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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그리고 사랑 - 26부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4 18:23 1,053회 0건

이별여행이라니.
현석은 책상 앞에 앉아서 몇 일전 휴일에 예리와 다녀온 여행을 생각하며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그렇게 고백한 그 밤에, 마치 내일 다시는 세상의 태양이 떠 오르지 않을 듯, 밤을 새워 사랑을 나누었다.
날이 새면, 이제는 이별이라는 것을 서로 알면서도, 그리고 이별을 통지한 예리도, 예리에게 자신에 대한 아무런 변명도, 해명도 없이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예리의 이별 통지를 그대로 받아들인 현석도, 두 사람 모두 다 그렇게 타오를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신기하기 짝이 없다.
아마,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가능할까?
아니, 사람이기에 가능한 것 아닐까?
이성과 감성이 어떻게 그렇게 전혀 다르게 움직일 수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녀는 더욱 더 적극적이었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그 마지막 밤은 정말 모든 것을 태워버릴 만큼 활활 불타 올랐었다.
현석은 마음속에서 수없이 갈등했지만, 그리고 한편으로 눈물이 났지만, 혼자라는 말을, 너를 사랑한다는 말을 마지막까지 하지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자신이 참 섬찢한 사람인 것 같다.
이제 하루 뒤면 이별을 할 지라도, ‘사랑한다’는 그 말을 듣고 싶어요 라는 말을, 비록 그녀가 입을 열어, 그렇게 표현하지 않아도 모를 바가 아니었지만, 그것으로 인한 결과가 어찌 될지, 사실은 조금 염려가 되었다.
그래서, 결국은 입을 다물고 말았다.
‘아저씨의 목소리가 듣고 싶으면, 어떻게 하죠?’
‘죽을 만큼 보고 싶을 때가 있으면, 그땐 어떻게 해요?’
그녀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질문 대신 그냥 읊조리듯, 푸념하듯, 먼 곳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었다.

그것이, 그 말들이 정말 가슴을 아프게 했다.
하지만, 언젠가 내가 네게로 돌아가면, 받아 줄거니? 라고 물을 수 없었다.
그건 너무 이기적이다.
그녀도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녀가 마음속에 감춰진 거의 모든 것을 말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 긴 고백의 끝에, ‘제게로 와 주시면 안되나요?’ 라고 묻지 않았다.
그걸 기다리고 있었냐?
비겁하다 김현석.
설사 지금에 와서 그렇게 고함친다고 해도 스스로에게 용서되지는 않을것이다.
그녀가 고백하는 중에 말했던, 남의 가정을 파탄 내고 싶지 않다는, 그 의미 일까?
만일, 예리가 ‘제게로 와 주세요.’라고 요구를 했다면, 그렇게 말했으면, 그녀에게로 갔을까?
적어도 그녀에게 현석은 가정을 가지고 있는 유부남이다.
그래서 그런것일까?
그녀에게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은 너야, 김현석. 그렇게 마음속으로만 소리를 질렀다.
‘미안하다.’
창 밖을 보면서 조그맣게 말했다.
‘나도 내 마음을 이해 할 수가 없다, 유독 너에게 왜 그리 잔인했는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네게 갈 수 있었을까?’
‘네게로 가겠다고 했으면, 너는 날 받아 들일 수 있었을까?’
현석은 정말 그것이 궁금하긴 했다.
그러나 입을 열고 물을 수 없었다. 그걸 어떻게 물어봐.
적어도 그녀가 가졌던 처음의 생각은 비록 현석이 그녀에게 가겠다고 하더라도 받아 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현석이 유부남이 아니었다면,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것이라 했으니.
그랫다면, 이렇게 가슴이 아파야 할 일도 결코 없었을 것을.
‘예리야, 널 잊을 수 있을까?’
이유를 말 하라고 한다면, 단 한 사람, 한지수를 가슴속에 담고 있어서 그럴 것이다.
그런 것을 어찌 하란 말이냐?
그래서 윤가희 조차도 떠나 보낸 것을, 아니 붙잡지 못한 것을.
윤가희를 떠나 보낸 것 보다 너를 떠나 보낸 것이 몇 배는 더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그래도 어쩔 수가 없다.

