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부
“난 수정양하고 본격적으로 사귀고 싶은데…… 수정양 생각은 어때요?”
그의 무릎에 앉은 내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그가 물었다.
“호호호…… 우리 지금 이렇게 편하게 통화하고 만나고 하는 거 아니었어요?”
“물론 그렇긴 하지만…… 우리 이렇게 하면 어때요? 여기 임대료 내가 내 줄게요. 물론 생활비도 좀 주고. 그리고 내가 수정양 보고 싶을 때 편하게 와서 만나고 그러면 좋을 것 같은데.”
“후훗~ 나보고 아저씨 숨겨 논 애인하라는 말인가요? 정부? 첩? 뭐 그런 거?”
“아니 뭐 꼭 그런 것 까지는 아니고…… 이제 수정양 없이는 못 살 것 같아서 그래요. 수정양도 내가 싫지 않은 것 같으니까 기왕이면 날 이용해봐요.”
그 순간에는 썩 나쁘지 않은 제안인 것 같았다.
“글쎄요…… 한번 생각해 볼게요. 근데 저 여기 오래 있을 거 아닌 건 아시죠? 몇 달 후에는 미국으로 돌아가봐야 되요.”
“알아요. 그러니까 몇 달간이라도 수정양과 더 자주 함께 있고 싶어서 그래요.”
“호호호…… 아저씨 나한테 반했나 보네? 알았어요. 생각해 볼게요. 회사 들어가 보셔야 할 테니 어서 가세요.”
“아~ 가기 싫다. 나 그냥 오늘 오후 다 제끼고 여기 있다가 수정양이 해주는 저녁 먹고 가면 안될까요?”
“네? 날보고 저녁 하라고요?”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 남자가 지금 날 무슨 현지처 비슷하게 만들려고 하는 것 같았다. 조금 전까지도 나쁘지 않다고 여겨졌던 그의 제안이 족쇄처럼 나를 가두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무릎에서 내려 일어서며 말했다.
“오늘은 쇼핑도 하고 너무 피곤해요. 아직 시차도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고 해서 그냥 좀 쉬고 싶어요.”
“그래요? 그렇다면 뭐 할 수 없지. 알았어요, 수정양. 그럼 쉬어요. 나중에 전화할게요.”
마지못해 방을 나서는 그의 얼굴에 서운함이 역력했다. 하지만 난 이미 그에게 만정이 다 떨어지고 있었다. 다행히 그를 설득해서 돌려보낸 후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그리고 그가 사준 옷들을 꺼내보니 어림잡아도 몇백만원어치는 되어 보였다. 순간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그는 어제와 오늘 두 번의 섹스로 만족하지 못 할 것이고 자기가 생각하는 본전을 뽑으려 할 것이었다. 게다가 임대료에 생활비까지 준다면 난 그에게 완전히 메이는 꼴이 될 것이 뻔했다.
난 그 길로 가까운 우체국에 들러 박스를 가져다가 그가 사준 옷가지들을 모두 싸서 그의 명함에 적힌 회사 주소로 보냈다. 그리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여의도 쪽의 레지던스를 찾아 바로 옮겨 버렸다. 비록 모든 것이 번거로웠지만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았다. 아직 짐도 제대로 풀어놓지 않은 상황이어서 그나마 큰 문제는 없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일들을 처리하고 새로 옮김 숙소에 막 짐을 풀어놓을 무렵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수정양, 숙소 옮겼어요? 퇴근 하고 왔는데 없어서 물어보니까 체크 아웃 했다고 하는데 사실이에요?”
역시 내 생각대로 인 것 같았다. 쉬고 싶다고 분명히 얘기하고 보냈는데 그는 그날 밤 바로 나를 찾아 왔던 것이었다. 사전에 전화로 물어보지도 않았고 문자 하나 없이 그냥 찾아온 것이었다. 어느 틈에 그는 나를 벌써 자기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죄송해요, 아저씨. 전 그냥 맘 내키는 대로 혼자 맘 정리 하려고 온 거라서 아저씨 그러시는 게 좀 부담스럽네요.”
“수정양, 거기 어디에요. 내가 갈 테니 우리 얼굴보고 얘기해요.”
“죄송해요, 아저씨. 그냥 우리 좋은 추억으로 생각하고 여기서 끝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수정양…… 아니 이건 아니지……”
“네?”
“아니 내가 수정양한테 투자한 게 얼만데…… 그리고 그렇게 받아먹고 이렇게 일방적으로 끝내자는 건 도리가 아니지 않나?”
그와 대화를 하면 할수록 조금이라도 빨리 정리하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지금도 나이 좀 있으신 분들을 멀리하거나 그러지는 않지만 가끔 이렇게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버리는 이중적인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정말 예의 바르고 정중한 신사 같은 남자들이 본전 타령하는 찌질이로 변하면 정말이지 짜증이 폭발해서 돌아버릴 지경이다.
