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 ~ 선배님회고담 ~93 (보리암에서 ~ 명순이와 부녀상봉)
회사에 휴직상태인 나의 일과는 ~ 긴장이 풀린 안일함, 나태함의 연속이었는데
장충동 집 잔디 정원에서 아이들과 그네타기, 공놀이를 즐기면서
간간이 큰애 윤정이 국민학교 1학년 숙제를 돌봐주고,
대학입시 준비에 매달린 명순이에게 "정신일도 하사불성"이라는 격려 말도 해주고,
모처럼 나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이 생기면
집중력 강화를 위해 독서와 펜글씨 붓글씨 등으로 소일 했지만
책을 오래 읽으면 다쳤던 머리가 어지러워 ~ 긴 시간 책을 읽을 수가 없었고
펜이나 붓을 들면 손이 떨려 자꾸만 글씨가 틀어지기 일 수 였다
사방이 고요한 밤이면
나 혼자 잠을 못이뤄 발자국 소리를 죽여가며 집안팍을 거니는 ~ 야행성 동물로 변신?
잠시나마 잠이 들면
무서운 악몽에 시달리다가 큰소리 고함을 지르고 비지땀을 흘리며 깨어나곤 하였다
더욱이 ~
순심누나/ 희순형수/ 시암댁어머니/ (순이각시는 산후조리로 각방 사용)
번갈아가며 밤 늦도록 별 별 안마와 애무 오랄을 해주었는데도 성기능 발기부전으로
섹스에 대한 자신감을 잃고, 점 점 깊은 나락으로 떨어져 내리곤 하였다
심란한 마음을 도저히 붙잡을 수 없어
순심누나와 함께 절룩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가을색이 깊어가는 도선사를 찾아가 부처님전에 참배를 올리고 나서
요사채 노스님을 찾아뵙고 ~
불시의 안전사고 전말과, 수술 및 입원치료, 현재 불안정한 심신상태를 하소연 하였더니
김처사는 오복을 타고난 좋은 사주이지만, 일생동안 세 번의 큰 고비를 겪을 것인데 ...
청년시절에 한 번,
(4.19혁명 때 둘째형과 아버지를 여의고 인생을 포기했던 일 ~ 정신적인 좌절?)
이번 사고로 한 번,
(창고 붕괴로 온 몸이 바스러진 상태 ~ 육신의 허물을 벗은 것?)
세 번째 고비는 언제, 어떻게, 들이 닥칠 것인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
육신의 상처는 시간이 흐르면 천천히 치유가 되겠으나
마음의 심약함은 본인 스스로가 아니면 그 누구도 도울 수가 없는 법,
회사를 쉬는 동안 ~
체력단련 겸 정신수양을 위해
전국에 산재해 있는 이름 있는 천년 전통사찰을 두루 참배하고
가는 곳마다 부처님께 공덕을 쌓으면서,
간절하게 기도를 올린다면 마음속에 무거운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노스님께서는 내가 어느 전통사찰에 찾아가던지
그 곳 주지스님이나 상좌승께 내 보일 소개서(편지?)를 직접 붓으로 써주셨고,
스님이 가르치는 제자 중에 40대의 학승 (공부하는 스님) 한 분을 힘없는 나와 동행하게 해주셨다
집으로 돌아와 곧 바로 가족들에게 그러한 사연을 알리고
개나리 봇짐을 싸 들고 ~
정처없는 유랑의 길 (방랑자의 길?)을 떠나기로 하였는데
아직은 몸도 마음도 성치 못한 내가 기약없는 수행의 길을 나선다고 하니 ~
모든 가족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아무런 말이 없었다
넷째 아들 출산 이후,
몸이 허약해진 순이각시와 희순형수, 여고 3년생 명순이는
닭똥 같은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면서
"아직은 몸도 성치 않은데 ... 낯선 곳에서 ... 잠자리와 먹는 것도 시원찮을텐데 ...
차라리 따뜻한 봄이 돌아오면 길을 나서는 것이 어떻겠느냐~?" 고 만류를 하였고
순심누나와 시암댁어머니는 노스님의 말씀이 마음에 와 닿으니
내일이라도 훌쩍 길을 나서라고 찬성표를 던졌다
"기약없는 먼길 떠나는 운명이에게 꼭, 부탁할 일이 있는데 ...
가는 곳마다 행선지와 연락처를 분명하게 알려줄 것 ~
적어도 3~4일에 한 번씩은 전화를 해주거나 전보나 엽서편지를 보내줄 것 ~
몸이 불편해지면 수행 도중에 즉시 집으로 돌아올 것 ~
돈이나 의복이나 밑반찬 등을 행선지로 보낼 수 있도록 천천히 쉬어가면서 움직일 것
항상 ~
동생 한 사람의 몸이 아닌 온 가족들의 가장임을 생각하여 심기를 굳건히 가질 것 ~
집으로 돌아올 때는 예전의 태산같은 태도와 여유로운 미소를 간직해 오도록 할 것~ "
나에게 명심하라고 신신당부하는
제갈공명 김순심누나의 날카로운 판단과 명쾌함은 중요한 순간마다 그 빛을 발하였다
1979년 11월 초 ~
남산 기슭과 장충단공원에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가을날,
도선사의 학승 스님과 동행하여 ~ 정처없는 심신수양(수행?)의 길을 나섰다
요즈음 같았으면 ...
속 편한 배낭여행이라 할까?
(문인작가의 소재발굴? ~ 사진작가의 작품활동? ~ 기행문 쓰는 여행가의 오지탐험?)
전국 사찰지도와
작은 메모수첩, 트랜지스터 라디오, 사진기, 여벌내의 등을 챙겼고
두 사람의 교통비, 숙식비, 예비비 등 여행경비도 넉넉하게 따로 담았다
우측 어깨와 팔에 무리를 주면 안되기에 등에 매는 베낭보다도 ~
긴 끈이 달린 보스톤백 (boston bag)을 왼쪽 어깨에 매고서 출발 ~!!!
(불심이 깊은 순심누나와 시암댁어머니는 자신들의 몫이라며,
사찰마다 부처님 전에 올릴 별도의 보시금을 봉투에 두둑하게 넣어주었다)
40대의 도선사 학승 스님 (법명은 생략?)과 청량리역에서 만나 기차에 오르면서
다리가 불편한 나의 형편을 고려 ~
버스, 택시의 접근이 용이한 곳을 선택하여
2~3일에 1사찰씩 천천히 탐방하기로 약속하고 기분도 가쁜하게 힘찬 출발 ~!
제일 먼저 여주 ~ 신륵사에 들렸다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며,
고려 말에는 200여 칸에 달하는 대찰이었고,
나옹선사 인당대사 등이 거하며
날뛰는 용마를 제압했다하여 신기한 제압 = 신륵사라 불리우게 되었는데
1472년(조선 성종 3)에는 영릉(조선 제4대 세종대왕과 소헌왕후 심씨의 합장릉) 원찰로 삼아
보은사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일설에는 ~
태조 이성계와 강씨부인 신덕왕후 사이에 낳은 딸 경순공주를
이방원이 주도한 1차 왕자의 난 이후에
이곳 신륵사에 피신 시켰다가 비구니로 출가시켰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었음
원주 치악산 구룡사 ~
양양 낙산사 ~
속초 설악산 신흥사 ~
강릉에서 버스 타고 설악산으로 ~
케이블카 타고 권금성에 올라 멀리 11월의 마지막 단풍이 불타는 설악동 바라보고 ~
신흥사 대웅전 부처님전에 108배 드렸다 (무릅을 굽히고 펴기 곤란하여 아주 느리게)
울진 불영사 ~
경주 불국사 ~ (석굴암은 토함산 위에 있음으로 걷기 불편해 생략)
양산 통도사 ~ 법보 사찰
부산 범어사 ~
합천 해인사 ~ 팔만대장경
사천 다솔사 ~
하동 쌍계사 ~
남해 보리암 ~~~
집을 나선지 한달 반이 지나 남해 보리암에 도착,
요사채에서 며칠간 조용히 쉬면서
이른 새벽과 오후시간에 두 차례씩 108배 올리며 정신통일 수행정진하고 있었는데
12월31일 년말을 맞아 ~
새해 해맞이 기도를 위한 신심이 깊은 불자들이 전국 각지에서 구름처럼 많이 모여들었다
그 수많은 인파속에 뜻밖에도 명순이가 나타났다 ...!
사전 예고도 없이 꿈속인냥 찾아온 안개꽃 같은 내 딸 명순이 ...!
우유빛 흰 얼굴에,
새카만 긴 생머리를 바람결에 휘날리며
검정색의 밍크 반코트와, 롱다리 청바지가 썩 ~ 잘 어울리는
먼 발치에서 바라보아도 서울 멋쟁이 여학생 티가 물씬 풍겨나는 세련된 모습이었다
명순이와 내가 동시에 서로를 발견하고선
너무도 놀랍고 반가워 뛰어가 손 마주잡아 흔들다가 ~ 자연스럽게 서로를 끌어안았다
비좁은 경내,
주변사람들 바라보는 이목이 너무 많아 ~
도선사 학승 스님과 내가 함께 기거하는 요사채 작은방으로 대리고 들어갔는데 ~
방안에 들어서자 마자 ...
또 다시 내 품으로 안겨들면서 눈물을 흘리는 명순이 .....
혈육이란 ~?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끈끈한 정이 묻어나기 마련이 아니겠는가?
서로가 말없이 가만히 안아주고만 있었는데도 ~
두 눈에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
심장의 힘찬 고동이 박자를 맞춘 듯 동시에 뛰었다 ...
백 천 만가지 수많은 말들이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해지는 듯하였다 ...
그걸 부녀지간의 이심전심 = 以心傳心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무언의 텔레파시라고 표현해야 하나?
불과 한 달 하고도 20일 정도 떨어져 지냈지만
병약한 나에게는 10년쯤 헤어졌다가 만난 것 같이 울컥 치솟는 감회가 새로웠다
한참이나 안고 있던 명순이를 품에서 떼어 놓으면서 맨질맨질한 온돌방에 앉으니
명순이가 나의 맞은편에 서서 정식으로 큰절을 넙죽 올리고 나서 ...
그간의 서울 가족들 지내온 이야기를 종달새처럼 종알종알 지저귀기 시작했다
여고 3학년을 마치면서 ~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어,
여고 친구들과 어울려 교육대학에 응시했는데
실력이 조금 아슬아슬 했지만 ~ 2년제 교육대학에 당당히 합격하였다고
삼촌께 자랑하고 싶어 이렇게 찾아왔다고 하면서 ~
합격통지서를 내보였다
(참고 : 현재의 4년제 교육대학교는 1981년도에 교육법 개정으로 시작됨)
며칠전 크리스마스 이브에
같이 합격한 여고동창들과 명동거리를 싸 돌아 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병마에 시달리며 외롭게 여행(수행?)하시는 삼촌이 너무도 간절히 보고 싶었다고
그래서 엄마한테는 말하지 않고 어젯밤 혼자서 야간열차편으로 진주로 내려왔노라고 ~
아침에 진주도착 ~
버스타고 남해읍 ~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보리암에 도착하였다고
3월초,
입학식 할 때까지
삼촌의 비서로서 이것저것 돌봐드리고, 여행친구가 되어드릴거라고 ~~~
삼촌이 절에 지내면서
불안한 맘이 조금씩 낳아졌다는 엄마와 외숙모의 대화를 듣고
저도 삼촌과 절에서 함께 생활하려고 체격이 비슷한 외숙모의 절복을 몰래 가져왔다고
짐가방에서 꺼내 내 앞에 펼쳐보이며 자랑을 하였다
(절복 :
사찰에서 처사나 보살들이 편리하게 입는 회색 개량한복? ~ 누벼진 바지 저고리 조끼)
"그래 ~ 우선 먼저 명순이 교육대학 합격을 축하한다 ~ 참으로 장하구나 ~!
