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 ~ 선배님회고담 ~92 (백 YY 건들면 3년간 재수가 없다 ~?)
오늘은,
대한민국 한글 자랑부터 좀 늘어 놓겠습니다 ~!
세종대왕께서 창제하신 우리나라 한글은 세계 제일의 소리글 입니다
흔히들 ~
한글, 즉 훈민정음을 신비로운 문자라 부르곤 하는데
그것은 세계 문자 가운데 유일하게 한글만이 그것을 만든 사람과 반포일을 알며,
글자를 만든 원리까지 알기 때문입니다 (서기 1446년, 세종28년, 10월9일에 반포됨)
세계적으로 이런 문자는 없습니다
그래서 한글은, 정확히 말해 훈민정음 해례본 (국보 70호)은
진즉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당초 "훈민정음"이었는데 ~
‘한글’ 이라는 이름으로 명명한 것은
1910년대 초에 주시경 선생을 비롯한 대한제국 한글학자들이 쓰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기서 ‘한’이란 크다는 것을 뜻하니,
한글은 ‘큰 글’을 말한다고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글은 기본글자 = 자음 14자, 모음 10자, 아주 간단하고 명료합니다
이에 반해
물건의 모양을 본떠 만든 고대의 갑골문자, 회화문자, 상형문자에서 발전한
중국의 한자는 (BC202 ~ AD220, 한나라시대에 400년간 체계적으로 발전한 글?)
뜻으로 표기하는 문자인데
글자수가 수천 수만으로? 광범위하고 복잡하여
사대주의에 물든 옛선비들이 평생을 공부해도 깨우치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였습니다
그러한 중국 한자의 사자성어 (四字成語 = 네 글자로 이루어진 뜻 글) 에는
우리네 인생살이를 음유하는 글들이 많이있고 실제로 우리들이 자주 사용하고 있는데 ...
(어렵다고 해놓고 ~ 그 어려운 한자를 인용해서 작가로서 죄송합니다 ~ ㅎㅎㅎ)
고진감래 = 苦盡甘來
흥진비래 = 興盡悲來
쓴 것이 다하고 나면 단 것이 오고, 흥함이 다하면 슬픔이 온다는 말로,
어려운 일이 끝나고 나면 좋은 일이 생기고,
또 좋은 일이 다하면 어려운 일이 생긴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겠습니다
길흉화복 =吉凶禍福
길함과 흉함, 불길함과 복스러움,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고통을 나타내는 말로,
인간 세상에 존재하는 좋은 일과 나쁜 일, 재앙과 복을 모두 모아 이르는 표현임
호사다마 = 好事多魔
"좋은 일에는 탈이 많다" 라는 뜻으로, 좋은 일에는 방해가 많이 따른다거나
좋은 일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많은 풍파를 겪어야 한다는 것을 비유하는 글입니다
화무십일홍 = 花無十日紅
"열흘 붉은 꽃이 없다" 는 뜻으로 해석,
한 번 성한 것이 얼마 못 가서 반드시 쇠하여짐을 이르는 말이며
권세나, 부귀영화가 한 때 성(盛)함이 오래 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새옹지마 = 塞翁之馬
우리들 귀에 익숙한 사자성어로 변방에 사는 노인의 말(馬) 이야기라는 뜻,
옛날 중국의 북쪽 변방에 한 노인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이 노인이 기르던 말이 멀리 달아나 버렸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위로하자 노인은 "오히려 복이 될지 누가 알겠소." 라고 말했어요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그 말이 한 필의 준마를 데리고 돌아왔는데
마을 사람들이 이를 축하하자 노인은 "도리어 화가 될는지 누가 알겠소." 라며 불안해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말타기를 좋아하는 노인의 아들이 그 준마를 타다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걱정하며 위로하자
노인은 "이것이 또 복이 될지 누가 알겠소." 라며 태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어느 날, 나라에 큰 전쟁이 일어났는데
마을 젊은이들은 전쟁터로 불려 나가 대부분 죽었으나,
노인의 아들은 말에서 떨어진 후
절름발이였기 때문에 전쟁에 나가지 않아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로서
길흉화복이 뒤죽박죽 섞이는게 세상살이라고 그럴 듯하게 비유한 내용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의 인생살이는
양지가 음지되고, 음지가 양지로 다시 변하는 것처럼 자주 뒤바뀐다는 뜻으로
위로와 경고를 주는 한편, 늘 경계하면서 살라는 뜻의 말들인데
위에서 길게 거론한 사자성어 모든 내용들이
그대로 짧은 내 인생에 적중하였으니 김운명의 중년시련이 시작되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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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밤하늘의 유성처럼 빠르게 흘러 ~
1979년 내 나이 39살이 되었는데
장충동 집에 함께 모여 사는 순심누나/ 순이각시/ 희순형수/ 시암댁어머니/ ...
그리고 가끔씩 찾아와 나에게서 밀린 빚(섹스? 정액?)을 받아가는
옥희누이와 정이처형 까지 ...
여섯명의 해바라기 여인들이 건재해 있었다
우리들의 즐거운 섹스생활은 다람쥐가 체바퀴 돌리 듯, 뻔한 스토리였지만 ~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게 내 슬하에 자식들 ...
순심누나의 딸 명순이는 19살 꽃다운 나이에
꿈많은 여고 3년생으로 글래머 숙녀처럼 성숙해졌고
순이각시가 낳은 큰아들 윤정이는 8살, 국민학교 1학년에 입학하였다
둘째 아들 윤신이가 6살,
희순형수의 딸, 효순이도 6살 (동갑이지만 윤신이 보다 생일이 조금 늦음)
얼굴이나 행동이 꼭 빼닮은 이란성 쌍동이 남매처럼
유치원 복장으로 둘이 손잡고 나란히 다니는 모습이 여간 귀엽고 예뻐보였다
희순형수는
역삼동 청운의상실 근처에 전세를 얻어 효순이와 단 둘이 살았었는데
가족회의시 ~ 순심누나의 강력한 주장에 따라
효순이가 유치원에 입할 할 즈음에 장충동으로 이사하여 함께 모여살게 되었다
희순형수는 장충동으로 집을 옮기면서 새마누라 신고식(?)을 단단히 치뤘는데
청운의상실에서 ~
전 가족들에게 야들야들한 섹시 잠옷을 만들어 선물했고
귀신 물러가라는 붉은팥 시루떡과 갖가지 과일에 포도주를 준비해와 신입파티를 열었으며
술을 마시고 기분이 얼큰해진 그날밤,
순심누나/ 순이각시/ 희순형수/ 나까지/
헝클어진 3:1 포섬을 올나이트로 질탕하게 즐기면서
그간에 세 여인 사이에 구멍동서(?)로서 어색했던 높은 벽을 허물었지만 ~
처음보는 희순형수의 백YY 민YY에 순심누나와 순이각시가 신기한 듯
가까이 들여다보고,
손으로 매만지고,
혀끝으로 낼름 빨아주면서, ~
"어머 ~!
세상에 소문으로만 들었던 정말 민들레 YY가 있었네 ~! "
"제, 백YY가 멋있지요? ~ 김차장이 애기YY라고 얼마나 좋아한다구요 ~! 헤헤헤"
"히히히 킥킥킥"
"호호호 허허허"
넷이서 홀라당 벗은체 재미나게 웃던 일이 있었다
순심누나가 ~
"아들 낳는 기계"라고 별명 붙여준 본부인(?) 순이각시는
그 사이에 셋 째 아들 윤일이를 매추리가 새알 낳 듯히 뿅 ~ 쉽게 낳았고
또 다른 넷 째를 임신하고 있었으니 ~
8년전 대전예식장의 결혼식 날 폐백자리에서
고향 어머니께서 밤, 대추, 한줌을 새 며느리 순이 치마폭에 던져주시면서
"우리 집안은 아들 손이 부족하니 ~ 부디 아들을 많이 낳아 집안을 흥하게 해주라" 주문하셨고,
23살 임산부로서 아주 힘겹게 자연분만으로 첫째 아들 윤정이를 출산 한 후,
"앞으로 아들 열 명을 계속 낳을거라고 ~!"
자신있게 장담했던 그 말들이 씨가 되었는지 .....
아무튼 순이각시는 기계처럼 2년마다 한 명씩 장한 아들을 쑥 쑥 낳아주었다
그로 부터 세월이 많이 지난 후에 ~~~
아들 넷, 딸 둘,
여섯자녀가 무럭무럭 잘 자라나 제 각각 사회생활에 적응하는 걸
바라보면서 곰 곰 생각해보면 정말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지만 ~
순심누나 = 명순/
희순형수 = 효순/ 두 딸은 친딸이건만 호적상 남의 딸로 등재되었고
순이각시 = 윤정, 윤신, 윤일, 윤도 ~
네 아들은 정식 나의 호적으로 올라 있는 것이 실로 교묘한 이치였으며
20 ~30년이 지나 우리들 나이 60~70이 되도록
변함없이 즐겼던 화려하고 변화무쌍한 밤 무대 (쓰리섬, 포섬, 단체전?)에서
틈나는 대로 순심누나가 순이각시에게 즐겨 쓰는 우스개 말 ~!
"순이 너는 나 때문에 연속으로 아들 넷을 쑥 쑥 낳은거여 ~!
16살 먹은 철부지 여중생에게 갖가지 성교육을 체험시켜 일류선수(?) 만들어 주었지 ~!
결혼하고 난 후에는
내가 밤마다 땀 흘려서 애무 오랄로 네 보지구멍에 군불을 지펴놓으면,
너는 따뜻한 질구멍에다 운명이의 우람한 좆을 받아들이고 배부르게 즐기다가
마지막 클라이막스 때 사정한 좆물을 혼자서 다 받아 마셨잖어? ~
안 그래 ?
술자리에서 양기가 입으로 솟구친 엉큼한 사장님들이 농담? 하는 것 들어보면 ...
밤에 잠 자리에 든 부부가 30분 이상 애무 오랄을 즐기면서
여자 아래에 애액이 넘쳐나도록 만들어 준 다음에 삽입하고 사정을 해야만
산성이었던 여자의 자궁이 알카리성으로 바뀌면서
건강한 남자의 정액을 받아들여 아들을 임신하게 된다고 하더라구 ~ 믿거나 말거나?
밤이면 밤마다 나하고 운명이가 번갈아가며 입술이 갈라지고 혓바닥이 닳도록
순이 너한테 공들여(?) YY 를 즐겁게 해 준 오랄서비스를 기억해봐 ~
너는 쓰리섬 덕에 아들만 쑥 쑥 넷을 낳았다는 것 .....
특히 나의 지극정성한 도움이 컸었다는 것 .....
절대로 잊지마 ~!
그래서 은밀히 부탁하는 말인데 ~~~
앞으로 우리 눈에 흙이 들어가면 살아있는 자식들한테 제삿밥은 얻어먹어야 하잖어?
첫 째 ~ 윤정이는 장남이니 너희 부부의 맏상주로 정하고
둘 째 ~ 윤신이는 출가할 명순이 대신 나의 아들로 제주 삼고
셋 째 ~ 윤일이는 딸만 여섯인 시암댁어머니 제주로 인정하고
넷 째 ~ 윤도는 대전 큰 오빠네 아들이 하나뿐이니 양자로 호적에 올려주면 어떻겠니? ~
설마하니 ~ "반대" 하지는 않겠지? ~
이 자리에서 확실한 의견을 내놔봐 ~! 호호호"
이러한 진담 겸 농담 우스개 장면이
한 두 번이 아니고 ~ 수 차례 벌어지다 보니
문서상으로 작성하여 합동법률사무소에서 양자입적을 공증 받진 않았지만 ~
우리 세 사람끼리는
순심누나 의견대로 그렇게 하기로 묵계가 성립 되었다
(묵계 = 默契 = 말 없는 가운데 뜻이 서로 맞음, 또는 그렇게 하여 성립된 약속)
나중에 이런 사실을 알게된 시암댁어머니도
모처럼 크게 웃으시면서 흡족해 하셨다
명절 때나,
집안의 결혼식,
장례식, 등에 일가친척들이 많이 모이는 자리에선
청운식당, 청운한정식, 부동산투자, 은행이자 불리기, 등으로
이미 엄청난 돈 방석에 높이 올라 앉은 순심누나의 인생역전 입지전적 이야기 보다도
네 아들의 어머니가 된 순이각시가 단연 인기톱, 인기짱, 이었으니 .....
6.25 전쟁 후, 50~60년 대에
집집마다 애를 많이 낳은 탓으로 폭발적인 인구증가 문제가 국가적인 이슈가 되었는데
국가에서 산아제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장려 딸, 아들, 구별 말고 하나씩만 낳기 운동을 전개 하였으나 .....
각 가정의 (특히 농어촌 및 전통 집안) 베이비 붐 열기가 쉽게 식지 않았었다
더욱이 우리 김씨 집안은 남자가 몹씨 귀하던 터라 ~
2년 터울로 내리 아들만 쑥 쑥 뽑아내는 막내며느리 순이의
황금 애기보?
요술 자궁?
아담한 궁둥이?는
어딜 가나 선망의 대상으로 칭찬이 자자했고 그 위치가 탄탄대로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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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
장장 9년간을 근속한 나의 직장생활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
신입사원 ~ 한강변아파트 건설현장, (평사원 근무)
두 번째 ~ 잠실아파트 건설현장, (대리 승진)
세 번째 ~ 여의도아파트 건설현장, (과장 승진)
네 번째 ~ 강남반포아파트 건설현장 (차장 승진)에 막 부임하여 근무중에 있었다
내 나이 40이 되었고 ~
회사에서 차장이란 직책을 부여 받았으나 본사근무(사무실) 기회가 한 번도 없었는데
내가 가진 기술 (건축기사) 자격과
그간의 근무경력 때문에 현장근무 적임자라는 노랑 딱지가 붙었기 때문이었고
혼자만의 마음속으로 장래 건설회사 사장을 꿈꾸는 내 스스로가 자원하다시피 하여
현장에서 현장으로 자리 바꿈을 하면서 속칭 노가다 생활을 계속하였다
(숫한 인부들, 납품업자, 협력회사, 사람들과의 친분유지와 실전 현장경험을 차곡차곡 쌓아감)
힘든 노가다 건설현장에서
일을 순조롭게 추진하려면 알게 모르게 자기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였다
김반장 = 정이처형
최반장 = 은실누나
기타 현장의 많은 기술인력들이 나와는 형제처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지내고 있었는데 ...
