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쉬, 조금 더 진한 그레이 -7부-
오빠, 이쪽이 승호선배야. 백승호. 인사해. 우리 학교 동아리 선배. 내가 얘기했지? 글사랑이라고. 내가 가입한 동아리 말이야. 소설 읽고 토론하고, 뭐 그런 활동하는 동아리. 그 글사랑 동아리 선배인데, 글쎄 알고보니 우리 교회에 다니지 뭐야. 이쪽으로 온지 얼마 안됐대. 그래서 오빠한테 인사시켜 주려고. 우리 학교 의대 다니고 있고, 오빠보다 세 살 많아. 나보다는 다섯 살 많네. 그러고 보니까 선배도 늙었다. 어쩜, 우리 오빠보다 훨씬 늙었어. 선배, 예전 교회에서 성가대 했다고 그랬었나? 우와, 그럼 우리 교회에서도 나랑 같이 성가대하면 좋겠다. 우리 오빠도 성가대하면 좋을텐데. 우리 오빠는 음치야. 오빠, 승호선배는 곧 대학병원으로 옮길거래. 옮기고 나면, 우리 오빠 링겔같은거 공짜로 좀 놔달라고 해야겠다. 우리 오빠 요즘 몸이 허해서 잘 먹고 해야되는데. 몸보신 대용으로 링겔이라도 맞혀야겠어. 뭐 하여간, 오빠는 내 보호자나 다름없으니까, 내가 누구를 만나고 다니는지 다 알고 있어야 해, 그래서 승호 선배도 소개시켜 주는 거야. 알지?
도로 한 가운데 고양이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아니 어쩌면 개인지도. 나는 오피스텔 안에서 그것을 내려다 보았다. 아득한 점처럼 보이던 그것은 어느 순간 확대경에 비춘 것처럼 내게 다가와 자신의 존재를 고했다. 나도 모른 세상이 지켜보는 가운데 종말을 맞이한 그것을, 다만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것의 형체는 으깨진 반죽처럼 뭉개져 있었고, 시커멓게 짓밟힌 검은 피가 도로에 온통 눌러 붙어 있었다. 처음 치였을때 튀었을 것 같은 피가 인도까지 널려있었다. 썩어버린 듯 보이는 피는 검은 아스팔트 위에 조각난 세편細片처럼 보였다. 차 한대가 빠르게 그 위로 지나갔다. 그리고 뒤이어 또 한대. 그것의 사체는 바닥에 더욱 밀착되어 이젠 아스팔트와 구분이 잘 되지 않았다. 아직 밟히지 않은 머리는 형체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고양이, 그래 고양이는 자신의 머리만 겨우 남겨 생전의 존재를 겨우 알려주고 있었다. 고양이 목 부근에서는 아직도 피가 조금씩 새어나오고 있었다. 붉고 검은피. 반대편 차선에서 차가 유턴을 하더니 그 위를 다시 지나갔다. 지나가면서 차는 멈칫거렸다. 타이어와 아스팔트의 마찰로 인해 방금 새어나온 새빨간 피는 시커먼 색으로 금방 변해버렸다. 고양이의 머리가 그 차로 인해 조금 밀려나왔다. 아직 머리는 밟히지 않았다. 나는 아직 터지지 않은 고양이의 머리를 바라보았다. 그것의 눈동자는 보이지 않았다. 감았는지, 뜨고 있는지 나에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온전한 머리통만을 주시함으로써 종말을 맞은 고양이의 세상을 겨우 가늠할 수 있었다. 멀리서 거대한 트럭 한 대가 빠르게 잘려오고 있었다. 트럭은 단 한 번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리겠다는 듯 질주해왔다. 나는 아직 펑, 하고 터지지 않은 고양이의 머리를 물끄러미 내다보았다. 고양이의 환영이 트럭과 함께 나에게 질주하는 듯 했다. 사거리에 걸려있는 차량 신호등이 초록색에서 노란색으로 바뀌었다. 트럭은 신호에 걸릴까봐 더욱 빠르게 급가속했다. 부웅, 하는 기어 변속 소리가 멀리서부터 확연하게 들려왔다. 엑셀을 밟는 소리가 터질 듯했다. 이내 트럭은 전투적으로 고양이의 머리를 향해 짖쳐 들었다. 그리고.