그리고 ~
이 추운 겨울에 용기내어 서울에서 이 곳까지 먼길 잘 찾아왔구나 ~ 고맙구나 ~!
다 큰 여학생이 혼자서 야간열차 타고 여행다니면 무섭지도 않니?
기찻간이나 대합실에서 낯 모르는 누가 덥석 잡아가면 어쩌려구 ?
그리고 엄마의 허락을 받지 않고 무작정 내려 온 것은 잘못된 행동 같구나
당장에 ~
엄마, 외숙모, 시암할머니께 전화드려서 걱정 끼치지 않게 해야겠지?
입학전까지 나와 함께 지내겠다는 명순이의 뜻은 고마운데 ...
대학생이 되려면 입학전에 신입생들의 학교생활 적응을 위해 MT모임도 있을테고
개별친구 만남이나 동아리 써클모임 등에도 참석해야 할텐데 ...?
그리고 2월 중,
여고 졸업식에는 반드시 참석해야 하지 않겠니?......."
"그렇지만 ..................."
큰소리 심한 꾸중은 아니었지만 ~
조용하고 분명한 어조로 조목조목 깨우치게 타일렀더니
묵묵히 듣고만 있던 명순이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
끝내는 소리없이 어깨를 들썩이며 서럽게 울기 시작하였다
"그런 것 다 필요없어요 ~
저 한테는 이 세상에서 삼촌이 가장 소중한 사람이예요~!"
"아 ~ 알았다 ~ 알았어 ~!
명순이의 고운 맘은 내가 잘 안다구 ~!
네가 헌혈해준 피를 받아서 지금 내가 이렇게 살았는데 ~ 너의 맘을 모를리가 있겠니?
오랜만에 만나서 별다른 말도 안했는데 이렇게 서글피 울기 시작하면 어떻게 해~!
자 ~ 자아 ~
울음을 뚝 그치고 공양간에 점심 공양하러 가자 ~
오늘 불자들이 너무 많이 찾아와서 시간이 늦으면 밥이 부족할지도 몰라 ~! 어서 일어나 ~!"
"삼촌 ~ 저 옷 좀 갈아 입을게요 ~ 잠시만 기다리세요 ~!"
명순이 어릴적엔 내가 손수 목욕도 시켜주고 옷을 갈아입히기도 하였건만 ~
이젠 어엿한 숙녀 여대생이 되었으니 ......
좁은 방안에서 등 돌아 앉아 옷을 갈아입는 명순이를 건너다보기가 자뭇 민망하였다
바지, 돔방애, 조끼 등 ...
절복을 차례차례 단정히 갈아 입은 명순이가 베시시 웃으며
"삼촌 ~ 제 모습이 우습지 않나요 ~?"
"너는 ~ 외모가 외숙모랑 판박이로구나 ~ 10년전 서순이 모습 그대로인걸 ~! 후후후"
"그럼 ~ 제가 절에서 지내는 보살님 같은거지요 ~?"
"암 ~ 아주 미인 보살이라 ~ 스님들 눈이 휘둥그레 지겠다 ~!"
히히히
후후후
나의 안내를 받아 보리암 보광전 부처님께 공손히 삼배 절을 올린 후에 ...
보리암 상좌스님과
나와 함께 동행한 도선사 학승 스님께도
삼배 절을 드리게 하였는데
사귐성 좋은 명순이가 상좌스님과 학승 스님께 넉살좋게 아는체를 하였다
"보리암은 신비한 기도처라고 들었는데
저는 생전 처음 찾아왔습니다
상좌스님께서 저희 아버지를 여러모로 돌봐주시니 정말 감사 드립니다 ~"
"허허허 ~
얼굴이며 몸매며, 말하는 것까지 부녀지간이 꼭 빼 닮았습니다 그려 ~"
"아 ~ 도선사 스님은
장충동 청운식당 개업할 때 오셨던 분이시군요,
몸이 성치않은 우리 아빠랑 전국의 사찰을 돌면서 마음 수양 하신다니 감사드립니다"
"어허 ~ 저를 알아보시겠습니까? 그러고 보니,
그 때는 국민학생 꼬마 아가씨였는데 지금은 몰라보게 장성 하셨구려 ~
학생 보살이 아버지 찾아 서울에서 여기까지 내려오다니 실로 정성이 지극하시군요 ~"
공양간에 찾아가
수고 하는 공양주 보살께 서울에서 찾아온 친딸이라고 명순이를 소개하고
부녀가 마주앉아 잡곡밥에 나물찬 시레기 된장국으로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삼촌 ~
이렇게 나물반찬만 드시다간 수술한 뼈가 다시 약해지는 것 아닐까요 ~?
보리암에서 내려가면 제가 비싸고 맛있는 것 사드릴게요 ~ 기대 하세요 ~ 헤헤헤"
"말이라도 고맙구나 ~
명순이가 무슨 돈이 있다고 비싼 음식을 ~? 허허허"
"어머 ~!
저를 과소평가 하지마세요 ~ 국민학교 때 부터
시암할머니, 엄마, 삼촌, 외숙모, 다른 어른들이 주신 용돈을 차곡차곡 저축했거든요
요즈음은 미래의 김명순 선생님께 윤정이, 윤신이, 효순이, ~
가정교사 부탁한다고 외숙모랑 희순이모가 저에게 과외비 용돈을 듬뿍 주시거든요 ~
이래저래 저는 부자가 되고 있습니다 ~ 헤헤헤"
"아까 처음 보았을 때 ~
밍크코트와 청바지가 잘 어울리던데 ~ 엄마가 사 주셨니? 명순이가 산거니?"
"헤헤헤 ~
코트는 희순이모가 최고급 밍크기지로 직접 맞춰준 아주 비싼거구요 ~
청바지는 외숙모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주신건데요 ~
외숙모와 저는 체격이 똑 같아요 ~
그래서 서로 옷을 바꿔 입어보며 웃었거든요 ~
밖에 외출해서 쇼핑 할 때면
점원들이 엄마 보다도 외숙모를 제 친엄마로 인식해서 ~
그때마다 엄마가 기분 나쁘다고 불평하시곤해요 ~ 참 우습죠 ~ 헤헤헤"
"외숙모는 나이가 너무 어리잖어? 명순이랑 11살 차이던가?....."
"네에 ~
나이가 좀 그렇기는 하지만 ~ 요즈음은 아주 젊은 엄마도 있죠 ~? 헤헤헤"
공양간에 마주앉아 점심을 먹으며 담소하는
부녀지간의 싱그러운 웃음이
법당 부처님 곁에 놓인 연꽃처럼 화사하게 피어났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사찰 매점에 있는 공중전화 박스에서 장충동 집으로 전화 ~
먼저 순심누나에게 나의 일상과 건강이야기를 하고난 후,
조금전 뜻밖에 명순이가 보리암으로 나를 찾아와 얼마나 기쁜 줄 모르겠다고 ~
어젯밤에 서울에서 혼자 몰래 떠나왔다고 했는데,
내가 단단히 훈계를 하였으니
누나는 너무 나무라지 말라고 부탁하였고 .....
명순이 덕에 모처럼 둘이서 점심공양을 맛있게 먹었노라고
보리암에서 새해 해맞이 마치고 나면 ~
전라도 쪽으로 여행할 예정인데
혼자 심심하게 가느니 명순이를 길잡이로 동행하였으면 좋겠다고 ~
순심누나의 불같은 성격을
미리 누구려 뜨린 후에 명순이를 바꾸어 주었는데
수화기 넘어에서 순심누나의 소프라노 칼바람 소리가 계속 들리면서 ~
한참동안이나 꾸중을 하는 듯,
이윽고 금방 기분이 풀어진 모녀지간에 무언가를 알콩달콩 ~ 히히덕 거리는가 싶더니 ~
"다 알아요 ~ 내가 어린앤가요 ~?"
"엄마는 ~ 이상한 소리를 다하네 ~ 걱정마세요 ~!"
그리고 전화기에 넣었던 동전이 땡 ~!
전화 끝 ~~~!!!
아무튼 무단가출(?)한 명순이가
서울의 엄마에게 부재자신고(?) 전화연락을 성공한 셈이었다
오후,
조금 한가한 시간에
주지스님께 명순이를 대리고가 다시 한 번 서울에서 내려온 딸이라고 소개하고 ~
"명상의 소리" 같은 좋은 덕담 말씀을 잠시 함께 들었는데
하필이면 해맞이 손님들이 많이 몰려와 금방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석양무렵에는
명순이와 내가 보광전 부처님전에 108배 절을 함께 하였는데
"부처님 ~ 우리가족을 두루 보살펴 주십시오
제일 먼저 삼촌의 건강이 쾌차하시기를 발원합니다
엄마, 외숙모, 시암할머니, 희순이모, .....
윤정, 윤신, 윤일, 윤도, 효순이 .....
모두가 무병장수하고 부모에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있게 지내도록 살펴봐 주십시오 ~"
무릅이 성치 않아 자꾸만 비틀거리는 나를
몇 번이나 부축해 주는 명순이의 눈길이, 손길이, 너무도 애처러워 보였다
사찰에서는
부부나, 부녀간, 모자간, 남매간 일지라도 남녀가 유별한 생활이기에 ~
명순이는 외지에서 해맞이 온 다른 여자보살님들과 함께 대형 단체방을 배정받았고
나는 작은 요사채 방에 들어와
도선사의 학승 스님과 금강경 불경을 조용조용 읽다가 스스릉 잠이 들었다
1980년 새해,
새아침이 되었다
경상남도 남해군 금산 봉우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보리암은
서기 663년에 신라고승 원효대사께서
이곳에 초당을 짓고 수도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뒤
산 이름을 보광산, 초당의 이름을 보광사라 지었다고 전해지며
고려 말에는 왜구토벌 차 내려왔던 이성계장군이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리고
새로운 나라 조선왕조를 연 것에 감사하는 뜻에서
이 절을 왕실의 원당으로 삼았고
산 이름을 금산, 절 이름을 보리암이라고 바꾸었다고 하였다
우리나라 3대 기도처 중에 하나이며
양양 낙산사,
강화 보문사와 함께
한국 3대 관세음보살 성지로 꼽힌다고 ~
이른새벽 4시 예불시각, 사방이 어두컴컴한 신새벽에
보리암의 범종이
"덩 ~ 덩 ~" 울리자 기다렸다는 듯 요사채 침방으로 명순이가 찾아왔다
"삼촌 ~ 잘 주무셨어요 ~?"
"으응 ~ 모처럼 아주 편하게 잘잤다 ~"
"제가 오니까 마음이 더욱 편안해 지신거지요 ~? 히히히"
"맞어 ~ 우리 명순이 덕에 말도 많이하고 웃기도 많이하고 내 마음이 즐거웠던가봐 ~하하하"
마침,
도선사 스님은 법당으로 새벽예불에 참석하려고 나가고 자리를 비웠는데
작은 양은 세수대야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물과
치약, 치솔, 비누, 수건을 준비하고 안전면도기 까지 들고 들어와
막 ~ 이브자리를 개던 나를 정리해 놓은 이불 위에 비스듬이 눕혀놓고
일렁이는 등불아래 턱수염을 깨끗이 면도해주는 명순이의 손길이 부드럽기 한이 없었다
비누거품을 듬뿍 바르고 면도하던 도중에 명순이가 갑자기 눈물을 뚝 뚝 흘리면서
"아빠 ~! 아빠가 불쌍해요 ~!"
"명순아 ~! 왜 그러니 ~ 울지만 말고 무슨 일인지 자세히 말을 해야지 ~"
"난 ~ 다 알아요 ~ 모든 것을 다 안다구요 ~ 엄마한테서 다 들었어요 ~!흐흐흑 ~!"
"아빠 ~~~~~~아앙 ~~~!!!"
