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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그리고 사랑 - 23부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4 18:23 867회 0건
이제 제법 봄 내음이 물씬 풍긴다.
사월의 도심은 아직도 포근한 정도는 아니지만, 봄의 느낌을 완연하게 전해준다.
차창을 열면, 비록 도심의 매연에 찌들은 바람이지만, 그래도 봄 내음이 풍겨온다.
이번 지방출장 길에는 봄의 느낌을 제대로 느끼고 오는 터이다.

현석은 어제, 지방에 출장을 갔다가 이제 귀사 하는 길이다.
거래처와의 술 약속까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하루를 묶고 오는 길이기는 하지만, 점심시간을 조금 지난 시간이라 혼자서 점심까지 먹고 회사로 들어오고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먼저 세면장에 들리기 위해 화장실을 지나는 중에 여자 화장실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쏴아 하는 물 소리와 함께 여자의 울음소리가 들려 왔다.
"누가 우나?"
잠깐 서서 귀를 기울였다.
다시 발을 옮기려는데 쏴아 하고 흐르는 물소리 가운데서 아까 보다 커진 울음소리가 들려 왔다.
‘누가 울고 있는 모양이네, 어떤 나쁜 놈이 여직원을 울렸대?’
혀를 끌끌 차면서 지나 가려는데, 한지수의 울음소리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울음소리를 들어 본 적은 없지만, 울음에 묻어 나오는 목소리에서 틀림없는 한지수라 느껴졌다.
이미 1년 가까이 되었으니, 아무리 울음소리를 듣지 않았다고, 울음소리 속에서 들려오는 직원의 목소리를 알 수 없을까?
이게 무슨?
내 그리운 사람인데.
한마디 말도 못하고, 가슴 속에만 고이고이 간직한 내 사랑, 그대의 울음소리라니.
그래도 그냥 지나가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지수씨?"
여자화장실이라 들어갈 수도 없고 하여, 밖에서 화장실 안으로 보고 불렀다.
현석은 언제나 여사원들에게는 이름을 불러주었다.
"지수씨"
다시 한 번 부르자 울음소리가 잠시 멈추는 듯 하더니 서러움에 복받쳐 헐떡거릴 때나 울음을 멈추느라 애 쓸 때의 헐떡거림이 들려 왔다.
한지수가 맞다 는 판단과 함께 그도 모르는 사이에 여자 화장실 안으로 발길이 옮겨 가고 있었다.
여자화장실 세면대 앞에는 물이 틀어져 있었고, 세면대가 있는 바로 앞의 바닥에 주저 앉아서 울고 있는 한지수를 발견했다.
잠시 동안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어떡하지?
언제나 밝고 명랑한 한지수인 까닭에 이해도 안 갔지만, 여사원이 화장실 바닥에 않아서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지라 잠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지수씨!"
"흐으윽."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으려 할 때에나 나올 수 있는 비명 같은 목소리와 헐떡거림이 반복 되었지만, 울음은 그리 쉽게 멈추지 않는 듯 그녀는 고개를 더욱 숙였다.
"왜....?"
"허어어엉.."
지수는 참으려 하는 울음을 멈출 수 없는 듯 울음이 더 커졌고, 현석은 더 당황했지만, 지수의 어깨 아래로 손을 넣어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지수의 몸무게가 느껴졌지만 그녀는 완전히 힘을 빼고 있는 듯, 몸은 그대로 있고 팔만 딸려 오다가 이내 스르르 빠져 나갔다.
"지수씨 일단 일어서요.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한지수가 걱정도 되고, 여기가 여자 화장실이라는 것이 더 조바심을 일으키게 한다.
행여 여직원이 들어 오다가 이 장면을 본다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흐응.. 흐윽"
울음이 쉬 그칠 것 같지 않다.
현석은 등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리고 살짝 살짝 등을 두드려 주기도 하면서 진정하고, 울음을 그치기를 바랐다.
“지수씨, 울지 말아요. 자, 나가요 여기서 이럴게 아니라.”
그렇게 말하면서 현석이 다시 어깨 아래로 손을 넣어 일으키자, 한지수는 현석의 일으킴에 힘을 보태 천천히 일어섰다.
그녀는 얼굴을 현석 쪽으로 향하지 않고, 반대방향으로 돌리며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현석은 아무 말 없이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지수의 손에 쥐어 주었다.
비록 현석이 종종 사용해서 깨끗한 상태는 아니지만, 이런 상황을 예견하고 달리 손수건을 몇 개씩 넣고 다니지 않는 바에야 달리 방법이 없는 상태가 아닌가.
손수건을 받고도 울음은 한참을 그치지 못했다.
그러나 이곳이 여자 화장실 이라는 이유로 마음이 바빠졌다.
전 직원이 강당에 모여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없는 상태이라 마음은 더 바빠 졌다.