온 몸이 나른했다. 먼지를 뒤집어 쓴 안개가 내 눈에 가득 들어찬 것 같았다. 방치한 채 몇 년간 닦지 않은 안경을 쓴 기분이었다. 뿌옇다. 모든 것이. 아니 뿌옇다, 라는 표현만으로는 뭔가 부족했다. 온갖 오물이 눈알을 뒤덮은 듯했다.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어깨를 움직여보았다. 욱신거리며 저려왔다. 시끄러운 창밖의 소리가 허공에 메아리치며 둥둥 떠다녔다. 하얀 나방이 메아리를 타고 어깨에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수많은 먼지가 나방에서 뿌옇게 떨어지는 환상. 날카로운 금속의 촉감이 싸늘하게 허벅지에 꽂혀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아무도 없었다. 오직 나만이 공간에서 외떨어진 무인도의 오지奧地같은 침대에 드러누워 있었다. 바닥에 뒹굴고 있는 술병이 눈에 들어왔다. 말라붙은 정액같은 술 찌꺼기가 보였다. 쏟아진 재떨이. 깨진 컵의 유리 조각. 컵이 저렇게 약했었나. 하긴 조금만 힘을 줘도 파삭, 하고 깨져 버릴거야. 날카로운 유리 조각은 하나의 삶을 끝장내기에도 충분해보였다. 생각은 깊어졌으나, 의지는 출렁거리지 못했다. 나는 생각을 접었다. 나는 나뒹구는 담배와 라이터, 먹다 남은 과일 조각과 통조림 따위를 멍하게 쳐다보다 왼손을 들어 머리를 감싸쥐었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누군가 나의 뇌수를 파내는 것 같았다. 예리한 송곳으로 머리를 후벼 파고 있는 것 같은 고통을 움켜잡고 있는데, 문득 왼손에 걸여 있는 염주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수갑 같은 염주를 뺐다. 하나. 둘. 셋. 나는 염주의 구슬을 세어보았다. 열 아홉. 스물. 스물 하나. 모두 스물한 개였다. 스물 하나.
스물, 하나라.
나는 겨우 일어나 바닥에서 뒹굴고 있던 담배를 주워 물었다. 썩은 양주 냄새가 났다. 공허한 방은 웅웅거리는 창밖의 소음으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뚜껑이 닫혀버린 무덤 같았다. 난 스물 하나에 저주를 선물 받았는데, 이 염주는 스물한 개의 구슬로 날 구원하여 하는구나. 깨달음이란 지나간 저주를 되살리는 가르침일까. 이 염주가 나에게 다시 지옥을 일깨워 주는구나. 나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담배 한 대를 다 태울때까지 염주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담배는 곧 죽어버렸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구원? 다 필요 없어. 이미 난 지옥에 와 있어.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는, 죽음보다 더 한 고통과 악몽에 시달리는 무간지옥에. 그렇게 생각하며 염주를 빼려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벨소리는 영원히 울부짖어야 하는 비명처럼 끝없이 울릴 것 같더니 어느 순간 뚝, 그쳤다. 그리고 잠시 후 삑삑, 하는 소리를 질렀다. 나는 핸드폰을 들었다.
야, 난데. 그냥 만사 귀찮아서 음성 남긴다. 여기 아마조네스라고 있어. 여기로 나와라.
위치는 말이지, 하고 친구는 아마조네스라는 술집의 위치를 음성메세지로 남겨놓았다. 친구는 요즘 들어, 아니 이혼을 한 이후부터는 술을 주식으로 삼아 삶을 버텨내고 있었다. 원래 그런 모습이 아니던 친구의 행동에 나는 그의 안위가 걱정되었지만, 그냥 내버려 두었다. 고통에 직면할수록 충고는 요원하고, 환멸幻滅이 곧 구원이요, 희망은 그 어디에도 없으며 오직 술잔과 여자의 성기에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은 바로, 나였으니까. 난 염주를 다시 쳐다보고는 그냥 손목에 낀 채로 일어섰다. 잠시 후 태양은 멸망해 버리고, 잘은 구름에 가려 모든 것을 외면한 시간이 세상에 찾아왔다. 시간은 곧 어둠에 잠식되었다.
