었다.
4학년의 담임은 심재철 선생이었다.
학년말 통지표에 36등을 받은 그때 나는 어떻게 공부를 했고 우리반의 분위기는 어땠었던가? ......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담임의 늘 피로하고 졸린 듯한 표정이 생각난다. 국어시간에는 몇 명을 지명해서 차례로 그 과목을 읽게 하고 어려운 낱말 몇 개를 및줄 치게 하고 풀이해 주었다. 여전히 피로하고 졸린 듯한 표정으로.
산수나 자연시간에는 거의 교과서의 내용을 혼자 읽고 더러 칠판에 공식의 설명이나 문제 푸는 방법을 적고, 누구를 지명해서 문제를 풀기도 했지만 교실의 분위기는 역시 생활에 지친 듯한 담임을 닮아 맥이 없었다.
3학년 때나 2학년 때를 생각해보면 더 기억이 아련하다.
그때의 담임들도 가끔 한눈파는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고, 숙제 검사를 하며 안 해온 아이들에게 종아리를 때렸으며, 꼭 피로하거나 졸리지는 않았더라도 우리들에게는 근본적으로 무심했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무심이라는 점에서는 나도 비슷했다. 한번도 공부나 성적에 대해 신경을 쓴 적이 없었다. 그저 학교가 있고 남들이 다니니까 나도 매일 밥을 먹는 것처럼 다닌다는 생각이었고, 나의 공부하는 태도나 성적에 부모도 아무 채근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원주 선생은 달랐다.
“너희는 이 비슷한 곱셈이나 나눗셈을 왜 자꾸 반복해서 해야 하느냐 하고 짜증이 날지도 몰라. 사실 주판으로 하면 계산을 훨씬 빨리 할 수도 있고 컴퓨터, 즉 전산기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더 발전하면 복잡한 계산을 사람이 직접 할 필요도 없을꺼야. 그렇지만 산수는,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가면 수학이라고 하고 대수와 기하, 미분과 적분 등 더욱 복잡하게 나뉘고 항상 중요한 과목이 되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 두뇌에 영양을 공급하고 더욱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밥을 먹으며 그 영양분으로 몸을 키우고 체조나 운동을 통해서 몸의 능력을 키우 듯 산수는 우리의 뇌를 성장시키는 영양소며 훈련이란다.”
그 말을 다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산수를 열심히 했고 또 재미있었다.
국어책에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내용을 담은 것이 있었다.
내가 4학년 때라면, 혹은 심재철 선생이 5학년 담임이었다면, 우리는 번갈아 소리 내어 그 과목을 한번 읽고 어려운 낱말의 풀이나 짧은글 짓기 같은 것으로 공부가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이원주 선생은 당시의 대부분 사람들이 지구는 평평하고 끝에 절벽이 있다고 생각했으며, 서양인들이 동양의 향료나 후추가루에 얼마나 집착했고, 그래서 오랜 시간과 힘이 드는 인도항로보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 했던 배경들을 세세히 설명해 주었다.
자연시간에서도 나는 경이로움을 느꼈다.
한 예로 여름철이면 개구리는 냇가나 들판에 지천으로 깔려 있다. 그중 큰놈올 잡아 다리만 찢어 구워먹기도 했고 올챙이가 개구리 새끼라는 것은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뒷다리만 나온 놈이나 앞다리까지 조금 자란 올챙이를 우리는 갖고 놀다 패대기치기도 했다.
그러나 올챙이는 물고기처럼 아가미로 숨을 쉬고 개구리는 우리와 같은 허파로 숨을 쉰다는 것을 나는 몰랐고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런데 교과서에는 그 내용이 적혀 있었고 나는 공부시간에 또 다른 동물들의 흥미로운 생태들을 더 많이 알게 되었다.
하여튼 교과서들을 읽으며 얻게 된 새로운 지식이나 이원주 선생의 설명을 덧붙여 더욱 넓게, 혹은 깊게 알게 되는 내용들은 너무나 새롭고 신비로우며 재미있었다.
우리가 사는 땅이 1년을 주기로 태양을 돌며 또 자전을 하고, 달은 지구에서 떨어져 나간 돌덩이로 매일 지구를 맴돌며, 그보다도 저 하늘이 얼마나 광활한 우주의 일부분이며 태양계를 포함한 은하계가 셀 수 없이 존재한다는 것에 나는 밤하늘이 다르게 보였다.
한편 우리 몸은 어떤가. 눈으로 볼 수 없는 세포들이 모여 형상을 만든 것이고 생각을 지배하는 뇌만 해도 우주의 별만큼이나 많은 세포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나는 이런 내용들을 모두 5학년 교실에서 배웠다.
공부시간이 재미있고 즐거웠던 것처럼 나는 슬슬 이원주 선생이 좋아 보였다.
그런데 그런 점에서도 나는 지각생이었다.