"지수씨."
현석은 지수를 부축해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 했지만, 지수는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당황해서 말리려 했지만, 그럴 틈이 없이 한지수는 사무실 쪽으로 이동했다.
"지수씨 여긴 직원이 있는데, 어디 딴 곳으로 가요."
"...."
그녀는 대답대신 고개를 가로 젖고는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무실에는 현석의 예상과는 달리 아무도 없었다.
지수는 여자 탈의실로 종종걸음을 했고, 현석 역시 그 곳으로 따라 들어갔다.
여자 탈의실이라는 것이 어찌 되었건 금남의 구역이지만,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따라 들어 갔다.
그런데 평소에는 전혀 불가능 했던, 몸을 부축하는 비교적 짙은 스킨십에도 지수는 조금의 거부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의도를 가진 스킨십은 아니었다고 할 지라도, 평소의 행동으로 보아서는 이런 상황에서 조차도 그런 것을 전혀 용납할 수 없는 것이라고 보아야 했다.
현석은 약간의 민망함과 갑자기 지수가 밀쳐 낸다면 어떡할까 라는 마음과 한편으로는 이런 상황에서의 자연스런 스킨십으로 그간에 그리도 열망하던 그리움에 대한 일종의 보상이라도 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갑자기 연인이 된 듯한 위험한 착각에 빠졌다.

탈의실에는 몇 개의 의자와 작은 테이블이 있었지만, 지수는 앉으라는 현석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한쪽 구석에 등을 보인 채로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섧게 울고 있는 것인가?
"무슨 일 있어요? 지수씨."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지수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고, 울음이 쉽게 그치지 않는 가운데 무의미하게 시간이 흘러갔다.
현석은 약간은 머쓱한 기분이 들었고, 탈의실에 계속 있기도 거북했다.
엉거주춤 서 있는 모습도 그렇고 여자 탈의실이라는 것이 서둘러 이 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했지만, 한지수를 혼자 두고 그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긴 시간이 지났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알아 볼게요. 지금 지수씨가 말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태인 것 같은데.... 다른 사람에게 물어 보지 뭐."
그리고 발길을 돌리려는데
"흐흥. 아.. 아녀요 흐흥... 차.. 차장님."
지수는 현석에게로 돌아서며 울음이 묻어 나는 목소리로 그러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가늘고 예쁜 두 손은 얼굴을 감싼 채로. 그리고 어깨는 계속하여 들썩이고 있었다.