1978년 초에는
현장소장님의 허락을 받아 (경비나 임시직은 현장에서 직접채용 가능)
시골 처가집의 처남댁 내외를 서울로 불러올려
처남은 건설현장 경비실 근무와 자재 입출고 보조업무를 시켰고
처남댁은 정이처형과 손을 맞추어 함바식당 일을 돕기도 하고,
함바식당 일이 한가할 때는 청운식당의 주방 일을 지원하도록 조치하였다
(처남 내외에게는 자라나는 자녀들이 넷이 있었는데 ...
처남내외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
당분간은 처가의 장인 장모님이 손주들을 보살피면서 시골학교에 다니게 하였음)
그 시절,
시골에서 힘들게 농삿일 하는 것보다는 ~
서울에서 노가다 막일 하는게 수입면에서 월등하였고
결혼 초기에 처가식구들에게 했던 나의 약속을 지키는 목적 외에
처남이 건설자재분야에 경험을 쌓아놓으면 ~
앞으로 내가 건설사업을 시작할 때 큰 도움이 될 것 같아 원대한 포석을 미리 한 것이었다
처남 내외의 서울 살이로 ~
한 달에 두 번씩 장충동의 가족 친목모임은 (생일파티, 식당 쉬는날 등) 더욱 머릿수가
많아지고 이런저런 협의내용이 거창해지기도 하였다
장충동 집에 모든 가족들이 모여 떠들석 하게 지내다보면 ~
6.25 전쟁 후유증으로 작고하신 할머니께서 고향집에서 들려주신 옛이야기 ~
"인장지덕 =人長之德 이요 ~ 목장지폐 = 木長之弊" 가 곰 곰 생각났다
(큰 나무 덕은 못 보지만 ~ 큰 사람 덕은 볼 수 있다는 뜻 ~?)
큰 숲속에서는 큰 나무들의 그늘로 인해 작은 나무들이 자라기가 어렵지만
그러나 덕이 큰 사람의 그늘에 있는 사람은,
부족한 덕 아래 있는 사람보다 덕을 많이 받을 수 있다 ~
큰나무 아래는 항상 그늘이 져서 작은나무들이 살 수 없지만 ...
큰사람 (정치인, 사업가 등) 밑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돈벌이 하면서 산다는 뜻 ???
순심누나는 식당사업으로 큰 돈을 벌어들여 성공했다고 볼 수 있고
처가동네 사람들을 스카웃 해서 돈 벌이 시켜주고있으니 덕을 쌓은 편인데 ...
나의 원대한 꿈,
건설회사는 언제쯤 설립하여 기지개를 펼칠 수 있을 것인가?
나이 40이 되면 ...
자신의 얼굴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데 ...
타인이 바라보는 나의 외모와 인품은 과연 어떠한 모습으로 비춰질까?
하루 하루를 만족해하며 살아가는 하루살이나 불나방이 아닌
먼 미래를 내다보는 설계를 하고 싶은데 ~ 마음만 간절할뿐 눈 앞에 정리가 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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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2월 28일 ~~~
내 일생에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악몽의 날이자, 내 일생일대 변혁의 날이었다
봄을 시샘하는 북서풍,
한강변의 매서운 꽃샘바람이 3~4일간 연속 불어왔는데
그 날은 여름철 태풍에 버금 될 만큼 세찬 회오리 강풍이 아침부터 불어닥쳤다
아파트건설현장에서는
터파기, 파일박기 등 토목공사가 주야로 진행되었고 ~
현장사무실, 자재창고, 직원숙소, 함바식당, 등을 칼라강판 판넬로 다 지었는데 ...
마지막으로 목공소 겸 목재창고를 ~
벽은 시멘트블럭, 지붕은 슬레이트로 짓고 있는 중이었다
운명의 그 날 ~!
점심식사 직후에 .....
나하고, 김반장, 인부 2명이 가건물 안에서 입고된 목재를 사이즈 별로 정리하고 있었다
갑자기 "휘이잉 ~" 세찬 돌풍이 불어와
굳게 닫혔던 창고 문짝이 "우당탕~~~" 떨어져 나가더니 눈 깜박할 순간에
"우직끈 ~~!"
"우당탕탕 ~ 쾅 ~!"
마치 액션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지붕 슬레이트와 시멘트블럭 벽체가 창고 안으로 와그르르 무너져 내렸다
사람의 판단과 순발력이란 찰나적인 것~!
(찰나 = 刹那 = 불교에서 사용하는 최소단위 시간 ?
눈 깜박한 것보다 더 극히 짧은시간, 1찰나는 75분의 1초에 해당한다고 과학적으로 풀이함)
나와 마주 서 있던 김반장을 재빠르게 목수다이 (작업대) 밑으로 떠 밀어넣고
그 옆의 작업인부 2명을 문쪽으로 확 ~ 밀치는 순간 거대한 힘이 내 몸을 짓눌렀다
시멘트블럭과 목재로 만든 카시오(트러스?)
그리고 떨어진 슬레이트 조각들이 내 몸 위로 우르르 쏟아져 내리면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체 ~
나는 그만 아득하게 정신줄을 놓고 말았다
귓가에 비명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어디가 아픈줄도 몰랐다
누군가 내 몸을 흔드는 것 같기도 하였고
어슴프레 경비실 근무하는 처남이 뛰어와 내 몸을 등에 들쳐업는 것 같기도 하였다
피투성이가 된 나는 곧바로 차에 실려 강남의 병원으로 ~!!!
12시간의 대 수술 ~
3일간의 의식불명 ~
2주일간 중환자실 대기 ~
8개월간 입원치료 ~
퇴원 후,
1년이 넘도록 재활을 위한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 ~!
기적이었다 ~!
사고 후,
사흘(72시간)이 지난 후에야 천정의 밝은 불빛 때문에 눈이 따갑다는 느낌과
온 몸이 침대에 꽁 꽁 묶여 있는 거북함을 동시에 느끼면서 슬며시 실눈을 뜨게 되었는데
중환자실 침대 곁에 순심누나와 순이각시 모습이 잠시 어른거렸고
시암댁어머니와 여고생 복장의 명순이의 근심어린 얼굴이
흔들리는 산데리아 등불처럼,
뒤섞인 모자이크 조각처럼, 흐릿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어머나 ~! 엄마, 삼촌이 눈을 떴어요 ~!"
"어이쿠 ~! 운명아, 운명아, 이제 정신이 드니? ~ 우리를 알아보겠어 ~? 흐으흑 ~!"
"여보 ~! 이제 깨어났군요 ~ 72시간이나 지났는데 ~~~ 흐흐흑 ~!"
"다행이구먼 ~! 이제서야 정신이 나는 갑다 ~! 부처님 가피로 기어이 살아났구먼 ~!"
내 곁을 지키고 있던 네 사람이 저마다 한 마디씩 하면서 눈물 뚝 뚝 ~
기쁨과,
안도에,
흐느끼면서 내 손과 발을 쥐어주었는데
눈동자는 보일 듯 말 듯 가물가물 ~
머리 속은 어리버리 빙글빙글 ~
소리는 귓가에 웅웅거려 먹먹하고 어지럽고 ~
힘없이 눈을 ~ 떴다 감았다, 또 떴다 감았다 ...
(심청이 아버지 ~ 심봉사 눈 뜨는 대목처럼)
말을 할려고 해도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고,
손을 휘저으려 해도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집트 미이라 처럼
온 몸을 붕대로 칭칭 감고 중환자실 침대에 묶여 전혀 움직이지 못한 체
가물가물한 정신을 서서히 차려가면서 하루하루를 바람처럼 휘~잉 지내보냈다
사고 후 ~ 2주일이 지나고 ~
혈압, 맥박, 백혈구 수치, ....
머리 어깨 팔굼치 갈비 무릎 등 수술부위가 어느정도 안정상태에 이르자
중환자실에서 신경외과 일반병실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는데
순심누나가 원무과와 협의
환자와 보호자의 편의를 고려하여 화장실이 딸린 2인실을 택하였다
(누나는 1인 특실을 꾹 꾹 원하였지만 ~
곁에 다른 환자가 있으면 다소나마 위안이 되고 말동무가 될까해서 내가 2인실을 원했다)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길 즈음에는 ~
머리를 비롯해서 모든 수술부위의 꿰맺던 실밥을 뽑아냈고,
하루종일 링거주사를
세 개 네 개 주렁주렁 매달고 오줌도 호스로 받아내던 상태에서
죽이나 미음 같은 유동음식을 조금씩 입으로 넘기게 되어 링거를 반으로 줄였으나
우측편의 머리 어깨 팔굼치 옆구리 무릎을 ~ 기프스 한 체 일절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은 ~
자지 요도에 꽂았던 고무호스를 빼내고
소변이 마려우면 침대에 누운 체로 플라스틱 소변병에다 받아내었고
대변은 이틀에 한 번 갓난이들 물똥 싸 듯 이동식 변기에다 받아내어 화장실에 버렸다
그 같은 지저분한 병간호를 하기 위해
순심누나/ 순이각시/ 시암댁어머니/ 희순형수/ 옥희누이/ 정이처형/
6명의 여인들이 번갈아 가며 보호자로서 병상을 지켜주었는데 .....
(명순이는 하교후,
매일같이 병실에 들렸고 ~
토요일 밤에는 아예 대학입시 문제지를 싸들고
입원실로 찾아와서 보호자용 간이침대에서 꼬박 날새기 공부를 하곤 하였다)
순심누나/ 순이각시/ 보다도
더욱 정성스런 간병을 한 사람은 정이처형과 희순형수였다
왜냐하면 ~
정이처형은 남편인 김반장을 살리기 위해 제낭이 희생하였다고 죄송해 했기 때문이고
희순형수는 ~
세간에 떠도는 말대로 자기 백YY 탓에 재수가 없어 이지경이 되었다고
"차라지 내가 죽는게 백번 낳겠다"고 스스로를 자책했기 때문이었다
(순심누나와 내가 단 둘이 있을 때,
이러한 "백YY 건들면 3년 재수없다"는 말을 하면서
누나가 지나가는 말로 희순이 때문에 재수가 없는거리고 내게 말한바 있었는데
엉뚱한 사람 죽일 소리 ~!
택도 없는 허황된 낭설 ~! 이라고
두 번 다시 그런말을 하지말라고 내가 일언지하에 순심누나의 입을 봉해버렸음)
일반병실로 옮기고 나서 ~
어느정도 정신이 되돌아온 나에게
이 사람 저 사람이 조목조목 들려준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면 ~~~
사고 당일날 점심시간에
건설현장 부근에는 순간 초속 25m의 돌풍이 몰아쳤는데
1차로 목재창고의 문짝 두 개가 세찬 바람에 떨어져 나가면서 ~
회오리 돌풍이 창고 안으로 밀려들어와 슬레이트 지붕과 목재 트러스가 붕 ~ 떴다가
한 순간에 시멘트블럭 벽체와 함께 "와그르르" 무너져 내렸다고 .....
(건설공학을 살펴보면 ~
슬레이트지붕의 경우 ~
위에서 누르는 힘 보다 아래쪽에서 들어올리는 힘에 약하다는 것 ...
도로의 다리도 그와 같고,
심지어는 차량의 앞 유리창도 바깥보다 안쪽이 매우 약함)
내가 밀어부친 덕분에 목수다이 밑에 몸을 웅크린 김반장은 다리 골절상만 입었고
출입문쪽으로 밀쳐진 인부 두 명은 팔 다리에 가벼운 찰과상만 입었는데 반해
목재창고 한 가운데 서있던 내 몸 위로
시멘트 블럭과 목재 카시오, 슬레이트 지붕 등이 일시에 무너져 내리면서
우측 두개골 부상(과다 출혈), 어깨뼈 골절, 팔굼치골절, 갈비뼈 4개 절단, 무릎 골절,
쉽게 말하자면 ~
벽과, 천정이 쏟아져 내림과 동시에 창고바닥으로 원숭이처럼 몸을 움추리며 넘어졌는데
엄청난 중량물이 나의 우측편을 집중적으로 한거번에 내리누르면서
머리, 어깨, 팔, 갈비, 무릎이 몽땅 절단? 내지는 조각조각 깨진 상태였다고 ~
부상 부위중에 가장 심각한 것은
머리 우측(두개골)이 깨져 많은 출혈이 있었는데 하필이면 내가 RH- 혈액형이라서
적십자병원(혈액원)의 헌혈재고 구하기 어려워
수혈하는데 몹씨 어려운 상황에 처했었다고 하였다
나와의 근친 중에는
급히 상경한 대전 형님과 장조카와 고향어머니가 계셨지만
형님과 조카는 Rh 플러스 형이라고 하였고,
어머니는 연로하셔서 아예 헌혈대상이 못되었고 ...
자녀로는 어린아이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지만
나이가 너무 어려서 헌혈을 할 수가 없었는데
뜻밖에도 순심누나와 여고생 명순이가 나와 같은 Rh- 혈액을 가지고 있어
즉석에서 헌혈 ~
그리고 곧 바로 수혈로 이어졌다고 하였다
(내가 정신을 잃고, 수술을 받고 있는 상태에서 모든 조치가 이루어졌음)
??? ~ 장장 8개월 동안을 ~ ???
병원 두 곳에 입원해 있으면서 두고 두고 의문점이 안 풀리는 것이 한가지 있었다
명순이는 내 딸이니까 나와 혈액이 똑 같을 수 있다고 하겠으나
순심누나와 나는 솔직히 전혀 남남지간인데
왜? 같은 피를 가지고 있을까?
우리나라 Rh- 혈액형은 대략 3~400명 중 한명 꼴이며, 확률로는 1% 미만이라던데?
(참고 : Rh- 혈액소유자 실태
동양에서는 전체의 1%도 안 되는 반면,
서양에서는 Rh-형이 전체의 20%를 차지한다
이런 희귀성 때문에 동양국가에서는 Rh-형인 사람들을 따로 등록해 두기도 한다)
아무튼 ~
죽었다 되 살아난 내 몸 상태를 자세히 살펴보면 (12시간의 대수술내용)
1) 신경외과에서는 ~
머리카락을 빡빡 깍고, 전신마취를 한 다음에 뇌수술을 하였는데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두피가 찢어지고, 두개골 함몰이 일부 있었지만 ~
가장 중요한 전두엽, 후두엽, 측두엽 등에는 별다른 손상이 없었다는 것,
(인간의 뇌에서 가장 발달된 곳으로서 생각, 언어, 글쓰기, 표정, 능동적 행동 등 ...
