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을 떠나는 일은 항상 나를 설레게 했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설레임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집을 떠나 약 40여분을 달려 만*계곡 입구에 도착했다.
휴게소 주차장은 2월의 끝자락이라서 그런지 텅 비어있어 황량한 기온이 감돌고 있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아직은 싸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하지만 싸늘한 바람 사이로 봄냄새가 살며시 스며 들어온다.
배낭을 메고, 손엔 삼각대를 들고 길을 재촉했다.
저만큼 국립공원 탐방지원센터의 모습이 보였다.
그냥 지나치려다 보니 안면이 있는 얼굴이 보였다.
조용히 창문을 열고 말했다.
“오랫만이네요!”
나를 등지고 컴퓨터를 만지던 사람이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어머, 김작가님 아니세요?”
그녀의 얼굴엔 반가움이 스쳐 지나갔다.
“오랫만에 뵜더니 더 예뻐지신 것 같네요?”
“예뻐지기는요.... 산속에 사는 사람 모습이 항상 그렇죠, 뭐.”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그녀는 싫지 않은듯 조용한 미소로 화답했다.
“그런데 김작가님, 봄이 오려면 아직인데 어떻게 이곳에오실 생각을 하셨어요?,
설마 나를 보러 오신것은 아니실테고......“
그녀의 소소한 농담에 내 마음에도 훈풍이 불고 지나갔다.
“이유는 두 가지가 있거든요, 첫 번째는 환한 미소로 웃는 서지현씨를 보는 것이고,.....”
“두 번째 이유는요?”
서지현. 그녀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겨울과 봄이 공존하는 계곡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서.....
혹시 압니까, 운이 좋으면 복수초를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녀는 내 말의 의미를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려올때 들리겠습니다.”
“아직 얼음이 녹지않아 미끄러운 곳도 있으니 조심하세요.”
가벼운 인사를 마치고 계곡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등 뒤의 안내센터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작가님, 복수초 못 찍으시면, 대신 저를 찍어가세요.”
뒤로 돌아 손을 흔들어 대답을 대신하고 길을 재촉했다.
아직 겨울이 끝나지 않았지만 계곡 사이로 흐르는 바람속엔 봄이 다가왔음을 알려주는
향기가 코끝을 스쳐 지나갔다.
한참을 올라가서 익숙한 발걸음으로 탐방로를 벗어나 물가로 내려갔다.
첫 번째 촬영 포인트.
조용히 흐르던 물길이 높지 않은 폭포를 이루어 떨어지는 곳.
이곳은 내게 작은 성취감을 주었던 곳이라 다시 찾은 곳이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려는 듯, 폭포는 녹아내리는 얼음 사이로 예쁜 모습으로 나를 반겼다.
배낭을 내려놓고 아름다운 모습에 취해 꼼꼼히 촬영 포인트를 둘러보았다.
그러면서 내 손은 어느새 삼각대를 펼쳐 물속에 세팅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삼각대엔 카메라가 장착되어 있고, 내손엔 릴리즈가 쥐어 있었다.
‘어떤 모드로 찍어야 할까, 조리개 수치는 얼마로......’
폭포를 촬영할 때, 대략 두 가지 방법으로 접근을 한다.
첫째는 떨어지는 물줄기를 부드럽게 표현하는 방법이다.
조리개를 조이고, 셔터 스피드를 길게 하면 노출 시간이 길어져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부드럽게 표현되어 마치 비단결같은 아름다운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
두 번째는 반대의 방법이다.
조리개를 할짝 열고 셔터 스피드를 빠르게 하면, 폭포수의 생동감이 표현된 사진을 촬영할 수가 있다.
폭포수의 물방울들이 튀어 올라 정지된 모습으로 담겨 역동성과 웅장함을 배가시켜준다.
어차피 이곳엔 나 혼자였기에 시간에 쫒기지 않고 천천히 촬영을 했다.
두 눈으로 바라본 세상과는 또 다른 세상이 파인더안에 들어오는 것을 바라보는 희열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신비의 세계, 그 자체였다.
어쩌면 그 매력에 빠져 30년 가까이 카메라를 들고 들로, 산으로, 바다로 가는지도.....
한참을 촬영에 몰두하다보니 차가운 날씨속에서도 이마엔 작은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손으로 땀을 훔치며 고개를 드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느 순간, 그곳엔 나 혼자만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불과 10여 미터 앞에서 노루란 녀석이 초롱한 눈망울을 반짝이며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나를 쳐다보던 녀석은 목이 말랐던지 고개를 숙이고 맛있게 냉수를 마시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얼음땡이 되어 손가락 하나 까딱 할 수가 없었다.