현석은 그 모습이 안쓰러워서 갑자기 안아 주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지수의 어깨 뒤쪽으로 손을 얹어 자신에게로 끌어 당겼다.
그런데 그녀는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무너지며 현석의 가슴에 기대어 왔다.
현석은 두 손을 등뒤로 돌려 가만히 힘을 주어 안았다.
한지수의 이런 황만해 보이는 상황과는 다르게 현석의 가슴은 뛰었다.
오랫동안 이렇게 하고 있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다.
한지수의 가슴은 울음을 참는 듯 들썩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대로 한참 동안 침묵의 시간이 지났다.
"저. 흐헝. 저 보고. 저보고. 으흥. 회사 돈을... 돈을 횡령..으...횡령 했다고..."
그녀는 어깨까지 들썩이며, 반쯤은 울음으로 말을 했다.
말을 하려다가 더 설움에 복받친 느낌이 들었다.
"...."
이게 무슨 소리야?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고 울먹이면서 지수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내 부서의 직원인데,
나도 없는 사이에,
출장 간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오래도 아니고, 불과 어제 출발해서 오늘 도착하는 길인데, 그 짧은 시간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이야?
갑자기 화가 났다.
그 부서의 책임자가 잠시 없는 사이에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무슨 소리야?”
“..”
“그럴리가.. 그건 누군가의 모함일거야."
"흐엉... 엉.."
"내가 알아볼게. 지수씨가 그럴 리가 없잖아요? 내가 알기론 절대 그럴 리가 없는데."
정말 한지수의 비용처리는 정말 깔끔했다.
사내에서 행동거지만큼이나 일 처리에 있어서도 매우 깔끔한 편이며, 현석이 항상 결제를 하지만 흠 잡을 데 없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흐응..."
"그렇다고 그만두거나 하는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고.. 이럴 때 일수록 진실을 밝혀야 떳떳하지."
현석은 한지수의 등을 조심스럽게 두드려 주었다.
쉽게 잦아들지 않는 그녀의 울먹임이었지만, 아주 천천히 안정을 찾아가는 느낌이다.
사무실에 아무도 없었던 이유는 박일한 사장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본부직원들을 강당으로 불러 모아 놓고, 이러한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며 직원들에게 훈계를 하던 중이었다.
당연히 해당 당사자는 참석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 좀 알고 싶습니다.”
직원들이 돌아오고, 박일한 사장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사장실로 따라 들어가서 출장보고보다 먼저 한지수의 일을 물었다.
“한지수 사원이 김차장 부서지?”
박사장은 대답대신 질문을 먼저 했다.
“네, 그렇습니다.”
“제보가 있었어, 회사공금을 횡령 했다는 제보.”
“네?”
“그런데, 단순히 제보로 끝나지 않고, 대자보가 붙어서 일이 조금 크게 확대되었어.”
“아니, 이런 세상에.”
황망하기 그지 없다.
“아무튼, 횡령제보가 있으니 조사는 해야지.”
“그럴 리가요? 우리부서에서 돈을 다루는 것이, 거래처 수금하고, 부서경비뿐인데, 거래처 수금은 대부분 당좌수표 아니면, 약속어음이니, 경리부서가 아닌 다음에야, 그것을 손 대는 건 불가능하구요. 부서 경비는 제가 확인하고, 결재 하는데 결코 그런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무슨 횡령이라는 것입니까?”
현석의 주장에 박사장이 담배를 빼어 물면서 현석을 쳐다보았다.
“나도 그 점이 이상해서, 전체를 조사해서 보고하라고 감사 팀에 지시를 했어. 거래처 수금은 김차장 말 그대로이니, 현업에서 어찌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게 맞아.
그런 일이 생기려면 현금수금이 많고, 전체를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자잘한 거래처가 많아야 되는데, 김차장 부서는 규모가 굵직굵직하고, 단위가 커서 잠시만 확인하면 빤히 보이거든,
그리고 부서경비라는 것이 횡령 어쩌고 할 큰 돈이 아니지 않아? 그런데 제보가 들어 왔단 말이야. 그게 이상해.”
“부서경비 횡령이라면, 한지수 사원뿐만 아니라, 저도 대상에 들어야 합니다. 부서장과 공모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지요.”
“맞는 이야기야. 감사 실에 지시 했으니 오래 안 걸릴 거야, 기다려 봐..”
“이건 무언가 모함의 냄새가 나는군요.”
“기다려 보자구. 감사 팀에서 조사 결과 나올 때까지.”
“알겠습니다. 다만, 저는 저대로 확인을 좀 하겠습니다. 그리고 한지수 사원 혼자 조사받으러 보내지 않겠습니다. 그 점은 이해를 해 주시면 감사 하겠습니다.”
“김차장이 부서장이니, 그건 적당한 선에서 알아서 해, 대신 감사실 고유 업무를 건드리면 감사 실에서도 싫어할 테니 적절하게 하고.”
“네. 명심하겠습니다.”