현석은 고개를 돌려 한지수의 책상 쪽을 바라 보았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만 말했다.
‘어쩌면 난,
그녀가 내 눈앞에서 보이지 않는 그날까지,
그냥 바라만 봐야 할 수도 있다.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것을 속으로는 눈물을 흘리면서, 겉으로는 축하의 인사를 건네야 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심장을 도려내는 아픔을 안고, 살아가야 할 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것은 사는 것이 아닐것이라는 것을 나도 안다.
그렇지만, 그래도 내 마음이 허락되지 않는 것을 어쩌겠니?
예리야,
아마 몇 일 전의 그 결정을
평생을 두고 생각하면서, 너를 그리워할 지도 모르겠다.
아니 너무나 아파서, 너를 떠올릴 생각조차 못하고 살 수도 있겠지.
그리고 어느 때인가는 쓰라린 가슴을 안고, 회한과 후회로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될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내 사랑을 잃고, 하영과 만나서 결혼할 때처럼, 한 사람을 가슴속에 담아 두고, 다른 사람과 표면적으로 사랑을 약속하는, 그런 결정을 또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적어도 사랑에 관한 한, 내 가슴이 시키지 않는 일을
이젠 두번다시 하고 싶지 않은 이유가 내게 무었보다 중요해 진 때문이다.
그건 내 사랑을 잃고,
급하게 하영을 만나서 그렇게 서둘렀던,
그 잘못된 결정 하나 만으로도, 내겐 너무나 충분한 아픔이었다.
설사, 그로 인해 영원히 혼자 살게 될 수 밖에 없을 지라도,
다시는 그런 가슴 아픈 일이 또 일어나도록 하지는 않고 싶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서야 조금은 나아졌다.
그것이 가장 합리적인 변명일 테이니.

띠리링~
전화기가 울린다.
“감사합니다, 김현석입니다.”
“차장님, 저.”
아, 한지수이다.
낮은 목소리였다.
한지수가 들릴 듯 말 듯 낮은 목소리로 자신임을 알렸다.
“응, 그런데 왜요?”
왜 이렇게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지, 그리고 불과 책상 두 개 건너편에 있는데, 왜 직접 말로 하지 않고, 인터폰으로 할까 생각했지만, 무슨 일인지 물었다.
한지수를 포함해, 사내의 여직원들에게 대부분 반말을 하지 않는 현석이다.
“혹시, 저녁 초대를 해도 될까 해서요.”
역시 아주 작은 목소리이다.
평소의 말투와 다를 바는 없지만, 아주 작은 목소리이다.

지난주에, 그 일이 끝나고는, 사장이 하사한 금 일 봉으로 부서 회식을 했다.
현석은 회식자리에서 직원들에게 한지수를 위로해 주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이 이상한 제보가, 무혐의로 밝혀져서 해프닝으로 끝나긴 했지만, 당하는 사람은 죽고 싶을 만큼 가슴이 아픈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 부서 직원들의 따뜻한 위로가 필요하다.
물론, 또 생길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 앞으로도 이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으니,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한지수씨를 여러분들이 좀 보살펴 주기 바란다.
왜? 우린 가족이니까. 알겠죠 여러분?”
현석은 직원들에게 그렇게 말했지만, 왜 가족이라고 했을까?
부서회식에서 모두들 마음고생이 있어서 그랬는지, 참 재미있게 놀았다.
모두에게 위로를 받은 한 지수는 결국 눈물을 흘리긴 해도, 부서원들의 따뜻함에 고마워 했고, 자신이 2차를 책임지겠다고 해서 결국 부서원 전체가 나이트클럽까지 가게 되었었다.
부서회식에서 나이트클럽을 간 것이 현석이 온 후에 처음이라, 현석도 전혀 예상 밖이었지만, 직원들은 다들 춤도 잘 추고, 정말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물론, 한지수의 전혀 새로운 면을 보기도 했다.
그녀는, 의외로 춤을 잘 추었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그녀는 현석에게 불르스를 청했었다.
현석은 놀랐지만, 디스코 타임이 끝나고 일부는 불르스 자세로 들어갔고, 다른 직원들은 자리로 이동하는 중에 현석에게 청해진 춤이어서 다른 직원들은 아무도 몰랐다.
그렇게 한지수와 불르스 한 곡을 추었다.
단 한번으로 끝났지만, 그리고 로리타 렘피카의 향을 느끼면서,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느라 애를 썼지만 현석에게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직원들은 현석이 청했는지, 지수가 청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아마, 현석이 청한 것으로 알겠지.
그녀는 현석과 마찬가지로 그다지 잘 추는 불르스는 아니었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
함께 불르스를 추었다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그것도 그녀가 청했다는 것은 더욱 더 중요하다.
현석과 지수가 불르스를 춘 것을 알게 된 다른 직원들이 한지수에게 역시 불르스를 청했지만, 그녀는 현석과의 불르스 이후 누구와도 불루스를 추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무슨 의미일까?
그때, 잠시 그렇게 생각했지만, 적어도 그날은 그녀를 위로해 주는 날이었고, 덕분에 부서원들의 스트레스도 해소하는 그런 기회였기에 잊어버리고 있었다.

