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이슈가 많은 만큼 더 빨리 흘렀다.
금융 위기가 몰고온 위기감이 무척이나 많이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체감하기는 어렵다.
매출 목표를 달성하기가 쉽지 않아 보이기는 하지만, 회사에 어려움이 없고, 월급이 제대로 나오고 있으니, 남들이 아무리 위기라고 해도 실감이 잘 나지 않는 상황이다.
거기다 대통령선거를 위한 온갖 공세에다, 루머들까지 난무하니 여러가지들이 서로 겹쳐서 대화거리들도 많아졌고 하루 하루가 빠르게 흘러갔다.
직원들은 현석과 지수와의 관계를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이 얼마나 다행인가.
현석은 이제 지수의 집에 아예 눌러 살다시피 하고 있다.
그녀가 마법에 걸리는 날을 제외하고는 현석을 놓아주지도 않는다.
이곳으로 온 뒤에 그녀가 마법에 걸려서 1주일 정도를 그냥 지나간 적이 있었다.
그때, 그녀는 현석의 품에 꼭 안겨서 잠이 들면서, 불평이 많았었다.
간혹은, 현석은 이러다가 말라 죽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었다.
그런데, 결혼도 하지 않은, 동거상태인데 게속 이래도 되나?
정말 계속 이래도 되는걸까?
현석은 지수의 가족들과 어느정도 알 수 있는 단계를 기다리긴 했다.
그러나 그 부분에서는 현석도 지수도 서로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가슴 한 곳에 무언가 계속하여 허전한 그 무언가가 있다.
그것이 무었일까?
답답했다.
지수와의 관계도 이렇게만 끌고 갈 수는 없었다.
친구들과의 만남이 있던 10월의 두번째 금요일.
열 명이라 해서 십인 회이고 언제나 부부동반이었고 열쌍이 모였다.
그렇지만, 남자는 10명인데, 여자는 항상 9명이다.
현석이 아내를 데려간 적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하영이 거기에 가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으니까.
지난번 모임에서 이혼사실을 알려서 지금은 친구들이 이혼한 사실을 알고 있기에 이번에는 꼭 데려 오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초저녁, 아직 식사가 제대로 배달 되지도 않았는데 친구 한 명이 좌중을 둘러보고 말했다.
부부 동반으로 열 아홉 명이나 된다. 여전히 현석은 싱글이다.
"야. 내 말 좀 들어봐라. 현석이 이야긴데."
"뭔데? 뭔데?"
좌중은 각각 한마디씩 거들었다.
"다음 모임부터는 싱글은 못 오게 하는 거 어떠냐?"
"찬성이요."
현석이 이순호를 쳐다 보았다.
이순호가 현석을 보고 싱긋 웃는다. 이순호는 알고 있으니.
"그래 맞다. 현석이 여기 참석 시킬라면 빨리 애인하나 구해 줘라."
"야. 친구야. 애인 없냐 아직도?"
"뭐하냐. 너는?"
여러가지 반응이 나왔다.
그 때 모임 회장을 맡고 있는 오창기가 나섰다.
"그거 좋은 생각이다. 그렇게 라도 해야 현석이 새 장가를 갈 거 아니냐? 야. 현석아 정말 주위에 여자 한 명도 없냐?"
"....."
대답을 안하고 맥주를 한잔 들이켰다.
그렇잖아도 오늘 친구들에세 부탁을 할 참인데 오창기가 시동을 걸어줘서 고마울 뿐이다.
시동을 걸었으니, 거기에 편승하면 일이 쉬워질 수 있을 것 같다.
"너, 그래도 대학 다닐 때는 여자들한테 인기 꽤나 있었는데. 정말 없냐? 이실 직고 해라.”
또 다른 친구의 말이다.
“맞아요. 저런 멋진 친구이고, 목소리도 너무 매력적인데. 없을리가 없을 것 같아요.”
오창기의 아내가 맞장구를 친다.
