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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그리고 사랑 - 29부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4 18:22 768회 0건

대공원 일 이후,
현석과 지수는 반쪽의 연인 같은 관계가 되었다.
다른 직원들에게는 언제나 전과 같은 모습의 한지수로, 그리고 직원들이 있을 때에는 현석에게도 늘 다른 직원들 대하듯 같은 모습으로 대했고, 두 사람이 간간이 가지는 데이트에서는 연인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업무 외의 장소에서 따로 만나게 되었고, 그 시간은 두 사람을 무척 가까운 사이로 만들었다.
다만 진한 키스와 옷 위로 가볍게 애무를 하는 정도였다.
그런 가벼운 터치에 대해 현석은 아쉬움을 느꼈지만, 그 이상 깊이있게 진행되지는 않았다.
때때로 현석은 그녀가 아쉬워하는 것 같다는 착각을 했다.
현석은 언제나 아쉬웠지만, 깊은 입맞춤을 하고난 뒤에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녀의 깊은 눈동자속에는 무언가 다하지 못한 아쉬움이 넘치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이, 비록 현석이 못내 아쉬워서 느껴지는 착각일 수도 있지만, 현석만큼 그녀도 아쉬울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조금 더 깊이 들어가기에는 뭔가 좀 남감했다.
적어도 그녀와의 데이트는 대부분 공개된 장소였고, 두사람만이 있는 밀폐된 장소는 없었기에 더욱 그러한듯 했다.
그렇다고 주말을 이용해서 1박을 하는 여행을 제안하기도 조금은 난감했고, 폐쇄된 공간에서 두사람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우리 호텔로 갈래? 하고 물을 수는 절대로 없었다.
한편으로 아쉬워하면서,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 정도에 만족해 하면서 몇번의 데이트가 이어졌을 뿐이다.

* * *

프랑스와의 제휴 건은 예상보다 빠르게 잘 진행 되었다.
일본을 방문 중이던, 프랑스 회사의 동아시아 담당 임원이 내방하여, 조금 쉽게 조인식과 서명을 마쳤다.
그리고 7월 중순경에 교육받을 두 사람을 일주일간 파견하여 프로모션 교육을 이수하는 것으로 제휴는 마무리 되어 양사간에 사업이 진행 되는 것이었다.
"축하해 지수씨."
조촐하지만 본부 내 회식을 하는 자리에서 현석은 지수에게 다른 직원들과 꼭 같은 어조로 축하를 했다.
"그쪽에서는 프로모션 교육에 불어를 구사하는 한지수씨를 꼭 보내 달라던데 괜찮겠어요?"
옆 부서의 부장이 지수에게 물었다.
"네 괜찮아요. 그리고 가능하면 꼭 가고 싶어요."
그렇게 요구하고 이야기는 나누었지만, 회사에서는 한지수를 출장 보내는 것에 대해서 회의적이었다.
그 이유로, 일단 지수는 영업담당이 아니라는게 문제였다.
그것이 그녀를 출장교육에서 제외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물론, 그 사항은 아직 한지수에게 통지 되지는 않았고, 현석만 알고 있었다.
프로모션 교육의 주된 내용은 마케팅과 마케팅을 위한 기술교육이다.
그래서 박일한 사장은 현석과 기술부서에서 한 명을 차출하여 2명이 가라는 지시를 내렸다.
현석은 아쉬움이 많았다.
한지수를 꼭 보내 주기로 했었는데, 못 보낸다면, 결국 현석이 거짓말을 하는 셈이다.
고민스러웠다. 이것을 어떻게 말하지?
박일한 사장이 좀 고지식한 것일까?
박일한 사장을 설득 했지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현석은 현석이 관리하는 부서의 기술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고준필 부장을 만났다.
고준필은 현석보다 나이가 일곱 살이나 많은 고참 부장이다.
“고부장님, 이번 프랑스와 제휴건, 기술파트에서 한 명 보내라는 지시 받으셨죠?”
“응, 지시 받았는데, 조금 전에 사장님 뵙고 보낼 사람이 없다고 말씀 드렸어. 미안하지만 김차장이 해결 좀 해줘.”
“지금 기술부에서 바쁜 건 알고 있긴 한데.”
그 말을 들은 현석은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이야기로 봐서 자신에게 먼저 지시를 하고 고준필에게 지시한 것이 틀림 없다.
그런데, 고준필이 기술부에서 못보낸다고 했단다.
기술부에서 일이 바빠서 출장을 보내지 못한다면, 약속대로 한지수를 보낼 수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말은 결국 현석과 함께 출장을 갈 수 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김차장이 일 많이 집어 넣어서 그런 거잖아? 그런데 열흘씩 어떻게 빼? 절대 안돼.”
“저도 사장님께 그렇게 보고를 드렸는데, 사장님이 안 된다고 하시니 저도 답답합니다.”
“원래 그일 진행 했던 담당자가 한지수 이잖아? 그럼 한지수 데리고 다녀와, 그게 관례 아니야?”
“맞긴 합니다만.”
“그럼 된 거지, 사장님께 김차장이 보고 드려, 우리부서에서는 보낼 사람 없어. 사장님이 김차장 말은 잘 들어 주시니까 설득해 봐.”
오히려 잘 되었다.
사장의 지시에 현업에서 반대할 명분이 없었는데, 기술파트에서 못 간다니 명분이 생긴 셈이다.
만일, 영업 내에서 한지수가 아닌 다른 사람을 보내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설득력이 없없는 것이 자연스럽게 한지수가 가게 된다.

