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CLUB
(젊은이들)
-어디쯤이나 지음
이 소설은 내가 아는 가장 지독한 사랑이야기이다.
1. 시작
분대원이 M19 대전차 지뢰를 잘못 건드린 것은 내가 일병 말호봉 때의 일이다. 당시 나는 대열의 후미에서 소총을 허리춤에 올려놓고 300m 정도 떨어진 북쪽 능선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척이나 화창한 여름날이었는데, 저 멀리 북녘의 능선에서 억새가 바람에 살랑거리는 것까지 느껴질 정도로 풍광이 선명한 날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것이라곤, 내가 딛고 서있는 이 아름다운 풍경이 요란하게 찢어지는 것 같은 굉음, 그리고 나를 억세게 튕겨내는 땅의 울림. 그 두 가지가 전부였다.
잠깐 정신을 차렸을 때, 내 온몸은 뜨거운 액체의 범벅이었다. 그 액체가 다른 분대원들의 피라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두 팔은 추욱 쳐져 도무지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두 다리는 덜렁 거리며 허공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누군가의 등에 업혀 빠른 걸음으로 후송되고 있었다. 나는 다시 정신을 잃었다.
다시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앰뷸런스 안에 있었다. 시야가 물속에 잠긴 듯 흐려서 도무지 이 세상 같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손가락 열 개를 하나씩 움직였다.
하나 두울 세엣 네엣 다섯....... .......아홉 열
모두 움직였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발가락 열 개를 하나씩 움직였다.
하나 두울 세엣 네엣 다섯....... ....... 아홉 열
모두 움직였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나는 안도와 함께 긴장이 풀려 그대로 다시 정신을 놓았다.
선두에 있던 상병이 무심코 유실된 대전차 지뢰를 팔로 찼다는 것도, 그 때문에 우리 분대원 세 명이 현장에서 즉사했다는 것도, 갓 전입 온 신병이 왼쪽 팔꿈치 아래를 잃었다는 것도 한참 후에 알았다.
내 귀 뒤쪽으로 작은 파편이 하나 박혔는데 아슬아슬하게 두개골을 건드리진 않았다는 것과, 왼쪽 쇄골에 실금이, 갈비뼈 2번과 3번이 완전 박살났다는 사실을 군의관을 통해 전해 들었다. 오른쪽 팔에 5mm 정도 되는 파편이 관통하여 그곳을 지나는 혈관을 어지럽혔다는 사실은 덤이었다.
죽고 다친 전우들에게는 미안했지만, 나는 내가 그 아귀 속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눈물 날 정도로 감사했다.
관통상 수술은 간단했다. 국소마취로 40분 정도 진행되었고, 나는 그 닷새 후 퇴원하여 원대로 복귀했다. 당연히 부대 분위기는 이 보다 더할 수 없다 싶을 정도로 최저였다. 나를 비롯해 경미한 부상을 입은 전우들은 꼬박 한 달 동안 이리저리 불려 다니며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 때 그 장면을 수십 번 리마인드해야 했다.
우리를 공격한 것은 대전차 지뢰라고 결론 났다. 대체 대전차 지뢰가 왜 산능선 개활지에 있었는지, 그리고 어째서 사람이 걷어차는 정도로 대전차 지뢰가 반응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전차는커녕 당시 우리들 모두 도보 수색 중이었다.
모든 군대의 사건사고가 그렇듯 이번 사고 역시 진실과 책임의 재구성이 있었다. 몇 년 전 홍수 때 유실된 대전차 지뢰가 능선을 넘어 개활지에 처박힌 것은 어디까지나 우연이었으며-고로 누구의 잘못도 아니며 누구의 책임도 아니라는 것, 평상시 기폭중력 최소값이 120kg이지만 지형지물과 환경에 따라 성인 남성 몸무게에도 뇌관이 반응할 수 있다는 것-고로 병사의 발길질이 기폭의 원인이라는 보고서가 작성되었다.
죽은 분대원 둘(상병이 하나 일병이 하나였다)은 일계급 특진으로 순직 처리되었고, 팔꿈치 아래를 잃은 이병은 두 달 동안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전역했다.
지뢰를 걷어찼다는 혐의를 받은 상병은 불명예 사망처리에 들어갔으나 유가족들이 강력하게 항의함으로써 끝 모를 수사는 이어져 갔다. 파편이 된 그의 사체는 수사가 종결될 때까지 영안실 한 쪽에 보관하기로 했다. 사실 죽은 분대원의 사체 파편이 엉켜 누구의 것인지 알 수도 없었다.
소대는 해체 되어 제각기 인근 부대로 재배치 받았다. 개중에는 혼자 전출 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개 두 명 세 명 씩 짝을 이뤄 전출조치 되었다. 간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중대장 이하 장교와 부사관이 짝을 이뤄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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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절한 나를 업고 뛴 것은 강현택 중위였다. 그는 사고 당시 교신을 위해 무전병과 높은 지대로 이동하던 중이었다. 지뢰가 폭발하면서 그 역시 파편에 머리가 깨졌다.(방탄이 없었다면 그의 머리도 날라 갔을 거다) 하지만 이내 구조를 요청한 것도 그였고, 정신을 잃고 꿈틀 거리는 나를 업고 뛴 것도 그였다. 내가 중간에 팔다리가 덜렁거린다고 느낀 것은 그의 등에 업혀 있을 때였다.
군의관의 말에 따르면, 나는 생명에 지장이 없는 경상이지만, 만약 강현택 중위가 신속하게 후송하지 않았다면 과다 출혈로 쇼크에 빠질 될 뻔 했다는 것이다. 나에게 수혈을 해준 것도 강현택 중위였다. 관통상으로 오른 팔에 출혈이 심했는데, 강현택 중위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진해서 헌혈했다는 것이다.