“한지수씨 어디 갔어?”
사장실을 물러나서 자리로 돌아온 현석은 한지수가 눈에 보이지 않자, 그 뒤쪽에 앉은 최영규에게 물었다.
“조금 전에 감사 실에서 불러서 방금 그리 갔는데요, 그리고 차장님이 사장실에 가셨을 때, 감사 실에서 와서 서류들을 모두 가지고 갔습니다.”
한지수의 옆자리에 앉은 이정희가 먼저 대답을 했다.
“알았어요, 그리고, 한지수씨 지금 불러와. 최대리 빨리 나가봐.”
“네, 차장님.”
최영규가 재빨리 일어나서 문 밖으로 뛰어 나갔다.
그리고, 잠시 뒤에 최영규와 한지수가 문으로 다시 들어 왔다.
“엘리베이터 타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최영규의 말이다.
“다행이네, 최대리 수고했어. 그리고 지수씨, 감사실 가기 전에 나하고 회의실에서 먼저 이야기 좀 해요. 그리고 정희씨와 최대리 어디 가지 말고 좀 기다리고 있어요.”
“네, 알겠습니다.”
한지수는 왜 그러나 하고 현석을 바라 보았다.

현석은 한지수와 마주 앉았다.
“지수씨가 공금을 횡령할 일도 없겠지만, 만일 횡령이 사실이라고 전제하고 본다면, 이것은 나랑 공모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야. 이해해요?”
“어떤?”
“지수씨가 다루는 돈은 부서경비와 거래처 수금인데, 거래처 수금은 현찰로 받아 오는 게 없고, 대부분 당좌수표나, 약속어음이라서 법인도장이 없으면 어떻게 할 수 없어요.
그래서 그걸 횡령한다는 것은 거의 있을 수 없는 거잖아요?
수금해온 것을 경리부서에 전달 하는 일도 지수씨가 했으니 잘 알 지 않나요?”
“..네.”
조금 생각해 보더니 대답을 했다.
“그럼 남는 게 부서경비인데. 부서경비란 내 결재 없이 집행이 안 되는 거죠?”
“네.”
그것부터 시작해서, 경비를 포함하여 돈을 집행하는 부분에 대한 모든 상황을 점검해 보았다.
그런데, 가능성이 있는 곳이 없다.
현석의 눈을 속이고, 한지수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모든 부분을 점검하고 난 뒤에 최영규와 이정희를 불렀다.
한지수에게는 밖에 나가서 기다리라고 하고, 감사 실에서 오라고 연락이 오거나 데리러 오더라도 가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다.

“두 사람은 어떻게 생각해?”
“저는 그럴 리가 없다고 봅니다. 횡령이라니요.”
최영규의 대답이다.
“저는, 좀 걸리는 데가 있어요.”
이정희는 현석을 잠시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뭔데?”
“..”
이정희는 잠시 생각하는 듯 했다.
“총무부에 박희연이라고 아시죠? 차장님.”
그럼 알지.
제법 예쁘장한 외모에 도도한 모습으로 회사를 활보하고 다니는 직원이다.
그리고, 남녀관계가 어쩐다느니, 직원 누구 누구와 관계가 있었다느니 하는, 별로 좋지 않은 소문이 좀 있긴 했지만, 그런 것은 현석과는 상관 없는 일일 뿐만 아니라 여직원들간의 까십 거리에 신경 쓸 일은 없었다.
종종 부서 회식 때나 흡연구역에서 답배를 피다 보면 직원들이 하는 이야기를 본의 아니게 듣게 되는데, 그런 곳에서 듣는 정도라서 신경 쓸 일도 없었다.
“알죠. 그런데 왜?”
“박희연이가 이유 없이 지수씨를 험담하는걸 몇 번 들은 적이 있거든요. 확인된 건 아니지만, 직원들 사이를 좀 이간질 시키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요.”
“그래요?”
“네, 그리고, 한지수씨가 없으면 자기가 사내에 퀸이 될 텐데,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언젠가 이야기 하는걸 들었어요.”
별의별 사람들이 다 모여 있는 곳이 회사이긴 하다.
그리고, 그룹전체로 보면 인원이 제법 되기 때문에 여러 유형의 사람들이 있어서 참으로 다양한 성격들이 표출 되기는 한다.
“그럼 박희연이 모함을 했을 수도 있다고 봐야 하네.”
“이유 없이 의심하는 건 안되지만 가능성은 있다고 봐야 할 것 같아요.”
현석은 이정희로부터 그 이간질의 내용을 좀 들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박희연이 모함을 했는지 확인 된 것은 아니다.

