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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그리고 사랑 - 11부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4 18:25 704회 0건

빈 집은 항상 싸늘하다.
아이가 뛰어 놀기도 해야 하는데 그렇지를 않으니 그럴 수 밖에.
아내는 집에 없다.
오늘은 자신이 귀국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을 것이다.
출장을 떠나기 전에 아내와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 났다.
그 이야기를 출장 후에 마무리 하자고 했었는데 생각해 본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아무리 이것저것 생각해 봐도 그냥 하라는 대로 해 주자 라는 생각만 들었다.
나도 힘들고 당신도 힘드니 그냥 하자는 대로 해 줄께 그렇게 말할 참이었다.
출장 다녀오면 작은 선물을 집에 두겠다는 말을 했지만 집에 있어도 되는 토요일 오후인데 집을 비우다니.

집안이 뭔가 모르게 좀 황량하다.
출장 갔던 짐을 정리하기 위해 옷장을 열었는데 아내의 옷들이 하나도 없다.
이게 무슨 일?
서랍 장을 열어 보았다.
그 곳에도 현석의 옷만 가지런히 개어져 있을 뿐 아내의 속옷들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옷장 이 곳 저 곳을 열어 보아도 마찬가지다.
그러고 보니 들어올 때 식탁 위에 봉투가 하나 있던 것이 지금 생각이 났다.
커다란 노란 봉투와 그 위에 작은 편지 봉투가 놓여 있었던 것을 별 신경 안 쓰고 있었던 것이다.
옷도 갈아 입지 않고 봉투와 편지를 들고 소파로 갔다.
현석은 그 편지를 꺼냈다.
편지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현석씨

이것을 읽고 있을 즈음에 난 여행 중 일거야.
현석씨가 일주일 출장을 간다고 하기에 결심을 실행하기가 좋을 거 같아서.

너무 힘들게 했지? 그 동안.
현석씨를 너무 힘들게 하고 나쁜 짓도 많이 해서 늘 괴로웠는데

난 결혼하면 안 되는 사람이었어. 이제 사 하는 말이지만
처음에는 몰랐지만
그일 때문에 아이도 못 가진다고 진단을 받은 뒤부터는 잠자리도 늘 기피했고
그것 때문에 아이 못 낳는 다는 거 난 이미 알고 있었어
그런 줄도 모르고 현석씨가 그렇게 애쓰는 게 너무나 마음에 걸려서
언제나 죽고 싶은 생각뿐이었어
나와 결혼은 약속했고 칠 년을 사귀었던 그 사람이
내 곁을 떠났을 때 난 죽고 싶었지만
결혼을 하면 잊혀질 거라는 그리고 생활이 안정될 거라는
주위 이야기만 듣고 현석씨와 덥석 결혼 했는데 그게 잘못된 거였어
시간이 지날 수록 더 힘들어 졌어.
이제야 고백해서 미안해.
그래도 말 하지 말까 망설였지만 헤어지면서 까지 감추고 싶지는 않아
정말 미안해.
모든 서류는 다 준비해 두었어
내가 돌아오거든 같이 몇 시간만 함께 시간을 내 줘.
거긴 꼭 같이 가야 한다고 하네.

이 집 등기는 현석씨 한 사람 명의로 바꾸었어.
공동 등기된 이 집을 현석씨 앞으로 옮겨 놓는 정도로
현석씨가 받았을 괴로움과 잃어버린 청춘과 시간을 보상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 정도나마 내가 보상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있으니
더 이상은 아무 말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야.
그리고 현석씨 통장과 도장 그리고 보험서류 같은 것들은
모두 별도의 봉투에 넣어서 장롱 제일 윗 서랍에 있어.
내 짐들은 이 편지를 쓰기 전에 모두 옮겼는데, 말없이 옮겨서 미안해
뒷모습 보이기 싫어서 없을 때 옮기고 싶었을 뿐이야.
한 번만 법원에 다녀온 후에 우리 모르는 사람으로 살자.
현석씨는 용서가 안될 지라도 소견 없는 여자의 어리석음 때문에 생긴
잠깐의 꿈이었다고 생각하고 잊어버려 주면 좋겠다.
이것도 이기적이라 생각되지만...

이젠 정말 마음이 이렇게 편할 수가 없어. 이렇게 다 말하고 나니.
내가 내 스스로를 어떻게 하기 전에 날 놓아주기를 빌께.

그리고
더 늦기 전에 새 사랑을 찾아.
이건 떠나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니지만 진심이야.

안녕.

