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석은 정하니의 이야기를 다 듣고, 커피숍의 벽에 기대서 꺼이꺼이 울었다.
아무리 울음을 참으려 해도 참아지지를 않았다.
터져나오는 울음을 아무리 속으로 삼키려 해도 삼켜지지를 않았다.
현석이 그렇게 크게 울었는데도, 커피숍의 그 어느 누구도 제지를 안하는것으로 보아, 여기서 종종 있는 일인가 보다.
하긴 병원에 와서 이렇게 통곡을 하는사람이 어찌 현석뿐이랴.
한참을 울고나자 그나마 울음은 멈추었지만 여전히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감정이 어느정도 추스려지자 현석은 정하니와 함께 의사를 찾아갔다.
정하니의 말이 믿겨지지도 않았고, 설사 맞다고 해도 현석의 귀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상황이 상황이어서 그런지 담당의사는 그리 어렵지 않게, 만날수 있었다.
수술이 불가능한 부위.
두뇌의 모든 신경이 모이는 자리.
그 자리를 지나서 목을 따라 내려간단다.
그런데, 그 자리, 하필이면 모든 신경이 모이는 그 자리를 종양이 침범했다고 한다.
수술을 할 수는 있겠지만, 신경손상은 피할 수 없단다.
그래서 흔히들 수술이 불가능한 위치라고 한다.
그런데, 수술을 하면, 일부의 신경 손상이 있더라도 치료가 가능하느냐는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설사 종양을 제거한다고 해도, 식물인간이 될 수도 있고, 인지능력을 상실할 수도 있고, 행동장애가 올 수도 있단다.
그렇게 해서라도 치료가 되어 살수 있느냐 물었더니, 악성 뇌종양의 경우에 시간상의 차이는 있지만, 짧게는 몇 달에서 길면 몇 년 안에 대부분 다 사망한다고 했다.
그럼 결국 죽는다는 말이잖아?
무슨 말을 그리 어렵게 하는데?
예리는 3개월정도, 길어야 4개월이란다.
아니, 더 짧을 수도 있단다.
발견이 늦었고, 위치가 너무 위험한 위치란다.
설사 발견이 조금 더 빨랐다고 하더라도 위치가 수술이 너무 곤란한 위치라서 치료는 쉽지 않은 곳이란다.
지금 상태로는, 방사능 치료를 받으면 조금 더 생명을 연장할 수 있을 수도 있지만, 악성 뇌종양이란 것이 의사의 생각과는 달리 갑자기 진행이 빨라질 수도 있기에 그것조차도 장담할 수 없는 기간이란다.
불쌍한 예리.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기?
왜, 이 불쌍한 아이, 예리한테만 이렇게 가혹한데?
왜?
왜 그러는데?
도대체 왜 이러는데?
이렇게 사망선고를 받은 자리에 가족은 아무도 와 있지 않다.
뇌종양이라는 결과과 나오기 전, 병원에 입원하면서 연락은 했단다.
그러나 아무도 오지 않았단다.
세상에.
이럴거면, 이런 경우라면 부모가 아니다.
마치 천애 고아나 다름이 없는 상황이다.
그것에 화가 났다.
그리고 예리가 더 불쌍하게 느껴졌다.
의사의 말로는, 회생가능성이 없는 환자의 경우에 기본적인 치료만 하면서, 환자와 가족들의 합의하에 수술이냐, 방사능치료냐를 결정하여 치료를 시작한다고 한다.
지금 예리의 경우에는 치료라는 것이 사실상 방사능치료 외에는 없다.
병원에서도 수술에 대해서는 생각도 안하고 있단다.
방사능 치료를 거부하면, 진통제 처방만 하는 것이 다란다.
그리고 가능하면 환자의 요구를 들어 준다고 한다.
* * *
정하니가 했던 말 그대로이다.
달라진건 없었지만, 가슴이 더 아팟다.
의사의 말을 확인하고는 그래도 혹시, 하던 일말의 기대가 산산조각이 났다.
현석은 집으로 가지 않았다.
아니 갈 수가 없었다.
병상에 예리를 두고 어떻게 간단 말인가?
병상에 아이 엄마를 두고, 어디를 갈 수 있단 말인가?
예리를 두고 갈 수는 없었다.
생각할수록 눈물이 나왔지만, 내일 날이 밝으면 회사로 발걸음을 돌려야 한다.
그래도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만큼은 함께 하고싶다.
내일 저녁에 지수가 예리의 이야기를 하자고 하니, 이렇게 편안하게 함께 있을 수 있도록 주어진 시간이 길지는 않으나, 최소한 아침까지는 함께 있어주고 싶었다.
물끄러미 예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미 시계는 자정을 지났다.
홍아영이 남아있고, 정하니와 박인옥이 집으로 돌아갔다.
두사람은 내일 다시 오겠단다.
이들은 서로 매일밤을 하루씩 교대를 하면서 예리를 지키고 있는 모양이다.
예리는 진정 좋은 친구가 있는데, 현석은 아이 아빠이긴 하지만, 친구만도 못한 셈이다.
그 생각을 하니 또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왜 이리 눈물이 흐를까?
전에 이런 슬픔에도 이렇게 가슴아파하지 않았는데, 대체 왜 이럴까?
홍아영은 현석과 예리가 있는 모습을 보고 보조침대에 몸을 눕히고 잠이 들었다.
잠이 들었는지 그냥 눈을 감고 있는것인지는 모르지만, 현석이 옆을 지키고 있으니, 옆에와서 같이 움직이는 것 보다는 오히려 그것이 더 좋다.
“나 좀.”
예리가 누워있던 몸을 일으키려 했다.
“응.”
현석은 그녀의 어깨 아래로 손을 넣어 몸을 일으켜 앉혀 주었다.
그리고 침대의 그녀 뒤쪽에 앉아서 가슴으로 그녀의 등을 받쳤다.
그리고 그 작은 어깨를 감싸 안았다.
“아저씨, 이제 집에 들어가세요.”
“…”
현석은 그녀가 고개를 돌려 현석을 돌아보며 집으로 가라는 말에, 대답 대신 그녀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예리는 현석이 잡아주는 손을 함께 꼭 잡더니, 그 손을 자기의 얼굴에 가져다 대었다.
이렇게 앉아 본적이 언제 있었나?
“언니한테 많이 혼났죠?”
“아니.”
현석은 고개를 저었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
대체 니가 나 때문에 죄송할게 뭐 있니?
따지고 보면 틀린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슴이 아프다.
“언니가 아저씨와 함께 올 줄 몰랐고, 친구들은 언니를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정말 죄송해요.”
“걱정 하지마, 언니가 쫏아내기야 하겠니?”