“얼굴에 걱정이 없는 것으로 봐서 분명히 있는 것 같다. 빨리 말 해라."
"말 해라."
"그래 말 해 임마."
한꺼번에 주위에 있는 친구들이 다그치자 현석은 손을 들어 대중을 제지했다.
"있다."
"와. 봐라 저친구가 저렇다니까. 몇 살이냐?"
"스물 일곱."
현석은 순순히 대답을 했다.
이제 이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니까.
"뭐?"
"뭐라고?"
"저런 도동놈을 봤나."
반응들이 경악하는 반응들이다.
한명이 도둑놈이라고 말하지 않고, 도동놈이라고 말하면서 그 말을 강조했다.
"이런 날강도 같은 놈아. 장가 두 번도 보통이 아닌데 뭐 어째? 스물 일곱?"
"현석씨 능력 있네."
제각기 한마디씩 한다.
옆에서 친구의 아내들도 거들었다. 창기가 말을 받았다.
"소개 안 하나?"
"글쎄. 기회를 못 만들어서."
현석은 대충 얼버무렸다.
속으로는 오늘 너희들이 좀 도와 줘야 한다 라고 속으로 말했다.
"맘에 드냐?"
"맘에 든다."
"널 좋아하냐?"
"나 밖에 모르는 여자다."
일기장에서 봤으니, 정말 자신있게 대답해도 될것이다.
창기가 계속해서 물었다. 친구들은 귀를 기울여 듣고 있었다.
"얼마나 좋아하는데?"
"내가 죽으라면 진짜 죽을 여자다."
"그래? 이 친구 봐라. 그새 그렇게 됫나? 그런데 누구냐. 어떤 사람이냐 도대체."
"직원."
직원이라고 대답했다.
이순호는 이미 알지만 모두에게는 처음 밝히는 것이다.
분위기가 그렇게 만들었으니 어쩔 수가 없다. 또 거짓으로 둘러 댄들 알게 될 것인데 솔직히 말하지 뭐. 그런 생각도 들었다.
"뭐라고?"
"저 강도 같은 놈."
"에이 날강도야."
"야 임마 들아 무슨 소리냐? 능력이지."
"그래도 나이차가 너무 많다."
또 제각각 한마디씩 한다. 현석이 말을 받았다.
"야, 그럼 소개 하지 말고 헤어지리?"
현석이 큰소리로 물었다.
"그럼 안되지. 홀아비가 또 어디서 여자를 찾을 거냐?"
이때 이순호가 나섰다.
이순호를 비롯한 몇 명은 일 때문에 회사에 온 적이 있다.
"야 가만 있어 봐. 네 부서에 있는 직원이냐?"
이순호는 전혀 모르는것처럼 현석에게 물었다.
사전에 약속을 한것도 아닌데, 다른 친구들과 꼭같이 모르는 상태인것처럼 하고 있는 것 같다.
"응."
현석은 그렇게 대답했다.
"어느 정도냐? 키스했지?"
"그래."
"그 다음은 어느 정도냐? 그러니까 부부처럼 지내냐 아니냐를 물어 보는 거다."
거짓말 할 수도 있었다.
"전자다."
"그럼 되었네. 프로포즈 했나?"
"아니."
"에라이 이놈아. 오늘 해라. 당장. 지금 가자."
"..."
현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아니다."
이순호가 아니라고 말하며 잠시 말을 끊더니 친구들을 둘러보고 다시 말을 이어 갔다.
"야 친구들아. 그 직원이 미스코리아가 서러워서 울고 갈 정도로, 정말 여신급의 미인이다.
내가 현석이 회사에 몇번 가 본적 있잖아?
바로 눈에 뜨이더라.
너희들 알다시피 내가 광고회사 하니까, 정말 예쁜 모델도 보고, 정말 예쁜 연예인들도 많이 보지만, 그 직원하고 비교하면, 모델하는 여자들이나, 제법 미인이라고 하는 연예인들도 전부 잡초들이다.
