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쉬, 조금 더 진한 그레이 -5부-
녹차 한 잔 드릴까요?
하얀 레이스가 잘린 슬립을 걸친 여자가 머그컵에 녹차를 따르고 있었다. 쪼르륵, 하는 소리가 전립선염에 걸린 사내의 오줌 소리처럼 힘겹게 들렸다. 드세요, 하고 여자는 나에게 컵을 내밀었다. 난 여자의 오줌을 받아든 기분이 들었다. 여자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난 겨우 시선을 들어 여자를 쳐다보았다. 여자는 환한 불빛 아래 날것 그대로 드러난 내 벌거벗은 몸을 한 번 훑어 보더니 어제 어디 갔었어요? 집에 안계시던데, 하고 말했다. 여자는 이불을 끌어다 나를 덮어 주었다.
추운데 이불 좀 덮고 주무세요. 아니면 옷이라도 입고 주무시던가.
이 여자는 언제 왔을까. 옷은 왜 벗고 있는 것일까. 여자가 입고 있는 슬립의 표면을 시선으로 어루만지며 생각했다. 슬립은 새하얗다 못해 창백해 보였다. 그리고 그 속에 잠겨있는 검은 체모. 여자는 나의 시선에 자신의 것을 포갰다. 난 시선을 버렸다. 몰라, 내가 알 필요 없지. 이어지는 생각을 버리고 난 한숨을 쉬었다. 다 쓸데없는 질문이야. 그 어떤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지 마. 나는 몸을 일으켜 비릿한 냄새가 올라오는 머그컵을 내려다 보았다. 뜨거운 컵에는 노랗게 우려진 녹차가 들어있었다. 문득 바라보고 있으려니 어젯밤 비틀거리며 걷던 길거리에서 노상방뇨를 하던 어떤 사내의 누런 오줌이 생각났다. 웩, 하며 비글거리는 것들이 속에서 요동을 쳤다. 여자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새카만 여자의 눈동자 속에 시커먼 바퀴벌레가 들어앉아 나를 주시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저 바퀴벌레를 터뜨리면 누런 점액이 퍼버벅, 하고 터져 나오겠지. 혹은 붉은 정액들이. 사방에 파리가 날리는 느낌이었다.
못 먹겠어, 속이 너무 안 좋아
나는 일어나서 오피스텔 창문을 열어 녹차를 허공에 날려버렸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어와 내 성기에 몸을 비벼대고 나서는 빠르게 방 안으로 내달렸다. 아래로 추락하던 녹차 방울은 오줌을 갈겨놓은 것처럼 바람에 날려 흩어졌다. 아마 밑에 지나가던 녀석들은 오줌비가 내린다고 생각하겠지. 다시 침대에 주저앉았다. 여자는 테이블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벌어진 여자의 슬립 사이로 치모가 거뭇하게 보였다.
언제 갈 거야?
여자의 등 뒤 하얀 벽지가 슬립과 대비되어 누렇게 바랜 것처럼 보였다. 여자는 이불이나 제대로 덮으세요, 라고는 이불을 끌어당겨 다시 나에게 덮어준 다음 머그컵을 들고 일어섰다. 그리고 싱크대로 걸어가며 언제 왔냐고 물어보기도 전에 언제 갈 거냐고 묻는 사람은 처음 봐요, 하고 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디서 들어왔는지 파리 한 마리가 주위를 어지럽혔다.
그래서 언제 갈 건데.
나의 물음에 여자는 나를 힐끔 바라보더니, 싱크대를 등에 대고 돌아섰다. 그리고는 픽, 웃었다. 머리를 삐딱하게 괴더니 다시 나를 쳐다보았다. 그 모든 행위에는 그 어떤 의미도 부여하고 싶지 않았지만, 여자의 속에는 많은 이야기와 의미들이 들어앉은 듯 했다. 여자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조금 있다가요.
여자가 슬립을 벗으며 말했다.
