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쉬, 조금 더 진한 그레이 -프롤로그-
오늘,
여자가 옷을 벗으며 말했다. 모텔 방 안으로 찐득한 술 냄새가 썩어가는 곰팡이의 포자처럼 번식했다. 난 치받아오는 구역질을 간신히 참았다. 참으며, 쓰러지듯 침대에 걸터앉았다. 옷을 벗기도 힘들 정도로 술에 만신창이였다. 테이블 아래에 구겨진 휴지가 보였다. 누렇게 변색된 액체가 말라붙어 있었다. 언제부터 여기 있었던 걸까. 누구의 흔적일까. 지독한 섹스의 주인공들이 환영幻影의 옷을 벗은 채로 나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욕지기가 터져나왔다. 참았다. 나는 숨을 쉬었다. 순간 더럽고 불쾌한 경멸이 나를 지배했다. 눈을 감아버린 태양이여, 세상의 모든 진실에 저주를. 바퀴벌레들이 내 심장에 가득 들어차 버글거리는 느낌이었다. 간신히 참았던 구역질이 다시 올라왔다. 여자가 내 윗옷을 벗기더니 내 가슴을 밀었다. 난 줄이 끊어져버린 인형처럼, 앉아있던 자세 그대로 침대에 널부러졌다. 올라오던 것들이 메슥거리며 침잠했다. 여자가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예전에 잠깐 사귀었던 남자친구가 왔었어요.
천장에 달린 실링팬이 건조하게 돌아갔다. 회전하는 몸짓이 무의미해 보였다. 이유도 모른채 영원을 달려야 하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여자가 내 허리띠를 풀었다. 햐얀 형광등 불빛이 날것 그대로의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커튼을 쳐다보았다. 시선의 궤적 사이로, 침대에 묻어 있는 익명의 음모가 들어왔다. 나의 것인지, 너의 것인지 모를. 커튼 너머의 풍경은 봉쇄되어 보이지 않았다. 입을 굳게 다문 커튼은 부패한 공기를 가득 품은 채 방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결박했다. 텁텁한 공기가 나의 목을 조르는 느낌이었다. 고요한 대기가 너무 무거웠다. 창문 좀 열어. 난 말하지 못했다. 해방된 나의 하체에 여자의 손길이 느껴졌다. 사그락. 사그락. 곧 시원한 청량감이 성기에 불어왔다. 난 침대 옆 선반으로 손을 뻗어 리모컨을 집었다. 텔레비전을 켜자 여자 아나운서가 무관심한 표정으로 세상의 관심사를 전하고 있었다. 여자가 일어섰다. 그리고 마지막 한 꺼풀마저 벗어버렸다.
다시 만나 달래요. 애인이 있다고도 했는데도.
난 네 애인이 아니야. 고함을 치고 싶었지만 여자가 나의 성기를 입에 넣는 바람에 함성은 스스로를 아득하게 몰아 소멸해갔다. 곧 부드럽고 뜨거운 안식이 나를 점령했다. 연금술을 찾아 떠나는 수도자처럼 여자는 나의 성기를 조심스럽고도 치밀하고 탐구했다. 끈끈한 타액이 나의 심장으로 파고들었다. 숨이 점점 조여왔다. 통계청 발표에, 국내 자살로 인한 사망자 수가, 올해 들어 만이천명으로, 꾸준한 증가 추세로, 급격히 상승했습니다.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낱개로 끊기며 들려왔다. 넌 내 애인이 아니야. 난 말하지 못했다.
당신하고 같이 만나도 괜찮다는데요? 이대 일로.
