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석의 품속에서 지수는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제법 잦더니 몸이 개운한 것 같다.
벽에걸린 시계를 보니 11시가 넘었다.
이시간이면 대낮이다.
꽤 잔 것 같다.
하긴 어제 친구들의 도움으로 지수에게 프로포즈를 했고, 그 친구들이 늦도록 놀다가 새벽녁이 되어서야 돌아간 탓에 무척이나 피곤했다.
피곤하니 지수는 그냥 자자고 했었다.
그녀가 그냥 자자고 한 경우는 이 집에 와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녀가 마법에 걸렸던 기간을 제외하고는, 그냥 잠을 청한 경우는 없었던것 같다.
현석도 피곤했다.
현석은 프로포즈를 하고 수락을 한 날인데, 이 뜻깊은 날을 그냥 잘 수는 없다고 했지만, 그녀는 내일 두배로 사랑하자면서 자신을 샤워만 시켜 달라고 했었다.
그대신 내일은 전에 해 주었던 마사지도 해 줘야 한다고 요구를 하고는, 샤워만 하고 잠이 들었다.
하긴 그녀에게 샤워를 시켜주는 것 조차도 현석에겐 행복이다.
그러나 이 뜻 깊은날 그냥 잘 수 없다고 한 것은, 현석은 정말 그냥 자고 싶었지만, 순전히 그녀가 서운해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현석은 오히려 그녀가 그렇게 요구해 줘서 고마웠다.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동안 정말 많이 지치기도 했고, 밤도 너무 늦어서 정말 많이 피곤했기 때문이다.
몸에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지만, 그녀와 함께 언제나 알몸으로 자는 것이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렸고, 이 느낌은 참 좋은 느낌이다.
그녀도 원래부터 그랬는지, 아니면 현석과 함께 지내면서 그렇게 바뀐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옷을 입고 자는 것 보다 현석의 팔베개를 하고, 알몸으로 현석에게 안겨서 잠드는 것을 더 좋아한다.
늘 이렇게 자다보니 잠옷이라도 입고자면 거추장스럽다고 했다.
현석은 몸을 반쯤 일으켰다.
잠든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 보았다.
오전의 했살로 방안은 환하고, 그 했살에 비친 그녀의 행복해 보이는 얼굴은 미소까지 띠고 있다.
지수의 자는 모습을 내려다 본 것이 한번 두번은 아니다.
그러나, 그때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같게 해 주는 모습이다.
아직, 지수의 부모님을 포함한 가족들에게 허락을 받지 않은 상태이지만, 아니 그들은 현석의 존재를 아는지 모르는지 조차도 모르지만, 그녀에게 프로포즈를 했고, 그녀가 승락을 한, 이제는 진정 내 여자가 된 이후에 보는 것이다.
어름다운 모습, 사랑스러운 모습.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이 모습.
그녀를 향한 이 사랑의 마음은 영원히 변치 않으리라.
고운 머릿결에 손을 넣어보았다.
머리카락은 손가락 사이로 부드럽게 넘어간다.
얇은 홑이불 밖으로 드러난 그녀의 매끄러운 어깨위에 머리카락이 걸쳐졌다.
그녀의 젖가슴이 현석이 몸을 일으키며 빈 자리에 탱탱한 모습으로 그 아름다움을 내 보이고 있다.
이리도 예쁜 모습이라니.
이렇게도 사랑스러운 모습이라니.
숨이 멎을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가슴이 두근거린다.
두근, 두근, 두근.
또 가슴이 두근거려 온다.
현석은 가슴에 손을 얹고 심 호흡을 하며, 시선을 멀리 창을 향하면서 이 떨림이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비록 커튼이 가려 있기는 하지만, 커튼의 사이를 통해 바깥으로 눈길을 주고, 시간이 지나자 어느정도 두근거림이 가라 앉았다.
왜 이렇까?
왜, 그녀를 바라보다가 이런 두근거림이 계속되는 것일까?
진정이 되자, 현석은 천천히 그녀의 머리카락이 늘려진 어깨에 손을 얹고 매끄러운 감촉을 주는 그 부드럽고 행복한 느낌을 만끽했다.
그녀의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으응?”
어깨에 닿아 있는 손길 때문인지, 이마에 닿은 현석의 입술의 느낌 때문이었는지, 그녀가 몸을 움직이며 살며시 눈을 떳다.
“응? 깻네.”
“으응.”
그녀가 대답을 하면서 한손을 올려 현석의 목 뒤로 가져 왔다.
“나때문인가?”
“아니, 충분히 잔 것 같아. 정말 꿀맛 같은 잠이었어.”
“그래.”
현석은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갔다.
쪽~
소리가 났다.
그녀의 입술에 현석이 혀를 밀어 물기를 뭍혔다.
그리고 입 안으로 혀를 밀어 넣었다.
그녀가 현석의 혀를 입 안으로 빨아들였다가는 천천히 입안의 이곳 저곳으로 움직이다가 다시 그녀의 혀를 현석의 입 안으로 밀고 들어 왔다.
약간의 단내가 나는 그녀의 입안의 느낌이 전해졌다가 개운해졌다.
현석은 고개를 조금 들어서 그녀의 입술위에 자신의 입술이 살짝 닿아 있는 위치까지 움직였다.
달콤하다.
현석이 혀끝으로 그녀의 입술을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그녀의 혀가 현석의 혀를 따라 함께 움직였다.
작은 장난이지만, 언젠가 한번 이런 장난을 또 했던적이 있었는데, 감미로운 장난이다.
“입에서 냄새 안나?”
입술이 떨어져 나오자 그녀가 물었다.
“냄새? 응 맛있는 냄새 나는데.”
“거짖말. 양치도 안했는데.”
“진짜야.”
“헨리 입에서도 달콤한 냄새가 났는데.”