“저녁?”
“네, 지난주에, 감사하다는 말씀도 제대로 드리지 못하고, 해서 감사의 말씀도 드릴 겸, 저녁초대를 할까 해서요.”
다들 일 때문에 외출하고, 사무실 내에 직원이 몇 없긴 하지만, 한지수와 현석이 인터폰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남들이 알까?
거절할 이유가 없다.
어떻게 하면 단 둘이 만날 수 있을까 궁리를 하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저녁 초대라니, 얼마나 학수 고대를 하던 일인가?
“가능해요.”
“그럼, 오늘도 가능하신가요?”
“응, 가능해요.”
현석의 대답에, 지수가 식당이름과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이미 알고 있는 식당이다.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혹시 누구 누구 초대 했어요?”
이건 정말 궁금한 일이다. 그래서 물었다.
단연한 것 아닌가?
“차장님 혼자 입니다.”
혼자라니.
아무리, 지난주의 그 일로 초대를 한다고 하지만, 현석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가슴 한 곳을 차지하고 있는, 꿈에도 그리운 그녀, 그녀가 청하는 저녁 식사이다.
그녀를 그리워하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는데, 그녀로 인해서 예리도 가희도 다 떠나 보낼 수 밖에 없었는데, 그런데 그녀가 청하는 저녁 식사라니.

그녀가 전화를 끊고도 현석은 한참 동안 수화기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수화기를 내려놓으면서 손이 후들후들 떨려왔다.
등줄기에서 한줄기 땀이 흐르는 느낌이다.
내가 왜이래?
너 바보니
속으로 그렇게 물었다.
그녀가 식사에 초대한 정도로 이렇게 몸이 떨려올 정도로 감동이었니?
침착하자.
침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회의실로 들어가서 심 호흡을 하고 나서야 진정이 되었다.
이 정도였단 말이야?
이러다가 막상 마주 앉아서는 쩔쩔 매면서 땀만 흘리는 거 아니야?
단 둘이 업무 회의를 하면서도, 그녀의 향수에 대해 물으면서도, 항상 일상적인 그 상태였는데, 그녀가 청하는 저녁식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이런 느낌이라니.
정말 정신을 차려야 할 것 같다.

한지수가 알려준 식당에는 그냥 한으로만 예약되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 식당에서 저녁식사라.
예약된 그 식당은 현석도 두 번 정도 간 적이 있는 식당이지만, 여느 식당과는 전혀 다른 곳이다.
일단, 기본적으로 가격대가 평범하지 않다.
각 좌석들은 독립된 공간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출입할 때 보지 않는다면, 종업원 이외의 사람들을 만날 수가 없을 정도이면서 개별 공간마저도 아주 여유 있도록 넓다.
중앙 홀에도 사람이 앉으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칸막이가 있지만, 옆 좌석에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넓은 공간이다.
당연히 맛도 평범하지 않고, 서비스 또한 그 격을 달리한다.
현석은 거래처 손님을 모시고 간 적은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가본 적이 없다.
개인적으로 가 보기는 상당한 출혈을 감수해야 할 정도로 제법 부담스러운 곳이다.
‘이런 비싼 식당을?’

안내를 따라가자, 현석보다 먼저 나간 지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차장님."
"먼저 왔네요."
"네. 그래야죠. 제가 모시는데요."
약간의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 중에 점원이 오고, 이것 저것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식사를 주문하고 조금씩 식사가 배달되어 왔다.
아까처럼 떨리지는 않았다.
다행이다.
"지난 주에.."
그녀가 조심스럽게 그 일을 꺼냈다.
"이제 괜찮죠?"
"네. 이젠 괜찮습니다. 그리고 그 땐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녀는 작게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이 새삼스럽게 예뻐 보인다.
"뭘. 그런 일을 가지고. 결국은 지수씨가 아니라는 게 밝혀 졌잖아요? 그럼 된 거지."
"그 때. 차장님께 제가 추한모습 많이 보여 드렸었죠?"
"아니.. 추한 모습이기는"
"..."
"이렇게 아름다운 지수씨도 그런 가장 인간적인 모습이 있었구나.. 하고 생각했지."
"..."
"응. 혹시 오해는 하지 말구. 평소에 인간적이 아니었다는 게 아니고 정말 티끌만큼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았던 완벽한 사람이라, 그렇게 흐트러진 모습도 나쁘지 않았었다는 이야기지 뭐.”
"...."
지수는 그 말에는 대답이 없었다.
현석의 그 말뜻이 실제로는 약간의 가식인 것은 분명하다.
다만 흐트러진 모습을 추하게 느끼고 있다면 자신은 그렇게 느끼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려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아무튼, 제대로 다 밝혀져서 다행이고, 이제 걱정 안 해도 되겠죠?”
"네."
지수는 예의 그 잔잔하고 밝은 미소와 너무나 깨끗한 모습으로 대답했다.
"그래도 다른 사람한테는 이제 그런 모습 보이지 않을 거죠?"
"네, 아마두요."
그리고 그녀는 웃었다.
그 미소가 정말 너무나 아름답다.
"그럼 되었어요. 난 그렇게 아름다운 지수씨 모습에, 남에게 쉽게 내 보이기 힘든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나 혼자 볼 수 있었다는 게 참 좋거든. 남들이 모르는 비밀을 가진 거 같아서 기쁘기도 하고. 하하. 이건 죠크 입니다."
"사실은.."
"사실은?"
"그 때 기분은.... 정말 죽고 싶은 기분이었거든요."
한참을 뜸을 들이면서 지수는 말을 이어 갔다.
"...."
"차장님한테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 생각하면 차장님이 그 때 안 오셨으면 정말 어찌 되었을지, 지금은 상상이 안가요."
"저런.. 위험한 상상을 한 건 아니죠?"
"제게는 정말 너무나 큰 충격 이었거든요"
현석의 질문에 그녀는 현석을 빤히 바라보며 대답했다.
"하긴 누구라도 그런 느낌은 있었을 거예요. 설사 내게 그런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기분은 충분히 들었을 거예요."
"차장님도 그렇죠?"
“그럼요.”
“그런데, 어제 정희 언니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차장님께 별도로 감사의 인사를 꼭 드리고 싶었습니다.”