녀석을 카메라에 담는다고 움직이는 순간, 녀석은 위험을 느껴 내곁에서 도망가버리고 말테니까.......
카메라에 녀석을 담는 대신 내 가슴속에 녀석을 담기 시작했다.
그것은 교감이었다.
사람과 자연의 교감, 나와 노루의 교감.
가슴 벅찬 희열을 느끼면서 바라보는 노루의 앙증맞은 모습,
나와 노루는 그 순간 동격의 생명체, 자연의 일부분으로서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후, 녀석은 갈증을 채웠는지 조용히 숲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그리고 숲으로 들어가기 전,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나를 한 번 쳐다본 후 숲으로 사라졌다.
녀석이 사라진 후에도 나는 한참을 바라보고 서있었다.
비록 카메라에 녀석의 모습을 담지는 못했지만, 내 가슴속엔 영원히 녀석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졌다.
언제라도 꺼내 볼 수 있는 사진으로.......
다시 느린 걸음으로 계곡을 올랐다.
발밑 탐방로가 움푹 패여 있고 하얀 김이 솟아올랐다.
아마 조금 전 멧돼지가 먹이가 되는 나무뿌리를 찾아 내려왔던 모양이었다.
눈 덮인 겨울 산에 먹거리가 없어 나무뿌리를 찾아 이곳에 찾아 왔을게다.
산은 아직 산짐승들에게 먹이를 줄 준비가 덜 되어 있었다.
그래도 새싹이 돋아나는 봄이 멀지 않았으니 조금만 기다리면......
골자기 사이로 파란 하늘엔 하얀 구름만이 무심히 갈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현재 시간이 몇 시인지 모른다.
아니, 알 필요가 없다는 말이 정답일터.
계곡속에 있는 순간은 인간이 아닌 자연의 작은 일부분이 되어 함께 하고 있으니까.....
결국 나는 내가 만나고자 했던 복수초를 만날 수가 없었다.
그녀와의 새로운 인연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올라갔던 길을 되짚어 하산을 했다.
아직 채 녹지 않은 눈 덮인 산자락을 바라보면서 길을 재촉했다.
계곡을 거의 내려왔을 때, 하얀 눈밭에 얼핏 노란색이 스치듯 보였다.
‘뭐지, 혹시........’
그랬다.
그것은 내가 그리도 찾았던 복수초였다.
“찾았다!”
나는 심마니가 산삼을 만난듯 조용히 소리쳤다.
하얀 눈속을 비집고 노란 복수초 세 송이가 나를 반기고 있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배낭을 내려놓고 촬영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겨울 진객 복수초와의 만남.
그 자체로도 나는 행복했다.
접사용 미니 삼각대를 꺼내 카메라를 장착하고, 카메라엔 떨림 방지를 위해 무선 릴리즈를 장착했다.
그리고 카메라 앵글을 확인하기 위해 눈밭에 엎드리고 있었다.
파인더를 통해 만나는 세 송이 노란 복수초.
아마도 내가 봄을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인지도 몰랐다.
사람들은 아직 두꺼운 방한복으로 세상속에 있지만, 나는 노란 복수초를 통해 봄과 소통하고 있으니까....
접사 촬영은 오롯이 나와 꽃만의 교감이다.
촬영대상인 복수초 외에 다른 것들이 모두 선명하게 찍힌다면, 주피사체인 복수초에 시선이 집중되지 못하고 분산되기 때문에 감동이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시선을 집중시키기 위해 접사용으로 특화된 매크로 렌즈를 사용한다.
이 렌즈는 심도(사진이 선명하게 찍히는 범위)가 낮기 때문에 주피사체는 선명하게 촬영되지만 앞, 뒤의 배경은 흐릿하게 뭉개져 시선을 집중시키기에 효과적이다.
이 때의 촬영팁은 촬영 중간 중간 카메라의 모니터링 창을 통해 결과물을 확대시켜 확인할 수가 있다.
조리개 수치를 단계별로 조정하면서 촬영하면 촬영자가 원하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한참을 촬영하다보니 뒷 배경의 나뭇가지들이 시선을 분산시켜 눈에 거슬렸다.
‘방법이 있지....’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배낭속에 든 작은 검은색 판지를 꺼냈다.
