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쉬, 조금 더 진한 그레이 -3부-
담배를 물었다. 불을 붙였다. 그리고 영원 속으로 침몰하듯 깊이 빨았다. 발갛게 타들어가는 담배는 잔뜩 발기된 성기 같았다. 꽃이 들어 있었던 플라워 캔에 시커먼 담뱃재가 가득했다. 난 재를 털고 침을 뱉었다. 검은 재가 끈적한 나의 침과 범벅이 되었다. 천천히 침몰하는 구조선처럼 재는 으깨어지며 허물어졌다. 캔 입구에 눈송이처럼 묻은 담뱃재가 들러붙어 있었다. 매연에 찌든 검게 썩은 눈송이. 역겨웠다. 난 한 손에는 다배를 잡고, 또 한 손에는 목이 긴 술병을 쥐고 일어서 창가로 걸어갔다. 창문을 열었다. 차가운 겨울 바람이 오피스텔 안으로 세차게 몰아쳐왔다. 난 거센 풍랑을 무방비로 맞으며 다시 담배를 빨았다. 연기는 전진하지 못하고 바람에 밀려 들어와 산화했다.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연기는 자취도 없었다. 담뱃재를 털었다. 재가 방향을 상실하고 내 오피스텔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검은 재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창밖, 어두운 밤길 아래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마치 바닥에 떨어진 채 몰려다니는 담뱃재 같았다. 더러운 재떨이에 잠겨버린, 어재 내린 더러운 눈와 함께 범벅이 된 잿덩이들. 창밖으로 침을 탁, 하고 뱉었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던 침은 어느 지점에 이르러 산산이 부서졌다. 괴멸해버린 침 사이로 우뚝한 성기 같은 가로등이 환하게 발기해 있었다. 애처로운 삶의 마지막을 비추는 수술용 조명 같은 빛. 그 아래로 지나가던 머리가 반쯤 벗겨진 사내와 젊은 여자가 걸음을 멈추더니 서로 부둥켜안고 키스를 했다. 비틀거리던 사내는 갈대처럼 허물어질 듯 하면서도 기어이 무너지지 않고 젊은 여자의 입술을 빨아 젖혔다. 여자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난 그들의 머리 위로 담배를 털었다. 그리고 죽어버린 담배를 손가락으로 튕겨 날렸다. 담배는 그들에 미치지 못하고 방향을 잃은 채 바람에 밀려 낙하했다. 쓰러질 듯이 서로를 안아 올리던 그들 곁으로 누군가 지나쳐갔다. 사내의 입술을 빨고 있던 여자가 그 사람을 쳐다보았다. 내가 내려다보고 있는지도 모르고 바로 앞의 위기에만 급급한 여자가 순간 불쌍했다. 하지만 곧 역겨운 동정에 스스로 메스꺼운 구역질이 났다. 난 술을 병째로 들어 마셨다. 더러운 것들. 난 입을 타고 흐르며 번들거리는 술을 손을 닦으며 아래를 노려보았다. 세상을 잠식한 어둠과 썩어버린 눈과 산화했던 침과 재, 그리고 더러운 담뱃재 같았던 사람들과 그들을 담고 있는 재떨이 같은 세상이 술병 속에서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난 다시 술을 목구명 속으로 퍼부었다. 불타고 있는 담배가 심장 속으로 쏟아져 오는 느낌이었다. 술은 나의 목젖을 넘쳐 몸을 타고 아래로 흘렀다. 축축한 느낌이 진득했다. 바닥에 흥건한 술이 발바닥을 타고 온몸으로 전해왔다. 그리고 난 남아있던 술을 모두 창밖으로 쏟아 부었다. 난 아직도 키스를 하고 있는 남녀를 한 번 쳐다보고는 비틀거리며 침대로 걸어갔다. 낯선 번호. 난 술병을 침대 옆 선반에 놓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번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신호음은 종말을 향해 치달리듯이 울어제꼈다. 잠시 후, 신호음은 뚝 끊겼다. 난 걸터앉은 침대에서 일어섰다. 신호음은 다시 울렸다. 난 창밖을 쳐다보았다. 검은 어둠 속 심연에 내가 있었다. 핸드폰은 죽지 못했다. 신호음은 포기를 모르는 절망처럼 나에게 달려들었다. 난 침대에 주저앉았다. 신호음은 잠시 끊기더니 다시 비명을 질렀다. 난 잠깐 생각한 후, 천천히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전화 좀 빨리 받아라, 새끼야. 숨넘어가겠다.