“자 물 한잔 먹고 올께.”
“으응. 내것도 가져다 줄거지?”
“그럼, 당연하지.”
현석은 가운을 대충 걸치고 가운에 달린 끈으로 앞자락을 묶으면서 거실로 나왔다.
헉.
그런데, 이 집안에, 현석과 지수 이외에 다른 사람이?
누구야?
도둑도 아니고?
뭐야?
아니 도둑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눈을 비비고 보니, 거실 소파에 곱게 나이든 아주머니 한분이 앉아 있다가 현석의 발소리에 현석을 쳐다본다.
아니, 누군가가 문을 열어 줄 리도 없었는데, 대체 누구야?
“자넨 누군가?”
고운 자태의 아주머니가 현석에게 나즈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뻥 쪘다.
그말이 맞을 것이다.
아직 잠도 덜깬 상태인데, 이 집안에서 한번도 본 적이 없는사람이 소파에 앉아서 자네가 누구냐고 물어보다니.
다시한번 눈을 비비면서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런데,
누굴 닮은 것 같다.
지수.
그녀다.
그녀를 닮은 고운 자태의 아주머니이다.
얼핏보기에 40대 초반처럼 보이는데.
머릿속을 굴렸다.
지수의 나이, 그리고 두 언니.
40대 초반은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그 아주머니는 너무 젊어 보인다.
그러나 닮았다는 것, 그것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딱 한 사람뿐이다.
침실 문은 열려 있었고, 아무소리도 안들렸었는데.
그럼, 좀전에 우리 두사람의 대화와 입맞춤의 소리와 이런 것들을 모두 들었다는 거?
놀람과 황당함.
이런저런 생각이 머릿속을 마구 휘 저었다.
그러나 현석은 그 고운 자태의 아주머니가 누구인지 느껴지자 말자 비록 가운 차림이지만 90도 각도로 인사를 했다.
“자넨, 누군데 내 딸과 함께 잠을 자고 있는건가?”
인사를 채 하기도 전에 아주머니로부터 다시 질문이 왔다.
정말 많이 닮았다.
지수가 나이 들면, 저렇게 곱게 늙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운 자태이다.
약간은 노기띤 음성.
크게 높은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무게가 느껴진다.
“죄송합니다. 아직 허락도 받지 않았는데, 이런 모습부터 보여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현석은 최대한 공손한 몸짖과 공손한 말투로 말했다.
“헨리, 누가 왔어?”
방 안에서 지수의 말소리가 들렸다.
지수의 말에 대한 대답은 나중이다.
현석은 고운 자태의 여인 앞에 다짜고짜 무릎을 꿇었다.
“김현석이라고 합니다.”
“옷부터 갈아입고 나오게.”
그때 침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실내화 끄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
그녀의 높아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 역시 가운을 몸에 걸쳤지만, 앞자락을 헐렁하게 묶어서 젖가슴이 일부 드러나 있었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옷 매무새를 바로 잡았다.
“엄마 어떻게 된거야? 언제왔어? 어떻게 연락도 없이?”
지수의 음성에 놀람이 가득 배어있다.
하긴 놀랐을것이다.
그런데, 연락도 없이 언제 왔느냐니?
그 질문이란 아마도 당황해서 나온것이리라.
“어떻게? 그게 문제냐 지금?”
반키 정도 언성이 높아진 고운자태의 여인은 지수를 향해 나무라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너도 옷 갈아입고 나오너라.”
현석은 허리를 직각으로 굽혀서 인사를 하고는 말없이 침실로 들어갔다.
물을 마시고 싶었던 마음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겠다.
침실로 향하고 있지만 머릿속이 온통 하얗다.
그 뒤를 지수 역시 말없이 따라 들어왔다.
딱 걸렸다.
이런걸 딱 걸렸다고 하지 않으면, 어떤것을 딱 걸렸다고 할 것인가?
생각을 좀 해보자.
느낌으로 봐서 지수의 어머니는 저 자세로 꽤 오래 앉아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집에 들어 온지도 꽤 되었다는 것이리라.
그리고 가능성이지만, 침실문을 들여다 보았을 수도 있다.
침실문은 있지만 언제나 열려있고, 닫아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침대에 현석과 지수가 나란히 누워자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사랑하는 딸.
그리고 그 옆에 누운, 때려죽여도 시원치 않을 웬 놈.
때려죽여도 시원치 않을? 이건 맞는지 모르겠지만,
웬 놈, 그건 맞지.
딸은 키워서 웬 소도둑 같은 놈에게 뺏기고,
아들은 키워서 불여우 같은 며느리에게 뺏긴다.
일부의 어른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현석도 많이 들었다.
장성하면, 독립시켜서 떠나 보낸다는 생각보다, 뺏긴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되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사위로 인정하게 될때까지는 웬놈이거나 죽일놈이 맞다.
그러나, 어느 부모가, 미혼의 딸이 외간 남자와 한 침대에, 그것도 발가벗고, 아니 벗은 모습을 보았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한 침대에 같이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고 기절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현석 같아도 목잡고 뒤로 넘어갈 일이다.
아니, 방으로 들어와서 이불을 잡아채고는 일으켜 세워서, 너 어떤 놈이냐고 소리소리 질러야 맞다.
평범한 부모님들이라면 그것이 지극히 정상이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
밖에서 달그락거리면서 일어날 수 있는 소음을 만들어서 깨울 수도 있었을텐데, 깨우지도 않았다.
정말 그 대단한 자제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얼마나 많이 생각했을까?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저놈을 인정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고, 뭐 하는 놈인지도 모르는데.
딸에게 언질을 받지도 않았는데?
아, 지수가 언질을 주었는지 아닌지, 그건 모르겠다.
그런데 인정하지 않으면, 저놈을 내 쫏고, 딸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가면, 딸은?
