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Embargo-지옥에서 안녕
세상이 끝장나 버렸다.
간신히 눈을 뜬 모텔에서 나는 종말을 맞이한 세상을 보았다. 세상의 종말은 단순했고, 그 단순함 속에서 나는 어쩔줄 몰랐다. 종말은 무감각해보였다. 영화에서나 소설 속에서나 일어난 것같은 끝장이었다. 나는 모텔의 창문 너머로 보이는 세상을 쳐다보았다.
모텔 밖 세상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다만 눈을 감았고, 섹스를 했었고, 다시 눈을 떴을 뿐인데, 세상은 온데간데 없었다. 마치 온 세상이 지옥의 지하실로 숨어버린 느낌이었다.
제제는 아직 침대에서 벌거벗은 채로 잠을 자고 있었다. 지난밤 제제는 시험을 망쳤다며 울고 있었는데, 나는 그녀를 깨워 이제 세상과 시험은 아무 상관관계가 없어졌다며 축하를 하며 깨워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지난밤, 제제는 울면서 나의 페니스를 입에 물고 있었다. 나는 종말 앞에 어지러웠고, 제제는 헐벗은 채 자고 있었다.
세상은 가라앉아 있었다. 이것은 은유도 비유도 아닌, 말그대로 가라앉아 있었다. 인터넷에서 자주 보았던 싱크홀, 바로 그것이었다. 세상은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종말과 마주하고 있었다.
정액에 찌든 콘돔과 제제의 브래지어가 한데 엉켜 굴러다녔다. 제제의 속옷은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것은 너무도 많았다. 나는 왜 이 모텔만 살아남았는지 궁금했다.
제제, 이제 시험따윈 아무 상관이 없어.
나는 말할 수 없었다. 나는 생각을 하려 노력했다. 이 사태를 어떡해 해야 할지 솟아오르지 못하는 생각과 세상 앞에 무력했다. 세상은 조용했다. 나는 제제의 몸 안에 나를 밀어넣고 싶은 욕구를 간신히 참았다.
텔레비전을 켰지만, 채널은 당연한 듯 나오지 않았다. 텔리비전은 오직 소음으로 이 세상의 종말을 증거하고 있었다. 이제 종교도, 학교도 없는 듯 했다. 제제 일어나봐, 너는 더 이상 울지 않아도 돼. 나는 제제를 깨우지 못했다.
제제가 몸을 뒤척였다. 그녀의 봉긋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가 침대에 묻혀있었다. 그녀를 만지고 싶었지만 종말 앞에서 건드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전화를 들었다. 관리실과 세상을 향한 번호를 눌렀지만 신호음은 들리지 않았다. 전기와 전화, 모든 것들이 침묵하고 있었다. 혼란만이 나를 향해 덤벼들었다. 제제가 몸을 틀었다. 나의 시선에 제제의 성기가 자신을 드러내었다. 깨끗한 음모와 순수한 클리토리스가 보였다. 나는 어지러웠다.
나는 생명의 고리를 쳐다보았다. 지난밤, 제제가 시험을 망쳤다며 울고 있던 제제와의 섹스가 끝난 후, 나는 제제를 재우고 천장에 고리를 걸었다. 그 고리에 내 목은 어제 걸려야 했지만, 나는 걸지 못했다. 내 지난 삶을 끝장내 버리고 싶었지만, 의지는 끝장을 따라가지 못했다. 뒤쳐진 의지는 나를 수면 속으로 밀어넣었다. 피곤했고, 힘겨웠다.
나는 천장에 걸린 올가미와 세상 밖의 지옥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둘 다 내 생명을 끝장내버리기 위해 단단히 버티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난 어쩔 줄 몰랐다. 내가 버텨야 할 곳은 어디인가. 주관식. 정답은 없다.
모든 소통이 멸종되었다. 나는 모텔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제제를 깨우고 싶었다. 전화를 들고 아무나 하고 얘기를 하고 싶었다. 텔레비전의 가수, 배우, 아나운서, 개그맨, 단역이라도, 그 어떤 누구라도 난 환영할 수 있었다. 지난 날의 모든 고뇌와 악몽은 잊어줄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었다.