빛이 반사되는 양을 줄이기 위해 검은 천을 씌운 판지를 피사체인 복수초 뒤에 살며시 세워놓고 촬영을 하니 배경이 정리되어 훨씬 깔끔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다.
한참을 촬영에 몰두하다 언듯 인기척을 느껴 눈밭에 엎드린 자세 그대로 고개를 돌렸다.
허리를 살짝 구부린 채, 유심히 나를 쳐다보고 있는 사람은 화사한 등산복 차림의 여성이었다.
그녀는 내가 고개를 들자 놀란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어머, 놀래라!. 근데 지금 뭘 찍으세요?”
아직 그녀의 눈엔 작은 복수초가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는 대답 대신 손끝으로 작은 복수초를 가리켰다.
그녀의 눈동자가 내 손가락을 따라 복수초를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와! 눈속에 꽃이 있네요, 어쩜 어쩜!!!”
그녀는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믿을 수 없다는 듯 감탄사를 연발했다.
“세상에.... 눈속에 노란 꽃이 피어 있네요.”
그녀가 좀 더 자세히 보려는 듯 상체를 숙이자, 향기로운 그녀의 체취가 콧속으로 파고 들었다.
그녀는 지금 자신이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복수초를 보랴, 카메라에 찍히는 모습을 보랴 그녀의 얼굴은 나와 불과 한 뼘 정도 차이에 자리하고 있었다.
순간, 내가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그때서야 자신이 내게 바짝 붙어 있었을 의식하고 깜짝 놀라며 말했다.
“어머, 내 정신 좀 봐.”
멋쩍게 말하는 그녀의 얼굴에 옅은 홍조가 피어남을 나는 알 수 있었다.
촬영을 끝내고 장비를 정리하는 동안에도 그녀는 복수초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그런데, 저 꽃 이름이 뭐죠?”
그녀가 내게 물었다.
“복.수.초라는 꽃입니다.
겨울 끝자락에 눈속에서 피어나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귀한 꽃이죠.“
내 말에 놀란 표정을 지으며 그녀가 말했다.
“차가운 눈을 뚫고 피어나다니.. 생명력이 대단한 꽃이네요.
그리고 너무 예뻐요!“
배낭을 메고 삼각대를 손에 들고 그녀에게 물었다.
“계곡으로 올라가는 길이세요, 아니면......”
그렇게 묻는 나를 쳐다보며 그녀가 내게 말했다.
“선생님은.......”
“저는 내려가는 길입니다.”
“그럼. 저도 내려가는 길이네요!”
그녀가 살며시 미소지으며 말했다.
“네?, 그게 무슨 뜻이죠?”
그녀는 분명 올라가는 중이었는데.....내가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자, 그녀가 말했다.
“처음엔 좀 더 올라가려고 했는데, 지금 마음이 바뀐 거라면 이해가 되세요?”
“아, 그러셨군요. 그런데 갑자기 마음이 바뀐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내가 그녀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그냥요. 그냥 내려가고 싶어졌어요.”
“하하하, 그러시다면 이제 내려가시죠?”
내가 걸음을 옮기자 그녀가 옆에 서서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선생님, 아까 그 꽃 복수초 말인데요,
꽃이 굉장히 예쁘던데 꽃말이 뭐죠?
그녀가 궁금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복수초를 한문으로 표현하면 복 福자에 목숨 壽자를 씁니다.
이를테면 복스러운 인생 정도로 표현이 되겠죠?, 그리고 꽃말은 ‘영원한 행복’입니다.
내가 대답하자, 그녀가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영원한 행복........”
그녀가 낮게 말하는 순간, 그녀의 얼굴에 스쳐지나가는 그림자를 봤다면 지나친 비약이었을까.......
잠시 두 사람은 말없이 산길을 재촉했다.
그리고 잠시간의 침묵이 무겁다고 느껴질 즈음, 그녀가 내게 말했다.
“선생님은 영원한 행복이란 것을 믿으세요?”네?“
“제 말은 영원한 행복이란 말을 믿으시냐구요?”
갑작스런 그녀의 질문에 선뜻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그렇게 물으시니 대답하기가 힘드네요, 솔직히.....”
나의 대답에 그녀가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그 질문은 제가 선생님께 내드린 숙제가 되겠네요.
다음에 만나면 대답을 주세요.“
“숙제라구요?”
그녀의 엉뚱한 말에 내가 되묻자, 그녀가 말했다.
“숙제를 잘하는 학생이 착한 학생인건 아시죠?”