친구였다. 난 다시 담배를 물었다. 하얀 담배연기는 천천히 천장으로, 하늘로 올라갔다.
이 번호는 뭐야?
형님, 번호 바꿨다, 새끼야. 관심 좀 가져라.
난 대답하지 않았다.
어때? 오늘 한 판 땡길까?
친구가 말했다. 난 썩은 담뱃재를 물고 있는 재떨이를 쳐다보았다. 검은 향기는 내가 있는 곳까지 퍼져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 형태만으로도 난 토할 것 같았다.
그래.
나는 공허한 연기를 쳐다보며 대답했다. 친구는 좀 있다가 나와라, 하고는 만날 장소를 알려 주었다.
알았어.
난 전화를 끊었다. 전화가 죽어버리자 고요함이 나에게 들러붙어 치근거렸다. 난 다시 창가로 걸어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키스를 하던 남녀는 보이지 않았다. 멀리 불 꺼진 교회가 보였고, 그 맞은편으로 네온사인에 점멸하고 있는 수많은 모텔이 보였다. 막막한 어둠은 그들과 나 사이의 공간을 가득히 차지하고 있었다. 수많은 모텔 중, 하나의 방에 불이 켜졌다. 나는 옷을 갈아 입었다.
넌 꿈이 뭐냐?
한참 술이 돌고 나서 친구가 말했다. 발음은 허물어져 있었고, 시선은 방향을 상실해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꿈?
내가 되물었지만 친구는 이내 썩은 오줌 같은 술잔에 코를 처박고는 노래나 부를까, 우리 애기? 라며 곁에서 벌거벗은 채 자신의 성기를 뻘고 있던 파트너의 가슴을 주물럭거렸다. 축 늘어진 유방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 저리 떠다녔다. 친구는 어기적거리며 걸어가 마이크를 잡았고, 그의 파트너는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성기를 입에 문채 주춤주춤 따라갔다. 꿈? 나는 고개를 뒤로 젖혔다. 내 허리가 펴지자 성기를 우물거리고 있던 내 파트너가 작게 움찔거렸다. 난 파트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래는 다시 안정을 찾았고 따뜻해졌다. 천자에 달린 조명등이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있노라니 어지러웠다. 혼란이 나를 밧줄에 묶은 후 빙빙 돌리는 느낌이었다. 나를 흔들고 있는 혼돈에 난 몸을 맡기고 싶었지만 어지러움은 더욱 심해졌다. 친구의 노랫소리가 혼란에 몸을 뺏기지 않으려는 비명처럼 들려왔다. 친구는 더욱 세차게 노래를 질러댔다. 그의 파트너는 여전히 성기를 입에 물고 죽은 잎처럼 고함을 따라 이리저리 흐느적거렸다. 어지러움조차 빙글빙글 돌았다. 토할 것 같은 기분에 난 고개를 숙였다. 번들거리는 땀과 정액 찌꺼기가 허벅지에 흥건했다. 비릿한 내음이 후각을 비집고 들어와 역한 송곳처럼 목구멍을 쑤셔댔다. 파트너의 머리가 출렁거렸다. 깔고 앉은 푸른색 방석이 시커멓게 썩은 것처럼 보였다. 그동안 단 한 번도 빨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방석에서는 썩은 버터 냄새가 났다. 얼마나 많은 맥주가 저 방석을 젖게 했을까. 몇 년. 아니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의 체액과 부패한 오물 냄새가 떠올랐다. 나는 맥주를 들어 내 성기를 빨고 있던 파트너의 등에 쏟아 부었다. 움찔거리는 물결. 파트너의 가랑이 사이로 맥주가 질척대며 흘러내렸다. 파트너는 고개를 들더니 차갑잖아요, 라며 말하고는 테이블 위로 올라가 다리를 벌렸다. 그리고 내 머리에 손을 얹어 자신의 아래로 당겼다. 나는 천천히 그녀의 다리 사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치자꽃. 치자꽃이 썩으면 저 색깔이 나올 것이다. 검게 타버린 듯한 노란색. 썩어가는 생선이 피워내는 노린내. 액취보다 지독한 암내. 여자의 허벅지에 있는 검은 점에 털이 한가닥 나 있었다. 피어싱을 한 배꼽이 축 늘어져 있었다.
