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가
지원이 아버지의 동향보고라는 말에 순간적으로 민간인 사찰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지원이 아버지인 변동규 국장이 내 정황을 살피고 있었다는 것이 아니라, 내게 새로운 사람이 생겼다는 것과 그 사람과 상관없이도 지원이와 내가 이미 오래전에 헤어진 사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야 하는 것이었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 성림씨에게 가게를 부탁하고 밖으로 나가려다가, 성림씨가 알바생이 아니라, 이 이야기의 중요한 당사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변 국장님. 여기서 이러실 게 아니라, 밖에 나가서 이야기를 좀 나누시죠. 괜찮으시면 지원이도 부르는 것이 좋겠습니다."
"좋아. 3자 대면을 하지. 음... 여기서 유성호텔이 가깝지. 거기 커피숍으로 오라고 하게."
"전 지원이 전화번호를 모릅니다."
"응?"
"지웠습니다. 지금 제 전화엔 지원이 연락처가 없습니다."
변 국장이 처음으로 얼굴빛을 바꿨다. 자기 전화로 딸에게 전화를 걸어 호텔 커피숍으로 나오라고 하는 목소리가 사뭇 떨리는 게 느껴졌다. 3자 대면 이야기가 나올 때까지만 해도 낯빛이 좋지 못했던 성림씨는 전화번호가 없다는 말에 이내 화색이 됐다. 먼저 가게 문을 열고 나서는 변 국장을 보면서 난 키홀더와 지갑을 챙기고는 계산대를 지키고 있는 성림씨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뭐해요. 나가야죠?"
"네? 저도요?"
"그럼요. 당사자잖아요. 나랑 결혼할 거잖아요. 성림씨. 지금 위기라고요. 결혼 상대자에게 옛 애인의 아버지가 찾아온 거라고요."
"난 오라버니를 믿습니다. 흔들리지 않습니다."
성림씨는 언제나처럼 맹목적이었고, 난 그런 성림씨가 여전히 좋았다. 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는 내가 뭔가 훌륭한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게 했다. 편의점 문을 닫고, 잠시 외출중이라는 쪽지를 문에 붙여놓는 것을 물끄러미 서서 보고 있던 변 국장이 내 뒤를 따라나선 편의점 알바생이라고 생각했던 성림씨를 봤고, 그 성림씨의 손을 잡고 있는 나를 보더니 갑자기 격노했다.
"뭔가? 자네."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결혼할 사람이 있다고. 가시죠. 지원이에게도 사실을 설명해야 할 테니까요."
"자네. 예의가 없군."
무턱대고 소리를 질렀다면, 좀 나았을 것이다.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나와 성림씨를 벌레보듯 하는 변 국장의 태도에 화가 났다. 그리고 그 순간 말도 안되는 경험을 다시 한 번 하게 됐다. 기압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할 때에 들리는 윙하는 소리가 귀에 들리더니 곧 말도 못하게 감각이 예민하게 변했다. 시간이 느리게 느껴질 정도로 움직이는 모든 물체가 선명하고 느리게 보였다. hd화질의 tv를 순간 정지시킨 것처럼 모든 사물이 내 눈앞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변 국장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고 있었다. 아니 그냥 심장의 박동이 들린 것이 아니라, 혈액이 이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펄떡거리는 심장으로 조용히 이동하는 혈액의 움직임이 눈에 잡힐 것처럼 생생하게 보였는데, 그 때에 잡은 손으로 뭔가 뜨거운 것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놀랍게도 성림씨의 감정이었다. 부끄러움과 수치심, 그리고 놀라울만큼 거대한 적의가 맞잡은 장심을 통해 내게로 밀려왔고, 성림씨의 적대감은 내 분노와 합쳐져서 하나의 상상을 떠올리게 했다. 내가 겪었던 그 고통. 심장을 쥐어짜는 것처럼 아팠던 그 고통을 저 도도한 권력자에게 주고 싶다는 뚜렷한 목표의식을 가진 생각을 하게 됐고, 난 2미터쯤 떨어져 있는 변 국장을 향해 손을 뻗어 허공을 쥐었다. 아니 내 눈 앞에 펼쳐져 있던 그 선명한 생각의 풍경에서 변 국장의 심장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변국장은 내 눈앞에서 눈을 뒤집으며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쓰러지는 사람을 보면서 놀라 현상에서 깨어났다. 나는 재빨리 119에 전화를 걸었고, 변 국장의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내서 지원이에게 병원으로 올 것을 이야기했다. 놀란 지원이가 어머니에게 연락을 했는지, 병원엔 지원이의 어머니가 오셨는데, 오자마자 침착하게 상황에 대해 물으셔서, 난 지원이 일로 나를 찾아오셨다가 이야기를 나누려고 커피숍을 가려고 편의점 문을 닫으려는데 갑자기 쓰러지셨다고 말했다.
