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Embargo-봉쇄된 이야기
괴, 괴물. 아니, 좀비가 나타났습니다. 입주민 여러분, 어서 대피하십시오.
3일전, 평온한 수면에 빠져있던 내 귀를 때린 방송이 있었다. 나는 그때 그 방송이 꿈이라 생각했다. 깊은 잠 속에 파묻힌 아득한 꿈. 나는 꿈 때문에 봉쇄되었고, 꿈으로 인해 봉쇄된 사람들은 생각보다 꽤 많은 듯 했다. 하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좀비라니. 아마 꿈을 꾸고 있지 않던 사람들도 쉽게 대피하지는 못했으리라. 술취한 관리인의 잠꼬대라고 생각했을지도.
나는 3일전의 방송을 떠올리며 내 앞으로 달려드는 좀비 한 마리의 목을 땄다. 1117호 여자였고, 좀비가 안 되었다면 한번쯤 대시라도 해봄직한 여자였다. 언젠가 술에 취한 1117호 여자는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은 채로 내 방 앞에서 고꾸라져있었다. 나는 그때 이 여자를 죽여야 하나, 라고 생각했었다. 지금 1117호 여자는 목이 잘려나간 좀비일 뿐이었다.
현재 대주시 일대는 공포의 아수라장이며, 칠흑같은 절망감만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경찰은 대주시 일대에 벌어진 이번 사건에 대해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대응키로 했습니다. 또한, 이번 사태의 근원지로 예측되고 있는 오피스텔을 봉쇄하고 그 주위를 장벽으로 둘러싸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번 결정에 대해 시민단체와 인권단체들은 비감염자들에 대한 탈출권을 보장하지 못하는 처사라고 판단, 이 결정을 인권탄압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주장은 더욱 큰 확산을 조장할 것이라는 일부 단체들의 반대에 부딪혀 논란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니 손에 작은 원형을 그려봐. 그래, 그렇게. 그리고 그 주위로 조금 더 큰 동그라미를 그려봐. 그래. 그럼 동그라미가 두 개지? 큰 거 안에 갇힌 작은 동그라미. 우린 그 안에 작은 동그라미에 갇혀있는거고, 저 장벽은 우릴 둘러싸고 있는 감옥 같은거야.
이것은 말 그대로 재난이었다. 재난 속에서 법과 규정, 질서와 공공의 의무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들은 공존할 수 없는 것들이었고, 이 속에서 함께 생존할 수 있는 것들은 오로지 혼돈과 무질서, 환란 같은 난장뿐이었다.
사람들은 그 속에서 투쟁하였다. 투쟁의 대상은 때때로 불분명했는데, 그것이 사람인지 좀비인지 아니면 자신과 세상을 향한 감정인지 그것도 아니면 신에 대한 분노인지도 알 수 없었다. 다만, 자신의 안위가 위태할 때 사람들은 그 대상을 가변적으로 확정지었다. 나는 그 모습이 신기했고, 한편으로는 재미있었다.
1114호 여자가 내 방문을 두드린 건, 내가 1005호 남자를 끌고와 내 방에서 목을 따버린 직후였다. 여자는 내게,
그냥, 당신하고 있으면 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라고 말했다. 나는 여자를 훑어본 후 내 방으로 들였다.
이 지독한 지옥의 한복판에서 아직도 정신줄을 잡고 있는 여자가 신기했다. 난 그 신기함을 가진 여자가 궁금했다. 여자는 내가 죽인 1005호 남자를 보고도 그리 놀라지 않은 듯 했다. 하긴, 이런 상황이 낯설지만은 않겠지. 이미 여긴 혼돈의 천국이니까. 난 놀라지 않는 여자가 궁금해서 여자의 옷을 다 벗겼다.
나는 여자를 벗긴 후 그 몸을 천천히 들여다보았다. 내가 주시하는 신기함의 기원을 난 찾고 싶었다. 나의 거친 행동에도 여자는 별 반응이 없었다. 내심 비명을 기대하기도 했지만, 역시 그럴줄 알았어, 라는 희망같은 기운이 내 페니스에서 꿈틀거렸다. 그것은 순종이었다. 강력한 존재 앞에서 무릎을 꿇고 지배당하기를 바라는 순종. 나는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방향은 나의 페니스. 여자가 무릎을 꿇었다.