“아저씨께서 사주신 거 전부 그대로 포장해서 사무실 주소로 보냈어요. 빠른 등기로 보냈으니까 내일이나 늦어도 모레면 받으실 수 있을 거에요. 다행히 쇼핑백안에 영수증도 다 있으니까 바로 환불하세요. 그리고 아저씨 전화 안 받을래요. 전화하지 마세요.”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아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한동안 계속되는 전화와 문자 세례. 난 그가 어떤 말들을 하는지 보려고 전화를 끄지 않고 문자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자기가 무슨 실수 한 게 있으면 용서하라고 하더니 갈수록 험악해지고 결국 꽃뱀이라는 소리와 위치추적 들어간다는 말까지, 정말 순간적으로 사람이 이렇게까지 변할 수 있나 하는 생각에 실소가 저절로 나왔다. 뭐라고 대꾸할까 하다가 그냥 전화기를 꺼버렸다. 어차피 선불폰인데다가 이 번호를 아는 사람은 그가 유일했으니 미련 없이 전화를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싱숭생숭한 마음에 간편한 운동복 차림으로 여의도 공원을 산책하다가 숙소로 돌아와 누웠다. 도착한지 겨우 하룻밤이 지났는데 벌써 많은 일이 일어난 것 같았다. 팀이 아닌 다른 남자와 얼떨결에 섹스를 했고 자칫하면 그에게 메어버릴 뻔 하기도 했다. 그런데 특이한 건 팀과 이혼 절차를 진행하는 동안에는 몰랐었는데 서울에 와서 낯선 남자와 섹스를 해서 그런지 혼자 있는 게 허전하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고 혼자 누워 있으면서 자꾸 내 몸을 스스로 더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냥 단순히 가슴을 쓰다듬다가 젖꼭지를 비틀었다. 짜릿했다. 좀더 강하게 비틀며 잡아 당기기 시작했고 나도 모르게 손이 가랑이 사이로 내려가 보지를 쓰다듬었다. 야릇했다. 보지가 촉촉히 젖는 가 싶더니 손가락 하나가 쑥 들어갔다. 미처 생각지도 못한 사이에 한 손은 젖가슴을 애무하고 있었고 다른 한 손은 보지를 쑤시며 몸을 비비 꼬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몸을 일으켜 침대 머리에 비스듬히 기대 앉아 다리를 벌리고 보지를 벌려보았다. 핑크빛 속살이 촉촉히 젖어 반들거린다. 손바닥을 펴서 보지에 대고 문질렀다. 몸이 또 꼬인다. 펴진 손바닥에서 가운데 손가락을 접어 안으로 밀어 넣었다. 내 보지가 내 손가락을 안으로 빨아 들이는 것 같았다. 들락거리는 손가락에 속도가 붙었고 몸은 더 비틀렸다. 한참을 그러다 보니 이것 가지고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컴퓨터를 켜고 성인용품 사이트를 뒤지기 시작했다. 몇 군데 찾아 다녀보니 별의별 물건들이 다 있었다. 호기심에 이것저것 들여다보고 사용후기도 꼼꼼히 읽어보고는 이것저것 사은품들을 많이 챙겨준다는 사이트에서 묵직해 보이는 딜도와 진동기를 주문했다. 결제까지 마치고 나니 얼굴이 화끈거리며 나도 모르게 아랫도리가 짜릿해지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안될 것 같아 욕조에 물을 받아 거품을 잔뜩 풀어 목욕을 하고서야 겨우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아침이 되고 창 밖을 보며 차 한잔을 마시다 보니 여기저기 다녀보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우선 차가 있어야 할 것 같아 렌터카를 하나 마련했고 가지고 있던 휴대폰은 배터리를 빼서 처박아놓고 새로 선불폰을 장만했다. 차도 마련했고 폰도 다시 생겼지만 막상 여기저기 다녀보고 싶다고 해도 딱히 어디라고 떠오르는 곳이 없었다. 숙소에서 인터넷으로 갈만한 곳이라도 검색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돌아가는 길에 63빌딩 근처에 미국에서도 본적이 있는 커다란 헬스클럽이 눈에 띄었다. 그렇지 않아도 한동안 운동을 안 해서 몸이 무거운 것 같았는데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낮이라 그런지 헬스클럽에는 아줌마들로 보이는 여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넓은 공간에 그런대로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었고 특히 사우나가 마음에 들었다. 상담직원은 꽤 꼼꼼하게 친절하게 안내를 해 주었지만 뭐 어차피 운동하기로 마음 먹은 거 건성건성 듣고 바로 회원가입을 했다. 상담직원은 내게 퍼스널 트레이너에 대해 설명하고 내게 적합한 트레이너라며 한 사람을 추천해 주었다. 몸이 아주 예뻐(?) 보이는 사내였다.
내친김에 乍【 운동복과 운동화를 사서 바로 스트레칭부터 시작했다. 늘 하는 생각이지만 정말 우리나라 사람들은 뭘 하든 복장과 장비가 참 예쁘고 다양한 기능을 갖춘 전문가용을 차려 입고 하는 것 같다. 통기성과 신축성에 몸의 균형을 잡아주고 어쩌고 하는 설명보다 그런 옷을 입지 않으면 이 무리에 낄 수 없을 것 같았다. 아줌마를 누구를 봐도 그냥 티셔츠 차림으로 운동하는 사람은 정말 단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레깅스 팬츠와 스포츠 탑으로 갈아입은 내 모습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트레이너는 내게 몸매 유지와 유연성 강화위주로 운동하자며 이런저런 코스를 짜주었다.
“몸이 아주 예쁘십니다. 전에도 계속 운동하셨었죠?”
“네. 얼마 전까지 거의 매일 했었죠.”
“그러신 것 같았어요. 자세도 잘 나오시고 호흡도 아주 좋으시네요.”
자세도 좋고 다 좋다며 그는 굳이 직접 내 몸에 손을 대가며 자세를 교정해주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많은 아줌마들이 퍼스널 트레이너들과 깔깔거리며 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 중 한 여자가 나에게 미소를 지으며 눈인사를 건넸다. 뭐 그러려니 하고 마주 웃어주었다. 첫날이라 그렇게 한 시간 가량 운동을 마치고 사우나로 갔다. 대중 목욕탕에 가본지 10년도 넘었던 터라 조금 낯설었지만 다른 여자들의 몸을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샤워를 하고 땀을 좀 내볼 생각에 사우나에 들어가 앉았다. 후끈한 열기가 온몸을 감싸는가 싶더니 금새 땀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잠시 그러고 앉아있는데 아까 내게 눈인사를 건넸던 여자가 아는 체를 했다.
“안녕하세요? 여기 새로 오셨죠?”
“아~ 네…… 오늘 처음 왔어요.”
“그래요. 반가워요. 이 동네 살아요?”
“네.”
그때 나와 대화를 나누는 여자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여자가 들어왔다.
“누구?”
“응. 오늘 새로 오셨대.”
“아~ 그래요? 반가워요.”
“아~ 네……”
얼떨결에 난 두 여자에게서 호구조사를 당했다. 몇 살이냐, 결혼했냐, 어디 사냐 등등 난 그들이 묻는 말에 그냥 담담하고 간략하게 대답해 주었다. 난 원래 묻는 말 이외에는 말을 많이 하는 성격이 아닌데다가 그 여자들에게 궁금한 것도 별로 없었는데도 그 여자들은 나에게 자신들의 신상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얘기를 해 주었다.