아마조네스.
이름 좋아, 내가 여기로 널 부른 건 순전히 가게 이름 때문이야, 라고 친구는 룸살롱으로 들어가며 나에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룸에 들어가서도 중동 산유국인 리비아 국가 원수인 카다피 녀석을 24시간 밀착 경호하는 직속 근위대이자 친위대의 이름이 아마조네스야, 라며 나에게 충고하듯 얘기했다. 친구는 룸살롱의 실장이 들어올 때까지 24시간 카다피 녀석의 곁을 떠나지 않는 비밀조직인 아마조네스의 모든 대원은 미모의 젊은 미혼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어, 라고 계속 설명 아닌 설명을 했다.
24시간, 밀착 경호. 무슨 뜻인지 알지?
마치 북한의 기쁨조 같은거야, 라고 친구는 덧붙였다. 그리고 실장이 자신의 곁에 앉자 친구는 나에게 그렇게 말을 마무리하며 싱긋 웃었다. 방에 들어와 그의 얘기를 듣고 있던 실장은 무슨 얘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해요? 라며 친구의 허벅지에 손을 올렸다. 친구는 오늘 우리도 밀착 경호 한 번 받아보자, 고 내게 말하며 실장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히죽거렸고, 실장은 당연히 해 드려야죠, 밀착 경호, 걱정 마세요, 해드려야죠, 하고는 친구가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여 주었다. 우리 또래인 삼십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실장은 친구가 얘기를 이어가는 동안에도 계속 그의 허벅지를 쓰다듬더니 잠시 후, 다시. 근데 24시간은 좀 무리가 아닐까요? 확인 좀 해봐야겠는데, 라고 말하고는 친구의 성기 부근을 움켜쥐었다. 친구는 어이쿠, 우리 실장님이 벌써 작업 시작하시네, 라고 낄낄대며 웃었다. 실장은 어머, 48시간도 가능하겠는데요? 라며 친구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소파에 몸을 파묻은 채 그들의 하는 양을 외면했다. 나는 담배만 피웠다. 룸 안에 있는 모니터에는 어딘지 가늠할 수 없는 절벽에 하얀 포말만이 몸을 치대고 있었다. 내가 말이 없어서 인지, 실장은 자신의 검은 브래지어 안에서 명함을 꺼내 나에게 건네주었다.
반갑습니다. 오실장이라고 해요.
웨이브 머리를 허리 부근까지 늘여뜨린 오실장의 눈웃음에는 진한 섹스가 들어앉은 듯 했다. 가슴 앞으로 부드럽게 옷 주름이 늘어져 있는 원피스 드레스는 클리비지룩 스타일의 하얀 실크 옷으로 볼륨감있는 실장의 몸매와 가슴골을 날것 그대로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명함을 받지 않았다. 실장은 나를 가만히 쳐다보더니 어머, 사장님, 나쁜 남자스타일이시구나, 라며 웃었다. 그녀의 웃음에, 나는 그녀의 클리토리스가 문득 궁금해졌다. 오실장은 명함을 내 앞 테이블 위에 놓았다.
이쪽 사장님께선 오늘 뭐 안 좋은 일 있으셨나봐요?
아니야, 내 친군데, 스타일이 원래 저래.
어머, 진짜 나쁜남자시구나. 나, 나쁜 남자 완전 매력있는데.
나는 명함 안 줘?
어머, 사장님, 질투 하시는 거예요? 우리 사장님은 내가 옆에 있는데 명함 필요없잖아. 내 몸이 진짜 명함인데 종이쪼가리가 뭔 소용이람. 이리 와서, 직접 가져가세요.