여자의 몸은 창백했다. 무릎을 꿇자, 곧 아래로부터 부드럽고 따뜻한 기운이 몰려 올라왔다. 나는 여자의 머리를 잡았다. 그리고 손에 힘을 주었다. 한참 후, 나는 여자의 입과 질 속에 나의 무관심들을 쏟아내었다.
그날 밤 나는, 다섯번에 걸친 여자와의 섹스 끝에 탈진해버렸다. 여자는 기절해 있었는데, 언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었다.
여자와 섹스를 할 때 문밖에서 좀비들의 울음소리가 간간히 들려왔다. 아마도 나를 잡으러 왔거나, 여자의 신음소리에 반응해 서성거리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좀비에게 지능이 있다면 아마 나를 잡으러 왔을 가능성이 컸으나, 거기까지 내가 알 수는 없는 것이었다.
다음 소식입니다. 대주시에서 연쇄적으로 발생한 7건의 살인사건에 대한 수사가 좀처럼 진척이 없는 가운데, 이 사건의 범인인 연쇄살인범이 현재 좀비사태의 진원지로 알려진 모 오피스텔에 거주하고 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경찰이 보고있습니다. 다만, 현재 봉쇄된 오피스텔에 외부인의 출입이 불가능한 상황으로, 경찰은 다른 여죄에 대해 지속적으로 수사하고 있으며, 연쇄살인범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입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나는 9층까지 내려가 먹이를 찾고 있었다. 좀비 한 마리가 갑자기 옆방에서 튀어나왔지만, 나는 잠시 놀랬을 뿐, 곧 좀비의 다리와 팔을 조각냈다. 해체하고 보니 어떤 사내였고, 목걸이에 걸린 펜던트에는 연인과 찍은 듯한 사진이 들어있었다. 나는 그 펜던트를 좀비의 입 속에 우겨넣었다.
난 부지런한 농부처럼 좀비를 잡았다. 끈기와 인내. 그 단어를 떠올리며 나는 웃었다. 정부는 이 오피스텔을 버린듯했다. 구호품은 전달되지 못했고, 구원자들은 없어보였다. 이곳에 존재하는 것은 배고픔과 섹스에 굶주린 인간들과 그 인간들을 식량으로 삼고 싶은 좀비뿐이었다. 나는 식량이 필요했다. 방마다 좀비와 그 좀비가 인간이었을 때 먹으려 놓아둔 음식들이 있었다. 난 좀비를 없애고 식량을 구해왔다. 여자는 내가 구한 방에서 얻어오는 식량으로 음식을 먹었다. 난 식량을 구하러 일하러 가는 하나의 근로자였다. 여자는 나에게 섹스를 제공했고, 내가 자신에게 질리지 않게끔 노력했다. 나와 여자는 서로에게 노력하는 조력자였다.
우리는 평온했다. 난 좀비를 잡아 식량을 구해왔는데, 이 오피스텔은 21층까지 있어, 방이 많았다. 나는 좀비가 더 많이 생기길 빌었다. 내 방문 앞에 이따금 좀비가 와서 울어댔지만, 공간을 점령하고 있지 않는 좀비는 이제 별 관심이 없어져버렸다. 나는 좀비도 있고, 식량도 있는 누군가의 방이 좋았다. 사실, 아직 좀비가 되지 못한 인간이 있어도 상관은 없었지만.
정부에서는 대주시 일부 지역에 긴급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대를 투입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다만, 그 시기와 투입 규모는 추가적인 상황을 고려해 결정하기로 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야당에서는 이미 상황이 악화일로를 걷는 마당에 또 다시 추가적인 고려를 하는 것은 이미 늦은 판단이라며 정부를 비난하고 있습니다. 또한 봉쇄조치 외에 그 어떤 조치도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강력히 규탄하였습니다.
헤이, 이봐. 그런 표정 짓지 말라구. 이만큼 살아온 것도 거의 기적에 가깝잖아. 이젠 맘 편히 가도 된다고. 삶을 아쉬워하지마. 어차피 여긴 지옥이라고. 더 살아야 별 감홍도 없을거야. 가치. 난 지금 네 삶의 가치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거라고. 알아 들어?
나의 식량 사냥은 계속되었다. 그것은 농사를 짓는 기분이었다. 아니면 사냥꾼? 나에게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좀비와 인간에 대한 살육과 그로 인해 가지고 오는 식량, 그리고 여자와의 섹스 밖에 없었다. 마치 원시시대로의 귀환같았다.