현석은 예리의 볼을 쓰다듬어 주었다.
예리는 볼을 쓰다듬는 현석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리고, 그 손을 꼭 잡았다.
“그래도, 아저씨가 하루만이라도 이렇게 제 옆에 있어 주어서 행복해요.”
얘가 또 눈물나게 만든다.
사실상의 사형선고를 받았는데, 겨우 하루를 현석이 옆에 있어주어서 행복하다니.
넌, 언제나 항상 그렇게 욕심을 부리지 않니?
전에 네가 떠나갈때도, 네가 너무 욕심없이 떠난것인데.
이제와서 의미없는 가정이지만, 네가 붙잡았다면, 나는 너와 함께 했을지 모르는데.
하지만, 이제와서 그게 무슨 소용이니?
대체, 이제와서.
“제 옆에 아무도 없을줄 알았거든요. 물론 친구들은 다르지만, 그런데 아저씨가 이렇게 있어 주셔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예리야.”
“그래도 석달은 살수 있대요.”
“…”
“운이 좋으면 조금 더 살거래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눈가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약간은 핼쓱해 보이는 뺨위로 눈물이 줄을 그으며 흘렀다.
그리고 그 붉은 잎술의 가장자리로 흘렀다.
운이 좋으면 조금 더 살거라니.
고함을 지르고 악을 바락바락쓰면서 살고싶다고 소리쳐야 할텐데, 대체 얘는 또 왜이러는건가?
몇일이 흘렀다고, 벌써 현실은 직시하고 받아들였다는 소리인가?
그런데, 이렇게 예쁜 예리가, 이렇게 어린 예리가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죽어야 한다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보지도 못하고 죽어야 하다니.
아이를 얻어서, 이제 세상을 산다는 것이 어떤것인지 알았다고 했는데,
세상은 살아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했었는데.
이 무슨 일이란 말이냐?
현석은 그녀의 입술 가장자리로 흘러드는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손을 올리다가, 손 대신 입술을 가져갔다.
새삼스레 예리의 입술에 키스하고 싶어진 것은 아니다.
웬지 손으로 닦는 것이 불결하게 느껴진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의 입술에 현석의 입술을 살짝 덥고는 그녀의 눈물을 현석의 입 안으로 빨아들였다.
짭짤한 느낌.
그리고 그녀의 눈물이 줄을 그렸던 그녀의 볼로 혀끝을 옮겼다.
그런데, 그때, 예리의 입술이 현석의 입술이 이동하는것을 제지하며, 두 팔이 현석의 목을 감았다.
아~
이러면 안된다며, 그녀를 떼어낼 수가 없다.
아니, 현석이 먼저 입술을 가져갔으니, 그녀가 그렇게 한다고 떼어낼 수가 없었다.
예리의 혀가 현석의 입술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 왔다.
현석은 정말 너무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예리의 입술과 혀의 맛을 오랬동안 느꼈다.
“하아…”
긴 입맞춤 때문이었는지, 예리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1년이 훨씬 더 지난, 오랬만의 입맞춤이다.
현석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몸을 돌려 현석의 품으로 파고 들었다.
현석은 예리를 품에 꼬옥 안고 아주 작게 좌우로 몸을 흔들었다.
언제였는지, 홍아영이 보조침대에 앉아있고, 시선은 발끝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굴은 현석의 방향으로 돌리지도 않고, 조심스러운 발길로 병실을 나갔다.
자리 비켜 줄 테니 안심하고 키스해라?
더 진하게 키스해도 된다?
하긴, 아무리 잠들어 있었지만, 자기를 투명인간 취급하고 키스를 했고, 그것을 보았으니 조금 민망하긴 했을 것이다.
결국은 그 작은 침대에 둘이 함께 몸을 눕혔다.
현석이 바라보고 있으니, 그녀가 잠들지 않고,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현석의 품에 예리의 몸이 작은새처럼 안겼다.
그리고 그녀는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 * *
예리를 병실에 두고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현석은 예리의 병실을 떠나는 시간을 계속해서 늦추며 나가지 않고 있다가, 결국은 정하니가 오는 것을 보고서야 떠나게 되었다.
“저도 왔으니, 이제 그만 가세요. 아저씨.”
현석이 밤을 새고 꾀죄죄한 모습이어서 그런지, 정하니의 말투에 조금은 동정이 어려있다.
“그래요. 고생이 많은데, 그래도 예리에게 좋은친구들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
“그럼, 갈께요. 예리야, 또 올께.”
“네.”
현석은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보는 예리를 두고, 한참을 서서 그녀를 바라보다가 말 없이 돌아섰다.
* * *
하루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전과는 달리 따로 사장실이라고 있으니, 혼자 있을 수 있어서 방해는 안받아서 좋지만, 예리만 생각하면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최상무가 걱정이 있느냐고 물었지만, 그냥 별일 아니라고 했다.
지수가 집에 와 있을까?
어제, 그렇게 찬바람이 불 정도로 냉랭한 모습은 처음봐서 정말 간이 철렁할 정도였었다.
그러나, 새벽의 키스와 그 작은 병원침대에서 예리를 안고 잠을 청한것, 그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사실은 예리문제로 현석이 지수에게 잘못한 것은 없다.
아니, 뭐 아무리 결혼 전이라고 하지만, 아니 지수와 알기전이라고 하더라도, 이여자 저여자 건드리고 다녔다 아니다를 이야기 한다면, 미안해 할 일인 것은 분명하지만, 바람을 핀것도 아니고, 숨겨둔 여인도 아니다.
하긴, 숨겨둔 여인처럼 보일 수는 있다.
그러나, 지수와의 만남 이전에 일어난 일이다.
그래도, 한가지 난관이 있다.
현아.
이 아이가 생후 몇 달만에 고아가 되어버리는데다가, 아직 출생신고도 하지 않은 상태이다.
설사 예리에게 이런상황이 오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미혼모의 아이로서 사생아가 되어버리는것을 그냥 모른체 할 수는 없다.
지수와 현아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것은, 현석이 어떤 요구도 할 수는 없지만, 말 그대로 지수의 처분만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그녀가 어떻게 결정을 내려줄까?
* * *
“힘들었죠?”
퇴근하고 집에 도착하자, 지수는 집 안으로 들어서는 현석에게 반가운 표정으로 인사를 했다.
조금은 당황했다.
어제 그렇게하고 간 것이 있었기에 이렇게 반갑게 대하자 잠시 혼돈스러웠다.
친정에서 아직 안 왔거나, 왔다면 말을 안하고 토라져 있거나, 이불속에 있거나, 그것도아니면 쓰레기통이라도 던지거나 할 줄 알았다.