제제, 일어나. 이제 시험따윈 아무 상관이 없어. 아무 상관없다고.
아직 영글지 않은, 숙성되지 않은 과일처럼 탱탱하고 봉긋한 제제의 가슴이 시선에 들어왔다. 나는 제제의 곁에 앉았다. 제제, 일어나. 시험따윈 상관없어졌어. 나는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제제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고 싶기도 했지만 그것은 그냥 묻어두기로 했다. 만약 울다가 제제가 깨어나 버린다면, 그것은 더 큰 재앙일수도.
나는 눈을 들어 다시 창밖을 내다보았다. 믿기 힘든 현실. 그래, 진부한 표현이긴 하지만, 그게 정답이지.
살아남은 건 이 모텔 건물 뿐인듯 했다. 보이는 것은 시커먼 심연의 지하실뿐. 그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태양은 여전히 건재했고, 구름도 흘렀다. 바람이 시원했다. 이 좋은 날씨에 나와 제제를 제외한 모든 세상이 지하로 나들이를 나간 것 같았다. 나는 제제의 질 속으로 내 페니스를 나들이 시켜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심연을 들여다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제제를 깨워 섹스를 하고, 그 지난至難하고 다급한 행위가 끝나면 비로소 스스로의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것, 그것 뿐이었다. 나는 제제를 깨우지 못했다.
코맥 매카시가 이 장면을 보았다면, 아마 제제와 나를 저 심연 속으로 걸어가게 했을지도 몰라. 그리고는 아마도 그 장면을 글로써 표현하겠지. 지옥보다 더 참혹하게. 차라리 죽음을 달라고. 이미 난 죽음의 품 안에 들어와 있는데도 말이지.
난 커튼을 쳐버렸다. 커튼을 친다고 세상이 다시 돌아오는 것은 아니겠지만, 나는 그렇게라도 외면하고 싶었다. 그 순간, 나는 제제와 어떻게 만났는지, 내 지난 삶의 궤적이 무엇이었는지, 내가 왜 이 모텔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나는 누구인지따위를 모두 잊어버리고 말았다. 굵은 물방울이 얼굴을 타고 흘렀다. 바닥을 적시는 물방울에 나는 주저앉고 말았다.
제제, 이제 괜찮아. 시험따윈 아무래도 좋아. 이미 세상이 끝장나버렸거든.
나는 한참을 울었다.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은 오로지 올가미 뿐이었다. 신은 세상과 함께 소멸해버렸다. 나의 신은 오직 저 올가미 안에만 있는 듯했다. 끝장난 세상 속에서 올가미는 편안해 보였다. 나는 제제를 깨우지 않았다.
내가 저 올가미와 함께 세상 곁으로 간다면, 제제는 어떤 끝장을 만나게 될까? 난 어제 내 품에 안겨, 나의 페니스를 빨아대며 울던 제제를 생각했다. 그녀의 품 안은 부드러웠고, 그녀의 질 속은 따뜻했다. 나의 세상이 또 하나 늘어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침대로 갔다. 창백한 제제의 피부에 입을 맞췄다. 레이코가 연주하는 푸가를 듣고 있을 나오코가 떠올랐다. 영원한 그들만큼 제제의 이 싱그러움도 영원할 것 같았다. 나는 제제의 콧날과 목선과 그 아래로 미끌어지며 내려오는 가슴의 선율과 슬픈 발라드 같은 그녀의 허리와 짙은 멜로디 라인이 그려지는 엉덩이와 다리라인을 차례로 눈에 익혔다. 나는 그녀의 다리를 벌려 그녀의 질 속으로 나의 모든 것을 밀어넣는 환상을 보았다.
