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대로 알아본 봐로는 그와 지민이라는 여자는 1학년때부터 과커플이었다. 커플로 지내다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잠시 헤어진거 같았고 그 사이에 내가 끼어있었던 것 같았다.
처음 나를 대하던 그의 마음이 진실했다는 것은 나도 느꼈다. 하지만 방학 중간에 잠시 떨어져있는 동안 어떻게 그와 그 여자는 다시 연결되었던 거 같았다. 그 여자가 다시 돌아왔는지, 그가 그 여자에게 다시 돌아갔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도 고민하고 흔들렸을 것이다.
처음 술이 취해 나를 찾아온 날, 그는 자면서 몇 번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그가 깬 줄 알고 쳐다봤지만 내가 볼 수 없는 꿈속에서 그는 나와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그가 입대를 하고 난 후, 나는 그의 학부 건물을 몇 번 찾아간 적이 있었다.
건물에서 나오는 여자들을 유심히 지켜봤었다. 환하게 웃으며 나오는 한 여자를 발견하고는 그 여자가 지민이라는 여자가 아닐까 생각했다. 왠지 그 여자의 웃음이 그를 많이 닮아있었다.
전에 그에게 애인이 있으면 뺏을거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만약 저 여자였다면 과연 그럴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여자의 빛에 내 그림자는 더 짙어져 나는 그 어둠속에서 꼼짝도 할 수 없을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그 때부터였다.
평소에도 꿈을 꾸긴 했지만 지속적으로 악몽을 꾸기 시작한 건 그가 떠난 후 부터였다. 어느 밤에는 악몽이 무서워서 일부러 잠을 자지 않고 버티기도 했지만, 나는 악몽과 함께 깨어나기 일쑤였다.
하늘이 내린 벌이라 생각했다. 첫번째는 내 의지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 이후는 모든 일은 내 의지였다.
꿈은 잔인했다.
나는 손발이 묶인채로 칼로, 창으로 찔리는 고통을 다 받아내면서도 죽지도 못하는 바둥대는 꿈을 꾸기도 했고 송곳같은 날카로운 것으로 온갖 음탕한 단어들이 내 몸에 새겨지는 꿈을 꾸기도 했다.
꿈은 더러웠다.
길을 걷다가 급하게 간이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문이 잠기지 않았다. 몇몇 남자들이 내 앞에서 구경을 했고 나는 그들 앞에서 항문이 아닌 보지로 똥을 누어야 했다. 발가벗고 시궁창에 쳐박혀 오물을 뒤집어쓰고 뒹구는 것은 평범한 꿈일 정도였다.
"무슨 일 있어?"
"아니.."
희정이는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나에게 물었다. 아무 말없이 소주를 들이켰다가 북받쳐 터져나오는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희정이는 그런 나를 안고는 말없이 토닥거리고만 있었다.
나는 희정이한테 그의 이야기를 했다.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고백을 하고, 어떻게 사랑을 했는지 이야기했다. 그리고 어떻게 헤어졌는지도 말했다.
"너 바보야? 순진한거야 아니면 멍청한거야?"
"그냥 좋으니깐..."
"모르겠어? 그 남자는 그냥..."
희정이는 답답했는지 소주를 연거푸 들이켰다.
"아무리 순진해도 그렇지.. 그렇게 다 주고 나면 당연히 떠나지.."
"그런거 아냐. 내가 미안해서 그랬어.."
"니가 뭐가 미안한데?"
왜 그에게 미안했는지 설명하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었다. 내 치부를 다 내보여야 하는 일이었지만 나는 이 세상에 누군가 한명이라도 내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했었나보다.
나는 희정이에게 12살 때의 비밀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그 이후에 만났던 남자들의 이야기도 털어놓았다. 자세히는 아니었지만 나를 파괴해 버리고 싶은 마음에 많은 남자를 만났다고 말했다.
긴 침묵의 시간이 흐른 후에 희정이가 말했다.