고등정신작용은 주로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운동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며 신체의 내부를 포함한
모든 감각 양상으로부터 입력을 받는 전전두 피질을 포함한다)
2) 다음은 정형외과 수술로 ~
어깨뼈, 무릎뼈, 팔굼치, 부서진 뼈조각들을 수술로 일일이 맞추었고
갈비뼈가 4대나 뚝 ~ 부러졌는데 그 중에 하나가 간을 찌를 듯 송곳처럼 날카로워
나중 활동에 지장이 될 것 같다고 판단하여 껴 맞추기 수술을 하였다고 하였다
3) 치과에서는 ~
부러진 이빨 2개를 뿌리까지 뽑아내고 "미니 틀니" 비슷하게 끼워 맞추기를 하였고
4) 비뇨기과에서는 ~
당분간의 거동 불편을 고려하여 자지구멍에다 고무호스를 꼽아
처마밑의 눈 녹은 낙수물처럼 방울방울 소변을 병에다 받아내었다고 .....
사람은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무의식적으로 손이나 팔로 얼굴부터 가리게 된다고 하는데
결과적으로 엉겹결에 손으로 가렸던 얼굴의 눈, 코, 귀, 입, 빼고는
내 몸에 성한 곳이라고는 한 군데도 없었다 ........
병원의 책임교수, 수술 집도했던 전문의들이 회진을 돌면서
"그러한 압사사고, 큰 부상을 당하고도 이처럼 살아 난 것은 기적에 가깝다"고
보호자 (순심누나, 순이각시)에게 들려준 위로의 이야기들이었다
병상에서 내가 입으로 직접 말하기는 어려웠으나 ~
귀로 듣기는 가능 하였는데 ~
순이각시가 전해주는 말에 의하면 .....
대전의 큰형님 형수님 장조카와 큰 누나가 사고 당일날 오후 전화연락을 받고
심야에 불야불야 승용차로 올라왔었는데
내가 12시간에 걸친 대 수술을 받는 동안 수술실 밖에서 안절부절 서성거렸고
정신줄을 놓아버린 중환자실 병상을 이틀동안이나 지키다가 위험한 순간이
어느정도 지났다는 의료진의 설명을 듣고 대전으로 내려가셨다고 하였다
(연로하신 고향어머니께는 쇼크 받을까봐 일체 연락을 하지 않았음)
신경외과 일반병실로 옮긴 후,
마음도 차분해지고 ~
온몸의 아픔도 서서이 줄어 드는 듯,
순심누나, 순이각시가 집에서 직접 만들어 온 최상의 영양음식 (유동식)을
빨대로 먹으면서 하루가 지날수록 나의 상처는 겉으로는 호전 된 듯하였으나
솔직히 나에게는 남 모르는 절망의 나날이었다
이렇게 병신으로 살아야 하나? ~
콱 죽어버려야 하나? ~
낮과 밤으로
잠간씩 토막잠이 들었다가 태산이 무너지는 무서운 악몽에서 깜짝 놀라 깨어날 때면
머리가 어지럽고,
구토증이 일어나고,
손발이 떨리며,
온 몸이 땀 투성이가 되었다
의술이 발달해서 살아나긴 하겠지만 ~ 예전처럼 정상인이 될 수 있을까~?
옛 기억들이 되살아나고 ~ 전처럼 상황에 따른 임기응변과 창의력이 생길까~?
목구멍으로 밥을 삼킬 수 있을까~?
똥 오줌을 제대로 눌 수 있을까~?
내 발로 걷고 뛸 수가 있을까~?
계단을 오르고 언덕을 내리 달릴 수 있을까~?
내가 거느린 가족들이 하나 둘이 아닌데 ~ 내가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 할 수 있을까?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밤하늘에 수 많은 별무리처럼 끝없는 걱정근심이 생겨났고
사고로 인한 부상치료 외에 불면증, 신경쇠약, 우울증, 등.....
극심한 정신적 신체적 사고후유증이 남들 모르는 불안증상으로 유령처럼 나를 괴롭혔다
중환자실에 있을 때에는
근친 가족 외에 일반인의 면회가 자유롭지 못했으나
일반병실로 옮긴 이후에는 ... 면회가 제한되거나 크게 까다롭지 않아
현장소장님을 비롯,
함께 근무하던 남녀 사무직원들이 모두 위문을 왔었고
경비실 처남과 처남댁, ~
콘크리트 최반장과 은실누나,
그리고 평소 술자리에서 형, 아우로 호칭하던
절친 작업인부들이 바쁜 와중에 줄줄이 위로차 병실을 다녀갔다
같은 병원에 입원해 있던 김반장은 다리에다 기프스를 한 체 휠체어를 타고
정이처형 안내로 내가 있는 병실까지 감사와 위로차 찾아왔고,
찰과상 치료를 마친 목공 2명도 함께 찾아와 ...
자신들 "생명의 은인"이라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수십번이나 하였다
본사의 부사장님과 임원진,
그리고 부서별 간부들도 여럿이 번갈아 면회를 다녀갔는데
그 이유는 건설현장의 단순한 안전사고가 아닌
타인을 살리기 위한 살신성인 희생적인 행동이 전사적으로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었고
공식적인 산재보험 치료비(수술, 입원비 등) 외에
회사 차원의 별도 격려금과
반포지구 현장과 본사의 모든 직원들이 십시일반으로 위로금을 모금해 왔는데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 그렇 듯 대우 받는 내 위치가 가족들 앞에 매우 자랑스러웠다
순심누나의 연락을 받은 김남수 회장님도
득달 같이 병원으로 달려와 내 손을 붙잡고 장시간 위로의 말씀을 해주셨는데
"일간신문 사회면에도 조그맣게 났고,
동종 건설업계에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는데 ...
00 종합건설회사 김운명 차장이 보여준 안전사고시 타인을 위한 희생정신이야 말로
열악한 대한민국 건설현장에서 관리자가 갖추어야할 기본자세가 아니겠느냐고 ~"
"그렇지만 ~
가족들을 생각해서라도 앞으로 두 번 다시 그러한 무모한 용기를 내서는 안된다"고
건설업계 전체에
장하고 아름다운 소문이 퍼져 칭송이 자자하다는 위로와 덕담을 해주시면서
산전수전 다 겪은 나이 많은 김회장님의 현실적인 쓴소리도 잊지 않고 들려주셨다
"우리들의 자랑 ~!
용맹무쌍한 김차장의 치료비 전액을 우리회사에서 기타 경비로 정리할 터이니 ~
불편함이 하나도 없도록 순심이가 잘 보살펴 주도록 하라 ~!" 는 말과 함께
내 귓가에다 입을 바짝 대고서 ~
곁에 사람들 못 듣게 살짝 ~
"김차장은 나의 비밀스런 중매쟁이 처남인데 ~ 이런 때 매형으로서 체면 좀 세워야겠네 ~!!!"
허허허 .....
흐흐흐 .....
김회장님이 "껄껄껄" 웃었고
나도 따라서 아픈 입을 조금 벌리고 "실실실" 소리없이 웃었다
(병상에 고통 받고 있는 나에게 기분전환을 시켜주고, 조금이나마 웃겨보려고
70대 회장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우스개 농담을 하셨는데 ~
병원입원 후,
고통스런 표정만 짓던 내가 처음으로 싱긋 웃었다 ~ 구멍동서에 대한 예의?)
우리 곁에 가까이 있던 순심누나가 김회장님의 옆구리를 슬쩍 찌르면서
"아픈사람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면서 엉큼하게 웃는거예요 ~?"
"어 ~ 엉 ~! 어서 빨리 쾌차하여 함께 일본 온천욕을 다녀오자고 했구먼 ~ 하하하"
"피이 ~ 거짓말 같아요 ~ 무슨 엉큼한 이야기가 분명있는 것 같은데요 ~?"
"그게 아니라니까 ~ 김차장에게 물어봐 ~ 뭐라고 말 했는지 ~!"
"입이 아파서 미음도 잘 못먹는 운명이가 어떻게 말 대답을 하겠어요 ~?
왠지 누렁이 똥냄새가 확 ~ 풍겨나는 것 같은데요 ~? "
허허허
호호호
흐흐흐
종이 한 장이 떨어져도 "사르락" 소리가 들릴 것만 같이 조용하던 병실에
한 순간 ~ 파란하늘 흰구름 같은 해맑은 미소가 번져올랐다
사고 당일,
현장에서 가까운 강남의 유명종합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입원치료를 받아왔으나
장기간의 입원요양을 전제로 1개월이 지난 후,
담당의료진의 양해를 얻어
장충동 집에서 가까운 을지로 6가의 국립중앙의료원으로 입원실을 옮겼다
(사실은 처음에 입원한 병원이 김선배가 죽은 곳으로 희순형수가 극구 옮기자고 주장함)
(청운한정식 단골 손님중, 중앙의료원 관계자가 있었는데 순심누나 부탁으로 편의를 봐주었음)
중앙의료원은
우리나라 최초 국립병원으로 시설이나 의료진이 그 당시 최고수준이었고
또한 조금 힘들기는 하지만 장충동 집에서는 걸어다닐 수 있을만큼 가까운 곳이었다
병원을 옮기고 나니 ~
환자인 나도 기분이 새로워졌지만
가까운 곳이라 간병하는 가족들이 많이 편해졌고,
식당 종업원들과 이웃집 사람들이, 삼삼오오 자주 면회를 왔었다
처가의 장인 장모님도 소식을 전해 듣고
둘 째 사위 걱정에 기어히 상경해서 문병을 오셨는데 ...
병실에 들어선 장모님이
미이라 같이 붕대로 싸매고 누워 있는 사위를 보고 큰소리로 대성통곡하면서 ~
"아이구 ~
우리 김서방 ~!
백주대낮에 이게 왠 날벼락이란 말인가?
죽었다가 살아났다니 ... 이나마도 천만다행인거여 ~ 시암댁 말처럼 부처님이 보살핀 거라구 ~!
좋은 집에,
자랑스런 직장에,
아들만 주렁주렁,
재물을 산 같이 모았지만,
호사다마 ~
새옹지마라고 ~
삼재가 끼고 ~ 아홉 수에 들었던 거여 ~ 어디 푸닥꺼리 궂이라도 해야겠구만 ~!"
"허어 ~ 임자는 쓸데없는 소리 ~ 그만해 ~!
김서방이 희생한 덕분에 세 사람이나 살아났다니 ~ 그게 바로 살신성인 정신 아닌가?
정이가 지 남편 살려주었다고 ~
제낭한테 큰 은혜 입었다고 ~ 무척 죄송해 하던데
모두가 다 같은 내 자식들이지만 ~
자네가 대견하고, 고맙고, 한편으론 저네에게 한없이 미안하네 ~!"
장인 장모도 내 부모요 ...
사위도 내 자식인 것을 ...
투박하고 꾸밈없는 두 분의 위로 말과 농삿일로 거칠어진 손마디가 손 끝에 느껴지면서
불현 듯,
가슴이 뜨겁게 북받쳐 오르고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졌다
"아이 ~ 엄마, 아빠, 그만 하세요 ~
윤정이 아빠가 입이 아파 말을 잘 못하는데 ~ 괜히 울려고 하잖아요 ~"
순이각시가 도중에 끼어들며 가로 막았기에
그나마 눈물의 쌍곡선 장인 장모님의 면회가 막을 내릴 수 있었다
사람과 사람간의 인연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앙의료원 병실로 옮기고 한 달 가량이나 지났을까?
간호부장, 간호과장, 고참 수간호원들이 합동으로
전체 병동의 청결상태 및 환자에 대한 서비스현황을 점검을 나온다고 예고하였는데
내가 잠간 잠들어 있는 사이에 생각지도 않았던 예전의 지인(?)이 다녀갔다
(참고 : 간호업무 담당자 명칭변화 ~ 최초에는 간호부 ~ 간호원 ~ 간호사 (1981년? 부터 개칭됨)
다음날 오후 조용한 시간에,
신경외과 소속이 아닌 내과의 수간호원 한 분이 내 방으로 찾아왔는데
뜻 밖에도 오래전 잊혀졌던 명숙선배가 입원실에 불쑥, 운명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예전에 신당동 살던, 00 고등학교 김운명 후배 맞지?~"
"아 ~~~ 최명숙 선배 ~! ............."
강산이 두 번 변한다는 ...
거의 20여년 긴 세월이 흘렀지만 ~
새하얀 가운 위에 반듯하게 매단 "내과 수간호원 최명숙, 명찰이 분명하였고
얼굴엔 기름진 섹기가 자르르 흐르고,
글래머 몸매에선 우람한 젖소부인 유방이 듬직하고 색골 타입의 옛모습이 풍겨나
무척이나 반가워 다치지 않은 왼손을 불쑥 내밀었다
"와우우 ~ 진짜 김운명 맞구나 ~!
반갑다, 정말 반가워, ~ 우리가 소식을 끊은지 실로 몇해 만이냐 ~?
그동안 뭘 하면서 지냈어?
결혼은 했겠지? ~
자녀들은 몇이고? ~
어제 합동 순회 점검 때,
침대 맡에 붙은 네 이름표를 보고서 긴가민가? 깜짝 놀랐어요
함께 다니는 간호부장과 수간호원들 때문에 잠들어 있는 후배를 깨우지 못하겠더라구
그러나 저러나 어쩌다가 이렇 듯 많이 다쳤니? ~~~"
겨우 더듬더듬 말을 시작한 내가 미쳐 대답할 겨를도 없이 속사포 같은 질문을 던지면서
수술부위를 살펴보고 여기저기 가볍게 만져보더니
"대단하다 ~ 대단해요 ~!