나는 제제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제제는 깨어나지 않았다. 제제, 이제 괜찮아. 더는 울지마. 시험따위 아무것도 아닌게 되어버렸으니. 나는 깨어나지 않은 제제의 품 안에서 작게, 아주 작게 속삭였다. 나는 올가미를 향해 걸어들어가는 환상을, 제제의 품 안에서, 보았다. 세상의 끝장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었지만, 내 세상의 끝장은 오로지 나의 의지로 결단을 지을 수 있었다. 나는 그 끝장의 결정 앞에서 두렵지 않았다. 이건 단순한 선택의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제제의 이마에 다시 키스를 한 후 일어섰다. 나를 짓누르던 공기들이 부서지며 산화했다. 더 이상 세상의 끝장은 나와 상관이 없었다. 나는 커튼을 치고 창문을 열었다. 부드러운 멸망의 기운이 바람을 타고 나의 속살에 부딪혔다. 그래, 멸망이다. 지옥같던 삶은 이제 아무 상관이 없어져 버렸지만, 이미 삶이 지옥이 되어버렸다. 나는 모든 것의 최상위에 서서 이 지옥을 끝장낼 것이다.
나는 위로 올라갔다. 나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그리고 내쉬었다. 가쁜 숨을 흥분 속에 녹이려 애를 썼다. 나는 지난밤 제제와의 섹스를 떠올렸다.
오빠, 오빠. 계속, 계속 해줘요. 나 죽을 것 같애. 나 어떡해.
섹스의 끝에 제제는 시험을 망쳤어요, 라며 다시 울었고, 그 울음의 끝에서 제제는 비명을 지르며 절정에 다다랐다. 제제, 괜찮아. 나는 울고 있는 제제의 가슴을 빨며, 제제의 질 속으로 손가락을 넣으며 달래주었다. 나는 제제와 또 섹스를 했고, 제제를 재웠다. 그리고 나는 내가 서 있는 이 무대를 만들었다.
나의 무대는 완벽했다. 비록 하루가 늦긴 했지만, 나는 아무 상관없었다. 나는 지옥의 광경을 한 번 내려다보고 의자를 걷어찼다. 침대의 한켠에서 마침내 눈을 뜨고 있는 제제가 보였다. 제제, 세상이 끝장났어, 시험따윈 이제 아무 상관없어. 나는 생각했고, 말하고 싶었다. 말은 나오지 못했다. 이윽고 나는 날 것 그대로 허공에 매달린 채, 제제를 내려다보며 겨우 말했다.
안녕. 제제.
세상이 끝장나 버렸다.
간신히 눈을 뜬 모텔에서 나는 종말을 맞이한 세상을 보았다. 세상의 종말은 단순했고, 그 단순함 속에서 나는 어쩔줄 몰랐다. 종말은 무감각해보였다. 영화에서나 소설 속에서나 일어난 것같은 끝장이었다. 나는 모텔의 창문 너머로 보이는 세상을 쳐다보았다.
모텔 밖 세상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다만 눈을 감았고, 섹스를 했었고, 다시 눈을 떴을 뿐인데, 세상은 온데간데 없었다. 마치 온 세상이 지옥의 지하실로 숨어버린 느낌이었다.
제제는 아직 침대에서 벌거벗은 채로 잠을 자고 있었다. 지난밤 제제는 시험을 망쳤다며 울고 있었는데, 나는 그녀를 깨워 이제 세상과 시험은 아무 상관관계가 없어졌다며 축하를 하며 깨워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지난밤, 제제는 울면서 나의 페니스를 입에 물고 있었다. 나는 종말 앞에 어지러웠고, 제제는 헐벗은 채 자고 있었다.
세상은 가라앉아 있었다. 이것은 은유도 비유도 아닌, 말그대로 가라앉아 있었다. 인터넷에서 자주 보았던 싱크홀, 바로 그것이었다. 세상은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종말과 마주하고 있었다.
정액에 찌든 콘돔과 제제의 브래지어가 한데 엉켜 굴러다녔다. 제제의 속옷은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것은 너무도 많았다. 나는 왜 이 모텔만 살아남았는지 궁금했다.
제제, 이제 시험따윈 아무 상관이 없어.
나는 말할 수 없었다. 나는 생각을 하려 노력했다. 이 사태를 어떡해 해야 할지 솟아오르지 못하는 생각과 세상 앞에 무력했다. 세상은 조용했다. 나는 제제의 몸 안에 나를 밀어넣고 싶은 욕구를 간신히 참았다.