현석은 다시 한번 박일한 사장을 설득했다.
기술부에서 보낼 사람이 없다는 것, 그리고 프랑스에서 이 일을 처음부터 진행했던 사람이 한지수이고, 프랑스에서도 한지수 사원을 꼭 보내달라고 신신 당부를 했던 일, 이 일을 처음부터 진행한 담당이 마무리까지 진행하는 것이 여태까지의 일 추진상으로 볼 때 맞는 것이라고 설득을 했다.
그리고 프랑스라는 특성으로 인해 불어가 필요하다는 점 등 동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여 설득을 했고, 무려 한 시간이 걸려서야 허락을 했다.
허락을 하면서 박일한 사장은 한마디를 덧붙였다.
"남 여사원이 함께 출장 가는 모양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충분히 있다. 김차장이 신변정리가 깔끔하고 한지수 사원 역시 회사 내에서는 깔끔하기로 소문나 있으니 무슨 일은 없겠지만 몸가짐과 행동을 지극히 조심해야한다."
맞는 말이다.
직원들은 지수와 함께 출장 가는 현석을 무척이나 부러워했다.
다들 얼마나 좋겠느냐고?
자기도 여직원이랑 출장 한 번 가 보면 좋겠다고 했다.
"뭐가 좋아? 부담만 되지. 출장비도 부족하고.. 좋을 거 하나도 없잖아?"
그렇게 핀잔을 주었지만 아무도 마음속으로 기뻐하는 현석의 마음은 모르리라.
다만, 사무실에서 지수에게는 냉정하고 사무적으로만 대한 까닭에 그로 인한 수근 거림은 없었다.
다른 부서의 어떤 직원은 현석에게 찾아와서 잘 데리고 다녀와 달라고 하기도 했다.
그래서 너랑 애인 사이냐고 물었더니, 아닌데 어떻게 하든 애인 만들고 싶단다.
그런데, 아무리 시도를 해봐도 다답도 안하고, 만나 주지를 않고, 사내에서는 업무적으로 밖에 대하지 않으니 미치겠다고 했다.
퇴근무렵에 기다렸다가 뒤따라 갔는데, 경찰을 불러서 자기를 쫏아 냈단다.
"바보야. 나는 키스도하고 포옹도 하는데.. 너 바보구나.." 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김현석입니다.”
퇴근시간이 지나서 외부에서 회사로 들어오는데 전화가 걸려 왔다.
‘저, 정하니라고 하는데 혹시 기억 나세요?’
기억에 없는데 누구지?
“누구시죠?”
아, 맞다. 누구냐고 질문을 해 놓고 생각난다.
“아. 예리 친구분이죠?”
‘네 맞아요. 혹시 지금 좀 만나주실 수 있으세요?’
“지금 회사로 귀사 중인데, 그럴 시간은 좀 어려운데요.”
예리와 아직도 사귀는 중이라면, 만남이 별 상관이 없을 수도 있지만, 이미 결별한 사이이다.
그런데, 친구가 전화를 해서 만나자?
그건 아니지.
아니, 한지수를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면, 얼씨구나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만날 이유가 별로 없다.
정하니 와는 졸업식 날 딱 한번 본 것이 전부이다.
예리와 밤을 보낼 때 그녀가 들었을 것이라는 추측은 했었지만, 예리가 물어 보았는지는 모르지만, 현석이 확인한 적은 없다.
그런데, 전화번호를 어찌 알았지?
그들에게 명함을 준 적도 없고, 전화번호를 알려 주지도 않았는데.
‘혹시 내일은 어떠세요?’
내일도 시간이 안 된다고 하나? 그건 좀 애매하다.
“글쎄요. 전화로 이야기 하면 안 되나요? 내일도 좀 바쁜데.”
어차피 계속되지 않을 인연이라면, 무언가 연결 고리를 남겨두는 것이 좋은 일은 아니다.
예리와의 일이 다 잊혀진 것은 아니지만, 두어달 지나다 보니 이제는 자주 생각나지 않는다.
아마 지수로 인해서 떠 빠르게 잊혀졌을수는 있을것이다.
‘그러시다면, 한가지만 좀 물어볼꼐요."
"네, 말씀하세요."
"혹시 최근에 예리와 연락 없으셨나요?’
“글쎄요, 마지막으로 본게 4월이니 두달쯤 됫는데요, 그 이후로는 서로 연락이 없었는데요."
제주에 갔던때, 유채꽃이 환하게 피었던 그때는 사월 중순이었는데, 지금은 6월 하순이다.
그러니 두달은 족히 지났다.
‘그래요? 그럼 어떻게 된거지 대체.’
정하니는 혼자말 처럼 중얼거렸다.
‘혹시, 연락이 되시면 저한테 꼭 연락 좀 해 달라고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네, 그럴께요.”
그녀가 자신의 전화번호를 불러주는데 역시 휴대폰이다.
아무나 쉽게 부담없이 쓸수 없는 휴대폰을 얘네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건가 싶다.
그런데, 절친한 친구들인데, 연락이 안되다니.
무슨일이 있는것일까?
아니야, 무슨일이 있건 말건 이제 나하고는 무관한 일이니 이제는 신경쓰지 말자.
지금은 냉정해 보일지라도, 나중에는 그것이 오히려 더 나을거야.
그리고 이미 두달이 넘었고 석달 가까이 되었는데.
서로간에 결별을 하기로 하였으면, 미련같은것도 남기지 않는 것이 좋은거야.
현석은 조금은 뜻하지 않은 소식이었지만, 잊기로 했다.
어차피 잊어야 할 사람이니까.