우연인지 우리는 소대가 해체되면서도 같은 소대에 재배치 받았다. 춘천의 한 보급 부대였다. 나는 이곳에 전출 조치되자마자 상병으로 진급했다.
나는 내심 그와 같이 전출 조치 된 것을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는 매우 유능하고 인기 많은 장교였으며 나를 구해준 은인이 아니었던가?
그 역시 새로운 부대에 적응하면서 나를 가까이 두었다. 새로운 부대마크를 박을 때도 내 전투복을 같이 맡겨주었고, 내가 상병으로 진급할 때 새로운 전투모를 사준 것도 그였다.
무엇보다 우리는 외모가 형제처럼 닮아 있었다. 우리 둘 다 얼굴이 하얗고 턱선이 갸름해서인지 계급장을 떼고 보면 형제 같다는 말을 예전부터 들어왔었다. 한번은 그와 나란히 서류작업을 하고 있는데 그가 말을 꺼냈다.
“나는 형제가 없어서 말이야. 너를 보면 그런 생각을 한다. 만약 동생이 있었다면 이런 기분일까 하는.”
소대장이 이런 말을 해주다니. 나는 진심으로 감격했다.
하지만 우리 사이에 절대적으로 조심하던 한 가지가 있었다. 바로 ‘사고’에 관련한 것들이었다. 그 사고는 나뿐만 아니라 강현택 중위에게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악몽이었다. 나는 평생 그렇게 많은 피를 흘려 본 적이 없었고, 내 바로 옆에서 사람이 셋이나 죽어가는 경험 또한 해본 적 없었다. 그가 내 생명을 연장 시켜준 것은 맞지만, 가끔씩 그를 볼 때마다 그의 등에 업혀 팔다리가 덜렁 거리며 숨을 헐떡이던 당시의 기억이 되살아나곤 했다.
그건 강현택 중위 역시 마찬가지였나 보다. 그는 머리에 부상을 당한 와중에도 침착하게 부대원들을 후송하는 영웅적 행동을 보였지만 어디까지나 스물여섯 젊은이에 불과했다. 사람의 파편이 튀겨나가는 모습을 목도한 그가 모든 것을 떨쳐내기엔 부족한 나이였다.
그랬던 우리가 처음으로 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은 나의 관통상을 마지막으로 체크하던 날이었다. 인근 군 병원으로 가는 길, 강현택 중위가 선탑자(차량 인솔자)였다. 그 역시 머리에 입은 상처들을 체크하기 위해 병원에 가야했다.
진료가 끝나고 부대로 복귀하는 차를 기다리면서 그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상택이랑, 친했나?”
그가 말하는 상택이는 사고로 죽은 상병이었다. 김상택. 경북 상주 출신이었고, 나보다 한 살 어렸지만 6개월 선임이었다.
“아닙니다. 그렇게 친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랬군.”
우린 나란히 앉아서 가을볕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사한 빛이었지만 쏟아지는 볕 사이로 썰렁한 가을바람이 지나갔다. 철 늦은 잠자리 몇 마리가 화단을 비행했다.
“상택이 녀석, 외아들이었는데.”
“......”
그가 죽은 전우의 이름을 꺼내는 것이 퍽이나 거북스러웠다. 나는 대화의 방향을 돌리고 싶었다.
“중위님은 괜찮으십니까?”
“뭐가?”
“상처 말입니다. 피 많이 흘리셨잖습니까?”
“이거?”
짧게 쳐 올린 그의 뒤통수 사이로 작은 흉터들이 어지럽게 남아 있었다. 군인이라서 그렇지, 사회에 나가 머리를 기른다면 충분히 덮을 수 있는 흉터였다.
“고마웠습니다. 중위님이 저를 살리셨습니다.”
그는 소리 없이 웃으며 내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날 저녁 당직은 우연찮게 강현택 중위와 나였다. 그는 당직 사관으로, 나는 당직병으로 10평이 안 되는 지휘통제실의 밤을 밝혀야 했다.
매 시 정각마다 있는 불침번 교대 신고와 두 시간 마다 있는 초병 투입과 복귀 신고. 그는 여느 간부와는 다르게 눈 한 번 붙이지 않고 그들을 꼼꼼히 챙겼다. 가만 생각해보니 그와 함께 당직을 서는 것이 그날이 처음이었다. 상병이 되기 전까지 나는 당직을 거의 서지 않았다.
“상택이 말이야.”
새벽 3시께. 졸음이 늘어질 즈음 그가 다시 김상택 상병의 이름을 꺼냈다.
“그 녀석이 사실은 관심병사였어. 부적응이었지.”
김상택 그 독종이? 김상택 상병은 신병에게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악랄한 선임으로, 두 번이나 군기교육대에 다녀온 기록이 있었다. 나에게는 그다지 짓궂지 않았지만 그에게 한 번 당한 후임은 사회에서 그를 보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이를 갈기도 했다.
“툭하면 고참들한테 깨지고, 울고, 전출 가고 싶다고 떼썼지.”
죽은 그의 이름을 다시 듣는 것은 괴로웠지만, 내가 입대하기 전 그의 행적은 의외였다.
“그래서 내가 특별히 그 녀석 신경 많이 썼어. 사고 칠 거 같았거든.”
“그랬습니까? 전혀 몰랐습니다.”
“특히 여자 친구가 불안하다고 항상 전화이용 시켜 달랬었어. 의부증 있는 거처럼 면담만 하면 전화 시켜 달라고 그랬지.”
나는 가만히 듣기만 했다.