텔레비전을 켰지만, 채널은 당연한 듯 나오지 않았다. 텔리비전은 오직 소음으로 이 세상의 종말을 증거하고 있었다. 이제 종교도, 학교도 없는 듯 했다. 제제 일어나봐, 너는 더 이상 울지 않아도 돼. 나는 제제를 깨우지 못했다.
제제가 몸을 뒤척였다. 그녀의 봉긋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가 침대에 묻혀있었다. 그녀를 만지고 싶었지만 종말 앞에서 건드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전화를 들었다. 관리실과 세상을 향한 번호를 눌렀지만 신호음은 들리지 않았다. 전기와 전화, 모든 것들이 침묵하고 있었다. 혼란만이 나를 향해 덤벼들었다. 제제가 몸을 틀었다. 나의 시선에 제제의 성기가 자신을 드러내었다. 깨끗한 음모와 순수한 클리토리스가 보였다. 나는 어지러웠다.
나는 생명의 고리를 쳐다보았다. 지난밤, 제제가 시험을 망쳤다며 울고 있던 제제와의 섹스가 끝난 후, 나는 제제를 재우고 천장에 고리를 걸었다. 그 고리에 내 목은 어제 걸려야 했지만, 나는 걸지 못했다. 내 지난 삶을 끝장내 버리고 싶었지만, 의지는 끝장을 따라가지 못했다. 뒤쳐진 의지는 나를 수면 속으로 밀어넣었다. 피곤했고, 힘겨웠다.
나는 천장에 걸린 올가미와 세상 밖의 지옥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둘 다 내 생명을 끝장내버리기 위해 단단히 버티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난 어쩔 줄 몰랐다. 내가 버텨야 할 곳은 어디인가. 주관식. 정답은 없다.
모든 소통이 멸종되었다. 나는 모텔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제제를 깨우고 싶었다. 전화를 들고 아무나 하고 얘기를 하고 싶었다. 텔레비전의 가수, 배우, 아나운서, 개그맨, 단역이라도, 그 어떤 누구라도 난 환영할 수 있었다. 지난 날의 모든 고뇌와 악몽은 잊어줄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었다.
제제, 일어나. 이제 시험따윈 아무 상관이 없어. 아무 상관없다고.
아직 영글지 않은, 숙성되지 않은 과일처럼 탱탱하고 봉긋한 제제의 가슴이 시선에 들어왔다. 나는 제제의 곁에 앉았다. 제제, 일어나. 시험따윈 상관없어졌어. 나는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제제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고 싶기도 했지만 그것은 그냥 묻어두기로 했다. 만약 울다가 제제가 깨어나 버린다면, 그것은 더 큰 재앙일수도.
나는 눈을 들어 다시 창밖을 내다보았다. 믿기 힘든 현실. 그래, 진부한 표현이긴 하지만, 그게 정답이지.
살아남은 건 이 모텔 건물 뿐인듯 했다. 보이는 것은 시커먼 심연의 지하실뿐. 그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태양은 여전히 건재했고, 구름도 흘렀다. 바람이 시원했다. 이 좋은 날씨에 나와 제제를 제외한 모든 세상이 지하로 나들이를 나간 것 같았다. 나는 제제의 질 속으로 내 페니스를 나들이 시켜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심연을 들여다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제제를 깨워 섹스를 하고, 그 지난至難하고 다급한 행위가 끝나면 비로소 스스로의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것, 그것 뿐이었다. 나는 제제를 깨우지 못했다.
코맥 매카시가 이 장면을 보았다면, 아마 제제와 나를 저 심연 속으로 걸어가게 했을지도 몰라. 그리고는 아마도 그 장면을 글로써 표현하겠지. 지옥보다 더 참혹하게. 차라리 죽음을 달라고. 이미 난 죽음의 품 안에 들어와 있는데도 말이지.
난 커튼을 쳐버렸다. 커튼을 친다고 세상이 다시 돌아오는 것은 아니겠지만, 나는 그렇게라도 외면하고 싶었다. 그 순간, 나는 제제와 어떻게 만났는지, 내 지난 삶의 궤적이 무엇이었는지, 내가 왜 이 모텔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나는 누구인지따위를 모두 잊어버리고 말았다. 굵은 물방울이 얼굴을 타고 흘렀다. 바닥을 적시는 물방울에 나는 주저앉고 말았다.