오실장은 친구의 손을 가져다가 자신의 가슴골 사이로 집어넣어 주었다. 친구는, 하긴 그건 그래, 오실장 몸이 내 옆에 있는데 명함따위는, 뭐, 라며 낄낄거렸다. 친구는 오실장의 가슴에서 명함을 한 장 꺼내더니 음미하듯 코로 향을 빨아들였다.
캬, 오실장, 이름 예쁘네? 죽이는데? 헤어스타일도 죽여주고, 가슴도 환장하시고, 몸매는 천상에서 오셨구만. 이뻐요, 이뻐. 나는 오늘 오실장하고 놀고 싶은데, 괜찮으려나?
친구는 담배연기를 연신 뿜어댔다. 연기는 다급했고, 말은 사소한 채로 사방에 널려있었다. 나는 담배만 피웠다. 해야 될 말들이 웅크린 채 내 안에서 꿈틀거렸고, 그것들은 내가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잡고 싶지 않았다. 나는 가만히 있었다.
오늘 나는 애들 부르지 말고 오실장하고만 놀아야겠다.
친구가 선언하듯 말했다. 오실장은 그런 친구에게 그럼 저야 좋지만 친구 분께서는 별로이신 것 같은데요, 라며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나는 다 타버린 담배를 재떨이에 끄고 다시 새로운 담배를 입에 물었다. 오실장이 라이터를 들어 나에게 불을 당겨주었다.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다, 천천히 담배를 빨아당겼다. 오실장은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나는 오실장의 짙은 색기를 걷어내야만 했다.
난 상관없어. 맘대로 해.
농담이야, 농담. 새끼 삐치기는.
친구는 저 녀석이 원래 좀 시니컬해, 라고 다시 실장에게 농담처럼 말했다. 오실장은 난 시니컬한 남자가 너무 좋던데, 어떡하지? 라며 나를 쳐다보았고, 친구는 나도 완전 시니컬해, 한번 볼래?라며 농담을 걸었다. 실장은 됐네뇨, 라며 웃었고, 나는 웃지 않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웃음이 내 겉면을 핥다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웃지 않았다.
저 새끼 일부러 저러는거야, 나쁜 남자 컨셉 유지하려고.
젊고 싱싱한 이쁜 애들 들어오면 저 녀석도 확 달라질거야, 걱정 마.
어머, 난 안 싱싱하다는 말씀이세요?
친구는 에이, 설마, 라며 말하고는 오실장의 가슴을 주물거렸다. 오실장은 에이, 사장님, 급하시기는, 하며 웃었다. 나는 친구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의 겉에서는 이혼의 아픔이나 고통의 흔적이 소멸된 듯 보였지만, 그의 내면에서 무엇이 비벼지고 있을지 난 알 수 없었다. 그 점이 나는 오히려 더 불안했다. 나는 친구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없었다.
뭘 보냐, 새꺄.
아니야, 아무것도.
나는 담배를 다시 물었다.
천천히 피세요, 담배. 뭐 좋은 거라고 그렇게 급하게 피세요.
오실장은 내 담배에 불을 붙여 주며 말했다. 상관하지마, 그렇게 어쭙잖은 표정 짓지마, 역겨워, 거짓된 걱정은 오히려 나를 지옥으로 등 떠밀 뿐이야, 이미 지옥에 들어와 있지만, 지옥에도 지하실은 있을테니까. 생각은 무너지지 못하고, 간신히 연기를 붙들었다. 나를 쳐다보는 오실장의 궤적에 끈적한 정액이 길게 줄을 늘어뜨린 것 같았다.
그래, 새끼야, 담배만 피러왔냐? 작작 좀 펴라, 벌써 룸 안이 뿌옇다 못해 아예 무덤같다. 아가씨들이 룸에 들어오다 관부터 찾겠다, 인마.
나는 룸 안에 가득 들어찬 뿌연 공기를 바라보았다. 무덤? 그래, 여긴 무덤이야. 아니 원래 내가 지아온 모든 삶이 무덤의 환생이지. 살아있는 채로 생매장되어버린 산 것들의 무덤.
초이스나 해.