그렇게 그녀와의 새로운 인연은 시작되고 있었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설레임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집을 떠나 약 40여분을 달려 만*계곡 입구에 도착했다.
휴게소 주차장은 2월의 끝자락이라서 그런지 텅 비어있어 황량한 기온이 감돌고 있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아직은 싸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하지만 싸늘한 바람 사이로 봄냄새가 살며시 스며 들어온다.
배낭을 메고, 손엔 삼각대를 들고 길을 재촉했다.
저만큼 국립공원 탐방지원센터의 모습이 보였다.
그냥 지나치려다 보니 안면이 있는 얼굴이 보였다.
조용히 창문을 열고 말했다.
“오랫만이네요!”
나를 등지고 컴퓨터를 만지던 사람이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어머, 김작가님 아니세요?”
그녀의 얼굴엔 반가움이 스쳐 지나갔다.
“오랫만에 뵜더니 더 예뻐지신 것 같네요?”
“예뻐지기는요.... 산속에 사는 사람 모습이 항상 그렇죠, 뭐.”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그녀는 싫지 않은듯 조용한 미소로 화답했다.
“그런데 김작가님, 봄이 오려면 아직인데 어떻게 이곳에오실 생각을 하셨어요?,
설마 나를 보러 오신것은 아니실테고......“
그녀의 소소한 농담에 내 마음에도 훈풍이 불고 지나갔다.
“이유는 두 가지가 있거든요, 첫 번째는 환한 미소로 웃는 서지현씨를 보는 것이고,.....”
“두 번째 이유는요?”
서지현. 그녀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겨울과 봄이 공존하는 계곡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서.....
혹시 압니까, 운이 좋으면 복수초를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녀는 내 말의 의미를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려올때 들리겠습니다.”
“아직 얼음이 녹지않아 미끄러운 곳도 있으니 조심하세요.”
가벼운 인사를 마치고 계곡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등 뒤의 안내센터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작가님, 복수초 못 찍으시면, 대신 저를 찍어가세요.”
뒤로 돌아 손을 흔들어 대답을 대신하고 길을 재촉했다.
아직 겨울이 끝나지 않았지만 계곡 사이로 흐르는 바람속엔 봄이 다가왔음을 알려주는
향기가 코끝을 스쳐 지나갔다.
한참을 올라가서 익숙한 발걸음으로 탐방로를 벗어나 물가로 내려갔다.
첫 번째 촬영 포인트.
조용히 흐르던 물길이 높지 않은 폭포를 이루어 떨어지는 곳.
이곳은 내게 작은 성취감을 주었던 곳이라 다시 찾은 곳이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려는 듯, 폭포는 녹아내리는 얼음 사이로 예쁜 모습으로 나를 반겼다.
배낭을 내려놓고 아름다운 모습에 취해 꼼꼼히 촬영 포인트를 둘러보았다.
그러면서 내 손은 어느새 삼각대를 펼쳐 물속에 세팅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삼각대엔 카메라가 장착되어 있고, 내손엔 릴리즈가 쥐어 있었다.
‘어떤 모드로 찍어야 할까, 조리개 수치는 얼마로......’
폭포를 촬영할 때, 대략 두 가지 방법으로 접근을 한다.
첫째는 떨어지는 물줄기를 부드럽게 표현하는 방법이다.
조리개를 조이고, 셔터 스피드를 길게 하면 노출 시간이 길어져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부드럽게 표현되어 마치 비단결같은 아름다운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
두 번째는 반대의 방법이다.
조리개를 할짝 열고 셔터 스피드를 빠르게 하면, 폭포수의 생동감이 표현된 사진을 촬영할 수가 있다.
폭포수의 물방울들이 튀어 올라 정지된 모습으로 담겨 역동성과 웅장함을 배가시켜준다.
어차피 이곳엔 나 혼자였기에 시간에 쫒기지 않고 천천히 촬영을 했다.
두 눈으로 바라본 세상과는 또 다른 세상이 파인더안에 들어오는 것을 바라보는 희열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신비의 세계, 그 자체였다.
어쩌면 그 매력에 빠져 30년 가까이 카메라를 들고 들로, 산으로, 바다로 가는지도.....
한참을 촬영에 몰두하다보니 차가운 날씨속에서도 이마엔 작은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손으로 땀을 훔치며 고개를 드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느 순간, 그곳엔 나 혼자만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불과 10여 미터 앞에서 노루란 녀석이 초롱한 눈망울을 반짝이며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나를 쳐다보던 녀석은 목이 말랐던지 고개를 숙이고 맛있게 냉수를 마시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얼음땡이 되어 손가락 하나 까딱 할 수가 없었다.
