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쉬, 조금 더 진한 그레이 -4부-
나, 두 달전에 이혼했다.
친구가 말했다. 어투는 세상 저 너머의 그 무언가를 더듬는 듯 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나도, 친구 녀석도 모르는 듯 했고, 그것이 더듬을 수 있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뭐, 굳이 말하자면 강제로 이혼 당한거지 뭐. 그 씨발 법원 새끼들. 디케는 눈을 감고 죽어버린거야. 저울의 한쪽엔 악몽밖에 없어서 그렇게 기울어 진거야. 그것들은 내가 원했던 것은 아무것도 주지 않았어. 잘못한 것은 내가 아닌데도 말이야. 그게 이 세상의 정의를 지탱하는 저울의 실체지. 아내도 가정도 다 뺏고, 희망과 구원 따위의 믿음도 약탈해 갔어. 남은 건 아무것도 없는 무無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 뿐이야.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술잔은 비어있었고, 그것을 채워줄 여력따위는 세상 그 어디에도 없어보였다. 술은 더욱 깊어갔고, 술이 깊어갈수록 말은 얕아지고 표면에서 찰랑거렸다.
그 씨발년이 그 선배 새끼하고 놀아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어. 그래. 잘 나가는 대기업에, 돈도 많고, 씨발, 보지가 벌렁벌렁 거렸겠지. 하긴, 원래 그런 년이었으니까. 뭐, 따지고 보면 내가 이런 말 할 자격도 없지. 그래. 너도 나를 말릴 정도였으니. 그때 니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내가 사랑이라는 좆같은 망령에 잡아 먹혔는지도 모르지. 넌 어찌보면 이런 상황을 미리 예상 했을수도 있었겠다. 하, 씨발. 그래. 그래도 우리 커플, 학교 다닐때는 나름 유명하지 않았냐? 그 씨발년이 메이퀸이라서 그랬나? 하긴 메이퀸이라서 개걸레라고 소문 났었나? 그거랑 그거는 상관없나? 이제와서는 뭐가 상관이 있고, 뭐가 상관이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떠 놈이 와서 내 뇌의 한 부분을 주걱으로 파낸거 같애. 근데. 그렇게 남자를 골라 처먹던 그년은 왜 나랑 결혼했을까? 좆나게 궁금하긴 하다. 뭐 이제 와서 그게 중요한건 아니지. 그 년 그거. 남자 좆나게 많았다. 너도 잘 알지? 학교에서 모르는 건 나뿐이었으니까, 등신 같이. 진실 앞에서 눈을 감아버린 건 디케 뿐만이 아니었나봐. 나도 똑같애. 누구 욕할 처지도 못돼. 그 년도 그거 즐겼어. 보지 가랑이 벌려가며 이놈 저놈 마구마구 만났겠지. 아니 그러했지. 유명했으니까. 개보지로. 개보지년이 굳이 그런 유혹을 뿌리칠리는 만무했겠지. 그 년은 정액을 연료로 삼아 심장을 지탱하는 년이었으니까. 그 년, 나 만나기 전에도 이미 몇 번이나 낙태했다고 하더라. 뭐, 나 만나기 전에 그 지랄 했던것까지 내가 뭐랄건 아니지만. 씨발 그냥 좆 같지 않냐!
친구는 술을 부어 마셨다. 나는 그의 빈 술잔에 죽음을 부어주듯 술을 따라주었다.
비밀 아닌 비밀이었지. 학교에서. 너도 나한테 그 비밀의 탈을 쓴 소문을 전해주었으니까.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왜 내가 너한테 화를 냈을까. 화가 내 경계를 넘어갔나봐. 미안하다. 지금에 와서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은. 미안했다. 그 씨발년의 진실을 나만 모르고 있었어. 그런 생각하면 좆나게 나 스스로가 병신같은 줄 아냐? 그냥 죽어버리고 싶다. 씨발. 그냥, 부정하고 싶었나봐. 다 알고 있었으면서. 그래. 나 알고 있었다. 그래도 모른척 하고 싶었어. 진실따윈 개나 줘버리라고. 믿고 싶지 않았지. 모든 부정엔 기대와 일말의 희망이 내포되어 있으니까. 나는 나중에 결혼을 하게 되면 모든 것이 제자리를 잡아 평온한 안식이 저절로 굴러올 거라고 믿었는지도 모르겠다. 내일 뜨는 태양은 희망이라고 모두들 믿는 것처럼 말이지. 너, 내가 그 년하고 결혼한다고 했을 때 놀랐냐? 아니지, 너는 별로 안 놀랐겠구나. 다른 새끼들은 다들 벙찐 표정이던데. 너는 그냥 고개만 끄덕여주었지. 솔직히, 나 너한테 고마웠다. 그냥 너라도 인정해줘서 그랬던 거 같애. 다른 녀석들은 모두 의문투성이 표정이었는데. 좆같은 표정으로 나를 병신같이 보는 새끼들이 대부분이었지. 그래, 그랬었지. 나, 왜 그랬을까. 씨발. 그냥, 사랑, 이었나?