기억은 언제나 독촉장처럼 날아와 나를 흔들어 깨웠다. 그것은 현실보다 지독한 현재의 연장이었다. 그녀를 처음 만났던, 찬란했던 봄날의 아련함이 지나고, 푸르른 녹음이 세상을 짓밟던 여름과 길가를 아로새긴 낙화가 풍성했던 가을을 거친 그해 겨울, 그녀는 대학에 합격했다. 그녀는 나보다 두 살이 어렸고, 나는 그녀의 과외를 맡아 주었다. 그녀는 성가대였다. 나는 그녀의 과외를 기점 삼아 그녀와 함께 그녀의 교회를 다니기 사작했고, 나는 그것이 내 공허와 허무의 종말을 알리는 기점이 되기를 바랬다. 그녀가 대학에 합격을 하던 날, 나는 그녀에게 구원을 갈구하듯 사랑을 고백했고, 그녀는 나의 고백을 눈물로서 받아주었다. 그것은 주님의 은총이었고, 나의 주님은 내 앞에 현신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주님, 감사합니다. 나는 기도를 했었던 것 같다. 그 모든 기도는 절절했다. 진심이었고, 내 심장을 도려내는 주문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내 삶의 마지막 구원이자, 내 나락의 시발점이었다. 아니, 절정을 등에 업은 희망의 종착역.
나의 고백을 받아주었던 그녀가 창백한 표정으로 자주 아프기 시작하며, 극심한 우울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시간이 훨씬 지난 어느 날이었다.
12월 23일의 자정이 지나고 크리스마스 이브의 새벽이 밝았다. 나는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길 건너 교회는 불이 꺼져 있었고, 교회 앞 작은 크리스마스 트리는 멀리보이는 호텔의 거대한 성기처럼 우뚝 솟은 트리 앞에서 초라해 보였다. 호텔은 불이 환했고 세상을 밝히는 듯 했다. MERRY CHRISTMAS, HAPPY NEW YEAR, 라고 적힌 모텔의 현수막들은 사이비 교주의 설교처럼 기괴해 보였다. 나는 창밖으로 침을 뱉었다. 오늘 밤 많은 인간들이 주님의 은총 안에서 서로의 정액을 함께 퍼부어대며 주님, 감사합니다, 라며 기도를 하겠지. 생각은 더 이상 진전되지 못했다. 도로변에 있는 룸살롱에 크리스마스 이브에 정상영업합니다, 란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하늘을 올려다 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을 감은 하늘이 강물에 뛰어드는 어린아이를 내팽겨치고 낮잠을 자고 있는 무책임한 부모처럼 느껴졌다. 한숨이 내 안에서 돌출되었다.
오늘 우리 교회나 갈까요?
지난 1년간 잘못한거 사죄하고 참회 받으러.
여자가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벌거벗은 채 창밖을 내다보고 서 있던 나의 엉덩이를 톡톡 치더니 불이 붙어 하얀 연기가 허무하게 피어오르던 그 담배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나는 담배를 심장의 끝까지 밀어당기고는, 그 잔재를 창밖으로 내다버렸다. 잔재들은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산산이 부서졌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저녁에는 교회에 가야되는 거 아니에요?
아니.
여자는 침대에서 일어나 검은색 슬립을 걸쳤다. 나는 창틀에 기댄채 공허하게 흩어지는 연기만 바라보았다. 멀리 자동차 한 대가 헤드라이트를 상향으로 켠 채 어둠을 죽이며 빠르게 달려왔다. 차는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죽지 못한 어둠들이 그 뒤를 다급하게 쫓아갔다.
그럼요?
창틀에 털지 못한 담뱃재가 죽은 채 떨어졌다. 바람이 슬그머니 들어와 재를 오피스켈 안으로 밀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만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재는 산산이 부서졌다. 오만한 바람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내 방안으로 짖쳐 들어와 내 삶의 남은 조각들까지 뒤흔들었다. 여자의 슬립이 바람에 멱살이 잡혀 뒤뚱거렸다. 나는 창밖으로 몸을 돌렸다.
클럽에 가야지. 아무나 만나서, 섹스 하러.
여자가 침대에서 어기적거리며 내 쪽으로 기어왔다. 바람이 끝도 없이 밀려들어왔다. 추웠다. 내 심장을 얼려버리겠다는 의지 같았다. 바람과 마주한 내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곧 미끈하고 뜨거운 느낌이 아래로부터 밀려 올라왔다. 느낌은 다급했고, 그 다급함에 나는 편안했다. 끈적한 부드러움이 항문에서 느껴졌다. 차가움과 뜨거움 사이에서 나는 점점 아득해졌다. 여자는 나의 뒤를 지독히도 열렬히 탐문했다.