“하 하, 저 도라무깡!”
한 3학년 남자애가 수업시간이 끝나고 교무실로 향하는 이원주 선생의 뒷모습에 손가락질을 하며 웃었다.
“니 일로 와봐라.”
우리반의 한 여자애가 그 녀석을 불렀고 그 애는 쫄랑쫄랑 닥아 왔다. 개구쟁이의 표정이 지난날 나를 닮은 것 같기도 했다.
“이 호로자슥아!”
그녀는 내리에 사는 강영주였는데 3학년 남자의 뺨을 짝! 소리가 날만큼 세게 갈겼다.
“니는 애비 에미도 없나? 군사부 일체라는 말도 몬 들어봤나? 이 자슥아!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 카는데 뭐라꼬 씨부리노!”
교실의 모든 시선이 그 둘을 향했다. 영주는 그저 얌전해서 때로 존재감마저 없을 정도인데 그런 행동에 모두의 놀라움은 컸다. 그 녀석도 처음에는 뺨을 만지며 억울함과 반발의 표정을 지었으나 교실 안의 분위기를 의식한 듯 울먹이며 그 자리를 떠났다.
그런데 다음 시간에 또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히 히 도라무깡!”
이번에는 6학년 남학생이었다. 역시 이원주 선생의 뒷모습을 보며 엉덩이를 흔드는 흉내까지 냈다.
“히야, 그카지 마라.”
문상호라는 남학생이 좀 머뭇거리다 항의조로 말했다.
“와, 임마! 개 보고 개라 카듯 도라무깡 보고 도라무깡이라 카는데 니가 와 나서노? 도라무깡이 느그 엄마라도 되나?” 아이마 니 애인이가?“
6학년생은 상호의 배를 쿡쿡 찔러가며 빈정거렸다.
이름은 몰랐지만 그의 얼굴은 익히 알고 있었다. 체격도 좋고 껄렁거리는 패들 중의 하나였다. 그래봤자 우리학교 주먹짱인 편승호의 아래급이겠지만. 그의 언행에 나도 울화가 치밀었으나 힘으로 그를 당할 수는 없었다. 황달자 때문에 알게된 편승호에게 부탁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야, 이 호로자슥아! 니는 애비 에미도 없나?”
앙칼진 소리의 주인공은 우리반 여학생중 제일 왈패인 한명자였다. 또 교실의 모든 눈길이 그 두명을 향했고 나도 놀랐는데 이어서 웃음이 나오려 했다.
명자는 아까 영주의 흉내를 내고 있는 것이다. 아니, 그때 새침떼기 영주가 보여준 돌발상황에 자격지심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그 6학년생은 잠시 멍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곧 얼굴이 일그러지며 주먹을 높이 들었다.
“아니, 이 가시나가 선배한테 ...... ”
“선배 ...... ? 좆까는 소리 하지 마라! 니는 우리 선생님을 놀리면서 그 잘난 선배 찾나?”
“이 씨팔년이 참말로 죽을라꼬 환장했구나?”
그의 주먹을 쥐었던 손이 풀어지며 조금 움직였다. 명자의 뺨이라도 때릴 기세였다. 그런데 남자들은 아직도 감히 나서지 못하는데 여자애들이 우르르 몰려들며 그 앞을 가로 막았다.
“야, 니가 뭐 잘했다고 깡 부리노?”
“와? 누구 팰라꼬? 그래, 해봐라! 니도 우리 오빠 알제? 오야, 그럼 내부터 패 봐라!”
“저 머슴아 상판때기도 지지리 못난기 하는 짓도 양아치네.”
“양아치나 되나? 생긴 것도 하는 짓도 싸그리 걸뱅이 꼬라지다!”
“야들아. 말로만 씨부릴끼 아이라 저 새끼 다구리 함 놔뿔까?”
나는 우리반 여자애들이 이토록 드세고 거칠게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을 그날 처음 알았다.
“이 쌍년들이 참말로 ...... ”
눈을 부라리며 씩씩거리던 6학년생은 발길을 돌렸고 그 뒷모습에 이제는 남자애들까지 합세해 박수와 웃음으로 야유를 보냈다.
생각해보니 우리 교실에서는 이미 도라무깡이라는 단어가 사라졌다. 더구나 다른 학생들이 그 말을 입에 담는 것조차 우리반 아이들은 그냥 넘기지 않는 것이다.
그만큼 모두가 이원주 선생에 대해 존경과 애정을 갖고 있었다. 나는 우리반에서 마지막으로 그녀를 좋아하게 된 학생이었다.
나도 차츰 이원주 선생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산수의 꽤 어려운 문제를 칠판에다 정확히 풀어냈고, 과학이나 사회시간에 질문에 답할 사람을 찾을 때 내 손도 항상 올라가 있었고 지목받으면 언제나 정답을 말했다.