이정희가 한지수보다 나이가 많다.
그래서 언니라고 부르는 것을 알고 있다.
“..”
무슨 말일까?
“정희 언니가, 차장님이 경찰조사 이야기를 소문을 내라고 해서, 처음에는 효과가 있을까 생각하면서 흘렸는데, 정말 그 소문 때문에 희연이가 바로 자백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녀의 말에 현석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식당에 들어왔을 때부터 깍듯한 존대를 한다.
직장 상사여서 그럴 것이다. 회사에서 하는 말투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이렇게 정말 깍듯하게 존대를 하는 것, 그래서 한지수와의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는 것 같다.
하긴 안그러면?
현석이 가지는 마음과는 다를것인데 당연한 것 아닌가?
“아, 그거? 별거 아니에요, 그냥 경찰이 와서 조사 한다면, 누구나 약간은 쫄게 될 것이다 라는 가장 일반적인 사람의 심리를 좀 이용한 것뿐 이니까.”
쫄게될 것이다 라는 말이 좀 이상하긴 했다.
그러면서 피식 웃었다.
“저는 그렇게 빨리 밝혀질 줄 몰랐거든요. 그런데 정희 언니와 이야기 하면서 그 모든 것을 차장님이 시키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꼭 한번 별도로 모시고 싶었습니다.”
“오케이, 의미야 어찌 되었건, 난 이렇게 지수씨와 단 둘이 같이 식사를 하게 되어서 정말 즐겁기 짝이 없거든. 철없이 즐거워해도 되죠?”
현석은 그녀의 그 깍듯한 존대가 부담스러웠지만, 그것보다는 조금 편하게 말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풀 마땅한 방안이 없었다. 그래서 장난스럽게 말했다.
“호호호, 네.”
그녀가 입을 손으로 가리고 웃었다.
그녀의 환한 웃음, 맑은 웃음소리, 정말 좋다.
그리고 그녀의 웃음 때문인지 마음도 편안 해 졌다.