“그래서 직접 휴대폰 내주기도 하고, 여자 친구가 면회 오면 외박도 보내주고 그랬어. 안 그러면 상택이 이 놈 정말 사고 칠 거 같았거든.”
여기까지 말한 그는 불현 듯 생각났다는 듯 “아, 너 상택이 여자 친구 봤어?”라고 물어봤다.
보다마다. 관물대에 떡하니 붙여 놓은 그 사진을 못 봤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김상택 상병은 자신의 여자 친구 사진을 자랑하듯 관물대 가장 높은 곳에 붙여 놨다. 그리고 후임들이 감히 쳐다보지 못하게 했다. 나 역시 가끔 청소를 핑계로 몇 번 본 것이 전부였다. 사진은 특별히 주문해 뽑은 듯 꽤나 큰 크기였다. 어른 손바닥 두 개정도 되는. 그 프레임 가득히 앞가르마를 탄 하얀 얼굴의 여자가 웃고 있었다. 눈동자는 검고 또렷했고, 치아는 가지런했다.
“네, 본 적 있습니다.”
“예뻤지?”
글쎄, 그다지 미인이라 할 수 없는 얼굴이었다. 사람들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인상이었지만 어딜 가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얼굴이었다. 내가 대답을 않자 강현택 중위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 여자한테 상택이 죽었다고 전화한 게 나야.”
“아, 그러셨습니까.”
“상택이가 내 폰으로 여러 번 자기 애인한테 전화했었으니까. 그 번호가 남아 있더라고. 그날 사고 나고, 병원에서 잠도 못 자고 멍하니 있는데 갑자기 생각나더라고. 여자 친구한테도 연락이 갔을까....... 당연히 안 갔겠지. 가족들한테만 연락이 가니까.”
나는 그때 무언가 생각난 것이 있어 말했다.
“가만 생각해보니, 김상택 상병 죽은 다음에 관물대 정리한 게 저였습니다.”
그랬다. 병원에서 퇴원한 후 죽은 그의 관물대에서 옷가지를 꺼내 불태우고, 그의 물건들을 박스에 담아 가족들에게 부친 것이 나였다.
이때 불침번 교대를 신고하는 두 명의 병사가 지휘통제실로 들어왔다. 전임번은 일병이었고, 후임번은 다음 달에 일병을 다는 신병이었다. 강현택 중위는 이야기를 중단하고 그들의 교대 신고를 신문 정독하듯 보고 받았다.
그들이 나가자 강 중위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냥 여자 친구한테 전해줘야겠다 싶더라. 아마 지금 같은 새벽이었던 거 같은데. 벨이 몇 번 울리지도 않았는데 여자 친구가 받더라고. 자고 있지 않은 거 같았어. 내 번호를 기억하고 반갑게 받더라고. 그냥 말해줬어. 상택이 죽었다고. 불발 되었던 지뢰가 사고로 터져서 어이없게 죽었다고.”
자꾸 죽은 전우의 이름을 듣자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단순히 불편한 게 아니라 미어졌다. 살았을 때는 그저 싫은 고참이었는데. 외아들이었고 누군가의 사랑하는 남자친구였다는 사실을 전해 들으니 그의 생전에 없던 정이라도 생긴 거처럼 미어졌다.
강현택 중위는 여기까지 이야기 한 후 말을 줄였다. 그의 전화를 받은 여자 친구가 어떤 반응이었는지,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됐는지 좀처럼 말을 해주지 않았다.
나 역시 괴로운 이야기를 이어 듣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우린 김상택 상병의 이야기가 나오기 전처럼 말없이 서로의 책상에 앉아 매 시각 불침번의 교대 신고를 받았고, 초소 경계에 나가는 초병들의 실탄과 탄창을 체크했다. 내가 군 생활을 했던 730일의 밤 중 특이할 것 없는 밤이었다. 조그마한 사고는커녕 새 울음소리 하나 들어오지 않는 지휘통제실이었다.
우린 당직 근무가 끝난 9시 경 나란히 지휘통제실에서 나와, 차래로 샤워실로 들어가 온수샤워를 한 후, 함께 취침실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취침실에는 2층 침대가 세 개 있었는데, 간부나 병장이 2층을 쓰고 상병이나 그 이하가 1층을 쓰는 관례가 있었다. 갓 상병을 단 나는 이게 원래 내 자리라는 듯 1층 한 켠에 파고들었다. 세 개의 침대가 있기에 보통 서로 다른 침대를 쓰기 마련인데, 강현택 중위는 굳이 내가 자리 잡은 1층 위의 2층에 올라 모포를 덮었다.
“지승아, 자냐?”
누운 지 10분 정도 되었을까? 그의 뒤척임이 그대로 나무 침대에 전해져 나 역시 쉬이 잠을 이루지 못하던 때였다. 몸은 고단했지만 그가 근무 중 꺼낸 김상택 이야기 때문인지 마음이 어지러워 잠의 경계를 헤매고 있었다.
그냥 자는 척 할까 하다가 “상병, 김지승.”이라고 나지막이 관등성명을 댄 후 “아닙니다. 아직 안 잡니다.”라고 답했다.
나는 그가 자기 전에 라면이나 먹고 자자고 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다시 김상택의 이름을 꺼내기 시작했다. 아니, 도대체 왜? 그날 김상택 뿐만 아니라 정일구 상병과 장상석 일병도 죽었다. 그리고 이젠 이름도 가물가물해지는 신병 하나도 나이 스물하나에 불구가 되었다. 분명 그들도 누군가의 금지옥엽 아들이었고 누군가의 애인이며 절친이었을 게다.