"네 잘못 아냐. 남자들이 나쁜 새끼들이지.. 그 사람도 자기 욕망만 채우고 가버렸잖아."
남자들은 한 여자에게 두가지 모습을 바란다. 엄마의 모습과 창녀의 모습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어루만져 주는 엄마의 모습을 투사하면서도 동시에 음탕하게 자기 아래에서 질퍽한 신음을 토해내는 창녀의 모습을 투사한다.
엄마의 모습을 잃어버린 창녀의 마지막은 버림받는 것이었다.
그는 어쩌면 지민이라는 여자에게서 엄마의 모습을, 나에게서 창녀의 모습을 찾았는지도 모른다. 그 여자에게는 사랑을, 나에게는 욕정을 풀었을지도 모른다.
과선배를 찾아갔다.
한동안 동아리에 얼굴도 안 비치던 내가 나타나자 놀라면서도 우리의 일을 안다는 듯 애써 웃으며 나의 안부를 물었다.
"왜 그 동안 안 나오고.."
"그렇게 됐어요. 미안해요.."
"..."
"선배.. 영진이 주소 알아요?"
"잠시만.."
선배는 어디엔가 전화를 했다. 그리고 그의 군부대 주소를 노트에 또박또박 받아적고는 그 노트를 찢어 나에게 주었다.
"남자는 군대가면 다 외롭다. 편지라도 자주 해 줘. 그럼 혹시.."
선배는 거기서 말을 멈췄다. 뒷머리를 긁적이고는 담배를 하나 꺼내 피웠다. 섹스를 마치고 시원스럽게 뿜어내던 그의 담배연기가 생각났다.
그 날은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날이었다. 신이 나를 위해 준비한 듯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의 생일이었고, 토요일이었고, 그리고 내가 여자인 날이었다.
그에게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그가 면회소의 문을 열고 나타나자마자 누구에게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듯한 경례를 큰 소리로 외치고는 내가 앉아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거의 3개월만에 보는 그는 하나도 변한 것이 없었다. 군생활이 조금 힘들었는지 평소처럼 잘 웃지는 않았지만 드문드문 미소를 띄우며 나의 안부와 동아리 사람들의 안부를 물었다. 한참동안 어색한 대화를 하고 있을 때 누군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좋겠다.. 이등병~"
"이병 이영진!"
"외출밖에 안된다는거 니 생일이고 여자친구도 왔다고 힘들게 외박받아준거다."
"감사합니다!"
그의 고참으로 보이는 상병은 고맙기도 하면서 거추장스러웠다. 그도 외박을 얻었다며 우리와 함께 부대를 나와 근처의 조그마한 시내로 향했다.
"부대도 아닌데 편하게 해.."
"이병 이영진! 아닙니다!"
그 상병은 어디 갈 곳도 없는지 그는 우리와 점심을 먹고 우리와 커피를 마시고, 또 우리와 같이 술을 마셨다. 웃기지도 않은 농담을 던져가며 혼자 즐거워했다. 슬쩍슬쩍 좋은 여자있으면 소개 좀 시켜달라는 말로 나를 괴롭혔지만 나에게는 희정이 밖에 없었고 희정이는 이미 남자친구가 있었다.
희정이가 남자친구가 없었다 해도 소개시켜 주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가끔 내 몸매를 ?어내리는 두 눈에 왠지 모를 교활함이 느껴졌다.
그는 우리가 자는 곳까지 따라왔다. 눈치없는 모텔 주인은 나란히 맞붙은 방을 내어주었다.
어색했다. 매일 밤 뜨겁게 섹스를 나누던 사이였던가 싶게 우리는 멀뚱거리며 서 있었다. 그냥 "벗어"라고 명령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해.."
"뭐가요?"
"그 때.."
그는 지민이라는 여자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다. 잠시 헤어졌다가 돌아온 그 여자를 차마 내칠 수 없었고 그의 마음속에도 그 여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많이 남아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왠지 자꾸 내 생각이 났다고 했다. 양다리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는데 사람 마음이 뜻대로 안되더라며 변명같지도 않은 변명을 했다. 나에게 사과를 하고 헤어졌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며 다시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애인이 있으면 뺏으면 되는거다.."