침인지 정액인지 알 수 없는 끈적한 점액이 여자의 입에서 밀려나와 나의 항문을 타고 침대로 흘렀다. 축축하고 기분 나쁜 느낌이 천국의 계단을 타고 올라왔다. 치받아오는 느낌이 나의 목을 조르고, 졸려진 나는 탁한 숨을 몰아쉬었다. 방은, 나의 숨으로 채워져갔다. 공간을 뒤덮고 있는 탁한 공기가 무의미한 실링팬의 흐름에 밀려났다. 그러나 숨은 점점 더 나의 목을 틀어막았다. 천천히 고개를 젖혔다. 검게 썩어버린 담뱃재의 일부가 선반 위 리모컨에 깔려 죽어있었다. 저 누렇게 바랜 벽지는 얼마나 많은 정액을 받아 마셨을까. 더러운 저 벽지도 처음에는 깨끗했겠지. 그 년처럼.
그냥, 싫다고 했어요.
시원한 감촉이 아래로부터 다시 밀려왔다. 난 고개를 들어 여자를 보았다. 여자는 내 허벅지에 머리를 기댄 채 성기를 가만히 만지고 있었다. 칠흑같은 생머리가 내 허벅지 너머로 계통없이 늘어져 있었다. 입가에 번들거리는 정액찌꺼기가 립글로스 같았다. 여자가 나를 쳐다보았다. 하얀 피부. 커다란 눈. 정액이 묻어 윤기가 흐르는 붉은 입술. 저 아래 시선이 닿지 않는 존재할 검붉은 성기. 여자의 등 뒤로 보이는 투명한 거울. 타락한 성자가 그린 한 편의 수채화.
마주친 시선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만나서 뭐 했는지 안 물어봐요?
난 대답을 생략한 채 손을 뻗어 여자의 머리를 쥐었다. 그리고 작게 힘을 주어 아래로 내렸다. 지옥에서 흘러나온 포근함이 나의 온몸을 감싸는 느낌. 유일한 안식이 천공의 계단으로 다시 나를 인도했다. 계단의 끝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세상이 천국인지 지옥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난 고개를 다시 젖혔다. 천장이 빛으로, 어둠으로 번갈아가며 산화했다. 돌아가는 실링팬 주위로 공기가 뭉쳐지는 느낌이 들었다. 실링팬이 주변의 모든 공기를 삼키고 빨아들이는 듯 했다. 숨쉬기가 버거웠다. 딱딱하게 굳은 공기가 나의 숨을 끝을 향해 몰아갔다. 난 가신히 고개를 들었다. 다음 소식입니다, 최근 마약과 관련된, 범죄가, 다시 기승을, 경찰은. 소식을 전하는 여자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단정했다. 윤기가 나는 입술은 정갈해 보였고 앉아 있는 모습은 조신했다. 텔레비전 옆에 놓인 다방 성냥갑에는 금발의 여자가 다리를 벌린 채 비스듬히 누워있었다. 금발 여자의 입술은 핏빛처럼 빨갰다. 시간을 알리는 푸른색의 숫자가 테이블 아래에서 점멸했다. 거울 속으로 여자의 등이 보였다. 해수면에서 침전과 상승을 반복하는 부유물처럼 움직이는 검은 머리. 그 위로 잠시 보였다 사라지는 낯선 남자의 얼굴. 난 여자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간단하게,
여자가 우물거리며 말했다. 공기가 더욱 굳어졌다. 무게에 눌려 나는 고개를 눕혀야 했다. 완전하게 놓아버린 나의 몸 위로. 딱딱하게 굳어버린 공기가 나를 짓눌렀다. 숨이 가빠졌다. 토해내지 못한 숨이 점점이 끊어지며 돌출되었다. 경찰은, 한 달 전 발생한, 동반 자살, 타살일 가능성에, 수사를. 여자 아나운서의 음성이 조금씩 경계의 너머로 흩어졌다.
한 번 했어요. 섹스.