두 사람으로부터 몇 가지 이야기를 들은 뒤에 최영규를 감사실 쪽으로 보냈다.
멀리 감사 실이 보이는 곳에서, 감사 실에서 눈치채지 못하도록 하면서, 누가 감사 실로 불려 들어가는지 좀 보아두라고 시켰다.
감사실 인원이 많지는 않으니 분명 앉아서 오라 가라 할 것이고, 그곳을 주시하면 이동상황을 알 수 있으니,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이정희도 내 보내서 각 부서마다 다니면서 다들 이 일에 대해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는지 좀 들어보라고 시켰다.
“자, 한지수씨는 나와 몇 가지 이야기를 더 나눕시다.”
“차장님.”
“응. 왜?”
“저는, 그냥 관 두고 싶어요.”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한줄기 흘렀다.
아까, 그렇게 펑펑 울던 것에 비하면, 많이 정신을 가다듬었지만, 충격이 크긴 컷 던 모양이다.
“관 두는 거, 아주 쉬워요. 그런데, 횡령한 직원으로 영원히 기억 속에 남고 싶어요? 경찰 조사도 받고?”
“..”
그 말에 지수는 고개만 숙였다.
“이대로 관 두면, 횡령한 직원으로 영원히 남게 되는 거 알아요?
설사 관 두더라도 누명은 벗고 관두어야 하는 것이고, 본인이 안 했다면, 관 둘 이유도 없고. 그렇지 않아요?”
“그렇긴 하지만.”
“봐요, 좀 전에 우리부서이긴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믿지 않잖아. 그죠? 그런데 왜?”
충혈된 눈에서는 연신 눈물이 흘렀다.
이리도 마음이 약했나?
아니, 너무나 억울한 일을 당해서 그럴 수도 있다.
여태까지 그렇게 도도하고, 깔끔하게 생활 해 왔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이런 상황이 이해되지 않고, 황당하기도 하고, 분하고 억울하기도 할 것이다.
만일 그런 상황이라면, 눈물이 쉴새 없이 나올 수 있다.
현석은 한지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우리 부서의 모든 사람들은 믿고 있으니, 잘못 상황을 냉정하게 생각하라고 시켰다.
그리고, 그만둔다는 것은 경우에 따라 모든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되니, 절대 그런 생각은하지 말 것을 신신 당부 했다.
“그리고, 조사 받으러 가면, 감사 실은 대부분 강압적이기 때문에, 한참을 그렇게 강압적으로 자백을 강요 받다 보면 자포자기 심정이 될 수 있는데, 그러면 안 되요.”
“…”
“조사 받을 때 내가 옆에 있어주면 좋겠지만, 그렇게는 못하게 할거야 틀림없이.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중심을 가지고, 정확한 상황파악을 하는 것,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해요.”
알아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알아 들었으리라.
그렇게 믿었다.