이런 날을 만들어 주신,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면서.
여자가 내 다리를 잡고 천천히 양 옆으로 벌렸다. 나는 이미 죽어버린 담배를 창밖으로 던졌다. 다리 사이로 막 허물을 벗은 한 마리의 뱀이 기어다니는 느낌이었다. 미끈하고 끈적한 촉감의 뱀. 창밖으로 멀리 비틀거리던 남녀가 길 건너 모텔로 들어갔다. 내 다리 사이로 뭔가가 비집고 들어오더니 내 성기를 슬며시 부여잡았다. 불이 꺼져 있던 모텔의 어느 방에 불이 들어왔다. 그리고 또 하나의 남녀가 나타나 모텔로 사라졌다. 그리고 또 하나. 또 하나. 한 마리의 뱀이 나의 항문에서 성기를 관통하는 환상이 내 안에 들어왔다. 잠시 후, 뜨거운 것들이 천천히 내 몸에서 떨어졌다. 입과 손을 뗀 여자는 내 몸을 자신 쪽으로 돌렸다. 나는 몸을 돌려 여자를 쳐다보았다. 검은 심연이 들어앉아 있는 것 같은 여자의 눈동자는, 나를 빨아먹는 것 같았다. 여자는 느릿느릿 다가와 내 입술에 작게 키스를 했다. 그리고 또 한 번. 난 다가오는 키스를 받아들이며 여자가 이끄는대로 침대로 향했다.
우리도 섹스하고 클럽가요. 은총 받으러.
나는 슬립의 아래를 걷어올렸다. 사그락. 사그락. 여자의 몸을 긁어가며 말려 올라가는 슬립은 어느 지점에서 멈추었다. 여자는 몸을 쭉 펴며, 다리를 벌렸다. 여자의 몸이 검은 슬립과 대비되어 새하얗게 보였다. 난 내 성기를 여자의 몸에 밀어넣으며 말했다.
그래. 그러자. 오늘 저녁에.
가서, 은혜받자, 은총도 받고, 구원도 받자, 찬송가도 부르고, 기도도 하고 말이야. 그것이 무엇이든, 어차피 상관없으니까, 어차피, 말이야.
녹차 한 잔 드릴까요?
하얀 레이스가 잘린 슬립을 걸친 여자가 머그컵에 녹차를 따르고 있었다. 쪼르륵, 하는 소리가 전립선염에 걸린 사내의 오줌 소리처럼 힘겹게 들렸다. 드세요, 하고 여자는 나에게 컵을 내밀었다. 난 여자의 오줌을 받아든 기분이 들었다. 여자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난 겨우 시선을 들어 여자를 쳐다보았다. 여자는 환한 불빛 아래 날것 그대로 드러난 내 벌거벗은 몸을 한 번 훑어 보더니 어제 어디 갔었어요? 집에 안계시던데, 하고 말했다. 여자는 이불을 끌어다 나를 덮어 주었다.
추운데 이불 좀 덮고 주무세요. 아니면 옷이라도 입고 주무시던가.
이 여자는 언제 왔을까. 옷은 왜 벗고 있는 것일까. 여자가 입고 있는 슬립의 표면을 시선으로 어루만지며 생각했다. 슬립은 새하얗다 못해 창백해 보였다. 그리고 그 속에 잠겨있는 검은 체모. 여자는 나의 시선에 자신의 것을 포갰다. 난 시선을 버렸다. 몰라, 내가 알 필요 없지. 이어지는 생각을 버리고 난 한숨을 쉬었다. 다 쓸데없는 질문이야. 그 어떤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지 마. 나는 몸을 일으켜 비릿한 냄새가 올라오는 머그컵을 내려다 보았다. 뜨거운 컵에는 노랗게 우려진 녹차가 들어있었다. 문득 바라보고 있으려니 어젯밤 비틀거리며 걷던 길거리에서 노상방뇨를 하던 어떤 사내의 누런 오줌이 생각났다. 웩, 하며 비글거리는 것들이 속에서 요동을 쳤다. 여자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새카만 여자의 눈동자 속에 시커먼 바퀴벌레가 들어앉아 나를 주시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저 바퀴벌레를 터뜨리면 누런 점액이 퍼버벅, 하고 터져 나오겠지. 혹은 붉은 정액들이. 사방에 파리가 날리는 느낌이었다.