그런데, 밥 다 해놓고 기다리고 있다.
“아니. 그냥.”
“씻고 나와서 저녁 드세요.”
지수는 평상시와 꼭같다.
속으로 굉장히 걱정을 하면서 집으로 들어왔는데, 어제의 일은 꿈이었는듯 평상시와 꼭같이 말하고 행동한다.
옷을 받아서 옷장에 거는 그녀의 눈치를 계속 보았지만, 표정도 말투도 완전히 평상시 같다.
“엘리.”
“예리 이야기는 밥 먹고 해요. 어차피 예리는 저랑 만나기 전에 만났던 사람이고, 현아도 예리가 마음대로 낳은 아이인데, 당신이 잘못한건 없잖아요?”
“…”
참 할말 없게 만든다.
이여자, 내 여자가 분명하지만, 정말 무서운 여자야.
그리고 이여자 요물 맞아.
* * *
“저도 오늘 병원에 다시 갔었어요.”
현석은 커피 한잔을 타고, 그녀에게 줄 생과일 주스를 믹스에 갈아서 컵에 부어 평소처럼 소파에 앉았다.
저녁식사후의 차는 대부분 현석이 준비를 해 왔다.
그렇게 앉았는데, 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이런때는 그녀가 참 말을 꺼내기 쉽게 해 준다.
이것 또한, 그녀의 장점이다.
“…”
그러나 아무 말은 하지 못했다.
“밤새 예리와 있다가 아침에 갔다는 말도 들었어요.”
“…”
그녀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것을 책망하려는듯 보이지는 않는다.
“잘 했어요, 그 애를 혼자두지 않은건.”
“…”
잘 했다니.
당신이 왜 거기서 밤을 새고 간호를 하는데? 라고 고함을 쳐야 맞는데, 잘 했단다.
“예리의 친구들도 다 만났고, 당신하고의 관계도 다 물어 봤어요. 가슴아픈 일이긴 하지만, 마음의 정리는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서.”
“…”
할말 없다.
그렇지만, 거짖말을 하지는 않았다.
“다음주에 퇴원 할거래요.”
“왜?”
“호스피스 병원으로 가는것으로 마음에 결정을 했나봐요.”
“…”
“하긴, 회생가능성이 전무한 상태이니.”
호스피스 병원, 죽음을 피할 수 없는 환자가 편안한 죽음을 맞기위해 선택하는 곳이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보편화 된 병원은 아니지만 국내에 제법 여러곳이 있는것으로 현석도 알고있다.
그러나 말로만 그렇다는 것을 알고있다.
그래도 호스피스 병원이라니.
현실을 너무 빨리 받아들이고 그대로 인정 해 버리는 것 같다.
방법이 없긴 하지만, 가슴이 답답해 졌다.
“음.”
하긴, 어찌 보면, 더 좋은 결정일 수도 있다.
“피에르체도 처분 한대요. 가능하면 직원들이 공동으로 인수를 하겠다면, 값싸게 물려줄 생각을 하고 있는가 봐요.”
“…”
“그래서, 퇴원하면 호스피스 병원가기 전에 우리집으로 오라고 했어요. 갈땐 가더라도 당분간 우리집에 좀 와 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
무슨소리냐는듯이 쳐다보았다.
“현아, 출생신고도 안했다고 하더라구요.”
“…”
다 알아보고 온 것 같다.
“나하고 같이가서 헨리의 딸로 출생신고 하자고 했어요.”
“…”
현석이 정말 가장 많이 걱정했던 부분이다.
“그리고, 내가 낳은 아이는 아니지만, 내가 낳은 아이보다 더 잘 키울 테니 걱정 말라고 했어요.”
그녀가 그렇게 말 하는데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저렇게 말하는 그녀의 가슴은 얼마나 아플까?
그녀의 속이 얼마나 부서지고 있을까?
“그러겠다고 했어?”
“한번에 그걸 대답할 수 있나요? 그런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요. 그리고 마음을 결정할 시간도 줘야 되요.”
“…”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특별히 대답을 하지 않으면, 그렇게 하자는 뜻으로 받아 들이면 되니까요.”
“…”
맞는 말이다.
긍정보다 더한 긍정의 뜻으로 아무말을 않거나, 부정보다 더한 부정의 뜻으로 아무말을 않는 것이 더 크게 전달 되는 경우가 많다.
“내일 다시 오마고 했어요. 생각을 좀 잘 해두라고 하고.”
“고마워 엘리. 그렇게 해 줘서.”
“출생신고 할려면 몇가지 서류가 필요해요. 그것도 같이 준비하자고 했어요.
헨리도 알고 있겠지만, 예리, 그애는 별도로 집이 있는게 아니라, 샵 2층에 살잖아요?”
알지.
그녀와의 첫 밤도 거기였는데, 모를리가 있겠니?
“…”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여서 알고 있다는 표시를 해 주었다.
“우리집에 데려와도 되죠?”
대답을 못했다.
속으로는 그렇게 해 주면 정말 좋겠지만, 그렇다고 그러라고 하기에는 지수의 눈치가 보였다.
“…”
말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한가지 문제가 있다.
“그런데.”
“네?”
“처가 식구들이 종종 놀러 오는데, 예리를 누구라 설명 할거야?”
현석이 물었다.
“그게 문제이긴 한데, 나도 아직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고민 좀 해 봐요.”
“…”
이부분이 문제이다.
정말, 가장 심각한 문제이다.
“사실을 알리는게 좋을 것 같기도 해요.”
“..?”
현석이 무슨 뜻이냐는듯 바라보았다.
“어차피 현아를 우리 딸로 키우려면, 엄마 아빠에게 감출 수 없을거잖아요?”
그렇다.
그건 정말 감출 수가 없다.
처가와 연을 끊고 살지 않는한 감추는 방법은 없다.
“…”
정말. 그게 제일 큰 문제이다.
“그럴바에야 미리 알리는게 나을 것 같아요.”
“…”
용납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방법은 생각해보고, 시기도 봐 가면서 해요.”
“그래.”
“엄마와 언니들은 내가 어떻게든 해 볼께요.”
결혼 승락을 받기위해 애를 쓴 모습을 기억하기에 맡겨두면 되겠지만, 이 일은 그 때와는또 다른 문제로,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그리고, 예리의 부모들이 알면, 물론 병원에 입원하고도 한번도 오지 않았지만, 그래서 앞으로 어찌 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부모의 권리를 행사하면, 현석이 막을 방법은 없다.
물론, 그때는 예리의 선택이 중요할 것이다.
* * *
비어있는 방이라서 치울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손님방을 깨끗하게 치우고, 넓고 푹신한 침대로 바꾸고, 침대보며 이불도 모두 새걸로 바꾸었단다.