1314호 앞에 섰다. 안에서 익숙한 신음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아직까지 멀쩡한 생존자가 있는 것이 더 신기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행해지는 섹스라니. 이들의 면상이 보고 싶었다. 난 문을 따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중년의 사내와 어떤 여자애가 섹스를 하고 있었다. 엎드린 자세의 여자는 나를 보지 못했는데, 그 뒤에서 페니스를 힘껏 삽입하고 있던 남자가 나를 발견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당신 누구야? 라고 중년의 사내가 말하는 듯 했다. 나는 방안을 둘러보았다. 여자애의 것으로 보이는 속옷들. 치마. 그리고 화장대. 남자의 것으로 보이는 것은 그가 벗어놓은 바지와 셔츠 뿐인 듯 했다. 그제야 나는 여자애의 얼굴이 누군가에게 맞은 듯 부어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중년의 사내에게 걸어갔다. 그리고 그의 옆구리와 목에 칼을 쑤셔넣었다. 그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아니,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옆으로 쓰러지는 그의 페니스가 아직 여자애의 안에 꽂혀있었다. 나는 그것을 빼주었다. 여자애가 엎드린채 덜덜 떨고 있었다. 나는 바지를 내려 나의 페니스를 넣어주었다. 진득한 정액이 여자애의 질 속에 가득했다. 누구의 것인지는 알 수없었다.
정부는 오늘 오전 열 시를 기해 현 사태의 진원지로 알려진 대주시의 모 오피스텔에 군대를 투입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군대는 전시상황에 준하는 대규모 병력을 투입하기로 하였으며, 실탄과 각종 무기를 지급하기로 하였습니다.
시계를 보았다. 아홉시 삼십분이었다. 난 나의 페니스를 물고 있는 여자애와 그 여자애의 클리토리스를 빨고 있는 여자를 쳐다보았다. 난 나의 끝장과 이들의 끝장을 가늠해 보았다. 가늠은 가늠되지 않았다. 좀비와 뒤엉킨 이 작은 세계가 이제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그 새로운 세상에 내가 속해도 될지 알 수 없었다. 지옥이 이미 우리들 안에 자리를 잡았는데, 그 지옥을 공권력이 끝장내 줄 수 있는지 묻고 싶었다. 그렇다고 그 물음을 이 여자들에게 물을 수도 없었다. 나는 여자들이 스스로 선택하기를 바랬다. 그것이 무엇이든.
또한 경찰은 군대와 함께 진입해 이번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을 체포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연쇄살인범이 생존하지 않았을 가능성에도 대비해 이번 사건을 정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조금 전부터 내 방 앞에 좀비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문을 열리는 환상을 느꼈다. 내 위에서 허리를 짓이기고 있는 여자는, 급기야 허리를 꺾어대며 소리를 질러댔다. 여자애는 나의 손가락을 자신의 질 속에 파묻은 채 흐느끼고 있었다. 나는 이 지옥도를 그림으로 그리고 싶었다. 좀비들의 아우성은 계속되고 있었다. 저들은 과연 지능이 있는 것일까? 저들이 군대의 침공을 알고 있을까? 아니면 나를 향한 저주일까? 나를 향한 저들만의 사냥일까?
잠시 후. 밖에서 총기가 뿜어내는 거친 소리가 들려왔다. 또 잠시 후, 안에 있는 거 다 아니까, 빨리 나와, 라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또. 좀비들의 소리가 들려왔고, 인간의 소리가 한데 엉킨채 들려왔다. 나는 좀비들의 울음소리와 인간들의 비명소리와 총기들의 발포소리와 여자들의 신음소리를 한꺼번에 들었다. 그것들은 서로 몸을 비벼대며 울고 있었다. 나는 그 속에서 눈을 감았다.
아, 그동안 좋았는데.
한참 후. 나는 여자와 여자애를 엎드리게 했다. 그리고 한 번씩 그들의 뒤에 나의 페니스를 넣어주었다. 그리고 나는 나의 무기를 집어 들었다. 그녀들의 하얀 뒷덜미가 나의 시선에 들어왔다. 난 나의 무기를 들었다. 아니 문밖에 있는 좀비들의 아우성과 인간들의 비명소리와 누군가의 고함소리를 들었다. 나는 문의 손잡이와 나의 무기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 사이에 내가 머물 곳이 있는 듯 했다. 나는 몸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괴, 괴물. 아니, 좀비가 나타났습니다. 입주민 여러분, 어서 대피하십시오.