면도기를 옆으로 던져두고 ~
비누거품이 가득한 내 얼굴을 두 손으로 어루만지며
내 가슴 위로 풀썩 엎드린 명순이가 어깨를 들썩거리며
눈물 콧물을 마구 흘리면서 서럽게 "엉 ~ 엉" 울기 시작하였다
"이제부터는 절대로 아빠를 놓치지 않을거에요 ~
어려서부터 항상 외삼촌이라고 불렀지만,
언제나 친아빠처럼 ~ 아니 아빠보다 더 따뜻하게 저를 안아주셨는데
중상을 입고 의식불명 상태의 삼촌이 수술실에서 RH- 희귀 혈액을 구할 때
엄마와 함께 헌혈을 하면서 급히 알려주신 말씀이 있었는데 ~~~
사실은 ...
사실은 ...
삼촌이 아닌 제 친아빠란걸 그 때 확실히 알게 되었어요 ~"
(명순아 ~!
지금부터 엄마가 하는 말을 잘 새겨들어라 ~!
나중에 네가 20살이 되면 차분히 알려주려 했는데 ...
사실은 지금 수술대에 누워있는 사람이 너의 외삼촌이 아니라 네 친 아빠란다 ~!
생사의 기로에서,
만약을 짐작할 수 없는 위급한 상황이니 ~
두 말 할 것 없이 우선 너와 내가 피를 뽑아 아빠의 목숨을 구하자꾸나 ~
그리고 명순이 너는 아무리 힘들어도 절대로 아빠의 침대곁을 떠나지 말아야 한다
다음에 아빠가 깨어나고 쾌차하게 되면 다시 자세한 설명을 해줄터이니 ~
우선은 부녀간의 도리, 효도를 다하도록 해라 ~)
아빠에게 맞는 피를 구하지 못해 그 숨가빴던 긴박한 순간에,
엄마로 부터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를 듣고 나서 ~
하늘이 빙 빙 도는 것 같은 놀라움에 어쩔줄 몰라했지만 ~
일단 엄마의 말을 믿고 불야불야 헌혈을 하였고 ......
그 누구보다도
간절하고 애틋한 마음으로 학교만 다녀오면 곧바로 아빠의 병상을 지켰었는데
그 후 ~
여덟 달 가까이 지나면서 병원을 옮기고, 집으로 퇴원하고,
긴 시간 ~
많은 기회가 있었지만 ...
아빠의 건강 상태가 워낙 나빴기에
엄마도 저도 ~
그 엄청난 사연에 대해 먼저 입을 열지 못하였고 ~
몸이 불편한 아빠께는 감히 부녀 사이가 맞는지 진실을 여쭈어 볼 수가 없었다고 ~
"그래 ~ 명순아 ~ 너는 내 친딸이다 ~!
하늘과 땅에 맹세하건데 ~
김명순이는 김운명/ 김순심/ 피를 받고 태어난 내딸이 분명하다 ~!
주변 사람들과,
사회 윤리규범과, 법률적인 제재 때문에 어쩔 수 없었지만
여지껏 어린 너를 속여와서 미안하구나 ~ 아빠가 진심으로 사과하마 ~!
이제부터서는 ~
주위에 그 누구의 눈치 볼 것 없이, 형식이나 염치나 체면 가릴 것 없이,
당당하게 아빠와 딸로서 행세 하자꾸나 ~
그간 19년동안을 내 딸이라고 자랑하지 못했는데,
못난 아빠로서 거듭 미안하구나
그 모든 서운함을 열배, 백배하여 명순이를 참사랑으로 감싸주마 ~ "
내가 훌쩍거리는 명순이의 등을 토닥거려주면서 말을 마치자
나의 가슴팍에 엎드려 슬피울던 명순이가 ~
머리를 들어올리고 고개를 끄덕끄덕,
손등으로 눈물을 쓰윽 훔치더니 ~
나의 왼손 손바닥을 두 손으로 꼭 쥐어 자신의 젖가슴에 얹어 한참이나 꾹 누르고
"툭 툭 툭" 뛰는 심장의 고동을 전해주다가
얼굴을 홍당무처럼 붉히며 부끄러운 듯 싱긋 웃음을 지으면서
엉망이 된 얼굴에 다시 비누칠을 하고 ~
멈추었던 면도를 마무리하기 시작했다
"아빠는 ~
저에게 미안해 하실 것 없으세요 ~!
아빠와 엄마 두 사람이 참사랑의 씨앗으로 저를 만드셨잖아요 ~?
이제부터라도 ~
아빠, 엄마를 떳떳하게 부를 수 있으니 더 이상 바랄게 없어요 ~!
방금,
제 가슴에서 울려나는 환희의 고동소리를 손으로 느끼셨죠~?
그건 아빠를 신뢰하고 의지하고 사랑한다는 저의 진솔한 심장의 소리였어요 ~"
"명순이가 기특하고 고맙구나 ~ 내 어찌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니 ~?"
"아빠 ~!
깨끗히 면도해 드렸더니 10년은 젊어보여요 ~
남들이 아빠와 저를 보면 ~ 부녀간이 아니라 오누이 사이로 보지 않을까요 ~?"
"뭐라구 ~
오빠와 누이동생 ~? ~ 떽기 그런 말 엄마가 들으면 혼나요 ~!"
"아빠 ~ 눈 감아보세요 ~!"
"또? ~ 무슨 눈물을 방울방울 쏟아 놓으려고 ~?"
"그게 아니예요 ~ 그냥 살짝 눈을 감아 보시라니까요 ~! 히히히"
명순이가 입을 방긋 하면서 웃는 ~
배꽃(이화)같이 하얀얼굴을 찬찬히 바라보다가 살며시 눈을 감았는데
내 옆에 바짝 붙어앉아 있던 명순이가 고개를 푹 숙이더니 내 입술에다
쪼옥 ~ 쪼옥 ~ 쪼옥 ~
유치원 어린애들처럼 가벼운 입맞춤을 세 번 해주었다
(어릴적 신당동 서재방에서 명순이와 내가 단 둘이 잠잘 때는
밤마다,
아침마다,
귀염둥이 딸을 끌어안고 입술에 뽀뽀를 해주었었는데 ~
중, 고등학생이 된 후로는 천둥번개 무섭다고 내 곁에서 함께 자는 경우에도
입술이 아닌 볼에다만 살짝 뽀뽀를 해주곤 하였다 ... 그게 4~5년전의 추억이었다)
"아빠를 사랑하는 딸의 ~
1980년 새해 굿모닝 키스예요
새해에는 부디 건강하시고, 희망을 간직하시고, 그리고 힘내세요 ....!!!"
"하하 ~
우리 공주님의 새해 뽀뽀를 받았으니 두꺼비 왕자가 사람으로 변신하게 되는건가?"
"피노키오 공주님의 요술 키스를 받았으니
아빠가 건강을 되찾아서 ~ 예전처럼 집안에서 활기찬 모습을 보여주시게 될거예요~!"
하하하 ~
히히히 ~
모처럼 부녀간에 아름다운 담소와 해맑은 웃음을 나누는데
법당에 새벽예불 나갔던 도선사 스님이 인기척을 하면서 요사체 방안으로 들어왔다
문밖에서 우리 부녀의 대화를 조금이나마 엿들은 듯 빙긋 웃으면서
"와우 ~
우리 장충동 처사님이 서울 따님을 만나시더니 ~
하룻밤 사이에 몸의 원기를 되찾고, 전신에 기운이 펄펄 넘치는 것 같습니다
정말 보리암이 신통한 기도처인가 봅니다 ~ 나무관세음보살 ~!"
"스님 ~!
무슨 말씀을 그리 하십니까 ~?
경기도 ~ 강원도 ~ 경상도 ~ 부산 ~ 이곳 남해까지
송송백백암암회 = 松松柏柏岩岩廻
산산수수처처기 = 山山水水處處奇
소나무 소나무 잣나무 잣나무 바위 바위를 돌아서니
산 산 물 물 가는 곳마다 신기하구나 .....
산산처처의 유명사찰들을 돌고 돌면서
스님과 함께 먹고 자고 스님의 법력을 전해받아 알게 모르게 힘이 축적된 탓이겠지요
그저 스님께 감사 드릴 따름입니다"
"아무튼, 소납이 배운 것은 많지 않으나
지금 현재 처사님과 보살님의 얼굴이 아침햇살처럼 온화한 광채를 발하고 있으니 ~
처사님 몸과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지고 ~
처사님 육신의 온갖 재앙이 눈 녹 듯, 사그라질 징조 같습니다 ~ 감축드립니다 ~ "
허허허
하하하
히히히
아침 6시가 되자 ~
각 방으로 나뉘어 자던 불자들과, 신새벽에 산에 올라온 해맞이 손님들이 웅성웅성 ...
관세음보살상 /
삼층석탑/ 태조 이성계 기도처/ 등지에 깨알 같이 모여앉어
광명의 새해 새아침 햇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차거운 바람속에 한 시간 가까이 서서 기다린 끝에
아침 7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멀리 남해바다 속에서 거대하고 웅장한 모습으로 솟아오르는 검붉은 태양을 ~!
19년만에 정상으로 돌아온 아빠와 딸, 부녀가 손을 꼭 쥐고서 뜻 있는 해맞이를 하였다
"햇님이시어 ~
저희 부녀의 작은 소원을 성취하게 해주십시오
본디,
우리가 태어난 곳이 어디며? ... 갈 곳 또한 어느뭬 이던가?
공수래 공수거라 ~~~
빈 마음으로, 낮은 자세로,
날마다 참회하고, 시간마다 감사하고, 그리고 이웃을 돌아보게 해주십시오
저 자신이나 가족들 보다는 ~ 항상 이웃을 먼저 생각하게 하시고
많은 것을 욕심내기 보다는 ~ 배품을 보람으로 살게 해주십시오
저에게 건강이 허락된다면 ~ 성실하고 근면한 자세로 자중자애 살아가겠습니다 "
경건한 마음으로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내 마음속의 소원을 빌었다
보리암에서 새해 해맞이를 마친 뒤,
도선사스님, 나하고, 명순이, 셋이 아침공양을 하고 나서
주지스님과 상좌스님께 작별인사 올리고 5일간이나 신세졌던 보리암을 내려와
남해읍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였는데
도선사 스님이 서울 도선사로 돌아가겠다고 하면서 우리에게 작별인사를 하였다
50일이 넘도록 ~
깊어가는 가을단풍길, 빗길, 눈길을 풍운유수처럼 함께 거닐며
한 방에서 먹고 자고 동고동락한 스님인데 ... 막상 헤어진다고 하니 몹씨 서운하였다
터미널 상가에 들려
유명한 남해 죽방멸치를 한 포를 사서 노스님 선물로 전해드렸고
학승 스님께는
따스한 보온메리 속내의 한 벌과 두툼한 겨울양말 한 케이스를 사드리고
별도로 포장지 안에다 두툼한 봉투를 넣어드리면서 교통비 하시라고 말씀드렸다
"스님과 두 달여를 함께 수행하면서
덕분에 제 건강이 많이 좋아진 듯합니다 ~
서울로 올라가게 되면 도선사에 들리겠습니다 ~ 그 때 녹차 한 잔 나누시지요 ~"
"처사님은 육신의 고통보다도 ~
마음의 병이 짙은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아침엔 반야심경을,
잠자리에선 금강경을 천천히 읽으시면 심신이 편안해 질겁니다"
"네에 ~ 꼭, 그리 하겠습니다"
"스님 ~ 그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 이제부터는 아버지를 제가 모실테니 안심하십시오"
"아주 좋은 말씀입니다 ~
우리 학생 보살은 웃는 얼굴이
약사여래불 같이 온화하여 앞으로 많은 사람을 이끌고 도울 수 있을겁니다 ~
아버지의 허약해진 심신의 병환도 반드시 구제하실 것이구요 ~
그럼으로 보살님 스스로 성불하여 작은부처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관세음보살 ~!"