내가 처음 보는 그날 눈을 못돌렸잖아?
아마 한 번 보면 절대로 못 잊을 거다."
친구들로부터 와아~ 하는 함성이 나왔다.
다들, 한마디씩 또 했다. 진짜냐? 그러냐? 얼마나 미인이냐? 얼굴 한 번 보자.
이순호는 말을 계속 이어 갔다.
"너. 결혼할 마음 있지?"
"....."
"있어? 없어?"
이순호가 채근을 했다.
"있다. 그 사람이 받아 주면."
"근데 왜 이러고 있냐? 프로포즈 안하고?"
"내가 자격이 없잖냐?"
그렇게 대답했다. 무조건 받아 줄 것이다. 그녀도 원할 것이니까.
"뭐가 자격이 없냐?"
"너희들이 정말 몰라서 물어 보나?"
현석이 의도한대로 잘 되어 가고 있는것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너한테 뭐가 문제인데?"
"이혼 남에다가 나이도 많지. 가진 건 개 뿔도 없지."
"야 이놈아. 싱글이지. 능력있지. 미남이지. 너한테 죽고 못산다면서?"
"....."
"그 정도면 된거지 뭐가 더 필요하냐?"
한 녀석씩 돌아가면서 질문하고 답하는 사이에 이렇게 분위기가 만들어 졌다.
"야. 그럼 오늘 모임 밥만 먹고 파장 하자.
그리고, 이친구 이거 이대로 놔두면 프로포즈도 못하고 흐지부지 될 수도 있을 것 같으니까 우리가 좀 도와주자.
이친구 프로포즈 하는데 들러리 서 주러 가는게 어떠냐?
혹시 반대하는 사람 있나?"
오창기가 좌중을 둘러보고 물었다.
“없다.”
“찬성이다.”
“우리도 찬성이예요.”
모두다 없다고 한다.
친구의 아내들도 찬성했다.
사실, 이렇게 되어주기를 바랬다.
분위기가 이렇게 만들어지지 않았으면, 도와달라고 했을 판이다.
그런데 분위기가 그렇게 밀고 간다.
친구들이 술은 취소하고 식사만 빨리 달라고 했다.
이순호가 말을 받아서 계속했다.
"야. 이 나이에 현석이가 프로포즈하는데 대충 하면 안되잖아?
들러리도 확실히 서야지.
너희들 각자 자기가 아는 꽃집에 장미 백송이 씩 꽃바구니 만들어서 지금이 일곱시 반이니까 아홉 시까지 배달 하라고 그래라. 그리고 우리 십인회 이름으로 하나. 그러면 전부 열 바구니 된다. 문제 있나?"
"없다."
모두 합창을 하고 여자들은 박수를 치고 떠들썩 했다.
"야 현석아 집이 어디냐."
"집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데."
혹시 그녀가 본가에 가 있을지 모른다. 그것만은 확인을 못 해봤다.
현석이 없는 집에 있을지 없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럼 전화 해 봐라 지금."
"현석이 전화한다. 모두 조용 해 봐라."
이순호가 좌중을 조용히 시켰다.
현석이 전화를 했다. 그녀가 받았다.
"엘리?"
"응."
"사랑해."
"헨리. 나두 사랑해. 지금 친구들이랑 만나고 있는거 아냐?"
"응 그래. 그런데 친구들이 엘리 보고 싶다는데. 집에 데리고 가도 돼?"
"음, 와도 되지만. 지금?"
"응."
"알았어 모시고 와."
"그래 한 시간 반 뒤에."
"응. 준비할거 없어?"
"저녁은 먹고 갈 거니까 술만 좀 준비해 모두 스무 명이야. 엘리랑 나까지 합쳐서, 준비 좀 해줘."
"응 알았어."
"끊어. 사랑해."
전화가 끊겼다. 박수와 휘파람과 탄성이 실내를 모두 덮었다.