사랑. 나는 그 무참한 단어 앞에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내 결혼식에 그 씨발년하고 빠구리치고, 스와핑 하던 씨발 것들, 다 온 거 알지. 그게 인간들이냐?
그런 친구의 아내가 바람이 났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을 때, 나는 솔직히 놀라지 않았고, 내가 놀라지 않은 건 그 모든 것 때문이었다. 당연한 것들이 너무도 당연하게 자리를 잡은 사실. 안식은 굴러오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렸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당연히 뜨는 것처럼 친구는 절망의 수순을 착실히 밟았다. 나는 방관자적 입장에서 친구를 쳐다봐야만 했다. 친구의 믿음은 너무도 확고했고, 그곳에 나의 충고가 진입할 자리는 없어보였다. 나는 녀석이 불쌍했다.
세 달쯤 되었을거야. 나 이혼하기 얼마 전이니까. 세벽 네시쯤에 후배새끼한테 전화가 왔더라. 우리 마누라가 그 선배새끼랑 술 처먹고 있다고. 근데 그 씨발년, 나한테는 세미나 때문에 출장간다고 했거든. 나도 미쳤지. 미친 심장에 지배당한거야. 예수를 부인한 베드로처럼. 뭘 믿고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냥 믿었지. 출장 간다고 며칠 집에 못 들어온다고 지랄하는걸. 내가 그 년 뭘 믿고 허락해 줬을까. 역사를 외면한 민족은 멸망의 순리를 밟는다던데. 내가 딱 그 꼴인가?
하여간, 후배놈 전화 받고 나갔지. 예전 우리 학교 근처 술집에서 술 먹고 있더라. 그 시간에, 다 큰 성인들이 술집에서 술 먹고 있는걸 가지고 뭐라 하는건 아니야. 근데 씨발 왜 출장 간다고 구라치고, 술 처먹고 있는데. 왜 앞이 아니고 옆에 앉아서 술 처먹고 있는데. 처음에 나 그냥 돌아서려고 했다. 그래, 그럴수도 있겠지, 라고 이해하려고 했다. 근데 씨발, 곱게 술만 처먹지 왜 키스하고 지랄인데, 씨발 개새끼가. 왜 남의 마누라 보지를 떡 주무르듯 주물떡대는데? 개 씨발 새끼. 그래서 내가 그 새끼 반 죽여 버린거야. 짭새 씹새끼들 올때까지. 전치 몇 주 나왔다고 하더라. 기억도 안나네. 아마 아직까지 병원에 있을거야. 그 개새끼. 영원처럼 병원에 갇혀버려라.
근데 그거 알고 있냐? 그때 그 씨발년 그거. 임신 중이었어. 근데 그때 내가 지랄을 해서 그렇게 된건지, 아니면 선배 새끼 그 지경 되는거 보고 놀라서 그렇게 된건지, 아니면 술을 좆나게 처먹어서 그리 된건지, 모르겠지만, 그때 하혈을 심하게 해서 응급실까지 갔는데, 결국 유산했다. 내 아기의 또 다른 세계가 무산된거야. 새로운 나의 세상도 끝장나 버린거지.