그렇게 강제로 찢어놓으면 딸은 행복할까?
여태 남자를 사귀지 않고, 남자라고 하면 치를 떠는 딸이었는데, 그런데 그딸이 남자의 품에 안겨 저렇게 행복한 모습으로 잠들어 있는데, 찢어 놓는게 맞을까?
그런것들을 충분히 생각했을 수 있다.
그간에 들었던 지수의 말을 종합해 보면, 집에서 남자를 소개시켜 주겠다에서부터 시작해서 별의 별 짖을 다했지만, 엠티 사건 이후로 남자들을 거들떠 적이 없다고 했었다.
그 때문에 부모님과 언니들이 정말 견디기 힘들 정도로 닥달을 했다고 했었다.
집안에서는 그런 지수를 보는 것을 힘들어 했었다고 했다.
그런데, 현석에게 비로소 마음의 문열 열고, 몸까지 열게 된 것이니,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좀 생각해 볼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지수의 어머니는 두 사람중 누구든 일어나서 나올 때까지 그 자세로 기다리면서 생각한 것은 무었일까?
정말 가슴이 싸아 해 지는 느낌이다.
바로 저런 모습이 진정 딸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것도 가장 예쁘고, 가장 귀하다는 셋째딸, 아니 막내딸인데.
결혼이 허락 된다면, 정말 내 어머니처럼 모시고 싶다.
어머니에게는 형도 있지만, 지수에게는 언니들만 있다고 했으니.
“잘 됫지뭐.”
지수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뭐가?”
현석도 속삭이듯 물었다.
“응. 어제 헨리가 프로포즈 했기에 이번주 아니면 다음주쯤 가족들에게 소개하려고 했거든, 그런데 엄마가 어찌 알고 이렇게 찾아 오셨는지, 어차피 알릴거였으니 잘 됫다구.”
“그렇긴 해도, 부모님께 허락도 받기전에 함께 자는 모습을 보여드리는건 예의가 아닌데, 좀 걱정이야.”
“보셨을까?”
지수는 두사람이 함께 자고 있는 모습을 보았느냐는 것이 궁금한 모양이다.
“그러신 것 같지만, 정작 봤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한 방에서 나오는걸 보셨잖아?”
“걱정하지마 헨리, 엄만 언제나 내편이거든.”
현석의 걱정에 지수가 팔을 잡으면서 걱정말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 두사람 관계를 어머니께 전혀 이야기 안했어?”
“응.”
그 와중에도 지수는 현석의 넥타이를 골라주고, 매어주기까지 했다.
자신의 옷을 챙겨 입으면서도 혹시 현석이 입은 옷 매무새가 어색한 것이 없는지 꼼꼼하게 살피고, 바로잡아주기까지 했다.
아무래도 어머니에게 처음 보이는 현석의 모습에 신경이 쓰인 모양이다.
현석은 지수의 어머니 이연지 여사의 앞, 소파에 앉지 않고, 바닥에 무릅을 꿇고 앉았다.
나랏님과 짝을 맺어주어도 아까운 딸일터인데, 그것이 부모 마음인데, 얼굴도 보기전에, 누구인지 알기도 전에, 한 침대에서 잠을 자는 꼴을 보았을 테니 이건 이유없이 무조건 무릎부터 꿇고 볼 일이다.
어떤 이유도 변명도 필요 없다.
곧 뒤따라 지수가 나왔지만, 그녀는 이연지 여사 옆으로 가서 앉았다.
“엄마. 미안해. 미리 말씀 못드려서.”
“너도 저기 가서 앉아.”
그러면서 현석을 가리켰다.
“엄마아.”
아. 되었다.
이 상황에서 그러면 안되지만, 지수에게 같이 무릅꿇고 앉으라는 말을 들으면서 현석은 속으로 안심을 했다.
이건 마음속으로 인정하신 것 같다.
딸의 배필로 인정된 것이다.
야단을 맞고, 욕을 먹겠지만, 이미 인정하기로 마음을 정한것이다.
하긴 이런 상황을 직접 보았는데, 인정하지 않기도 참으로 애매하긴 할 것이다.
얼마나 노여웠을까?
그러니 변명은 필요없을 것이다.
“난 너 같은 딸 둔 적이 없다.”
이연지여사의 말은 단호했다.
이 말을 들으니, 현석은 조금전에 마음속으로 이제 되었구나 라고 생각한 것이 잘못된 생각이었나 하고 잠시 생각했지만, 예로부터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하지 않던가?
비록, 모양 상으로로는 사전 허락도, 묵인도 없이 살림부터 차려서 동거를 시작한 모양이지만, 그래서 구박을 받게 될 수는 있겠지만, 그리고 상당한 어려움은 있겠지만, 현석과 지수의 마음이 확고하다면, 두사람이 결별하도록 하지는 않을것이다.
현석은 그리 믿고 있었다.
다만, 이 꼴을 보였으니 사위로 받아들여 지더라도 현석이 상당기간 시련을 이겨내야 할 것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산 사람의 강점이 무었이겠는가?
수많은 경험에 의해서 탄생되는 것이지만,
타인의 행동에서 나타나는, 그래서 예상되는 미래에 대한 것들이 별로 틀리지 않는다는것.
원하는 바를 무리없이 진행해 나갈수 있는 요령.
지금 지수의 어머니도, 통상적인 부모, 딸을 가진 부모의 패튼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것이다.
그리고, 이미 동거를 시작한 딸의 모습이다.
지수가 현석의 옆에 와서 무릅을 꿇었다.
“어머님, 따님에게는 잘못이 없습니다.”
현석은 일단 지수가 무릅을 꿇고 옆에 와서 앉는 것이 안좋다는 판단이 섰다.
“누가 자네 어머니인가?”
“엄마.”
“넌 조용히 있어.”