"야. 이친구 전화하는 거 보니깐 속이 다 간지럽네. 목소리 기똥차게 예쁘네. 야. 김현석. 너 최고다. 그리고 니 통화하는 거 보니까 끝났다. 이름이 뭐냐? 그리고 집은 어디냐?”
“이름 한지수, 나이 스물일곱, 집은 서래마을 00 연립 301호.”
현석은 요약해서 말해 주었다.
친구들이 모두 전화를 해서는 프로포즈용이니까 장미 바구니를 장미 백송이 예쁘게 만들어서 정확히 아홉 시에 배달 하라고 한다.
빨라도 안되고 늦어도 안되니 정확히 아홉 시까지.
연립의 경비실 앞에 가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라고 하고는 끊었다.
친구들이 고맙다.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할 생각으로, 그 이전에 친구들이 이 상황을 만들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오창기와 이순호의 질문에 대답을 했다.
청하기 전에 이 분위기를 만들어준 친구들이 고맙기 그지 없다.
반지는 이미 사 두었었다.
이순호의 회사에서 사진을 출력하면서 생각했던 것이었고, 몇일뒤에는 준비를 했었다.
그리고 오늘 주머니에 넣고 나왔다.
친구들에게 도와 달라고 할 생각까지 하고 왔으니.
“야, 이친구, 멋지다.”
이순호가 샴페인을 사면서 하는 말이다.
“고맙다.”
“너 이걸 생각했던거 맞지?”
“유감스럽게도 맞다.”
“이런 여우 같으놈. 프로포즈 한번 멋지게 할려고 하는구만.”
“그래, 내 다음에 술한번 거하게 사마.”
“잊지 마라. 그말.”
“그럼. 당연하지.”
잔이 집에 스무개 있었나? 모르겠다.
장 속에 몇 개 있는건 보았지만 스무개는 아니다.
이순호가 잔도 사야 한단다.
그래서 현석이 잔 스무개를 샀다.
술 때문에 다들 차를 안 가져 왔으니 택시로 이동했다.
모범택시들이 줄지어 연립 앞으로 들어섰다.
시간은 거의 맞게 왔다.
꽃바구니 하나가 도착한다.
그 뒤로 계속 들어오고 있었다.
친구들은 각각 꽃바구니를 받아 들었다.
아홉 팀이 다 모였다. 꽃바구니 열 개까지.
현석이 문 앞에 기다리고 서고 친구들이 차례로 입구로 올라왔다.
그 좁은 곳에 빽빽하게 들어섰고 자리가 부족해서 계단 아래위로 섰다.
현석은 심호흡을 크게 하고 벨을 눌렀다. 열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고 싶었다.
지수가 인터폰으로 보다가 문을 열었다.
"축하합니다. 한 지수씨."
친구들이 뒤에서 합창을 했다.
"어서 오세요."
지수는 어서 오라는 말은 했지만,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춤주춤 뒷 걸음으로 거실로 들어갔다.
지수는 손님이 올 것을 알고 있다 보니 깨끗한 정장으로 갈아 입고 거실과 부엌에는 술과 안주가 준비되어 있었다.
현석이 들어가고 친구들이 따라 들어왔다.
친구들의 아내들까지 들어와서는 거실을 빙 들러 섰다. 손에는 커다란 장미 바구니를 들고.
거실이 넓기 천만 다행이다.
"어서 오세요. 그런데."
"엘리. 여기 서 봐."
"네."
현석은 거실의 가운데에 지수를 세웠다.
집이 넓기를 다행이다. 거실이 워낙 넓은 까닭에 그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도 괜찮은 것 같다.
현석과 지수 외에도 열 여덟 명이 다 들어와서 도열을 하고는 각자의 앞에 장미 바구니를 내려 놓았다.
(계속)
(이별 그리고 사랑)의 연재 첫날이 2013년 11월 17일이었는데, 이번회가 2014년 3월 17일이니 벌써 4개월이 되었군요.