이야기를 하는 중에 맞은편에 앉았으니, 자세히 쳐다볼 수 있었다.
평소 회사 내에서는 업무적으로 이야기를 하더라도 지금처럼 이렇게 쳐다 볼 수는 없었지만 자리가 자리 인지라 그렇게 쳐다 보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았다.
일년 가까이 보아온 얼굴이지만, 정말 새삼스럽다.
쳐다보긴 했어도, 스치듯이 쳐다볼 수 밖에 없었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쳐다볼 수 없어서 몰랐던가?
정말 얼굴에 티 한 점 없이 마치 살색의 실크를 다림질 하여 곱게 펴 놓은 것처럼 맑고도 깨끗한 모습이다.
조명 때문에 더 그렇게 보이는 걸까?
얼굴에는 묘하게 윤이 나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만큼, 아니 투명해 보인다.
이렇게 아름다운 얼굴은 영화에서조차 본 적이 없다.
영화에서 보는 정말 예쁜 얼굴들이 화면을 클로즈업 했을 때 얼굴에 나타나는 작은 점과 티끌조차도 단 하나도 보이지 않을 만큼 맑고도 깨끗한 피부를 가지고 있다
비교적 큰 눈에, 얇은 쌍꺼풀에, 좀 동그래 보이는 눈은 갈색으로 불빛 아래서 빛이 났다.
그것뿐 일까?
그리 보아 그럴 수도 있겠지만 흠 하나 없이 가지런한 치아를 감추고 있는 입술은 피 빛처럼 붉으면서도 얼굴에서 보여 주는 투명함을 같이 가지고 있었다.
특히 웃을 때 볼에 생기는 보조개는 사람을 녹이는 듯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왜요? 제 얼굴에 뭐 묻었나요?"
현석이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것을 느꼈는지 지수가 손을 얼굴로 가져가며 던진 질문이다.
"아니."
"그럼 왜요?"
"어쩌면 지수씨처럼 예쁜 사람이 이세상에 있을 수 있나 싶어서요."
"차장님 저 놀리지 마세요. 제가 뭐 예쁘다고.."
"정말 이라니까."
"차장님께서 칭찬을 해 주시니, 정말 가슴이 마구 떨려요. 저는 그냥 보통으로 생겼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냥 단순히 빼는 것 같지만은 않다.
겸양의 말과 행동에서 오는 기품은 참으로 우아하기 그지없다.
"지수씨는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 하는 구만. 나는 이런 미인이 내 부서에 직원으로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 거 알아요?"
"호호. 네. 약간만 인정해요. 못생기지는 않았다는 거. 그런데.."
"그런데?"
"저희 집에서는 제가 젤 못난이 인걸요. 언니들이 맨날 저 보구 못난이라고 놀리는걸요"
언니들 이라는것으로 봐서 적어도 언니가 하나는 아닌 모양이다.
둘이거나 셋이겠지만, 설마 셋씩이나 될까?
"아니 언니들은 얼마나 예쁘기에?"
정말 얼마나 잘났으면, 그렇게 말을 할까?
현석이 보기에는 한지수가 여태까지 본 수많은 여자들 중에 가장 으뜸이다.
정말 처음에 만날 때는 빛이 나는 착각을 할 정도였으니.
그리고, 그 이후에 머리 속에는 이여자, 한지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형제들 중에 제일 못났단다.
"언니들은 정말 예뻐요. 형제간이지만 질투가 날 정도로."
"아니 이 얼굴을 보고 못난이라니."
현석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식사시간 내내 주로 그런 이야기들과 횡령사건과 관련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나누다 보니 시간은 훌쩍 지나갔다.
회사 업무 이야기는 누가 하지 말자고 한 적도 없는데도 아무도 말 하지 않았다.
식사주문 때에 같이 주문한 술 몇 잔을 마신 지수의 얼굴에 발그레하게 홍조가 들었다.

“식사 하고, 한강으로 바람 쐬러 가 볼래요? 봄바람이 참 좋은데.”
계절이 봄이긴 하지만 현석은 이 말을 하기까지 정말 많이 망설였다.
식사 대접을 하겠다고 해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재미있게 웃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긴 하지만, 내일은 또 일상으로 돌아 갈 것이다.
그렇지만, 어떤 기회인데.
어떻게 하던 조금만이라도 더 개인적인 시간을 함께 하고 싶었다.
밖에서 단둘이 가지는 시간이란, 처음이기도 하지만, 그녀를 처음 본 그때 이후, 거의 1년만에 만들어진 자리이다.
1년, 정말로 긴 세월이다.
그 길고 긴 시간 동안 가슴 한 구석에 그녀는 자리하고 있었다.
그녀 때문에, 아니지 때문은 아니다.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그녀에게는 탓을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녀가 잘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직 현석 자신이 스스로 만든 것뿐이다.
그 동안 얼마나, 많이 생각하고, 얼마나 마음을 졸인 사람인가?
그런데 저녁만 먹고 헤어지기에는 너무나 아쉽다.
거절하면 어떡하지 라는 마음 때문에라도 갈등했다.
거절하면, 내일 출근해서 얼굴을 어떻게 보지? 라는 생각은 했지만,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 식사 초대까지 했을 정도라면, 인언지하에 거절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기회를 보아 어렵게 꺼낸 말이다.
“네, 가요. 저도 바람 좀 쐬고 싶었습니다.”
그 대답에 세상이 환해 졌다.
주위 모든 것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그녀만이 환한 빛으로 앉아 있다. 그리고, 구름위로 둥둥 뜬 것 같은 기분이다.