녀석을 카메라에 담는다고 움직이는 순간, 녀석은 위험을 느껴 내곁에서 도망가버리고 말테니까.......
카메라에 녀석을 담는 대신 내 가슴속에 녀석을 담기 시작했다.
그것은 교감이었다.
사람과 자연의 교감, 나와 노루의 교감.
가슴 벅찬 희열을 느끼면서 바라보는 노루의 앙증맞은 모습,
나와 노루는 그 순간 동격의 생명체, 자연의 일부분으로서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후, 녀석은 갈증을 채웠는지 조용히 숲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그리고 숲으로 들어가기 전,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나를 한 번 쳐다본 후 숲으로 사라졌다.
녀석이 사라진 후에도 나는 한참을 바라보고 서있었다.
비록 카메라에 녀석의 모습을 담지는 못했지만, 내 가슴속엔 영원히 녀석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졌다.
언제라도 꺼내 볼 수 있는 사진으로.......
다시 느린 걸음으로 계곡을 올랐다.
발밑 탐방로가 움푹 패여 있고 하얀 김이 솟아올랐다.
아마 조금 전 멧돼지가 먹이가 되는 나무뿌리를 찾아 내려왔던 모양이었다.
눈 덮인 겨울 산에 먹거리가 없어 나무뿌리를 찾아 이곳에 찾아 왔을게다.
산은 아직 산짐승들에게 먹이를 줄 준비가 덜 되어 있었다.
그래도 새싹이 돋아나는 봄이 멀지 않았으니 조금만 기다리면......
골자기 사이로 파란 하늘엔 하얀 구름만이 무심히 갈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현재 시간이 몇 시인지 모른다.
아니, 알 필요가 없다는 말이 정답일터.
계곡속에 있는 순간은 인간이 아닌 자연의 작은 일부분이 되어 함께 하고 있으니까.....
결국 나는 내가 만나고자 했던 복수초를 만날 수가 없었다.
그녀와의 새로운 인연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올라갔던 길을 되짚어 하산을 했다.
아직 채 녹지 않은 눈 덮인 산자락을 바라보면서 길을 재촉했다.
계곡을 거의 내려왔을 때, 하얀 눈밭에 얼핏 노란색이 스치듯 보였다.
‘뭐지, 혹시........’
그랬다.
그것은 내가 그리도 찾았던 복수초였다.
“찾았다!”
나는 심마니가 산삼을 만난듯 조용히 소리쳤다.
하얀 눈속을 비집고 노란 복수초 세 송이가 나를 반기고 있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배낭을 내려놓고 촬영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겨울 진객 복수초와의 만남.
그 자체로도 나는 행복했다.
접사용 미니 삼각대를 꺼내 카메라를 장착하고, 카메라엔 떨림 방지를 위해 무선 릴리즈를 장착했다.
그리고 카메라 앵글을 확인하기 위해 눈밭에 엎드리고 있었다.
파인더를 통해 만나는 세 송이 노란 복수초.
아마도 내가 봄을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인지도 몰랐다.
사람들은 아직 두꺼운 방한복으로 세상속에 있지만, 나는 노란 복수초를 통해 봄과 소통하고 있으니까....
접사 촬영은 오롯이 나와 꽃만의 교감이다.
촬영대상인 복수초 외에 다른 것들이 모두 선명하게 찍힌다면, 주피사체인 복수초에 시선이 집중되지 못하고 분산되기 때문에 감동이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시선을 집중시키기 위해 접사용으로 특화된 매크로 렌즈를 사용한다.
이 렌즈는 심도(사진이 선명하게 찍히는 범위)가 낮기 때문에 주피사체는 선명하게 촬영되지만 앞, 뒤의 배경은 흐릿하게 뭉개져 시선을 집중시키기에 효과적이다.
이 때의 촬영팁은 촬영 중간 중간 카메라의 모니터링 창을 통해 결과물을 확대시켜 확인할 수가 있다.
조리개 수치를 단계별로 조정하면서 촬영하면 촬영자가 원하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한참을 촬영하다보니 뒷 배경의 나뭇가지들이 시선을 분산시켜 눈에 거슬렸다.
‘방법이 있지....’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배낭속에 든 작은 검은색 판지를 꺼냈다.