첫 번째 여자는 36살이고 이름은 미영이라고 했고 남편은 대기업 부장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육덕지다고 말하는 스타일의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몸에 군살이 좀 있지만 그렇다고 보기 흉할 정도는 아니었고 옷만 잘 차려 입으면 날씬하다고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다만 가슴이 상대적으로 좀 작았다.
두 번째 여자는 은희라는 이름의 38살 먹은 여자로 남편은 의사였다. 좀 마른 편에 아랫배가 약간 거슬릴 정도로 나왔고 가슴은 몸에 비해 컸지만 실리콘이 들어있는 게 분명했다.
“가족들도 다 미국에 있고 혼자 한국에 있으면 심심하겠다, 그쵸?”
“온지 아직 안돼서 아직 모르겠어요.”
미영 언니의 말에 그냥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럼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고 특별히 할일 없으면 우리 맥주나 한잔 할래요?”
딱히 끌리지는 않았지만 어쩌다보니 난 그들과 함께 맥주잔을 기울이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과의 대화는 점점 재미있어졌다. 사우나에서 나와 화장을 한 그들의 얼굴은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였는데 맨 얼굴일 때보다 훨씬 젊어 보였고 요염해 보였다. 30대 중 후반 가정주부의 모습은 분명 아니었다. 게다가 운동하려고 나온 옷차림으로 보기에는 너무 야했다. 난 그런 그들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우리는 어느새 말을 텄고 난 그녀들을 자연스럽게 언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대화의 주제는 19금 성인토크 수준이었다. 이것 또한 지루하지 않고 마음에 들었다. 나보고 미국에서 대학을 다녔으니 섹스는 자유로웠겠다고 물었다. 그러나 난 전 남편이 첫 상대이자 유일한 상대라고 말했고 그들은 재미있는 얘기를 기대했다가 꽤나 실망스러워했다. 그리고 이제 이혼했으니 마음껏 즐겨보는 것도 좋지 않냐는 얘기를 거침없이 해댔다.
피쳐 몇 개가 비워지자 나도 모르게 엊그제 만났던 아저씨 얘기가 나왔고 두 언니들은 그 남자를 성토하기 바빴다.
“내 말이 그 말이야. 섹파는 원나잇이란 말이지.”
“네?”
은희 언니의 말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아 반문했다.
“너, 아주 쑥맥이구나. 어차피 섹스파트너로 남자 고르는 거 아냐?”
“뭐~ 그렇죠. 결혼할 거 아니니까.”
“그러니까. 기왕 섹스파트너 고르는 거 이것저것 골고루 먹어봐야지. 남자들은 한번 주면 다 자기껀줄 알잖아. 그래서 신상까지 말고 딱 하룻밤만! 그래야 뒤탈도 없고 제대로 즐기는 거라구.”
“그럼 언니는 아무 남자나 만나서 섹스만 하고 헤어지는 거에요?”
“아무나 만나는 건 아니지. 일단 옷차림하고 말투를 보고 고르는 거지.”
“뭐 어쩌다 영계를 고를 때는 사이즈만 볼 때도 있지만.”
은희 언니의 말에 미영 언니도 거들었다. 난 선배들에게 경험담을 듣는 신입생처럼 귀를 쫑긋 세우고 그들의 말을 들었다.
“우리 기왕 말 나온 김에 오늘 한번 땡길까? 어때 언니?”
미영 언니가 은희 언니에게 물었다. 그러자 은희 언니가 내게 물었다.
“그럴래?”
“아니 저야 뭐……”
“수정이도 싫지는 않나 보네. 언니 오래간만에 한번 놀자. 윤경이는 내가 부를게.”
윤경 언니는 미영 언니와 고등학교 동창이라고 했다.
“수정아, 여섯 시쯤 전화하고 데리러 갈게 집에서 옷 갈아입고 기다려. 지금처럼 입고 나오면 너 안 데리고 간다.”
언니들은 나를 숙맥취급하고 있었다. 하기야 마음속에서 자꾸 욕정이 솟구치는 건 분명했지만 이 들이 들려준 경험담은 나를 어린애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숙소로 돌아와 어제 산 원피스를 꺼내 입고 힐을 신었다. 거울에 보이는 내 모습은 기대감에 잔뜩 들뜬 요염한 여자, 바로 그 모습이었다. 기대감이 큰 만큼 기다리는 시간은 길고 지루했다. 혹시라도 일찍 데리러 오지나 않을까 전화기만 만지작거렸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여섯 시가 조금 넘자 미영 언니가 아래로 내려오라고 했다.
숙소 입구에 가보니 에쿠우스 모범택시 안에 이미 익숙한 두 언니와 처음 보는 언니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반가워요, 수정씨. 난 윤경이라고 해요.”
“네, 언니들한테 얘기 들었어요.”
윤경 언니와의 간단한 통성명을 마친 우리는 얼마를 달려 언니들이 단골로 간다는 나이트 클럽 근처의 식당에 도착했다. 파스타를 잘한다는 식당이었는데 주로 여자들이 많았고 젊은 남녀가 데이트 하는 장소로도 자주 쓰이는 곳 같았다. 와인을 곁들여 저녁을 먹으며 난 윤경 언니를 살펴보았지만 다른 언니들과는 분위기가 다른 것 같았다. 어딘가 시크한 카리스마가 느껴지기도 했고 같은 여자면서도 왠지 자꾸 말을 걸고 싶어지는 여자였다. 그렇게 시간을 보낸 우리는 거의 8시가 다 되어서 나이트 클럽으로 들어섰다.
“누님들 오래간만에 오셨네요. 근데 멤버가 한 명 느셨네?”
원빈이라는 명찰과는 딴판으로 작달막한 키에 못생긴 개그맨처럼 생긴 웨이터가 언니들에게 꽤나 친한 척을 하며 맞아주었다.
“빈이 너 지난번처럼 아무나 들이대면 죽는다. 오늘 우리 새 맴버도 같이 왔으니까 잘 해. 알았어?”
윤경 언니는 짧게 커트친 머리에 길고 윤기 나는 다리가 매력적으로 보였다. 약간 톰보이 분위기가 난다 싶었는데 말투도 터프 했다.
“명심하겠습니다, 누님.”
원빈이 90도로 인사를 하고는 그대로 숙인 채 앞장서 우리를 안내했다. 가방 보관소에서 코트를 벗어 맡기려는데 은희 언니가 날 보고 말했다.