3일전, 평온한 수면에 빠져있던 내 귀를 때린 방송이 있었다. 나는 그때 그 방송이 꿈이라 생각했다. 깊은 잠 속에 파묻힌 아득한 꿈. 나는 꿈 때문에 봉쇄되었고, 꿈으로 인해 봉쇄된 사람들은 생각보다 꽤 많은 듯 했다. 하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좀비라니. 아마 꿈을 꾸고 있지 않던 사람들도 쉽게 대피하지는 못했으리라. 술취한 관리인의 잠꼬대라고 생각했을지도.
나는 3일전의 방송을 떠올리며 내 앞으로 달려드는 좀비 한 마리의 목을 땄다. 1117호 여자였고, 좀비가 안 되었다면 한번쯤 대시라도 해봄직한 여자였다. 언젠가 술에 취한 1117호 여자는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은 채로 내 방 앞에서 고꾸라져있었다. 나는 그때 이 여자를 죽여야 하나, 라고 생각했었다. 지금 1117호 여자는 목이 잘려나간 좀비일 뿐이었다.
현재 대주시 일대는 공포의 아수라장이며, 칠흑같은 절망감만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경찰은 대주시 일대에 벌어진 이번 사건에 대해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대응키로 했습니다. 또한, 이번 사태의 근원지로 예측되고 있는 오피스텔을 봉쇄하고 그 주위를 장벽으로 둘러싸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번 결정에 대해 시민단체와 인권단체들은 비감염자들에 대한 탈출권을 보장하지 못하는 처사라고 판단, 이 결정을 인권탄압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주장은 더욱 큰 확산을 조장할 것이라는 일부 단체들의 반대에 부딪혀 논란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니 손에 작은 원형을 그려봐. 그래, 그렇게. 그리고 그 주위로 조금 더 큰 동그라미를 그려봐. 그래. 그럼 동그라미가 두 개지? 큰 거 안에 갇힌 작은 동그라미. 우린 그 안에 작은 동그라미에 갇혀있는거고, 저 장벽은 우릴 둘러싸고 있는 감옥 같은거야.
이것은 말 그대로 재난이었다. 재난 속에서 법과 규정, 질서와 공공의 의무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들은 공존할 수 없는 것들이었고, 이 속에서 함께 생존할 수 있는 것들은 오로지 혼돈과 무질서, 환란 같은 난장뿐이었다.
사람들은 그 속에서 투쟁하였다. 투쟁의 대상은 때때로 불분명했는데, 그것이 사람인지 좀비인지 아니면 자신과 세상을 향한 감정인지 그것도 아니면 신에 대한 분노인지도 알 수 없었다. 다만, 자신의 안위가 위태할 때 사람들은 그 대상을 가변적으로 확정지었다. 나는 그 모습이 신기했고, 한편으로는 재미있었다.
1114호 여자가 내 방문을 두드린 건, 내가 1005호 남자를 끌고와 내 방에서 목을 따버린 직후였다. 여자는 내게,
그냥, 당신하고 있으면 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라고 말했다. 나는 여자를 훑어본 후 내 방으로 들였다.
이 지독한 지옥의 한복판에서 아직도 정신줄을 잡고 있는 여자가 신기했다. 난 그 신기함을 가진 여자가 궁금했다. 여자는 내가 죽인 1005호 남자를 보고도 그리 놀라지 않은 듯 했다. 하긴, 이런 상황이 낯설지만은 않겠지. 이미 여긴 혼돈의 천국이니까. 난 놀라지 않는 여자가 궁금해서 여자의 옷을 다 벗겼다.
나는 여자를 벗긴 후 그 몸을 천천히 들여다보았다. 내가 주시하는 신기함의 기원을 난 찾고 싶었다. 나의 거친 행동에도 여자는 별 반응이 없었다. 내심 비명을 기대하기도 했지만, 역시 그럴줄 알았어, 라는 희망같은 기운이 내 페니스에서 꿈틀거렸다. 그것은 순종이었다. 강력한 존재 앞에서 무릎을 꿇고 지배당하기를 바라는 순종. 나는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방향은 나의 페니스. 여자가 무릎을 꿇었다.