비켜봐.
친구가 마이크에 대고 외치더니 내 파트너를 밀어내고 자기가 누웠다. 친구의 파트너는 휴지를 주르륵 풀더니 테이블 주위에 홍수를 막으려는 빈약한 둑처럼 아무렇게나 쌓았다. 친구는 노아의 방주에 올라탄 유령처럼 보였다. 친구는 누워있으면서도 마이크를 놓지 않고 노래를, 아니 고함을 질러댔다. 내 옆으로 돌아앉은 나의 파트너가 우스운지 낄낄거렸다. 여기가 어디지? 공간이 나를 잠식해갔다. 술에 취해 멍해진 정신은 나를 가지고 놀았다. 벌거벗은 네 개의 육체는 지옥에도 떨어지지 못해 발버둥치는 살모네우스 같았다. 나는 누구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쾌락에 몸을 맡긴 채 흐느적거리는 한 마리의 낙타였다.
야, 너 이거 가져라.
그의 파트너가 수십 병의 맥주를 테이블 위에 발사대기 중인 미사일처럼 올려놓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친구가 내게 말했다. 친구의 손엔 검은 구슬이 알알이 박힌 염주가 들려 있었다.
우리 엄마가 준 건데, 난 이제 필요없어.
난 이미 구원 받았거든.
여기서 말이지, 하고는 친구는 자신의 파트너의 성기에 손가락을 집어 넣었다. 오빠, 아퍼 살살해, 라고 그의 파트너가 중얼거리자 친구는 낄낄거리며 뭐가 아퍼, 이 씨발 년아, 좆나게 걸레같은 년이, 라며 소리를 질렀다. 친구의 목소리는 마이크를 타고 작은 공간에 쩌렁쩌렁 울렸다. 친구의 파트너는 피식 웃더니 이내 친구에게 달려들었다. 흐르는 음악은 주인을 잃은 채 홀로 스피커 위를 내달리고 있었다. 나는 늘어진 목을 겨우 가누며 손 위에 놓인 염주를 내려다 보았다. 정액과 땀, 그리고 맥주찌꺼기가 범벅이 된 염주. 구원? 뭔가 생각하고 싶었지만 생각은 이어지지 않았다. 염주에 묻은 정액과 오물들이 내 생각을 무참히 박살내는 기분이었다. 정신이 점점 희미해졌다. 난 간신히 염주를 손목에 찼다. 테이블 위에 있던 맥주가 몇 병씩 통째로 친구의 몸 위로 부어졌다. 나의 파트너까지 가세해 맥주를 부어대고 있었다. 상자 안에 있던 맥주는 이내 동이 났다. 맥주의 하얀색 거품이 녀석의 배꼽과 주위에 정액처럼 방울졌다. 비릿한 냄새가 진동했다. 나의 골을 때리는 냄새에, 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구석으로 달려가 더러운 쓰레기통에 오물을 토해내었다. 노란 위액이 나올 때까지 나는 웩웩거렸다. 쓰디쓴 오물 맛이 입안에서 진동했다. 그 냄새에 또 다시 욕지기가 올라왔다. 테이블에선 친구와 파트너들의 뒤엉켜 있었고, 정액과 범벅이 된 맥주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내 파트너가 친구의 몸에 묻은 맥주를 연신 핥아대었다. 누런 정액, 하얗게 부글거리는 거품. 비린내. 썩은 노린내. 나는 다시 토했다. 방안에 썩은 향기와 발음을 가늠할 수 없는 고함, 종잡을 수 없는 자신을 주체 못하는 인간들이 서로의 더러운 공기를 빨아 먹고 있었다. 정액 냄새와 비벼진 탁한 공기는 탈출하지 못하고 썩어갔다. 잠시 후, 나의 파트너가 친구의 성기에 자신의 아래를 집어넣자 헉, 하는 소리가 스피커에서 밀려나왔다. 곧 스피커에는 가늠할 수 없는 공허를 긁어대는 울부짖음이 가득 찼다. 나는 비틀거리며 천천히 그들에게 걸어가 친구의 파트너를 잡고 돌려세웠다. 이미 누군가의 파트너란 애초에 의미가 없었다. 그리고 다리를 잡고 벌려 깊이모를 심연의 공간에 성기를 쑤셔 넣었다. 친구의 파트너는 새하얀 절벽을 온 몸으로 느끼며 허리를 숙였다. 나는 하얀 새가 날아가는 환각을 보았고, 더욱 거칠게 그것들을 몰아갔다. 친구와 파트너는 나를 보며 낄낄거렸다. 스피커에서 정체모를 악마가 비웃는 듯한 소리가 밀려 나왔다. 나는 친구의 마이크를 빼앗아 소리를 질렀다.