잠시 후, 내가 말했다.
오빠, 이쪽이 승호선배야. 백승호. 인사해. 우리 학교 동아리 선배. 내가 얘기했지? 글사랑이라고. 내가 가입한 동아리 말이야. 소설 읽고 토론하고, 뭐 그런 활동하는 동아리. 그 글사랑 동아리 선배인데, 글쎄 알고보니 우리 교회에 다니지 뭐야. 이쪽으로 온지 얼마 안됐대. 그래서 오빠한테 인사시켜 주려고. 우리 학교 의대 다니고 있고, 오빠보다 세 살 많아. 나보다는 다섯 살 많네. 그러고 보니까 선배도 늙었다. 어쩜, 우리 오빠보다 훨씬 늙었어. 선배, 예전 교회에서 성가대 했다고 그랬었나? 우와, 그럼 우리 교회에서도 나랑 같이 성가대하면 좋겠다. 우리 오빠도 성가대하면 좋을텐데. 우리 오빠는 음치야. 오빠, 승호선배는 곧 대학병원으로 옮길거래. 옮기고 나면, 우리 오빠 링겔같은거 공짜로 좀 놔달라고 해야겠다. 우리 오빠 요즘 몸이 허해서 잘 먹고 해야되는데. 몸보신 대용으로 링겔이라도 맞혀야겠어. 뭐 하여간, 오빠는 내 보호자나 다름없으니까, 내가 누구를 만나고 다니는지 다 알고 있어야 해, 그래서 승호 선배도 소개시켜 주는 거야. 알지?
도로 한 가운데 고양이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아니 어쩌면 개인지도. 나는 오피스텔 안에서 그것을 내려다 보았다. 아득한 점처럼 보이던 그것은 어느 순간 확대경에 비춘 것처럼 내게 다가와 자신의 존재를 고했다. 나도 모른 세상이 지켜보는 가운데 종말을 맞이한 그것을, 다만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것의 형체는 으깨진 반죽처럼 뭉개져 있었고, 시커멓게 짓밟힌 검은 피가 도로에 온통 눌러 붙어 있었다. 처음 치였을때 튀었을 것 같은 피가 인도까지 널려있었다. 썩어버린 듯 보이는 피는 검은 아스팔트 위에 조각난 세편細片처럼 보였다. 차 한대가 빠르게 그 위로 지나갔다. 그리고 뒤이어 또 한대. 그것의 사체는 바닥에 더욱 밀착되어 이젠 아스팔트와 구분이 잘 되지 않았다. 아직 밟히지 않은 머리는 형체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고양이, 그래 고양이는 자신의 머리만 겨우 남겨 생전의 존재를 겨우 알려주고 있었다. 고양이 목 부근에서는 아직도 피가 조금씩 새어나오고 있었다. 붉고 검은피. 반대편 차선에서 차가 유턴을 하더니 그 위를 다시 지나갔다. 지나가면서 차는 멈칫거렸다. 타이어와 아스팔트의 마찰로 인해 방금 새어나온 새빨간 피는 시커먼 색으로 금방 변해버렸다. 고양이의 머리가 그 차로 인해 조금 밀려나왔다. 아직 머리는 밟히지 않았다. 나는 아직 터지지 않은 고양이의 머리를 바라보았다. 그것의 눈동자는 보이지 않았다. 감았는지, 뜨고 있는지 나에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온전한 머리통만을 주시함으로써 종말을 맞은 고양이의 세상을 겨우 가늠할 수 있었다. 멀리서 거대한 트럭 한 대가 빠르게 잘려오고 있었다. 트럭은 단 한 번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리겠다는 듯 질주해왔다. 나는 아직 펑, 하고 터지지 않은 고양이의 머리를 물끄러미 내다보았다. 고양이의 환영이 트럭과 함께 나에게 질주하는 듯 했다. 사거리에 걸려있는 차량 신호등이 초록색에서 노란색으로 바뀌었다. 트럭은 신호에 걸릴까봐 더욱 빠르게 급가속했다. 부웅, 하는 기어 변속 소리가 멀리서부터 확연하게 들려왔다. 엑셀을 밟는 소리가 터질 듯했다. 이내 트럭은 전투적으로 고양이의 머리를 향해 짖쳐 들었다. 그리고.