이연지 여사는 지수에게 버럭 고함을 질렀다.
이 상황에서 아무리 사랑스러운 딸이라도, 대충 용서하고 지나갈 수는 없다.
현석도 안다.
그러니 눈물이 쏙 나오도록 혼을 내야 한다.
처음에는 헤어지라고 해야 한다.
그리고 지수를 데리고 집으로 갈것이다.
그러면, 다시 찾아가서 무릅꿇고 빌면, 절대 허락할 수 없다고 야단을 치지만, 최소한 밥은 먹여서 보내고, 지수가 한두번쯤 반항을 하면서 집을 나오고, 그 다음에 또 찾아가면 반쯤은 허락을 하고, 그리고 또 찾아가면 마지못해 허락하는 것 같은 과정을 거치리라.
이 행동패턴이 안맞으면 좀 곤란하긴 하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다.
오늘은 현석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제대로 물어보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만일, 오늘 현석이 누구인지 제대로 물어 본다면, 현석이 예측한 패턴에서 몇가지는 생략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이것은 지수 어머니의 행동패턴으로 예상되는것이지만, 지수 아버지의 의사결정이 중요한 변수이고, 형제간의 의사가 또 중요한 변수이긴 하다.
그러나, 예전과는 달리 요즈음의 아버지들은 엄마의 결정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휠씬 높다.
하지만 형제들은 좀 다를 것이다.
예상되는 행동패턴이 그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나보고, 몇번 이야기 나누어 보면 예상되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녀의 언니들이 변수로 작용은 하겠지만, 두사람 다 결혼을 했다고 하니까, 큰 변수로 작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그런데, 지수를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면 어떡하지?
그녀는 이제 현석과 함께 잠들지 않으면, 혼자서는 잠들지 못한다.
그렇게 되어버렸다.
물론 현석도 그리되어 버렸다.
만일 지수를 데리고 가면, 현석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야 할지, 모르는척 여기서 다녀야 할지, 그것도 좀 애매하다.
이곳에서의 생활이 너무 몸에 젖어버렸기도 하지만, 분명 그녀가 이곳으로 수시로 올 것이기 때문이다.
“넌, 이럴려고 나와 살겠다고 했니?”
이연지 여사가 지수를 보고 질책했다.
“엄마 죄송해요. 그치만, 현석씨랑 떨어져 있고 싶지 않았어.”
지수의 입에서 현석의 본래 이름이 불려졌다.
하긴 엄마인데, 자기 남자의 이름을 본래의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맞을것이다.
“뭐?”
“엄마도 잘 알잖아? 내가 남자라면 기겁을 하는거.”
“…”
이연지여사가 약간은 측은한 표정으로 지수를 바라봤다.
그대신 깊은 한숨을 쉬었다.
아마 그일 때문이리라.
대학 1학년때의 엠티.
“처음으로 내가 편안하게 마음을 열고, 마음을 받아들인 사람이 현석씨야.”
“…”
“그리고, 세상에 태어나서 가족 이외에 유일하게 마음을 준 사람이고.”
이연지 여사는 말없이 듣기만 했다.
그 뒤로도 제법 긴 시간동안, 지수는 현석과 자신의 이야기를 함축적으로 이연지여사에게 말했다.
지수가 저렇게 논리적이고 차분하게 말을 잘 했나?
여태 회사에서는 한번도 보여주지 않던 모습이다.
아, 보여주지 않은게 아니고, 그럴 기회가 없었다.
그렇게 보면, 우리가 양성평등 어쩌고 해도, 아직 여자들에게는 거의 기회를 주지 않는 것 같긴 하다.
지수의 어머니는 지수가 한 제법 긴 이야기를 간혹은 고함을 치면서도, 간혹은 질문을 해 가면서 다 들었다.
현석도 지수의 일기장에서 본것과는 또다른 꽤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이 진정한 그녀의 마음이었다.
이연지 여사는 처음의 자세 그대로 꼿꼿하게 앉아서 지수의 이야기를 모두 들었다.
“자네는 어떻게 할것인가?”
말을 다 듣고나자, 지수의 어머니 이연지 여사가 현석에게 물었다.
“따님은, 정말 예쁘고 사랑스러운 여자 입니다. 저는 따님을 향해 세가지를 약속할 수 있습니다.”
현석의 말에 이연지 여사가 아무런 반응 없이 가만히 있었다.
그렇다면 말을 계속해 보라는 뜻이리라.
“첫째, 저는 따님을 절대로 혼자있게 하거나, 외롭게 하지 않겠습니다.
둘째로, 따님 이외의 사람에게 마음을 주어서 따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은 없도록 하겠습니다.
셋째는, 따님을 제 생명과 같이 여기겠습니다.
그 외의 다른 이야기는 그 어떤 것도 저한테는 의미 없는 이야기 입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제 마음입니다.”
“…”
현석은 그대로 여전히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 구구절절히 말 할것도 없었다.
“…”
“자네 몇살인가?”
아, 신상에 대해 물어오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조금은 쉽게 허락이 떨어질 것 같다.
“서른 여덟 입니다.”
“나이가 많구만.”
“네.”
“부모님은?”
“시골에 어머님이계십니다.”
“형제는?”
“형님과 누나가 각각 한분씩 있는데, 모두 출가 했습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연지 여사는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나올 것 없다. 자네도 나올거 없네. 그리고 넌, 내일 집엘 다녀 가거라.”
이연지여사는 거실에 놓여있는 10개의 장미꽃 바구니를 주욱 둘러보았다.
그리고 리본에 쓰여진 글씨를 자세히 바라보았다.
몇 개의 꽃바구니를 보고, 현석을 한번 힐끗 보더니 현관으로 걸어나갔다.
현석과 지수는 주차장까지 따라 나와서 전송을 했지만, 이연지 여사는 쳐다보지 않았다.