선착장이 있는 잠실 고수부지로 나갔다.
밤이 깊었지만, 가로등으로 인해 비교적 밝은 편이다.
이제 봄이 무르익어가는 오월이니 춥지는 않아도, 저녁 무렵의 한강변의 바람은 얇은 옷을 스치고 지나가며, 몸을 움츠리기에 충분할 만큼 한기가 밀려왔다.
"지수씨 춥지 않아요?"
"약간요."
"그래? 괜히 나왔네. 그럼 여기 있지 말고 가요."
생각 같아서는 윗도리라도 벗어서 걸쳐 주고 싶었지만 양복을 벗으면 와이셔츠 밖에는 없는 상태이고 그나마 현석도 지금 약간의 한기를 느끼고 있는 터라 선뜻 그리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녀를 쳐다보니, 그녀의 복장은 현석이 입은 복장보다는 조금 더 얇아 보인다.
"아뇨. 그래도 시원하구. 마음이 탁 트여서 좋아요."
"그래?"
"조금만 있다 가요."
지수는 강 건너 뚝섬 쪽의 불빛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하류 쪽으로 바라보았다.
현석의 눈에 비친 그 모습. 실루엣처럼 비춰 보이는 모습은 참 아름답게 다가 왔다.
현석과 비슷해 보이는 큰 키에 뒤로 한 묶음으로 묶어서 단정하게 늘어뜨린 긴 생머리가 어깨 뒤로 흘러 내렸다.
현석은 저 머리카락을 풀어서 이 바람에 날리게 하고 싶었다.
그생각을 잠깐 했지만, 조금만, 더 있다 가자는 그 말에, 도저히 현석이 옷을 입고 있을 수가 없었다.
자신은 좀 춥더라도 윗도리를 벗어서 한기를 막아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윗도리를 벗었다.
싸늘한 느낌이 확 밀려온다.
그러니 그녀는 많이 추웠을 것이다.
많이 떨어져 있지도 않은, 겨우 한 발짝쯤 떨어진 그 거리가 참으로 멀게 느껴졌지만, 한발 성큼 지수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현석의 뜻을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 벗은 양복 윗도리를 자신의 어깨에 걸쳐 줄 것이라는 것을.
“괜찮은데.”
그녀가 중얼거리듯 말했지만, 거절의 의사는 없어 보였다.
거절의 의사가 분명하지 않다면, 되었다 싶다.
현석도 조금 쌀쌀함을 느끼는데, 그녀인들 그렇지 않으랴.
그녀는 현석이 그녀의 한쪽어깨에 걸쳐주는 양복의 윗도리를 느끼겠지만, 눈은 현석을 바라 보았다.
그녀가 현석과 마주 보고 있었기에, 두 손으로 양복의 깃을 한꺼번에 잡고, 그녀의 옆으로 돌아 왼손으로 그녀의 어깨에 양복의 왼쪽이 들어가도록 걸쳤다.
그리고는 그녀의 어깨에서 양복이 흘러 내리지 않도록 어깨를 살짝 눌렀다.
그리고 그녀의 오른쪽으로 이동하면서 양복의 나머지를 그녀의 오른쪽 어깨에 걸쳤다.
팔은 끼우지 않았지만, 현석의 양복은 자연스럽게 지수의 몸에 걸쳐졌다.
현석은 그녀의 앞으로 이동했다.
양복을 걸친 모습이 일단은 무척 포근해 보이기도 하고, 예상외로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그녀가 환한 옷을 입었기에 현석의 검정색 양복이 어울리는 느낌이다.
그녀가 들었던 핸드백이 그대로 어깨에 걸려 있었기에 현석은 옷 속으로 손을 넣어, 핸드백을 빼 내었다.
그리고 그 핸드백은 현석이 들었다.

핸드백으로 인해서 옷깃이 들려져 있는 것이 덜 포근해 보였기 때문이다.
간혹 남자들이 여자 핸드백을 들고 있는 것을 보고, 참으로 푼수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의 상황이, 지금 이런 상황과 비슷할까?
양복을 걸친 그녀를 바라보자, 정말 참을 수 없는 그 무언가가 가슴에서 끓어 올랐다.
그대로 가슴에 안아주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은 안 되는 일이다.
그녀가 자연스럽게 안겨 준다면, 아무런 문제는 없지만, 그것을 털치고 나간다면, 정말 민망한 상황이 된다.
그렇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만일 그녀가 털치고 나가면, 그 다음에 어떻게 본다니?
내일 회사에서 또 얼굴을 봐야 하는데.
짧은 시간에 별의 별 생각이 다 든다.
그런데, 그녀의 블라우스의 목 뒷부분이 현석의 양복에 눌려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것이 보였다.
“지수씨 잠깐만.”
현석의 말에 그녀는 현석을 쳐다 보았다.
현석은 그녀의 핸드백의 끈을 어깨로 밀었다. 핸드백은 현석의 옆구리로 갔다.
그리고는 두 손으로 블라우스의 목 부분을 함께 잡았다
그 동작은 두 사람이 마치 껴안은 것처럼, 아주 가까이 갈 수 밖에 없게 했고, 바람은 현석의 얼굴에 그녀의 머리카락이 날리게 했다.
그녀의 향수, 로리타 렘피카의 향이 살짝 스치고 간다.
이렇게 바람이 부는 곳에서 그것을 느끼기는 힘들었을 텐데, 아마도 너무 가까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언젠가 이 향수에 대해 그녀에게 물었을 때, 그때부터 잊어버리지 않는 향수의 이름, 그리고 향의 느낌이다.
현석이 두 손으로 목 뒤의 블라우스 깃을 바르게 하고, 떨어져 나오려는데, 그녀의 한 손이 현석의 넥타이를 잡고 있었다.
왼 손은 현석의 허리에 닿을 듯 말듯, 오른손은 가슴위치에 올라와 있지만, 넥타이를 살짝 잡은 듯 느껴졌을 뿐이다.
현석이 블라우스 깃을 바로 잡으면서 너무 가까이 붙어서 그녀의 가슴에 닿았지만, 현석은 모르고 있었다.
아마도 그녀의 가슴에 닿자 간격을 주기 위해 손을 올린 것 같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 했을 뿐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그녀의 손이 현석의 가슴에 닿은 그 느낌,
따뜻하다.
아마, 바람이 차가워서 그렇게 느껴질 것이다.
그런데, 떨어지기 싫다.
이대로 조금만이라도 더 있고 싶다.
그리고 왼손이 벨트의 윗부분에 살짝 닿았다.
조금 더 있고 싶은데,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녀는 자신이 그녀에게 마음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당연히 모를 터이고, 거기다가 유부남이다.
직장상사? 맞아 그것도 큰 장벽이다.