“야~ 우리 수정이 옷 발 제대로 사네. 옷 좀 입을 줄 아는 걸.”
나 미소를 지으며 내부를 스캔해 보았다. 시끄러운 음악소리와 현란한 조명에 맞춰 플로어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몸을 흔들고 있었고 웨이터들은 뭐가 그리 바쁜지 테이블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고 있었다. 우리는 원빈이 안내해준 앞쪽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잠시 후 맥주 몇 병과 과일 한 접시가 테이블에 올려졌고 윤경 언니의 제안에 우리는 플로어로 나가 음악에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우리 주변에는 어느 틈에 여러 남자들이 모여들어 위아래로 우리를 훑어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날리고 있었다.
얼마 후 빠른 템포의 음악을 연주하던 밴드가 잘 알아듣지 못할 영어 멘트를 날리더니 슬로우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고 플로어의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 나갔다. 자리로 돌아가자 원빈이 윤경의 귀에 뭐라고 떠들어댔고 잠시 후 윤경이 우리를 가까이 불러 모으고 큰소리로 말했다.
“룸에 두 명씩 두군 데 물이 좋다는데 찢어질까?”
은희 언니가 큰 언니답게 말했다.
“오늘은 수정이도 처음 왔으니까 일단 같이 놀자.”
윤경이 고개를 끄덕이고 원빈에게 말하자 원빈이 다시 허리를 90도로 꺾고 사라졌다. 그때 어떤 사내가 하나 우리 테이블로 오더니 소리 지르듯 말했다.
“네 분이시면 저희하고 합석하시겠습니까?”
말끔히 차려 입은 양복인 꽤나 세련 되어 보였고 표정과 몸짓에서는 자신감이 묻어나는 것 같았다. 윤경 언니가 우리모두를 보며 싱긋 웃더니 일어서며 말했다.
“내가 가서 보고 올게.”
윤경 언니가 잠시 자리를 비우더니 돌아왔다.
“괜찮네. 애들 깔끔하고 매너도 좋은 것 같은데 일단 좀 놀아보지 뭐.”
언니들은 윤경 언니의 판단을 믿는 것 같았다. 우리는 윤경 언니를 따라 위층에 자리잡은 룸으로 들어섰다. 갑자기 세상이 조용해진 것 같았고 그 안에 앉아 있던 남자들이 우리를 보자 벌떡 일어나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꽤 비싼 양주가 돌았고 의미 없는 대화가 이어졌다. 통성명을 하는데 언니들은 다 가명을 대는 것 같았다. 그때 언니들이 사용한 가명들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나도 분위기 탓에 얼떨결에 내 친구 이름인 혜경이라고 말해버렸다. 미영 언니는 어느새 자기 파트너가 마음에 드는지 약간의 스킨쉽까지 주고 받더니 둘이 뭐라고 속삭인 후 옆에 앉아있던 내게 귓속말을 했다.
“나 먼저 갈게. 낼 운동 올 거지?”
미영 언니는 다른 언니들에게 야릇한 미소를 날린 후 자기 파트너와 함께 룸을 나섰다. 우연히 내 옆에 안게 된 남자는 깔끔하고 매너가 참 좋았던 걸로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날 미영 언니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파트너와 동행하지 않았고 몇 번의 부킹 시도를 더 한 후 새벽 1시가 지나 나이트 클럽을 나섰다.
“미영이 저년은 대충 괜찮다 싶으면 그냥 바로 줘버리는 게 탈이라니까.”
“야, 그러니까 걔가 실속 있는 년이지. 너나 나나 맨날 고르기만 하다가 술만 먹고 몸만 상하는 거지.”
윤경 언니와 은희 언니의 말에 피시 웃음이 나왔다.
“근데 넌 니 파트너 맘에 안 들었어? 깔끔하고 괜찮아 보이던데.”
“너무 지루했어요. 그냥 달라고 하면 줬을지도 모르는데 이건 뭐 내가 먼저 준다고 하길 기다리는 건지…… 아무튼 좀 그랬어요. 그래도 오늘 재밌었어요.”
우리는 다시 모범택시를 함께 타고 오늘 길에 가장 가까운 은희 언니를 내려주고 다음은 내 숙소에서 내릴 차례가 되었다.
“수정아, 나 술 냄새 너무 많이 나서 이대로 들어가면 남편이 싫어할 것 같아. 니 숙소에서 좀 씻고 가도 돼?”
“그러세요, 언니.”
난 아무 생각 없이 윤경 언니와 함께 숙소로 들어섰다. 난 그제서야 윤경 언니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나도 작은 키가 아닌데 언니는 나보다 더 컸다. 톰보이 스타일로 보이시하게 짧게 커트친 머리와 원피스가 어딘가 미스매치 같으면서도 묘하게 어울렸다. 무엇보다 볼륨감 있는 몸매가 매력적이었다.
“우리 신랑이 좀 까다로워서 나 오늘 동창 모임 간다고 나온 거거든. 좀 씻고 옷 갈아 입고 갈께.”
그러고 보니 윤경 언니는 아까부터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
“네. 편하게 하세요.”
“그래, 고마워. 그리고 수정이 너도 그냥 말 편하게 해. 언니 동생 하기로 하고 그렇게 깍듯하게 하면 우리 못 친해져.”
“알겠어, 언니.”
난 웃으며 쿨하게 말했다.
“커피 있니?”
“믹슨데 괜찮아?”
언니와 마주 앉아 믹스 커피를 마셨다. 커피를 마시며 나를 유심히 보던 언니가 말했다.
“니 남편은 지금쯤 땅을 치고 있겠다. 너 같은 여자 만나기 쉽지 않을 텐데……”
“팀은 선수야. 나도 4년을 감쪽같이 속았는걸 뭐. 지금쯤 다른 여자들과 지내느라 난 완전히 잊었을걸?”
“넌 온몸에 색기가 줄줄 흘러. 아주 주울~줄. 그건 그냥 이쁜거 하고는 차원이 다른 거거든.”
“언니도 참. 언니도 한 섹시 하는 걸 뭐.”
“그러니?”
윤경 언니가 내 앞으로 몸을 숙이며 야릇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순간 나도 모르게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언니의 눈길에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의 나를 완성하는 계기가 되어가고 있었다.