공기의 무게가 내 숨통을 끝까지 밀어붙였다. 하얀 절벽이 나타났다, 부서져 내렸다. 실링팬의 움직임이 더욱 빠르게 느껴졌다. 조금씩. 조금씩. 멀고 아득한 것들이 선명하게 찾아왔다. 한편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 사라진, 쫓고 있습니다, 행방이 묘연한, 회사 돈, 횡령하고. 아나운서의 멘트는 세상의 저 편으로 밀려났다. 실링팬 주위의 공기가 더 이상 뭉치지 못하고 터질 것 같았다. 응축된 공기는 영화 속 주인공이 마주한 폭탄처럼 위태로웠다. 실링팬이 나에게 조금씩 다가온다는 느낌이 들 무렵 끊어질 듯한 괴성과 함께 대기가 탁, 하고 풀렸다. 나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사라진 모든 것들이 다시 내 안으로 속속 집결했다. 곧 시원함이 찾아왔다. 실링팬이 천천히 돌아갔다.
잘했어.
숨이 안정을 찾았을 때 여자에게 말했다. 실링팬은 느릿느릿하게 공기를 휘감고 있었다. 창밖의 세상은 고요하게 침묵하고 있었다. 텔레비전 속 세상의 소식은 이제 선명하게 들렸다. 다음 소식입니다. 지난 달 발생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의 피의자로 피살자의 남편과 딸이 구속된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남편이 아내를 청산가리로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피해자의 남편인 최모씨는 자신의 집에서 아내에게 청산가리가 들어있는 캡슐을 피로회복제처럼 먹여 숨지게 한 협의로 경찰에 구속되어 현재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특히 최모씨는 사건 신고과정에서 가장 먼저 신고한 사람이어서 더욱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는 또 같은 마을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내연녀에게 경찰에서 조사 나올지 모르니 그동안 주고받았던 문자를 모두 지우라, 고 하는 등 범행을 치밀하게 은폐하려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경찰은 최씨가 불륜사실을 아내에게 들켜 자주 다투다 극단적인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여자 아나운서는 여전히 무표정했다.
그럴 줄 알았어요.
여자가 나에게 안기며 말했다. 커튼은 여전히 굳게 닫혀있었다. 더욱 탁해진 공기는 우울한 사형수처럼 영원히 태양을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난 텔레비전을 껐다. 고요했다. 그럴 줄 알았다는 여자의 말이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 잘했다고 말한 내 부정형의 개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나의 의미는 아무것도 향할 수 없었다.
오늘,
여자가 옷을 벗으며 말했다. 모텔 방 안으로 찐득한 술 냄새가 썩어가는 곰팡이의 포자처럼 번식했다. 난 치받아오는 구역질을 간신히 참았다. 참으며, 쓰러지듯 침대에 걸터앉았다. 옷을 벗기도 힘들 정도로 술에 만신창이였다. 테이블 아래에 구겨진 휴지가 보였다. 누렇게 변색된 액체가 말라붙어 있었다. 언제부터 여기 있었던 걸까. 누구의 흔적일까. 지독한 섹스의 주인공들이 환영幻影의 옷을 벗은 채로 나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욕지기가 터져나왔다. 참았다. 나는 숨을 쉬었다. 순간 더럽고 불쾌한 경멸이 나를 지배했다. 눈을 감아버린 태양이여, 세상의 모든 진실에 저주를. 바퀴벌레들이 내 심장에 가득 들어차 버글거리는 느낌이었다. 간신히 참았던 구역질이 다시 올라왔다. 여자가 내 윗옷을 벗기더니 내 가슴을 밀었다. 난 줄이 끊어져버린 인형처럼, 앉아있던 자세 그대로 침대에 널부러졌다. 올라오던 것들이 메슥거리며 침잠했다. 여자가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예전에 잠깐 사귀었던 남자친구가 왔었어요.
천장에 달린 실링팬이 건조하게 돌아갔다. 회전하는 몸짓이 무의미해 보였다. 이유도 모른채 영원을 달려야 하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여자가 내 허리띠를 풀었다. 햐얀 형광등 불빛이 날것 그대로의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커튼을 쳐다보았다. 시선의 궤적 사이로, 침대에 묻어 있는 익명의 음모가 들어왔다. 나의 것인지, 너의 것인지 모를. 커튼 너머의 풍경은 봉쇄되어 보이지 않았다. 입을 굳게 다문 커튼은 부패한 공기를 가득 품은 채 방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결박했다. 텁텁한 공기가 나의 목을 조르는 느낌이었다. 고요한 대기가 너무 무거웠다. 창문 좀 열어. 난 말하지 못했다. 해방된 나의 하체에 여자의 손길이 느껴졌다. 사그락. 사그락. 곧 시원한 청량감이 성기에 불어왔다. 난 침대 옆 선반으로 손을 뻗어 리모컨을 집었다. 텔레비전을 켜자 여자 아나운서가 무관심한 표정으로 세상의 관심사를 전하고 있었다. 여자가 일어섰다. 그리고 마지막 한 꺼풀마저 벗어버렸다.