"어머나 ~
제겐 너무 과분한 칭찬 말씀을 하시네요 ~
그저 부모님께 효도하고 형제끼리 우애하고 사는게 저의 작은 소원입니다"
"보살님 뜻대로 반드시 그리 될 것입니다 ~ 허허허"
남해읍 터미널에서 ~
도선사 스님은 진주행 (기차로 서울 가려고) 우리 부녀는 순천행 버스에 각각 올라탔다
전라남도 승주군 (현 순천시)의 유서 깊은 송광사에 들렸다
통도사/ 해인사/와 더불어
삼보사찰 송광사는 조계산 자락에 자리한 대찰이었다
산이 좋고,
절이 좋으니,
우리 부녀도 그 자연속에 물들어 신선이 된 것처럼 심신이 편안해 짐을 느꼈다
"명순아 ~ 여기서 며칠 지내면 어떨까?~"
"아빠 뜻대로 하세요 ~ 저도 이곳이 아늑하고 참 좋네요 ~"
도선사 행자스님도 서울로 떠나버리고,
명순이가 절에서 지내는 잠자리를 꺼려한 탓에 절아래 민박집을 숙소로 구하였다
다섯 칸 짜리 민박집에 숙식을 부탁하였는데 ...
방은 커다란 온돌방이었지만 오래도록 사람이 거처하지 않은 듯 냉돌이었고 ~
침구가 깔끔하지 못해
썩 마음에 들지 않했지만 집 떠나면 고생인데 ~ 어쩔 것인가?
큰방에서 주인내외와 간략하게나마 수인사를 나누고 함께 저녁을 먹는데 ~
벌교장에서 사왔다는
갈치토막과, 굴, 고막이 여간 맛있어 밥을 한그릇 반이나 비웠다
음식상을 물리고 ~
향긋한 녹차 한잔씩을 들면서 ~
우리 부녀는 서울에서 내려왔으며,
몸에 큰 부상을 입어 열달 가까이 고생하고 있다고
경기, 강원, 경북, 부산, 경남, ~~~
전국을 돌면서 유명사찰의 부처님께 참배드리고 심신수양을 하는 중이라고
어제까지는 도선사 스님 한 분과 동행하였는데
이번에 딸이 교육대학에 합격하고 나의 길동무가 되어주려고 내려왔다고 말해주었고
민박집 주인아저씨의 말을 들어보니
장성한 자녀들은 도회지에 나가 살고있고
아줌마가 예전에 소리꾼이었는데 이제는 은퇴 후, 조용히 민박을 하고 있다고
"어머 ~
제가 평소에 판소리와 민요가락을 배우고 싶었는데 ...
짧지만 이곳에 있을 동안 소리를 배울 수 없을까요? 학생지도에도 필요할건데 ~"
"몇년씩 배워도 못하는데 ~ 금방 유행가처럼 따라 부를 수는 없을거요 ~ 허허허"
"그래도 ~ 시작이 절반이라는 속담이 있잖아요 ~ 꼭 배우고 싶어요 ~"
"그렇게 부탁하니 ~ 배우기 쉬운 단가를 조금 가르쳐 줄게요 ~"
"네에 ~ 정말 감사합니다 ~ 그럼 사부님, 인사 받으십시오 ~"
명순이가 벌떡 일어나 방바닥에 머리를 조아리고 주인아줌마에게 날아갈 듯 큰절을 하였다
허허허
하하하
호호호
히히히
그날 밤 부터 ~
명순이는 기생 퇴기(?) 여주인에게 판소리 배웠다
춘향가 중 쑥대머리 ~ 사랑가 ~ 이산저산 ~ 태평가 ~ 창부타령 ~ 등
우리의 옛소리는
구전 = 口傳 = 말로 소리로 전하여 내려왔기에
서양음악처럼 악보가 없어, 수많은 반복연습으로 사제지간에 직접 전수해야만 했는데
어릴적부터 순이에게서 노래를 배운바 있는 명순이는
귀가 밝았고, 목청이 고와
주인아줌마의 가르침(범창)을 잘 새겨듣고 금방 금방 따라하는 것이 신통하였다
아침 9시엔 부녀가 손잡고 송광사에 사시불공을 드리러 다녀오고
오전, 오후,
밤까지 명순이가 판소리 배우는 것을 너무도 열심히 하였다
당초에는 3일정도 유하려 했으나 ~
소리공부를 위해 5일간을 그곳에서 지냈다
밤이면 부녀가 넓은 방에 이브자리 두개를 펼치고 잠을 잤다
잠 자다가 말고 ~
방안이 춥다는 핑게로 명순이가 츄리닝 차림으로 내 품안에 안겨 들 때면
다 큰 처녀아이의
탱탱하고 탄력있는 가슴이며 빵빵한 히프가 내 몸에 물컹 부딪혔고
귓가에 섹 섹 거리는 숫처녀의 고른 숨결이 천리향 꽃내음처럼 향기롭게 풍겨났다
(명순이는 운동선수 생활을 하면서 밤이면 혈액순환을 위해 브라자를 하지 않았음)
더욱이 새벽녁이 되면 ~
어릴적 함께 자면서 하던 습관대로
한쪽 다리를 내 허벅지에 올려놓으면서 사타구니를 바짝 밀어부칠 때면
발기부전으로 무덤덤 했던 나의 자지에 묘한 자극과 감흥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
엄연한 근친중에 근친, 한 핏줄 부녀지간 아닌가?
19살 처녀의 옴팡진 궁둥이를 토닥토닥 두들겨 주면서
밤이면 굿나잇 키스 ~
아침이면 굿모닝 키스 ~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별다른 썸씽이 없었다
송광사 민박집에서 5일을 지내고 길을 나섰다
벌교읍 ~
보성읍 ~
강진읍에 도착하여,
유명한 한정식 해0식당에 찾아가 푸짐한 점심상을 받았는데
청운한정식 음식과는 또 다른 별미가 느껴저
가지고 갔던 사진기로 상 위에 음식들을 여러장 사진 찍었다
정약용선생이 목민심서를 저술하신 다산초당과 백련사에 잠시 들린 다음 ...
오후 석양 무렵에는 해남땅 대흥사에 들렸다
두륜산 자락에 자리한 대흥사는 명실공히 명당중에 명당 터였다
통일신라 후기 창건된 오랜역사를 지녔는데도
화마의 피해가 한 번도 없었고
임진왜란 병자호란 양대 외침 때에도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은 천하제일 요새?
대웅전과 천불전에 공손히 참배드린 후에 ...
임진왜란 당시 승군의 총사령관이었던 서산대사 의발이 모셔진 표충사와
우리나라 차 문화의 창시자 초의선사의 초당 등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아빠 ~ 강진에서 점심을 잘 먹었는데 ...
해남에서 더 멋진 식당을 찾아봐요 ... 네에 ~!
각 지방마다 음식의 재료가 다르고 솜씨가 다를텐데
특히 남도의 음식문화는 그 이름이 전국적으로 유명하잖아요
상차림과 음식들을 사진 찍어 엄마와 외숙모께 보여드리면 아주 좋아하실 것 같아요~"
"그러자꾸나 ~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 자아, 맛갈진 먹거리를 찾아서 고고 씽 ~!"
히히히
하하하
(참고 :
해남과 강진 등 남도여행지에는 유명 한정식 식당이 많이 있는데
일설에는 천혜의 무공해 자연산 농수축산물 산지에
한양에서 귀양살이 내려온 명문가 양반 후손들이 도성의 음식문화를 접속하여
별미의 음식을 탄생시켰다는 풍문이 전해지고 있었음)
1924년 해남 땅에서 처음 문을 열어
3대에 걸쳐 유명세를 타고 있는 시장골목의 천0관을 찾아가 한정식을 시켰는데
4인기준 한 상 차림이라 둘이 먹으면서도 4인분 값을 지불해야 했지만
명성 그대로 ~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다양한 음식들을 배가 터지도록 포식하였다
다음날 아침 ~
바다와 섬 구경을 하고 싶다는 명순이 뜻에 따라
해남 땅끝마을에서 배를 타고 완도군 노화면의 보길도(윤선도 유적지) 구경을 나섰다
고산 윤선도는 보길도에서
13년이나 은거했고 이곳의 자연과 친구가 됐다고 전해진다
물과 돌과 소나무, 대나무, 달을 일컬어 다섯 친구라 부르며
자연과 함께 생활하면서
유명한 "오우가" 시를 지은 곳이기도 하며
(장충동 집에도 오우가를 흉내내어 ~ 작은연못, 수석, 소나무, 대나무, 보름달이 있다)
그의 시조
‘어부사시사’에 그대로 남아있는 보길도의 자연은 수백 년 세월이 지나도
그 모양 그대로 남아있었는데 ~
세연정, 옥소대, 부용동, 동천석실, 등
고산이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기던 흔적들이 고스란이 남아있었다
하얗게 눈이 쌓인 보길도의 겨울 찬바람이 매서웠다
너무 많이 걸었기 때문에 다리도 아프고 춥기도 하여 선착장 부근의 식당에 부탁 ~
하룻밤 민박집을 정했는데
전복회, 돌김, 생굴, 바지락, 생미역무침, 우럭매운탕 등 ~
저녁 상차림이 제법 풍성하였다
"아빠 ~
식당 메뉴판을 보았더니 전복이 허약한 몸에 좋다네요 ~ 많이 많이 드세요
단백질과 비타민이 풍부하고, 중년인의 강장 정력식품으로 최고의 건강식이래요 ~"
"허어 ~ 명순이 너는 가는 곳마다 알아보는 것도 빠르구나 ~!"
"그래서 아빠 여행비서 노릇하잖아요 ~ 히히히"
건강에 좋다는 전복회와 전복구이를 추가로 시켜 부녀가 배불리 먹으면서
반주로 소주 한 잔씩을 따라 건배주도 마셨다
"이제 우리 딸도 어엿한 대학생인데 ~ 술 한 잔은 마실 수 있겠지~?"
"네에 ~ 처음이지만 마셔 볼게요 ~ 우리 건배해요 ~!"
"아빠의 빠른 쾌유를 위하여 ~!"
"김명순선생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
하하하
히히히
한겨울인지라 관광객도 뜸 하였고, 식당안에 손님이라곤 우리 부녀뿐 ~!
"명순아 ~ 송광사 민박아줌마 한테 배운 판소리 한 번 해볼래 ~?"
"지금, 여기서요 ~?"
"그래 ~
바다가 있고,
섬이 있고,
조금 기울었지만 하현달도 창공에 떠 있고,
그리고 아빠와 딸이 마주앉아 한 잔 술에 취하니 ~ 우리도 오우가 주인공 아니냐~?
350년전 부용동의 시조문학 대가이신 고산 윤선도선생이 부럽지않구나 ~ 후후후"
"와우 ~
우리 아빠께서 예전처럼 큰 소리로 멋진 말씀을 해주시네요 ~
역시 전복의 효과가 대단한가 봐요 ~ 히히히"
짜증은 내어서 무엇하나 성화는 바치어 무엇하나
속상한 일이 하도 많으니 놀기도 하면서 살아가세...
니나노 ~ 늴리리아 늴리리아 ~ 니나노 ~
얼싸 좋아 얼씨구나 좋다,
벌나비는 이리저리 펄 펄 ~ 꽃을 찾아서 날아든다 ...