이처럼 온 몸에 큰 중상을 입었으면서도 ~
운명이가 워낙 건강체질이고 삶에 대한 의욕이 강했기에 그나마 견딜 수 있었을거야
우리 중앙의료원은 국내 최고의 의료기관으로
최신시설과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어서 입원환자들이 주욱 ~ 밀려있는 형편인데
재주도 좋게,
용케도 입원을 하였으니 이곳에서 완치하고서 퇴원하면 좋겠다 ~
오늘은 그냥 얼굴만 보고 갈게 ~
다음에 시간 틈나면 종 종 찾아와서 돌봐즐테니
혹씨 간호원들이 불친절하거나 ~ 입원실에서 불편한 점 그런 것은 내게 말해줘 ~!
그럼 ~ 갈게 ~!"
병실에 앉아있는
순심누나/ 순이각시/ 시암댁어머니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바닷가에 큰 파도가 밀려와 갯바위에 부서지는 것처럼
요란벅적하게 자기 혼자 말만 쏟아놓고 ~ 손을 흔들며 사라져 간 최명숙선배~
"허참, ... 그 간호원 정말 시끄럽구나 ~ 지가 수간호원이면 다야 ~?
예의범절도 전혀 모르고, 옆에 있는 보호자들 한테 인사로 아는체라도 해야 되지않아?
도대체 운명이 너하고는 어떤 사이야 ~?"
"으음 ..........."
"언니 ~ 제가 보기엔 바로 오빠를 좋아했다던 그 여학생 같은데요? ~ 아닐까요?"
"호호호 ~ 우리 운명이를 어른으로 만들어준 일본부부의 양녀? 섹스 가정교사?"
"네에 ~ 자신만만한 태도로,
일부러 우리를 무시하는 듯 행동 했잖아요 ~ 몹씨 불쾌해요 ~!"
"하이고 ~!
그 찹쌀떡 인연은 질기기도 하다 ~!
이제 잘 되었네 ~
우리는 발 뻗고 편히 누워서, 맛있는 간식이나 실컷 먹자,
저 선배란 수간호원이 운명이를 다 낳게 해줄거여 ~ 금방 원기가 솟구칠 걸~? 호호호"
"으음 .................."
"다들 뭔 소리들이여 ~?
내가 보기엔 한 인물하는 훌륭한 간호원 같은데 ... 후후후"
"맞아요 ~
어머니 말씀대로 우리나라 1등, 아주 훌륭한 간호원이랍니다 ~호호호"
"순심언니가 어머니께 농담하는 거에요 ~ 헤헤헤
사실은 오빠 고등학교 때 알게된 선배누나랍니다 ~그렇지요? 오빠가 대답해보세요 ~!"
"응, 그래 ........"
순이각시 물음에 가볍게 수긍을 해주면서도 왠지 모르게 부끄러움이 생겨났다
사춘기 20살 고딩시절,
주말마다 명숙선배 남영동 자취방에서 질탕하게 즐겼던 기상천외한 섹스놀이는
학창시절의 한 때 철부지 불장난이었음에도 ...
20여년 지난 지금까지 머릿속에 기억이 생생하게 떠 올랐다
순심누나가 보조의자에서 일어나 내가 누운 침대 곁으로 다가오더니
나의 성한 (왼쪽) 허벅지를 손으로 꼭 찝어 뜯으면서 ~ 내 귓가에 속삭였다
"사랑하는 동생아 ~!
나하고 순이가 아무리 애를 써봐도 너의 똘이장군이 맥없이 잠만 자던데 ~
이제는 프로급 섹스 교수가 나타났으니 ~ 최고의 기술력으로 너를 금방 살려놓겠지~?
따지고 보면 운명이는 물론,
우리 모두에게 더없이 고마운 수간호원 같은데 ...
같은 말뚝 동서(?)로서 잘 부탁드린다고 ~
장충동 집으로 모셔다가 거창하게 미리 한 상 차려올려야 하지 않을까?
너의 의견은 어때 ~? 말해봐 이 엉큼한 남자야 ~! 호호호"
"음 음 ~ 누나가 꼬집으니 아파요~! .........."
"아픈걸 느끼는걸보니 ~
내일이라도 저 간호원하고 가시버시로 엮어지겠구나 ~ 호호호"
"순심언니,
오빠를 그만 놀려요 ~ 또 머리 어지럽고 아프다고 하면 어쩔려구요 ~ 헤헤헤"
"에구, 답답들 하구먼 ~ 셋이서 무슨 소리를 하면서 웃어대는지 도통 모를 일이여 ~"
약속대로 ~
하얀가운을 멋지게 입은 최명숙선배(내과병동 수간호원)가 내 병상에 몇 차례 다녀갔다
명색이 병원의 수간호원인데
아는 환자를 위해 특별의료행위를 해줄 수 있는 것 아닌가?
숨심누나와 순이각시 등 보호자들을 잠시 복도로 내보내고
침대 주위에다 하얀 커튼을 두루고서 ~ 필살의 근골 마사지 시술 ~?
나에게 일체 잡생각이나 신경을 쓰지 말라는 듯,
눈 언저리를 타월로 가리고
병원에서 입는 헐렁한 환자복을 벗겨내렸다
아래 바지는 양쪽에 매듭진 것을 풀면 몽땅 트이는 치마처럼 생겼었는데
대 소변 받아내기 쉽게 항상 노팬티 차림이었고,
상의는 한쪽 어깨만 걸치고 있는 상태여서 굳이 옷을 벗긴다는 의미가 없었다
심장과 머리에서 먼 부분부터 ~
서서이 마사지를 시작했다
명숙선배는 부드럽고 노련한 마사지를 시작하면서
모든 마사지 부위를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었는데
처음엔 손, 발, 마사지부터 시작해서
서서히 다리, 옆구리, 골반, 등허리, 전신에 마사지로 확대해 나갔다.
아주 직업적인 전문 마사지를 해주면서 (지금의 스포츠 마사지?)
그 동안 서로가 살아온 것에 대한 (결혼, 가족 등) 이런저런 대화도 나누었는데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자
딱딱하게 굳어있던 팔 다리 근육이 다소 부드러워 진 것을 느꼈는지
마지막으로 축 ~ 늘어진 자지를 손으로 비비고, 흔들고, 입으로 쪽 쪽 빨다가 ...
그래도 영 ~ 소식이 없자
나의 몸 위에 가볍게 엎드린 상태에서 자신의 브라자를 탁 ~ 풀었어요
그리곤 수박처럼 커다란 유방과 새카맣게 영글은 유두를 나의 입에 물려 주면서
"어서 ~ 빨아줘 ~! 다른 사람들 오기전에 ~!
이러한 자극적인 방법이 너에게는 도움이 될거여 ~!
그동안,
장시간 전신마취, 대수술, 놀라움 등으로
말초신경이 무디어져 당분간은 발기가 안될 수 있는데
될 수 있으면 마음을 편히 하면서 ~ 와이프에게 애무 오랄 서비스를 받도록해봐 ~
이열치열 = 以熱治熱 = 열은 열로써 다스린다는 뜻으로,
힘에는 힘으로 또는 강한 것에는 강한 것으로 자극하여 상대함으로 치유한다는 뜻인데
뼈와 근육이 굳어진 운명이에게
따뜻한 온천욕과 부드러운 여성피부로 전신마찰을 해주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야
밤이면 잠들기 전에 ~
마누라에게 부드러운 젖살로 자지를 문질러 달라고 해봐 빠른 효과가 있을거야 ~!
이러한 방법은 북극지방 에스키모족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것으로
며칠동안 극한 추위속에 사냥을 다녀온 남편의 얼어붙은 손, 발을 아내의 젖가슴에
집어넣고 녹여주면 동상예방이 된다고해 ~ 문헌에도 기록된 사실이거든 ...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운명이 마음을 느긋하게 스스로 안정시키는거야 ~!
이 점을 꼭 명심해 ~!"
20여년만에 만난,
명숙선배의 젖꼭지를 입술로 빠는데 예전 사춘기 시절의
꽃처럼 아름답고, 꿀처럼 감미로웠던, 달작지근한 향기와 느낌이 전혀없었다
그 이유는 성치 못한 나의 몸 컨디션이 엉망이기도 했거니와
그동안 내가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수십명의 남자들과 문란한 프리섹스 성생활을
실컷 즐겼을 선배의 행실에 대한 혐오감이 느껴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일본인의 양녀로 자라나면서
정조관이란 하나도 없는 프리섹스 주의자,
상황에 따라서 이 사람 저사람에게 기분나는 대로 팬티를 벗어내렸을 선배의 성개념,
수많은 남자들이 얼마나 심하게 젖꼭지를 빨아주었던지?
강남콩처럼 딱딱하게 여물은 젖꼭지가
연탄가루 모양으로 새카맣게 닳아있었다
직접 확인 한 것은 아니지만 ~
아래쪽 보지구멍도 대음순 소음순이 너덜너덜 닳고 닳아 시커먼 걸레가 되었을 것이 분명해보였다
(장충동 집의 나 하나 만을 바라보는 정숙한(?) 여인들에 비하면 최명숙선배는
속칭 노류장화(기생),
창녀, 똥갈보, 같은 지저분한 개보지?로 헤프게만 느껴졌다)
그렇지만 오랜만에 선배를 만났는데 싫다는 표정은 내색도 안하고
근무시간에 짬을 내어 한 때 연인(?)이었던 나에게 마사지 서비스를 해주는 고마움에
선배의 젖꼭지를 매마른 입술로 열심히 빠는 쉬늉을 하였고,
명숙선배는 내게 엎드린 상태에서 입술에 물려주었던 유방을 자신의 손으로 움켜쥐고
나의 가슴과 배꼽, 허벅지, XX, 붕알에 까지 스치듯이 젖마사지를 정성 것 해주었다
마지막 순서로는 나의 전신에다 오일을 듬뿍 바른다음 ~
손으로 문지르고/ 젖살로 문지르고/
특히 늘어진 자지 붕알을 집중적으로 주물럭 주물럭 마사지 해주면서
"예전에는 운명이 자지가 정말 힘차고 귀여웠는데 ~
언제고 자지에 힘이 생기면 내게로 연락해 ~!
이 누나가 새롭고 멋진 멀티섹스의 진기명기 맛을 보여줄테니 ~~~호호호"
남녀간에 정이란 무엇인지? ...
병상에 누워있는 나를 위해 진땀 흘려가며 열심히 마사지 해준 명숙선배가 고마웠고
남자에 대해서는
그 어떠한 경우에도 배 굶주리지 않았을 선배가
무슨 연유로 병든 나에게 이처럼 지극정성 서비스를 해주는 것인지?
명숙선배의 묘한 심리상태를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중상환자에 대한 위로였을까? ~
버리기엔 아까운 옛추억이 쬐금 남아있었던 걸까?)
30분이 넘도록 갖가지 마사지 애무 오랄서비스를 해주던 명숙선배가 힘이 들었던지
얼굴이 벌겋게 닳아오르고 땀을 주르륵 흘리며 내 입술에 가볍게 키스해주면서
"다음에 또 와서 마사지 해줄게 ~ 편히 쉬어 ~!" 라고 손 흔들며 사라져갔다
명숙선배가 병실을 나서자 ~
복도의자에 앉아 기다리던 순심누나와 순이각시가 득달같이 내게로 달려오더니
"호호호 ~ 오랜만에 선배누나에게 호강 찐하게 받았구나 ~?
어머머 ~!
운명이 얼굴이 발그레 화색이 도는걸 ~?
도대체 어디를 어떻게 해준거야 ~? 어디 한 번 자세히 살펴보자 ~!"
무턱대고 나의 옆터진 환자복 바지 사이로 늘어진 자지를 만져보더니만 ~~~
"에게게 ~ 이게 뭐야 ~? 전혀 효과가 없는데 ~? 엉터리 수간호원 아니야 ~?"
호호호
헤헤헤
으음 ......
최명숙선배 (내과병동 수간호원)는
내가 입원해 있을 동안 세 차례 봉사활동(?) 마사지 서비스를 더 해주었다
서늘한 가을 9월로 접어들 무렵에는
나의 건강이 많이 좋아져 휠체어를 타거나
목발이나 지팡이를 집고 병원 뜨락을(잔디 정원) 산책할 수 있었는데
명숙선배가 휠체어를 뒤에서 밀어주며 산책을 함께 하면서 ~
밤이면 잠 못이루는 불안증세 치료를 위해 정신과 심리치료와
발기부전이 오래 간다면 비뇨기과 정밀치료를 받아보라는 권유도 해주었다
결과적으로 명숙선배의 치료는 효과 없이 끝나고 말았지만 ~ 고마움이 남아 있었고
다음에 나의 건강상태가 정상으로 돌아오면
청운식당이나 중앙의료원으로 연락해서 꼭 만나기로 약속하고 ~
20년만의 우연한 만남,
추억의 즐섹은 끝내 성공하지 못한체 헤어지고 말았다
내가 병원에 입원해 있던 1979년 봄 ~ 여름 ~ 가을 ~ 8개월동안에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연일 시끄러운 TV 뉴스가 터져나왔다
YH 무역 여공농성사건,
신민당총재 김영삼의 의원직 박탈사건,
부산, 마산항쟁 등 계속된 유신정권에 대한 불만사건이 계속 터져나오면서
1979년 10월 26일 밤, ~~~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와 그 휘하 직원들의 총탄에
박정희대통령과 경호실장 차지철 등 수행원들이 살해되는 일대사건이 발생하였다
갑작스런 대통령의 유고로 불안한 정세 속에 하루하루가 긴박한 소용돌이의 연속 ~
정치와는 거리가 먼 병원내에서도 가는 곳마다 웅성웅성 ~ 작은 변화가 느껴졌다
1979년, 2월말에 사고 발생 ~ 8개월의 입원생활을 마치고
1979년, 10월 말 시끄러운 시국을 걱정, 가족들의 권유로 서둘러 병원에서 퇴원하였는데 ...
내 자신 육체적 정신적으로
너무 허약해진 탓에 회사에 1년간 휴직원을 제출하였다
그 와중에 순이각시는
넷 째 아들 "윤도"를 예정일보다 10일이나 빨리 (조산) 낳았고
나의 사고 여파로 몹씨 놀랐던 탓인지 출산 ~ 산후가 순조롭지 못해 잦은 하혈을 하였다
순이각시는 장충동 집에서 넷 째 산후조리를 하면서도
산모인 자신의 몸 보다도 나에게 많은 신경을 쓰느라 제대로 몸조리를 못하고 있다고
순심누나와 시암댁어머니가 늘 걱정을 하곤 하였다
오늘은,
대한민국 한글 자랑부터 좀 늘어 놓겠습니다 ~!