퇴근해서 왔을 때, 예리가 있을 손님방을 가보고, 좀 부족한게 있으면 말해 달라고 해서 방을 둘러보니 방이 완전히 달라졌다.
손님방이라도 침실 다음으로 큰방이어서, 서재나 암실로 쓰는방에 비하면 훨씬 큰방이다.
예리가 사용하던 피에르체의 그 방의 두배는 족히 될 것이다.
이정도면 예리와 현아가 생활하는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을 정도이다.
다만, 피에르체어세는 욕실이 방에 딸려 있지만, 여기서는 거실을 통해 욕실로 가야하니 그것만 차이가 있을것이다.
그러나, 현아가 있기에는 피에르체보다는 훨씬 환경이 좋을 것이다.
한쪽에 바퀴가 달린 아기침대를 따로 놓았다.
그리고 옷장과 이불장도 들여놓아서 여기 있는 기간이 얼마간이 될지는 몰라도 생활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도록 꾸며 놓았다.
그녀가 몇일을 가구매장을 둘러보고 직접 고른것이란다.
* * *
예리의 퇴원일자에 병원으로 함께 갔다.
병원에 여전히 가족은 없었지만, 세명의 친구와 피에르체 직원처럼 보이는 사람 두명이 와 있었다.
“언니, 그래도 안돼요. 지난번에도 말 했지만, 내가 사는 집이 있기도 하고, 거길 내가 왜 들어가?”
지수가 지수의 집으로 가자고 하는것에 대해 예리가 완강하게 반대를 했다.
아마 이부분은 합의가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렇겠지.
그게 그리 쉽게 합의가 될 문제가 아닐것이다.
“예리야.”
“응, 언니.”
“네가, 네 고집만 부리면, 현아와 우리가 얼마나 힘들지 생각해 보지 않았니?”
“언니.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가 힘든 문제는 좀 다른 문제 이지만, 현아가 힘든다는 문제는 예리에게는 큰 문제일 수 있다.
“어쩌면, 얼마 후에는 널 영원히 떠나보내야 할 지도 모르는데, 네가 부르는 이름대로, 아저씨로 부를께, 그 아저씨와 한집에서 살아 보지도 못하고 떠난다면, 아저씨의 마음은 어떻겠니?”
“…”
“현아 출생신고 때문에 알아보니, 현아를 아저씨의 딸로 출생신고를 하는데는 문제가 없지만, 엄마를 내 이름으로 할 수는 없더라.
반드시 친모를 기록해야 한다고 하더라.
물론, 난 처음부터 네 이름으로 올릴 예정이긴 했으니, 그게 정상이긴 했지만,
출생증명서를 위조하지 않는 이상은 네이름으로 밖에는 안되도록 되어 있어.
그러니, 법적으로도 엄마는 꼭 네 이름이어야 해.
그 이야기는, 현아가 어른이 되면, 내가 낳아준 엄마가 아니고, 자기를 낳아준 엄마가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뜻이야.
그때, 지 아빠에게 엄마가 어떤 사람이었느냐고 물으면, 아저씨가 뭐라고 대답해 줄 수 있을 것 같아?”
“…”
예리는 말이 없었지만, 현석을 포함해서 누구도 말을 할 수 없었다.
지수가 예리에게 자기 집으로 가자는데 대해서 주위에서는 뭐라고 말을 할 수 없을것이다.
욕을하고 내쳐도 할말이 없는 판에 집으로 들어오라고 하는데, 누가 무슨 말로 된다 안된다 말을 할 것인가?
“적어도, 아저씨에게 현아의 엄마에 대해서, 다음에 현아가 물으면, 엄마는 이런사람이었다고 대답해 줄 추억 정도는 만들어 두는게 옳지 않겠니?
내 말이 틀렸니?
내 말이 틀렸다면, 네 마음대로 해.
그러나 난 내가 틀렸다고 보지 않아.”
잔잔하게 말하는 그녀의 말에 누구도 토를 달지 못했다.
모두 숨을 죽이고 그 말을 듣고만 있었다.
“예리야. 언니 말이 맞아. 그렇게 해.”
정하니가 지수의 말에 동의를 하며, 예리의 손을 잡았다.
정하니의 눈에는 눈물이 흘러 내렸다.
“예리가 보다시피, 나도 인심중이라서 오랬동안 우리 집에 있을 수도 없어.
길어야 두세달, 짧으면 한달이 될 수도 있어.
그리고, 예리에게 고통이 심해지면, 내 몸이 이런상태로는 나도 예리를 도와 줄 수가 없어.
그러니까, 기간이 얼마나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얼마간이라도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
예리가 입원하고 있는 사이,
치료 불가 판정을 받는사이, 그 사이사이마다 한없이 눈물을 흘렸겠지만, 정하니의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흘렀다.
다른 친구들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그래, 언니 말대로 해. 예리야.”
“내 생각도 그래, 예리야.”
주위에 있던 친구들이 모두 찬성을 하자 예리는 현석을 쳐다보았다.
현석은 안다.
지수가 예리가 오는것에 대해 얼마나 잘 준비를 했는지를 알고있다.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예리는 지수의 품에 안겼다.
“언니, 고마워. 언니.”
결국 울음이 터졌다.
예리도 알것이다.
지수가 얼마나 많이 양보하고, 얼마나 자신을 많이 생각해서 이런 결정을 내렸을 것이라는것을.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모르겠다.
지수를 만나기전에 잠시 만나서 사랑을 나누었던 아이, 애 엄마가 되어도 현석의 눈에는 여전히 아이 이지만, 그 아이와 진정 사랑하는 여인 지수와 3자의 동거라는 상황이 되다니.
(계속)
하필이면 이부분을 다시쓰기와 교정을 할 때, 황정민 한혜진 주연의 영화, (남자가 사랑할 때)를 보았지 뭡니까.
제가 (이별 그리고 사랑)의 스토리를 작성해 둔 것은 5~6년 전인데, 왜 느낌이 묘해지던지.
(남자가 사랑할 때) 포스트에 붙어있는 “일생에 단한번”이라는 문구, 이것은 지수의 사랑철학이지요.
그러나, 영화를 보는 내내 사랑할 줄 모르는, 투박한 남자의 간절한 사랑, 그리고 어느날 알게된, 치유될 수 없는 병이 남자를 잠식해 가는 과정을 보면서 눈시울을 적시고 말았습니다.
마지막에 사랑하는 남자를 떠나보낸 한혜진이, 남자의 아버지가 운전하는 마을버스에 앉아 처절하게 울던 그 모습이, 지금도 가슴에 여운처럼 남아있습니다.