글짓기에서는 내가 1등으로 뽑혔다.
“좋은 글이란 이 문영도처럼 주제와 자신만의 생각을 확실히 정하고 간결하게 써서 남들이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담임은 이런 칭찬까지 해주며 나를 교단으로 불러내 그 글을 낭독하게 했다.
글짓기 시간에 이원주 선생은 ‘어머니’ ‘하늘’ ‘고향’이라는 세가지 제목을 주면서 마음대로 골라서 쓰라고 했다. 나는 ‘고향’을 선택했다.
그때 쓴 글이 다 생각나지는 않지만, 동요나 어른들의 유행가에는 고향을 그리워 하는 노래들이 많다. 그런데 나는 태어나서 한번도 고향을 떠나본 적이 없다. 하지만 언젠가는 고향을 떠나보고 싶다. 바깥 세상은 더욱 크고 많은 기회가 있고 또 내가 모험과 용기를 발휘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고향을 떠나 고향을 그리워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때가 되면 나도 고향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될 것 같다. ...... 대충 그런 내용이었다.
이같은 나의 변화는 성적에서도 나타났다.
당시 우리는 1학기 중간, 1학기 말, 2학기 중간, 학년말 등 4차례 통지표라는 이름의 성적표를 받았다.
5학년 들어 처음 받아 본 통지표에서 나의 석차는 64명 중 3등이었다.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입학한 이래 10등 안에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한 열정적인 교사가 한 학생을 얼마나 바뀌어 놓을 수 있는지를 실증할만한 일이었다.
나의 공부나 성적에 거의 관심이 없었던 엄마도 내 석차를 보고 얼굴이 환해 졌으며 이웃사람들에게 아들자랑 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이것 역시 호사다마(好事多魔)일까, 이원주 선생과 나 사이는 또 틀어져 버렸다.
그 단초는 가정방문이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당시는 1년에 한두번 담임선생이 학생들의 가정을 방문하는 것이 정해진 교육과정의 하나였다. 올해에도 중3인 영미 누나의 담임이 우리집을 방문했고 우리반에도 그 준비가 시작되었다.
그 준비에서도 이원주 선생은 특별했다.
내리국민학교는 내리, 율곡리, 금촌리 등 3개 마을의 학생들이 다니고 있다.
담임은 그 3개 마을의 학생들 집을 지도처럼 그리며 방문계획을 세우며 소요되는 시간을 감안해서 한 학생집에 저녁밥을 먹을 수 있는지 미리 부모한테 알아보도록 했다. 그것도 옷차림 등으로 좀 잘 사는 집을 고른 것 같다.
“선생님은 아무거나 잘 먹으니 반찬은 신경쓰지 마시라고 해.”
이원주 선생은 이렇게 당부했다. 그것은 모든 학생과 가정에 편한 일이었다. 담임 선생이 가정방문을 온다면 대부분 집에서 신경을 쓰고 쌀밥과 반찬들을 준비하는데 지정된 학생 하나를 빼고는 그런 수고를 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우리집도 그 배려에 포함돼 아무 준비 없이 이원주 선생을 맞았다.
“문영도가 아주 잘하고 있어요. 공부도 열심이고 성적도 좋고 학우들과도 잘 어울리고 ......”
엄마는 아들에 대한 칭찬에 황송하면서도 한껏 기분 좋은 표정이었다.
담임은 우리집의 가족상황과 재산상태 등 몇가지를 묻고 내 책상을 한번 훑어 본 뒤 다시 안방으로 와 엄마와 작별인사까지 하고 선반의 책들에 시선이 쏠렸다.
“좋은 책들이 꽤 많군요. 누나들이 독서를 좋아하나 보죠?”
가구나 다른 살림살이도 보잘 것 없고 책이라고는 그 전에 <명심보감>, 맞춤법도 틀린 <오륜행실도>와 공짜로 받은 <활기찬 새마을 운동> 같은 것들밖에 없던 선반에 꽃여 있는 30여권의 책은 확실히 눈길이 갈만 했다. 그대로 지나쳤으면 좋았을텐데 엄마가 한마디 했다.
“아이라예. 이건 다 영도가 보는 책이라예.”
“그래요? 소설에다 시집(詩集)도 많은데, ...... 이 하이네 시집도 ...... ”
이원주 선생은 중얼거리며 그 책을 뽑아 들춰 보았다.
“어! 미영이가 ...... ?”
표지 다음장에 “진급을 축하하며 오빠가”라는 서명 옆에 “다시 문영도에게 이미영”이라는 서명을 발견한 것이다.
다른 책을 열어 보았다. “축 졸업. 담임 박찬욱”이라는 서명 옆에 역시 “다시 문영도에게 이미영”이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4권 째까지 같은 서명을 확인한 그녀의 표정은 굳어 있었고 그 표정 때문에 나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다음날,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4시간동안 수업시간 중에 나는 손을 들었으나 한번도 지명받지 못했다. 이원주 선생은 애초에 나에게 눈길도 주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나 4시간 째 수업이 끝나자 나를 호출했다.