"미안하네. 이 어른이 워낙 격정적이시라서."
"아닙니다. 저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것 같아 제가 죄송스럽습니다."
"그래... 자네 생각엔 변함이 없는 거겠지. 우리 지원이랑 말이야."
"네. 그렇습니다."
"즉답이로군. 기분이 나빠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래. 수고했고, 이만 가보게."
"네."
내가 지원이랑 사귈 때도 어머니는 나와의 사이를 완강하게 반대했었다고 들었다. 병원의 로비로 내려가자 성림씨가 눈을 감고 천천히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눈을 뜬 그녀의 눈동자에서 파란색 빛이 살짝 스치고 지나는 것이 보였다.
"어떻게 된 거죠? 오라버니.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요. 내가 한 것 같은데,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어요. 무서워요."
"나도 어떻게 된 것인지 몰라요. 그래도 걱정말아요. 무슨 일이 있어도 성림씨는 내가 지킬 거니까요."
"오라버니를 믿어요. 그런데, 뭔가 해낸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몸이 떨리고 전율이 일어나요. 뭔가 내 안에서 자라나는 느낌이 들어요. 좋아요."
몽롱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이대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난 저녁 알바인 호정이에게 전화를 걸어서, 3만원을 주기로 하고 오늘 하루만 지금 출근해 달라 부탁했고, 허락을 얻어냈다. 수업중인 호정이를 기다렸다가 키 홀더에서 편의점 키를 주고 나서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성림씨는 여전히 흥분 상태였는데, 뭔가 꿈을 꾸는 사람처럼 볼을 붉히면서 허공에 손을 뻗고는 손을 쥐었다 폈다 했다. 아마 내가 했던 일을 흉내내는 모양이었고, 그 행동으로 나는 그녀가 내가 했던 경험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방안에 들어와서 난 그녀를 소파에 앉히고 물었다.
"성림씨, 혹시 아까 전에요. 그 변국장의 심장을 내가 쥐었을 때를 기억해요?"
"네. 너무 생생해서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거 진짜 신기하지 않았어요. 피가 흐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줄 몰랐어요. 쿵쾅거리는 심장으로 향하는 혈액의 소리라. 등줄기가 쭈삣하고 서는 느낌이었어요."
"성림씨도 그걸 들었군요. 그런데,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생기게 된 거죠?"
"모르겠어요. 하지만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네? 어떻게요."
"실험을 해보면 되요. 시험해 보고 싶은 사람이 있어요."
"누구요?"
"리경표라는 사람이에요. 지난 달에 하나원에서 퇴소를 했어요. 지금 안양에 살고 있고요. 나를 팔아먹은 놈이에요. 오라버니, 나 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을 죽이고 싶어요. 오라버니의 이 방법이라면 그 사람을 우리가 죽인다고 해도 누가 알겠어요. 할 수 있을 거에요. 그쵸?"
섬뜩했다. 만약 변국장처럼 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을 죽일 수도 있을 것이다. 조건은 완벽한 편이었다. 그는 완벽할만큼의 적의를 가질 수 있는 대상이었다.