씨발, 다 죽어버려.
친구는 푸하하, 하고 더욱 크게 웃었다. 나의 거친 비명을 온 몸으로 받아내고 있던 파트너가 나의 팔을 부여잡으며 오빠, 라며 악을 질렀다. 친구의 배 위에 올라탄 파트너는 허리를 미친 듯이 움직이며 깔깔거렸다. 탁해진 공기는 구원 받을 길 없이, 더욱 소란해져 갔다. 나의 비명은 한참 후 끝이 났다. 허우적거리던 네 개의 영혼은 제각기 주저앉아 각자의 상념에 빠져들었다. 상념은 허무했고, 텅 빈 것들은 공허했다. 상념은 부유하며 떠돌아다녔다. 썩어버린 아케론 강을 건너는 카론처럼 나는 부패한 망각 위를 떠다녔다. 나는 마이크를 쥔 손으로 담배를 물었다. 그리고 비틀거리며 일어서 노래기계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화면에선 해변에 앉은 남녀가 새카만 밤바다에 누워 몸을 비벼대고 있었다. 저들은 아직 떠오르지 않은 태양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이미 죽어버린 태양을 애도하며 누워있는 것일까. 화면을 보며, 흐릿한 눈으로 생각했다. 뭐든 상관없겠지. 무엇이든, 어차피 저들조차 멸망해버린 태양의 배설물일테니. 나는 지금 어디로 가는 걸까. 화면은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비틀어댔다. 나는 방안에 자욱한 연기 속에 내 허파에 들어찬 썩은 공기를 포개고 싶었다. 그러나 담배에 불이 붙어 있지 않았다. 난 담배를 집어 던졌다. 비실대고 웃고 있던 나의 파트너가 자신이 피고 있던 담배를 나의 입에 물려주었다. 나는 다시 토기吐氣를 느끼며 웩웩거렸다. 킬킬대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반주기에 노래를 입력했다. 자우림,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라는 제목이 허상처럼 떠올랐다.
하여튼 저 새끼는 저딴 노래만 불러요.
친구는 궁시렁거리며, 누군가의 파트너 가슴을 주물럭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키스. 잠시 후, 노래를 부르는 나의 귀에 뭐 저 딴걸 부르냐, 이 좋은 날, 이라는 친구의 말. 난 혼탁한 눈을 한 번 비비고 계속 노래를 불렀다.
다리 벌려봐 이 씨발년아.
친구는 파트너의 아래에 얼굴을 묻었다. 또 다른 파트너가 나에게 엉금엉금 기어오기 시작했다. 마이크를 쥔 손에 낀 염주가 수갑처럼 고정되어 있었다.
지금 기억으로 그때 나는 노래를 부르고 난 후 파트너 가랑이에 얼굴을 처박고 있던 친구의 뒤통수에 대고 꿈 따위는 키우지 않아, 이 씨발 새끼야, 라고 소리를 질렀던 것 같다.