세종대왕께서 창제하신 우리나라 한글은 세계 제일의 소리글 입니다
흔히들 ~
한글, 즉 훈민정음을 신비로운 문자라 부르곤 하는데
그것은 세계 문자 가운데 유일하게 한글만이 그것을 만든 사람과 반포일을 알며,
글자를 만든 원리까지 알기 때문입니다 (서기 1446년, 세종28년, 10월9일에 반포됨)
세계적으로 이런 문자는 없습니다
그래서 한글은, 정확히 말해 훈민정음 해례본 (국보 70호)은
진즉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당초 "훈민정음"이었는데 ~
‘한글’ 이라는 이름으로 명명한 것은
1910년대 초에 주시경 선생을 비롯한 대한제국 한글학자들이 쓰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기서 ‘한’이란 크다는 것을 뜻하니,
한글은 ‘큰 글’을 말한다고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글은 기본글자 = 자음 14자, 모음 10자, 아주 간단하고 명료합니다
이에 반해
물건의 모양을 본떠 만든 고대의 갑골문자, 회화문자, 상형문자에서 발전한
중국의 한자는 (BC202 ~ AD220, 한나라시대에 400년간 체계적으로 발전한 글?)
뜻으로 표기하는 문자인데
글자수가 수천 수만으로? 광범위하고 복잡하여
사대주의에 물든 옛선비들이 평생을 공부해도 깨우치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였습니다
그러한 중국 한자의 사자성어 (四字成語 = 네 글자로 이루어진 뜻 글) 에는
우리네 인생살이를 음유하는 글들이 많이있고 실제로 우리들이 자주 사용하고 있는데 ...
(어렵다고 해놓고 ~ 그 어려운 한자를 인용해서 작가로서 죄송합니다 ~ ㅎㅎㅎ)
고진감래 = 苦盡甘來
흥진비래 = 興盡悲來
쓴 것이 다하고 나면 단 것이 오고, 흥함이 다하면 슬픔이 온다는 말로,
어려운 일이 끝나고 나면 좋은 일이 생기고,
또 좋은 일이 다하면 어려운 일이 생긴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겠습니다
길흉화복 =吉凶禍福
길함과 흉함, 불길함과 복스러움,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고통을 나타내는 말로,
인간 세상에 존재하는 좋은 일과 나쁜 일, 재앙과 복을 모두 모아 이르는 표현임
호사다마 = 好事多魔
"좋은 일에는 탈이 많다" 라는 뜻으로, 좋은 일에는 방해가 많이 따른다거나
좋은 일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많은 풍파를 겪어야 한다는 것을 비유하는 글입니다
화무십일홍 = 花無十日紅
"열흘 붉은 꽃이 없다" 는 뜻으로 해석,
한 번 성한 것이 얼마 못 가서 반드시 쇠하여짐을 이르는 말이며
권세나, 부귀영화가 한 때 성(盛)함이 오래 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새옹지마 = 塞翁之馬
우리들 귀에 익숙한 사자성어로 변방에 사는 노인의 말(馬) 이야기라는 뜻,
옛날 중국의 북쪽 변방에 한 노인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이 노인이 기르던 말이 멀리 달아나 버렸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위로하자 노인은 "오히려 복이 될지 누가 알겠소." 라고 말했어요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그 말이 한 필의 준마를 데리고 돌아왔는데
마을 사람들이 이를 축하하자 노인은 "도리어 화가 될는지 누가 알겠소." 라며 불안해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말타기를 좋아하는 노인의 아들이 그 준마를 타다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걱정하며 위로하자
노인은 "이것이 또 복이 될지 누가 알겠소." 라며 태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어느 날, 나라에 큰 전쟁이 일어났는데
마을 젊은이들은 전쟁터로 불려 나가 대부분 죽었으나,
노인의 아들은 말에서 떨어진 후
절름발이였기 때문에 전쟁에 나가지 않아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로서
길흉화복이 뒤죽박죽 섞이는게 세상살이라고 그럴 듯하게 비유한 내용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의 인생살이는
양지가 음지되고, 음지가 양지로 다시 변하는 것처럼 자주 뒤바뀐다는 뜻으로
위로와 경고를 주는 한편, 늘 경계하면서 살라는 뜻의 말들인데
위에서 길게 거론한 사자성어 모든 내용들이
그대로 짧은 내 인생에 적중하였으니 김운명의 중년시련이 시작되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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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밤하늘의 유성처럼 빠르게 흘러 ~
1979년 내 나이 39살이 되었는데
장충동 집에 함께 모여 사는 순심누나/ 순이각시/ 희순형수/ 시암댁어머니/ ...
그리고 가끔씩 찾아와 나에게서 밀린 빚(섹스? 정액?)을 받아가는
옥희누이와 정이처형 까지 ...
여섯명의 해바라기 여인들이 건재해 있었다
우리들의 즐거운 섹스생활은 다람쥐가 체바퀴 돌리 듯, 뻔한 스토리였지만 ~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게 내 슬하에 자식들 ...
순심누나의 딸 명순이는 19살 꽃다운 나이에
꿈많은 여고 3년생으로 글래머 숙녀처럼 성숙해졌고
순이각시가 낳은 큰아들 윤정이는 8살, 국민학교 1학년에 입학하였다
둘째 아들 윤신이가 6살,
희순형수의 딸, 효순이도 6살 (동갑이지만 윤신이 보다 생일이 조금 늦음)
얼굴이나 행동이 꼭 빼닮은 이란성 쌍동이 남매처럼
유치원 복장으로 둘이 손잡고 나란히 다니는 모습이 여간 귀엽고 예뻐보였다
희순형수는
역삼동 청운의상실 근처에 전세를 얻어 효순이와 단 둘이 살았었는데
가족회의시 ~ 순심누나의 강력한 주장에 따라
효순이가 유치원에 입할 할 즈음에 장충동으로 이사하여 함께 모여살게 되었다
희순형수는 장충동으로 집을 옮기면서 새마누라 신고식(?)을 단단히 치뤘는데
청운의상실에서 ~
전 가족들에게 야들야들한 섹시 잠옷을 만들어 선물했고
귀신 물러가라는 붉은팥 시루떡과 갖가지 과일에 포도주를 준비해와 신입파티를 열었으며
술을 마시고 기분이 얼큰해진 그날밤,
순심누나/ 순이각시/ 희순형수/ 나까지/
헝클어진 3:1 포섬을 올나이트로 질탕하게 즐기면서
그간에 세 여인 사이에 구멍동서(?)로서 어색했던 높은 벽을 허물었지만 ~
처음보는 희순형수의 백YY 민YY에 순심누나와 순이각시가 신기한 듯
가까이 들여다보고,
손으로 매만지고,
혀끝으로 낼름 빨아주면서, ~
"어머 ~!
세상에 소문으로만 들었던 정말 민들레 YY가 있었네 ~! "
"제, 백YY가 멋있지요? ~ 김차장이 애기YY라고 얼마나 좋아한다구요 ~! 헤헤헤"
"히히히 킥킥킥"
"호호호 허허허"
넷이서 홀라당 벗은체 재미나게 웃던 일이 있었다
순심누나가 ~
"아들 낳는 기계"라고 별명 붙여준 본부인(?) 순이각시는
그 사이에 셋 째 아들 윤일이를 매추리가 새알 낳 듯히 뿅 ~ 쉽게 낳았고
또 다른 넷 째를 임신하고 있었으니 ~
8년전 대전예식장의 결혼식 날 폐백자리에서
고향 어머니께서 밤, 대추, 한줌을 새 며느리 순이 치마폭에 던져주시면서
"우리 집안은 아들 손이 부족하니 ~ 부디 아들을 많이 낳아 집안을 흥하게 해주라" 주문하셨고,
23살 임산부로서 아주 힘겹게 자연분만으로 첫째 아들 윤정이를 출산 한 후,
"앞으로 아들 열 명을 계속 낳을거라고 ~!"
자신있게 장담했던 그 말들이 씨가 되었는지 .....
아무튼 순이각시는 기계처럼 2년마다 한 명씩 장한 아들을 쑥 쑥 낳아주었다
그로 부터 세월이 많이 지난 후에 ~~~
아들 넷, 딸 둘,
여섯자녀가 무럭무럭 잘 자라나 제 각각 사회생활에 적응하는 걸
바라보면서 곰 곰 생각해보면 정말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지만 ~
순심누나 = 명순/
희순형수 = 효순/ 두 딸은 친딸이건만 호적상 남의 딸로 등재되었고
순이각시 = 윤정, 윤신, 윤일, 윤도 ~
네 아들은 정식 나의 호적으로 올라 있는 것이 실로 교묘한 이치였으며
20 ~30년이 지나 우리들 나이 60~70이 되도록
변함없이 즐겼던 화려하고 변화무쌍한 밤 무대 (쓰리섬, 포섬, 단체전?)에서
틈나는 대로 순심누나가 순이각시에게 즐겨 쓰는 우스개 말 ~!
"순이 너는 나 때문에 연속으로 아들 넷을 쑥 쑥 낳은거여 ~!
16살 먹은 철부지 여중생에게 갖가지 성교육을 체험시켜 일류선수(?) 만들어 주었지 ~!
결혼하고 난 후에는
내가 밤마다 땀 흘려서 애무 오랄로 네 보지구멍에 군불을 지펴놓으면,
너는 따뜻한 질구멍에다 운명이의 우람한 좆을 받아들이고 배부르게 즐기다가
마지막 클라이막스 때 사정한 좆물을 혼자서 다 받아 마셨잖어? ~
안 그래 ?
술자리에서 양기가 입으로 솟구친 엉큼한 사장님들이 농담? 하는 것 들어보면 ...
밤에 잠 자리에 든 부부가 30분 이상 애무 오랄을 즐기면서
여자 아래에 애액이 넘쳐나도록 만들어 준 다음에 삽입하고 사정을 해야만
산성이었던 여자의 자궁이 알카리성으로 바뀌면서
건강한 남자의 정액을 받아들여 아들을 임신하게 된다고 하더라구 ~ 믿거나 말거나?
밤이면 밤마다 나하고 운명이가 번갈아가며 입술이 갈라지고 혓바닥이 닳도록
순이 너한테 공들여(?) YY 를 즐겁게 해 준 오랄서비스를 기억해봐 ~
너는 쓰리섬 덕에 아들만 쑥 쑥 넷을 낳았다는 것 .....
특히 나의 지극정성한 도움이 컸었다는 것 .....
절대로 잊지마 ~!
그래서 은밀히 부탁하는 말인데 ~~~
앞으로 우리 눈에 흙이 들어가면 살아있는 자식들한테 제삿밥은 얻어먹어야 하잖어?
첫 째 ~ 윤정이는 장남이니 너희 부부의 맏상주로 정하고
둘 째 ~ 윤신이는 출가할 명순이 대신 나의 아들로 제주 삼고
셋 째 ~ 윤일이는 딸만 여섯인 시암댁어머니 제주로 인정하고
넷 째 ~ 윤도는 대전 큰 오빠네 아들이 하나뿐이니 양자로 호적에 올려주면 어떻겠니? ~
설마하니 ~ "반대" 하지는 않겠지? ~
이 자리에서 확실한 의견을 내놔봐 ~! 호호호"
이러한 진담 겸 농담 우스개 장면이
한 두 번이 아니고 ~ 수 차례 벌어지다 보니
문서상으로 작성하여 합동법률사무소에서 양자입적을 공증 받진 않았지만 ~
우리 세 사람끼리는
순심누나 의견대로 그렇게 하기로 묵계가 성립 되었다
(묵계 = 默契 = 말 없는 가운데 뜻이 서로 맞음, 또는 그렇게 하여 성립된 약속)
나중에 이런 사실을 알게된 시암댁어머니도
모처럼 크게 웃으시면서 흡족해 하셨다
명절 때나,
집안의 결혼식,
장례식, 등에 일가친척들이 많이 모이는 자리에선
청운식당, 청운한정식, 부동산투자, 은행이자 불리기, 등으로
이미 엄청난 돈 방석에 높이 올라 앉은 순심누나의 인생역전 입지전적 이야기 보다도
네 아들의 어머니가 된 순이각시가 단연 인기톱, 인기짱, 이었으니 .....
6.25 전쟁 후, 50~60년 대에
집집마다 애를 많이 낳은 탓으로 폭발적인 인구증가 문제가 국가적인 이슈가 되었는데
국가에서 산아제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장려 딸, 아들, 구별 말고 하나씩만 낳기 운동을 전개 하였으나 .....
각 가정의 (특히 농어촌 및 전통 집안) 베이비 붐 열기가 쉽게 식지 않았었다
더욱이 우리 김씨 집안은 남자가 몹씨 귀하던 터라 ~
2년 터울로 내리 아들만 쑥 쑥 뽑아내는 막내며느리 순이의
황금 애기보?
요술 자궁?
아담한 궁둥이?는
어딜 가나 선망의 대상으로 칭찬이 자자했고 그 위치가 탄탄대로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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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
장장 9년간을 근속한 나의 직장생활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
신입사원 ~ 한강변아파트 건설현장, (평사원 근무)
두 번째 ~ 잠실아파트 건설현장, (대리 승진)
세 번째 ~ 여의도아파트 건설현장, (과장 승진)
네 번째 ~ 강남반포아파트 건설현장 (차장 승진)에 막 부임하여 근무중에 있었다
내 나이 40이 되었고 ~
회사에서 차장이란 직책을 부여 받았으나 본사근무(사무실) 기회가 한 번도 없었는데
내가 가진 기술 (건축기사) 자격과
그간의 근무경력 때문에 현장근무 적임자라는 노랑 딱지가 붙었기 때문이었고
혼자만의 마음속으로 장래 건설회사 사장을 꿈꾸는 내 스스로가 자원하다시피 하여
현장에서 현장으로 자리 바꿈을 하면서 속칭 노가다 생활을 계속하였다
(숫한 인부들, 납품업자, 협력회사, 사람들과의 친분유지와 실전 현장경험을 차곡차곡 쌓아감)
힘든 노가다 건설현장에서
일을 순조롭게 추진하려면 알게 모르게 자기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였다
김반장 = 정이처형
최반장 = 은실누나
기타 현장의 많은 기술인력들이 나와는 형제처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지내고 있었는데 ...