* * *

"이 아가씨 첫 비행이거든요. 창가의 좋은 자리로 좀 주실 수 없나요?”
프랑스로 출발하는 비행기의 좌석을 배정받을 때 현석의 부탁에, 좌석배정을 담당하는 항공사 직원은 고맙게도 단 두 좌석만 나란히 붙은 이코노미 석의 가장 앞에서 두 번째 자리를 배정해 주었다.
현석이 종종 출장을 다녔지만, 이 자리에는 단 한번도 앉아 본 적이 없는 곳이다.
앞은 다른 좌석으로 가려 있고, 단 두 명만 앉을 수 있는 공간인 이코노미 석의 로열석 같은 이 공간은 단지 3칸에 지나지 않는다.
옆 사람과 부대낄 일도 없고 바로 창 쪽일 뿐 아니라 지수는 현석만 지나가면 복도였다.
그 곳은 두 사람 이외에 어느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는 자리이고 지수 역시도 그 자리를 무척 마음에 들어 했었다.

지수를 데리고 프랑스로 가는것에 우여 곡절이야 많았지만, 현석에게 있어서 이보다 더 좋은일은 없다.
지수와의 몇번의 입맞춤, 그리고 진하지는 않았지만 적당한 스킨십, 그리고 적당히 가까운 느낌.
참으로 좋긴 하지만, 딱 그경계에 서 있었다.
더 이상 가까워 지지도, 더 이상 멀어지지도 않는 정도의 참으로 애매한 위치였다.
그러나, 단 두사람만의 해외출장이라는 이 기가막힌 여행이야 말로 두사람의 관계를 정말 확실하게 해 줄 결정적인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세상 그 어느 누구도 두사람의 사이에 있지도 않고,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도 없고, 해가지면 집으로 돌아가야할 의무도 없는 상황.
현석이야 국내에 있으나 해외로 나가나 특별히 다르지 않지만, 지수에게 있어서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다.
당연히 각각 다른방에 투숙하긴 하겠지만, 같은 호텔에 머물고 있다는 것은 또다른 계기가 충분히 될 수 있을것이다.
현석은 속으로 기쁘기 짝이 없었지만, 회사에서는 표정관리 하느라 애를 많이 썻다.
분명, 그녀와 더 가까워 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올 것이다.
무려 11일이나 함께 단 둘이서 지내게 되는데, 설사 기회가 없으랴.