그런데 왜 강현택 중위는 김상택 이야기만 주구장창 꺼내어 나를 괴롭히는 것일까? 혹시 강 중위가 그날의 사고로 어떤 강박이나 집착 같은 정신병을 앓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될 정도였다. 실제로 그날의 아귀를 경험한 병장 하나가 정신이상으로 의가사 전역을 신청했다는 소문이 돌았으니.
강현택 중위는 김상택이 일병을 달며 조금씩 부대에 적응했던 이야기를 시작으로, 그가 처음 후임을 괴롭혀 군기 교육대에 갔던 것은 사실 조금 심한 처벌이었다고 회고하듯 말했다. 나는 적당한 추임새를 넣으며 나와 상관없는 이 이야기가 어서 빨리 흘러가 내가 자연스럽게 잠들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강현택 중위의 이야기는 조금씩 이상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의례적인 대꾸만 하던 내가 이런 미묘한 변화를 감지한 건, 그가 유독 김상택의 여자 친구 이야기를 상세하게 하기 시작하면서 부터였다.
“하루는 내가 면회실 지키고 있는데 상택이 애인이 면회 왔더라고. 예뻤어. 사진 보다 낫더라. 상택이 녀석이 날 워낙 잘 따라서 그런지 여자 친구한테도 ‘우리 소대장님이다’고 소개 시켜주더라고.”
바로 여기서부터 나는 강 중위의 이야기가 묘하게 다른 핀트를 찾아 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녀석이 갑자기 외박 보내줄 수 있냐고 그러더라고. 안 된다고 그랬지. 규정상 가족이 아니면 면회가 외박으로 이어질 수 없다고. 그런데 요 녀석이 아주 독기를 품은 듯 떼를 쓰더라. 간부랑 같이 나가면 외박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기가 찼지. 짬 없어서 주말에 면회실 지키는 것도 지겨워 죽겠는데 말이야.”
강 중위는 내 반응이 미지근해지자 “지승이, 자?”라고 다시 한 번 확인한 후 이야기를 계속 했다.
“처음엔 절대 안 해주려 그랬는데, 걔 애인이 옆에서 해달라고 거드니까 거절 못하겠더라고. 그래서 애인한테 내 BOQ(독신 장교용 숙소. 주로 부대 근처에 있으며 아파트 형식) 열쇠 주면서 먼저 거기 가 있으라고 했어. 일과 끝나면 상택이 데리고 외박 시켜주겠다고. 나중에 가보니까 여자 친구가 청소를 싹 해놨더라고. 빨래통도 비워서 다 빨아 놓고. 냉장고 정리도 깨끗이 끝냈더라고. 상택이한테 잘해주는 게 고마워서 그랬대.”
나는 여기까지 듣고 직감했다. 뭔가 있구나. 냄새가 났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그 후 셋이서 두 번 더 어울려 외박을 했다는 것 정도. 밤이 되면 자기는 BOQ로 돌아오고, 김상택과 그의 여자 친구는 인근 숙박업소에서 밤을 보내다 다음날 복귀 시각에 맞춰 자신과 부대 복귀를 했다는 것 정도였다.
어느덧 그의 얘기는 흐지부지해져 그 꼬리를 찾을 수 없었다. 나 역시 흥미가 다소 떨어져 어서 빨리 그의 잠꼬대 같은 이야기가 끝나고 잠에 들기를 원했다. 우리가 침대 1, 2층에 나란히 누워 죽은 김상택의 여자 친구 이야기를 시작한 것도 어느덧 30 여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결국 나는 잠의 문턱에 한쪽 발을 내딛고 나머지 한쪽 발 역시 건너려는 순간,
“그래서 그 여자 친구....... 지현 씨랑 따로 만났어.”라는 말을 듣고 말았다.
잠이 확 깼다!
“상택이 놈한테는 미안하지만. 그놈 죽기 전부터 나랑 지현 씨랑 서로 좋아하게 되었거든.”
장교가 사병의 애인을 가로챘다는 것. 그것을 나에게 수십 분에 걸쳐 설명한 것이었다.
그는 나에게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말 자기가 그 여자 친구를 만나도 되는지를 묻고 있었다. 애당초 죽은 김상택이 이야기의 핀트가 아니었다. 이것은 강현택 중위의 연애상담이었다.
나는 눕혔던 상체를 살짝 일으켜 가며 적극적으로 답변했다. 그 지현 씨라는 분이 원한다면 문제가 될 건 없지만, 아무래도 다른 사람이 알면 도덕적으로 좋은 소리 듣기는 힘들 거라고, 병사들끼리도 아니, 사회에서도 고무신 건드리면 욕먹는데 자칫 잘못 하다가는 중위님과 지현 씨 모두 안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 같다고, 진심으로 충언했다.
그는 내 조언을 듣고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물음을 던졌다.
“그래서 말인데, 지승이 너도 같이 나갈래?”
아....... 글쎄, 그건 그다지 좋은 아이디어 같진 않았다. 나는 김상택과 그다지 친분이 없었지만, 죽은 그에 대한 미안함 보다는 커플 사이에 끼어 어정쩡한 말들을 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이런 생각들을 어떻게 강 중위에게 전달해야 할지 생각하면서 동시에 김상택의 관물대 위에 항상 붙어 있던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려 했다.
그런데 잠깐. 순간 나는 무언가 떠올랐다!
김상택의 관물대에 붙어 있던 지현 씨 사진. 생각해보니 내가 그의 관물대를 정리할 때 그 사진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나는 왜 그 당시에 그걸 눈치 못 챘을까? 죽은 김상택이 사고 전에 떼어낸 것일까? 항상 자랑처럼 그 자리에 붙여 놨던 그 사진을?