하영"

편지에는 눈물 자국도 몇 개 있었다.
불쌍한 사람.
말을 안 해도 알고 있었지만. 편지에도 그렇게 대략 쓴 거지만 진실된 마음을 털어놓은 글을 읽은 거 같아 갑자기 코끝이 찡해 지면서 눈물이 흘렀다.
자신이 출장 떠난 사이에 이런 정리를 하고 있었다니.
일찍 풀어 주는 것이 하영을 위해 좋은 일이었는지 판단이 서질 않지만 온몸에 힘이 빠졌다.
안 된다고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우리 관계는 너무 노력을 하지 않은 것 아닐까?
아이를 무척이나 원한 것은 사실이다. 입양을 할 수도 있었다.
언젠가 한 번 하영에게 그 이야기를 꺼냈다가 그것은 자신을 더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라며 울며 불며 소리 쳤었다.
하긴 자신의 실수가 아닌 상태의 불임이라면 그것이 그녀로 하여금 아무런 죄의식 없이 받아들였을 것이지만 자신이 결혼전의 사생활로 인한 결함으로 발생한 불임이기에 현석도 느껴지는 바가 있어서 그 말 뒤에는 다시는 입양이야기를 하지 않았었다.
그것이 하영을 괴롭히는 일일까 아닐까.
시간이 어찌 흘러가는지도 몰랐다.
거실이 깜깜해 지고 난 뒤에야 불을 켜고 큰 봉투를 열어 보았다.
그 속에는 협의이혼의사확인신청서 3통. 이혼신고서 3통에 현석도 알만한 두 사람. 하영의 친구의 이름이 써지고 날인이 되어 있다.
그리고 주민등록등본 1통에 가정법원의 판결 뒤에 처리해야 할 일에 대한 설명이 한 페이지 있었다.
그 곳에는 이혼신고서. 협의이혼확인서등본. 호적등본. 여자 측의 복적 할 집의 등본 주민등본과 도장을 가지고 구청에 가서 이혼 신고하는 절차가 기록되어 있었다.

이것으로 끝나는 건가? 오 년간의 결혼생활이.
허망했다.
미안함은 잠깐이고 하영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모른다.
텔레비젼 소리에 눈을 떠 보니 아침이었다.
소파에 기댄 채로 잠들었던 것 같고 서류는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주섬주섬 서류를 봉투에 챙겨 넣고는
어제 밤에 읽었던 아내의 편지를 다시 읽어 보았다.
이제는 마음이 많이 가라 앉았다.
"그래. 어차피 이렇게 결말 날 일이었어. 우리가 너무 오래 내버려 둔 거지."

그래. 풀어 주자. 놓아주자.
그것이 내게도 하영에게도 좋은 일인데.
다만 이 집만은 함께 벌어서 산 것이다.
현석 혼자 벌어서 살 수 있는 집이 아니었다.
대출을 많이 끼고 산 이 집은 두 사람 월급의 반 이상을 상환대금으로 밀어 넣은 집이다.
지금은 살 때에 비해 너무나 많이 올라 버렸지만 어찌 되었던 함께 벌어서 산 집이다.
그런데 그것을 통째로 넘겨주겠다니.
혼자서 살려면 전세라도 필요할 텐데.

현석이나 아내나 혼자서 살려면 집이 필요한데.
팔아서 반씩 나누자.
그것이 공평하다 라고 생각하자 말자 현석은 바로 부동산에 집을 팔아 달라고 전화를 했다.
아내와의 기억이 있는 집에 계속 살고 있는 것도 좋은 일도 아니고.
생각을 바꾸자 해야 할 일들이 한꺼번에 정리되었다.

회사에 도착했지만 일요일인 탓에 회사에는 아무도 없다.
출장보고서를 쓰는 중에 꿈속에서 치러진 지수와의 정사 생각이 생각나면 한참씩이나 손을 놓고 멍 하니 창 밖을 바라보았다.
혼자 피식 웃었다.
아마 남들이 보았다면 바보인가 생각 했을 것이다.
잠깐이면 다 쓸 출장보고서를 쓰는데 거의 하루가 다 간 것 같다.
사람이란 동물은 참 이상한 것 같다. 어제 하영의 편지를 읽고 그녀의 애처롭기까지 한 처지에 대한 공감을 하고 결별을 알리는 긴 사연의 편지와 이별을 위한 모든 서류를 접하고 착찹 했던 것과는 달리 시간이 얼마나 지났다고 그런 생각이 든단 말인가.
양면지 한쪽에 이름을 써 보았다.

최하영
윤가희
한지수. 한지수. 한지수.
한지수라는 이름 뒤를 펜 끝으로 톡톡 두드리다가 새삼스레 사무실을 한 바퀴 둘러 보았다.
아무도 없다.
맞아 일요일이지.
그래도 오늘 같은 날 아무도 출근을 않고 혼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다행스러운 일이다.
현석은 문서 세단기를 찾아서 세 사람의 이름이 써진 종이를 밀어 넣었다.
윙윙 소리를 내며 문서 세단기가 종이를 빨아들인다.
세 여자의 이름이 쓰여진 종이는 세단기 안에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게 갈기갈기 찢어져 나갔으리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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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일 2024-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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