그 선배새끼 나 고소하고, 그 년 그거 이혼해달라고 나한테 개지랄 떨었었어도, 나 그 년놈들 간통으로 안 처넣었다. 왜 그랬을까. 나도 모르겠다. 아마 지옥의 끝에서라도 믿음을 확인하고 싶었나보지. 아니면 더 이상의 병신 같은 내 모습을 다시 확인하기 두려웠든가. 이거든 저거든 난 사랑으로 포장하고는, 겉포면이라도 예쁘게 감싸고 싶었어. 근데 씨발, 우리 꼰대가 고소했어. 간통으로. 씨발 꼰대. 간통으로 고소한 이유가 뭔지 아냐? 위자료 받아내야 겠단다. 나 선배새끼 때문에 폭행으로 입건됐을때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던 양반이. 내 대학 다닐 때 내 명의 도용해서 학자금 대출까지 몰래 받았던 그 씨발 놈이, 그 년한테는 위자료 내놓으라고 찾아갔다고 하더라고. 참으로 잉여로운 속물이지. 그 선배새끼가 돈 많아서 그랬을거야. 그래, 돈을 긁어내든, 명예를 저당잡아 삶을 긁어내든, 아무 상관 안하고 싶었다. 난 어찌되었든, 누가 뭐라하든. 나, 그래도 이혼만큼은 하기 싫었다. 진짜야. 나, 그래도 그 년. 사랑했거든. 그 사랑이 염라대왕의 심장 속에 있다하더라도 난 빼앗고 지키려고 했어. 그런데 그 년이 법원에서 이혼하고 싶다고 얘기하더라. 차라리 간통으로라도 이혼하고 싶다고. 간통이면 자동으로 이혼한다는 걸 알고 있었나봐. 난, 몰랐거든. 그 씨발 것들은 좆나게 연구했나봐. 이혼에 대해서. 이혼을 연구하다니. 웃기지 않냐? 그 년 그거, 자기가 간통했다고, 한 거 맞다고, 증거로 선배새끼 콘돔하고 정액 샘플도 제시했어. 판사들도 완전 벙친 표정이더라.
친구는 크크크, 하고 웃어제꼈다. 나는 웃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나, 폭행 때문에 구속됐잖아. 비록 합의해서 풀려나긴 했지만. 그 합의도 이혼 절차에 최대한 협조하는 선에서 정리되었지만. 하긴 그것들도 집행유예로 풀려났으니, 쌤쌤이지 뭐. 아닌가? 난 직장도 잃고 가정도 잃었는데, 그것들은 지금도 잘 만나고 있으니 내가 더 억울한건가? 히키콕이 아직 살아있었다면, 누명을 쓴 사나이의 주인공은 내가 되었어야 해. 그리고 그런 영화를 찍는다면 그것들은 분명히 천벌을 받을거야.
그때 그냥 죽여 버렸어야 했는데. 그 씨발 년놈들 둘 다. 말이지.
나는 아무 말도 해줄 수 없었다.
그때, 그 당시 친구가 구치소에서 나오던 날, 녀석은 나를 불러 술을 마셨다. 그리고 고함을 질러댔다. 그때도 씨발 년놈들 둘 다 죽여버렸어야 했는데, 라고 친구는 울부짖었었다. 나는 울음이 벌이는 사업에 함께 뛰어들지 못했다. 오늘은 울부짖지 않았는데, 이미 죽어버린 희망은 그 시체마저 지옥으로 떨어진 듯했다. 그 날 친구는 혼자 울었다. 마시던 술잔을 탕, 하고 거칠게 내려친 친구는 자신의 성기를 빨고 있던 룸살롱 아가씨의 머리채를 휘어잡은 후 똑바로 빨어, 이 씨발 개같은 년들아, 라고 다시 고함을 질렀다. 친구의 곁에 있던 아가씨는 혼자 였는데, 왜 복수가 호명되었는지, 그날의 나는 묻지 못했다. 친구의 안에는 아마 많은 것들이 들어 있을 것이었지만, 그것들이 서로 비벼지고 버무러져 결국은 아무것도 남지 않을 듯 했다. 나는 가만히, 짐작만 했었다. 나는 친구의 성기에 얼굴을 박은 채 고통스런 표정을 하고 있던 룸살롱 아가씨의 번들거리는 입술을 한 번 쳐다본 후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냥, 역겨웠다. 오빠, 우리도 하자, 라고 내 곁에 있던 아가씨가 말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잘 해줄게, 라고 다시 치근대는 아가씨에게 잠시 후 내가 말했었다.
됐어.
그때 녀석은 양주를 벌컥벌컥 들이마시더니 자신의 성기를 빨고 있던 아가씨를 번쩍 치켜 들어올려 테이블 위에 엎어놓은 후, 아가씨의 보지 안으로 침과 범벅이 된 술을 꽂은 뒤 들이 쏟아부었다. 비명을 지르는 아가씨에게 너희같은 개 씨발 년들은 이런 거 좋아하잖아, 이 개걸레같은 것들아, 라고 고함을 질러댔었다. 그리고 나에게 분노가 진득한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이 씨발 새끼야, 넌 절대 결혼 같은 거 하지 마라. 알겠냐.