프로포즈를 하게 된 날이, 4개월째 되는날이라서 기쁘기도 하구요.^^
------- 뜨락에
금융 위기가 몰고온 위기감이 무척이나 많이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체감하기는 어렵다.
매출 목표를 달성하기가 쉽지 않아 보이기는 하지만, 회사에 어려움이 없고, 월급이 제대로 나오고 있으니, 남들이 아무리 위기라고 해도 실감이 잘 나지 않는 상황이다.
거기다 대통령선거를 위한 온갖 공세에다, 루머들까지 난무하니 여러가지들이 서로 겹쳐서 대화거리들도 많아졌고 하루 하루가 빠르게 흘러갔다.
직원들은 현석과 지수와의 관계를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이 얼마나 다행인가.
현석은 이제 지수의 집에 아예 눌러 살다시피 하고 있다.
그녀가 마법에 걸리는 날을 제외하고는 현석을 놓아주지도 않는다.
이곳으로 온 뒤에 그녀가 마법에 걸려서 1주일 정도를 그냥 지나간 적이 있었다.
그때, 그녀는 현석의 품에 꼭 안겨서 잠이 들면서, 불평이 많았었다.
간혹은, 현석은 이러다가 말라 죽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었다.
그런데, 결혼도 하지 않은, 동거상태인데 게속 이래도 되나?
정말 계속 이래도 되는걸까?
현석은 지수의 가족들과 어느정도 알 수 있는 단계를 기다리긴 했다.
그러나 그 부분에서는 현석도 지수도 서로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가슴 한 곳에 무언가 계속하여 허전한 그 무언가가 있다.
그것이 무었일까?
답답했다.
지수와의 관계도 이렇게만 끌고 갈 수는 없었다.
친구들과의 만남이 있던 10월의 두번째 금요일.
열 명이라 해서 십인 회이고 언제나 부부동반이었고 열쌍이 모였다.
그렇지만, 남자는 10명인데, 여자는 항상 9명이다.
현석이 아내를 데려간 적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하영이 거기에 가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으니까.
지난번 모임에서 이혼사실을 알려서 지금은 친구들이 이혼한 사실을 알고 있기에 이번에는 꼭 데려 오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초저녁, 아직 식사가 제대로 배달 되지도 않았는데 친구 한 명이 좌중을 둘러보고 말했다.
부부 동반으로 열 아홉 명이나 된다. 여전히 현석은 싱글이다.
"야. 내 말 좀 들어봐라. 현석이 이야긴데."
"뭔데? 뭔데?"
좌중은 각각 한마디씩 거들었다.
"다음 모임부터는 싱글은 못 오게 하는 거 어떠냐?"
"찬성이요."
현석이 이순호를 쳐다 보았다.
이순호가 현석을 보고 싱긋 웃는다. 이순호는 알고 있으니.
"그래 맞다. 현석이 여기 참석 시킬라면 빨리 애인하나 구해 줘라."
"야. 친구야. 애인 없냐 아직도?"
"뭐하냐. 너는?"
여러가지 반응이 나왔다.
그 때 모임 회장을 맡고 있는 오창기가 나섰다.
"그거 좋은 생각이다. 그렇게 라도 해야 현석이 새 장가를 갈 거 아니냐? 야. 현석아 정말 주위에 여자 한 명도 없냐?"
"....."
대답을 안하고 맥주를 한잔 들이켰다.
그렇잖아도 오늘 친구들에세 부탁을 할 참인데 오창기가 시동을 걸어줘서 고마울 뿐이다.
시동을 걸었으니, 거기에 편승하면 일이 쉬워질 수 있을 것 같다.
"너, 그래도 대학 다닐 때는 여자들한테 인기 꽤나 있었는데. 정말 없냐? 이실 직고 해라.”
또 다른 친구의 말이다.
“맞아요. 저런 멋진 친구이고, 목소리도 너무 매력적인데. 없을리가 없을 것 같아요.”
오창기의 아내가 맞장구를 친다.
“얼굴에 걱정이 없는 것으로 봐서 분명히 있는 것 같다. 빨리 말 해라."