------- 뜨락에
아무리 울음을 참으려 해도 참아지지를 않았다.
터져나오는 울음을 아무리 속으로 삼키려 해도 삼켜지지를 않았다.
현석이 그렇게 크게 울었는데도, 커피숍의 그 어느 누구도 제지를 안하는것으로 보아, 여기서 종종 있는 일인가 보다.
하긴 병원에 와서 이렇게 통곡을 하는사람이 어찌 현석뿐이랴.
한참을 울고나자 그나마 울음은 멈추었지만 여전히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감정이 어느정도 추스려지자 현석은 정하니와 함께 의사를 찾아갔다.
정하니의 말이 믿겨지지도 않았고, 설사 맞다고 해도 현석의 귀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상황이 상황이어서 그런지 담당의사는 그리 어렵지 않게, 만날수 있었다.
수술이 불가능한 부위.
두뇌의 모든 신경이 모이는 자리.
그 자리를 지나서 목을 따라 내려간단다.
그런데, 그 자리, 하필이면 모든 신경이 모이는 그 자리를 종양이 침범했다고 한다.
수술을 할 수는 있겠지만, 신경손상은 피할 수 없단다.
그래서 흔히들 수술이 불가능한 위치라고 한다.
그런데, 수술을 하면, 일부의 신경 손상이 있더라도 치료가 가능하느냐는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설사 종양을 제거한다고 해도, 식물인간이 될 수도 있고, 인지능력을 상실할 수도 있고, 행동장애가 올 수도 있단다.
그렇게 해서라도 치료가 되어 살수 있느냐 물었더니, 악성 뇌종양의 경우에 시간상의 차이는 있지만, 짧게는 몇 달에서 길면 몇 년 안에 대부분 다 사망한다고 했다.
그럼 결국 죽는다는 말이잖아?
무슨 말을 그리 어렵게 하는데?
예리는 3개월정도, 길어야 4개월이란다.
아니, 더 짧을 수도 있단다.
발견이 늦었고, 위치가 너무 위험한 위치란다.
설사 발견이 조금 더 빨랐다고 하더라도 위치가 수술이 너무 곤란한 위치라서 치료는 쉽지 않은 곳이란다.
지금 상태로는, 방사능 치료를 받으면 조금 더 생명을 연장할 수 있을 수도 있지만, 악성 뇌종양이란 것이 의사의 생각과는 달리 갑자기 진행이 빨라질 수도 있기에 그것조차도 장담할 수 없는 기간이란다.
불쌍한 예리.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기?
왜, 이 불쌍한 아이, 예리한테만 이렇게 가혹한데?
왜?
왜 그러는데?
도대체 왜 이러는데?
이렇게 사망선고를 받은 자리에 가족은 아무도 와 있지 않다.
뇌종양이라는 결과과 나오기 전, 병원에 입원하면서 연락은 했단다.
그러나 아무도 오지 않았단다.
세상에.
이럴거면, 이런 경우라면 부모가 아니다.
마치 천애 고아나 다름이 없는 상황이다.
그것에 화가 났다.
그리고 예리가 더 불쌍하게 느껴졌다.
의사의 말로는, 회생가능성이 없는 환자의 경우에 기본적인 치료만 하면서, 환자와 가족들의 합의하에 수술이냐, 방사능치료냐를 결정하여 치료를 시작한다고 한다.
지금 예리의 경우에는 치료라는 것이 사실상 방사능치료 외에는 없다.
병원에서도 수술에 대해서는 생각도 안하고 있단다.
방사능 치료를 거부하면, 진통제 처방만 하는 것이 다란다.
그리고 가능하면 환자의 요구를 들어 준다고 한다.
* * *
정하니가 했던 말 그대로이다.
달라진건 없었지만, 가슴이 더 아팟다.
의사의 말을 확인하고는 그래도 혹시, 하던 일말의 기대가 산산조각이 났다.
현석은 집으로 가지 않았다.
아니 갈 수가 없었다.
병상에 예리를 두고 어떻게 간단 말인가?
병상에 아이 엄마를 두고, 어디를 갈 수 있단 말인가?
예리를 두고 갈 수는 없었다.
생각할수록 눈물이 나왔지만, 내일 날이 밝으면 회사로 발걸음을 돌려야 한다.
그래도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만큼은 함께 하고싶다.
내일 저녁에 지수가 예리의 이야기를 하자고 하니, 이렇게 편안하게 함께 있을 수 있도록 주어진 시간이 길지는 않으나, 최소한 아침까지는 함께 있어주고 싶었다.
물끄러미 예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미 시계는 자정을 지났다.
홍아영이 남아있고, 정하니와 박인옥이 집으로 돌아갔다.
두사람은 내일 다시 오겠단다.
이들은 서로 매일밤을 하루씩 교대를 하면서 예리를 지키고 있는 모양이다.
예리는 진정 좋은 친구가 있는데, 현석은 아이 아빠이긴 하지만, 친구만도 못한 셈이다.
그 생각을 하니 또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왜 이리 눈물이 흐를까?
전에 이런 슬픔에도 이렇게 가슴아파하지 않았는데, 대체 왜 이럴까?
홍아영은 현석과 예리가 있는 모습을 보고 보조침대에 몸을 눕히고 잠이 들었다.
잠이 들었는지 그냥 눈을 감고 있는것인지는 모르지만, 현석이 옆을 지키고 있으니, 옆에와서 같이 움직이는 것 보다는 오히려 그것이 더 좋다.
“나 좀.”
예리가 누워있던 몸을 일으키려 했다.
“응.”
현석은 그녀의 어깨 아래로 손을 넣어 몸을 일으켜 앉혀 주었다.
그리고 침대의 그녀 뒤쪽에 앉아서 가슴으로 그녀의 등을 받쳤다.
그리고 그 작은 어깨를 감싸 안았다.
“아저씨, 이제 집에 들어가세요.”
“…”
현석은 그녀가 고개를 돌려 현석을 돌아보며 집으로 가라는 말에, 대답 대신 그녀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예리는 현석이 잡아주는 손을 함께 꼭 잡더니, 그 손을 자기의 얼굴에 가져다 대었다.
이렇게 앉아 본적이 언제 있었나?
“언니한테 많이 혼났죠?”
“아니.”
현석은 고개를 저었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
대체 니가 나 때문에 죄송할게 뭐 있니?
따지고 보면 틀린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슴이 아프다.
“언니가 아저씨와 함께 올 줄 몰랐고, 친구들은 언니를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정말 죄송해요.”
“걱정 하지마, 언니가 쫏아내기야 하겠니?”
현석은 예리의 볼을 쓰다듬어 주었다.