다시 만나 달래요. 애인이 있다고도 했는데도.
난 네 애인이 아니야. 고함을 치고 싶었지만 여자가 나의 성기를 입에 넣는 바람에 함성은 스스로를 아득하게 몰아 소멸해갔다. 곧 부드럽고 뜨거운 안식이 나를 점령했다. 연금술을 찾아 떠나는 수도자처럼 여자는 나의 성기를 조심스럽고도 치밀하고 탐구했다. 끈끈한 타액이 나의 심장으로 파고들었다. 숨이 점점 조여왔다. 통계청 발표에, 국내 자살로 인한 사망자 수가, 올해 들어 만이천명으로, 꾸준한 증가 추세로, 급격히 상승했습니다.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낱개로 끊기며 들려왔다. 넌 내 애인이 아니야. 난 말하지 못했다.
당신하고 같이 만나도 괜찮다는데요? 이대 일로.
침인지 정액인지 알 수 없는 끈적한 점액이 여자의 입에서 밀려나와 나의 항문을 타고 침대로 흘렀다. 축축하고 기분 나쁜 느낌이 천국의 계단을 타고 올라왔다. 치받아오는 느낌이 나의 목을 조르고, 졸려진 나는 탁한 숨을 몰아쉬었다. 방은, 나의 숨으로 채워져갔다. 공간을 뒤덮고 있는 탁한 공기가 무의미한 실링팬의 흐름에 밀려났다. 그러나 숨은 점점 더 나의 목을 틀어막았다. 천천히 고개를 젖혔다. 검게 썩어버린 담뱃재의 일부가 선반 위 리모컨에 깔려 죽어있었다. 저 누렇게 바랜 벽지는 얼마나 많은 정액을 받아 마셨을까. 더러운 저 벽지도 처음에는 깨끗했겠지. 그 년처럼.
그냥, 싫다고 했어요.
시원한 감촉이 아래로부터 다시 밀려왔다. 난 고개를 들어 여자를 보았다. 여자는 내 허벅지에 머리를 기댄 채 성기를 가만히 만지고 있었다. 칠흑같은 생머리가 내 허벅지 너머로 계통없이 늘어져 있었다. 입가에 번들거리는 정액찌꺼기가 립글로스 같았다. 여자가 나를 쳐다보았다. 하얀 피부. 커다란 눈. 정액이 묻어 윤기가 흐르는 붉은 입술. 저 아래 시선이 닿지 않는 존재할 검붉은 성기. 여자의 등 뒤로 보이는 투명한 거울. 타락한 성자가 그린 한 편의 수채화.
마주친 시선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만나서 뭐 했는지 안 물어봐요?