못 먹겠어, 속이 너무 안 좋아
나는 일어나서 오피스텔 창문을 열어 녹차를 허공에 날려버렸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어와 내 성기에 몸을 비벼대고 나서는 빠르게 방 안으로 내달렸다. 아래로 추락하던 녹차 방울은 오줌을 갈겨놓은 것처럼 바람에 날려 흩어졌다. 아마 밑에 지나가던 녀석들은 오줌비가 내린다고 생각하겠지. 다시 침대에 주저앉았다. 여자는 테이블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벌어진 여자의 슬립 사이로 치모가 거뭇하게 보였다.
언제 갈 거야?
여자의 등 뒤 하얀 벽지가 슬립과 대비되어 누렇게 바랜 것처럼 보였다. 여자는 이불이나 제대로 덮으세요, 라고는 이불을 끌어당겨 다시 나에게 덮어준 다음 머그컵을 들고 일어섰다. 그리고 싱크대로 걸어가며 언제 왔냐고 물어보기도 전에 언제 갈 거냐고 묻는 사람은 처음 봐요, 하고 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디서 들어왔는지 파리 한 마리가 주위를 어지럽혔다.
그래서 언제 갈 건데.
나의 물음에 여자는 나를 힐끔 바라보더니, 싱크대를 등에 대고 돌아섰다. 그리고는 픽, 웃었다. 머리를 삐딱하게 괴더니 다시 나를 쳐다보았다. 그 모든 행위에는 그 어떤 의미도 부여하고 싶지 않았지만, 여자의 속에는 많은 이야기와 의미들이 들어앉은 듯 했다. 여자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조금 있다가요.
여자가 슬립을 벗으며 말했다.
기억은 언제나 독촉장처럼 날아와 나를 흔들어 깨웠다. 그것은 현실보다 지독한 현재의 연장이었다. 그녀를 처음 만났던, 찬란했던 봄날의 아련함이 지나고, 푸르른 녹음이 세상을 짓밟던 여름과 길가를 아로새긴 낙화가 풍성했던 가을을 거친 그해 겨울, 그녀는 대학에 합격했다. 그녀는 나보다 두 살이 어렸고, 나는 그녀의 과외를 맡아 주었다. 그녀는 성가대였다. 나는 그녀의 과외를 기점 삼아 그녀와 함께 그녀의 교회를 다니기 사작했고, 나는 그것이 내 공허와 허무의 종말을 알리는 기점이 되기를 바랬다. 그녀가 대학에 합격을 하던 날, 나는 그녀에게 구원을 갈구하듯 사랑을 고백했고, 그녀는 나의 고백을 눈물로서 받아주었다. 그것은 주님의 은총이었고, 나의 주님은 내 앞에 현신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주님, 감사합니다. 나는 기도를 했었던 것 같다. 그 모든 기도는 절절했다. 진심이었고, 내 심장을 도려내는 주문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내 삶의 마지막 구원이자, 내 나락의 시발점이었다. 아니, 절정을 등에 업은 희망의 종착역.
나의 고백을 받아주었던 그녀가 창백한 표정으로 자주 아프기 시작하며, 극심한 우울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시간이 훨씬 지난 어느 날이었다.
12월 23일의 자정이 지나고 크리스마스 이브의 새벽이 밝았다. 나는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길 건너 교회는 불이 꺼져 있었고, 교회 앞 작은 크리스마스 트리는 멀리보이는 호텔의 거대한 성기처럼 우뚝 솟은 트리 앞에서 초라해 보였다. 호텔은 불이 환했고 세상을 밝히는 듯 했다. MERRY CHRISTMAS, HAPPY NEW YEAR, 라고 적힌 모텔의 현수막들은 사이비 교주의 설교처럼 기괴해 보였다. 나는 창밖으로 침을 뱉었다. 오늘 밤 많은 인간들이 주님의 은총 안에서 서로의 정액을 함께 퍼부어대며 주님, 감사합니다, 라며 기도를 하겠지. 생각은 더 이상 진전되지 못했다. 도로변에 있는 룸살롱에 크리스마스 이브에 정상영업합니다, 란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하늘을 올려다 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을 감은 하늘이 강물에 뛰어드는 어린아이를 내팽겨치고 낮잠을 자고 있는 무책임한 부모처럼 느껴졌다. 한숨이 내 안에서 돌출되었다.