예리는 볼을 쓰다듬는 현석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리고, 그 손을 꼭 잡았다.
“그래도, 아저씨가 하루만이라도 이렇게 제 옆에 있어 주어서 행복해요.”
얘가 또 눈물나게 만든다.
사실상의 사형선고를 받았는데, 겨우 하루를 현석이 옆에 있어주어서 행복하다니.
넌, 언제나 항상 그렇게 욕심을 부리지 않니?
전에 네가 떠나갈때도, 네가 너무 욕심없이 떠난것인데.
이제와서 의미없는 가정이지만, 네가 붙잡았다면, 나는 너와 함께 했을지 모르는데.
하지만, 이제와서 그게 무슨 소용이니?
대체, 이제와서.
“제 옆에 아무도 없을줄 알았거든요. 물론 친구들은 다르지만, 그런데 아저씨가 이렇게 있어 주셔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예리야.”
“그래도 석달은 살수 있대요.”
“…”
“운이 좋으면 조금 더 살거래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눈가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약간은 핼쓱해 보이는 뺨위로 눈물이 줄을 그으며 흘렀다.
그리고 그 붉은 잎술의 가장자리로 흘렀다.
운이 좋으면 조금 더 살거라니.
고함을 지르고 악을 바락바락쓰면서 살고싶다고 소리쳐야 할텐데, 대체 얘는 또 왜이러는건가?
몇일이 흘렀다고, 벌써 현실은 직시하고 받아들였다는 소리인가?
그런데, 이렇게 예쁜 예리가, 이렇게 어린 예리가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죽어야 한다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보지도 못하고 죽어야 하다니.
아이를 얻어서, 이제 세상을 산다는 것이 어떤것인지 알았다고 했는데,
세상은 살아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했었는데.
이 무슨 일이란 말이냐?
현석은 그녀의 입술 가장자리로 흘러드는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손을 올리다가, 손 대신 입술을 가져갔다.
새삼스레 예리의 입술에 키스하고 싶어진 것은 아니다.
웬지 손으로 닦는 것이 불결하게 느껴진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의 입술에 현석의 입술을 살짝 덥고는 그녀의 눈물을 현석의 입 안으로 빨아들였다.
짭짤한 느낌.
그리고 그녀의 눈물이 줄을 그렸던 그녀의 볼로 혀끝을 옮겼다.
그런데, 그때, 예리의 입술이 현석의 입술이 이동하는것을 제지하며, 두 팔이 현석의 목을 감았다.
아~
이러면 안된다며, 그녀를 떼어낼 수가 없다.
아니, 현석이 먼저 입술을 가져갔으니, 그녀가 그렇게 한다고 떼어낼 수가 없었다.
예리의 혀가 현석의 입술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 왔다.
현석은 정말 너무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예리의 입술과 혀의 맛을 오랬동안 느꼈다.
“하아…”
긴 입맞춤 때문이었는지, 예리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1년이 훨씬 더 지난, 오랬만의 입맞춤이다.
현석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몸을 돌려 현석의 품으로 파고 들었다.
현석은 예리를 품에 꼬옥 안고 아주 작게 좌우로 몸을 흔들었다.
언제였는지, 홍아영이 보조침대에 앉아있고, 시선은 발끝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굴은 현석의 방향으로 돌리지도 않고, 조심스러운 발길로 병실을 나갔다.
자리 비켜 줄 테니 안심하고 키스해라?
더 진하게 키스해도 된다?
하긴, 아무리 잠들어 있었지만, 자기를 투명인간 취급하고 키스를 했고, 그것을 보았으니 조금 민망하긴 했을 것이다.
결국은 그 작은 침대에 둘이 함께 몸을 눕혔다.
현석이 바라보고 있으니, 그녀가 잠들지 않고,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현석의 품에 예리의 몸이 작은새처럼 안겼다.
그리고 그녀는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 * *
예리를 병실에 두고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현석은 예리의 병실을 떠나는 시간을 계속해서 늦추며 나가지 않고 있다가, 결국은 정하니가 오는 것을 보고서야 떠나게 되었다.
“저도 왔으니, 이제 그만 가세요. 아저씨.”
현석이 밤을 새고 꾀죄죄한 모습이어서 그런지, 정하니의 말투에 조금은 동정이 어려있다.
“그래요. 고생이 많은데, 그래도 예리에게 좋은친구들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
“그럼, 갈께요. 예리야, 또 올께.”
“네.”
현석은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보는 예리를 두고, 한참을 서서 그녀를 바라보다가 말 없이 돌아섰다.
* * *
하루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전과는 달리 따로 사장실이라고 있으니, 혼자 있을 수 있어서 방해는 안받아서 좋지만, 예리만 생각하면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최상무가 걱정이 있느냐고 물었지만, 그냥 별일 아니라고 했다.
지수가 집에 와 있을까?
어제, 그렇게 찬바람이 불 정도로 냉랭한 모습은 처음봐서 정말 간이 철렁할 정도였었다.
그러나, 새벽의 키스와 그 작은 병원침대에서 예리를 안고 잠을 청한것, 그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사실은 예리문제로 현석이 지수에게 잘못한 것은 없다.
아니, 뭐 아무리 결혼 전이라고 하지만, 아니 지수와 알기전이라고 하더라도, 이여자 저여자 건드리고 다녔다 아니다를 이야기 한다면, 미안해 할 일인 것은 분명하지만, 바람을 핀것도 아니고, 숨겨둔 여인도 아니다.
하긴, 숨겨둔 여인처럼 보일 수는 있다.
그러나, 지수와의 만남 이전에 일어난 일이다.
그래도, 한가지 난관이 있다.
현아.
이 아이가 생후 몇 달만에 고아가 되어버리는데다가, 아직 출생신고도 하지 않은 상태이다.
설사 예리에게 이런상황이 오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미혼모의 아이로서 사생아가 되어버리는것을 그냥 모른체 할 수는 없다.
지수와 현아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것은, 현석이 어떤 요구도 할 수는 없지만, 말 그대로 지수의 처분만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그녀가 어떻게 결정을 내려줄까?
* * *
“힘들었죠?”
퇴근하고 집에 도착하자, 지수는 집 안으로 들어서는 현석에게 반가운 표정으로 인사를 했다.
조금은 당황했다.
어제 그렇게하고 간 것이 있었기에 이렇게 반갑게 대하자 잠시 혼돈스러웠다.
친정에서 아직 안 왔거나, 왔다면 말을 안하고 토라져 있거나, 이불속에 있거나, 그것도아니면 쓰레기통이라도 던지거나 할 줄 알았다.
그런데, 밥 다 해놓고 기다리고 있다.