담배를 물었다. 불을 붙였다. 그리고 영원 속으로 침몰하듯 깊이 빨았다. 발갛게 타들어가는 담배는 잔뜩 발기된 성기 같았다. 꽃이 들어 있었던 플라워 캔에 시커먼 담뱃재가 가득했다. 난 재를 털고 침을 뱉었다. 검은 재가 끈적한 나의 침과 범벅이 되었다. 천천히 침몰하는 구조선처럼 재는 으깨어지며 허물어졌다. 캔 입구에 눈송이처럼 묻은 담뱃재가 들러붙어 있었다. 매연에 찌든 검게 썩은 눈송이. 역겨웠다. 난 한 손에는 다배를 잡고, 또 한 손에는 목이 긴 술병을 쥐고 일어서 창가로 걸어갔다. 창문을 열었다. 차가운 겨울 바람이 오피스텔 안으로 세차게 몰아쳐왔다. 난 거센 풍랑을 무방비로 맞으며 다시 담배를 빨았다. 연기는 전진하지 못하고 바람에 밀려 들어와 산화했다.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연기는 자취도 없었다. 담뱃재를 털었다. 재가 방향을 상실하고 내 오피스텔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검은 재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창밖, 어두운 밤길 아래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마치 바닥에 떨어진 채 몰려다니는 담뱃재 같았다. 더러운 재떨이에 잠겨버린, 어재 내린 더러운 눈와 함께 범벅이 된 잿덩이들. 창밖으로 침을 탁, 하고 뱉었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던 침은 어느 지점에 이르러 산산이 부서졌다. 괴멸해버린 침 사이로 우뚝한 성기 같은 가로등이 환하게 발기해 있었다. 애처로운 삶의 마지막을 비추는 수술용 조명 같은 빛. 그 아래로 지나가던 머리가 반쯤 벗겨진 사내와 젊은 여자가 걸음을 멈추더니 서로 부둥켜안고 키스를 했다. 비틀거리던 사내는 갈대처럼 허물어질 듯 하면서도 기어이 무너지지 않고 젊은 여자의 입술을 빨아 젖혔다. 여자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난 그들의 머리 위로 담배를 털었다. 그리고 죽어버린 담배를 손가락으로 튕겨 날렸다. 담배는 그들에 미치지 못하고 방향을 잃은 채 바람에 밀려 낙하했다. 쓰러질 듯이 서로를 안아 올리던 그들 곁으로 누군가 지나쳐갔다. 사내의 입술을 빨고 있던 여자가 그 사람을 쳐다보았다. 내가 내려다보고 있는지도 모르고 바로 앞의 위기에만 급급한 여자가 순간 불쌍했다. 하지만 곧 역겨운 동정에 스스로 메스꺼운 구역질이 났다. 난 술을 병째로 들어 마셨다. 더러운 것들. 난 입을 타고 흐르며 번들거리는 술을 손을 닦으며 아래를 노려보았다. 세상을 잠식한 어둠과 썩어버린 눈과 산화했던 침과 재, 그리고 더러운 담뱃재 같았던 사람들과 그들을 담고 있는 재떨이 같은 세상이 술병 속에서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난 다시 술을 목구명 속으로 퍼부었다. 불타고 있는 담배가 심장 속으로 쏟아져 오는 느낌이었다. 술은 나의 목젖을 넘쳐 몸을 타고 아래로 흘렀다. 축축한 느낌이 진득했다. 바닥에 흥건한 술이 발바닥을 타고 온몸으로 전해왔다. 그리고 난 남아있던 술을 모두 창밖으로 쏟아 부었다. 난 아직도 키스를 하고 있는 남녀를 한 번 쳐다보고는 비틀거리며 침대로 걸어갔다. 낯선 번호. 난 술병을 침대 옆 선반에 놓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번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신호음은 종말을 향해 치달리듯이 울어제꼈다. 잠시 후, 신호음은 뚝 끊겼다. 난 걸터앉은 침대에서 일어섰다. 신호음은 다시 울렸다. 난 창밖을 쳐다보았다. 검은 어둠 속 심연에 내가 있었다. 핸드폰은 죽지 못했다. 신호음은 포기를 모르는 절망처럼 나에게 달려들었다. 난 침대에 주저앉았다. 신호음은 잠시 끊기더니 다시 비명을 질렀다. 난 잠깐 생각한 후, 천천히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전화 좀 빨리 받아라, 새끼야. 숨넘어가겠다.