친구는 나에게 다짐을 받듯 이빨을 으드득거렸다. 그리고는 자신의 파트너에게 자지나 빨아, 씨발 년아, 라고 소리를 질러대며, 머리를 휘어감아 밑으로 쳐내렸다. 나는 가만히 있었다. 내 옆의 아가씨가 심심했는지 잠깐 화장실 갔다올게요, 라고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순간 친구는 테이블에 한 손을 짚으며 비틀거리며 일어나더니 내 파트너 아가씨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어디가, 이 씨발 년아, 너도 다른 씹새끼 만나러 가냐? 앙?
악, 하는 소리와 함께 아가씨가 내 무릎 쪽으로 주저앉았다.
어디가, 이 씨발 년, 너희 년들은 아무데도 못 가.
친구는 계속 고함을 질러댔었고, 나를 담당하고 있던 아가씨는 비명을 그치지 않았고, 그의 파트너는 친구의 성기를 계속 물고는 울고 있었고, 밖에 있던 마담과 삼촌들이 문을 벌컥 열고는 무슨 일이십니까, 하고 짖쳐 들어왔다. 나는 난장亂場을 쳐다보다, 멍한 시선으로 천장만 바라보았다.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빛을 잃은 조명등만이 동력을 잃은 채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그 애가 내 아기가 아니었는지도 몰라.
친구는, 한참 후, 그렇게 말하며 다시 울었다. 친구의 머리 위로 공허한 조명등만이 예전처럼, 오늘과 같이, 언제나같이, 홀로 빙글빙글, 느릿느릿 돌아가고 있었다.
그때, 그 예전의 나는, 그 오래전의 나는, 나 약혼했잖아, 모르고 있었어? 라고 말하지 못했다. 당시의 나 역시 위태로운 교각 위에서 비틀거리고 있었다. 치명적 칼날 같은 의문에 점령당한 채로, 결코 존재하지 않는 진실을 찾고 있었다. 진실. 그래. 진실.
나, 두 달전에 이혼했다.
친구가 말했다. 어투는 세상 저 너머의 그 무언가를 더듬는 듯 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나도, 친구 녀석도 모르는 듯 했고, 그것이 더듬을 수 있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뭐, 굳이 말하자면 강제로 이혼 당한거지 뭐. 그 씨발 법원 새끼들. 디케는 눈을 감고 죽어버린거야. 저울의 한쪽엔 악몽밖에 없어서 그렇게 기울어 진거야. 그것들은 내가 원했던 것은 아무것도 주지 않았어. 잘못한 것은 내가 아닌데도 말이야. 그게 이 세상의 정의를 지탱하는 저울의 실체지. 아내도 가정도 다 뺏고, 희망과 구원 따위의 믿음도 약탈해 갔어. 남은 건 아무것도 없는 무無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 뿐이야.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술잔은 비어있었고, 그것을 채워줄 여력따위는 세상 그 어디에도 없어보였다. 술은 더욱 깊어갔고, 술이 깊어갈수록 말은 얕아지고 표면에서 찰랑거렸다.
그 씨발년이 그 선배 새끼하고 놀아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어. 그래. 잘 나가는 대기업에, 돈도 많고, 씨발, 보지가 벌렁벌렁 거렸겠지. 하긴, 원래 그런 년이었으니까. 뭐, 따지고 보면 내가 이런 말 할 자격도 없지. 그래. 너도 나를 말릴 정도였으니. 그때 니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내가 사랑이라는 좆같은 망령에 잡아 먹혔는지도 모르지. 넌 어찌보면 이런 상황을 미리 예상 했을수도 있었겠다. 하, 씨발. 그래. 그래도 우리 커플, 학교 다닐때는 나름 유명하지 않았냐? 그 씨발년이 메이퀸이라서 그랬나? 하긴 메이퀸이라서 개걸레라고 소문 났었나? 그거랑 그거는 상관없나? 이제와서는 뭐가 상관이 있고, 뭐가 상관이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떠 놈이 와서 내 뇌의 한 부분을 주걱으로 파낸거 같애. 근데. 그렇게 남자를 골라 처먹던 그년은 왜 나랑 결혼했을까? 좆나게 궁금하긴 하다. 뭐 이제 와서 그게 중요한건 아니지. 그 년 그거. 남자 좆나게 많았다. 너도 잘 알지? 학교에서 모르는 건 나뿐이었으니까, 등신 같이. 진실 앞에서 눈을 감아버린 건 디케 뿐만이 아니었나봐. 나도 똑같애. 누구 욕할 처지도 못돼. 그 년도 그거 즐겼어. 보지 가랑이 벌려가며 이놈 저놈 마구마구 만났겠지. 아니 그러했지. 유명했으니까. 개보지로. 개보지년이 굳이 그런 유혹을 뿌리칠리는 만무했겠지. 그 년은 정액을 연료로 삼아 심장을 지탱하는 년이었으니까. 그 년, 나 만나기 전에도 이미 몇 번이나 낙태했다고 하더라. 뭐, 나 만나기 전에 그 지랄 했던것까지 내가 뭐랄건 아니지만. 씨발 그냥 좆 같지 않냐!