"말 해라."
"그래 말 해 임마."
한꺼번에 주위에 있는 친구들이 다그치자 현석은 손을 들어 대중을 제지했다.
"있다."
"와. 봐라 저친구가 저렇다니까. 몇 살이냐?"
"스물 일곱."
현석은 순순히 대답을 했다.
이제 이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니까.
"뭐?"
"뭐라고?"
"저런 도동놈을 봤나."
반응들이 경악하는 반응들이다.
한명이 도둑놈이라고 말하지 않고, 도동놈이라고 말하면서 그 말을 강조했다.
"이런 날강도 같은 놈아. 장가 두 번도 보통이 아닌데 뭐 어째? 스물 일곱?"
"현석씨 능력 있네."
제각기 한마디씩 한다.
옆에서 친구의 아내들도 거들었다. 창기가 말을 받았다.
"소개 안 하나?"
"글쎄. 기회를 못 만들어서."
현석은 대충 얼버무렸다.
속으로는 오늘 너희들이 좀 도와 줘야 한다 라고 속으로 말했다.
"맘에 드냐?"
"맘에 든다."
"널 좋아하냐?"
"나 밖에 모르는 여자다."
일기장에서 봤으니, 정말 자신있게 대답해도 될것이다.
창기가 계속해서 물었다. 친구들은 귀를 기울여 듣고 있었다.
"얼마나 좋아하는데?"
"내가 죽으라면 진짜 죽을 여자다."
"그래? 이 친구 봐라. 그새 그렇게 됫나? 그런데 누구냐. 어떤 사람이냐 도대체."
"직원."
직원이라고 대답했다.
이순호는 이미 알지만 모두에게는 처음 밝히는 것이다.
분위기가 그렇게 만들었으니 어쩔 수가 없다. 또 거짓으로 둘러 댄들 알게 될 것인데 솔직히 말하지 뭐. 그런 생각도 들었다.
"뭐라고?"
"저 강도 같은 놈."
"에이 날강도야."
"야 임마 들아 무슨 소리냐? 능력이지."
"그래도 나이차가 너무 많다."
또 제각각 한마디씩 한다. 현석이 말을 받았다.
"야, 그럼 소개 하지 말고 헤어지리?"
현석이 큰소리로 물었다.
"그럼 안되지. 홀아비가 또 어디서 여자를 찾을 거냐?"
이때 이순호가 나섰다.
이순호를 비롯한 몇 명은 일 때문에 회사에 온 적이 있다.
"야 가만 있어 봐. 네 부서에 있는 직원이냐?"
이순호는 전혀 모르는것처럼 현석에게 물었다.
사전에 약속을 한것도 아닌데, 다른 친구들과 꼭같이 모르는 상태인것처럼 하고 있는 것 같다.
"응."
현석은 그렇게 대답했다.
"어느 정도냐? 키스했지?"
"그래."
"그 다음은 어느 정도냐? 그러니까 부부처럼 지내냐 아니냐를 물어 보는 거다."
거짓말 할 수도 있었다.
"전자다."
"그럼 되었네. 프로포즈 했나?"
"아니."
"에라이 이놈아. 오늘 해라. 당장. 지금 가자."
"..."
현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아니다."
이순호가 아니라고 말하며 잠시 말을 끊더니 친구들을 둘러보고 다시 말을 이어 갔다.
"야 친구들아. 그 직원이 미스코리아가 서러워서 울고 갈 정도로, 정말 여신급의 미인이다.
내가 현석이 회사에 몇번 가 본적 있잖아?
바로 눈에 뜨이더라.
너희들 알다시피 내가 광고회사 하니까, 정말 예쁜 모델도 보고, 정말 예쁜 연예인들도 많이 보지만, 그 직원하고 비교하면, 모델하는 여자들이나, 제법 미인이라고 하는 연예인들도 전부 잡초들이다.
내가 처음 보는 그날 눈을 못돌렸잖아?