친구였다. 난 다시 담배를 물었다. 하얀 담배연기는 천천히 천장으로, 하늘로 올라갔다.
이 번호는 뭐야?
형님, 번호 바꿨다, 새끼야. 관심 좀 가져라.
난 대답하지 않았다.
어때? 오늘 한 판 땡길까?
친구가 말했다. 난 썩은 담뱃재를 물고 있는 재떨이를 쳐다보았다. 검은 향기는 내가 있는 곳까지 퍼져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 형태만으로도 난 토할 것 같았다.
그래.
나는 공허한 연기를 쳐다보며 대답했다. 친구는 좀 있다가 나와라, 하고는 만날 장소를 알려 주었다.
알았어.
난 전화를 끊었다. 전화가 죽어버리자 고요함이 나에게 들러붙어 치근거렸다. 난 다시 창가로 걸어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키스를 하던 남녀는 보이지 않았다. 멀리 불 꺼진 교회가 보였고, 그 맞은편으로 네온사인에 점멸하고 있는 수많은 모텔이 보였다. 막막한 어둠은 그들과 나 사이의 공간을 가득히 차지하고 있었다. 수많은 모텔 중, 하나의 방에 불이 켜졌다. 나는 옷을 갈아 입었다.
넌 꿈이 뭐냐?
한참 술이 돌고 나서 친구가 말했다. 발음은 허물어져 있었고, 시선은 방향을 상실해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꿈?
내가 되물었지만 친구는 이내 썩은 오줌 같은 술잔에 코를 처박고는 노래나 부를까, 우리 애기? 라며 곁에서 벌거벗은 채 자신의 성기를 뻘고 있던 파트너의 가슴을 주물럭거렸다. 축 늘어진 유방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 저리 떠다녔다. 친구는 어기적거리며 걸어가 마이크를 잡았고, 그의 파트너는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성기를 입에 문채 주춤주춤 따라갔다. 꿈? 나는 고개를 뒤로 젖혔다. 내 허리가 펴지자 성기를 우물거리고 있던 내 파트너가 작게 움찔거렸다. 난 파트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래는 다시 안정을 찾았고 따뜻해졌다. 천자에 달린 조명등이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있노라니 어지러웠다. 혼란이 나를 밧줄에 묶은 후 빙빙 돌리는 느낌이었다. 나를 흔들고 있는 혼돈에 난 몸을 맡기고 싶었지만 어지러움은 더욱 심해졌다. 친구의 노랫소리가 혼란에 몸을 뺏기지 않으려는 비명처럼 들려왔다. 친구는 더욱 세차게 노래를 질러댔다. 그의 파트너는 여전히 성기를 입에 물고 죽은 잎처럼 고함을 따라 이리저리 흐느적거렸다. 어지러움조차 빙글빙글 돌았다. 토할 것 같은 기분에 난 고개를 숙였다. 번들거리는 땀과 정액 찌꺼기가 허벅지에 흥건했다. 비릿한 내음이 후각을 비집고 들어와 역한 송곳처럼 목구멍을 쑤셔댔다. 파트너의 머리가 출렁거렸다. 깔고 앉은 푸른색 방석이 시커멓게 썩은 것처럼 보였다. 그동안 단 한 번도 빨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방석에서는 썩은 버터 냄새가 났다. 얼마나 많은 맥주가 저 방석을 젖게 했을까. 몇 년. 아니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의 체액과 부패한 오물 냄새가 떠올랐다. 나는 맥주를 들어 내 성기를 빨고 있던 파트너의 등에 쏟아 부었다. 움찔거리는 물결. 파트너의 가랑이 사이로 맥주가 질척대며 흘러내렸다. 파트너는 고개를 들더니 차갑잖아요, 라며 말하고는 테이블 위로 올라가 다리를 벌렸다. 그리고 내 머리에 손을 얹어 자신의 아래로 당겼다. 나는 천천히 그녀의 다리 사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치자꽃. 치자꽃이 썩으면 저 색깔이 나올 것이다. 검게 타버린 듯한 노란색. 썩어가는 생선이 피워내는 노린내. 액취보다 지독한 암내. 여자의 허벅지에 있는 검은 점에 털이 한가닥 나 있었다. 피어싱을 한 배꼽이 축 늘어져 있었다.