그런 다짐을 하며 나는 옷을 벗었다.
우리 둘은 다시 예전처럼 뜨겁게 섹스를 나눴다.
그가 떠나고 나서는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3개월만에 받아들이는 그의 물건에 나는 지난 일들같은 것은 다 잊어버리고 다시 뜨겁게 달아올라다. 그는 밖에다가 사정을 하려 했지만 나는 안전한 날이라고 말해줬다.
두 번의 전쟁같은 섹스를 마치고 그와 나는 나란히 누워서 천정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까 그 상병 있잖아.."
그는 군대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 상병이 엄청나게 갈구는 고참이라면서 몰래 밤에 보초서면서 맞은 이야기며 정신적으로 언어적으로 당하는 폭력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힘들겠어요.."
나는 엄마처럼 다정하게 그를 위로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창녀는 창녀일 뿐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그 상병이랑 한 번 자주면 안돼?"
"..."
그의 말이 내 심장을 찔렀다. 날카롭게 파고든 그의 말은 다시금 내 심장을 후벼파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그에 대한 마음을 깨끗하게 도려냈다.
"어차피.. 넌 그런거 좋아하잖아."
"내가 뭐요?"
"남자랑 많이 자봤잖아.. 한 번 더 잔다고..."
"어떻게 알아요? 내가 그런지.."
"한 두 남자 겪어본 게 아닌거 같던데.. 뭐"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나에 대한 감정이 조금이라도 남아있긴 해요?"
"..."
그는 울먹이는 내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자기의 힘든 군생활만 생각하고 나의 아픔따위는 눈꼽만큼도 몰라주는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그의 좋은 성격은 우유부단함으로 느껴졌고 환한 웃음은 자기 여자의 벌거벗은 모습을 친구한테 보여주고, 고참에게 나를 갖다바치려는 비굴한 웃음처럼 느껴졌다.
"한번만 쓰다듬어 줘요."
그가 무표정하게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주섬주섬 옷을 입고 길거리에 버려지는 개처럼 그의 방을 나왔다. 긴 한숨을 내쉬고 옆방문을 두드렸다. 그 상병은 교활한 웃음으로 나를 반겨주었다.
"영진이가 보내서 왔어요."
그 때처럼 내 몸이 메말랐던 적은 없었던 거 같다. 그가 싸질러 놓은 정액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 상병의 물건을 쉽게 받아들이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는 급하게 내 옷을 벗기고는 한마리 짐승처럼 나를 탐했다. 내 신경은 다 죽어버린 거 같이 고요했고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온갖 교태스러운 신음소리를 내질렀다. 내 신음소리가 얇은 벽을 뚫고 지나가 그의 심장에 꽂히길 바랬다. 그도 나만큼 아프길 바랬다.
사정을 하고 나면 그 상병의 물건을 입으로 빨아댔다. 기계적으로 나는 그렇게 몇 번이고 그 상병의 물건을 세웠고 몇 번의 사정을 받아냈다. 그 상병이 지쳐 잠들때까지..
모두가 잠든 고요한 새벽에 나는 모텔을 나왔다. 나는 그가 잠들어 있는 방을 아무런 느낌없이 지나칠 수 있었다.
다음 날, 나는 사후피임약을 처방받았다.
두 남자의 정액이 뒤섞여버린 내 자궁은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수많은 오해만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완벽해 보였던 그 날은 완벽한 함정이었다. 배란기를 그의 생일에 맞춰 피임약을 끊고 임신을 해서라도 그를 잡고 싶었던 내 이기심에 대한 단죄였으리라...
그 날의 다이어리에 <18, 상병>이라고 적었다. 십팔....
텅빈 다이어리를 앞으로 몇 장 넘겼다. 곧 하트로 가득한 다이어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달에는 생리일을 제외하고는 빼곡히 하트가 그려진 달도 있었다. 5월의 끝자락에서 첫번째 하트를 찾아냈다. 그 옆에 <17>이라는 숫자를 적어넣었다.