(계속)
제법 잦더니 몸이 개운한 것 같다.
벽에걸린 시계를 보니 11시가 넘었다.
이시간이면 대낮이다.
꽤 잔 것 같다.
하긴 어제 친구들의 도움으로 지수에게 프로포즈를 했고, 그 친구들이 늦도록 놀다가 새벽녁이 되어서야 돌아간 탓에 무척이나 피곤했다.
피곤하니 지수는 그냥 자자고 했었다.
그녀가 그냥 자자고 한 경우는 이 집에 와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녀가 마법에 걸렸던 기간을 제외하고는, 그냥 잠을 청한 경우는 없었던것 같다.
현석도 피곤했다.
현석은 프로포즈를 하고 수락을 한 날인데, 이 뜻깊은 날을 그냥 잘 수는 없다고 했지만, 그녀는 내일 두배로 사랑하자면서 자신을 샤워만 시켜 달라고 했었다.
그대신 내일은 전에 해 주었던 마사지도 해 줘야 한다고 요구를 하고는, 샤워만 하고 잠이 들었다.
하긴 그녀에게 샤워를 시켜주는 것 조차도 현석에겐 행복이다.
그러나 이 뜻 깊은날 그냥 잘 수 없다고 한 것은, 현석은 정말 그냥 자고 싶었지만, 순전히 그녀가 서운해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현석은 오히려 그녀가 그렇게 요구해 줘서 고마웠다.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동안 정말 많이 지치기도 했고, 밤도 너무 늦어서 정말 많이 피곤했기 때문이다.
몸에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지만, 그녀와 함께 언제나 알몸으로 자는 것이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렸고, 이 느낌은 참 좋은 느낌이다.
그녀도 원래부터 그랬는지, 아니면 현석과 함께 지내면서 그렇게 바뀐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옷을 입고 자는 것 보다 현석의 팔베개를 하고, 알몸으로 현석에게 안겨서 잠드는 것을 더 좋아한다.
늘 이렇게 자다보니 잠옷이라도 입고자면 거추장스럽다고 했다.
현석은 몸을 반쯤 일으켰다.
잠든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 보았다.
오전의 했살로 방안은 환하고, 그 했살에 비친 그녀의 행복해 보이는 얼굴은 미소까지 띠고 있다.
지수의 자는 모습을 내려다 본 것이 한번 두번은 아니다.
그러나, 그때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같게 해 주는 모습이다.
아직, 지수의 부모님을 포함한 가족들에게 허락을 받지 않은 상태이지만, 아니 그들은 현석의 존재를 아는지 모르는지 조차도 모르지만, 그녀에게 프로포즈를 했고, 그녀가 승락을 한, 이제는 진정 내 여자가 된 이후에 보는 것이다.
어름다운 모습, 사랑스러운 모습.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이 모습.
그녀를 향한 이 사랑의 마음은 영원히 변치 않으리라.
고운 머릿결에 손을 넣어보았다.
머리카락은 손가락 사이로 부드럽게 넘어간다.
얇은 홑이불 밖으로 드러난 그녀의 매끄러운 어깨위에 머리카락이 걸쳐졌다.
그녀의 젖가슴이 현석이 몸을 일으키며 빈 자리에 탱탱한 모습으로 그 아름다움을 내 보이고 있다.
이리도 예쁜 모습이라니.
이렇게도 사랑스러운 모습이라니.
숨이 멎을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가슴이 두근거린다.
두근, 두근, 두근.
또 가슴이 두근거려 온다.
현석은 가슴에 손을 얹고 심 호흡을 하며, 시선을 멀리 창을 향하면서 이 떨림이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비록 커튼이 가려 있기는 하지만, 커튼의 사이를 통해 바깥으로 눈길을 주고, 시간이 지나자 어느정도 두근거림이 가라 앉았다.
왜 이렇까?
왜, 그녀를 바라보다가 이런 두근거림이 계속되는 것일까?
진정이 되자, 현석은 천천히 그녀의 머리카락이 늘려진 어깨에 손을 얹고 매끄러운 감촉을 주는 그 부드럽고 행복한 느낌을 만끽했다.
그녀의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으응?”
어깨에 닿아 있는 손길 때문인지, 이마에 닿은 현석의 입술의 느낌 때문이었는지, 그녀가 몸을 움직이며 살며시 눈을 떳다.
“응? 깻네.”
“으응.”
그녀가 대답을 하면서 한손을 올려 현석의 목 뒤로 가져 왔다.
“나때문인가?”
“아니, 충분히 잔 것 같아. 정말 꿀맛 같은 잠이었어.”
“그래.”
현석은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갔다.
쪽~
소리가 났다.
그녀의 입술에 현석이 혀를 밀어 물기를 뭍혔다.
그리고 입 안으로 혀를 밀어 넣었다.
그녀가 현석의 혀를 입 안으로 빨아들였다가는 천천히 입안의 이곳 저곳으로 움직이다가 다시 그녀의 혀를 현석의 입 안으로 밀고 들어 왔다.
약간의 단내가 나는 그녀의 입안의 느낌이 전해졌다가 개운해졌다.
현석은 고개를 조금 들어서 그녀의 입술위에 자신의 입술이 살짝 닿아 있는 위치까지 움직였다.
달콤하다.
현석이 혀끝으로 그녀의 입술을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그녀의 혀가 현석의 혀를 따라 함께 움직였다.
작은 장난이지만, 언젠가 한번 이런 장난을 또 했던적이 있었는데, 감미로운 장난이다.
“입에서 냄새 안나?”
입술이 떨어져 나오자 그녀가 물었다.
“냄새? 응 맛있는 냄새 나는데.”
“거짖말. 양치도 안했는데.”
“진짜야.”
“헨리 입에서도 달콤한 냄새가 났는데.”