생각이 길어지니 꼬여버린 생각들이 똬리가 되어 잠의 구멍 속으로 빨려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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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CLUB]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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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대원이 M19 대전차 지뢰를 잘못 건드린 것은 내가 일병 말호봉 때의 일이다. 당시 나는 대열의 후미에서 소총을 허리춤에 올려놓고 300m 정도 떨어진 북쪽 능선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척이나 화창한 여름날이었는데, 저 멀리 북녘의 능선에서 억새가 바람에 살랑거리는 것까지 느껴질 정도로 풍광이 선명한 날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것이라곤, 내가 딛고 서있는 이 아름다운 풍경이 요란하게 찢어지는 것 같은 굉음, 그리고 나를 억세게 튕겨내는 땅의 울림. 그 두 가지가 전부였다.
잠깐 정신을 차렸을 때, 내 온몸은 뜨거운 액체의 범벅이었다. 그 액체가 다른 분대원들의 피라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두 팔은 추욱 쳐져 도무지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두 다리는 덜렁 거리며 허공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누군가의 등에 업혀 빠른 걸음으로 후송되고 있었다. 나는 다시 정신을 잃었다.
다시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앰뷸런스 안에 있었다. 시야가 물속에 잠긴 듯 흐려서 도무지 이 세상 같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손가락 열 개를 하나씩 움직였다.
하나 두울 세엣 네엣 다섯....... .......아홉 열
모두 움직였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발가락 열 개를 하나씩 움직였다.
하나 두울 세엣 네엣 다섯....... ....... 아홉 열
모두 움직였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나는 안도와 함께 긴장이 풀려 그대로 다시 정신을 놓았다.
선두에 있던 상병이 무심코 유실된 대전차 지뢰를 팔로 찼다는 것도, 그 때문에 우리 분대원 세 명이 현장에서 즉사했다는 것도, 갓 전입 온 신병이 왼쪽 팔꿈치 아래를 잃었다는 것도 한참 후에 알았다.
내 귀 뒤쪽으로 작은 파편이 하나 박혔는데 아슬아슬하게 두개골을 건드리진 않았다는 것과, 왼쪽 쇄골에 실금이, 갈비뼈 2번과 3번이 완전 박살났다는 사실을 군의관을 통해 전해 들었다. 오른쪽 팔에 5mm 정도 되는 파편이 관통하여 그곳을 지나는 혈관을 어지럽혔다는 사실은 덤이었다.
죽고 다친 전우들에게는 미안했지만, 나는 내가 그 아귀 속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눈물 날 정도로 감사했다.
관통상 수술은 간단했다. 국소마취로 40분 정도 진행되었고, 나는 그 닷새 후 퇴원하여 원대로 복귀했다. 당연히 부대 분위기는 이 보다 더할 수 없다 싶을 정도로 최저였다. 나를 비롯해 경미한 부상을 입은 전우들은 꼬박 한 달 동안 이리저리 불려 다니며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 때 그 장면을 수십 번 리마인드해야 했다.
우리를 공격한 것은 대전차 지뢰라고 결론 났다. 대체 대전차 지뢰가 왜 산능선 개활지에 있었는지, 그리고 어째서 사람이 걷어차는 정도로 대전차 지뢰가 반응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전차는커녕 당시 우리들 모두 도보 수색 중이었다.
모든 군대의 사건사고가 그렇듯 이번 사고 역시 진실과 책임의 재구성이 있었다. 몇 년 전 홍수 때 유실된 대전차 지뢰가 능선을 넘어 개활지에 처박힌 것은 어디까지나 우연이었으며-고로 누구의 잘못도 아니며 누구의 책임도 아니라는 것, 평상시 기폭중력 최소값이 120kg이지만 지형지물과 환경에 따라 성인 남성 몸무게에도 뇌관이 반응할 수 있다는 것-고로 병사의 발길질이 기폭의 원인이라는 보고서가 작성되었다.
죽은 분대원 둘(상병이 하나 일병이 하나였다)은 일계급 특진으로 순직 처리되었고, 팔꿈치 아래를 잃은 이병은 두 달 동안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전역했다.
지뢰를 걷어찼다는 혐의를 받은 상병은 불명예 사망처리에 들어갔으나 유가족들이 강력하게 항의함으로써 끝 모를 수사는 이어져 갔다. 파편이 된 그의 사체는 수사가 종결될 때까지 영안실 한 쪽에 보관하기로 했다. 사실 죽은 분대원의 사체 파편이 엉켜 누구의 것인지 알 수도 없었다.
소대는 해체 되어 제각기 인근 부대로 재배치 받았다. 개중에는 혼자 전출 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개 두 명 세 명 씩 짝을 이뤄 전출조치 되었다. 간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중대장 이하 장교와 부사관이 짝을 이뤄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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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절한 나를 업고 뛴 것은 강현택 중위였다. 그는 사고 당시 교신을 위해 무전병과 높은 지대로 이동하던 중이었다. 지뢰가 폭발하면서 그 역시 파편에 머리가 깨졌다.(방탄이 없었다면 그의 머리도 날라 갔을 거다) 하지만 이내 구조를 요청한 것도 그였고, 정신을 잃고 꿈틀 거리는 나를 업고 뛴 것도 그였다. 내가 중간에 팔다리가 덜렁거린다고 느낀 것은 그의 등에 업혀 있을 때였다.
군의관의 말에 따르면, 나는 생명에 지장이 없는 경상이지만, 만약 강현택 중위가 신속하게 후송하지 않았다면 과다 출혈로 쇼크에 빠질 될 뻔 했다는 것이다. 나에게 수혈을 해준 것도 강현택 중위였다. 관통상으로 오른 팔에 출혈이 심했는데, 강현택 중위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진해서 헌혈했다는 것이다.