제제, 이제 괜찮아. 시험따윈 아무래도 좋아. 이미 세상이 끝장나버렸거든.
나는 한참을 울었다.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은 오로지 올가미 뿐이었다. 신은 세상과 함께 소멸해버렸다. 나의 신은 오직 저 올가미 안에만 있는 듯했다. 끝장난 세상 속에서 올가미는 편안해 보였다. 나는 제제를 깨우지 않았다.
내가 저 올가미와 함께 세상 곁으로 간다면, 제제는 어떤 끝장을 만나게 될까? 난 어제 내 품에 안겨, 나의 페니스를 빨아대며 울던 제제를 생각했다. 그녀의 품 안은 부드러웠고, 그녀의 질 속은 따뜻했다. 나의 세상이 또 하나 늘어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침대로 갔다. 창백한 제제의 피부에 입을 맞췄다. 레이코가 연주하는 푸가를 듣고 있을 나오코가 떠올랐다. 영원한 그들만큼 제제의 이 싱그러움도 영원할 것 같았다. 나는 제제의 콧날과 목선과 그 아래로 미끌어지며 내려오는 가슴의 선율과 슬픈 발라드 같은 그녀의 허리와 짙은 멜로디 라인이 그려지는 엉덩이와 다리라인을 차례로 눈에 익혔다. 나는 그녀의 다리를 벌려 그녀의 질 속으로 나의 모든 것을 밀어넣는 환상을 보았다.
나는 제제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제제는 깨어나지 않았다. 제제, 이제 괜찮아. 더는 울지마. 시험따위 아무것도 아닌게 되어버렸으니. 나는 깨어나지 않은 제제의 품 안에서 작게, 아주 작게 속삭였다. 나는 올가미를 향해 걸어들어가는 환상을, 제제의 품 안에서, 보았다. 세상의 끝장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었지만, 내 세상의 끝장은 오로지 나의 의지로 결단을 지을 수 있었다. 나는 그 끝장의 결정 앞에서 두렵지 않았다. 이건 단순한 선택의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제제의 이마에 다시 키스를 한 후 일어섰다. 나를 짓누르던 공기들이 부서지며 산화했다. 더 이상 세상의 끝장은 나와 상관이 없었다. 나는 커튼을 치고 창문을 열었다. 부드러운 멸망의 기운이 바람을 타고 나의 속살에 부딪혔다. 그래, 멸망이다. 지옥같던 삶은 이제 아무 상관이 없어져 버렸지만, 이미 삶이 지옥이 되어버렸다. 나는 모든 것의 최상위에 서서 이 지옥을 끝장낼 것이다.
나는 위로 올라갔다. 나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그리고 내쉬었다. 가쁜 숨을 흥분 속에 녹이려 애를 썼다. 나는 지난밤 제제와의 섹스를 떠올렸다.
오빠, 오빠. 계속, 계속 해줘요. 나 죽을 것 같애. 나 어떡해.
섹스의 끝에 제제는 시험을 망쳤어요, 라며 다시 울었고, 그 울음의 끝에서 제제는 비명을 지르며 절정에 다다랐다. 제제, 괜찮아. 나는 울고 있는 제제의 가슴을 빨며, 제제의 질 속으로 손가락을 넣으며 달래주었다. 나는 제제와 또 섹스를 했고, 제제를 재웠다. 그리고 나는 내가 서 있는 이 무대를 만들었다.
나의 무대는 완벽했다. 비록 하루가 늦긴 했지만, 나는 아무 상관없었다. 나는 지옥의 광경을 한 번 내려다보고 의자를 걷어찼다. 침대의 한켠에서 마침내 눈을 뜨고 있는 제제가 보였다. 제제, 세상이 끝장났어, 시험따윈 이제 아무 상관없어. 나는 생각했고, 말하고 싶었다. 말은 나오지 못했다. 이윽고 나는 날 것 그대로 허공에 매달린 채, 제제를 내려다보며 겨우 말했다.
안녕. 제제.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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