“자 물 한잔 먹고 올께.”
“으응. 내것도 가져다 줄거지?”
“그럼, 당연하지.”
현석은 가운을 대충 걸치고 가운에 달린 끈으로 앞자락을 묶으면서 거실로 나왔다.
헉.
그런데, 이 집안에, 현석과 지수 이외에 다른 사람이?
누구야?
도둑도 아니고?
뭐야?
아니 도둑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눈을 비비고 보니, 거실 소파에 곱게 나이든 아주머니 한분이 앉아 있다가 현석의 발소리에 현석을 쳐다본다.
아니, 누군가가 문을 열어 줄 리도 없었는데, 대체 누구야?
“자넨 누군가?”
고운 자태의 아주머니가 현석에게 나즈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뻥 쪘다.
그말이 맞을 것이다.
아직 잠도 덜깬 상태인데, 이 집안에서 한번도 본 적이 없는사람이 소파에 앉아서 자네가 누구냐고 물어보다니.
다시한번 눈을 비비면서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런데,
누굴 닮은 것 같다.
지수.
그녀다.
그녀를 닮은 고운 자태의 아주머니이다.
얼핏보기에 40대 초반처럼 보이는데.
머릿속을 굴렸다.
지수의 나이, 그리고 두 언니.
40대 초반은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그 아주머니는 너무 젊어 보인다.
그러나 닮았다는 것, 그것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딱 한 사람뿐이다.
침실 문은 열려 있었고, 아무소리도 안들렸었는데.
그럼, 좀전에 우리 두사람의 대화와 입맞춤의 소리와 이런 것들을 모두 들었다는 거?
놀람과 황당함.
이런저런 생각이 머릿속을 마구 휘 저었다.
그러나 현석은 그 고운 자태의 아주머니가 누구인지 느껴지자 말자 비록 가운 차림이지만 90도 각도로 인사를 했다.
“자넨, 누군데 내 딸과 함께 잠을 자고 있는건가?”
인사를 채 하기도 전에 아주머니로부터 다시 질문이 왔다.
정말 많이 닮았다.
지수가 나이 들면, 저렇게 곱게 늙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운 자태이다.
약간은 노기띤 음성.
크게 높은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무게가 느껴진다.
“죄송합니다. 아직 허락도 받지 않았는데, 이런 모습부터 보여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현석은 최대한 공손한 몸짖과 공손한 말투로 말했다.
“헨리, 누가 왔어?”
방 안에서 지수의 말소리가 들렸다.
지수의 말에 대한 대답은 나중이다.
현석은 고운 자태의 여인 앞에 다짜고짜 무릎을 꿇었다.
“김현석이라고 합니다.”
“옷부터 갈아입고 나오게.”
그때 침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실내화 끄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
그녀의 높아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 역시 가운을 몸에 걸쳤지만, 앞자락을 헐렁하게 묶어서 젖가슴이 일부 드러나 있었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옷 매무새를 바로 잡았다.
“엄마 어떻게 된거야? 언제왔어? 어떻게 연락도 없이?”
지수의 음성에 놀람이 가득 배어있다.
하긴 놀랐을것이다.
그런데, 연락도 없이 언제 왔느냐니?
그 질문이란 아마도 당황해서 나온것이리라.
“어떻게? 그게 문제냐 지금?”
반키 정도 언성이 높아진 고운자태의 여인은 지수를 향해 나무라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너도 옷 갈아입고 나오너라.”
현석은 허리를 직각으로 굽혀서 인사를 하고는 말없이 침실로 들어갔다.
물을 마시고 싶었던 마음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겠다.
침실로 향하고 있지만 머릿속이 온통 하얗다.
그 뒤를 지수 역시 말없이 따라 들어왔다.
딱 걸렸다.
이런걸 딱 걸렸다고 하지 않으면, 어떤것을 딱 걸렸다고 할 것인가?
생각을 좀 해보자.
느낌으로 봐서 지수의 어머니는 저 자세로 꽤 오래 앉아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집에 들어 온지도 꽤 되었다는 것이리라.
그리고 가능성이지만, 침실문을 들여다 보았을 수도 있다.
침실문은 있지만 언제나 열려있고, 닫아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침대에 현석과 지수가 나란히 누워자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사랑하는 딸.
그리고 그 옆에 누운, 때려죽여도 시원치 않을 웬 놈.
때려죽여도 시원치 않을? 이건 맞는지 모르겠지만,
웬 놈, 그건 맞지.
딸은 키워서 웬 소도둑 같은 놈에게 뺏기고,
아들은 키워서 불여우 같은 며느리에게 뺏긴다.
일부의 어른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현석도 많이 들었다.
장성하면, 독립시켜서 떠나 보낸다는 생각보다, 뺏긴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되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사위로 인정하게 될때까지는 웬놈이거나 죽일놈이 맞다.
그러나, 어느 부모가, 미혼의 딸이 외간 남자와 한 침대에, 그것도 발가벗고, 아니 벗은 모습을 보았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한 침대에 같이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고 기절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현석 같아도 목잡고 뒤로 넘어갈 일이다.
아니, 방으로 들어와서 이불을 잡아채고는 일으켜 세워서, 너 어떤 놈이냐고 소리소리 질러야 맞다.
평범한 부모님들이라면 그것이 지극히 정상이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
밖에서 달그락거리면서 일어날 수 있는 소음을 만들어서 깨울 수도 있었을텐데, 깨우지도 않았다.
정말 그 대단한 자제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얼마나 많이 생각했을까?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저놈을 인정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고, 뭐 하는 놈인지도 모르는데.
딸에게 언질을 받지도 않았는데?
아, 지수가 언질을 주었는지 아닌지, 그건 모르겠다.
그런데 인정하지 않으면, 저놈을 내 쫏고, 딸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가면, 딸은?