돌이켜 보면, 그녀는 제보가 있었던 그날, 크게 울던 그날, 이미 현석과 한차례 포옹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지난 주에는 함께 불르스도 추지 않았던가?
이상할건 하나도 없다.
그러나 그건 다르다.
탈의실에서 그녀가 현석의 품에 안겨서 한참을 운 것은 서러움에 목이매여 그런것이다.
불르스, 그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그녀를 품에 안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견딜 수가 없다.
불르스는 김현석, 너하고만 추었지 않나?
그 불르스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신청을 했지만, 그녀는 아무하고도 불르스를 추지 않았다.
그렇다면 다른사람과 다르지 않나?
그럼에도 뭘 망설이고 있나?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현석은 견딜 수가 없었다.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저지르고 볼 일이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현석은 앞으로 팔을 내리면서 살그머니 보듬어 안았다.
머리끝이 쭈삣 섯다.
그녀의 두 팔이 현석의 팔에 느껴진다.
그리고 그녀가 올린 오른손이 현석의 가슴과 그녀의 가슴 사이에 들어있었다.
손이 약하게 눌리는 느낌이 든다.
지수의 오른 손이 두 사람의 가슴을 가로막은 자세가 되었지만 현석은 그 상태라도 좋았다.
그런데, 그녀가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현석에게 안겨 들지도 않았지만, 현석의 포옹에서 벗어 나려고 하지도 않는 것이다.
아,
되었다.
그럼 되었다.
마음속이 안도감으로 가득찾다.

“춥지 않아요?”
그 말을 왜 했을까?
변명이라고 한 말일까?
그러나 그 말이라도 안 할 수가 없었다.
지수는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현석도 가만히 있었지만, 가슴이 두근거린다. 아니 가슴이 쿵쾅거리린다.
이렇게 가슴이 뛴 적이 또 다른사람에게서 얼마나 있었던가?
억겁의 시간이 흐른 듯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이 교차했지만 무슨 생각들이 그 짧은 시간에 스치고 지나갔는지 기억조차 할 수 없었다.
"죄송해요.."
지수가 먼저 손으로 몸을 밀어내며 나직하게 중얼거리듯 말했다.
"왜?"
왜 떨어져 나가느냐고 물어 보는 것이 아니다.
왜 죄송하냐고 물어보는 것이다.
"차장님 품이 너무 따뜻해서.... 저도 모르게... 그만..."
손으로 밀어내도, 많이 멀어지지 않은 두 사람 사이는 그저 손 하나 들어갈 간격 정도만큼이나 가까이 서 있었지만 현석에게 말 할 수 없는 허전함이 밀려 왔다.
비록 그렇게 짧은 포옹이긴 하지만, 몸을 밀어낸 그녀가 돌아설 줄 알았다.
그런데 그녀는 팔을 여전히 올린 째 현석의 넥타이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
응급 결에 현석이 포옹을 해서 잠시 안기기는 했지만, 그냥 그러고 있을 수가 없어서 떨어지기는 했는데, 무언가 아쉬운가?
그런것인가?
갑자기 현석이 보듬어 안아서 잠시 포옹은 했지만, 그렇다고 그냥 그러고 있을 수는 없었더는것이어서 밀어낸 것이라면, 그것이 맞다면, 그래서 이렇게 가만히 있는것이라면, 그녀가 돌아설 기회를 주면 안될것이다.
이 상황이 조금 계면쩍거나 민망해서 그녀가 돌아설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았다.
현석의 머리속에 여러가지 생각이 어지러이 지나갔자만 한가지만 생각했다. 그리고 행동으로 옮겼다.
현석은 넥타이를 만지고 있는 손을 아래로 밀어 내리면서 그녀를 다시 한번 살포시 껴안았다.
현석의 그런 동작에 아무런 반응 없이 그녀가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더 지나도 아까처럼 몸을 떼지 않고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현석의 등으로 팔을 둘렀다.
약간 어색한 느낌은 있었지만, 두 손이 허리 뒤로 돌려왔다.
그녀의 볼록한 젖가슴의 뭉클한 느낌이 와이셔츠 밖에서 몸으로 전해져 왔다.
현석의 눈 바로 옆에 지수의 묶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현석은 오른손으로 머리카락을 살며시 쓰다듬었다. 그리고 머리카락의 끝이 가 있는 그녀의 등으로 붙여서 쓸어 내렸다.
지수의 숨결에 따라 들썩이는 젖가슴의 융기가 몸으로 전해지고 등허리 중간까지 내려간 손끝에 브래지어의 매듭이 감촉으로 느껴져 왔다.
고개를 약간 돌리자 지수의 볼이 코끝에 닿았다.