비켜봐.
친구가 마이크에 대고 외치더니 내 파트너를 밀어내고 자기가 누웠다. 친구의 파트너는 휴지를 주르륵 풀더니 테이블 주위에 홍수를 막으려는 빈약한 둑처럼 아무렇게나 쌓았다. 친구는 노아의 방주에 올라탄 유령처럼 보였다. 친구는 누워있으면서도 마이크를 놓지 않고 노래를, 아니 고함을 질러댔다. 내 옆으로 돌아앉은 나의 파트너가 우스운지 낄낄거렸다. 여기가 어디지? 공간이 나를 잠식해갔다. 술에 취해 멍해진 정신은 나를 가지고 놀았다. 벌거벗은 네 개의 육체는 지옥에도 떨어지지 못해 발버둥치는 살모네우스 같았다. 나는 누구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쾌락에 몸을 맡긴 채 흐느적거리는 한 마리의 낙타였다.
야, 너 이거 가져라.
그의 파트너가 수십 병의 맥주를 테이블 위에 발사대기 중인 미사일처럼 올려놓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친구가 내게 말했다. 친구의 손엔 검은 구슬이 알알이 박힌 염주가 들려 있었다.
우리 엄마가 준 건데, 난 이제 필요없어.
난 이미 구원 받았거든.
여기서 말이지, 하고는 친구는 자신의 파트너의 성기에 손가락을 집어 넣었다. 오빠, 아퍼 살살해, 라고 그의 파트너가 중얼거리자 친구는 낄낄거리며 뭐가 아퍼, 이 씨발 년아, 좆나게 걸레같은 년이, 라며 소리를 질렀다. 친구의 목소리는 마이크를 타고 작은 공간에 쩌렁쩌렁 울렸다. 친구의 파트너는 피식 웃더니 이내 친구에게 달려들었다. 흐르는 음악은 주인을 잃은 채 홀로 스피커 위를 내달리고 있었다. 나는 늘어진 목을 겨우 가누며 손 위에 놓인 염주를 내려다 보았다. 정액과 땀, 그리고 맥주찌꺼기가 범벅이 된 염주. 구원? 뭔가 생각하고 싶었지만 생각은 이어지지 않았다. 염주에 묻은 정액과 오물들이 내 생각을 무참히 박살내는 기분이었다. 정신이 점점 희미해졌다. 난 간신히 염주를 손목에 찼다. 테이블 위에 있던 맥주가 몇 병씩 통째로 친구의 몸 위로 부어졌다. 나의 파트너까지 가세해 맥주를 부어대고 있었다. 상자 안에 있던 맥주는 이내 동이 났다. 맥주의 하얀색 거품이 녀석의 배꼽과 주위에 정액처럼 방울졌다. 비릿한 냄새가 진동했다. 나의 골을 때리는 냄새에, 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구석으로 달려가 더러운 쓰레기통에 오물을 토해내었다. 노란 위액이 나올 때까지 나는 웩웩거렸다. 쓰디쓴 오물 맛이 입안에서 진동했다. 그 냄새에 또 다시 욕지기가 올라왔다. 테이블에선 친구와 파트너들의 뒤엉켜 있었고, 정액과 범벅이 된 맥주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내 파트너가 친구의 몸에 묻은 맥주를 연신 핥아대었다. 누런 정액, 하얗게 부글거리는 거품. 비린내. 썩은 노린내. 나는 다시 토했다. 방안에 썩은 향기와 발음을 가늠할 수 없는 고함, 종잡을 수 없는 자신을 주체 못하는 인간들이 서로의 더러운 공기를 빨아 먹고 있었다. 정액 냄새와 비벼진 탁한 공기는 탈출하지 못하고 썩어갔다. 잠시 후, 나의 파트너가 친구의 성기에 자신의 아래를 집어넣자 헉, 하는 소리가 스피커에서 밀려나왔다. 곧 스피커에는 가늠할 수 없는 공허를 긁어대는 울부짖음이 가득 찼다. 나는 비틀거리며 천천히 그들에게 걸어가 친구의 파트너를 잡고 돌려세웠다. 이미 누군가의 파트너란 애초에 의미가 없었다. 그리고 다리를 잡고 벌려 깊이모를 심연의 공간에 성기를 쑤셔 넣었다. 친구의 파트너는 새하얀 절벽을 온 몸으로 느끼며 허리를 숙였다. 나는 하얀 새가 날아가는 환각을 보았고, 더욱 거칠게 그것들을 몰아갔다. 친구와 파트너는 나를 보며 낄낄거렸다. 스피커에서 정체모를 악마가 비웃는 듯한 소리가 밀려 나왔다. 나는 친구의 마이크를 빼앗아 소리를 질렀다.