아마 한 번 보면 절대로 못 잊을 거다."
친구들로부터 와아~ 하는 함성이 나왔다.
다들, 한마디씩 또 했다. 진짜냐? 그러냐? 얼마나 미인이냐? 얼굴 한 번 보자.
이순호는 말을 계속 이어 갔다.
"너. 결혼할 마음 있지?"
"....."
"있어? 없어?"
이순호가 채근을 했다.
"있다. 그 사람이 받아 주면."
"근데 왜 이러고 있냐? 프로포즈 안하고?"
"내가 자격이 없잖냐?"
그렇게 대답했다. 무조건 받아 줄 것이다. 그녀도 원할 것이니까.
"뭐가 자격이 없냐?"
"너희들이 정말 몰라서 물어 보나?"
현석이 의도한대로 잘 되어 가고 있는것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너한테 뭐가 문제인데?"
"이혼 남에다가 나이도 많지. 가진 건 개 뿔도 없지."
"야 이놈아. 싱글이지. 능력있지. 미남이지. 너한테 죽고 못산다면서?"
"....."
"그 정도면 된거지 뭐가 더 필요하냐?"
한 녀석씩 돌아가면서 질문하고 답하는 사이에 이렇게 분위기가 만들어 졌다.
"야. 그럼 오늘 모임 밥만 먹고 파장 하자.
그리고, 이친구 이거 이대로 놔두면 프로포즈도 못하고 흐지부지 될 수도 있을 것 같으니까 우리가 좀 도와주자.
이친구 프로포즈 하는데 들러리 서 주러 가는게 어떠냐?
혹시 반대하는 사람 있나?"
오창기가 좌중을 둘러보고 물었다.
“없다.”
“찬성이다.”
“우리도 찬성이예요.”
모두다 없다고 한다.
친구의 아내들도 찬성했다.
사실, 이렇게 되어주기를 바랬다.
분위기가 이렇게 만들어지지 않았으면, 도와달라고 했을 판이다.
그런데 분위기가 그렇게 밀고 간다.
친구들이 술은 취소하고 식사만 빨리 달라고 했다.
이순호가 말을 받아서 계속했다.
"야. 이 나이에 현석이가 프로포즈하는데 대충 하면 안되잖아?
들러리도 확실히 서야지.
너희들 각자 자기가 아는 꽃집에 장미 백송이 씩 꽃바구니 만들어서 지금이 일곱시 반이니까 아홉 시까지 배달 하라고 그래라. 그리고 우리 십인회 이름으로 하나. 그러면 전부 열 바구니 된다. 문제 있나?"
"없다."
모두 합창을 하고 여자들은 박수를 치고 떠들썩 했다.
"야 현석아 집이 어디냐."
"집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데."
혹시 그녀가 본가에 가 있을지 모른다. 그것만은 확인을 못 해봤다.
현석이 없는 집에 있을지 없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럼 전화 해 봐라 지금."
"현석이 전화한다. 모두 조용 해 봐라."
이순호가 좌중을 조용히 시켰다.
현석이 전화를 했다. 그녀가 받았다.
"엘리?"
"응."
"사랑해."
"헨리. 나두 사랑해. 지금 친구들이랑 만나고 있는거 아냐?"
"응 그래. 그런데 친구들이 엘리 보고 싶다는데. 집에 데리고 가도 돼?"
"음, 와도 되지만. 지금?"
"응."
"알았어 모시고 와."
"그래 한 시간 반 뒤에."
"응. 준비할거 없어?"
"저녁은 먹고 갈 거니까 술만 좀 준비해 모두 스무 명이야. 엘리랑 나까지 합쳐서, 준비 좀 해줘."
"응 알았어."
"끊어. 사랑해."
전화가 끊겼다. 박수와 휘파람과 탄성이 실내를 모두 덮었다.