“아니. 그냥.”
“씻고 나와서 저녁 드세요.”
지수는 평상시와 꼭같다.
속으로 굉장히 걱정을 하면서 집으로 들어왔는데, 어제의 일은 꿈이었는듯 평상시와 꼭같이 말하고 행동한다.
옷을 받아서 옷장에 거는 그녀의 눈치를 계속 보았지만, 표정도 말투도 완전히 평상시 같다.
“엘리.”
“예리 이야기는 밥 먹고 해요. 어차피 예리는 저랑 만나기 전에 만났던 사람이고, 현아도 예리가 마음대로 낳은 아이인데, 당신이 잘못한건 없잖아요?”
“…”
참 할말 없게 만든다.
이여자, 내 여자가 분명하지만, 정말 무서운 여자야.
그리고 이여자 요물 맞아.
* * *
“저도 오늘 병원에 다시 갔었어요.”
현석은 커피 한잔을 타고, 그녀에게 줄 생과일 주스를 믹스에 갈아서 컵에 부어 평소처럼 소파에 앉았다.
저녁식사후의 차는 대부분 현석이 준비를 해 왔다.
그렇게 앉았는데, 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이런때는 그녀가 참 말을 꺼내기 쉽게 해 준다.
이것 또한, 그녀의 장점이다.
“…”
그러나 아무 말은 하지 못했다.
“밤새 예리와 있다가 아침에 갔다는 말도 들었어요.”
“…”
그녀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것을 책망하려는듯 보이지는 않는다.
“잘 했어요, 그 애를 혼자두지 않은건.”
“…”
잘 했다니.
당신이 왜 거기서 밤을 새고 간호를 하는데? 라고 고함을 쳐야 맞는데, 잘 했단다.
“예리의 친구들도 다 만났고, 당신하고의 관계도 다 물어 봤어요. 가슴아픈 일이긴 하지만, 마음의 정리는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서.”
“…”
할말 없다.
그렇지만, 거짖말을 하지는 않았다.
“다음주에 퇴원 할거래요.”
“왜?”
“호스피스 병원으로 가는것으로 마음에 결정을 했나봐요.”
“…”
“하긴, 회생가능성이 전무한 상태이니.”
호스피스 병원, 죽음을 피할 수 없는 환자가 편안한 죽음을 맞기위해 선택하는 곳이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보편화 된 병원은 아니지만 국내에 제법 여러곳이 있는것으로 현석도 알고있다.
그러나 말로만 그렇다는 것을 알고있다.
그래도 호스피스 병원이라니.
현실을 너무 빨리 받아들이고 그대로 인정 해 버리는 것 같다.
방법이 없긴 하지만, 가슴이 답답해 졌다.
“음.”
하긴, 어찌 보면, 더 좋은 결정일 수도 있다.
“피에르체도 처분 한대요. 가능하면 직원들이 공동으로 인수를 하겠다면, 값싸게 물려줄 생각을 하고 있는가 봐요.”
“…”
“그래서, 퇴원하면 호스피스 병원가기 전에 우리집으로 오라고 했어요. 갈땐 가더라도 당분간 우리집에 좀 와 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
무슨소리냐는듯이 쳐다보았다.
“현아, 출생신고도 안했다고 하더라구요.”
“…”
다 알아보고 온 것 같다.
“나하고 같이가서 헨리의 딸로 출생신고 하자고 했어요.”
“…”
현석이 정말 가장 많이 걱정했던 부분이다.
“그리고, 내가 낳은 아이는 아니지만, 내가 낳은 아이보다 더 잘 키울 테니 걱정 말라고 했어요.”
그녀가 그렇게 말 하는데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저렇게 말하는 그녀의 가슴은 얼마나 아플까?
그녀의 속이 얼마나 부서지고 있을까?
“그러겠다고 했어?”
“한번에 그걸 대답할 수 있나요? 그런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요. 그리고 마음을 결정할 시간도 줘야 되요.”
“…”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특별히 대답을 하지 않으면, 그렇게 하자는 뜻으로 받아 들이면 되니까요.”
“…”
맞는 말이다.
긍정보다 더한 긍정의 뜻으로 아무말을 않거나, 부정보다 더한 부정의 뜻으로 아무말을 않는 것이 더 크게 전달 되는 경우가 많다.
“내일 다시 오마고 했어요. 생각을 좀 잘 해두라고 하고.”
“고마워 엘리. 그렇게 해 줘서.”
“출생신고 할려면 몇가지 서류가 필요해요. 그것도 같이 준비하자고 했어요.
헨리도 알고 있겠지만, 예리, 그애는 별도로 집이 있는게 아니라, 샵 2층에 살잖아요?”
알지.
그녀와의 첫 밤도 거기였는데, 모를리가 있겠니?
“…”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여서 알고 있다는 표시를 해 주었다.
“우리집에 데려와도 되죠?”
대답을 못했다.
속으로는 그렇게 해 주면 정말 좋겠지만, 그렇다고 그러라고 하기에는 지수의 눈치가 보였다.
“…”
말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한가지 문제가 있다.
“그런데.”
“네?”
“처가 식구들이 종종 놀러 오는데, 예리를 누구라 설명 할거야?”
현석이 물었다.
“그게 문제이긴 한데, 나도 아직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고민 좀 해 봐요.”
“…”
이부분이 문제이다.
정말, 가장 심각한 문제이다.
“사실을 알리는게 좋을 것 같기도 해요.”
“..?”
현석이 무슨 뜻이냐는듯 바라보았다.
“어차피 현아를 우리 딸로 키우려면, 엄마 아빠에게 감출 수 없을거잖아요?”
그렇다.
그건 정말 감출 수가 없다.
처가와 연을 끊고 살지 않는한 감추는 방법은 없다.
“…”
정말. 그게 제일 큰 문제이다.
“그럴바에야 미리 알리는게 나을 것 같아요.”
“…”
용납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방법은 생각해보고, 시기도 봐 가면서 해요.”
“그래.”
“엄마와 언니들은 내가 어떻게든 해 볼께요.”
결혼 승락을 받기위해 애를 쓴 모습을 기억하기에 맡겨두면 되겠지만, 이 일은 그 때와는또 다른 문제로,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그리고, 예리의 부모들이 알면, 물론 병원에 입원하고도 한번도 오지 않았지만, 그래서 앞으로 어찌 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부모의 권리를 행사하면, 현석이 막을 방법은 없다.
물론, 그때는 예리의 선택이 중요할 것이다.
* * *
비어있는 방이라서 치울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손님방을 깨끗하게 치우고, 넓고 푹신한 침대로 바꾸고, 침대보며 이불도 모두 새걸로 바꾸었단다.