명순이가 방상머리에 젓가락 장단을 쳐가며 청아한 목소리로 태평가를 부르다가
스스로 흥에 겨워 자리에 벌떡 일어서서 ~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기 시작했는데
명순이의 태평가 민요소리를 듣고
식당 주인 내외와 마을주민 세 사람이 안방에서 얼굴을 삐죽 내밀더니 ~
너울너울 춤을 추는 명순이를 향해
"얼씨구 잘한다"
"짝 짝 짝"
박수를 치면서 명순이에게 앵콜송을 요청하였다
"에구 ~
서울 여학생 같은데, 아버지를 위해 구성진 노래에 멋진 춤 까지 ~
참으로 다정한 부녀지간이 정말 부럽소이다 ~"
회사에 휴직상태인 나의 일과는 ~ 긴장이 풀린 안일함, 나태함의 연속이었는데
장충동 집 잔디 정원에서 아이들과 그네타기, 공놀이를 즐기면서
간간이 큰애 윤정이 국민학교 1학년 숙제를 돌봐주고,
대학입시 준비에 매달린 명순이에게 "정신일도 하사불성"이라는 격려 말도 해주고,
모처럼 나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이 생기면
집중력 강화를 위해 독서와 펜글씨 붓글씨 등으로 소일 했지만
책을 오래 읽으면 다쳤던 머리가 어지러워 ~ 긴 시간 책을 읽을 수가 없었고
펜이나 붓을 들면 손이 떨려 자꾸만 글씨가 틀어지기 일 수 였다
사방이 고요한 밤이면
나 혼자 잠을 못이뤄 발자국 소리를 죽여가며 집안팍을 거니는 ~ 야행성 동물로 변신?
잠시나마 잠이 들면
무서운 악몽에 시달리다가 큰소리 고함을 지르고 비지땀을 흘리며 깨어나곤 하였다
더욱이 ~
순심누나/ 희순형수/ 시암댁어머니/ (순이각시는 산후조리로 각방 사용)
번갈아가며 밤 늦도록 별 별 안마와 애무 오랄을 해주었는데도 성기능 발기부전으로
섹스에 대한 자신감을 잃고, 점 점 깊은 나락으로 떨어져 내리곤 하였다
심란한 마음을 도저히 붙잡을 수 없어
순심누나와 함께 절룩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가을색이 깊어가는 도선사를 찾아가 부처님전에 참배를 올리고 나서
요사채 노스님을 찾아뵙고 ~
불시의 안전사고 전말과, 수술 및 입원치료, 현재 불안정한 심신상태를 하소연 하였더니
김처사는 오복을 타고난 좋은 사주이지만, 일생동안 세 번의 큰 고비를 겪을 것인데 ...
청년시절에 한 번,
(4.19혁명 때 둘째형과 아버지를 여의고 인생을 포기했던 일 ~ 정신적인 좌절?)
이번 사고로 한 번,
(창고 붕괴로 온 몸이 바스러진 상태 ~ 육신의 허물을 벗은 것?)
세 번째 고비는 언제, 어떻게, 들이 닥칠 것인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
육신의 상처는 시간이 흐르면 천천히 치유가 되겠으나
마음의 심약함은 본인 스스로가 아니면 그 누구도 도울 수가 없는 법,
회사를 쉬는 동안 ~
체력단련 겸 정신수양을 위해
전국에 산재해 있는 이름 있는 천년 전통사찰을 두루 참배하고
가는 곳마다 부처님께 공덕을 쌓으면서,
간절하게 기도를 올린다면 마음속에 무거운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노스님께서는 내가 어느 전통사찰에 찾아가던지
그 곳 주지스님이나 상좌승께 내 보일 소개서(편지?)를 직접 붓으로 써주셨고,
스님이 가르치는 제자 중에 40대의 학승 (공부하는 스님) 한 분을 힘없는 나와 동행하게 해주셨다
집으로 돌아와 곧 바로 가족들에게 그러한 사연을 알리고
개나리 봇짐을 싸 들고 ~
정처없는 유랑의 길 (방랑자의 길?)을 떠나기로 하였는데
아직은 몸도 마음도 성치 못한 내가 기약없는 수행의 길을 나선다고 하니 ~
모든 가족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아무런 말이 없었다
넷째 아들 출산 이후,
몸이 허약해진 순이각시와 희순형수, 여고 3년생 명순이는
닭똥 같은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면서
"아직은 몸도 성치 않은데 ... 낯선 곳에서 ... 잠자리와 먹는 것도 시원찮을텐데 ...
차라리 따뜻한 봄이 돌아오면 길을 나서는 것이 어떻겠느냐~?" 고 만류를 하였고
순심누나와 시암댁어머니는 노스님의 말씀이 마음에 와 닿으니
내일이라도 훌쩍 길을 나서라고 찬성표를 던졌다
"기약없는 먼길 떠나는 운명이에게 꼭, 부탁할 일이 있는데 ...
가는 곳마다 행선지와 연락처를 분명하게 알려줄 것 ~
적어도 3~4일에 한 번씩은 전화를 해주거나 전보나 엽서편지를 보내줄 것 ~
몸이 불편해지면 수행 도중에 즉시 집으로 돌아올 것 ~
돈이나 의복이나 밑반찬 등을 행선지로 보낼 수 있도록 천천히 쉬어가면서 움직일 것
항상 ~
동생 한 사람의 몸이 아닌 온 가족들의 가장임을 생각하여 심기를 굳건히 가질 것 ~
집으로 돌아올 때는 예전의 태산같은 태도와 여유로운 미소를 간직해 오도록 할 것~ "
나에게 명심하라고 신신당부하는
제갈공명 김순심누나의 날카로운 판단과 명쾌함은 중요한 순간마다 그 빛을 발하였다
1979년 11월 초 ~
남산 기슭과 장충단공원에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가을날,
도선사의 학승 스님과 동행하여 ~ 정처없는 심신수양(수행?)의 길을 나섰다
요즈음 같았으면 ...
속 편한 배낭여행이라 할까?
(문인작가의 소재발굴? ~ 사진작가의 작품활동? ~ 기행문 쓰는 여행가의 오지탐험?)
전국 사찰지도와
작은 메모수첩, 트랜지스터 라디오, 사진기, 여벌내의 등을 챙겼고
두 사람의 교통비, 숙식비, 예비비 등 여행경비도 넉넉하게 따로 담았다
우측 어깨와 팔에 무리를 주면 안되기에 등에 매는 베낭보다도 ~
긴 끈이 달린 보스톤백 (boston bag)을 왼쪽 어깨에 매고서 출발 ~!!!
(불심이 깊은 순심누나와 시암댁어머니는 자신들의 몫이라며,
사찰마다 부처님 전에 올릴 별도의 보시금을 봉투에 두둑하게 넣어주었다)
40대의 도선사 학승 스님 (법명은 생략?)과 청량리역에서 만나 기차에 오르면서
다리가 불편한 나의 형편을 고려 ~
버스, 택시의 접근이 용이한 곳을 선택하여
2~3일에 1사찰씩 천천히 탐방하기로 약속하고 기분도 가쁜하게 힘찬 출발 ~!
제일 먼저 여주 ~ 신륵사에 들렸다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며,
고려 말에는 200여 칸에 달하는 대찰이었고,
나옹선사 인당대사 등이 거하며
날뛰는 용마를 제압했다하여 신기한 제압 = 신륵사라 불리우게 되었는데
1472년(조선 성종 3)에는 영릉(조선 제4대 세종대왕과 소헌왕후 심씨의 합장릉) 원찰로 삼아
보은사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일설에는 ~
태조 이성계와 강씨부인 신덕왕후 사이에 낳은 딸 경순공주를
이방원이 주도한 1차 왕자의 난 이후에
이곳 신륵사에 피신 시켰다가 비구니로 출가시켰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었음
원주 치악산 구룡사 ~
양양 낙산사 ~
속초 설악산 신흥사 ~
강릉에서 버스 타고 설악산으로 ~
케이블카 타고 권금성에 올라 멀리 11월의 마지막 단풍이 불타는 설악동 바라보고 ~
신흥사 대웅전 부처님전에 108배 드렸다 (무릅을 굽히고 펴기 곤란하여 아주 느리게)
울진 불영사 ~
경주 불국사 ~ (석굴암은 토함산 위에 있음으로 걷기 불편해 생략)
양산 통도사 ~ 법보 사찰
부산 범어사 ~
합천 해인사 ~ 팔만대장경
사천 다솔사 ~
하동 쌍계사 ~
남해 보리암 ~~~
집을 나선지 한달 반이 지나 남해 보리암에 도착,
요사채에서 며칠간 조용히 쉬면서
이른 새벽과 오후시간에 두 차례씩 108배 올리며 정신통일 수행정진하고 있었는데
12월31일 년말을 맞아 ~
새해 해맞이 기도를 위한 신심이 깊은 불자들이 전국 각지에서 구름처럼 많이 모여들었다
그 수많은 인파속에 뜻밖에도 명순이가 나타났다 ...!
사전 예고도 없이 꿈속인냥 찾아온 안개꽃 같은 내 딸 명순이 ...!
우유빛 흰 얼굴에,
새카만 긴 생머리를 바람결에 휘날리며
검정색의 밍크 반코트와, 롱다리 청바지가 썩 ~ 잘 어울리는
먼 발치에서 바라보아도 서울 멋쟁이 여학생 티가 물씬 풍겨나는 세련된 모습이었다
명순이와 내가 동시에 서로를 발견하고선
너무도 놀랍고 반가워 뛰어가 손 마주잡아 흔들다가 ~ 자연스럽게 서로를 끌어안았다
비좁은 경내,
주변사람들 바라보는 이목이 너무 많아 ~
도선사 학승 스님과 내가 함께 기거하는 요사채 작은방으로 대리고 들어갔는데 ~
방안에 들어서자 마자 ...
또 다시 내 품으로 안겨들면서 눈물을 흘리는 명순이 .....
혈육이란 ~?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끈끈한 정이 묻어나기 마련이 아니겠는가?
서로가 말없이 가만히 안아주고만 있었는데도 ~
두 눈에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
심장의 힘찬 고동이 박자를 맞춘 듯 동시에 뛰었다 ...
백 천 만가지 수많은 말들이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해지는 듯하였다 ...
그걸 부녀지간의 이심전심 = 以心傳心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무언의 텔레파시라고 표현해야 하나?
불과 한 달 하고도 20일 정도 떨어져 지냈지만
병약한 나에게는 10년쯤 헤어졌다가 만난 것 같이 울컥 치솟는 감회가 새로웠다
한참이나 안고 있던 명순이를 품에서 떼어 놓으면서 맨질맨질한 온돌방에 앉으니
명순이가 나의 맞은편에 서서 정식으로 큰절을 넙죽 올리고 나서 ...
그간의 서울 가족들 지내온 이야기를 종달새처럼 종알종알 지저귀기 시작했다
여고 3학년을 마치면서 ~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어,
여고 친구들과 어울려 교육대학에 응시했는데
실력이 조금 아슬아슬 했지만 ~ 2년제 교육대학에 당당히 합격하였다고
삼촌께 자랑하고 싶어 이렇게 찾아왔다고 하면서 ~
합격통지서를 내보였다
(참고 : 현재의 4년제 교육대학교는 1981년도에 교육법 개정으로 시작됨)
며칠전 크리스마스 이브에
같이 합격한 여고동창들과 명동거리를 싸 돌아 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병마에 시달리며 외롭게 여행(수행?)하시는 삼촌이 너무도 간절히 보고 싶었다고
그래서 엄마한테는 말하지 않고 어젯밤 혼자서 야간열차편으로 진주로 내려왔노라고 ~
아침에 진주도착 ~
버스타고 남해읍 ~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보리암에 도착하였다고
3월초,
입학식 할 때까지
삼촌의 비서로서 이것저것 돌봐드리고, 여행친구가 되어드릴거라고 ~~~
삼촌이 절에 지내면서
불안한 맘이 조금씩 낳아졌다는 엄마와 외숙모의 대화를 듣고
저도 삼촌과 절에서 함께 생활하려고 체격이 비슷한 외숙모의 절복을 몰래 가져왔다고
짐가방에서 꺼내 내 앞에 펼쳐보이며 자랑을 하였다
(절복 :
사찰에서 처사나 보살들이 편리하게 입는 회색 개량한복? ~ 누벼진 바지 저고리 조끼)
"그래 ~ 우선 먼저 명순이 교육대학 합격을 축하한다 ~ 참으로 장하구나 ~!