"앞으로도 아홉 시간은 가야 돼. 밥을 안 먹어 두면 배고파서 어찌 견디려고?"
라는 현석의 말에, 식사 생각이 없다던 그녀가 한참을 망설이다가 식사를 했었다.
그런데 그 식사에 체해서 지금을 견디지 못하고, 아픔을 참느라 배를 쥐고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흔들이는 비행기 안에서의 식사는 참으로 어렵긴 하다.
그래도 체할 정도였다는 것이 이해는 안되지만, 옆에 앉은 현석으로서는 가슴이 아프다.
그녀의 손을 만져 보았다.
차가운 감촉이 손으로 전해져 왔다.
비행기 내에 에어컨을 가동해서 시원하게 해 두었고 전해지는 느낌의 시원함이 아닌 사람의 몸에서 느껴지는 싸늘함이다
손끝에서부터 지수가 입은 소매 없는 셔츠위로 손을 옮겨가자 팔꿈치를 지나가기까지 싸늘한 느낌이 전해져 온다.
"가만있어봐. 소화제라도 좀 먹자."
현석은 혼자 말처럼 말하며 머리 위에 있는 스튜어디스 호출 버튼을 눌렀다.
기내는 햇빛을 차단하는 차양이 내려져 있고, 소등된 상태라 어두컴컴한 속에 안전벨트 사인과 금연 사인만 어둠을 밝혀줄 뿐이다.
기내의 다른 사람들은 한참 뒤쪽에 한두 사람이 소근거리는 목소리가 간간히 들리기는 하지만, 모두들 잠에 떨어져 있었다.
“손님, 무었을 도와드릴까요?”
잠시 후 도착한 스튜어디스가 현석의 머리 위에 켜진 호출 램프를 보고 고개를 숙여 물어왔다.
"이 아가씨가 배가 많이 아픈데 혹시 구급약은 없나요?"
"네. 손님, 소화제가 있는데요"
"다른 건 없나요?"
"네. 소화제와 두통약이 전부입니다."
하긴 물어 놓고도 어색했다.
다른 약이 있은들 무엇이 있을 것인가?
"알겠습니다. 그거라도 좀 주세요"
"네. 가져다 드릴께요"
할 수 없지 않은가 창창한 하늘 한가운데서 병원을 갈 수도 없고 스튜어디스에게 다른 그 무엇을 요구할 수도 없는 상황이니 방법이 없다.
잠시 후에 스튜어디스가 소화제와 물컵을 쟁반에 받치고 왔고, 현석은 그녀에게 소화제 2알을 먹였다.
지수는 조심스럽게 받아서 한 모금의 물로 소화제를 넘겼다.
그리고는 고개를 시트에 기대고는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소화제를 먹고 한참을 지나도 지수에게는 차도가 없는 것 같다.
응급처방으로 손끝을 바늘로 따 주겠다고 했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딴다는 것이 바늘로 손가락을 찌르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반대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자 그녀는 조용히 등받이에 기대어 아무 소리도 않고 있었다.
머리에 손을 대 보았다.
차갑다.
그 사이 스튜어디스에게 담요 하나를 더 달라고 해서 두 개를 덮어 주었지만 지수는 몸을 떨고 있었고 간혹 나즈막하게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고통을 참느라 그러고 있으리라.