친구는 술을 부어 마셨다. 나는 그의 빈 술잔에 죽음을 부어주듯 술을 따라주었다.
비밀 아닌 비밀이었지. 학교에서. 너도 나한테 그 비밀의 탈을 쓴 소문을 전해주었으니까.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왜 내가 너한테 화를 냈을까. 화가 내 경계를 넘어갔나봐. 미안하다. 지금에 와서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은. 미안했다. 그 씨발년의 진실을 나만 모르고 있었어. 그런 생각하면 좆나게 나 스스로가 병신같은 줄 아냐? 그냥 죽어버리고 싶다. 씨발. 그냥, 부정하고 싶었나봐. 다 알고 있었으면서. 그래. 나 알고 있었다. 그래도 모른척 하고 싶었어. 진실따윈 개나 줘버리라고. 믿고 싶지 않았지. 모든 부정엔 기대와 일말의 희망이 내포되어 있으니까. 나는 나중에 결혼을 하게 되면 모든 것이 제자리를 잡아 평온한 안식이 저절로 굴러올 거라고 믿었는지도 모르겠다. 내일 뜨는 태양은 희망이라고 모두들 믿는 것처럼 말이지. 너, 내가 그 년하고 결혼한다고 했을 때 놀랐냐? 아니지, 너는 별로 안 놀랐겠구나. 다른 새끼들은 다들 벙찐 표정이던데. 너는 그냥 고개만 끄덕여주었지. 솔직히, 나 너한테 고마웠다. 그냥 너라도 인정해줘서 그랬던 거 같애. 다른 녀석들은 모두 의문투성이 표정이었는데. 좆같은 표정으로 나를 병신같이 보는 새끼들이 대부분이었지. 그래, 그랬었지. 나, 왜 그랬을까. 씨발. 그냥, 사랑, 이었나?
사랑. 나는 그 무참한 단어 앞에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내 결혼식에 그 씨발년하고 빠구리치고, 스와핑 하던 씨발 것들, 다 온 거 알지. 그게 인간들이냐?
그런 친구의 아내가 바람이 났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을 때, 나는 솔직히 놀라지 않았고, 내가 놀라지 않은 건 그 모든 것 때문이었다. 당연한 것들이 너무도 당연하게 자리를 잡은 사실. 안식은 굴러오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렸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당연히 뜨는 것처럼 친구는 절망의 수순을 착실히 밟았다. 나는 방관자적 입장에서 친구를 쳐다봐야만 했다. 친구의 믿음은 너무도 확고했고, 그곳에 나의 충고가 진입할 자리는 없어보였다. 나는 녀석이 불쌍했다.
세 달쯤 되었을거야. 나 이혼하기 얼마 전이니까. 세벽 네시쯤에 후배새끼한테 전화가 왔더라. 우리 마누라가 그 선배새끼랑 술 처먹고 있다고. 근데 그 씨발년, 나한테는 세미나 때문에 출장간다고 했거든. 나도 미쳤지. 미친 심장에 지배당한거야. 예수를 부인한 베드로처럼. 뭘 믿고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냥 믿었지. 출장 간다고 며칠 집에 못 들어온다고 지랄하는걸. 내가 그 년 뭘 믿고 허락해 줬을까. 역사를 외면한 민족은 멸망의 순리를 밟는다던데. 내가 딱 그 꼴인가?