오늘 우리 교회나 갈까요?
지난 1년간 잘못한거 사죄하고 참회 받으러.
여자가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벌거벗은 채 창밖을 내다보고 서 있던 나의 엉덩이를 톡톡 치더니 불이 붙어 하얀 연기가 허무하게 피어오르던 그 담배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나는 담배를 심장의 끝까지 밀어당기고는, 그 잔재를 창밖으로 내다버렸다. 잔재들은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산산이 부서졌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저녁에는 교회에 가야되는 거 아니에요?
아니.
여자는 침대에서 일어나 검은색 슬립을 걸쳤다. 나는 창틀에 기댄채 공허하게 흩어지는 연기만 바라보았다. 멀리 자동차 한 대가 헤드라이트를 상향으로 켠 채 어둠을 죽이며 빠르게 달려왔다. 차는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죽지 못한 어둠들이 그 뒤를 다급하게 쫓아갔다.
그럼요?
창틀에 털지 못한 담뱃재가 죽은 채 떨어졌다. 바람이 슬그머니 들어와 재를 오피스켈 안으로 밀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만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재는 산산이 부서졌다. 오만한 바람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내 방안으로 짖쳐 들어와 내 삶의 남은 조각들까지 뒤흔들었다. 여자의 슬립이 바람에 멱살이 잡혀 뒤뚱거렸다. 나는 창밖으로 몸을 돌렸다.
클럽에 가야지. 아무나 만나서, 섹스 하러.
여자가 침대에서 어기적거리며 내 쪽으로 기어왔다. 바람이 끝도 없이 밀려들어왔다. 추웠다. 내 심장을 얼려버리겠다는 의지 같았다. 바람과 마주한 내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곧 미끈하고 뜨거운 느낌이 아래로부터 밀려 올라왔다. 느낌은 다급했고, 그 다급함에 나는 편안했다. 끈적한 부드러움이 항문에서 느껴졌다. 차가움과 뜨거움 사이에서 나는 점점 아득해졌다. 여자는 나의 뒤를 지독히도 열렬히 탐문했다.
이런 날을 만들어 주신,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면서.
여자가 내 다리를 잡고 천천히 양 옆으로 벌렸다. 나는 이미 죽어버린 담배를 창밖으로 던졌다. 다리 사이로 막 허물을 벗은 한 마리의 뱀이 기어다니는 느낌이었다. 미끈하고 끈적한 촉감의 뱀. 창밖으로 멀리 비틀거리던 남녀가 길 건너 모텔로 들어갔다. 내 다리 사이로 뭔가가 비집고 들어오더니 내 성기를 슬며시 부여잡았다. 불이 꺼져 있던 모텔의 어느 방에 불이 들어왔다. 그리고 또 하나의 남녀가 나타나 모텔로 사라졌다. 그리고 또 하나. 또 하나. 한 마리의 뱀이 나의 항문에서 성기를 관통하는 환상이 내 안에 들어왔다. 잠시 후, 뜨거운 것들이 천천히 내 몸에서 떨어졌다. 입과 손을 뗀 여자는 내 몸을 자신 쪽으로 돌렸다. 나는 몸을 돌려 여자를 쳐다보았다. 검은 심연이 들어앉아 있는 것 같은 여자의 눈동자는, 나를 빨아먹는 것 같았다. 여자는 느릿느릿 다가와 내 입술에 작게 키스를 했다. 그리고 또 한 번. 난 다가오는 키스를 받아들이며 여자가 이끄는대로 침대로 향했다.
우리도 섹스하고 클럽가요. 은총 받으러.
나는 슬립의 아래를 걷어올렸다. 사그락. 사그락. 여자의 몸을 긁어가며 말려 올라가는 슬립은 어느 지점에서 멈추었다. 여자는 몸을 쭉 펴며, 다리를 벌렸다. 여자의 몸이 검은 슬립과 대비되어 새하얗게 보였다. 난 내 성기를 여자의 몸에 밀어넣으며 말했다.
그래. 그러자. 오늘 저녁에.
가서, 은혜받자, 은총도 받고, 구원도 받자, 찬송가도 부르고, 기도도 하고 말이야. 그것이 무엇이든, 어차피 상관없으니까, 어차피, 말이야.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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