한지수를 데리고 감사 실로 찾아갔다.
감사실장 오정환은 얼굴은 알고 있지만, 별로 교류는 없다.
“김차장은 여기 왜왔어? 한지수만 보내면 되지.”
감사 실로 들어서는 모습을 보고 오정환이 대뜸 반말로 고함지르기부터 시작한다.
내 그럴 줄 알았다.
분명 한지수 혼자 보내면, 틀림없이 저보다 더 심하게 윽박질렀을 것이다.
안 봐도 비디오다.
오정환은 부장급이지만, 감사 실을 맡고 있는 때문에 약간은 안하무인이다.
업무의 성격으로 봐서 굳어진 성향일 테니 고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그 말은 익히 들은 터라 이상할 것 하나도 없지만, 그 정도에 기가 눌릴 현석이 아니다.
현석은 감사 실에 책 잡힐 일도 하지 않았고, 별로 찔리는 것도 없으니 신경 쓰지 않는다.
다짜고짜 반말부터 하는 게 감사실 규칙입니까? 하고 싶었지만, 상대를 기분 나쁘게 해서 득이 될 것은 하나도 없다.
“제 부서 직원이다 보니, 저도 내용을 좀 알아야겠기에 인솔해 왔습니다. 이해 해 주십시오.”
그리고는 준비해온 음료수 한 박스를 내 밀었다.
“그런데, 오라고 부른지가 언제인데 이리 늦게 오는 거야?”
“아, 네. 저도 출장 다녀와서 이 상황을 알게 되다 보니, 제가 내용을 좀 알고 싶어서, 이것 저것 물어보고, 이야기 좀 하느라 늦어졌습니다.”
“아무튼, 김차장은 돌아가고, 한지수만 회의실로 들어가.”
오정환의 그 말에, 야! 넌 직원들에게 다 그리 반말하냐? 하고 한대 쥐어 박고 싶다.
그러나, 지금은 정보가 필요하다.
“오실장님, 제 부서 직원이다 보니, 저도 신경이 많이 쓰입니다. 아무 말 안 할 테니 조사 할 때 제가 옆에서 좀 듣고 싶습니다.”
“안돼. 그건.”
당연히 안 된다고 말 할 것이다.
“오실장님, 오실장님 같으면 부서 직원이 이런 일을 당했을 때 모른 체 하실 수 있습니까? 그러지 않으실 것 아닙니까?”
논쟁이 붙으면 안되지만, 그리고 오정환과 논쟁을 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어찌 되었건 오정환을 설득해서 내용을 들어야 한다.
한참을, 입씨름을 한 뒤에 감사실 안에 있는 것 까지만 허락을 받았다.
“그리고, 한가지만 더요. 혹시 제보자가 누구입니까?”
“그건 제보자 보호를 위해 비밀이 유지 된다는 거 몰라서 물어?”
맞는 말이다.
이건 분명 규칙 맞다.
다른 경로를 통해서 알아 봐야 할 것 같다.

회의실은 유리창이 있어서 들여다 보이기는 하지만 작은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한지수가 등지고 있어서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
미리 겁 먹지 말라고 잘 시켰었다.
시킨 대로 겁먹지 않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그리고 말 소리가 들리는지는 않지만, 뒷모습만으로도 의연하게 대답을 잘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지수에게 미리 이야기 한대로 조금 지켜 보다가 자신의 부서로 돌아왔지만, 일이 손에 잡힐 리가 없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고, 안쓰럽기도 하다.
외출했던 직원들이 일부 돌아오고, 그들도 소식을 들은 모양이다.
이쪽 저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현석은 부서 직원들이 눈에 뜨이는 대로, 생각해 둔 일들을 시켰다.

“차장님, 제보자가 박희연 맞는 것 같습니다.”
이정희가 회의실로 들어와서는 현석에게 이쪽 저쪽 들은 이야기를 나름대로 종합해서 말해 주었다.
“그래요? 그렇다면, 작전이 좀 필요하지.”
“어떻게요?”
“아까 정희씨가 했던 말.”
“아! 퀸 이야기요?”
누군가가 질투를 해서 한지수를 모함 했다고 하더라.
그게 박희연이라는 소문도 있고, 다른 사람이라는 소문도 있다는데, 그 사람들도 곧 조사한다더라,
그리고 경찰에 수사의뢰를 해서 이것을 밝혀 낼 것이라는 것이 임원진의 생각인 것 같더라.
횡령 사건이라서 경찰이 수사를 하면, 진짜면 형사처벌을 받게 되고, 만일 모함이라면, 모함한 사람이 형사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더라.
형사처벌 받게 되면, 최소 6개월에서 길게는 1년은 감옥에 가야 할 수도 있다 하더라.
그런데, 경찰에 수사의뢰를 하기 전에 모함임이 밝혀 진다면, 형사처벌은 안 받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등으로 이곳 저곳 다니면서 말을 흘리라고 했다.
만일 모함이라면, 경찰이 개입되어서 생길 형사문제를 들먹여서 자진철회를 하도록 하려는 의도였다.