하여간, 후배놈 전화 받고 나갔지. 예전 우리 학교 근처 술집에서 술 먹고 있더라. 그 시간에, 다 큰 성인들이 술집에서 술 먹고 있는걸 가지고 뭐라 하는건 아니야. 근데 씨발 왜 출장 간다고 구라치고, 술 처먹고 있는데. 왜 앞이 아니고 옆에 앉아서 술 처먹고 있는데. 처음에 나 그냥 돌아서려고 했다. 그래, 그럴수도 있겠지, 라고 이해하려고 했다. 근데 씨발, 곱게 술만 처먹지 왜 키스하고 지랄인데, 씨발 개새끼가. 왜 남의 마누라 보지를 떡 주무르듯 주물떡대는데? 개 씨발 새끼. 그래서 내가 그 새끼 반 죽여 버린거야. 짭새 씹새끼들 올때까지. 전치 몇 주 나왔다고 하더라. 기억도 안나네. 아마 아직까지 병원에 있을거야. 그 개새끼. 영원처럼 병원에 갇혀버려라.
근데 그거 알고 있냐? 그때 그 씨발년 그거. 임신 중이었어. 근데 그때 내가 지랄을 해서 그렇게 된건지, 아니면 선배 새끼 그 지경 되는거 보고 놀라서 그렇게 된건지, 아니면 술을 좆나게 처먹어서 그리 된건지, 모르겠지만, 그때 하혈을 심하게 해서 응급실까지 갔는데, 결국 유산했다. 내 아기의 또 다른 세계가 무산된거야. 새로운 나의 세상도 끝장나 버린거지.
그 선배새끼 나 고소하고, 그 년 그거 이혼해달라고 나한테 개지랄 떨었었어도, 나 그 년놈들 간통으로 안 처넣었다. 왜 그랬을까. 나도 모르겠다. 아마 지옥의 끝에서라도 믿음을 확인하고 싶었나보지. 아니면 더 이상의 병신 같은 내 모습을 다시 확인하기 두려웠든가. 이거든 저거든 난 사랑으로 포장하고는, 겉포면이라도 예쁘게 감싸고 싶었어. 근데 씨발, 우리 꼰대가 고소했어. 간통으로. 씨발 꼰대. 간통으로 고소한 이유가 뭔지 아냐? 위자료 받아내야 겠단다. 나 선배새끼 때문에 폭행으로 입건됐을때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던 양반이. 내 대학 다닐 때 내 명의 도용해서 학자금 대출까지 몰래 받았던 그 씨발 놈이, 그 년한테는 위자료 내놓으라고 찾아갔다고 하더라고. 참으로 잉여로운 속물이지. 그 선배새끼가 돈 많아서 그랬을거야. 그래, 돈을 긁어내든, 명예를 저당잡아 삶을 긁어내든, 아무 상관 안하고 싶었다. 난 어찌되었든, 누가 뭐라하든. 나, 그래도 이혼만큼은 하기 싫었다. 진짜야. 나, 그래도 그 년. 사랑했거든. 그 사랑이 염라대왕의 심장 속에 있다하더라도 난 빼앗고 지키려고 했어. 그런데 그 년이 법원에서 이혼하고 싶다고 얘기하더라. 차라리 간통으로라도 이혼하고 싶다고. 간통이면 자동으로 이혼한다는 걸 알고 있었나봐. 난, 몰랐거든. 그 씨발 것들은 좆나게 연구했나봐. 이혼에 대해서. 이혼을 연구하다니. 웃기지 않냐? 그 년 그거, 자기가 간통했다고, 한 거 맞다고, 증거로 선배새끼 콘돔하고 정액 샘플도 제시했어. 판사들도 완전 벙친 표정이더라.
친구는 크크크, 하고 웃어제꼈다. 나는 웃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나, 폭행 때문에 구속됐잖아. 비록 합의해서 풀려나긴 했지만. 그 합의도 이혼 절차에 최대한 협조하는 선에서 정리되었지만. 하긴 그것들도 집행유예로 풀려났으니, 쌤쌤이지 뭐. 아닌가? 난 직장도 잃고 가정도 잃었는데, 그것들은 지금도 잘 만나고 있으니 내가 더 억울한건가? 히키콕이 아직 살아있었다면, 누명을 쓴 사나이의 주인공은 내가 되었어야 해. 그리고 그런 영화를 찍는다면 그것들은 분명히 천벌을 받을거야.