- 계속
“난 수정양하고 본격적으로 사귀고 싶은데…… 수정양 생각은 어때요?”
그의 무릎에 앉은 내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그가 물었다.
“호호호…… 우리 지금 이렇게 편하게 통화하고 만나고 하는 거 아니었어요?”
“물론 그렇긴 하지만…… 우리 이렇게 하면 어때요? 여기 임대료 내가 내 줄게요. 물론 생활비도 좀 주고. 그리고 내가 수정양 보고 싶을 때 편하게 와서 만나고 그러면 좋을 것 같은데.”
“후훗~ 나보고 아저씨 숨겨 논 애인하라는 말인가요? 정부? 첩? 뭐 그런 거?”
“아니 뭐 꼭 그런 것 까지는 아니고…… 이제 수정양 없이는 못 살 것 같아서 그래요. 수정양도 내가 싫지 않은 것 같으니까 기왕이면 날 이용해봐요.”
그 순간에는 썩 나쁘지 않은 제안인 것 같았다.
“글쎄요…… 한번 생각해 볼게요. 근데 저 여기 오래 있을 거 아닌 건 아시죠? 몇 달 후에는 미국으로 돌아가봐야 되요.”
“알아요. 그러니까 몇 달간이라도 수정양과 더 자주 함께 있고 싶어서 그래요.”
“호호호…… 아저씨 나한테 반했나 보네? 알았어요. 생각해 볼게요. 회사 들어가 보셔야 할 테니 어서 가세요.”
“아~ 가기 싫다. 나 그냥 오늘 오후 다 제끼고 여기 있다가 수정양이 해주는 저녁 먹고 가면 안될까요?”
“네? 날보고 저녁 하라고요?”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 남자가 지금 날 무슨 현지처 비슷하게 만들려고 하는 것 같았다. 조금 전까지도 나쁘지 않다고 여겨졌던 그의 제안이 족쇄처럼 나를 가두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무릎에서 내려 일어서며 말했다.
“오늘은 쇼핑도 하고 너무 피곤해요. 아직 시차도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고 해서 그냥 좀 쉬고 싶어요.”
“그래요? 그렇다면 뭐 할 수 없지. 알았어요, 수정양. 그럼 쉬어요. 나중에 전화할게요.”
마지못해 방을 나서는 그의 얼굴에 서운함이 역력했다. 하지만 난 이미 그에게 만정이 다 떨어지고 있었다. 다행히 그를 설득해서 돌려보낸 후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그리고 그가 사준 옷들을 꺼내보니 어림잡아도 몇백만원어치는 되어 보였다. 순간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그는 어제와 오늘 두 번의 섹스로 만족하지 못 할 것이고 자기가 생각하는 본전을 뽑으려 할 것이었다. 게다가 임대료에 생활비까지 준다면 난 그에게 완전히 메이는 꼴이 될 것이 뻔했다.
난 그 길로 가까운 우체국에 들러 박스를 가져다가 그가 사준 옷가지들을 모두 싸서 그의 명함에 적힌 회사 주소로 보냈다. 그리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여의도 쪽의 레지던스를 찾아 바로 옮겨 버렸다. 비록 모든 것이 번거로웠지만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았다. 아직 짐도 제대로 풀어놓지 않은 상황이어서 그나마 큰 문제는 없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일들을 처리하고 새로 옮김 숙소에 막 짐을 풀어놓을 무렵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수정양, 숙소 옮겼어요? 퇴근 하고 왔는데 없어서 물어보니까 체크 아웃 했다고 하는데 사실이에요?”
역시 내 생각대로 인 것 같았다. 쉬고 싶다고 분명히 얘기하고 보냈는데 그는 그날 밤 바로 나를 찾아 왔던 것이었다. 사전에 전화로 물어보지도 않았고 문자 하나 없이 그냥 찾아온 것이었다. 어느 틈에 그는 나를 벌써 자기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죄송해요, 아저씨. 전 그냥 맘 내키는 대로 혼자 맘 정리 하려고 온 거라서 아저씨 그러시는 게 좀 부담스럽네요.”
“수정양, 거기 어디에요. 내가 갈 테니 우리 얼굴보고 얘기해요.”
“죄송해요, 아저씨. 그냥 우리 좋은 추억으로 생각하고 여기서 끝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수정양…… 아니 이건 아니지……”
“네?”
“아니 내가 수정양한테 투자한 게 얼만데…… 그리고 그렇게 받아먹고 이렇게 일방적으로 끝내자는 건 도리가 아니지 않나?”
그와 대화를 하면 할수록 조금이라도 빨리 정리하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지금도 나이 좀 있으신 분들을 멀리하거나 그러지는 않지만 가끔 이렇게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버리는 이중적인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정말 예의 바르고 정중한 신사 같은 남자들이 본전 타령하는 찌질이로 변하면 정말이지 짜증이 폭발해서 돌아버릴 지경이다.