씨발, 다 죽어버려.
친구는 푸하하, 하고 더욱 크게 웃었다. 나의 거친 비명을 온 몸으로 받아내고 있던 파트너가 나의 팔을 부여잡으며 오빠, 라며 악을 질렀다. 친구의 배 위에 올라탄 파트너는 허리를 미친 듯이 움직이며 깔깔거렸다. 탁해진 공기는 구원 받을 길 없이, 더욱 소란해져 갔다. 나의 비명은 한참 후 끝이 났다. 허우적거리던 네 개의 영혼은 제각기 주저앉아 각자의 상념에 빠져들었다. 상념은 허무했고, 텅 빈 것들은 공허했다. 상념은 부유하며 떠돌아다녔다. 썩어버린 아케론 강을 건너는 카론처럼 나는 부패한 망각 위를 떠다녔다. 나는 마이크를 쥔 손으로 담배를 물었다. 그리고 비틀거리며 일어서 노래기계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화면에선 해변에 앉은 남녀가 새카만 밤바다에 누워 몸을 비벼대고 있었다. 저들은 아직 떠오르지 않은 태양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이미 죽어버린 태양을 애도하며 누워있는 것일까. 화면을 보며, 흐릿한 눈으로 생각했다. 뭐든 상관없겠지. 무엇이든, 어차피 저들조차 멸망해버린 태양의 배설물일테니. 나는 지금 어디로 가는 걸까. 화면은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비틀어댔다. 나는 방안에 자욱한 연기 속에 내 허파에 들어찬 썩은 공기를 포개고 싶었다. 그러나 담배에 불이 붙어 있지 않았다. 난 담배를 집어 던졌다. 비실대고 웃고 있던 나의 파트너가 자신이 피고 있던 담배를 나의 입에 물려주었다. 나는 다시 토기吐氣를 느끼며 웩웩거렸다. 킬킬대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반주기에 노래를 입력했다. 자우림,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라는 제목이 허상처럼 떠올랐다.
하여튼 저 새끼는 저딴 노래만 불러요.
친구는 궁시렁거리며, 누군가의 파트너 가슴을 주물럭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키스. 잠시 후, 노래를 부르는 나의 귀에 뭐 저 딴걸 부르냐, 이 좋은 날, 이라는 친구의 말. 난 혼탁한 눈을 한 번 비비고 계속 노래를 불렀다.
다리 벌려봐 이 씨발년아.
친구는 파트너의 아래에 얼굴을 묻었다. 또 다른 파트너가 나에게 엉금엉금 기어오기 시작했다. 마이크를 쥔 손에 낀 염주가 수갑처럼 고정되어 있었다.
지금 기억으로 그때 나는 노래를 부르고 난 후 파트너 가랑이에 얼굴을 처박고 있던 친구의 뒤통수에 대고 꿈 따위는 키우지 않아, 이 씨발 새끼야, 라고 소리를 질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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