그렇게 강제로 찢어놓으면 딸은 행복할까?
여태 남자를 사귀지 않고, 남자라고 하면 치를 떠는 딸이었는데, 그런데 그딸이 남자의 품에 안겨 저렇게 행복한 모습으로 잠들어 있는데, 찢어 놓는게 맞을까?
그런것들을 충분히 생각했을 수 있다.
그간에 들었던 지수의 말을 종합해 보면, 집에서 남자를 소개시켜 주겠다에서부터 시작해서 별의 별 짖을 다했지만, 엠티 사건 이후로 남자들을 거들떠 적이 없다고 했었다.
그 때문에 부모님과 언니들이 정말 견디기 힘들 정도로 닥달을 했다고 했었다.
집안에서는 그런 지수를 보는 것을 힘들어 했었다고 했다.
그런데, 현석에게 비로소 마음의 문열 열고, 몸까지 열게 된 것이니,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좀 생각해 볼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지수의 어머니는 두 사람중 누구든 일어나서 나올 때까지 그 자세로 기다리면서 생각한 것은 무었일까?
정말 가슴이 싸아 해 지는 느낌이다.
바로 저런 모습이 진정 딸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것도 가장 예쁘고, 가장 귀하다는 셋째딸, 아니 막내딸인데.
결혼이 허락 된다면, 정말 내 어머니처럼 모시고 싶다.
어머니에게는 형도 있지만, 지수에게는 언니들만 있다고 했으니.
“잘 됫지뭐.”
지수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뭐가?”
현석도 속삭이듯 물었다.
“응. 어제 헨리가 프로포즈 했기에 이번주 아니면 다음주쯤 가족들에게 소개하려고 했거든, 그런데 엄마가 어찌 알고 이렇게 찾아 오셨는지, 어차피 알릴거였으니 잘 됫다구.”
“그렇긴 해도, 부모님께 허락도 받기전에 함께 자는 모습을 보여드리는건 예의가 아닌데, 좀 걱정이야.”
“보셨을까?”
지수는 두사람이 함께 자고 있는 모습을 보았느냐는 것이 궁금한 모양이다.
“그러신 것 같지만, 정작 봤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한 방에서 나오는걸 보셨잖아?”
“걱정하지마 헨리, 엄만 언제나 내편이거든.”
현석의 걱정에 지수가 팔을 잡으면서 걱정말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 두사람 관계를 어머니께 전혀 이야기 안했어?”
“응.”
그 와중에도 지수는 현석의 넥타이를 골라주고, 매어주기까지 했다.
자신의 옷을 챙겨 입으면서도 혹시 현석이 입은 옷 매무새가 어색한 것이 없는지 꼼꼼하게 살피고, 바로잡아주기까지 했다.
아무래도 어머니에게 처음 보이는 현석의 모습에 신경이 쓰인 모양이다.
현석은 지수의 어머니 이연지 여사의 앞, 소파에 앉지 않고, 바닥에 무릅을 꿇고 앉았다.
나랏님과 짝을 맺어주어도 아까운 딸일터인데, 그것이 부모 마음인데, 얼굴도 보기전에, 누구인지 알기도 전에, 한 침대에서 잠을 자는 꼴을 보았을 테니 이건 이유없이 무조건 무릎부터 꿇고 볼 일이다.
어떤 이유도 변명도 필요 없다.
곧 뒤따라 지수가 나왔지만, 그녀는 이연지 여사 옆으로 가서 앉았다.
“엄마. 미안해. 미리 말씀 못드려서.”
“너도 저기 가서 앉아.”
그러면서 현석을 가리켰다.
“엄마아.”
아. 되었다.
이 상황에서 그러면 안되지만, 지수에게 같이 무릅꿇고 앉으라는 말을 들으면서 현석은 속으로 안심을 했다.
이건 마음속으로 인정하신 것 같다.
딸의 배필로 인정된 것이다.
야단을 맞고, 욕을 먹겠지만, 이미 인정하기로 마음을 정한것이다.
하긴 이런 상황을 직접 보았는데, 인정하지 않기도 참으로 애매하긴 할 것이다.
얼마나 노여웠을까?
그러니 변명은 필요없을 것이다.
“난 너 같은 딸 둔 적이 없다.”
이연지여사의 말은 단호했다.
이 말을 들으니, 현석은 조금전에 마음속으로 이제 되었구나 라고 생각한 것이 잘못된 생각이었나 하고 잠시 생각했지만, 예로부터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하지 않던가?
비록, 모양 상으로로는 사전 허락도, 묵인도 없이 살림부터 차려서 동거를 시작한 모양이지만, 그래서 구박을 받게 될 수는 있겠지만, 그리고 상당한 어려움은 있겠지만, 현석과 지수의 마음이 확고하다면, 두사람이 결별하도록 하지는 않을것이다.
현석은 그리 믿고 있었다.
다만, 이 꼴을 보였으니 사위로 받아들여 지더라도 현석이 상당기간 시련을 이겨내야 할 것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산 사람의 강점이 무었이겠는가?
수많은 경험에 의해서 탄생되는 것이지만,
타인의 행동에서 나타나는, 그래서 예상되는 미래에 대한 것들이 별로 틀리지 않는다는것.
원하는 바를 무리없이 진행해 나갈수 있는 요령.
지금 지수의 어머니도, 통상적인 부모, 딸을 가진 부모의 패튼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것이다.
그리고, 이미 동거를 시작한 딸의 모습이다.
지수가 현석의 옆에 와서 무릅을 꿇었다.
“어머님, 따님에게는 잘못이 없습니다.”
현석은 일단 지수가 무릅을 꿇고 옆에 와서 앉는 것이 안좋다는 판단이 섰다.
“누가 자네 어머니인가?”
“엄마.”
“넌 조용히 있어.”
이연지 여사는 지수에게 버럭 고함을 질렀다.