처음 나를 대하던 그의 마음이 진실했다는 것은 나도 느꼈다. 하지만 방학 중간에 잠시 떨어져있는 동안 어떻게 그와 그 여자는 다시 연결되었던 거 같았다. 그 여자가 다시 돌아왔는지, 그가 그 여자에게 다시 돌아갔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도 고민하고 흔들렸을 것이다.
처음 술이 취해 나를 찾아온 날, 그는 자면서 몇 번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그가 깬 줄 알고 쳐다봤지만 내가 볼 수 없는 꿈속에서 그는 나와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그가 입대를 하고 난 후, 나는 그의 학부 건물을 몇 번 찾아간 적이 있었다.
건물에서 나오는 여자들을 유심히 지켜봤었다. 환하게 웃으며 나오는 한 여자를 발견하고는 그 여자가 지민이라는 여자가 아닐까 생각했다. 왠지 그 여자의 웃음이 그를 많이 닮아있었다.
전에 그에게 애인이 있으면 뺏을거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만약 저 여자였다면 과연 그럴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여자의 빛에 내 그림자는 더 짙어져 나는 그 어둠속에서 꼼짝도 할 수 없을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그 때부터였다.
평소에도 꿈을 꾸긴 했지만 지속적으로 악몽을 꾸기 시작한 건 그가 떠난 후 부터였다. 어느 밤에는 악몽이 무서워서 일부러 잠을 자지 않고 버티기도 했지만, 나는 악몽과 함께 깨어나기 일쑤였다.
하늘이 내린 벌이라 생각했다. 첫번째는 내 의지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 이후는 모든 일은 내 의지였다.
꿈은 잔인했다.
나는 손발이 묶인채로 칼로, 창으로 찔리는 고통을 다 받아내면서도 죽지도 못하는 바둥대는 꿈을 꾸기도 했고 송곳같은 날카로운 것으로 온갖 음탕한 단어들이 내 몸에 새겨지는 꿈을 꾸기도 했다.
꿈은 더러웠다.
길을 걷다가 급하게 간이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문이 잠기지 않았다. 몇몇 남자들이 내 앞에서 구경을 했고 나는 그들 앞에서 항문이 아닌 보지로 똥을 누어야 했다. 발가벗고 시궁창에 쳐박혀 오물을 뒤집어쓰고 뒹구는 것은 평범한 꿈일 정도였다.
"무슨 일 있어?"
"아니.."
희정이는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나에게 물었다. 아무 말없이 소주를 들이켰다가 북받쳐 터져나오는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희정이는 그런 나를 안고는 말없이 토닥거리고만 있었다.
나는 희정이한테 그의 이야기를 했다.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고백을 하고, 어떻게 사랑을 했는지 이야기했다. 그리고 어떻게 헤어졌는지도 말했다.
"너 바보야? 순진한거야 아니면 멍청한거야?"
"그냥 좋으니깐..."
"모르겠어? 그 남자는 그냥..."
희정이는 답답했는지 소주를 연거푸 들이켰다.
"아무리 순진해도 그렇지.. 그렇게 다 주고 나면 당연히 떠나지.."
"그런거 아냐. 내가 미안해서 그랬어.."
"니가 뭐가 미안한데?"
왜 그에게 미안했는지 설명하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었다. 내 치부를 다 내보여야 하는 일이었지만 나는 이 세상에 누군가 한명이라도 내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했었나보다.
나는 희정이에게 12살 때의 비밀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그 이후에 만났던 남자들의 이야기도 털어놓았다. 자세히는 아니었지만 나를 파괴해 버리고 싶은 마음에 많은 남자를 만났다고 말했다.
긴 침묵의 시간이 흐른 후에 희정이가 말했다.
"네 잘못 아냐. 남자들이 나쁜 새끼들이지.. 그 사람도 자기 욕망만 채우고 가버렸잖아."