1978년 초에는
현장소장님의 허락을 받아 (경비나 임시직은 현장에서 직접채용 가능)
시골 처가집의 처남댁 내외를 서울로 불러올려
처남은 건설현장 경비실 근무와 자재 입출고 보조업무를 시켰고
처남댁은 정이처형과 손을 맞추어 함바식당 일을 돕기도 하고,
함바식당 일이 한가할 때는 청운식당의 주방 일을 지원하도록 조치하였다
(처남 내외에게는 자라나는 자녀들이 넷이 있었는데 ...
처남내외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
당분간은 처가의 장인 장모님이 손주들을 보살피면서 시골학교에 다니게 하였음)
그 시절,
시골에서 힘들게 농삿일 하는 것보다는 ~
서울에서 노가다 막일 하는게 수입면에서 월등하였고
결혼 초기에 처가식구들에게 했던 나의 약속을 지키는 목적 외에
처남이 건설자재분야에 경험을 쌓아놓으면 ~
앞으로 내가 건설사업을 시작할 때 큰 도움이 될 것 같아 원대한 포석을 미리 한 것이었다
처남 내외의 서울 살이로 ~
한 달에 두 번씩 장충동의 가족 친목모임은 (생일파티, 식당 쉬는날 등) 더욱 머릿수가
많아지고 이런저런 협의내용이 거창해지기도 하였다
장충동 집에 모든 가족들이 모여 떠들석 하게 지내다보면 ~
6.25 전쟁 후유증으로 작고하신 할머니께서 고향집에서 들려주신 옛이야기 ~
"인장지덕 =人長之德 이요 ~ 목장지폐 = 木長之弊" 가 곰 곰 생각났다
(큰 나무 덕은 못 보지만 ~ 큰 사람 덕은 볼 수 있다는 뜻 ~?)
큰 숲속에서는 큰 나무들의 그늘로 인해 작은 나무들이 자라기가 어렵지만
그러나 덕이 큰 사람의 그늘에 있는 사람은,
부족한 덕 아래 있는 사람보다 덕을 많이 받을 수 있다 ~
큰나무 아래는 항상 그늘이 져서 작은나무들이 살 수 없지만 ...
큰사람 (정치인, 사업가 등) 밑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돈벌이 하면서 산다는 뜻 ???
순심누나는 식당사업으로 큰 돈을 벌어들여 성공했다고 볼 수 있고
처가동네 사람들을 스카웃 해서 돈 벌이 시켜주고있으니 덕을 쌓은 편인데 ...
나의 원대한 꿈,
건설회사는 언제쯤 설립하여 기지개를 펼칠 수 있을 것인가?
나이 40이 되면 ...
자신의 얼굴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데 ...
타인이 바라보는 나의 외모와 인품은 과연 어떠한 모습으로 비춰질까?
하루 하루를 만족해하며 살아가는 하루살이나 불나방이 아닌
먼 미래를 내다보는 설계를 하고 싶은데 ~ 마음만 간절할뿐 눈 앞에 정리가 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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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2월 28일 ~~~
내 일생에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악몽의 날이자, 내 일생일대 변혁의 날이었다
봄을 시샘하는 북서풍,
한강변의 매서운 꽃샘바람이 3~4일간 연속 불어왔는데
그 날은 여름철 태풍에 버금 될 만큼 세찬 회오리 강풍이 아침부터 불어닥쳤다
아파트건설현장에서는
터파기, 파일박기 등 토목공사가 주야로 진행되었고 ~
현장사무실, 자재창고, 직원숙소, 함바식당, 등을 칼라강판 판넬로 다 지었는데 ...
마지막으로 목공소 겸 목재창고를 ~
벽은 시멘트블럭, 지붕은 슬레이트로 짓고 있는 중이었다
운명의 그 날 ~!
점심식사 직후에 .....
나하고, 김반장, 인부 2명이 가건물 안에서 입고된 목재를 사이즈 별로 정리하고 있었다
갑자기 "휘이잉 ~" 세찬 돌풍이 불어와
굳게 닫혔던 창고 문짝이 "우당탕~~~" 떨어져 나가더니 눈 깜박할 순간에
"우직끈 ~~!"
"우당탕탕 ~ 쾅 ~!"
마치 액션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지붕 슬레이트와 시멘트블럭 벽체가 창고 안으로 와그르르 무너져 내렸다
사람의 판단과 순발력이란 찰나적인 것~!
(찰나 = 刹那 = 불교에서 사용하는 최소단위 시간 ?
눈 깜박한 것보다 더 극히 짧은시간, 1찰나는 75분의 1초에 해당한다고 과학적으로 풀이함)
나와 마주 서 있던 김반장을 재빠르게 목수다이 (작업대) 밑으로 떠 밀어넣고
그 옆의 작업인부 2명을 문쪽으로 확 ~ 밀치는 순간 거대한 힘이 내 몸을 짓눌렀다
시멘트블럭과 목재로 만든 카시오(트러스?)
그리고 떨어진 슬레이트 조각들이 내 몸 위로 우르르 쏟아져 내리면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체 ~
나는 그만 아득하게 정신줄을 놓고 말았다
귓가에 비명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어디가 아픈줄도 몰랐다
누군가 내 몸을 흔드는 것 같기도 하였고
어슴프레 경비실 근무하는 처남이 뛰어와 내 몸을 등에 들쳐업는 것 같기도 하였다
피투성이가 된 나는 곧바로 차에 실려 강남의 병원으로 ~!!!
12시간의 대 수술 ~
3일간의 의식불명 ~
2주일간 중환자실 대기 ~
8개월간 입원치료 ~
퇴원 후,
1년이 넘도록 재활을 위한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 ~!
기적이었다 ~!
사고 후,
사흘(72시간)이 지난 후에야 천정의 밝은 불빛 때문에 눈이 따갑다는 느낌과
온 몸이 침대에 꽁 꽁 묶여 있는 거북함을 동시에 느끼면서 슬며시 실눈을 뜨게 되었는데
중환자실 침대 곁에 순심누나와 순이각시 모습이 잠시 어른거렸고
시암댁어머니와 여고생 복장의 명순이의 근심어린 얼굴이
흔들리는 산데리아 등불처럼,
뒤섞인 모자이크 조각처럼, 흐릿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어머나 ~! 엄마, 삼촌이 눈을 떴어요 ~!"
"어이쿠 ~! 운명아, 운명아, 이제 정신이 드니? ~ 우리를 알아보겠어 ~? 흐으흑 ~!"
"여보 ~! 이제 깨어났군요 ~ 72시간이나 지났는데 ~~~ 흐흐흑 ~!"
"다행이구먼 ~! 이제서야 정신이 나는 갑다 ~! 부처님 가피로 기어이 살아났구먼 ~!"
내 곁을 지키고 있던 네 사람이 저마다 한 마디씩 하면서 눈물 뚝 뚝 ~
기쁨과,
안도에,
흐느끼면서 내 손과 발을 쥐어주었는데
눈동자는 보일 듯 말 듯 가물가물 ~
머리 속은 어리버리 빙글빙글 ~
소리는 귓가에 웅웅거려 먹먹하고 어지럽고 ~
힘없이 눈을 ~ 떴다 감았다, 또 떴다 감았다 ...
(심청이 아버지 ~ 심봉사 눈 뜨는 대목처럼)
말을 할려고 해도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고,
손을 휘저으려 해도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집트 미이라 처럼
온 몸을 붕대로 칭칭 감고 중환자실 침대에 묶여 전혀 움직이지 못한 체
가물가물한 정신을 서서히 차려가면서 하루하루를 바람처럼 휘~잉 지내보냈다
사고 후 ~ 2주일이 지나고 ~
혈압, 맥박, 백혈구 수치, ....
머리 어깨 팔굼치 갈비 무릎 등 수술부위가 어느정도 안정상태에 이르자
중환자실에서 신경외과 일반병실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는데
순심누나가 원무과와 협의
환자와 보호자의 편의를 고려하여 화장실이 딸린 2인실을 택하였다
(누나는 1인 특실을 꾹 꾹 원하였지만 ~
곁에 다른 환자가 있으면 다소나마 위안이 되고 말동무가 될까해서 내가 2인실을 원했다)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길 즈음에는 ~
머리를 비롯해서 모든 수술부위의 꿰맺던 실밥을 뽑아냈고,
하루종일 링거주사를
세 개 네 개 주렁주렁 매달고 오줌도 호스로 받아내던 상태에서
죽이나 미음 같은 유동음식을 조금씩 입으로 넘기게 되어 링거를 반으로 줄였으나
우측편의 머리 어깨 팔굼치 옆구리 무릎을 ~ 기프스 한 체 일절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은 ~
자지 요도에 꽂았던 고무호스를 빼내고
소변이 마려우면 침대에 누운 체로 플라스틱 소변병에다 받아내었고
대변은 이틀에 한 번 갓난이들 물똥 싸 듯 이동식 변기에다 받아내어 화장실에 버렸다
그 같은 지저분한 병간호를 하기 위해
순심누나/ 순이각시/ 시암댁어머니/ 희순형수/ 옥희누이/ 정이처형/
6명의 여인들이 번갈아 가며 보호자로서 병상을 지켜주었는데 .....
(명순이는 하교후,
매일같이 병실에 들렸고 ~
토요일 밤에는 아예 대학입시 문제지를 싸들고
입원실로 찾아와서 보호자용 간이침대에서 꼬박 날새기 공부를 하곤 하였다)
순심누나/ 순이각시/ 보다도
더욱 정성스런 간병을 한 사람은 정이처형과 희순형수였다
왜냐하면 ~
정이처형은 남편인 김반장을 살리기 위해 제낭이 희생하였다고 죄송해 했기 때문이고
희순형수는 ~
세간에 떠도는 말대로 자기 백YY 탓에 재수가 없어 이지경이 되었다고
"차라지 내가 죽는게 백번 낳겠다"고 스스로를 자책했기 때문이었다
(순심누나와 내가 단 둘이 있을 때,
이러한 "백YY 건들면 3년 재수없다"는 말을 하면서
누나가 지나가는 말로 희순이 때문에 재수가 없는거리고 내게 말한바 있었는데
엉뚱한 사람 죽일 소리 ~!
택도 없는 허황된 낭설 ~! 이라고
두 번 다시 그런말을 하지말라고 내가 일언지하에 순심누나의 입을 봉해버렸음)
일반병실로 옮기고 나서 ~
어느정도 정신이 되돌아온 나에게
이 사람 저 사람이 조목조목 들려준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면 ~~~
사고 당일날 점심시간에
건설현장 부근에는 순간 초속 25m의 돌풍이 몰아쳤는데
1차로 목재창고의 문짝 두 개가 세찬 바람에 떨어져 나가면서 ~
회오리 돌풍이 창고 안으로 밀려들어와 슬레이트 지붕과 목재 트러스가 붕 ~ 떴다가
한 순간에 시멘트블럭 벽체와 함께 "와그르르" 무너져 내렸다고 .....
(건설공학을 살펴보면 ~
슬레이트지붕의 경우 ~
위에서 누르는 힘 보다 아래쪽에서 들어올리는 힘에 약하다는 것 ...
도로의 다리도 그와 같고,
심지어는 차량의 앞 유리창도 바깥보다 안쪽이 매우 약함)
내가 밀어부친 덕분에 목수다이 밑에 몸을 웅크린 김반장은 다리 골절상만 입었고
출입문쪽으로 밀쳐진 인부 두 명은 팔 다리에 가벼운 찰과상만 입었는데 반해
목재창고 한 가운데 서있던 내 몸 위로
시멘트 블럭과 목재 카시오, 슬레이트 지붕 등이 일시에 무너져 내리면서
우측 두개골 부상(과다 출혈), 어깨뼈 골절, 팔굼치골절, 갈비뼈 4개 절단, 무릎 골절,
쉽게 말하자면 ~
벽과, 천정이 쏟아져 내림과 동시에 창고바닥으로 원숭이처럼 몸을 움추리며 넘어졌는데
엄청난 중량물이 나의 우측편을 집중적으로 한거번에 내리누르면서
머리, 어깨, 팔, 갈비, 무릎이 몽땅 절단? 내지는 조각조각 깨진 상태였다고 ~
부상 부위중에 가장 심각한 것은
머리 우측(두개골)이 깨져 많은 출혈이 있었는데 하필이면 내가 RH- 혈액형이라서
적십자병원(혈액원)의 헌혈재고 구하기 어려워
수혈하는데 몹씨 어려운 상황에 처했었다고 하였다
나와의 근친 중에는
급히 상경한 대전 형님과 장조카와 고향어머니가 계셨지만
형님과 조카는 Rh 플러스 형이라고 하였고,
어머니는 연로하셔서 아예 헌혈대상이 못되었고 ...
자녀로는 어린아이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지만
나이가 너무 어려서 헌혈을 할 수가 없었는데
뜻밖에도 순심누나와 여고생 명순이가 나와 같은 Rh- 혈액을 가지고 있어
즉석에서 헌혈 ~
그리고 곧 바로 수혈로 이어졌다고 하였다
(내가 정신을 잃고, 수술을 받고 있는 상태에서 모든 조치가 이루어졌음)
??? ~ 장장 8개월 동안을 ~ ???
병원 두 곳에 입원해 있으면서 두고 두고 의문점이 안 풀리는 것이 한가지 있었다
명순이는 내 딸이니까 나와 혈액이 똑 같을 수 있다고 하겠으나
순심누나와 나는 솔직히 전혀 남남지간인데
왜? 같은 피를 가지고 있을까?
우리나라 Rh- 혈액형은 대략 3~400명 중 한명 꼴이며, 확률로는 1% 미만이라던데?
(참고 : Rh- 혈액소유자 실태
동양에서는 전체의 1%도 안 되는 반면,
서양에서는 Rh-형이 전체의 20%를 차지한다
이런 희귀성 때문에 동양국가에서는 Rh-형인 사람들을 따로 등록해 두기도 한다)
아무튼 ~
죽었다 되 살아난 내 몸 상태를 자세히 살펴보면 (12시간의 대수술내용)
1) 신경외과에서는 ~
머리카락을 빡빡 깍고, 전신마취를 한 다음에 뇌수술을 하였는데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두피가 찢어지고, 두개골 함몰이 일부 있었지만 ~
가장 중요한 전두엽, 후두엽, 측두엽 등에는 별다른 손상이 없었다는 것,
(인간의 뇌에서 가장 발달된 곳으로서 생각, 언어, 글쓰기, 표정, 능동적 행동 등 ...