“아저씨께서 사주신 거 전부 그대로 포장해서 사무실 주소로 보냈어요. 빠른 등기로 보냈으니까 내일이나 늦어도 모레면 받으실 수 있을 거에요. 다행히 쇼핑백안에 영수증도 다 있으니까 바로 환불하세요. 그리고 아저씨 전화 안 받을래요. 전화하지 마세요.”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아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한동안 계속되는 전화와 문자 세례. 난 그가 어떤 말들을 하는지 보려고 전화를 끄지 않고 문자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자기가 무슨 실수 한 게 있으면 용서하라고 하더니 갈수록 험악해지고 결국 꽃뱀이라는 소리와 위치추적 들어간다는 말까지, 정말 순간적으로 사람이 이렇게까지 변할 수 있나 하는 생각에 실소가 저절로 나왔다. 뭐라고 대꾸할까 하다가 그냥 전화기를 꺼버렸다. 어차피 선불폰인데다가 이 번호를 아는 사람은 그가 유일했으니 미련 없이 전화를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싱숭생숭한 마음에 간편한 운동복 차림으로 여의도 공원을 산책하다가 숙소로 돌아와 누웠다. 도착한지 겨우 하룻밤이 지났는데 벌써 많은 일이 일어난 것 같았다. 팀이 아닌 다른 남자와 얼떨결에 섹스를 했고 자칫하면 그에게 메어버릴 뻔 하기도 했다. 그런데 특이한 건 팀과 이혼 절차를 진행하는 동안에는 몰랐었는데 서울에 와서 낯선 남자와 섹스를 해서 그런지 혼자 있는 게 허전하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고 혼자 누워 있으면서 자꾸 내 몸을 스스로 더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냥 단순히 가슴을 쓰다듬다가 젖꼭지를 비틀었다. 짜릿했다. 좀더 강하게 비틀며 잡아 당기기 시작했고 나도 모르게 손이 가랑이 사이로 내려가 보지를 쓰다듬었다. 야릇했다. 보지가 촉촉히 젖는 가 싶더니 손가락 하나가 쑥 들어갔다. 미처 생각지도 못한 사이에 한 손은 젖가슴을 애무하고 있었고 다른 한 손은 보지를 쑤시며 몸을 비비 꼬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몸을 일으켜 침대 머리에 비스듬히 기대 앉아 다리를 벌리고 보지를 벌려보았다. 핑크빛 속살이 촉촉히 젖어 반들거린다. 손바닥을 펴서 보지에 대고 문질렀다. 몸이 또 꼬인다. 펴진 손바닥에서 가운데 손가락을 접어 안으로 밀어 넣었다. 내 보지가 내 손가락을 안으로 빨아 들이는 것 같았다. 들락거리는 손가락에 속도가 붙었고 몸은 더 비틀렸다. 한참을 그러다 보니 이것 가지고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컴퓨터를 켜고 성인용품 사이트를 뒤지기 시작했다. 몇 군데 찾아 다녀보니 별의별 물건들이 다 있었다. 호기심에 이것저것 들여다보고 사용후기도 꼼꼼히 읽어보고는 이것저것 사은품들을 많이 챙겨준다는 사이트에서 묵직해 보이는 딜도와 진동기를 주문했다. 결제까지 마치고 나니 얼굴이 화끈거리며 나도 모르게 아랫도리가 짜릿해지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안될 것 같아 욕조에 물을 받아 거품을 잔뜩 풀어 목욕을 하고서야 겨우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아침이 되고 창 밖을 보며 차 한잔을 마시다 보니 여기저기 다녀보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우선 차가 있어야 할 것 같아 렌터카를 하나 마련했고 가지고 있던 휴대폰은 배터리를 빼서 처박아놓고 새로 선불폰을 장만했다. 차도 마련했고 폰도 다시 생겼지만 막상 여기저기 다녀보고 싶다고 해도 딱히 어디라고 떠오르는 곳이 없었다. 숙소에서 인터넷으로 갈만한 곳이라도 검색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돌아가는 길에 63빌딩 근처에 미국에서도 본적이 있는 커다란 헬스클럽이 눈에 띄었다. 그렇지 않아도 한동안 운동을 안 해서 몸이 무거운 것 같았는데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낮이라 그런지 헬스클럽에는 아줌마들로 보이는 여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넓은 공간에 그런대로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었고 특히 사우나가 마음에 들었다. 상담직원은 꽤 꼼꼼하게 친절하게 안내를 해 주었지만 뭐 어차피 운동하기로 마음 먹은 거 건성건성 듣고 바로 회원가입을 했다. 상담직원은 내게 퍼스널 트레이너에 대해 설명하고 내게 적합한 트레이너라며 한 사람을 추천해 주었다. 몸이 아주 예뻐(?) 보이는 사내였다.
내친김에 乍【 운동복과 운동화를 사서 바로 스트레칭부터 시작했다. 늘 하는 생각이지만 정말 우리나라 사람들은 뭘 하든 복장과 장비가 참 예쁘고 다양한 기능을 갖춘 전문가용을 차려 입고 하는 것 같다. 통기성과 신축성에 몸의 균형을 잡아주고 어쩌고 하는 설명보다 그런 옷을 입지 않으면 이 무리에 낄 수 없을 것 같았다. 아줌마를 누구를 봐도 그냥 티셔츠 차림으로 운동하는 사람은 정말 단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레깅스 팬츠와 스포츠 탑으로 갈아입은 내 모습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트레이너는 내게 몸매 유지와 유연성 강화위주로 운동하자며 이런저런 코스를 짜주었다.
“몸이 아주 예쁘십니다. 전에도 계속 운동하셨었죠?”
“네. 얼마 전까지 거의 매일 했었죠.”
“그러신 것 같았어요. 자세도 잘 나오시고 호흡도 아주 좋으시네요.”
자세도 좋고 다 좋다며 그는 굳이 직접 내 몸에 손을 대가며 자세를 교정해주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많은 아줌마들이 퍼스널 트레이너들과 깔깔거리며 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 중 한 여자가 나에게 미소를 지으며 눈인사를 건넸다. 뭐 그러려니 하고 마주 웃어주었다. 첫날이라 그렇게 한 시간 가량 운동을 마치고 사우나로 갔다. 대중 목욕탕에 가본지 10년도 넘었던 터라 조금 낯설었지만 다른 여자들의 몸을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샤워를 하고 땀을 좀 내볼 생각에 사우나에 들어가 앉았다. 후끈한 열기가 온몸을 감싸는가 싶더니 금새 땀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잠시 그러고 앉아있는데 아까 내게 눈인사를 건넸던 여자가 아는 체를 했다.
“안녕하세요? 여기 새로 오셨죠?”
“아~ 네…… 오늘 처음 왔어요.”
“그래요. 반가워요. 이 동네 살아요?”
“네.”
그때 나와 대화를 나누는 여자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여자가 들어왔다.
“누구?”
“응. 오늘 새로 오셨대.”
“아~ 그래요? 반가워요.”
“아~ 네……”
얼떨결에 난 두 여자에게서 호구조사를 당했다. 몇 살이냐, 결혼했냐, 어디 사냐 등등 난 그들이 묻는 말에 그냥 담담하고 간략하게 대답해 주었다. 난 원래 묻는 말 이외에는 말을 많이 하는 성격이 아닌데다가 그 여자들에게 궁금한 것도 별로 없었는데도 그 여자들은 나에게 자신들의 신상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얘기를 해 주었다.