난 대답을 생략한 채 손을 뻗어 여자의 머리를 쥐었다. 그리고 작게 힘을 주어 아래로 내렸다. 지옥에서 흘러나온 포근함이 나의 온몸을 감싸는 느낌. 유일한 안식이 천공의 계단으로 다시 나를 인도했다. 계단의 끝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세상이 천국인지 지옥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난 고개를 다시 젖혔다. 천장이 빛으로, 어둠으로 번갈아가며 산화했다. 돌아가는 실링팬 주위로 공기가 뭉쳐지는 느낌이 들었다. 실링팬이 주변의 모든 공기를 삼키고 빨아들이는 듯 했다. 숨쉬기가 버거웠다. 딱딱하게 굳은 공기가 나의 숨을 끝을 향해 몰아갔다. 난 가신히 고개를 들었다. 다음 소식입니다, 최근 마약과 관련된, 범죄가, 다시 기승을, 경찰은. 소식을 전하는 여자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단정했다. 윤기가 나는 입술은 정갈해 보였고 앉아 있는 모습은 조신했다. 텔레비전 옆에 놓인 다방 성냥갑에는 금발의 여자가 다리를 벌린 채 비스듬히 누워있었다. 금발 여자의 입술은 핏빛처럼 빨갰다. 시간을 알리는 푸른색의 숫자가 테이블 아래에서 점멸했다. 거울 속으로 여자의 등이 보였다. 해수면에서 침전과 상승을 반복하는 부유물처럼 움직이는 검은 머리. 그 위로 잠시 보였다 사라지는 낯선 남자의 얼굴. 난 여자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간단하게,
여자가 우물거리며 말했다. 공기가 더욱 굳어졌다. 무게에 눌려 나는 고개를 눕혀야 했다. 완전하게 놓아버린 나의 몸 위로. 딱딱하게 굳어버린 공기가 나를 짓눌렀다. 숨이 가빠졌다. 토해내지 못한 숨이 점점이 끊어지며 돌출되었다. 경찰은, 한 달 전 발생한, 동반 자살, 타살일 가능성에, 수사를. 여자 아나운서의 음성이 조금씩 경계의 너머로 흩어졌다.
한 번 했어요. 섹스.
공기의 무게가 내 숨통을 끝까지 밀어붙였다. 하얀 절벽이 나타났다, 부서져 내렸다. 실링팬의 움직임이 더욱 빠르게 느껴졌다. 조금씩. 조금씩. 멀고 아득한 것들이 선명하게 찾아왔다. 한편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 사라진, 쫓고 있습니다, 행방이 묘연한, 회사 돈, 횡령하고. 아나운서의 멘트는 세상의 저 편으로 밀려났다. 실링팬 주위의 공기가 더 이상 뭉치지 못하고 터질 것 같았다. 응축된 공기는 영화 속 주인공이 마주한 폭탄처럼 위태로웠다. 실링팬이 나에게 조금씩 다가온다는 느낌이 들 무렵 끊어질 듯한 괴성과 함께 대기가 탁, 하고 풀렸다. 나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사라진 모든 것들이 다시 내 안으로 속속 집결했다. 곧 시원함이 찾아왔다. 실링팬이 천천히 돌아갔다.
잘했어.
숨이 안정을 찾았을 때 여자에게 말했다. 실링팬은 느릿느릿하게 공기를 휘감고 있었다. 창밖의 세상은 고요하게 침묵하고 있었다. 텔레비전 속 세상의 소식은 이제 선명하게 들렸다. 다음 소식입니다. 지난 달 발생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의 피의자로 피살자의 남편과 딸이 구속된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남편이 아내를 청산가리로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피해자의 남편인 최모씨는 자신의 집에서 아내에게 청산가리가 들어있는 캡슐을 피로회복제처럼 먹여 숨지게 한 협의로 경찰에 구속되어 현재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특히 최모씨는 사건 신고과정에서 가장 먼저 신고한 사람이어서 더욱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는 또 같은 마을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내연녀에게 경찰에서 조사 나올지 모르니 그동안 주고받았던 문자를 모두 지우라, 고 하는 등 범행을 치밀하게 은폐하려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경찰은 최씨가 불륜사실을 아내에게 들켜 자주 다투다 극단적인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여자 아나운서는 여전히 무표정했다.
그럴 줄 알았어요.
여자가 나에게 안기며 말했다. 커튼은 여전히 굳게 닫혀있었다. 더욱 탁해진 공기는 우울한 사형수처럼 영원히 태양을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난 텔레비전을 껐다. 고요했다. 그럴 줄 알았다는 여자의 말이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 잘했다고 말한 내 부정형의 개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나의 의미는 아무것도 향할 수 없었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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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 황진이-19금 성인놀이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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