"야. 이친구 전화하는 거 보니깐 속이 다 간지럽네. 목소리 기똥차게 예쁘네. 야. 김현석. 너 최고다. 그리고 니 통화하는 거 보니까 끝났다. 이름이 뭐냐? 그리고 집은 어디냐?”
“이름 한지수, 나이 스물일곱, 집은 서래마을 00 연립 301호.”
현석은 요약해서 말해 주었다.
친구들이 모두 전화를 해서는 프로포즈용이니까 장미 바구니를 장미 백송이 예쁘게 만들어서 정확히 아홉 시에 배달 하라고 한다.
빨라도 안되고 늦어도 안되니 정확히 아홉 시까지.
연립의 경비실 앞에 가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라고 하고는 끊었다.
친구들이 고맙다.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할 생각으로, 그 이전에 친구들이 이 상황을 만들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오창기와 이순호의 질문에 대답을 했다.
청하기 전에 이 분위기를 만들어준 친구들이 고맙기 그지 없다.
반지는 이미 사 두었었다.
이순호의 회사에서 사진을 출력하면서 생각했던 것이었고, 몇일뒤에는 준비를 했었다.
그리고 오늘 주머니에 넣고 나왔다.
친구들에게 도와 달라고 할 생각까지 하고 왔으니.
“야, 이친구, 멋지다.”
이순호가 샴페인을 사면서 하는 말이다.
“고맙다.”
“너 이걸 생각했던거 맞지?”
“유감스럽게도 맞다.”
“이런 여우 같으놈. 프로포즈 한번 멋지게 할려고 하는구만.”
“그래, 내 다음에 술한번 거하게 사마.”
“잊지 마라. 그말.”
“그럼. 당연하지.”
잔이 집에 스무개 있었나? 모르겠다.
장 속에 몇 개 있는건 보았지만 스무개는 아니다.
이순호가 잔도 사야 한단다.
그래서 현석이 잔 스무개를 샀다.
술 때문에 다들 차를 안 가져 왔으니 택시로 이동했다.
모범택시들이 줄지어 연립 앞으로 들어섰다.
시간은 거의 맞게 왔다.
꽃바구니 하나가 도착한다.
그 뒤로 계속 들어오고 있었다.
친구들은 각각 꽃바구니를 받아 들었다.
아홉 팀이 다 모였다. 꽃바구니 열 개까지.
현석이 문 앞에 기다리고 서고 친구들이 차례로 입구로 올라왔다.
그 좁은 곳에 빽빽하게 들어섰고 자리가 부족해서 계단 아래위로 섰다.
현석은 심호흡을 크게 하고 벨을 눌렀다. 열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고 싶었다.
지수가 인터폰으로 보다가 문을 열었다.
"축하합니다. 한 지수씨."
친구들이 뒤에서 합창을 했다.
"어서 오세요."
지수는 어서 오라는 말은 했지만,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춤주춤 뒷 걸음으로 거실로 들어갔다.
지수는 손님이 올 것을 알고 있다 보니 깨끗한 정장으로 갈아 입고 거실과 부엌에는 술과 안주가 준비되어 있었다.
현석이 들어가고 친구들이 따라 들어왔다.
친구들의 아내들까지 들어와서는 거실을 빙 들러 섰다. 손에는 커다란 장미 바구니를 들고.
거실이 넓기 천만 다행이다.
"어서 오세요. 그런데."
"엘리. 여기 서 봐."
"네."
현석은 거실의 가운데에 지수를 세웠다.
집이 넓기를 다행이다. 거실이 워낙 넓은 까닭에 그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도 괜찮은 것 같다.
현석과 지수 외에도 열 여덟 명이 다 들어와서 도열을 하고는 각자의 앞에 장미 바구니를 내려 놓았다.
(계속)
(이별 그리고 사랑)의 연재 첫날이 2013년 11월 17일이었는데, 이번회가 2014년 3월 17일이니 벌써 4개월이 되었군요.
프로포즈를 하게 된 날이, 4개월째 되는날이라서 기쁘기도 하구요.^^
------- 뜨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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