첫 번째 여자는 36살이고 이름은 미영이라고 했고 남편은 대기업 부장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육덕지다고 말하는 스타일의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몸에 군살이 좀 있지만 그렇다고 보기 흉할 정도는 아니었고 옷만 잘 차려 입으면 날씬하다고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다만 가슴이 상대적으로 좀 작았다.
두 번째 여자는 은희라는 이름의 38살 먹은 여자로 남편은 의사였다. 좀 마른 편에 아랫배가 약간 거슬릴 정도로 나왔고 가슴은 몸에 비해 컸지만 실리콘이 들어있는 게 분명했다.
“가족들도 다 미국에 있고 혼자 한국에 있으면 심심하겠다, 그쵸?”
“온지 아직 안돼서 아직 모르겠어요.”
미영 언니의 말에 그냥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럼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고 특별히 할일 없으면 우리 맥주나 한잔 할래요?”
딱히 끌리지는 않았지만 어쩌다보니 난 그들과 함께 맥주잔을 기울이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과의 대화는 점점 재미있어졌다. 사우나에서 나와 화장을 한 그들의 얼굴은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였는데 맨 얼굴일 때보다 훨씬 젊어 보였고 요염해 보였다. 30대 중 후반 가정주부의 모습은 분명 아니었다. 게다가 운동하려고 나온 옷차림으로 보기에는 너무 야했다. 난 그런 그들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우리는 어느새 말을 텄고 난 그녀들을 자연스럽게 언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대화의 주제는 19금 성인토크 수준이었다. 이것 또한 지루하지 않고 마음에 들었다. 나보고 미국에서 대학을 다녔으니 섹스는 자유로웠겠다고 물었다. 그러나 난 전 남편이 첫 상대이자 유일한 상대라고 말했고 그들은 재미있는 얘기를 기대했다가 꽤나 실망스러워했다. 그리고 이제 이혼했으니 마음껏 즐겨보는 것도 좋지 않냐는 얘기를 거침없이 해댔다.
피쳐 몇 개가 비워지자 나도 모르게 엊그제 만났던 아저씨 얘기가 나왔고 두 언니들은 그 남자를 성토하기 바빴다.
“내 말이 그 말이야. 섹파는 원나잇이란 말이지.”
“네?”
은희 언니의 말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아 반문했다.
“너, 아주 쑥맥이구나. 어차피 섹스파트너로 남자 고르는 거 아냐?”
“뭐~ 그렇죠. 결혼할 거 아니니까.”
“그러니까. 기왕 섹스파트너 고르는 거 이것저것 골고루 먹어봐야지. 남자들은 한번 주면 다 자기껀줄 알잖아. 그래서 신상까지 말고 딱 하룻밤만! 그래야 뒤탈도 없고 제대로 즐기는 거라구.”
“그럼 언니는 아무 남자나 만나서 섹스만 하고 헤어지는 거에요?”
“아무나 만나는 건 아니지. 일단 옷차림하고 말투를 보고 고르는 거지.”
“뭐 어쩌다 영계를 고를 때는 사이즈만 볼 때도 있지만.”
은희 언니의 말에 미영 언니도 거들었다. 난 선배들에게 경험담을 듣는 신입생처럼 귀를 쫑긋 세우고 그들의 말을 들었다.
“우리 기왕 말 나온 김에 오늘 한번 땡길까? 어때 언니?”
미영 언니가 은희 언니에게 물었다. 그러자 은희 언니가 내게 물었다.
“그럴래?”
“아니 저야 뭐……”
“수정이도 싫지는 않나 보네. 언니 오래간만에 한번 놀자. 윤경이는 내가 부를게.”
윤경 언니는 미영 언니와 고등학교 동창이라고 했다.
“수정아, 여섯 시쯤 전화하고 데리러 갈게 집에서 옷 갈아입고 기다려. 지금처럼 입고 나오면 너 안 데리고 간다.”
언니들은 나를 숙맥취급하고 있었다. 하기야 마음속에서 자꾸 욕정이 솟구치는 건 분명했지만 이 들이 들려준 경험담은 나를 어린애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숙소로 돌아와 어제 산 원피스를 꺼내 입고 힐을 신었다. 거울에 보이는 내 모습은 기대감에 잔뜩 들뜬 요염한 여자, 바로 그 모습이었다. 기대감이 큰 만큼 기다리는 시간은 길고 지루했다. 혹시라도 일찍 데리러 오지나 않을까 전화기만 만지작거렸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여섯 시가 조금 넘자 미영 언니가 아래로 내려오라고 했다.
숙소 입구에 가보니 에쿠우스 모범택시 안에 이미 익숙한 두 언니와 처음 보는 언니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반가워요, 수정씨. 난 윤경이라고 해요.”
“네, 언니들한테 얘기 들었어요.”
윤경 언니와의 간단한 통성명을 마친 우리는 얼마를 달려 언니들이 단골로 간다는 나이트 클럽 근처의 식당에 도착했다. 파스타를 잘한다는 식당이었는데 주로 여자들이 많았고 젊은 남녀가 데이트 하는 장소로도 자주 쓰이는 곳 같았다. 와인을 곁들여 저녁을 먹으며 난 윤경 언니를 살펴보았지만 다른 언니들과는 분위기가 다른 것 같았다. 어딘가 시크한 카리스마가 느껴지기도 했고 같은 여자면서도 왠지 자꾸 말을 걸고 싶어지는 여자였다. 그렇게 시간을 보낸 우리는 거의 8시가 다 되어서 나이트 클럽으로 들어섰다.
“누님들 오래간만에 오셨네요. 근데 멤버가 한 명 느셨네?”
원빈이라는 명찰과는 딴판으로 작달막한 키에 못생긴 개그맨처럼 생긴 웨이터가 언니들에게 꽤나 친한 척을 하며 맞아주었다.
“빈이 너 지난번처럼 아무나 들이대면 죽는다. 오늘 우리 새 맴버도 같이 왔으니까 잘 해. 알았어?”
윤경 언니는 짧게 커트친 머리에 길고 윤기 나는 다리가 매력적으로 보였다. 약간 톰보이 분위기가 난다 싶었는데 말투도 터프 했다.
“명심하겠습니다, 누님.”
원빈이 90도로 인사를 하고는 그대로 숙인 채 앞장서 우리를 안내했다. 가방 보관소에서 코트를 벗어 맡기려는데 은희 언니가 날 보고 말했다.