빛이 반사되는 양을 줄이기 위해 검은 천을 씌운 판지를 피사체인 복수초 뒤에 살며시 세워놓고 촬영을 하니 배경이 정리되어 훨씬 깔끔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다.
한참을 촬영에 몰두하다 언듯 인기척을 느껴 눈밭에 엎드린 자세 그대로 고개를 돌렸다.
허리를 살짝 구부린 채, 유심히 나를 쳐다보고 있는 사람은 화사한 등산복 차림의 여성이었다.
그녀는 내가 고개를 들자 놀란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어머, 놀래라!. 근데 지금 뭘 찍으세요?”
아직 그녀의 눈엔 작은 복수초가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는 대답 대신 손끝으로 작은 복수초를 가리켰다.
그녀의 눈동자가 내 손가락을 따라 복수초를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와! 눈속에 꽃이 있네요, 어쩜 어쩜!!!”
그녀는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믿을 수 없다는 듯 감탄사를 연발했다.
“세상에.... 눈속에 노란 꽃이 피어 있네요.”
그녀가 좀 더 자세히 보려는 듯 상체를 숙이자, 향기로운 그녀의 체취가 콧속으로 파고 들었다.
그녀는 지금 자신이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복수초를 보랴, 카메라에 찍히는 모습을 보랴 그녀의 얼굴은 나와 불과 한 뼘 정도 차이에 자리하고 있었다.
순간, 내가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그때서야 자신이 내게 바짝 붙어 있었을 의식하고 깜짝 놀라며 말했다.
“어머, 내 정신 좀 봐.”
멋쩍게 말하는 그녀의 얼굴에 옅은 홍조가 피어남을 나는 알 수 있었다.
촬영을 끝내고 장비를 정리하는 동안에도 그녀는 복수초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그런데, 저 꽃 이름이 뭐죠?”
그녀가 내게 물었다.
“복.수.초라는 꽃입니다.
겨울 끝자락에 눈속에서 피어나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귀한 꽃이죠.“
내 말에 놀란 표정을 지으며 그녀가 말했다.
“차가운 눈을 뚫고 피어나다니.. 생명력이 대단한 꽃이네요.
그리고 너무 예뻐요!“
배낭을 메고 삼각대를 손에 들고 그녀에게 물었다.
“계곡으로 올라가는 길이세요, 아니면......”
그렇게 묻는 나를 쳐다보며 그녀가 내게 말했다.
“선생님은.......”
“저는 내려가는 길입니다.”
“그럼. 저도 내려가는 길이네요!”
그녀가 살며시 미소지으며 말했다.
“네?, 그게 무슨 뜻이죠?”
그녀는 분명 올라가는 중이었는데.....내가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자, 그녀가 말했다.
“처음엔 좀 더 올라가려고 했는데, 지금 마음이 바뀐 거라면 이해가 되세요?”
“아, 그러셨군요. 그런데 갑자기 마음이 바뀐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내가 그녀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그냥요. 그냥 내려가고 싶어졌어요.”
“하하하, 그러시다면 이제 내려가시죠?”
내가 걸음을 옮기자 그녀가 옆에 서서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선생님, 아까 그 꽃 복수초 말인데요,
꽃이 굉장히 예쁘던데 꽃말이 뭐죠?
그녀가 궁금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복수초를 한문으로 표현하면 복 福자에 목숨 壽자를 씁니다.
이를테면 복스러운 인생 정도로 표현이 되겠죠?, 그리고 꽃말은 ‘영원한 행복’입니다.
내가 대답하자, 그녀가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영원한 행복........”
그녀가 낮게 말하는 순간, 그녀의 얼굴에 스쳐지나가는 그림자를 봤다면 지나친 비약이었을까.......
잠시 두 사람은 말없이 산길을 재촉했다.
그리고 잠시간의 침묵이 무겁다고 느껴질 즈음, 그녀가 내게 말했다.
“선생님은 영원한 행복이란 것을 믿으세요?”네?“
“제 말은 영원한 행복이란 말을 믿으시냐구요?”
갑작스런 그녀의 질문에 선뜻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그렇게 물으시니 대답하기가 힘드네요, 솔직히.....”
나의 대답에 그녀가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그 질문은 제가 선생님께 내드린 숙제가 되겠네요.
다음에 만나면 대답을 주세요.“
“숙제라구요?”
그녀의 엉뚱한 말에 내가 되묻자, 그녀가 말했다.
“숙제를 잘하는 학생이 착한 학생인건 아시죠?”
그렇게 그녀와의 새로운 인연은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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