여자의 몸은 창백했다. 무릎을 꿇자, 곧 아래로부터 부드럽고 따뜻한 기운이 몰려 올라왔다. 나는 여자의 머리를 잡았다. 그리고 손에 힘을 주었다. 한참 후, 나는 여자의 입과 질 속에 나의 무관심들을 쏟아내었다.
그날 밤 나는, 다섯번에 걸친 여자와의 섹스 끝에 탈진해버렸다. 여자는 기절해 있었는데, 언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었다.
여자와 섹스를 할 때 문밖에서 좀비들의 울음소리가 간간히 들려왔다. 아마도 나를 잡으러 왔거나, 여자의 신음소리에 반응해 서성거리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좀비에게 지능이 있다면 아마 나를 잡으러 왔을 가능성이 컸으나, 거기까지 내가 알 수는 없는 것이었다.
다음 소식입니다. 대주시에서 연쇄적으로 발생한 7건의 살인사건에 대한 수사가 좀처럼 진척이 없는 가운데, 이 사건의 범인인 연쇄살인범이 현재 좀비사태의 진원지로 알려진 모 오피스텔에 거주하고 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경찰이 보고있습니다. 다만, 현재 봉쇄된 오피스텔에 외부인의 출입이 불가능한 상황으로, 경찰은 다른 여죄에 대해 지속적으로 수사하고 있으며, 연쇄살인범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입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나는 9층까지 내려가 먹이를 찾고 있었다. 좀비 한 마리가 갑자기 옆방에서 튀어나왔지만, 나는 잠시 놀랬을 뿐, 곧 좀비의 다리와 팔을 조각냈다. 해체하고 보니 어떤 사내였고, 목걸이에 걸린 펜던트에는 연인과 찍은 듯한 사진이 들어있었다. 나는 그 펜던트를 좀비의 입 속에 우겨넣었다.
난 부지런한 농부처럼 좀비를 잡았다. 끈기와 인내. 그 단어를 떠올리며 나는 웃었다. 정부는 이 오피스텔을 버린듯했다. 구호품은 전달되지 못했고, 구원자들은 없어보였다. 이곳에 존재하는 것은 배고픔과 섹스에 굶주린 인간들과 그 인간들을 식량으로 삼고 싶은 좀비뿐이었다. 나는 식량이 필요했다. 방마다 좀비와 그 좀비가 인간이었을 때 먹으려 놓아둔 음식들이 있었다. 난 좀비를 없애고 식량을 구해왔다. 여자는 내가 구한 방에서 얻어오는 식량으로 음식을 먹었다. 난 식량을 구하러 일하러 가는 하나의 근로자였다. 여자는 나에게 섹스를 제공했고, 내가 자신에게 질리지 않게끔 노력했다. 나와 여자는 서로에게 노력하는 조력자였다.
우리는 평온했다. 난 좀비를 잡아 식량을 구해왔는데, 이 오피스텔은 21층까지 있어, 방이 많았다. 나는 좀비가 더 많이 생기길 빌었다. 내 방문 앞에 이따금 좀비가 와서 울어댔지만, 공간을 점령하고 있지 않는 좀비는 이제 별 관심이 없어져버렸다. 나는 좀비도 있고, 식량도 있는 누군가의 방이 좋았다. 사실, 아직 좀비가 되지 못한 인간이 있어도 상관은 없었지만.
정부에서는 대주시 일부 지역에 긴급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대를 투입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다만, 그 시기와 투입 규모는 추가적인 상황을 고려해 결정하기로 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야당에서는 이미 상황이 악화일로를 걷는 마당에 또 다시 추가적인 고려를 하는 것은 이미 늦은 판단이라며 정부를 비난하고 있습니다. 또한 봉쇄조치 외에 그 어떤 조치도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강력히 규탄하였습니다.
헤이, 이봐. 그런 표정 짓지 말라구. 이만큼 살아온 것도 거의 기적에 가깝잖아. 이젠 맘 편히 가도 된다고. 삶을 아쉬워하지마. 어차피 여긴 지옥이라고. 더 살아야 별 감홍도 없을거야. 가치. 난 지금 네 삶의 가치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거라고. 알아 들어?
나의 식량 사냥은 계속되었다. 그것은 농사를 짓는 기분이었다. 아니면 사냥꾼? 나에게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좀비와 인간에 대한 살육과 그로 인해 가지고 오는 식량, 그리고 여자와의 섹스 밖에 없었다. 마치 원시시대로의 귀환같았다.