우연인지 우리는 소대가 해체되면서도 같은 소대에 재배치 받았다. 춘천의 한 보급 부대였다. 나는 이곳에 전출 조치되자마자 상병으로 진급했다.
나는 내심 그와 같이 전출 조치 된 것을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는 매우 유능하고 인기 많은 장교였으며 나를 구해준 은인이 아니었던가?
그 역시 새로운 부대에 적응하면서 나를 가까이 두었다. 새로운 부대마크를 박을 때도 내 전투복을 같이 맡겨주었고, 내가 상병으로 진급할 때 새로운 전투모를 사준 것도 그였다.
무엇보다 우리는 외모가 형제처럼 닮아 있었다. 우리 둘 다 얼굴이 하얗고 턱선이 갸름해서인지 계급장을 떼고 보면 형제 같다는 말을 예전부터 들어왔었다. 한번은 그와 나란히 서류작업을 하고 있는데 그가 말을 꺼냈다.
“나는 형제가 없어서 말이야. 너를 보면 그런 생각을 한다. 만약 동생이 있었다면 이런 기분일까 하는.”
소대장이 이런 말을 해주다니. 나는 진심으로 감격했다.
하지만 우리 사이에 절대적으로 조심하던 한 가지가 있었다. 바로 ‘사고’에 관련한 것들이었다. 그 사고는 나뿐만 아니라 강현택 중위에게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악몽이었다. 나는 평생 그렇게 많은 피를 흘려 본 적이 없었고, 내 바로 옆에서 사람이 셋이나 죽어가는 경험 또한 해본 적 없었다. 그가 내 생명을 연장 시켜준 것은 맞지만, 가끔씩 그를 볼 때마다 그의 등에 업혀 팔다리가 덜렁 거리며 숨을 헐떡이던 당시의 기억이 되살아나곤 했다.
그건 강현택 중위 역시 마찬가지였나 보다. 그는 머리에 부상을 당한 와중에도 침착하게 부대원들을 후송하는 영웅적 행동을 보였지만 어디까지나 스물여섯 젊은이에 불과했다. 사람의 파편이 튀겨나가는 모습을 목도한 그가 모든 것을 떨쳐내기엔 부족한 나이였다.
그랬던 우리가 처음으로 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은 나의 관통상을 마지막으로 체크하던 날이었다. 인근 군 병원으로 가는 길, 강현택 중위가 선탑자(차량 인솔자)였다. 그 역시 머리에 입은 상처들을 체크하기 위해 병원에 가야했다.
진료가 끝나고 부대로 복귀하는 차를 기다리면서 그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상택이랑, 친했나?”
그가 말하는 상택이는 사고로 죽은 상병이었다. 김상택. 경북 상주 출신이었고, 나보다 한 살 어렸지만 6개월 선임이었다.
“아닙니다. 그렇게 친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랬군.”
우린 나란히 앉아서 가을볕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사한 빛이었지만 쏟아지는 볕 사이로 썰렁한 가을바람이 지나갔다. 철 늦은 잠자리 몇 마리가 화단을 비행했다.
“상택이 녀석, 외아들이었는데.”
“......”
그가 죽은 전우의 이름을 꺼내는 것이 퍽이나 거북스러웠다. 나는 대화의 방향을 돌리고 싶었다.
“중위님은 괜찮으십니까?”
“뭐가?”
“상처 말입니다. 피 많이 흘리셨잖습니까?”
“이거?”
짧게 쳐 올린 그의 뒤통수 사이로 작은 흉터들이 어지럽게 남아 있었다. 군인이라서 그렇지, 사회에 나가 머리를 기른다면 충분히 덮을 수 있는 흉터였다.
“고마웠습니다. 중위님이 저를 살리셨습니다.”
그는 소리 없이 웃으며 내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날 저녁 당직은 우연찮게 강현택 중위와 나였다. 그는 당직 사관으로, 나는 당직병으로 10평이 안 되는 지휘통제실의 밤을 밝혀야 했다.
매 시 정각마다 있는 불침번 교대 신고와 두 시간 마다 있는 초병 투입과 복귀 신고. 그는 여느 간부와는 다르게 눈 한 번 붙이지 않고 그들을 꼼꼼히 챙겼다. 가만 생각해보니 그와 함께 당직을 서는 것이 그날이 처음이었다. 상병이 되기 전까지 나는 당직을 거의 서지 않았다.
“상택이 말이야.”
새벽 3시께. 졸음이 늘어질 즈음 그가 다시 김상택 상병의 이름을 꺼냈다.
“그 녀석이 사실은 관심병사였어. 부적응이었지.”
김상택 그 독종이? 김상택 상병은 신병에게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악랄한 선임으로, 두 번이나 군기교육대에 다녀온 기록이 있었다. 나에게는 그다지 짓궂지 않았지만 그에게 한 번 당한 후임은 사회에서 그를 보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이를 갈기도 했다.
“툭하면 고참들한테 깨지고, 울고, 전출 가고 싶다고 떼썼지.”
죽은 그의 이름을 다시 듣는 것은 괴로웠지만, 내가 입대하기 전 그의 행적은 의외였다.
“그래서 내가 특별히 그 녀석 신경 많이 썼어. 사고 칠 거 같았거든.”
“그랬습니까? 전혀 몰랐습니다.”
“특히 여자 친구가 불안하다고 항상 전화이용 시켜 달랬었어. 의부증 있는 거처럼 면담만 하면 전화 시켜 달라고 그랬지.”
나는 가만히 듣기만 했다.
“그래서 직접 휴대폰 내주기도 하고, 여자 친구가 면회 오면 외박도 보내주고 그랬어. 안 그러면 상택이 이 놈 정말 사고 칠 거 같았거든.”