화장실을 한번 다녀왔지만, 크게 나아지지 않는 것 같다.
현석은 갑자기 너무나 안타까워 졌다.
내가 대신 아플 수 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게 들었다.
두 좌석의 사이를 나누고 있는 팔 받침대를 위로 밀어 올려버리고 지수의 오른손을 잡았다.
그 손이 무척이나 차다. 싸늘한 느낌이 들 정도로 차가웠다.
그 손에 꼬옥 힘을 주었다.
그리고 손을 풀면서 마사지 하듯 천천히 조금씩 주물렀다.
그녀가 현석에게 손을 맡겨놓고 가만히 있었다.
현석은 용기를 내서 지수의 손을 잡고는 조금 더 편하게 마사지를 해 주기 위해서, 그의 허벅지 쪽으로 올려 놓은 뒤 조심스럽게 마사지 했다.
손은 부드러웠지만 반쯤은 얼음이 된 듯 차갑기 그지 없다.
손가락 끝에서 손등과 손 안쪽을 차근 차근 마사지 하고 손목까지 올라왔다.
팔 안쪽도 차갑기는 여전하다.
팔을 조심스럽게 마사지 하면서 아래위로 쓰다듬었다.
그렇게 한참동안 계속해서 마사지를 하자 지수의 손끝에 미약하나마 약간의 온기가 피어 오른다.
효과가 있는 것인가?
한 손을 빼서 이마를 만져 보았다.
이마에는 약간은 젖은 것 같은 땀이 배어 있고, 땀이 배인 거와는 달리 싸늘한 감촉이 전해져 온다.
스튜어디스를 불러 물수건을 청했다.
물수건으로 이마를 닦아 주면서 지수의 턱을 받쳐 그에게로 얼굴을 향했다.
"아직도 계속 아파?"
지수가 가늘게 눈을 뜨고 그를 쳐다보며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추워?"
"...."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말할 기운도 없는 모양이다.
그녀가 몸을 약간씩 떨던 것은 멈추었지만 계속 추운 모양이었다.

이제 네 시간쯤 날아왔지만 승객들은 모두들 잠들어 있고, 지수의 아픔을 누구도 같이해 줄 수 없었다.
현석은 가슴 한 구석이 찡 해 왔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손끝에서 어깨까지 마사지 하면서 빨리 나아주기를 바라는 것이 전부였다.
지금처럼 아파서 약간을 끙끙거리는 신음을 내기보다는 비행기를 탓던 초반처럼 명랑하게 까부는 것이 오히려 여행에는 즐거움이 높을 텐데, 하필이면 이렇게 아파서...

건너편의 왼손을 만져 보았다.
역시 차갑다.
지금까지 한참 동안 마사지 한 오른손과 팔은 약간의 온기가 감도는데 비해 왼손은 오른손을 처음 만져 볼 때처럼 차갑기 그지 없다.
왼손을 등 뒤로 돌려 지수의 왼쪽 어깨를 주물렀다.
지수의 왼쪽어깨를 왼손으로 왼쪽 손을 오른쪽 손으로 마사지 하자니 현석의 눈앞에 그녀의 귓바퀴가 가까이 있다.
로리타 렘피카의 향기는 그녀가 아프든 말든 현석의 코를 통해, 그녀에 대한 아름다운 꿈을 꾸게 한다.