한지수는 오후 4시경 감사 실에 불려갔는데, 저녁 8시가 넘어서야 사무실로 되돌아 왔다.
직원들은 퇴근을 했지만, 현석은 한지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초췌 해 보이기까지 했다.
너무나 안쓰러워서 안아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다.
아까 탈의실에서는 얼떨결에 현석의 품에 안겼지만, 이제는 그럴 상황이 아니다.
“수고했습니다. 내가 많은 도움이 못 되어서 정말 미안해요.”
“아니에요 차장님. 지금까지 만으로도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얼굴은 초췌했지만, 보일 듯 말 듯 현석에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했다.
“내가 데려다 줄께요.”
“괜찮아요. 차장님. 친구가 회사 앞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그래?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그럼 퇴근 준비 해요. 같이 나가게.”
“네.”
한지수는 여자 탈의실로 들어갔다가 한참 뒤에야 퇴근 준비를 해서 나왔다.

다음날은 현석도 감사 실에 별도로 불려갔다.
경리 팀과 함께 불려가서, 거래처 수금상황은 물론이고, 부서경비에 대한내용을 설명해야 했다.
현업부서의 서류라는 것이 거래처와의 거래관련 정보를 빼고, 돈에 관련되는 서류만 본다면 몇 가지 되지 않고, 이미 서류는 모두 감사 실에서 가지고 있으니, 그것으로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는 것 같다.
현석의 기억에 없는 것은 없다.
관련서류만 보면 전체를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내용을 경리 팀과 확인과정을 모두 거쳤다.
경리 팀에서 모두 이상 없다고 확인을 해 주었다.
부서의 다른 직원들도 불려갔지만, 현석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한지수는 다시 불려가서 또 몇 시간의 조사를 받고 왔다.

퇴근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박일한 사장이 부서장을 불러 모았다.
현석이 있는 사업본부의 부서장이라야 달랑 3명이니 단촐 하다.
“음, 일이 좀 애매해 졌네.”
전체가 앉는 것을 기다려서 커피를 가져오라고 시킨 뒤에 박일한 사장이 처음으로 한 말이다.
“..”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몰라 현석도 박일한 사장을 쳐다보았다.
“감사 실에서 조금 전에 보고를 받았어.”
“아. 어떻게 되었습니까?”
현석의 부서이고, 대상이 한 지수이다.
얼마나 알고 싶은 내용이었던가.
“그게, 무혐의야. 그리고.”
“그리구요?”
“박희연 사원은 본인이 사표를 내지 않는다면, 인사위원회에 회부하라고 지시했네.”
역시 그랬군.
박일한 사장이 말을 이었다.
“두 시간쯤 전에, 박희연 사원이 감사 실로 찾아와서 자백한 모양이야. 자기가 거짓 제보를 했다고, 그런데 정말 이상한 건, 경찰 수사는 받지 않게 해 달라고 했다는데, 그게 왜 그럴까?”
역시 효과가 있었다.
어느 정도 강심장이라고 하더라도 직장인들이 경찰 조사를 받는다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현석은 말을 할까 말까 망설였다.
“김차장이 뭔가 아는 거 있지?”
속으로 생각하다가 입가에 웃음이 번지기라도 했을까?
그래서 들킨 걸까?
“그럼 사장님, 이 사실을 한지수 사원에게 먼저 알려야겠습니다. 잠시 좀 나갔다 오겠습니다.”
이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이기도 하거니와 이런 반가운 일을 빨리 알려 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박일한 사장에게 말했다.
“아냐, 지금 총무부장과 감사실장이 한지수사원을 만나고 있을 거야, 허위 제보로 인해 직원을 의심하게 되었으니, 오라고 하지 말고 즉시 찾아가서 이 사실을 알려주라고 했으니, 아마 김차장 부서에 그들이 가 있을 거야 지금쯤.
그리고, 이 사실을 게시판에 공표하라고 지시했네.
이런 문제는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후속조치가 필요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결국 각 부서장들이 직원관리 좀 잘 하라는 것과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잘 관리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박일한 사장은 현석과 부서원들이 마음고생을 많이 했을 테니, 격려도 좀 해주고, 위로를 해주라고 하면서 금 일 봉을 하사했다.