여기까지 말한 그는 불현 듯 생각났다는 듯 “아, 너 상택이 여자 친구 봤어?”라고 물어봤다.
보다마다. 관물대에 떡하니 붙여 놓은 그 사진을 못 봤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김상택 상병은 자신의 여자 친구 사진을 자랑하듯 관물대 가장 높은 곳에 붙여 놨다. 그리고 후임들이 감히 쳐다보지 못하게 했다. 나 역시 가끔 청소를 핑계로 몇 번 본 것이 전부였다. 사진은 특별히 주문해 뽑은 듯 꽤나 큰 크기였다. 어른 손바닥 두 개정도 되는. 그 프레임 가득히 앞가르마를 탄 하얀 얼굴의 여자가 웃고 있었다. 눈동자는 검고 또렷했고, 치아는 가지런했다.
“네, 본 적 있습니다.”
“예뻤지?”
글쎄, 그다지 미인이라 할 수 없는 얼굴이었다. 사람들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인상이었지만 어딜 가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얼굴이었다. 내가 대답을 않자 강현택 중위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 여자한테 상택이 죽었다고 전화한 게 나야.”
“아, 그러셨습니까.”
“상택이가 내 폰으로 여러 번 자기 애인한테 전화했었으니까. 그 번호가 남아 있더라고. 그날 사고 나고, 병원에서 잠도 못 자고 멍하니 있는데 갑자기 생각나더라고. 여자 친구한테도 연락이 갔을까....... 당연히 안 갔겠지. 가족들한테만 연락이 가니까.”
나는 그때 무언가 생각난 것이 있어 말했다.
“가만 생각해보니, 김상택 상병 죽은 다음에 관물대 정리한 게 저였습니다.”
그랬다. 병원에서 퇴원한 후 죽은 그의 관물대에서 옷가지를 꺼내 불태우고, 그의 물건들을 박스에 담아 가족들에게 부친 것이 나였다.
이때 불침번 교대를 신고하는 두 명의 병사가 지휘통제실로 들어왔다. 전임번은 일병이었고, 후임번은 다음 달에 일병을 다는 신병이었다. 강현택 중위는 이야기를 중단하고 그들의 교대 신고를 신문 정독하듯 보고 받았다.
그들이 나가자 강 중위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냥 여자 친구한테 전해줘야겠다 싶더라. 아마 지금 같은 새벽이었던 거 같은데. 벨이 몇 번 울리지도 않았는데 여자 친구가 받더라고. 자고 있지 않은 거 같았어. 내 번호를 기억하고 반갑게 받더라고. 그냥 말해줬어. 상택이 죽었다고. 불발 되었던 지뢰가 사고로 터져서 어이없게 죽었다고.”
자꾸 죽은 전우의 이름을 듣자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단순히 불편한 게 아니라 미어졌다. 살았을 때는 그저 싫은 고참이었는데. 외아들이었고 누군가의 사랑하는 남자친구였다는 사실을 전해 들으니 그의 생전에 없던 정이라도 생긴 거처럼 미어졌다.
강현택 중위는 여기까지 이야기 한 후 말을 줄였다. 그의 전화를 받은 여자 친구가 어떤 반응이었는지,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됐는지 좀처럼 말을 해주지 않았다.
나 역시 괴로운 이야기를 이어 듣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우린 김상택 상병의 이야기가 나오기 전처럼 말없이 서로의 책상에 앉아 매 시각 불침번의 교대 신고를 받았고, 초소 경계에 나가는 초병들의 실탄과 탄창을 체크했다. 내가 군 생활을 했던 730일의 밤 중 특이할 것 없는 밤이었다. 조그마한 사고는커녕 새 울음소리 하나 들어오지 않는 지휘통제실이었다.
우린 당직 근무가 끝난 9시 경 나란히 지휘통제실에서 나와, 차래로 샤워실로 들어가 온수샤워를 한 후, 함께 취침실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취침실에는 2층 침대가 세 개 있었는데, 간부나 병장이 2층을 쓰고 상병이나 그 이하가 1층을 쓰는 관례가 있었다. 갓 상병을 단 나는 이게 원래 내 자리라는 듯 1층 한 켠에 파고들었다. 세 개의 침대가 있기에 보통 서로 다른 침대를 쓰기 마련인데, 강현택 중위는 굳이 내가 자리 잡은 1층 위의 2층에 올라 모포를 덮었다.
“지승아, 자냐?”
누운 지 10분 정도 되었을까? 그의 뒤척임이 그대로 나무 침대에 전해져 나 역시 쉬이 잠을 이루지 못하던 때였다. 몸은 고단했지만 그가 근무 중 꺼낸 김상택 이야기 때문인지 마음이 어지러워 잠의 경계를 헤매고 있었다.
그냥 자는 척 할까 하다가 “상병, 김지승.”이라고 나지막이 관등성명을 댄 후 “아닙니다. 아직 안 잡니다.”라고 답했다.
나는 그가 자기 전에 라면이나 먹고 자자고 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다시 김상택의 이름을 꺼내기 시작했다. 아니, 도대체 왜? 그날 김상택 뿐만 아니라 정일구 상병과 장상석 일병도 죽었다. 그리고 이젠 이름도 가물가물해지는 신병 하나도 나이 스물하나에 불구가 되었다. 분명 그들도 누군가의 금지옥엽 아들이었고 누군가의 애인이며 절친이었을 게다.