고등정신작용은 주로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운동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며 신체의 내부를 포함한
모든 감각 양상으로부터 입력을 받는 전전두 피질을 포함한다)
2) 다음은 정형외과 수술로 ~
어깨뼈, 무릎뼈, 팔굼치, 부서진 뼈조각들을 수술로 일일이 맞추었고
갈비뼈가 4대나 뚝 ~ 부러졌는데 그 중에 하나가 간을 찌를 듯 송곳처럼 날카로워
나중 활동에 지장이 될 것 같다고 판단하여 껴 맞추기 수술을 하였다고 하였다
3) 치과에서는 ~
부러진 이빨 2개를 뿌리까지 뽑아내고 "미니 틀니" 비슷하게 끼워 맞추기를 하였고
4) 비뇨기과에서는 ~
당분간의 거동 불편을 고려하여 자지구멍에다 고무호스를 꼽아
처마밑의 눈 녹은 낙수물처럼 방울방울 소변을 병에다 받아내었다고 .....
사람은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무의식적으로 손이나 팔로 얼굴부터 가리게 된다고 하는데
결과적으로 엉겹결에 손으로 가렸던 얼굴의 눈, 코, 귀, 입, 빼고는
내 몸에 성한 곳이라고는 한 군데도 없었다 ........
병원의 책임교수, 수술 집도했던 전문의들이 회진을 돌면서
"그러한 압사사고, 큰 부상을 당하고도 이처럼 살아 난 것은 기적에 가깝다"고
보호자 (순심누나, 순이각시)에게 들려준 위로의 이야기들이었다
병상에서 내가 입으로 직접 말하기는 어려웠으나 ~
귀로 듣기는 가능 하였는데 ~
순이각시가 전해주는 말에 의하면 .....
대전의 큰형님 형수님 장조카와 큰 누나가 사고 당일날 오후 전화연락을 받고
심야에 불야불야 승용차로 올라왔었는데
내가 12시간에 걸친 대 수술을 받는 동안 수술실 밖에서 안절부절 서성거렸고
정신줄을 놓아버린 중환자실 병상을 이틀동안이나 지키다가 위험한 순간이
어느정도 지났다는 의료진의 설명을 듣고 대전으로 내려가셨다고 하였다
(연로하신 고향어머니께는 쇼크 받을까봐 일체 연락을 하지 않았음)
신경외과 일반병실로 옮긴 후,
마음도 차분해지고 ~
온몸의 아픔도 서서이 줄어 드는 듯,
순심누나, 순이각시가 집에서 직접 만들어 온 최상의 영양음식 (유동식)을
빨대로 먹으면서 하루가 지날수록 나의 상처는 겉으로는 호전 된 듯하였으나
솔직히 나에게는 남 모르는 절망의 나날이었다
이렇게 병신으로 살아야 하나? ~
콱 죽어버려야 하나? ~
낮과 밤으로
잠간씩 토막잠이 들었다가 태산이 무너지는 무서운 악몽에서 깜짝 놀라 깨어날 때면
머리가 어지럽고,
구토증이 일어나고,
손발이 떨리며,
온 몸이 땀 투성이가 되었다
의술이 발달해서 살아나긴 하겠지만 ~ 예전처럼 정상인이 될 수 있을까~?
옛 기억들이 되살아나고 ~ 전처럼 상황에 따른 임기응변과 창의력이 생길까~?
목구멍으로 밥을 삼킬 수 있을까~?
똥 오줌을 제대로 눌 수 있을까~?
내 발로 걷고 뛸 수가 있을까~?
계단을 오르고 언덕을 내리 달릴 수 있을까~?
내가 거느린 가족들이 하나 둘이 아닌데 ~ 내가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 할 수 있을까?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밤하늘에 수 많은 별무리처럼 끝없는 걱정근심이 생겨났고
사고로 인한 부상치료 외에 불면증, 신경쇠약, 우울증, 등.....
극심한 정신적 신체적 사고후유증이 남들 모르는 불안증상으로 유령처럼 나를 괴롭혔다
중환자실에 있을 때에는
근친 가족 외에 일반인의 면회가 자유롭지 못했으나
일반병실로 옮긴 이후에는 ... 면회가 제한되거나 크게 까다롭지 않아
현장소장님을 비롯,
함께 근무하던 남녀 사무직원들이 모두 위문을 왔었고
경비실 처남과 처남댁, ~
콘크리트 최반장과 은실누나,
그리고 평소 술자리에서 형, 아우로 호칭하던
절친 작업인부들이 바쁜 와중에 줄줄이 위로차 병실을 다녀갔다
같은 병원에 입원해 있던 김반장은 다리에다 기프스를 한 체 휠체어를 타고
정이처형 안내로 내가 있는 병실까지 감사와 위로차 찾아왔고,
찰과상 치료를 마친 목공 2명도 함께 찾아와 ...
자신들 "생명의 은인"이라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수십번이나 하였다
본사의 부사장님과 임원진,
그리고 부서별 간부들도 여럿이 번갈아 면회를 다녀갔는데
그 이유는 건설현장의 단순한 안전사고가 아닌
타인을 살리기 위한 살신성인 희생적인 행동이 전사적으로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었고
공식적인 산재보험 치료비(수술, 입원비 등) 외에
회사 차원의 별도 격려금과
반포지구 현장과 본사의 모든 직원들이 십시일반으로 위로금을 모금해 왔는데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 그렇 듯 대우 받는 내 위치가 가족들 앞에 매우 자랑스러웠다
순심누나의 연락을 받은 김남수 회장님도
득달 같이 병원으로 달려와 내 손을 붙잡고 장시간 위로의 말씀을 해주셨는데
"일간신문 사회면에도 조그맣게 났고,
동종 건설업계에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는데 ...
00 종합건설회사 김운명 차장이 보여준 안전사고시 타인을 위한 희생정신이야 말로
열악한 대한민국 건설현장에서 관리자가 갖추어야할 기본자세가 아니겠느냐고 ~"
"그렇지만 ~
가족들을 생각해서라도 앞으로 두 번 다시 그러한 무모한 용기를 내서는 안된다"고
건설업계 전체에
장하고 아름다운 소문이 퍼져 칭송이 자자하다는 위로와 덕담을 해주시면서
산전수전 다 겪은 나이 많은 김회장님의 현실적인 쓴소리도 잊지 않고 들려주셨다
"우리들의 자랑 ~!
용맹무쌍한 김차장의 치료비 전액을 우리회사에서 기타 경비로 정리할 터이니 ~
불편함이 하나도 없도록 순심이가 잘 보살펴 주도록 하라 ~!" 는 말과 함께
내 귓가에다 입을 바짝 대고서 ~
곁에 사람들 못 듣게 살짝 ~
"김차장은 나의 비밀스런 중매쟁이 처남인데 ~ 이런 때 매형으로서 체면 좀 세워야겠네 ~!!!"
허허허 .....
흐흐흐 .....
김회장님이 "껄껄껄" 웃었고
나도 따라서 아픈 입을 조금 벌리고 "실실실" 소리없이 웃었다
(병상에 고통 받고 있는 나에게 기분전환을 시켜주고, 조금이나마 웃겨보려고
70대 회장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우스개 농담을 하셨는데 ~
병원입원 후,
고통스런 표정만 짓던 내가 처음으로 싱긋 웃었다 ~ 구멍동서에 대한 예의?)
우리 곁에 가까이 있던 순심누나가 김회장님의 옆구리를 슬쩍 찌르면서
"아픈사람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면서 엉큼하게 웃는거예요 ~?"
"어 ~ 엉 ~! 어서 빨리 쾌차하여 함께 일본 온천욕을 다녀오자고 했구먼 ~ 하하하"
"피이 ~ 거짓말 같아요 ~ 무슨 엉큼한 이야기가 분명있는 것 같은데요 ~?"
"그게 아니라니까 ~ 김차장에게 물어봐 ~ 뭐라고 말 했는지 ~!"
"입이 아파서 미음도 잘 못먹는 운명이가 어떻게 말 대답을 하겠어요 ~?
왠지 누렁이 똥냄새가 확 ~ 풍겨나는 것 같은데요 ~? "
허허허
호호호
흐흐흐
종이 한 장이 떨어져도 "사르락" 소리가 들릴 것만 같이 조용하던 병실에
한 순간 ~ 파란하늘 흰구름 같은 해맑은 미소가 번져올랐다
사고 당일,
현장에서 가까운 강남의 유명종합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입원치료를 받아왔으나
장기간의 입원요양을 전제로 1개월이 지난 후,
담당의료진의 양해를 얻어
장충동 집에서 가까운 을지로 6가의 국립중앙의료원으로 입원실을 옮겼다
(사실은 처음에 입원한 병원이 김선배가 죽은 곳으로 희순형수가 극구 옮기자고 주장함)
(청운한정식 단골 손님중, 중앙의료원 관계자가 있었는데 순심누나 부탁으로 편의를 봐주었음)
중앙의료원은
우리나라 최초 국립병원으로 시설이나 의료진이 그 당시 최고수준이었고
또한 조금 힘들기는 하지만 장충동 집에서는 걸어다닐 수 있을만큼 가까운 곳이었다
병원을 옮기고 나니 ~
환자인 나도 기분이 새로워졌지만
가까운 곳이라 간병하는 가족들이 많이 편해졌고,
식당 종업원들과 이웃집 사람들이, 삼삼오오 자주 면회를 왔었다
처가의 장인 장모님도 소식을 전해 듣고
둘 째 사위 걱정에 기어히 상경해서 문병을 오셨는데 ...
병실에 들어선 장모님이
미이라 같이 붕대로 싸매고 누워 있는 사위를 보고 큰소리로 대성통곡하면서 ~
"아이구 ~
우리 김서방 ~!
백주대낮에 이게 왠 날벼락이란 말인가?
죽었다가 살아났다니 ... 이나마도 천만다행인거여 ~ 시암댁 말처럼 부처님이 보살핀 거라구 ~!
좋은 집에,
자랑스런 직장에,
아들만 주렁주렁,
재물을 산 같이 모았지만,
호사다마 ~
새옹지마라고 ~
삼재가 끼고 ~ 아홉 수에 들었던 거여 ~ 어디 푸닥꺼리 궂이라도 해야겠구만 ~!"
"허어 ~ 임자는 쓸데없는 소리 ~ 그만해 ~!
김서방이 희생한 덕분에 세 사람이나 살아났다니 ~ 그게 바로 살신성인 정신 아닌가?
정이가 지 남편 살려주었다고 ~
제낭한테 큰 은혜 입었다고 ~ 무척 죄송해 하던데
모두가 다 같은 내 자식들이지만 ~
자네가 대견하고, 고맙고, 한편으론 저네에게 한없이 미안하네 ~!"
장인 장모도 내 부모요 ...
사위도 내 자식인 것을 ...
투박하고 꾸밈없는 두 분의 위로 말과 농삿일로 거칠어진 손마디가 손 끝에 느껴지면서
불현 듯,
가슴이 뜨겁게 북받쳐 오르고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졌다
"아이 ~ 엄마, 아빠, 그만 하세요 ~
윤정이 아빠가 입이 아파 말을 잘 못하는데 ~ 괜히 울려고 하잖아요 ~"
순이각시가 도중에 끼어들며 가로 막았기에
그나마 눈물의 쌍곡선 장인 장모님의 면회가 막을 내릴 수 있었다
사람과 사람간의 인연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앙의료원 병실로 옮기고 한 달 가량이나 지났을까?
간호부장, 간호과장, 고참 수간호원들이 합동으로
전체 병동의 청결상태 및 환자에 대한 서비스현황을 점검을 나온다고 예고하였는데
내가 잠간 잠들어 있는 사이에 생각지도 않았던 예전의 지인(?)이 다녀갔다
(참고 : 간호업무 담당자 명칭변화 ~ 최초에는 간호부 ~ 간호원 ~ 간호사 (1981년? 부터 개칭됨)
다음날 오후 조용한 시간에,
신경외과 소속이 아닌 내과의 수간호원 한 분이 내 방으로 찾아왔는데
뜻 밖에도 오래전 잊혀졌던 명숙선배가 입원실에 불쑥, 운명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예전에 신당동 살던, 00 고등학교 김운명 후배 맞지?~"
"아 ~~~ 최명숙 선배 ~! ............."
강산이 두 번 변한다는 ...
거의 20여년 긴 세월이 흘렀지만 ~
새하얀 가운 위에 반듯하게 매단 "내과 수간호원 최명숙, 명찰이 분명하였고
얼굴엔 기름진 섹기가 자르르 흐르고,
글래머 몸매에선 우람한 젖소부인 유방이 듬직하고 색골 타입의 옛모습이 풍겨나
무척이나 반가워 다치지 않은 왼손을 불쑥 내밀었다
"와우우 ~ 진짜 김운명 맞구나 ~!
반갑다, 정말 반가워, ~ 우리가 소식을 끊은지 실로 몇해 만이냐 ~?
그동안 뭘 하면서 지냈어?
결혼은 했겠지? ~
자녀들은 몇이고? ~
어제 합동 순회 점검 때,
침대 맡에 붙은 네 이름표를 보고서 긴가민가? 깜짝 놀랐어요
함께 다니는 간호부장과 수간호원들 때문에 잠들어 있는 후배를 깨우지 못하겠더라구
그러나 저러나 어쩌다가 이렇 듯 많이 다쳤니? ~~~"
겨우 더듬더듬 말을 시작한 내가 미쳐 대답할 겨를도 없이 속사포 같은 질문을 던지면서
수술부위를 살펴보고 여기저기 가볍게 만져보더니
"대단하다 ~ 대단해요 ~!