퇴근해서 왔을 때, 예리가 있을 손님방을 가보고, 좀 부족한게 있으면 말해 달라고 해서 방을 둘러보니 방이 완전히 달라졌다.
손님방이라도 침실 다음으로 큰방이어서, 서재나 암실로 쓰는방에 비하면 훨씬 큰방이다.
예리가 사용하던 피에르체의 그 방의 두배는 족히 될 것이다.
이정도면 예리와 현아가 생활하는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을 정도이다.
다만, 피에르체어세는 욕실이 방에 딸려 있지만, 여기서는 거실을 통해 욕실로 가야하니 그것만 차이가 있을것이다.
그러나, 현아가 있기에는 피에르체보다는 훨씬 환경이 좋을 것이다.
한쪽에 바퀴가 달린 아기침대를 따로 놓았다.
그리고 옷장과 이불장도 들여놓아서 여기 있는 기간이 얼마간이 될지는 몰라도 생활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도록 꾸며 놓았다.
그녀가 몇일을 가구매장을 둘러보고 직접 고른것이란다.
* * *
예리의 퇴원일자에 병원으로 함께 갔다.
병원에 여전히 가족은 없었지만, 세명의 친구와 피에르체 직원처럼 보이는 사람 두명이 와 있었다.
“언니, 그래도 안돼요. 지난번에도 말 했지만, 내가 사는 집이 있기도 하고, 거길 내가 왜 들어가?”
지수가 지수의 집으로 가자고 하는것에 대해 예리가 완강하게 반대를 했다.
아마 이부분은 합의가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렇겠지.
그게 그리 쉽게 합의가 될 문제가 아닐것이다.
“예리야.”
“응, 언니.”
“네가, 네 고집만 부리면, 현아와 우리가 얼마나 힘들지 생각해 보지 않았니?”
“언니.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가 힘든 문제는 좀 다른 문제 이지만, 현아가 힘든다는 문제는 예리에게는 큰 문제일 수 있다.
“어쩌면, 얼마 후에는 널 영원히 떠나보내야 할 지도 모르는데, 네가 부르는 이름대로, 아저씨로 부를께, 그 아저씨와 한집에서 살아 보지도 못하고 떠난다면, 아저씨의 마음은 어떻겠니?”
“…”
“현아 출생신고 때문에 알아보니, 현아를 아저씨의 딸로 출생신고를 하는데는 문제가 없지만, 엄마를 내 이름으로 할 수는 없더라.
반드시 친모를 기록해야 한다고 하더라.
물론, 난 처음부터 네 이름으로 올릴 예정이긴 했으니, 그게 정상이긴 했지만,
출생증명서를 위조하지 않는 이상은 네이름으로 밖에는 안되도록 되어 있어.
그러니, 법적으로도 엄마는 꼭 네 이름이어야 해.
그 이야기는, 현아가 어른이 되면, 내가 낳아준 엄마가 아니고, 자기를 낳아준 엄마가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뜻이야.
그때, 지 아빠에게 엄마가 어떤 사람이었느냐고 물으면, 아저씨가 뭐라고 대답해 줄 수 있을 것 같아?”
“…”
예리는 말이 없었지만, 현석을 포함해서 누구도 말을 할 수 없었다.
지수가 예리에게 자기 집으로 가자는데 대해서 주위에서는 뭐라고 말을 할 수 없을것이다.
욕을하고 내쳐도 할말이 없는 판에 집으로 들어오라고 하는데, 누가 무슨 말로 된다 안된다 말을 할 것인가?
“적어도, 아저씨에게 현아의 엄마에 대해서, 다음에 현아가 물으면, 엄마는 이런사람이었다고 대답해 줄 추억 정도는 만들어 두는게 옳지 않겠니?
내 말이 틀렸니?
내 말이 틀렸다면, 네 마음대로 해.
그러나 난 내가 틀렸다고 보지 않아.”
잔잔하게 말하는 그녀의 말에 누구도 토를 달지 못했다.
모두 숨을 죽이고 그 말을 듣고만 있었다.
“예리야. 언니 말이 맞아. 그렇게 해.”
정하니가 지수의 말에 동의를 하며, 예리의 손을 잡았다.
정하니의 눈에는 눈물이 흘러 내렸다.
“예리가 보다시피, 나도 인심중이라서 오랬동안 우리 집에 있을 수도 없어.
길어야 두세달, 짧으면 한달이 될 수도 있어.
그리고, 예리에게 고통이 심해지면, 내 몸이 이런상태로는 나도 예리를 도와 줄 수가 없어.
그러니까, 기간이 얼마나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얼마간이라도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
예리가 입원하고 있는 사이,
치료 불가 판정을 받는사이, 그 사이사이마다 한없이 눈물을 흘렸겠지만, 정하니의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흘렀다.
다른 친구들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그래, 언니 말대로 해. 예리야.”
“내 생각도 그래, 예리야.”
주위에 있던 친구들이 모두 찬성을 하자 예리는 현석을 쳐다보았다.
현석은 안다.
지수가 예리가 오는것에 대해 얼마나 잘 준비를 했는지를 알고있다.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예리는 지수의 품에 안겼다.
“언니, 고마워. 언니.”
결국 울음이 터졌다.
예리도 알것이다.
지수가 얼마나 많이 양보하고, 얼마나 자신을 많이 생각해서 이런 결정을 내렸을 것이라는것을.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모르겠다.
지수를 만나기전에 잠시 만나서 사랑을 나누었던 아이, 애 엄마가 되어도 현석의 눈에는 여전히 아이 이지만, 그 아이와 진정 사랑하는 여인 지수와 3자의 동거라는 상황이 되다니.
(계속)
하필이면 이부분을 다시쓰기와 교정을 할 때, 황정민 한혜진 주연의 영화, (남자가 사랑할 때)를 보았지 뭡니까.
제가 (이별 그리고 사랑)의 스토리를 작성해 둔 것은 5~6년 전인데, 왜 느낌이 묘해지던지.
(남자가 사랑할 때) 포스트에 붙어있는 “일생에 단한번”이라는 문구, 이것은 지수의 사랑철학이지요.
그러나, 영화를 보는 내내 사랑할 줄 모르는, 투박한 남자의 간절한 사랑, 그리고 어느날 알게된, 치유될 수 없는 병이 남자를 잠식해 가는 과정을 보면서 눈시울을 적시고 말았습니다.
마지막에 사랑하는 남자를 떠나보낸 한혜진이, 남자의 아버지가 운전하는 마을버스에 앉아 처절하게 울던 그 모습이, 지금도 가슴에 여운처럼 남아있습니다.
------- 뜨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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