그리고 ~
이 추운 겨울에 용기내어 서울에서 이 곳까지 먼길 잘 찾아왔구나 ~ 고맙구나 ~!
다 큰 여학생이 혼자서 야간열차 타고 여행다니면 무섭지도 않니?
기찻간이나 대합실에서 낯 모르는 누가 덥석 잡아가면 어쩌려구 ?
그리고 엄마의 허락을 받지 않고 무작정 내려 온 것은 잘못된 행동 같구나
당장에 ~
엄마, 외숙모, 시암할머니께 전화드려서 걱정 끼치지 않게 해야겠지?
입학전까지 나와 함께 지내겠다는 명순이의 뜻은 고마운데 ...
대학생이 되려면 입학전에 신입생들의 학교생활 적응을 위해 MT모임도 있을테고
개별친구 만남이나 동아리 써클모임 등에도 참석해야 할텐데 ...?
그리고 2월 중,
여고 졸업식에는 반드시 참석해야 하지 않겠니?......."
"그렇지만 ..................."
큰소리 심한 꾸중은 아니었지만 ~
조용하고 분명한 어조로 조목조목 깨우치게 타일렀더니
묵묵히 듣고만 있던 명순이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
끝내는 소리없이 어깨를 들썩이며 서럽게 울기 시작하였다
"그런 것 다 필요없어요 ~
저 한테는 이 세상에서 삼촌이 가장 소중한 사람이예요~!"
"아 ~ 알았다 ~ 알았어 ~!
명순이의 고운 맘은 내가 잘 안다구 ~!
네가 헌혈해준 피를 받아서 지금 내가 이렇게 살았는데 ~ 너의 맘을 모를리가 있겠니?
오랜만에 만나서 별다른 말도 안했는데 이렇게 서글피 울기 시작하면 어떻게 해~!
자 ~ 자아 ~
울음을 뚝 그치고 공양간에 점심 공양하러 가자 ~
오늘 불자들이 너무 많이 찾아와서 시간이 늦으면 밥이 부족할지도 몰라 ~! 어서 일어나 ~!"
"삼촌 ~ 저 옷 좀 갈아 입을게요 ~ 잠시만 기다리세요 ~!"
명순이 어릴적엔 내가 손수 목욕도 시켜주고 옷을 갈아입히기도 하였건만 ~
이젠 어엿한 숙녀 여대생이 되었으니 ......
좁은 방안에서 등 돌아 앉아 옷을 갈아입는 명순이를 건너다보기가 자뭇 민망하였다
바지, 돔방애, 조끼 등 ...
절복을 차례차례 단정히 갈아 입은 명순이가 베시시 웃으며
"삼촌 ~ 제 모습이 우습지 않나요 ~?"
"너는 ~ 외모가 외숙모랑 판박이로구나 ~ 10년전 서순이 모습 그대로인걸 ~! 후후후"
"그럼 ~ 제가 절에서 지내는 보살님 같은거지요 ~?"
"암 ~ 아주 미인 보살이라 ~ 스님들 눈이 휘둥그레 지겠다 ~!"
히히히
후후후
나의 안내를 받아 보리암 보광전 부처님께 공손히 삼배 절을 올린 후에 ...
보리암 상좌스님과
나와 함께 동행한 도선사 학승 스님께도
삼배 절을 드리게 하였는데
사귐성 좋은 명순이가 상좌스님과 학승 스님께 넉살좋게 아는체를 하였다
"보리암은 신비한 기도처라고 들었는데
저는 생전 처음 찾아왔습니다
상좌스님께서 저희 아버지를 여러모로 돌봐주시니 정말 감사 드립니다 ~"
"허허허 ~
얼굴이며 몸매며, 말하는 것까지 부녀지간이 꼭 빼 닮았습니다 그려 ~"
"아 ~ 도선사 스님은
장충동 청운식당 개업할 때 오셨던 분이시군요,
몸이 성치않은 우리 아빠랑 전국의 사찰을 돌면서 마음 수양 하신다니 감사드립니다"
"어허 ~ 저를 알아보시겠습니까? 그러고 보니,
그 때는 국민학생 꼬마 아가씨였는데 지금은 몰라보게 장성 하셨구려 ~
학생 보살이 아버지 찾아 서울에서 여기까지 내려오다니 실로 정성이 지극하시군요 ~"
공양간에 찾아가
수고 하는 공양주 보살께 서울에서 찾아온 친딸이라고 명순이를 소개하고
부녀가 마주앉아 잡곡밥에 나물찬 시레기 된장국으로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삼촌 ~
이렇게 나물반찬만 드시다간 수술한 뼈가 다시 약해지는 것 아닐까요 ~?
보리암에서 내려가면 제가 비싸고 맛있는 것 사드릴게요 ~ 기대 하세요 ~ 헤헤헤"
"말이라도 고맙구나 ~
명순이가 무슨 돈이 있다고 비싼 음식을 ~? 허허허"
"어머 ~!
저를 과소평가 하지마세요 ~ 국민학교 때 부터
시암할머니, 엄마, 삼촌, 외숙모, 다른 어른들이 주신 용돈을 차곡차곡 저축했거든요
요즈음은 미래의 김명순 선생님께 윤정이, 윤신이, 효순이, ~
가정교사 부탁한다고 외숙모랑 희순이모가 저에게 과외비 용돈을 듬뿍 주시거든요 ~
이래저래 저는 부자가 되고 있습니다 ~ 헤헤헤"
"아까 처음 보았을 때 ~
밍크코트와 청바지가 잘 어울리던데 ~ 엄마가 사 주셨니? 명순이가 산거니?"
"헤헤헤 ~
코트는 희순이모가 최고급 밍크기지로 직접 맞춰준 아주 비싼거구요 ~
청바지는 외숙모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주신건데요 ~
외숙모와 저는 체격이 똑 같아요 ~
그래서 서로 옷을 바꿔 입어보며 웃었거든요 ~
밖에 외출해서 쇼핑 할 때면
점원들이 엄마 보다도 외숙모를 제 친엄마로 인식해서 ~
그때마다 엄마가 기분 나쁘다고 불평하시곤해요 ~ 참 우습죠 ~ 헤헤헤"
"외숙모는 나이가 너무 어리잖어? 명순이랑 11살 차이던가?....."
"네에 ~
나이가 좀 그렇기는 하지만 ~ 요즈음은 아주 젊은 엄마도 있죠 ~? 헤헤헤"
공양간에 마주앉아 점심을 먹으며 담소하는
부녀지간의 싱그러운 웃음이
법당 부처님 곁에 놓인 연꽃처럼 화사하게 피어났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사찰 매점에 있는 공중전화 박스에서 장충동 집으로 전화 ~
먼저 순심누나에게 나의 일상과 건강이야기를 하고난 후,
조금전 뜻밖에 명순이가 보리암으로 나를 찾아와 얼마나 기쁜 줄 모르겠다고 ~
어젯밤에 서울에서 혼자 몰래 떠나왔다고 했는데,
내가 단단히 훈계를 하였으니
누나는 너무 나무라지 말라고 부탁하였고 .....
명순이 덕에 모처럼 둘이서 점심공양을 맛있게 먹었노라고
보리암에서 새해 해맞이 마치고 나면 ~
전라도 쪽으로 여행할 예정인데
혼자 심심하게 가느니 명순이를 길잡이로 동행하였으면 좋겠다고 ~
순심누나의 불같은 성격을
미리 누구려 뜨린 후에 명순이를 바꾸어 주었는데
수화기 넘어에서 순심누나의 소프라노 칼바람 소리가 계속 들리면서 ~
한참동안이나 꾸중을 하는 듯,
이윽고 금방 기분이 풀어진 모녀지간에 무언가를 알콩달콩 ~ 히히덕 거리는가 싶더니 ~
"다 알아요 ~ 내가 어린앤가요 ~?"
"엄마는 ~ 이상한 소리를 다하네 ~ 걱정마세요 ~!"
그리고 전화기에 넣었던 동전이 땡 ~!
전화 끝 ~~~!!!
아무튼 무단가출(?)한 명순이가
서울의 엄마에게 부재자신고(?) 전화연락을 성공한 셈이었다
오후,
조금 한가한 시간에
주지스님께 명순이를 대리고가 다시 한 번 서울에서 내려온 딸이라고 소개하고 ~
"명상의 소리" 같은 좋은 덕담 말씀을 잠시 함께 들었는데
하필이면 해맞이 손님들이 많이 몰려와 금방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석양무렵에는
명순이와 내가 보광전 부처님전에 108배 절을 함께 하였는데
"부처님 ~ 우리가족을 두루 보살펴 주십시오
제일 먼저 삼촌의 건강이 쾌차하시기를 발원합니다
엄마, 외숙모, 시암할머니, 희순이모, .....
윤정, 윤신, 윤일, 윤도, 효순이 .....
모두가 무병장수하고 부모에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있게 지내도록 살펴봐 주십시오 ~"
무릅이 성치 않아 자꾸만 비틀거리는 나를
몇 번이나 부축해 주는 명순이의 눈길이, 손길이, 너무도 애처러워 보였다
사찰에서는
부부나, 부녀간, 모자간, 남매간 일지라도 남녀가 유별한 생활이기에 ~
명순이는 외지에서 해맞이 온 다른 여자보살님들과 함께 대형 단체방을 배정받았고
나는 작은 요사채 방에 들어와
도선사의 학승 스님과 금강경 불경을 조용조용 읽다가 스스릉 잠이 들었다
1980년 새해,
새아침이 되었다
경상남도 남해군 금산 봉우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보리암은
서기 663년에 신라고승 원효대사께서
이곳에 초당을 짓고 수도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뒤
산 이름을 보광산, 초당의 이름을 보광사라 지었다고 전해지며
고려 말에는 왜구토벌 차 내려왔던 이성계장군이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리고
새로운 나라 조선왕조를 연 것에 감사하는 뜻에서
이 절을 왕실의 원당으로 삼았고
산 이름을 금산, 절 이름을 보리암이라고 바꾸었다고 하였다
우리나라 3대 기도처 중에 하나이며
양양 낙산사,
강화 보문사와 함께
한국 3대 관세음보살 성지로 꼽힌다고 ~
이른새벽 4시 예불시각, 사방이 어두컴컴한 신새벽에
보리암의 범종이
"덩 ~ 덩 ~" 울리자 기다렸다는 듯 요사채 침방으로 명순이가 찾아왔다
"삼촌 ~ 잘 주무셨어요 ~?"
"으응 ~ 모처럼 아주 편하게 잘잤다 ~"
"제가 오니까 마음이 더욱 편안해 지신거지요 ~? 히히히"
"맞어 ~ 우리 명순이 덕에 말도 많이하고 웃기도 많이하고 내 마음이 즐거웠던가봐 ~하하하"
마침,
도선사 스님은 법당으로 새벽예불에 참석하려고 나가고 자리를 비웠는데
작은 양은 세수대야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물과
치약, 치솔, 비누, 수건을 준비하고 안전면도기 까지 들고 들어와
막 ~ 이브자리를 개던 나를 정리해 놓은 이불 위에 비스듬이 눕혀놓고
일렁이는 등불아래 턱수염을 깨끗이 면도해주는 명순이의 손길이 부드럽기 한이 없었다
비누거품을 듬뿍 바르고 면도하던 도중에 명순이가 갑자기 눈물을 뚝 뚝 흘리면서
"아빠 ~! 아빠가 불쌍해요 ~!"
"명순아 ~! 왜 그러니 ~ 울지만 말고 무슨 일인지 자세히 말을 해야지 ~"
"난 ~ 다 알아요 ~ 모든 것을 다 안다구요 ~ 엄마한테서 다 들었어요 ~!흐흐흑 ~!"
"아빠 ~~~~~~아앙 ~~~!!!"