이처럼 온 몸에 큰 중상을 입었으면서도 ~
운명이가 워낙 건강체질이고 삶에 대한 의욕이 강했기에 그나마 견딜 수 있었을거야
우리 중앙의료원은 국내 최고의 의료기관으로
최신시설과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어서 입원환자들이 주욱 ~ 밀려있는 형편인데
재주도 좋게,
용케도 입원을 하였으니 이곳에서 완치하고서 퇴원하면 좋겠다 ~
오늘은 그냥 얼굴만 보고 갈게 ~
다음에 시간 틈나면 종 종 찾아와서 돌봐즐테니
혹씨 간호원들이 불친절하거나 ~ 입원실에서 불편한 점 그런 것은 내게 말해줘 ~!
그럼 ~ 갈게 ~!"
병실에 앉아있는
순심누나/ 순이각시/ 시암댁어머니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바닷가에 큰 파도가 밀려와 갯바위에 부서지는 것처럼
요란벅적하게 자기 혼자 말만 쏟아놓고 ~ 손을 흔들며 사라져 간 최명숙선배~
"허참, ... 그 간호원 정말 시끄럽구나 ~ 지가 수간호원이면 다야 ~?
예의범절도 전혀 모르고, 옆에 있는 보호자들 한테 인사로 아는체라도 해야 되지않아?
도대체 운명이 너하고는 어떤 사이야 ~?"
"으음 ..........."
"언니 ~ 제가 보기엔 바로 오빠를 좋아했다던 그 여학생 같은데요? ~ 아닐까요?"
"호호호 ~ 우리 운명이를 어른으로 만들어준 일본부부의 양녀? 섹스 가정교사?"
"네에 ~ 자신만만한 태도로,
일부러 우리를 무시하는 듯 행동 했잖아요 ~ 몹씨 불쾌해요 ~!"
"하이고 ~!
그 찹쌀떡 인연은 질기기도 하다 ~!
이제 잘 되었네 ~
우리는 발 뻗고 편히 누워서, 맛있는 간식이나 실컷 먹자,
저 선배란 수간호원이 운명이를 다 낳게 해줄거여 ~ 금방 원기가 솟구칠 걸~? 호호호"
"으음 .................."
"다들 뭔 소리들이여 ~?
내가 보기엔 한 인물하는 훌륭한 간호원 같은데 ... 후후후"
"맞아요 ~
어머니 말씀대로 우리나라 1등, 아주 훌륭한 간호원이랍니다 ~호호호"
"순심언니가 어머니께 농담하는 거에요 ~ 헤헤헤
사실은 오빠 고등학교 때 알게된 선배누나랍니다 ~그렇지요? 오빠가 대답해보세요 ~!"
"응, 그래 ........"
순이각시 물음에 가볍게 수긍을 해주면서도 왠지 모르게 부끄러움이 생겨났다
사춘기 20살 고딩시절,
주말마다 명숙선배 남영동 자취방에서 질탕하게 즐겼던 기상천외한 섹스놀이는
학창시절의 한 때 철부지 불장난이었음에도 ...
20여년 지난 지금까지 머릿속에 기억이 생생하게 떠 올랐다
순심누나가 보조의자에서 일어나 내가 누운 침대 곁으로 다가오더니
나의 성한 (왼쪽) 허벅지를 손으로 꼭 찝어 뜯으면서 ~ 내 귓가에 속삭였다
"사랑하는 동생아 ~!
나하고 순이가 아무리 애를 써봐도 너의 똘이장군이 맥없이 잠만 자던데 ~
이제는 프로급 섹스 교수가 나타났으니 ~ 최고의 기술력으로 너를 금방 살려놓겠지~?
따지고 보면 운명이는 물론,
우리 모두에게 더없이 고마운 수간호원 같은데 ...
같은 말뚝 동서(?)로서 잘 부탁드린다고 ~
장충동 집으로 모셔다가 거창하게 미리 한 상 차려올려야 하지 않을까?
너의 의견은 어때 ~? 말해봐 이 엉큼한 남자야 ~! 호호호"
"음 음 ~ 누나가 꼬집으니 아파요~! .........."
"아픈걸 느끼는걸보니 ~
내일이라도 저 간호원하고 가시버시로 엮어지겠구나 ~ 호호호"
"순심언니,
오빠를 그만 놀려요 ~ 또 머리 어지럽고 아프다고 하면 어쩔려구요 ~ 헤헤헤"
"에구, 답답들 하구먼 ~ 셋이서 무슨 소리를 하면서 웃어대는지 도통 모를 일이여 ~"
약속대로 ~
하얀가운을 멋지게 입은 최명숙선배(내과병동 수간호원)가 내 병상에 몇 차례 다녀갔다
명색이 병원의 수간호원인데
아는 환자를 위해 특별의료행위를 해줄 수 있는 것 아닌가?
숨심누나와 순이각시 등 보호자들을 잠시 복도로 내보내고
침대 주위에다 하얀 커튼을 두루고서 ~ 필살의 근골 마사지 시술 ~?
나에게 일체 잡생각이나 신경을 쓰지 말라는 듯,
눈 언저리를 타월로 가리고
병원에서 입는 헐렁한 환자복을 벗겨내렸다
아래 바지는 양쪽에 매듭진 것을 풀면 몽땅 트이는 치마처럼 생겼었는데
대 소변 받아내기 쉽게 항상 노팬티 차림이었고,
상의는 한쪽 어깨만 걸치고 있는 상태여서 굳이 옷을 벗긴다는 의미가 없었다
심장과 머리에서 먼 부분부터 ~
서서이 마사지를 시작했다
명숙선배는 부드럽고 노련한 마사지를 시작하면서
모든 마사지 부위를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었는데
처음엔 손, 발, 마사지부터 시작해서
서서히 다리, 옆구리, 골반, 등허리, 전신에 마사지로 확대해 나갔다.
아주 직업적인 전문 마사지를 해주면서 (지금의 스포츠 마사지?)
그 동안 서로가 살아온 것에 대한 (결혼, 가족 등) 이런저런 대화도 나누었는데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자
딱딱하게 굳어있던 팔 다리 근육이 다소 부드러워 진 것을 느꼈는지
마지막으로 축 ~ 늘어진 자지를 손으로 비비고, 흔들고, 입으로 쪽 쪽 빨다가 ...
그래도 영 ~ 소식이 없자
나의 몸 위에 가볍게 엎드린 상태에서 자신의 브라자를 탁 ~ 풀었어요
그리곤 수박처럼 커다란 유방과 새카맣게 영글은 유두를 나의 입에 물려 주면서
"어서 ~ 빨아줘 ~! 다른 사람들 오기전에 ~!
이러한 자극적인 방법이 너에게는 도움이 될거여 ~!
그동안,
장시간 전신마취, 대수술, 놀라움 등으로
말초신경이 무디어져 당분간은 발기가 안될 수 있는데
될 수 있으면 마음을 편히 하면서 ~ 와이프에게 애무 오랄 서비스를 받도록해봐 ~
이열치열 = 以熱治熱 = 열은 열로써 다스린다는 뜻으로,
힘에는 힘으로 또는 강한 것에는 강한 것으로 자극하여 상대함으로 치유한다는 뜻인데
뼈와 근육이 굳어진 운명이에게
따뜻한 온천욕과 부드러운 여성피부로 전신마찰을 해주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야
밤이면 잠들기 전에 ~
마누라에게 부드러운 젖살로 자지를 문질러 달라고 해봐 빠른 효과가 있을거야 ~!
이러한 방법은 북극지방 에스키모족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것으로
며칠동안 극한 추위속에 사냥을 다녀온 남편의 얼어붙은 손, 발을 아내의 젖가슴에
집어넣고 녹여주면 동상예방이 된다고해 ~ 문헌에도 기록된 사실이거든 ...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운명이 마음을 느긋하게 스스로 안정시키는거야 ~!
이 점을 꼭 명심해 ~!"
20여년만에 만난,
명숙선배의 젖꼭지를 입술로 빠는데 예전 사춘기 시절의
꽃처럼 아름답고, 꿀처럼 감미로웠던, 달작지근한 향기와 느낌이 전혀없었다
그 이유는 성치 못한 나의 몸 컨디션이 엉망이기도 했거니와
그동안 내가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수십명의 남자들과 문란한 프리섹스 성생활을
실컷 즐겼을 선배의 행실에 대한 혐오감이 느껴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일본인의 양녀로 자라나면서
정조관이란 하나도 없는 프리섹스 주의자,
상황에 따라서 이 사람 저사람에게 기분나는 대로 팬티를 벗어내렸을 선배의 성개념,
수많은 남자들이 얼마나 심하게 젖꼭지를 빨아주었던지?
강남콩처럼 딱딱하게 여물은 젖꼭지가
연탄가루 모양으로 새카맣게 닳아있었다
직접 확인 한 것은 아니지만 ~
아래쪽 보지구멍도 대음순 소음순이 너덜너덜 닳고 닳아 시커먼 걸레가 되었을 것이 분명해보였다
(장충동 집의 나 하나 만을 바라보는 정숙한(?) 여인들에 비하면 최명숙선배는
속칭 노류장화(기생),
창녀, 똥갈보, 같은 지저분한 개보지?로 헤프게만 느껴졌다)
그렇지만 오랜만에 선배를 만났는데 싫다는 표정은 내색도 안하고
근무시간에 짬을 내어 한 때 연인(?)이었던 나에게 마사지 서비스를 해주는 고마움에
선배의 젖꼭지를 매마른 입술로 열심히 빠는 쉬늉을 하였고,
명숙선배는 내게 엎드린 상태에서 입술에 물려주었던 유방을 자신의 손으로 움켜쥐고
나의 가슴과 배꼽, 허벅지, XX, 붕알에 까지 스치듯이 젖마사지를 정성 것 해주었다
마지막 순서로는 나의 전신에다 오일을 듬뿍 바른다음 ~
손으로 문지르고/ 젖살로 문지르고/
특히 늘어진 자지 붕알을 집중적으로 주물럭 주물럭 마사지 해주면서
"예전에는 운명이 자지가 정말 힘차고 귀여웠는데 ~
언제고 자지에 힘이 생기면 내게로 연락해 ~!
이 누나가 새롭고 멋진 멀티섹스의 진기명기 맛을 보여줄테니 ~~~호호호"
남녀간에 정이란 무엇인지? ...
병상에 누워있는 나를 위해 진땀 흘려가며 열심히 마사지 해준 명숙선배가 고마웠고
남자에 대해서는
그 어떠한 경우에도 배 굶주리지 않았을 선배가
무슨 연유로 병든 나에게 이처럼 지극정성 서비스를 해주는 것인지?
명숙선배의 묘한 심리상태를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중상환자에 대한 위로였을까? ~
버리기엔 아까운 옛추억이 쬐금 남아있었던 걸까?)
30분이 넘도록 갖가지 마사지 애무 오랄서비스를 해주던 명숙선배가 힘이 들었던지
얼굴이 벌겋게 닳아오르고 땀을 주르륵 흘리며 내 입술에 가볍게 키스해주면서
"다음에 또 와서 마사지 해줄게 ~ 편히 쉬어 ~!" 라고 손 흔들며 사라져갔다
명숙선배가 병실을 나서자 ~
복도의자에 앉아 기다리던 순심누나와 순이각시가 득달같이 내게로 달려오더니
"호호호 ~ 오랜만에 선배누나에게 호강 찐하게 받았구나 ~?
어머머 ~!
운명이 얼굴이 발그레 화색이 도는걸 ~?
도대체 어디를 어떻게 해준거야 ~? 어디 한 번 자세히 살펴보자 ~!"
무턱대고 나의 옆터진 환자복 바지 사이로 늘어진 자지를 만져보더니만 ~~~
"에게게 ~ 이게 뭐야 ~? 전혀 효과가 없는데 ~? 엉터리 수간호원 아니야 ~?"
호호호
헤헤헤
으음 ......
최명숙선배 (내과병동 수간호원)는
내가 입원해 있을 동안 세 차례 봉사활동(?) 마사지 서비스를 더 해주었다
서늘한 가을 9월로 접어들 무렵에는
나의 건강이 많이 좋아져 휠체어를 타거나
목발이나 지팡이를 집고 병원 뜨락을(잔디 정원) 산책할 수 있었는데
명숙선배가 휠체어를 뒤에서 밀어주며 산책을 함께 하면서 ~
밤이면 잠 못이루는 불안증세 치료를 위해 정신과 심리치료와
발기부전이 오래 간다면 비뇨기과 정밀치료를 받아보라는 권유도 해주었다
결과적으로 명숙선배의 치료는 효과 없이 끝나고 말았지만 ~ 고마움이 남아 있었고
다음에 나의 건강상태가 정상으로 돌아오면
청운식당이나 중앙의료원으로 연락해서 꼭 만나기로 약속하고 ~
20년만의 우연한 만남,
추억의 즐섹은 끝내 성공하지 못한체 헤어지고 말았다
내가 병원에 입원해 있던 1979년 봄 ~ 여름 ~ 가을 ~ 8개월동안에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연일 시끄러운 TV 뉴스가 터져나왔다
YH 무역 여공농성사건,
신민당총재 김영삼의 의원직 박탈사건,
부산, 마산항쟁 등 계속된 유신정권에 대한 불만사건이 계속 터져나오면서
1979년 10월 26일 밤, ~~~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와 그 휘하 직원들의 총탄에
박정희대통령과 경호실장 차지철 등 수행원들이 살해되는 일대사건이 발생하였다
갑작스런 대통령의 유고로 불안한 정세 속에 하루하루가 긴박한 소용돌이의 연속 ~
정치와는 거리가 먼 병원내에서도 가는 곳마다 웅성웅성 ~ 작은 변화가 느껴졌다
1979년, 2월말에 사고 발생 ~ 8개월의 입원생활을 마치고
1979년, 10월 말 시끄러운 시국을 걱정, 가족들의 권유로 서둘러 병원에서 퇴원하였는데 ...
내 자신 육체적 정신적으로
너무 허약해진 탓에 회사에 1년간 휴직원을 제출하였다
그 와중에 순이각시는
넷 째 아들 "윤도"를 예정일보다 10일이나 빨리 (조산) 낳았고
나의 사고 여파로 몹씨 놀랐던 탓인지 출산 ~ 산후가 순조롭지 못해 잦은 하혈을 하였다
순이각시는 장충동 집에서 넷 째 산후조리를 하면서도
산모인 자신의 몸 보다도 나에게 많은 신경을 쓰느라 제대로 몸조리를 못하고 있다고
순심누나와 시암댁어머니가 늘 걱정을 하곤 하였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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