그때 그냥 죽여 버렸어야 했는데. 그 씨발 년놈들 둘 다. 말이지.
나는 아무 말도 해줄 수 없었다.
그때, 그 당시 친구가 구치소에서 나오던 날, 녀석은 나를 불러 술을 마셨다. 그리고 고함을 질러댔다. 그때도 씨발 년놈들 둘 다 죽여버렸어야 했는데, 라고 친구는 울부짖었었다. 나는 울음이 벌이는 사업에 함께 뛰어들지 못했다. 오늘은 울부짖지 않았는데, 이미 죽어버린 희망은 그 시체마저 지옥으로 떨어진 듯했다. 그 날 친구는 혼자 울었다. 마시던 술잔을 탕, 하고 거칠게 내려친 친구는 자신의 성기를 빨고 있던 룸살롱 아가씨의 머리채를 휘어잡은 후 똑바로 빨어, 이 씨발 개같은 년들아, 라고 다시 고함을 질렀다. 친구의 곁에 있던 아가씨는 혼자 였는데, 왜 복수가 호명되었는지, 그날의 나는 묻지 못했다. 친구의 안에는 아마 많은 것들이 들어 있을 것이었지만, 그것들이 서로 비벼지고 버무러져 결국은 아무것도 남지 않을 듯 했다. 나는 가만히, 짐작만 했었다. 나는 친구의 성기에 얼굴을 박은 채 고통스런 표정을 하고 있던 룸살롱 아가씨의 번들거리는 입술을 한 번 쳐다본 후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냥, 역겨웠다. 오빠, 우리도 하자, 라고 내 곁에 있던 아가씨가 말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잘 해줄게, 라고 다시 치근대는 아가씨에게 잠시 후 내가 말했었다.
됐어.
그때 녀석은 양주를 벌컥벌컥 들이마시더니 자신의 성기를 빨고 있던 아가씨를 번쩍 치켜 들어올려 테이블 위에 엎어놓은 후, 아가씨의 보지 안으로 침과 범벅이 된 술을 꽂은 뒤 들이 쏟아부었다. 비명을 지르는 아가씨에게 너희같은 개 씨발 년들은 이런 거 좋아하잖아, 이 개걸레같은 것들아, 라고 고함을 질러댔었다. 그리고 나에게 분노가 진득한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이 씨발 새끼야, 넌 절대 결혼 같은 거 하지 마라. 알겠냐.
친구는 나에게 다짐을 받듯 이빨을 으드득거렸다. 그리고는 자신의 파트너에게 자지나 빨아, 씨발 년아, 라고 소리를 질러대며, 머리를 휘어감아 밑으로 쳐내렸다. 나는 가만히 있었다. 내 옆의 아가씨가 심심했는지 잠깐 화장실 갔다올게요, 라고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순간 친구는 테이블에 한 손을 짚으며 비틀거리며 일어나더니 내 파트너 아가씨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어디가, 이 씨발 년아, 너도 다른 씹새끼 만나러 가냐? 앙?
악, 하는 소리와 함께 아가씨가 내 무릎 쪽으로 주저앉았다.
어디가, 이 씨발 년, 너희 년들은 아무데도 못 가.
친구는 계속 고함을 질러댔었고, 나를 담당하고 있던 아가씨는 비명을 그치지 않았고, 그의 파트너는 친구의 성기를 계속 물고는 울고 있었고, 밖에 있던 마담과 삼촌들이 문을 벌컥 열고는 무슨 일이십니까, 하고 짖쳐 들어왔다. 나는 난장亂場을 쳐다보다, 멍한 시선으로 천장만 바라보았다.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빛을 잃은 조명등만이 동력을 잃은 채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그 애가 내 아기가 아니었는지도 몰라.
친구는, 한참 후, 그렇게 말하며 다시 울었다. 친구의 머리 위로 공허한 조명등만이 예전처럼, 오늘과 같이, 언제나같이, 홀로 빙글빙글, 느릿느릿 돌아가고 있었다.
그때, 그 예전의 나는, 그 오래전의 나는, 나 약혼했잖아, 모르고 있었어? 라고 말하지 못했다. 당시의 나 역시 위태로운 교각 위에서 비틀거리고 있었다. 치명적 칼날 같은 의문에 점령당한 채로, 결코 존재하지 않는 진실을 찾고 있었다. 진실. 그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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