남자들은 한 여자에게 두가지 모습을 바란다. 엄마의 모습과 창녀의 모습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어루만져 주는 엄마의 모습을 투사하면서도 동시에 음탕하게 자기 아래에서 질퍽한 신음을 토해내는 창녀의 모습을 투사한다.
엄마의 모습을 잃어버린 창녀의 마지막은 버림받는 것이었다.
그는 어쩌면 지민이라는 여자에게서 엄마의 모습을, 나에게서 창녀의 모습을 찾았는지도 모른다. 그 여자에게는 사랑을, 나에게는 욕정을 풀었을지도 모른다.
과선배를 찾아갔다.
한동안 동아리에 얼굴도 안 비치던 내가 나타나자 놀라면서도 우리의 일을 안다는 듯 애써 웃으며 나의 안부를 물었다.
"왜 그 동안 안 나오고.."
"그렇게 됐어요. 미안해요.."
"..."
"선배.. 영진이 주소 알아요?"
"잠시만.."
선배는 어디엔가 전화를 했다. 그리고 그의 군부대 주소를 노트에 또박또박 받아적고는 그 노트를 찢어 나에게 주었다.
"남자는 군대가면 다 외롭다. 편지라도 자주 해 줘. 그럼 혹시.."
선배는 거기서 말을 멈췄다. 뒷머리를 긁적이고는 담배를 하나 꺼내 피웠다. 섹스를 마치고 시원스럽게 뿜어내던 그의 담배연기가 생각났다.
그 날은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날이었다. 신이 나를 위해 준비한 듯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의 생일이었고, 토요일이었고, 그리고 내가 여자인 날이었다.
그에게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그가 면회소의 문을 열고 나타나자마자 누구에게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듯한 경례를 큰 소리로 외치고는 내가 앉아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거의 3개월만에 보는 그는 하나도 변한 것이 없었다. 군생활이 조금 힘들었는지 평소처럼 잘 웃지는 않았지만 드문드문 미소를 띄우며 나의 안부와 동아리 사람들의 안부를 물었다. 한참동안 어색한 대화를 하고 있을 때 누군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좋겠다.. 이등병~"
"이병 이영진!"
"외출밖에 안된다는거 니 생일이고 여자친구도 왔다고 힘들게 외박받아준거다."
"감사합니다!"
그의 고참으로 보이는 상병은 고맙기도 하면서 거추장스러웠다. 그도 외박을 얻었다며 우리와 함께 부대를 나와 근처의 조그마한 시내로 향했다.
"부대도 아닌데 편하게 해.."
"이병 이영진! 아닙니다!"
그 상병은 어디 갈 곳도 없는지 그는 우리와 점심을 먹고 우리와 커피를 마시고, 또 우리와 같이 술을 마셨다. 웃기지도 않은 농담을 던져가며 혼자 즐거워했다. 슬쩍슬쩍 좋은 여자있으면 소개 좀 시켜달라는 말로 나를 괴롭혔지만 나에게는 희정이 밖에 없었고 희정이는 이미 남자친구가 있었다.
희정이가 남자친구가 없었다 해도 소개시켜 주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가끔 내 몸매를 ?어내리는 두 눈에 왠지 모를 교활함이 느껴졌다.
그는 우리가 자는 곳까지 따라왔다. 눈치없는 모텔 주인은 나란히 맞붙은 방을 내어주었다.
어색했다. 매일 밤 뜨겁게 섹스를 나누던 사이였던가 싶게 우리는 멀뚱거리며 서 있었다. 그냥 "벗어"라고 명령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해.."
"뭐가요?"
"그 때.."
그는 지민이라는 여자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다. 잠시 헤어졌다가 돌아온 그 여자를 차마 내칠 수 없었고 그의 마음속에도 그 여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많이 남아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왠지 자꾸 내 생각이 났다고 했다. 양다리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는데 사람 마음이 뜻대로 안되더라며 변명같지도 않은 변명을 했다. 나에게 사과를 하고 헤어졌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며 다시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애인이 있으면 뺏으면 되는거다.."