면도기를 옆으로 던져두고 ~
비누거품이 가득한 내 얼굴을 두 손으로 어루만지며
내 가슴 위로 풀썩 엎드린 명순이가 어깨를 들썩거리며
눈물 콧물을 마구 흘리면서 서럽게 "엉 ~ 엉" 울기 시작하였다
"이제부터는 절대로 아빠를 놓치지 않을거에요 ~
어려서부터 항상 외삼촌이라고 불렀지만,
언제나 친아빠처럼 ~ 아니 아빠보다 더 따뜻하게 저를 안아주셨는데
중상을 입고 의식불명 상태의 삼촌이 수술실에서 RH- 희귀 혈액을 구할 때
엄마와 함께 헌혈을 하면서 급히 알려주신 말씀이 있었는데 ~~~
사실은 ...
사실은 ...
삼촌이 아닌 제 친아빠란걸 그 때 확실히 알게 되었어요 ~"
(명순아 ~!
지금부터 엄마가 하는 말을 잘 새겨들어라 ~!
나중에 네가 20살이 되면 차분히 알려주려 했는데 ...
사실은 지금 수술대에 누워있는 사람이 너의 외삼촌이 아니라 네 친 아빠란다 ~!
생사의 기로에서,
만약을 짐작할 수 없는 위급한 상황이니 ~
두 말 할 것 없이 우선 너와 내가 피를 뽑아 아빠의 목숨을 구하자꾸나 ~
그리고 명순이 너는 아무리 힘들어도 절대로 아빠의 침대곁을 떠나지 말아야 한다
다음에 아빠가 깨어나고 쾌차하게 되면 다시 자세한 설명을 해줄터이니 ~
우선은 부녀간의 도리, 효도를 다하도록 해라 ~)
아빠에게 맞는 피를 구하지 못해 그 숨가빴던 긴박한 순간에,
엄마로 부터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를 듣고 나서 ~
하늘이 빙 빙 도는 것 같은 놀라움에 어쩔줄 몰라했지만 ~
일단 엄마의 말을 믿고 불야불야 헌혈을 하였고 ......
그 누구보다도
간절하고 애틋한 마음으로 학교만 다녀오면 곧바로 아빠의 병상을 지켰었는데
그 후 ~
여덟 달 가까이 지나면서 병원을 옮기고, 집으로 퇴원하고,
긴 시간 ~
많은 기회가 있었지만 ...
아빠의 건강 상태가 워낙 나빴기에
엄마도 저도 ~
그 엄청난 사연에 대해 먼저 입을 열지 못하였고 ~
몸이 불편한 아빠께는 감히 부녀 사이가 맞는지 진실을 여쭈어 볼 수가 없었다고 ~
"그래 ~ 명순아 ~ 너는 내 친딸이다 ~!
하늘과 땅에 맹세하건데 ~
김명순이는 김운명/ 김순심/ 피를 받고 태어난 내딸이 분명하다 ~!
주변 사람들과,
사회 윤리규범과, 법률적인 제재 때문에 어쩔 수 없었지만
여지껏 어린 너를 속여와서 미안하구나 ~ 아빠가 진심으로 사과하마 ~!
이제부터서는 ~
주위에 그 누구의 눈치 볼 것 없이, 형식이나 염치나 체면 가릴 것 없이,
당당하게 아빠와 딸로서 행세 하자꾸나 ~
그간 19년동안을 내 딸이라고 자랑하지 못했는데,
못난 아빠로서 거듭 미안하구나
그 모든 서운함을 열배, 백배하여 명순이를 참사랑으로 감싸주마 ~ "
내가 훌쩍거리는 명순이의 등을 토닥거려주면서 말을 마치자
나의 가슴팍에 엎드려 슬피울던 명순이가 ~
머리를 들어올리고 고개를 끄덕끄덕,
손등으로 눈물을 쓰윽 훔치더니 ~
나의 왼손 손바닥을 두 손으로 꼭 쥐어 자신의 젖가슴에 얹어 한참이나 꾹 누르고
"툭 툭 툭" 뛰는 심장의 고동을 전해주다가
얼굴을 홍당무처럼 붉히며 부끄러운 듯 싱긋 웃음을 지으면서
엉망이 된 얼굴에 다시 비누칠을 하고 ~
멈추었던 면도를 마무리하기 시작했다
"아빠는 ~
저에게 미안해 하실 것 없으세요 ~!
아빠와 엄마 두 사람이 참사랑의 씨앗으로 저를 만드셨잖아요 ~?
이제부터라도 ~
아빠, 엄마를 떳떳하게 부를 수 있으니 더 이상 바랄게 없어요 ~!
방금,
제 가슴에서 울려나는 환희의 고동소리를 손으로 느끼셨죠~?
그건 아빠를 신뢰하고 의지하고 사랑한다는 저의 진솔한 심장의 소리였어요 ~"
"명순이가 기특하고 고맙구나 ~ 내 어찌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니 ~?"
"아빠 ~!
깨끗히 면도해 드렸더니 10년은 젊어보여요 ~
남들이 아빠와 저를 보면 ~ 부녀간이 아니라 오누이 사이로 보지 않을까요 ~?"
"뭐라구 ~
오빠와 누이동생 ~? ~ 떽기 그런 말 엄마가 들으면 혼나요 ~!"
"아빠 ~ 눈 감아보세요 ~!"
"또? ~ 무슨 눈물을 방울방울 쏟아 놓으려고 ~?"
"그게 아니예요 ~ 그냥 살짝 눈을 감아 보시라니까요 ~! 히히히"
명순이가 입을 방긋 하면서 웃는 ~
배꽃(이화)같이 하얀얼굴을 찬찬히 바라보다가 살며시 눈을 감았는데
내 옆에 바짝 붙어앉아 있던 명순이가 고개를 푹 숙이더니 내 입술에다
쪼옥 ~ 쪼옥 ~ 쪼옥 ~
유치원 어린애들처럼 가벼운 입맞춤을 세 번 해주었다
(어릴적 신당동 서재방에서 명순이와 내가 단 둘이 잠잘 때는
밤마다,
아침마다,
귀염둥이 딸을 끌어안고 입술에 뽀뽀를 해주었었는데 ~
중, 고등학생이 된 후로는 천둥번개 무섭다고 내 곁에서 함께 자는 경우에도
입술이 아닌 볼에다만 살짝 뽀뽀를 해주곤 하였다 ... 그게 4~5년전의 추억이었다)
"아빠를 사랑하는 딸의 ~
1980년 새해 굿모닝 키스예요
새해에는 부디 건강하시고, 희망을 간직하시고, 그리고 힘내세요 ....!!!"
"하하 ~
우리 공주님의 새해 뽀뽀를 받았으니 두꺼비 왕자가 사람으로 변신하게 되는건가?"
"피노키오 공주님의 요술 키스를 받았으니
아빠가 건강을 되찾아서 ~ 예전처럼 집안에서 활기찬 모습을 보여주시게 될거예요~!"
하하하 ~
히히히 ~
모처럼 부녀간에 아름다운 담소와 해맑은 웃음을 나누는데
법당에 새벽예불 나갔던 도선사 스님이 인기척을 하면서 요사체 방안으로 들어왔다
문밖에서 우리 부녀의 대화를 조금이나마 엿들은 듯 빙긋 웃으면서
"와우 ~
우리 장충동 처사님이 서울 따님을 만나시더니 ~
하룻밤 사이에 몸의 원기를 되찾고, 전신에 기운이 펄펄 넘치는 것 같습니다
정말 보리암이 신통한 기도처인가 봅니다 ~ 나무관세음보살 ~!"
"스님 ~!
무슨 말씀을 그리 하십니까 ~?
경기도 ~ 강원도 ~ 경상도 ~ 부산 ~ 이곳 남해까지
송송백백암암회 = 松松柏柏岩岩廻
산산수수처처기 = 山山水水處處奇
소나무 소나무 잣나무 잣나무 바위 바위를 돌아서니
산 산 물 물 가는 곳마다 신기하구나 .....
산산처처의 유명사찰들을 돌고 돌면서
스님과 함께 먹고 자고 스님의 법력을 전해받아 알게 모르게 힘이 축적된 탓이겠지요
그저 스님께 감사 드릴 따름입니다"
"아무튼, 소납이 배운 것은 많지 않으나
지금 현재 처사님과 보살님의 얼굴이 아침햇살처럼 온화한 광채를 발하고 있으니 ~
처사님 몸과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지고 ~
처사님 육신의 온갖 재앙이 눈 녹 듯, 사그라질 징조 같습니다 ~ 감축드립니다 ~ "
허허허
하하하
히히히
아침 6시가 되자 ~
각 방으로 나뉘어 자던 불자들과, 신새벽에 산에 올라온 해맞이 손님들이 웅성웅성 ...
관세음보살상 /
삼층석탑/ 태조 이성계 기도처/ 등지에 깨알 같이 모여앉어
광명의 새해 새아침 햇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차거운 바람속에 한 시간 가까이 서서 기다린 끝에
아침 7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멀리 남해바다 속에서 거대하고 웅장한 모습으로 솟아오르는 검붉은 태양을 ~!
19년만에 정상으로 돌아온 아빠와 딸, 부녀가 손을 꼭 쥐고서 뜻 있는 해맞이를 하였다
"햇님이시어 ~
저희 부녀의 작은 소원을 성취하게 해주십시오
본디,
우리가 태어난 곳이 어디며? ... 갈 곳 또한 어느뭬 이던가?
공수래 공수거라 ~~~
빈 마음으로, 낮은 자세로,
날마다 참회하고, 시간마다 감사하고, 그리고 이웃을 돌아보게 해주십시오
저 자신이나 가족들 보다는 ~ 항상 이웃을 먼저 생각하게 하시고
많은 것을 욕심내기 보다는 ~ 배품을 보람으로 살게 해주십시오
저에게 건강이 허락된다면 ~ 성실하고 근면한 자세로 자중자애 살아가겠습니다 "
경건한 마음으로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내 마음속의 소원을 빌었다
보리암에서 새해 해맞이를 마친 뒤,
도선사스님, 나하고, 명순이, 셋이 아침공양을 하고 나서
주지스님과 상좌스님께 작별인사 올리고 5일간이나 신세졌던 보리암을 내려와
남해읍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였는데
도선사 스님이 서울 도선사로 돌아가겠다고 하면서 우리에게 작별인사를 하였다
50일이 넘도록 ~
깊어가는 가을단풍길, 빗길, 눈길을 풍운유수처럼 함께 거닐며
한 방에서 먹고 자고 동고동락한 스님인데 ... 막상 헤어진다고 하니 몹씨 서운하였다
터미널 상가에 들려
유명한 남해 죽방멸치를 한 포를 사서 노스님 선물로 전해드렸고
학승 스님께는
따스한 보온메리 속내의 한 벌과 두툼한 겨울양말 한 케이스를 사드리고
별도로 포장지 안에다 두툼한 봉투를 넣어드리면서 교통비 하시라고 말씀드렸다
"스님과 두 달여를 함께 수행하면서
덕분에 제 건강이 많이 좋아진 듯합니다 ~
서울로 올라가게 되면 도선사에 들리겠습니다 ~ 그 때 녹차 한 잔 나누시지요 ~"
"처사님은 육신의 고통보다도 ~
마음의 병이 짙은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아침엔 반야심경을,
잠자리에선 금강경을 천천히 읽으시면 심신이 편안해 질겁니다"
"네에 ~ 꼭, 그리 하겠습니다"
"스님 ~ 그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 이제부터는 아버지를 제가 모실테니 안심하십시오"
"아주 좋은 말씀입니다 ~
우리 학생 보살은 웃는 얼굴이
약사여래불 같이 온화하여 앞으로 많은 사람을 이끌고 도울 수 있을겁니다 ~
아버지의 허약해진 심신의 병환도 반드시 구제하실 것이구요 ~
그럼으로 보살님 스스로 성불하여 작은부처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관세음보살 ~!"