현석은 입맞추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올라왔다.
입 맞추어도 될까?
아니야.
아무리 지금 포옹을 하고 있다 하여도, 그건 또 다른 이야기 이다.
꿈속에서도 그리워한 한지수와 사랑의 인연이 닿을 수 있거나, 아니거나, 서둘러서 좋을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멈추어야 한다.
이성은 그렇게 말하는데, 감정은 견딜 수가 없도록 너무나 숨가쁘다.

현석의 볼과 그녀의 볼이 닿을 듯 말 듯 하고 있었다.
그래도 여지를 시험해 보자 라는 생각이 들어, 그녀의 볼에 살짝 입맞춤 했다.
지수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다만 그녀의 숨결만이 그녀의 젖가슴을 통해 전해져 왔을 뿐이었다.
잠시 동안, 가만히 있던 그녀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래, 조금 많이 나간 것 같다.
볼에 입맞춤은 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럽게 두 사람 사이는 떨어졌고,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한강을 바라 보았다.
현석은 조금 아쉬웠다.
이제는 다시 조금 전의 상황으로 되돌아 갈 수는 없다.
“갈래요?”
“네.”

차에 오르기 전, 그녀는 현석의 상의를 벗어서 현석에게 건넸다.
현석이 운전석의 문을 열고는 조수석의 문을 열어주기 위해 조수석으로 발길을 옮겼지만, 그녀는 조수석 문을 열고 차에 올라 얌전하게 앉았다.
“집이 어디에요?”
“그냥, 삼성 역 쪽에 세워주세요.”
현석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집이 대치동이었던가? 맞아, 입사 후에 부서 직원들의 이력을 확인하면서, 그렇게 관심을 끌었던 한지수의 집이 어디인지 유심히 보았었다.
그러나 시간이 많이 지나면서 잊어버리고 있었다.
아마 맞는 것 같다.
“음, 기억이 맞으면, 대치동이었던 것 같은데.”
“…”
그녀가 현석을 돌아보는 느낌이다.
“맞아요?”
그녀가 대답을 하기 전에 현석이 먼저 물었다.
“네, 맞아요.”
현석의 집과 멀지 않은 것 같다.

(계속)

역시,
글을 올리는것과 대비하여 써 나가는 속도가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는군요.
이제는 글을 써 가는 과정이 약간의 압박감 마저 느껴질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건 아마 작가의 성향과 관계가 있을테지만,
이 글을 쓰면서 기본적으로 가졌던 나름대로의 원칙이라면,
1) 아무리 야설이라고 하더라도, 소설인 이상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로 전개 되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물론 제가 쓰면서도 이것이 충분할까 하는 의문점은 항상가지고 있습니다.
2) 등장하는 인물들의 심리적 상황이 적절하게 반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이거 참으로 어렵군요
3) 그리고, 야설이니 만큼 성적인 묘사가 가능한 충분해야 한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야동은 직접 눈으로 보는것이기 때문에 설명이 필요없지만,
야설은 눈으로 글을 읽으면서 그 글속의 장면들이 현실같이 느껴 질만큼의 상상이 가능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벗겼다, 박았다, 했다, 등등과 같은 단편적이고 무미건조한 글쓰기는 글을 읽는사람에게 모욕이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건 정말 너무 어렵군요.
이러다가 자주 자주 글을 올릴 수 있을런지 심히 염려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잘 써질때는 정말 잘 써지지만 안써질때는 참으로 가슴이 답답 하거든요.
혹시라도, 나름대로 세웠던 이 원칙이 조금씩 무너지는 기미가 있더라도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뜨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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