그런 다짐을 하며 나는 옷을 벗었다.
우리 둘은 다시 예전처럼 뜨겁게 섹스를 나눴다.
그가 떠나고 나서는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3개월만에 받아들이는 그의 물건에 나는 지난 일들같은 것은 다 잊어버리고 다시 뜨겁게 달아올라다. 그는 밖에다가 사정을 하려 했지만 나는 안전한 날이라고 말해줬다.
두 번의 전쟁같은 섹스를 마치고 그와 나는 나란히 누워서 천정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까 그 상병 있잖아.."
그는 군대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 상병이 엄청나게 갈구는 고참이라면서 몰래 밤에 보초서면서 맞은 이야기며 정신적으로 언어적으로 당하는 폭력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힘들겠어요.."
나는 엄마처럼 다정하게 그를 위로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창녀는 창녀일 뿐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그 상병이랑 한 번 자주면 안돼?"
"..."
그의 말이 내 심장을 찔렀다. 날카롭게 파고든 그의 말은 다시금 내 심장을 후벼파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그에 대한 마음을 깨끗하게 도려냈다.
"어차피.. 넌 그런거 좋아하잖아."
"내가 뭐요?"
"남자랑 많이 자봤잖아.. 한 번 더 잔다고..."
"어떻게 알아요? 내가 그런지.."
"한 두 남자 겪어본 게 아닌거 같던데.. 뭐"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나에 대한 감정이 조금이라도 남아있긴 해요?"
"..."
그는 울먹이는 내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자기의 힘든 군생활만 생각하고 나의 아픔따위는 눈꼽만큼도 몰라주는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그의 좋은 성격은 우유부단함으로 느껴졌고 환한 웃음은 자기 여자의 벌거벗은 모습을 친구한테 보여주고, 고참에게 나를 갖다바치려는 비굴한 웃음처럼 느껴졌다.
"한번만 쓰다듬어 줘요."
그가 무표정하게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주섬주섬 옷을 입고 길거리에 버려지는 개처럼 그의 방을 나왔다. 긴 한숨을 내쉬고 옆방문을 두드렸다. 그 상병은 교활한 웃음으로 나를 반겨주었다.
"영진이가 보내서 왔어요."
그 때처럼 내 몸이 메말랐던 적은 없었던 거 같다. 그가 싸질러 놓은 정액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 상병의 물건을 쉽게 받아들이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는 급하게 내 옷을 벗기고는 한마리 짐승처럼 나를 탐했다. 내 신경은 다 죽어버린 거 같이 고요했고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온갖 교태스러운 신음소리를 내질렀다. 내 신음소리가 얇은 벽을 뚫고 지나가 그의 심장에 꽂히길 바랬다. 그도 나만큼 아프길 바랬다.
사정을 하고 나면 그 상병의 물건을 입으로 빨아댔다. 기계적으로 나는 그렇게 몇 번이고 그 상병의 물건을 세웠고 몇 번의 사정을 받아냈다. 그 상병이 지쳐 잠들때까지..
모두가 잠든 고요한 새벽에 나는 모텔을 나왔다. 나는 그가 잠들어 있는 방을 아무런 느낌없이 지나칠 수 있었다.
다음 날, 나는 사후피임약을 처방받았다.
두 남자의 정액이 뒤섞여버린 내 자궁은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수많은 오해만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완벽해 보였던 그 날은 완벽한 함정이었다. 배란기를 그의 생일에 맞춰 피임약을 끊고 임신을 해서라도 그를 잡고 싶었던 내 이기심에 대한 단죄였으리라...
그 날의 다이어리에 <18, 상병>이라고 적었다. 십팔....
텅빈 다이어리를 앞으로 몇 장 넘겼다. 곧 하트로 가득한 다이어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달에는 생리일을 제외하고는 빼곡히 하트가 그려진 달도 있었다. 5월의 끝자락에서 첫번째 하트를 찾아냈다. 그 옆에 <17>이라는 숫자를 적어넣었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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