지원이 아버지의 동향보고라는 말에 순간적으로 민간인 사찰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지원이 아버지인 변동규 국장이 내 정황을 살피고 있었다는 것이 아니라, 내게 새로운 사람이 생겼다는 것과 그 사람과 상관없이도 지원이와 내가 이미 오래전에 헤어진 사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야 하는 것이었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 성림씨에게 가게를 부탁하고 밖으로 나가려다가, 성림씨가 알바생이 아니라, 이 이야기의 중요한 당사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변 국장님. 여기서 이러실 게 아니라, 밖에 나가서 이야기를 좀 나누시죠. 괜찮으시면 지원이도 부르는 것이 좋겠습니다."
"좋아. 3자 대면을 하지. 음... 여기서 유성호텔이 가깝지. 거기 커피숍으로 오라고 하게."
"전 지원이 전화번호를 모릅니다."
"응?"
"지웠습니다. 지금 제 전화엔 지원이 연락처가 없습니다."
변 국장이 처음으로 얼굴빛을 바꿨다. 자기 전화로 딸에게 전화를 걸어 호텔 커피숍으로 나오라고 하는 목소리가 사뭇 떨리는 게 느껴졌다. 3자 대면 이야기가 나올 때까지만 해도 낯빛이 좋지 못했던 성림씨는 전화번호가 없다는 말에 이내 화색이 됐다. 먼저 가게 문을 열고 나서는 변 국장을 보면서 난 키홀더와 지갑을 챙기고는 계산대를 지키고 있는 성림씨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뭐해요. 나가야죠?"
"네? 저도요?"
"그럼요. 당사자잖아요. 나랑 결혼할 거잖아요. 성림씨. 지금 위기라고요. 결혼 상대자에게 옛 애인의 아버지가 찾아온 거라고요."
"난 오라버니를 믿습니다. 흔들리지 않습니다."
성림씨는 언제나처럼 맹목적이었고, 난 그런 성림씨가 여전히 좋았다. 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는 내가 뭔가 훌륭한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게 했다. 편의점 문을 닫고, 잠시 외출중이라는 쪽지를 문에 붙여놓는 것을 물끄러미 서서 보고 있던 변 국장이 내 뒤를 따라나선 편의점 알바생이라고 생각했던 성림씨를 봤고, 그 성림씨의 손을 잡고 있는 나를 보더니 갑자기 격노했다.
"뭔가? 자네."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결혼할 사람이 있다고. 가시죠. 지원이에게도 사실을 설명해야 할 테니까요."
"자네. 예의가 없군."
무턱대고 소리를 질렀다면, 좀 나았을 것이다.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나와 성림씨를 벌레보듯 하는 변 국장의 태도에 화가 났다. 그리고 그 순간 말도 안되는 경험을 다시 한 번 하게 됐다. 기압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할 때에 들리는 윙하는 소리가 귀에 들리더니 곧 말도 못하게 감각이 예민하게 변했다. 시간이 느리게 느껴질 정도로 움직이는 모든 물체가 선명하고 느리게 보였다. hd화질의 tv를 순간 정지시킨 것처럼 모든 사물이 내 눈앞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변 국장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고 있었다. 아니 그냥 심장의 박동이 들린 것이 아니라, 혈액이 이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펄떡거리는 심장으로 조용히 이동하는 혈액의 움직임이 눈에 잡힐 것처럼 생생하게 보였는데, 그 때에 잡은 손으로 뭔가 뜨거운 것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놀랍게도 성림씨의 감정이었다. 부끄러움과 수치심, 그리고 놀라울만큼 거대한 적의가 맞잡은 장심을 통해 내게로 밀려왔고, 성림씨의 적대감은 내 분노와 합쳐져서 하나의 상상을 떠올리게 했다. 내가 겪었던 그 고통. 심장을 쥐어짜는 것처럼 아팠던 그 고통을 저 도도한 권력자에게 주고 싶다는 뚜렷한 목표의식을 가진 생각을 하게 됐고, 난 2미터쯤 떨어져 있는 변 국장을 향해 손을 뻗어 허공을 쥐었다. 아니 내 눈 앞에 펼쳐져 있던 그 선명한 생각의 풍경에서 변 국장의 심장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변국장은 내 눈앞에서 눈을 뒤집으며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쓰러지는 사람을 보면서 놀라 현상에서 깨어났다. 나는 재빨리 119에 전화를 걸었고, 변 국장의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내서 지원이에게 병원으로 올 것을 이야기했다. 놀란 지원이가 어머니에게 연락을 했는지, 병원엔 지원이의 어머니가 오셨는데, 오자마자 침착하게 상황에 대해 물으셔서, 난 지원이 일로 나를 찾아오셨다가 이야기를 나누려고 커피숍을 가려고 편의점 문을 닫으려는데 갑자기 쓰러지셨다고 말했다.