온 몸이 나른했다. 먼지를 뒤집어 쓴 안개가 내 눈에 가득 들어찬 것 같았다. 방치한 채 몇 년간 닦지 않은 안경을 쓴 기분이었다. 뿌옇다. 모든 것이. 아니 뿌옇다, 라는 표현만으로는 뭔가 부족했다. 온갖 오물이 눈알을 뒤덮은 듯했다.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어깨를 움직여보았다. 욱신거리며 저려왔다. 시끄러운 창밖의 소리가 허공에 메아리치며 둥둥 떠다녔다. 하얀 나방이 메아리를 타고 어깨에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수많은 먼지가 나방에서 뿌옇게 떨어지는 환상. 날카로운 금속의 촉감이 싸늘하게 허벅지에 꽂혀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아무도 없었다. 오직 나만이 공간에서 외떨어진 무인도의 오지奧地같은 침대에 드러누워 있었다. 바닥에 뒹굴고 있는 술병이 눈에 들어왔다. 말라붙은 정액같은 술 찌꺼기가 보였다. 쏟아진 재떨이. 깨진 컵의 유리 조각. 컵이 저렇게 약했었나. 하긴 조금만 힘을 줘도 파삭, 하고 깨져 버릴거야. 날카로운 유리 조각은 하나의 삶을 끝장내기에도 충분해보였다. 생각은 깊어졌으나, 의지는 출렁거리지 못했다. 나는 생각을 접었다. 나는 나뒹구는 담배와 라이터, 먹다 남은 과일 조각과 통조림 따위를 멍하게 쳐다보다 왼손을 들어 머리를 감싸쥐었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누군가 나의 뇌수를 파내는 것 같았다. 예리한 송곳으로 머리를 후벼 파고 있는 것 같은 고통을 움켜잡고 있는데, 문득 왼손에 걸여 있는 염주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수갑 같은 염주를 뺐다. 하나. 둘. 셋. 나는 염주의 구슬을 세어보았다. 열 아홉. 스물. 스물 하나. 모두 스물한 개였다. 스물 하나.
스물, 하나라.
나는 겨우 일어나 바닥에서 뒹굴고 있던 담배를 주워 물었다. 썩은 양주 냄새가 났다. 공허한 방은 웅웅거리는 창밖의 소음으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뚜껑이 닫혀버린 무덤 같았다. 난 스물 하나에 저주를 선물 받았는데, 이 염주는 스물한 개의 구슬로 날 구원하여 하는구나. 깨달음이란 지나간 저주를 되살리는 가르침일까. 이 염주가 나에게 다시 지옥을 일깨워 주는구나. 나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담배 한 대를 다 태울때까지 염주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담배는 곧 죽어버렸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구원? 다 필요 없어. 이미 난 지옥에 와 있어.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는, 죽음보다 더 한 고통과 악몽에 시달리는 무간지옥에. 그렇게 생각하며 염주를 빼려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벨소리는 영원히 울부짖어야 하는 비명처럼 끝없이 울릴 것 같더니 어느 순간 뚝, 그쳤다. 그리고 잠시 후 삑삑, 하는 소리를 질렀다. 나는 핸드폰을 들었다.
야, 난데. 그냥 만사 귀찮아서 음성 남긴다. 여기 아마조네스라고 있어. 여기로 나와라.
위치는 말이지, 하고 친구는 아마조네스라는 술집의 위치를 음성메세지로 남겨놓았다. 친구는 요즘 들어, 아니 이혼을 한 이후부터는 술을 주식으로 삼아 삶을 버텨내고 있었다. 원래 그런 모습이 아니던 친구의 행동에 나는 그의 안위가 걱정되었지만, 그냥 내버려 두었다. 고통에 직면할수록 충고는 요원하고, 환멸幻滅이 곧 구원이요, 희망은 그 어디에도 없으며 오직 술잔과 여자의 성기에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은 바로, 나였으니까. 난 염주를 다시 쳐다보고는 그냥 손목에 낀 채로 일어섰다. 잠시 후 태양은 멸망해 버리고, 잘은 구름에 가려 모든 것을 외면한 시간이 세상에 찾아왔다. 시간은 곧 어둠에 잠식되었다.