현석은 자신의 숨결이 귓바퀴에 전해질 것 같아 얼굴을 옆으로 돌려 보았지만 이내 눈이 다시 그 쪽으로 돌아간다.
"참 예쁘다"
지수가 길게 숨을 내쉬며 허리를 펴자 어깨 뒤로 돌렸던 팔에 몸무게가 전해져 왔다.
이때 현석의 허벅지 중간쯤에 걸려 있던 지수의 오른팔이 사타구니로 더 떨어져 왔다.
아마 현석이 마사지를 하며서 그녀의 팔을 자꾸 주물르자 힘없이 내버려둔 팔이 스스로의 무게로 자연스럽게 밀린 것 같다.
그녀는 온 몸에서 완전히 힘을 빼고 있는 상태이고, 자는듯 마는듯 하여 의식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라 팔이 그렇게 떨어져서 현석의 사타구니 한복판에 있음을 느끼지 못하는듯 했다.
아니 느꼈을지도 모르지만,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 같다.
더운 계절에 입는 하복의 얇은 천으로 가리워진 현석의 사타구니에 미미한 온기가 느껴졌다.
여태껏 마사지 하여 되찾은 지수의 온기가 현석의 허벅지가 아닌 그 사이의 작은 살점으로 느껴져 온 것이다.

잠깐 마사지를 멈추듯 하다가 다시 시작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어지럽게 교차했다.
손을 치워서 밖으로 들어내야 할까? 아니면 모르는 체 그냥 두는 것이 나을까?
침묵 속에서 약간의 시간이 흘렀다.
숨이 막히는 것 같은 긴장감 마저 돌았지만, 어떻게 행동을 하기가 어려웠다.
현석의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조금의 움직임도 없었다.
가만이 있던 현석은 어깨 뒤로 두른 왼쪽 팔에 무게 감이 실리기도 했지만 한 손으로 왼쪽 팔을 마사지 하는 것이 힘들어 왼팔을 빼 내었다.
그리고 가슴 앞으로 왼팔을 밀어 두 손으로 왼팔을 마사지 하기 시작했다.
사타구니 가운데에 닿아 있는 지수의 팔이 현석의 사타구니에 있는 작은 살점에 닿은 상태로 마사지하는 움직임으로 인해, 그녀의 팔이 현석의 육봉을 마사지 하는듯한 모양이 되었다.
지수는 그것에 대한 느낌에 아는 체를 않는 것인지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현석의 왼쪽 팔꿈치에 닿아 있는 그녀의 가슴,
그리고 비록 옷 밖이지만 현석의 육봉에 닿아 있는 그녀의 오른팔,
현석의 육봉이 상황도 인식하지 못하고 부풀어 올라 제법 탱탱해 졌지만, 지수는 느끼지 못하는지 손을 치울 생각도 않고 있었다
그녀가 들여 쉬고 내쉬는 숨결에 따라 그녀의 가슴의 볼륨이 달라지고, 들여 쉴 때의 느낌은 더욱 강하게 와 닿았다.
가슴 한편이 두근두근 거리다가는 쿵쾅거리고 얼굴이 달아 오르는 느낌.
가슴이 답답해지는 느낌으로 숨쉴 때 가슴속으로 새액 새액 소리가 들리는 듯 하였다.

(계속)

지난달,
그러니까 11월 17일이 작가 신청을 하고 첫 글을 올린날이더군요.
내일이 12월 17일이니 한달이 되는 날이지만, 실제로는 오늘이 한달을 채운 날 인것 같습니다.
이제, 지수와의 이야기가 제대로 시작되려 하고 있습니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마치 그 시처럼, 지수와의 사랑을 기다려온.....
지금까지 많은 사랑을 베풀어주신 독자님들에게 다시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 한달이 되는날, 뜨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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