이 상황에서 아무리 사랑스러운 딸이라도, 대충 용서하고 지나갈 수는 없다.
현석도 안다.
그러니 눈물이 쏙 나오도록 혼을 내야 한다.
처음에는 헤어지라고 해야 한다.
그리고 지수를 데리고 집으로 갈것이다.
그러면, 다시 찾아가서 무릅꿇고 빌면, 절대 허락할 수 없다고 야단을 치지만, 최소한 밥은 먹여서 보내고, 지수가 한두번쯤 반항을 하면서 집을 나오고, 그 다음에 또 찾아가면 반쯤은 허락을 하고, 그리고 또 찾아가면 마지못해 허락하는 것 같은 과정을 거치리라.
이 행동패턴이 안맞으면 좀 곤란하긴 하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다.
오늘은 현석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제대로 물어보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만일, 오늘 현석이 누구인지 제대로 물어 본다면, 현석이 예측한 패턴에서 몇가지는 생략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이것은 지수 어머니의 행동패턴으로 예상되는것이지만, 지수 아버지의 의사결정이 중요한 변수이고, 형제간의 의사가 또 중요한 변수이긴 하다.
그러나, 예전과는 달리 요즈음의 아버지들은 엄마의 결정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휠씬 높다.
하지만 형제들은 좀 다를 것이다.
예상되는 행동패턴이 그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나보고, 몇번 이야기 나누어 보면 예상되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녀의 언니들이 변수로 작용은 하겠지만, 두사람 다 결혼을 했다고 하니까, 큰 변수로 작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그런데, 지수를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면 어떡하지?
그녀는 이제 현석과 함께 잠들지 않으면, 혼자서는 잠들지 못한다.
그렇게 되어버렸다.
물론 현석도 그리되어 버렸다.
만일 지수를 데리고 가면, 현석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야 할지, 모르는척 여기서 다녀야 할지, 그것도 좀 애매하다.
이곳에서의 생활이 너무 몸에 젖어버렸기도 하지만, 분명 그녀가 이곳으로 수시로 올 것이기 때문이다.
“넌, 이럴려고 나와 살겠다고 했니?”
이연지 여사가 지수를 보고 질책했다.
“엄마 죄송해요. 그치만, 현석씨랑 떨어져 있고 싶지 않았어.”
지수의 입에서 현석의 본래 이름이 불려졌다.
하긴 엄마인데, 자기 남자의 이름을 본래의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맞을것이다.
“뭐?”
“엄마도 잘 알잖아? 내가 남자라면 기겁을 하는거.”
“…”
이연지여사가 약간은 측은한 표정으로 지수를 바라봤다.
그대신 깊은 한숨을 쉬었다.
아마 그일 때문이리라.
대학 1학년때의 엠티.
“처음으로 내가 편안하게 마음을 열고, 마음을 받아들인 사람이 현석씨야.”
“…”
“그리고, 세상에 태어나서 가족 이외에 유일하게 마음을 준 사람이고.”
이연지 여사는 말없이 듣기만 했다.
그 뒤로도 제법 긴 시간동안, 지수는 현석과 자신의 이야기를 함축적으로 이연지여사에게 말했다.
지수가 저렇게 논리적이고 차분하게 말을 잘 했나?
여태 회사에서는 한번도 보여주지 않던 모습이다.
아, 보여주지 않은게 아니고, 그럴 기회가 없었다.
그렇게 보면, 우리가 양성평등 어쩌고 해도, 아직 여자들에게는 거의 기회를 주지 않는 것 같긴 하다.
지수의 어머니는 지수가 한 제법 긴 이야기를 간혹은 고함을 치면서도, 간혹은 질문을 해 가면서 다 들었다.
현석도 지수의 일기장에서 본것과는 또다른 꽤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이 진정한 그녀의 마음이었다.
이연지 여사는 처음의 자세 그대로 꼿꼿하게 앉아서 지수의 이야기를 모두 들었다.
“자네는 어떻게 할것인가?”
말을 다 듣고나자, 지수의 어머니 이연지 여사가 현석에게 물었다.
“따님은, 정말 예쁘고 사랑스러운 여자 입니다. 저는 따님을 향해 세가지를 약속할 수 있습니다.”
현석의 말에 이연지 여사가 아무런 반응 없이 가만히 있었다.
그렇다면 말을 계속해 보라는 뜻이리라.
“첫째, 저는 따님을 절대로 혼자있게 하거나, 외롭게 하지 않겠습니다.
둘째로, 따님 이외의 사람에게 마음을 주어서 따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은 없도록 하겠습니다.
셋째는, 따님을 제 생명과 같이 여기겠습니다.
그 외의 다른 이야기는 그 어떤 것도 저한테는 의미 없는 이야기 입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제 마음입니다.”
“…”
현석은 그대로 여전히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 구구절절히 말 할것도 없었다.
“…”
“자네 몇살인가?”
아, 신상에 대해 물어오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조금은 쉽게 허락이 떨어질 것 같다.
“서른 여덟 입니다.”
“나이가 많구만.”
“네.”
“부모님은?”
“시골에 어머님이계십니다.”
“형제는?”
“형님과 누나가 각각 한분씩 있는데, 모두 출가 했습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연지 여사는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나올 것 없다. 자네도 나올거 없네. 그리고 넌, 내일 집엘 다녀 가거라.”
이연지여사는 거실에 놓여있는 10개의 장미꽃 바구니를 주욱 둘러보았다.
그리고 리본에 쓰여진 글씨를 자세히 바라보았다.
몇 개의 꽃바구니를 보고, 현석을 한번 힐끗 보더니 현관으로 걸어나갔다.
현석과 지수는 주차장까지 따라 나와서 전송을 했지만, 이연지 여사는 쳐다보지 않았다.
(계속)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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