"어머나 ~
제겐 너무 과분한 칭찬 말씀을 하시네요 ~
그저 부모님께 효도하고 형제끼리 우애하고 사는게 저의 작은 소원입니다"
"보살님 뜻대로 반드시 그리 될 것입니다 ~ 허허허"
남해읍 터미널에서 ~
도선사 스님은 진주행 (기차로 서울 가려고) 우리 부녀는 순천행 버스에 각각 올라탔다
전라남도 승주군 (현 순천시)의 유서 깊은 송광사에 들렸다
통도사/ 해인사/와 더불어
삼보사찰 송광사는 조계산 자락에 자리한 대찰이었다
산이 좋고,
절이 좋으니,
우리 부녀도 그 자연속에 물들어 신선이 된 것처럼 심신이 편안해 짐을 느꼈다
"명순아 ~ 여기서 며칠 지내면 어떨까?~"
"아빠 뜻대로 하세요 ~ 저도 이곳이 아늑하고 참 좋네요 ~"
도선사 행자스님도 서울로 떠나버리고,
명순이가 절에서 지내는 잠자리를 꺼려한 탓에 절아래 민박집을 숙소로 구하였다
다섯 칸 짜리 민박집에 숙식을 부탁하였는데 ...
방은 커다란 온돌방이었지만 오래도록 사람이 거처하지 않은 듯 냉돌이었고 ~
침구가 깔끔하지 못해
썩 마음에 들지 않했지만 집 떠나면 고생인데 ~ 어쩔 것인가?
큰방에서 주인내외와 간략하게나마 수인사를 나누고 함께 저녁을 먹는데 ~
벌교장에서 사왔다는
갈치토막과, 굴, 고막이 여간 맛있어 밥을 한그릇 반이나 비웠다
음식상을 물리고 ~
향긋한 녹차 한잔씩을 들면서 ~
우리 부녀는 서울에서 내려왔으며,
몸에 큰 부상을 입어 열달 가까이 고생하고 있다고
경기, 강원, 경북, 부산, 경남, ~~~
전국을 돌면서 유명사찰의 부처님께 참배드리고 심신수양을 하는 중이라고
어제까지는 도선사 스님 한 분과 동행하였는데
이번에 딸이 교육대학에 합격하고 나의 길동무가 되어주려고 내려왔다고 말해주었고
민박집 주인아저씨의 말을 들어보니
장성한 자녀들은 도회지에 나가 살고있고
아줌마가 예전에 소리꾼이었는데 이제는 은퇴 후, 조용히 민박을 하고 있다고
"어머 ~
제가 평소에 판소리와 민요가락을 배우고 싶었는데 ...
짧지만 이곳에 있을 동안 소리를 배울 수 없을까요? 학생지도에도 필요할건데 ~"
"몇년씩 배워도 못하는데 ~ 금방 유행가처럼 따라 부를 수는 없을거요 ~ 허허허"
"그래도 ~ 시작이 절반이라는 속담이 있잖아요 ~ 꼭 배우고 싶어요 ~"
"그렇게 부탁하니 ~ 배우기 쉬운 단가를 조금 가르쳐 줄게요 ~"
"네에 ~ 정말 감사합니다 ~ 그럼 사부님, 인사 받으십시오 ~"
명순이가 벌떡 일어나 방바닥에 머리를 조아리고 주인아줌마에게 날아갈 듯 큰절을 하였다
허허허
하하하
호호호
히히히
그날 밤 부터 ~
명순이는 기생 퇴기(?) 여주인에게 판소리 배웠다
춘향가 중 쑥대머리 ~ 사랑가 ~ 이산저산 ~ 태평가 ~ 창부타령 ~ 등
우리의 옛소리는
구전 = 口傳 = 말로 소리로 전하여 내려왔기에
서양음악처럼 악보가 없어, 수많은 반복연습으로 사제지간에 직접 전수해야만 했는데
어릴적부터 순이에게서 노래를 배운바 있는 명순이는
귀가 밝았고, 목청이 고와
주인아줌마의 가르침(범창)을 잘 새겨듣고 금방 금방 따라하는 것이 신통하였다
아침 9시엔 부녀가 손잡고 송광사에 사시불공을 드리러 다녀오고
오전, 오후,
밤까지 명순이가 판소리 배우는 것을 너무도 열심히 하였다
당초에는 3일정도 유하려 했으나 ~
소리공부를 위해 5일간을 그곳에서 지냈다
밤이면 부녀가 넓은 방에 이브자리 두개를 펼치고 잠을 잤다
잠 자다가 말고 ~
방안이 춥다는 핑게로 명순이가 츄리닝 차림으로 내 품안에 안겨 들 때면
다 큰 처녀아이의
탱탱하고 탄력있는 가슴이며 빵빵한 히프가 내 몸에 물컹 부딪혔고
귓가에 섹 섹 거리는 숫처녀의 고른 숨결이 천리향 꽃내음처럼 향기롭게 풍겨났다
(명순이는 운동선수 생활을 하면서 밤이면 혈액순환을 위해 브라자를 하지 않았음)
더욱이 새벽녁이 되면 ~
어릴적 함께 자면서 하던 습관대로
한쪽 다리를 내 허벅지에 올려놓으면서 사타구니를 바짝 밀어부칠 때면
발기부전으로 무덤덤 했던 나의 자지에 묘한 자극과 감흥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
엄연한 근친중에 근친, 한 핏줄 부녀지간 아닌가?
19살 처녀의 옴팡진 궁둥이를 토닥토닥 두들겨 주면서
밤이면 굿나잇 키스 ~
아침이면 굿모닝 키스 ~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별다른 썸씽이 없었다
송광사 민박집에서 5일을 지내고 길을 나섰다
벌교읍 ~
보성읍 ~
강진읍에 도착하여,
유명한 한정식 해0식당에 찾아가 푸짐한 점심상을 받았는데
청운한정식 음식과는 또 다른 별미가 느껴저
가지고 갔던 사진기로 상 위에 음식들을 여러장 사진 찍었다
정약용선생이 목민심서를 저술하신 다산초당과 백련사에 잠시 들린 다음 ...
오후 석양 무렵에는 해남땅 대흥사에 들렸다
두륜산 자락에 자리한 대흥사는 명실공히 명당중에 명당 터였다
통일신라 후기 창건된 오랜역사를 지녔는데도
화마의 피해가 한 번도 없었고
임진왜란 병자호란 양대 외침 때에도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은 천하제일 요새?
대웅전과 천불전에 공손히 참배드린 후에 ...
임진왜란 당시 승군의 총사령관이었던 서산대사 의발이 모셔진 표충사와
우리나라 차 문화의 창시자 초의선사의 초당 등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아빠 ~ 강진에서 점심을 잘 먹었는데 ...
해남에서 더 멋진 식당을 찾아봐요 ... 네에 ~!
각 지방마다 음식의 재료가 다르고 솜씨가 다를텐데
특히 남도의 음식문화는 그 이름이 전국적으로 유명하잖아요
상차림과 음식들을 사진 찍어 엄마와 외숙모께 보여드리면 아주 좋아하실 것 같아요~"
"그러자꾸나 ~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 자아, 맛갈진 먹거리를 찾아서 고고 씽 ~!"
히히히
하하하
(참고 :
해남과 강진 등 남도여행지에는 유명 한정식 식당이 많이 있는데
일설에는 천혜의 무공해 자연산 농수축산물 산지에
한양에서 귀양살이 내려온 명문가 양반 후손들이 도성의 음식문화를 접속하여
별미의 음식을 탄생시켰다는 풍문이 전해지고 있었음)
1924년 해남 땅에서 처음 문을 열어
3대에 걸쳐 유명세를 타고 있는 시장골목의 천0관을 찾아가 한정식을 시켰는데
4인기준 한 상 차림이라 둘이 먹으면서도 4인분 값을 지불해야 했지만
명성 그대로 ~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다양한 음식들을 배가 터지도록 포식하였다
다음날 아침 ~
바다와 섬 구경을 하고 싶다는 명순이 뜻에 따라
해남 땅끝마을에서 배를 타고 완도군 노화면의 보길도(윤선도 유적지) 구경을 나섰다
고산 윤선도는 보길도에서
13년이나 은거했고 이곳의 자연과 친구가 됐다고 전해진다
물과 돌과 소나무, 대나무, 달을 일컬어 다섯 친구라 부르며
자연과 함께 생활하면서
유명한 "오우가" 시를 지은 곳이기도 하며
(장충동 집에도 오우가를 흉내내어 ~ 작은연못, 수석, 소나무, 대나무, 보름달이 있다)
그의 시조
‘어부사시사’에 그대로 남아있는 보길도의 자연은 수백 년 세월이 지나도
그 모양 그대로 남아있었는데 ~
세연정, 옥소대, 부용동, 동천석실, 등
고산이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기던 흔적들이 고스란이 남아있었다
하얗게 눈이 쌓인 보길도의 겨울 찬바람이 매서웠다
너무 많이 걸었기 때문에 다리도 아프고 춥기도 하여 선착장 부근의 식당에 부탁 ~
하룻밤 민박집을 정했는데
전복회, 돌김, 생굴, 바지락, 생미역무침, 우럭매운탕 등 ~
저녁 상차림이 제법 풍성하였다
"아빠 ~
식당 메뉴판을 보았더니 전복이 허약한 몸에 좋다네요 ~ 많이 많이 드세요
단백질과 비타민이 풍부하고, 중년인의 강장 정력식품으로 최고의 건강식이래요 ~"
"허어 ~ 명순이 너는 가는 곳마다 알아보는 것도 빠르구나 ~!"
"그래서 아빠 여행비서 노릇하잖아요 ~ 히히히"
건강에 좋다는 전복회와 전복구이를 추가로 시켜 부녀가 배불리 먹으면서
반주로 소주 한 잔씩을 따라 건배주도 마셨다
"이제 우리 딸도 어엿한 대학생인데 ~ 술 한 잔은 마실 수 있겠지~?"
"네에 ~ 처음이지만 마셔 볼게요 ~ 우리 건배해요 ~!"
"아빠의 빠른 쾌유를 위하여 ~!"
"김명순선생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
하하하
히히히
한겨울인지라 관광객도 뜸 하였고, 식당안에 손님이라곤 우리 부녀뿐 ~!
"명순아 ~ 송광사 민박아줌마 한테 배운 판소리 한 번 해볼래 ~?"
"지금, 여기서요 ~?"
"그래 ~
바다가 있고,
섬이 있고,
조금 기울었지만 하현달도 창공에 떠 있고,
그리고 아빠와 딸이 마주앉아 한 잔 술에 취하니 ~ 우리도 오우가 주인공 아니냐~?
350년전 부용동의 시조문학 대가이신 고산 윤선도선생이 부럽지않구나 ~ 후후후"
"와우 ~
우리 아빠께서 예전처럼 큰 소리로 멋진 말씀을 해주시네요 ~
역시 전복의 효과가 대단한가 봐요 ~ 히히히"
짜증은 내어서 무엇하나 성화는 바치어 무엇하나
속상한 일이 하도 많으니 놀기도 하면서 살아가세...
니나노 ~ 늴리리아 늴리리아 ~ 니나노 ~
얼싸 좋아 얼씨구나 좋다,
벌나비는 이리저리 펄 펄 ~ 꽃을 찾아서 날아든다 ...
명순이가 방상머리에 젓가락 장단을 쳐가며 청아한 목소리로 태평가를 부르다가
스스로 흥에 겨워 자리에 벌떡 일어서서 ~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기 시작했는데
명순이의 태평가 민요소리를 듣고
식당 주인 내외와 마을주민 세 사람이 안방에서 얼굴을 삐죽 내밀더니 ~
너울너울 춤을 추는 명순이를 향해
"얼씨구 잘한다"
"짝 짝 짝"
박수를 치면서 명순이에게 앵콜송을 요청하였다
"에구 ~
서울 여학생 같은데, 아버지를 위해 구성진 노래에 멋진 춤 까지 ~
참으로 다정한 부녀지간이 정말 부럽소이다 ~"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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