아마조네스.
이름 좋아, 내가 여기로 널 부른 건 순전히 가게 이름 때문이야, 라고 친구는 룸살롱으로 들어가며 나에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룸에 들어가서도 중동 산유국인 리비아 국가 원수인 카다피 녀석을 24시간 밀착 경호하는 직속 근위대이자 친위대의 이름이 아마조네스야, 라며 나에게 충고하듯 얘기했다. 친구는 룸살롱의 실장이 들어올 때까지 24시간 카다피 녀석의 곁을 떠나지 않는 비밀조직인 아마조네스의 모든 대원은 미모의 젊은 미혼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어, 라고 계속 설명 아닌 설명을 했다.
24시간, 밀착 경호. 무슨 뜻인지 알지?
마치 북한의 기쁨조 같은거야, 라고 친구는 덧붙였다. 그리고 실장이 자신의 곁에 앉자 친구는 나에게 그렇게 말을 마무리하며 싱긋 웃었다. 방에 들어와 그의 얘기를 듣고 있던 실장은 무슨 얘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해요? 라며 친구의 허벅지에 손을 올렸다. 친구는 오늘 우리도 밀착 경호 한 번 받아보자, 고 내게 말하며 실장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히죽거렸고, 실장은 당연히 해 드려야죠, 밀착 경호, 걱정 마세요, 해드려야죠, 하고는 친구가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여 주었다. 우리 또래인 삼십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실장은 친구가 얘기를 이어가는 동안에도 계속 그의 허벅지를 쓰다듬더니 잠시 후, 다시. 근데 24시간은 좀 무리가 아닐까요? 확인 좀 해봐야겠는데, 라고 말하고는 친구의 성기 부근을 움켜쥐었다. 친구는 어이쿠, 우리 실장님이 벌써 작업 시작하시네, 라고 낄낄대며 웃었다. 실장은 어머, 48시간도 가능하겠는데요? 라며 친구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소파에 몸을 파묻은 채 그들의 하는 양을 외면했다. 나는 담배만 피웠다. 룸 안에 있는 모니터에는 어딘지 가늠할 수 없는 절벽에 하얀 포말만이 몸을 치대고 있었다. 내가 말이 없어서 인지, 실장은 자신의 검은 브래지어 안에서 명함을 꺼내 나에게 건네주었다.
반갑습니다. 오실장이라고 해요.
웨이브 머리를 허리 부근까지 늘여뜨린 오실장의 눈웃음에는 진한 섹스가 들어앉은 듯 했다. 가슴 앞으로 부드럽게 옷 주름이 늘어져 있는 원피스 드레스는 클리비지룩 스타일의 하얀 실크 옷으로 볼륨감있는 실장의 몸매와 가슴골을 날것 그대로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명함을 받지 않았다. 실장은 나를 가만히 쳐다보더니 어머, 사장님, 나쁜 남자스타일이시구나, 라며 웃었다. 그녀의 웃음에, 나는 그녀의 클리토리스가 문득 궁금해졌다. 오실장은 명함을 내 앞 테이블 위에 놓았다.
이쪽 사장님께선 오늘 뭐 안 좋은 일 있으셨나봐요?
아니야, 내 친군데, 스타일이 원래 저래.
어머, 진짜 나쁜남자시구나. 나, 나쁜 남자 완전 매력있는데.
나는 명함 안 줘?
어머, 사장님, 질투 하시는 거예요? 우리 사장님은 내가 옆에 있는데 명함 필요없잖아. 내 몸이 진짜 명함인데 종이쪼가리가 뭔 소용이람. 이리 와서, 직접 가져가세요.