1314호 앞에 섰다. 안에서 익숙한 신음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아직까지 멀쩡한 생존자가 있는 것이 더 신기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행해지는 섹스라니. 이들의 면상이 보고 싶었다. 난 문을 따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중년의 사내와 어떤 여자애가 섹스를 하고 있었다. 엎드린 자세의 여자는 나를 보지 못했는데, 그 뒤에서 페니스를 힘껏 삽입하고 있던 남자가 나를 발견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당신 누구야? 라고 중년의 사내가 말하는 듯 했다. 나는 방안을 둘러보았다. 여자애의 것으로 보이는 속옷들. 치마. 그리고 화장대. 남자의 것으로 보이는 것은 그가 벗어놓은 바지와 셔츠 뿐인 듯 했다. 그제야 나는 여자애의 얼굴이 누군가에게 맞은 듯 부어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중년의 사내에게 걸어갔다. 그리고 그의 옆구리와 목에 칼을 쑤셔넣었다. 그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아니,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옆으로 쓰러지는 그의 페니스가 아직 여자애의 안에 꽂혀있었다. 나는 그것을 빼주었다. 여자애가 엎드린채 덜덜 떨고 있었다. 나는 바지를 내려 나의 페니스를 넣어주었다. 진득한 정액이 여자애의 질 속에 가득했다. 누구의 것인지는 알 수없었다.
정부는 오늘 오전 열 시를 기해 현 사태의 진원지로 알려진 대주시의 모 오피스텔에 군대를 투입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군대는 전시상황에 준하는 대규모 병력을 투입하기로 하였으며, 실탄과 각종 무기를 지급하기로 하였습니다.
시계를 보았다. 아홉시 삼십분이었다. 난 나의 페니스를 물고 있는 여자애와 그 여자애의 클리토리스를 빨고 있는 여자를 쳐다보았다. 난 나의 끝장과 이들의 끝장을 가늠해 보았다. 가늠은 가늠되지 않았다. 좀비와 뒤엉킨 이 작은 세계가 이제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그 새로운 세상에 내가 속해도 될지 알 수 없었다. 지옥이 이미 우리들 안에 자리를 잡았는데, 그 지옥을 공권력이 끝장내 줄 수 있는지 묻고 싶었다. 그렇다고 그 물음을 이 여자들에게 물을 수도 없었다. 나는 여자들이 스스로 선택하기를 바랬다. 그것이 무엇이든.
또한 경찰은 군대와 함께 진입해 이번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을 체포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연쇄살인범이 생존하지 않았을 가능성에도 대비해 이번 사건을 정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조금 전부터 내 방 앞에 좀비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문을 열리는 환상을 느꼈다. 내 위에서 허리를 짓이기고 있는 여자는, 급기야 허리를 꺾어대며 소리를 질러댔다. 여자애는 나의 손가락을 자신의 질 속에 파묻은 채 흐느끼고 있었다. 나는 이 지옥도를 그림으로 그리고 싶었다. 좀비들의 아우성은 계속되고 있었다. 저들은 과연 지능이 있는 것일까? 저들이 군대의 침공을 알고 있을까? 아니면 나를 향한 저주일까? 나를 향한 저들만의 사냥일까?
잠시 후. 밖에서 총기가 뿜어내는 거친 소리가 들려왔다. 또 잠시 후, 안에 있는 거 다 아니까, 빨리 나와, 라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또. 좀비들의 소리가 들려왔고, 인간의 소리가 한데 엉킨채 들려왔다. 나는 좀비들의 울음소리와 인간들의 비명소리와 총기들의 발포소리와 여자들의 신음소리를 한꺼번에 들었다. 그것들은 서로 몸을 비벼대며 울고 있었다. 나는 그 속에서 눈을 감았다.
아, 그동안 좋았는데.
한참 후. 나는 여자와 여자애를 엎드리게 했다. 그리고 한 번씩 그들의 뒤에 나의 페니스를 넣어주었다. 그리고 나는 나의 무기를 집어 들었다. 그녀들의 하얀 뒷덜미가 나의 시선에 들어왔다. 난 나의 무기를 들었다. 아니 문밖에 있는 좀비들의 아우성과 인간들의 비명소리와 누군가의 고함소리를 들었다. 나는 문의 손잡이와 나의 무기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 사이에 내가 머물 곳이 있는 듯 했다. 나는 몸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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