“너 그 바지 벗어봐!”
“예?”
양호실로 끌려올 때부터 뭔가 단단히 혼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단도직입으로 나오는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그 바지 내려 보라구!”
굳은 표정의 그녀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무엇을 훔치다 들켜 주머니 속에 것을 꺼내보라는 명령처럼 거역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쭈삣거리다 결국 바지를 내렸다. 털이 제법 더 자란 자지가 그대로 드러났다.
“허!”
원래 큰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되며 입까지 벌어졌다. 그 반사작용일까, 나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이 이어졌다.
자지에 피가 몰리는 기분이 들더니 순식간에 부풀어 버렸다. 이원주 선생 앞에서 이래서는 안돼! 라고 내 마음을 달래려 했지만 몸이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
“너지? 네가 미영이 ...... 이미영 선생하고 했지?”
빠구리라는 말이 생략되었지만 우리는 둘 다 그 의미를 알고 있었다. 결국 이미영 선생의 이름까지 나오자 자지는 끝이 휘어진 채 그녀 앞에서 끄떡거리기까지 했다.
“네.”
훔친 물건을 꺼내 보인 것처럼 결국 나는 시인했다.
“이 못된 녀석아!”
고함소리와 함께 나는 따귀를 맞았다. 지난날 교실에서 맞던 것보다 강도가 세어 잠시 머리가 핑도는 기분이었다.
“너 때문에 미영이가 얼마나 고통을 받았는지 알아?”
놀라움을 넘어 한껏 분노한 그녀의 표정에 나는 기가 질렸다. 잠시 나에게 경멸스런 눈길을 보내던 그녀는 횅하니 양호실을 빠져 나갔다.
혼자 남은 나는 바지를 끌어 올리며 황당하고 참담한 기분이었다.
그래, 나는 이미영 선생과 빠구리를 했고 그 때문에 그녀가 서럽게 울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게 내 잘못인가? 나만의 잘못인가? ...... 따져 보자면 그녀가 먼저 나를 유혹했고, 딱 한번 그녀가 이별을 통고했을 때 내가 매달렸지만 그때도 그녀가 스스로 옷을 벗었다.
그렇지만 이원주 선생이 가버렸으니 나는 자신을 변호할 기회마저 없다.
그보다는 모처럼 내가 좋아하게 된 이원주 선생과의 사이가 깨져 버렸다는 것이 더 참담하고 안타까웠다.
점심시간 후의 수업중에도 담임은 나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일부러 나를 외면하는 것 같았다.
에이 씨팔, 내 잘못이 아닌데 ...... 반감이 일어나면서도 어떻든 그녀에게 버림받았다는 기분을 떨칠 수 없어 나는 비참하고 스산했다.
수업이 다 끝나고 집으로 향하는 중 마침 저 앞에 가는 고행자가 보였다.
행자는 나와 빠구리를 한 이후 학교에서는 더 이상 나에게 스토커 같은 짓은 하지 않는 터였다.
“행자야!”
그녀를 불러 세우자 방긋 웃으며 나를 기다렸다.
“오늘 느그 집에 갈까?”
“응? 갑자기 우리 집에는 왜 ...... ?”
여인들의 본능적인 내숭일까. 그녀의 반문에 기분이 틀려 퉁명스럽게 말했다.
“느그 집에 가서 우리가 뭐했노? 그런데 시침을 떼노?”
“응. 나는 아직 날짜가 많이 남아서 ...... ”
행자와 나는 첫 빠구리를 하고 그녀의 사연을 알게 되면서 한달에 한번씩은 빠구리를 하기로 약속했다. 꼽추할매와의 약속처럼 월부금을 내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그 월부금을 3회 납부한 것처럼 우리는 세차례나 빠구리를 했고 4회째는 한 5일정도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이원주 선생과의 문제가 있고 행자를 보게 되자 일종의 보상심리처럼 갑자기 그녀와 빠구리라도 해야 풀릴 것 같았다.
5학년에 올라와서 초기에 나는 이원주 선생과 고행자 때문에 내가 시달리고 괴롭힘을 당히는 입장이라고 생각했다.
이원주 선생은 우선 내가 미워했고, 고행자는 자꾸 내 곁에 맴도는 것이 싫었다.
하지만 고행자와는 빠구리를 하고 서로의 아픈 사연을 나누면서 모든 문제가 해소되었다. 게다가 이원주 선생하고도 관계가 한껏 좋아진 것 같았는데 틀어진 것이다.
“와, 며칠 앞당기면 안되나?”
여전히 퉁명스런 내 질문에 행자는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나야 좋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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