그런데 왜 강현택 중위는 김상택 이야기만 주구장창 꺼내어 나를 괴롭히는 것일까? 혹시 강 중위가 그날의 사고로 어떤 강박이나 집착 같은 정신병을 앓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될 정도였다. 실제로 그날의 아귀를 경험한 병장 하나가 정신이상으로 의가사 전역을 신청했다는 소문이 돌았으니.
강현택 중위는 김상택이 일병을 달며 조금씩 부대에 적응했던 이야기를 시작으로, 그가 처음 후임을 괴롭혀 군기 교육대에 갔던 것은 사실 조금 심한 처벌이었다고 회고하듯 말했다. 나는 적당한 추임새를 넣으며 나와 상관없는 이 이야기가 어서 빨리 흘러가 내가 자연스럽게 잠들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강현택 중위의 이야기는 조금씩 이상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의례적인 대꾸만 하던 내가 이런 미묘한 변화를 감지한 건, 그가 유독 김상택의 여자 친구 이야기를 상세하게 하기 시작하면서 부터였다.
“하루는 내가 면회실 지키고 있는데 상택이 애인이 면회 왔더라고. 예뻤어. 사진 보다 낫더라. 상택이 녀석이 날 워낙 잘 따라서 그런지 여자 친구한테도 ‘우리 소대장님이다’고 소개 시켜주더라고.”
바로 여기서부터 나는 강 중위의 이야기가 묘하게 다른 핀트를 찾아 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녀석이 갑자기 외박 보내줄 수 있냐고 그러더라고. 안 된다고 그랬지. 규정상 가족이 아니면 면회가 외박으로 이어질 수 없다고. 그런데 요 녀석이 아주 독기를 품은 듯 떼를 쓰더라. 간부랑 같이 나가면 외박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기가 찼지. 짬 없어서 주말에 면회실 지키는 것도 지겨워 죽겠는데 말이야.”
강 중위는 내 반응이 미지근해지자 “지승이, 자?”라고 다시 한 번 확인한 후 이야기를 계속 했다.
“처음엔 절대 안 해주려 그랬는데, 걔 애인이 옆에서 해달라고 거드니까 거절 못하겠더라고. 그래서 애인한테 내 BOQ(독신 장교용 숙소. 주로 부대 근처에 있으며 아파트 형식) 열쇠 주면서 먼저 거기 가 있으라고 했어. 일과 끝나면 상택이 데리고 외박 시켜주겠다고. 나중에 가보니까 여자 친구가 청소를 싹 해놨더라고. 빨래통도 비워서 다 빨아 놓고. 냉장고 정리도 깨끗이 끝냈더라고. 상택이한테 잘해주는 게 고마워서 그랬대.”
나는 여기까지 듣고 직감했다. 뭔가 있구나. 냄새가 났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그 후 셋이서 두 번 더 어울려 외박을 했다는 것 정도. 밤이 되면 자기는 BOQ로 돌아오고, 김상택과 그의 여자 친구는 인근 숙박업소에서 밤을 보내다 다음날 복귀 시각에 맞춰 자신과 부대 복귀를 했다는 것 정도였다.
어느덧 그의 얘기는 흐지부지해져 그 꼬리를 찾을 수 없었다. 나 역시 흥미가 다소 떨어져 어서 빨리 그의 잠꼬대 같은 이야기가 끝나고 잠에 들기를 원했다. 우리가 침대 1, 2층에 나란히 누워 죽은 김상택의 여자 친구 이야기를 시작한 것도 어느덧 30 여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결국 나는 잠의 문턱에 한쪽 발을 내딛고 나머지 한쪽 발 역시 건너려는 순간,
“그래서 그 여자 친구....... 지현 씨랑 따로 만났어.”라는 말을 듣고 말았다.
잠이 확 깼다!
“상택이 놈한테는 미안하지만. 그놈 죽기 전부터 나랑 지현 씨랑 서로 좋아하게 되었거든.”
장교가 사병의 애인을 가로챘다는 것. 그것을 나에게 수십 분에 걸쳐 설명한 것이었다.
그는 나에게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말 자기가 그 여자 친구를 만나도 되는지를 묻고 있었다. 애당초 죽은 김상택이 이야기의 핀트가 아니었다. 이것은 강현택 중위의 연애상담이었다.
나는 눕혔던 상체를 살짝 일으켜 가며 적극적으로 답변했다. 그 지현 씨라는 분이 원한다면 문제가 될 건 없지만, 아무래도 다른 사람이 알면 도덕적으로 좋은 소리 듣기는 힘들 거라고, 병사들끼리도 아니, 사회에서도 고무신 건드리면 욕먹는데 자칫 잘못 하다가는 중위님과 지현 씨 모두 안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 같다고, 진심으로 충언했다.
그는 내 조언을 듣고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물음을 던졌다.
“그래서 말인데, 지승이 너도 같이 나갈래?”
아....... 글쎄, 그건 그다지 좋은 아이디어 같진 않았다. 나는 김상택과 그다지 친분이 없었지만, 죽은 그에 대한 미안함 보다는 커플 사이에 끼어 어정쩡한 말들을 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이런 생각들을 어떻게 강 중위에게 전달해야 할지 생각하면서 동시에 김상택의 관물대 위에 항상 붙어 있던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려 했다.
그런데 잠깐. 순간 나는 무언가 떠올랐다!
김상택의 관물대에 붙어 있던 지현 씨 사진. 생각해보니 내가 그의 관물대를 정리할 때 그 사진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나는 왜 그 당시에 그걸 눈치 못 챘을까? 죽은 김상택이 사고 전에 떼어낸 것일까? 항상 자랑처럼 그 자리에 붙여 놨던 그 사진을?
생각이 길어지니 꼬여버린 생각들이 똬리가 되어 잠의 구멍 속으로 빨려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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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CLUB]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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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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