외출했던 직원들이 모두 귀사 해 있었고, 그 직원들은 이미 감사실장과 총무부장으로부터 이 상황을 전해 들었는지, 현석이 나오자 만면에 웃음을 지었다.
총무부장이 아직도 현석의 부서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김차장, 미안해요.”
“아이구, 어디 정부장님 탓인가요? 아래 직원이 그런 것 인데요 뭐.”
“내가 직원 관리를 잘못해서 그렇지 뭐. 아무튼 사과하죠. 시스템 영업3부 직원 여러분 미안합니다.”
총무부장은 정말 진심으로 사과했다.
“고맙습니다. 정부장님, 그 정중한 사과, 감사히 받아들이겠습니다. 정부장님도 역시 멋진 분입니다.”
주위에 둘러서있던 직원들과 다른 부서의 직원들도 박수를 쳤다.
총무부장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힘있는 총무 부장답지 않은 스타일로 상당히 호인이다.
그래서 대개의 직원들이 다 그를 좋아한다.
“그리고, 박희연 사원은 조금 전에 사표를 제출 했습니다. 앞으로 총무부에서 절대로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자 모두 회의실로 모여 주세요.”
총무부장이 떠나고, 현석은 직원들을 회의실로 불렀다.
“한지수씨, 당연한 것이지만, 무 혐의로 밝혀진 것 축하합니다. 그리고 마음고생 많이 했습니다. 모두 박수.”
현석은 직원들이 자리에 앉기를 기다려서 이미 알고 있는 소식이지만, 직접 알렸다. 그리고, 박수소리가 가라 앉기를 기다려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여러분들 모두 수고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차장님.”
한지수가 감사 인사를 하고, 직원들에게도 인사를 했다.
직원들이 모두 한지수에게 악수를 청했다.
부서의 직원이 횡령 혐의로 조사를 받는다는 것은 직원들을 의기소침하게 만든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두들 애를 많이 썼고, 결과적으로 좋은 결과가 나왔다.
“오늘, 사장님이 한지수씨를 위로하고, 우리 부서를 격려하는 의미로 금 일 봉을 하사 하셨으니, 이 기분으로 회식합시다. 약속 있는 사람?”
“없습니다.”
“있어도 취소합니다.”

해프닝이다.
해프닝일 뿐인 이런 일이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리고, 당하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큰 상처로 남는다.
그래도 잘 마무리 되어 다행이다.


(계속)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도 예리가 사랑스럽습니다. 너무 사랑스럽게 써 내려 갔습니다.
만일, 현실에 그런 여자가 있다면 절대로 놓치지 않고 싶습니다.^^

교암리는 윤가희를 만난 장소입니다만, (삼일간의 사랑)이라는 조금 짧은 글에 등장하는 장소입니다.
그런데, (삼일간의 사랑)은 (이별 그리고 사랑)이 끝난 후에 올릴것인지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삼일간의 사랑)은 (이별 그리고 사랑)의 프롤로그 같은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다다익선. 그말 잊어버리지 않겠습니다.

지금은 섹션 제목인 소제목을 쓰지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수도 쓰지않고 있구요.
원래의 글에는 모두 소제목이 있습니다만, 빼는것이 좋겠다는 나름대로의 판단으로 그리하였음을 이해하여주시기 바랍니다.

21부에서 예리의 친구들과 같이 만난것, 그리고 정하니가 동행 하였고, 잠이 들었고,
두사람의 사랑을 나누는 중에 잠시 깨어난것은 여러가지 복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그 복선은 글로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쓰지 않기로 한것이 저 역시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쓰게되면 설정이 조금 복잡하고, 나이가 어린관계로 조금은 난잡(?)해 져야 하는데, 전체의 스토리와 균형이 맞지 않아서 그리 결정 하였음을 또한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추천해 주시는 독자분들, 댓글로 격려해 주시는 독자분들, 모든분들께 감사드리며,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로 잘 전개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 뜨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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