"미안하네. 이 어른이 워낙 격정적이시라서."
"아닙니다. 저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것 같아 제가 죄송스럽습니다."
"그래... 자네 생각엔 변함이 없는 거겠지. 우리 지원이랑 말이야."
"네. 그렇습니다."
"즉답이로군. 기분이 나빠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래. 수고했고, 이만 가보게."
"네."
내가 지원이랑 사귈 때도 어머니는 나와의 사이를 완강하게 반대했었다고 들었다. 병원의 로비로 내려가자 성림씨가 눈을 감고 천천히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눈을 뜬 그녀의 눈동자에서 파란색 빛이 살짝 스치고 지나는 것이 보였다.
"어떻게 된 거죠? 오라버니.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요. 내가 한 것 같은데,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어요. 무서워요."
"나도 어떻게 된 것인지 몰라요. 그래도 걱정말아요. 무슨 일이 있어도 성림씨는 내가 지킬 거니까요."
"오라버니를 믿어요. 그런데, 뭔가 해낸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몸이 떨리고 전율이 일어나요. 뭔가 내 안에서 자라나는 느낌이 들어요. 좋아요."
몽롱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이대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난 저녁 알바인 호정이에게 전화를 걸어서, 3만원을 주기로 하고 오늘 하루만 지금 출근해 달라 부탁했고, 허락을 얻어냈다. 수업중인 호정이를 기다렸다가 키 홀더에서 편의점 키를 주고 나서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성림씨는 여전히 흥분 상태였는데, 뭔가 꿈을 꾸는 사람처럼 볼을 붉히면서 허공에 손을 뻗고는 손을 쥐었다 폈다 했다. 아마 내가 했던 일을 흉내내는 모양이었고, 그 행동으로 나는 그녀가 내가 했던 경험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방안에 들어와서 난 그녀를 소파에 앉히고 물었다.
"성림씨, 혹시 아까 전에요. 그 변국장의 심장을 내가 쥐었을 때를 기억해요?"
"네. 너무 생생해서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거 진짜 신기하지 않았어요. 피가 흐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줄 몰랐어요. 쿵쾅거리는 심장으로 향하는 혈액의 소리라. 등줄기가 쭈삣하고 서는 느낌이었어요."
"성림씨도 그걸 들었군요. 그런데,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생기게 된 거죠?"
"모르겠어요. 하지만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네? 어떻게요."
"실험을 해보면 되요. 시험해 보고 싶은 사람이 있어요."
"누구요?"
"리경표라는 사람이에요. 지난 달에 하나원에서 퇴소를 했어요. 지금 안양에 살고 있고요. 나를 팔아먹은 놈이에요. 오라버니, 나 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을 죽이고 싶어요. 오라버니의 이 방법이라면 그 사람을 우리가 죽인다고 해도 누가 알겠어요. 할 수 있을 거에요. 그쵸?"
섬뜩했다. 만약 변국장처럼 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을 죽일 수도 있을 것이다. 조건은 완벽한 편이었다. 그는 완벽할만큼의 적의를 가질 수 있는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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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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