오실장은 친구의 손을 가져다가 자신의 가슴골 사이로 집어넣어 주었다. 친구는, 하긴 그건 그래, 오실장 몸이 내 옆에 있는데 명함따위는, 뭐, 라며 낄낄거렸다. 친구는 오실장의 가슴에서 명함을 한 장 꺼내더니 음미하듯 코로 향을 빨아들였다.
캬, 오실장, 이름 예쁘네? 죽이는데? 헤어스타일도 죽여주고, 가슴도 환장하시고, 몸매는 천상에서 오셨구만. 이뻐요, 이뻐. 나는 오늘 오실장하고 놀고 싶은데, 괜찮으려나?
친구는 담배연기를 연신 뿜어댔다. 연기는 다급했고, 말은 사소한 채로 사방에 널려있었다. 나는 담배만 피웠다. 해야 될 말들이 웅크린 채 내 안에서 꿈틀거렸고, 그것들은 내가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잡고 싶지 않았다. 나는 가만히 있었다.
오늘 나는 애들 부르지 말고 오실장하고만 놀아야겠다.
친구가 선언하듯 말했다. 오실장은 그런 친구에게 그럼 저야 좋지만 친구 분께서는 별로이신 것 같은데요, 라며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나는 다 타버린 담배를 재떨이에 끄고 다시 새로운 담배를 입에 물었다. 오실장이 라이터를 들어 나에게 불을 당겨주었다.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다, 천천히 담배를 빨아당겼다. 오실장은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나는 오실장의 짙은 색기를 걷어내야만 했다.
난 상관없어. 맘대로 해.
농담이야, 농담. 새끼 삐치기는.
친구는 저 녀석이 원래 좀 시니컬해, 라고 다시 실장에게 농담처럼 말했다. 오실장은 난 시니컬한 남자가 너무 좋던데, 어떡하지? 라며 나를 쳐다보았고, 친구는 나도 완전 시니컬해, 한번 볼래?라며 농담을 걸었다. 실장은 됐네뇨, 라며 웃었고, 나는 웃지 않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웃음이 내 겉면을 핥다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웃지 않았다.
저 새끼 일부러 저러는거야, 나쁜 남자 컨셉 유지하려고.
젊고 싱싱한 이쁜 애들 들어오면 저 녀석도 확 달라질거야, 걱정 마.
어머, 난 안 싱싱하다는 말씀이세요?
친구는 에이, 설마, 라며 말하고는 오실장의 가슴을 주물거렸다. 오실장은 에이, 사장님, 급하시기는, 하며 웃었다. 나는 친구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의 겉에서는 이혼의 아픔이나 고통의 흔적이 소멸된 듯 보였지만, 그의 내면에서 무엇이 비벼지고 있을지 난 알 수 없었다. 그 점이 나는 오히려 더 불안했다. 나는 친구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없었다.
뭘 보냐, 새꺄.
아니야, 아무것도.
나는 담배를 다시 물었다.
천천히 피세요, 담배. 뭐 좋은 거라고 그렇게 급하게 피세요.
오실장은 내 담배에 불을 붙여 주며 말했다. 상관하지마, 그렇게 어쭙잖은 표정 짓지마, 역겨워, 거짓된 걱정은 오히려 나를 지옥으로 등 떠밀 뿐이야, 이미 지옥에 들어와 있지만, 지옥에도 지하실은 있을테니까. 생각은 무너지지 못하고, 간신히 연기를 붙들었다. 나를 쳐다보는 오실장의 궤적에 끈적한 정액이 길게 줄을 늘어뜨린 것 같았다.
그래, 새끼야, 담배만 피러왔냐? 작작 좀 펴라, 벌써 룸 안이 뿌옇다 못해 아예 무덤같다. 아가씨들이 룸에 들어오다 관부터 찾겠다, 인마.
나는 룸 안에 가득 들어찬 뿌연 공기를 바라보았다. 무덤? 그래, 여긴 무덤이야. 아니 원래 내가 지아온 모든 삶이 무덤의 환생이지. 살아있는 채로 생매장되어버린 산 것들의 무덤.
초이스나 해.
잠시 후, 내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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