“야~ 우리 수정이 옷 발 제대로 사네. 옷 좀 입을 줄 아는 걸.”
나 미소를 지으며 내부를 스캔해 보았다. 시끄러운 음악소리와 현란한 조명에 맞춰 플로어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몸을 흔들고 있었고 웨이터들은 뭐가 그리 바쁜지 테이블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고 있었다. 우리는 원빈이 안내해준 앞쪽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잠시 후 맥주 몇 병과 과일 한 접시가 테이블에 올려졌고 윤경 언니의 제안에 우리는 플로어로 나가 음악에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우리 주변에는 어느 틈에 여러 남자들이 모여들어 위아래로 우리를 훑어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날리고 있었다.
얼마 후 빠른 템포의 음악을 연주하던 밴드가 잘 알아듣지 못할 영어 멘트를 날리더니 슬로우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고 플로어의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 나갔다. 자리로 돌아가자 원빈이 윤경의 귀에 뭐라고 떠들어댔고 잠시 후 윤경이 우리를 가까이 불러 모으고 큰소리로 말했다.
“룸에 두 명씩 두군 데 물이 좋다는데 찢어질까?”
은희 언니가 큰 언니답게 말했다.
“오늘은 수정이도 처음 왔으니까 일단 같이 놀자.”
윤경이 고개를 끄덕이고 원빈에게 말하자 원빈이 다시 허리를 90도로 꺾고 사라졌다. 그때 어떤 사내가 하나 우리 테이블로 오더니 소리 지르듯 말했다.
“네 분이시면 저희하고 합석하시겠습니까?”
말끔히 차려 입은 양복인 꽤나 세련 되어 보였고 표정과 몸짓에서는 자신감이 묻어나는 것 같았다. 윤경 언니가 우리모두를 보며 싱긋 웃더니 일어서며 말했다.
“내가 가서 보고 올게.”
윤경 언니가 잠시 자리를 비우더니 돌아왔다.
“괜찮네. 애들 깔끔하고 매너도 좋은 것 같은데 일단 좀 놀아보지 뭐.”
언니들은 윤경 언니의 판단을 믿는 것 같았다. 우리는 윤경 언니를 따라 위층에 자리잡은 룸으로 들어섰다. 갑자기 세상이 조용해진 것 같았고 그 안에 앉아 있던 남자들이 우리를 보자 벌떡 일어나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꽤 비싼 양주가 돌았고 의미 없는 대화가 이어졌다. 통성명을 하는데 언니들은 다 가명을 대는 것 같았다. 그때 언니들이 사용한 가명들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나도 분위기 탓에 얼떨결에 내 친구 이름인 혜경이라고 말해버렸다. 미영 언니는 어느새 자기 파트너가 마음에 드는지 약간의 스킨쉽까지 주고 받더니 둘이 뭐라고 속삭인 후 옆에 앉아있던 내게 귓속말을 했다.
“나 먼저 갈게. 낼 운동 올 거지?”
미영 언니는 다른 언니들에게 야릇한 미소를 날린 후 자기 파트너와 함께 룸을 나섰다. 우연히 내 옆에 안게 된 남자는 깔끔하고 매너가 참 좋았던 걸로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날 미영 언니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파트너와 동행하지 않았고 몇 번의 부킹 시도를 더 한 후 새벽 1시가 지나 나이트 클럽을 나섰다.
“미영이 저년은 대충 괜찮다 싶으면 그냥 바로 줘버리는 게 탈이라니까.”
“야, 그러니까 걔가 실속 있는 년이지. 너나 나나 맨날 고르기만 하다가 술만 먹고 몸만 상하는 거지.”
윤경 언니와 은희 언니의 말에 피시 웃음이 나왔다.
“근데 넌 니 파트너 맘에 안 들었어? 깔끔하고 괜찮아 보이던데.”
“너무 지루했어요. 그냥 달라고 하면 줬을지도 모르는데 이건 뭐 내가 먼저 준다고 하길 기다리는 건지…… 아무튼 좀 그랬어요. 그래도 오늘 재밌었어요.”
우리는 다시 모범택시를 함께 타고 오늘 길에 가장 가까운 은희 언니를 내려주고 다음은 내 숙소에서 내릴 차례가 되었다.
“수정아, 나 술 냄새 너무 많이 나서 이대로 들어가면 남편이 싫어할 것 같아. 니 숙소에서 좀 씻고 가도 돼?”
“그러세요, 언니.”
난 아무 생각 없이 윤경 언니와 함께 숙소로 들어섰다. 난 그제서야 윤경 언니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나도 작은 키가 아닌데 언니는 나보다 더 컸다. 톰보이 스타일로 보이시하게 짧게 커트친 머리와 원피스가 어딘가 미스매치 같으면서도 묘하게 어울렸다. 무엇보다 볼륨감 있는 몸매가 매력적이었다.
“우리 신랑이 좀 까다로워서 나 오늘 동창 모임 간다고 나온 거거든. 좀 씻고 옷 갈아 입고 갈께.”
그러고 보니 윤경 언니는 아까부터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
“네. 편하게 하세요.”
“그래, 고마워. 그리고 수정이 너도 그냥 말 편하게 해. 언니 동생 하기로 하고 그렇게 깍듯하게 하면 우리 못 친해져.”
“알겠어, 언니.”
난 웃으며 쿨하게 말했다.
“커피 있니?”
“믹슨데 괜찮아?”
언니와 마주 앉아 믹스 커피를 마셨다. 커피를 마시며 나를 유심히 보던 언니가 말했다.
“니 남편은 지금쯤 땅을 치고 있겠다. 너 같은 여자 만나기 쉽지 않을 텐데……”
“팀은 선수야. 나도 4년을 감쪽같이 속았는걸 뭐. 지금쯤 다른 여자들과 지내느라 난 완전히 잊었을걸?”
“넌 온몸에 색기가 줄줄 흘러. 아주 주울~줄. 그건 그냥 이쁜거 하고는 차원이 다른 거거든.”
“언니도 참. 언니도 한 섹시 하는 걸 뭐.”
“그러니?”
윤경 언니가 내 앞으로 몸을 숙이며 야릇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순간 나도 모르게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언니의 눈길에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의 나를 완성하는 계기가 되어가고 있었다.
- 계속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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